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2020년은 나의 고교 졸업 50년, 대학 입학 50년이 되는 해다. 고교 졸업 50년 행사와 기념 여행은 코로나의 위험 속에서도 이미 6월에 강행했다. 이보다 앞서 5월에는 대학 동기들이 모교에서 재상봉 행사를 했다. 많이도 달라진 교정을 둘러보며 반세기 전에 맺은 우정을 되새긴 모임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은 탓일까. 고려대 독문과 70학번 동기들은 전북 군산 고창 일대를 도는 노래여행을 추가로 기획했다. 서울, 서천, 부산에서 각각 모인 여덟 명은 7월 25~26일 1박 2일 동안 호쾌(豪快)하게 술 마시고 창쾌(暢快)하게 노래했다. 동기인 전북대 독어교육과의 이신구 명예교수가 2월에 ‘헤세, 토마스 만 그리고 음악’이라는 책을 낸 이후, 단톡방을 중심으로 음악에 대한 관심과 화제가 풍성해졌다. 그래서 ‘한번 신나게 노래 부르며 놀아보기로’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늘 친구들을 도와온 캠퍼스 커플 김한옥(사업)-김영숙 부부가 앞장을 서고, 군산의 뮤직 카페 단골인 이신구 교수가 생각을 더해 노래경연 모임은 이내 결성됐다. 모인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목자(目眥,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가 불량하다고 내가 늘 지청구하는 부산 사내 윤종기(1등 입학자다), 엄처시하(嚴妻侍下)에 사는 음악광 독일 전문가 배종은(그의 부인이 嚴씨다), 경쟁자 없이 동기회의 회장을 오래 맡고 있는 강국회, 서천에서 활동 중인 연극 연출가 고금석 등이다.
우리가 한바탕 푸지게 논 장소는 군산의 은파호수 옆 ‘Music4u’(뮤직포유) 카페. 토요음악회를 200회나 개최한 곳인데, 이 교수는 이곳에서 문학 강연도 해왔다고 한다. 카페 2층의 널따란 음악당에는 ‘4u’를 발음대로 옮긴 ‘抱裕’(포유) 액자가 걸려 있었다. 서로 너그럽게 안는 여유를 가지라는 뜻인가. 나는 서로 끌어안고 노는 抱遊, 이렇게 쓰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왜 그렇지 않던가. 흥이 나서 노래를 하다 보면 어깨를 겯거나 서로 안고 놀게 되지 않던가.
우리는 누가 무슨 노래를 잘 부르는지 이른바 각자의 18번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내의 노래, 올챙이 멜로디(Unchained Melody), 엽서 한 장, 모란이 피기까지는, 명태, 메리케인부두 그런 노래들. 나는 이 중 ‘명태’(변훈 작곡)를 50년 전 대학 1학년 때 고금석에게서 배웠다.
고금석은 서예에 입문해 이미 입선도 두어 번 한 사람인데, 산곡(山谷)이라는 호를 쓴다. 내가 얻다 대고 중국 송나라의 서예가 황정견(黃庭堅, 1045~1105)과 같은 호를 쓰느냐고 따졌더니 그의 호가 산곡인 줄 몰랐다, 사는 동네 이름이 산너울이라서 그렇게 지은 것뿐이라고 했다. 괘씸하지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하여간 나는 50년 전 산곡에게 내 레퍼토리 ‘메리케인부두’(남일해 노래)를 떠넘기고 ‘명태’를 내 노래로 만들었다. 앞으로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명태’를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나는 치사하게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원래 내 노래인 것처럼 두 가지를 다 불렀다. 결국 산곡에게서 노래를 빼앗은 꼴이 돼버렸다.
이번 군산 여행에서 나는 노래를 되돌려준다고 했다. 그리고 50년 전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 그는 ‘명태’를, 나는 ‘메리케인부두’를 불렀다. 그가 부르는 ‘명태’는 호소력이 컸다. 오래 연극을 해온 목소리의 울림이 좋은 데다 삶의 곡절과 간난신고(艱難辛苦)가 노래에서 우러나왔다. 그에 비하면 내 노래는 흥은 좀 있으나 스스로 들어봐도 그 이상의 무엇이 없다.
웃고 떠들고 노래한 뒤 호텔에 돌아와 산곡과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명태’를 부르며 둘의 가사를 대조해보았다. 내가 그에게서 배웠는데 왜 내 ‘명태’와 그의 ‘명태’는 다를까. 괄호 안이 그의 가사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큰물)을 호흡하고 길이나(기다란)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뭉치고 펑퍼지고 몰려다니다가) 어떤 어진(착한)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집트(제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쐬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그는 ‘명태’를 어떻게 부르게 됐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서 노래를 배운 뒤 가사를 찾아서 외우고 익혔다. 말하자면 나는 그동안 교과서처럼 살아왔고 산곡은 열정이 닿는 대로, 마음이 이끄는 데로 움직이며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 노래를 되바꾸자, 도로 ‘명태’를 가져가라고 한 데 대해서도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고 ‘메리케인부두’가 돌려주기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닌 건 확실하다.
그런데 나는 이 노래를 어떻게 알았던가. 모르겠다. 1965년 무렵 남일해가 부른 노래라는 것만 알 뿐인데 이 기억도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2절에 “트위스트 춤을 추는 신나는 그 리듬에”라는 가사가 나오는 걸 보면 1960년대인 건 확실하다. 원곡은 그렇지 않겠지만 나는 이 노래를 한껏 늘어지게 타령조로 부르곤 한다.
