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영화관, 식당가에는 키오스크뿐 아니라 테이블 오더, QR 결제, 테이블링,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예약 등 다양한 방식의 비대면 주문·결제 서비스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르는 물가와 부족한 인력 탓이다. 디지털화로 예약, 주문, 결제까지 고객이 직접 하면서 사장님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지만, 아직 디지털 기기가 어려운 고령자에게는 외식 문턱이 또 한 단계 높아졌다.
#도심의 한 카페
67세 김영수(가명) 씨는 아내와 카페에 들어와 15분째 난항을 겪고 있다. 키오스크 자체가 낯선 데다 화면 속 그림과 글씨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아서다. 겨우 따뜻한 원두커피처럼 보이는 그림을 선택해 결제하기를 눌렀는데, 진행이 안 된다. 주변에 직원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Shot(샷) 추가’ 버튼이 보인다. 샷이 뭔지 모르겠지만, 추가 금액을 내야 하는 것 같아 ‘선택 안 함’을 눌렀다. 이제 아내가 마실 커피를 추가해야 하는데, 산 넘어 산이다. 아내는 뒤로 이어진 줄을 보더니 “그냥 한 잔만 시켜요. 난 안 마실게요”라고 작게 속삭였다.
#유명한 빵집 앞
60세 박정남(가명) 씨는 오랜만에 집에 찾아올 딸을 위해 빵을 사러 왔다. 워낙 유명한 가게라 줄 서는 걸 알기에 오픈 30분 전에 도착했다. 가게 주변에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줄을 서 있지 않아 의아했지만, ‘온 순서대로 눈치껏 들어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10시, 가게 영업 시작이다. 직원이 나와 “1번 손님부터 입장하세요”라고 말했다. 번호 대기표를 받아야 했던 모양이다! 황급히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무슨 앱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도움을 받아 겨우 앱을 설치했지만, 다음은 회원가입이다. 아무래도 빵을 사긴 그른 것 같았다.
지난 한 달간 방문한 카페, 식당, 빵집에서 기자가 만난 고령자는 공통적으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키오스크, 테이블 오더, 테이블링 등은 고령자에게 여전히 생소한 디지털 기기다. 기기별로 사용법이 달라 새로운 가게에 갈 때마다 매번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 트렌드모니터 엠브레인의 ‘키오스크 이용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키오스크를 이용하다 주문을 포기한 사람은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많아졌다. 40대는 17.3%지만, 60대는 77.9%에 이른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많아질수록 외식 비중은 크게 줄어드는 모양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식품소비 행태조사’에 따르면, 가구주 연령이 30대 이하의 외식 비중은 83.5%, 40대는 87.8%였으나, 70대의 경우 46.3%로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속도 높이는 요식업계 디지털화
요식업계의 디지털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다양한 디지털 기기들이 요식업계로 들어왔다. 여기에 최근 높아진 물가와 인력난으로 사람을 대체할 키오스크, 테이블 오더, 서빙 로봇, 음식 제조 로봇 등이 등장했다.
키오스크는 이제 대중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요식업 곳곳에 녹아 있다. 그렇다 보니 능숙하게 키오스크를 활용하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여전히 키오스크 앞에 서면 긴장되는 고령자도 적지 않다. 키오스크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글씨가 너무 작고 조작 화면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테이블 오더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키오스크와 비교하자면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 것이니 잘 모르더라도 이것저것 눌러보며 기계를 살펴볼 시간적 여유는 있다. 하지만 역시 글씨가 작거나 외래어가 익숙하지 않아 그림을 보고 고르게 된다.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에서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부분은 결제다. IC 카드로 결제가 한 번에 안 되었을 때 대부분의 고령자는 당황한다. 기계와 소통되지 않아 ‘IC 카드로 결제해달라’는 음성을 듣지 못하고 마그넷을 긁거나, ‘IC 카드 인식에 실패했다’는 음성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카드를 꽂아 결제를 시도하는 식이다. 또 할부나 개별 결제를 하고 싶어도 결제 기기를 이용해본 적이 없어 결국 직원을 찾아야 한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접근 기회조차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QR 코드, 애플리케이션, 네이버 예약 등은 고령자에게 불친절한 시스템이다. ‘노년기 정보 활용 현황 및 디지털 소외 해소 방안 모색’ 논문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9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령자가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이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 정보 활용에서 중요한 ‘필요한 앱 설치 및 이용’ 비율은 청년층 88.7%, 중장년층 79.7%, 노년층 28.8%로 격차가 확대됐다.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해서 원하는 가게를 찾아 예약해야 하는데, 결국 자녀가 대신 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마저도 대신 해줄 가족이나 지인이 없으면 예약 전문 식당은 방문 자체도 쉽지 않다.
정순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응 방법으로 키오스크 활용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사회 추세라고 봐야 한다”면서 “과도기라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어르신들이 이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 어려운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혼자 살거나 두 분이 생활하는 분들은 외식이 어려워지거나 고립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기기를 이용할 수 없어 내가 이렇게 됐다는 자괴감도 느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심리적 허들까지, 산 넘어 산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서 가장 불편해하는 점은 심리적 위축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 작아지는 기분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고령자의 자기 효능감은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기 효능감이란 목표한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유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고령자의 디지털 소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면서 “기기에 대한 접근성이나 유용성 문제도 있지만, 고령자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필요성을 충분히 못 느끼거나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자들은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며, 쉽게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져 스스로를 탓하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했다. 유 교수는 ‘고령자의 심리적 요인을 고려한 키오스크 사용경험 개선 제안’ 연구에서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의 심리가 키오스크 이용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연구 결과를 보면 사회 분위기상 키오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또래가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 등의 사회적 특성 요인과 혁신에 대한 개개인의 인식, 키오스크를 쓰며 개인이 느끼는 자기 효능감이 키오스크라는 기술 수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오스크 이용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고령자들은 지속적인 기술 수용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많은 고령자가 키오스크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유은 교수는 그 원인 중 하나로 교육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디서 하는지 잘 모른다’, ‘멀리 가야 하는 것이 싫다’는 고령자 응답이 있었고, 교육을 받았더라도 ‘교육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것. 유 교수는 향후 키오스크에 관한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세 가지 측면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오스크 기기 자체의 사용성, 고령자를 돕는 인적 자원, 주변·사회의 인식 개선이다. 유 교수는 “키오스크 개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고령자의 심리를 고려한 시스템적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고령 친화적 디자인이 반영된 키오스크 기기 자체의 사용성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또 교육이나 도우미를 통해 기술 불안을 극복하고 고령자 스스로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성공 경험을 쌓는 것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더불어 줄서기 경험 개선, 매장 내 환경 개선, 인식 개선 캠페인 등을 통해 고령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압박감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순둘 교수도 다양한 측면의 변화가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고령자도 ‘나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배우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사회는 어르신들이 디지털에 익숙해지고 극복할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지속해서 제공해야 한다. 식당, 은행 같은 현장에서도 도우미를 두는 등 적극적으로 고령자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한 듯 교육부는 ‘2023년 성인 문해교육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 사용법, 식당 키오스크, 은행 계좌이체 등 일상에서 필수적인 디지털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비대면 디지털화는 누군가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누군가에게는 심리적 허들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편리함을 모두가 누릴 수 있으려면, 디지털 변화 속도를 따라가고자 하는 이들을 기다려주고 공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건강을 잃고서야 절절한 심정으로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게 사람이다. 위중한 병을 얻었을 때 인생의 유한함을, 시간의 소중함을 비로소 뼈저리게 절감하며 새롭게 눈을 뜬다. 함지애(58, ‘지애의 봄향기’ 대표)는 40대 때 폐암 1기 선고를 받고 투병을 했다. 용케 조기에 발견된 암인 데다 수술이 잘돼 예후가 좋았다. 천운으로 병마를 다스렸으니 정상적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듯싶었다. 하지만 얼마 뒤 폐암보다 무섭다는 폐섬유증(폐가 굳어지면서 심각한 호흡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환)이 다시 기습했단다. 어이하나? 어떻게 일어서야 하나? 폐섬유증 수술을 마친 함지애는 고심 끝에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김제로 내려갔다. 그건 요양을 위한 낙향이었지만 귀농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남은 인생을 덤으로 여기고, 이제 시골에서 제대로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는 점에선 당찬 투신이자 기꺼운 모험이었다.
