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날짜를 꼽으며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너도바람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본다. 얼추 비슷한 날짜를 맞추어 수년째 같은 곳을 헤매다가 봄 첫 꽃을 만났다는 것에 황홀해하곤 했다. 올해는 운이 좋은지 눈 속에서 피어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꽃이 피고 난 뒤에 눈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은 눈을 이기고 핀 너도바람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눈 속의 너도바람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천마산을 찾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봄꽃은 흔히 와글와글 피어나니 4월 중순의 천마산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수진사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 분홍빛 설렘을 담은 진달래가 점점이 박혀있다. 멀리 산 중턱에서 진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살구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봄꽃놀이를 시작한다. 생강나무는 만개하고 귀룽나무 새잎은 이미 풍성해졌다.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노루귀 꽃밭에 12시 30분께 닿았다. 아침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꽤나 천천히도 걸은 모양이다. 이리 많은 노루귀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룬다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면 하나를 채우고 그 옆의 골까지 피어나는 형상이다. 충분히 빛을 받아야 꽃잎을 여는 꿩의바람꽃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꽃들과 놀다 돌핀샘까지 올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운 좋게 꽃이 핀 처녀치마 두 송이를 보고 황금색 천마괭이눈도 만났다. 오늘 나는 만주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만주바람꽃은 단풍이 살짝 든 듯한 잎과 꽃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계곡에 만주바람꽃이 잘 피어있다. 약간 시기를 지난 감은 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봄바람 마냥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현호색이 밭처럼 피었다. 시선을 넓게 펼쳐서 보니 몇 개의 라인을 타고 흐르듯이 피어있다. 큰 나무 그림자 때문에 선을 그리듯이 핀 것은 아닐까 얕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 천마산의 주연은 노루귀였고 현호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