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에 유럽 몇 개국을 오랜만에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젊은 시절의 부푼 기대나 해방감,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던 흥분은 이제 없었지만 며칠 동안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홀가분하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높은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에 썼듯이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외국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 들어가는 것은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헤어나는 일이며 나를 다른 세상에 세워보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로부터 ‘다른 저기’로의 이동을 통해 인간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순전히 상한 삶을 새로이 하려는 시도가 여행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고 썼습니다.
벨기에 여행 중 중풍으로 쓰러져 파리로 돌아온 끝에 사망한 보들레르는 일상이 기억나지 않는 곳, 다른 곳, 먼 곳, 다른 대륙으로 가는 걸 늘 꿈꾸었습니다. 그는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앓고 싶어 하고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어야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건강을 위해 걷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졌지만, 그런 이들의 도보여행도 상한 삶, 모자라는 삶을 기우고 채우는 일입니다. 40일 가까이 걸어야 하는 스페인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에 가는 길)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의 선배 한 분은 그 길을 걷는 동안 세 번을 울었답니다. 어느 성당 앞에 혼자 앉아서 종소리를 들으며 저녁노을을 볼 때, 들판 가득 메운 빨간 양귀비를 흔드는 바람 속에 꽃과 함께 섞였을 때, 비가 갠 다음 날 아침 곱다 못해 서러운 일출을 보았을 때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이 여행으로 그는 맑아져 돌아왔습니다. 그 맑음과 성취감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외국이 아니더라도 낯선 곳으로 가는 것, 모르는 풍광과 사람을 접하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모두 다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꽃 핀 봄밤의 즐거움을 노래한 이백(李白)의 시 ‘춘야원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는 “무릇 하늘과 땅은 만물의 여관이요/세월은 영원한 시간의 나그네로다”[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라고 시작됩니다. 이어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린다 한들 얼마나 되랴/옛사람이 촛불을 밝히고 밤에 논 것은 과연 그 까닭이 있도다.”[而浮生若夢 爲歡幾何 古人秉燭夜遊良有以也]라고 했습니다.
세상이라는 여관에 머무는 우리들 나그네는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언론인 오소백(吳蘇白·1921~2008)은 ‘단상’이라는 글에서 “여행량은 인생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며 여행하는 사람은 한 페이지밖에 못 읽는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여행을 해야 합니다. 릴케가 ‘말테의 수기’에 썼듯이 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은 경험입니다. 이 경험을 구성하는 게 인간과 사물에 대한 학습, 그리고 미지의 세계와 세상에 대한 여행 아니겠습니까?
개인의 여행은 그 자신의 삶은 물론 세상에 대해 많은 변화를 몰고 옵니다. 모로코 출신 중세 이슬람의 여행가 이븐 바투타(1304~1368)는 인도와 중국을 여행하는 데 체류기간까지 합쳐 25년이 걸렸습니다. 64년의 생애 중 25년이면 철들고 나서 절반의 생애를 바친 셈인데, 그의 여행을 통해 세계는 좀 더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그보다 앞서 중국 천축 등을 24년간 여행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이 세계사, 특히 서양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발섭(跋涉)이라는 말을 써왔습니다. 시경에 나옵니다. 발은 넓은 광야를 걸어가는 것, 섭은 물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여행이란 광야를 걷고 물을 건너가는 일입니다. 여행의 규모와 거리에 대해서는 장자의 붕정만리(鵬程萬里)라는 말이 동양의 언어를 지배해왔습니다. 상상의 새인 붕(鵬)은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 모를 정도이며 물을 치면 3천리에 파도가 일고 회오리를 일으켜 날아오르면 높이가 9만리에 이르는데, 6개월을 날아서야 한 번 쉰다고 합니다. 원대한 뜻을 지닌 사람의 일은 소인배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는 뜻이지요. 같은 여행을 하더라도 남기는 것은 서로 다릅니다.
