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꿈이 있었지/가슴에 묻어 왔던 꿈이/사랑은 영원하다고/철없이 믿어 왔던 날들/하지만 그 꿈은 잠시/한순간 사라져 버렸네” ( 삽입곡 ‘I dreamed a dream’)
아내 윤이남(尹二男·70)씨가 첫 소절을 부르자 남편 권영국(權寧國·75)씨가 부드러운 화음을 넣는다. 그들이 부른 노래처럼 부부에게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가수를 꿈꾸었던 소년과 간호사를 꿈꾸었던 소녀, 잠시 사라진 듯했던 그들의 꿈은 ‘뮤지컬 배우’라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가수를 꿈꾸었던 권씨와는 다르게 음악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윤씨. 그녀가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었다. 신혼 시절, 어느 날 가야금을 사들고 온 남편은 “당신 가야금 연주하면 정말 아름답겠다. 어머니 환갑 때 연주하면 좋겠다”고 엉뚱한 제안을 했다. 가야금은커녕 악기는 배워볼 생각도 없던 아내는 그 말을 웃어넘겼고, 가야금은 집 한편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윤씨는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년간 연습한 끝에 시어머니의 환갑잔치 날 ‘아리랑’과 ‘도라지’를 연주해냈다.
남편이 그랬듯 아내는 “당신, 내 가야금 연주에 판소리를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함께 음악의 즐거움을 공유하기 시작해 색소폰, 플루트, 하모니카 등 악기뿐만 아니라 스포츠댄스, 합창, 사물놀이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해오던 그들은 2007년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당시 예순을 넘긴 부부였지만 ‘아무리 고되어도 인생의 두 번째 문은 열린다’는 의지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2008년, 노년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의 오디션에 부부가 동시에 합격하게 된다. 20명 남짓 뽑는 오디션에 14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한 덕에 그들은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꿈을 펼친 뮤지컬 (2008)의 공연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다. 1967년 12월, 당시 시민회관이었던 그곳에서 결혼식을 했고, 결혼 40주년이 되던 해에 그곳에서 뮤지컬 배우로 서게 된 것이다. 꿈을 이룬 이후에도 그들의 일상은 분주하다. 연기활동 외에도 함께 구연동화 자격증을 따서 봉사활동도 다니고, 노인 상담, 인문학 강의, 악기 연주 재능기부도 하는 등 다정히 손을 잡고 행복한 제2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늘 대화가 끊이지 않는 부부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지난 추억들을 되새기고 노래를 부르느라 새벽을 훌쩍 넘길 때가 많다고 한다. 잦은 대화는 행복했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노력이다. 그런 추억을 모아 2014년에는 이라는 부부 자서전도 만들었다. 이후 각자의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은 늘 그렇듯 함께 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담아가고 있다.
Q & 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남편) 학창시절부터 노래의 즐거움을 알았고, 무대를 동경해왔죠. 음악은 취미로만 여겼을 뿐, 직업이 되기는 어려웠어요. 직장생활하고 연년생인 삼남매를 정신없이 키우느라 ‘꿈’은 정말 꿈도 못 꾸고 살았죠.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남편) 50세가 되던 해, 무엇이든 아내와 같이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러던 어느 날 ‘충무아트홀 연극 교실’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죠. 아직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 길로 아내와 연극 교실에 등록했고, 그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다지고, 꿈의 무대에 도전하게 됐어요.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아내) 어릴 땐 나이팅게일처럼 간호사가 꿈이었어요. 늘 ‘멘소래담’ 같은 연고를 들고 다니며 다친 아이들에게 발라주곤 했죠. 결혼을 하고 꿈이라는 것은 딱히 없이 지냈는데, 남편과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잠재된 재능을 발견했어요. 그러면서 꿈과 목표가 생겼죠. 중년 이후의 꿈은 남편이 찾아준 것과 마찬가지예요.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아내) 뮤지컬 배우는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노래, 연기, 춤, 그리고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대사 암기가 난관 중 하나였어요. ‘연습만이 최선이다’라는 생각으로 언제 어디서든 남편과 대사를 맞추고 안무를 익혔죠.
당신의 꿈은 무슨 색?
(남편) 어떤 꿈이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죠. 젊어서 꾸던 진취적인 꿈, 중년에 꾸던 삶의 돌파구 같던 꿈 등. 지금 떠올려보면, 행복했던 꿈도 있고 서글픈 꿈도 있고 그래요. 지금은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빛을 띤 색이라 하고 싶어요.
(아내) 저는 아직도 무지갯빛 꿈을 꿔요. 모든 일이 재밌고, 신나고, 행복하고, 그만큼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색깔의 삶을 살고 있죠.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남편) 커튼콜. 그 순간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무대 위에서 관객의 환호와 박수를 받는 그 광경은 잊지 못해요. 무엇보다 아내와 함께 꿈을 이뤘다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뮤지컬 배우 부부도 많이 없지만, 우리처럼 노년에 뮤지컬 배우가 된 부부는 거의 없잖아요.
(아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노년의 삶이 준 선물이죠. 그동안 아이들 키우고 어르신 모시느라 제 삶이 없었잖아요. 그런 시기가 지나고 나니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제 삶을 사는 시간도 많아졌죠.
자료를 고르려 단골 서점에 들렀다가 교양서적 코너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분석하고 설명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어떤 책은 남자는 머물고 싶은데 여자는 떠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책은 남자는 화성에서 왔는데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한다. 남자는 착각하고 여자는 고민한다는 책도 있고, 놀랍게도 남자는 발레하는데 여자는 권투한다는 책마저 꽂혀 있다. 심지어 그런 종류의 책들 숫자가 갈 때마다 늘어난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나 다른 존재였던가, 새삼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김유준 프리랜서 기자 dongbackproject@gmail.com
아닌 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은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대목에 관해서는 연구가 왕성하다. 인문학자들이 공을 들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어디 학자들뿐이겠는가. 일반 사람들의 시선 또한 종종 그 지점을 향한다.
최근 술자리에서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성과 달리 여성들이 왜 그토록 손톱 치장에 공을 들이는지에 관한 주장들이었다.
누군가 “요즘 손톱이 유난히 거칠어졌다”고 한마디 툭 던지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다른 누군가가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에서도 발견됐을 만큼 역사적으로 본디 손톱 치장은 남녀 통틀어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는 어쩐지 젠체하는 설명으로 그 말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옛날이라면 손톱 치장과 유지에 비용이 수월찮게 들었을 테니 지체 높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을 게 분명하다.
토론의 초점이 ‘근현대에 이르러 그러한 전통이 여성들에게만 전해진 이유’로 모여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늦은 밤의 술자리에서 때 아닌 심리학, 인류학 토론이 벌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느 사회심리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이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성(異性)에게 잘 보이기보다 스스로 만족하려는 원인이 더 크다’는 게 정설. 손톱 치장은 그 화장 가운데에서도 해당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다. 거울 없이도 원할 때면 곧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누군가로부터 칭찬 듣기를 소망하는 존재. 아무도 자신을 칭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라도 해야 한다. 손톱이야말로 그때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부위다. 그것이 그가 주장하는 ‘여자만 손톱 치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였다.
홍보 전문가인 친구가 덧붙인 말도 그럴 듯했다. 한창때는 화장하지 않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꾸미지 않으면 스스로의 모습에 스스로가 실망하기 일쑤. 때문에 슬슬 화장이 진해지기 시작하고, 세월이 훌쩍 더 지나 화장만으로 목적 달성이 여의치 않아지면 반사적으로 손톱을 비롯해 팔이나 다리처럼 얼굴 아닌 부위에 집중하게 된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러므로 보석이나 장신구, 사치품 따위를 선물해서 여성을 공략하려는 방법은 젊은 여성보다 나이 든 여성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보석은 손톱 치장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란다.