서울에 살 때 그는 의류유통업을 했다. 중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을 동대문 상가, 남대문 상가에서 뛰었다. 뛰더라도 그냥 뛴 게 아니라 경주마처럼 열렬한 질주를 했나? 그의 가게엔 자주 고객들이 줄을 섰다지. 아마도 그의 천성일 패기와 근성이 성과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마침내 자수성가로 우뚝하게 일어선 이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몸에 중병이 찾아와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면 서울을 뜰 일이 없었으리라. 시골살이? 그건 그의 사전에 아예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시골 생활은 무섭고 싫었다고 한다. 그러나 병을 통과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삶의 방향이 확 바뀌었다. 이렇게 뜻밖에 찾아온 변곡점은 차라리 하나의 기쁜 선물이었다. 낙향 이후의 삶이 한결 새롭고 만족스럽다는 게 아닌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인생의 향긋한 열매를 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이왕 삶을 바꿀 거라면 다 내려놓고 가자!”
낙향 때 그의 머리에서 나부낀 기치가 그랬다. 인생을 레이스하는 데 쓸모가 큰 방편으로 여겼던 욕심과 경쟁심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물질이든 행복이든 가급적 손아귀에 한가득 움켜쥐고자 했던 지난날의 타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생존의 정글에서 지친 노루가 쉴 만한 물가를 찾아가듯이 마음을 비우고 낙향했다. 사람이 마을을 비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무가치한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다 버렸다. 그게 병에서 벗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유력한 길이라고 봤다. 함지애가 김제로 내려간 건 2012년. 초기 한동안은 요양에 전념했다.
“텃밭 농사로 거둔 깨끗한 채소류를 먹거나, 산야에서 약초를 얻어 섭취했다. 도시에 비할 수 없이 맑은 공기도 몸에 좋았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시골 생활이 주는 평온함이었다. 마음이 그토록 편안해지다니, 예상과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맛보며 안도했다. 건강도 좋아졌다. 빠른 속도로. 웃음을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이웃들과 좋은 사이로 지냈다. 아, 시골에 오기를 잘했어. 좀 더 빨리 내려올걸!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유능한 강소농 모델로 떠올라
잃었던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으면서 함지애는 슬슬 농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고즈넉한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성장한다는 게, ‘일에 대한 불타오르는 열정이 있어야 즐거울 수 있다’는 게 그가 인생에서 배운 일종의 공리다. 농사에 뛰어드는 방식은 다분히 조직적이었다. 여러 농업 교육기관을 통해 공부부터 충실히 하는 한편, 대담하게도 5000여 평의 전답까지 마련해 바닥을 다졌다.
“농토에 벼, 찹쌀, 보리,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 방법은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기로 했다. 안전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고추장, 된장, 청국장, 간장을 만들자는 게 기본 방향이었다.”
혼자서 5000평이나 되는 너른 전답에 농사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주로 위탁영농 방식으로 농사를 했다. 이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 봄철의 논밭 갈이부터 가을철 수확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니까. 그런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사전에 부지런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난 나름대로 열심히 농업을 공부했다. 건강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농사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초기 5~6년은 수련기였다. 거의 공부 기간이었다. 이때 다수의 농업 관련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았나?
“전주에 있는 한국농수산대학 가공학과에 적을 두고 배웠다. 버섯과 화훼 공부도 병행했다. 김제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도 배운 게 많았다. 전통장류, 조청, 꽃차 등에 관한 이론과 실재를 교육받았으니까. 이렇게 공부하며 농어촌체험지도사, 전통장류제조사, 꽃차 소믈리에, 천연발효식초 제조관리사 등 자격증 여러 개를 취득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판로 부문이다. 판로와 관련해서도 사전에 공부해둔 게 있었나?
“판로 문제야말로 농업 경제의 핵심이라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정보화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농사 시작과 동시에 SNS 마케팅을 위해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농사의 출발은 식초 사업으로 열었다지?
“2018년에 식초 생산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었다. 작업장과 체험장을 지어 생산과 체험 교육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가공 분야 가운데 식초를 선택한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난 농업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썼다. 딴엔 제법 공부를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느 수준인지, 뭐 좀 실력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테스트할 필요가 있었다. 테스트 수단으로 식초 사업을 택한 건 식초가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식품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나의 건강을 위해서도, 남의 건강을 위해서도 식초만큼 좋은 게 없다고 봤으니까.”
촘촘한 사전 준비에 힘입어 식초 사업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유의 현미식초를 만들어 특허 등록을 냈으며, 연잎식초라는 희귀한 제품을 만들어 역시 특허를 받았다. 스스로 설정한 테스트를 좋은 성적으로 통과한 셈이다. 이후 그는 식초의 이웃사촌인 술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전통주에 관한 공부를 미리 해둔 상황에서였다. 따라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단 필이 꽂히면 냅다 덤벼들어 몰두하는 평소의 습성과 기량을 풀가동해 전통주 개발과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주어졌다. 각종 경연대회에 출품한 그의 술이 큰 상을 연달아 받으며 일약 알아보는 눈이 꽤 많은 실력자로 부상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2019년 충남도 농업기술원이 후원한 ‘우리 발효술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21년엔 ‘대한민국 명주대상’ 경연에서 청주 부문 대상을, 2022년엔 광주MBC가 주관한 ‘우리 술 어워즈’에서 ‘왕중왕’상을 거머쥐었다. 전통주 초심자가 거둔 만만치 않은 성취였으니 이변이라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이제 그는 술과 더불어 유능한 강소농의 모델로 떠올랐다.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것
“난 술에 미친 여자다.(웃음) 좋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양조엔 디테일한 기술력이 필수다. 누룩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효모로 단맛과 신맛 등 풍미를 지닌 술을 빚어내기 위해선 반복적 실험이 선행돼야 한다. 술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다. 미치지 않고선 도달할 수 없는 게 양조다.”
어떤 술들을 만들고 있나? 가장 자부하는 술을 꼽는다면?
“현재 6종류의 술을 생산한다. 대표 상품은 ‘초야’(初夜)라는 청주다. 신혼 첫날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술에 담았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탁주인 ‘순애보’ 역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술이다.”
시중에 수많은 민속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당신의 술은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나?
“남들은 흔히 말한다. 여러 가지 꽃을 양조 재료로 삼은 꽃술은 함지애의 것이 뛰어나다고. 민속주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이게 바로 한국의 술이야!’라고 자신할 만한 술을 만들고자 노력할 텐데, 나 역시 그렇다. 그런데 술의 풍미 수준을 가르는 건 기술력보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손길에 달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 때처럼 사랑과 정성을 다하는 마음. 그게 좋은 양조의 비결이라 믿는다.”
양조란 창의적 감각이 요구되는 난해한 장르다. 자력으로 단기간에 일정한 성취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누군가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나?
“운 좋게도 좋은 스승들을 만났다. 명품 전통주 ‘호산춘’의 명인 이연호 선생님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인 박록담 선생님을 통해서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다. 이 스승들 덕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시골에 내려온 이후 나는 이렇다 할 실패나 착오를 겪지 않았다. 이건 순전히 좋은 인간관계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좋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좋은 걸 배웠고, 배운 걸 토대로 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일뿐만이 아니다. 삶의 질 자체가 아등바등 살았던 서울에서보다 훨씬 좋아졌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일과 생활, 양면에서 선순환을 해왔다는 얘기다. 남의 가르침과 의견을 경청해 피드백으로 삼기. 이웃과 도타운 우정을 나누는 일에도 사업 이상의 정성을 쏟아 감흥을 누리기. 이쯤이면 결함 없는 생활이다. 인생의 중세시대라 할 만한 투병기는 어느덧 종료됐다. 여러 측면에서 서울에 살 때와 완연하게 변했다. 이제 그가 지닌 지배적인 감정은 만족감, 그 하나란다.
다만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고 있는 양상이 있으니, 여전히 바쁘게 산다는 게 그렇다. 함지애가 만드는 건 식초와 전통주만이 아니다. 들에선 곡물을 생산하며 장류 사업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파에서 피어나는 보랏빛 꽃을 부재료로 가미한 이색 꽃두부도 생산한다. 마을 부녀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다. 김제 시내에 오픈 스튜디오를 두고 대표를 맡고 있는 ‘징게맹갱 우리술 협동조합’의 기지로 활용하고 있기도.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을 돌보는 자선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시내의 침체된 구역 일부를 놀이문화 공간으로 재생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일의 가짓수가 이토록 넘치다니. 그는 남몰래 비명을 지르는 건 아닐까? 일에 치여 부질없이 소비되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투병 이후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은 여전하고 때로 눈물도 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비로소 하고 있다는 실감으로 행복하다. 돈을 벌려고 바동거렸던 과거에서 벗어난 것만도 어딘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본성을 회복한 건 또 어떻고? 욕심을 내려놓고, 짧고 굵게 살다 가면 된다는 생각이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게 많다는 걸 알면서도 흔히들 까먹고 산다. ‘욕심에 휘둘리는 삶은 이제 싫어!’ 함지애의 드라마를 난 그런 외침으로 새겨두기로 했다.
