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2014년 6월 기준)만 하더라도 월간 판매량 20위권 안에 드는 도서 중 9권이 ‘해독(주스)’과 관련된 내용이었을 만큼 디톡스(detox) 열풍이 불었다. 건강 관련 종편 프로그램과 연예인 다이어트 방법으로 소개된 ‘해독 주스’의 영향이었다. 그렇다면 근래의 풍경은 어떨까? 지난 1년 동안의 건강 관련 도서 베스트셀러 100권에서 뽑은 주요 키워드를 통해 알아봤다. *2016년 5월~2017년 4월,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교보문고 통계 기준
자료제공 교보문고
주요 키워드 하나, ‘백세’
베스트셀러 100권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 책의 제목은 다. 백세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백년’이라는 수식어는 더는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이밖에도 10위 , 33위 등 장수시대를 반영한 제목들이 눈에 띈다. 순위에는 없지만 , 등 여러 건강 도서에 ‘백세’라는 표현이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키워드 둘, ‘셀프(self)’
건강 분야 베스트셀러의 3분의 1(총 33권)을 차지하는 주제는 ‘다이어트’다. 다이어트 도서의 70%가량은 운동 방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책들의 제목이나 소개 글을 살펴보면 ‘홈트’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2위 , 7위 , 16위 등). ‘홈 트레이닝(home training)’의 줄임말인데, 피트니스센터나 트레이너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집에서 헬스 트레이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24위 , 34위 , 43위 등 독자 스스로의 실천을 촉구하는 콘텐츠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때 종편 프로그램 건강 정보를 맹신하는 시청자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도서 역시 자신의 건강상태 등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라 할 수 있겠다.
주요 키워드 셋, ‘통증’
근육, 척추, 무릎, 목 등 통증 완화와 관련한 치료, 운동, 스트레칭, 지압 방법 등을 소개하는 도서가 전체의 10%가량을 차지했다(10위 , 38위 , 55위 등 총 11권). 질환을 소개하는 도서 중에는 가장 많이 사용된 키워드다. 중장년 대표 만성질환 중에서는 ‘당뇨’가 가장 많이 등장했다(30위 , 51위 등 총 7권). 주요 성인병 중 하나인 ‘고혈압’에 대한 도서는 100위권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또 ‘암’ 관련 도서는 94위 , 98위 등 4권 중 3권이 90위권 아래 머물렀다. 당뇨와 암에 대한 도서는 주로 완화 식품이나 식이요법 위주의 내용을 담고 있는 추세다.
주요 키워드 넷, ‘속 건강(inner health)’
겉으로 드러나는 건강 외에 호르몬이나 정신, 마음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관리하는 도서들이 적지 않다. 전체 목록 중 5위인 와 22위 , 37위 , 40위 등이 그 예다. 이밖에도 60위 , 89위 , 90위 등 마음의 건강까지 살피는 콘텐츠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건강도서 Top 100 ✽제목(저자)
1 백년 허리(정선근), 2 주원홈트(김주원), 3 스트레칭이면 충분하다(박서희), 4 닥치고 데스런(조성준), 5 호르몬 밸런스(네고로 히데유키), 6 헬스의 정석: 근력운동 편(수피), 7 주원홈트 100(김주원), 8 NEW 근육운동가이드(프레데릭 데라비에), 9 병의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나가오 가즈히로), 10 속근육을 풀어라(우지인), 11 헬스의 정석(수피), 12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조성준), 13 다리 일자 벌리기(에이코), 14 마흔 식사법(모리 다쿠로), 15 기적의 3분 시력운동 달력(히비노 사와코), 16 스미홈트(박스미), 17 약보다 울금 한 스푼(서재걸), 18 지방의 역설(니나 타이숄스), 19 속편한 식도 이야기(SOK 속편한내과 네트워크), 20 필라테스 아나토미(라엘 아이자코비츠), 21 죄수 운동법(폴 웨이드), 22 하루 15분 기적의 림프 청소(김성중), 23 지방의 누명(MBC 스페셜 ‘지방의 누명’ 제작진), 24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이우재), 25 한혜진 바디북(한혜진), 26 8초만 누르면 통증이 사라진다!(장민제), 27 병원 없는 세상, 음식 치료로 만든다(상형철), 28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곤도 마코토), 29 뱃살부터 빼셔야겠습니다(최성우), 30 당뇨약 끊기 3개월 프로그램(신동진), 31 눈은 1분 만에 좋아진다(콘노 세이시), 32 태초 먹거리(이계호), 33 마흔부터 시작하는 백세운동(나영무), 34 내 약 사용설명서(이지현), 35 나는 몸신이다: 하루 5분 생활건강법(채널A ‘나는 몸신이다’ 제작팀), 36 세 손가락 지압혈(야나모토 마유미), 37 장내세균 혁명(데이비드 펄머터), 38 등뼈 실학(이시가키 히데토시), 39 힘콩의 푸쉬업&스쿼트 100(유석종), 40 운동화 신은 뇌(존 레이티), 41 요가 아나토미(레슬리 카미노프), 42 닥치고 데스런 Basic(조성준), 43 새로 만든 내몸 사용설명서(마이클 로이젠), 44 최수봉 교수의 당뇨병 이제 끝! (최수봉), 45 마법의 림프 순환 다이어트(배은정), 46 근육운동가이드(프레데릭 데라비에), 47 그레인 브레인(데이비드 펄머터), 48 근육운동가이드 프로페셔널(프레데릭 데라비에), 49 스트레칭이라도 하셔야겠습니다(최성우), 50 1일 5분 평생 통증 없이 사는 기적의 목 지압 프로그램(시마자키 히로히코), 51 당을 끊는 식사법(니시와키 순지), 52 뻐근하고 아픈 몸 참지 말고 셀프 마사지(박성규), 53 당신의 눈도 1.2가 될 수 있다(해럴드 페퍼드), 54 나는 왜 영양제를 처방하는 의사가 되었나(여에스더), 55 통증 잡는 스트레칭(문훈기), 56 포니의 스타일 메이크업 북(박혜민), 57 디스크 권하는 사회(황윤권), 58 뷰티 페이스 요가(다카츠 후미코), 59 몸신의 바른 몸 3분 교정 체조(박숙희), 60 놓아버림(데이비드 호킨스), 61 요가 디피카(B.K.S.