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김형석 교수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요사이는 내가 늙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2018년에는 내 나이가 우리 관례에 따르면 99세가 됩니다.
10년 전에는 미수(米壽)의 나이라고 해서 미국에 다녀왔어요. 같이 가기로 했던 둘째 딸네는 집 일 때문에 못 가고 혼자이지만 가서 ○혜, ○애, ○순 세 딸들과 여행도 했어요. 막내인 ○순이가 벌써 대학 교단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애들과 당신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엄마와 같이 고생하던 옛날이 가장 행복했다 말하며 다들 공감했어요. 가난한 세월에 전쟁까지 겪었으니까 우리들의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지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고생이어서 행복했어요. 사랑이 깊을수록 행복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그 시절이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내가 구십이 되던 해에는 미국의 애들도 한국에서 다같이 모여 5일간 제주도 여행을 했고요. 여행을 끝내면서 당신이 잠들어 있는 산소에도 다녀왔고요. 막내가 “이다음에 나도 한국에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누우면 안 돼?”라고 해서 내가 “신랑과 애들이 허락해줄까?”라고 했어요. 막내는 큰애들보다 부모와 머문 기간이 짧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요?
못했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내가 2011년 봄에 ○진이가 교수로 있던 한림대학교에서 주는 일송(一松)상을 받았어요. 그때 여러 사람이 주는 꽃다발을 받았는데, 강원도 양구의 군수님이 주는 꽃다발도 받았어요. 뜻밖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까, 양구의 뜻있는 분들이 나와 안병욱 교수가 50여 년 가까이 사회를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실향민이어서 갈 곳이 없으니까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양구로 모시자는 협의를 본 것입니다. 둘 다 구십 고개를 넘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고마운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군수가 직접 수상식에 와 꽃다발을 주었던 것입니다.
양구는 북녘땅과 가장 가깝고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파로호를 둘러싸고 있는 풍치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그 호숫가에 있는 공원에 나와 안 선생을 위한 기념관을 건설하고 우리 둘을 모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안 선생은 93세에 세상을 떠나 기념관 옆에 잠들고 계십니다. 부인께서도 세상을 떠나면 안 선생과 함께 잠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안 선생의 안식처 옆자리에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잠들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호숫가이기 때문에 기념관에 온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고 가족들도 찾아오기 편한 곳입니다. 기념관 안에는 나에 관한 사진들과 기념품이 진열되어 있고 가족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요. 당신에게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나보다 더 고맙게 만족할 것입니다.
서울에 사는 가족과 친지, 제자들은 물론이고 캐나다나 미국에 있는 이들도 한국에 오면 들러보곤 합니다. 다행히 내 건강이 허락하기 때문에 벌써 4~5년 동안 그 기념관에서 양구의 여러분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강좌를 개최해 3년간 직접 강의도 하고 후배와 제자 교수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진과 ○우도 다른 강사들과 함께 강의를 돕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두 과정을 진행해왔는데, 내가 마지막 특강을 맡아주기도 했어요. 둘이 같이 잠들 곳이고 옆의 기념관에는 많은 사람이 참관해주겠기에 감사한 마음을 함께해줄 것으로 압니다.
또 한 가지 약간 놀라워할 사실을 얘기해야겠네요. 내가 당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 1960년 초부터 30여 년간 많은 일을 했지요. 그중에서도 라는 책이 나온 후부터 10여 년은 전국적으로 나와 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관심을 받기도 했지요. 그 후부터는 비교적 조용히 일하면서 꾸준히 저서도 남기고 강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정초에 KBS1 프로그램 에 나가 한 시간 동안 행복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같은 방송국에서 한 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이 방영되었습니다. 내 생애에 관한 기록 다큐멘터리였지요.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다른 TV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초청을 해와 내가 사양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마치 행복을 알려주는 멘토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 그 방송들을 계기로 조선일보에서 두 차례, 동아일보에서도 두세 차례 내 얘기가 보도되었고 문화일보와 매일경제신문에서도 큰 비중으로 소개되는 기사가 실리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김 교수가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의 교포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의사 방군은 옛날부터 잘 아는 제자였지요? 한국까지 찾아와 큰절로 인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 간접적인 영향으로 과거에 썼던 책들 와 가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종교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가 다시 출간되었고 몇 권의 수필·수상집이 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새로 나온 책들 가운데서 라는 책은 널리 알려진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말년에 다시 한 번 장·노년층을 상대로 한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애독자가 생겼습니다.
그 책 때문에 청탁이 들어와 강연회도 몇 해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2017년에도 한 달에 평균 15~16회의 강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애가 전화를 걸어서, “아들과 사위들이 다 정년으로 쉬고 있는데 아버지 혼자서 일하시네요?”라면서 다른 애들과 같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내 남편이 최고!’라면서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함께 지낼 때는 내가 교만해질 것 같아 “당신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했지만 지금의 내 나이를 보면 당신도 감탄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당신이 있다면 내놓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자랑하고 칭찬해줄 사람이 옆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 가지 더 추가할까요? 내가 2016년 말에는 ‘도산인상 교육상’ 받았고요, 금년에는 유한양행에서 주는 ‘유일한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가을에는 동아일보에서 주는 ‘인촌상’까지 받았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세 분을 기리는 상을 다 받았습니다. 상금도 당신은 상상 못할 정도로 많았고요. 이제는 더 준다고 해도 사양할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식 때 ○예가 당신 대신 자리를 채우곤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예를 보고 사모님이 젊고 아주 미인이라고 부러워했어요. 사실은 당신이 더 아름다웠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요. 어제도 지방에 강연을 갔는데, 사람들이 김 교수가 얼마나 늙었는가 보러 가자고 해서 왔는데 이전보다 강연이 더 좋았다며 감사하다는 겁니다.