함지애가 주는 귀농 Tip
•땅과 집을 마련하기 이전에 귀농 교육부터 충분히 하라.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1년 살아보기 프로그램’ 같은 걸 통해 농촌 생활을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다. 그 과정에서 나의 숨겨진 역량을 발굴할 수 있으며, 과연 귀농을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 초기 3년 정도는 성공을 위한 수련기로 삼아 나를 알아가는 시간 내지는 농사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으로 활용하자. 농업의 경제 효과는 현명한 운영을 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귀농 5년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이나 특기를 살려 재활용하라. 이를테면 꽃에 조예가 있다면 꽃차 사업에 도전하는 식으로.
•여성의 단독 귀농을 두려워하지 마라. 다만 남다른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귀농 초기엔 소득 발생이 전혀 없을 가능성이 많다. 예비비 확보가 필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 금융사기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0·50대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2019년 약 3400억 원에 달했다. 60대 이상의 같은 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약 1760억 원이다. 2019년과 2020년 40대 이상의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총 약 7700억 원에 이른다.
노후에 금융사기로 재산을 다 잃게 되면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심적 피해도 상당하다. 고령층을 대상으로는 금융 사기뿐 아니라 경제적 학대도 위험 요소다. 80대 부모의 연금을 독립하지 못한 50대 자녀가 가져가는 예도 있고, 요양원 원장이나 요양보호사가 치매에 걸린 고령자의 예금을 사용하기도 한다.
은퇴 후 준비 없이 창업했다가 받은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폐업하면서 자산 압류에 처하는 사례도 있다. 대출 사기에 휘말려 압류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여러 이유로 자산이 압류되면 노후 생활이 빈곤해지는 악순환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노후에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킬 수 있는 다양한 압류방지 방법들과 금융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을 알아두자.
◆압류방지통장
1. 국민연금 안심 통장
국민연금은 법적으로 압류를 못 하게 되어있지만, 국민연금을 받아서 일반 통장에 넣어두면 연금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다. 통장에 압류가 들어온다면 연금이라는 걸 소명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게 국민연금 안심 통장이다. 분할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 반환일시금을 입금할 수 있고 일반 자금은 입금할 수 없다. 한 번에 이체할 수 있는 금액은 최저 생계비 수준인 185만 원까지다. 출금할 때는 일반 통장과 같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2022년 6월 기준 안심 통장 가입자는 약 32만 명이다.
2. 행복지킴이통장
행복지킴이 통장은 수급자 전용 압류방지 통장이다.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수급금 등만 입금할 수 있다. 야외 육체노동이 많아 질병이 잦은 농민을 위한 정책보험 ‘농업인NH안전보험’의 보험금도 행복지킴이 통장으로 입금 가능하다.
주민센터에서 수급자 증명서를 발급받고, 은행에 방문해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면 된다. 이후 주민센터에 해당 통장을 수급금 입금계좌로 변경하면 된다. 농업인NH안전보험으로 행복지킴이통장을 개설하고 싶다면 보험가입내역확인서나 보험증권을 챙겨야 한다.
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의 압류를 방지하는 실업급여 지킴이통장도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앞으로 해당 통장을 행복지킴이통장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3. 주택연금 지킴이통장
주택연금을 받고 있다면 주택연금 지킴이통장으로 185만 원까지 압류를 방지할 수 있다. 185만 원 이상 연금을 받는다면 185만 원은 지킴이통장으로, 초과금액은 일반계좌로 나누어 지급해준다. 가까운 주택금융공사 지사를 방문하거나 유선으로 ‘주택연금 전용계좌 이용 대상 확인서’를 발급한 뒤 주택연금을 받는 계좌의 은행 영업점에서 개설할 수 있다. 입금액은 한도가 있지만 잔액은 한도 없이 유지할 수 있고 출금 및 이체도 자유롭다.
4. 농지연금 지킴이통장
농민이라면 농지연금 전용 지킴이통장이 있다. 농지연금 제도는 고령 농가의 소득 안전망 확보를 위해 영농 경력이 5년 이상이고 만 65세 이상인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로 받는 연금이다. 농지연금 지킴이통장은 NH농협은행이나 지역 농·축협에서 가입할 수 있다.
농지연금 신규가입자는 압류방지통장 개설 후 농지연금에 가입하면서 해당 통장으로 연금 수급을 신청하면 되고, 기존 농지연금 가입자는 통장 개설 후 한국농어촌공사에 계좌 변경을 요청하면 된다. 안심통장과 마찬가지로 185만 원까지 입금할 수 있다.
5. 기타 압류 방지 통장
위 네 가지 통장 외에도 ▲실업급여 지킴이통장(구직급여‧연장급여‧구직촉진수당 등) ▲공무원연금 평생 안심통장(공무원 연금 수급자) ▲국방부 압류방지 통장(장병급여 안심통장) ▲희망지킴이통장(산재보상 수급자) ▲노란우산공제(자영업자·소상공인) ▲임금채권 전용통장(사업주 대신 국가가 지급하는 체불임금 압류방지) 등이 있다.
또한 퇴직금도 압류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퇴직연금 통장으로 잘 알려진 IRP 계좌를 활용하면 된다. 퇴직금을 일반 통장으로 받으면 압류 위험이 있지만 IRP 통장에 넣어둔 퇴직금은 압류할 수 없다.
◆금융사기 예방 서비스
6. 지정인 알림서비스
카드 대출 금융사기가 걱정된다면 지정인 알림서비스를 신청하자. 고령자의 신용카드 대출 상품 이용 내역이 가족이나 사전 지정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안내된다.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를 이용하는 고령자가 가입 가능하다. 대면으로 신규카드 발급할 때 가입할 수 있으며, 발급 후에 개별 가입도 가능하다. 다만 알림서비스에 가입할 때 알림을 받도록 지정한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만약 지정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알림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7. 대리청구인 지정
치매로 인해 보험금 수령이 걱정될 때는 대리청구인 지정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 수익자가 치매, 의식 불명, 중대한 질병 등으로 직접 보험금을 청구할 수 없을 때를 위한 서비스다. 대리청구인이 대리로 보험금 신청을 할 수 있다. 대리청구인은 치매보험, 자동찿보험, 질병·상해보험 등 다양한 생명·손해보험에 적용된다. 치매보험의 경우 계약을 체결할 때 원칙적으로 대리청구인을 지정하도록 되어있다. 다만 서비스 적용 가능 상품이나 지정대리청구인의 범위는 보험회사별로 다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하다. 또 대리청구인에게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고 나서 피보험자(보험 가입자)가 의사능력을 회복해 보험금을 다시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이미 보험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재지급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따라서 대리청구인은 믿을만한 사람으로 신중하게 지정하도록 하자.
8. 보이스피싱지킴이
금융감독원은 보이스피싱지킴이 홈페이지를 운영한다. 보이스피싱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보이스피싱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내한다. 다양한 보이스피싱 사례들도 소개한다. 사전에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한편, 만약 피해가 있었다면 신고와 함께 해결 방법들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시니어금융교육협의회에서는 금융사기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은 무료로 들을 수 있으니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보고 사전에 금융사기 예방교육을 받아두는 것도 좋겠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고령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지속 감소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인구구조의 불균형은 노동 공급 감소, 취업자 고령화 등 국내 고용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 이니셔티브)는 인구구조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중 취업자 고령화 현상에 주목해 ‘부문별 취업자의 연령분포 및 고령화 현황과 시사점: 산업별·지역별 특징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50세 이상을 중심으로 살펴본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산업별로는 저위기술 산업에, 지역별로는 대전·세종을 제외한 비수도권에 고령 취업자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먼저 산업별 분석 자료에서 2022년 전체 취업자 중 50세 이상 비중은 고위기술 제조업의 경우 20.2%, 중위기술은 38.7%, 저위기술은 47.6%였다. 세부적으로는 제조업에 속한 산업 중 의류(59.8%), 가죽신발(59.6%), 목재(57.3%) 등의 저위기술 산업에서 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5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의약(15.7%), 전자·컴퓨터·통신기기(18.2%) 등 고위기술 제조업에서는 고령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자료를 집필한 김천구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향후 20~30대 인구가 급감하는 인력공급 환경에서 젊은 인력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고위기술 제조업에서 구인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를 기준해 보더라도 우리나라 인구 중 20~30대 비중은 2022년 26.3%에서 2050년 15.5%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이다.