아헹가), 62 하루 한 끼 당뇨 밥상(강남세브란스병원 영양팀), 63 이기는 식단(노박 조코비치), 64 클린(알레한드로 융거), 65 치아 절대 뽑지 마라(기노 코지), 66 림프의 기적(박정현), 67 스탑 스모킹(알렌 카), 68 1일 3분 인생을 바꾸는 배 마사지(나가이 다카시), 69 물만 끊어도 병이 낫는다(최용선), 70 필라테스 바이블(노수연), 71 스미홈트 다이어트 플래너(박스미), 72 최고의 당뇨병 식사 가이드(차봉수), 73 의식 혁명(데이비드 호킨스), 74 혼자서도 거뜬히 해내는 셀프 PT(김동현), 75 상위 4%를 만드는 1등급 다이어트(강태은), 76 미나리를 드셔야겠습니다(이희재), 77 천연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이제성), 78 바른 몸이 아름답다(남세희), 79 다이어트 불변의 법칙(하비 다이아몬드), 80 2주 만에 복근 만들기(제이제이 박지은), 81 코어 운동 가이드(강창근), 82 새로 만든 당뇨병 희망 프로젝트(강북삼성병원 당뇨전문센터), 83 당질 제한식 다이어트(에베 코지), 84 힘콩의 재미어트(유석종), 85 약 대신 주스(유승선), 86 내 몸 사용설명서(TV조선 ‘내 몸 사용설명서’ 제작팀), 87 내 몸 아프지 않은 습관(황윤권), 88 비우고 낮추면 반드시 낫는다(전홍준), 89 웃음혁명(김영민), 90 치유와 회복(데이비드 호킨스), 91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함익병), 92 달지 않은 명품 효소 만들기(김시한), 93 스트레칭 아나토미(아놀드 G. 넬슨), 94 명의 하정훈 교수의 갑상선암 두려움 없이 맞서기(하정훈), 95 남자는 힘이다(맛스타드림), 96 최고의 암 식사 가이드(노성훈), 97 정아름의 핫바디 멘토링(정아름), 98 유방암을 이기는 참 좋은 음식(한국유방암학회), 99 편강 100세 길을 찾다(서효석), 100 어싱: 땅과의 접촉이 치유한다(클린턴 오버)
*2016년 5월~2017년 4월, 온·오프라인 대형서점 교보문고 통계 기준
‘행복’이라는 타이틀을 넣어 만든 명함이 많다. 이런 분들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면서 남들에게 작은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로 대부분 뾰족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다. ‘행복 전도사’, ‘행복 바이러스’, ‘행복 코치’, ‘행복 아카데미’, ‘당신의 행복을 지켜드립니다’ 대략 이런 종류다. 방문 요양보호원을 운영하는 분인데 이분의 상호는 ‘00 행복 나눔 요양원’이다. 필자가 한마디 했다. ‘기왕이면 통 크게 행복 몽땅 드림 이라고 하지 쩨쩨하게 행복 나눔이라고 합니까?’ 하며 웃은 적이 있다.
누구든지 행복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말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명함에 행복을 드린다는 분들은 행복이 남아도는 진짜로 행복한 분일까? 자신 있게 ‘예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평생을 행복이란 단어에 매달리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왜 행복해지지 못할까?
행복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삶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하다.’라고 한다. 즉 주관적이다. 아무리 비단옷에 고기반찬을 먹고 남들이 우러러 보면서 저분은 참 행복할 것이다. 라고 해도 막상 당사자가 ‘너희들은 모른다, 지금 내속이 얼마나 타 들어가는지.’ 하면서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는 많이 가지면 행복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걸로 생각한다. 남들보다 돈이 많고 잘생겼으면 행복할 것이다. 남들보다 건강하고 자식들도 다 잘되어 걱정근심이 없으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돈이 많아도 더 벌고 싶고 자식이 공부를 잘해도 더 잘하는 아이와 비교를 하면서 만족을 못한다. 몇 백억의 돈이 있으면서도 부정한 방법으로 검은 돈을 받아먹다 들켜 쇠고랑차고 재벌들도 형제간 더 가지려고 소송싸움 하는 걸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에게 아침인사로 ‘잘 잤어?’하고 먼저 물어본다. 쉽고 간단한 질문이다.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다. ‘응 잘 잤어.’ 설령 몸이 찌뿌듯해도 ‘아니 잠 잘 못 잤어.’ 하지 않는다. 인사치례이고 잘 잤다고 말하는 것이 서로가 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사를 할 때 ‘안녕하세요?’하면 ‘예 고맙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아니요. 안녕하지 못해요.’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질문을 먼저 해야 긍정적인 답을 돌려받는다.
‘자발적 가난’ 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가난을 택하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님이나 성철스님 같은 분들의 삶이다. 이분들은 스스로 가난의 길로 들어서며 남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본인은 행복한 삶을 마쳤다. 나이 들어가면서 욕심을 줄이기로 했다. 이 정도면 잘 사는 것이고 우리아이들도 이만하면 부모한테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만족스러워지고 행복해진다.