다음 날은 고창으로 옮겨 선운사, 미당 시문학관, 인촌 김성수 생가 등을 둘러보았다. 비 내려 수량이 풍부해진 선운사 계곡의 물은 검게 보였다. 참나무의 낙엽에 들어 있는 탄닌 성분이 녹아든 탓이라고 한다. 덕분에 수면에 비치는 풍경은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일정으로 점심을 먹을 때, 산곡은 노랫가락을 한자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기민요였다. “바람이 물소린가 물소리 바람인가/석벽에 걸린 노송 움츠리고 춤을 추네/백운은 허우적거리며 창천에서 내리더라.” 푸른 하늘에 흰 구름, 그리고 소나무와 바람과 물. 짧은 노래에 한 폭의 그림이 들어 있다. 경기민요의 많은 소절 중에서 가장 시적인 대목이었다.
그렇구나. 산곡은 이미 내가 모르는 곳에 가 있고, 그의 노래는 더 풍부해졌구나. 그러니 굳이 ‘명태’를 되찾아갈 필요가 없겠지.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노래를 되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각자 ‘명태’를 깜냥껏 부르고 편한 대로 ‘메리케인부두’를 흥겹게 노래하면 되는 것이었다. 노래가 탄닌이 되어 그와 나, 그리고 우리 모든 벗들의 우정이 수량이 풍부한 냇물처럼 흐르고, 키 크고 잘 자란 나무처럼 여울지면(여울지다=식물의 열매나 꽃, 잎 따위가 몹시 많이 열리다.) 되는 거 아닌가.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것이고, ‘글이 곧 그 사람’이듯 ‘노래도 곧 그 사람’인 것이다.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를 넘어 한발 더 나아간 ‘온택트'(ontact) 시대가 다가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 흐름이다. 온택트란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을 뜻한다. 즉,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외부와 연결, 각종 활동을 전개하는 새로운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니어들도 온택트 환경으로 전환되는 일상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노노(老老) 배우기’가 필요하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어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느라 학원에 다녔는데 20명의 수강생 중 내 나이가 가장 많았다. 처음에는 아들보다 어린 선생님을 받들어 모시는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나를 모시느라 불편해했다. 게다가 수강생들이 컴퓨터 다루는 기초 지식들을 이미 갖추고 있어서인지 강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이렇게 꾸며야 스웨그(swag) 가득!”, “그런 배경 구성은 개쩐다” 등등 다양한 그들만의 속어도 난무했다. 강사는 내게 “못 따라가시는 것 같으니 따로 쉬는 시간에 질문을 받겠다”며 자존심을 긁었다. 특별한 꿀팁을 제공한다는 강사의 말에 속아 참석한 뒤풀이는 절대 낄 자리가 아니었다. 자기네들끼리의 네트워크 구성에 여념이 없는 그들에게 강의 내용을 질문할 여지는 없었다. 역시 학원은 이익집단이다.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가족, 너희들마저…
그런데 아니었다. 일단 결혼한 아들과 만나는 게 만만치 않았다. 내가 필요해서 만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어렵사리 만나 궁금한 걸 물으니, 요점부터 정리해 빨리 질문하란다. 그러고는 “어~ 아직 이것도 모르세요? 허 참”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내가 영어를 가르치며 하던 말이다. “또다시 너에게 부탁하지 않도록 노트에 좀 적어야 하니 천천히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한다. “적어봐야 소용없어요. 시스템 이해 못하고 그냥 필기만 하면 뭐해요!”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다. 아니꼽고 치사함을 넘어 부자지간의 연까지 끊어지는 거 아닌가 싶어 아들에게 배우기를 포기하고 사위가 좀 나을 것 같아 도움을 청했다. “다 가르쳐드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그러니까 노트북 두고 가시면 원하시는 것들 다 작동되도록 해드릴게요.” 예의 바른 말처럼 들리는데 더 아프다. 학원이 차라리 나았다. 가족이 더 아프게 한다.
젊은이들의 고충
코로나19 때문에 줌(Zoom)을 통한 화상회의를 주관했다. 구성원은 모두 50대 이상이었다. 나이대를 감안해, 사전에 줌 사용 방법 안내 후 휴대전화로 보내준 링크 주소를 누르기만 하면 가능하도록 조치를 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돼도 회원들이 안 들어왔다. 전화를 했더니 “꾸욱~ 누르라는 설명은 도대체 몇 초를 누르라는 거냐?”고 묻는다. 젊은이들의 “허걱!”이라는 표현에 백번 공감했다. 또 영상은 뜨는데 음소거 해제 버튼을 못 찾는 회원들에게 전화를 거니 모두들 그렇지 않아도 문의하려고 했단다. 묻기가 쑥스러웠던 게다. 그렇게 회의 시작까지 30분이 더 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별로 다 살펴줘야 했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시니어의 자존심, 부끄러움 등을 이해하는 나도 이렇게 힘든데, 젊은이들은 오죽하랴 싶었다.
