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을 벗어나 어느덧 국도를 달린다. 햇살 쏟아지는 시골 마을을 지나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서는 뒤엉킨 마음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그리고 비로소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보탑사 삼층 목탑과 꽃 정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했다. 사는 곳은 진천이 좋다 하더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울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진천에 닿는다. 친절한 사람들이 비켜주는 좁다란 숲길을 따라 산밑을 지나면 길 옆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려준다. 산 아래에는 정갈한 사찰 보탑사(寶塔寺)가 조용히 앉아 있다.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대목수 신영훈 장인을 비롯해 문화재급 전문가들과 지광·묘순·능현 비구니 스님이 1996년 창건한 절이다. 그 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
역사가 길진 않지만 보탑사가 많은 이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 절 삼층 목탑은 상륜부를 제외한 높이가 42.7m. 못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었다. 내부에는 삼층까지 오르는 계단도 있다. 108척 높이의 대웅전(1층), 법보전(2층), 미륵전(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모습이 웅장하다. 지나치지 말고 들여다봐야 한다.
또 사방에는 꽃들이 가득하다. 봄, 여름, 가을까지 쉬지 않고 꽃이 피어난다. 목탑 주변에는 경계석도, 담도 없다. 야생화가 가득 피어난 화분들이 풋풋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아담한 처소 앞에 피어 있는 올망졸망한 꽃들의 모습은 수채화 같다. 군데군데 예사롭지 않은 석탑과 반가사유상, 불족석, 영산전, 전각, 그리고 격조전 입구의 석불과 와불의 평온한 표정은 꽃과 자연 속에서 제 몫을 보여주니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사찰 계단을 오르면 탐스런 작약이 화들짝 얼굴을 들이민다. 작약을 시작으로 경내 어디로 발걸음을 옮기든 꽃밭이다. 계단참에도, 돌무더기 위에도, 담장 허리춤에도 색색의 꽃들이 가득이다. 산속 정원이 바로 여기다. 보탑사는 여느 사찰들처럼 규모가 웅장하지도 않고 근엄한 분위기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평온하고 아늑할 뿐이다. 불자가 아니어도 머물다 가려는 여행자들이 조용히 오간다.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진 경내를 걷다 보면 사찰이 아니라 어느 조용한 고택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자연생태공원에서 함께하는 휴식
보탑사 주차장에서 나와 5분 남짓 달리면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이 나온다. 11만8500여 ㎡의 넓은 공간을 자랑한다. 잔디광장, 생태교육장 등의 열린 마당과 생태습지, 수목원, 야생초화·허브원, 가족 피크닉장, 습생초지원, 열매나무원 등 체험 숲을 갖추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볼 만하고, 특히 아이들 자연학습장으로 좋다. 연인들이 손잡고 산책로를 따라 걷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물소리길, 별따라가는길, 산내음길 등을 걸으며 생태공원의 신선한 공기를 맛볼 수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 텐트를 치고 휴식 중인 가족들 모습이 평화롭다. 인근에 위치한 연곡저수지와 백곡저수지는 살아 있는 시골 풍경이다. 종(鐘) 박물관과 참숯 테마공원도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
만뢰산 자연 생태관에서 다시 1~2분 정도 달려가면 ‘사적 제414호 진천 김유신(鎭川 金庾信) 태실(胎室)과 만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 유적이다. 태실 유적은 아기가 태어날 때 함께 나오는 태반과 탯줄을 묻어놓는 곳을 말한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은 이곳 진천(옛 지명은 만뢰)에서 태어났고 그의 태실은 진천읍 상계리 태령산 정상에 있다. 태실 유적 입구엔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다. 역사를 지닌 장소라 그런지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천년의 다리
진천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농다리(농교)’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정겨운 징검다리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진천의 농다리도 그중 하나다. 900여 년 전 임 장군이라는 사람이 만든 다리라 전해지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 알려져 있다. 두툼하고 널찍한 돌을 포개어 쌓은 것뿐인데, 거의 천년의 세월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수한 풍상을 겪고 홍수에도 끄떡없었다니 첨단기술로 만든 다리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농다리는 이제 역사의 다리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매년 5월 중하순경 ‘천년의 발자취! 농다리에 반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바탕 축제의 장을 연다. 최근에는 수변산책로도 조성되어 조용한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진천에서 만난 수수한 음식점 두 집을 소개하고 싶다. 민물새우찌개, 수제비, 정갈한 더덕구이 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풍경소리’와 묵밥을 맛볼 수 있는 ‘하늘소’이다. 두 곳 다 제법 알려진 오래된 맛집으로, 당연히 파전과 동동주도 있다. 산속에 자리한 ‘하늘소’에 앉아 창밖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세속의 갈등과 번뇌가 어느새 사라진다. 매달 5일, 10일에 열리는 진천 장날에 맞춰 가면 더 좋다.
때론 조용한 시간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고민하지 말고 훌쩍 서울을 떠나보자. 고속도로를 두 시간여 달리면, 일탈과 휴식과 피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진천에 도착한다. 시골길을 달리고 산속에 파묻혀볼 수 있는 하루 코스는 역시 생거진천(生居鎭川)의 마을이 제격이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장면, 그리고 말이 있습니다. 2015년 7월 31일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 야외무대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오릅니다.
“제가 부를 곡은 저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사람들이 원하고 갈망하는 곡일 수 있습니다. 통일이 빨리 되어서, 제가 부르는 이 ‘그리운 금강산’이 오늘 이 베를린에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그리운 금강산이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강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겠습니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유라시아친선특급’ 폐막 음악회, 그리고 앙코르 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기에 앞서 조 씨가 한 말이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모스크바와 벨로루시, 폴란드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19박 20일 동안 대륙횡단열차를 탔던 학생, 시인, 소설가, 화가, 경찰, 소방관, 기자, 음악가, 교수, 관료, 정치인, 독립운동가 후손 등 각계각층에서 참여한 원정 대원 400여 명은 조 씨의 발언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진한 공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조 씨와 원정 대원, 그리고 국민 모두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이 남과 북, 미국의 정상이 숨가쁘게 만나는 등 희망을 키우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는 없습니다. 금강산은 여전히 ‘그리운 금강산’입니다. 여전히 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그리운 금강산입니다. 그런 씻기지 않는 갈증과 그리움을 다소나마 해소해주는 ‘우리 꽃’이 있습니다. 특산 식물인 봉래꼬리풀이 그 주인공입니다.