아내와도 가끔씩 행복을 이야기한다. 아직은 건강하고 직업도 있고 게다가 딸, 아들이 모두 결혼해서 손자, 손녀도 있으니 행복하지 않느냐고 서로 물으면 서로 행복하다고 대답을 해준다. 일용할 양식은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으면 만족해야 한다. 매사에 이만하면 풍족하고 즐겁고 행복한 삶이라고 자주 말하니 덩달아 행복해진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속담을 믿고 포기 할 것은 포기하니 행복하다. 나이 들면서 노욕을 버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식사 한 끼에 오천 원짜리도 있지만 오십만 원짜리도 있다. 내 마음을 낮추니 오천 원짜리 밥도 감사하고 고맙고 행복하다. 소박한 행복은 느끼는 사람의 몫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만들며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카네이션을 만들어 가슴 한 쪽에 달아드리면 그게 효도라고 말입니다. 나머지 364일은 그저 철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속없는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모님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사는 형편이 어렵다 생각하시는 부모님은 당신의 무능력 때문에 자식까지 고생한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자연히 부모님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끝내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어느 날 부모님은 안 계셨습니다.
365일 중 하루 5월 8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자는 날이었죠. 이시대의 젊은이들이 부모의 은혜를 방치하고 저버리고 있음을 방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국가에서 어버이날을 지정하여 하루만이라도 그 은혜에 감사하자며 강제하고 나섰을까요?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풀어야 할 본질적인 과제로 ‘나이든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을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천사였고 슈퍼맨이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후원자였습니다. 영원한 내편이었고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님은 조금씩 병들어 갑니다. 마침내 몸져 누워 자리를 보전한 부모님은 더 이상 천사도 슈퍼맨도 후원자도 아닌 귀찮고 쓸데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제 부모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인생의 크나 큰 의미도 함께 깨닫게 됩니다.
기시미 이치로의 부모님에 대한 애정은 각별합니다. 20대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학업을 중단하며 간호해야 했고, 50대에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어머니 간호에 지칠 즈음 어머니는 위독해졌고 오래도록 곁에 있었지만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꿈속에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채 깨닫기 전에 아버지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스스로도 늙어 가면서 아버지의 노화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이든 부모님을 간병한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 노령화에 대한 문제를 개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서는 곤란합니다.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 이것이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지만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내일은 대선일입니다. 많은 대통령 후보가 노령화에 대한 대비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령화 문제를 국가에 떠넘기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없이 노인요양 병원을 짓는다 해도 삶에 녹아 있는 가치를 찾지 않고는 모두가 헛될 뿐입니다. 기시미 이치로는 설파합니다. 부모님이 나를 몰라본다 해도 부모님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1957년생 장은숙은 1977년에 데뷔해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고독했기에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것. 시집 한 번 안 간 그녀는 요즘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단다. 올해로 60세인 장은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최강 동안을 자랑하며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여전히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몇 년 전 (KBS 1TV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무대에 오랜만에 나타난 장은숙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젊었을 때 보았던 장은숙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련되어졌고 농후한 맛까지 더해져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섹시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나이가 60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강 동안(童顔)이었다. 그때 TV를 보면서 장은숙의 미모와 목소리에 푹 빠져 팬이 되어버렸다. 그 후 유튜브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와 마주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한량 이봉규는 정말 행운아다.
인터뷰를 마친 후 내가 내린 그녀의 최강 동안 비법은 고독이다. 그녀는 결혼한 적이 한 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해봤다. “남들은 결혼을 세 번씩도 하는데 난 이게 뭐냐?”고 페인트 모션(feint motion)까지 쓴다. 그런 엉성한 페인트 모션에 넘어갈 한량 이봉규가 아닌 걸 금방 눈치 챘는지,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이 편하고 재밌다”고 자기 진단을 내린다.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살지 않는 바에야 혼자 사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하기 싫은 것을 파트너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 그러다 보면 툭하면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그런 일상이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버리면 어느새 늙어버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데 장은숙은 철저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싫은 사람은 아무리 비즈니스로 연결되어 있어도 만나지 않는다”는 고집불통적인 자기애(自己愛)가 최강 동안의 비법이 된 것이다. 고독하기에 자기만 사랑했고 그러다 보니 고독을 즐기는 선순환이 오늘의 장은숙을 만들었다. 물론 나름대로 젊어지려고 발버둥치는 노력도 병행했다. 15년째 경락 마사지를 받고 있고 운동은 늘 일상이다. 이런 노력도 결국 자기애의 일환이다. “70대가 되어도 최강 동안 소리를 듣고 싶다”는 그녀의 욕심은 무죄다.
“더 이상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때는 다 팽개치고 화장도 안 하고 산에 파묻혀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라. 얼마나 자기애가 강한지 알 수 있다. 아무리 고독을 즐기기로서니 나이 60인데 여태껏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해봤다는 그녀의 말이 믿기 어려워 파고들었다. “가끔 섹스하고 싶은 충동이 없냐?”는 이봉규의 도발에 그녀는 “솔직히 운동하고 일하는데 열정을 쏟다 보면 피곤해서 그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고 답변한다. 그러나 오히려 섹스 생각이 나는 게 두려워 일부러 운동과 일로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운동과 일은 그녀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에너지 발산법이기에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녀는 20대부터 요즘 유행하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좋아했다. 지금도 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어떨 때는 혼자 단골 바(bar)에서 새벽 두시까지 마신다. 언제부터인가 술 마시는 모임도 피곤해서 차단하고 혼자 마신다. “모임에 나가 말 상대하기도 피곤해서 싫고 차라리 편하게 집에서 마시는 것이 훨씬 즐겁다”는 그녀의 진단을 백퍼센트 이해한다.
한량인 나도 혼자 집에서 TV 보면서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지금은 띠동갑 마누라와 신혼생활에 푹 빠져 집에서 음악 틀어놓고 제대로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만). 고독을 즐기고 혼자 술 마시는 것을 밥 먹듯 하는 그녀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대화가 통하는 멋진 남자와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공연이 끝나고 혼자 집에서 술 마시면 뭔가 허전함을 느낀단다.
