설 명절 연휴가 이어지는 2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뮤지컬) 파가니니
일시 2월 15일~3월 31일 장소 세종M씨어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비운의 대가로 남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와 ‘바이올린 협주곡 2번-라 캄파넬라’ 등을 재편곡해 매력적인 ‘록클래식’으로 선보인다.
(오페라) 테너 마르첼로 알바레즈 내한공연
일시 2월 19일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설적인 테너 ‘주세페 디 스테파노’가 발굴한 천재 아티스트 ‘마르첼로 알바레즈’.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전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 무대를 석권한 그의 첫 내한공연이다. ‘카르멘’, ‘팔리아치’, ‘투란도트’ 등 총 13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100분간 오페라 세계에 흠뻑 빠져보자.
(클래식)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세드릭 티베르기엥 듀오
일시 2월 21일 장소 LG아트센터
영국의 대표 신문 ‘타임스’가 ‘음악계를 평정할 듀오’라며 극찬한 바이올리니스트 알리나 이브라기모바와 피아니스트 세드릭 티베르기엥. 이들의 합주로 낭만주의 실내악 명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들을 수 있다.
(연극) 자기 앞의 생
일시 2월 22일~3월 23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출연 양희경, 이수미, 김한, 오정택, 정원조 등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 원작이다.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돈을 받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 아줌마’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차별과 약자의 현실을 고발하는 수작이다.
(콘서트) 미스터션샤인 OST 오케스트라 콘서트
일시 2월 24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출연 안두현, 이현진, 송민제, 이신규
20세기 초 조선 의병들의 의와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각종 차트를 휩쓴 미스터션샤인 OST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하며 드라마의 감동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개봉 2월 27일 장르 다큐멘터리 출연 강금연, 곽두조, 박금분 등
인생 팔십 줄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욜로(YOLO) 라이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경북 칠곡에 사는 ‘평균 86세’ 꽃다운 청춘들이 배움의 즐거움에 빠져 인생을 재밌게 사는 비법을 전수한다.
4)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1954~1992년)
화가, 사진작가, 영화제작자, 공연예술가, 에이즈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가족에게 정신적,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에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했다.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했고 샌프란시스코와 파리에서 몇 달간 살다가 1978년에 이스트 빌리지에 정착했다.
이스트 빌리지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첫 멤버로 1980년대 초에 시빌리안 워페어, 클럽 57, 그레이시 맨션, 패션 모다, 림보 라운지 같은 전설적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1985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그라피티 쇼’를 했고, 미국을 포함한 유럽 등지에 그의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38세에 에이즈로 사망했는데, 투병 중에도 도발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5) 쳉 퀑 치(Tseng Kwong Chi, 1950~1990년)
홍콩에서 태어나 16세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파리 명문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1년 공부한 후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해 에이즈로 40세에 사망하기까지 이스트 빌리지에 거주하며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키스 해링의 ‘절친’인 그는 해링의 부탁으로 4만 장의 ‘키스 해링 아카이브’를 제작했다.
챙 퀑 치는 뉴욕에서 경험한 다민족주의, 대량 소비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애매모호한 외교관’을 예술적 페르소나로 설정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작업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작업한 ‘서양과 만난 동양’ 또는 ‘탐험 연작’은 서양이 아시아에 품는 순진무구한 선입견과 무지를 조롱하고, 서구라는 근대적 구성물이 동양과 어떤 연관 속에 구성되는지, 서구라는 상상 개념이 상징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 어떻게 동양을 신비화하고 배제했는지를 묻는다. 챙 퀑 치는 중국인임을 적극 강조했지만 중국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6)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년)
‘뉴욕타임스’는 바스키아를 가리켜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아티스트, 검은 피카소”라 표현했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과 함께 3대 팝 아티스트로 불리며, 한때 마돈나의 연인으로도 유명했다. 1980년대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을 인정해줬던 앤디 워홀 사망 후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7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바스키아는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 어머니가 미술 전문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7세 때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15세 때부터 가출을 반복하며 거리 생활을 했다. 뉴욕 거리와 지하철에 낙서화를 하며 이스트 빌리지의 신표현주의 경향을 주도했다.
