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김유정’ 하면 아역배우에서 여배우로 잘 자란 김유정을 생각하겠지만 시니어 세대는 단연 소설 과 의 작가 김유정(1908~1937)을 떠올린다. 그 김유정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믿겠는가? 경춘선 김유정역에 내려 유정반점과 유정부동산을 지나 오른편에 김유정우체국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김유정문학촌이 나타난다. 여인의 사랑 대신 만인의 사랑을 지금까지도 흠뻑 받고 있는 작가 김유정이 지금 그곳에 살아 있다.
강원도 실레마을에 김유정이 살고 있다
김유정역에 내려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김유정문학촌이 자리하고 있는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은 과거에 ‘실레마을’로 불리던 작은 마을로 김유정이 나고 자란 고향이다.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떡시루 같다 해서 강원도 말로 ‘떡시루’를 뜻하는 ‘실레’가 마을 이름으로 불렸다. 8만 평 규모의 문학촌 안에는 복원된 김유정의 생가터는 물론 소설 속 배경이 됐던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무엇보다 이 동네가 재밌는 것은 모든 것이 김유정으로 통한다는 점. 전국을 통틀어 사람 이름으로 지어진 역은 김유정역이 유일하다. 또한 ‘봄·봄’, ‘이쁜네’ 등 동네 안의 상점, 음식점, 소소하게 이름 붙여진 모든 것이 김유정과 연관됐다. 작고 조용했던 실레마을은 김유정과 그의 소설들이 살아 숨 쉬는 풍요의 공간이 됐다. 작가들을 기리는 대부분의 공간은 ‘문학관’이라고 불리지만 이곳은 ‘문학촌’이라 이름 붙였다. 사실 이곳에 김유정이 남긴 유품은 따로 없다. 휘문고보 시절부터 절친으로 알려진 작가 안회남(1909~?)이 월북하면서 김유정의 유품도 함께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작가의 물건이 없기 때문에 생가터를 복원하고 체험관을 열어 일종의 김유정 테마공원으로 조성했다.
김유정의 동백은 노란색이다.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깃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김유정의 중에서
지금까지 김유정의 소설 에 나오는 동백꽃이 흔히 아는 빨간색이라고 생각했다면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동백꽃 하면 익히 남쪽에 피는 꽃만 연상해왔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색과 형태를 가진 동백꽃이었다. 강원도 사람들은 노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아니면 산동백으로 불렀다. 김유정이 말하는 동백꽃은 노란색 별꽃같이 생긴 것이 촘촘하게 핀 것이다. 언뜻 보면 산수유처럼 생겼는데 꽃 향을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난다. 김유정의 동백나무가 궁금하면 동백꽃이 피는 3월과 4월에 꼭 김유정 문학촌에 가보시라. ‘한창 피어 퍼드러진’ 동백꽃의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2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유정은 살아생전 두 명의 여자를 짝사랑했다. 인간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명창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박녹주(1904~1979)와 시인 박용철의 누이동생이자 시인인 박봉자(1909~1988)였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김유정은 휘문고보를 졸업한 해 어머니를 닮은 박녹주를 만난다. 소위 갓 대학에 들어간 남학생이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에게 도를 넘어선 구애를 펼친 것. 2년여에 걸쳐 박녹주에게 사랑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운 행동을 했지만 완강한 박녹주의 거절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고향인 실레마을로 돌아와 주옥같은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여자 박봉자가 있다. 1936년 5월호에 ‘그분들의 결혼플랜-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라는 제목으로 김유정과 박봉자가 나란히 글을 올렸다. 일면식도 없던 그녀에게 빠지게 된 것. 30통의 편지를 보냈으나 박봉자는 김유정과 알고 지내던 문화평론가 김환태와 혼인했다. 이후 10개월 후 김유정은 세상을 떠난다. 죽기 전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 , 등을 발표하며 창작에 열을 올렸다. 김유정이야기집에 마련된 오래된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까이 대면 김유정의 구애를 거절하는 한 여성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문학계에서는 김유정이 누구와 사랑을 이루었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연간 100만 명가량이 방문하는 김유정문학촌은 김유정 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을 열어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특히 5월의 김유정문학제 ‘봄·봄’이 가장 큰 행사라고. ‘봄·봄’, ‘동백꽃’의 점순이 찾기 대회와 ‘실레마을 닭싸움’ 등이 인기 프로그램. 닭싸움은 실제 닭들이 겨루는 행사였으나 동물학대 논란이 있어 올해부터 사람들이 닭싸움을 하는 놀이로 바뀌었다. 매년 3월부터 10월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김유정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호흡하는 ‘김유정문학촌’이다.