봄 금강(金剛), 여름 봉래(蓬萊), 가을 풍악(楓嶽), 겨울 개골(皆骨). 계절마다 각기 다른 풍광을 자랑하기에 그 이름을 달리 불렀다는 금강산. 여름이면 1만2000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푸름을 뽐낸다고 해서 쑥과 명아주를 뜻하는 한자어 ‘봉래(蓬萊)’란 이름을 얻은 금강산. 그곳에서 여름철이면 꼬리 모양의 꽃을 피운다고 해서 봉래꼬리풀이란 국명을 얻었습니다. 학명 중 변종명 ‘디아만티아카(diamantiaca)’는 봉래꼬리풀이 처음 채집된 장소가 바로 ‘Diamond Mountain’이라는 영어명으로도 불린 금강산이며, 한국의 고유 식물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높이 20cm 안팎으로 자라며, 달걀 모양으로 마주나는 잎의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붉은빛이 돕니다. 7~8월 원줄기와 가지 끝에 연한 보라색 꽃이 원뿔 형태로 줄줄이 달립니다.
Where is it?
금강산에 자생하는 봉래꼬리풀이 남한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90년대 초. ‘설악산의 꽃’을 찾아 나선 식물학자와 야생화 사진작가, 동호인 등이 설악산 마등령과 서북능선, 안산 등지에서 자라는 봉래꼬리풀을 잇따라 확인한 것. 이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봉래꼬리풀이 “금강산 비로봉의 사스래나무와 눈잣나무의 숲속에서 자라며, 강원도 속초시와 인제군에도 분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5분여 만에 오르는 권금성 바위 더미 사이사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울창한 숲이었으나 케이블카 운행으로 숱한 관광객이 오가면서 대머리 돌산처럼 변한 권금성 곳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놀랍고 반갑다. 미시령 옛길 주변에서도 울산바위를 바라보고 당당하게 선 봉래꼬리풀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냉면이 뜨겁다. 2018년 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냉면을 대접하면서 열기가 폭발했다. 그날, 서울의 냉면집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북한 ‘옥류관’ 냉면 때문에 평양냉면 붐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평양냉면은 음식, 맛집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고 있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이라는 표현이 여러 미디어와 개인 블로그, 유튜브 등에 떠돌아다녔다. ‘평양의 옥류관 냉면’은 불타는 장작더미에 기름을 얹은 격이었다.
냉면은 ‘오리무중’이다. 정체를 알기 힘들다. 의견도 분분하다. 정의를 내리기 힘들다. ‘면스플레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면(麵)’+‘익스플레인(explain)’이다. 면, 냉면, 평양냉면에 대해 아는 체하며, 맛집 순위를 매기고,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을 이른 표현이다. ‘맨스플레인(man′s +explain)’에서 시작된 조어다.
이 글도 ‘면스플레인’의 일종이다. 냉면에 관해서 설명한다. ‘면스플레인’인지 냉면에 대한 올바른 지적질인지는 읽는 분들이 판단하시길.
국수, 냉면은 귀한 음식이었다
냉면도 ‘차가운 면’ 국수다. 냉면의 주재료는 메밀이다. 메밀은 ‘메[山]’+‘밀[小麥]’이라고 여긴다. 모가 났다고 해서 모난 밀, 모밀, 메밀이라는 설도 있다. 보리는 대맥, 밀은 소맥, 메밀은 교맥(蕎麥) 혹은 목맥(木麥)이다. 교맥, 메밀을 흔히 구황작물(救荒作物)이라 부른다. 구황작물은 곡식이 부족할 때 대체 작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메밀은 구황작물이라기보다 상용작물(常用作物)이었다. 초여름 무렵 비가 부족해도 메밀을 대파했다. 다행히 메밀은 짧은 생육기간, 60~90일이면 수확할 수 있었다. 지질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짓기 힘든 땅에는 처음부터 메밀을 심었다. “곡식이 부족하니 메밀을 먹어라”가 아니다. 애당초 벼농사, 곡물 농사 짓기 힘든 땅에는 메밀을 심었다. 메밀은 주요 상용작물이었다.
메밀이 좋아서 메밀로 국수를 만든 것도 아니다. ‘메밀국수+동치미’의 조합은 좋아서, 먹고 싶어서 선택한 조합이 아니다. 비교적 편하고 쉬워서 등 떠밀려서 선택한 조합이다.
깊은 밤, 배가 출출하다. 입 다실 게 있으면 좋겠다. 메밀국수를 내린다. 한민족은 탕반(湯飯) 음식을 즐긴다. 국물 없는 밥상은 목이 멘다. 국물을 만들기 힘든 시간, 동치미 한 사발이면 국수를 말아 먹을 수 있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 안동에는 지금도 ‘국수 제사’가 남아 있다. 강원도 출신들 중 결혼식 때 막국수를 먹었다는 이가 많다. 경조사에만 사용했던 귀한 음식, 국수. 국수의 대중화 역사는 길지 않다. 냉면과 막국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냉면과 국수, 막국수는 모두 국수다.
메밀 함량 묻지 마라
조선시대에는 메밀 함량이 어느 정도였을까? 추정컨대, 50%를 넘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분기술이 낮아 디딜방아, 절구질, 물레방아를 이용해 제분했다. 절구질한 후, 고운 천 혹은 체 등으로 메밀가루를 내린다. 고운 가루는 아래로 떨어지고 깨진 껍질, 나머지 거친 입자는 그대로 남는다. 찌꺼기와 거친 입자를 다시 빻는다. 같은 방식으로 고운 가루를 내린다. 이 힘든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고운 메밀가루를 모은다.
가루 입자가 고우면 국수 만들기 좋다. 거친 입자는 국수 만들기 힘들다. 만들어도 면발이 고르지 않고 잘 끊어진다. 메밀국수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불행히도 메밀은 점도가 약하다. 국수 만들기가 간단치 않다. 점도가 약한 거친 입자. 기껏 국수를 만들어도 툭툭 끊어진다. 방법은 전분(澱粉)을 넣어 반죽하는 것이다. 전분은 녹말가루다. 전분을 넣으면 점도가 높아진다. 그나마 낫다.