여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대놓고 자기자랑을 하네…. 그러지 마세요. 다른 누구보다도 당신에게는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았어요. 믿기 어려우면 주어지는 시간에 우리 함께 갈 양구의 기념관 ‘철학의 집’에서 내가 다 설명해줄게요.
무어라고 끝을 맺을지 모르겠네요.
보고 싶어요! 왜 눈물이 나지요? 많이 사랑했는데….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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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길렀고 지금은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을 하고 아침식사로 계란, 사과를 먹는 게 건강 비결이다. 후배들과 신촌 카페에서 담소를 즐기는 따뜻하고 다감한 한국 철학계의 아버지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지난 11월 6일 건국 15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받아 감상한 북극 다큐멘터리 영화 'Angry Inuk' 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북극의 후예 'Angry Inuk'는 음식문화와 이누크 족의 생존권에 대한 투쟁을 그린 영화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을 서방국가들이 반대하는 것처럼 이누크 족의 주식
(主食)인 물개를 잡아먹고 모피를 파는 행위에 대한 유럽연합이 규제 법령을 만들었다. 이에 대한 부당성을 홍보하며 이누크족의 관계법령 개정을 위한 민주적 투쟁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아주 인상적으로 우리도 어떻게 미국이나 중국의 무역및 정치적 규제에 대처해야 하는가를 벤치마킹할 수 있는 좋은 영화라 생각되었다.
환경보호집단 세력과 EU가 물개를 잡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면서 이누크 족에 대해서만은 물개를 잡는 것을 예외로 인정하였지만 물개로 만든 모피를 파는 상업행위는 여전히 규제대상이었다. 이를 아주 평화롭게 민주적으로 서로 감정상하지 않고 해제를 요청하는 자세와 태도는 존경할 만 하였다. 특히 캐나다 정부의 소수민족 보호 행위도 돋보이는 영화였다.
이누크족은 캐나다, 러시아, 그린란드에 광범위하게 산재하여 생활하는 민족으로 동양인의 후예와 같은 모습이다. 이들이 소수민족으로 단합하여 지식층이 부족한 민족이라 학생들까지 동원 EU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당당하게 유럽연합의 의원들에게 법 규정의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지적한다.
소와 돼지, 닭과 같은 짐승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인들과 마찬가지로 물개는 자신들의 주식이자 이를 잡아 이웃들과 나무면서 살아온 민족임을 소개하고 물개를 잡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그 부산물인 물개로 만든 모피를 팔아 생활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도 인정해 달라고 하지만 EU측은 그에 대한 규제를 풀지 않는다.
그러자 사용 후 버리려 해도 쉽게 처리할 수 없는 않는 인조 모피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천연모피를 자연스럽게 선전하는 그들의 상술도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모드여서 더욱 호감이 가는 영화였다.
그들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면서 물개관련 법규의 부당함을 홍보하고 알리자 환경보호단체도 섣불리 그들과 만나 논쟁을 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을 통해 당당하게 뒤에 숨어서 이야기 하지 말고 당당하게 나와서 대화할 것을 제의한다.
캐나다 정부도 소수민족 보호차원에서 이들을 지원하고 있고 그 대표가 주한 대사관에 까지 초청을 받아 와서 당당하게 물개 잡는 것과 모피를 파는 상행위가 당연한 생존의 문제임을 주장하는 홍보활동은 우리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미국이 무역규제를 하고 중국이 사드로 보복을 가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심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당당하게 평화적이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꾸준히 부당한 규제를 타파하기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를 본 이후 며칠 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22번째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매스컴이나 TV를 통해서만 보았던 별들의 잔치에 직접 참석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
항상 보았듯이 빨간 카펫이 길게 깔리고 멋진 남녀 배우가 그 위를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한다.
부산은 매우 역동적이고 활발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필자가 좋아하는 생선회에 대한 문화도 발달한 곳이어서 항상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이다.
이전에 몇 번 관광차 왔을 때도 자갈치시장 등 부산은 시끌벅적하고 사람 부대끼며 사는 맛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이곳은 떠나고 만나는 인생의 애틋함이 느껴지는 항구도시이며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기도 하다.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정책기자단에서 20여 명의 기자가 함께 부산 국제영화제 취재차 여행을 시작했다.
하필 비가 내려서 걱정이었지만 하얀색 비닐 우비로 온몸을 칭칭 싸고는 내리는 빗방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막식장을 찾았다.
비 오는 날씨임에도 수많은 사람이 영화제를 보기 위해 모였다.
외국인도 많았고 바로 옆자리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축제인 듯 즐기는 모습이었다.
개막식 전 축하공연으로 김용걸 댄스팀이 웅장한 볼레로 음악에 맞춰 멋진 군무를 보여주었다.
드디어 조각 미남 장동건 씨와 소녀시대 윤아 양의 사회로 개막식의 닻이 올랐다.
집행위원인 강수연 씨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도 여전히 아름다웠고 미국의 올리버 스톤과 중국의 리샤오펑, 이란의 바흐만 고바디 등 많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무대에 올라 인사를 전했다.
