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노사발전재단이 주관한 ‘2019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가 지난 17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는 건설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 120개 업체가 참여했다. 그중 65개 기업은 현장채용을 위해 면접을 진행했고, 55개 기업은 구인공고를 냈다. 특히 노사발전재단은 신중년 인생설계를 위해 18명의 전문상담사가 경력 진단 및 이력서·자기소개서 작성, 면접 관련 개인별 맞춤상담을 실시해 시니어 구직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또 5060세대의 재취업 정보뿐만 아니라 귀농·귀촌, 창업 지원에 관한 정보도 나눌 수 있는 부스도 마련됐다.
2017년 편의점을 운영하다 폐업했다는 권모(58) 씨는 “소상공인진흥공단 희망리턴패키지 부스에서 상담 후 그동안 몰랐던 지원과 재기교육 프로그램을 알게 돼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박람회장을 찾은 이모(55) 씨는 “경력 단절된 중년 여성에게 맞는 질 좋은 일자리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이러한 행사를 통해 보다 많은 중장년이 질 좋은 일자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가 하계에 집중된 여행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4월 27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내여행 특별 주간으로 정해 특별한 여행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
그 중 명인과 함께 하는 김치 수업 프로그램이 있어 얼른 신청했다. 김치 명인 이하연 선생은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58호다. 남양주에 있는 김치문화원에 드니 정갈한 실내에 마늘이 들어간 김치양념 냄새가 확 느껴진다. 김치를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먼저 이하연 명인의 시연이 있었다. 명인의 김치 비법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이것저것 무수히 좋은 재료들을 다 때려 넣어 만든 육수와 양념'이 아니다. 알맞은 양의 재료가 서로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 맛내기 포인트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 선택이 우선이다. 그리고 우려낸 다시마 물을 이용한다. 다진 생새우와 멸치액젓, 약간의 멸치가루 외에는 우리가 평소에 준비하는 재료들이다. 물론 오랜 연구와 경험 끝에 이루어 낸 그 분만의 특별한 손맛과 내공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어지는 참가자들의 체험시간이다. 이미 다 준비된 재료들이지만 직접 양념 속을 넣고 둥근 병에 담아가지고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런 즐거움도 흔치 않은 일. 직접 속재료를 넣은 김치를 담아서 오늘 저녁 밥상에 올릴 생각에 즐겁다.
이어서 장독이 가득한 산 아래 하얀집 뜰에서 쑥국이 오른 점심식사를 했다. 봄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적당히 따사롭다. 많은 장독들이 봄햇살을 받아 장맛을 익히고 있던 봄날 하루였다.
해마다 날짜를 꼽으며 천마산(경기도 남양주시) 너도바람꽃이 피는 시기를 가늠해본다. 얼추 비슷한 날짜를 맞추어 수년째 같은 곳을 헤매다가 봄 첫 꽃을 만났다는 것에 황홀해하곤 했다. 올해는 운이 좋은지 눈 속에서 피어난 너도바람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꽃이 피고 난 뒤에 눈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은 눈을 이기고 핀 너도바람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눈 속의 너도바람꽃을 보고 난 후 한동안 천마산을 찾지 않았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봄꽃은 흔히 와글와글 피어나니 4월 중순의 천마산은 어떠할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수진사 입구에서 숲으로 걸어들어가니 아직 새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 사이 분홍빛 설렘을 담은 진달래가 점점이 박혀있다. 멀리 산 중턱에서 진분홍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개살구나무를 바라보는 것으로 봄꽃놀이를 시작한다. 생강나무는 만개하고 귀룽나무 새잎은 이미 풍성해졌다.
느려터진 발걸음으로 하늘정원이라고 불리는 노루귀 꽃밭에 12시 30분께 닿았다. 아침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하였으니 꽤나 천천히도 걸은 모양이다. 이리 많은 노루귀들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무리 지어 군집을 이룬다기 보다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사면 하나를 채우고 그 옆의 골까지 피어나는 형상이다. 충분히 빛을 받아야 꽃잎을 여는 꿩의바람꽃도 꽃잎을 활짝 열었다.
한참을 꽃들과 놀다 돌핀샘까지 올라 계곡을 타고 내려가기로 한다. 운 좋게 꽃이 핀 처녀치마 두 송이를 보고 황금색 천마괭이눈도 만났다. 오늘 나는 만주바람꽃을 보고 싶었다.
만주바람꽃은 단풍이 살짝 든 듯한 잎과 꽃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계곡에 만주바람꽃이 잘 피어있다. 약간 시기를 지난 감은 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이 봄바람 마냥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현호색이 밭처럼 피었다. 시선을 넓게 펼쳐서 보니 몇 개의 라인을 타고 흐르듯이 피어있다. 큰 나무 그림자 때문에 선을 그리듯이 핀 것은 아닐까 얕은 생각을 해본다. 오늘 천마산의 주연은 노루귀였고 현호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며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미사리 카페 ‘쏭아’에서의 밤 11시, 전설적인 포크 가수이자 대한민국 가수 송창식은 막 공연을 끝내고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남양주 작업실로 이동했다. 새벽 5시에 잠들어 오후 2시에 깨는 생활을 수십 년째 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이 늦은 시간은 보통 사람들로 치면 저녁식사 시간쯤 된다. 국내에 단 두 대 있다는 1억 원짜리 스튜디오 모니터 스피커, 1982년에 만들어진 아다마스 기타 등등 송창식의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수십 년 묵은 것들과 함께, 그리고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노래와 인생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저에게 트윈폴리오는 없었던 역사예요.”
충격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인기 듀오였으며 자신이 소속해 있었던 트윈폴리오를 부정하는 송창식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만큼이나 그가 트윈폴리오를 부정하는 이유에는 단단한 논리가 있었다.