막국수 노포에서는 대부분 ‘여름철에는 메밀 40%, 겨울에는 메밀 60%’를 고집한다. 나머지는 밀가루 혹은 전분이다. 전분이 많으면 국수는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냉면이나 막국수 모두 같다.
국수의 검은 점은 메밀껍질이다. 요즘은 메밀껍질이나 보리 태운 가루 혹은 색소로 검은 색깔을 낸다. 메밀껍질이 남아 있던 예전의 거친 냉면, 막국수처럼 보이려는 것이다.
메밀 함량이 몇 퍼센트이면 가장 좋은 냉면 혹은 막국수일까? 우문(愚問)이다. 시쳇말로 ‘개취(개인의 취향)’다. 어느 정도의 메밀 함량이 맛있는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다. 각자 개성에 맞춰서 고를 일이다. 메밀 함량이 낮고 높은 것은 ‘다르다’고 표현해야 한다. 어느 쪽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게 맛있고 저게 맛없다는 표현은 틀렸다.
198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냉면, 막국수를 내렸다. 조선시대 말기, 대한제국 시기를 화가로 살았던 기산(箕山) 김준근(생몰년 미상)은 ‘국수 누르는 모양’이라는 풍속화를 남겼다. 사내가 벽의 높은 곳에 발을 딛고 온몸으로 국수를 내리고 있다. 유압식 제면기가 나오기 전에는 “국수 뽑는 사람치고 앞니 성한 사람 없다”는 말이 있었다. 국수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에 국수나 한 그릇”도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메밀 함량을 따지기 힘들었다. 귀한 음식, 국수, 냉면, 막국수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맛봤던 음식이었고 주방, 부엌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있는 집에서나 먹었던 음식이다. 해방 후, 깊은 산골에서 잔치 때 나왔던 음식이 대중화했다. 메밀 함량을 따질 일이 없었다. 함량? 중요치 않았다. 그저 ‘국수를 내릴 수 있을 정도’면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 자신이 원하는 면을 고르면 될 일이다.
계곡 장유의 ‘자장냉면’
언제부터 냉면, 막국수를 먹었을까? 막국수도 냉면과 다르지 않다. ‘막국수’라는 이름은 1960년대 이후 생겼다. 강원도의 메밀국수를 상업화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막국수와 달리 냉면은 뚜렷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 계곡(谿谷) 장유(1587~1638년)의 ‘계곡집(谿谷集)’에 나오는 냉면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이른바 ‘자장냉면(紫漿冷麪)’이다. 계곡은 이 시에서 “자줏빛 육수가 노을처럼 영롱하고, 옥가루가 마치 눈꽃처럼 내렸다”고 표현했다. 제목이 이미 ‘냉면’이다. 냉면에 대해 처음 언급한 문장으로 친다. 계곡이 ‘처음’ 냉면을 먹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으로는’ 처음이라는 뜻이다. 이전에도 냉면은 있었다.
계곡이 먹었던 냉면의 정체는 불확실하다. 자줏빛 육수가 무엇인지, 눈꽃처럼 내린 옥가루가 무엇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계곡은 광해군, 인조 시대에 높은 벼슬을 지낸 유학자다. 딸이 효종비 인선왕후다. 계곡은 우의정까지 지냈다. 지체 높은 집안이었으니 냉면을 먹었을 것이다.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고, 냉면은 반가의 음식이었다.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18세기 후반, 냉면이 다시 문헌에 등장한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년)이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 냉면을 언급한다. 시의 제목은 ‘서흥도호부사 임성운에게 장난삼아 지어준 시’다. 이 시에 ‘납조냉면숭저벽(拉條冷麪菘菹碧)’이라는 문구가 또렷이 나온다. “가지런히 당겨 만든 냉면이며, 배추김치는 푸르다.” 냉면과 배추김치[菘菹, 숭저]가 등장한다. 냉면 육수는 배추김치 국물이다. 이 시의 계절은 한겨울이다. 이불을 겹겹이 덮고 냉면과 노루고기 등으로 손님을 접대한다. 다산은 벼슬살이를 할 때 이 시를 남겼다. 냉면을 먹었던 곳은 황해도 서흥도호부로 대도시였다. ‘임성운’ 집안도 쟁쟁하다. 큰 도시의 행정관리 책임자, 권력자와 같이 냉면을 먹었다.
18세기를 넘기면서 냉면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먹는 이들도 다양하다. 서민들도 먹었다. 조선시대 말기의 문신 이유원(1814~1888년)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는 순조 즉위 초기 궁궐에서 냉면을 테이크아웃했다는 내용이 있다. 깊은 밤 달구경을 나왔던 순조가 냉면을 구해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이 내용에는 돼지고기도 등장한다. 냉면과 돼지고기를 같이 먹었다.
순조의 냉면은 궁궐 밖 가게에서 구해온 것이다. 19세기 초반, 한양 도성에는 늦은 밤 냉면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냉면은 히트 메뉴였다
영재(泠齋) 유득공(1748~1807년)의 ‘서경잡절(西京雜絶)’에 나오는 냉면도 길거리 가게에서 파는 냉면이다. 영재는 음력 4월의 평양 거리 풍경을 그리면서 “냉면과 찐 돼지고기 값이 오르기 시작한다(冷麪蒸豚價始騰)”고 표현했다. 음력 4월이면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고 냉면 값이 오른다. 냉면은 길거리 주막 등에서 잘 팔리는 히트 상품이었다.
조선시대 후기 문신 이인행(1758~ 1833년)도 냉면에 대해 기록했다. 이인행은 순조 2년(1802년)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를 떠난다. 유배 과정을 기록한 ‘서천록(西遷錄)’에 동치미(?) 냉면이 등장한다.
“6월 초 이틀. 냉면을 즐기는 것이 이 지방(위원)의 풍습이다. 교맥으로 (국수를) 만든 후, 김치[沈葅, 침저] 국물로 (맛을) 조절한다. 눈, 얼음이 흩날리는 깊은 겨울에 쭉 마시면 시원하다”고 표현했다.
이미 냉면은 민간의 풍습이 되었다.