특별한 시상식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창설부터 20여 년을 함께한 고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기리며 ‘지석 상’을 신설했는데 아시아영화의 발굴과 격려를 위함이라고 한다.
올해로 22년째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명실공히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었다.새로운 작가를 발굴 지원함으로써 아시아 영화의 비전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1996년 시작되어 한국과 아시아 영화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부산 국제영화제이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을 상영한 이후 혼란을 이어오던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예전처럼 활기를 되찾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는데 역시 강수연 씨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니 우려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래도 이날 개막식에 모인 영화애호가들을 보니 우리 영화계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큰 화면으로 무대 앞자리의 유명 영화배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성기도 보이고 손예진, 문근영의 모습도 보였다.
개막식이 끝난 후 상영한 개막작은 오랜만에 영화계에 돌아온 문근영의 이라는 작품이다.
초록 식물의 화면이 아름답게 펼쳐진 신비하고 독특한 소재로 문근영의 촉촉하고 서늘한 눈 연기에 흠뻑 빠진 좋은 영화다.
먼 항구도시 부산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을 보았으니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기억은 필자 마음속에 영원히 저장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다.
행복한 추억으로의 여행을 마쳤다.
몇 해 전 소설 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개인적으로 소설가 김훈을 좋아한다. 사물의 본질을 캐 들어가는 생각의 집요함에 몸서리가 나지만 그의 언어는 절제되고 담백하여 울림이 크다. 때로 그의 언어가 고답적이고 사변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산문집 을 읽으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본질적으로 그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몸의 언어다. 그가 ‘길’에 천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화 은 감독(황동혁)의 영화라기보다 작가 김훈의 영화다. 이미 원작을 통해 빽빽이 작가가 세워 놓은 말의 숲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아니 감독은 애초에 그 삼엄한 언어의 포위망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영화가 전쟁을 배경으로 함에도 창과 칼보다 언어가 주 무기가 된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매우 한국적인 ‘말의 전쟁’이 탄생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십 년 전 정묘년에 호란을 겪었으면서도 명나라를 향한 명분론에 사로잡힌 조정은 아무 대비도 없이 또 한 번의 호란을 맞이한다. 정보는 어두웠고, 군대는 허약했으며, 국가 시스템은 흐트러졌다. 지난번처럼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계획은 공신들의 이기적 작태와 정보 누설로 막혀 부득이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들어와 버틸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한겨울 추위와 허기로 가득 찬 47일간의 기록이다.
영화는 소설처럼 장으로 나뉘어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된다. 영화 초반 김상헌이 성으로 함께 들어가자는 말을 듣지 않은 뱃사공을 죽이고 나중 그의 손녀 나루가 성에 들어오면서 작은 스토리가 만들어지나 영화의 큰 줄기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과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의 말싸움으로 구성된다. 미래를 모르니 판단할 근거도 없고 결론도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식량이 떨어져 간다는 냉혹한 현실뿐이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은 영의정 김류로 대표되는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기득권층과 대장장이 서날쇠(고수)로 대표되는 민초의 대비다. 자신의 실패를 부하에게 뒤집어씌워 죽이는 김류의 비겁한 행위와 자신의 의무도 아니면서 김상헌의 부탁으로 적지로 뛰어드는 서날쇠의 행동은 비록 상투적이기는 하나 낡고 썩은 권력의 위선을 드러내려는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영화의 백미는 김훈의 현란한 내공이 발휘된 김상헌과 최명길의 언어 대결이다. 둘의 논리는 한 치의 빈틈이 없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둘 모두 ‘길’을 말한다는 점이다. 죽음을 각오하여 열리는 진정한 삶의 길도 있고, 비루하지만 삶으로써 얻어지는 내일의 길도 있다. 그리하여 김상헌은 자결로써 죽음을 얻었고, 최명길은 항복이라는 치욕을 통해 삶을 얻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오늘의 현실을 떠올리며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보여주는 지리멸렬함과 해묵은 명분 싸움의 뿌리가 이리도 길고 깊다는 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깨달음 때문이었다. 당시는 정보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모든 정보를 손바닥 보듯 하는 지금도 여전히 전근대적인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역사 위에 잠자는 기분이 들어 모골이 송연했다.
영화가 사실과 다른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자결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사실 그는 죽지 않고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82세까지 장수했다. 오늘에는 지탄의 대상인 그의 명분론은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로 그의 후손들이 승승장구하는 바탕이 된다. 그로부터 시작된 안동김씨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주역이 되며 망국의 씨앗이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씁쓸하다.
필자는 가수 김광석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그룹 ‘동물원’으로 데뷔한 시기가 1984년이었는데 그 당시 필자는 서독지사 주재원으로 나가 있었다. 한동안 한국 대중가요를 듣지 못하고 지내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노래교실에 다니면서 가수 김광석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노래는 소위 기타 치며 젊음을 구가할 때 한창 부르던 포크송에서 잠시 발라드로 갔다가 걸 그룹, 아이돌 시대로 가면서 발라드가 반짝 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노래가 칠팔십년대 노래인데 엄격히 얘기하면 1970년대는 포크송이고 1980년대는 발라드 시대였다. 그래서 지금도 1980년대 노래를 부르면 대학 시절을 끝으로 노래를 안 하던 1970년대 세대들은 신곡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필자도 노래교실에 나가기 전에는 그랬다.