오늘은 나와 ‘그루브’라는 라이브 카페에서 진토닉을 마시고 있다. 이미 1차로 주꾸미에 막걸리를 마신 후라서 취기가 슬슬 오르는지 “혼자 술 마시면 슬플 때도 있다”고 고백한다. “언젠가 남산에서 혼자 술 먹고 걸어서 집에 가는데 눈물이 났다”고 회상하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하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고독에 지칠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피아노 반주에 장은숙이 노래를 뽑아댔다.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가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걸쭉한 허스키 보이스에 서구적인 마스크가 김정호의 노래를 지워버린다. 내친김에 앙코르, 삼코르, 사코르를 막 받는다. 토니베넷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카펜터스의 ‘This Masquerade’를 재즈풍으로 너무나도 멋지게 불러젖힌다.
그녀가 아직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것은 몇 번의 찬스를 놓쳤던 이유도 작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동생과 친척 동생까지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젊었을 때는 마음의 여유조차 누릴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함께 춤을 추어요’와 ‘당신의 첫사랑’ 등 잇따른 히트로 스타가 되었을 때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고, 37세 때부터 시작된 일본 생활은 엄격하고 혹독했기에 연애가 여의치 않았다. 매일 6시 반에 기상해서 학교에서 일본어 배우고 노래와 춤까지 연습하느라 마치 군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찬스를 놓친 것은 일본 가기 전에 잠깐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면서부터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에 또 다른 사랑을 찾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혹독한 일본에서의 연습생 시절, 한국에 있던 그 남자는 장은숙과 연락도 잘 안 되고 이상한 헛소문(“아쿠자에 잡혀갔다”)까지 돌자 그녀를 잊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를 달랠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 뒤 몇 번의 기회가 더 있었지만 음양의 조화가 안 맞아 연애를 못했다.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면 그가 도망가고, 나에게 달려드는 남자는 내가 싫고, 남자에게 애교도 부릴 줄 모르는 성격이라 연애가 잘 성사되지 않았다”고 애써 핑계를 댄다. 이토록 매력 있는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연애를 즐길 수 있었겠지만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무엇보다 고독했기에 오히려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녀는 1977년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최초의 오디션프로그램인
에서 연말까지 승승장구한 끝에 우수상을 받고 데뷔했다. 이때 처음 받은 참가번호가 행운의 숫자인 ‘7번’이었는데 월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고, 연말 결선에서도 7번을 받았다. 하늘이 그녀를 미리 점지했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국악을 배운 그녀는 가끔 절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연말에 우수상을 타고 나서도 득음을 위해 화곡동에 있는 절에 들어가서 2년간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래서인지 끈적끈적한 허스키 보이스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1981년에는 코미디언 이주일과 이라는 영화의 주인공도 했다. 톱스타로서 승승장구하던 장은숙에게 해외 진출의 기회가 온 것은 1995년. 그녀는 일본 토라스레코드 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장수(Chang Suu)’라는 예명으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계은숙이 일본에서 한참 활동한 후여서 같은 이름의 은숙이라는 본명 대신 일본 기획사에서 지어준 ‘장수’라는 예명을 사용했다(2009년부터는 본명 장은숙으로 다시 바꿨다). 그녀는 데뷔 첫해 일본 유선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2000년 발표한 ‘운명의 주인공’으로 방송 및 각종 차트에서 12주 이상 1위를 차지하며 총 25만 장의, 당시로서는 상당한 앨범 판매 기록도 세웠다.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한 음반은 21장인데 이 중 14곡이나 유선방송(리퀘스트 차트) 1위에 올랐다. 지금은 2003년에 설립한 연예기획사 ‘오피스 장수’의 대표로서 후배 양성도 하고 있다. 요즘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의 활동 비중을 점차 늘려나갈 예정이다.
나는 그녀의 노래 중 ‘당신의 첫사랑’을 가장 좋아한다. 예전에는 이 노래 가사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불렀는데 지금은 감정이 달라 다른 분위기로 노래한다고 한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스무살 시절, 다섯 살 연상의 연대생 오빠와 신촌에서 막걸리 마시던 추억이 떠오른단다. 최강 동안이니만큼 이제는 다섯 살 이상 연하의 멋진 남자와 첫사랑 같은 싱그러운 사랑에 빠지면 좋겠다. 그런 날이 빨리 와서 ‘고독한 최강 동안’에서 ‘고독한’이라는 형용사를 빼고 다른 형용사가 붙기를 기대해본다.
글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08@naver.com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도 길어졌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기간도 길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문득 마주하게 된 자신의 얼굴이 낯설 때가 있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서글퍼지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다.
장자(莊子)의 에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이 나온다. 나를 잊은 나, 내가 나를 잊어야 진정한 내가 된다는 의미다. 현실은 어땠는가. 나를 잊을 정도로 바쁘게 살아오면서 진정한 내가 되었는가? 아니,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철학적 사유를 하면서 그동안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돌아보고 싶은 마음은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또 거울 속의 너무 늙어버린 얼굴이 서글픈 탓만도 아닐 것이다. 행복한 시간을 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내 삶의 여정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얼굴을 마주하자.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본연의 나[吾]인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내[吾] 안에서 활동하고 공감하는 나[我]를 찾아야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자아를 찾아가는 방법을 살펴보자.