어떤 이들이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상찬하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중국 문명과 문물에 대한 정밀하고 방대한 관찰과 기록이 읽는 이를 압도합니다. 연암은 이 책의 ‘도강록(渡江錄)’에서 아득하고 묘막(渺漠)한 요동벌판에 이르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 그리고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 만하구나”[好哭場 可以哭矣]라는 고금에 빛나는 멋진 말을 합니다.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도보여행객이 흘린 소리 없는 눈물과, 여기 나오는 연암의 소리 내는 울음은 다릅니다. 연암은 ‘울음터’ 다음에 인간이 꼭 슬퍼서만 우는 게 아니라는 긴 울음론을 펼치는데, 두 경우 다 슬퍼서 우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에서 비롯된 울음이지요. 작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것과, 거대하고 웅장해 숭고미를 느끼게 하는 것을 볼 때의 울음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은 기록입니다. 아니 여행은 기록이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현장이 중요합니다. 소설가 김연수는 어떤 작품은 중국 옌볜(延邊)에서, 어떤 작품은 독일에 가서 썼습니다. 머무는 동안 그곳의 책을 많이 사서 보았다고 합니다. 여행이라는 직접 경험에다 독서라는 간접 경험을 결합한 글쓰기인데, 독서와 여행의 중요성을 갈파한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가 바로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한 번 생을 받아 이 땅에 온 사람은 세상을 남김없이 돌아 괴테처럼 ‘하늘이 어디서나 푸르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고요하게 자신의 방에 머물러도 될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아니면 여럿이서 여행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번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는 크고 넓었다. 온 도시마다 문화유적지의 보고이며 풍치가 빼어나다. 특히 토스카나(Toscana) 지방은 이탈리아 여행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토스카나 여행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피렌체를 시작으로 가까운 ‘빈치(Vinci)’, ‘피사(Pisa), ‘루카(Luka)’, 고대 중세도시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에나(Siena), 성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가 몸소 고행하던 ‘아시시(Assisi)’ 등. 그 어느 곳도 놓치면 아쉬울 곳들이다. 더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친퀘테레(Cinque Terre) 국립공원이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부의 아펜니노(Appennino) 산맥과 티레니아(Tyrrhenia) 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에트루리아(Etruria) 문명의 발상지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가는 곳마다 유명 예술가들을 만나게 돼 놀라운 건축양식에 입이 쩍 벌어진다. 산간지대가 아니더라도 올리브 나무는 지천이고 떫지 않은 와인 맛에 매일 길이 들여진다. 무엇보다 한국음식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맛있는 메뉴가 지천이다.
여러 지역 중에서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친퀘테레 국립공원이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한 친퀘테레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단 한 지역을 일컫는 게 아니다. 라 스페치아(La Spezia) 지방의 5개 해안 마을을 철도와 도보용 도로로 연결하고 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한려해상국립공원’처럼 남해안 일원을 함께 부르는 것과 같다. 친퀘테레의 5개 마을을 천천히 즐기려면 넉넉하게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가야 한다. 단 하루 만에 5개 마을을 섭렵할 수 없다.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와 베르나차(Vernazza), 코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 등이 마을 이름이다. 리비에라(Riviera) 해안마을을 잇는 거리는 총 18㎞. 직선으로 이어진 길이라면 어려울 게 없고 관심 또한 끌지 못했을 터. 눈부시게 푸르른 청빛 바다와 기암, 그리고 마치 기암 위에 들어선 듯한 형형색색의 가옥들. 이곳의 가옥들이 색칠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이어졌는데, 바다로 조업 나간 남편이 집을 잘 찾아오라고 아내들이 건물에 색칠을 덧칠했단다. 형형색색 빛깔을 달리하는 작은 건물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러 벽면 군데군데 색이 벗겨지고 바랬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친퀘테레 여행 시작은 대부분 리오마지오레부터다. 이른 아침, 첫 마을의 느낌은 경이롭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빠져나와 아침 햇살이 마을 안쪽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는다. 특히 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자그마한 항구에 매어 있는 조각배.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바다색 위에 형형색색, 이국적인 향기를 물씬 자아내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어부와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우러지면 자꾸만 영화를 보는 듯 착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여행객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들어 놓는다.
한참을 할 말 잊고 앉아 있다가 다음 마을로 가는 행로는 기차가 아닌 보트였다. 배를 타고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네 번째 마을을 비켜 다섯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에 발을 내디뎠다.