‘노노 배우기’로 극복
온택트 시대에는 시니어들이 피교육자가 되어 젊은이들이 얘기를 잘 들어야 하지만 경청은 엄청난 자제력이 필요하다. 앞서의 예처럼, 자녀들조차도 부모에게 인내심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러니 처음부터 날로 먹으려면 안 된다. 나도 뭔가 노력했다는 근거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일단 인터넷을 통해 ‘ㅇㅇ 하는 방법’을 치면 동영상까지 자세하게 나온다. 어느 정도 공부 후 “그중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답변을 잘해주면 학원 수강료라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좀 써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노노 배우기’다. 다행히 주변에, 답답해서 물었다가 상처를 받고 극복한 친구들이 꽤 있다. 넷플릭스로 영화 보고 인스타그램으로 영상 올리고 줌으로 화상회의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시니어들이 수십 명 이상 있는 밴드나 단톡방에 어려움을 올리면 금방 해결된다. 뭔가 가르쳐주고 알려주고 싶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친구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막함과 뭘 어려워하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천천히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다만 뭘 물어보면 필요 없는 사항까지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존심을 긁거나 상처 주는 일은 없다. 그러니 온택트 시대, ‘노노 배우기’로 극복해보자.
오늘따라 노트북으로 숙제하는 초등학교 6학년 손자가 나이보다 훌쩍 커 보인다. 온택트 시대가 맞는 것 같다.
카톡은 국민의 생필품적 통신수단이 된 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연말연시엔 수첩과 명함을 정리하곤 했는데, 지금은 카톡을 정리하는 게 큰일입니다. 불필요한 동영상이나 사진, 의미가 없어진 사람의 이름을 삭제하고 중요한 걸 따로 갈무리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작업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이 느꼈을 법한 불편과 불쾌함을 덜기 위해 일정한 지침이 필요하다 싶어 카톡 10계명을 만들어보았습니다. 주로 단톡(단체카톡)방에 관한 것들입니다.
1. 시도 때도 없는 “카톡!”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카톡을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톡, 카톡!” 소리가 싫어 묵음으로 해놓거나 아예 문자메시지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 때나 카톡을 보내는 건 실례입니다. 특히 시차가 있는 외국에서 제 흥에 겨워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을 보내면 역효과만 나게 됩니다. 낮에는 전혀 카톡을 읽거나 답하지 않다가 남들 자는 밤 12시, 1시 넘어 답장을 보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2. 정치·종교 이야기 금지
얼마전 모 사회단체의 단톡방에, 어떤 사람이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주당 헌법 개정 초안이 나왔다는 글을 띄웠다가 뭇매를 맞았습니다. “정치 이야기하는 곳 아니다, 거짓 뉴스 띄우지 마라, 대체 누구냐, 나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는데, 그 사람은 나가지는 않은 채 숨만 쉬고 있습니다. 친목과 사교, 공지사항 전달이 주목적인 단톡방에서 정치나 종교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서로 불편해지고 편이 갈려 싸움이 납니다.
3. 삼가야 할 중복·반복
용량이 큰 동영상 또는 사진을 다량 전송하거나 동일 내용을 반복 홍보하는 일도 삼가야 합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 실황 중계를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대부분 그 사진이 그 사진이어서 받자마자 삭제하기 바쁩니다. 잘 선별해 의미 있는 것만 최소한으로 보내든지 ‘사진 묶어 보내기’ 기능을 이용하면 남들이 편해집니다.
4. 기성품 안부·격려 지양
월초나 주초, 또는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힘내세요”, “웃고 사세요”, “오늘도 으라차차!” 따위의 응원 인사가 폭주합니다. 내용이 빤한데 본인이 쓰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같은 걸 하루에 다섯 번 받은 날도 있습니다. 이런 거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어디 가져오는 데가 있어” 하면서 알려주지 않고 뻐기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5. 좋은 글·미담 공해
1960년대에 코미디언 살살이 서영춘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찌개백반~!” 이런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글과 사진을 마구마구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도 자기보다 한참 적은 사람이 인생철학을 거론하며 착하게, 바르게 살라는 글을 보내오면 누가 좋아할까요? 이런 글 중 감동적인 미담에는 출처와 근거가 없는 가짜나 사실이 잘못 알려진 게 부지기수입니다.
6. 억지 초대 자제
서로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모아 단톡방을 개설하는 것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삼가야 합니다. 초대된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야기만 하거나 자칫 말이 엉켜 불쾌해지게 됩니다. 100명 넘는 사람을 초대해 운영하다가 “잠시 잠적한다”며 없어지더니 몇 달 후 다시 나타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게 뭐야, 장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 OB 내지 않기
골프에서는 공이 규정된 지역 외로 나가면 OB(Out of Bounds)라고 합니다. 단톡방에도 OB꾼들이 많습니다. 아내에게 보내는 카톡을 엉뚱한 모임에 날리거나 임대료 빨리 보내라는 카톡을 대학 동창 단톡방에 올려 웃음거리가 되곤 합니다. 정신 차리세요. 간판도 못 다는 사람이 많지만 단톡방 간판을 잘 보세요. 뒤늦게 삭제해도 ‘때는 늦으리’입니다.