남자는 파악과 대응의 파트너
중년 여성들은 이성을 꼭 끌어안고 가야 할 동반자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더 잘 정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해와 상생’보다는 ‘파악과 대응’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오른쪽 주먹을 내지르면 왼쪽으로 피하고 왼손으로 옆구리를 쳐서 굴복시켜라’ 하는 식의 책들이 과연 행복한 만남의 카운슬링으로 알맞을까. 그들에게 이성은 오랏줄을 던져 포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뉴욕 타임스가 베스트셀러로 꼽았다는 같은 책들은 대표적인 예. 저자인 칼럼니스트 세린 야곱은 ‘남자는 어차피 특정적 인성의 여성을 좋아하게 돼 있는 존재’이므로 ‘엄마가 되기보다는 연인이 돼야’ 사랑받을 수 있으며 ‘슈퍼우먼은 강하지만 외롭다’고 못 박는다. 급기야는 ‘여자들이 매달릴 때 나타나는 열 가지 징후’까지 거론하며 결코 그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주창하는 바는 곰보다는 여우가 돼야 한다는 것. 여우가 뭐가 나쁘냐면서.
물론 여우 같은 여자가 지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남자들에게 두루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여자들이 비난 받을 이유 또한 없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듣고 나면 그만 숨이 턱 막힌다. 삶을 군인이 작전 수행하듯 살아서 과연 행복할까 싶다. 먼저, 모든 여성이 여우처럼 살아야 남성을 쟁취할 수 있으며 그래야 행복해진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한가?
예를 들어보자.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목표가 명확한 여성’일수록 더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으로 막연히 ‘마음이 맞다’거나 ‘그저 끌린다’는 식보다는 ‘연봉이 바라는 수준이며 학벌도 커트라인 안에 든다’ 하는 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인 당신은 세상 모든 남자를 숫자로 평가할 것인가? 천성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여성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불행하지도 않다.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세상 남자들이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경마 정보지 못지않은 책들을 참고서 삼아서 타고난 성품까지 바꿔가며 획일적으로 살아야 남성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면 남자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열이면 열 똑같은 상대만을 선호하는 천편일률, 초지일관의 고집불통인가?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다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다. 여성 역시 남성의 적이 아니다.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올 법한 말이라 다소 객쩍기는 하지만, 어쨌든 둘은 서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관계다. 서로 적대하지 않고 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성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연구해야 할 문제는 바로 그 ‘어떻게 해야 서로 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우가 돼야 한다거나 하는 식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이큐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다는 일본의 뇌 과학자 사와구치 도시유키(澤口俊之) 무사시노 가쿠인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다릅니다. 굳이 수치로 말하자면 약 80퍼센트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이 많으니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그 방법들을 모두 수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고 내버려두는 편이 더 수월하고 또 바람직합니다.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덮어두는 것입니다. 찜찜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실은 대단히 유용합니다.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나대로 살겠다’고 하는 태도가 오히려 둘의 사이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라면 ‘쿨’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상대를 선택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작정 끌려서일 수도 있고, 명확한 장점들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상대를 믿고 인정해야 한다. 처세서에 기술된 자잘한 잔머리는 한때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거나 일시적으로 상대의 관심을 끄는 데 쓸모 있을지 몰라도 머나먼 여정을 함께 가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공산이 더 크다.
윤용인이 쓴 에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아끼던 술을 아내가 버린 데 격분한 저자가 아내의 천연비누를 모조리 버렸더니 아내가 화들짝 놀라 금방 술을 사왔을 뿐 아니라 다시는 버리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뒤로 저자 역시 비누를 되찾아주었다고 한다.
난데없이 웬 부부싸움 이야기를 늘어놓았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시인이며 심리학자인 김경미는 저서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리학에 능통한 분들도 때론 자기 마음을 어쩌지 못하죠.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기 싸움을 벌이고 상대를 내 식대로 고치려 일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심리 전문가들이 부부 문제에 관해 이구동성으로 조언하는 제1항목은 ‘상대를 내 식으로 고치려 하지 마라, 상대를 인정하라’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서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행복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도 남자 나름. 좋은 남자도 있고 나쁜 남자도 있다. 어느 개그우먼이 배우자의 파탄적 혐의 탓에 두 번째 결혼 생활까지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새삼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리서치 결과를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살펴보자. 모두 어떤 남자가 나쁜 남자인가를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연구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에 기술되는 내용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일 뿐이라는 사실. 먼저 영국 신문 메트로 지(紙)의 기사 내용을 참고해보자.
영국 굴지의 만남 사이트에서 어떤 면에서는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는 유별난 조사를 실시했다. 남자의 발 크기와 바람기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리서치다. 언뜻 무슨 생각에서 그런 작업을 했을지 의아하기조차 한데 어쨌든 상당히 엉뚱한 결과가 도출됐다.
발 크기가 클수록 바람기가 많다는 것이다. 발 크기가 285밀리미터인 남성들은 260밀리미터인 남성들보다 세 배 더 바람을 피우며, 295밀리미터인 남성들은 250밀리미터인 남성들보다 다섯 배 더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결과다.
이 조사 결과를 두고 학자들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관계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체격이 좋고 목소리가 낮을수록, 다시 말해 남성 호르몬이 많을수록 바람기가 한눈을 더 잘 판다는 리서치 결과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그와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두 번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심리학과의 연구 결과다. 18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성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SNS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많이 올려놓은 남성일수록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고, 거짓말을 자주 하며, 자기중심적인 남성일수록 SNS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많이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사진을 좀 더 좋게 보이도록 손질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경향이 짙었으며, 심한 경우 사이코패스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발과 페이스북만 확인하고는 상대를 완전히 다 알아냈다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남성은 여성의 적인가. 여성은 남성의 적인가. 어느 쪽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상생하며 조화를 이뤄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빚어지는 남과 여의 대결 양상은 심히 우려스럽다.
이성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할 말 그대로의 동반자다. 채복기 목사는 이라는 책에서 배우자는 ‘또 하나의 반쪽’이며 ‘또 하나의 심장’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대를 적으로 돌려서야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마리 퀴리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한복선(韓福善·66) 한복선식문화연구원장. 그녀는 허구의 소설보다는 사실적인 전기(傳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소설보다 감동적인 실화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요즘 가장 강력한 희망의 기운을 주는 책은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저)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97년 초판이 나오고 뉴욕타임스 19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이지만 그녀는 최근에서야 를 접했다. 올해로 93세인 고모님이 당신의 딸(한 원장의 고종사촌 언니)에게서 2년 전 선물받은 책을 다시 한 원장에게 선물한 것이다. 책에는 ‘사랑하는 엄마에게 드립니다’라는 손 글씨와 함께 고모님의 흔적이 더해져 따뜻함이 물씬 느껴졌다.
“어느 날 고모님이 제게 줄 것이 있다며 부르셨어요. ‘나는 떠나야 하니 남기는 것 없이 가야겠다’며 이 책과 동의보감, 한씨 족보, 손수 쓰신 편지를 주셨죠. 자신의 모든 짐을 주변 사람들 각자의 성향에 맞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골라 주셨는데, 이 책이 제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신 거죠. 우리 고모님은 저에게 ‘매일 아침에는 희망에 살고, 낮에는 노력에 살며, 밤에는 반성에 산다’는 붓글씨도 써주셨던 분인데, 이 책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며 두고두고 읽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정말 두고두고 제게 희망을 주고 도움이 될 만한 책이었죠.”
사랑한다면 칭찬하기
고모님의 붓글씨처럼 책에는 희망, 노력, 반성을 이끄는 메시지가 가득했다. 그녀는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인생의 연륜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의 실화라는 점에 더욱 감탄했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것들, 이제부터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다짐 등을 떠올리며 책을 읽는 내내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움과 가르침을 위한 수프’의 한 이야기다. 미네소타 주 성모 마리아 학교의 므로슬라 수녀는 반 아이들에게 급우들의 이름을 백지에 모두 적게 한 뒤, 그 이름 옆에 자기가 생각하는 그 학생의 좋은 점과 훌륭한 점들을 적게 했다. 그리고 다른 종이에 친구들이 말한 그 아이의 장점들을 모두 기록해 다시 나누어 주었다. 훗날 베트남에서 전사한 한 아이의 지갑에서 자신의 장점이 적힌 종이가 나왔는데, 놀라운 것은 그의 장례식장에 온 다른 학생들도 저마다 그 종이를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오래된 종이 한 장을 인생의 보물처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한 원장은 옛 추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교생 선생님께서 우리 반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적은 뒤 각자 사귀고 싶은 친구를 화살표로 그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많은 친구가 제게 화살표를 줬는데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죠. 이것에서 한 단계 발전된 것이 책에 나온 장점 종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저는 ‘칭찬’의 힘을 믿어요. 칭찬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집중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이에요. 사실 저는 엄마(궁중음식의 대가 고 황혜성 교수)에게 ‘엄마는 훌륭해’, ‘예뻐’, ‘사랑해’ 이런 말들을 마음에만 간직하고 표현은 못 했어요. 후회를 안 하는 성격인데 그건 정말 후회로 남더라고요. 그래서 딸들에게 ‘너희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나도 칭찬 좀 해줘’라고 말하곤 하죠.”