몬테로소는 해안을 따라 가옥들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첫 느낌은 생각보다 큰 마을이라는 것. 어느 마을에나 있음직한 성 프란체스코 교회. 마을은 마치 두 개로 나뉜 듯 해안을 따라 날개처럼 가옥이 이어진다. 해안 길은 동굴로 이어지는데 어둑한 동굴 끝자락에서 흘러나오는 길거리 음악가의 노랫가락이 마음을 흔든다. 봄부터 가을까지도 낮 햇살이 따가운 이곳. 사람들은 으레 수영을 즐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집에서 산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혀끝을 감싼다.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을 길이 끝나는 지점, 눈길을 끄는 바위 조각이 있다. 안내표시 없는 그 바위 위에 만들어진 조각의 표정은 온갖 고행의 흔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해안가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해물파스타를 먹고 이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베르나차로 향한다. 울릉도 도동 산책로를 연상케 하는 해안가의 아름다움에 빠져 절로 걷게 된다. 트레킹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과 해안선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에 어김없이 오랜 세월 만들어진 소로. 먹고 살기 위한 사람들과 노새들의 땀 흘림으로 만들어진 길. 깎아지른 벼랑길의 쓸 만한 땅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다. 우리나라 남해의 가천 다랭이 마을이 연상되는 곳.
하지만 이 길은 걷기에는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행정보서는 분명히 ‘걸으면 좋은 길’로 소개할 테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산행을 하는 듯하다. 무더운 땡볕,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동양 여행객.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후들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3분의 1도 가지 못한 지점. 결국 되돌아오는 길이 더 낫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절대적으로 기차를 타고 베르나차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이다.
베르나차(네 번째 마을)는 몬테로소와는 모습이 다르다. 기차역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길목은 관광객들로 넘실댄다. 다섯 마을 중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베르나차는 약 10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여느 곳과 다르게 고대 성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기에 다섯 마을 중 유일하게 항구가 있다. 항구에서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배들을 볼 수 있고 수영,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으로 베르나차는 끝이 아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에 만들어진 요새가 있다. 마을 전체를 조망하거나 멋진 바다 풍경을 보려면 기꺼이 올라가야 하리. 입장료도 비싸지 않다. 사방팔방 펼쳐지는 풍경에 후들거리는 발걸음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성곽의 역사를 굳이 모른들 어떠하리. 그곳에서 하객 한 명 없는 미국인 커플의 결혼식 장면이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
주례, 사진사, 들러리, 그리고 성혼이 끝나면 신부가 내미는 종이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이 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한다. 미국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고 그들은 이탈리아 친퀘테레 바닷가의 한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이다. 오후 햇살을 벗 삼아 그들은 키스로 성혼이 되었다. 어떤 사랑이야기가 있든, 어떻게 살아가든, 그게 이 순간 무어 중요하리. 그저 하객 없는, 간단한 예복을 입은 막 결혼한 커플의 행복하고 감격에 겨운 신부의 눈물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그것을 지켜보는 여행객의 마음속에도 또한 추억 한 자락이 새겨졌다.
베르나차 옆 마을은 코닐리아다. 방향을 어디에서 시작하든 중간에 낀 마을이다. 다른 마을은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을을 만나지만 이곳은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마을 또한 다섯 마을 중 아주 작고 바닷가 마을이라기보다는 산촌 같은 느낌이다. 이는 마을이 포구가 아닌 가파른 언덕 위에 터전을 잡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 마을만의 매력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도로에서 만나는 숍들이 그 어느 마을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답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화분으로 장식된 유리창도 이곳에서는 예술적이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몇 발자국 더 떼었을까? 길은 끝나고 벼랑길 아래로 바다가 정원처럼 펼쳐진다. 바다가 지척이 아니어서 새롭다. 그 자리에 어김없이 자리한 작은 바. 지는 해를 보면서 와인 한잔을 마시면서 듣는 팝송가락이 살갑게 가슴팍을 후벼온다.