트윈폴리오로의 복귀, 불편했다
기인, 괴짜, 천재, 도사 등등 그를 가리키는 과장된 별명은 많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자극적인 별명들이 무색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음악인이다. 사실 송창식은 한창 쎄시봉 열풍이 일었을 때 언론에서 곧잘 언급이 되었지만 뭔가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음악인 송창식의 입장에서 볼 때, 쎄시봉으로 인한 복고 열풍 속에서 트윈폴리오가 다시 세상에 불려나오는 것은 이상하고 거부감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상황을 “사기 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과격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수’ 송창식에게 그 말은 더없이 솔직한 심경의 토로이기도 했다. 어째서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그 결론을 이해하려면 그의 노래와 삶을 들여봐야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길 가는 사람
1947년생 송창식은 지난해 6월 목 수술을 했다. 지금은 목소리의 폼은 회복됐지만 음정 등 컨트롤이 좀 덜 되는 단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연습을 해도 일이 년 이상은 지속해야 다시 예전의 컨디션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단다.
“연습을 안 하면 음정이 안 돼요. 노래는 계속 연습해야 역량이 쌓이죠. 지금 성대의 새순이 올라왔으니, 이제 노래하는 성대로 만들어야 해요.”
대한민국 영원한 가객이라고도 불리는 그가 하는 말은 갓 가요계에 데뷔한 연습생들의 마음가짐과 비슷했다. 말하자면 그는 철저한 현역 프로 음악인으로서 안주를 거부하고 있었다.
“저도 처음에는 가수로서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어요. 노래 잘하고 싶었고 인기가수가 되고 싶었고 돈도 잘 벌고 싶었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욕구로부터 떠난 지 오래됐죠. 송창식은 거기 있는 거 같지 않다는 인식은 그 때문일 거예요. 노래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렇다면 송창식에게 노래란 무엇일까. 그는 한마디로 ‘공부거리’라 표현했다. 그리고 공부거리이기 때문에 계속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할 게 계속 생기니까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해도 다했다고 보긴 어려울 거예요.”
노래는 평생의 공부거리
그에게도 소위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이의 기준으로는 ‘그 정도면 다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송창식에게 인기는 큰 의미가 없다. 인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기는 내 일이 아니에요. 사람들 것이지. 사람들이 최고 인기가수를 만드는 거지, 가수가 잘나서 최고 인기가수가 되나.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뿐이죠. 인기는 계속 내려가요. 그리고 인기는 공부가 안 돼요. 공부는 습득해야 가능한 일인데 인기를 공부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게 사람인가?(웃음)”
그가 스튜디오에서 녹음용으로 쓰는 1억 원짜리 모니터 스피커를 갖고 있는 이유도 ‘공부’ 때문이다. 과거에 그는 자신의 앨범을 녹음할 때 당연히 엔지니어들에게 맡겼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들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아예 오디오 엔지니어링을 공부해서 1979년부터는 자신의 앨범을 직접 레코딩했다. 카페 ‘쏭아’에서 노래를 하는 이유 또한 그의 목적인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연을 매일 할 수 있는 곳은 카페밖에 없어요. 그게 공부예요. 어떤 때는 열렬하게 반응하고 어떤 때는 취한 사람들이 떠들고 말도 걸고. 보통 콘서트장에서 하는 노래와는 너무 다른, 다양성이 있는 환경에서 연주 경험을 쌓는 게 가능하죠. 그래서 다른 어떤 곳보다 카페가 좋아요.”
인터뷰가 있던 날, 그는 목이 안 좋다고 하면서도 열한 곡이나 불렀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공부를 한 거냐고 묻자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 억지로 어떻게든 끝내 해내는 공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개량 한복 입고 새벽 1시에 껄껄 웃는 송창식은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이긴 하다.
인기는 내 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
그렇다면 그는 요즘 가수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궁금했다.
“노래에는 기본기가 있어야 해요. 복싱으로 치면 샌드백 치고 로드워크 하고 줄넘기 하는 것과 같죠. 그다음에 링 위에 올라가 스파링을 하죠. 기본기를 안 하고 스파링만 해도 권투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챔피언이 되기 어려워요. 그처럼 옛날에는 기초 없이 노래해도 부른 노래가 유행가가 돼서 가수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가요계를 바라볼 때 늘 그 점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죠.”
그는 기본기와 연습이 가져다주는 위대한 결과를 철저하게 믿고 스스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노래와 연습량은 완전히 정비례해요. 그러니까 천재적인 음악가다, 이런 표현은 인정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알기에 최고의 음악 천재는 베토벤인데 이 사람이 정말 둔재였거든요. 아버지가 때려가면서 연습을 시켰기에 세계의 악성(樂聖)이 될 수 있었던 거죠. 모든 것은 몸으로 하는 거예요. 제가 바둑을 3단쯤 두는데, 바둑을 하면서 느낀 게 머리도 몸이라는 거였어요.(웃음) 매일 놓는 사람과 안 놓는 사람은 천양지차. 부단하게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연습량이 많으면 확실히 노래를 잘할 수 있어요. 연습 없이 재주만 있으면 언젠가는 고꾸라지죠.”
트윈폴리오가 ‘지워진 역사’가 된 이유
그는 요즘 가수들은 기초가 잘되어 있다고 평했다. 그런 면에서는 옛날 가수들보다 확실히 낫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기초만 잘되어 있지 옛날 가수들처럼 대중과 스킨십하며 치열하게 파고들며 돌파하려는 자세가 없다고 했다.
“나는 요즘 가수들이 하는 방법이 좋아요. 그런데 끝까지 가야만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데 중간에 멈추는 것 같아요. 일장일단이 있는 거지. 그게 좀 아깝죠. 그런데 그건 더, 나중 후배들이 하게 되겠죠. 그 친구들은 지금 가수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니까. 한 이삼십 년 후에는 대형 가수들이 나올 수 있겠죠.”
이제 그가 트윈폴리오로서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발전을 믿으며 매일 공부하며 사는 그에게 있어 트윈폴리오로서의 복귀는 자신의 삶을 후퇴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그래서 트윈폴리오로서 사람들에게 불려 나올 때면 환호 속에서도 그의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트윈폴리오가 일흔 살이 됐으면 발전한 흔적이 있어야지 전혀 없었으니까. 옛날 추억에 기대서 돈이나 벌려는 것 같았으니까. 가수 송창식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는데 트윈폴리오는 계속 뒷걸음치는 것 같았으니까요.”
첫 번째는 안 하지만 두 번째도 안 한다
송창식은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 무대에도 선다. 파트너는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함춘호다.