묵은지보다는 ‘젊음 겉절이’
한 원장은 2013년 첫 음식 시집 ‘밥 하는 여자’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음식 시집 ‘조반은 드셨수’를 펴냈다. 음식 시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의 제목과 내용은 모두 음식과 연관돼 있다. 그녀는 음식의 역사와 조리법, 개인적인 추억까지 담아 100년 후에 시집을 보았을 때 우리 음식의 역사와 사회상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깍둑깍둑’, ‘댕강댕강’, ‘호물호물’ 등 아름다운 우리말이 어우러진 그녀의 시들 중에서 ‘젊음 겉절이’라는 시가 눈에 띄었다.
“나도 노인이지만 우리 노인들은 표정이 너무 근엄해요. 무섭기도 하고. 어찌 보면 너무 어른답게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노인을 비유하는 단어로 ‘묵은지’를 많이 쓰죠.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묵은지처럼 내가 이렇게 묵었으니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가르침보다는 늘 싱싱한 겉절이를 담가 젊은이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김치나 젓갈을 넣은 겉절이처럼 전통은 전수하지만 오렌지주스를 넣은 겉절이도 괜찮으니 각자 자신만의 겉절이를 담가보라고 하죠. 저 역시 새롭고 싱싱한 나만의 겉절이를 담가서 묵은 훈계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공유하려고 해요.”
뜸이 잘 든 차진 인생을 위하여
‘어둡고 무거운 더듬고 가는 안개 속 세상/ 맛있게 살려고 뜸 들여 가지만/ 다 익지도 못하고 우리 설컹히 가는구나’ 그녀의 시 ‘뜸 들이다’의 마지막 연이다. 뜸을 잘 들여야 인생이 맛있어진다는 그녀. 한 원장의 인생 뜸도 잘 들여지고 있을까?
“우리는 아직도 철들지 못하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잖아요. 다들 뜸 들이고 있는 과정이죠. 뜸이 다 들고 익으면 성인(聖人)이 되겠지만, 아마 우리는 이 삶이 끝나고 뚜껑을 열었을 때 그 뜸이 잘 들었는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사사로운 고민과 걱정에 휩싸이게 되잖아요. 아주 작은 일로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요. 그것은 결국 나의 수양이 부족해서죠. 세상에 번잡하고 화나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내뱉는 것은 오히려 피곤해요. 다른 쪽으로 해소하는 방법이 필요하죠. 저는 그런 것들을 시로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뜸을 들이는 편이에요. 지금은 나이도 있으니 저도 뜸이 한 70%는 들었겠죠. 나머지 푹 익히고 싶은 30%는 시와 음식,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채워 가면 되지 않을까요?”
불교에는 인생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생이 덧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을 깨닫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빈손으로 가는 삶일까? 다른 사람을 위해 돈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 이들은 결국 온 누리에 이름을 남긴다.
◇ 백선행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돈 쓰기
조선 말기 평양에 16세에 과부가 된 여인이 있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이 죽자, ‘남편 잡아먹는 년’이라고 친정으로 쫓겨나는 설움 속에 ‘백과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녀의 나이 7세에 아버지를, 16세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 결국 ‘쌍과부’ 상태로 어머니와 지내게 됐지만, 26세 되던 해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홀로 남은 딸이 걱정돼 현금 1000여 냥과 150냥짜리 집을 남겨놨는데, 그마저도 사촌오빠에게 빼앗겼다. 빈털터리가 된 백과부는 주위 이웃들에게 닥치는 대로 일감을 달라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삯바느질에 길쌈은 물론이고 남들이 먹다 버린 복숭아씨를 파는 일까지 그야말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이러니 사람들이 ‘악바리 백과부, 지독한 백과부’라 부를 만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열심히 일하고, 남의 궂은일까지 먼저 달려가 일손을 돕는 백과부를 좋아했다.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 도와줄 정도. 한 번은 그녀가 꽤나 재산을 모았다는 소문을 들은 탐관오리 평양부윤이 재산을 바칠 것을 요구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와 상소를 올려 감옥에서 풀려난 적도 있다.
그렇게 그녀는 모은 돈으로 땅을 사고 그 땅을 소작농에게 대여해 소작료를 받아 다른 땅을 사들이는 것을 반복하면서 재산을 크게 늘렸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도 뛰어나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돌산을 헐값에 사들여 일본인 시멘트 업자에게 100배가 넘는 가격에 되팔기도 했다. 이는 당시 32만원으로, 현재 32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렇게 부자가 된 백과부는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데 쓰기 시작했다. 환갑을 맞아 고향인 대동군 고평면에 커다란 다리를 놓자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크게 칭송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기대했는데 딸을 낳자 실망하여 이름조차 없었던 ‘백과부’는 그때부터 ‘백선행(白善行)’이라 불렸다.
이후 백선행은 ‘선행’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사재를 털어 교회를 짓고, 어머니와 자신의 한풀이를 위해 학교를 세우고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평양에 있는 모든 학교가 그녀의 기부금으로 운영될 정도였다.
1933년 5월, 그녀가 86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평양이 울었다 할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백선행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300개가 넘는 화환과 만장 등이 늘어선 장례행렬은 2km나 이어졌고, 장례식에는 1만여 인파가 운집해 애도했다.
과부라는 외로운 삶과 사회의 편견 속에서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회에 기부한 여인 백선행은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돈 쓰기를 실천한 여인이었다.
◇ 이종순(94)씨 사랑과 이름을 남긴 10억
지난 5월, 구순을 넘긴 여인이 휠체어를 타고 서울 노원구의 삼육대학교 교정에 들어선다. 장학금을 기부하기 위해서다. 액수는 무려 9억원. 2012년 1억원을 기부한 것까지 더하면 합이 10억원이다. 아름다운 은빛 머리카락의 이종순씨였다. 평생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며 벌어온 돈을 선뜻 내놓는 90대 여인의 목소리는 환희로 가득찼다.
“평생 꿈꿨던 소원을 이제야 이뤘습니다. 이 나라를 발전시킬 인재를 위해 써 주세요.”
그녀는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는 생각으로 아끼고 아껴 재산을 모았다. 6·25 중에도 화장품, 군복 장사 등 안 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평생 고생하며 모은 돈으로 사들였던 오피스텔을 처분해 기부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삼육대는 그녀의 뜻을 기려 기존의 보건복지교육관을 ‘이종순기념홀’로 명명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에 ‘이종순’이라는 이름을 묘비 아닌 다른 곳에 남긴 셈이다.
◇ 故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 이사장 검소한 회장님이 남긴 450억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지 못해 남긴 남성이 플라스틱 통을 꺼낸다.
“주인양반, 짜장면 남긴 것 좀 싸가겠소.”
주변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은 혀를 차며 안타깝게 쳐다본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나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여겼을 게 뻔하다. 음식을 싸가는 남성도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닌 듯 플라스틱 통에 담는 손길이 능숙하다.
그 남성은 ‘도와줘야 할 대상’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아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그는 ‘회장님’이다. 태성고무화학의 전 회장이자 신양문화재단의 명예 이사장 고 정석규의 이야기다. 그는 1967년 태성고무화학을 설립해 회사를 업계 최고로 키운 거부임에도 평소 검소한 생활로 주위에 귀감이 돼 왔다.
지난 5월 21일 향년 86세로 별세한 정석규 명예이사장은 생전에 모교인 서울대에 450억원을 기부했다. 1987년에 시작한 그의 기부활동으로 장학금 혜택을 받은 서울대 학생만 해도 820명. 그 액수도 25억 6200만원이나 된다. 여기에 인문대와 사회대, 공대 등 3곳에 그의 아호인 ‘신양’을 딴 신양학술정보관도 지어져 후배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정 이사장의 기부활동에 대해 그의 일상생활이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돈은 분뇨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풍성하게 뿌리면 고루 수확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평생 신조로 사신 분입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그를 다 낡아 떨어진 구두를 신고 다니는 이사장으로 알고 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추모와 감사가 계속됐다. ‘당신께서 만들어주신 계단 덕분에 현재 꿈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의 삶처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등의 내용이다. 정 명예 이사장이 베푼 것은 돈이지만, 남은 것은 그의 삶의 철학과 품격이었다.
