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땅에 비지땀을 쏟아 필수 식량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농업은 신성한 직업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천하의 뿌리’에 관여된 일이 농업이다. 반면 믿기 어려운 직업이 농사다. 땀 흘린 만큼의 공정한 대가가 주어지는 경우가 흔하던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에 따라 좌우되는 작황, 널뛰기하는 가격, 불안정한 판로 등 리스크 요인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의 악조건을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귀농을 하는 이들이 많다. 나만큼은 성취할 수 있다는 뜨거운 신념을 가지고 농사에 뛰어든다. 경북 상주시의 산골로 귀농한 임원식(61, 상주갑장산굼벵이농장) 씨도 그랬다.
“경치 좋은 시골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원이나 농장을 가꾸며 마음 편하게 사는 삶. 이건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로망이 아닐까? 내게도 막연하나마 오래전부터 그런 꿈이 있었다.”
귀농은 임원식 씨에게 오래 묵은 꿈이었던 거다. 비록 막연한 바람이었지만. 다시 말해 언젠가 기회가 오면 시골에서 한번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언젠가’가 오지 않아도 무방할 몽상 차원의 꿈이었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별안간 도래했다.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그는 경남 거제시에 있는 삼성중공업 직원이었다. 이름난 대기업이고 연봉도 높은 수준이라 자청해서 그만둘 이유가 없었으나, 구조조정의 칼바람 앞에서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선배 직원들부터 차례로 무자비하게 잘리는 걸 본 그는 곰곰 궁리하다가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명퇴를 신청했다.
명퇴 뒤 그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깊어졌다. 이제 어떡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체인점? 창업? 그가 생각한 건 장사였으나 가만히 따져보니 그건 당최 적성에 맞지 않았다. 간이라도 빼줄 듯이, 심지어 영혼까지 팔 듯이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상업인데 그건 참 싫었던 것이다. 이때 그는 오래된 꿈인 귀농을 카드로 뽑아들었다. 그리고 숙고에 들어갔으며, 결국은 귀농만이 믿을 만한 대안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머리를 감싸 쥐고 더 고민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내 박선숙(56) 씨의 동의를 얻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 남편들이 마치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투로 열렬히 귀농을 선창해도 아내들은 십중팔구 앵돌아앉기 십상이다. 그의 아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합리성 있는 이유를 내세워 ‘강력한’ 반대를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귀농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인내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설득에 나섰다. 그 과정이 길고 힘들었다고 한다. 마침내 동의를 얻어내 귀농을 한 건 2016년 8월. 부부는 손잡고 나란히 경북 상주시 낙동면 갑장산 기슭의 산골로 들어갔다.
귀농 한 달 만에 시작한 굼벵이 농사
“터는 미리 사두었다.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농지 매물을 검색해 곳곳을 답사한 끝에 이곳의 땅을 사들였다. 적은 자금으로 마음에 드는 터를 구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터는 좋아도 너무 외지거나 길이 없는 땅이 많더라. 헛걸음이 잦았지.”
Q 작물 선정도 미리 해두었나?
A “아니다. 일단 시골로 빨리 내려가고 싶어 작물에 대한 모색 없이 그냥 내려왔다. 산자락에 사둔 땅 인근에 있는 빈집을 임시로 빌려 살며 작물 구상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슴농장이나 옻나무 재배에 관심을 가졌으나 실상을 좀 파악해보니 만만치 않겠더군.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수 농사나 자금이 많이 드는 시설 하우스 농사도 그렇고. 그러던 차 TV 방송에 나온 굼벵이(흰점박이꽃무지의 유충) 사육 농가의 성공 스토리를 보고 굼벵이 사업이 유망하겠다고 판단했지. 그게 굼벵이 농사에 뛰어든 계기였다.”
Q 귀농하자마자 곧바로 굼벵이 사육을 시작했나?
A “지체 없이 일을 착수했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굼벵이 농가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교육을 받고, 굼벵이 종자(종충)를 분양받아 사육에 나섰던 거지. 셋집에 있던 창고를 사육사로 썼고.”
Q 보통은 미리 작물 선정과 공부를 하고 귀농을 한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지. 당신은 일사천리로 진도를 냈네?
A “사실 굼벵이 사육과 가공 생산이 별로 어렵지 않다. 여느 농사에 비해 한결 수월하거든. 물론 굼벵이 공부는 사육 착수 이후 충실하게 했다. 경북농민사관학교를 통해 2년에 걸쳐 천적곤충과정과 유용곤충과정 교육을 이수했으니까. 여하튼 귀농 한 달 만에 굼벵이 농사를 시작했으니 엄청 속도를 낸 셈이다. 내 땅에 내 집도 신속하게 지어 이사도 했다. 불과 서너 달 만에 이 두 가지 일을 해치웠지.”
Q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A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월급이라는 게 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만 했던 거다. 매사 추진력을 가지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과 그렇게 살아온 습성도 작용했지만.”
땔나무를 베겠다면서 종일 낫만 가는 건 바보짓이다. 저 굴 속에 호랑이가 있는지 고양이가 사는지 궁금하면 굴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는 성격 자체가 느긋하기는커녕 박력이 넘쳐 뭐든 영감이 떠오르면 즉시 판단해서 즉시 해치우는 사람인 거다.
알아주는 굼벵이 농가로 부상했으나
허준의 ‘동의보감’에선 굼벵이를 아주 좋은 약용곤충으로 적시했다. 굼벵이 섭취를 혐오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지만, 예부터 약용은 물론 식용으로 민간에서 흔히 쓰인 곤충이었다. 굼벵이 사육이 농업의 한 장르로 등장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효능이 탁월하지만 식품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가 2016년에야 식약처에 의해 식품 원료로 승인됐으니까. 그즈음 곤충산업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굼벵이 농사가 블루오션으로 부각되면서 사육 농가가 급증했다. 1000개 이상으로까지.
상품화되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산란한 굼벵이 알을 리빙박스 안에서 3개월 정도 길러 살을 찌운 뒤 환, 분말, 엑기스 등 식용상품으로 가공하면 되니까. 질병이 거의 없고, 투자 비용도 적게 들고, 게다가 온·습도만 잘 맞춰주면 크게 손이 가지 않아서 매력적인 고소득 특화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민첩한 머리와 바지런한 손발을 가진 임원식 씨는 이 기특한 애벌레를 야무지게 잘 길러 고품질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상주에서 알아주는 농가로 급부상했다.
“굼벵이 농사는 신선놀음에 가깝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수월하다. 그러나 차별화된 고품질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역시 판로다. 기르기는 쉽지만 팔기는 쉽지 않은 거다.”
Q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리는가? 사육 농가가 급증하면서 고전하는 농가들이 많다던데. 폐업도속출하고.
A “처음 3년간은 부진했다. 어떤 농사든 초기의 바닥 다지기에 3년은 걸린다. 시행착오도 겪으며 성장의 힘을 얻어가는 필수적인 수련기지. 아무튼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서서히 매출이 올라 2019년엔 연매출 9000만 원을 기록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노하우를 활용한 덕분이었다. 이젠 궤도에 올라섰구나! 그런 판단을 했지. 농장 이름이 알려지면서 견학을 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코로나로 위기를 맞이했다.”
Q 매출이 급감했나? 코로나의 횡포로 곤경에 빠지지 않은 분야가 드물다.
A “2020년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소비가 위축되고 주요 판로였던 지역 축제장에서의 가판이 불가능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사육 농가가 포화 상태이기도 했고. 올해는 더 상황이 나쁜 것 같다.”
불운이라 할 수밖에. 아무도 못 말릴 급한 성격대로 후다닥 일을 진행했음에도 궤도에 올라섰으나, 코로나의 기습으로 주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절체절명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낙심이 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대차게 강물에 오른 사공은 멈추지 않는 법이다. 급물살에선 노를 묘하게 잘 저어 나가면 그만이다. 비바람에 시달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겠는가. 그는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다. 굼벵이의 사육 규모를 왕창 줄여 코로나 종식 이후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새 작물에 도전했다. 그 이름도 참신한 참두릅을 기르기로 하고, 올봄에 스마트 팜 타입의 시설 하우스를 지었다. 귀농 5년 차 이상의 귀농인에게 주는 연리 2%짜리 영농자금 3억 원을 지원받아서.
“내가 시작한 참두릅 농사는 기존 노지 재배 방식과 크게 다르다. 노지에서 기른 두릅나무의 마디마디를 잘라 하우스 안의 물병에 꺾꽂이처럼 꽂아 기르는 방식이거든, 이걸 ‘마디수침 재배법’이라 부른다. 이 재배법으로 연중생산이 가능해 최대 10배까지 수익 증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메리트가 큰 농법이라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이미 남들도 많이 하는 재배법 아닌가?’ 하는 생각이 대번에 들었지만 아직은 선도적 농법이란다. 이 분야의 고수를 만나 멘토로 삼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성공 보증서는 어디에서도 발부받을 수 없다. 인생이라는 미스터리가 늘 그렇듯, 농사에도 역시 복병과 변수가 음흉하게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들 대수로울 것 없다. 행복이라는 밥상에는 늘 고난이라는 양념이 동행하므로 복병은 복병대로 열나게 때려눕히면 되는 거다. 임원식 씨의 기본 태도가 그렇다. 그는 약 7억 원의 자금을 들고 귀농했다. 내 생각엔 그 돈이면 그냥 경치 좋은 산골에 오두막 하나 짓고 놀고먹겠다만 그는 생각이 영 다르다. 백수에 흥미 없다.
“그간 지니고 온 자금은 전부 사라졌다. 농토를 사고 집을 짓는 데 주로 사용됐지. 적자에 따른 손실금도 좀 있지만 그건 수업료가 아니고 뭐겠는가? 다 투자분이라 생각한다. 75세까지는 열심히 농사를 지을 작정이다. 월 350만 원 정도는 가져야 생활이 되던데, 그걸 벌기 위해서도 뛰어야 한다.”
Q 월 100만 원으로 희희낙락 사는 시골 부부도 많던데?
A “내가 단지 돈벌이만을 위해 뛰는 건 아니다. 도시와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열심히 하며 살고 싶다는 기본 이상을 좇아 달리는 거거든. 당신 행복해? 누가 그리 물어보면 답은 ‘그렇다!’다. 몸은 고달프고 고민도 많지만, 난 지금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느낌이다.”
어떤 직업이든 유쾌하기만 하겠는가. 애환과 성취는 궁합이 잘 맞는다. 고로 그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거겠지. 그의 뇌에 세팅된 목적은 삶의 질을 높이는, 즉 자기 확장에 있는 것 같다.