먼저 상대방에게 확고한 인상을 심어주자. 미국 남자들 대부분은 골드토(Gold Toes) 양말을 한 켤레씩은 갖고 있다고 한다. 골드토 양말은 발가락 끝부분에 금색 장식이 되어 있으며 남성용 양말 중 최고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양말은 단지 품질이 좋고 견고하며 오래 신어도 탄력이 있는 양말이 아니다. “당신의 발을 빛나게 하라”를 외치며 양말에 금색 실을 사용해 수를 놓음으로써 황금색이 주는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워 소비자를 단박에 사로잡은 양말이다. 골드토가 금색의 수를 놓아 다른 양말들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은 제품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 그리고 경쟁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존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은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 가장 강하게 어필이 되는 신체 부위는 얼굴이다.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은 자신의 얼굴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는 말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흐뭇하고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도록 스스로를 가꾸라는 주문이다. 내 모습이 만족스러워야 어느 곳에서든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다. 거울 속에서 나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너는 왜 그렇게 멋있니?”, “당당해서 보기 좋아!” 이러한 칭찬이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데 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다음으로는 관심의 대상이 되도록 노력하자. 거리를 나가 보면 유행하는 옷을 똑같이 걸쳐 입은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체적으로 개성과 색깔이 안 느껴지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반화된 유행에서 탈출해야 한다. 아침이 되면 매일 뜨는 태양, 그러나 사람들은 정작 태양에는 관심이 없다.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색깔이 없는 얼굴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주름진 얼굴이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줘야 한다.
개성과 색깔은 젊고 예쁜 얼굴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개성 있는 얼굴을 만들어주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얼굴 분위기도 함께 바뀌어간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방향은 매우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되고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을 바꾸는 일에는 게으르다. 욕구만 있고 마음이 일어서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절대로 없다. 어떻게든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왜 그래야 하지?”라는 질문에 분명한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하고 자신감이 없는 답변은 어떤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를 바꾸고 싶다면 왜 바꾸고 싶은지 정확한 이유부터 찾아보자.
이유가 찾아진 뒤에는 실천을 해야 한다. 자신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보자. 남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어필하면 된다. 자신의 강점을 부각하다 보면 어느 새 차별화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 친구 말을 들으면 늘 좋은 일들이 생겨.”, “저 사람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차별화된 나를 만들었다면 내 매력이 상대방에게도 유익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갈고 닦아 만든 개성이 상대방에게 거부감과 불쾌함을 안겨주면 개성 없는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칭찬을 잘해주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는데 이상하게 만날 때마다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이 있다. 억지로 하는 칭찬과 아부는 얼굴에 다 드러난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진심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눈빛이 흔들리지 않고 부드럽다. 저절로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 된다. 이런 모습을 봐야 상대방이 진심을 느끼고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는 얼굴 생김새가 중요한 게 아니라 표정이 중요하다. 표정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과묵하고 어두운 표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의견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많이 웃고 상대에게 긍정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도록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습관화되고 일상화되면 어디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외모와 인상은 스스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평소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따뜻한 미소와 부드러운 표정을 잃지 말자. 무엇보다 큰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변화와 혁신입니다. 정말 수도 없이 듣고 사는 말입니다. 근데 왜 그렇게 변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까요? 그만큼 변화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화는 자연법칙에 어긋납니다. 자연법칙은 관성의 법칙입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하고 있는 물건은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게 바로 관성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변화는 그 관성을 벗어나려고 하니 쉽지 않은 일이지요. 혁신은 더욱 그렇습니다. 혁신(革新)의 혁(革)은 가죽을 뜻합니다. 신은 새로울 신입니다. 가죽을 벗겨내듯 새롭게 하라는 겁니다. 가죽을 벗기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그만큼 혁신이 어렵다는 거겠지요.
변화에 관한 최고의 책은 주역입니다. 주역의 역자는 도마뱀을 뜻합니다. 보호색을 그때그때 바꾸는 걸 보고 만든 한자입니다. 주역은 변화에 대해 단호합니다. 변화는 좋은 것이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역은 64괘로 점을 치는 책인데 잘 풀리는 것의 대표는 태괘(泰卦)이고, 불길한 것의 대표는 비괘(否卦)입니다. 태괘 모양을 보면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습니다. 비괘는 반대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비괘는 정상이고 태괘는 거꾸로 된 형상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는 비괘는 안정적입니다. 그 자체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길하다는 겁니다. 태괘는 땅과 하늘이 뒤집혀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원위치로 돌아가려 합니다. 지금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꾸 변화하려 합니다. 그래서 길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안정에 목숨을 겁니다. 직장의 선택 기준도 안정입니다. 안정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안정은 그 자체로 불길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첫째, 절실함입니다.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온갖 궁리를 해야 합니다. 궁리는 그래서 생긴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궁할 때 이치를 깨우친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궁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다는 겁니다.둘째,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하면 어떤 일을 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우리는 늘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받습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셋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책도 읽고, 낯선 곳에도 가보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만나봐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열린 눈이 필수적입니다. 유연해야 합니다. 시장을 잘 읽어야 합니다. 칭기즈 칸이 세계를 제패한 힘은 열린 사고입니다.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현지인을 인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Obsolete’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쓸모없다는 뜻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익숙하다’입니다. 즉 익숙한 것은 쓸모없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시장도 변하고 고객도 변하는데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던 일만 하려고 하고, 팔던 물건만 팔려고 하고, 기존 프로세스대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혁신의 핵심은 낯설게 하기입니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낯선 것은 불편합니다. 저항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봉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봉변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반대로 변화를 적극 활용해 성공하면 이를 능변이라고 말합니다. 봉변을 당할 것인지, 능변으로 변화에 성공할 것인지, 이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와인을 구매하는 행위보다 간단한 것도 없다. 마트나 와인 숍 등에서 여느 상품처럼 그냥 돈을 내고 사면 그만이다. 그러나 원하는 와인을 제대로 구매하는 것만큼 까다로운 일도 드물다. 글로벌 시대에 특히 뉴 월드 와인이 공산품처럼 대규모로 생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와인은 여전히 규격화된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와인 중에서 자기가 필요로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와인의 최고 전문가라 해도,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을 모조리 꿰차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실수하지 않고 와인을 구매하려면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라.
최고로 비싼 와인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향과 맛에 관한 한 최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존재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최고일 뿐이다. 게다가 주관적인 관점은 시시각각으로 변할 수 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그리고 그날의 기분, 컨디션, 분위기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 음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평소 여러 종류의 와인을 접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훈련이 필요하다. 와인 선택에도 당신의 개성과 끼를 발휘하라.
