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나훈아 쇼를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그의 모습이 반갑다. 그는 완전 카리스마 쩌는 남자이다.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클리프 리차드는 70년대 미국의 팝가수이다. 그가 우리나라 이대 강당에서 공연할 때는 흥분한 이대생들이 팬티를 무대 위로 벗어던졌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처럼 광적인 사랑을 받은 클리프 리차드 버금가는 한국의 클리프 리차드가 바로 나훈아이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
비 내리는 여름날에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
이쯤 되면 여인네들이 안 쓸어지고 배길 재간이 없다.
그의 노래 '사랑'을 들으며 내 가슴은 심쿵했다. 90년대 '사랑'과 2000년대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가 나를 울렸었다. 호소력 짙은 그의 음성과 어우러진 가사가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사랑노래는 여인의 가슴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마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성은 지적이고 몸매 날렵한 영화배우 '이민'같은 스타일이다. 그러나 한국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나훈아의 가치만큼은 인정을 해줘야 할것 같다.
그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여장부 김지미를 홀린 남자이다. 재미있는 것은 김지미의 남자들이다. 그녀는 젊고 야성미 넘치는 나훈아와 살아봤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나이 지긋하지만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심장병 전문의 이종구 박사님과도 부부의 연을 맺어봤다. 이 박사님은 오페라에도 해박하여 고정적인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오페라 해설가이기도 하다. 무지크 바움에서 만나 뵌 이 박사님은 전형적인 지성인으로 키 크고 잘 생긴 훈남이었다. 후에 김지미는 나훈아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가방끈 긴 남자는 너무 계산적이라서 별로라고 하였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서 여전히 제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그 자체가 엄청난 파워를 가진 유명 브랜드이고 단번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업체이다.
지금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수입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능력남인 그다. 이혼을 원하는 아내와는 쿨하게 헤어지고 더 이상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때는 사랑했던 여인이다. 항간의 얘기대로 금전적인 손해를 피하려 미적거린다면 그처럼 비겁한 일은 없다. 사나이 중의 사나이인 그답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사나이로 태어나 비겁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보통의 남정네들도 견디기 힘든 치욕이다. 하물며 여인네들의 로망인 그가 들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말이다. 우상처럼 떠받들고 있는 팬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다.
다시 한번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어 '나 아직 살아있어' 큰소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가 고맙다. 앞으로 내내 건강하여 수많은 지구촌 여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또 SNS가 말썽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아슬아슬하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느 네티즌이 240번 버스 기사를 성토하는 글을 올리자 삽시간에 온라인이 마비될 정도로 온갖 비난과 저주가 날아들었다. 만약 현장을 기록한 CCTV가 없었더라면 또 한 명의 선량한 이웃이 매장되는 봉변을 당했으리라. 그나마 최초의 글쓴이가 사과의 글을 올렸다니 다행이지만 대부분 변명할 사이도 없이 죽어 나간다.
IT 기술의 발달로 정보가 빠르게 대량으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과거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귀중한 정보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여 그야말로 정보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과거 중세시대에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가톨릭 특권층만 누리던 정보가 민중에게 공개되면서 천지가 개벽되었던 것에 비길만한 세상을 뒤바꾸는 정보혁명의 시대이다.
게다가 흔히 SNS라 부르는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정보는 일방이 아닌 양방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 말은 우리가 정보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특수한 위치에 있는 사람만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정보를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말과 글이 흔해빠진 것이 되면서 언어는 과거와 같은 권위를 상실하고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과거 지식과 정보가 형편없이 부족한 시대에는 책이 인간 정신의 갈증을 해소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이 절벽에 몸을 기댄 채 대부분 책을 꺼내 읽고 있었다는 글을 읽고 마음에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이 전쟁문고본의 시작이었다. 그만큼 글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적 욕구를 채우는 거룩한 존재였다. 그랬던 언어가 문명의 이기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SNS상에 난무하는 글의 가장 큰 문제는 익명성이다. 익명은 무책임을 낳고, 무책임은 양심을 마비시켜 언어를 타락으로 내몬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상에 떠다니는 말의 홍수는 마치 태풍이 지난 후의 바닷가처럼 온갖 쓰레기로 뒤범벅되어 있다.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언어들은 이미 정보가 아니다. 정보화 시대에 오히려 진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기막힌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은 이미 글이 아니다. 글이 가진 고유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혼돈에 빠트리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문제는 물 천지인 바닷속에서 우리가 마실 한 모금의 생수를 찾을 수 없다는데 있다. 짜고 더러운 물을 마시는 동안 우리의 영혼도 어느새 오염되어간다. 온갖 거짓 뉴스가 난무해도 우리의 감각은 무뎌져 분노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의 선량한 이웃들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영혼 없는 글을 제멋대로 생산해서는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이웃들에게 마구 보내준다. 오늘도 한밤중에 카톡이 울려댄다. 아! 또 어느 좀비 회원이 전혀 쓸모없는 정보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잠을 청한다. 에이! 내일은 반드시 단톡방을 탈퇴하고야 말 테다!