임원식 씨가 주는 귀농 팁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어림없다. 귀농은 절대 쉽지 않다. 단단한 각오와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하자.
•자칫하면 원주민들에게 왕따당한다. 절대적인 신임을 얻도록 노력하자. 인사부터 잘하고. 목에 힘주면 발붙이기 어렵다.
•관행 농사는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똘똘한 작물 선정을 위해 미리 심각한 고민과 연구를 해두는 게 좋다.
•작목을 정했다면 확실한 멘토를 만나라. 그 사람의 실패담이 거울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라. 새로운 지식도 얻고 멘토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 각종 지원사업도 교육을 이수해야 받을 수 있다.
•직거래만이 답이다. SNS 마케팅을 공부해 적극 활용하라.
강영석 상주시장 인터뷰
오래전부터 쌀, 누에, 곶감의 도시로 유명한 상주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농업 도시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4·15 보궐선거를 통해 민선 7기 8대 상주시장으로 취임한 강영석 시장은 상주시의 농업 혁신 도시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강 시장은 인터뷰에서 상주시가 귀농귀촌 1번지로서 손색이 없다고 밝히며, 농업 혁신 도시로서의 가능성과 귀농귀촌인을 위한 정책, 그리고 농촌의 애환 등을 솔직하게 술회했다. “농업 여건만 보더라도 상주시로 귀농귀촌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 상주시의 귀농귀촌 여건과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시는 낙동강과 백두대간을 사이에 낀 천혜의 자연환경과 방대한 농지, 풍부한 용수량 등으로 예부터 뛰어난 농업 여건을 자랑해온 곳입니다. 삼백(三白, 쌀·누에·곶감)으로 잘 알려진 전통적인 농업 도시로서 국제 슬로 시티로 인증도 받았죠.”
강영석 상주시장의 말대로 상주시의 농가는 1만3885호로 전국에서 네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다. 농업 인구도 2만9290명으로 전국에서 일곱 번째, 경북에서 두 번째고, 농지 면적은 2만5315ha로 도내에서 으뜸이다. 그야말로 경상북도에서 손꼽히는 거대 농업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농업의 선택지도 무척 다양하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상주시의 귀농귀촌 강점
“곶감과 시설오이는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며, 근래는 신품종 청포도가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있어 생산 면적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봉, 육계, 한우, 쌀, 배 등의 기존 작물도 전국 1~2위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경북농업기술원을 유치함에 따라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선진 농업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곶감과 쌀, 친환경 농업, 과수 등의 중점 품목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농사만 잘 지으면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주시가 귀농귀촌인의 유입을 강력하게 필요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지 면적은 도내 최고이나 전체 인구수는 면적에 비해 턱없이 적다.
“우리 시는 2019년 초부터 10만 이하 인구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5월 통계로는 9만6337명입니다. 시내 동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4만9957명이니, 실제로 18개 읍면 지역에 거주하는 인구는 4만638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1개 면의 인구가 2500명 이하로 떨어지면 생활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삶의 기반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시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1%가량 되는 초고령 지역이기도 합니다. 향후 농촌 사회, 지역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규 인력이 유입되어야 합니다.”
2021년 귀농귀촌 사업비로 125억5000만 원
귀농귀촌인을 위해 상주시가 준비하고 있는 옵션은 다양하다. 올해 상주시 귀농귀촌 사업 비용은 총 125억5000만 원에 달한다. 분야는 귀농귀촌인 보조 및 융자 지원,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이다. 귀농귀촌인 보조 지원은 총 3억1200만 원으로 주민 초청 행사 운영, 주거 임대료, 주택 수리비, 정착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융자 지원은 올해 상반기 선정분만 해도 45억 원 규모이며, 39개소의 귀농인에게 토지 구입, 하우스 신축, 농가 주택 매입 및 신축 등의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귀농귀촌인 유치를 위한 주거 조성 사업에는 72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 사업과, 매년 2~3개소씩 추가로 조성하는 귀농인의 집 조성 사업이 있다. 귀농귀촌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으로는 총 3억5000만 원을 투자하여 마을 단위 융화 교육, 공동체 귀농학교, 농촌생활기술학교, 귀농귀촌인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 등을 추진한다. 또한 귀농귀촌인을 지원하기 위한 민간 지원 조직으로 상주다움 사회적협동조합을 지원하여 민간 차원에서 교육과 공동체 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도 타 시군과는 다른 상주시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전국 최초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 마련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검면 양정리의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와 사벌국면 삼덕리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인접한 청년보금자리 조성 사업을 통해 농촌 지역에 주택을 마련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전국 최초로 올 연말에 조성되는 귀농귀촌형 공공임대주택단지는 규모는 작지만 널리 알려져 농촌형 주거 복지 사업을 새롭게 이끌어나가리라 기대되고 있다. 농촌 지역에 단독주택단지를 지어 공공임대로 제공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만여 명의 귀농귀촌인이 지역에 와서 농업과 농업 관련 직종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각 지역의 농업과 농촌 관광, 농산물 가공 분야 등에 종사하면서 지역의 스타 농부가 되고 성공 사례가 되어, 다른 귀농귀촌인들을 유인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생긴 민간 공동체귀농지원센터가 주축이 되어 귀농귀촌인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많은 귀농귀촌인의 디딤돌이 되어주었습니다. 매년 계속되는 교육과 모임으로 귀농귀촌인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되어주고, 우리 시로 오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을 맞이하는 마중물이 되어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귀농귀촌을 하려면 급격한 변화에 대비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통해 농촌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은 지역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강 시장은 급격한 변화는 반드시 갈등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고, 변화의 밝은 부분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역 사람들과 귀농귀촌인 간에 갈등이 생기면 기존 지역 사회에서 이루어지던 방식으로는 봉합되지 않고 갈등이 드러납니다. 이는 순기능도 있지만 귀농귀촌인에게 왜곡된 시선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부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귀농귀촌인들이 조용한 지역 사회에 갈등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도하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지역에는 고소득 영농을 위해 귀농하는 분들이 많아, 막상 투자한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면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텃세를 지레 두려워하여 기존 마을과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자 하는 귀농귀촌인들도 있습니다. 고향에 온 귀농귀촌인 중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불화로 마을을 옮기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귀농귀촌으로 인해 생겨난 변화가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와서 반드시 잘 지내는 것도 아닙니다만,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텃세’라고 이름 짓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봅니다.”
텃세라는 말의 어폐, 다르게 생각해봤으면
텃세라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하나가 되어 새로 들어온 귀농귀촌인을 괴롭힌다는 뜻이 있지만, 귀농귀촌인이 관련된 갈등에서 기존 마을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귀농귀촌인을 가해하는 경우는 없다고 강 시장은 밝혔다. 오랜 시간 지역민과 귀농귀촌인을 보아온 강 시장은 도시에서는 그런 갈등이 없느냐고 반문한다. 무엇보다도 현재 농촌의 현실이 텃세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존 마을 공동체도 많이 붕괴됐고, 노인들밖에 없어 텃세를 부릴 만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귀농귀촌인들이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자율방범대장 등을 차지하고 있는데 텃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도시 지역에서도 층간 소음, 주차 등으로 끊임없이 언성 높일 일이 생깁니다. 특정 인물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대도시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농촌은 과거처럼 긴밀한 대면 접촉이 일상화된 공간이 아닙니다. 노년층도 스마트폰으로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고, 옛날처럼 동네 사람들이 장례식과 마을 잔치를 하며 모이는 일도 줄었습니다. 진입로와 토지 경계, 소음, 쓰레기, 축사 악취 등으로 이웃 간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텃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포털 검색창에서 ‘상주 귀농’ 검색
강 시장은 매년 1400가구 1800명을 유치하여 농촌 지역의 인구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매년 1200여 가구, 세대원은 1700여 명이 유입되고 있다.
“귀농귀촌은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일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가꾸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입니다. 통계와 숫자로는 잡히지 않지만, 지역에 이미 터를 잡은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만족하고 기존 주민들과 화합하며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많은 고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강 시장은 마지막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당장 두 가지를 해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가지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검색창에 농업교육, 귀농교육을 입력하고 동영상 온라인 교육을 듣거나 오프라인 교육 행사에 참가해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고 싶은 지자체의 이름과 귀농을 붙여서 ‘상주 귀농’과 같은 식으로 검색해서 시군 귀농귀촌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는 것입니다. 귀농귀촌 담당자들이 친절하고 간결하게 귀농귀촌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풀어줄 것입니다.”
강 시장은 다양한 귀농귀촌 정책을 개발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사람이 찾아오는 환경 조성’을 통해 인구 감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허무하게 진다. 꽃이 그렇고, 풀이 그렇고, 인생 역시 그렇다. 살면 살수록 고난도 첩첩 쌓인다. 그러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했다. 살 만큼 살고서도 요상하게 삶에 대한 애착은 더 강해진다. 저녁 바다로 꼴깍 넘어가기 직전의 태양이 드리우는 붉은 노을은 왜 그리 아름다운가. 황홀한 놀빛을 잡아두고 싶듯이, 나이 들수록 손아귀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움켜쥐고 싶어진다. 그러나 무슨 수로 뺑소니치는 시간을 잡아두랴. 이제 막 60대에 접어든 신동복·김중길 부부는 삶의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시간의 속도전에 대응하기로 했다. 귀농을 통해 유한한 시간을 진정 요긴하게 쓰기로 했다.
귀농을 먼저 제안한 건 아내 신동복 씨였다. 회사 퇴직 이후의 삶을 고려한 남편은 군소리 없이 찬동했다. 이 부부는 30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해오며 지쳐 나동그라지는 아우성 한 번 내지른 일 없이 좋은 금슬을 유지했다고 한다. 외출할 때면 늘 손잡고 돌아다니는 버릇을 고수해왔다는 게 아닌가. 미리 말하자면 이 닭살 부부는 슬로 슬로 퀵퀵, 스텝 한 번 꼬이는 법 없는 춤으로 시골이라는 무도장을 능란하게 누볐다. 돈독한 부부애가 귀농 생활의 이상적인 행보를 가능케 한 힘이었던 것 같다.
귀농을 위해 부부는 사전에 현실성 있는 의견을 자주 나누었다. 예상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미리 충분히 숙고했다. 어디로 갈까,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야 재미를 볼까, 작목은 뭐로 할까, 자주 들었던 시골 텃세엔 어떻게 대처할까, 이모저모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던 모양이다. 구미에 맞는 귀농지를 찾아내기 위해 자그마치 5년간 전국의 땅을 보러 돌아다녔다고 하니 신중에 신중을 기한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전북 고창군 상하면을 귀농지이자 인생의 종착지로 선택했다. 이 지역의 무엇에 필이 꽂혔을까. 아내 신동복 씨의 얘긴 이렇다.