둘째, 비싸다고 다 좋은 와인은 아니다.
대체로 값과 질은 비례한다. 저 유명한 1855년 보르도의 ‘그랑 크뤼 클라세’도 가격을 바탕으로 작성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값에 비해 질이 수준 이하인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정 AOC의 명성을 배경으로 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와인들도 있다.
그러니 레이블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아직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격 대비 질이 우수한 와인을 찾는 노력을 하라. 가격이 적당하면서도 질이 우수한 새로운 와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느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똑같은 와인이 어느 날 유명 전문 잡지에 소개되고 나면 값이 20~30% 이상 치솟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먼저 선수를 쳐라! 참고로 프랑스에는 병당 1만5000원 이하의 와인만 모아 놓은 와인 가이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와인을 레이블이나 값으로 마시지 않고 각 와인의 고유한 특성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와인 애호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오래된 와인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의 와인은 생산 후 5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화이트나 로제 와인의 경우는 1~3년, 레드 와인의 경우는 3~5년 정도가 적당하다. 그리고 샹파뉴는 특별한 빈티지 샹파뉴를 제외하면 구매한 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보졸레 누보는 6개월 내에 마셔야 한다. 물론 뛰어난 빈티지의 고급 와인의 경우 보관기간이 10~20년 이상 가는 것들이 대다수지만, 이런 와인은 값이 비싼 만큼 예외적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런 고급 와인은 하나같이 타닌이 높아 몸체가 탄탄한데, 너무 일찍 마시면 향과 맛이 채 열리지 않아 절대 고급 와인의 오묘한 진수를 느낄 수 없으니 창문으로 돈을 던져 버리는 것과 같다.
넷째, 빈티지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많은 와인 아마추어들이 빈티지 표를 마치 수학 공식처럼 신봉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빈티지는 와인의 출생신고 같은 것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지역, 같은 빈티지라 할지라도 주조하는 사람의 정성과 테크닉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와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빈티지를 참고는 하되 너무 신봉하지 않는 게 좋다. 게다가 나쁜 빈티지는 오랜 보관이 불가능하므로, 고급 와인이라 할지라도 오랜 기간 기다리지 않고도 마실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해 우리 실정에 맞는다고 판단된다. 가끔 활용해보기 바란다.
다섯째, 머잖아 마실 와인과 장기간 보관했다 마셔야 할 와인을 구별하여 구매해야 한다.
귀한 손님을 대접한다고 10년 이상 보관했다 마셔야 제격일 ‘그랑 크뤼 클라세’를 구매해서 그날 바로 마시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은 행위이며,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자칫 돈만 낭비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여섯째, 같은 와인을 최소한 여섯 병 단위로 구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러 사람과 마실 때 한 병으로 모자라는 낭패를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 종류의 와인을 일정 시간을 두고 마시게 되면, 그 와인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와인이 자신의 기분이나 컨디션, 그리고 시간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도 경험해 볼 수 있다. 만약 그러지 못할 사정이면 최소한 두세 병이라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물론 매우 귀한 고가의 와인일 경우는 한 병으로 만족해야겠지만.
일곱째, 믿을 만한 와인 가이드북을 한 권 정도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한글로 번역된 것들도 있으니,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접근이 가능하다. 가이드북을 통해 와인을 구매하기 전에 구매할 와인에 대해 사전에 공부를 할 수 있고, 마시고 있거나 마신 와인이 어떤 것인지 검토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평과 전문가의 평을 비교해 봄으로써 와인 시음에 대한 능력과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매우 까다로운 문제인 ‘언제가 마시기 적절한 시기인가?’에 대해서도 상세히 일러준다.
가이드북의 종류에 따라서는 생산자나 가격에 대한 여러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각자의 필요에 맞는 와인 가이드북을 꼭 한 권 갖추라고 권한다.
한 가지 문제점은 매해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기에 매해 새로운 빈티지를 첨가한 가이드북의 개정판이 나온다는 점이다. 와인 마니아나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적당한 간격으로 구매하면 어떨까 한다.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리라고 믿는다.
여덟째, 공동구매를 해보라.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이 공동구매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모르는 와인에 대한 새로운 지식도 습득하게 되고, 특히 할인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가격대가 높은 와인일수록 공동구매는 더욱 유용하리라 본다.
“당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말해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그만큼 이제 와인은 단순한 음료나 상품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와인의 선택은 간단한 생필품 구매와는 여러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단순히 주머니 사정을 넘어, 선택하는 사람의 성향과 인품을 나름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 장 홍(張洪)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알자르 소믈리에협회 준회원이며,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사회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와인, 인류역사 속 와인의 의미와 파워, 예술 인문학을 통해 본 와인 등에 대해 강의도 하고 있다.
김갑식 산과 사람 편집장
자, 독자 여러분!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라.
지금 당장 당신에게 1000만원의 공돈이 생겼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았다. 그만큼 여행은 공통적인 관심사이며, 하고 싶은 일 가운데 맨 앞줄에 놓여 있다.
실제로 여행이라 하면 왜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왜 은근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일까.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사실 누구에게나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의 뿌리는 매우 깊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만큼 인간은 누구에게나 여행의 DNA가 핏속에 흐른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유희)’에 두고, 인간의 행위 양식의 본질을 ‘놀이’로 규정했다. 물론 유인원과 일부 고등동물들에서도 놀이와 유사한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이는 인간의 놀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놀이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정서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펴낸 는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 인류의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을 추적한 기념비적 저서이다.
하위징아의 견해에 공감하는 대다수 사회학자들은 놀이의 최상의 위치에 여행을 두는 데 동의한다. 모든 놀이가 그렇듯 여행은 즐거움이 수반되는, 그러나 비용이 드는, 그럼에도 기회가 닿는다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경험과 체험
여행의 매력은 오히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복병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솔직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여행 중독 같아요. 매년 한두 차례씩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거든요.”
