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驚蟄)이 코앞이다. 유난히 쌀쌀했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날씨가 풀리면서 주요 관광지나 공원은 벌써 전국에서 몰려온 봄나들이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난 1월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3 관광 트렌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시니어 세대의 친환경 여행 의향은 약 73%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게 나타났다. 특히 소셜 데이터 분석 결과 여행할 때 도보와 자전거 등 무동력 이동수단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시니어의 경우 본격적으로 무릎의 퇴행성 변화가 찾아오는 시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취지로 떠나는 친환경 여행이 무릎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친환경 여행이 아니더라도 봄맞이 여행을 준비 중인 시니어라면 무릎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추운 겨울 동안 무릎 주변 근육과 인대가 굳어 유연성이 감소한 상태여서 부상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3월은 본격적으로 야외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로 급작스레 몸을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무릎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무릎 관절염으로 병원을 찾은 50대 이상 환자는 2월 대비 3월에 항상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2월 56만 6241명에서 3월 62만 9897명으로 약 11%나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릎 관절염은 무릎 주변 인대와 근육 등이 약해져 연골이 닳고 염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무릎에 생긴 염증으로 인해 시큰거리는 통증과 삐걱거리는 느낌을 동반한다. 또한 장시간 여행 중 발생한 과도한 하중이 무릎 관절에 그대로 전달되면 무릎뼈와 뼈 사이 완충작용을 하는 연골을 마모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추후 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보행을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여행 이후 무릎 통증이 발생했다면 조속히 병원을 찾아 진료받는 것이 현명하다.
한의학에서는 무릎 질환에 침·약침 치료, 한약 처방 등을 포함하는 한방 통합 치료를 실시한다. 먼저 침 치료를 통해 무릎 주변 근육과 인대의 긴장을 줄이고 통증을 완화한다. 한약재 유효 성분을 인체에 무해하게 정제한 약침은 통증의 원인이 되는 염증을 빠르게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신바로약침과 황련해독탕약침이 주로 사용된다. 여기에 모과를 주요 한약재로 하는 숙지양근탕 처방을 병행해 연골 손상 부위의 회복을 촉진한다.
약침의 항염증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연구소가 ‘중의학’(Chinese Medicine)에 게재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골관절염을 유발시킨 쥐를 대상으로 신바로약침의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바로약침 투여군이 비투여군에 비해 관절 내 염증을 유발하는 ‘프로스타글란딘E2’ 생성이 60.59%나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뼈를 구성하는 요소인 소주골의 부피도 40%나 늘어났다.
여행 중 무릎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 부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좋은 건강관리법이다. 먼저 건강한 여행을 위해 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좋다. 무거운 배낭은 무릎에 상당한 압력을 가할 뿐 아니라 자세 불균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릎 안정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푹신한 운동화와 무릎 보호대 착용을 추천한다. 여기에 등산스틱 같은 지팡이를 사용한다면 무릎으로 가는 체중을 분산시켜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데 용이하다. 가파른 언덕이나 계단 많은 장소는 피하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등을 적극 이용해 관절이 받는 부담을 낮추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여행 중 틈틈이 휴식을 취하고 간단한 스트레칭을 해주면 피로 해소뿐 아니라 부상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시니어들의 몸과 마음은 이미 봄을 향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냉탕이나 온탕에 들어가기 전 충분히 물로 몸을 적시듯이 급격히 변화한 날씨에도 몸이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잊지 말자.
작금의 노포 열풍은 박찬일(58) 셰프의 솜씨 덕을 톡톡히 봤다. 오랜 식당 나이 든 주인의 변치 않는 손놀림을 세상에 퍼 올린 지난 10년 사이, 노포는 낡은 식당에서 맛과 문화의 정수로 변모했다. 이제 노포의 매력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가 짓는 글을 안내서 삼는다. 오래된 것은 훌륭하고, 훌륭하기에 오래됐다고 믿는 음식 기행문에는 사람 냄새가 짙다.
박찬일 셰프는 글 쓰는 요리사다. 글의 중심부에는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이 자리한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노포를 취재하고 기록하는 일에 썼다.
박찬일의 화법은 담백하되 긴 여운을 남긴다. 해장국 한 그릇이면 역사에 참여할 수 있다고 추켜세운다.(‘해장국은 역사의 음식이다. 우리는 청진옥 해장국 한 그릇을 먹으면서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더 이상 어떤 평이 필요한가.’ -책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중) 서서갈비에 대해선 드럼통이 K-고깃집 테이블이 된 과거와 ‘커뮤니티 테이블’이라는 최신 개념의 원형이라는 현재를 한데 묶는다.(‘최대 여섯 팀이 이 드럼통을 놓고 화덕에 고기를 구웠다. (중략) 고기가 섞이기도 하고, 먼저 익으면 다른 손님들에게 고기를 밀어주기도 했다. (중략) 그야말로 요즘 유행한다는 ‘커뮤니티 테이블’의 진정한 원형인 셈이다.’ -책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중)
노포(老鋪)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원래 잘 쓰지 않는 단어였고, 선구자나 다름없는 그 역시 같은 한자 언어권인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가 아닐까 추측하는 정도다. 다만 그가 노포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다. 오래됐기에 훌륭한 가게다. 뒤집어도 참이다. 훌륭하기에 오래될 수 있었을 것이므로. 또한 존경받아야 할 곳이다. 노포의 ‘노’에는 ‘오래되다’는 뜻도 있지만 ‘존경한다’는 뜻도 있으니까.
오래돼서 훌륭한, 훌륭해서 오래간
당연하게도 노포의 매력은 음식이다. 음식이 맛있어야 식당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식당은 내부가 세련됐어도 맛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반면 오랜 식당에는 정서와 추억이 벽면을 가득 채운 낙서처럼 남아 있다. 게다가 팝스타 마돈나가 스테이크를 썰던 레스토랑,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술 한잔하던 카페라면? 그런 식당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당초 그의 취재는 중년의 흥미로부터 시작됐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식당 중 아직 남아 있는 곳을 글로 정리해보자.’ 부원면옥이나 하동관이 그랬다. 오래된 식당이 문 닫기 전에 글로 남겨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고, 취재는 10년 넘도록 이어졌다. 거절당해도 몇 번이고 찾아가 인터뷰를 청하고, 지인을 총동원하곤 했다. 책 ‘백년식당’, ‘노포의 장사법’,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등은 이렇듯 어렵사리 세상에 등장했다.
그는 노포 예찬론자지만 노포가 곧 선(善)이라 말하지 않는다. 주인이 지나치게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되며, 겸손해야 하고, 식당이 깨끗해야 한다. 취재를 위해 찾았다가 그냥 나온 적도 많다. 노포 찾아 삼만 리, 전국을 누비다 보니 공통점이 추려졌다.