하루에 다섯 마을을 돌아보는 사이 해가 지고 있다. 마지막 마을은 마나롤라다. 이곳은 기차역에서 내려 포구로 길이 이어진다. 포구로 가는 길목에서 오래된 사진을 만난다. 거의 포도가 주제가 된 사진이지만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에는 인간미가 물씬 배어 있다. 주름진 얼굴, 햇살에 찌든 검은 피부, 무겁고 힘겨워 보이는 포도 농장,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 이 해질녘에 특히 정겹다. 어쩌면 1338년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산 로렌초 성당도 이들과 삶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항구까지 이어지는 짧은 길. 그 길 끝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씩 마을 건물색이 해거름에 진해지면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 밑, 큰 바위 밑으로 난 소로에는 어김없이 조각배가 정박해 있고 그 바닷길 끝에 자그마한 기암이 있다. 그 시간에 지는 해는 묘하게 심장을 떨리게 한다.
이어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자리를 틀고 앉는 시간, 필자는 기차시간에 쫓겨 급하게 레스토랑에 앉아 해물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기차시간과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웨이터는 내게 속삭인다. “저녁 9시부터는 라이브 음악이 울려.” 언제쯤에나 이런 아름다운 정서에 내가 흡입될 수 있을까? 다섯 마을 중에서 필자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진 곳. 풍치였을까? 아니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는 해물스파게티 맛이었을까?
교통편 피렌체나 밀라노, 제노아 등지에서 철도를 이용하면 된다. 라스페치아 역을 비롯해 5개 역에서는 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친퀘테레 카드(Cinque Terre Card)를 판다. 하지만 기차 말고도 걷거나 보트를 타거나 하는, 제각각 여행패턴이 다르므로 사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먹거리 친퀘테레 바닷가 마을에서는 아주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마다 맛이 제각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을 찾는 것도 요령이다. 레스토랑에는 칠리가 있어 우리 입맛에 맞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 포카치아(Focaccia)라는 지역 특산 빵이 있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아주 짜다. 이탈리아 전역의 레스토랑에서는 테이블 커버 차지를 받는다. 거기에 서비스 요금을 함께 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게 되면 원래의 가격보다 훨씬 웃도는 돈을 내야 한다.
숙박정보 친퀘테레 바닷가 마을은 대부분 숙박비가 비싸다. 라스페치아에 숙소를 정해놓고 다녀도 무관하다. 대부분 숙박지에서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필자가 머문 고지대에 있는 호스텔은 가격이 저렴하고 조용했다. 분지처럼 움직이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저녁이면 하루 세 번씩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편리했다.
△ 글ㆍ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한강을 따라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강변을 가로막고 선 철책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그렇게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진 그 길 끝에 임진각이 있다. 슬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임진각, 그 속살을 들여다보자.
글ㆍ사진 김대성 여행작가
◇전쟁의 아픔이 아로새겨진 임진각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7km 지점에 있는 임진각. 참혹했던 전쟁의 그림자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다. 65년의 세월을 품은 전쟁의 상처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쓴 채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임진각 마당에는 망배단이 조성되어 실향민의 마음을 위로한다. 망배단은 북녘땅을 향해 제를 올리는 공간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망배탑을 둘러싼 7개의 화강석에는 북한 지역의 문화와 경관을 새겨 넣어 망향의 근심을 달래주고 있다. 망배단 뒤편에 놓인 ‘자유의 다리’는 전쟁포로의 교환을 위해 가설한 임시교량이다. 1953년 휴전협정 후 12,773명이 자유를 찾아 이 다리를 건너왔다.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한국전쟁을 대표하는 유산이기도 하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연못가를 천천히 거닐어 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다. 다리 앞에 전시된 증기기관차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 검붉게 녹슨 몸체와 1,000개가 넘는 총탄 자국이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 다. 이 열차는 연합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중 폭격을 받 았다. 그 후 반세기가 넘도록 비무장 지대에 방치돼 있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다. 비록 흉물스런 몰골이 돼 버 렸지만, 남북분단의 상징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임진각에는 특별한 공간이 숨어 있다. 바로 BEAT 131. 이곳 은 전쟁 당시부터 사용해온 실제 지하벙커다. 지하로 내려 가는 입구에 M15 대전차지뢰가 놓여 있어 지뢰 밟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터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움찔하 게 된다. 벙커 내부는 상황실과 영상체험실로 꾸며졌다. 통 신시설과 군용물품이 전시돼 있고 DMZ와 북한 선전마을을 실시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모니터에 메시지를 적으면 모 스 부호와 함께 저장되는 미디어아트도 흥미를 끈다. 어둡 고 좁은 공간이라서 한 번에 20명까지만 입장이 가능하다.