“산과 들, 바다가 있는 게 고창이다. 해산물을 비롯해 갖가지 먹거리가 풍부하게 나오는 곳이라는 게 우선 좋았다. 게다가 복분자, 고구마, 수박 등 특산물이 많은 점에서 알 수 있듯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귀농에 유리한 지역이라 본 거다.”
군청 소재지와 가깝고, 야트막한 산자락 곁이라 아늑하고, 썩 좋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어떤 경로로 터를 구입했나? 자칫 바가지 쓰기 쉬운 게 시골 땅인데.
“정말 유념할 게 시골 토지의 구입 요령이다. 부동산 업소에 나온 가격과 일반적인 실질가격, 그리고 마을 내부의 가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알고 있었던 우리는 일단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매물을 소개받았으나 흥정은 땅 주인을 만나 직접 했다. 덕분에 좋은 가격에 인수했지.”
터의 넓이는 6500평. 평당 가격은 약 3만 원. 너른 땅을 매력적인 가격에 산 셈이다.
“남편의 은퇴에 대비해 사실 많은 궁리를 했다. 식당을 할까, 원룸 임대업을 할까, 이런저런 모색을 하다 귀농을 결심했지. 시골 생활이 부부의 적성에 맞고, 좋은 삶에 가장 가까운 거라 생각해서였다. 시골 땅은 사두면 오르면 올랐지 내려가진 않는다는 주변의 얘기도 참고했다.”
농장의 모습이 훤칠하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청결한 경관이 인상적이다.
“다들 감탄하더라.(웃음) 굉장히 깨끗하고 좋다는 거다. 애초 이곳은 황무지 비슷한 곳이었다. 버려둔 다랑이 논밭으로 잡풀과 넝쿨이 뒤엉켜 보잘것없었거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땅이었다 하더라. 그런데 우리 부부 눈엔 좋아 보였다. 적당한 경사각도 오히려 마음에 들었지. 정원 같은 농장을 만들기에 적격이라 본 거다.”
정원 같은 농장? 그게 뭔가?
“다들 알겠지만 농업이란 어렵기 그지없는 직업이다. 농사에 전적으로 생계를 걸고 시골에 내려오는 건 무모한 도전일 수 있는 거다. 우리는 과욕 없이 적정 규모의 농사를 짓고, 도시에서 모아둔 약간의 노후자금과 연금을 아껴 쓰며 소박한 생활을 즐기는 귀농 생활을 하기로 작정했던 거지. 가급적 많은 나무와 화초를 가꿔 부부가 꿈꾸었던 정원을 만들고, 농사는 가장 똘똘한 작목을 선정해 크지 않은 규모의 소득을 올리는 선에서 만족하자는 거! 이게 밑그림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 차질 없이 계획대로 추진해왔다.”
유실수만 심은 이유
실현 가능한 노후의 이상향을 설정한 뒤 귀농했다는 얘기다. 차근차근 돌탑을 쌓아올리듯, 과속 없는 인내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닥부터 충실하게 다져나갔다. 터를 구입한 뒤 처음 한 일은 집 장만이었다. 원래 있었던 허름한 고가를 고쳐 아담하고 반듯한 거처를 마련했다. 그게 4년 전의 일. 그리고 일단 아내 먼저 그 집에 입주해 귀농 생활에 시동을 걸었다. 남편은 직장이 있는 청주시에 머물며 주말마다 내려와 일을 거들었다. 다시 말해 아내 신동복 씨가 귀농 항해의 선장 역할을 도맡은 셈이다. 파랑이 잦았을 게다. 여자 혼자 후미진 시골 산자락에 살며 너른 농토를 꾸려나간다는 거. 거의 천하장사에 맞먹을 힘과 깡이 아니고선 당해내기 어려운 일이지 않겠는가.
“내가 보기보다 깐깐하고 야무진 여자다.(웃음) 비 오는 밤엔 긴장이 좀 됐지만 마당에 개를 키워 경비병으로 삼았다. 그런데 혼자서도 하루하루가 좋았다. 나무나 화초를 심고 가꾸는 거, 그게 너무도 즐거웠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밖에 나가 일할 수 있는 아침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게 되더라고. 한해 두해 서서히 모양새가 잡혀가는 걸 지켜보며 느끼는 보람도 컸다.”
나무는 주로 어떤 수종을 심었지?
“20여 종의 나무를 심었다. 집을 짓고 입주하기 전, 즉 땅을 구입한 직후부터 틈틈이 드나들며 지속적으로 묘목을 사다 열심히 심었다. 수종은 면밀히 고려해 선정했다. 모든 나무가 다 유실수다.”
유실수만 심은 이유는?
“약을 치지 않은 신선 과일을 생산해 식구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그러고도 남는 과일은 이웃과 나누기로 했다. 유실수가 소소하나마 수익을 가져다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남편의 은퇴 이후엔 퇴직금과 국민연금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데, 가급적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급자족을 하는 게 옳다고 봤다. 또 우리가 먹고 남은 과일은 시장에 내다 팔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미리미리 유실수를 심어둔 거다.”
그녀의 농장 들머리엔 살구나무와 대추나무가 가로수처럼 즐비하다. 어느덧 성목으로 자라 가을이면 탐스런 열매가 달린단다. 체리나무, 포도, 앵두나무, 사과나무 등 갖가지 유실수들도 곳곳에서 잘 자라고 있다. 꽃은 또 어떻고? 장미며 철쭉, 해당화 등이 5월의 햇살을 받으며 기름진 잎으로 빛을 발한다. 비닐하우스 하나에는 다육식물이 빼곡하다. 식물을 애호하는 도저한 습벽을 알 만하다.
시골의 불문율을 존중하기
그렇다면 농사는? 꽃나무에만 취해 살기로 한 귀농이 아니었으니 농사에는 더 많은 땀을 쏟았다. 그녀는 첫 작물로 아로니아를 재배했다. 그러나 점점 가속되는 가격 하락 추세를 주시한 군청의 권고로 한 해 농사를 끝으로 접어야 했다. 이어 복분자로 전환했으나 2년 차에 동해를 입어 이 역시 가차 없이 뽑아냈다. 그래도 두 작물에서 용케 약간의 흑자를 냈다 하니 초심자의 농사치고는 놀라운 실적을 거둔 셈이었다. 이즈음 남편이 마침내 퇴직을 하고 시골살이에 합류했다. 부부는 이제 한결 안정적인 작목을 선택하기 위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고창군은 귀농의 적지로 손색없다. 이를테면 복분자 농사를 하겠다고 하면 군에서 전문가를 보내 상세한 지도를 해주는 식으로 지원해주더라. 우리는 고창군귀농귀촌협의회를 통해 유능한 멘토를 만났다. 블루베리 농사로 농장을 성장시킨 분인데, 우리에게도 블루베리를 권했다. 블루베리에 환한 그의 상세한 가르침을 받고 바로 따르기로 했다. 승산이 높다고 판단했지. 올봄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묘목을 식재했다.”
블루베리 역시 가격이 하락하는 추세이지 않나?
“가격 추이와 무관하게 흑자를 낼 수 있는 규모와 시설을 구축했다. 비닐하우스 6동에 면적은 850평인데, 이 정도면 부부 둘이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이상적인 규모다. 생산 비용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지. 게다가 완전 자동으로 돌아가는 스마트 팜 시스템을 도입한 농장이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가령 가온(加溫)을 해 조기 출하를 할 경우엔 고수익도 가능하다.”
예상하지 못한 악재가 발생해 큰 손실을 보기도 하는 게 농사인데?
“블루베리에 풍부한 경험을 쌓은 멘토의 조력을 받으며 충실하게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승산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생산 물량 전부를 매입하겠다는 유통업자와 계약까지 완료했다.”
고행처럼 뜻밖의 애환이 많아 낙심하기 쉬운 게 귀농 생활이다. 누가 귀농을 하겠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뜯어말리고 싶다는 귀농인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끄떡없다. 지금까지 눈부신 흑자를 기록한 건 없지만 이렇다 할 실패나 대단한 시행착오도 없었으며, 그 순탄한 여정에 비추어 블루베리 농사도 뜻대로 굴러갈 거라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물론 그간 허리가 휘어질 노동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경으로 막대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삐끗 추락하면 끝이라는 각오로 ‘악착스럽게’ 일에 매달렸다는 거다. 이처럼 맹렬하고 부지런한 태도는 남편 역시 마찬가지. 공감과 교감으로 훈훈하게 소통하는 부부애 역시 전진의 견인차다. 찰떡궁합으로 갖가지 고초를 넘어선다.
그런데 그녀가 귀농을 해서 가장 잘한 일이라 내세우는 게 하나 있다. 마을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다.
“내가 원래 멋 부려 차려입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여자다.(웃음) 이곳에 와서도 처음엔 도시에서처럼 멋 좀 내고 다녔지. 그러자 마을 어르신들이 뭘 여쭤도 대꾸조차 않더라. ‘차림새를 보아하니 마을과 어울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차! 나를 싸가지 없는 여자로 보는구나!(웃음) 그런 생각을 하며 옷 취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한 처신으로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대목이다. 귀농을 하면 무조건 원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기적이고 무딘 처신으로 결국은 쫓겨나다시피 도시로 돌아가는 케이스가 드물지 않더라. 물론 큰 마을의 경우 삐딱한 사람 하나쯤은 있어 애먼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자기 땅의 경계를 확실히 하겠다며 토지 측량부터 하다간 외톨이로 고립되기 십상이다. 시골에 가선 시골의 불문율을 존중해야 하는 거다. 어려울 것 없다. 인사 잘하기, 가끔 식사 대접하기, 이웃 농사일 거들어주기, 농산물 나눠 먹기 정도를 진심으로 하다 보면 가족처럼 금방 가까워지는 게 시골이거든. 나는 현재 마을 부녀회장을 맡고 있다. ‘저 집은 복 많은 집이야, 복 받은 집이야!’ 그런 칭찬도 다반사로 듣는다.”
농사면 농사, 처신이면 처신, 뭐 하나 방심 없이 최선을 다했나 보다. 게다가 노니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 일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환경을 조성했다. 꽃과 나무를 무수히 가꾸고, 연못을 파 연꽃을 기르며, 못에 넣은 치어들이 살찔 즈음엔 심심파적으로 낚시를 즐긴다. 이쯤이면 낙원이라 해야 하나?