8. 댓글 달기 신중하게
수신자가 지켜야 할 것도 많습니다. 행사나 모임에 초대하는 카톡에 눈치 없이 제일 먼저 못 간다고 댓글을 다는 건 한마디로 흥행을 방해해 김이 새게 만드는 짓입니다. 카톡을 빨리 읽는 건 좋지만 불참 통보는 최대한 늦춰야 합니다. 또 어떤 일에 대해 회원들의 반응이나 논의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걸 올리는 건 실례입니다. 이런 중간 낙서는 먼저 글 올린 사람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호응도 얻지 못합니다. 하루 정도 지나 그 일이 정리된 뒤 새 글을 올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9. 딴전·딴청 부리지 말기
여럿이 의견을 주고받는 단톡방에서 그 주제 내의 특정 사항에 대해 둘이서 설왕설래, 지지고 볶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거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다 보면 본인들은 신날지 몰라도 꼴불견이 되기 십상입니다. 개인 카톡으로 1대 1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10. 반응·답장 잘 하기
카톡을 받으면 반응을 보이고 답을 하는 게 소통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묵묵부답인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용이 지겨워 오는 족족 카톡을 지우고 일절 답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자 보낸 사람이 삐쳐서 전화도 안 받더랍니다. 겨우겨우 기분을 풀어주었는데, 영영 안 볼 사람이 아니면 적절히 알은척을 해주십시오. 데이터가 꽉 찬 경우 카톡방에서 나가버려 기분 상하게 하지 말고, 휴대폰 우측 상단의 석 삼자를 누르고 그 아래 기능 버튼에서 ‘대화 내용 모두 삭제’를 눌러 몸을 가볍게 하십시오.
50년이나 이어온 동네 친구 4명의 우정이 깨졌다. 일단 나 먼저 단톡방에서 탈퇴하고 개인적으로 절교 선언을 했다. 문제의 발단은 A와 B의 아내들끼리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오래 된 사이인데 오랜만에 만나 스트레스도 풀 겸 하고 싶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 A의 아내가 월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늘 말쑥한 외모에 승용차도 타고 다녀서 전혀 그런 눈치를 못 챘다. 거슬러 생각해보니 차를 두고 전철로 출퇴근하니 좋더라, 해외여행은 돈이 너무 든다 하며 브레이크를 걸던 일들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던 모양이다.
B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급한 편이다. 친구들이 만난 자리에서 “너 월세 산다는데 무슨 얘기냐?“라고 물은 것이다. 자존심 센 A는 부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대답도 못하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왜 여러 사람 있는 데서 큰 소리로 꼭 그렇게 물어야 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B는 청력이 안 좋아 목소리가 늘 큰 편이다. 그래서 그날도 큰 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친구 C가 왔다 갔다. 이번에는 얼마 못 살 것 같다는 등 행동이 좀 달라 보였다. 어릴 때 봤던 A의 형제들도 함께 불러 저녁식사를 대접하는가 하면, A와 B 부부를 불러 함께 식사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2월 미국 여행에 나는 빼고 두 부부만 초청한 것이다. 새로 산 벤츠가 5인승이라 나까지 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A의 아내가 옛날 얘기를 하던 중 내가 가면 자기가 빠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B가 들을 때는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며칠 후 B가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따로 불러 C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친구를 유언집행자로 지정할 테니 그런 줄 알라고 했다는 것이다.
친구 A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친구 B가 내게 얘기를 다 했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혼자 마음의 정리는 하고 나갔다. 미국에 사는 친구 C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는 A와 긴 시간을 얘기하다 보니 섭섭하지만, 나만 빠지면 되는 일이었다. A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다 보니 여러 일들이 자꾸 틀어진다며 양해를 구했다. B가 내게 C의 이야기를 전하지만 않았어도 그냥 넘어갈 일이었다며 원망했다. 그러고는 그동안 계속 충돌했던 일들에 짜증을 내며 B와 절교의 뜻을 내비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톡방에서 나간다는 말을 남기고 빠졌다. 미국 사는 C의 이름을 보는 순간 더 이상 같이 말을 섞기 싫었기 때문이다. 얘기가 잘됐다고 안심하고 돌아가던 친구 A도 이참에 다 깨버리자며 단톡방을 나갔다. 내년에 C가 다시 한국에 오면, 나는 그를 안 볼 작정이다. A와 B도 같이는 안 만날 것이다. 50년 친구들이 대혼란 속에 휘말린 것이다.
이쯤 살다 보면 친숙함에서 오는 피로감에 싫증이 나는 모양이다. 최근 들어 오래된 친구들끼리 결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한다. 호르몬 변화로 성격도 변하고 건강도 안 좋아지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이유도 있다. 나이 들면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한다는데 실제로는 거꾸로 간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안 보면 된다. 부득이 마주치게 되면 피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마주치게 되는 관계가 고등학교 동창생들 모임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만나 50년을 지내왔으니 친한 관계이다. 그런데 그 중에도 친소관계는 있게 마련이다.
A는 동창회 모임에 좀 늦게 도착했다. 한정식집이었다. 인기 있는 반찬은 먼저 바닥난다. 간장게장이 인기 품목이었다. A가 종업원을 불러 간장게장을 더 갖다 달라고 하자 B가 “늦게 온 주제에 네 돈 내고 사 먹어라”라고 한 것이다. 이 말에 다른 친구들도 같이 웃어 넘겼다. 간장게장은 추가로 주문하면 2만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A는 늦게 온 죄로 간장 게장 맛도 못보고 다른 반찬으로 대충 식사를 한 후 자리를 끝냈다. 그러나 B에 대한 원망이 가슴 속 깊이 박혔다.