지역별 분포 자료에서 2022년 기준 취업자 중 50세 이상 비중이 50%를 넘어선 곳은 전남(58.7%), 강원(55.5%), 경북(55.2%), 전북(53.9%), 경남(51.7%) 등 모두 비수도권이었다. 이에 반해 서울(38.5%), 인천(42.6%), 경기(41.7%) 등 수도권과 대전(41.4%), 세종(34.5%) 지역은 50세 이상 취업자 비중이 낮게 나타났다. 고령화 진행 속도 면에서 살펴보면, 지역 중 취업자의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은 강원과 경남이었고, 서울의 경우 지난 10년간 6.8%p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며 타 지역 대비 취업자의 고령화 속도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자료 등을 토대로 2050년까지 취업자의 평균 연령 변화를 계산했다. 그 결과 2022년 우리나라 취업자 평균 연령은 약 46.8세이며, 고용률이 2022년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 향후 2050년 국내 취업자의 평균 연령은 53.7세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기별로는 2030년 49.0세, 2040년 51.3세 등으로 예측된다. 한편 한국과 OECD국의 인구구조 등을 토대로 비교·분석한 자료를 보면, 2022년 취업자 평균연령 차이는 2022년 4.2세에서 2050년 9.9세까지 벌어진다.
김천구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취업자 평균연령은 2050년 53.7세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OECD국 평균인 43.8세보다 약 9.9세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의 취업자가 고령화된다는 것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공급하는 젊은 인력이 부족해지고, 기업들의 생산성이 저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정책제언’을 통해 △저출산 대책 효율화 △고령층 생산성 유지 방안 마련 △임금체계 개편 △외국인 전문인력 유입 △지역 특화 미래전략산업 유치와 인력공급 패키지화 등을 제시하며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대한상의 SGI 박양수 원장은 “국내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저출산·고령화, 주력산업 경쟁력 저하, 지역소멸 등을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SGI는 출산율 제고방안, 지역 산업역동성 회복, 혁신인재 공급 관련 연구를 수행하며 국가발전을 위한 통합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원주택, 오피스텔 등 사용하지 않는 세컨드 하우스를 이용해 숙박 영업을 하고, 단기 수익을 올리는 집주인이 적지 않다. 휴가철을 맞아 해당 사례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소유한 주택을 공유 숙박시설 용도로 잘못 쓰면 불법 운영으로 적발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공유숙박은 빈집이나 빈방 등을 활용해 관광객에게 유상으로 숙식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숙박시설을 운영하려면 우선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는 시설과 안전 설비를 갖춘 뒤 관할 지자체에 숙박업 신고를 해야 한다. SNS나 공유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를 통해 신고하지 않은 채 불법 영업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미신고 숙박업 행위로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현행법상 ‘공유숙박업’이나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으로 사업자 등록 없이 주거용 건물에서 숙박업 영업을 하는 것은 공중위생관리법 위반이다. 농어촌지역에서는 펜션 등 숙박시설로 주택을 활용할 수 있지만, 도시지역 주거용 건물이라면 외국인을 상대로만 가능하고 내국인을 손님으로 받으면 불법이다. 신고된 숙박업소라도 숙박 요금표를 게시하지 않거나, 시설을 불법 증축해 운영하는 경우, 농어촌민박이 소화기와 일산화탄소 경보기, 화재경보기 등을 갖추지 않은 경우도 신고 대상이다.
행정안전부는 불법 숙박업소 신고를 포함한 각종 숙박 관련 민원을 ‘안전신문고’ 홈페이지에서 처리하고 있다. 서울시, 강원도 삼척시, 경북 포항시 등 지자체도 불법 숙박업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고자에게 최대 수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유 숙박시설 운영 전에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편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시범사업을 통해 공유숙박 플랫폼 ‘위홈’에서만 서울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다. 사업자 등록을 마친 사람이 ‘위홈’에 공유 숙박업 특례 신청을 하면 내국인에게 합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공유숙박 규제 완화를 통해 부산지역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내국인 공유숙박을 부산에서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흔히 '실버 택배'라고 불리는 지하철 택배는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는 이들은 이 직업을 어떻게 바라볼까? 2010년부터 시작해 13년 동안 지하철 택배를 해오면서 배송일지를 기록한 택배원이 있다. 조용문(83) 택배원을 만나 그의 일과를 들어봤다.
지하철 택배원의 하루
조용문 씨가 택배 일을 시작한 것은 지자체의 디지털 수업이 도움됐다. 2010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자를 대상으로 한 모집 공고를 보고 지하철 택배원 모집에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조용문 택배원은 8시 10분에 집에서 출발해 9시 반까지 종로3가역에 도착한다. 액세서리를 주로 배송하기 때문에 보석류 액세서리 상가가 즐비한 종로3가역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택배 회사에 출근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 주문을 기다리는 것이다. 택배 회사로부터 물품 수령 장소와 연락처가 적힌 문자를 받으면 접수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 바로 이동한다. 물품을 수령할 때, 배송을 마쳤을 때도 회사에 바로 보고를 남긴다. 한 개의 물품을 배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배송이 끝나면 다시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서 다음 목적지를 기다린다. 일주일에 5일 근무하면서 이러한 일상을 반복한다.
그는 노인 지하철 택배에는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품을 픽업하고 사무실이나 고객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 지었다. 그는 서류나 액세서리를 전달하는 등 일반 배송을 주로 하고 있다. 의류 배송을 하게 되면 소비자한테 옷을 전달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는 이전에 백화점 배송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백화점 배송은 두 곳의 백화점을 오고 가며 여러 개의 쇼핑백을 들고 배달해야 하는 업무예요. 수익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지만, 고가의 상품이 분실되면 택배원이 책임져야 할 부담 금액도 커지죠. 택배를 시작하던 초창기에 11만 원 상당의 의류를 배상한 적이 있었어요. 무거운 쇼핑백들을 한가득 들고 하나씩 전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하나를 놓쳤죠. 백화점 배송은 수익이 높아도 여러모로 운반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수입, 체력과 건강 상태가 결정
일반적으로 노인 지하철 택배 요금은 한 건당 7000원에서 8000원 정도다. 며칠이나 걸리는 일반 택배보다는 비싸지만, 퀵서비스만큼 빠르면서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다. 보통 배송원이 배정받는 배달은 하루에 4~5건 정도. 배송료에서 택배회사의 수수료 33%를 뺀 나머지가 배송원의 몫이다. 배송원 상당수가 고령자라서, 체력이나 건강 정도에 따라 수입은 달라진다.
조용문 택배원은 13년 동안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무릎에 대한 걱정이 생겼다. 그는 무릎에 연골 주사를 맞으면서 택배를 하고 있다. “물품 배송을 재촉할 때가 종종 있어요. 시간이 얼마 없을 때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야 해요. 그래도 제시간에 도착하면 뿌듯하죠.”
그는 평소 출근할 때 아내가 만들어 준 김밥이나 떡을 챙겨온다. “점심은 항상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택배 일을 할 때는 언제 주문이 올지 몰라요. 그래서 비교적 간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때에 따라서 다양하게 먹는 편이에요.” 이날 그의 점심은 약밥이었다.
더운 날씨에도 그는 내복을 껴입고 모자를 쓴다. 지하철 내부의 에어컨 바람은 차갑기 때문이다. 그는 더운 날씨보다 폭우를 더 걱정했다.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물건들을 챙깁니다. 시간에 맞게 배송하려면 날씨에 상관없이 바삐 움직여야 해요.”
13년간 택배일지를 써온 이유
그는 지하철 택배라는 직업이 돈벌이 이상의 즐거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매일 쓰고 있는 블로그를 꼽았다. “매일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 물건을 주고받으면서 만나는 고객들은 블로그의 소재가 됩니다. 일상을 글로 엮어 성실하게 게재하고 있어요. 용돈을 버는 것도 생활에 도움이 되지만, 생활 속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늘 즐거워요.”
그는 IMF 시절인 1997년에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기억도 점차 사라져갔다. “당시에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어요. 제가 예전에 있었던 기억을 잘 못하니까요. 치료하면서 나아진 것도 있지만, 지하철 택배를 시작하고 많이 건강해졌어요. 여러 사람도 만나고 계속 걷다 보니 활력이 생긴 것 같아요.” 그는 소중한 일상을 기록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 조용문 씨의 블로그의 방문자는 최대 수천 명에 이른다.