신동복 씨가 주는 귀농 팁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자. 준비되지 않은 귀농은 반드시 실패한다.
•귀농지를 선정할 때 자연환경, 농업 환경은 물론 마을의 인심이나 풍토도 파악하고 결정하자.
•내 농사를 짓기 전에 남의 농장에서 기술과 경험을 쌓는 수련기를 갖자.
•농사로 큰돈을 벌기는 어렵다. 형편과 실력에 맞는 적정 규모를 미리 책정하라.
•지자체가 운영하는 귀농정책의 내용을 면밀히 따져 귀농지를 결정하자.
•마을 원주민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라. 이는 가장 중요한 필수 수칙이다.
역사와 전통, 자연이 어우러진 고창군을 즐겁게 설명하는 그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모든 요소를 가진 천혜의 환경 속에 여러 가지 특용작물 재배로 의욕적인 발걸음을 이어나가고 있는 고창군은 이미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연과 사업을 아우르는 이상적인 곳으로 소문나 있다. 유기상 군수의 목소리로 도시민들이 고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와 고창군의 특별한 매력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광범위한 고인돌 유적지가 알려주듯 고창군은 3000년 전 한반도에서 해양 문화, 대륙 문화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가히 한반도의 수도였다고 할 수 있죠. 산, 들, 강, 바다, 갯벌까지 자연의 모든 게 있는 곳이며,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기상 고창군수의 목소리에 배어든 자신감처럼 전라북도 고창군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지명이다. ‘삼시세끼’, ‘1박2일’, ‘6시 내 고향’, ‘한국인의 밥상’ 등 시청률 높은 다양한 방송을 통해 산과 바다, 들녘이 공존하는 깨끗한 환경의 청정 지역으로 꾸준히 전국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2013년 5월에는 고창의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청정한 자연환경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고창에는 선운산 도립공원, 노래로도 익숙한 선운사, 운곡습지, 학원농장 청보리밭, 동호해수욕장, 구시포해수욕장, 석정온천 등 관광지가 많고, 고창읍성, 무장읍성 등 역사·문화유적지가 계속 이어진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다.
하늘·땅·사람이 상생하는 고창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방 소도시 대부분이 당면한 문제는 바로 인구 감소 현상이다. 기존 인구는 고령화되고 젊은 인구는 대도시로 유출되다 보니, 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서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그런 반면 은퇴한 시니어들과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귀농귀촌이 삶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현상 또한 그 이면에 있다. 도시민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을지 결정짓는 열쇠 중 하나는 농업 소득 창출에 있는데, 그 부분에서 고창은 특별한 장점이 있다.
“고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농토가 넓고, 다양한 소득 작물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복분자, 수박, 멜론, 블루베리, 쌀, 인삼, 고구마, 땅콩, 고추, 김 등 고소득 작물이 많고, 이런 작물들을 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받고 있죠. 그리고 고창의 농경지는 대부분 황토로 구성되어 게르마늄 성분이 타 지역보다 11% 더 많고, 볏짚에 많이 들어 있는 고초균도 타 지역 토양에 비해 5배 이상 많은 것으로 김길용 전남대학교 교수님의 연구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천 년을 가는 식초 만들다
유 군수는 고창에는 특산 고소득 작물이 많은 덕분에 부모님 대를 이어 농업에 도전하는 청년 농부들이 꽤 있다고 밝혔다. 그가 요즘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이 있다. 바로 식초다.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등의 이슈로 발효식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커진 상황. 그는 고창의 특산품인 복분자로 만든 식초는 기존 발사믹 식초보다 항산화 효과가 네 배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마실거리 중 최고는 식초죠. 천 년을 갈 수 있는 식초는 사람을 살리는 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창을 세계 4대 식초도시 중 하나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식초 원료가 되는 쌀과 보리 등 곡류와 복분자, 아로니아 등 베리류의 국내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복분자 가공산업의 발달로 시설 기반이 이미 조성되어 있으며, 관련 분야 전문 인력 및 자체 연구소도 확보하고 있다. 식초 시장은 다른 발효식품과 달리 선도 지역이 없는 초기 산업 형태이기 때문에, 차별성과 경쟁력을 갖춘다면 고창식초가 세계적인 명품 식초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이에 따라 2021년에는 식초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발효식품 공유 시설을 구축하기 위한 발효식품 공유 플랫폼 구축 사업과 복분자식초를 활용한 면역력 제품 개발 사업, 식초 문화 확산을 위한 식초마을 구축 확대 등 식초산업이 미래 농생명 식품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치유 도시로서의 귀농귀촌 지역
최근 5년간 해마다 평균 1300세대, 1600명 이상 인구 유입 성과를 올리고 있는 고창군이 귀농귀촌인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들어봤다.
“우선 예비 귀농귀촌인을 위한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를 2018년부터 30세대 규모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1950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입교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39명이 지원했더군요. 이후 서류심사 및 면접을 통해 30세대를 선정했습니다. 입교생들은 센터 내 공동주택 및 단독주택에 거주하면서 3월부터 11월까지 공동 실습 하우스와 텃밭을 활용한 작물 재배, 선도 농가 현장 견학, 고창군의 문화유적지 답사 등 다양한 교육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귀농인을 위한 영농정착금 지원과 초보귀농인 서포트 사업도 있다. 영농정착금은 주민등록 주소 기준으로 도시 지역에서 12개월 이상 거주하다 고창으로 전입(3년 이내)해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만 6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 원을 3년에 걸쳐서 지원하는 사업이다. 초보 귀농인 서포트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3년 이내, 만 60세 이하로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귀농인에게 종자·비료·농약 등 농업에 필요한 경상비용으로 200만 원 이내의 지원금을 준다.
귀농창업 활성화 지원 사업은 좀 더 고참(?) 귀농인을 위한 사업이다. 이는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 만 65세 이하 귀농인 세대주로서 창업자 또는 창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필수 교육과 창업 컨설팅 완료 후 사업계획서 발표 및 심의 결과에 따라 창업실행비를 차등 지원한다. 고창에서 거주지 마련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위해 시행하는 귀농귀촌 농가주택 수리비 지원 사업은 고창으로 전입 5년 이내로 주택을 구입 또는 임차 후 수리하여 정착하고자 하는 세대주에게 지붕·화장실·주방 개량 및 보일러 교체 등 주거 생활에 꼭 필요한 수리비를 300만 원까지 지원한다.
최근 인구 통계적인 급격한 변화에 따른 가족과 이웃의 해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창군에서는 이러한 점에도 주목해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5세대 이상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대표자를 선정, 건축 허가를 받은 후 사업을 신청하여 대상자로 선정되면 5000만 원 이내의 사업비로 진입로 포장, 상하수도 관로 매설, 배수로 및 옹벽 설치 등 필요한 기반을 조성해준다.
귀농 인구 전국 1위 기록
이러한 배경과 노력 덕분일까.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창으로 전입한 귀농귀촌 총 인구는 1만2755세대, 1만7842명이다. 특히 통계청 조사 결과 2018년에는 1363세대 1748명이 전입하여 전국 기초지자체 중 귀농 인구 1위를 했으며, 2019년에는 1104세대, 1370명이 전입하여 전국 5위(전라북도 1위)의 성과를 달성했다.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에서의 성과 또한 출중했다.
“지난해 27세대가 체류형 시설에 입주하여 8개월간 영농 관련 교육을 받고 총 20세대가 고창에 정착, 74%의 정착률을 기록해 체류형 시설을 운영 중인 전국 8개 지자체 중 가장 높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지난해 교육을 수료한 후 고창에 정착한 20세대는 고창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도시에 사는 친구 및 지인들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고창으로 오라고 권유하는 등 고창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고창군은 이러한 가시적 성과를 바탕으로 귀농귀촌인 재능기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고 귀농이나 귀촌을 해 농촌에서 소중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고창군 자원봉사센터 및 각 읍면 귀농귀촌협의회 지회와 연계하여 각 마을 상황에 맞는 재능기부가 가능하다. 이런 재능기부를 통해 성취감 및 자존감 향상은 물론, 기존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며 갈등도 해소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유 군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해도 귀농귀촌은 어려운 일이다. 생활의 근거지를 변경하는 것은 큰 변화가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 군수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귀농귀촌을 한 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농사를 짓는다면 어떤 작물을 선택할 것인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많은 정보를 찾아서 비교 분석해보라고 조언했다. 목표를 분명히 설정한 다음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곳을 귀농귀촌지로 정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주거지 및 농지 마련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지역을 자주 찾아서 여기저기 다녀보길 바랍니다. 먼저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도 들어보고, 행정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상담실을 찾아가 상담도 해보고, 발품 팔아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했을 때, 귀농귀촌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 삶의 가치를 위해 생활의 틀을 바꾼다는 생각으로 오시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원정책이나 보조금만 기대하고 오시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자연과 하늘·땅·사람과 함께하는 고창에서 치유하며 사는 행복한 삶을 생각하고 내려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조상의 얼이 담긴 성곽과 고즈넉한 멋이 흐르는 선운사 등의 문화유적과 수박, 풍천장어, 복분자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가 넘치는 고창. 봄이면 짙푸른 청보리밭이 반기고, 여름에는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한다. 가을에는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메밀꽃밭이 손짓하고, 겨울이면 눈 덮인 하얀 설원도 유혹한다. 한반도 첫 수도 고창군은 농생명 식품산업을 천년대계로 설정한 도시답게 이름난 특산물이 넘쳐나며, 유입 인구도 많아 귀농귀촌인의 만족도가 특히 높은 곳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려는 예비 귀농귀촌인이 산, 들, 바다, 강, 갯벌이 모두 있는 고창을 선택하는 이유를 찾았다.
걸음걸음마다 문화와 치유가 깃들다
도시 생활에 지친 예비 귀농귀촌인이 정착지를 고를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연 환경이다. 고창은 청정한 자연환경과 다양한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최초로 2013년 5월 행정구역 전체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신비로운 원시 해안을 간직한 갯벌을 비롯해 고인돌 박물관, 선운산 도립공원, 운곡람사르습지, 동림저수지 등이 핵심 관광지로 특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고창군의 다양한 즐거움
또한 고창에는 구석구석 전통과 문화가 새겨진 명소가 꽤 많다. 산세 좋고 물소리 좋은 선운사 계곡 아래 홀로 핀 한 송이 꽃이 그림 같다. 누군가는 사계절 모두 명소가 되는 고창 선운사로 진입하는 첫 관문인 선운산 도립공원에 발을 들이고서야 고창 여행이 시작됐음을 실감한다고도 말한다. 그만큼 선운사는 고창을 대표하는 명소다. 선운사는 고즈넉한 멋이 어우러진 외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에 창건된 천년고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산이고, 조선 후기에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중 곳곳에서 장엄한 불국토를 이뤘다. 그림자 짙은 숲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에서는 흔하지 않은 강당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봄을 알리는 3~4월의 동백꽃과, 9~12월 초 꽃무릇과 단풍으로 이어지는 가을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약 5000평의 동백나무숲과 높이가 15m나 되는 천연기념물 제367호인 삼인리 송악도 있다.
