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케줄 겹침 스트레스
- 필자는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편이다. 스트레스가 생길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미리 피하기 때문이다. 만나서 스트레스를 줄 사람은 아예 피한다. 그래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도 안 되고 머리도 무겁다고 느낀다. 그러니 신진대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자다가도 꿈자리가 좀 뒤숭숭하면 바로 깬다. 그대로 비몽사몽간에 누워있다가는 잠이 깨고 그 다음날 하루 종일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진다. 그러나 바로 깨서 꿈이라고 정의하고 잊어버리고자 하면 금방 잊게 된다. 필자는 여기저기 사회 활동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 만나는 스케줄이 겹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스케줄은 다음에 또 보면 되기 때문에 하나만 집중한다. 그전에는 스케줄이 겹치면 앞 스케줄 사람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나서 뒷 스케줄 후반부에 참석하는 부지런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몸에 무리가 온다. 앞 스케줄 사람도 먼저 간다고 섭섭해 하고 뒷 스케줄 사람들은 자기네들끼리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어 분위기 적응이 어렵다. 그래서 요즘은 선약 위주로 스케줄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런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서 사회 활동을 많이 줄였다. 그런데 사회 활동을 줄인 대신 문화 활동이 늘었다. 음악회, 오페라 등 공연 초대를 자주 받는다. 이런 공연은 한번 지나가면 다음에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사람들과의 만남 스케줄과 다르다. 그런데, 선약이 사람 만나는 스케줄이었을 경우 공연 관람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스트레스가 온다. 두고두고 공연 관람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한다. 이럴 때 사람들과 만나는 선약을 깨고 공연을 가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모처럼 만날 약속을 했는데 공연 관람 때문에 선약을 깬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다른 핑계를 대더라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찜찜한 것이다. 묘하게 스케줄은 한꺼번에 몰린다. 요즘 같으면 미국에 이민 갔던 친구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이맘 때 쯤이면 치과 치료도 받으러 오고 건강검진도 받으러 온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미국에 비해 치료비나 검진비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가을철이라 음악회, 오페라 등 공연도 많다. 공식적으로 무료 공연도 많고 유료지만, 초대권을 보내주는 경우도 많다. 하나 같이 놓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여행 가자는 사람도 많다. 날씨 좋고 단풍까지 들어 행락 철이기 때문이다. 자기네들 스케줄 다 소화하고 나니 남는 스케줄은 주말에 몰리기 십상이다. 사회 활동을 줄이고 나니 아무 스케줄이 없는 날도 있다. 워낙 스케줄이 많을 때는 이런 날이 쉴 수 있어 좋았다. 밤늦게까지 영화도 보고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날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아무 스케줄이 없는 날이 며칠 계속되면 그것도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우울증이 오는 모양이다. 너무 쉬어도 곤란하고 너무 바빠도 문제이니 어느 정도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 2017-10-18 13:00
-
- 사회친구, 재미있게 사귀기
- 사회에서 은퇴하고 재미있는 제2 인생설계를 위하여 많은 평생교육에 참여하였다. 한두 달 동안의 단기 교육동기들은 학창시절 동창과 전혀 다르게 20년 나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새 친구 사귀기도 전에 교육을 마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교육 중 수업이 끝나면 막걸리 잔을 나누면서 지속가능한 모임이 되도록 노력한다. 몇 년 전, KDB 시니어브리지센터 제8기 사회공헌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면서 교육동기 친목모임 ‘두레월회’를 결성하였다. 매달 둘째 월요일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친목을 도모한다. 봄과 가을에는 둘레길 도보여행ㆍ문화유적 탐방 등 야외활동을 주로하고, 여름과 겨울에는 영화감상ㆍ소양강좌ㆍ독서토론 등 실내모임을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도보여행을 많이 하였다. 첫 행사는 젊은 시절 즐겨 걸었던 단풍이 곱게 물든 남산에서 시작하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즐거웠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둘레길을 돌아 장충동 족발골목에서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막걸리잔 높이 들고 메아리를 남산으로 날렸다. 고양시 한북누리길, 사당역에서 양재역에 이르는 우면산 둘레길 새해맞이 도보여행을 하였고, 원당역에서 왕복 행주누리길 산책을 하였다. 회원 간의 교양강좌도 보람이 있었다. 사진전문가 조영대 회원의 강의와 SNS 전문가 오경순 회원의 지도로 스마트폰 동영상 촬영기법 강좌를 진행하였다. 동영상의 기능부터 촬영, 저장, 편집과 보내기까지 전반에 걸쳐 강의가 진행되었다. 전문지식과 체험을 갖춘 강사의 열강으로 동영상을 직접 만들어서 회원끼리 공유하는 실습까지 완료하였다. 문화해설이 곁들인 창덕궁, 덕수궁 고궁산책은 소양을 기르는데 큰 힘이 되었다. 한 바퀴 휙 돌아보는 구경이 아닌 살아있는 보물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영화 ‘히말라야’를 감상을 하였다. 저명한 산악인의 실화를 배경으로 인간의 숭고한 도전을 그리고 있었다. 그동안 알려졌던 히말라야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올해는 양평 물소리길, 삼남길 걷기로 친목을 도모하고 체력을 증진하는 활동을 많이 하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6월 둘째 월요일에 전철을 타고 양수역에 갔다. 나지막한 부용산은 걷기 좋은 호젓한 산길이다. 한강변 신원역으로 내려가면 서울로 가는 길이다. 복잡한 전철은 오후 4시가 넘으면 썰물 빠지듯 매우 여유가 있다. 친구모임은 재미가 있어야 활성화 된다. 수십 년 학교동창 모임도 주제가 있어야 한다. 막걸리 사발 돌리는 음식점 회동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사회에서 늦게 만난 친구일수록 재미있게 사귀는 방법을 더 생각하여야 한다.