지난 8월 27일, 야학 시절 필자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던 진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서둔야학 단톡방에서 이 소식을 알게 된 필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지난 2월에도 예술의전당에서 건강한 모습을 뵈었는데!’
아아! 님은 가셨는데
님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 크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는데,
북한농업 발전, 미얀마 농촌 프로젝트 등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굵직한 일들을 여기저기 벌여놓으셨는데,
아직 할 일이 너무도 많으신데,
어찌 그리 황망히 가셨나요!
선생님! 내 사랑하는 선생님!
삼성병원 장례식장에 걸려 있는 선생님의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미어졌다. 그로부터 하루도 선생님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는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야학 시절 진 선생님의 손은 거칠기가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었다. 제주도 가난한 농촌 집안 출신으로 당신 손으로 학비를 해결하며 공부를 하셨기에 그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1년 벌어서 1년 공부할 정도로 힘들게 학업을 하셨다고 한다. 험한 일 궂은일을 가릴 수 없었던 선생님의 손은 늘 상처 투성이였으며 굳은살이 박혀 울퉁불퉁했다. 그 손이 안쓰러웠던 필자는 언제부턴가 선생님을 뵙게 되면 얼른 손부터 보게 되었다. 입고 있는 옷도 군복에 대충 검은 물을 들인 작업복 아니면 서울대 교복 차림이었는데 자주 빨아 입지 못해서인지 얼룩덜룩할 때가 많았다.
가톨릭 신자인 진 선생님은 철저한 휴머니스트였다. 필자의 아버지가 서울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는 바쁘신 와중에도 틈틈이 문병을 와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을 돕느라 물심양면으로 애쓰시던 선생님은 아버지 산소 양쪽에 어디선가 구해오신 진달래꽃까지 심어주셨다.
우리 가족을 보살펴주시던 진 선생님은 야학 후배 윤선이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는 또 그 후배를 돕느라 동분서주하셨다. 우리 아버지와 윤선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우리가 서둔야학을 졸업한 지 각각 1, 2년 후의 일이었는데 선생님은 졸업한 야학생들의 궂은일까지도 모른 척하지 않고 끝까지 보살펴주신 것이다. 당신도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많았을 텐데도 제자들을 그렇게 살뜰히 보살펴주시는 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늘 ‘참을 위하여 일생을 바치라’고 강조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대신 아버지 역할을 해주셨는데 최근에 찾아 뵌 선생님은 필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우리 가족을 선생님께 맡긴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셨다. 읽을 책 하나 변변히 갖고 있지 못했던 우리 형제들에게 두터운 골판지로 된 김유신장군 책과 외국 동화책을 사다 주셨는데 영어로 돼 있던 그 책의 내용은 기억 못하지만 주인공 소녀의 토실토실한 볼은 지금도 참 귀여운 인상으로 남아 있다. 또 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특별히 헤르만 헤세의 를 선물해주셨다. 내용은 별로 흥미롭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사랑이 묻어 있던 그 책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기에 오랜 세월 소중히 간직했다. 어디선가 어렵게 구한 은박지로 표지로 쌌으며 책을 볼 때는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은 후 볼 정도로 아꼈다.
"과자 한 봉지 실컷 먹어 봤으면…."
진 선생님의 어렸을 때 소망이었단다. 당신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였을까? 궁핍한 살림에 과자 하나, 사탕 하나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우리 형제들을 위해 가끔 과자도 사다 주셨다. 영어가 씌어 있는 흰색 봉투에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밤과자, 부채 모양의 부채과자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필자의 집은 수수깡과 진흙을 섞어 만든 집 벽에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우리 형제들은 겨울에는 대낮에도 두꺼운 이불을 펴놓고 그 속에 발을 묻었다. 밖에서 뛰어 놀다 들어와 그대로 이불 속으로 발을 밀어 넣는 통에 이불이 꼬질꼬질했다. 그 방에서, 추워서 옹송그리고 있던 동생들은 한줄기 따스한 빛 같은 진 선생님을 만나곤 했다. 그러나 필자는 선생님이 반갑지 않을 때도 있었다. 궁색함, 누추함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 창피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애국애족의 정신이 투철하신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다. 학비를 걱정하는 가난한 고학생이면서도 나라와 민족을 망각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덴마크의 개척자 달가스, 이스라엘의 민족지도자 그룬트비히와 우리나라의 안창호 등 애국애족의 민족주의자에게 한창 매료되어 있던 필자가 이라는 책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은 어디선가 그 책을 구해다 주셨다. 그 책을 읽으며 '나라와 민족'이라는 그 거창한 이상주의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20여 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별안간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선생님께 필자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이제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선생님 곁에서 선생님을 보살펴드릴 거예요. 선생님 눈이 되어드릴 거예요."