선운사에서 역사와 자연의 진수를 경험했다면 발걸음을 옮겨 성곽길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다. 고창의 중심에 다다르면 길게 뻗은 성곽과 웅장한 문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바로 고창읍성이다.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1년인 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서 축성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된 성곽으로 평가받는다. 현지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모양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활약했다. 30~40분 동안 고창의 전경과 숲을 보며 느긋이 성곽을 걸어 보면 고창읍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창을 채색하는 또 하나의 색다른 문화지로 학원관광농장을 들 수 있다. 학원농장은 청보리밭축제로 유명한 관광 농장이며, 봄이 되면 청보리밭과 함께 광활한 유채꽃밭이 장관을 이룬다. 서울 여의도의 4.5배에 달하는 면적이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인 땅은 고창의 새로운 봄 풍경으로 각광받는 중이다. 또한 여름에는 수천 수만 그루의 샛노란 해바라기가 인사하며 가을에는 메밀꽃이 이어지는 등 봄, 여름, 가을에 걸쳐 꽃의 축제가 계속된다.
3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 만들어진 농촌 체험형 테마공원인 상하농원으로 들어서면 우선 유럽풍 건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부에는 햄 공방, 과일 공방, 빵 공방, 발효 공방 등이 있어 다양한 가공품을 만드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고, 농원상회에서는 각각의 공방에서 솜씨 좋은 농부들이 만들어낸 먹거리들을 구입할 수 있다. 가볍게 공방과 상회를 구경한 후 유기농 목장으로 향하면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고, 옆에는 양떼 목장이 있어 귀여운 양들을 구경할 수 있는 등 이국적인 광경들을 볼 수 있다.
고창군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특산품 먹거리
고창 하면 볼거리와 함께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복분자와 풍천장어다. 단맛과 신맛을 함께 지닌 복분자는 뛰어난 효능으로도 유명한데 간을 보호하고, 눈을 밝게 하며, 기운을 도와 몸을 가뿐하게 만든다고 한다. 특히 복분자로 만든 담금주는 기름진 장어와 궁합이 좋아 고창 내 어느 장어 식당을 가더라도 판매하니 풍천장어 구이와의 절묘한 맛의 조화를 느껴보자.
선운산 일대에 서식하는 풍천장어는 고창의 으뜸 식재료로 유명하다. 풍천은 선운사 어귀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인천강 지역을 뜻한다. 실뱀장어는 민물에 올라와 7~9년 이상 성장하다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지역에 머무는데, 이때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한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이칠 때 장어가 바람과 함께 바닷물을 몰고 온다고 해서 풍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고창의 풍천장어는 유달리 고소한 맛이 강하며 육질이 탱탱해 씹는 맛도 좋다.
고창 먹거리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고품질 다품종이라는 것이다. 고창군은 최고의 자연 생태 환경을 자랑하듯 복분자, 수박, 멜론, 고추, 땅콩, 고구마, 아로니아, 블루베리, 풍천장어, 바지락, 천일염 등 전국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가진 농특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기업에서도 그러한 고창 먹거리의 강점과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예를 들어 하이트진로는 고창군의 흑보리를 이용해 인공 첨가제가 없는 기능성 건강음료 ‘블랙보리’를 출시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고창 식품 산업 성공 신화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복분자 발사믹 ‘식초’도 핫하다. 2019년에는 국내 최초로 ‘식초문화도시’ 선포식을 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면역력 열풍을 타고 복분자 발사믹 생산 업체가 4배 이상 매출 증대를 기록했을 정도다.
귀농귀촌 1번지, 고창군의 귀농귀촌 정책들
살아보니 더 좋아진다는 입소문이 도는 고창군은 대한민국 귀농귀촌 1번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귀농귀촌인이 다른 지역보다 고창군을 더 많이 찾는 요인으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귀농귀촌인 유치 노력이 꼽힌다. 고창군은 2007년 전북 최초로 귀농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귀농귀촌 전담 부서를 설치했다. 또 귀농귀촌인 모임과 협의 체제를 구축해 귀농귀촌인의 눈높이에 맞는 차별화된 귀농귀촌 정책을 펼치고 있다.
고창군 대산면으로 내려온 지 4년째라는 한 60대 귀농인은 “주변의 많은 귀농귀촌 선배들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고창은 외지인이 텃새 걱정 없이 뿌리 내리기 좋은 곳”이라며 “온천과 실버타운이 있어 적당히 바쁘게 살면서 농촌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즐기며 노후를 꿈꿔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고창군 귀농귀촌 관련 총사업비는 7억5100만 원으로 4개 분야, 20개 사업을 추진한다. 4개 분야는 귀농귀촌 유치와 활성화, 정착, 귀농창업 활성화다. ▲귀농귀촌 유치 사업비는 2억1000만 원으로 귀농귀촌의 최적지로서 고창을 홍보하기 위한 박람회 참가와 농촌 체험을 위한 홈스테이, 고창에서 한 달 살아보기, 초보 귀농인 서포트 지원 사업 등을 추진한다. ▲귀농귀촌 활성화 사업비는 1억7600만 원으로 마을환영회, 재능기부, 실용교육, 동아리 지원, 귀농체험학교 등으로 꾸려진다. ▲귀농귀촌 정착 지원 사업비는 3억3250만 원으로 영농 정착금과 농가주택 수리비, 소규모 귀농귀촌 기반 조성을 지원한다. ▲귀농창업 활성화 사업비는 3250만 원으로 컨설팅과 창업 실행비로 구성되어 있다.
본지에서 기획한 귀농귀촌 우수 지자체 10選의 심사 기준은 귀농귀촌을 선택한 퇴직 예정자들이 △지원정책 내용 △자연과 문화환경 △ 귀농귀촌 멘토 조언 △토양 특산물 현황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경북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참외 농장. 푸릇푸릇한 잎사귀 사이엔 샛노란 참외가 가득 숨어 있다. 참외 농사는 한 번 심어 늦겨울부터 늦여름까지 연속 수확이 가능해 어떤 작물보다 안정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성주로 내려왔다는 50대 부부. 수확한 참외를 선별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4월에 부부를 만났다.
30년을 서울에서 살아온 서울 남자, 서울 여자인 곽창신, 박미영 부부는 귀농을 결심한 후 두 아들을 데리고 전국 곳곳을 찾아 헤맸다. 남편 곽창신 씨는 ‘6시 내 고향’, ‘나는 자연인이다’, ‘인간극장’ 등을 시청하며 시골에서의 삶을 동경해왔다고 한다.
다니던 직장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약 6개월의 준비 기간에 이들 부부는 곽창신 씨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충청도, 경상도까지 귀농할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귀농지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한겨울에도 수확되는 딸기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충청도 제천에서 얼음딸기를 생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제천을 몇 번이나 방문해 그 지역 농부들을 만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쟁자가 오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며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농부들에게 결국 두 손 들고 좌절하기도 했다.
귀농귀촌지원센터를 통해 몇 군데 문을 두드린 끝에 마침내 2017년 1월 성주참외로 유명한 경상북도 성주로 귀농, 참외 농사를 짓는 농부가 됐다. 귀농은 2017년이었지만 참외를 첫 수확한 것은 2018년 3월. 첫 실습치고는 큰 착오 없이 성주참외를 수확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직거래를 시작했다.
남편 곽창신 씨가 주로 참외 농사를 도맡아 하고 있다면 아내 박미영 씨는 농사를 거드는 것은 물론, 직판매를 위한 사이트 및 블로그 운영으로 판매 채널 다양화에 힘쓰고 있다. 서울에서 책 편집 디자이너로 일해왔던 만큼, ‘호호네성주참외’는 참외 농사를 기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귀농 생활 체험 정리 등 다양한 콘텐츠가 소개된 알짜배기 귀농 블로그로 손꼽히고 있다.
올해 귀농 생활 5년 차. 지난 4년간 겪은 고생을 말로 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라는 부부는 귀농을 결심했던 그 즈음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짓는다.
아직 귀농인의 성공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도시에서의 삶을 시골로 모종한 후 조심스럽게 뿌리 내리고 있는 곽창신, 박미영 부부의 귀농 체험을 브라보가 귀알못(귀농귀촌에 관심은 많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주제별로 묶어본다.
Q 왜 귀농을 결심했을까요?
A 다니던 직장이 발전소였어요. 하루 24시간 운행되는 곳이라 3교대로 근무하는데 밤 근무가 되면 꼴딱 밤을 새서 일해야 했어요.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같은 공간에서 살고만 있을 뿐이지 아이들과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도 없고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어요.
불현듯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던 참에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가 떴어요. 오랜 고민 끝에 아내에게 귀농하고 싶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죠. 흔히 아내와 함께 온 가족이 귀농하면 반은 성공한 것이란 말이 있어요. 행복하게도 아내의 동의를 얻게 됐고, 이런 점에서 정말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죠.
Q 내려오길 참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지점은 뭘까요?
A 저희 부부가 자주 이야기하는데… 매일 아침 우리 가족 4명이 같이 밥을 먹어요. 저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참 우습죠? 쉬운 일처럼 보이는 이걸 직장생활 할 때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저녁에는 같이 텔레비전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기도 하고… 소소한 일상이 너무 행복해요. 귀농하면서 예전에 누리지 못했던 일상의 행복을 보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모든 것을 내가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요.(웃음)
Q 경북 성주로 꼭 집어서 귀농한 이유는?
A 제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귀농을 결심한 후 준비하면서 귀농한 선배들의 조언도 듣고 인터넷 강의도 듣고 귀농귀촌지원센터에 등록해 교육도 듣고 상담도 받았죠. 전 전원생활을 즐기며 부업으로 농사를 짓는 귀촌이 아니라, 아직 한참 키워야 하는 어린 두 아들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 생활이 가능한 특화작물 쪽으로 열심히 알아봤어요.