- 2017-06-19 16:11
-
- 손녀와 유채꽃
- 유채꽃은 제주도에서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부안의 유채꽃밭도 아주 볼 만했다. 샛노란 유채꽃이 끝없이 펼쳐져 눈부신 풍경을 이루었다. 몇 년 전 제주도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돈을 내야 한다는 팻말이 있어 기분이 안 좋았는데 이곳 부안 유채꽃밭은 포근하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속에서 필자도 꽃이 된 양 마음껏 셔터를 눌러 멋진 유채꽃밭 사진을 얻었다. 유채꽃 만발한 부안 마실길인 수성당은 재미있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수성당은 딸 여덟 명을 낳아 일곱 명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있어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고 풍어와 무사고를 빌었다고 한다. 또 수성당 주변에서 선사시대 이래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이 발견돼 죽막동 제사 유적지임이 확인된 곳이라 한다. 유채꽃밭 속에서 손자, 손녀와 그네도 타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행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은 부안에서 유명한 누에박물관에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라며 고른 방문지다. 온종일 피곤했을 텐데 아이들은 잠을 안 자고 뛰어다닌다. 억지로 끌어안고 누웠더니 필자가 먼저 꿈나라로 갔던 모양이다. 아침에 손녀가 가만히 귀에 대고 “할머니~” 하고 불러 잠이 깼다. 콘도였으면 아침 정도는 간단히 해먹었겠는데 호텔이라 아래층 식당으로 갔다. 넓고 깨끗한 한식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누에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누에 형상을 한 귀여운 캐릭터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해서 손자 손녀는 신이 났다. 누에로 비단 실을 만들므로 실크로드와 부안의 선잠 농가에 관한 설명이 있었는데 실크로드(비단길) 라는 이름의 어원은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팬’이 중국에서 중앙아시아,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에서 주요 교역품이 비단인 것에 착안 그의 저서 ‘차이나’에 ‘자이덴 슈트라쎄’ 라고 명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구가 계속되면서 1910년 독일의 동양학자 ‘알버트 헤르만’이 교역로가 중국에서 시리아까지 간다고 주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동서의 교역로를 비단길과 초원길, 바닷길, 3가지로 나눈다고 한다. 부안은 참뽕 프로젝트로 세계제일의 누에 메카를 꿈꾸며 입는 실크에서 먹는 기능성 실크로 녹색성장의 힘찬 도약을 하고 있다. 부안 참뽕 오디를 이용하여 뽕 아이스크림, 뽕 오디 과자, 오디 케이크, 뽕 술, 뽕 바지락죽 등 많은 음식을 만들고 있다. ‘잠령제’ 라는 행사도 있는데 해마다 봄누에 치기를 앞두고 순조로운 누에치기를 빌며 인간이 기능성 식품생산을 위해 큰누에를 급랭 건조하는 죄를 천지신명께 고하고 잠령들의 안녕과 양잠 농가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의식이라 한다. 누에에 속죄하는 사람의 마음이 선하게 느껴졌다. 체험관에서는 실제 누에를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얗고 보드라운 누에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니 캐릭터처럼 귀여운 모습이다. 5살 손녀는 징그럽다고 싫다지만 두 살짜리 손자는 단풍잎 같은 손으로 누에를 살짝 만져보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작은 누에에서 멋진 비단 실이 나온다는 게 정말 신비스럽다. 농약을 하지 않고 키운다는 참뽕나무 터널도 지나보고 참뽕 잎도 하나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부안의 참뽕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 보았다.
- 2017-05-11 11:14
-
- “우리는 신비주의로 살래. 그게 속 편해”
-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어둠속을 부유하는 먼지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별이 되기 위해, 타성에 젖은 삶을 바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우두령(해발 650m) 기슭에 사는 정현선(58)씨 내외. 이 부부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안락하게, 그러나 따분하게 살았던 것 같다. 모두가 성난 말처럼 냅다 달리며 지지고 볶는 도회의 풍속을 견디어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일종의 허기나 갈증 같은 게 따개비처럼 들러붙었던 모양이다. 그게 귀촌이라는 거사를 도모하게 했다. 정씨의 남편 김보홍(63)씨는 축구선수 출신으로 체육 분야 직종에 종사했다고 한다. 정현선씨 역시 농협 직원으로 일하며 서울이라는 정글을 섭렵했다. 부부가 밖의 일로 분주했던 나머지 안에서는 정작 얼굴을 마주할 짬이 드물었다지. 부부란 전우와 같아서, 또는 난적과 같아서 단합에도 능하지만 분쟁 역시 빈발하기 마련이다. 이 부부는 전우애나 전투정신을 고취할 여가 자체가 없었단다. 애정 표현도, 부부 싸움도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고서야 가능한 게 아니겠는가. 그들에겐 오래 묵은 숙원이었다. 귀촌 말이다. 도시가 오직 탁류일 리 있을까마는, 시골이라고 다만 청류일 리 있을까마는, 마음은 자꾸만 촌으로 향했더란다. 해서, 근 10여 년간 전국 도처의 산간을 순례하며 정처를 물색했다. 부부 둘 다 태어나 성장기 한때에 놀았던 물이 시골이었기에 향수라는 것, 그 못 말릴 본능이 가슴으로 들솟기도 했다. 정현선씨의 얘기는 이렇다. “틈이 나면 주먹밥을 싸들고 전국 산천을 돌아다녔어요. 강원도 화천에서 지리산 자락 구례까지, 일삼아 여행삼아 많이도 누볐어요. 그러나 마음에 딱 드는 곳을 찾기 어렵더라고요. 좋다 싶은 땅은 값이 비싸고, 저렴한 땅은 길이 없거나 하는 식으로 여건이 열악했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급매물을 소개받았는데, 가격이나 위치나 괜찮다는 판단이 섰어요. 지금 저희가 사는 이 집과 그렇게 인연이 됐죠.” 시골생활에 넌더리를 내고 역(逆)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살던 집을 헐값으로라도 서둘러 처분하고 시골을 탈출한다. 매력적인 급매물은 순식간에 임자를 만나게 마련이다. 정씨 부부가 사들인 급매물은 임야 포함 2만여 평 부지 위에 지어진 2층집. 산 중턱에 자리한 집이라서 조망이 기차게 후련하다. 우두령 일대는 고험한 산악지구다. 기세 등등, 하늘을 찌르며 솟구친 백두대간 고봉들이 저마다 똘똘하고 출중하다. 산이 거구라 골도 웅숭깊다. 골짜기 푸른 물살은 은어 떼처럼 반짝이며 솰솰 굽이쳐 흐른다. 촌 가운에서도 후미진 산촌을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탁 치며 쾌재를 부를 경관이다. 원주민과의 융화에 실패하다 우두령 자락으로는 절기 따라 봄비가 내리고, 가을 단풍이 물감을 흘려 내리고, 겨울엔 수북이 눈이 내려 설경이 흐른다. 산꾼들도 우두령 산간을 오르거나 내리기를 무시로 한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으나, 정씨 내외는 귀촌 직후 민박집 쥔장으로 변했다. 대간을 타는 사람들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대간을 타는 분들이, 이곳에 잠잘 집이 없어 불편하다, 산꾼들을 상대로 민박집을 하는 게 어떠냐, 그런 권유들을 해왔어요. 