며칠 후 A와 B는 같이 골프 라운딩을 할 일이 있었다. 4명을 채운다고 후배 2명도 불렀다. 그런데 B가 지나가는 말로 A의 골프바지가 노인네처럼 헐렁하다며 핀잔을 줬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바지 폭이 좁다며 후배들의 날씬한 바지를 가리켰다. 그날 밤 A로부터 단톡방에 “B와 절교한다”는 내용이 올라 왔다. B에게 보낸 카톡도 복사해 붙였다. “후배들 앞에서 망신을 줬다”는 이유였다. 앞으로 모임에 안 나갈 수는 없겠지만, B와 엮는 일은 피해달라는 뜻이다.
고등학교 동창 관계는 가장 스스럼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서로 간에 비속어도 쓰고 못할 말 없이 다한다. 그러다 보니 도를 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제까지는 그래도 문제가 없었는데 슬슬 문제가 발생한다.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적어진 탓인지 그동안 쌓였던 미움이 한꺼번에 터지는 것인지 분란이 생긴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 쉽게 짜증이 나기도 한다.
동창들은 A를 설득했다. 50년 친구와 절교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요지부동이었다. 그전에는 나이 70세가 되면 남자 노인은 ‘옹(翁)’을 붙였다. ‘드물다’는 뜻으로 ‘고희(古稀)’라고도 했다. 지금은 수명이 길어지다 보니 70세라도 그 용어를 안 쓴다. ‘옹고집(壅固執)’도 있다. 한번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꺾는다. 다른 동창들이 B에게도 사과하라며 설득했다. 그러나 역시 요지부동이었다. “못할 말 했느냐?”며 오히려 당당했다.
동석했던 친구들이 중간에 화해를 시키려고 했다가 A와 B 모두에게 원망을 들었다. “왜 내편을 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누구 편을 들고 말고 할 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둘은 친구들의 중재로 악수하면서 화해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악수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악수를 했더라도 속마음은 안 풀어지는 사람도 있다. 여자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 남자들처럼 행동만 사과하는 척 악수를 쉽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가 속한 대학원 동창생들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한 친구가 말투가 좀 시비조이고 전투적이다. 항상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 받는다. 그 때문에 설전을 벌이거나 화가 나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그 버릇을 못 고친다.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마음도 그런 편이다. 지기 싫어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다. 당구를 쳐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당구를 칠 때 지나치게 승부욕이 강하고 억지를 잘 부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한다고 해서 누구랑 같이 갈 것이냐고 물으니 혼자 간단다. 트레킹이 힘들기 때문에 자기 성격으로는 같이 간 사람과 다툴 가능성이 많다는 이유였다. 자기 성격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필자도 이 친구와 다툴 일이 많이 있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런 사람은 피하면 된다. 당구도 다른 핑계 대고 같이 안 친다. 모임에 나가도 그냥 얼굴만 보는 것이다. 굳이 절교 선언까지는 필요 없다. 그래 봤자 여생이 살아온 날보다 길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며 성격은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
단톡방이 신호를 보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보리라 생각하며 하던 일을 마쳤다. 은퇴 후 인생이모작을 위한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방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기 이름으로 자신의 장례일정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순간 장난하는 건가? 아직 60대 초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이라면 아주 실감나게 한 것이고 아니라면? 갑자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화를 눌렀다.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다른 동료들도 서로 이것이 진짜냐고 묻기만 했다.
장례일정 안내에는 구체적으로 입관 날짜와 출관 날짜가 있고 미사와 장지에 대한 안내까지 있었다. 일단 가봐야 확인이 될 것 같았다. 날은 엄청 더워서 세상이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 속은 서늘한 불안과 후회가 범벅이었다.
우린 스마트폰 사용법과 SNS 교육을 받고 팀을 꾸려서 강의를 같이 다녔었다. 스마트폰이 한창 나오던 시기여서 수요가 많고 보람도 있었다. 강의실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만큼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교안까지 만들어야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으로 잘 해냈지만 점점 시간을 많이 요하는 작업이라 좀 지치고 꾀가 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강의의 교안을 만들어야하는데 그가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고 카피하는 것을 보고 내가 나무란 적이 있었다. 내가 감독으로서 잔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가 좀 불손하게 말을 해서 나도 화를 내며 돌아서 버렸다. 그동안 워크숍도 여러번 같이 가고 또 자료를 만들며 회의도 많이 하고 강사료를 받으면 맛 집도 찾아다니며 정을 나누었는데 그렇게 불손한 것이 섭섭했고 그도 뭔가 섭섭해서 우린 그것으로 찜찜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 어느 날 단톡방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어 내가 인사를 건넸고 그는 답을 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였지만 섭섭함을 상쇄한 나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팀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혼자 지방을 다니며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리곤 불쑥 자신의 장례를 안내하는 문구를 본 것이다.
장례미사가 있다는 성당에 도착해서 보니 단톡방에 올랐던 장례안내 표지판이 붙은 빈소에 그의 영정사진이 올려져있고 흰 국화꽃이 무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슬픔에 잠긴 아내와 십대의 딸 하나가 빈소를 지키며 오열하고 있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사단이 났다고 하며 갑자기 가는 사람을 차마 놓을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마주 볼 수도 없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 굳어버린 것 같았다.
미사에 참여해서 떠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지인들에게 알려 받아온 봉투를 챙겨 건네며 그를 위해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시신을 따르며 부르는 성가, 망자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보내야만 하는 아픔을 노래할 때 내 눈물은 자제력을 잃었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의 조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음식을 나누며 했던 농담들, 지친 몸으로 함께 걸으며 했던 얘기들….