이용 정보
주소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전화 033) 261-4650
관람시간 동절기 9:30~17:00 /하절기 09:00~18:0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입장료 개인 2000원 / 단체(20인 이상) 1500원
‘휴가’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을을 설레게 한다. 반복되는 일상의 탈출. 며칠간의 탈출이지만 일상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 ‘칠말팔초’가 휴가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꼭 그렇게 방 구하기도 힘들고 바가지도 절정에 달하는 이때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이 시기는 장마도 끝나고 더위도 절정이긴 하다. 그러나 요즘은 기후변화로 장마기간도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칠말팔초가 되면 나라전체가 온통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맛있는 음식은 맨 마지막에 먹으면서 식사의 행복한 마침표를 찍듯이 필자는 남들이 다 다녀온 늦가을에 휴가를 간다. 아내는 여름 휴가철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휴가를 다녀오기 때문에 늦가을 휴가는 필자 혼자서 간다. 무작정 떠나는 것은 아니다. 매년 나름대로 주제를 정한다. 최근의 예를 들면 ‘추억여행’이 휴가의 주제인 경우 코스는 다음과 같다. 우선 종로 뒷골목에 남아있는 ‘피맛골’ 좁은 골목길을 걷는다. 그 길은 친구들과의 오랜 흑백사진이 남아있는 길이다. 다음날부터는 청평 안전유원지, 남이섬, 강촌, 춘천 김유정 문학관 등을 돌면서 학창시절 엠티 다녔던 추억을 떠올린다.
‘성지순례’ 가 주제인 경우는 전국에 있는 순교지나 멋진 종교건축을 찾아다닌다. 아주 가벼운 차림으로 카메라와 작은 배낭하나만 준비하면 된다. 이렇게 목적지를 찾아다니면서 가을 곡식이 익어가는 논길을 걷기도 하고 시냇가에 앉아 물소리도 듣고 잠자리와 함께 가을 햇살도 즐긴다. 가는 곳마다 음식은 인터넷에서 미리 다 찾아보고 그 지역에서 가장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간다. 혼자 다니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여행이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이렇게 며칠 다니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 어느 장애인 복지관장님과 여름휴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장애인복지관에서 작년에 시행한 휴가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복지관은 주간 보호시설이라서 아침에 부모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데려와서 맡기고 저녁에 집으로 데려가는 시설이다. 매일 그렇게 반복되기 때문에 장애아들의 부모들은 휴가를 떠날 수 없다. 그래서 작년에 복지관에서 아이들을 야간에 맡아서 보살펴 주는 날을 정하고 그 아이들 부모들을 제주도 여행을 시켜 드렸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분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에겐가 아이를 맡기고 부부가 함께 어디 놀러가 본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징하고 울리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랑처럼 떠들었던 혼자서 떠나는 나만의 휴가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일상의 당연한 것에 별로 감사하지 않는다. 뭔가 특별하다고 느낄 때에만 그야말로 특별한 감사를 표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해서 일상에서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들이 너무도 소중한 경우가 많다. 이제 또 여름 휴가철이 돌아왔다. 물론 올해도 필자는 늦가을 휴가를 떠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 없이 홀가분하게 일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행복해진다. 주변을 돌아보니 올해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은퇴 후 늘어난 시간에 취미생활을 하면 상실감 해소와 부부 관계 개선에 좋다고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일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남편 조용경(趙庸耿·64), 아내 오선희(62·吳仙嬉) 부부는 야생화 사진과 새 사진을 찍으러 국내외 산과 강을 찾아다니며 더없이 풍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과 함께하는 은퇴 후 삶의 즐거움, 그리고 부부가 함께 누리는 행복의 비결을 살펴봤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강원도 춘천에 있는 김유정문학관을 가기 전에 있는 삼포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자마자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전원주택이 나타난다. 건설업계에서 30년 동안 활동했던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과 아내 오선희 부부의 집이다.