그래 2층 방에 등산객들만을 상대로 민박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그들에게 서울 얘기, 세상 얘기, 산 얘기를 듣는 게 참 즐거웠어요. 적막한 산중에서 뜻밖에도 사교를 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술이며 음식이며 이것저것 퍼주는 바람에 소득은 신통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작심하고 식초 생산에 나섰어요.” “산촌에서 나오는 온갖 재료로 식초를 만드는 거예요? 그건 초심자도 가능한 업종인가요?” “산골에서 마냥 놀기만 하면 무슨 재미겠어요? 흔히 자연을 즐기고자 귀촌을 하지만 시골에서 지내다 보면 욕심이 생겨 귀농의 형태로 양상이 변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가 그런 케이스죠. 사실, 서울에서 귀촌 교육을 받으며 식초 공부도 미리 해두었어요.” “이른바 천연식초라는 걸 생산하는 농가가 많아요. 이 집만의 특별한 식초 제조법이라도 있나요?” “저희는 일반 설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진정한 전통 발효식초를 만들어요. 제가 산골에 와 살며 이젠 정말이지 착하게 살자는 생각을 신념처럼 갖게 되었어요. 소득을 위해서만 식초에 도전한 건 아니에요. ‘착한 음식’으로서의 식초 만들기로 신념을 실천하고 싶은 거예요.” 착하게 살자! 산골 자연이 들려준 뉴스였던 모양이다. 자연은 소리 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라고. 그런 자연의 질문을 받은 뒤엔 마침내 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여! 너는 누구인가?’ 월든 숲에 살았던 소로우처럼 자연에 관한 무한한 영감과 감수성을 지니긴 어렵지만, 산촌 자연 속에 사노라면 자못 성찰적인 눈매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비로소 내 삶의 굴곡과 상처가 아프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회심(回心)이 돋아 자연을 닮은 삶의 생태를 꿈꾸기도 한다. 귀촌의 재미는 이 대목에서도 짭짤하게 우러난다. 귀촌한 이들이 흔히 토로하듯이, 정현선씨 역시 내면을 스스로 살피는 삶을 사노라 말하고 있다. 도시에서보다 한결 느긋해지고 수굿해졌단다. 화통하게 잘 웃고, 잘 표현하고, 뭐든 앞장서 차돌처럼 당차게 행동하는 개성의 소유자로 보이는 이 여자는 산촌의 나날들이 흐뭇하다. 식초 분야의 실력자로 소문이 나 곳곳의 귀촌·귀농센터에 강사로 출장을 가기도 한다. 요즘은 가양주를 만들어 상품화를 모색하고 있다. 귀촌 성공 사례로 알려져 견학을 오는 사람들도 많다. 들입다 몰입한 덕에 얻은 근사한 성과들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귀촌 5년 세월 중 4년간은 심히 괴로웠다지? 왜지? 정씨 내외는 마을 원주민들과 오붓하게 어울려 사는 일에 유난한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귀촌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타향살이다. 이 타향살이에 차질이 생기면 이젠 귀양살이 입문이다. “저희는 말이죠, 귀촌 교육을 통해 마을 원주민들과의 융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걸 충분히 인식하고 내려왔어요. 융화에 실패하면 지속할 수 없다, 무조건 베풀어야 한다, 그런 걸 염두에 두었죠. 그러나 막상 부딪혀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고통스러웠어요. 귀촌이라는 게 자칫하면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어떤 식의 불화가 벌어졌죠?” “시골에선 남자들의 술자리가 잦습니다. 서로 거들어야 할 농사일도 많아요. 저의 남편은 이런 자리 저런 자리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동참했어요. 집안일은 뒤로 밀어두고 이웃의 농사일을 거둔다거나, 봉사할 일은 기꺼이 봉사했어요. 하루 종일 남의 농사를 돕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린 밤들이 참 많았어요. 그렇게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돌아오는 건 갈등, 소외, 뒷담화, 그런 것들이더라고요. 이 집을 도와주면 저 집에서 불만을 품고, 저 집을 도우면 이 집에서 좋지 않은 소리를 하고…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재미나 보람은커녕 하루하루가 고역스러웠어요.”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마찰이나 갈등은 양념처럼 섞여드는 거 아녜요? 산간벽지 특유의 배타성 같은 걸 염두에 두진 않았나요?” “저희 부부가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 행동하는 일에 인색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이 시골에 정착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안간힘을 다했어요. 그럼에도 벽을 허물기 어려웠어요. 맞아요, 벽촌의 풍습이라는 거, 도시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곳만의 풍토라는 게 엄연하구나, 그걸 넘어서기 정말 어렵네?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는 게 답이겠네? 막판엔 그런 판단이 서더라고요.” ‘신비주의 처세’로 바꾼 뒤 비로소 찾은 평화 이른바 역귀촌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원주민과의 갈등이다. 주민들의 심리와 정서를 내 것처럼 헤아려 보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귀촌을 해서 단숨에 인기를 끌 묘한 비결이라는 게 있겠는가. 더 통 크게 마음을 여는 수밖에 없다. 똑똑한 티를 내기보다는 얼간이인 양 어설프고 만만하게 처신하는 것도 썩 괜찮은 쇼일 수 있다. 민첩하게 생각을 굴릴 줄 아는 인물에 속할 정씨가 이를 모를 리 없을 테지만, 정작 그녀는 고민과 고독 속에서 끙끙거렸던 것 같다. “주민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부부싸움도 늘어나더라고요. 어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였죠. 급기야 마을 사람 하나가 저희 집 진입로를 철망으로 막아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했어요. 진입로 땅을 사들이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정말 뿔이 나더라고요. 이게 뭔가? 이러려고 시골에 왔나? 회의가 마구 몰려들었고, 마침내 남편 입에서 서울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러나 제가 반대했죠. 실패하고 돌아가다니, 그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날 이후 생각을 완전히 바꿔먹는 것으로 살 길을 찾아냈어요.” “뭐죠, 그게?” “신비주의! 이제 나 신비주의로 산다! 그런 거요. 하하하.” “마음을 여느라 공연히 힘만 빼기보다는 차라리 빗장을 거는 쪽으로? 은둔처럼?” “해탈이죠. 비닐이고 뭐고 마구잡이로 노천에서 소각하는 모습을 참지 못해 그러지 말라 권유할 경우, ‘뭐야? 너나 잘해!’ 하는 투로 반응하는 사람들과는 싹 등 돌리고 사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어요. 그건 적중한 처세였어요. 비로소 속 편하게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정씨는 고등어처럼 싱싱한 언사로, 말끔한 표정으로 ‘신비주의 처세’ 이후의 만족과 안심을 토로한다. 기다리고 참고 끌어안으면 상처가 아물 수 있다. 고통이라는 씨앗을 발아시켜 멀리 가는 향을 뿜는 꽃을 피울 수도 있다. 산골 벽촌이라는 쓸쓸한 공동체를, 텃세를, 폐쇄적 문화를 하나의 상처로 가늠해 나의 행보를 인내 속에서 조절하고 조화하는 처신은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것일 수 있다. 군인이 돼 별을 달고 싶은 꿈을 먹고 자랐다는 정씨는 전혀 다른 방책으로 곤경을 벗어났다. 굴종에 가까운 나약한 타협 대신, 나의 길 내가 간다는 식의 투지로 고뇌를 해결했다는 게 아닌가. 그러고서야 산골짝에서 무슨 재미를 볼 수 있을꼬 싶지만, 내가 가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라는 것도 여지없는 진실.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2017-04-26 12:49