눈물 고인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영정사진은 관 앞에서 담담했다. 어른거리는 사진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친구여, 잘 가시오. 잘 가시오.”
며칠 뒤 단톡방에 그의 이름으로 다시 글이 올라왔다.
“마지막 가는 길에 외롭지 않게 배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씨에도 어려운 걸음 해주시고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주심에 유가족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그는 갔지만 난 다시 일상의 일에 치여 나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태어나고 죽고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잊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잊히며 죽을 것이다.
우리 집은 딸과 아들이 애를 둘씩 낳아 손주가 넷이다. 식구가 늘다 보니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톡방을 개설하기로 했다. 필요한 소식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소한 집안일이나 유익한 생활정보까지도 올려놓는다. 그런데 한 달 전 딸애가 사진으로 찍어 올린 톡 내용은 매우 황당하기도 했고, 애들이 어른들에게 한 방 펀치를 날리는 충격을 주었다.
사연은 이렇다. 올해 초등학교에 간 지 2개월밖에 안된 셋째 손녀가 학교숙제를 집에 와서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숙제의 교육내용은 ‘식구들이 같이 돈을 모았다면 가족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돈을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면 더 좋다’는 취지였다. 이런 설명을 한 후에 애들에게 질문을 통해 선한 행동으로 유도하려는 학습 내용이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함께 모은 돈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집을 살 거예요!”
“그와 같이 생각한 까닭을 써보세요.“
“엄마가 자꾸 부동산에 가서….”
실은 딸애가 몇 달 전부터 학군이 좋은 강남 쪽으로 이사해볼까 해서 전셋집을 물어보러 복덕방에 다니고 인터넷에서 자주 부동산을 검색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어린 애들은 거짓이나 꾸밈이 없다. 본 대로 들은 대로 배우고 어른들을 따라서 행동을 한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어이가 없고 황당해하는 딸에게 무슨 답을 할까 하다가 나는 이렇게 카톡에 올렸다.
“애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란다. 그래서 예로부터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자란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어린애들에 그치지 않으며 성장을 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누구든지 부모들은 자기의 애들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두었을까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엄마, 아빠라고 그대로 찍혀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해 송년회 모임에서 외교관 출신 정부 고위관료였던 국장이 실토한 실제 이야기다.
모처럼 일요일 집에 있는데 갑자기 고2에 다니는 딸애가 학원을 가려고 나서던 차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야단법석을 떨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혹시 집 어디엔가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그때 그가 파자마 차림으로 앉자 있던 소파 밑에서 전화가 ‘삐르르’하고 울렸다. 평소 딸애한테 아빠로서 최선을 다해주었다고 생각해왔던 그는 딸이 핸드폰에 무어라고 입력해놨을까 궁금하던 차에 이를 확인해볼 절호의 기회라 생각되어 흘깃 바탕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왕 짜증!’
순간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애지중지 키우며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세상이 무너지는 거 같았고, 인생을 헛되이 살아온 박탈감까지 일 다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도저히 그 마음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어서 마음을 달래려고 집을 나와 평소 다니던 절로 달려가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만 던졌다.
“다 업보입니다. 그 답은 오직 거사님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때 TV프로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본 기억이 났다.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하던 부모들이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단지 부모를 따라 할 뿐이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 생각났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참 지난 뒤에야 모든 게 다 나의 잘못임을 깨달았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등교해서, 학교로 학원으로 하루 16시간을 공부에 지쳐 녹초가 돼 들어온다. 현관문에 들어서는 딸을 보고, '얼마나 힘들었냐' 위로는 고사하고 ‘빨리 씻고 공부 좀 더 하다 자라’고 다그치기 일쑤였다. 또 한 달 내내 죽도록 고생하고 시험 봐서 성적표 받아오면 수고했다는 격려는 못 할망정 ‘너는 아빠 닮아서 머리는 좋은 데 노력을 안 해서 이렇다’라는 둥 몰아붙이기만 했으니…. 짜증이 날 만도 하다. 왕짜증 맞다!
그 뒤로 개과천선이라고나 할까. 예전과는 완전히 달리 딸애의 입장에 서서 친구 같은 눈높이에 맞게 화법 먼저 바꾸었다. 무조건 잘 해주고 베풀기보다 딸애가 원하는 쪽으로 하나씩 다가갔다. 처음에는 서로 너무 어색했지만, 서서히 딸애의 태도와 행동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2년 뒤 대학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의 생일이라면서 일찍 집에 오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따라 설레는 맘으로 딸이 무슨 말을 할까 너무도 궁금했다. 빨간 장미꽃 몇 송이와 함께 딸애가 준 최고의 선물은 스마트폰에 찍힌 왕짜증이 이렇게 바뀐 문구였다.