노숙자들과 공원 벤치에서 숙식하고 구걸하고 마약을 거래했다. 작업 초창기에 손으로 그린 엽서와 티셔츠를 뉴욕 거리와 상점에서 1~3달러에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명성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7장의 엽서 시리즈 ‘무제(안티프로덕트 엽서)’는 이 시기의 작품이다. 바스키아의 엽서 시리즈는 앤디 워홀이 구매했는데, 당시 워홀과 함께 있던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엽서를 사지 않았다가, 훗날 바스키아에게 그림을 달라고 애걸하는 처지가 됐다고 한다.
7) 버스터 클리브랜드(Buster Cleveland, 1947~1998년)
소호 거리에서 우표 크기의 콜라주 작품을 판매하다 리무진을 빌려 소호 거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리무진 쇼’를 열어 유명해졌다. 가난과 무명이 창조력을 발휘한 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아 장난감, 자동차 후드 장식품 등 일상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품을 우편으로 보낸 ‘메일아트’가 그것이다. 메일아트는 가난한 예술가가 기성 제도권 전시 공간인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벗어나 대안 네트워크 공간에서 대중과 소통하면서 작품을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이자, 국가나 기관으로부터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던 방식이기도 했다.
그가 애용한 재료는 미술잡지 ‘아트포럼’ 표지였다. 또 벼룩시장에서 싼값으로 구매한 제품들,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 이스트 빌리지 작가들 사진, 담뱃갑, 거리에서 주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재료 특성에 따라 변주됐는데, 누구든 월 구독료 100달러 혹은 평생구독료 1000달러를 내면 우편으로 그의 작품 ‘Art For Um’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전시장은 월요일 휴관한다. 현대미술은 도슨트 설명 없이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다. 도슨트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확인하고 가길 권한다.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전시기간: 2018년 12월 13일~2019년2월24일)
‘반항의 거리, 뉴욕’(전시기간: 2018년 12월 21일~2019년 3월 20일)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전시기간: 2018년 11월 24일~2019년 3월 17일)
‘케니 샤프, 수퍼 팝 유니버스‘(전시기간: 2018년10월 3일~2019년 3월 3일)
(전시) 로메로 브리토 : Color of Wonderland
일정 1월 3일~3월 10일
장소 3·15아트센터 제1, 2전시실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토의 회화와 조각, 영상미디어 등 총 100여 점의 작품을 공개한다.
밝은 색상을 많이 사용하는 그의 작품에는 유쾌한 에너지가 담겨 있어 ‘힐링 아트’라는 애칭이 따르고 있다.
(축제) 화천산천어축제
일정 1월 5~27일
장소 강원도 화천군 일원
5년 연속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꼽힌 화천산천어축제가 개막한다. 올해는 산천어 수상낚시, 루어낚시, 밤낚시 등의 산천어 체험과 눈썰매, 봅슬레이, 얼음축구 등으로 구성된 눈·얼음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뮤지컬) 라이온 킹
일정 1월 9일~3월 28일
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출연 느세파 핏젱, 캘빈 그랜들링, 데이션 영 등
한국에서 원어로 만날 수 있는 최초의 ‘라이온 킹’ 오리지널 팀의 공연이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아프리카 초원, 그리고 화려한 의상과 가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그린 북
개봉 1월 10일
장르 드라마
출연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등
천재 피아니스트와 망나니 매니저가 투어를 다니며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며 작품상 등 골든글로브 5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공연) 레젼드 마술쇼
일정 1월 17~25일
장소 공연하닭
출연 김준표
마술사 김준표가 진행하는 ‘레젼드 마술쇼’는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의 근거리 마술 공연이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술을 마시면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 50분간 믿기지 않는 마술의 세계에 푹 빠져보자.
(연극) 오이디푸스
일정 1월 29일~2월 24일
장소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출연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등
연극,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수없이 재해석되고 있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을 무대로 옮겼다. 배우 황정민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의 남자 ‘오이디푸스’로 변신해 기대를 모은다.