-
- [여행 어드바이스] 시니어는 뭐든 잘한다! 배낭여행 베테랑이 되어보자
- 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임 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1만20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침대에서 죽느니 길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꼼꼼히 기록했다. ‘나이 듦’은 생각하기에 따라 젊음보다 오히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 살고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이미 쓴 노트의 페이지는 되돌릴 수 없다. 아직 남아 있는 빈 여백에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쓰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하자. 이 글은 필자의 현장 경험을 가감 없이 반영한 ‘생생 정보’다. 여행지 선택,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망명국으로 선택한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그들이 유럽을 정착지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은 소도시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유럽 여행 좀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여행지를 나라가 아닌 도시로 구분 짓는다. 다양한 ‘인문’을 접할 수 있는 것 이 유럽 여행의 큰 매력이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서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계절이 여행하기 좋을까? 여행 갈 때는 좋은 계절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봄이 가장 좋다. 여름이나 가을도 무난하다. 유럽의 여름은 지중해성 기후라 한국보다 훨씬 뜨겁지만 대신 습도가 낮다. 더우면 바닷가 근처에서 머물며 해수욕을 즐기면 된다. 가을 단풍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며, 겨울에는 설경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북유럽 쪽의 겨울은 낮이 아주 짧다. 오후 3시쯤 해가 지기 때문에 관광할 시간이 너무 짧다. 겨울 여행은 긴긴 밤 속에서 보내는 날이 많을 수도 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굳이 타지에서 돈 써가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비자 등 각 나라별로 주의해야 할 사항 유럽의 많은 나라가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다. 솅겐조약은 180일 이내에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그래서 솅겐국 내에서 총 체류가 90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한 달 체류는 문제되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총 28개국에서 영국이 탈퇴(2016년)하면서 27개국이 되었다. 알기 쉽게 권역별로 정리하면, 서유럽권(프랑스, 이탈리아, 몰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권(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폴란드, 헝가리), 북유럽권(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다. 숙소 구하기와 추천 사이트 소개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박이다.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독채를 빌려 쓰는 게 좋다. 외국에는 캠핑시설이 엄청 잘되어 있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할 경우 캠핑장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외국의 시니어들은 값싼 호스텔을 많이 애용한다. 단, 호스텔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 숙박기간은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며칠 동안 지내보고 더 연장할 것인지는 그때 정해도 늦지 않다. 사람 마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숙소를 서로 바꿔서 지내는 방법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이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경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추천할 수 있는 대표적 해외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 부킹닷컴www.booking.com 여행 경비 줄이는 방법 우리나라 환율을 기준해서 환율이 낮은 나라를 선택하면 된다. 참고로 동유럽이나 발트 3국은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피서철의 유명 관광지를 피하는 것도 경비를 아끼는 방법이다. 환율이 낮은 나라라도 피서철에는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행태가 일상화되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신용카드와 현금,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쓸 카드는 미리 만들어가는 게 좋다. 분실이 염려되겠지만 해외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카드를 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비상시에 쓸 현금은 옷 속이나 자신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넣어둔다. 여행 가방은 최대한 간편하게 싸라 여행은 가볍게 해야 한다. 휴식을 하러 떠난 여행지에서 많이 가져간 짐 때문에 이런저런 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골목들은 한국과 달리 엄청나게 울퉁불퉁하다. 옛것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기에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부족한 물품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실제로 의류 등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최악의 영어 실력, 여행지에서 괜찮을까? 각 나라별 언어를 익힐 시간은 없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디선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최악이라면 짧고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언어를 구사하면 상대가 충분히 알아듣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현지인들도 영어 실력은 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영어를 못한다고 절대 고민하지 말라. 