◇ 故 김경수씨 못 배운 한, 한풀이 1억원을 남기다
지난 1월, 그 추웠던 겨울의 한가운데, 꽁꽁 언 마음까지 녹이는 훈훈한 이야기가 제주대학교에서 들렸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의 고 김경수(81·여)씨가 평생 농사일을 하며 모은 1억 원을 불우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으로 기탁한 것이다.
김씨는 어린 시절 제주 4·3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마저 어머니 따라 떠난 뒤 그는 어린 여동생과 힘겹게 살았다. 불우한 환경은 그녀에게 배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배우지 못한 한은 평생 그녀를 괴롭게 했다.
배움에 대한 한을 그녀는 봉사를 통해 풀 수 있었다. 자신과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평생 모은 돈을 기탁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런 선행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주변 정리를 하는 가운데 자녀들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었던 것. 결국 그녀는 대학발전기금 기탁식 11일 후인 1월 16일 세상을 떠나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평생을 6남매 뒷바라지해오면서 언젠가는 당신께서 겪으신 인생의 한과 설움을 사회봉사로 풀어보려는 생각을 가지시고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오랫동안 준비해오셨습니다. 이 돈은 평생 한여름 뙤약볕에서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면서 몸이 죽어가는 줄 모르고 일해 모은 쌈짓돈입니다. 의연하신 의지로 단호한 결정을 내려주신 어머니께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행복하고 자랑스럽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녀의 자녀들이 대학발전기금을 기탁하면서 낭독한 ‘장학금 기부자 자녀들이 드리는 글’은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격동의 세월을 살며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것이 한이었지만, 그녀는 돈과 함께 희망을 남겼다. 한은 스스로 거두어 갔다.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지금, 부모에서 자식으로, 손주에게 자산을 배분하는 ‘세대간 원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부등식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r>g]다. 즉 자본가가 주식과 투자로 번 돈이 일반국민의 소득 성장보다 커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격차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자산을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 자신의 세대만 행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쌓은 재산은 다음 세대에게 선물해야 한다. 자산가들은 금융자산, 부동산, 현금 등 세 가지 별로 남기는 사람과 남기지 않은 사람들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정리 이태문 동경 통신원 gounsege@gmail.com
◇ 금융자산
>> 남기자 파
△ 장기투자로 자산을 늘린다
장기투자란 자신이 응원하고 싶은 기업에 투자해 그 성장과 함께 돈이 늘어나 되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장기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시작하는 시기는 이를수록 좋다. 일반적으로 일해온 사람이라면 막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걸 더욱 늘려서 처음으로 ‘어떻게 남길까’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퇴직 후에도 20년 정도 인생은 계속되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다. 장기투자를 시작하면 돈이 느는 흐름을 타고 생활할 수 있어 여유를 유지하게 된다.
△ 장기투자를 후세에 남긴다
진짜 투자가는 ‘돈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에 돌린다’는 가훈 아래 일하고 기업을 응원하는 것으로 사회에 공헌하며 몇 대에 걸쳐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다. 알뜰하게 쌓아올린 돈이기에 소중하게 길러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는 것이다. 자산을 물려줄 때는 자손에게 그러한 교육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돈이 세상을 위해 일한다는 점, 자신이 그 기업을 응원하는 이유 등을 자식과 손주에게 알려줄 것. 그러면 후손들도 돈과 함께 ‘그런 식으로 살아가라’라는 당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여 의미 있게 돈을 쓸 것이다.
예를 들어 1000만엔이라는 돈을 상속해도 받은 쪽은 2~3년 놀며 살면 끝나 버린다. 과연 그게 좋은 상속이라고 하겠나?
그리고 어떤 투신도 소액으로 현금화할 수 있어 주식과 달리 받는 측도 쪼개서 상속세를 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식과 손주의 부담도 배려해야 한다.
>> 안 남기자 파
△ 의미 있는 기부를 한다
돈을 소중히 키우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기부는 자신의 꿈과 생각,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다. 기부를 할 때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죄 만들기’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부를 받는 곳의 활동이 시간이 걸리는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사정으로 기부를 그만두면 겨우 움직이기 시작한 기부처의 활동도 중지되고 만다. 특히 기부의 도움으로 활동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낭패를 당하게 된다. 돈을 내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기 세대에서만 기부가 끝나지 않도록 자식과 손주에게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알리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기부하면서 활동에 참가
돈이 어디서 어떻게 쓰이는지 불투명한 곳에는 기부하지 말 것. 그리고 기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부처에 노동력을 제공하면 더 의미있게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도우미 활동을 지원한다. 기부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고령자도 정년 퇴직 후 평생 사회와 이어질 수 있다. 자식과 손주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돈만이 아니라 기부활동에 관한 생각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부동산
>> 남기자 파
△ 신축 아파트 경영
부동산을 똑똑하게 남기는 대표적인 방법은 신축 아파트 경영이다. 갖고 있는 자금으로 땅을 대출 구입해 아파트를 짓고, 월세로 경영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 젊은 사람들은 도심에서 살기를 동경한다. 그런 20~30대의 젊은 세대를 겨냥한 아파트 경영은 장래에도 안정된 투자라고 하겠다.
자신은 월세 수입으로 얻은 돈에 연금을 얹어 입지 조건이 좋은 아파트를 빌리든지 사든지 해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10~20년 뒤 도심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을 다 갚은 시점에 손주에게 물려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손주에게는 월세수입이 큰 도움이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 좋은 대출은?
임대 병용 주택을 지어서 한쪽은 빌려주고 또 다른 한쪽에 사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월세 수입으로 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돌린다. 그 경우 아파트 대출(투자대출)이 아니라 주택대출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낮은 금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 투자에서 ‘좋은 대출’이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입주자가 갚도록 하는 것이다. 남은 월세수입은 자신의 재산.
>> 안 남기자 파
△ 일찌감치 판다
손주에게 확실하게 월세수입이 있는 아파트를 남기길 권하고 싶지만, ?아파트 경영이란 모험은 못 하겠다’라는 사람들에게 다음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 지금 사는 집을 매각할 것. 입지에 따라 다르지만 알다시피 거품이 빠지고 나서 토지가격이 상승할 기미는 없다.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매각해서 역 앞 아파트로 이사하는 쪽이 무난하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빈부의 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말했는데, 일본에서 현재 두드러진 것은 ‘토지의 격차’다. 값이 오르는 토지와 떨어지는 토지로 양극화됐다.
팔 것을 생각한다면 도심에 사는 사람은 혹시 상승할지도 모르는 토지가격의 변동을 조사하고, 교외와 지방에 사는 사람은 서둘러 매각하길 권한다.
△ 빌린다
입지가 좋은 집이라면 누군가에 빌려주고 자신은 역 앞 아파트에 살자. 20만엔 정도로 빌려주고 10만엔에 역 앞 아파트를 빌리면 남은 10만엔이 생활비다. 다만 ‘아무도 빌리지 않겠지’라고 판단되는 곳이라면 빌려주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살고 있는 집을 매각해 그 집을 빌려 살 수도 있다. 해외에 살고 있는 딸 내외가 귀국해서 살 집을 사전에 구입해 두는 경우이다. 교섭하기에 따라서는 딸 내외가 귀국하기 전까지 싸게 빌려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 기부한다
전국에 빈집이 820만호나 있는 시대. 인구감소의 사회가 도래하기에 향후 빈집이 증가할 것은 틀림없다.
아무리 집과 토지를 무상으로 기부한다고 해도 지방자치단체와 NPO법인으로부터 ‘필요없다’는 답변을 받는 것도 각오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시의 경우 집을 기부한다고 신청해도 이미 빈집이 1만호나 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해체비용도 들고, 빈터로 만들면 고정자산세가 6배가 된다. 기부를 생각한다면 서둘러 결정하라.
의사와 환자, 생명을 걸고 맡기는 관계, 둘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라뽀(rapport)라고 말한다.당신의 의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내 신정아(申貞娥·44) 씨의 간을 이식받아 새 삶을 얻은 이경훈(李敬薰·48) 씨와 그를 살린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韓虎聲·56), 최영록(崔榮綠·40) 교수가 그들만의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감사합니다. 저는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서, 그리고 여기 좋은 교수님들과 함께해서 전 복 받았죠. 제가 새 삶을 얻은 것은 모두의 사랑 덕분입니다.”