냉면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음식이었다. ‘평양냉면’은 조선시대 말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대규모 상업화에 성공한다. 오늘날의 평양냉면이다.
계곡 장유(한양 혹은 경기도 안산/자줏빛 육수), 다산 정약용(황해도 서흥도호부/김칫국물), 순조의 냉면(한양/돼지고기), 영재 유득공(평양/돼지고기), 이인행(평안도 위원/김칫국물)의 냉면은 장소와 내용물이 모두 다르다. 메밀 함량을 짐작할 수도 없다. 1930년대 소설가 이무영이 남긴 기록에는 “경남 의령에서 한밤중에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장소는 머나먼 경남이다. 메밀 함량은커녕 어떤 색깔의 냉면인지도 불확실하다. 의령에서 한밤중에 냉면을 배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냉면, 막국수, 평양냉면 요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불확실하다. 메밀 함량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것이 ‘전통, 정통 냉면, 평양냉면’인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함부로 ‘면스플레인’ 할 일이 아니다.
▲황광해 맛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회삿돈으로 ‘공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한때는 매년 전국을 한 바퀴씩 돌았고 2008년부터 음식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KBS2 ‘생생정보통’, MBC ‘찾아라! 맛있는 TV’, 채널A ‘먹거리 X파일’ 등에 출연했다. 저서로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등이 있다.
사려니 숲길은 알겠는데, ‘고살리 숲길’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제주 숲길이다. 왕복 2시간, 아주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2.1km 숲길이다.
서귀포 선덕사 맞은편 다리 옆으로 30m만 들어가면 숲길 입구다. 고살리 숲길의 고살리에 리자가 붙은 것으로 보아 마을 이름으로 짐작, 검색했으나 나오지를 않는다. 고살리는 사시사철 샘물이 솟는 하천가 벼랑을 부르는 말이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단다. 이 지역에 고사리가 많이 자라서 고살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숲길은 짧지만 사철 푸른 나무가 울창하고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무섭게 흐르는 효돈천을 끼고 있다. 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 재재거리는 새소리가 들린다. 다공질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제주도 땅은 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때문에 비가 올 때만 하천에 물이 흐르고 맑은 날에는 바닥이 바싹 말라있다.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을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계곡으로 들어갈 마음을 먹는다.
입구 쪽은 아래가 낭떠러지고 하천은 빽빽한 나무 그늘에 갇혀있어 아래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내려갈 수 있는 적당한 곳이 나올 때까지 숲길을 걷는다.
두 사람이 옆으로 걷기에 적당한 정도의 좁은 폭의 길이다. 생김새가 다른 이파리들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무늬를 그린다. 숲 그늘 아래 나뭇잎 사이로 비쳐든 빛을 받은 제주무엽란이 피어있다. 무엽란이니 당연히 잎이 없다. 뿌리 박테리아 등으로 유기물을 분해하기 때문에 잎이 필요 없다. 지난해의 흔적인 씨방이 올해 핀 꽃보다 미학적이다. 빛이 비쳐드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큰 나무 둥치에 자리 잡은 호자덩굴 꽃도 보인다. 나무가 울창하니 비쳐든 햇살이 귀하다.
천천히 걷다보면 드디어 계곡으로 들어갈 만한 곳이 나온다. 쉽게 갈 수 있겠다 싶은데 다가가 보면 툭 떨어지는 벼랑이다. 물길과 불길 흔적을 좆아 하천 위쪽을 한참을 바라본다. 세월의 유구함이 여장을 풀고 쉬고 있다.
숲은 습기를 품고 있어 공기 입자가 치밀하게 느껴진다. 수피를 덮은 콩짜개덩굴과 사철 푸르른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등 늘푸른나무의 이파리에 녹음이 들고 있다. 숲길은 좁아졌다 넓어졌다 리듬을 타고 하늘은 파란색이 어쩌다가 보일 정도다. 숲길을 걷기가 지루하다 싶으면 만만하다 싶은 계곡에 내려가 널찍한 바위 암반에 앉아 쉴 수 있다. 조용한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디선가 용천수가 솟고 있나보다.
쉬엄 쉬엄 숲길을 걸었다. 여름 숲 바닥에서 자라는 꽃과 눈 맞춤 하고 찬란한 여름을 뿜어내는 초록 이파리로 눈을 정화했다. 되돌아 나오는 길이 짧게 느껴진다.
뜨거운 여름날 걷기 좋은 이 숲길, 떠나기 싫다.
아내가 자매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다고 해 이번 여행은 캠퍼밴 여행으로 결정했다. 두 처형과 처제 그리고 아내와 나 다섯 명이 25일 동안 뉴질랜드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마음 가는 대로 걸으며, 자신을 보채거나 강요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청정 국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자연의 보고를 다니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을 배웠다. 뉴질랜드는 나를 격려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여행지였다. ※ 본 기사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성수기 여행 차량 예약은 미리미리
캠퍼밴 여행은 소파와 침대는 물론 주방, 식탁, 화장실, 냉장고, 에어컨, 가스, 샤워 시설까지 갖춘 개조 차량을 타고 다니며 즐기는 여행 방법이다. 뉴질랜드에서 캠퍼밴(camper van, 캠프용 밴)을 빌리려면 ‘2종 보통 이상’의 국제운전면허증을 소지한 21세 이상 75세 미만의 운전자가 있어야 한다. 캠핑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천국인 뉴질랜드에는 ‘마우이(Maui)’, ‘주시(Jucy)’ 등의 렌탈 회사가 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회사는 마우이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수용 인원에 따라 2·4·6인승으로 나뉜다. 빌리는 가격은 차량 연식과 임차 시기(계절별)에 따라 달라진다. 마우이에서는 연식에 따라 ‘마우이’, ‘브리츠(Britz)’, ‘마이티(Mighty)’로 구분해 관리한다.
캠퍼밴 예약은 마우이의 한국 에이전시 사인 INL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에이전시 역할도 해주고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은 없다. 여행기간 중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INL에 여행기간과 인원을 알려주면 견적 및 예약사항, 여행 표준일정 등을 보내준다. 여름철 성수기(우리나라의 경우 12~1월)에는 6개월 전에 예약해야 원하는 차량을 빌릴 수 있다.