무엇보다 전 세계 공용어인 ‘제스처’가 있으니 여행에 있어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해본 적 없는 배낭여행, 어떻게 하나? 모든 일이 숙달되기까지는 누구나 초보 시절을 겪어야 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은 없다. 패키지여행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배낭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생하고 돈 많이 쓰는 여행을 왜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배낭여행의 매력을 백번 설명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지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방법이 있다. 패키지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바꾸면 된다. 패키지여행을 가서 가이드 안내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일행들에서 빠져나와 자유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패키지여행 반 자유여행 반으로 구성된 이색적인 여행 프로그램들이 많다. 패키지여행이 온전한 배낭여행보다는 안전성을 보장해주니, 그렇게 몇 번 실행해보라. 어느새 배낭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여행자 보험, 반드시 들어야 하나? 여행자 보험은 3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지역 경찰서에 가서 확인서를 받아오면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을 청구하면 의외로 황당할 때가 많다. 잃어버린 물건 가격에 상관없이 소정의 액수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건 변상은 기대 이상으로 박하지만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 또 현지에서 몸이 아플 경우 병원에 가는 데 도움을 준다. 강도를 만났을 때 대처법 여행지에서는 가끔 ‘강도’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지의 도둑들은 혼자 행동하지 않고 대부분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은 처음에는 ‘여행자’인 척하고 따라 붙는다. 그러고는 경찰이라고 하면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제복을 입었는지 확인부터 하라. 말대꾸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그들의 허점을 먼저 공략하면 된다.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라고 말하거나 ‘경찰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들은 도망가기 바쁘다. 동양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푼돈’을 뜯으려는 자들이지 사람까지 해치려는 생각은 안 한다. 예방접종주사, 꼭 맞고 가야 하나? 예방접종을 하고 가면 훨씬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주사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특별히 ‘위험지역’이라는 보도가 없는 나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지역을 자주 이동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아플 때 도움 받는 법 현지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 젊은 약사가 있는 곳을 선택하라. 나이든 약사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해서 설명이 어렵다. 현지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픈 곳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주는 병원도 있다. 이럴 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도움을 받아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가능하다. 교통수단 이용 방법 여행지에서 이동은 필수다. 인터넷으로 미리 교통 정보를 알아보고 가겠지만 이 방법보다 유용한 것은 현지에 도착해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는 것이다. 친절한 가이드가 있는 곳도 있고 달랑 지도 한 장만 주는 곳도 있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특히 어려운 지명은 발음이 어려워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메모지에 써서 보여줘라. 그들은 전문가다. “싼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 2클래스를 알아서 척척 끊어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익숙해져도 직접 티켓 창구로 가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라. 자동기계를 잘못 이용하면 티켓 값을 순식간에 날릴 수 있다. 티켓을 발부받으면 정확한 날짜에 예약이 되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정확한 날짜가 아닌 ‘이틀 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의 날짜 계산이 잘못될 수도 있다. 여권을 잊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 중에 여권은 생명줄과도 같다. 복사본을 준비해가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증명사진 두 장 정도는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큰 도시의 경찰서는 이런 과정이 훨씬 복잡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작은 파출소를 선택해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고 후 그 나라의 수도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임시 여권을 만들어준다. 계획했던 여행 날짜만큼 충분히 머물 수 있다. 국세환급금(Tax Refund) 받는 요령은? 여행지에서 특산물을 살때는 ‘Tax Refund’가 표시된 현지 숍에서 사라. 물건을 구매했다고 말하면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영수증 발급을 안 해준다. 영수증은 모아놨다가 마지막으로 여행하는 나라 공항에서 제출하면 된다. 대부분은 자국의 영수증만 환급해준다. 다른 나라의 영수증은 ‘Tax Refund’ 바로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푼돈이라도 아끼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기타 주의해야 할 사항들 여행지에서는 늘 변수가 있다. 이럴 때는 벌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빨리 바꿔야 한다. “끝까지 해볼 테야” 하는 고집이 더 큰 변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에 한국에 비상연락책을 두어 명 구해놓는다. 현지에서 일이 생기면 필자의 블로그(www.sinhwada.com)에 댓글을 남겨도 된다. 인터넷의 세상은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가깝고 빠르다.