“나는 첫 번째는 안 하는데 두 번째도 안 해요.(웃음) 그 사람과 경쟁이 안 된다면 그 사람이 하지 않는 걸 추구해서 내 것으로 만들지. 그래서 함춘호와 함께 기타를 치는 게 맞는 거예요.”
악기는 시작이 언제냐에 따라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고 한다. 20대부터 기타를 치는 사람은 10대부터 기타를 친 사람이 갖는 테크닉은 절대 안 생긴다는 것이다. 10대 때 기타를 치면서 잡히는 손가락 모양과 뼈가 자라면서 생기는 특별한 테크닉은 나이 먹으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타를 스무 살 이후에 친 송창식은 일찌감치 기타를 친 사람들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딴 걸로 메꿔야죠, 나는 오랫동안 음악을 해서 훨씬 폭이 넓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가 있죠.”
함춘호와의 협연에서 그가 세컨드 기타를 맡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고 공연을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역할을 선택한 것이다. ‘첫 번째는 안 하는데 두 번째도 안 한다’는 그의 말은 가요계에서 그가 어째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는지 설명해주는 절묘한 묘사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자신만의 자리를 갖게 된 것은 그런 허허실실로 균형 감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송창식처럼 사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
따라서 송창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집요하게 구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점에서 그는 불가의 구도자 같은 인상에 묵직한 도인의 아우라를 갖게 된 것이리라. 다소 왜곡되는 게 있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이 믿는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내가 어쩌면 오해 속에서 사는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게 아닌데 좋다고 여기는 건 아닌가 의심할 때가 있긴 해요. 그런데 원래 성격이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라서요. 빠릿빠릿하지 않고 게으르고.(웃음)”
송창식을 멘토로 여기고 그의 삶을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가진 가치를 실제로 느낀다면 모를까, 내 방식이 정석이 되긴 어려워요. 단지 ‘저 사람이 하는 저 방식도 괜찮지’ 정도로 인식될 순 있어요. 사람들에겐 내가 멘토가 되는 건 불편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죠. ‘나는 이걸 자연스럽게 갖게 돼서 여기까지 온 것이지 너희들은 나를 멘토로 삼으면 너무 힘들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요. 노래를 잘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나처럼 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요.”
돈이 없으면 안 쓰면 된다
송창식처럼 사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이것은 자부심이라기보다는 그가 자신의 삶을 가만히 반추하면서 나온 솔직한 결론이다. 우선 그가 가진 인내의 기준은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는 어렸을 때 너무나 가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심지어 거지조차도 못 되었다. 그는 거지 굴에 갔다가 매를 맞고 쫓겨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거지도 자신들끼리 뭉쳐서 만든 사회가 있었는데, 자신은 거기에도 못 끼었다는 것이다.
“견딘 게 많았어요. 너무 춥고 배고팠으니까. 그런데 그걸 언급할 수 없는 게, 견딘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추우니까 ‘아, 추워. 배고파’ 했던 적은 있었지만 ‘죽겠네, 이 상황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냥 습관적으로 견뎠죠. 그래서 나에게 견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희열도 없죠. 견딘 게 아니니까. 그냥 인생 살면서 넘어간 거니까.”
그는 돈에 집착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돈은 없으면 안 쓰면 되는 일이다.
“그게 안 된다는 게 웃겨요. 난 돈이 없어서 서울예고를 중퇴했는데 이렇게 살고 있잖아요.”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스님이 됐을 것
송창식이 노래를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까? 새벽 2시가 다 되도록 음악 얘기만 한 터라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사자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노래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중이 됐을 거예요. 남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하는 일이니까요.”
송창식을 스님이라고 가정할 때 납득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다. 그는 즐거운 상상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스님은 사회 속에 있죠. 울타리 속 계급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아마 종단에서 빠져 나오지 않았을까.(웃음)”
송창식이 세상에서 이것만큼은 절대로 안 한다는 게 있다. 종교 교주다. 누구보다도 교주에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또 캐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왜냐하면 제일 높은 거니까요. 제일 높은 건 제일 나쁜 거예요.”
너무 단순한 대답인데도 설득력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클래식 쪽에 야망이 있었죠. 그러나 고등학교를 중퇴하며 그 야망이 꺾였죠. 당시엔 죽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의 내가 있으니 지금의 내가 있다고 봐요. 필연적인 거였던 셈이죠. 그래서 지금은 새옹지마보다, 더 나아가서 ‘나쁜 건 다 좋은 거다, 좋은 건 다 나쁜 거다’라고 생각해요.(웃음)”
나쁜 것은 좋고 더 좋은 것은 더 나쁘다. 송창식이 사는 법을 우직하게 정의하는 그 문장은 삶에 대한 끝없는 긍정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절대로 상하지 않는 금강(金剛)
송창식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긍정과 자신감, 그 힘의 원천은 삶과 사람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자신감은 원래 사람들이 갖고 태어나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감은 절대 상할 수 없어요. 동네 깡패들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지언정 자신감은 안 상하는 거예요.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니까요. 그때 자신감이 상했다면 자신감이 없는 거예요. 그런 걸 불교에서는 금강이라고 해요. 금강은 절대로 안 상합니다. 그것을 갖고 있으면 세상 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어쩌면 금강에 대한 얘기야말로 송창식이 말하는 삶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문답 후에 남는 것은 사람 좋은 웃음이었다. 즐겁고도 평온한 웃음. 그리고 송창식은 그 웃음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죽어도 사람들에게 기억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 내가 냈던 노래판들 다 가져가면 좋겠어요. 그것들이 정말 가치가 있는 거라면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또 나와 같은 걸 할 테니까요. 그런데 이미 남겼으니 어쩌겠어.(웃음)”
“그거면 된 거지” 하며 그가 너울거리듯 웃으면 기자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해가 진 후 미사리 쏭아에 가면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손님도 소홀히 하지않고 진지하게,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애간장 태우는 목소리로 부숴버릴 듯 노래한다. 또 가 보고 싶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경치와 물이 좋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다. 이처럼 좋은 나라에 태어난 나는 문화인인가, 혹은 야만인인가? 지성과 교양이 있는 사람은 문화인(文化人)이고, 그 반대는 야만인이다. 또 문화에 관한 일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을 가리켜 문화인이라고도 말한다.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나라.’ 이는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우리나라를 일컫는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퇴직하고, 향토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았다. 그때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과 사적 등을 비롯해 서울시지정문화재에 관해 배웠고, 해설을 할 때 설명을 해 주며 자원봉사도 했다. 