베이스 캠프 ‘홀리데이 파크’
캠퍼밴의 기능들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려면 물도 채워 넣어야 하고 전기 충전도 해야 한다. 여행 중 발생한 생활 오수와 분뇨는 반드시 지정된 장소인 ‘덤프 스테이션(dump station)’에서만 버릴 수 있다. 이렇게 캠퍼밴에 필요한 것들을 보충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 ‘홀리데이 파크(Holiday Park)’다. 이곳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숙박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캠핑장이다. 샤워시설, 공동식당, 조리시설, 세탁실, 바비큐장도 있다. 대부분의 홀리데이 파크는 국립공원 가까운 곳에 있으며 뉴질랜드 캠핑 여행의 핵심 역할을 한다. 이용료는 기본요금이 있고 인원수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홀리데이 파크는 ‘톱10 홀리데이 파크’, ‘키위 홀리데이 파크’, ‘HAPNZ 홀리데이 파크 그룹’ 등 몇 개의 체인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각 그룹은 회원에게 10~15%의 할인 혜택을 준다.
별 헤는 밤의 야영장 ‘DOC’
홀리데이 파크 외에 정부기관 ‘자연보호부(Department of Conservation)’에서 관리하는 캠핑장 ‘DOC’도 있다. 뉴질랜드 전역에 준비되어 있는 500개의 DOC는 사설 캠핑장인 홀리데이 파크에 비해 시설이 열악하다. 전기와 물 공급이 안 되고 생활 오수와 폐수를 버릴 수도 없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양심 박스에 기부하는 형태로 이용료를 받는다)과 자연 친화적인 위치가 장점이다.
캠핑을 할 수 없는 곳도 있으므로 거의 모든 마을에 있는 ‘여행자 정보센터 i-center’에서 홀리데이 파크와 DOC 위치에 대한 안내를 받으면 된다.
뉴질랜드에서의 운전 요령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운전방향이 반대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좌회전, 우회전 상관없이 운전자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중앙선을 두고 운전한다는 생각만 하면 된다. 회전 교차로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돌면 된다. 운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제한 속도다. 과속을 하면 벌금 액수가 크다. 카메라에 찍히면 귀국 후에도 벌금 통지가 온다. 행복한 여행을 하려면 제한 속도는 반드시 지키는 게 좋다. 고속도로에서 일반 차량의 제한속도는 100km이지만 캠퍼밴의 경우는 90km다. 가능하면 80km로 천천히 다니는 게 좋다.
‘톨로드(toll road, 유료도로)’는 세 곳 있다. 이 도로는 전자감응식 장치로 통행 체크가 되며 비용 납부는 인터넷에서 해야 한다. 사전에 인터넷에서 차량 등록을 한 후 도로를 이용하거나 도로를 이용한 후 5일 이내에 인터넷에서 납부를 하면 된다. 납부시기를 놓치면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3만~4만 원 정도 추가된 금액을 결제해야 한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쪽 남반구의 남북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며, 시차는 4시간 빠르다.
뉴질랜드의 북섬은 태평양판 지각이 인도-호주판 밑으로 들어가 화산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형성된 섬이다. 특히 ‘통가리로 국립공원’에서부터 동쪽 태평양 연안까지는 화산 활동이 가장 많은 ‘타우포 화산대’에 속하는 지역으로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래서 북섬을 ‘불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반면 남섬은 두 판이 맞물리면서 지각이 올라와 형성된 섬이다. 지각 판이 서로 밀면서 남섬에서 가장 높은 지형 ‘서던 알프스 산맥’도 만들었다. 이 산맥에는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23개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편서풍을 타고 뉴질랜드로 불어오는 바람이 태즈먼 해를 통과하면서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서던 알프스 산맥’을 만나면 많은 비를 뿌린다. 이렇게 내린 비는 높은 산 위에 만년설과 빙하를 만든다. 남섬을 ‘얼음의 섬’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남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오르드 랜드 국립공원’을 비롯해 빙하가 만든 계곡과 호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산맥을 넘은 바람은 건조하고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어 캔터베리 평야의 초원을 형성하는 기후가 된다. 이곳은 양들의 천국이다.
원주민 문화 영향받은 뉴질랜드 역사
뉴질랜드는 인간의 손길이 닿기 전까지 각종 동식물이 살아 있는 태고의 땅이었다. 이러한 땅에 AD 1000년경부터 폴리네시아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연도 서서히 파괴되었다. 대표적 사례로 ‘모아새’의 경우 이때부터 인간에게 식용 자원이 되면서 멸종했다. 뉴질랜드에 들어온 마오리족은 석기문화를 바탕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이후 18세기에 유럽인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몇 차례 충돌이 일어났다. 그 후 양측은 공존하기 위해 1840년 ‘와이탕이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으로 마오리족과 유럽인들은 같은 땅에서 함께 살기로 뜻을 모았고 뉴질랜드가 건국되었다. ‘뉴질랜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알면 도움이 되는 정보
•뉴질랜드로 여행할 때 이용하는 항공편이 경유할 경우 가능한 한 상하이 푸둥 공항은 피하는 게 좋다. ‘수화물 자동 연결’이 되지 않아 짐을 찾은 후 다시 부쳐야 할 뿐만 아니라 입국, 출국 신고와 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농업 국가라서 입국할 때 식품에 대한 검사가 매우 엄격하다. 통관할 수 없는 식품류는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통과되는 식품들은 겉면에 라벨을 일일이 붙이고 리스트를 준비해 세관 검사를 받을 때 제출하면 좀 더 편리하다.
•여행 중 뉴질랜드 내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인터아일랜더(Interislander) 페리 크루즈선’을 이용할 때 ‘톱10 홀리데이 파크’ 회원은 15% 할인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인터아일랜더 크루즈선 홈페이지: www.interislander.co.nz
㈜INL 메일주소: inltours@campervan.co.kr
톱10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top10.co.nz
키위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 www.kiwiholidayparks.com
톨로드 비용 납부 사이트: www.tollroad.govt.nz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치솟는 6월. 여름을 향해 치닫는 계절의 변화에 현기증을 느끼며 뒷산을 오릅니다. 연두색이던 숲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바뀌었고, 길섶은 허리까지 차오른 풀들로 한 걸음 내딛기가 주저될 만큼 무성합니다. 몇 걸음 더 오르자 그만그만한 잡초들을 제치고, 어깨높이 이상으로 껑충 솟아난 꽃이 보입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매혹적인 꽃, 바로 털중나리입니다. 겨우 한 송이 핀 것도 있지만, 대개는 서너 송이가 달려 있습니다. 많게는 열 송이 가까이 달리기도 하는데, 1m 넘게 솟아오른 원줄기 끝에 한 송이, 그 아래 사이사이 좌우로 뻗은 작은 가지마다에도 한 송이씩 다닥다닥 핍니다.