“부부는 시소를 함께 타는 것이죠. 내가 올라가면 다음엔 아내를 띄워줘야 하잖아요. 내 과거를 버리고 나니 조금은 편해지더군요. 제가 내려놓는 훈련을 하는 동안 적응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어 고맙고 든든합니다.”
부부는 시소를 함께 타는 사이
새 전문 사진작가이기도 한 아내인 오선희씨처럼 사진으로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유유자적 누리고 있는 조용경씨에게 요즘 삶의 에너지와 영감을 주는 것은 두 명의 손주들이다.
그는 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손주들을 위해 할아버지의 추억을 기록하는 일도 하고 있다. 에세이는 세상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한 찰나를 담아낸 가족사진, 손자 사진들과 글로 만들어져 큰 울림과 흐뭇함을 선사하고 있다.
조용경씨는 이를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남겨주는 영원한 선물이라고 믿으며 훗날 가족 자료로 남기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조용경, 오선희 부부는 손주들과 함께 자주 시간을 보내며 사회활동에 바쁜 부모들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담당해왔다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어가며 가족 내에서도, 사회에서도 새롭게 역할을 정립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됐는데, 조부모로서의 활동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b>아내와 손잡고 산과 강을 휘젓고
조용경씨는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 머물 때 6개월 동안 사진 아카데미를 수강했다. 주로 실기 수업이었는데, 학교에서 20㎞ 정도 떨어진 베니스 비치에 가서 망원렌즈로 사람을 촬영하곤 했다고 한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는데 그때 촬영한 사진이 학교 캘린더에 실려 작품료로 25달러를 받게 됐다. 사진가로서 프로페셔널이 될 수도 있었던 인생의 한 분기점이었으리라.
그가 피사체 가운데서도 유독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꽃을 좋아하는 아내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아내가 가꾼 마당의 꽃들이 비로소 그의 눈에 들어왔다. 꽃에 사진기를 들이대며 촬영하던 그는 어느새 아내의 손을 잡고 꽃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강원도 정선 석회암 지대의 동강할미꽃이나 바닷가 바위틈에 피는 해국에서 놀라운 아름다움을 발견했어요. 흙 한 줌 안 되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이나 절절 끓는 바위 위에서 염분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꿋꿋하게 견디는 해국을 보면 감동스럽지요. 그 모습을 보면서 왜 나만 힘들다고 불평해 왔는지 싶더군요.”
꽃과 눈높이를 맞추자 지나온 세월이 보였다
그는 하기 싫은 작업을 억지로 하면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쫓는 우직함 역시 사진을 하는 작가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라고 확신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꽃을 찍기 위해 자신이 찍을 꽃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주기로 했다.
“꽃을 제대로 찍으려고 꽃과 대화를 했어요. 눈높이를 맞췄죠.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를 찍기 위해 이렇듯 공을 들이는데, 그간 내가 회사 직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한 정성을 갖고 대했는지 반성이 되더군요. 사진을 하다가 사람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새치름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오대산의 흰금강초롱꽃, 강원도 매봉산의 솔나리, 강원도 홍천의 깽깽이풀, 선운사의 꽃무릇, 한라산의 노란제비꽃, 태백산의 참기생꽃, 함백산의 투구꽃…. 우리나라 자연 곳곳에 숨어 있는 들꽃을 찾아내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포착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한 꽃을 200장, 300장씩 찍어 그중 최고의 컷을 뽑아낸다. 그래서 좋은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옆에서 아내인 오선희씨가 그의 말을 거들었다.