하루는 해설을 하러 서울 봉화산에 갔다. 1963년 서울시에 편입되어 1971년 봉화산 근린공원으로 문을 열었던 곳이다. 전에는 산책이나 등산 등 여가를 즐기러 다녔으나, 해설가로 임무가 주어졌을 때는 그곳에 있는 문화재들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다. 친구들은 복잡하게 뭣 하러 그 일을 하느냐고 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그동안 몰랐던 것이 너무나 많았고, 유익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봉우재는 해발 160.1m로 문화재가 두 개 있어 서울특별시와 담당 문화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정상에 있는 아차산 봉수대지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1993)로 지정문화재로 복원했다.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해 강원도를 거쳐 남양주 한이산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목멱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주민들은 이 봉수대 부근에서 음력 3월 3일 삼짇날 무형문화재 제34호(2005)인 봉화산 도당제를 지낸다. 이때는 국내외의 관심 있는 이들이 모이는데, 친구들을 초청해 공연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으로 잔칫상을 푸짐하게 대접한 일이 있다. 그때야 친구들은 부푼 배를 두드리며, 나처럼 해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는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을 왜 하느냐고 핀잔했으나, 지금은 나를 자주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당시 친구들에게 문화인이 되려면 지성과 교양을 쌓아야 하며, 야만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나 역시 문화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아침에 바로 되는 것일까? 문화란 세상이 깨고 발달하여 문명이 개화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이상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문화의 발전과 향상을 지상목표로 삼는 나라인 문화국가(文化國家:cultured nation)에서 문화인다운 삶을 지향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김구 선생은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을 위해 강조한 그의 이야기가 귓가에 아스라이 메아리쳐 오는 듯하다. 나 역시 ‘문화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하게 하는 나라’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친구들과 더불어 해설가로서 최선을 다해 활동해보려 한다. 수년 전에 배웠던 수업자료들을 친구들에게 주려고 차곡차곡 정리하는 중이다. 소중한 자료를 넣을 예쁜 봉투를 준비해 친구들에게 줄 반가운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도보여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면, 지방마다 조성된 걷기 코스까지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황안나 도보여행가가 추천하는 지방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코스 추천 및 사진 제공 도보여행가 황안나
◇ 도보여행가 황안나의 지방 걷기 코스 추천 코멘트
경기도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팔당나루터, 소재나루를 보면서 운길산까지 걷는 ‘한강나루길’(1코스) 구간을 가장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 길이 평탄해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고, 강가와 호숫가를 둘러싼 경치가 으뜸이다. 걷다 보면 중앙선 옛 철로가 나오는데, 어릴 적 추억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다산 생가 부근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피어 절경을 이룬다.”
충청도 태안 해변길 “태안 해변길 하면 ‘노을길’(5코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꽃지해변이 나오는데, 시간을 잘 맞춰 일몰 때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해안을 물들이는 석양이 장관을 이뤄 셔터만 누르면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홀로 걷다 보면 해 질 무렵에 이따금 마음이 쓸쓸해지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정취와 아름다운 노을이 버무려져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전라도 변산반도 마실길“새만금을 따라 방조제를 걷는 코스로는 넉넉잡아 8~9시간 정도 걸린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내소사를 탐방하고, 광활한 갯벌을 바라보며 곰소항까지 거닐어도 좋다. 곰소 젓갈 축제가 열리는 때에 맞춰 방문해 행사도 즐기고, 곰소젓갈시장에 들러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다. 곰소항, 격포항 인근 맛집이 많아 식도락 도보여행가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강원도 강릉 바우길“바우길 하면 선명하게 겨울의 끝자락 하얗게 눈이 쌓인 선자령 풍차길에 피어 있던 노란 복수초가 생각난다. 머리에 덮인 차디찬 눈을 털어내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여린 꽃망울이 어찌나 아름답고 또 기특한지. 복수초 외에도 사시사철 피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기 위해 이 길을 걷는 여행가가 많다.”
경상도 상주 MRF 이야기길“낙동강 줄기를 끼고 걸을 수 있는 ‘낙동강길’(1코스)의 끝자락 경천교 인근에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자전거 조형물을 구경한 뒤 자전거를 빌려 즐길 수 있다. 개인적인 추억이지만, 이곳을 걸으며 아이들이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보물처럼 다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손주나 자녀와 함께 가도 좋겠다.”
부산 부산 갈맷길 “갈맷길의 백미는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이기대’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이 가까워 관광 삼아 거닐어도 좋은 길이다. KTX를 타고 당일치기 도보여행으로 즐겨도 손색없다. 드넓은 바다와 기이한 암석, 귀여운 쑥부쟁이, 울창한 소나무 숲 등 걷는 내내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경상도-전라도 지리산 둘레길 “발걸음이 닿는 길마다 맛 좋은 음식과 넉넉한 인심이 넘쳐난다. 어느 가을날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마침 수확한 감을 나눠주시며 정겹게 말을 건네시던 기억이 난다. 특히 5일장 등이 서는 날 맞춰 가면 이곳만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 태안 해변길
서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갯벌과 사구 등 해안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자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전망이 뛰어나고 걷기 좋은 해변길이 7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 백미는 5코스인 안면도 노을길이다. 안면도 초입에 자리한 백사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노을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멋진 해안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여기에 서해안 3대 낙조로 꼽는 꽃지해변 노을길은 도보여행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 변산반도 마실길
아름다운 해변과 포구가 있고 유서 깊은 절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변산반도는 숱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 그윽한 아름다움이 깃든 내소사, 맛깔스러운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등이 주요 명소다. 이 모든 곳을 아우르는 코스가 바로 ‘변산 마실길’이다. 1~8코스 66km와 해안누리길 18km로 나뉜다. ‘바다와 대화하고, 갯벌과 벗하며 마실간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 길을 걸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단, 썰물 때는 해안이 길게 드러나 길이 생기지만, 밀물 때는 바닷물이 해안으로 들어와 길이 없어지거나 걷기 어려워지므로 시간에 유의해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 상주 MRF 이야기길
곶감의 고장 상주에는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산(Mountain), 강(River), 들(Field)을 뜻하는 걷기 좋은 ‘MRF 이야기길’이 있다. MRF란 산길, 강길, 들길을 걷거나 달리는 신종 레포츠를 뜻하기도 하는데, 원점 회귀가 가능하면서 낮은 산길(해발 200~300m) 구간이라야 한다. 총 13개 코스로,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제1코스 낙동강길이다. 비봉산을 거쳐 경천대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청룡사와 자전거 박물관, 상도 드라마 세트장 등 볼거리가 많다.