털중나리가 꽃을 피웠다는 것은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털중나리를 비롯해 하늘나리, 중나리, 참나리, 땅나리, 솔나리, 말나리, 하늘말나리, 날개하늘나리, 섬말나리, 누른하늘말나리 등 백합과의 나리꽃들이 곧 우리 땅에서 여름 내내 피고 지는 ‘여름꽃의 대명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0여 종 나리꽃들의 피고 짐이 털중나리로부터 비롯되기에, 털중나리의 개화는 곧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꽃색은 여름꽃답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닮은 듯 한결같이 붉습니다. 하지만 얼핏 보면 붉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홍색(紅色) 일색은 아닙니다. 분홍색의 솔나리와 진한 홍색의 큰솔나리 사이에, 주홍색과 주황색 등 다른 색의 꽃을 피웁니다. 물론 솔나리의 경우 아예 꽃잎이 온통 하얀 흰솔나리, 검은빛이 도는 홍자색 검은솔나리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털중나리의 꽃은 노란빛이 감도는, 이른바 황적색(黃赤色)입니다. 간색(間色) 특유의 진한 색감이, 보면 볼수록 매력적입니다. 게다가 6개로 갈라져 완전히 뒤로 젖혀진 꽃잎, 그 안쪽으로 황적색 바탕에 새겨진 진한 자주색 반점과 6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모두 드러낸 모습은 집시 여인보다도, 삼바 여인보다도 뇌쇄적입니다.
10종이 넘는 나리꽃들 이름의 유래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6개로 갈라진 꽃잎이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그 중간을 보면 중나리, 줄기 등 전초에 솜털 같은 털이 있으면 털중나리, 꽃잎이 하늘을 보되 잎이 빙 돌려나면 하늘말나리로 불리는 식입니다.
Where is it?
털중나리의 가장 큰 매력은 누구나 조금만 품을 팔면 만날 수 있는 야생화란 점이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비롯한 전국의 해발 1000m 미만 지역에서 자란다”는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의 설명처럼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 그렇다고 도심에서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동네 뒷동산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서울의 경우 광화문 한복판에서 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는 종로구 수성동 계곡에서도 만났다. 다만 각종 공해(公害)에서 벗어날수록 꽃이 더 싱싱하고 탐스러우며 꽃색도 맑고 깨끗하기에, 멋진 털중나리를 만나려면 조금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해발 1000m 미만에서 자란다”는 건 해발 1000m 즈음까지 자란다는 뜻이기도 한데, 높은 곳의 털중나리는 탁 트인 전망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 경남 합천군 오도산 정상에서 일출과 함께 만나는 털중나리는 가히 환상적이다. 경기도 팔당 예봉산 자락과 김포 문수산도 털중나리와 주변 풍광이 멋지게 어우러지는 곳으로 인기가 높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철원의 ‘철의 삼각 전적지’를 방문했다. 한국안보문제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킨사 아카데미(KINSA Academy)의 안보견학 프로그램의 하나.
철원에 도착해 평화전망대로 이동하기에 앞서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고석정(孤石亭)에 들렀다. 철원 8경의 하나인 이곳에 들어서면 절벽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의 맑은 물과 5월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고석정은 강 중앙의 고석과 정자, 주변 계곡을 총칭해 부르는 말이다. 임꺽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는 6·25전쟁 때 파괴된 것을 1971년에 다시 지었다.
민통선을 지나 평화전망대로 올라가는 내내 길 옆으로 적색 역삼각형의 지뢰지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수복 후 동네사람들이 소꼴 베러 숲으로 들어갔다가 지뢰를 밟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를 내어 철조망으로 통제를 하고 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멀리 실루엣처럼 보이는 산이 북한 쪽에 있는 해발 1062m의 오성산이다.
오성산 일대는 휴전 직전, 한미연합군과 북한군·중공군이 치열한 다툼을 벌인 곳이다. 백마고지, 아이스크림 고지, 김일성 고지, 저격능선 등에서 혈전이 벌어졌다. 저격능선 전투는 6주간에 걸친 연합군과 중공군의 치열하고 끈질긴 전투였다.
중공군은 빼앗긴 고지를 찾으려고 지속적으로 공격해왔으나 한국군은 이 능선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끝까지 지켜냈다. 이 전투는 백마고지 전투와 함께 2대 격전지로 불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한참을 달리다 청성부대 수색대대 입구에 도착했다. 군용 버스로 갈아타고 통일전망대를 향해 올라갔다.
철원 평화전망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평강고원과 김일성 고지로 알려진 고암산, 북한의 선전마을, 피의 능선, 백마고지, 궁예의 도읍지 태봉의 성터 등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을 관망할 수 있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2007년 11월에 개관되었으며 1층은 전시관, 2층은 관람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망창을 통해 본 남방한계선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북방한계선 사이에 위치한 DMZ는 남과 북의 긴장은 도무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색대대 식당에서 병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취나물과 두릅 튀김, 도토리 무침은 오늘 방문객들을 위한 특식이었고, 식판에 든 음식은 일반 병사들이 평상시 먹는 메뉴로 큰 회사 구내식당들과 비슷한 수준의 급식이었다.
방문객들을 위해 무기와 장비들이 전시돼 있었다. 새로운 무기와 통신장비들을 살펴보고 체험하였다. ICT기술이 적용된 통신장비들이 인상 깊었다. 다음 여정은 제2땅굴을 견학하는 것이다.
계절이 여름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천의 인현왕후 길.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서 역사의 무게까지 느껴지니 사색을 위한 산책로로 제 격이다.