“책에 적어둔 그대로예요. 일단 음식이 맛있죠. 주인은 자신이 파는 음식을 매일 먹어요. 주인이 직접 일하는 거죠. 직원은 사장 못지않게 오래 일합니다. 노포는 단골손님의 경력도 오래됐어요. 그 덕분에 처음 방문한 손님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암호 같은 주문법이 있습니다. 또 단순한 원칙을 오래도록 지켜오고, 거래처를 잘 바꾸지 않는 것도 공통점이죠. 하나 더, 정확한 개업 햇수를 잘 모릅니다. 식당 일을 천하고 힘든 것으로 생각했고, 노포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으니까요.”
평양냉면 식당 우래옥의 김지억 전(前) 전무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 일할 때 아는 이라도 오면 숨었어. 여관, 술집, 밥집 하는 이, 어디 사람 취급했나.” 2000년대 이후 미식을 즐기는 문화가 일상이 되고, 주방장은 ‘셰프님’이라 불리며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식당은 불안정한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의 좌우 충돌, 전쟁과 민주혁명, 산업화 등의 굴곡을 거친 이들은 장사처럼 불안정한 일을 자식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은 고돼도 벌이는 좋았기 때문에, 대학 나와 펜대 굴리는 직업을 갖도록 자식을 뒷바라지했다. 마침 부는 재개발 바람 타고 가게를 허물어버리기도 했다. 이어나갈 의지가 있었음에도 가업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은 제하더라도, 그렇게 없어진 노포가 많았다. 그 때문에 ‘백년식당’이 보통명사처럼 쓰이지만 실제로 100년 된 식당은 없다. 그나마 1950년 전에 지어진, ‘반백년식당’은 전국에 10곳이 채 안 된다.
오래된 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얼마 전 일이다. 재건축을 위해 30년도 안 된 아파트를 때려 부수고, 보유한 땅이나 건물이 역사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으면 싫어한다. 소유자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다. 이런 실정을 고려할 때, 30년가량이면 노포라 부를 만하다.
기꺼이 음식을 기록하는 일
다행인 점은, 느리지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를 휩쓴 레트로 열풍을 타고 노포는 ‘힙’하고 멋진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나 지역사회에서도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모색했다. 노포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발 빠르게 움직인 ‘사업가’들도 왕왕 있다. 오래된 가게를 사들여 상호와 내부를 그대로 둔 채로 영업하거나, ‘옥’이나 ‘집’으로 끝나는 세 글자 가게명을 달고 내부를 그럴듯한 노포처럼 꾸며 프랜차이즈화하는 경우가 해당된다. 주인의 친부 이름과 생년을 따와 ‘찬일집, since 1965’라고 적힌 간판을 내거는 경우는 귀여운 수준이다.
박찬일 셰프는 이 모든 관심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노포에 대한 관심이 한 철 유행처럼 지나가 버릴까 걱정되기 때문. 가짜 노포가 등장하면서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그러다 전통적인 원칙을 고수하며 양심적으로 운영하던 노포가 초심을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된다고. 실제로 그의 기준에 들었으나 제하게 된 식당이 몇몇 있다. 노포를 아끼고, 노포가 더 많은 사회를 꿈꾸는 그로서는 지나친 상업화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계획이 없지만 취재를 멈추진 않을 것이다. 오랜 이야기를 듣고 잘 다듬어 세상에 내는 작업 말이다. 노포에서 내어주는 곰탕 한 그릇, 이를 가져다주는 여든 먹은 종업원이 곧 역사이자 문화재다. 예술 분야의 장인은 문화재로 지정해 기술이 대물림되게끔 하는데 유독 음식에서는 그런 인식이 덜했다. 박찬일이 보는 노포는 하나하나가 박물관이고 문화재라, 세대교체가 되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는 다급함이 있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고된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언젠가는 없어진 노포를 취재하고 싶어요. 망해서 가게를 접은 식당의 주인, 그곳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거죠. 식당이 남아 있는 곳은 사람이 죽어도 공간이 남아 있으니 덜해요. 하지만 가게조차 없는 곳들은 사람이 죽고 나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리죠.”
노포를 취재하다 보면 안타까운 일이 이뿐이겠는가. 폭력적이었던 종로 피맛골 재개발 과정, 결국 원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만 을지OB베어가 그렇다. 그는 한 건물주가 ‘우리도 화장실 좀 가자’고 써서 붙인 쪽지를 기억한다. 개발을 찬성하는 쪽의 입장을 이해한다. 스스로 ‘낭만적인 사람’이라 자조하지만서도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싹 갈아엎는 재개발 대신 불편한 점을 보완하고 보존했더라면 더 큰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유수의 오랜 도시들은 차도 못 다니는 좁고 울퉁불퉁한 골목 경관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요즘 관광 오는 외국인들, 노포에서 국밥 먹으면서 엄청나게 좋아하더라는 설명을 그가 덧붙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 시민의 자부심이 되다
오랜 식당은 무엇보다 시민의 정서적 공공 자산일 수밖에 없다. 똑같은 노포라도, 식당에는 이발소나 기름가게보다 내밀한 구석이 있다. 그의 말마따나 ‘음식과 술이라는 촉촉하고 진한 매개체로 정서를 주고받으며 오래 머무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 보기에 불편한 것도, 삶의 흔적이 쌓였음을 알고 나면 소중해진다. 서울 연남동 서서갈비에서는 처음 찾은 20대 손님도, 몇십 년 단골손님도 ‘불편하게’ 서서 고기를 굽는다.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멋있다고 생각할 뿐.
40년, 50년 넘도록 오래 일한 직원은 그 의미를 더한다. 박찬일 셰프는 노포가 곧 ‘노인을 위한 나라’라고 말한다. 노인이 찾아가기에 노포가 있고, 노포가 있기에 노인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추억이 깃든 식당에서 식사하고, 공간을 온전히 즐기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있단다.