지하철 택배를 하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긍정적인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의 블로그에 나온 배송 일지를 보면 가게 주인부터 외국인, 어린이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어린이의 손에 들린 작품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어보거나 배송하면서 직원에게 말을 거는 등 활발한 소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이 일자리를 신청하는 목적 중 하나는 사회활동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202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사업을 신청한 가장 높은 이유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였고 그다음으로 많았던 이유가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조용문 택배원은 물품을 전달할 때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힘들기는 해도 꾸준히 블로그에 배송 일지를 쓰니까 나름 이 일에 자부심이 있어요. 활력이 생기니 마음도 건강해졌죠. 자서전을 쓰겠다는 목표가 있는데 곧 제 책이 출간될 예정이에요.”
조용문 택배원은 오후 5시에 일을 마치고 블로그 일기를 쓴다.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지나온 풍경과 거리에 있는 조각상 등 평소에 빠르게 지나치면 놓칠 법한 것들이 담겨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30장 이상의 사진 중에 베스트 컷을 고르고, 생각을 적어 내려간다. 그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것이 블로그 일지에도 도움이 된다며 미소를 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 조용문 택배원은 지하철 승강장으로 돌아와 앞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신속 배달! 짜장면 한 그릇도 정성스럽게 배달해드립니다.’ 한때 중국집 전단지에는 이런 홍보 글귀가 자주 쓰였다. 그러나 배달 앱과 대행업체 등이 성행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은 ‘배달료를 추가 지불해야 한 집만 가는 신속 배달’이 가능하고, ‘최소 주문 금액을 채워야 짜장면 한 그릇’도 받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마저도 배달 앱을 문제없이 사용했을 때의 이야기다. 예전보다 수고와 값을 더 치르는 건 분명한 듯한데, 과연 우리 집 문 앞에는 ‘정성스러운 배달음식’이 놓여 있는 걸까?
배달 주문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건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식당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배달로나마 외식을 즐기게 된 것. 지난해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신한카드 이용 기준으로 주요 배달 앱 4개 업체의 이용 건수와 이용액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보다 각각 206%와 240% 급증했다. 같은 리포트에서 배달 앱의 연령대별 이용 비중을 보면 40대와 50대는 2019년 전체의 15%와 4%에 그쳤지만, 2년 뒤 24%와 7%로 늘어났다. 이와 비슷한 결과를 두고 배달업계에 중장년이 큰손으로 떠올랐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전체 중장년 인구 대비 사용자 비중은 미지수다.
한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2019 배달음식, 배달 앱(어플) 관련 U&A 조사’ 결과를 보면 20~30대의 경우 약 60%가 배달 앱 이용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반면, 40~50대는 약 44%로 절반을 밑돌았다. 아울러 ‘나에게 배달 앱은 꼭 필요하다’ 항목에서 20~30대는 2명 중 1명꼴로 ‘그렇다’고 반응했지만, 40~50대는 4명 중 1명만이 필요성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변 사람에게 배달 앱 이용을 추천하는가’를 묻는 항목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종합해보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장년의 비율은 이전보다 증가했더라도, 만족도 측면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이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크게 편리성, 가격, 품질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봄 직하다. 흥미로운 건 이 세 가지 요소가 배달 서비스를 선호하는 이유와도 상충된다는 점이다.
메뉴 고르다 한 세월, 라면이나 먹고 말지!
“여기 OO빌라 △△호인데요, 짜장면 하나요.” 과거 배달 주문을 할 때면 이렇게 사는 곳 주소와 메뉴만 말하면 상황이 끝났다. 번지수 없이 건물명만으로도 소통되거나, 단골이라면 ‘누구네 집’ 정도로 알아채는 사장님도 있었다. 배달 앱 서비스 초반에만 하더라도 중장년들은 ‘직접 전화를 안 했는데 배달이 잘 올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 미리 계산까지 해두기 때문에 주문 오류가 거의 없는 편이다. 오히려 과거 주소를 틀리거나 연락처가 없어서, 배달을 갔는데 현금이 부족해서 등의 이유로 종종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배달 앱 접근이나 주문 상황에서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배달 앱 사용자 1위로 알려진 ‘배달의민족’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0 모바일 앱 접근성 실태조사’에서 국내 다운로드 상위 300대 앱 중 점수 38.9점을 받아 꼴찌인 300위를 기록했다. 해당 연구는 고령자와 장애인의 앱 접근성을 파악하는 척도로 쓰인 만큼, 중장년 배달 앱 사용자의 불편함이 드러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요즘은 배달의민족이 아닌 다른 배달 앱에서도 주문이 만만찮다는 걸 느낀다. 기본적인 메뉴 고르기부터 난항이다. 메뉴가 적은 가게라면 수월하지만, 음식 종류가 많고 선택사항이 많은 곳일수록 손가락은 화면을 스크롤하기 바쁘다. 가령 강남에 있는 한 도시락 전문점의 경우 앱에 등록된 메뉴 가짓수만 90여 개에 이른다. 이 수많은 메뉴 중 겨우 하나 고르고 나면 다음 화면에 추가선택 항목이 나온다. 주로 토핑이나 맛, 사이드 메뉴 등을 고르게 하기 위함인데, 이 또한 기본 메뉴 못지않게 줄줄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를 세세하게 챙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나, 앱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에게는 불편함과 피로함만 더해질 뿐이다.
이에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혹 젊은이들도 앱 주문을 번거롭게 여기거나 힘들어하더라. 중장년은 오죽할까. 밥하기 싫어 편하게 먹으려다 앱 설치부터 주문, 결제까지 고충을 겪다 보면 ‘그냥 라면이나 먹고 말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오프라인에서 사용하는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는 좀 더 접근성이 쉽고, 주변의 도움을 받기도 용이하다. 그에 반해 배달 앱은 혼자 해내려다 아예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비싼 배달료 부담, 괜한 낭비라는 죄책감 들기도
과거엔 배달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배달 대행업체가 등장하면서 음식값과 별개로 배달료가 책정되기 시작했다. 통상 배달 앱에 가게마다 게재된 배달료의 경우 대행업체가 제시하는 금액을 가게 사장님과 소비자가 나눠 내는 격이다. 가게 사정에 따라 사장님이 전액 배달료를 부담하기도 하고, 적당히 나누거나, 오롯이 소비자가 내야 하는경우도 있다.
사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과거처럼 배달직원을 두려면 부담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주차할 공간이 필요하다. 직원을 고용하면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고,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이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배달 대행업체를 이용하면 이러한 부담을 더는 동시에 물리적 한계도 덜해진다. 가령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주문량이 폭주한다고 할 때, 배달직원 한 명이 처리할 수 있는 배달 건수는 많지 않다. 이에 반해 대행업체를 쓰면 제한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배달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업체들이 배달대행을 선호하고, 이에 따른 배달료가 부과되는 것은 일부분 이해하나 최근 도가 지나치다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높다. 심한 경우 배달료가 1만 원을 넘는 곳도 있어,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설문조사를 보면 ‘배달 앱 이용 가격이 합리적이냐’는 질문에 75.5%가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배달료에 할인 혜택을 두기도 하는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주문 금액에 따라 달라진다. 많이 주문할수록 배달료를 인하해준다는 것인데, 이러나저러나 전체 금액이 부담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게다가 최소 주문 금액이라는 기준도 통과해야 한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1인 식사 메뉴 하나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따라서 1인 가구거나 혼자 식사해야 할 때는 음료나 불필요한 메뉴를 추가해가며 금액을 채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치솟는 배달료 문제에 대해 이은희 교수는 같은 경제적 부담이라도 젊은 세대와 중장년이 느끼는 바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이들은 편리함을 대가로 돈을 지불한다고 여기지만, 이러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들은 자신이 게을러서, 낭비가 심해서 불필요한 돈을 낸다는 죄책감을 갖는 듯하다”며 “가령 10분이면 걸어갈 거리의 가게에 직접 가서 먹거나 포장해오면 몇 천 원은 아낀다는 절약 정신을 발휘하는 분들도 있다. 한편으론 이런 성향이 나쁘다고 보지는 않는다. 배달음식을 계속 선호하다 보면 바깥 활동이 덜해지면서 사회성이나 체력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굳이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이러한 서비스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요즘은 배달 앱에 ‘포장’ 기능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운동 삼아 직접 오가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편리한 배달음식, 위생과 안전도 고려해봐야
배달음식의 특성상 매장에서 갓 나온 음식 만큼의 상태를 기대하긴 어렵다. 팅팅 불어버린 면, 눅눅해진 튀김, 식어버린 국물도 어느 정도 감수한다. 처음 주문하는 곳이라면 맛이 떨어져도 그러려니 한다. 문제는 배달음식의 품질이다. 실제 고객들이 작성하는 리뷰 페이지를 보면 적나라하게 이물질 사진을 올리거나, 불량한 식재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종종 보인다. 이는 식당의 이미지도 나빠질뿐더러, 배달음식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그러나 소비자의 이러한 염려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 배달음식점에 대한 식품위생 관련 적발 건수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배달음식점 대상 단속 결과 식품위생과 관련해 적발한 건수는 2019년 94건에서 2020년 1200건으로 무려 12.7배로 늘어났다. 아울러 식약처 ‘배달 앱 이물 통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배달음식에서 이물이 검출돼 신고된 건수는 2019년 810건에서 2021년 6월 말 기준 2874건으로 255% 급증했다. 가장 많이 나온 이물은 머리카락, 벌레, 금속, 비닐, 플라스틱 순이다.