김천은 직지사가 유명하다. 그에 비해 인현왕후 길은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조선왕조 19대 숙종의 정비(正妃)인 인현왕후의 애달픈 사연이 있는 길이다. 폐비가 된 인현왕후가 3년 동안 기거했던 청암사를 품은 수도산 자락에 김천시가 인현왕후 길을 만들었다. 그 옛날 인현왕후가 거닐었던 곳으로 추정해 조성한 길이다.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마을에서 트래킹이 시작된다. 수도산 자락의 수도암과 청암사를 잇는 9㎞짜리 구간의 산길이다. 천천히 걸으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수도리 마을을 지나 비탈길을 걸어 올라가는 길에 피어있는 여름꽃들이 싱그럽다. 널찍한 바위에서 잠들었던 고양이가 사람들 발자국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깨어났다.
마을길을 지나 산비탈을 따라 조금 걸어올라 가면 수도암이 나온다. 그 옆으로 인현왕후 길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서인으로 강등된 인현왕후는 외가가 있는 상주 인근의 김천 청암사로 자신의 거처를 정한다. 지친 심신을 이 길을 걸으며 다스렸을 거란 상상을 하며 숲길을 걸어본다. 첩첩산중이 이어지다가 온 산하가 다 보이는 탁 트인 길도 나온다. 바람결에 생강나무의 싱그러운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떨어진 꽃잎이 수놓은 길을 걷다 보면 ‘포토 존’도 있다. 여름이 시작되는 인현왕후 길은 연둣빛에서 이제는 완연한 녹색의 숲길로 변했다.
조용히 생각하며 걷기에 적당하다.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걷기 열풍에 맞추어 급조된 길과는 다른 자연스럽고 품격 있는 숲길이다.
넓지 않은 오솔길에 나뭇잎이 푹신하게 깔려 있다. 숲을 헤치며 걸어 내려와 길 옆 바위 계곡에 시원하게 손을 담그며 더위를 식힌다. 그렇게 산굽이를 돌아 나오면 도로가 나온다. 산길이 완만하고 순해서 누구라도 편안히 걸을 수 있다.
기분 좋게 하산하면 시원한 폭포수가 장관인 무흘계곡(武屹九曲)의 하류가 시원하게 맞아준다. 잠깐 들러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계곡 입구의 전시관을 거쳐 무흘구곡 중에서 제9곡인 용추폭포에 다가가면 출렁다리 건너 17m 높이에서 떨어지는 장쾌한 용추 폭포수가 협곡과도 같은 절벽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청암사[靑巖寺]
청암사는 인현왕후 길이 있는 수도산 초입의 고찰이다. 직지사의 말사다. 장희빈에게 밀려나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가 복위될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학하고 있는 청정 도량.
일주문을 지나 입구부터 키 큰 수목들이 하늘을 찌른다. 몸이 자연 속에 쏙 들어가 포근히 감싸지는 느낌이다.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사찰의 좁은 계곡엔 푸른 이끼가 덮여있다. 초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적막한 경내에는 새소리와 계곡의 물소리만 들린다. 찾는 이 그리 많지 않은 고요한 경내에 몇몇 여행자들만 눈에 띈다.
대웅전 앞뜰엔 붉은 꽃잎이 뚝뚝 떨어져 있다. 매발톱이 가득 피어있는 옆길을 따라 나가면 인현왕후의 복위를 빌기 위해 세웠다는 보광전이 있다.
그 옆으로 뚝 떨어진 곳에 사대부 한옥 양식의 목조건물이 나타난다. 폐서인이 된 인현왕후가 복위를 기다리며 한 많은 세월을 은거하던 곳이 바로 이 극락전(極樂殿)이다. 왕후를 배려해서 반가 양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보통의 사찰 건축과는 달리 대문이 달려있고 현재는 외인 출입금지다.
그 시절 상궁들이 폐비를 물심양면으로 돕느라 사람들 눈을 피해 드나들며 시주를 했는데 이때 시주록 명단에 이름 올린 상궁이 26명이라고 한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의 삶을 살았던 인현왕후를 그려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극락전을 둘러싼 채마밭에 스님들의 식량인 상추와 자잘한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잡초와 파꽃도 피어났고 무궁화와 수국, 작약과 엉겅퀴와 함께 벌과 나비들이 날고 있다.
청암사는 많이 훼손되었거나 새로 건축하느라 손길이 많이 간 느낌도 별로 없다. 그저 오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알 수 있는 나무목재와 문양들이 정감 있다. 그래서 은은한 정취와 고즈넉한 고찰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김천시 부항면 유촌리에 가면 김천부항댐이 있다. 이 지역의 홍수피해를 예방하고 물공급과 청정에너지 공급을 위한 댐이다. 댐 주변을 중심으로 여행자들이 재미와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다.
94m 높이의 레인보우 타워가 압권이다.
타워 옆으로 오솔길을 지나면 256m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다.
맛집! 김천이라 하면 지례 흑돼지가 유명하다. 옛날에 임금님께 진상하던 토종 흑돼지로, 부항댐에서 조금 나가면 흑돼지 맛집들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김천 인현왕후 길과 부항댐 주변
Ktx서울역→김천 : 1시간 30분 소요
김천역 → 인현왕후 길(40km) : 김천역에서 도보로 10분 ~ 15분 정도 걸어서 김천 버스터미널 이동
인현왕후 길 → 지례 흑돼지(22km) 승용차 이용 시 : 3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이용 시 : 1시간 정도 소요
지례 흑돼지 → 부항댐 짚와이어, 출렁다리(4.8km) : 버스가 하루에 1~2번 정도 있음. 승용차 이용 시 - 1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이용 시(885-1번 버스) : 20~25분 정도 소요
따사로운 봄날, 일본에서 활짝 피는 건 벚꽃만이 아니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한창일 무렵, 1년에 단 70일 동안만 열리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이곳은 일본을 수차례 다녀본 사람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꼭꼭 숨겨진 비경 중의 비경이다. 거대한 대자연을 만나고 싶은데 시간이 없거나 장시간의 비행이 부담스럽다면 자연과 전통, 휴식과 탐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로 떠나보자. 여행은 어느 시기에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천양지차이지만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꽃들이 피어나는 4~5월에 기적의 설벽을 만날 수 있기에 더욱 특별한 여행지다. 한적한 로컬 기차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도 있고 조용한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도 있으니 이만큼 다 갖춘 곳도 드물 듯하다.