“꿈이 있다면 알래스카에 가서 흰 올빼미를 찍고 싶어요. 기다리고 기다리며 생명과 교감하는 수많은 작업을 통해 나를 찾는 시간을 갖게 됐어요. 찍으면 찍을수록 자아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흔히 ‘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나뭇잎 밑에 숨어 까만 눈동자를 빛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덕소에서 촬영한 오색딱따구리의 색도 곱다. 오선희씨는 “돌아보지 않아 그렇지 우리 주변에 예쁜 새들이 많다”고 했다.
이 부부에게 시대가 변하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크게 의미가 없었다. 사진 가방을 메고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그들은 오히려 상상력과 호기심이 나날이 커져만 간다고 했다.
야생화 사진에서 기다리는 삶을 배웠다
나이를 먹어 사진을 하니 좋은 점이 무엇일까? 그는 우선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니게 되니까 운동량이 적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운동이 된다는 점을 꼽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메고 나가면 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스트레스를 깡그리 잊게 된다는 점이 참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건 인내를 배우게 된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다 ‘빨리빨리병’에 걸려 있는데, 야생화 사진은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 수가 없거든요. 저도 그전에는 성격이 꽤 급한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이 참 많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에 빠져 주말이면 몇 박 며칠 집을 비우는 부부들이다. “그러다 보니 며느리들이 우리를 보려면 미리 전화하고 와야 해요. 우리가 너무 바쁘거든요. 다른 부모들은 자주 왕래 안 해서 걱정인데 우리는 그런 걱정 없어요” 하며 오선희씨가 말을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났음에도 오히려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가 있지요. 부부가 매일 비슷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재가 반복되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하게 되죠. 이렇게 은퇴 후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은 늘었음에도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으면, ‘침묵’으로 부부 사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어요. 은퇴 후 더 이상 나눌 대화가 없는 무미건조한 부부가 되고 싶지 않다면 공동의 취미생활을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해봅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길
서로 많은 시간을 같이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대화의 기회도 많아지고, 더구나 같은 취미 활동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게 되기 마련이다.
“부부가 함께 운동을 즐기거나 동호회에 가입하고, 악기를 배우거나 동물을 키우고, 봉사활동에 참여하면 자연스럽게 공통의 대화 주제가 생겨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거든요.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려 노력한다면 대화의 질도 높아지고 더욱 가까워질 수 있어요. 하루에 한 번씩 ‘고맙다’거나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 표현해 보세요.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세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때보다 속마음을 표현했을 때 부부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진다고 말하는 아내 오선희씨의 말 속에는 뼈가 숨어 있었다. 이들 부부에게도 늘 밝은 날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아내는 일생 동안 나의 허물과 부족함을 모두 받아주었다”라고 털어놓는 조용경씨의 말처럼 아내에게 남편은 서운함을 많이 안긴 사람이기도 했다.
부부는 2005년,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들꽃마을(www.flover-vill.net)’에 가입한 다음 주말마다 들꽃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일반 회원 2000명, 정회원 100명이 활동하고 있는 들꽃마을 회원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 때문에 좋아하던 골프는 포기했다. “들꽃을 만나러 다니면서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날이 맑은지 흐린지, 빛의 방향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따라 카메라에 포착되는 들꽃의 모습은 달라진다.
그는 답답하고 서글퍼질 때 주말마다 들꽃 촬영을 나가면 그동안의 답답함과 아득함을 잊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고. 평생을 홀로 있게 했던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큰 보람이다. 현장에서는 각자 촬영에 몰두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지만, 이심전심 통하는 게 많아졌다고 한다. 그동안 개인전도 했고, 매년 연말에는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은퇴한 우리들에게 ‘행복한 삶’의 제1조건은 ‘아내와 함께 화목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욕심이 많아 크든 작든,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생활이 더 활기차죠. 은퇴 후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공통점은 나누고 나쁜 점은 모른 척 덮어주는 것입니다.”