“외국 영화를 보면 50년 된 단골이 늘 앉던 자리에 앉죠. 그러면 머리가 하얗게 센 종업원은 묻지도 않고 알아서 메뉴를 내와요. 무얼 먹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는 거죠. 멋있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식당이 곧 노포예요. 사장과 손님이 함께 늙어간 거죠. 이런 곳은 직원도 오래 일해요. 힘은 떨어져도 기술이 좋아서 노련하죠. 단골손님 각각의 사연을 다 기억하다 보니 이야기도 곧잘 받아주고요. 단골 매출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노포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둔 요즘, 모범적인 노인 노동 사례이자 연구 대상이다. 그가 찾은 노포들은 일할 능력이 되면 ‘갈 데까지 가보는’ 종신 고용을 고수한다. 직원이 평생을 일하며 원칙을 고수한 덕분에 가게는 한결같은 맛으로 손님을 잃지 않는다. 청진옥, 우래옥, 조선옥 같은 곳이 일찍이 해왔던 방식이다. 노동자를 임금 지급 대상과 효율로만 보는 기존의 경제 논리를 뒤집는 격이다. 여기에 박찬일 셰프는 노인이 정서적으로도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최근에 우래옥의 김지억 전 전무님과 냉면을 먹었어요. 거기 직원이 오랜만에 뵙게 돼서 좋다고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선물을 주더군요. 여든 훌쩍 넘은 단골손님이 ‘전무님이 여길 다 나오셨냐’며 반가워서 손을 덥석 잡는 일도 있었죠. 나도 나이 들어 저런 뭉클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찬일 셰프는 조선옥의 김진영 사장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그분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박 씨 아저씨(박중규 조선옥 주방장)가 그냥 계속해서 일을 나왔으면 해요. 그분이 영영 안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너무 싫어.’” 박중규 옹은 올해로 여든넷, 입사 65년 차 주방장이다. 김 사장이 국민학교 시절부터 봐왔던 ‘아저씨’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다. 이런 장면을 마주할 때면 박 셰프 말마따나 ‘마음속 울대와 현이 찌르르 울려’ 감동한다. 효율만을 따져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비효율의 끝, 노포가 노포로 남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협력기구(OECD)는 스페인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인이 많은 국가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지난 2017년에 발표한 ‘불평등 노령화 예방 보고서’(Preventing Ageing Unequally)에서 스페인의 65세 인구 비율이 2050년에 40%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초고령화시대를 문제없이 헤쳐 나가기 위해 고령층 건강 대책을 시행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 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또한 노인복지청(IMSERSO)을 정부 부처 내 독립 부서로 두고 국민들의 노후를 지원하고 있다. 노인복지청의 사업으로는 1985년부터 이어진 ‘고령자 여행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연금 수급자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하며,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스페인 관광지의 교통, 숙박 시설 등을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한다.
지난 2일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El País)의 보도에 따르면 여행 상품과 여행지를 다양화해 스페인 내 52개 지방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은 문화나 자연 경관을 선호하는 노인의 요구에 근거해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사회인권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용 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지만, 지난해 연금 인상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스페인 대학들은 55세 이상 시민들을 대상으로 ‘경험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를 경험과 지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쉽게 접근하고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대학 내에서 사회적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나가게 하고 △노인이 아닌 다른 집단에게도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적으로 연대하는 태도를 취하도록 하는 데에 목표를 둔다. 인문학, 과학, 사학, 예술 분야 등의 강의를 제공하는 이곳의 이름은 노인을 단지 나이든 존재로 보지 않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외에도 지자체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고령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와 주 도시 바르셀로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마드리드, ‘영원한 현역’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
스페인에는 기업의 전 임원을 지내고 은퇴한 중년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하는 비영리법인 ‘세콧’(SECOT)이 운영되고 있다. 1989년 마드리드에서 처음 설립돼 현재는 스페인 내 도시 외에도 유럽 연합(EU) 22개국의 조직이 모여 30세 미만의 실업자 혹은 실직자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45세 이상 중년의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세콧 회원은 창업, 마케팅,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이나 재무 관리 방식 등에 대한 강의를 무급 자원봉사로 제공한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며, 전 직장과 업무를 고려해 업무를 배당한다. 또한 실전 강의를 나가기 전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의 모의 강의에서 통과해야 기업에서 강의할 수 있다.
마드리드 내 자치지역인 트레스 칸토스(Tres Cantos)에서는 지난해 고령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도와 공원 내 벤치, 횡단보도 등을 점검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당 사례를 소개하며 60세 이상 지역 주민 50명이 직접 18개 구와 2개 공원의 GPS 사진을 수집해 정비가 필요한 부분을 확인했으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웃에게 이동 편의나 접근성에 대해 직접 확인하는 등 사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온‧오프라인서 1인 고령가구 챙기는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시는 2017년 말 기준, 총인구 160만 명 중 65세 이상 30만 명이며 이중 4분의 1은 홀로 거주한다. 시 정부는 홀로 거주하는 노인을 위해 ‘빈끌레스바르셀로나’(VincleBCN)와 ‘내 나이가 어때서?’(Soc gran, i que?) 프로그램을 도시 전역으로 확대 시행하고 있다.
빈끌레스바르셀로나는 노인의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관계를 형성, 강화하고 노인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시행됐다. 행정상 바르셀로나에 주민으로 등록된 65세 이상 주민이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사는 곳이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노인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어 서로 일상을 공유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참여자는 프로그램과 이름이 같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가족과 친구,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커뮤니티 구성원과 일상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스마트 기기가 없지만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시에서 기기를 대여해주고 있다. 앱은 노인의 사용 편의를 위해 메시지를 텍스트 외에 음성으로도 입력할 수 있고, 커뮤니티 구성원과의 일정을 기록해 알림을 받을 수 있는 등의 기능이 탑재돼있다. 2021년 10월부터는 청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왓츠앱’(WhatsApp) 연동 기능을 추가했으며, 수화가 가능한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디지털 세대 격차를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도 시행된 바 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나는 블로거다’(soy blogger). 바르셀로나 시의회의 아동‧청소년‧노인 서비스국의 노인 홍보부서에서 추진하는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바르셀로나 노인들은 소셜 네트워크와 시니어 시민을 위한 시 웹사이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자원봉사 기자 및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이들은 활동 전 디지털 및 저널리즘 교육을 사전에 이수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오늘날 자주 쓰이는 SNS 중 하나인 페이스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나, 최종적으로는 이들이 직접 도시에 얽힌 콘텐츠를 취재해 제작하고, ‘시니어 웹’(Web de la Gent Gran) 블로그와 바르셀로나 시립 SNS 계정에 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계정이 운영 중이다.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간다. 어느덧 겨울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한겨울 차디찬 공기와 그 풍경 속으로 데려다주는 대청호의 새벽을 찾아간다. 자동차로 어두운 새벽길을 두 시간여 달려 쨍한 추위 속에 호수의 새벽 공기를 맞는 일, 신선하다.
엄동설한의 캄캄한 새벽길은 생각처럼 어렵진 않다. 달려갈수록 조금씩 걷혀가는 어둠을 확인하는 일도, 중간에 잠깐 들른 휴게소의 적막함도 어두운 길을 달리는 사람들만의 즐거움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기준으로 두 시간 정도 새벽길을 달리면 시골길 드문드문 몇 채의 농가와 들판이 내다보이고 대청호를 향한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청호 오백리길 제4구간 출발점인 윗말뫼 주차장은 한적하다.
대청호 오백리길은 총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간 안에 대전, 청주, 충북 옥천군과 보은군이 경유한다. 그 속에 마을과 산과 들과 강과 호수가 오백리길을 이어준다. 원래는 대덕군과 청원군 사이에 있다고 하여 대청호라 이름 붙였다. 이 지역에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1980년 대청댐 완공과 함께 지역 마을 담수화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인공 호수가 대청호다. 이때 수몰 지역은 86개 마을로 4000세대가 넘었고, 주민은 2만 6000여 명이나 되었다.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생긴 대청호로 인해 어릴 적 따뜻했던 추억 속 아름다운 시골 마을은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대청호는 인공 저수지로는 저수량 기준으로 소양호와 충주호에 이어 국내 세 번째다. 스무 개가 넘는 대청호 오백리길 구간을 편안히 즐기는 방법은 호수 둘레길을 산책하듯 걷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4코스 호반 낭만길은 대청호수를 가까이에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습지공원과 자연생태관 등이 걷는 길마다 이어지며, 총길이는 약 12.5㎞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물론 지금도 호반길을 걷기 위해 찾아드는 이들에게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3년 열린관광지 조성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대청호 일대는 장애인, 노약자 등 이동 약자들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무장애 관광 환경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이제는 이동 약자의 문턱이 더욱 낮아진 대청호 오백리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정보취약계층이 불편 없이 관련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웹 접근성도 개선한다.