이때 참외가 눈에 띄더라고요. 비닐하우스 생산을 하면서 일 년에 수확을 몇 차례 한다고 하니 수익성도 높을 것 같았고요. 참외 하면 성주참외가 특화돼 있는 상태라 경북 성주에 관심을 갖고 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했죠. 그렇게 성주를 여러 번 방문해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간 다른 지역에서 폐쇄적으로 이야기도 잘 안 해줬던 것과 달리 개방적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시더라고요. 최종적으로 성주로 귀농을 결심하기 전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4~5번은 왔던 것 같아요. 농장에서 참외 체험도 해보고요.
Q 귀농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뭘까요?
A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리려면 제가 먼저 도움이 많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준비하면서 용접도 배우고 기계 수리도 배우고. 그런데 제가 내려와서 정착한 마을이 집성촌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거의 친족들이 모여 사는 곳에 불쑥 이방인이 참외 농사 짓겠다고 내려온 것이니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죠. 그나마 두 아들이 마을에서 뛰놀고 그러는 게 좋아 보였던 마을 주민들도 계셔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만.
저희는 시골 생활이라고 강아지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그렇게 시작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워낙 그런 생활이 일상이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런 생활이 지겨워서 닭도 안 키우시고 그러세요. 근데 갑자기 마을에서 새벽에 닭이 울어대니까 좀 뭐라고 하셨죠. 웃픈 이야기죠?
정말 어려웠던 건 참외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이 필요한데 땅을 구매하기가 어려웠죠. 현재까지 저희는 땅을 구입하지 못했어요. 이제야 농지 구매를 위해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농업인에 선정돼 3억 원을 대출받게 됐어요. 이 자금으로 참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을 알아볼 예정이에요.
물론 밭을 구매하는 게 또 어려움이 있죠. 이런 시골에서의 논이나 밭 거래는 주위의 아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거래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귀농한 지 이제 5년 차지만 아직도 주민분들에게 이런 거래를 귀동냥 듣기에는 친밀도가 아무래도 떨어지니까…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조금 비싸더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또 이렇게 조금 비싼 금액으로 거래하면 그 땅에 관심을 갖고 있던 마을 주민이 뭐라 하세요.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거죠.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열심히 농사지으며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죠. 결국 진심을 다해서 대하다 보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죠.
Q 거주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하였나요?
A 저는 4인 가족이 당장 생활을 해야 하는 상태라 농지보다 거주지를 먼저 장만했어요. 답답한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게 하고 싶었죠. 옆에 밭을 포함해 411평에 건평은 29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을 직접 지었습니다. 귀농귀촌지원센터에 가면 농가주택 전용으로 지을 수 있는 기본 평면도까지 업로드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생활의 터전이 되는 농지 확보부터 한 후 주거지를 해결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주거 공간에 관해서 각 지방자치 정부마다 빈집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어요. 시골의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1년간 살아보고 귀농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집주인은 돈을 들이지 않고 집을 리모델링해서 좋고, 귀농을 꿈꾸는 도시인들은 첫 1년을 테스트 기간으로 삼아 적은 월 임대료로 살아볼 수 있어서 좋고, 일석이조죠.
Q 농사일이힘들지는 않았나요?
A 모든 농사는 힘들죠. 농사가 처음이니까 교육이란 교육은 다 참가했어요. 강소농 교육, 농민사관학교, 현장실습, 심화교육… 다 쫓아다녔죠. 아내는 사이버농업인 e비즈니스 교육까지, 2017년과 2018년은 교육의 해였습니다. 그러면서 2018년 3월에 참외 첫 수확을 하게 된 겁니다. 그때까지는 아직 자신이 없어서 공판장에는 출하를 못 했고, 밭에서 키우던 소소한 채소들과 참외까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가족과 친지, 친구들에게 직판매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제 이름으로 공판장에 첫 출하한 게 2018년 4월이었어요.
참외 농사짓는 걸 처음 해본 거잖아요. 모종판에 참외씨 넣고 또 모판에 호박씨 넣고 접목하고 수정시키고, 참외순이 자라면 순 자르기, 참외순과 호박줄기 접붙이기, 자꾸 성장해서 참외 성장을 가로막는 호박잎 떼어주기 등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참외는 열대작물이라 겨울에는 보온성 좋은 부직포로 이불도 덮어줘야 해요. 또 물을 대는 방법이나 비료 쓰는 법 같은 것도 터득해야 해요.
매일 마을 어른들에게 혼도 나면서 배웠어요. 모종을 키워서 본밭에 심어 3개월 정도 되면 수확하는 거죠. 그리고 농부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 말이 정말 맞아요. 특히 참외는 새벽에 따야 해요. 새벽 시간에 못 따서 기온이 올라갈 때 따면 참외의 아삭한 맛이 덜하고 물러져요. 아침 11시면 경매가 시작되거든요. 그때까지 오늘 출하량을 맞춰야 하니까 성주 분들은 새벽부터 참외 따느라 부지런하게 움직이죠. 저희 같은 경우는 아이들 학교를 보내야 해서 이게 참 힘들었어요. 참외 따랴, 아이들 학교 보내랴.
Q 참외 농사로 매출액이 얼마나 되나요?
A 비닐하우스 1동당 연간 매출액이 1000만 원 정도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농사짓는 사람의 노하우에 따라서 위아래로 20% 정도는 왔다 갔다 하죠. 비닐하우스 10동이 있다면 연간 매출액 1억 정도죠. 그래서 성주에는 억대 농부들이 많아요. 물론 자신 소유의 밭에 비닐하우스 시설을 갖췄을 때 이야기고… 이 시설을 임대해서 하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비용이 더 들어가겠죠. 자가 소유라고 하면 기본 경비를 매출액의 30~40% 잡으면 될 것 같아요.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비료입니다. 땅의 토양을 좋게 해야 상품 가치도 높아지고 당도도 높아지죠. 성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미생물을 배양해 토양을 좋게 하는 것들도 지원하고, 토양을 좋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무엇보다 성주의 토양이 다른 곳보다 미네랄 함유치가 높다고 해요. 그리고 가야산이 있어서 바람을 막아주고 눈이 잘 안 오고, 다른 곳보다 일조량이 많다는 점 등이 참외 재배에 장점이라고 들었습니다.
Q 성주를 대표하는 귀농인에 선정됐던데 어떤 점이 어필됐을까요?
A (취재에 동행한 성주군 귀농귀촌지원센터의 담당 이태일 계장이 보충 설명을 곁들였다)
박미영 씨의 꾸준한 SNS 활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지 농사짓는 것만 올리시는 게 아니라 농촌 생활을 꾸준히 업로드하면서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고 계셨는데, 이게 저희 센터가 할 일을 직접 해주신 거죠.
경험자로서 생생하고 유익하게 말이죠. 어린 자녀와 함께 귀농하셔서 자녀들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요. 성주를 대표하는 귀농인에 선정되셔서 저금리로 융자를 받게 됐으니 앞으로 참외 농사를 더 늘리실 수 있을 겁니다.
Q 가장 큰 문제는 농지 확보겠네요?
A 그렇죠. 현지 분들이 귀농인 때문에 땅값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근데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귀촌을 통해 현지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인맥을 쌓고 직거래 등의 포장 판매 부분에서 뭔가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어요. 꼭 농사짓는 것만이 농촌에서의 경제적 활동은 아니라고 봐요.
농사 힘들어요. 어느 정도 연세 들어서 오시는 분은 차라리 현지에서 생산된 참외를 직접 구매해 소포장 판매를 통해 수익 창출을 하는 부분도 고려했으면 해요. 특히 온라인 판매 등 관련 기능이 뛰어나다거나 마케팅 분야에서 일했던 분이라면 판매 채널 다양화에 훨씬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Q 귀농 혹은 귀촌을 원하는 분들은 어떻게 도움을 받으면 될까요?
A 일단 귀농귀촌지원센터를 방문해 귀농하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하면 어떻게 해서든 연결해주세요. 그리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해주시죠. 요즘은 1년짜리 현장실습 교육도 받을 수 있는데, 센터에서 농사 잘 짓는 멘토를 연결해 멘토멘티 프로젝트에 넣어주기도 합니다.
멘토에게 월 30만~40만 원, 멘티에게는 월 80만 원의 훈련 참가비를 줘요. 하루 8시간 농사를 배우는 거죠. 5개월 정도 배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 자세한 내용은 지원센터에 상담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Q 귀농귀촌을 원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뭘까요?
A 어렵네요, 하나만 꼽기가요. 그런데 제가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서울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결국 농촌 마을도 사람이 모여 사는 거잖아요. 사람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저희 집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됐어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죠. 아니, 저 높은 가야산 꼭대기에서도 인터넷이 되는데 제가 이사한 성주의 읍내 권역에 인터넷을 설치할 수 없다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죠.
그래서 도시에 살 때처럼 군에 민원 넣고, 심지어 청와대에도 민원 넣었어요. 그런데 공무원은 원칙만 읊으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저희 옆집에 이사 왔는데 이 사람은 그 지역에 인맥이 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 집에는 그 다음 날 인터넷을 바로 설치해주더라고요.
또 한 가지 꼽자면 요즘 소확행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정말 귀농은 소확행을 실천하는 거예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냥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자.’
정신없이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에서 ‘느리지만 차근차근’ 그렇게 인생을 음미하며 살아갈 수는 없잖아요. 귀농해서 비로소 우리 가족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성주군 귀농인들 연간 수입과 비용
귀농 A 사례(농지 임대의 경우)
선택 작목: 참외, 평균 투자비: 2억 원(주택 구입 포함), 연간 운영비: 3000만 원(1년), 평균 수입: 8000만 원(1년)
귀농 B 사례(농지 구입의 경우)
선택 작목: 참외, 평균 투자비: 5억 원 (농지·주택 구입 포함), 연간 운영비: 1억 원(1년), 평균 수입: 3억 원(1년)
귀농 C 사례(농지 구입의 경우)
선택 작목: 상추, 평균 투자비: 1억 5000만 원, 연간 운영비: 400만 원(1년), 평균 수입: 4500만 원(1년)
2018년부터 경상북도 성주군을 이끌고 있는 이병환 성주 군수는 미래 성주를 위해 풀어야 할 두 가지 큰 과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대표 작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성주참외의 시장과 문화적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효과적인 귀농귀촌을 통해 외부로부터 인구를 유입시켜 성주군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지금 다행히 양쪽 다 긍정적인 지표가 나오고 있어, 이 군수 입장에서는 좀 더 발전적인 모험을 시도할 여력이 생긴 상황. 그의 군정 방향을 통해 성주군의 미래상에 대해 살펴봤다.