지난해 열린 국민생활 과학기술포럼 ‘코로나 시대, 배달음식과 국민건강’에서 함선옥 연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배달음식의 식품안전 이슈를 발표했다. 함 교수는 “배달 앱에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배달음식 업체 10곳을 무작위로 조사했더니, 그중 6곳이 위생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주방 내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배달음식점 대상 맞춤 규제가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배달원들이 사용하는 배달용 박스를 살펴보면 관리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상태가 많다.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정도 필요해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전향숙 국민생활과학자문단 먹거리안전분과위원장(중앙대학교 교수)은 같은 포럼에서 “배달음식이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현재 우리 배달식품의 섭취는 맛, 가격, 편리성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이제는 배달식품이 영양학적으로 충분한가, 위생 상태는 양호한가, 포장 용기의 문제점은 없는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때”라며 배달음식의 영양 및 품질 등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가입 당시에는 필요했던 보험이 노후에는 필요 없어지기도 하고, 노후에 필요한 보장 내역이 생기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건강 관련 위험이 커지는데, 수입은 줄기 때문에 보험금이 부담돼 계약 해지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무조건 새로 나온 보험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므로, 보험을 점검할 때는 본인의 상황을 살펴 똑똑하게 해야 한다. ‘위험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 리모델링할 때 주의할 점들을 소개한다.
◆보험 가입 전 점검 사항 6가지
첫째, 계약 유지 가능성을 고려한다. 현재 자신의 소득과 보험료 납입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서 장기간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가입하는 것이 좋다.
둘째, 목적에 맞는 상품을 고른다. 보험은 위험 보장을 하는 보장성 보험과 목돈 마련이나 노후 대비 자금 마련을 위한 저축성 보험으로 나뉜다.
셋째, 보험료를 꼼꼼히 살핀다. ‘커피 한 잔 값으로 평생 보장’ 등의 문구에 혹해 보험료가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0년 이상 납부하면 자동차 한 대에 맞먹는 큰 금액이 된다. 따라서 꼼꼼하게 보장 내역과 보험료를 비교해 가입해야 한다.
넷째, 보장 범위와 보험금 지급 제한 사유를 보자. 보험료만큼 중요한 사항이다. 보험 상품은 약관에 따라 구체적인 보장 내용이 정해진다. 하지만 약관은 내용이 방대하므로 상품설명서를 통해 어디까지 보장이 되는지, 어떨 때 보험금이 나오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는 것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만약 상품설명서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설계사에게 설명을 들어야 한다.
다섯째, 갱신 여부를 살펴보자. 대부분 보험 상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험료가 바뀌는 ‘갱신형’과 한 번 가입하면 계약 종료 시까지 보험료가 똑같은 ‘비갱신형’이 있다. 갱신형 상품은 처음에는 저렴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료가 오르는 구조다. 특히 60세가 넘어서도 만기까지 보험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수입이 없어 보험료가 부담될 수 있는데, 이때 보험 계약을 중도해지하면 보장을 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가입 시기가 아니라 가입자가 고령자가 되었을 때 예상되는 보험료 수준이 얼마일지 보험료 예시표 등으로 살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보험회사 지표를 들여다보자. 보험가격지수는 상대적인 보험료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예를 들면 각 보험회사의 암보험끼리 비교해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은지 낮은지를 알려준다. 보험가격지수가 80이라면 같은 상품 평균 가격보다 20% 저렴하다는 뜻이다. 물론 가격은 저렴해도 보장 범위가 좁을 수 있으니 위에서 언급했던 조건들도 같이 봐야 한다. 그 외에도 보험회사가 상품에 대해 잘 설명하고 판매했는지를 나타내는 불완전판매비율, 보험금 청구를 얼마나 하지 못했는지 나타내는 보험금 부지급률, 보험금 지급 관련 소송을 얼마나 했는지 볼 수 있는 소송공시 등의 지표를 살펴보자. 이 지표들은 낮을수록 건전하다고 볼 수 있다. 네 가지 지표는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험 해지 전 확인해야 할 2가지
2022년 6월 생명보험회사 해약환급금은 3조 원이었는데, 같은 해 10월 6조 원으로 두 배 늘었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보험 계약을 중도해지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하지만 보험은 장기간 유지를 전제로 설계됐기 때문에, 중도해지하면 원금보다 적은 금액을 받게 된다. 따라서 보험 해지 전 계약을 유지할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첫째, 급전이 필요하다면 보험계약대출이나 중도인출이 가능한지 알아본다. 보험계약대출은 보험 보장은 유지하면서 대출 심사 절차 없이 해약환급금의 일정 범위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다. 중도상환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건 장점이지만, 이자연체 등으로 대출 원리금이 해약환급금을 넘어서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또한 대출 이자가 발생하므로 다른 금융기관 대출과 비교해보자. 중도인출은 별도의 이자는 없지만 보장금액이나 해약환급금이 줄어들 수 있다.
둘째, 보험금 납부가 부담이라면 보험료 자동대출납입, 납입유예, 감액완납 등의 제도가 있는지 확인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대출 이자가 발생하거나, 해지환급금이 줄어들거나, 보장 금액이 축소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잘 알아보고 고려하도록 하자.
◆위험 우선순위 고려한 보험 리모델링
보험 가입의 구조나 기능을 개선해 위험관리 가치를 올리는 보험 리모델링은 변화된 상황에 맞춰 위험관리 전략을 점검하고 다시 세우는 일이다. 보험료를 낼 여유가 있다면 모든 위험을 관리하면 좋겠지만,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치명적인 위험(개인·가정을 파산으로 이끌 수 있을 정도의 손실위험)을 먼저 대비해야한다. 내가 준비한 보험이 치명적 위험을 보장하지 않거나 부족하다면 보험 리모델링을 고려해봐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보험 해지와 새 상품 가입이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종신보험은 가입 당시 예상 기대 수명 등을 기준으로 하는데, 같은 금액을 넣더라도 과거 상품과 최근 상품의 기대 수명이 달라 최종적으로 수령하는 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비가 내린다. 비는 감정의 농도와 온도를 높여준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며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시킨다. 그렇다면 비 내리는 날에 여행을 떠나도 좋으리라.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에 장맛비가 내린다. 그래 사람이 거의 없어 적적하다. 비는 쉼 없이 내려 풍경을 변주한다. 미인은 주렴 사이로 보라 했던가. 그래야 운치가 돋는다 했다. 미인뿐이랴. 주렴처럼 드리워지는 빗발 사이로 보이는 광한루원의 풍경 역시 맑은 날과 달라 오히려 이색 정취를 자아낸다. 비에 흥건히 젖은 누정과 수목의 표정을 주시할 만하다. 육안보다 심안으로 봐야 할 것만 같은 내향성이 서려 있다.
광한루원은 남원시의 자랑거리이자 관광명소다.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유명해진 건 광한루원이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등장해서다. 사람들은 흔히 광한루원과 ‘춘향전’을 동격쯤으로 여긴다. 그래 광한루원에 와서 춘향과 이몽룡이 남긴 열애의 행적을 더듬는다. 그러나 광한루원의 본질은 ‘춘향전’과 무관하다. ‘춘향전’의 한 배경 장소로 쓰였을 뿐, 본래 조선 중기에 지어진 원림(園林)의 귀감이라는 데에 광한루원의 정체성이 있다.