공감하면 행복해져요
“행복해지는 법을 찾은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눈뜨자마자 엄청난 용기가 솟아나서도 아니고 누군가가 알려줘서도 아니었어요. 처음엔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손대기 시작한 사진, 아내를 위해 카메라 들어주기, 사진 올리기, 동호회 사이트 회원들과 커뮤니티 등등 이런 ‘딴짓’ 속에서 행복의 단서가 보였어요. 내가 무얼 할 때 즐겁고, 무얼 잘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과정 속에서 말이죠.”
그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찍을 때처럼 아내와 같은 생각, 감정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보려고 노력한다. 함께 목적지, 가는 방법, 하고 싶은 일 등을 적으며 여행 준비를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출사를 다녀온 후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느낌을 적는다. 두 부부는 이런 활동을 같이 하면서 공감의 폭이 넓어지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과정 속에는 서로를 아끼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부부의 진심이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내내 좋은 사진이 주는 감동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해줄, 그리고 ‘좋은 작품을 나누니 행복하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부부였다. 큰 욕심 없이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을 함께 하고 나니 마음 한쪽에 뜨거움이 느껴진다. 단풍이 물들어 가는 가을의 어느 날, 큰 수확을 얻고 돌아가는 기분이다.
여성 명창 박녹주 선생은 를 즐겨 불렀다. 하릴 없이 늙어가는 신세를 해학과 골계로 표현한 조선 후기 가사(歌辭)다. 1969년, 명동극장에서 열린 은퇴공연에서 선생은 이렇게 노래 부르며 울먹였다.
… 있던 조업 도망하고 맑은 총명 간 데 없어 / 묵묵무언 앉았으니 불도하는 노승인가 / 자식 보고 공갈하면 구석구석 웃음이요 / 오른 훈계 말대답이 대접하여 망령이라 / 어이 아니 한심하랴 청천백일(靑天白日) 빨리 가니 / 일거월석 지날수록 늙을 밖에 할 일 없다 …
◇운동선수, 은퇴시기가 빠른 직업
그렇다. 세월이 가면 사람은 늙게 마련이고, 희대의 명창도 때가 되면 은퇴한다. 소설가 김유정이 ‘잠자는 나의 가슴에 장미 한 송이가 꽂힐 줄이야’라는 명문을 바쳤으며 정부까지 나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했어도,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르러서는 가창을 멈춰야 했다. 1979년 6월, 선생이 영면에 들었을 때도 여지없이 식장에서는 같은 노래가 은은히 흘렀다.
음악이 존재하는 한 음악가에게 은퇴란 없다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말은 이상이다. 현실에서는, 꼭 쥔 주먹에서 힘을 풀고 가진 것을 놓아야 하는 그때가 반드시 온다.
스포츠 선수에게 은퇴는 특히 더 중요하다. 운동선수는 그 시기가 가장 빠른 직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언제 필드를 떠나야 할지 현명하게 판단하고 남은 세월 동안의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한다.
문제는 언제가 그때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알아서 멈추는 것일 터. 일반적으로 운동선수들은 “눈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를 은퇴 시기로 꼽는다. 움직이는 것에 민감해야 할 종목에서 동체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생각만큼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야말로 은퇴 시기라고 말하는 선수도 많다. 눈은 필드를 향해 있지만 종종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젊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면 은퇴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은퇴를 운동선수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할 수 있을 법한 사치스러운 고민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프로스포츠인 야구. 이 종목에서 우리 선수들은 여간해서 은퇴를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지 못했다. 한때 리그를 호령했던 스타 선수들도 나이가 들고 성적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들이 가라앉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구단으로부터 방출 선고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종범 선수는 그라운드를 떠나는 모양새가 가장 안쓰러웠던 경우. 그는 불세출의 스타였다. 부채꼴 그라운드에서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며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절정의 활약을 펼쳤다. 아쉽다면 일본 프로야구에까지 진출한 뒤의 성적이 부상 탓에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점.