“성주참외는 2년 연속 참외 조수입 5000억 원대를 달성하며 명품 참외의 명성을 한층 더 높여주었습니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더 과감한 혁신을 통해 미래 농업을 선도하겠습니다. 언택트 수요 급증과 급격히 변화하는 농업 트렌드에 대응하고, 20~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온라인 유통 강화와 홍보 마케팅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하겠습니다.”
성주군의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인 참외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고품질 참외 생산을 확대하고 명품 참외 종가의 명성을 더욱 견고히 하겠다는 이병환 성주 군수는 언제 어디서나 성주참외 홍보대사다. 정부에서도 성주참외의 성과와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작년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민생·경제 투어 첫 방문지로 경북을 찾아 23명의 시장·군수와 화상회의를 했는데, 회의를 마친 후 정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면역력에도 좋은 성주참외를 드시라’고 권하는 글을 올렸다. 이를 통해 성주군과 성주참외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홍보 효과를 거둬 타 지자체장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 군수는 “총리님이 참외가 면역력에 도움이 되는지 물어봐 주시고 성주참외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성주군민 모두 감사하다”며 “성주참외 자주 드시고 주위에도 권해주시면 농민들에게 더없는 위안이 될 것”이라는 답글을 달았다.
조수입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이병환 군수는 최근 과학영농기술 보급을 통한 농업 조수입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농업 기술을 선진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성주는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주산지이기에 이에 초점을 두면서도, 참외가 주작목이 아닌 농가의 소득 증대를 위해 샤인머스켓, 딸기, 취나물과 공심채 등의 아열대 채소 재배단지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작목 시범과 육성 관리를 병행하는 중이다. 이러한 미래 지향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선 귀농귀촌 인구 유입이 더욱 절실하다.
“귀농귀촌 인구 유입은 고령화·저출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활력소가 됩니다. 또한 농촌 인구 감소 문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산업 분야의 고용 증대와 이용 가능한 서비스를 확대시키는 등 농촌 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귀농귀촌인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정책적 지원을 펼치고 있습니다. 정주 의향 단계부터 이주 정착 단계까지 차별화된 귀농귀촌 유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귀농인의 집’, ‘농촌에서 미리 살아보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 활성화와 우수한 농업 인구 유입에 주력할 예정입니다.”
귀농귀촌 인구 꾸준히 느는 중
현재 성주군의 귀농 현황은 인근 지역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이는 성주군 소득의 주를 이루는 성주참외의 영향이 크다고 여겨진다. 압도적인 네임밸류 덕분에 고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성주는 지리적으로 참외 등 과채류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다. 분지 지형에 토양이 비옥하고 맑은 물과 풍부한 지하수가 있어 농사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낙동강을 기대고 있으며, 기상재해가 적고 겨울철 안개 발생이 거의 없어 옛날부터 당도 높고 품질 좋은 참외가 많이 생산되었다. 농업이 주업이었던 시대에 명당이라고 일찌감치 인정받은 확실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재 귀농귀촌 인구 유입은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최근 5년간 성주군의 귀농귀촌 가구는 약 6000가구에 달합니다. 경북 내에서도 높은 유입률을 자랑합니다. 농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 등 신규 농업 인력의 유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청년 귀농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고, 지역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춘 귀농귀촌 시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농촌을 떠나는 인구, 즉 역귀농을 방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지역 여건을 만들어야 하며, 농촌 중심지 활성화를 통한 지역사회 서비스 수준 제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귀농인의 집’으로 임대형 주택 지원
성주군의 귀농귀촌정책 사업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영농정착 지원으로는 귀농인 정착 지원, 귀농 농업 창업 및 주택 구입 지원, 농기계 임대사업 등이 있다. 교육 지원으로는 신규 농업인 현장실습 교육(멘토와 멘티가 함께 현장실습 운영), 귀농귀촌 교육 등이 있다. 주거 지원에는 귀농인의 집 지원이 있고, 추후에 이사 비용 및 주거 임대료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귀농인의 집 지원은 주거할 수 있는 임대형 주택을 파격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귀농인의 집 지원은 귀농귀촌 희망자에게 농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안정적인 정착을 돕기 위해 임시 주거 주택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지역의 빈집을 수리하거나, 빈집을 철거 후 신축 또는 이동식 주택을 구입해 귀농인의 집으로 운영합니다. 관리 기간은 조성 후 7년입니다. 입주 자격은 귀농인의 집에 거주하면서 주택과 농지를 확보한 후 성주군에 정착하고자 하는 자 중, 가족 입주자거나 귀농 교육을 이수한 자를 우선적으로 선정합니다. 4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용 기간은 1년 범위 내 이용을 원칙으로 합니다. 입주 대기자가 없을 경우 3개월 이내 범위에서 추가 이용이 가능합니다.”
성주군에는 또한 귀농귀촌지원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전문 상담원이 상담 안내는 물론이고 각종 지원사업의 신청 접수 등 귀농귀촌인의 통합 민원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귀촌인들에게 재능기부 교육 지원
사실 귀농귀촌은 도시 은퇴자들의 꿈이고 낭만이기도 하다. 그런 수요를 증명하듯 귀농귀촌 체험은 예능 프로그램 어디를 틀어도 나오는 단골 소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귀농귀촌인들은 원주민과의 융화에 애를 먹는다. 이른바 ‘텃세’를 두려워한다.
“살아온 문화가 다르기에 지역주민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귀농귀촌인의 정착에는 마을에 흡수되려는 귀농귀촌인의 노력 못지않게 마을의 귀농귀촌인 수용 분위기와 준비가 중요합니다. 우리 성주군에서는 성주군귀농인연합회 회원분들이 봉사활동 등 마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농귀촌인 대상의 융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귀농귀촌인 교육에 ‘지역민과 융화 및 갈등 관리’ 과정을 편성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귀농귀촌인 상당수는 전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다. 성주군에서는 이들의 역량을 활용하는 방법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경영, IT 등을 경험한 귀농귀촌인들이 농업의 6차 산업화에 기여하고 지역 리더로서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귀촌하신 분들이 가진 역량을 더욱 활용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 교육 개최, 모임활동 지원 등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지원해줄 계획입니다.”
광양시가 베이비붐 세대 시민들의 퇴직에 발맞춰 ‘은퇴자 활력도시’로 거듭날 계획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광양시는 철강과 항만의 메카다. 1982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건설되었고, 수많은 협력업체가 문을 열면서 광양 지역에서 베이비붐 세대를 대상으로 대규모 채용이 이뤄졌다.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지금, 당시 입사한 직원들이 은퇴할 시기가 되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2030년까지 퇴직자 3600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들의 퇴직에 맞춰 광양시는 ‘은퇴자 활력도시’를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2019년부터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은퇴자들이 경험과 전문성을 발휘해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성공적으로 지역에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은퇴자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에 계속 거주하게 도와 인구 유출을 예방한다.
광양시는 재취업, 사회공헌, 귀농·귀촌, 창업 등 네 분야에서 지원 사업을 실행했다.
중장년 시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분야는 재취업으로, 광양시는 이 분야에서 제일 많은 사업을 추진했다. 광양시는 신중년 일자리 지원을 위해 지역산업체 수요조사, 기업체 직무분석, 구직자 경력분석을 통한 DB 구축으로 신규일자리 148개를 창출했다. 지난해에는 300여 명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신중년일자리센터를 개소하기도 했다.
사회공헌 분야에서는 단순 노력봉사부터 전문적 재능봉사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사회공헌 활동을 지원했다. 사회취약 계층, 아동센터, 경로당 등을 방문해 학습지도와 말벗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은퇴재능 봉사단’, 청년 창업가에게 은퇴자가 멘토링을 하는 ‘창업 청년의 든든한 선배님’, 올해 개관하는 광양도립 미술관에서 활동할 ‘미술관 도슨트 양성’ 등이다.
귀농·귀촌 분야는 농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소득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공적으로 정착한 선배 농업인에게 1:1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선도농가-귀농인 현장실습교육’을 지원하고, 기업에 찾아가 귀농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귀농·귀촌 영농정착 기술교육 지원’, ‘예비 귀농인 임시 체류 공간 제공’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창업 분야에서는 초기 부담을 완화하고, 실패 후 재기를 돕는 ‘소상공인 융자금 이차 보전’, ‘노란우산공제 희망장려금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광양시는 올해에도 은퇴자 활력도시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추진한다. 올해에는 위 네 가지 분야에 ‘평생 학습’ 지원 사업이 더해졌다.
광양시 관계자는 “광양시 인구 구조상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은퇴 세대가 향후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미래가 달라진다”며 “시행 계획을 토대로 은퇴자의 역할을 강화하고 고령화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해당 지역에 미리 살아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추세다.
귀농귀촌을 계획하는 도시민들이 우려하는 점이 정착 성공 여부다. 도시와 다른 생활환경과 문화, 주민들과의 관계에 적응해야 하고, 농업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소해 줄 목적으로 각 지자체들은 희망 지역에 미리 살아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귀농인의 집’과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다. 건물을 신축하거나 빈집을 정비해 마련한 곳으로, 귀농 희망자들이 거주하며 영농 기술을 배우고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체류 기간은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12개월로 지자체마다 다양하다.
선배 귀농인 가정에서 며칠간 지내며 농가 현장, 농사 및 주거 체험을 하는 ‘귀농 홈스테이’도 있다. 현지인 가정과 직접 매칭되어 관계를 쌓고, 실제 농가에 거주하며 보다 밀접하게 귀농인의 삶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체험형 프로그램은 귀농인의 성공적인 정착에 도움을 주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경남 함양군 체류형 농업지원센터에 따르면 3년간 수료생 150여 명 중 70%인 100여 명이 함양군에 정착했다.
정부에서도 체험형 귀농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중점 정책으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이 농촌에 장기 거주하며 일자리, 생활, 주민 교류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전국 89개 시군에서 500가구를 지원할 예정이다. 참가자에게는 최장 6개월의 주거와 연수 프로그램, 월 30만 원의 연수비를 지원한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참가자는 5060 은퇴 예정자, 40대 이직 희망자, 청년 구직자다. 농식품부는 지자체와 협력해 이들의 관심을 고려한 지역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농식품부는 귀농귀촌 정책 방향을 ‘지역 밀착형 체험ㆍ정보 제공’으로 전환해,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안정적으로 농촌에 정착하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식품부 김정희 농업정책국장은 “귀농귀촌에 대한 도시민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관심과 수요가 농촌 이주 실행과 지역 안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촘촘하게 정책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 은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전에 가보지 않은 길에 자신의 전부를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도래한 걸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귀농을 선택한 건 매력과 환멸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기이한 대도시를 통쾌하게 벗어난 시골에서 삶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다. 구체적으로는, 농업에의 투신이라는 미지의 모험을 통해 자신의 내공을 시험하고 싶었다. 올해로 귀농 7년 차. 허진영(64) 씨의 농장은 그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정신과 육체의 거의 모든 걸 쏟아 부은 결과가 그렇다.]