사실관계가 그러하지만 흔히 간과한다. 광한루원에 와서 원림에 꾹 방점을 찍고 답사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대부분 춘향의 상열지사를 염두에 두고 풍경을 바라본다. 유심히 살펴보고 감흥을 즐길 만한 조선 원림이 엄연히 이곳에 있으나 ‘춘향전’을 표상하는 구조물들이 혼재해 정작 또렷이 인식하지 못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관점의 조절이 필요할 텐데, 관광 소재로 들어앉은 시설물들을 시야에서 걷어낸 셈치고 원림 풍경을 바라보는 게 좋겠다. 그게 광한루원을 담뿍 마음에 담는 방법일 테다.
광한루원은 관아가 주도해 지은 관아 원림이다. 관아 원림이란 고을의 관원이나 시인 묵객들이 연회와 풍류를 즐긴 야외 정원이다. 광한루원은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그 일원에 조영된 원림을 통틀어 지칭하는 이름이다. 광한루의 스케일은 매우 웅장하다. 위엄이 넘친다. 상징과 지향을 담은 사물들의 디테일로 아름답기도 하다. 정원과 연못 역시 호방하고 수려하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된 팔작지붕 형태의 누각이다. 남쪽에서는 간결한 구조로 보이지만, 북쪽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장식적인 외관에 눈길이 쏠린다. 거기에 세 겹의 작은 지붕 아래로 층계를 설치한 회랑이 있어서다. 월랑(月廊)이라 부르는 묘한 구조물이다. 이걸 조성한 이유가 있다. 광한루는 초창 이후 중수를 거듭했다. 그 와중에 정자의 총량이 너무 과중해 북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했는데, 이 난처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계단이 있는 회랑을 덧대어 지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여느 정자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한 형태미와 기능성을 확보하게 됐다. 이와 같은 건축적 개성과 위트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한루엔 당대 문호들이 쓴 시문 편액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멋들어진 정자가 있으니 드나든 시인이 한둘이었으랴. 여기에서 붓에 먹을 적신 묵객이 한둘이었으랴. 호남을 지나는 선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다고 한다. 지리산 솔바람이 드나드는 정자 마루에선 청담(淸淡)이 자주 오갔으리라. 끽다와 음풍영월이 있는 풍류도 다반사였을 테고. 조선의 문인 임제가 광한루에 올랐을 때엔 매화라도 피었나? 매화 가지에 달이라도 걸렸나? 반쯤은 취하고 반쯤은 깬 채 밤이 깊어졌다고, 함께 노닌 사람과 헤어질 땐 꽃이 지더라고, 임제는 그렇게 시로 노래했다.
광한루는 세종의 총예를 받았던 명재상 황희가 남원에서 유배를 살 때 지은 작은 누각 광통루에서 유래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1444년 전라감사 정인지가 “아하, 여기가 바로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로다!”라고 찬탄한 데에서 비롯됐다. 정인지가 괜히 달나라 운운한 게 아니다. 광한루가 애초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지어졌으니까. 즉 광한루는 천상의 궁궐인 셈이다. 옛사람들은 상상력을 발동해 결국 천상계를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천상에 모래알처럼 무수히 뿌려진 것은 별인데, 광한루 전면의 넓고 유려한 연못이 바로 은하수를 상징한다. 연못 가운데엔 섬 세 개를 만들어 삼신산을 표상했다. 광한루원의 기저엔 이렇게 신선 사상이 깔려 있다. 도교, 유교, 음양론, 풍수지리 등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상징 구조들로 어우러져 있다. 안팎이 두루 광활한 세계관으로 상통하는 원림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앞줄에 설 조선 정원이다.
신선을 마음에 들여놓고
다시 빗속을 운전해 정자를 찾아간다. 지리산 기슭,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 있는 퇴수정(退修亭)이다. 매천 박치기(梅川 朴致箕, 1825~1907)가 1870년에 지은 누정이다. 그는 토목건축을 관장하는 벼슬살이를 하다 은퇴하고 여기 후미진 산골짝에 은거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은 결국 자연으로 흘러가는가? 퇴직 뒤엔 정해진 순서처럼 산림에 여생을 의탁했던 선인들의 유전자가 후세까지 이어지나? 박치기의 고향은 함양군 안의면이다. 그러나 퇴직 후엔 고향을 떠나 이곳에 터를 잡았다. 왜 그랬는지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박치기가 지은 퇴수정의 모습이 그의 선조 박명부가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지은 농월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닮아 흥미롭다. 경치 좋은 냇가에 지은 정자라는 점에서도 퇴수정과 농월정은 유사하다. 경관을 보는 취향과 정자를 짓는 경향에 집안 내림이라는 게 있지 않았나 싶다.
박치기는 널리 이름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근사한 정자를 지어 한몫 단단히 했다. 그의 전공이 건축이었으니 퇴수정에서 구현된 건축 미학의 완성도를 보지 않고도 가늠할 만하지만, 실제 이 정자는 빼어나 인상적이다. 당대 누정 건축의 첨단 기술력으로 빚어낸 작품일 수도 있다. 명품 정자라 추켜세우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정자의 규모는 작아서 소박미가 물씬하고, 흠결 없는 비례로 조화롭다. 은근한 세련미로 우아하기까지 하다.
퇴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은 정자다. 가령 배흘림기둥을 구사해 시각적 안정감을 부여했다. 조선시대에 일반적이었던 막돌 초석 대신 사각 다듬돌을 놓은 것도 당시로선 획기적인 건축 공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뚜렷한 특징을 꼽자면 훤칠한 냇물과 동행하는 정자라는 점이다. 지리산에서 굴러 나온 계류가 정자의 코앞을 흘러가는 게 아닌가. 기기묘묘한 물가의 암반들과 물속의 바위들까지 퇴수정의 동아리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숲과 물 사이에 들어앉은 정자다. 자연과 긴밀하게 얽힌 집이다. 박치기의 생리는 초야를 닮아 거친 나물밥만으로도 자족했다. 퇴수정 마루에 올라서는 곧잘 객과 더불어 술과 거문고를 즐겼다지. 그는 신선을 닮고 싶어 산수에 묻혀 산 인물이다. 속세의 질서와 규율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 안에 신선을 들여놓고 자연에서 노닐 경우엔 경지가 달라진다. 신선을 흠모한다는 건 이미 도(道)에 밝다는 뜻일 테니까.
김주완 남원문화원장
“남원 문화의 성장 지리산의 영향력 덕분”
예로부터 남원을 일컬어 ‘천부지지(天府之地) 옥야백리(沃野百里)의 고을’이라 했다. 하늘이 내린 땅이며, 비옥한 들판이 펼쳐지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저 옛날의 농경사회 시절,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이 풍부해 의식주가 넉넉할 경우엔 문화마저 덩달아 융성했다. 남원이 딱 그랬다. 농업이 발달한 덕분에 향토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현대에까지 상속된 유형・무형의 문화자산이 수두룩한데, 이를 견인차로 삼아 남원은 문화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이에 대한 김주완 남원문화원장의 얘기는 이렇다.
“농업경제의 힘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먹고사는 게 무난해 예술이 발흥한 거다. 삼국시대부터 남원이 교통의 요충이었다는 점도 문화 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교통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는 물론, 외부의 다양한 문화 유입이 활발했으니까.”
남원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지리산이 남원 문화에 미친 영향도 클 것 같다.
“남원 사람들에게 지리산은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어머니 산’이다. 삶의 희망과 안식을 지리산을 통해 얻으며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원의 문화예술 역시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성장했다고 본다. 남성적인 판소리 동편제를 완성한 가왕 송흥록의 성취는 지리산이 주는 정신적 영향력에 의해 가능하기도 했다. 남원은 문학의 요람이다. 고전소설 ‘춘향전’과 ‘흥부전’의 무대이자 발상지이며,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남원 사람이다. 이 모든 문학적 성장의 뿌리 역시 지리산에 있다고 생각한다.”
6년째 남원문화원을 이끌고 있다. 그간에 거둔 성과를 소개한다면?
“큰 성과 하나를 소개하겠다. 과거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베 짜는 소녀가 있었는데, 우리 문화원은 이 소녀의 스토리를 전해 듣고 전말기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사단을 꾸려 일본 현지를 찾아가 여러 기록을 뒤지는 등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 결과 마침내 영상 다큐에 모든 걸 담을 수 있었다.”