외국문학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3년 전 정년을 맞고 나서 홀가분하게 명예교수직에 있다며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솔직한 이유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학회일로 일년에 한 차례씩 유럽에 가곤 했는데 정년 이후부터는 해마다 두 번씩 나갔다며 안 가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아 ‘중독’이라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그러나 이 대학교수의 경우 ‘여행 중독자’라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여행 자체가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좋아한다고 중독자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여행을 즐기는 일이 바로 인생을 즐기는 일
여행을 자주 하는 것이 오히려 평상심을 무너뜨리고 균형감을 상실케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행은 불꺼진 창에 불을 밝히는 일이고 차갑게 식은 가슴에 불씨를 당기는 일이지요.”
지금까지 수십년간 국내외 여행을 즐기며 살아왔다는 환갑이 지난 한 여성 CEO는 자신은 일 목적이 아닌 여행을 할 때 분명한 구분을 지으며 여행한다고 말한다.
“저는 여행을 즐기는 일이 바로 인생을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인생이 바로 여행 아니겠어요?”
그녀는 그러면서 여행의 매력 포인트는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우연, 필연이 아닌 우연이라는 데 여행의 흥미와 쾌감이 깊은 것 같아요.”
그녀는 여행을 하다 들르는 숙박시설, 식당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밀란 쿤데라는 이라는 책에서 우연의 강렬한 기능과 역할을 이야기한다. 일상적으로 기대되고 반복되는 모든 일은 하나같이 침묵하는데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남, ‘금강산도 식(食)후경’ 여, ‘금강산도 숙(宿)후경’
한 여행사가 50대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행 중 가장 많은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어떤 항목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남자의 35.2%(176명)는 ‘식비’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남자가 지출을 많이 하는 것은 ‘숙박비’로, 31.6%(158명)가 잠은 좋은 곳에서 자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여자는 36.2%(181명)가 숙박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꼽았으며 29.8%(149명)는 ‘식비’라고 답해 그 뒤를 이었다. 남녀 모두 지출의 3위를 차지하는 것은 박물관, 미술관, 뮤지컬 관람 등 문화 관련 비용으로, 남자는 9.2%(46명), 여자는 13.8%(69명)가 이를 택했다.
남자는 먹는 것을, 여자는 잘 곳을 우선시한 것이다. ‘금강산도 식(食)후경’은 남자들이, ‘금강산도 숙(宿)후경’은 여자들이 택한 것.
여행은 자신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단조롭고 나른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 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후회나 미련이 남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여행이 끝난 뒤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일상을 흔들고 평상심을 무너뜨린다면...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독자인 당신의 몫이 아닐까.
>> 김갑식 산과 사람 편집장
1954년생. 고려대국문과 졸업. 계간 에 중편소설 을 발표하며 문단에 기별을 보낸다.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등 월간지 기자, 편집장을 거쳐 현재 창간멤버였던 월간 의 운영본부장 겸 편집장으로 있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창경궁 돌담길을 지나 걷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아한 한옥들과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옹기종기 장독들이 따스한 햇볕을 머금는 곳이 있으니, 바로 ‘궁중음식연구원’이다. 1971년 궁중음식의 대가이자 인간문화재인 황혜성(黃慧性·1920~2006) 선생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마련한 곳으로, 현재는 맏딸인 한복려(韓福麗·69) 궁중음식연구원장과 둘째 딸인 한복선(韓福善·67) 한복선식문화연구원장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들에게 궁중음식이란 어머니의 삶이자, 한국 식문화의 큰 줄기, 그리고 곧 자신들의 삶과도 같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한복려 원장과 한복선 원장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다. 자매의 어머니이자 큰 스승인 황혜성 선생에게 전수 받았는데, 셋째 딸인 한복진(64) 전주대학교 전통음식문화과 교수도 같은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현재 한복진 교수는 일본에서 연구 중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대개 ‘세 자매가 어머니를 닮아 같은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한국 식문화라는 큰 줄기를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저마다의 특성을 살린 곁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한복선)각자의 성품이나 재능을 살려 저마다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언니는 맏딸로서 엄마의 연구원을 맡아 기능 전수와 교육을 위한 책임을 다하고, 저는 해외 생활과 TV 프로그램 경험 등을 살려 실생활 궁중음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죠. 셋째는 대학 교수니까 전문적인 연구와 학생 지도를 하며 인재 발굴에 힘쓰고요. 어머니가 활동하실 적에는 ‘요리 연구가’라는 말도 잘 안 쓰이던 시절인데, 요즘은 요리 분야도 아주 다양해졌잖아요. 어머니가 일궈놓으신 것들을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우리 식문화를 알려야죠.”
우리가 물려받은 것은 재산 아닌 정신
가업을 이어가는 형제들 사이에는 다툼이나 경쟁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들 자매는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처럼 정답고 사랑이 넘친다.
“(한복려)우리는 물질적인 재산을 물려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당신의 정신과 배움을 우리 자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셨어요. 그것을 가꾸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요. 저도 아들이 있는데, 그 아이는 요리를 전공하지 않아요. 그래서 기능적인 부분을 전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정신만큼은 이어주기 위해 집안일에 어느 정도는 참여시키고 있어요.”
그렇다고 황혜성 선생이 유형의 재산을 전혀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단순히 기능적인 전수나 손재주에 그칠 수 있는 궁중요리라는 분야를 글과 책을 통해 역사적 산물로 탄생시킨 것은 가보인 동시에 우리 식문화의 보물과도 같다.
“(한복려) 내 어머니의 것이라 해서 지키고 물려주는 것 그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책만이 아니라, 물건들도 있고 해서 이런 것들을 모아 황혜성 자료관 등의 이름으로 내려고 해요. 어머니는 한국 궁중음식 역사의 큰 표적과도 같으신데 우리가 무언가를 정립해서 다독거려 놓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잊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커요. 어머니 제자들도 많기야 하지만, 자식이자 제자인 제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니 얼마가 걸리더라도 해내려고 해요.”