이경훈씨에게서는 남다른 긍정적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씨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은 따뜻했고, 부부를 바라보는 교수들은 흐뭇한 미소로 화답했다. 아내의 간을 이식받은 남편, 이 부부의 새로운 삶에 동행하는 의료진은 한가족과 다름없어 보였다.
어느 날 찾아온 통증, 그리고…
이경훈씨는 2011년 11월 신정아씨와 화촉을 올렸다. 마흔 넘어 결혼했지만, 그렇기에 남들보다 즐겁고 소중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이씨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든 다 해주고 싶은 남편이었다. 결혼 후에는 더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과로가 쌓이다보니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결혼 2년이 지난 시점부터 위가 쓰린 날이 많아졌다. 동네 병원에서 위궤양을 판정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선선하게 가을바람이 불던 일요일로 기억됩니다. 말로 못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어요. 결국 119를 불렀고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위궤양은 약 처방을 받으며 조금씩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평소 앓던 B형 간염 증세가 악화되면서 간성혼수(肝性昏睡)가 생겼더라고요. 그때부터 응급실에 가야 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병원을 오가는 동안 그는 점점 지쳐갔다. 지난해 7월에는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가야 했다. 그 이후, 다니는 병원을 포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의정부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정밀검사결과는 간암이었다. 다행히 색전술은 받았으나 간기능 저하로 인해 간이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그 대학병원에서는 간이식 수술을 할 만한 의료진이 없었다.
“처음에는 위궤양 판정을 받았으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간암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무너지더라고요. 간이식을 받아야 한다니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위해서 간이식을 받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때만 해도 아내의 간을 받을지는 몰랐었죠.”
이씨는 주변사람들에게 수소문해 간이식 명의로 알려진 한호성 교수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한 교수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최종 목적지를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생각하고 2014년 가을 한 교수를 처음 만난다. 지난 3월 드디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아내의 사랑과 의료진의 헌신에 힘입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 이씨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통상 간이식 환자들은 면역억제제를 장기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부작용 등 어려운 부분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열심히 극복하고 있다. 의료진의 말을 잠시 빌리면,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이지만 관리가 되고 있어 약도 줄이고 있고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검사결과도 없다. 아마도 아내와 의료진에게 받은 사랑 덕택이 아닐까? 다만,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는 과정동안 직장을 잃게 돼 경제적인 부분이 어려운 상태다. 그런데도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문제를 뛰어넘으리라 다짐한다. 그에게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이면서도, 가장으로서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엄마에게 신장, 남편에게 간을 준 여자
신정아씨는 가족을 위해 두 번 장기 기증을 했다. 어머니에게는 신장을, 남편에게는 간을 떼어준 특별한 사람이다. 신씨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고혈압과 갑상선 질환을 앓다가 유행성출혈열의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부전이 생겨 신장이식 수술이 필요하게 됐다. 신씨는 어머니를 위해 신장을 기증키로 했다. 이식 수술 후 어머니와 신씨 모두 건강하게 지냈다. 이씨와 결혼도 하고 행복이 무르익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께 신장을 떼어준 지 8년이 지났을 때, 남편이 간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제가 남들과 다른 건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요. 간을 떼어주는 일, 그걸로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신장이식을 했기 때문에 간이식도 가능할지 궁금했어요. 결국 적합판정을 받게 됐고, 남편을 위해 간을 떼어주는 일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신씨는 남편도, 의료진도 만류했지만 간을 떼어주고 싶다고 확고하게 말했다. 가능성이 있다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게 그녀의 특기였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다시 깨 볶는 소리가 들리는 가정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현재 신씨는 퇴원 후 건강관리를 받으며 음식 조절과 가벼운 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두 번이나 장기기증을 했지만, 남편의 사랑에 기운을 내고 있다. 그녀에게 장기기증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두 번의 장기 이식 수술을 경험하며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게 되었어요. 장기이식은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니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많은 사람이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는 겁니다.”
참 따뜻하고 믿음직한 의료진
부부는 한목소리로 말했다. “참 따뜻한 선생님들이에요. 친절하다는 부분이요. 겉으로만 그러는지 진짜로 생각을 해주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잖아요. 이 선생님들은 ‘환자를 진심으로 살리고 싶다’는 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우린 많은 병원을 다녀봤기 때문에 잘 알아요.(웃음)”
특히 이씨는 수술 전후 상황이 아주 편했다고 회상한다. “자상하게 대해주시고 잘 될 거라고, 아내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니까. 긴장되고 떨리기도 할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수술 후에도 그냥 숙면한 것처럼 일어났죠. 중환자실에 있어도 되는 건지 미안할 정도였다니까요. 수술도 수술이지만 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시니까. 두려움도 사라졌죠.”
전문의 3명의 긴박한 협동작전
2015년 3월, 부부의 간이식 수술은 분당서울대병원 암센터 간이식팀 한호성 교수(암·뇌신경진료부원장)와 조재영, 최영록 교수가 맡았다. 이들 3명은 팀을 이뤄 수술을 진행했다. 보다 신속하고 정교하게 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증자 수술팀, 수혜자 수술팀으로 나눠 각각 진행하고 다시 협력하는 방식이다. 10시간이나 걸린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최영록 교수에게 당시 가장 고민했던 부분과 남은 과제가 뭔지 물어봤다.
“이식 수술에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기증자의 안전입니다. 이미 신씨는 어머니께 신장이식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죠. 부부는 우리들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수월하게 수술을 할 수 있었죠. 다행히 부부 모두 빠르게 회복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사실 흔치 않은 상황인 만큼 특별한 수술이었어요. 앞으로도 부부가 더욱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남은 과제입니다.”
의사는 항상 환자 중심으로 산다
또 다른 이야기지만, 메르스 공포가 한창이던 6월 20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잠정 의심환자에 대한 간이식 수술이 진행됐다. 사실 의료계에서 다들 쉬쉬했던 환자였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집도한 한호성 교수는 이른바 ‘노력하는 명의’로 통하고 있다. 부부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한 교수의 삶은 환자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가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신념을 듣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항상 책보다 환자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의사로서 살고 있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에 제시된 것처럼 이 정도면 포기하는 게 옳다’라는 판단 대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환자의 안녕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잘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의사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헌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에게 좋은 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본인의 의사를 믿어주세요. 그리고 잘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외과의로서 말씀드리자면, 작은 수술이나 큰 수술이나 합병증을 조심하셔야 되는데요. 합병증으로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만큼 수술 후 관리가 중요합니다. 의사와의 관계가 깊을수록 그 관리가 더 수월해집니다.”
의사와 환자, 생명을 걸고 맡기는 관계, 둘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라뽀(rapport)’라고 말한다. 당신의 의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대장암 3기, 수술로 극복하고 현재 완치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류세창(柳世昌·68)씨와 그를 살린 가천대 길병원 대장항문클리닉 백정흠 (白汀欽·51) 교수가 그들만의 이야기를 추억 한 스푼, 눈물 몇 방울 떨어뜨려 향 깊은 녹차처럼 우려냈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교수님, 일단 제 몸부터 봐 주세요. 체중이 좀 빠졌는데, 티가 나나요?”
168㎝의 키에 100㎏이 넘는 류세창씨는 요즘 매일 아침마다 5㎞ 이상 걷는데, 제일 먼저 백정흠 교수에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거 정말 좋은데요. 조금만 더 노력해 보세요. 아직 빼야 할 살이 많답니다. 일단 등산을 가려면 더 빼야 됩니다. 스쿼트부터 한번 해봅시다!”
백정흠 교수는 류세창씨와 등산을 한번 가고 싶은데, 아직 체중이 많이 나가서 무릎을 다칠까 봐 걱정이 된다.
대장암을 겪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보기에는 너무 편안하다. 궁금한 부분은 모두 말하고, 다 들어주는 그들의 대화에 벽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좀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情이 그리운 나에게 힘을 준 그대
류씨는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온 아버지 손에서 커 가족이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만, 외로움이 많다. 아플 때는 아픈 것보다 정이 그리운 경우도 많았다. 류씨는 진료를 받을 때마다 항상 따듯한 말로 걱정해주는 백 교수가 가족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다.