취향에 따른 구간별 길을 걷다가 갈대숲이나 호숫가에 멈춰서 조용히 대청호를 즐길 수도 있고, 또는 드라이브만으로도 좋다. 굳이 걷기에만 집중하지 않고 발걸음에 따라 또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일부를 걷거나 쉼을 택하면 된다. 걷는 속도나 그 길을 모두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일인가. 단 한두 시간을 걸었어도 그저 자연 속에서 음미하는 시간이 의미 있다. 온몸의 세포를 깨우고 다독이는 그 순간만으로도 충만하다.
동이 트기 전 호수에 도착하는 이들에겐 새벽 물안개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날은 마냥 맑고 쾌청한 호수를 보게 된다. 일교차가 큰 봄과 가을에 주로 발생하는 물안개가 이날따라 피어오르지 않았다고 글렀구나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새벽의 거대한 호숫가에 서보았는가. 온몸이 떨리고 시리도록 쨍한 상쾌함으로 간단하게 마음의 평안을 던져준다. 이렇게 겨울과 마주한다.
호수 주변에 들면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공기 맛이 다르다. 건너편의 산과 능선이 호수 안으로 잠겨 흔들림 없는 반영으로 여행자를 맞는다. 호반 둘레길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질퍽한 습지 위로 풍성한 억새가 숲을 이루었다. 가끔 바스락거리며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곤 한다. 생태계가 잘 보전되어 철새가 푸드덕 날고 먹잇감을 찾는 백로의 날갯짓을 보게 된다. 계절에 따라 개구리는 물론이고 메뚜기나 거북도 볼 수 있다. 자연환경이 청정해 구간 안에 자연생태관도 운영한다.
수변탐방로에서 한없이 호수에 취했다가 명상정원 방향으로 향하면 무엇이 기다릴까. 호수와 숲이 함께하는 곳이다 보니 발밑에는 여전히 낙엽이 바스락거린다. 10분여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숲길의 자연스러움에 젖어든다. 호수와 정원 사이 언덕처럼 완만한 등성이에 ‘대청호 오백리길’ 표지판이 보인다. 쉼을 제공하는 벤치와 정자가 호수를 앞두고 나무 아래 고즈넉하다. 이곳에서 호수를 빙 돌아보며 각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명상정원은 물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건네주는 공간인 듯싶다. 한 번쯤 들러서 간단하게라도 그리움을 풀어보도록 전통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옛 마을길의 한옥 담장, 장독대, 널찍한 평상 등으로 그들의 깊은 그리움이 해소될까마는 수몰민들을 위로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마을 어귀에서 자라던 나무였는지 여전히 우뚝 서 있는 나무는 사진가들의 피사체가 되어 언제까지나 물속에 잠겨 있는 모습이 애잔하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물속의 작은 섬들이 이루는 반영의 멋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명상정원에는 드라마 ‘슬픈 연가’, 영화 ‘역린’, ‘창궐’, ‘7년의 밤’ 등의 촬영지였다는 안내가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유 말고도 이곳에 서면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아련한 마음이 생겨난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가는 현장과 그들의 어제와 오늘, 그뿐 아니라 이 모습을 대하는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힐링의 장소로 이곳을 찾는다. 포토존에서 셔터를 누르고 나무 그네에 앉아 눈앞의 호수를 마냥 누리며 새벽의 호수를 만끽한다.
4구간 호반 낭만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명상공원에서 조붓한 길을 따라 1km쯤 거리에 자연생태공원과 추동 취수탑이 자리 잡고 있다. 상수원 취수구역이다. 가래울 마을과 황새바위와 연꽃마을에 이어진 오리골 제방이 시원하다. 철 지난 논과 밭을 끼고 걷는 길에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도 지나고, 데크로 연결되는 길도 나온다.
감나무에 넉넉히 남겨둔 까치밥의 푸근함을 올려다보면서 마을 옆 데크를 걷다가 예닐곱 단쯤 되어 보이는 알타리 무더기를 보았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라는 인심이었다. 이런 인정 넘치는 구경은 여행의 덤이다. 도로 옆으로 나오니 자전거 부대들이 씽씽 달린다. 시골길을 달리는 라이딩족들의 활기찬 질주가 상쾌함을 듬뿍 얹어준다.
대청호 오백리길 4구간을 찾는 이들이 들르는 곳이 또 있다. 3구간 종착지인 윗말뫼의 더리스. 호수를 앞에 두고 탁 트인 풍경이 압도한다. 더리스&테라베오는 슈하스코 브라질 바비큐 전통요리 레스토랑이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청호 오백리길 산책로와 호숫가의 전경을 보려고 찾아온다. 더리스 정원 아래로 계단을 내려가면 프라이빗한 장소가 나타난다. 커플 의자에 앉아 마음껏 물멍에 빠져들면 된다. 때가 맞으면 거위 떼가 찾아와 물속에서 노니는 모습도 볼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이다. 혹시나 비가 많이 내린 후라면 벤치와 나무가 물속에 잠긴 그림 같은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추운 겨울날 그리움 속 마을을 찾아 떠난 여행지에서 문득 유년의 시간을 발견한다. 그 길 위에서 기억 저편의 할머니와 내 부모 형제들을 만난 듯 뭉클함도 얻는다. 소박한 자연 속에서 비로소 들여다보는 내면 깊숙이에 위로 한 줌 들여놓았다. 떠돌던 마음은 차분히 잦아들고 한없이 따뜻하다. 세상 소음 따윈 잊고 호숫가를 걷는 내 발밑에서 마른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전부였던 하루가 한동안 몇 알의 비타민이 되어줄 것이다.
여행 정보
자동차로 서울 기준 두 시간 정도 소요. 특히 청주에서 출발해 근교 문의문화재단지와 대청호를 함께 둘러보는 코스도 좋다. 전통문화와 호수의 멋을 제대로 느껴볼 만한 곳이다. 대청호 코스 대전역발 시티투어 순환버스가 토·일 주말에 있다.(2시간 반 정도 소요)
전북 장수군의 깊고 외진 산골에 찻집 하나 있다. 산은 첩첩, 적막은 겹겹. 강원도 오지를 닮은 곳이다. 주인장 유성국(58, 긴물찻집 사장)은 부산에서 살았던 20년 전, 그러니까 30대 후반 나이에 이 산골로 귀농했다. 소소한 농사와 더불어 한세상 물처럼 그저 그렇게 흐르고 싶어서였다. 어쩌다 보니 지금으로부터 5년여 전엔 찻집을 차리게 됐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농사나 돈보다 마음에 여유를 집어넣을 수 있는 방법의 강구에 있다. 그가 가진 이상은 평범치 않다. 가급적 게으르게 사는 데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게 아닌가. 게으르게 살지 않고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겠어? 아마도 이게 유성국의 푯대다.