김광석은 주옥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다. 정서적으로도 우리 세대와 잘 맞았다. 가수 김광석은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이지만, 따라 부르기 어려운 다른 가수들과 달리 부르는 사람에 따라 맛도 다르고 소화해내기도 무난했다. 사람 생김새나 하는 행동도 텁텁해서 좋았다.
김광석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애써 찾아가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 평점이 10점 만점에 9,2점으로 높다. 이상호 기자가 만든 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다.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별언급상을 수상했고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답게 김광석 사후 20년 동안 김광석의 노트, 녹취, 공연 장면 등을 세세히 담았다. 김광석의 노래를 제대로 들을 겸, 김광석의 일대기 정도로 생각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정작 김광석 노래는 ‘서른 즈음에’, ‘먼지가 되어’, ‘사랑했지만’ 정도밖에 안 나왔다. 김광석은 자작곡이 많은 싱어송라이터인데 판권을 미망인이 쥐고 있어서 부득이 김광석 작사 작곡이 아닌 노래들만 나왔다고 한다.
김광석은 1996년 1월, 32세의 젊은 나이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는 김광석이 자살할 이유도 없고 자살할 정황도 아니라고 말한다. 부모, 친척들도 모두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당시 유일한 목격자는 미망인이었는데 미망인 말만 듣고 경찰이 자살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초동 수사가 미진해 확실한 증거를 못 잡았고 99% 심증은 있는데 1%가 부족해 아직 진실을 못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 때문에 최근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이 무거웠다. 김광석 사후 20년이 지났는데도 김광석의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대학로에 있는 극장 ‘학전’에 가서 김광석의 흔적을 보고 왔다. 가을에는 대구에 있다는 김광석 거리에도 가봐야겠다.
그녀들은 신인 걸그룹 같았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기 장기를 펼쳐 보인다. 뭘 그리 보여주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초롱초롱한 눈빛을 발사하기 바쁘다. 만화 그리기에 푹 빠져 결국 그룹을 결성해버렸다는 시니어 만화 창작단 ‘누나쓰’. 잠깐 동안의 취미거리로 잊혔을지 모를 노인복지관의 프로그램으로 알게 됐다는 만화. 이제는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으로 만화가 자리 잡았단다. 당돌, 저돌, 돌격 앞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시니어 걸크러시와 한바탕 떠들었다.
요즘 내가 제일 잘나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카툰캠퍼스 사무실. 만화를 매개로 한 교육 사업을 하는 이곳은 ‘누나쓰’가 만화를 배우고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최근 ‘누나쓰’ 멤버의 활동상이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면서 미디어와의 접촉도 많아졌다. 취재가 있었던 8월 중순에도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팀이 다녀갔다. 카메라 앞이 낯설 법도 한데 곧바로 이어지는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이 전문 만화작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누나쓰’는 그럼 어떤 시니어가 모여 탄생했을까?
노영자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서 ‘시니어 만화창작교실’이라는 수업을 받았어요. 기초반 3개월을 거쳐서 심화반 3개월, 총 6개월이요. 처음에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선생님들 열의가 대단하셨어요. 수업에 빠진 적도 없어요. 수업이 다 끝나고 나니까 너무 아쉬웠어요. 그림 좀 그릴 만하고 관심이 좀 싹트려 할 때쯤 과정이 끝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와서 사정을 했어요. 우리 버리시지 말라고요. 옷자락 붙잡고 사무실까지 쫓아갈 거라고 했어요(웃음). 만화는 아직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뭐든지 상상만 하면 꿈도 그릴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2014년 서울문화재단 후원으로 카툰캠퍼스가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했던 만화 자서전 교육이 ‘누나쓰’가 생겨난 배경이 됐다.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눠 체계적인 만화 그리기 작업을 2년간 진행했다. 만화자서전을 넘어 창작 영역에도 재능을 보이는 시니어를 발굴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후원으로 부천시오정노인복지관에 교육의 장을 옮겨와 6개월 과정의 교육을 이어갔다. 만화 교육을 다 마치고 못내 아쉬웠던 열혈 시니어가 카툰캠퍼스 사무실로 찾아와 만화를 배우고 싶다며 애원을 했다. 새로운 세상에 눈뜬 시니어를 외면할 수 없어 카툰캠퍼스는 자체적으로 만화에 관심 있는 시니어 7명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왁자지껄 개성 강한 시니어 카툰 걸크러시 ‘누나쓰’가 지난해 7월 15일 결성! 카툰캠퍼스도 ‘누나쓰’를 만나면서 시니어 교육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 있단다.
김경자 작년 10월에는 빼꼼공원(경기 부천시 역곡동)에서 ‘누나쓰가 간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주민들 캐리커처를 그려드리기도 했어요. 12월에는 작품집 을 냈고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전시회도 했어요. 아동센터, 복지관, 노동복지관 등에서도 캐리커처 봉사를 했어요. 다문화 가정 엄마들 얼굴을 그려줬는데 제 생각에는 타국에 와서 가족들이랑 떨어져 사니까 외롭잖아요. 일부러 입술도 빨갛게 그려주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그려줬어요. 얼굴을 더 화사하고 밝게요.