(전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일정 12월 4일~2019년 3월 3일 장소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 국외 5개국과 한국이 참여한 이번 전시에서는 고려의 미술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문화재 총 390여 점이 출품된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일정 12월 6일~2019년 1월 27일 장소 아트원씨어터 1관 출연 이순재, 박인환, 손숙, 정영숙 등
강풀 웹툰을 원작으로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대학로 연극 무대로 돌아온다. 우유 배달을 하는 ‘김만석’과 파지를 줍는 ‘송이뿐’, 주차관리소에서 일하는 ‘장군봉’과 기억을 잃어버린 ‘조순이’가 서로 인연을 맺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베테랑 연기자 이순재, 박인환, 정영숙 등이 출연한다.
(축제) 보성차밭빛축제
일정 12월 14일~2019년 1월 13일 장소 한국차문화공원 일원
차밭 빛물결, 은하수 터널, 빛 산책로, 디지털 차나무, 차밭 파사드 등 아름답게 꾸며진 빛 조형물이 보성의 겨울밤을 장식한다. 주말에는 불쇼, 불꽃, 음악, 레이저 조명이 어우러진 불꽃 공연, 실내정원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공연, 해외특별 공연 등이 진행된다. 또 소망카드 달기, 문화장터 등의 상설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영화) 스윙키즈
개봉 12월 19일 출연 도경수, 박혜수, 자레드 그라임스 등
1951년 거제 포로수용소, 탭댄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탄생기를 그렸다. 종군기자 베르너 비숍이 포로수용소에서 촬영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됐다.
(뮤지컬) 마리 퀴리
일정 12월 22일~2019년 1월 6일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김소향, 임강희, 박영수, 조풍래 등
프랑스의 물리학자 마리 퀴리는 방사능 연구를 통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는 등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라듐의 유해성을 알게 된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작품에 담았다.
(전시) 피카소와 큐비즘
일정 12월 28일~2019년 3월 31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체미술 운동의 탄생 배경에서 소멸까지의 흐름을 연대기적 서술을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근대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 등 유명 작가의 진품 명화 9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의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의 커뮤니티 ‘웰다잉 연극단’. 단원 모두 웰다잉 강사 자격을 갖춘 이들로 2009년 3월 창단해 올해로 10년째 자원봉사 형태로 활동 중이다. 웰다잉 연극 ‘춤추는 할머니’, ‘행복한 죽음’, ‘소풍가는 날’ 등을 통해 공감대를 일으키며 더욱 쉽게 죽음의 의미와 준비 방법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최근 공연작인 ‘아름다운 여행’(장두이 작·연출)은 존엄사 유언장과 사전장례의향서, 버킷리스트를 준비하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암 투병 중에도 항암치료를 견디며 무대에 선 최명환 단장은 “100회 공연을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는데, 이미 초과 달성했다”며 “웰다잉 연극단 10년사를 잘 엮어 책으로 남기는 것이 새로운 버킷리스트다”라고 말했다.
김희숙 부단장은 “단원 모두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둔 상태”라며 “웰다잉 전문가들이지만, 죽음을 주제로 연극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며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웰다잉 연극단 총무를 맡은 홍재응 씨는 “연극을 통해 관객은 자기 마음속 이야기와 마주한다. 특히 언젠가 떠나리라 인정하면서도 멀리만 느꼈던 죽음의 문제와 직면하며 실천을 미루거나 망설였던 일들을 상기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통해 연극의 효과를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아름다운 여행’에서 저승사자 역의 방성희 씨는 “웰빙과 웰다잉은 하나이지, 분리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나의 죽음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갖고,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즉,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라고 조언했다.
연극의 주인공인 노인 역의 유한권 씨는 “죽어가는 인물을 연기하며 간접적으로 죽음을 체득하게 됐다. 그러면서 죽음은 곧 새로운 삶을 위한 과정임을 깨달았다”며 관객뿐 아니라 연극 단원으로서 느낀 소회를 들려줬다.