“백 교수는 의사라서 멋있는 게 아니라,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이에요.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걸요. 다들 알고 있듯이 백 교수는 대장암 명의라고 불리지만, 그런 딱딱한 자세를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난 무조건 백 교수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게 지금 제가 건강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찾아온 대장암 3기
류씨는 그날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갔는데, 시커먼 변이 나왔다. 춘장 덩어리가 변기에 박혀 있는 모습이었다. 불현듯 위출혈로 생사를 오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동한다. 검사 결과, 대장암 3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3기라고 하는데, 말이 안 나오더군요. 놀라고 겁이 났죠. 그래서 종교의 힘을 빌려 생각하기로 했어요. ‘생명이 오는 것도 거둬가는 것도 하늘의 뜻이거늘 삶에 그렇게 애착을 갖지 말자. 대신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라고요.”
백 교수도 그날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항문 출혈로 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은 류씨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체중이 많이 나가서 복강경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고민을 하던 그다.
“동양인의 체형은 말라서 서양인보다 수술이 수월하다는 보고서들이 있죠. 그런데 류씨는 달랐죠. 어떻게 수술을 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해야 했어요. 그러던 중 수술 일정이 잡혔죠. 2011년 5월 27일. 아직도 기억하는 날이죠. 복강경전방절제술을 시행했죠.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수술 후 류씨는 일주일만 입원했어요. 살고자하는 의지가 무척이나 강렬했던 거죠.”
긍정의 열매를 키우는 방법
수술이 끝났고, 류씨는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몸을 일으켜 걷기 시작한다. 백 교수의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는 말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12번의 항암치료 중에도 류씨의 끈기는 돋보였다. 보통 6~7차 때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은데, 류씨는 버텼다.
“사실 항암치료를 받는 분들을 보면 식사를 못하고 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잘 먹어야 된다기에 못 먹으면 갈아서 마셨어요. 2박 3일 동안 주사를 맞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견뎌냈습니다. 백 교수가 말하는 것들은 다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제가 항암치료를 극복해 낸 방법이었습니다.”
이제는 살아서 증명해 보이고 싶은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사에 복귀했고, 성실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최근에는 노인대학에 강사로 서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백 교수는 이런 류씨를 ‘살고자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과학적 증명이 우선시되는 의료 분야에서도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곤 해요. 그것은 긍정적인 사고가 낳은 기적 같은 일들이죠. 의사와 환자는 신뢰감을 기반으로 기적 같은 일들을 직접 증명시키는 거죠. 류씨처럼 믿음으로 긍정의 열매를 쑥쑥 빨아들이는 환자가 있는 반면 색안경을 끼고 견제하는 환자들도 있죠. 저는 환자분들에게 류씨의 긍정적인 사고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어요.”
현재 류씨는 대장암 수술 후 재발 고비 시점인 2~3년이 지났다. 이제 1년 반만 버티면 암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다. 그때까지 이들의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평생 같이할 각오이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다.
이 시대 명의의 조건, 소통
의사는 보통 외래환자와 입원환자를 구분해 진료한다. 대형병원의 경우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주치의가 상담을 하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외래를 볼 때면 5분 이상 이야기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지만 백 교수는 환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카카오그룹이라는 모바일 메신저에 모임을 만들었다. 환우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공유하는 편안한 자리를 마련한 것.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진 게 지금하고 있는 카카오그룹이 아니었나 싶어요. 우선은 환우들에게 정보를 주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폐쇄된 공간이 필요하죠. 좀 더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리고 특정 사람만 초대할 수 있으니 우리들만의 소식들이 더 소중해지죠. 또 굳이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휴대폰을 통해 수시로 환우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 시간이 아껴지죠. 오늘은 환우들이 궁금해하는 음식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84명이 가입된 이 카카오그룹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대장암 극복 환우들의 이야기들로 북적이고 있다. 백 교수 역시 수시로 참여해 환우들과의 격식 없는 소통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오는 9월 길병원에서 진행되는 ‘대장암의 날’ 행사를 멋지게 해보고 싶어 환우들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다.
카카오그룹을 설명하는 백 교수의 모습에서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번져갔다. ‘교수’, ‘센터장’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더 낮은 자세로 임하는 의사가 되려는 그, 이 시대 진정한 명의의 조건을 갖춘 것이 아닐까.
“특히 암을 겪은 환자들에게는 이겨낼 수 있다는 안정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소통을 자주 해야만 하죠. 주치의라고 해서 자주 만날 수 없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대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다가올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런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노력하고 싶네요. 치료가 우선시되는 것을 전제로 병원 밖에서도 사소한 부분을 신경 써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라뽀가 형성되는 거죠. 설명하기 힘들지만, 병을 극복하는 데 어떤 방향으로든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최근 메르스 사태로 인해 사회적으로 의료계 불신이 커지고 있다. 그것은 백 교수와 류씨의 이야기와는 달리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 급작스럽게 벌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환자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안전한 병원, 믿음직한 의사, 착한 환자의 모습으로 조속히 돌아가길 바란다.
의사와 환자, 생명을 걸고 맡기는 관계, 둘 사이에 맺어지는 깊은 신뢰감을 ‘라뽀 (rapport)’
라고 말한다. 당신의 의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심장을 이식받아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김현중(金泫中·44)씨와 그를 살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재중(金宰中·57) 교수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열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글 박근빈 기자 ra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충성!”
분주하게 병원 복도를 오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주목한다. 심장이식을 받은 김현중씨가 주치의 김재중 교수를 보자마자 하는 인사다. 김씨에게 김 교수는 생명을 준 대장님이다.
“아이 참, 됐어요. 등산은 잘 다녀왔나요?”
김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안부부터 물어본다. 김 교수에게 김씨는 살아줘서 또 활발히 활동을 해줘서 고마운 전우다.
이들은 다시 뛰는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애틋하고도 강렬한 관계다. 그 중심에는 사후 장기기증을 통해 심장을 내어준 이에 대한 감사함도 얽혀 있다. 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더 깊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생수 유통업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기침이 나더군요. 가슴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어느 날, 너무 고통스러워서 소리쳤던 날이 기억나네요. 그때 살고 있던 광주광역시 모 종합병원을 찾았는데 심장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심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더군요.”
남들처럼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했던 김씨에게 불현듯 심장병이 찾아왔다. 심장의 펌프 기능이 떨어진 확장성심근병증. 돌연사 확률이 매우 높은 병을 얻게 된 그는 고민에 빠졌다.
병아리 같은 자식과 부인을 두고 갑작스런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막아야만 했다. 유일한 해결방법은 아쉽게도 먼저 세상을 떠난 자의 심장을 제공 받아야 하는 것. 심장이식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동네 종합병원에서는 심장이식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김씨는 살기 위해 직접 서울로 가기로 했다.
“동네 병원에서는 심장이식을 할 수가 없었죠. 무의미하게 약만 복용하면서 연명하는 식의 치료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심장이식을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에 찾아가자.’ 그래서 수소문 끝에 2009년, 서울아산병원에 왔고 지금 제 대장이신 김재중 교수를 만나게 됐습니다. 유명한 의사라고 해서 뻣뻣할 줄 알았는데, 무척 자상했죠. 왠지 모르게 보는 순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만 믿고 따라가자. 그러면 나는 내 아내와 자식들을 지킬 수 있을 거야’라고 말이죠.”
그 믿음 덕분이었을까. 6개월간의 대기기간을 거쳐 기적적으로 장기기증자를 찾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물론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김씨는 점차 건강을 회복했다. 직업도 다시 갖게 됐고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뒷바라지도 이제는 문제가 없다. 다시 뛰는 심장으로 그는 새 삶을 살게 됐다.
병원 밖 감사의 연결고리
“감사합니다. 이 말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해도 모자라다는 것을 아시나요? 특히 저와 같은 심장이식 환자에게는 두 명의 천사가 있죠. 한 명은 바로 옆에 계시는 김재중 대장님이고, 다른 한 분은 심장을 주신 이름 모를 그분입니다. 한시도 잊을 수가 없죠. 잊으면 배신자가 되는 겁니다.”