임진각 본관 건물에는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지 하 1층에는 북한 술, 토산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기념 품점이 있으며, 지상 1층과 2층에는 DMZ 홍보관, 한정식 식 당,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등이 들어서 있어 방문객들의 쉼 터 역할을 한다. 3층은 망원경을 통해 북한 지역을 직접 볼 수 있는 옥상 전망대다. 이와 함께 임진각관광지에는 평화 의 종, 장단콩 전시장, 망향의 노래비, 6·25전쟁 참전기념비, 평화랜드 등의 시설이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이 임진각을 찾아온다. 분단국 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 때문일까. 꼭 그 때문만은 아니 다. 분단의 상징으로만 여겼던 이곳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 람도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임진각은 아픈 역사가 관광 상품이 되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 상처를 치유하며 조용 히 변화하고 있다.
◇바람도 쉬어가는 평화의 쉼터
임진각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자연과 예술 그리고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 바로 평화누 리 공원이다. 개성 넘치는 예술 작품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부드러운 구릉을 따라 수놓아진 3,000여 개의 바람개비는 한반도를 오가는 자유로운 바람을 표현한다. 또한, 북녘 하늘을 바라보고 서있는 거대한 인물 상은 ‘통일부르기’라는 작품이다.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4개 의 대나무 인간을 통해 통일의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그 외 에도 소망나무, 솟대집 등 곳곳에 설치된 다양한 작품이 발 길을 이끈다. ‘음악의 언덕’으로 불리는 광활한 잔디광장의 중심에는 ‘어울터’가 있다. 어울터는 2만 5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으로 계절별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평화누리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전시와 공연 그리 고 기부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다소 무거운 기운이 흐르던 임진각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평화누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단 하나의 특별한 땅, 비무장지대
DMZ 투어를 다녀오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된다. 임진각 주 차장 옆 DMZ 매표소에서 출입신청 절차를 거쳐 이용할 수 있다. 셔틀버스를 타고 통일대교를 건너 제3땅굴, 도라전망 대, 도라산역 등을 돌아보는 코스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오 전 9시 2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평일에는 9회, 주말에는 14회 운행한다. 제3땅굴 관람방법은 도보와 셔틀승강기 두 가지 로 나뉘는데, 셔틀승강기 표를 사는 것이 좋다. 도보관람을 선택하면 땅굴관람 시 후회하기에 십상이다. 또한,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니 참고하자.
도라산역은 경의선 남측 최북단 역이자 북쪽으로 가는 첫 번 째 역이다. 이곳은 서울역에서 56km, 개성역에서 17km 떨어 진 곳에 있다. 철도가 중단된 지 52년만인 2002년 건설되었으 며 남북교류의 관문이기도 하다. 도라전망대는 남측의 최북 단 전망대로 개성시와 김일성 동상, 송악산, 기정동 마을 등 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포토라인이 정해져 있어 함부로 촬영 은 할 수 없다. 제3땅굴 역시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가방과 카 메라를 보관함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탈북자의 제보에 의 해 발견된 이 땅굴은 한 시간에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 는 규모로 지금까지 발견된 땅굴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DMZ는 정전협정으로 출입이 통제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겪 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여겨질 만큼 귀중한 생태자원을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생태계적 가 치뿐만 아니라 안보적 가치와 역사의 산 교육장 등 다양한 요소로 인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쓰라린 역사의 현장 이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처절했던 그날의 흔적들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 비무장지대. 이곳에도 따스한 희망의 바람이 불어와 하루빨리 과거의 상처를 털어내고 새로 운 땅으로 거듭나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이며, 내일의 과거가 된다. 즉, 오늘을 잘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잘 사는 것과 같다. 계획하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새해. 지난날의 후회도, 다가올 날의 걱정은 버리고 당장 오늘, 바로 지금에 충실해 보는 것은 어떨까?
◇ 지금 이 순간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
“인생을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침내 제대로 살아낼 때까지” 완벽한 이상향을 향해 펼쳐지는 끝없는 회귀, 반복되는 삶과 죽음 속 오늘의 의미. 삶의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당신에게, 가슴 저민 시간 여행을 선사 한다
저자: 케이트 앳킨슨 (임정희 옮김) ㆍ 출판사: 문학사상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75세에도 하는데 그대들이 못한다고?