미리 말해둘 게 있다. 유성국의 부인 박혜정(50) 역시 동류라는 것. 이들은 불교 관련 사회봉사단체에서 만나 부부 연을 맺었다. 혼인 이후 오랫동안 절밥을 먹고 살기도 했다. 둘 사이엔 자식이 없어 홀가분하다. 따라서 부부간의 유대와 공감의 폭이 한결 넓다. 어떻게 하면 게으르게 살 수 있을까, 더 게으르게 살기 위해 어떤 창의력을 발동해야 할까,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게 주로 그 문제였다. 산골짝으로의 귀농은 하나의 대안으로 고안됐다. 귀농지 물색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지.
“귀농할 곳의 조건 몇 가지를 전제하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자연이 살아 있는 곳, 식수원이 풍부한 곳, 축사나 농원이 전혀 없는 곳, 땅값이 오를 가능성이 제로인 곳 등을 염두에 두고서. 차후 너덧 가구가 어울려 생태농업을 할 수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 좋은 전제 조건인데, 땅값 안 오를 곳을 찾은 이유는 뭘까?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가고 싶었던 건 번다함을 피해 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만약 귀농지에 개발 바람이 불어 관광지가 된다거나 하면 낭패일 수밖에. 별안간 땅값이 오르고 동네가 시끄러워지면 우리는 팔고 나가야 한다. 굳이 그런 소동에 휘말릴 일은 아니다. 고즈넉한 곳에서 풍파 없이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던 거다.”
여긴 상당히 깊고 은밀하고 푸근한 산골이다. 전제 조건들을 충족한 곳인가?
“용케 잘 찾아낸 터다. 산 많은 장수군 안에서도 외진 곳이다. 과거엔 천주교도들이 피난해 살았던 마을이다. 우리가 들어왔을 땐 사람 하나 살지 않았다.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 몇 채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용히 지낼 만한 환경이었지. 문제는 가진 게 없다는 거였다. 거의 빈손으로 들어왔으니까.”
몸을 눕힐 변변한 집이 없었고, 새로 지을 여건도 아니었다?
“원래 있었던 폐가를 고쳐 쓸 수밖에 없었다. 형체만 남다시피 한 본채와 행랑채, 그리고 창고 하나가 있었는데 우리가 대충 수리해 입주했다.”
생계 문제 구상은 어떻게 했나?
“애초 특별한 구상 없이 귀농했다. 빗나가기 십상인 이론적 구상보다 뭐든 현실에 부닥쳐 처리해나가는 게 내 스타일이다. 물론 큰 그림은 있었지. 농사로 자급자족하자는 거. 그게 쉬울까, 어려울까, 아내나 나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둘 다 30대 시절이었으니까 뭘 하든 굶주릴 일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 같은 게 있었던 셈이지.”
자급자족이 되던가?
“그게 생각처럼 쉽진 않더라.(웃음) 농사 경험 없지, 농기계 없지, 외딴 곳이라 주변에 물어볼 농가도 없지, 멧돼지들이 털어가지, 4년여간 시행착오가 많았다. 오미자 농사도 지어봤고, 산에서 고사리를 뜯어 시장에 냈지만 돈 만들기가 어려웠다.”
야생차로 활로 찾아
유성국의 거처는 해발 540m 고지에 있다. 보이는 것의 절반은 산이요, 나머지 절반은 하늘이다. 그러니 순수한 자연의 도가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사방에서 숲의 에테르가 다가와 가슴의 잡티를 몽글몽글 녹인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면 창으로 달빛이 밀려들 것이다. 이렇게 참신한 곳에서 일락(逸樂)을 누린다면 그게 낙원이겠다. 그러나 문제는 밥이다. 인간이 풀만 뜯어먹고도 끄떡없는 초식동물이 아닌 건 얼마나 불운한가. 농사를 통한 자급자족으로 소박한 생활을 지속하고자 했던 유성국의 실험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방향 전환이 필요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뭔가 방책을 찾아야 했는데, 그게 차 만들어 팔기였다.
“우리가 절 생활을 꽤 했다. 날마다 녹차를 마시는 절에서 제다 방법을 배워둔 게 있었다. 그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차로 상황을 개선하기로 했지. 산에 올라가 갖가지 잎을 채취해 야생차를 만들어 ‘한살림’에 납품했다.”
차로 활로를 찾았다?
“비로소 먹고살 만했다. 전에 비하자면 여유로울 정도로.”
경제 문제 외에도 온갖 난제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게 산중 생활이다. 애환이 많았겠지?
“자급자족을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괴로울 건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현실은 물론 미래에 대해서도 별 근심 걱정 없이 지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게으르게 살 수 있을까? 늘 연구한 게 그랬다.(웃음)”
너무 바쁘게 살면 무슨 재미? 그러나 나무늘보도 아니면서 늘 게으르면 그 역시 싱거워질 것 같다. 게을러서 좋은 건 뭐지?
“게으르게 사는 것 자체가 좋은 거지, 뭐 있겠나?
게으르지 않게 살아도 좋은 거 아니고?
“그야 그렇다. 세상은 부지런한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그들은 나처럼 살기 어려울 테지만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겠나?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아마도 대부분 아내들은 게으른 남편을 견디기 힘들어할 거다. 방출하고 싶겠지.(웃음) 당신의 부인은 어떤가?
“아내나 나나 게으름을, 한량 기를 타고났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더 게으르다는 점이다. 아내는 일면 부지런한 천성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내 역시 게으름을 지향한다. 게으름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아온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뭘 해도 제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웃음)”
가령 어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
“우리가 고쳐 지은 집을 두고 남들은 운치 있다고 하지만 사실 부실공사에 불과하다. 게으르게 짓다 보니 그리됐다.”
뭐든 반드시 제대로 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무 쥐어짜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자족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제대로 된 셈이겠지.
“그렇지.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인생사에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 중도(中道)를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만 품고 살아도 가상하겠지.”
나는 오늘 심상치 않은 종족을 만났다. 부부가 공히 게으름을 옹호하고 구현하는 경우가 어디 흔하던가.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며 귀농한 사람이 드물진 않다. 그러나 다들 새벽부터 깨어나 지지구재재구 노래하는 참새처럼 바지런하다. 근면을 중심에 놓지 않고 귀농 생활을 지속하긴 불가능하다. 그런데 부지런히 농사를 짓다 보면 몸에 관절염이 방문한다. 마음자리엔 긴장과 불안이 서성인다. 손에 쥐면 쥘수록 허기가 커지듯이, 일을 하면 할수록 일이 많아지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부지런하거나 게으르거나, 한 생은 어차피 유한한 시간의 강물을 흘러가다 시든다. 인생의 즐거운 열매를 맛보는 데 어느 쪽이 더 유리한 걸까.