◇자의반 타의반 떠나야 하는 이유
다행히 국내로 유턴해서는 다시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2003년에는 해태에서 기아로 모기업을 옮긴 타이거즈에서 ‘20-20클럽’ 가입 선수가 되었다. 홈런 스무 개 이상, 도루 스무 개 이상의 다양한 활약을 서른셋의 나이로 기록한 것이다. 나중에 양준혁이 경신하기는 했지만 당시로서는 최고령 기록이었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맡아 WBC 클래식 국제야구대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은퇴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WBC 클래식 이후. 2006년 시즌 2할4푼2리, 2007년 1할7푼2리를 기록하며 “이종범도 끝났다”는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했다. 두 시즌 모두 잦은 부상으로 출장 경기 수가 100게임에 미치지 못해 안타까움은 더 컸다.
놀랍게도 이종범은 기적처럼 부활했다. 2008년과 2009년 시즌에 100경기 이상 출장해 3할에 근접한 성적을 남긴 것이다. 소속팀은 2009년 시즌 대망의 포스트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 쾌거에 이종범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점을 모르는 야구팬은 많지 않았다.
가장 의문스러운 것은 이후 구단의 행보. 오랫동안 같은 팀에서 뛰며 미증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공공연히 은퇴 압력을 행사했다. 2011년 시즌 이종범의 성적은 97경기 출장, 타율 2할7푼7리, 출루율 3할3푼7리였다. 그 정도면 어떤 팀에서든 2번이나 6, 7번 정도 타순의 선수에게 기대할 만한 지표. 따라서 구단의 은퇴 압박을 단지 성적 문제로만 보기는 쉽지 않았다.
2012년, 끝내 이종범은 유니폼을 벗었다.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결정”임을 강조했지만,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한국을 떠나며 말한 것처럼 ‘자의 반 타의 반’의 등 떠밀린 듯한 은퇴가 틀림없어 보였다.
이종범의 은퇴를 바라보는 뒷맛은 더할 수 없이 씁쓸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베테랑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이 궁지에 몰렸을 때 더그아웃에 이종범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형님’이 ‘예전에도 이런 위기 많이 이겨내봤다’는 눈치로 떡 버티고 있으면, 그것이 젊은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칼자루 쥔 사람들은 모른다. 그저 연봉 축내는 뒷방 늙은이로 취급할 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좀 다르다. 프로야구에 관한 한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는 리그인 만큼 이종범과 비교될 만한 에피소드가 종종 벌어진다. 올해에도 여지없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선수들
마이애미 말린스 구단은 올해 마흔 한 살인 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 선수와 내년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치로는 2016년 시즌을 보장받았고, 2017년 시즌에 계약하지 않으면 50만 달러(약 5억8000만 원)를 추가로 지급받게 된다.
다음 시즌 이치로의 연봉은 200만 달러(23억2300만 원). 여기에 각종 조건이 달려 있다. 250타석과 300타석에 도달하면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씩 추가 지불, 이후 50타석 추가 시마다 40만 달러(4억6000만 원)가 더 지급된다. 최대 600타석인 옵션을 모두 채우면 연봉은 300만 달러(약 34억8000만 원)까지 치솟는다.
이치로가 올해 거둔 성적을 놓고 보면 말린스 구단의 이런 계약은, 우리나라 구단들의 시각에서는 거의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타율 2할2푼9리에 출루율 또한 3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자동 아웃’이라고 불릴 만큼의 성적으로 이종범의 은퇴 무렵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말린스 구단의 데이비드 샘슨 단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치로는 팀의 소중한 전력”이라고. 그러므로 “팀이 제대로 구성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그와 함께 플레이한다는 것은 음악으로 치면 “비틀스와 함께 공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그는 베테랑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며, 어떠한 팀 구성이 바람직한지 잘 알고 있다.
영화 에는 일흔 살의 벤(로버트 드니로)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사’ 자도 모르면서 인터넷 쇼핑몰 업체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저 “삶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싶다”던 한 노인이 첨단 업종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북돋고 나아가 회사 전체를 바꾼다는 설정.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베테랑의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발휘되는 법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구단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지난 8월 6일.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 진갑용(41)이 19년 동안의 프로선수 생활을 끝내고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백업 포수로서 1, 2년 정도는 더 뛸 수 있을 법했지만 진갑용은 단호하게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 결정에 구단의 압력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적으로 선수 본인의 결정이다.