- 2017-02-06 18:55
-
- 새해일출 가까이서 즐기기
- 새해 맞이하기 바쁜 세밑이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가까이서 새해일출을 즐기는 방안을 찾는다. 준비물을 철저히 챙겨야 북한산ㆍ도봉산ㆍ관악산 등 평소에 쉽게 다니는 등산 코스도 준비물을 철저히 챙겨야 한다. 햇볕 없는 겨울 산 속은 상상을 뛰어넘게 춥다. 에스키모처럼 중무장이 필요하다. 방한모ㆍ목도리는 필수품이다. 특히 방수가 잘된 신발을 신어야 한다.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이더라도 아이젠이 꼭 챙겨야 한다. 겨울철에는 항상 미끄러운 얼음이 있기 마련이다. 일출 전 산 속은 엄청 어둡다. 랜턴 준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배터리는 새 로 교체하고 여벌도 꼭 챙기기 바란다. 남이 비추는 불빛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불빛은 흔들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뜻한 물과 비상식량도 꼭 준비하여야 한다. 서울 근교 산 새해일출 서울 근교 산의 새해일출은 아침 7시 40분경에 완성된다. 평상시 주간등반보다 야간등반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므로 충분히 고려하여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손전등을 안내삼아 산행을 하여야 한다. 남산이나 정동진 등 일출명승지 못지않게 평소보다 등산객이 훨씬 많다. 앞 사람 궁둥이만 보고 걷고 또 걸어야 한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모습이 일개미들의 행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손전등 불빛이 여름철 반딧불 같기도 한다. 먼동이 터오기 시작하면 봄이나 여름에 보았던 산과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발 디딜 틈 없다. 자리를 잡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면서 추위를 달래야한다.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실 여유가 없고, 발이 시려 제자리 뛰기를 하여야 한다. 바로 옆 사람과 품앗이로 사진 한 장 겨우 찍을 수 있다. 저 멀리 옅은 구름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면 눈을 지긋하게 감고 무언가를 갈구할 것이다. 서울에서 50년 넘게 살면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서을 근교 산을 자주 오르고 있다. 봄철의 연두색은 새 색시처럼 포근하다. 여름날에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도록 시원한 그늘로 가슴을 연다. 붉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은 가슴을 뛰게 한다. 순백의 겨울은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서울 근교 산은 어느 곳보다 뛰어난 새해일출 명승지다. 둘레길 새해일출 명소 등반시간 맞추기 어려우면 둘레길 수준의 일출명소를 찾으면 된다. 남산이 대표적인 명소다. 지하철역에서 접근하기 쉽고 거리가 길지 않아 새해일출 보기에 딱 좋은 곳이다. 하지만 지하철 출퇴근 때처럼 사람에 밀려다니는 북새통이 문제다. 좀 일찍 서둘러야 사진 한 장 남길 수 있다. 인왕산, 서대문 안산, 아차산, 강동구 일자산 등 우리 주위에 새해일출 명소가 많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먼 거리 여행도 좋고 이름 없는 호젓한 바닷가도 좋다. 아니면 자기 집 옥상에서라도 새해일출을 맞보기 바란다. 새해일출! 내 손 안에 있소이다!