단원들은 입을 모아 “우리는 웰다잉을 위해 웰빙하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웰다잉을 실천하길 바란다는 그들의 웰빙 무대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웰다잉 연극단은 올해 2월 4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시행에 맞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인복지관, 평생교육원 등 10곳을 선정하여 무료로 찾아가는 공연을 진행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경치와 물이 좋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이처럼 좋은 나라에 태어난 나는 문화인인가, 혹은 야만인인가? 지성과 교양이 있는 사람은 문화인(文化人)이고, 그 반대는 야만인이다. 또 문화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가리켜 문화인이라고도 말한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 이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우리나라를 일컫는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퇴직하고, 향토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았다. 그때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과 사적 등을 비롯해 서울시지정문화재에 관해 배웠고, 해설을 할 때 설명을 해 주며 자원봉사도 했다. 하루는 해설을 하러 서울 봉화산에 갔다.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어 1971년 봉화산 근린공원으로 문을 열었던 곳이다. 전에는 산책이나 등산 등 여가를 즐기러 다녔으나, 해설가로 임무가 주어졌을 때는 그곳에 있는 문화재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친구들은 복잡하게 뭣 하러 그 일을 하느냐고 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것이 너무나 많았고, 유익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우재는 해발 160.1m로 문화재가 두 개 있어 서울특별시와 담당 문화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상에 있는 아차산 봉수대지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1993)로 지정문화재로 복원했다.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해 강원도를 거쳐 남양주 한이산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목멱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주민들은 이 봉수대 부근에서 음력 3월 3일 삼짇날 무형문화재 제34호(2005)인 봉화산 도당제를 지낸다. 이때는 국내외의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이는데, 친구들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잔칫상을 푸짐하게 대접한 일이 있다. 그때야 친구들은 부푼 배를 두드리며, 나처럼 해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는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을 왜 하느냐고 핀잔했으나, 지금은 나를 자주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문화인이 되려면 지성과 교양을 쌓아야 하며, 야만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나 역시 문화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아침에 바로 되는 것일까? 문화란 세상이 깨고 발달하여 문명이 개화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이상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발전과 향상을 지상목표로 삼는 나라인 문화국가(文化國家:cultured nation)에서 문화인다운 삶을 지향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김구 선생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을 위해 강조한 그의 이야기가 귓가에 아스라이 메아리쳐 오는 듯하다. 나 역시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나라’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친구들과 더불어 해설가로서 최선을 다해 활동해보려 한다. 수년 전에 배웠던 수업자료들을 친구들에게 주려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중이다. 소중한 자료를 넣을 예쁜 봉투를 준비해 친구들에게 줄 반가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지금은 흔히 쓰이는 말인 ‘섹시 디바’.
그 말에 어울리는 가수로 민해경(본명 백미경·56)을 꼽으면 수긍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보고 싶은 얼굴’,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 ‘사랑은 이제 그만’, ‘미니스커트’ 등의 히트곡은 민해경 특유의 이국적인 인상과 더불어 한국 대중가요계의 이단아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독보적인 섹시함과 고혹적인 보이스, 시원한 가창력 등은 한국 가요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탤런트였다. 최근 소극장에서 열린 ‘대학로 릴레이 콘서트’를 통해 관객들과 특별한 시간을 함께한 그녀를 만났다.
민해경이라는 가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인상들이 있다. 열정, 섹시한 눈빛, 파격, 허스키한 목소리, 카리스마 등등…. 그 인상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해경은 쎄다’. 그런데 과연 무대 뒤의 그녀 또한 정말로 그토록 ‘쎈’ 사람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사람마다 사람을 보는 시선은 다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떤 연예인이든 TV 화면을 통해 보이는 게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드릴 순 없으니 느끼는 대로 그대로 생각하는 것도 고마운 일이긴 해요. 하지만 사람의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리라 믿거든요.”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 가수 민해경
올해가 데뷔 40주년. 민해경은 지난 시간을 ‘만만치 않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메여 사는 사람이 아니다. 과거나 추억에 집착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과거가 있어 자신이 있는 것이 맞지만 현재에 더 많이 집중하고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미래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뭔가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사는 삶을 거부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이미 그런 삶을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굉장히 중요한 게 마음의 평화잖아요. 돈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불행한 것도 아니고요.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힘들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행복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노래를 하든 안 하든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평화로워요. 돈이 없어도 평화로운 사람들이 있듯이. 생계 때문에 노래를 해야 했고 너무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살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최선을 다해 견뎌온 삶이잖아요.”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과거와 미래는 현재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철저한 현재형 인간이다.
남편과 딸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
민해경에 대해 대중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그녀가 실제로는 현재형 인간이라는 데서 깨져버린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차가운 도시 여자 같고 자유로울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정작 그녀는 저녁 여덟 시 반에 잠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그야말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집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의 삶을 철저하게 즐기는 소위 ‘집순이’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많죠. 일단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하루 동안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요. TV는 거의 안 보고 대신 영화를 많이 보죠. 이런 패턴이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는 않아요.”