그 감사함을 전파하기 위해 김씨는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식 환우회 서울경기지역 지부장을 맡아 환우들과 김 교수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 환우들이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기적인 산행모임과 김 교수와의 만남을 병원 밖에서도 이어가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실제로 6월 13일, 남산둘레길 걷기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 걷기대회는 심장이식 후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환우들과 함께 궁금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가 된다. 약 30명의 환우가 참여할 계획이다.
김씨는 김 교수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알찬 시간을 만들겠다고 다짐 또 다짐한다.
“환우회 걷기대회의 장점은 동질감을 느끼는 동료와, 그리고 우리를 이끄는 대장님과 함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죠. 환우들에게는 몇 년이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하는 특별한 시간이 되죠.”
어느샌가 김씨는 김 교수와 함께 행사를 추진하는 기획자로 변해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받은 만큼, 그 이상으로 나눠야 행복해집니다. 저는 심장이식 이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긍정적으로 밝게 웃음을 짓고 살아야 한다는 것.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심장이식 권위자, 그의 비밀노트
1991년부터 지금까지 심장이식 520건의 사례를 성공시킨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교수. 그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심장이식의 한 획을 긋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말만 들으면 권위적일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의 장점은 환자를 가족처럼 보는 세심한 배려에 있다.
특기는 깨알 같은 메모다. 그의 집무실에는 수많은 파일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물론 김씨의 파일도 두껍게 작성됐다.
“심장이식은 이식이 끝난 뒤부터 새로운 치료가 시작됩니다. 면역억제제를 평생 동안 복용해야 하고 다른 이의 장기가 이식된 것인 만큼 사소한 부분이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환자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게 제 임무죠.”
무덤덤하게 별일 아닌 듯 들려주는 김 교수의 말.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깨알 노트가 심장이식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의 생존율은 국제심폐이식학회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10년 생존률: 아산병원 75%, 학회 47%)를 기록하고 있다.
‘밴드’로 매일 만나는 사이
김 교수는 매일 1시간 동안 밴드(모바일그룹 메신저)를 한다. 환자들의 질문, 사소한 고민에까지 일일이 답변을 달고 있다. 김씨가 환우들의 의견을 받아 대표로 질문을 올리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깨알 노트를 기반으로 환자에게 생기는 작은 변화를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일종의 소명감에서 하는 일이다. 굳이 아산병원 환자가 아니더라도 질문의 답은 꼭 해주고 있다.
“사실 외래진료가 밀리고 여러 일정이 잡히면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꼭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통을 했었는데 이제는 휴대폰으로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해야죠.”
뇌사자 장기기증 활성화, 우리의 소망
김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말이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큰 가치를 믿고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서약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에 김씨도 덧붙인다. “제가 받은 새 생명은 장기기증자의 또 다른 삶이기도 합니다. 저의 모든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 새로운 심장을 갖게 된 김현중씨와 주치의 김재중 교수는 누구보다 따듯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병원 밖에서도 수시로 만나 일상을 함께하는 둘의 모습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심장이식 환우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젊은 날의 무기가 톡톡 튀는 감성이라면, 연륜의 무기는 직감이나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다. 인간의 직감과 판단능력은 연륜이 쌓이고 인생의 경험치가 더해질수록 단련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뇌과학 연구를 통해 ‘뇌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신체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뇌는 충분히 젊게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년 이후 머리가 나빠졌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익숙한 일상으로 인해 뇌의 활동이 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방법은 없을까? 눈, 코, 입, 귀, 피부 등 오감을 이용해 잠자고 있는 뇌를 깨우는 두뇌훈련을 소개한다.
도움말 양영애 인제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
참고 요네야마 기미히로 · 전나무숲 출판사
STEP 1. 오감자극으로 젊은 뇌 만들기
Q. 당신의 라이프 스타일은?
1. 일주일에 한 번은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2. 음악은 항상 새로운 장르를 번갈아 듣는다.
3. 최신 유행어를 알고 있다.
4. 자신의 전문분야 말고도 다른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5. 가끔 10분 이상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A. 당신의 두뇌 상태는?
위의 항목 가운데 2개 이상 체크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뇌는 쿨쿨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소개할 두뇌 훈련을 열심히 실천해서 뇌에 생기를 팍팍 불어넣자!
1) 눈 감고 밥 먹기
시각 정보를 차단해 공간감, 후각, 미각, 촉각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먼저, 눈을 감고 상상력을 총동원해 반찬이 어디에 있는지 식탁 위를 헤매라. 공간과 관련된 상상은 우뇌를 자극한다. 반찬을 찾았다면 젓가락으로 집어 그것이 무엇인지 촉각과 후각을 이용해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입으로 가져가 맛과 향으로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최종 확인한다. 이처럼 시각 정보를 차단하면 평상시 쓰지 않던 뇌 기능을 그만큼 의식해서 쓸 수 있다.
2) 주머니 속의 동전 알아맞히기
잠자고 있는 촉각을 깨워 두뇌를 자극해보자. 우리는 시각 덕에 평소 손으로 물건을 만져보고 형태를 파악하는 일이 드물다. 촉각이 뇌 속에서 가장 깊이 잠들어 있는 감각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머니에 10원짜리 동전과 100원짜리 동전을 각각 5개씩 넣고 그것이 얼마짜리 동전인지 만져서 알아맞혀 보자. 크기나 무게로 금방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이처럼 손가락의 미묘한 감각을 더듬어 보는 일은 바로 대뇌피질의 자극으로 이어진다.
3) 귀 막고 계단 오르내리기
우리는 소리에서 힌트를 얻어 정보를 추측한다. 물건을 내려놓을 때 나는 ‘쿵’ 소리만 듣고도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자신의 발소리로 계단의 높이와 간격 등을 짐작한다.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면 귀마개를 하고 계단을 오르내려 보자. 발가락 끝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은 주머니 속의 동전을 알아맞히는 일처럼 대뇌피질을 자극한다. 귀를 막고 발가락으로 계단 위치를 확인하면서 사뿐사뿐 조심해서 내려가자. 소리가 차단되기 때문에 모든 감각이 발가락으로 쏠리게 된다. 평상시 거의 쓰지 않던 발가락 감각을 사용해, 뇌의 감각을 일깨우는 방법이다.
4) 코 막고 커피 마시기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달콤 쌉쌀한 향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커피의 후각적인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에서 향이 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기존의 경험과는 색다른 감각으로 뇌를 자극할 것이다. 먼저 코를 막고 커피를 마셔보자. 평소대로라면 커피향이 코점막이나 후각을 통해 인식되지만, 향이 없기 때문에 뇌는 혀의 미각만으로 입속에 들어온 내용물을 분석하게 된다. 그러면 뇌는 돌발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며 분석 작업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커피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도 코를 막고 먹어보자. 좀 불편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뇌는 그런 혼란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5) 커피 향을 맡으며 물고기 사진 보기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의 뇌는 돌발 상황에 닥치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인다. 누구든 커피 향을 맡는 순간, 커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커피 잔이나 티스푼 등 커피와 관련된 물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커피 향은 나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이 커피가 아닌 물고기라면? 분명 당황하여 두뇌 회전이 빨라질 것이다. 향과 기억은 밀접하여 ‘이런 향은 이럴 때’라는 패턴이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런 상식을 역으로 이용하면 뇌를 강렬하게 자극할 수 있다. 평소 익숙한 향을 준비한 다음, 그것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눈앞에 둠으로써 확실하게 속임수를 연출해 뇌를 들썩이게 해보자.
# 양영애 교수 Advice
집중력이란 환경정보보다 감각정보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새로운 정보를 학습할 때 필요한 각성, 집중하기 위한 노력,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요구된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크게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 오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여러 가지 감각기능이 받아들인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힘을 집중력이라 할 수 있다. ‘눈 감고 밥 먹기’ 등은 환경에서 오는 여러 자극 중 한 가지 자극을 차단 후 특정 자극에 집중하는 ‘선택적 집중력’이다. ‘커피 향을 맡으며 물고기 사진 보기’는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자극에 대해 동시에 주의집중을 유지하는 ‘동시 집중력’으로, 요리를 하면서 TV 뉴스를 듣거나 전화를 받으면서 수첩에 주소를 적는 행동도 이에 속한다.
STEP 2. 습관변화로 젊은 뇌 만들기
Q.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은?
1. 음식점에서 언제나 같은 메뉴를 주문한다.
2. 물건을 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3.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까지 계속한다.
4. 커피만 마신다.