수해로 집이 떠내려가다
유성국의 게으름엔 딴 목적이 없다. 게으름 자체가 목적이다. 생긴 천성대로 살아 만족하기. 자신을 방목해 모든 억압의 횡포를 수포로 돌려놓기. 그가 보유한 생태 경관엔 안으로 맺힌 게 없을지도. 그 무엇에 허둥대거나 시달릴 일이 없을지도. 게으른 처신엔 의외로 리스크가 적다. 게으름의 대가에겐 급박한 일도 급박할 게 없다. 그러나 먹고 자는 집이 어느 순간 홀라당 날아간다면? 이땐 도리 없다. 부리나케 재건해야 한다. 유성국이 그랬다. 귀농 5년 차에 들이닥친 수해로 집이 떠내려가 다시 지어야만 했던 것.
“창고만 간신히 남고 다 떠내려갔다. 창고에도 진흙이 1m 두께로 쌓였더라. 흙을 걷어낸 뒤 합판을 깔고 잠을 자며 집을 복구했다.”
귀농 뒤 만난 최대의 고난이었겠다. 괴롭지 않았나?
“오히려 행복했다. 어차피 새로 지어야 할 집이었는데 게으른 우린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이 한 방 딱 쳐주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게 아닌가. 변화에 대한 갈증도 있었는데 수해가 길을 열어줬다. 이렇게 우린 자연에 업혀 간다.”
외진 이 산중에 찻집을 차렸다. 장사가 될 가망성이 있다 보았나?
“작정하고 차린 건 아니다. 원래 우리 집엔 친척이나 친구, 차를 즐기는 사람 등 놀러 오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쌀이나 고기를 사왔고, 우리는 차와 자연환경을 그들에게 제공했다. 일종의 물물교환이었는데, 형편이 어려웠던 한때 이게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점 많이 찾아와 서비스하기가 힘들어지더라. 그래 무인 찻집을 염두에 두고 창고를 다듬어 다실을 만들었다. 이게 본격적인 찻집의 출발점이었다.”
유성국 내외가 손수 짓거나 다듬은 작은 집과 더 작은 다실은 치레 없이 순박하다. 야트막한 지붕을 보면 산을 향해 꾸벅 절하는 것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속기가 씻긴다. 자연 속에 자연스레 들어앉아 누추한 게 없다. 이게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나? 찻집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이곳의 자연경관은 그저 평범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찻집과 풍광을 즐기는 손님이 많다. 다녀간 이들이 SNS에 ‘리얼 시골에 있는 카페’라는 식의 리뷰를 쓰면서 시나브로 조금씩 알려지는 것 같다.”
사업을 키울 생각은 없나?
“우린 우리가 사는 터가 지닌 기운에 순응하며 살았다. 찻집 역시 터와 자연이 정해준 방향이라 생각한다. 확장 욕구는 전혀 없다. 게으르게, 고즈넉하게, 한적하게 살아온 페이스를 지속하고 싶다.”
차갑고 팽팽한 게 생활이다. 냅다 뛰어라 채근하는 게 삶이다. 그러나 게으름을 축으로 살아도 이렇게 무탈하다. 느린 생각과 느린 마음과 느린 동작은 어쩌면 생활의 견인차?
유성국이 주는 귀농 Tip
•귀농은 정서적 차원에서 보면 흙으로, 모태로 돌아가는 행위다. 얼마든지 권장할 만한 일이다.
•농사로 돈을 벌려면 가급적 젊을 때 하라. 너무 나이 들어서는 어렵다. 뭐 하나 만만치 않은 게 농업이기 때문이다.
•귀농지 물색을 위해 많은 곳을 답사하자. 현장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어서다.
•귀농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농사만 길이 아니다. 도시의 직업에서 쌓은 경륜을 활용,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의 사업을 창출하자.
•전 재산을 투입하는 귀농은 매우 위험하니, 이 점 유의하자.
•굳이 집을 새로 지을 필요 없다. 헌 집을 고쳐 쓰는 게 더 유익하다.
‘너를 만났다’는 김종우 PD가 만든 국내 최초의 가상현실(VR) 휴먼 다큐멘터리다. 하늘나라로 떠난 사람을 기술로 구현해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과 가상현실 속에서 다시 만나게 하고, 세상에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프로그램과 같은 제목의 신간 ‘너를 만났다’는 인간적인 시선과 과학기술의 접목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김 PD의 속사정을 담았다.
김종우 PD는 21년 차 골수 다큐멘터리 제작자다. MBC 간판 교양 프로그램 ‘불만제로’, ‘PD수첩’에 참여했으며, 2008년 고시원 화재 사건의 피해자 이야기 ‘아무도 묻지 않은 죽음’, 쌍용차 사태를 다룬 ‘타인의 정리해고’, 전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암시한 ‘기후의 반란’ 등 단순한 흥미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바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 ‘너를 만났다’는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다. 제작 기간은 1년 남짓. 제작진들은 남은 사진과 영상, 유가족의 기억을 조합해 고인의 모습을 구현하고, 좋아했던 물건들로 채운 가상공간을 조성한다. 체험자는 HMD(체험을 위해 머리에 장착하는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 속에서 마음에 담아뒀던 말들을 다시금 읊조린다.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 경계를 넘다
희귀병으로 7세에 세상을 떠난 딸 강나연 양과 어머니 장지성 씨의 만남을 담은 시즌1은 2020년 방영 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공감과 반응을 보냈다.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3300만 회를 넘기며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 아이의 뼛가루를 담은 목걸이를 항상 하고 다니고, 가족끼리 어딜 가든 사진을 들고 다니며 ‘너랑 같이 왔다’고 속삭이는 엄마. 김 PD는 비록 가상의 상황이었지만 장지성 씨가 한순간이라도 웃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세상을 떠난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이라는 어렴풋한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회의를 거듭하며 틀을 잡았죠. 기획 초반에 내부에선 ‘HMD를 쓰면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 카메라에 사용자의 감정이 담기겠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새롭게 시도하는 장르라 함정에 빠지진 않을까, 후져지진 않을까, 고인에게 결례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연이와 엄마가 만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잠도 잘 못 잤던 것 같아요.”
실험적인 시도로 우려를 안고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방송영상산업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상 TV 다큐멘터리 부문 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방송 이후 김 PD는 직업인으로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한 직장, 같은 부서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어요. 좋은 프로그램이란 뭘까, 고민하며 이리저리 흔들렸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해내면서 창작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덕분에 제작 과정을 담은 책도 쓰고요. 노후 걱정을 조금은 덜었네요.”