거의 집 안에서만 지내며 가족만을 기다리는 생활. 외롭지 않을까?
“전 외로움을 잘 못 느껴요. 혼자 있어도 집안일 하느라 너무 바빠요. 완전 잘 놀아요. 사람들이 그런 저를 보면 이상하다고 하는데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집에 들어올 사람만 잘 들어오면 되고요. 바로 남편이랑 딸이죠.(웃음) 그 외에는 제가 사람에게 원래 관심이 없어요. 일하는 아주머니가 ‘사모님처럼 자기에 관한 일 빼고 모든 일에 관심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내가 관심 가진다고 그 사람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바쁘고. 그렇다 보니 다른 사람 얘기나 뒷담화를 싫어해요. 좀 무심하죠.”
집에서 혼자 놀기를 즐기는 원조 디바라니,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 밖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색하거나 꾸며진 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신에게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고 은근한 매력이었다.
‘독함’이 아닌 ‘일관성’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실 그녀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전의 민해경 같지 않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솔직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충실히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스스로를 열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요. 저 자신은 과거와 똑같은데 과거에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한 부분이 있었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가 사람들과 좀 더 소통을 하고 있고 그런 저를 사람들이 알아주게 된 거라고 봐요.”
그동안 사람들은 민해경에 대해 단절된 모습만 보고 말하곤 했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가족은 알았다. 그래서 남편이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아내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쎄고 건방지고 교류 없고…. 제가 많이 들은 얘기들이에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여자, 지지 않는 사람. 그런 것들이 제 내면에 있긴 하겠죠. 그게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고요.”
진정 하고 싶은 꿈은 뒤로 하고 내키지 않는 노래로 가정을 지켜야 했던 삶. 그러면서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는 연예계에서 정상에 올라 10여 년 동안 거듭 그 자리를 지켜냈다. 언뜻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일, 그게 가능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떤 종류의 ‘독함’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받는 오해들은 그 독함을 위한 일관성에서 비롯된 바가 아닐까 싶었다.
“그럴 수도 있어요. 그걸 이기적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개의치 않아요. 제 욕을 해도 제게 들리지만 않게 하면 돼요.(웃음)”
노래는 곧 나 자신
지난 3월 민해경은 새로운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극장 공연을 치렀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서 쉽지는 않았던 공연 준비였다. 그러나 그녀는 베테랑이었다.
“어렸을 때는 잘 안 되는 게 있으면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그랬어요. 그러나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을 빨리 접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내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거의 하루 만에 제가 연출을 다 했죠. 아무래도 대중가수가 히트곡만 들려주는 것은 흔한 레퍼토리죠.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관객들은 민해경이란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멋이나 맛, 카리스마에 대한 기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어린 시절까지 아우르는 자신의 인생을 무대에서 풀어내는 것이었다. 가수는 무대로 말한다고 했던가.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 관객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저는 그대로 꾸밈없이 절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짧은 시간에 다는 보여줄 수 없지만. 사람들이 많이 울고 감동받았다고 말씀을 주셨어요. 저 여자가 쎄 보여도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구나 느끼신 거겠죠. 무대에서는 그게 다 보인대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사람들이 좋아해서 고마웠어요.”
다소 빤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지점에서 그녀에게 노래란 어떤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많이 들은 질문이에요. 돈이다, 생명이다 얘기 많이 하잖아요. 얼마 전에 생각해봤는데, ‘노래는 나와 같구나. 그래서 그 노래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노래는 곧 저예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숙성된 느낌으로 부르게 돼요. 한 번 부를 때보다는 열 번, 열 번 부를 때보다는 백 번 부를 때가 점점 나와 같아지는 느낌이죠.”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점점 자신과 노래가 하나가 된다고 말하는 민해경이 지금 가수로서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이 궁금했다.
“저는 본분이 가수여서 계속 머릿속에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것을 해야지, 그걸 해야지’ 하지는 않아요. 그런 시기는 지났으니까요.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그냥 주어졌을 때 그걸 잃지 않고 잘 유지하고 싶은 거죠. 그게 베테랑이라고 봐요.”