◇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북한강, 국립수목원, 운길산, 축령산 등 남양주시의 둘레길을 통틀어 말한다. 코스를 모두 합한 거리는 170km 남짓, 총 14개 코스로 저마다 볼거리와 분위기가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길은 1코스인 한강 나루길과 2코스인 다산길, 3코스인 새소리 명당길이 겹쳐진 팔당역~능내역~운길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길을 다산길의 으뜸으로 꼽는 것은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걷다가 옛 기찻길을 걷는 낭만도 있고, 무엇보다 그 중심에 다산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산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 강릉 바우길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맥과 바다를 함께 걷는 총연장 약 400km의 장거리 코스다. 강릉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바우길, 계곡마우길, 아리바우길로 이뤄져 있다. 강원도의 자랑인 금강소나무 숲이 70% 이상 펼쳐져 있는 바우길의 매력은 트레킹과 삼림욕을 동시에 즐긴다는 데 있다. 도보여행에 자신 있는 이라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울트라바우길’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4박 5일 동안 총 72km를 걷는 코스로, 고난도 트레킹과 야영이 혼합된 바우길 특별 구간이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등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95km의 장거리 코스다. 구간 대부분이 중·상급 난이도로 도보여행 초보자가 걷기에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2004년 ‘생명 평화’를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이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매년 5월 약 보름 동안 참가자를 모집해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이음단’을 창단하고, 다양한 걷기 축제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부산 갈맷길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갈매기의 길’이란 의미를 지닌다. 총 9개 코스로, 길이는 268.8km다. 이 코스를 다 걸으면 부산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갈맷길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부산 해변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제2코스다. 특히 바다와 기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이기대’를 품은 2-2코스는 해안 산책로의 백미 구간으로 도보여행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갈맷길을 걸으며 구간별 시작점, 중간점, 종점에 마련된 인증대 38개소에서 도보인증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주인증 및 기념품 수령이 가능하다.
>>황안나 도보여행가
국토종단 800km, 국내해안일주 4200km, 24시간 울트라 걷기 등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을 65세 이후 이뤄냈다.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네팔, 홍콩, 부탄, 아이슬란드 등 세계 50개국 걷기코스를 섭렵하며 도보여행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널리 회자될 만큼, 임대수익이 나오는 부동산 소유는 수많은 현대인의 로망이다. 근로소득이 줄거나 없어지는 은퇴 전후 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이미 포화 상태인 창업 시장에 뛰어드느니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한창 달아오르던 부동산 시장에 최근 냉각 기류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다주택자들에게 칼날을 겨누면서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주택 시장의 열기가 급속도로 식어가는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제 영향이 적은 상업용 부동산으로 투자자들의 눈길이 이동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오피스 상가 등 상업용 부동산의 2017년 전국 거래 건수는 38만4182건으로 전년 대비 4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와서는 거래 건수가 더욱 늘어났다. 1~2월 거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8.1% 증가했다.
그러나 올해 상가와 오피스텔을 포함한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도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책이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고, 시중 금리 인상에 따라 수익형 부동산 시장도 수익률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가 분양가 3.3㎡당 3306만 원, ‘역대 최고치’… 수익률 눈높이 낮춰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상가 평균 분양가가 역대 최고가인 3.3㎡당 3306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상승한 수치다. 특히 서울 논현동, 마곡동에서 총 7개 단지가 3.3㎡당 평균 4385만 원에서 공급되며 전체 분양가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인천(3248만 원/3.3㎡)은 남양주 다산, 하남 미사, 화성 동탄2신도시 등지에서 29개 상가가 분양됐고 그 외 지방은 3.3㎡당 평균 2873만 원 수준에서 공급됐다.
오피스텔 매매 가격도 지난 1분기 0.2% 상승했다. 전 분기 대비(0.33%) 상승폭은 축소됐지만, 0.2% 선을 유지했다. 입주물량 증가, 금리 인상, 규제 강화 등 악재가 겹쳤지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높은 가격’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더욱이 강화된 대출 규제로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당국은 3월 26일부터 RTI(Rent to Interest, 임대수익이자상환비율)를 도입했다. RTI는 연간 임대소득이 대출 이자의 1.5배(주택임대업)나 1.25배(비주택)를 넘어야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제한다. 이에 따라 대출이 까다로워지고 한도도 줄어들게 됐다. 상가의 경우 연 임대소득이 연간 이자 비용의 1.5배가 넘어야 대출이 가능하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당장의 대출 제한으로 상가 시장 내 절대적인 수요량은 소폭 감소하겠지만 목 좋은 우량 상가에 한해 자금력 있는 투자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기존에는 꼬마빌딩에 투자할 경우 자기자본 비율이 50% 미만이어도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이전에는 자기자본 20억 원으로 50억 원대 꼬마빌딩에 투자하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레버리지 비율을 낮춰 30억 원대 빌딩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상가 등 수익형 부동산은 경기에 민감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상가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겠지만, 당장 자영업자들이 인건비 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공실이 서서히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고 선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중금리도 올라가고 있다. 대출은 조이고, 금리가 올라가면 투자자들 입장에선 돈을 빌려오기도 힘들고, 어렵게 대출을 받아도 이자 부담이 늘어 수익률이 떨어진다. 수익률의 눈높이를 조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진단이다. 선 대표는 “올해 하반기를 지나 내년 상반기에는 대출 금리가 연 5%대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수익형 부동산의 투자 수익률이 지역과 상품에 따라 다르지만 연 5% 안팎인데, 향후 실제 수익률보다 대출 금리가 높은 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큰 장' 예상, 도시재생지역 눈길
그렇다면 노후 대비를 위해 수익형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연세가 많을 경우 사업이나 창업에 제약이 많아 수익형 부동산이 현실적인 노후 대안일 수밖에 없다”며 “수익형 부동산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예금 금리 이상이며, 투자 대상 선별에 따라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노후 대비 목적이라면 주식처럼 불확실성이 크고 급등락이 심한 대상은 투자 대안이 되기 어렵다”면서 “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시장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노후 대비를 위한 투자라면 수익형 부동산 중에서도 안정적인 대상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지영 소장은 자금 여력에 따라 상가주택과 오피스텔에 관심을 둘 만하다고 했다. 양 소장은 “상가주택은 투자 금액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관리가 용이하고 건물의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땅값 상승 등으로 인해 리스크 요인이 적다”고 말했다.