‘누나쓰’ 인생에 색깔을 입히다
‘누나쓰’는 7명으로 구성됐다. 7명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추억과 사연과 꿈을 담아 만화 작업을 한다. 퇴직 교사인 김옥순 작가는 만화를 통해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오래오래 보면서 자식으로서 보답을 했지만 아버지께는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한 마음을 만화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취재 날 개인 사정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춘자 작가는 천재성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만화작가로 성장했고 한 은행 사외보에 인터뷰도 실렸다. 서영희 작가는 만화를 통해 자신의 병을 알리고 힘든 시간을 꿋꿋하게 이겨나가고 있다.
서영희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요. 2010년도에 발병했는데 육십이 좀 넘어서 발견했어요. 어느 날 밥을 먹는데 떨리기 시작했어요. 이런 병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고요. 고치지 못하는 병이구나 했어요. 제가 처음 파킨슨병 약을 먹으면서 겪었던 얘기를 만화로 그렸어요. 약을 3개월 먹으니까 얼굴이 커지더라고요. 너무 독해서요. 잠만 자고요. 그 이후 약을 또 먹어야 하는데 약만 받아놓고 먹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다리도 떨리고 가족들이 속상해 난리가 났어요. 우울증도 생겼고요. 그러다 큰 병원으로 옮겨 다시 검사하고 약을 바꿨더니 괜찮은 거예요. 어차피 치료받을 생각이면 마음을 바꾸자! 치료를 받으면서 감사의 씨앗을 찾고, 울고불고하면서 짜증내고 화내는 대신 도화지에 다시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했어요.물론 재활을 염두에 두고 하는 활동은 만화 외에도 많아요. 합창, 핸드벨, 우쿨렐레, 난타 등이요.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만화를 그리는 동안 제 손이 떨리지 않아요. 밤 9시면 자던 사람이 새벽 2시고 3시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해요. 그림을 그릴 때마다 평온이 찾아오는 느낌이거든요. 요즘에는 음식 만화를 그리고 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는데 제 레시피를 모아서 만화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조금 늦게 ‘누나쓰’ 멤버에 들어온 이영희 작가와 차영순 작가 또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차영순 작가의 경우 5년간 다져온 사진 촬영 실력으로 멤버들의 사진을 도맡고 있다. 누나쓰 멤버들은 처음 시작할 때의 작품과 지금 작품을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한 모습에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만화 박람회에도 나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또 박람회에 온 관객들 얼굴도 그려주고 봉사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누나쓰’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하고 있다. ‘누나들의 밥상’이라는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담아 인터넷에 연재 중이다. 시니어가 살아온 옛 추억이 담긴 이야기도 실리고 있다. 격주로 누나쓰 멤버가 한 작품씩 쓰고 있고 10월에는 이 글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아직은 그저 색을 칠하고 자신의 얘기를 하는 정도라 말하지만 시니어 세대가 관심 가져볼 만한 무한의 장이 만화가 아닐까. 아이가 좋아하는 전래동화는 시니어의 입을 통해야만 그 맛이 나고 한결 담백하다.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만화 영역에는 늘 시니어의 따뜻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다. ‘누나쓰’라는 이름을 걸고 시니어 프로만화가로 제대로 거듭날 그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 exhibition
무민원화전:
Moomin Original Artworks
일정 9월 2일~11월 26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핀란드 화가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2001)의 손에서 탄생한 ‘무민(Moomin)’의 70여 년 연대기가 펼쳐진다. 무민은 1945년 얀손이 직접 글을 쓰고 삽화를 그린 라는 소설을 시작으로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전 세계 대중에게 알려졌다. 작가가 직접 그린 원화와 더불어 저작권자(얀손의 조카 소피아 얀손)가 소장한 미공개 작품과 오브제까지 총 3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무민캐릭터스, 핀란드 탐페레무민박물관, 헬싱키시립미술관, 헬싱키연극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던 주요 작품들이 이번 국내 첫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는다. 총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되며, 무민 라이브러리, 무민 상영관 등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체험해볼 수 있는 참여 공간도 함께 마련된다.
The Selby House:#즐거운 나의 집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대림미술관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의 개성 넘치는 라이프스타일을 기록하는 아티스트 토드 셀비(Todd Selby, 1977~)의 작품 400여 점을 총망라한다. 이번 전시는 그의 대표 사진들뿐만 아니라, 일상 소재에 위트를 더한 일러스트레이션, 영상, 그리고 새롭게 창작한 대형 설치 작품까지 만나볼 수 있다. 입구부터 시작해 전시장 내부, 정원, 카페까지 미술관 전체가 즐거움으로 가득한 ‘셀비의 집(Selby’s House)’으로 꾸며졌다. 유명인들의 사적 공간을 담은 사진 작품이 주를 이룬다. 작가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거실, 침실, 작업실을 재구성한 ‘셀비의 방’과, 그의 유년기 시절 꿈과 기억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셀비의 정글’은 관객이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다.
◇ book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하는 마지막 말들
재닛 웨어 저·인물과 사상사
간호사로서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는 데 헌신해온 저자가 임종 환자를 지켜보며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등을 기록했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은 탄생 못지않은 기적임을 말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서울편
유홍준 저·창비
1993년부터 시작한 답사기가 남도, 제주, 북한, 일본 등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서울의 문화유산과 역사, 인간사 등을 통찰력 있게 바라본다. 종묘와 더불어 창덕궁, 창경궁 구석구석을 살피며 조선시대 건축의 아름다움과 삶의 애환 등을 담았다.