- 2016-12-22 16:51
-
- 경주 최 부잣집 가훈
-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주를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 필자도 30대에 경주를 가봤다. 잘 보존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각종 유물과 시가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왕릉은 신기함을 넘어 필자를 무아지경으로 몰고 갔다. 시니어가 되고 나서도 1년에 한 번쯤은 찾아가고 있지만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경주에서 지진이 난 후에 찾아간 유적지는 매스컴에서 방송되는 사실들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일부 흙담이 진동으로 갈라지거나 떨어진 곳도 있었고 오래된 건물 지붕의 기와도 흘러내린 곳이 있었으나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해마다 가을 단풍이 물들 때면 경주 시내와 유적지는 밀려드는 차량과 여행객들로 혼잡했고 식당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진 여파인지 이번에는 문화 유적지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해설사의 열띤 언변에 도취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보문단지를 지나 교리 한옥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도보로 교촌마을로 들어가니 그곳에서도 문화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교리 김밥집도 여행객이 없어서인지 문이 잠겨 있었다. ‘21세기의 최 부자로 살아가기’라는 스토리가 있어 최 부잣집을 둘러보았더니 최 부잣집의 가훈이 눈에 들어온다. 1.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는다. 흉년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부자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는 가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고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부를 축적하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반드시 끝이 있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다 같이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가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 시니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조선시대에는 과객(나그네)이 부잣집에 들르면 며칠씩 혹은 몇 주일씩 묵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운송수단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여서 과객을 통해 전국의 중요한 정보도 얻고 또 전국의 여러 곳에 그들의 인심을 전달해 중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좋은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단다. 최 부잣집에서도 1년에 소비하는 쌀이 3000석 정도였는데 그중 1000석은 과객을 대접하기 위한 쌀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글을 통해 보기도 했을 텐데 베풀기에도 인색한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좀 묻고 싶다. 우리 시니어들은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여생 동안 봉사를 생활화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봉사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고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한다면 좀 더 멋진 노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16-11-24 11:23
-
- 90세 장인어른의 아주 특별한 여행
- 장인어른은 올해 연세가 아흔이시다. 자식들이 하나둘 둥지를 떠나 도심에 살림을 차리고 여든다섯의 장모님과 두 분만 남아 시골집을 지키신 지 수십 년이 되었다. 막내 처제가 오십이 넘었으니 30년 가까이 된 셈이다. 두 분이 텃밭에 참깨며 고구마, 그리고 배추를 심으셔서 가을엔 김장도 함께 모여서 하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자식들의 만류로 겨우 배추 몇 포기 먹을 것만 심으셨다. 서울보다는 시골에서 사시는 편이 마음이 편하신지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내셔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한두 해 전부터 장모님이 기력이 쇠하면서 건망증이 심해지고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종갓집에 시집와서 조그만 체구에 10남매 모두 출가시킨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총명하시고 당당하셨는데 눈도 어둡고 몸도 약해 옛날 같지 않으니 우울하실 만도 했다. 당당하셨던 자신의 몸이 이렇게 망가지자 허무하고 한탄스러운 원망을 종종 장인어른에게 쏟아 부으시는 듯했다. 표현이 좀처럼 없으신 과묵한 장인어른은 안 되겠는지 가끔 딸들에게 전화해 다녀들 가라 해서 번갈아가며 시골에 다녀오곤 했다. 딸들이 내려가 말동무가 되어주면 장모님의 끊임없는 잔소리가 조금은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장모님의 원망이 더 심해지셨는지 엊그제는 바람 좀 쐬고 싶다고 의사를 내비치셨단다. 급기야 4남매 중 3남매가 의기투합했고 휴가를 얻어 2박 3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장인어른이 여행하는 동안 장모님은 장녀인 아내가 모시기로 해 필자의 집으로 오셨다. 그렇게 장인어른을 위한 특별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지는 장인어른이 젊은 시절 10여 년 동안 사셨던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은 장인어른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광산을 따라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이어서 제2의 고향 같은 마을이었다. 장인어른은 돌아가시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가끔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곳 이야기를 많이 하시곤 했다. 여행 첫날, 장인어른은 충청도에서 출발해 강원도 어느 시골 마을을 찾았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는 그곳을 90이 다 되어 찾아보는 장인어른은 감회가 새로운 모습이셨다. 옛날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고 몇몇 기억나는 지인들을 찾으니 나이가 몇 살 아래인데도 모두 다 돌아가시고 아시는 분이 없으셨단다. 반겨줄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거라 기대를 했던 장인어른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추억의 고향을 떠나셨다. 그 모습이 참 안타깝고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일행은 동해안으로 방향을 잡고 속초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횟집에서 푸짐하게 회를 시켜 소주 한잔 기울이고 밤바다를 둘러봤다. 이튿날은 낙산사를 들려 절이며 바닷가의 풍경을 감상하고 좋은 음식을 찾아 즐겼다. 마지막 날은 설악산 온천에 들려 온천욕을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장인어른이 동해안을 여행하시는 동안 필자의 집에서는 장모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불고기며 족발을 시켜 만찬을 즐겼다. 이제 다시는 가보지 못할 수도 있는 추억의 장소를 방문한 것은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나이가 드셔서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던 장소를 90이 되어 자식들과 찾아본 장인어른은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또한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과 푸른 동해를 보시고 참 만족해하시는 장인어른의 사진을 보면서 진즉 이렇게 모실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 너머로 노란 은행잎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마치 꽃 천지 같다. 두 분도 남은 삶을 저렇게 곱게 사시다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16-11-18 18:06