매우 뜻깊은 발굴 사업을 성공시킨 셈이다. 소녀는 포로로 끌려갔으나 좌절하지 않고 굳세게 일어섰던 것 같다. 자신이 지닌 직조(織造) 재능을 일본 지역민들에게 전수해 직조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게 아닌가. 소녀의 사후, 일본인들은 존경하는 마음을 내어 추모비를 세웠다 한다. 매년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소녀의 명민한 자질에 감동할 수밖에.
소녀 관련 발굴 자료들을 향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
“다큐 상영은 물론, 그림책으로 만들어 널리 보급할 계획이다. 연극이나 창극, 혹은 소설로 가공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할 것이다.”
문화원마다 지역민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화원의 사업과 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 개발에 고심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엔 어떤 기법이 필요하다 보나?
“외부에서는 문화원이 주민들의 참여나 관심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이미 가까이에 있다고 본다. 미진한 부분은 지속적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우리는 ‘열린 문화원’을 지향한다.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문화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수년 전 실버 생활체육에 지각변동이 감지됐다. 곧이어 ‘파크골프가 인기’라는 말이 전국 곳곳에서 들려왔다. 반짝 흥행이 아니었다. 파크골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단계적 일상 회복이 되면서 아예 실버 생활체육 주요 종목으로 부상했다. 인근 공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서. 단지 그뿐일까? 현장에서 들은 파크골프의 진짜 인기 이유는 꽤 흥미롭다.
양평교 초입에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성 장맛비가 예고돼 있었고, 서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었지만, 먹구름과 대기를 감도는 꿉꿉함은 양평교 아래 오가는 이 하나 없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영등포 파크골프장’ 표지판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불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야말로 ‘줄 서서’ 파크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영등포 파크골프장을 찾는 이는 500여 명. 영등포구파크골프협회 ‘사랑클럽’ 회원 A씨가 전한 인기는 그 이상이다. “파크골프가 정말 인기예요. 말도 못 해요. 체감상으로 매년 두 배씩 느는 것 같아요. 이거 봐요, 치려고 밀려 있는 거!”
영등포뿐만 아니다. 파크골프는 일대 붐을 맞았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이 그 방증이다. 대한파크골프협회에 따르면 2020년 4만 5000여 명 수준이던 회원은 2022년 10만 명을 넘어섰다. 2023년 6월 기준으로는 12만 명을 돌파했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즐기는 동호인쪾비동호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략 40만~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983년 일본 홋카이도 마쿠베쓰 강가에서 시작된 파크골프는 도심 속 공원이나 유휴부지에서 즐기는 게임이라고 해서 ‘공원 골프’(PARK GOLF)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2000년 경남 진주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 상락원에 6홀이 들어서며 처음 소개됐다. 실버 세대 생활체육 핵심 종목으로 부상한 건 수년 사이다. 2022년 9월 발표된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스포츠 빅데이터 인사이트’ 제13호에 따르면 현재 실버 세대 생활체육 유행은 ‘게이트볼에서 파크골프로 전환’되고 있다.
현장은 클럽 한 개와 공 한 개, 그리고 티만 있으면 누구나 인근에서 즐길 수 있는 파크골프의 편의성과 접근성에 열광한다. 몇 천 원이면 즐길 수 있는 저렴한 비용도 현실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다. ‘사랑클럽’ 회원 A씨는 “파크골프가 노인들에겐 최적의 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운동 여러 가지 해봤지만, 이보다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접근하기 좋고, 이용료 저렴하고, 잔디 밟으면서 많이 걷고요.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어요? 고작해야 산책하는 건데, 산책은 지루해서 오래 못 해요. 근데 파크골프는 3시간이고 4시간이고 하죠!” 옆에서 듣고 있던 회원 B씨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장점이 정말 많아요.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아요.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다는 게 삶의 활력이 돼요.”
파크골프가 사랑받는 주요 요인 중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빼놓을 수 없다. 종주국 일본의 파크골프협회는 파크골프가 퍼진 요인에 대해 “경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을 들 수 있다”고 할 정도다. 일반 골프장은 1번 홀에서 티업하면 다른 팀을 만날 수 없지만 파크골프는 한눈에 다 들어오기 때문에 교류가 이뤄지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실제 ‘사랑클럽’은 회원 60여 명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회원 C씨의 말이다. “하면 할수록 재밌어요. 파크골프를 접하고 사람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자주 보니까 빨리 친해졌지요. 한번 어울리면 아침에 만나서 저녁까지 있다 가기도 합니다. 그게 너무 재밌어요.”
여기에 ‘한국판’ 파크골프만의 매력이 더해졌다. 경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파크골프는 하프 9홀(파33) 1라운드 18홀(파66)로 진행된다. 파3 네 개, 파4 네 개, 파5 한 개로 기본 제원은 일본과 같다. 차이는 한 홀의 거리다. 위험 방지, 연령이나 남녀 차이에 의한 핸디캡 최소화 등을 위해 거리를 100m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일본과 국내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9홀까지 연장 길이가 500m지만, 국내는 790m까지 가능하다. 파5 홀의 경우 일본은 60~100m, 국내는 100~150m다. 현재 국내는 대개 최장 거리인 150m를 선택하는 추세다.
이경호 대한파크골프협회 사무처장은 “국내 파크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한 요소”로 이를 지목한다. “일본은 ‘놀이’이고 우리는 ‘생활 스포츠’, 나아가 ‘경기’에 가깝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80대 이상이 파크골퍼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요. 우린 연장 길이가 기니까 보다 젊은 세대가 많이 유입됐습니다.”이 사무처장은 배우기 쉬운 점도 파크골프 인구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파크골프는 6개월 정도 열심히 하면 3년, 5년 배운 사람과 대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포츠는 10년 이상 해야 우승할 수 있어요. 1~2년 바짝 해서는 대회 정상을 꿈꾸기 어렵지요. 그런데 파크골프는 노력 여하에 따라 6개월~1년 만에 전국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는 실력이 갖춰지는 운동입니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분들도 그 수가 상당합니다.”
파크골프는 ‘경기’로 자리 잡고 있다. 대회 규모로 확인된다. 국내 대회 상금이 3000만 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경제 효과는 현장에서 먼저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산천어축제를 연이어 취소했던 강원도 화천군은 파크골프 대회를 유치해 특수를 누렸다. 약 한 달간 이어진 대회에 1500여 명의 선수단과 가족이 방문해 지역 음식점, 숙박업소는 물론 편의점과 카페까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이경호 사무처장은 “경제 효과는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말한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파크골프장에도 라이가 있어요?’입니다.(웃음) 당연히 있지요. 다 다르고 각각의 특색이 있습니다. 대회 당일 처음 가서는 성적을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보통 연습하러 현장에 일주일 전이나 열흘 전에 가서 현지에 체류하며 꽤 많은 비용을 씁니다. 1억 원을 투자해서 대회를 치른다고 하면, 그 열 배 이상의 경제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대회에 나가는 선수만 해도 500~600명입니다. 그 지역에 머물면서 쓰는 돈은 엄청납니다. 지자체에서 계속 유치 신청이 들어오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파크골퍼들에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클럽’ 회원들은 스포츠로 자리 잡은 파크골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고는 못 삽니다. 대회 나가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해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웃음)”
현장은 단기적 경제 효과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파크골프가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2007년에 이미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장수 국가군으로 진입했다.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설 전망이다. 고령자의 진료비, 의료비는 당면한 문제다. 통계청이 2022년 9월 발표한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진료비는 475만 9000원, 1인당 본인 부담 의료비는 110만 6000원에 달한다. 전체 인구 대비 각각 2.8배, 2.7배 수준이다. 반면 생활체육 참여자의 1인당 연관 의료비는 비참여자 대비 절반가량에 그친다. 생활체육 참여만으로 의료 비용 감소에 직접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은 파크골프가 현재 최일선에 있는 운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랑클럽’ 회원 A씨의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봅시다. 노인들이 집에만 있으면 자식이고 며느리고 손주고 누가 좋아하겠어요? 우리도 다 압니다. 근데 파크골프장에 나오면 운동하고, 여기서 만난 친구들끼리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고, 때론 반주하기도 하고, 내내 놀다가 저녁에 집에 가서는 피곤해서 바로 잡니다. 아프다는 소리도 안 합니다. 아프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할까 봐요.(웃음) 또 실제로도 아프면 못 합니다. 그러니까 파크골프를 하기 위해서 스스로 건강을 잘 챙겨요. 본인 건강하지, 가정의 평화 가져오지, 종국에는 사회적 비용 안 들지. 파크골프는 삼박자를 다 갖춘 운동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