“과정은 험난했다. 어느 날은 될 것 같다가, 어느 날은 실망했다. 그래도 빈 땅에 아무도 꽂지 않은 깃발을 꽂았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의 PD로서 산업적 발전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작은 디테일을 축적하며 사람의 이야기, 착한 이야기, 저널리즘을 추구하려 노력했다. 기술적인 것 이상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기술을 적용하려 하면 할수록 시간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했던 과정을 이 책에 담았다.”
-‘너를 만났다’ 중에서
직장인 겸 창작자의 돌파구, 책
신간 ‘너를 만났다’에서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깊어진 그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방송국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 새로움과 익숙함의 경계를 콘텐츠로 풀어내는 방식, 오랜 직장인의 걱정거리 등 다양하다. 그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흩어진 생각들을 조금씩 재정비했다고 한다. 아마 김 PD의 상상력을 ‘있음직한 일’로 만들어내는, 집요함을 키워내는 데 역할을 했을 테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처럼 말이다.
“제 인생에서 책을 빼놓고 설명하기란 어려워요. 소설은 항상 허겁지겁 먹고 싶은 음식과 같은 존재예요. 어릴 때부터 뭔가 하기 싫어지면 책을 읽었어요. 핸드폰이 없던 시절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였죠. 지금은 아무래도 넓은 분야를 이것저것 떠도는 방식의 독서를 하고 있어요. 뭔가 얻어걸리지 않을까,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면서요. 항상 대박이 찾아와주길 바라는 태도가 부끄럽긴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는 책만의 목소리가 있어요. 재미는 물론이고, 정련된 의견에 내포된 진중함이 있죠. 앞으로도 ‘너를 만났다’처럼 사람들에게 흥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작품으로 소통하고 싶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장년내일센터 내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17곳이 조성된다. 중장년의 생애주기 특성을 고려한 인문·여가문화 프로그램과 취업서비스를 함께 누릴 수 있게 됐다.
이번 계획은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양 부처 간 협업으로 이뤄졌다. 고용부 소관 취업지원기관인 중장년내일센터(전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 새롭게 구축되는 ‘중장년 청춘문화공간’은 구직 활동을 겸하며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중장년층을 위해 마련됐다.
고용부와 문체부는 중장년의 활력 회복과 재도약이 사회 동력 제고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고자 손을 맞잡았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서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조성 및 운영’을 신규 올해 신규 예산으로 반영했다. 프로그램 관련 문체부 17억 원, 공간조성 관련 고용부 1.8억 원(노사발전재단 예산 별도)이 투여된다.
올해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 부산 중장년내일센터 내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조성을 준비해왔다. 공공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노사발전재단과 함께 작년 10~11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부산센터를 방문한 60대 장모 씨는 “또래들과 생애경력설계서비스와 문화프로그램을 동시에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며 노후 설계에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등 전문과 연구와 시범 운영 결과를 토대로 중장년의 생애주기특성을 고려한 운영방안을 마련, 이에 따라 서비스가 이뤄질 예정이다. 기본공간은 강의장, 동아리방, 커뮤니티공간, 문화카페 등으로 꾸며진다. 독서, 글쓰기, 자기계발, 여가문화 향유 등 중장년의 특성과 수요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강연, 체험, 멘토링, 동호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한다. 희망자에 한해 지역사회 봉사, 사회공헌 활동, 인문사업 강사 등에 참여할 수 있다.
고용부 하형소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중장년 청춘문화공간 운영 사업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우리부와 문체부가 중장년을 대상으로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자원 및 장점을 활용한 협업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수혜자인 중장년층 입장에서 중장년내일센터의 취업지원서비스와 인문·여가문화서비스를 통합 제공받음으로써 인생 후반기 설계를 위한 디딤돌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라고 밝혔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은퇴 후 제2의 인생 설계가 필요한 중장년층을 위한 공약으로 시작된 새로운 사업이다. 가정과 사회에 공헌하는 동안 자신을 살펴볼 시간이나 문화를 누릴 기회가 부족했던 중장년 세대의 많은 분들이 이번 청춘문화공간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얼어붙고 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풍요의 상징이며 예로부터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뜻한다고 한다. 20인의 중장년 취·창업 전문가에게 2023년 중장년이 주목할 만한 분야를 물었다. 전문가들의 전망을 잘 살펴 약간의 지혜를 더한다면 계묘(癸卯)의 미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인생 도전을 위한 2023 중장년 취·창업 트렌드를 소개한다.
▲ trend1 전체 시장 전망
창직과 N잡러의 해
2023년에는 경기 불황이 예상되는 만큼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가 중장년에게 적합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에게 강도 높은 노동력이 요구되는 직무는 한계가 있지만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직무 직종은 3D 업종을 기피하는 청년들로 인해 취업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인·장애인 관련 복지 서비스 분야에서도 대면 기술과 상담 능력 면에 강점이 있는 중장년이 유리할 수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장 희유 스님은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돌봄, 디지털, 환경 분야를 중장년이 공략해볼 만한 일자리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23년 중장년 취업‧재취업 시장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보고 창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경력, 취미, 특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창직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은 “창직을 통해 긱이코노미(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고 구하는 경제 형태) 시장에서 N잡러(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될 중장년이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는 “소자본으로 시작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창업, 무자본ㆍ무점포형 창업,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체크 포인트
전문가들은 현직에 있을 때보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인정하고, 업무 수행 성과 또한 과거와 다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내려놓고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 더불어 건강관리는 필수다.
▲ trend2 취업 시장 전망
시간제 일자리가 대세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고, 자신의 적성과도 맞으면서, 업무 강도가 낮고, 수입은 적절하게 나오는 일이 중장년에게 가장 적합하다. 풀타임보다는 시간제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취업‧재취업 시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사발전재단 같은 기관을 통해 나에게 적합한 직무가 무엇인지 잘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자문 수준이 아니라 경험을 살려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중장년을 원한다”면서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활용해 자신의 역량을 넓히고 기업에 적용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장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 유망 직업 및 분야
장례·웰다잉 분야 기존 장례지도사, 유품정리사뿐 아니라 디지털 장례 수목장 등 새롭게 변하는 장례 문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돌봄 분야 인지건강지도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노인 돌봄 분야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안전관리 분야 기업재난안전관리사, 고령자 주택 개조사, 연구실 안전전문가 등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앞으로 채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직업·전직 상담 및 컨설팅 분야 전직지원 전문가, 직업상담사, 은퇴 코치 노년 플래너, 창직 컨설턴트, 스타트업 컨설팅, 귀농귀촌 컨설팅 등 코칭 분야가 유망하다.
이외에도 반려동물 간식 시장, 도시농업활동가, 건강식품 및 간편식, 도시농업관리사, 주택관리사, 조경기능사, 신용상담사, 손해평가사, ESG나 환경 관련 직업, 자연·문화해설사, 관광통역안내사 등이 꼽혔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신중년 적합 직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원하는 신중년 경력형 일자리 사업에 어떤 분야가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혹은 공공에서 지원하는 뉴딜 인턴십, 시니어 인턴십 등의 사업을 통해 훈련 후 일자리 연계를 노려볼 수도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 검색을 통한 취업 시도보다는, 일할 경험을 주는 공공 취업지원 플랫폼을 활용해보길 권유한다.