깨고 나니 꿈이었다.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필자에게 끝이 없는 사랑을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었다. 그때까지 받기만 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던 충정이었다.
진 선생님,
제 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가슴에 고이 모셔두겠습니다.
당신은 너무도 아름다웠던 내 동화 속 왕자님이었습니다.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자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 되어 30여 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퇴직을 했어도 공무원 연금이 나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은 정말 심각하단다. 절반이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평생 원하던 일을 하고 퇴직 후에는 최소한의 생활까지 보장이 되니 이처럼 다행스런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집에서 한국방송 통신대 강의를 통해 충족한다. 요일별로 국문학과 철학, 역사와 서유럽 문화기행,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의지만 있다면 TV와 인터넷 그리고 서울 각 구의 문화원에서 무료로 혹은 가성비 높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면서 멀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제자들에게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전복을 구하느냐 미역을 건져 올리느냐는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엔 방송대 강의도 그렇고 교양 프로그램과 양질의 다큐멘터리 등 좋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방송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외출을 못할 때도 있을 정도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의욕에는 세월도 못 당한다. 필자는 퇴직 후 제일 먼저 강남 라사라 학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선생님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패션디자인이었다. 이곳에서 패션디자인 과정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을 마치고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2개월간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발레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로망이었기에 패션디자인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할 때마다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발레가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취미 정도라면 왈츠와 탱고는 능숙하게 아주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운동할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왈츠와 탱고를 출 때는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를 위해,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발레를 한다. 노인분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수필을 잘 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쓴 글이 96편이 될 정도로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틈틈이 압구정역에 있는 무지크 바움에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해 전에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워킹반에도 등록했다. 주 1회 모델워킹을 연습하고 있다. 2년 동안 패션쇼도 다섯 번 했다. 개성 강한 동료들의 기상천외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 행위’다. 기왕이면 예쁘게 입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액세서리는 젊음이다. 젊은이들을 값싼 옷을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 들면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기 빠진 피부에 옷차림까지 추레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녹화가 있는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여의도로 간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5포세대, 혼밥, 실업문제, 4차 산업혁명 등 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메인 브로드캐스터가 강연한 후 미래참여단 서포터즈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 녹화에 참여하면 더 생생한 공부가 된다. 20대 젊은이에서 7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의 만남도 즐거움 중 하나다. 주 2회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 둘레길 걷기에 참여한다. 둘레길 걷기는 주 3회 30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배움이 이어지면 기회가 이어진다’고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촌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삶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냐고요!
어제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올해 4월부터 활동하게 된 온․오프라인 잡지 에 필자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라인에만 꾸준히 실렸는데 잡지사에서 정해준 주제 ‘으이구! 주책이야!’에 맞춰 쓴 글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가 7월호에 실린 것이다. 제시한 주제에 맞춰 처음 써낸 글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에서 주관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필자와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필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모두들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분들이다. 하는 일도 인터넷 기자, 사회복지사, 공예가, 모델, 시인, 수필가, 교수 등 다양하다. 서초문화원 문화기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도 있고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구두매장에서 필자 스타일에 필이 꽂혀 인연을 맺게 된 분도 있다.
평택여고에 재직할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껏 대하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모른다.” 서둔야학 단톡방, 서민동 단톡방, 서울시 낭송회 시음 단톡방, 왈츠 단톡방, 명견만리 서포터즈 단톡방, 꿈방송 단톡방, 뉴시니어 리더스포럼21 단톡방, 강남시니어프라자 해피미디어단 단톡방, 모델워킹 단톡방, 서리풀 문학회 단톡방, 오페라 동호회 모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친구들 등 단체회원 단톡방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다.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2년 전 메르스 사태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에서 녹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모델워킹하는 동료들과 해피미디어단 회원들을 왕창 모시고 갔다. 담당 PD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필자는 바람잡이 역할을 즐긴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행사를 할 때는 담당 PD를 초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참석한 분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필자에게 말했다. 다음 행사에도 초대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아자아자! 이런 것이 바로 윈윈이다.
날개를 달아준 에 감사해하며 오늘도 필자는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 필자의 삶은 글자 그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이런 삶이 수어지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
따봉, 원더풀!
요즘 신종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곳이든 한번 모임에 참여하면 어김없이 밴드나 단톡방이 생기고 그 후로 스마트폰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처럼 카톡이 울어댄다. 서로 소리를 구별하려고 다양한 알림음으로 무장하는 바람에 여럿이 있을 때면 가지각색의 카톡이 합창을 하는 때도 있다. 심지어 한밤중이나 새벽에도 울어대 단잠을 깨울 때는 난감하다.