가까운 일본에서 만나는 동양의 알프스
메이지 시대, 영국인들이 일본에서 산행을 하다 그 풍경이 유럽의 알프스와 닮아 ‘일본의 알프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는 도야마와 나가노를 잇는 90km의 산악관광도로다. 굳이 이 길에 ‘루트(route)’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전체 구간이 트롤리버스, 케이블카, 로프웨이, 도보로 이동하며 즐길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힘들이지 않고도 다테야마(立山) 산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시니어들을 위한 여행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다. 장엄한 산세와 협곡은 물론 도롯코 열차여행과 온천까지 즐길 수 있는 이곳은 닿는 순간 유럽의 알프스 못지않은 풍경이 지척에 있었다는 사실을 왜 지금껏 몰랐을까 무릎을 치게 되는 그런 곳이다.
일본의 3대 영산으로 불리는 다테야마
나고야 북쪽에 위치한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도야마 공항과 가까운 다테야마 역 또는 나고야 공항과 가까운 오기사와 역을 선택할 수 있다. 소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야마 여행을 추천한다. 도야마 역에서 지테스 본선이라는 지방열차를 타고 50여 분을 달리면 다테야마 역에 도착한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와 구로베 협곡을 보려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하루를 움직여야 한다. 정상에서 보는 다테야마 산도 아름답지만 눈 계곡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과정도 더없이 경이롭다. 우나즈키 온천마을에서 따사로운 봄을 한껏 즐기다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번갈아 타고 산 정상에 오르니 봄이 한창인데도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고, 설산을 깎아 길을 낸 최고 22m에 이르는 기적의 눈 계곡이 나타난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해발고도 1500m에 위치한 구로베 댐은 일본 최고 높이에 위치한 댐으로 연간 무려 10억 kW의 발전량을 내는 수력발전소를 갖고 있다. 오른편으로 가로질러 걸어가며 바라보는 호수의 물빛은 캐나다의 레이크루이스를 연상시킬 만큼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다.
5월에 만나는 무로도 설벽
기차와 케이블카, 고원버스를 번갈아 타고 무려 3시간여 만에 무로도(室堂) 설벽 앞에 섰다. 해발 3000m 고지에 있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의 상징인 무로도 설벽 사이를 걸어서 지나노라니 자연도 위대하지만 자연보다 더 경이로운 존재는 바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모세의 기적은 바다뿐 아니라 산에도 있었다.
일본의 옛 정취 가득한 ‘도야마 근교’
도야마 근교에는 구로베 협곡 외에도 한적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일본 전통가옥을 감상하며 조용한 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이와세 마을은 고즈넉한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하게 되는 곳이다. 에도 시대 초기에 바다를 오가던 배들이 머무르던 이 항구 마을은 과거에는 큰 번영을 누렸던 곳으로 여전히 옛 정취가 물씬하다. 강가를 등지고 점포들이 가득 들어서 있던 곳엔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가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풍경을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도야마 항구 전망대와 운하 사이의 골목골목을 느리게 걷다 보면 진짜 일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해안열차 타고 가는 천연 온천마을 ‘히미’
구로베 협곡도 봤고 근교 마을도 다녀왔으니 마지막 날엔 달팽이처럼 느린 로컬 기차를 타고 바닷가 마을 히미(氷見)에 가보기로 했다. 시내를 벗어나니 나지막한 집들과 드넓은 논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푸른 하늘과 초록 빛깔 논의 조화, 모내기 철의 물이 꽉 찬 논에 비친 다테야마 설산의 풍경에 시력마저 좋아지는 듯하다. 히미에 도착하자마자 바닷가로 달려갔다. 산도 좋지만 내겐 역시 바다였다. 햇살 가득한 계단에 비스듬히 누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멍때리기에 빠져본다. 꼼꼼한 손길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 햇살 아래에서 뛰어노는 유치원생들의 모습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아련하다. 슬슬 시장기가 와서 어시장 히미반야가이로 갔다.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수산물과 우동, 소고기 등 히미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맛본후 천천히 걸어 마을 끝자락에 있다는 천연온천장으로 갔다. 족욕만 하는 곳도 있고 동네 목욕탕 같은 온천도 있다. 마치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던 사람인 양 온천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 엉킨 실타래 같았던 몸과 마음이 풀리면서 나른함이 몰려왔다. 다시 도야마로 돌아가는 길. 히미의 바다 너머로 우뚝 솟은 다테야마 설봉은 한적함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해마다 날짜를 꼽으며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너도바람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본다. 얼추 비슷한 날짜를 맞추어 수년째 같은 곳을 헤매다가 봄 첫 꽃을 만났다는 것에 황홀해하곤 했다. 올해는 운이 좋은지 눈 속에서 피어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꽃이 피고 난 뒤에 눈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은 눈을 이기고 핀 너도바람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눈 속의 너도바람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천마산을 찾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봄꽃은 흔히 와글와글 피어나니 4월 중순의 천마산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수진사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 분홍빛 설렘을 담은 진달래가 점점이 박혀있다. 멀리 산 중턱에서 진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살구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봄꽃놀이를 시작한다. 생강나무는 만개하고 귀룽나무 새잎은 이미 풍성해졌다.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노루귀 꽃밭에 12시 30분께 닿았다. 아침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꽤나 천천히도 걸은 모양이다. 이리 많은 노루귀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룬다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면 하나를 채우고 그 옆의 골까지 피어나는 형상이다. 충분히 빛을 받아야 꽃잎을 여는 꿩의바람꽃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꽃들과 놀다 돌핀샘까지 올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운 좋게 꽃이 핀 처녀치마 두 송이를 보고 황금색 천마괭이눈도 만났다. 오늘 나는 만주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만주바람꽃은 단풍이 살짝 든 듯한 잎과 꽃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계곡에 만주바람꽃이 잘 피어있다. 약간 시기를 지난 감은 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봄바람 마냥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현호색이 밭처럼 피었다. 시선을 넓게 펼쳐서 보니 몇 개의 라인을 타고 흐르듯이 피어있다. 큰 나무 그림자 때문에 선을 그리듯이 핀 것은 아닐까 얕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 천마산의 주연은 노루귀였고 현호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