상가주택의 경우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잘 살펴보고 투자해야 한다. 예컨대 대학가일 경우 소형 위주의 상가주택이 유리하고, 1층 상가도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도록 임차 업종을 선별하는 것이 현명하다. 오피스텔은 그동안 공급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 등 배후 수요가 받쳐주는 곳, 지하철 개통 예정 등 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을 조언했다.
실제 올해 1분기 오피스텔 분양 시장에서는 양극화가 뚜렷했다. 아파트투유에 따르면 경기 수원시 ‘수원호매실동광뷰엘(333실)’의 청약 접수는 3건에 그쳤다. 경남 진주시 ‘신진주역세권줌시티(348실)’는 단 2건만 접수됐다. 반면 경기 화성시 ‘힐스테이트동탄2차(236실)’는 최고 경쟁률 10대 1로 준수한 성적을 보였고, 경기 수원시 ‘광교더샵레이크시티(1805실)’는 26대 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2분기에는 1만508실이 분양 예정이다. 임대수익뿐 아니라 매각 시 시세 차익을 기대한다면 상가 투자가 유망할 것으로 추천됐다. 올해 상가 투자 유망 지역으로는 신도시와 도시재생지역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선종필 대표는 도시재생 관점에서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은평구 수색동, 택지개발지구에서 하남시 등을 유망 지역으로 주목했다. 선 대표는 “유망 지역이라 해도 가격 요인을 고려했을 때 매력은 달라질 수 있다”며 “신규 분양일 경우 특히 가격을 낮추는 협상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혁 선임연구원은 “노후 대비를 위해 시세차익보다 고정수익에 초점을 맞춘다면, 신도시에 새로 형성되는 상권보다는 기존 상권 중에서 상승세 타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노년 세대가 직접 상가를 관리하려면 주거지에서 30분 안팎으로 가깝고, 평소 잘 알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도시재생사업 관련 개선될 여지가 있는 지역, 현재 상권이 크지 않더라도 상승 요인이 많은 곳을 눈여겨보라는 관점이다.
투자 적기에 대해선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를 꼽았다. 양지영 소장은 “현재 수익형 부동산 시장에 대한 리스크 요인도 많고, 가격도 고점에서 조정이 되는 구간이라 매수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까지 여유를 갖고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 대표는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반기쯤에는 유동성 리스크에 빠진 건물 투자자나 상가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평소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금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多)주택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사실 한발 늦었다. 3월 31일까지 주택을 처분하지 못한 다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 감면을 위한 출구가 매우 좁아졌다. 그렇다고 무작정 집을 팔 수 없어 ‘보유’로 가닥을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증여나 임대주택 등록을 통해 양도세를 줄이는 대안 마련이 필수다.
다주택자 ‘최고 68.2%’ 양도세 중과
수도권 소재 주택 세 채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김모(62) 씨는 당초 아들이 결혼하게 되면 집 한 채를 물려줄 작정이었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세금 압박이 커지면서 증여 시점을 앞당기게 됐다.
부동산 세금에 대한 김 씨의 우려는 괜한 걱정이 아니다. 다주택자를 정조준한 정부의 규제에 무작정 ‘버티기’로 대응할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만일 김 씨의 주택이 조정대상 지역에 있고, 집값이 구입 당시보다 5억 원이 넘게 올랐다면 양도차익의 70%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4월 1일부터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가 대폭 늘어난다. 조정대상 지역에서 주택을 매각하면 2주택자는 기본세율에 1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가 추가된다. 여기에 올해 세법 개정으로 양도세 최고세율이 기존 40%에서 42%로 2%포인트 높아졌다. 양도차익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면 38%, 3억 원을 넘으면 40%, 5억 원 초과인 경우 42%의 세율을 각각 적용받는다. 3주택자인 경우 기본세율에 20%포인트가 추가되고, 양도세의 10%가 다시 주민세로 붙기 때문에 최고 68.2%의 양도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집값 상승분의 70%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셈이다.
단 양도세 중과세는 조정대상에 있는 주택을 양도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다주택자라도 조정대상 지역의 주택을 매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과세는 물지 않는다. 현재 조정대상 지역은 서울 전역(25개구), 경기 7개시(과천,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남양주, 동탄2신도시), 부산 7개구(남구, 해운대구, 수영구, 연제구, 동래구, 부산진구, 기장군)와 세종시다.
‘부담부 증여’ 양도세 따져라
주택 수는 개인별이 아닌 세대별로 계산된다. 본인 및 배우자 소유의 주택은 물론이고 세법상 동일 세대원의 소유 주택을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별도 세대로 분리할 수 있는 세대원 소유의 주택은 떼어내는 것이 절세 포인트다.
대표적인 것이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이다. 자녀가 세법상 별도 세대를 구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면 세대를 분리해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 주택 수에서 제외된다. 세법에서는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 최저생계비 수준 이상으로 독립생계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 독립세대로 인정한다.
앞서 김 씨의 자녀가 결혼했거나 연령이 30세 이상이고, 소득이 있다면 자녀에게 증여해 주택 수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가 미혼이고 독립생계가 어려운 경우라면 증여해도 주택 수가 별도로 계산되지 않는다.