오히려 구단에서는 아쉬워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강팀인 만큼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게 분명하고, 그처럼 큰 경기에서 진갑용 같은 베테랑은 요긴한 힘이 될 테니까. 이후 진갑용은 전력 분석원으로 경력을 쌓은 뒤 야구 지도자로 성장하겠다고 꿈을 밝혔다. 본인이 결정하고 본인이 준비한 만큼 선수 경력 못지않게 성공적인 지도자가 될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반면 역시 삼성 소속인 이승엽은 “은퇴 시기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뜻이다. 성적도 놀라울 만큼 빼어나다. 마흔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장면에서 탁월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최초의 400홈런 기록은 그 부산물.
구단에서도 “은퇴 이야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선수 본인의 판단에 맡겨두겠다는 것이다. 만약 이승엽 선수가 올해 성적이 보잘것없었다면 어땠을까? 삼성 구단이 그동안 보여 온 여러 가지 행적으로 미뤄볼 때 ‘그럼에도’ 본인의 의사를 존중했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 점에서, 지금의 삼성 라이온즈는 이종범 시절의 기아 타이거즈보다 한 수 위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9월 13일. 33세인 이탈리아의 여자 테니스 선수 플라비아 페네타가 US오픈 테니스 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같은 나라의 로베르타 빈치를 2대 0으로 물리치고 프로 전향 16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마흔아홉 번째 메이저대회 출전 만에 처음으로 차지한 정상이었다. 페네타는 우승 확정 뒤 곧바로 은퇴를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모습으로 은퇴하기를 꿈꿔왔다. 매우 행복하다.”
모든 선수가 페네타처럼 은퇴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최선의 상황이 항상 벌어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베테랑들은 해가 갈수록 성적 지표가 떨어지며 알게 모르게 은퇴 압박에 시달린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페네타나 이승엽 같은 ‘최선의 상황’이 아니다. 이치로처럼 부진에 시달리는 베테랑 선수일수록 더 눈을 부릅뜨고 바라봐야 한다. 그가 품고 있는 전력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는 그 보이지 않는 힘에 무관심해왔다. 지나칠 정도였다. 이제 사회의 눈도 제법 날카로워지고 현명해진 듯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지금보다 더 멀리 보는 시선이 곳곳에서 갖춰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눈길이 좀 더 정확해지기를, 좀 더 두루두루 살피기를, 나이를 먹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 김유준(金裕俊)
1966년생. 20여 년 동안 영화전문지 , 남성교양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도서출판 현재) 등을 번역했다. 현재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
'호반의 도시' 강원 춘천에서 5월 한 달간 다양한 문화 축제가 열린다.
춘천국제연극제(이사장 오일주)는 5월 3∼10일 8일간 춘천문화예술회관과 축제극장 몸짓, 봄내극장 등에서 '가족 그리고 관객'이라는 주제로 2014춘천국제연극제를 연다.
올해 축제에는 국내 9개 팀을 비롯해 일본, 러시아, 이란, 나이지리아, 폴란드 외국 5개 팀 등 총 14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 유치를 기념해 찾아가는 공연과 뮤지컬 갈라쇼 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부대 프로그램도 열린다.
바로크 시대 음악을 만나는 고(古)음악제는 5월 12∼19일 8일간 국립춘천박물관 등에서 이어진다.
리코더를 비롯해 쳄발로, 류트, 트라베소(플루트) 등 옛 악기를 연주하는 이번 축제에서는 국내 유명 연주자는 물론 미국, 일본, 대만, 네덜란드 등 외국 6개 팀의 공연도 풍성하게 마련된다.
이번 축제에서는 국내 아마추어 리코더 그룹의 공연도 예정돼 있어 색다른 재미를 기대해볼 만하다.