그녀는 최근 신곡 ‘We Love You’를 발표했다. ‘바람 바람 바람’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이후 녹색지대의 앨범을 제작한, 성공한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김범룡이 작곡한 노래다.
“처음 노래는 원래 작곡가 본인이 부르려고 했던 남자 노래였어요. 그런데 제가 받아서 잘 풀어나가게 됐죠. 순수하게 제가 선택해서 가사를 만든 노래인데, 제 마음이 이 노래의 가사와 같아요. 비유법도 은유법도 없는 순수한 가사로 누구에게나 위로가 되는 노래로 만들고 싶었죠.”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사람은 남편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한다. 여느 평범한 여자처럼 그녀도 남편을 만난 것을 정말 잘한 일로 꼽았고 딸을 낳아 키운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했다.
“결혼은 항상 마지막 관문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볼 때 너무 감사해요. 지금 결혼한 지 22년이 됐는데, 그 전에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뒤돌아볼 수 없었던 것을 결혼 후에 조금씩 알게 됐어요.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일 또한 돈을 주고 할 수 없는 경험이죠.”
열정, 화려함, 사랑… 장미 같은 그녀
삶에 더없이 만족하는 사람. 민해경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만족 못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가수로서의 삶이다. 수십 년을 최고의 가수로 살았던 사람이 가수가 어렵다는 말은 일견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무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무대의 엄중함을 알고 있었다.
“남편이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즐기라고 하는데, 안 돼요. 그래서 힘든 거죠. 무대는 서면 설수록 어려워요. 지금 더 많이 느껴요. 옛날엔 못 느꼈죠. 완벽한 무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지금은 안 그래요. 하면 할수록 어려워서 즐기지 못하는 거 같아요. 물론 막상 무대에 서면 괜찮지만 서기 전까지의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죠.”
그것은 그녀가 가수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무대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어쩌면 그녀가 더욱 진화하는 모습을 좀 더 오래도록 확인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게 된 가수로서의 민해경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대 모습은 장미’, 민해경의 노래처럼 역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대 모습은 장미 같았다.
봄이 힘들다. 혹자는 약동이니, 새싹이니, 희망을 얘기하지만 왠지 필자는 봄이 어렵다. 새 학년 ,새 교실, 새 친구… 어쩐지 3월이면 기지개를 펴야만 할 것 같고, 뭔가 엄청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은 채무에 맘이 무겁다. 분명 겨울도 나름 살아냈는데 겨울잠에서 방금 깬 아딸딸한 곰 취급이 싫은 게다.
해마다 이런 투정을 했건만 여전히 봄은 오고 또 가기를 60번째란다. 해서 이번 봄은 쫌 바꾸어볼 요량이다. 실컷 기다렸다는 듯 봄맞이를 가볼까 한다.
“마뜩지 않던 3월, 이제 누리는 춘삼월로!”
기억 속에 봄 햇살이 좋았던 몇몇 곳이 있다. 능동 어린이대공원 안에 아름드리나무가 늘어선 오래된 산책로, 도심 복판 선릉역 근처의 샤방한 최인아 책방,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는 후미진 골목의 Y카페가 그곳이다.
능동 어린이대공원은 설익은 젊은 날의 어설픔이 배어 있다. 당시 높은 분들의 골프장이었던 그곳의 잔디는 오르락내리락 산책로를 풍성하게 해준다. 짝지와의 악연? 시작, 어린 딸아이의 유년 추억, 불발로 끝난 짠한 연애 감정의 흐린 느낌…. 돌이켜보니 공원보다 기억이 더 그리운가보다. 불문곡직하고 누구에게나 인생의 봄날은 따시고 빛난다. 아~ 봄날이여~
선릉역 근처 최인아 책방은 최근에 즐겨 찾는 곳이다. 교보나 반디앤루니스, 별도서관은 너무 크고 높다. 내 키를 넘는 서가는 버겁다. 날것의 지식은 부담스럽고 무겁다. 이제 지식은 삶 속에 녹아 있어야 편하다. 책방이 위로가 되는 것은 지식창고에서 오는 대리만족만은 아니다. 글 내용을 차치하고 사각거리며 넘어가는 종이소리, 나무 내음이 남아 있는 책 향기, 오골오골 모여 있는 글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간택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또 다른 권력의 재미를 맛본다.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어쩌랴.