◇ movie
안녕 히어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로, 오늘날의 노동 현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품을 연출한 한영희 감독은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 이후 이에 대한 다양한 화두가 한국 사회에 등장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현실은 나아지지 못한 실정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노동과 해고의 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그는 영화의 영문 제목을 ‘굿바이 마이 히어로(Goodbye My Hero)’라고 지으며 “세상의 영웅(노동자)들이 더는 짓밟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개봉 9월 7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한영희 출연 소년 현우, 아빠 정운
치어댄스
일본 최고의 고교 치어 댄스팀 ‘제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팀의 탄생부터 이후 3년간의 도전기를 담았다. 인생에서 가장 고민하고 갈등하면서도 아름다웠던 고교 시절을 그린 성장 스토리로 중장년에게는 추억을, 청춘들에겐 용기를 북돋워준다. 한국에서는 로 잘 알려진 히로세 스즈가 몸치 소녀 ‘히카리’ 역을 맡았다. 또 로 익숙한 아마미 유키가 호랑이 선생님 ‘사오토메’ 분을 연기하며 훈훈한 사제지간의 모습을 담아냈다. 출연 배우들이 완벽한 동작을 연출하기 위해 반년 동안 특훈과 합숙 기간을 거친 것으로 알려지며 영화 속 치어리딩 장면이 기대를 모은다.
개봉 9월 21일 장르 드라마 감독 가와이 하야토 출연 히로세 스즈, 토미타 미우, 아마미 유키 등
◇ stage
쿵짝
지난해 초연에서 전 회차 매진 기록을 달성했던 뮤지컬 이 1년 만에 재연을 확정지었다. 주요섭 작가의 단편소설 의 옥희를 주인공으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메시지와 삶의 의미에 대해 재조명한다.
장소 동숭아트센터 일정 9월 30일까지 연출 우상욱 출연 윤여진, 권태진, 조현식 등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신념을 지키려는 선생님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을 수 있다고 말하는 학생들 사이의 대립을 그렸다. 반전을 거듭하는 탄탄한 구성과 빠른 전개, 잘 짜인 논리로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일정 9월 8일~10월 15일 연출 이재준 출연 우미화, 박정복 등
틱틱붐
배우 이석준, 이건명, 배해선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성기윤을 비롯해 의 원년 멤버들이 뭉쳤다. 의 극작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으로 작품을 향한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소 대학로 TOM 일정 8월 29일~10월 15일 연출 박지혜 출연 이석준, 이건명, 배해선 등
서편제
소리꾼의 길을 찾아나서는 아버지 유봉과 그의 딸 송화, 의붓 남동생 동호의 50년을 넘나드는 소리 인생을 그린다. 판소리 가락과 함께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이 제작한 서정적인 록, 발라드 등이 독특한 앙상블을 이룬다.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일정 8월 30일~11월 5일 연출 이지나 출연 이자람, 차지연 등
제목만 봐서는 범죄 수사 영화나 액션 영화로 착각할 수 있다. 상영관도 몇 군데 되지 않는다. 8월17일 개봉했으나 포스터도 안 보이고 홍보도 안 되어 있는 편이다. 예매순위도 잘나가는 영화 ,< VIP>, , 등에 가려 애니메이션 영화 수준이다. 눈썰미가 좋거나 관심을 갖고 찾아서 봐야하는 영화이다. 네티즌 평점 10점 만점에 9.8점의 수작이다.
최승호 감독으로 되어 있으나 KBS와 MBC출신 해고 기자, PD들이 만든 뉴스타파에서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출연에 전 대통령 이명박, 전 한국방송협회 부회장 김재철, 전 MBC 사장 김장겸 등 실제인물이 등장한다. 연장선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등장한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공화국이다. 일반인들은 언론 탄압이 심하던 군부독재 시대 이후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방송과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언론의 자유가 통제되면 일반 시청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진실이 어떻게 호도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영화의 시작은 MB정권이 진땀을 흘리게 한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사태였다. MB정부는 이 사태가 언론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고 언론 장악에 들어간다. 경찰력을 동원해 사장을 교체하고 낙하산을 투입한다. 그 과정에서 충돌한다. 2년 후 MB정권의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MBC도 낙하산 인사를 투입하여 언론을 장악한다. 일단 언론이 장악되고 나서는 정부 홍보 일변도로 방송이 변하고 세월호 사고 당시에도 전원구조라는 엄청난 오보를 낸다. 국정 농단사태도 진실을 감추려다가 공영 방송 장악만으로는 막지 못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이런 일련의 투쟁 과정을 통해 담당 PD, 기자 등은 해고당하거나 제작진에서 물러나 한직으로 전보되었다.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들이다. 이들이 그 후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300여명이 해고 내지는 업무 정지 처분을 받았고 소송을 통해 80명 중 71명이 복직되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언론 장악 음모의 주범은 전직 대통령 이명박, 박근혜로 본다. 그리고 공범자들은 낙하산으로 투입된 사장들이다. 언론계에 있던 사람들이고 심지어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무자비하게 파업에 동참하거나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내 보낸 담당자들에게 철저히 등을 돌리며 철퇴를 휘둘렀다. 권력의 하수인이 된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 언론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 신뢰를 잃은 KBS와 MBC대신 종편으로 시청자들이 많이 옮겨 간 이유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재미가 없을 것 같지만, 어지간한 액션 영화보다 재미있다. 가끔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옮긴 영화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언론이 존재하지만, 습관적으로 시청하던 언론 편식이 얼마나 위험한 판단 기준을 주는지 알게 한 영화이다.