허진영 씨는 알아주는 눈이 많은 귀농인이다. 강소농(強小農)의 본으로 지역에 회자된다. 고행에 가까운 게 귀농생활이다. 그러나 그는 진지한 몰입으로 치고 나갔다. 고전과 시행착오로 허우적거리기 쉬운 게 농사이지만 물 위를 뛰어다니는 물방개처럼 활개를 쳤다. 용의주도! 매사 빈틈없는 숙고와 실행을 숭상하는 자질을 어디서 얻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깐깐하게 돌다리를 두드려 물을 건넜으며, 건널 다리가 없을 경우엔 스스로 다리를 고안해 형세를 호전시키는 재능을 발휘해 귀농의 갖가지 난관을 타파했다. 요컨대 그의 머리는 전략적으로 작동한다. 32년간 일했던 ‘삼성맨’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내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이 영민한 사람의 귀농 사전준비는 전혀 평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예컨대 작목 선정을 미리 해뒀는데 장단기 작물을 병행 재배하기로 했다. 귀농 당해에 수확할 수 있는 단기작물로 초석잠이나 복분자, 산딸기를 택해 귀농 1년 전에 미리 심었으며, 최소 이삼 년이 지나야 소득이 발생할 중장기 작물로는 베리 종류나 호두나무 같은 유실수를 선정했다. 이 모든 선택 작물들은 나름의 공부와 분석을 통해 고른 것들이었다.”
신중하게 작목을 선택하더라도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게 농사다.
“실로 그렇더라. 귀농 첫해에 거둔 소득이 예상을 거슬러 형편없이 적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받았던 한 달 치 봉급 수준밖에 되질 않았거든.”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첫 농사였던 만큼 생산량 자체가 미미했다. 게다가 판로가 막연하더군. 고구마, 감자, 고추도 심었지만 수익 발생이 되질 않아 무의미한 걸 알고 다시는 이것들을 재배하지 않기로 했다. 첫해의 성과는 초라했으나 덕분에 공부를 한 셈이고 비전을 세울 수 있었다. 향후의 대책을 수립했으니까.”
실의에 빠지진 않았고?
“쓴맛을 보고서야 한결 정신을 번쩍 차리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일종의 통과의례로 작은 실패를 했다 여기고 이듬해 농사에 만전을 기했다. 귀농 전에 구상했던 기본 방향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이기도 했지.”
어떤 기본 방향?
“첫째는 다양한 작목을 재배해야겠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엔 많은 강점이 있다. 우선은 노동력을 분산할 수 있어 탄력적이다. 그리고 자연재해나 병충해, 또는 가격폭락 등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부 작물들이 흉작이더라도 피해를 덜 본 일부 작물들이 손실을 보완해주니까.”
둘째는?
“소량생산을 추구하기로 했다. 대량생산을 할 경우 흘려야 할 땀 역시 대량일 수밖에 없지만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렵다. 소량 규모여야 고품질 생산이 가능하고, 이는 고가격 정책의 밑거름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SNS 마케팅이 없으면 승산도 없다
허진영 씨는 귀향으로 귀농을 실현했다. 낳고 자란 산 깊은 벽촌으로 내려가 농사꾼으로 변신한 거다. 자식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을 고향의 홀어머니를 모처럼 살뜰히 봉양하자는 생각도 귀농을 추동했다. 그는 선친이 생시에 농사를 지었던 농토 8000여 평을 다듬고 닦아 ‘산중햇살농장’이라 이름 붙였다. 농장의 반은 호두나무 과수원, 나머지는 갖가지 약용식물들이 생육하는 밭이다. 농장 가운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산이 절반, 하늘이 절반이다. 그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는 뜬구름은 정처 없어 걸릴 게 없으니 자유로운 나그네임을 알 만하다. 숲속 언덕배기에 오두막 하나 슬쩍 짓고 세월아 네월아, 한가하게 노닥거리기 좋은 풍광이다. 하지만 그는 오직 농사에 용무가 많아 농사 외엔 매사 심드렁한 분위기다.
초심자로 농사에 뛰어들었으나 구상도 패기도 짱짱했던 그에게 첫해 농사의 섭섭한 소출은 약진의 발판이었나보다. 이듬해부터 곧바로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으니까.
“다작물 재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경제성 높은 약용작물이나 핫이슈 작물을 발굴해 도입했다. 인디언감자라고 들어봤나? 북미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주식이었던 덩굴식물로 천연 자양강장제라 평가되더라. 이게 국내에 막 들어온 시점에서 종자를 구해 심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치매에 좋다는 블랙커런트, 항산화 작용이 빼어나며 당뇨에 좋은 코끼리마늘, 오미자, 슈퍼도라지, 토종 보리똥 등도 재배해 재미를 봤다. 귀농 2년 차에 흑자가 나자 자신감이 솟구치더군.”
모든 작물이 효자 노릇? 그렇다면 당신은 작목 선정의 귀재다.
“유행가만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다. 유행작물의 수명도 짧고 변덕스럽다. 나는 작목별 손익분기점을 계산해 상황이 나쁜 작물은 과감히 버린다. 신속히 대체작물을 찾아 채워 넣는다. 여기엔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농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우선은 목표치부터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귀농 시 나는 은퇴 전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 수준의 농업소득을 목표로 잡았다. 그리고 그걸 4년 만에 달성했지.”
올해 7년 차다. 2020년의 소득액은 얼마였지?
“매출 2억에 순수익 1억3000만 원 정도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라 하더라. 이른바 ‘강소농’의 기준 소득액은 연매출 1억이다.”
판정패와 케이오패가 드물지 않은 게 귀농이다. 귀농열차를 타고 내달리는 이들을 보면 그 용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농림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귀농인의 90%가 실패한다. 현상 유지 케이스는 8~9%, 성공하는 농가는 1%에 불과하다.”
그게 정말 믿을 만한 자료라고? 휴, 귀농은 실로 격렬한 레이스군. 실패 요인 중 가장 핵심적인 건 무엇이라 보나?
“단연 판로 문제다. 피땀 흘려 농산품을 생산하고도 판로가 여의치 않아 고심들을 한다. 공판장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곳에 상품을 줄 경우에도 가격을 후려쳐 실속이 없다. 결국은 직거래가 답이다. 내가 농장을 성장시킨 비결이 직거래망 구축에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직거래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았다. SNS 마케팅은 이제 필수다. 귀농을 해서는 반드시 SNS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게 없이는 승산도 없다.”
일 없이 노는 건 불행의 첩경
허진영 씨가 생산한 농산물은 기똥차게 잘 팔려나간다. 대부분 완판을 본다. 인터넷 마케팅 덕분이다. 지인들에게 상처를 줘가며 물건을 팔아치울 필요가 없다. 블로그 덕분이다. 댓글로 쌍방향 소통을 하는 블로그를 통해 막대한 수효의 직거래 고객을 확보한 덕분이다. 사실 농업인들의 블로그 운영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블로그의 품질은 제각각이다. 허 씨의 블로그는 높은 충실도로 차별화를 꾀했다. 단순하거나 얄팍하게 상품 홍보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귀농일지에 가까우리만치 귀농 경험담을 소상히 고백한다. 귀농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고난을 이겨내는 결기와 과정을 소박한 글과 사진으로 진솔하게 기록한다. 공감과 신뢰를 자아내는 휴먼 터치로 고객관리에 성공한 셈이다.
“농사꾼들의 화두인 판로 문제를 인터넷 마케팅으로 해결하기 위해 귀농 2년 차부터 블로그를 독학으로 배워 운영했다. 죽기 살기로 블로그에 매달렸다. 전체 노동량의 50%는 농사에, 나머지 50%는 블로그에 쏟았던 거다. 그 결과는 너무도 좋았지. 많을 때는 하루에 7000~8000여 명이 접속한다. 그런 날엔 수백만 원씩 매출이 오르더라.”
이제 순풍을 매단 배처럼 질주를 한다고 보나?
“보람을 느낀다. 귀농 멘토로서도 활동량이 늘어 뿌듯하다. 그런데 일이 너무도 많아 힘겹다. 새벽부터 온갖 노동에 시달리고 밤엔 자정까지 블로그에 매달리다 쓰러져 잔다. 남들은 이런 나를 미쳤다 하더라. 겨울철도 내겐 농한기가 아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며 갈대나 뽕나무 뿌리, 유근피 등을 채취해 상품을 만들거든. 몸 아플 겨를조차 없다. 가끔 이런 생각한다. 이거 정말 내가 미친 거 아냐?(웃음)”
과중한 일에 속박돼 산다는 회의?
“내겐 이미 퇴직 이전에 모아둔 재산이 꽤 있다. 돈벌이 목적의 귀농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퇴직을 하고 놀면 뭐하나, 일 없이 노는 거야말로 불행의 첩경이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으로 농사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게 새로운 삶이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성공으로 만족감을 얻기에 이르렀지. 하지만 일의 스케일을 키워 더 많은 성취를 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먼 거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한다.(웃음)”
그의 아내는 서울에 산다. 가끔 내려와 남편을 챙겨주고 후다닥 달아난다. 귀농하자는 얘기를 들은 순간에 사색이 됐던 그녀는 길고도 격렬한 논쟁 끝에 당신 혼자 잘해보세요, 그리 선언하고 서울에 남았다. 여행이나 하며 부부가 오붓하게 인생을 즐길 나이에 웬 귀농 고생살이? 아내의 취지는 충분히 합리적이었으나 허진영 씨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아내의 불만을 잠재울 유일한 길은 보란 듯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또 뛴다. 귀농의 기수로 줄달음친다. 이는 과욕의 산물? 아니면 진취적 기개?
허진영 씨가 주는 귀농 Tip
•인생의 막다른 길에 접어든다는 결연한 각오가 없으면 귀농하지 마라. 적당주의가 통하지 않는 게 농사다.
•귀농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빈틈없이 실천하자.
•농사로 소득을 얻기 쉽지 않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을 최소화하고 매사 절약해야 한다.
•농사도 기술이고 과학이다. 많은 정보를 섭렵하자.
•SNS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라. 의외의 성과가 빠르게 도출될 수 있으니.
•작목의 경제성을 과장 선전하는 묘목상의 상술에 현혹되지 말자.
•가장 믿을 만한 농사 조언자는 귀농 선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