‘대한민국 최고 울 아빠!’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지 10여 년이 됐다. 이제 스마트폰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시니어 역시 스마트폰 보유율과 SNS 이용률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5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약 90%에 달한다. 또 50대의 SNS 이용률도 2014년 21.5%에서 2016년 33.4%로 10% 이상 큰 폭으로 증가했다. 60대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시니어가 디지털 세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대인의 일상, ‘SNS’에 있다
최근 시니어도 빠르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사진이나 건강 정보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으로 은행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가족 간에도 단톡방을 만들어 대화를 나눈다. 또 카카오스토리나 페이스북에서 취미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도 많다. SNS의 가장 큰 순기능은 바로 ‘소통’이다. 온라인은 연령과 성별을 초월한다. 그래서 시니어가 많이 이용하는 SNS도 중요하지만 다른 연령층에서 이용하고 있는 SNS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7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위 ‘인스턴트메신저’를 이용하는 사람의 99.4%가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SNS 이용자 10명 중 6명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그 뒤를 카카오스토리(47.6%), 인스타그램(30.5%), 네이버밴드(29.7%)가 잇고 있다. 이들이 SNS를 하는 이유는 ‘친교(76.5%)’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또 다른 사람이 올린 콘텐츠를 보거나(55.3%), 취미나 여가 등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43%) 이용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이들은 SNS를 이용하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68%), 최신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고(66.4%)도 생각했다. 또 직접 만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일하는 자녀를 대신해 손주를 돌봐주는 조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저출산으로 ‘식스포켓(six pocket)’, ‘에잇포켓(eight pocket)’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에 더해 이모, 고모, 삼촌까지 모두 아이 한 명을 위해 지갑을 연다는 의미다. 손주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을 접하는 모태 디지털 세대다. 이들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없는 세상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들과 소통하려면 인터넷과 SNS 활용은 필수다.
SNS가 주는 3가지 장점
SNS는 생각보다 장점이 많다. 첫째, 돈을 벌 수 있다. 요즘은 1인 미디어 전성시대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에 올린 영상이 인기를 얻으면 수익으로 연결된다. 일상생활, 반려동물 이야기, 먹방(먹는 방송) 등 다양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담을 수 있다. 조회수에 따라 광고 수익도 들어오며, 유명한 크리에이터는 제품 협찬 등으로 수익원이 다양하다. 또 창업을 하거나 소규모 자영업을 할 경우 SNS를 통한 홍보가 가능하다. 입소문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SNS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SNS의 또 다른 장점은 가족을 비롯해 다른 세대와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36년 만에 브라질에서 귀국한 이찬재(76)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내 손주들을 위한 그림들’이라는 SNS 계정을 운영한다. 브라질에 있을 때 한국과 뉴욕에 사는 손주들이 그리워 2015년부터 SNS에 매일 그림을 올렸다. 이러한 사연이 영국 BBC에 소개되며 그는 유명인사가 됐다. 사실 그는 인터넷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돌보던 손주들이 한국으로 귀국한 후 그림으로 손주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기로 결심했다. 한국의 옛 모습에서 최근의 평창동계올림픽까지 그가 그린 그림은 700여 점을 넘어섰다. 그에게는 33만여 명의 팔로워도 있다. 전시회도 개최하고 그림도 판매한다. 그는 늦은 나이에 SNS를 시작해도 충분히 배울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점은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셀카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일본인 니시모토 키미코(90). 72세에 사진을 배운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개구리 분장 사진 등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현재 약 8만 명의 팬들과 소통하고 있는 그녀의 유쾌한 사진을 보면 구순의 할머니라는 상상이 전혀 안 된다. 사진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책도 출간했다. 이외에 노부부의 커플룩, 먹방 등을 SNS를 통해 공유하며 노후를 즐겁게 보내는 시니어도 많다.
SNS를 시작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SNS는 더 이상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SNS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먼저 어떤 SNS를 이용할지 결정하기 위해 각각의 특징부터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는 프로필을 기반으로 지인들과 연결된다. 반면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나 동영상 등 특정 관심사를 올릴 수 있는 이미지 기반의 서비스다. 만약 그림이나 패션 사진을 주로 올리고 싶다면 인스타그램이 적합하다. 각 SNS 앱은 스마트폰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다음은 계정 만들기다. 사용할 SNS를 결정했다면 가입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이름과 휴대폰 번호 또는 이메일, 생일, 성별을 입력한다. 또 시니어가 많이 이용하는 카카오스토리는 카카오톡을 사용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SNS 활용 교육을 무료로 하는 시도별 지자체도 많다. 가까운 지자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등록하면 된다. 교육 참가가 어렵다면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유튜브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이용할 수 있는 SNS 사용법을 검색하면 많은 자료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용어와 사용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다 보면 신비한 SNS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시니어는 다양한 삶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창업에서 취미까지 활용 범위가 넓다.
외로움은 시니어의 4대 고통 중 하나라고 한다. SNS에서는 멀리 사는 자녀, 친구와 언제든 만날 수 있다. 아직 SNS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디지털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이번에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일전에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패딩 구매 파동이 일어났다. 일명 ‘평창 롱패딩’으로 불리기도 하는 물건인데 이를 사기 위해 전날부터 길바닥에서 자는 소동까지 벌어진 것이다. 물론 한정판이고 일종의 기념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사고 싶은 심리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도시에 롱패딩이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평창 롱패딩이 새로운 유행을 선도한 셈이다.
우리는 유독 유행에 민감하고 명품에 약하다. 하긴 어느 나라나 시기별로 유행하는 패션이 있는데 그게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정도가 심해 남의 눈치를 보는 수준까지 되었다. 자신의 입성에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남의 눈을 의식해 어느 정도 맞춰 입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다. 주말 가까운 근교 산 입구에 가면 거의 제복 수준으로 등산복을 차려입고 줄을 서 있다.