▲ trend3 창업 시장 전망
지식과 기술 창업 유망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창업이 대세일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중장년에게 적합한 분야는 ‘지식 창업’ 분야다. 사회에서 쌓은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장성과 경쟁력이 있다는 전망이다. 또한 시니어가 가진 사회 경험과 네트워크가 창업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은 “대기업이 접근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창업가에게는 적합한 규모의 틈새시장을 공략하면 창업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은 “중장년 창업은 소자본 창업, 직접 일하는 창업, 최소 인원으로 가능한 창업, 돈보다 일이 재미있는 창업, 오래 할 수 있는 창업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 트렌드
프랜차이즈보다 무인 창업 최근 많은 중장년이 ‘오토 매장’(본인의 노동력 투입 없이 소수의 직원으로 자동 운영되는 매장)에 혹해 프랜차이즈를 고려하지만, 정말 수익성이 잘 나오는지 따져봐야 한다. 차라리 무인 매장이 나을 수 있다. 반찬, 고기, 문구, 옷 등 아이템도 다양하다.
1인 지식 창업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녹인 1인 지식 창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한때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했던 퍼스널 브랜딩(자신을 브랜드로 만드는 일)을 이제는 중장년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영업보다 기술 창업 시니어 대상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 반려로봇 개발, 빅데이터 기반 노인 안부 확인 사업, 위급상황 대처 기술 사업, 기술을 통한 정서 교류 상담 등의 기술 창업이 유망하다. 또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세대융합형 기술 창업도 도전해볼 만하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창업 청년에 비하면 창업 자금이 넉넉하다는 게 중장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실패하면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청년보다 큰 것도 현실이다. 소자본 혹은 무자본 창업 가능한 온라인 창업이 유망하다.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인력난이 심각한 외식업계에서 기회를 찾아보자. 대부분의 예비창업자들은 프랜차이즈 문을 두드리고 자본금을 과도하게 투자한다. 하지만 저렴한 값으로 전수창업을 배우는 것도 틈새시장이다. 전수받은 레시피에 나만의 색깔과 브랜드를 입혀 창업해보면 어떨까. 외식시장 인력난 기회를 놓치지 말자.
▲ trend4 새로운 시장 전망
떠오르는 新분야는?
중장년에게 적합한 새로운 분야로 디지털, 모빌리티(이동성을 높여주는 이동 수단 혹은 서비스), 시니어 뷰티 등이 꼽혔다.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는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면서 40~50대의 비대면 활동 경험이 90%를 넘어섰다”면서 “디지털 중년 시대를 맞이해 체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비대면 분야에서 중장년의 활약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청년들은 단순하고 지루한 반복 작업이라 좋아하지 않는 데이터 라벨링(인공지능 학습을 위해 수집한 데이터에 라벨을 다는 작업) 같은 일자리에 대한 중장년의 만족도가 의외로 높다”면서 “정식 출시 전인 제품 및 서비스 결함을 파악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베타 테스터도 좋다. 앞으로 모빌리티 시장에서의 중장년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은 “일본에서는 화장을 해주며 심리상담과 만족감을 높여주는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라는 직업이 생긴 지 오래”라며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년의 욕구인 ‘네버랜드 신드롬’이 트렌드라고 짚은 것처럼, 무인 ‘피터팬 스토어’ 같은 창업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새롭게 눈여겨볼 직업
디지털 분야 디지털 라벨러, 베타 테스터, 디지털 문해 교육자, 디지털 중개사
모빌리티 분야 프리미엄 택시 운전사, 드론조종사, 이동수단용 콘텐츠 큐레이터, 운송 서비스
시니어 뷰티 분야 안티에이징, 젊은 감성 입힌 패션, 뷰티 터치 테라피스트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초고령사회로 흘러가는 만큼 실버 비즈니스와 관련된 직무, 직업, 창업 분야가 새롭게 열릴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언택트, 메타버스 등의 기술 창업 분야도 커질 전망이다.
설문 참여 전문가 리스트
▲강소랑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정책연구팀 박사
▲김갑용 이타창업연구소 소장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 원장
▲김숙응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
▲김중진 한국고용정보원 미래직업연구팀 연구위원
▲김찬흥 국민은행 경력컨설팅센터 센터장
▲권정훈 ‘장사 권프로’ 채널 유튜버
▲문성식 창직교육협회 이사장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박지혁 초고령사회 뉴노멀라이프스타일연구소 소장
▲변영조 한밭대 중장년기술창업센터 센터장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
▲심우정 한양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유연성 언더독스 본부장
▲이종근 디올연구소 대표
▲이진서 인생다모작연구소 소장
▲전혜진 이지태스크 대표
▲조연미 리봄 시니어플래너 대표
▲한희윤 신한은행 은퇴사업부 수석
▲희유스님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센터장
가파른 언덕이나 심한 단차로 ‘불편한 관광’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열린관광지 구축이 확대되고 있다.
열린관광지는 고령자, 장애인, 영유아 동반 가족, 임산부 등 관광 약자의 관광지 내 이동 불편을 줄일 시설을 갖춘 장소다. 국민의 관광 여건을 쉽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관광지점별 체험형 관광 콘텐츠 개발, 무장애 관광 정보 제공, 인식 개선 교육 등도 실시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2015년부터 매년 ‘열린관광지 조성 사업’을 진행해왔다. 선정된 관광지는 앞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배리어 프리 인증) 전문가들의 맞춤형 현장 컨설팅을 거쳐 각 관광지의 환경에 맞는 세부 개선 계획을 확정한 후 경사로, 단차, 매표소, 보행로 등 여행 기반 시설을 개·보수하고 장애 유형별 체험형 관광콘텐츠를 개발한다.
열린관광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열린관광 모두의 여행’ 누리집에서 얻을 수 있다. 해당 홈페이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2월 개설했다. 텍스트 크기 조정과 음성 지원, 시각적 편의를 높인 고대비 보기 등의 기능을 추가해 실질적 수요자인 고령자, 장애인 등의 정보 접근성을 개선했다.
고령자, 장애인, 영유아 동반 가족 등 유형에 따라 관광 정보를 검색하면 추천 여행코스, 숙박시설, 편의시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여행코스 및 이동 경로 지도 서비스, 수화 영상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무장애 관광지 홍보영상 등의 콘텐츠도 마련돼 있다. 내 주변 의료기관과 전동휠체어 급속 충전소를 찾아볼 수 있다.
김장실 관광공사 사장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롭게 여행하기 어려웠던 관광객을 위해 여행권 보장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사장은 “장애인, 고령자, 영유아 동반자 등 모두가 어디든 즐길 수 있는 열린관광지를 조성하고 무장애 관광에 대한 대국민 인식 제고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