첨단시대를 사는 사람들. 열쇠가 없어도 집에 들어간다. 더우면 에어컨을, 추우면 보일러를 켠다. 어른이고 어린이고 눈은 늘 스마트폰 세상. 쉽고 편리한 현대의 삶은 작은 불편함도 허락하지 않는 듯 돌아간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도시의 간편함을 버리고 살 수 있을까? 자연 힐링 다큐멘터리의 간판 프로그램, MBN 두승택 피디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자연과 벗하며 흙 밟고, 바닷바람 맞으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지도 벌써 6년째라니 할 말 꽤나 있지 않을까.
자연 다큐가 인기 있다? 도시인은 답답하다
종편 채널 개국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방송사별로 선을 보였다. 시청률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무한 반복하는 와중에도 는 살아남아 남녀노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의 시작은 가벼웠으나 이렇게 창대할지는 상상 못했다고 했다.
“조금 가볍게 시작했습니다. 삶의 다양성,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꼭 도시에서 현대적으로 사는 게 다가 아니란 것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힐링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졌어요. 그리고 산에 들어가 살고 싶은 이들을 생각해 프로그램의 형태가 흘러갔습니다.”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게 좋으면서도 세상살이가 어려워졌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두 피디. 탈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것이고 위안을 주는 프로그램이 된 것 같단다.
진정성을 담다
자연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아예 대놓고 와 헷갈리는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종편 채널 프로그램 중 도전자도 많고 경쟁자도 많은 프로그램이 바로 이다. 두 피디에게 만의 매력을 물어보니 진정성이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진정성이 시청자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요. TV에 나오는 장소와 시청자가 있는 공간이 다르지만 서로 맞닿는 공감을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자연에 살고 싶은 시청자의 바람 같은 것도 작용을 했죠. 약간의 충족? 대리만족 같은 거요.”
시청자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잡은 이유 중 하나가 막내 작가들의 노력이라고 말했다. 6년째 이어오는 프로그램이기에 아이템을 찾기 위한 막내들의 고충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전국 이장님 연락망은 물론이고 각자의 노력으로 매주 아이템을 얻는 데 도가 텄다. 그 덕에 소위 ‘레전드(전설)’라고 불리는 출연자를 방송으로 소환할 수 있었다.
두 피디는 아무래도 첫 회 출연자인 김용호 할아버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옷을 벗고 사는 말 그대로 자연인이었다. 1회 차 방영 당시 생선 대가리 음식을 비롯해 충격적인 영상으로 시청자의 리모컨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대망의 첫 회, 벌거벗은 진짜 자연인을 만나다
“다 벗고 산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설마 했죠. 그런데 진짜더라고요. 제가 앞장서서 가고 뒤에서 여자 작가가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 지르니까 그때서야 뭘 좀 입고 나오셨어요.”
전화도 안 되던 김용호씨는 동네 사람 소개로 알게 됐고 세 번 찾아간 끝에 만나 촬영 승낙을 얻어냈다.
“본 촬영을 하려고 우리 팀이 갈 때도 언제쯤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도 산 아래 계곡에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계셨어요. 진행자인 개그맨 이승윤씨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진짜 많이 당황하더라고요.”
카메라 감독들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눈치였다. 정작 당사자는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태연하게 벗고 다녔다. 게다가 팀원들에게도 벗으라고 권했다고. 설득 끝에 진행자만 상의를 벗는 조건으로 촬영을 시작했다. 두 피디는 김용호씨가 인상에 남는 이유가 꼭 독특한 삶의 방식만이 아니라고 했다.
“촬영을 1박 2일 하는데 처음에는 촬영팀을 많이 경계하셨어요. 그런데 마음을 여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산에 오래 살아서 외로운 것도 있었겠지만 정말 순수하셨어요.”
말벌을 쫓는 자연인에게 순수를 느끼다
두 피디가 꼽은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출연자는 ‘벌 아저씨’라고 불리는 허명구씨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나는 자연인이다’를 검색하면 웃기게 편집된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상을 보면 진행자와 얘기하다가 갑자기 뛰어가서 말벌을 잡으세요. 양봉을 하는 분이셨는데 말벌이 엄청난 적이거든요. 말벌 한두 마리가 벌통 하나를 다 죽이거든요. 그분 입장에서는 필사적이어야만 했던 상황이죠. 보통 사람들은 우리가 촬영하고 있으면 급한 일이 있더라도 협조를 하는데 그분은 촬영이고 뭐고 본인 일이 중요했던 거고 그만큼 순수하신 분이셨죠.”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후배 피디가 방송 못 나갈 거 같다며 울상이었다. 허명구씨가 말하는 것도 조금 어눌했고 찍어온 영상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촬영해온 영상을 봤는데 매력이 많더라고요. 시청자들 반응도 물론 좋았고요.”
텐트에서 생활하는 말벌 아저씨가 진행자인 윤택씨랑 누워서 잠들기 전에 “누우면 행복하다”면서 “행복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장면에서는 울컥했다고 한다.
산으로 도망간 인생 패배자들이 아닙니다
두 피디가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에게 를 만든다고 하면 “그거 인생 실패하고 산에 들어가 사는 패배자들 보여주는 프로그램 아니야?” 하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두 피디는 “산에서 살아내는 걸 성공하신 분이라면 도시에서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할 분들”이라고 말한다고. 아무나 산에서 못 산다는 얘기다.