비단 입는 것만이 아니다. 많은 이가 주도적인 소비보다는 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후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요즘은 식당 하나를 찾아도 일단 그 집에 대한 후기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 정도가 심해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기보다 후기가 좋은 식당을 찾게 된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낚이고 낭패를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가 소문에 민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산악이 많은 지형의 나라에서 정착성이 강한 농업을 주업으로 하며 살다 보니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은 환경이 고립성을 강화하고 그 결과 공동체 안의 정보가 삶의 중요한 무기와 자산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환경적 유전인자가 최근의 IT 기술 발달에 힘입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터넷이나 SNS와 같은 소셜미디어는 이런 우리의 성향을 증폭시키는 데 엄청나게 기여한다. 소위 ‘인증샷’은 남들과 같아지려는 눈물겨운 몸짓이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소외되고 잊힐까 두려운 것이다. 이렇게 휩쓸리다 보면 어느새 패거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비슷한 성향끼리 한데 모여 안도하고 그렇지 않은 다른 부류를 왕따시키고 나아가서 그들을 비난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패거리 정치도 따지고 보면 개성이나 주관 없이 한데 모인 부류끼리 진영을 형성하고 진실과 관계없이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는 나약한 존재들이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선진 민주주의가 남들 눈치 안 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가 갈수록 전체주의로 퇴행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남들 눈치 보는 문화의 이면에 남에게 강요하기가 있다. 이는 동전의 양면으로 소위 ‘정’이란 말로 포장된 우격다짐이다. 상대가 좋아하는지는 관계없이 내가 좋으면 강요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하는 TV 프로그램에 보면 수산시장 아주머니가 막무가내로 좋은 것이라며 여행객의 입에 산 낙지를 쑤셔 넣는다. 이런 문화적인 심리적 폭력은 '남도 나와 같을 것이며 우리는 하나'라는 착각의 산물이다.
끈끈한 정이야말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성이라고 대부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어쩌면 이 ‘정’이 우리 사회 선진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깊은 밤 스마트폰 단톡방에 왜 가족 행사 사진을 올리나요? “전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없어요. 지금 아는 사람도 정리 중이라구요?”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던 신조어를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글 파괴, 문법 파괴라는 지적도 받지만, 시대상을 반영하고 문화를 나타내는 표현도 제법 있다. 신조어 이해는 젊은 세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필요해 보인다. 2017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신조어 5개를 꼽아봤다.
01. 넵병: 메신저로 오는 어떠한 제안이나 요청에 대해 ‘네’라고 답변해야만 하는 직장인들이 겪는 병. 이를 ‘넵병’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유행했다. ‘넵병’은 넵, 네, 넵!, 네에, 네넵 등 다양한 형태의 대답을 포함하는데 이 중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넵: 가장 무난한 대답으로 ‘우선 알겠습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넵!: 충성충성충성! 느낌표를 더해 강력한 인상을 준다.
네?: ‘다시 말해봐라’ 즉 싸우자는 의미다.
네에: 모두가 ‘넵’이라 할 때 ‘네에’를 사용함으로써 단톡방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넵ㅋ: ‘이 정돈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요청 사항이 많아지면 ‘네?’로 바뀌는 건 한순간.
넵^^: 애써 친절함을 강조하는 듯한 대답.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라는 점을 어필한다.
넵~~~: ‘알았으니 그만하라’는 뜻이다.
넵;;;: ‘뭐라는 거야’의 의미로 말 같지도 않은 지시를 받았을 때의 리액션이다.
02. 급식체: 급식을 먹는 학생(초·중·고)들이 쓰는 문체로 허세, 자문자답, 논리성을 상실한 문장이 특징이다.
오지고요 지리고요: 오달지다, 생리현상을 참지 못할 정도로 놀랍고 대단하다는 의미의 감탄사다.
ㅇㅈ? 어 인정: ‘인정’의 초성으로 다른 사람의 동의를 구할 때 사용하며 주로 자문자답식으로 이루어진다. 동일한 의미로 ‘용비? 어 천가’, ‘동의? 어 보감’, ‘오징? 어 볶음’ 등이 있다.
ㄹㅇ: ‘레알’의 초성. ‘real’을 발음대로 부르다가 이것마저 줄여서 초성만 사용한다.
~각: 온라인 게임에서 나온 용어로 ~할 것 같다, ~할 상황이나 상태를 뜻한다.
03. 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1인 가구가 520만 가구를 넘었다. 혼자 즐기면서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관련된 신조어도 생겨났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 술을 먹는 혼술, 영화를 보는 혼영, 여행을 가는 혼행 등이 대표적인 예다.
04. 야민정음: 눈에 보이는 글자를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바꿔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면 대통령을 ‘머통령’으로 표현하는데 ‘ㄷ’과 ‘ㅐ’를 바짝 붙여서 보면 마치 ‘ㅁ’과 ‘ㅓ’처럼 보인다고 해서 ‘머’ 자로 바꿔 쓴다. 아래 단어들이 대표적 사례다.
댕댕이 = 멍멍이
팡주팡역시 = 광주광역시
띵곡 = 명곡
재석 = 유재석
머통령 = 대통령
05. 아무 말 대잔치: 말 그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상황을 뜻한다. 앞뒤 말의 연결고리가 없고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들을 쏟아놓는다.
슬럼프가 왔을 땐 무조건 자괴감에 빠질 게 아니라 잠은 충분히 잤는지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었는지 밥은 먹었는지 치킨은 먹었는지 연어는 먹었는지 소고기는 먹었는지 삼겹살은 먹었는지 체크해봐야 한다. 그리고 저걸 다 먹었다면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