증여 방법은 크게 단순 증여나 부채를 승계하는 부담부 증여 중 선택할 수 있다. 대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부담부 증여를 선호한다. 부담부 증여는 대출이나 전세보증금 등 증여자(부모)의 채무를 수증자(자녀)가 인수하는 조건의 증여 방식이다. 전체 평가액 중 부채 승계금액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내고, 부채 승계금액에 대해서는 양도세가 붙는다. 김종필 세무사는 “4월 이후 부담부 증여의 경우 양도세 중과가 적용될 수 있어, 단순 증여와 부담부 증여 시 세금을 비교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이 크게 상승한 경우라면 배우자에게 증여하는 방법도 있다. 배우자에게 증여할 때 주택 수는 달라지지 않지만, 통상적으로 부부간 증여는 6억 원까지 배우자 공제가 적용된다. 가령 3년 전 4억 원에 구입해 6억 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아내에게 증여하면, 배우자 공제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배우자가 아파트를 증여받은 후 제3자에게 6억 원에 매도하면 양도차액이 발생하지 않아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단 증여 후 단시일 내 양도는 주의해야 한다. 증여 후 5년 이내에 매매할 경우 조세 회피를 위한 것으로 간주해, 애초 취득금액인 4억 원을 기준으로 양도차익이 계산된다. 증여 후 5년이 지나면 증여 당시 평가금액이 취득금액이 되므로, 5년 이상 보유 의사가 있다면 가족 간 증여 후 양도하는 방법이 효과적인 절세 방안이 될 수 있다.
임대사업 등록 … 8년 이상 장기전략
서울 마포구에서 다가구주택을 세놓은 임모(68) 씨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놓고 고심 중이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 외에도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을 비롯해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임 씨는 “다가구주택에서 나오는 임대소득은 노후 생활비여서 당장의 매각은 고려하지 않지만, 자칫 임대사업 등록으로 소득만 드러나고 실익은 크지 않을 수도 있어 망설인다”고 말했다.
최근 임대사업자 등록을 선택하는 다주택자가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2월 한 달간 신규 등록한 개인 임대주택사업자는 9199명으로 지난해 2월(3861명)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지난 1월(9313명)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2월은 설 연휴로 등록 가능한 근무일수가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평균 등록자는 1월 423명에서 2월 511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는 굳이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국세청은 신고하지 않더라도 임대차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직장인의 월세소득공제는 물론, 주민센터를 통해 확정일자 정보도 확인이 가능하다. 따라서 임대 목적으로 다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각종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조정대상 지역에서 (임대)수익률이 높고 집값 상승 여력이 있는 주택을 가진 경우라면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장기적으로 세금을 줄여나가는 전략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이 줄거나 면제된다. 장기특별보유공제 혜택도 있다. 다만 4월 1일 이후 사업자 등록을 고려한다면 선택지는 8년 이상 ‘장기임대’로 좁혀진다.
3월까지 사업자 등록을 한 경우 의무기간 4년의 단기임대주택을 운영할 수 있고, 5년 이상 임대하면 양도세와 종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4월 이후에 양도세 중과 배제와 종부세 혜택을 받으려면 8년 이상 임대주택 등록을 해야 한다. 8년 임대 시 건보료의 80%가 감면되고, 매각 시에는 매매 차익의 70%까지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장기 임대주택 혜택은 시·군·구청과 세무서에 모두 등록해야 하며, 임대료는 의무임대기간 동안 연 5% 범위로 인상폭이 제한된다. 의무임대기간에 주택을 매매할 경우 주택당 최대 1000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감면된 세금도 추징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해마다 봄이 다가올 무렵이면 사람들은 꽃을 보러 나서기 시작한다. 홍매화를 보러 절 마당을 찾고, 진달래나 철쭉, 산수유, 튤립... 등등 쉬지 않고 피어나는 봄꽃들을 찾아 사람들은 멀리멀리 떠나곤 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먼길을 다시 돌아오면 결국 그 모든 꽃들이 서울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고궁에 기품 있는 홍매화가 있고 도심 한 복판 사찰의 기와 위에 산수유가 노랗다. 버스만 타도 진달래가 가득 피어난 산이 있고 지하철역을 나서면 푸짐한 개나리 동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고택의 담벼락에 피어난 능소화를 찾아 남녘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공원에 능소화 터널이 있고, 동네 구청 화단에, 가까운 향교 돌담에, 심지어는 도로변에도 꽃담을 이루어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먼 남쪽의 산하에, 그 들판에, 고즈넉한 사찰과 함께, 그 마을 뒷산에서 또는 그곳의 숲에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이다. 스님의 맑은 미소가 봄볕처럼 따사로운 절 마당에 피어난 홍매화가 더없이 아름답다. 몽글몽글 빛나는 대웅전 뜰의 빛망울이 분홍빛 진한 홍매를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야생화가 언 땅을 뚫고 나왔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광명의 구름산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남양주 쪽의 운길산과 청노루귀의 검단산이 있다. 차를 몰고 영흥도와 구봉도 쪽으로 잠깐 달리면 겨우내 낙엽더미 속에 묻혀있다가 고개를 내민 노루귀를 볼 수 있다. 아직 녹지 않은 눈 속에서 피어난 노오란 복수초가 환하다. 보물찾기 하듯 찾아낸 손톱만 한 야생화와의 조우가 짜릿하다. 반나절만 나서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날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자연 속의 봄꽃을 귀한 손님처럼 맞을 수 있다.
겨우내 땅 속에 묻혀있다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느라 애썼다고 눈인사를 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 산비탈에 엎드려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수줍은 바람꽃을 향해 렌즈 초점을 맞추며 행복하다.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자연의 섭리와 변화를 만끽하는 기쁨에 감사한 시간이다. 반갑게 마주보고 고맙게 담아내고 조심히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긴다.
머잖아 꽃망울을 터트리며 개화를 알릴 매화나무도 추위 속에 싹을 틔우는 게 보인다. 온갖 풍상을 겪어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봉오리가 맺혀있다. 비로소 나무의 굴곡진 꺾임의 멋도 눈에 들어온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가까이에 봄이 있고 봄꽃이 싹을 틔우고 있다. 봄볕 드는 버스 창가에 앉아 꽃을 보러 가는 기분을 누려볼 수 있다. 봄 하늘은 푸르고 찬 공기는 상쾌하다. 매년 이런 계절을 맞으며 이 땅에 사는 맛을 비로소 즐겨본다. 뒤늦게 내가 사는 세상이 고맙고 애틋하다.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꽃들이 향기도 좋다고 한다. 매섭던 겨울이 지나고 해마다 이렇게 돌아오는 봄에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인생은 감사하다.