한눈에 쏙 들어오는 전경과 나지막한 2층 공간에 나무 계단이 정겹다. 아담하고 조용한 분위기와 폭신한 의자가 딱 그만이다. 화려한 샹들리에, 입구의 샤방한 철문과 높은 천장. 한때 하우스 웨딩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커피 한 잔 놓고 온종일 앉아 있어도 좋은 거실 분위기의 공간이 편안하다. '삶이 힘들 때 권하는 책', '그리울 때 좋은 책' 책갈피로 꽂혀 있는 짧은 단상 몇 구절이 신선하다. 독특한 서가 배치가 이 서점의 개성이다. 어린이대공원이 몸의 쉼터라면 최인아 책방은 머리의 쉼터쯤이라 해두자. 빼곡한 책들 사이에서 봄날 망중한의 사치를 누린다.
초등학교 담벼락과 마주한 ‘Y카페’는 주택가에 자리한 필자만의 은밀한 아지트다. 예전에 대입 준비로 지친 고3 아이들과 기분 전환으로 즐겨 찾던 곳이다. 진한 커피와 푸짐하고 달달한 허니브레드의 생크림이 위로가 되었던 카페다. 어느 날 홀 중앙에 백색 그랜드피아노가 놓이더니 살롱으로 변해갔다. 데스크 앞에 ‘매달 3번째 금욜 저녁에는 라이브공연’이라는 작은 리플렛이 놓여 있었다. coffeezip에서 Y카페로 리모델링되었다는 주인장의 말이다. 그 후 크고 꼬망쥐처럼 들락거리면서 익숙해져갔고, 한때는 출근도장을 찍기도 했다. 한동안 뜸했지만 올봄에는 가볼 작정이다. 그사이 없어진 것은 아닐지….
젊은 날의 빛나던 봄은 이슬처럼 사라지고, 중후한 2막의 봄날이 내게도 있을는지.
그날은 언제쯤일지. 이런 희망이 해를 더해서 살게 하는 봄의 힘인가보다.
봄날이여 내게 오라~
일주일 전 혹시 아내가 3월 9일 콘서트 약속을 잊을까 염려되어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는데 집에 와 보니 아내가 집에 없었다. 아내는 카톡을 보고 지웠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당일인줄 알고 약속장소인 국회의사당 역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프닝으로 참가 연습을 한 후에 어제는 정확하게 함께 만나 작년 음악회 때 식사를 했던 생선구이 집에서 연어구이를 맛있게 먹고 KBS 본관 매표소에서 공연 입장권을 받고 대기 중 오랜만에 만난 동년 가자단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동년가자단원 모두가 일필휘지에 품위가 있는 분들이라 함께 만날 때 마다 정겹고 반가웠다. 다음에는 미리 약속을 잡고 좀 일찍 와서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면 마치고 바로 헤어지더라도 아쉬움이 좀 덜할 것 같다.
이날 공연의 진행은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서현진의 준비된 사회로 아주 매끄럽고 깔끔하게 진행되었다. 공연의 전반부는 K' ART 발레단의 우아한 연기,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다는 김남윤 예술 감독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의 다양하고 화려한 연주로 진행되었고, 후반부는 작년 연말 팬텀 싱어 최종 우승팀인 남성 중창단 포르테 디 콰트로의 노래와 가수 김범수의 우렁찬 가창력이 돋보인 무대였다. 한 마디로 전반부가 깊이 있는 순수음악이었다면 후반부는 관객을 웃고 울고 즐겁게 해주는 대중음악의 무대였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느꼈던 바이지만 오늘 6회째를 맞는 따뜻한 콘서트를 맞아 사회자와 대담을 나눈 이 투데이 김상우 부회장의 간결하고 멋있는 인사말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항상 고객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국민이 부자가 되고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힘이 되도록 이투데이가 경제신문으로 소명과 역할을 다하겠다” 는 짧은 메시지 속에 독자와 광고주 그리고 임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깊이 있게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동년 기자단의 일원으로 이 일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계적인 평판을 받고 있는 프로수준의 무대라서 그런지 K' ART 발레단의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연기는 손동작 몸짓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며 과감한 연기는 관객들의 호평을 받기에 손색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같은 발레의 문외한도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사우드 오브 뮤직’ 등 관객들에게 친숙한 노래와 함께하여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재들이라 그런지 일사불란한 연주라 더욱 좋았다.