-
- 65세를 맞이하는 지란지교
- 어릴 적부터의 친구 셋이 오랜만에 만났다. 한 친구가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어 자리를 못 비워 두 사람이 가게로 갔다. 저녁시간은 치킨 배달이 많아 바쁘니 점심시간에 만났다. 치킨 집 친구는 올해 말까지만 치킨집을 하다가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부부가 같이 장사하느라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돈도 벌 만큼 벌어 노후자금은 확보해놨다는 것이다. 이제 그 친구를 치킨집에서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친구도 그만 둘 날이 며칠 남았다며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그만둘 생각을 하니 주문에도 더 적극적이고 친절해졌다고 한다. 그동안 쓰던 주문 전화번호도 꽤 알려져 있는데 프리미엄을 받고 넘겨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적당한 권리금을 갖고 들어올 작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수년간 자리를 지켰을 만큼 어느 정도의 매출은 보장이 되는 가게인데도 그 동네가 곧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면 재입주하기 전까지는 매출이 부진할 것이라는 약점이 있다. 결국 권리금을 좀 깎아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치킨집이 팔리면 양평에 전원주택을 하나 사서 노년을 텃밭이나 가꾸며 살겠다고 했다. 마침 먼저 자리 잡은 친구가 있어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농사지어 수익을 낸다는 것은 또다시 노동을 요구하니 어렵고 과일나무 심어 과일이나 따 먹고 즐기는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전철로도 갈 수 있으니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또 한 친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파는 사업을 하는 친구다. 비서 한 명 두고 몇 명 안 되는 직원들과 일하는데 지식을 파는 사업이기 때문에 자신이 은퇴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복지의 최고 좋은 방법이 일하는 거라는데 하는 데까지 할 생각이라고 했다. 늘 바쁘게 살아 자주 볼 수 없어서 원망을 많이 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츰 일을 줄이고 스트레스 덜 받는 방향으로 회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어릴 적 어울리던 친구 세 명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최근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고 산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자주 만나자는 스케줄을 짜게 된다. 일단 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보내는 스케줄을 짠다. 당일 만남은 물론 일박으로 단풍여행 계획도 짜본다. 당일이면 계룡산 정도를 행선지로 잡고 일박이면 경상도의 우장산이나 전라도의 내장산까지도 가보자는 계획을 짜본다. 내년 3월에는 한국 친구들이 미국에 부부동반으로 열흘간 놀러간다는 계획도 잡아본다. 미국 친구 한 명은 벌써 캠핑카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친구들이 65세가 된다. 각자 다른 길에서 바쁘게 살았다. 다시 모여 풀냄새 난초 냄새나는 우정의 지란지교로 돌아가야 한다. 딸린 식구도 생겼다. 모두의 공통점은 여행이나 자주 다니자는 것이다. 어딜 가나 경로우대를 받을 수 있으니 더 좋다. 그러자니 내 주변의 스케줄을 줄여야 한다.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야 하는 일부터 정리해야 한다. 놀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여행을 감당할 체력도 다져야 한다. 의상이나 신발 등 장비도 점검해야 한다. 여행 갈 때 새 신을 신었다가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으니 신발도 지금부터 길을 들여놓아야겠다.
- 2016-10-19 18:08
-
- 처음 가 본 순천만
- 필자는 외국 여행은 많이 한 편이지만 정작 국내 여행은 별로 가 본 곳이 없다. 물론 부산 같은 대도시는 업무상 몇 번 가봤지만, 여행이라고 하기보다는 출장이었다. 가족과 함께 피서 차 동해안이나 서해안 해변에 놀러가 본 적은 있다. 그러나 혼자의 여행이 아니라 먹고 마신 기억밖에 없다. 그래서 순천만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고 벼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해안과 석양, 철새들의 군무를 인터넷을 통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라도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맛있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순천으로 여행지를 정한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벌써 몇 번씩 갔다 왔다고 했다. 그러니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정보가 없이 순천에 도착하다 보니 순천만 국가정원이 따로 있는 줄 몰랐다. 마침 9월30일부터 10월16일까지 17일 동안 ‘순천만국가정원산업디자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입장료로 8천원을 받았다. 볼거리가 많고 넓어서 하마터면 이곳이 순천만의 전부인 줄 알고 그냥 갈 뻔 했다. 가을을 맞아 국화꽃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꽃을 볼 수 있었다. 진짜 볼거리는 ‘꿈의 다리’를 건너 각 나라 국별 정원들이었다. 호수 정원 안에 있는 동산도 빙빙 돌아 걸어올라 갔다 올 수 있게 해 놓았다. 뉴스나 인터넷에 자주 올라오는 장면이다. 점심으로 행사장 안에 있는 음식점에서 짱뚱어탕을 먹었다. 걱정했던 냄새는 없었고 추어탕과 비슷한 맛이었다. 짱뚱어탕 한 그릇에 8천원을 받았다. 여기서 순천만 습지까지 다시 8천원을 내면 스카이큐브라는 무인전동차로 습지까지 갈 수 있다. 순천만 습지 입구에 도착하자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갈대밭에 들어 섰다 나무로 만든 나지막한 통로를 따라 사람들이 걸었다. 가족단위, 연인들의 발길이 나란히 서서 길을 막고 가는 바람에 걸음이 빠른 필자는 여러 사람을 헤치고 가야 했다. 갈대는 억새와 달리 볼품은 없는 식물이다. 다만, 염분이 많은 갯벌에 적응해서 살고 있는 몇 안 되는 식물이다. 군집하여 있으니 볼만 한 것이다. 1m 정도 아래에 짱뚱어와 게가 많이 보였다. 갈대를 꺾어 쿡쿡 찔러보는 사람들도 있고 호기 있는 사람은 바지를 걷어 부치고 내려서려는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 회차로가 있어 절반 쯤은 거기서 돌아서는 것 같았다. 계속 앞으로 가니 용산전망대 표지가 나왔다. 뉴스 사진을 기억해 보니 높은 곳에 올라가 찍은 것으로 앞에 보이는 산 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았다. 과연 그랬다. 올라갔다 오려면 한 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갈대 밭 뒤로 올라가는 통로가 있었다. 오르막이라 노약자들은 무리일 것 같았다. 중간마다 전망대가 있다. 백미는 역시 용산 전망대로 순천만의 바다 쪽이 다 보였다. 과연 툭터진 시야도 좋았지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었다. 기대했던 철새 떼는 보지 못했다. 겨울철에나 볼 수 있단다. 단풍도 아직 철이 이르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걷고 나니 만보기가 3만보를 가리키고 있었다. 걷기로 단련된 체력이라 거뜬히 소화하기는 했으나 보통 사람들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 2016-10-11 1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