무술년(戊戌年) 부동산시장은 한 치 앞을 가늠키 어려운 ‘시계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2017년 6월 이후 쏟아진 부동산 대책만 여섯 차례. 2018년 새롭게 적용되는 제도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 주택 수요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방위적 규제로 시장이 얼어붙는 가운데, 서울 인기 지역은 ‘안전자산’으로 가치가 상승하는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 다주택자인 박준혁(65·가명) 씨는 새해 양도세 중과 방침에 따라 주택 보유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 씨는 “주택을 급하게 처분하기 쉽지 않아, 자녀들에게 서둘러 증여할지, 임대사업 등록을 할지 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부장인 김수형(51·가명) 씨는 금리 인상 뉴스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진다. 김 씨는 “주택담보대출 상환기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금리가 크게 올라갈까 걱정”이라며 “새해 각종 규제로 집값마저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전국 주택 가격 하락 경고음
새해 벽두, 부동산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흐른다. 새해 촘촘한 규제의 영향으로 매매와 임대시장 가릴 것 없이 진정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요 부동산 연구기관과 리서치업체들은 2018년 집값이 보합 내지 하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2018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이 2017년보다 0.5%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주택 가격은 2017년과 비슷한 보합을 유지하겠지만, 지방의 주택 가격은 1.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국의 전세 가격도 0.5% 하락할 것으로 봤다.
부동산 리서치업체인 ‘부동산114’가 최근 실시한 ‘2018년 상반기 주택시장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택 소비자 2명 중 1명은 내년 상반기 부동산시장에서 매매와 전세 가격 모두 ‘보합’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매매와 전세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응답은 각각 23.99%와 21.08%로 나타났다. 소비자 10명 중 7~8명은 2018년 상반기에 주택 매매·전세 가격이 보합 또는 하락할 것으로 보는 셈이다.
2015년 이후 활황세를 보였던 부동산시장은 투기 지역에 대한 분양권 전매를 금지하고 대출한도를 축소한 ‘8·2대책’ 이후 움츠러들고 있다.
새해에는 금리 인상과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시행으로 대출의 문턱이 높아짐에 따라 거래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파의 직격탄은 서울 외곽, 지방을 향하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거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서울 외곽 주택시장이 공급 과잉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말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오는 2022년까지 수도권 주택보급률(일반 가구수 대비 주택수 비율)을 107%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서울 수서역세권을 비롯해 하남, 화성, 김포, 남양주, 성남 등 신도시 주택 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다.
이명수 미래에셋생명 부동산 수석컨설턴트(공덕지점장)는 “탄탄한 수요가 뒷받침되는 서울 강남 등 인기 지역의 주택은 앞으로도 상승세가 예상되지만, 외곽이나 지방의 중저가 주택은 정부가 확대하는 공공 물량과 섞이면서 조정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도 ‘2018년 주택·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지방은 하락세가 확대되는 반면, 서울 주거용 부동산은 금리 상승 압박과 준공 증가에도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어 가격은 강보합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 등 규제 산적
부동산업계는 2018년 부동산시장을 좌우할 주요 이슈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확대, 가계부채 대책과 관련한 대출 규제 등을 꼽고 있다.
부동산114의 주택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8년 주택시장의 파급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제도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20.11%)였다. 다음으로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 추가 지정(19.14%)에 대한 응답이 많았고, △신DTI(총부채상환비율) 시행(16.50%) △DSR(총체적상환능력비율) 시행(12.62%) △중도금대출 보증요건 강화 및 보증비율 축소(9.85%) 등 ‘가계부채 종합대책’과 관련한 내용들이 다수 꼽혔다.
우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는 주택 보유자들의 초관심사다. 4월 1일 이후 조정대상 지역 내 주택을 양도할 경우 2주택자는 10%, 3주택 이상자는 20% 가산세율이 붙는다. 양도세 기본세율이 6%에서 최고 40%임을 감안하면 3주택 이상자의 경우 최고 60%까지 높은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분양권의 경우 1월 1일 이후 조정대상 지역 내 거래의 경우 보유기간에 상관없이 양도세율이 50% 적용된다. 양도차익이 1억 원이면 50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아야 할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해야 할지 셈법이 복잡해졌다. 정부는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양도세 중과 예외가 적용되고 건강보험료를 깎아주는 등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2020년 말까지 등록한 연 2000만 원 이하 임대사업자에 대해서는 건보료를 8년 임대는 80%, 4년 임대는 40% 깎아준다. 또한 2019년부터 시행 예정인 임대소득자에 대한 분리과세 시, 필요 경비율을 등록 사업자는 70%로 높이고 미등록 사업자는 50%로 낮추기로 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은 “조정대상 지역 내 3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로서 장기보유 계획이라면 양도세와 임대사업자 등록 시 세제 혜택을 신중하게 비교·검토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7 ‘8·2 대책’에서 서울 전역(25개구)과 경기도 과천, 세종시 등 27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다. 이 중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용산·성동·노원·마포·양천·영등포·강서구와 세종시 등 12개 지역은 투기지역으로 다시 묶였다. 이어 9월에는 분당·판교와 대구 수성구를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분양권 전매와 재건축 조합원의 지위양도가 금지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최대 40%로 묶이게 됐다. 다주택자가 주택을 추가로 구입할 때는 전국 어디서나 LTV와 DTI가 10%포인트씩 낮아진다.
투기지역이 아니더라도 신DTI 시행으로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줄이 좁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DTI는 추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받을 경우 대출 원리금 상환액에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과 기존 대출의 이자만 반영하는 방식인 기존 DTI(총부채상환비율)과 달리, 기존 주담대의 원금과 이자가 모두 부채에 포함돼 산정된다. 4분기 시행 예정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본인 명의의 주담대 외에 신용대출이나 자동차할부, 마이너스통장 등 모든 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이다. 모든 대출을 합산하는 만큼, 다중 채무자의 대출 여력이 낮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