자매가 뜻을 모아 하는 일에 한복선 원장의 딸인 정라나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도 합세했다. 강 교수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현재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복선)할머니가 손주 진로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셨죠. 딸이 미대를 다닐 때 담당 교수가 미술 쪽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뉴욕에 있는 요리 학교를 보내려던 참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일본에서 조리 공부를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죠. 그때 손주의 입학식에도 같이 가시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어요.”
역시 피는 못 속여~
가장 좋은 스승이었던 어머니에게 배운 덕일까? 자매가 일을 대하는 방법이나 모습에는 황혜성 선생의 면모가 배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음식을 하는 어머니의 손길만 닮는 것은 아니었다.
“(한복선)어머니는 꼭 친구들을 모아 여행도 다니고 먹을 거며 뭐며 다 대접해주셨어요. 연로하셔서 몸도 힘들고 하실 텐데 왜 저렇게까지 하실까 했는데, 요즘 제가 딱 그래요. 내가 자리를 만들고 베푸는 게 훨씬 즐겁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전에는 어머니의 그런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이해돼요.”
황혜성 선생의 따스함을 닮은 이가 한복선 원장이라면, 어머니의 단단한 카리스마를 지닌 이가 한복려 원장이다. 이는 맏이로서 느낀 책임과 부담감을 숙명으로 여긴 데서 나온 성품이기도 하다.
“(한복려) 동생들이 나 같으면 그렇게 못 산다고 얘기해요. 대를 이어가는 자식으로서 사람들이 ‘어머니는 훌륭한데 딸들은 그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동생들보다 어깨가 더 무거운 것 같아요. 제가 잘 이끌고 우리가 노력해야만 ‘역시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요.”
굴지의 대기업 부사장에서 퇴직자가 돼 회사에 나가지 않았던 2010년 1월 1일. 유장근씨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약 30년간 충성한 회사에서 버려졌다는 배신감과 경쟁에서 졌다는 패배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기에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니 막막함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던 하루였기 때문이다.
퇴직 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잔재가 있었다. 퇴직 초기 유씨는 중국어 공부와 운동까지 나름대로 철저한 미래 계획을 세워 그 잔재를 털어버리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그것이 계획대로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이내 나태함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자리에서 늦게 일어나도, 일을 하지 않아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게을러진 것이다. 나태함은 그렇게 유씨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도 무엇인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가 그때 제 모습이 안쓰러워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아요. 스페인 산티아고로 도보 여행을 가자고 말이죠. 약 한 달간 800㎞를 걷는 코스였죠. 저도 그 당시 나약해진 제 모습이 실망스러워 흔쾌히 수락했던 것 같아요.”
산티아고. 그곳은 인생의 전환점이 된 땅이었다. 걷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됐다. 항상 올바른 길, 순탄한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 아내와의 산티아고 여행은 인생 최고의 일탈이자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그저 흘러가는 삶에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살아갔다면, 여행 후 제 삶은 꿈이 있는 삶이 됐어요. 그전까지 사실상 꿈이 없었던 것이죠. 돈을 버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인 줄 알고 살아오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멋있고, 새롭고, 재미있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유씨는 인생 2막의 꿈을 ‘베푸는 것’으로 실현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면서, 퇴직으로 바닥을 쳤던 자존감도 이미 회복했다. 지역 복지관에서 신중년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 호스피스, 미술관 도슨트. 이제 그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인생 후반전에서 꿈을 이룬 결과물들이다. 물론, 무급이다. 꿈을 돈으로 환산하기엔 너무나 많았을 게다.
Q & A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
예전에는 직장 일에 몰두하다 보니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어요. 하나에 몰두하다보면 거기에 빠져 있게 되니까요. 그때는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이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랐죠.
꿈에 다시 도전하게 된 계기?
퇴직을 하고 이런저런 일에 대해 고민할 때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도보 여행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 여행을 위해 한국에서 많은 훈련을 했죠.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걷는다는 게 참 좋은 것이 온전히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더라고요. 불교에도 ‘행선(行禪)’이 있듯이, 걷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거죠.
어릴 적 꿈 vs 중년의 꿈?
지금과는 다르게 제가 젊었던 시절에는 대학만 졸업해도 기업을 골라 들어갈 수 있었으니, 그 기업들 중 한 군데에 취업해 순탄하게 사는 게 꿈이었죠. 어떻게 보면 심심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청춘’이에요. 중국어 강사, 호스피스, 미술관 도슨트까지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모두 하니 의미가 있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꿈을 이루기까지 어려웠던 점?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어요. 퇴직하고 정리를 못한 채 갈피를 못 잡을 때였거든요. 그런데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낸 책 (가톨릭출판사)가 제 삶을 바꿔줬어요. 제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거든요. 쓰고 나니까 ‘되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과 잠재력이 확인되니까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당신의 꿈은 무슨 색?
제 꿈은 푸른색이라고 하고 싶어요. 지금은 청춘이라는 의미에서요. 저는 항상 청춘을 염두에 두고 살아요. 예전에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주제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청춘. 내가 살고 있는 청춘과 젊은 너희들의 청춘을 비교해보라고 했습니다. 청춘의 매력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이죠.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했어요. 지금의 저처럼요.
꿈을 이루고 난 뒤 좋은 점?
외로울 틈이 없다는 것이죠. 제가 하는 일들이 즐겁고 재미있다보니 심심할 때가 없습니다. 오히려 요즘 더 바빠요. 중국어는 퇴직하고 나서 배운 것인데 HSK 5급을 따고, 저와 비슷한 신중년들을 가르치니 보람은 말로 할 수가 없죠. 또 어떤 일에 몰두할 때만큼 행복한 것이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