소설가 김유정 선생의 문학 혼을 기리는 김유정 문학제는 5월 16∼18일 3일간 김유정문학촌과 낭만누리 전시실 등에서 펼쳐진다.
문예작품공모 시상식을 비롯해 소설 입체낭송, 소설 속편쓰기, 백일장, 점순이 찾기 대회, 닭싸움, 퀴즈 이벤트, 청소년 음악 페스티벌, 서양화가 이광택 씨 작품 전시회, 풍물장터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지역 예술인들의 잔치인 봄내예술제는 5월 17∼21일 5일간 공지천 야외음악당 등에서 펼쳐진다.
예술단체와 학생 동아리, 아마추어 동호회가 직접 꾸려가는 이번 예술제에서는 문학콘서트, 연극제, 무용제, 국악제, 청소년가요제 등이 진행된다.
부대행사로 한마음 비빔밥 나누기, 부채에 그림 그리기, 손수건 염색, 전통악기 체험 등도 열린다.
세계 3대 마임축제 중 하나인 춘천마임축제는 5월 25일∼6월 1일 8일간 춘천 일원에서 펼쳐진다.
지난해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 규명 논란 속에 예술감독과 이사장, 운영위원장이 줄사퇴하는 등 홍역을 치른 마임축제는 올해도 내부 갈등으로 사무국장 등이 공석인 상태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도 국내·외 마임 극단의 거리공연과 개막 난장 '아!수라장', 밤샘 공연 '도깨비 난장', 서커스와 연극을 접목한 '컨템포러리 서커스', 신진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 '도깨비 어워드'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춘천시 대표 먹을거리 축제인 닭갈비·막국수 축제도 5월 20∼25일 6일간 옛 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 내 행사장 등에서 열린다.
100인분 시식회, 가요제, 전국 요리대회, 음악 공연, 시민 동아리 행사가 진행되며, 닭갈비와 막국수 업소가 밀집한 신북읍, 온의동, 명동에서도 노래자랑 등 각종 이벤트가 이어진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월은 도보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은 때다.
3일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걷기 여행 길'(koreatrails.or.kr) 사이트에서는 이달 가볼 만한 도보 여행 코스 7가지를 추천했다.
전남 강진군에 가면 다산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이중 달마지 마을, 무위사, 강진다원 녹차밭, 월남사지 등을 잇는 4코스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월출산 자락에서 녹차밭이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16.6㎞로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강원 춘천 '봄내길'에는 소설가 김유정이 고향을 배경으로 써낸 소설 속 봄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중 1코스인 '실레 이야기길'은 김유정문학촌과 실레 마을을 돌아보는 2시간 가량의 짧은 길로 가족의 주말 나들이 코스로 좋다. 거리는 5.2㎞.
울산 '태화강 100리길' 1구간은 태화강의 푸른 물결을 따라 억새밭, 십리대밭, 삼호대숲, 태화강대공원을 보며 걷는 코스다. 15㎞ 거리로 5시간 가량 소요된다.
충남 홍성군에는 역사의 숨결이 담긴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 있다. 대교리 미륵불, 홍주의사총, 홍주향교, 홍주성, 적산가옥 골목길, 명동상점거리, 당간지주, 홍성천 벽화 등을 잇는다. 8㎞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수도권에서도 봄의 향기가 성큼 다가왔다.
서울 '안산 자락길'은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 연희숲속쉼터, 봉원사 등으로 연결된 숲길이다. 특히 휠체어 등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무장애 숲길'도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좋다. 9㎞ 거리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경기 파주 '살래길'은 통일동산 중앙공원, 고려역사박물관, 검단사 등으로 이어진 산책길이다. 4.2㎞ 구간을 1시간 30분 동안 둘러볼 수 있다.
부천 '둘레길' 1코스인 향토유적숲길은 고강선사유적지, 경숙옹주묘, 부천무릉도원수목원, 진달래 동산 등을 잇는다. 꽃피는 계절이 되면 철쭉과 진달래가 장관을 이룬다. 9㎞ 구간으로 2시간 30분 가량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