5. 지하철에서 항상 똑같은 자리에 앉는다.
A. 당신의 두뇌 상태는?
위의 항목 가운데 2개 이상 체크되었다면, 당신의 뇌는 이미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당장 ‘자극’이라는 비타민을 섭취해 뇌의 피로를 해소해야 한다.
자극은 뇌를 싱싱하게 만드는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대뇌와 소뇌 안의 기억 프로그램이 완벽하게 갖추어졌음을 의미한다.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그 동작은 무의식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익숙해진 습관은 뇌를 지루하게 한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일탈을 시도하며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보자.
1) 점심은 다른 음식점에서 다른 메뉴로 주문해라
매일 하는 외식도 두뇌를 단련하는 훌륭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항상 먹던 음식 대신 메뉴판에 적힌 요리 가운데 가장 아래쪽 음식을 주문해보자. 아마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당신의 눈과 코와 혀를 자극할 것이다. 익숙함은 머리를 거의 쓰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하지만 편한 만큼 뇌에는 치명적이다.
2) 한 달에 한 번 명품족이 돼라
백화점에서 비싼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일 때면 누구나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난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럴 때 과감하게 물건을 사버리면 스트레스에서 바로 해방된다. 명품은 가격이 비싼 만큼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살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때 맛보는 팽팽한 긴장감이 머리가 좋아지는 특효약이다. 긴장을 하면 우리 몸에서는 아드레날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몸의 저항력을 높이고 심장과 호흡기의 기능을 도와준다. 긴장감은 아드레날린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뇌를 활기차게 만든다. 뇌의 입장에서 보면 긴장감은 매우 반가운 심리상태이다. 과도한 긴장감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지만, 짧고 적당한 긴장감은 뇌가 제 실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3) 외국 지하철은 최상의 뇌훈련 장소
길을 잃으면 정신적인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이곳저곳 이정표를 찾아 헤매면서 어떻게든 그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데, 그때 뇌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움직임이 부드러워진다. 이를 훈련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의 지하철을 타보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언어 장벽과 낯선 환경 탓에 바짝 긴장해서 몸이 뻣뻣해지겠지만, 그건 보통 때보다 더 머리를 써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뇌가 오래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가능한 한 불편한 방법을 선택해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연스레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4) 욕실에 감미로운 음악이 흐른다면?
특별하고 색다른 방법으로 음악을 들어보자. 평소 잠들어 있기 쉬운 우뇌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듣는 것이 좋다. 특별히 음악을 통해 두뇌를 단련하고 싶다면 평소 잘 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을 들어라. 대중가요만 듣는 사람은 재즈를, 클래식만 고집하는 사람이라면 트로트 등에 도전해보자. 또한, 욕실, 옥상 등 색다른 공간에서 듣게 된다면 효과는 배가 될 것이다. 대중가요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는 것도 좋다. 가사를 음미할 때 우리 뇌는 우뇌뿐만 아니라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뇌에 좋은 자극제가 된다.
5) 낯선 슈퍼에서 장보기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무작정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레 요리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그게 바로 이미지 연상법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낯선 슈퍼에 가면 더욱 효과가 크다. 늘 가는 슈퍼가 아니면 상품의 진열 방식이 달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 헤매야 한다. 모르는 길을 지도도 없이 헤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공간적인 사고를 해야만 한다. 그러면, 자연히 우뇌가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부러 멀리 있는 슈퍼까지 찾아가기가 귀찮고 불편하겠지만, 그 불편함이 우리 두뇌에는 더없이 좋은 보약이 된다.
# 양영애 교수 Advice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일 도전을 통한 두뇌 활성화 집중력을 발휘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은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는 호르몬이다.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처음에는 뇌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기는데 학업 성취도를 높여주고 순발력 있게 행동하도록 돕는다.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능력 이상의 힘을 보이는 것은 노르에피네프린 때문이다. 노르에피네프린은 극복이 가능한 일시적 스트레스 상황에서 집중력을 높이고 삶의 활력을 준다. 노르에피네프린은 수용체를 통해 주위의 뉴런을 조절하는데 이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생기고 우울 증상이 나타난다.
좌뇌형vs우뇌형 인간 체크하기
다음 질문을 통해 만약 4개 이상의 항목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면 우뇌형, 반대로 3개 이하라면 좌뇌형 인간이다.
1. 공식 등의 암기에 약하다.
2. 약간의 실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3. 잡담을 좋아한다.
4.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한다.
5. 미술관 관람을 좋아한다.
6. 각출해서 돈을 낼 때 계산이 서투르다.
우뇌는 오감처리, 공감각, 종합적 판단력 등에 적합하고 전체적, 감각적, 직감적인 능력이 탁월하다. 동물적 감각으로 바로 결단을 내리는 것이 우뇌형 인간의 특징이다. 학교 공부로 말한다면 미술이나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반면 수학에는 약하다. 즉 아날로그 인간에 가깝다. 반대로 좌뇌형은 디지털 인간이라 볼 수 있다. 좌뇌는 언어, 계산, 관념 구성에 적합하고, 분석적이며 논리적이다. 수학을 잘하고 이론에 치우치기 쉽지만, 사물을 논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며 이성적이다.
직사각형 가로 90mm, 세로 50mm, 하얀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인 회사 로고, 나를 말하는 단 몇 글자의 직책, 조선시대라면 없었을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까지. 보통의 명함은 그러했고, 지난날 당신의 명함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평범한 명함은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시대가 왔다. 은퇴 이후, 인사치레할 명함 한 장이 없어 마음이 헛헛하고 어깨가 축 처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 끝났다 해서 그것이 곧 내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명함은 ‘직장 증명’의 도구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는 ‘존재 증명’의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그 흔한 직장 명함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독특하고 세련된 나만의 명함으로 자존심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도움말 아날로그엔진
▲ 조립식 명함이 등장했다. 직사각형 명함 위에 비행기의 몸체, 날개, 프로펠러 등을 뜯어 조립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자신을 드러내는 이미지만 있다면 테두리를 잘라 세우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명함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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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즈 여행이나 낚시 동호회 회원들에게 안성맞춤인 디자인이다. 모임에 나가 이런 명함을 건넨다면 대화 소재가 생겨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기축구회 스트라이커의 명함이다. 꼭 직장을 다니고 직업이 있어야만 명함을 만든다는 편견을 깬 사례다.
▲ 오른쪽 이젤은 위의 비행기와 같은 조립식 명함이다. 이젤 위의 미니 명함만 소장하고 다닐 수도 있고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 이젤과 함께 세워둘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왼쪽 그림 액자 명함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넣고 다녀도 좋겠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중년 여성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는 레이스 명함이다. 파스텔 계열의 펄이 가미된 종이를 사용하면 훨씬 우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은퇴이후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강연에 사용되는 마이크를 메인 이미지로 활용한 디자인이다.
▲ 중장년의 세컨드라이프에 빠지지 않는 창업. 카페, 음식점, 부동산 등 창업 아이템과 연관된 이미지로 명함을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 오른쪽 명함은 연말 파티 등에서 초대장 대용으로 활용되는 디자인이다. 근사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러한 디자인 명함을 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왼쪽은 책갈피로 활용 가능한 명함이다.
▲ 증명사진이 들어간 명함이 조금 쑥스럽다면 캐리커처를 넣어보는 것도 좋다. 그 어떤 디자인보다 나를 잘 드러내는 명함이 될 수 있다.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디자인 명함이다. 활동하고 있는 팀이 있다면 선수들의 등번호에 맞춰 명함 선물을 해보는 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자동차 모양을 본 뜬 명함도 눈길을 끈다. 택시기사라 해서 명함이 필요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라. 택시기사도 고객 관리가 필수인 만큼 독특한 명함으로 서비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날로그 엔진 장미지 대표
“명함은 곧 자신감이죠.”
은퇴하고 명함 디자인을 의뢰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감이 없어 보여요. 내세울 만한 직장도 없고, 이렇다 할 직책도 없어서일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명함에 더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명함을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어디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을 잘 드러낸 독특한 명함을 건넨다면 그 사람의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더 궁금해지죠. “명함이 정말 근사하네요.” “이런 명함은 처음 보는데요?” 등 명함이 대화 소재가 되고,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해요. 오직 나만을 위한 나를 대표하는 명함 한 장은 여느 회사의 대표 명함보다 더 빛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