2017년 '팬텀싱어'의 우승자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우렁찬 가창력과 화음으로 우승자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더 관객들에게 각인 시킨 것 같았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한 가수는 김범수였다. 가수생활 20년째를 맞는 경력에 어울리게 관객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으며 일어나서 춤을 추게 하는 정말, 열기 넘치는 따뜻한 음악회로 만들었다.
이제, 봄은 이투데이가 주최하는 ‘따뜻한 콘서트’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관객과 관계자 모두를 행복하고 즐겁게 하는 그 힘으로 김상우 부회장의 말씀처럼 한국경제 발전과 국민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더욱 발전된 모습의 그런 2019 따뜻한 콘서트가 기다려진다.
이투데이 신춘음악회 ‘2018 따뜻한 콘서트’가 3월 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공연은 7시 30분, 전 MBC 아나운서 서현진의 진행으로 시작했는데 객석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순서지에는 K'ARTS 발레단, 김남윤과 바이올린 오케스트라, 프르테 디 콰트로와 발라드 가수 김범수가 아주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첫 공연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이 이끄는 K'ARTS의 발레로 시작되었다.
발레리나 민세연과 발레리노 이은수는 자그마한 체구로 대단한 기교는 느껴지지 않지만,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민세연은 깃털 같은 발을 내디디며 몸짓은 날리는 꽃잎 같았다. 이은수의 깔끔한 동작과 어우러져 경쾌한 봄을 알리러 온 듯, 눈을 떼기 힘들었다. 물의 요정처럼 차고 신선했다.
이어서 발레리나 박선미와 발레리노 류성우의 무대가 있었다. ‘바람의 신’과 ‘공기의 요정’은 격동적이고 활기차 무대가 좁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진행자 서현진은 이투데이 김상우 부회장을 무대로 초대해서 신춘 음악회의 취지를 질문했다. 김부회장은 “이투데이가 사옥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했는데 이번이 6회차가 되었다. 이투데이가 경제 신문의 사명을 다하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기여하여 국민이 부자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무대는 한국음악예술종합학교와 영재교육원의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으로 구성된 세계 유일의 쇼스타비치 바이올린 오케스트라였는데 대중에게 익숙한 OST작품과 정통클래식 등을 연주했다. ‘에델바이스’, ‘미션임파셔블’이 나오자 관객들은 반가운 듯 손뼉을 치기도 했다.
사실‘ 클래식은 지루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일시에 날리는 신나는 무대였다.
음악은 면역력과 기억력을 향상하니 참지 말고 좋아하시라고 진행자가 말했다.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남성4중창 ‘포르테 디 콰토르’. JTBC의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의 초대 우승팀으로 뮤지컬배우 고훈정, 테너 김현수, 베이스 손태진, 가수 이벼리를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포르테 디 콰토르’는 ‘4명의 힘’ 또는‘ 4중창의 파워’를 의미한다.
‘오딧세아’, ‘베틀노래’는 여린 듯, 감성을 어루만지며 관객들을 평화로 이끌었다.
고급스러움과 대중성을 동시에 느끼게 했는데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크로스오버로 황홀하도록 설레는 감동을 주었다.
끝으로 무대에 오른 김범수는 관객들의 감성을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 그에게 몰입시켜 버렸다.
‘끝사랑’, ‘보고 싶다’로 완전히 김범수에게 중독된 관객은 눈물을 글썽이며 각자의 사랑을 떠올리거나 작은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런 순간에 김범수는 노련하게도 유머를 잊지 않았다. ‘어리석은 질문에 하는 흔한 답변을 이야기’하며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앙코르곡과 함께 무대는 막을 내렸다. 모두에게 봄을 배달한 것 같은 무대였다.
투명한 얼음이 눈앞에서 녹고, 물방울이 경쾌하게 떨어지며 시냇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매년 이투데이 음악회는 필자를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색다른 무대를 위해 노력한 담당자의 결과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