뻔히 알면서도 무시하고 잠을 청하려면 또 왠지 궁금해 스마트폰을 열고야 만다. 그러나 매번 그렇듯이 내용을 보면 중요한 정보나 공지사항은 거의 없고 시시콜콜한 개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또 속았군. 하기야 어느 모임이 한밤중에 공지사항을 올리랴! 그중에도 제일 약 오르는 글은 위급하지도 않은 자기 자랑이다. 한밤중에 도대체 왜 자기 여행 간 이야기를 올리느냐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 나이 들어 잠은 줄고 누구 이야기할 상대가 없으니 그저 대화에 목말라 그러려니 싶어 댓글을 달아준다. “어머 좋은데 다녀오셨네요. 축하합니다.” 보내고 나니 다시 회의가 든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진정한 소통일까? 확 깨버린 잠을 다시 청하려니 부아가 치밀어 결국 알림음 모드를 무음으로 전환하고야 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두드러진 점 중 하나가 ‘초연결사회’라고 한다. 하긴 이젠 나이를 불문하고 손마다 전화기가 한 대씩 들려 있으니 어디 도망할 구석도 없다. 게다가 위치 정보를 켜야 할 앱이 많아 다른 사람이 나의 위치까지 손금 보듯 아는 세상이다. 그뿐 아니라 이젠 생명 없는 냉장고까지도 나에게 연락해 오는 정도이니 그야말로 울트라 초연결사회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렇게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면 인간들은 더욱 가까워지고 친밀해져야 할 텐데 실상은 정반대로 흘러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시장의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 ‘혼밥’, ‘혼술’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나 홀로 문화는 계속 진화하여 ’혼영‘(나 홀로 영화), ’혼행‘(나 홀로 여행) 등 여러 가지 버전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독 비즈니스’가 뜨는 중이란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배우 척 매카시는 사람들과 산책을 함께해 주고 돈을 버는 ‘친구 대여(Rent-a-Friend) 서비스를 시작했다. 집 근처 공원이나 거리를 고객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로 1마일(1.6km)당 7달러를 받는데 이 사업이 번창하여 어느새 조수들을 고용할 지경이란다.
예전 우리는 고독을 금기시했다. 학교에서도 사회성을 중요한 인성으로 가르치고 장려했다. 그래서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보이스카우트니 걸스카우트니 하는 단체에 소속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초연결사회라는 현대에 와서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이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독 산업’까지 생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경제성장의 쇠퇴로 사회가 해체되어 1인 가정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실은 오늘날의 고독이 다분히 사회적 현상임을 암시한다. 싱글 증가, 저출산, 황혼이혼, 가정 해체 등 지금의 문제들이 다양한 현상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한밤중 카톡이 울려대는 것도 알고 보면 늦여름 처연한 매미울음처럼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며 심호흡을 하고 슬며시 스마트폰의 알림 모드를 무음에서 소리로 전환했다.
카카오톡 대화 목록을 보면, 동창 모임이나 가족, 동호회 등 그룹채팅방이 꽤 많다.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러 명이 한꺼번에 대화할 수 있어 더욱 편리하고 활기가 넘친다. 그러나 그 수가 많아지면 복잡하기도 하고 불편한 점도 조금씩 생기기 마련. 좀 더 실용적이고 편리하게 그룹채팅방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대화목록에서 꾸욱~
전체 대화 목록을 볼 수 있는 메뉴에서 특정 그룹채팅방 이름을 2초 정도 꾸욱 눌러준다. 유용한 메뉴들이 팝업창으로 나타난다.
2. 채팅방 이름 설정
같은 사람인데도 여러 그룹채팅방에 속해 있는 경우가 있다. 그 때문에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채팅방 이름을 설정해두면 알아보기 쉽고 정리도 잘된다.
3. 바로가기&목록 상단 표시
자주 찾는 그룹채팅방은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바로가기를 추가해두면 편리하다. 또는 ‘채팅방 상단 고정’을 누르면 대화 목록 가장 위에 보이도록 할 수 있다.
4. 공지 등록
그룹채팅방에서 특정 대화를 공지로 등록할 수 있다. 자신 또는 상대가 보낸 메시지(말풍선)를 2초간 꾸욱 눌러 ‘공지’를 선택하면 채팅방 상단에 해당 글귀가 공지로 뜬다.
5. 대화 검색
여럿이 동시에 참여하는 그룹채팅방에는 대화가 많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룹채팅방 상단의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면 특정 단어가 포함된 대화 검색이 가능하다.
6. 대화 내용 모두 삭제
채팅방을 나가지 않고 대화 내용 전체를 지울 수 있다. 그룹채팅방 상단 맨 오른쪽 ‘메뉴’→하단의 ‘설정(톱니바퀴 모양)’ →‘채팅방 관리’→‘대화 내용 모두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