“산에서 살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자연에서 촬영을 하다가 무리들이랑 조금만 멀어져도 밀려오는 오싹함이 장난 아니에요. 전깃불도 없이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두 피디는 독자와 시청자께 꼭 하고 말이 있다고 했다.
“출연자가 궁금하셔도 찾아가지 않았으면 해요. 프로그램 초반 출연자 한 분의 정보가 알려진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사는 곳에 시청자들이 찾아가고 좀 힘들게 하셨더라고요. 결국 그 분은 살던 자리를 나오셔야만 했어요. 20회 쯤 넘어서는 출연자가 나오는 지역 정보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길게 알아보고 투자를 해서 자리를 잡으신 건데 방송 출연으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기가 흐른다. 목소리의 음파는 잔잔하고 웃음소리는 까르르 하늘로 밝고 높게 퍼진다. 유연하고 정직하고 때로는 강인한 느낌. 심상을 모아보니 여성이라는 글자에 다다른다. 신학자이며 여성학자인 현경 교수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살림이스트 워크숍(주최 문화세상 이프토피아)’에 가면 누구든지 빛나는 눈빛과 밝은 에너지를 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낯선 이름의 행사가 올해로 벌써 13회째란다. 도대체 어떤 기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매년 꾸준하게 열리고 또 이렇게 뜨거운지 살림이스트 워크숍에 찾아가봤다.
뉴욕 유니온신학교(UTS)의 종신 교수이자 종교학자·환경운동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현경. 여름방학이 되면 매년 한국으로 돌아와 뭔가 큰일을 꾸미느라 바쁘다. 그게 바로 살림이스트 워크숍이다. 올해는 7월 7일에서 9일까지 3일간 서울시 종로구 (재)여해와 함께 평창동 대화의집에서 열렸다. 지금까지 살림이스트 워크숍은 국내외 명사를 초청해 명상하고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져 왔다. 이 행사의 중심은 여성이다. 여성의 온전함과 영성, 치유를 얻고 발전시키는 시간으로 해마다 꾸며지고 있다. 제주여성 평화기행, 여신 기행 등 이색적인 콘텐츠로 여성들과 함께 걸어온 ‘살림이스트 워크숍’이다.
지구 여성의 이야기, 영화가 되다
올해 ‘살림이스트1 워크숍’은 지금까지 했던 것 중에 가장 도전적인 워크숍이었다. 영화제로 살림이스트 워크숍을 진행한 것. 외국 작품 5편과 한국 작품 1편을 선정해 상영했다. 외국 작품의 경우, 미국 뉴욕에서 2014년부터 매년 진행돼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 음악영화제2의 올해 출품작 중에서 골랐다. 영화는 세계여성의 지혜, 원주민의 영성, 지구를 살리는 생태적인 힘, 사회 정의를 기준으로 삼았다. 올해 첫선을 보인 영화제 형식의 살림이스트 워크숍은 쭉 고민해볼 계획이다. 3일이 아니더라도 2일 정도를 할 수 있게 추진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현경 교수는 말했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세계 여성을 비추다
첫째 날은 원주민의 전통 속에서 배워야 할 가치, 둘째 날은 여성의 지혜와 지구 생태 정의,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세계 원주민의 영성과 한국의 샤머니즘이 주제였다. 첫날 오프닝 영화로 선정된 (감독 클라우스 쉥크)은 히말라야 산맥 고지대에서 사는 2명의 티베트 여성이 문명사회인 런던을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다. 여행 내내 보이는 이들의 통찰력 있는 행동이 ‘살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둘째 날은 몽고 초원을 배경으로 독수리 사냥꾼을 꿈꾸는 소녀와 동물의 소통을 다룬 (감독 오또 벨)와 전통공예로 빈곤을 극복한 키르기스스탄 여성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감독 안드레아 오데진스카), 수천 명의 케냐 여성을 모아 나무를 심으며 환경·인권 보호 및 민주주의 운동을 펼친 왕가리 마타이(노벨평화상 수상·2004)의 일대기를 보여준 영화 (감독 리사 머튼·알란 데이터)을 상영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감독 안드레아 오데진스카의 영화 과 박찬영 감독의 영화 이 마지막 날을 장식했다. 은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오데진스카가 여성으로서 겪은 일들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영화 은 국민 만신 김금화 일대기를 옛 영상과 배우의 재연을 섞어 만든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주인공 김금화 만신이 초대돼 참석자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로 신을 모신 지 70년이 됐다는 김금화 만신은 참가자를 향한 고마움과 함께 가정의 평안과 소원성취를 기원했다.
1. 살림이스트는 현경 교수가 만들어낸 용어다. ‘모든 것을 살려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연의 해방과 온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여성의 원천성을 찾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내 안의 신성, 내 이웃, 사회, 지구 전체 등 주변의 생명체들을 돌보고, 공격과 충돌이 아니라 상생과 대화를 믿는 것이다. 살림이스트는 한국의 에코페미니스트라고 현경 교수는 규정한다.
2. 패러다임 전환 음악영화제(PARADIGM SHIFTS, MUSIC & FILM FESTIVAL).
이 영화제는 지구, 바다, 야생 동물 및 성지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전 세계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제다. 올해도 뉴욕에서 지난 6월 13일에서 17일까지 개최됐으며 내년에는 아시아를 주제로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