그 나이가 어때서! 망설이다가 기회를 잃은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후회스럽다.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일단 문을 열고 나가라. 75세 도보여행가의 유쾌한 삶의 방식
저자: 황안나 ㆍ 출판사: 예담출판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할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도 어렵고, 사랑도 어렵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애써 고민을 숨기며 괜찮은 척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스토아철학의 빛나는 통찰
저자: 변지영 (윤한수 사진) ㆍ 출판사: 카시오페아
#지금 여기 깨어 있기
깨달음을 경전 속에 가두지 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한다. 지금 깨닫고 나머지 인생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법륜스님이 전하는 깨달음의 길에 이르는 방법.
저자: 법륜 ㆍ 출판사: 정토출판
◇ 2015 한 해를 책임질 도서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
쓸수록 힘이 나고, 매일매일 행복해지는 ‘한 줄의 기적, 감사일기’.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일에서 감사와 깨달음을 찾다보면, 어느새 일상은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저자: 양경윤 ㆍ 출판사: 쌤앤파커스
#행복다이어리 ‘Present’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장 최인철 교수가 다이어리에 담은 행복의 조건과 기술. 빡빡한 업무와 스케줄로 가득 찬 다이어리는 이제 그만, 2015년은 ‘Present’에 선물 같은 나의 일상을 채워보자.
저자: 최인철 ㆍ 출판사: 한스미디어
#2015 가계북
부자 되는 사람들의 비밀 노트. 똑똑한 경제생활의 시작. 소득과 지출만 적는 평범한 가계부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알짜 경제 정보는 물론, 연간 월간 스케줄러까지. 끝까지 쓸 맛 나는 종이 가계북의 매력에 빠져보자.
저자: 그리고책 편집부 ㆍ 출판사: 그리고책
#연말정산 완전정복
세금폭탄을 피하고 환급액을 늘리는 초간단 지침서.재테크의 마무리는 연말정산. 손해 보지 않는 연말정산을 위한 핵심 정보와 2015 개정 포인트를 짚어준다.
저자: 유흥관 ㆍ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습관의 재발견
지키지 못할 계획만 세우는 ‘계획중독자’에서 벗어나라. 작게, 사소하게, 가볍게. 못하는 게 더 어려운 작은 습관의 힘. 결심과 포기를 반복하는 이들에게 무조건 실천 가능한 전략으로 작은 습관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를 제시한다.
저자: 스티븐 기즈 (구세희 옮김) ㆍ 출판사: 비즈니스북스
◇ 2015 트렌드를 읽어라
#빅피처 2015
2015년은 변곡점의 시대, ‘진화형 어젠다’와 ‘전통 어젠다’를 주목하라. 하버드대 출신 국내 전문가 11인이 말하는 2015 대한민국 주요 이슈와 쟁점들
저자: 김윤이 외 10명 ㆍ 출판사: 생각정원
#2015 생생트렌드
국내 최초 빅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트렌드서. 2015년 달라질 비즈니스, 문화, 라이프스타일의 흐름과 액티브 시니어의 영향까지 빅데이터로 분석하고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하다
저자: 타파크로스 ㆍ 출판사: 더난출판
#핫트렌드 2015
산업계 최전선에서 날아온 냉철한 분석과 뜨거운 예측, 글로벌 핫트렌드 25. 저자들이 엄선한 25개 트렌드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물들’, ‘새로운 도시들’로 나눠 트렌드의 발전방향을 분석하고, 실무에 적용하는 기술을 제안한다.
저자: 핫트렌드연구소 핫트렌드 연구위원회 ㆍ 출판사: 호름출판
SNS(소셜미디어)탐사여행을 시작하면서 지구촌의 놀라운 미디어(언론매체)혁명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스토리 같은 SNS시대가 오기 전, 개인들은 미디어가 공급하는 뉴스나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보는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언론사들은 기자와 PD를 두고 뉴스를 만든 뒤 신문이나 TV를 통해 소식을 전하는 독점적 존재였지요.
몇년전부터 소셜미디어(Social Media)가 출현하면서 상황이 확 바뀌었습니다. 소셜미디어는 전업 기자가 글-사진을 만드는 기존 미디어와 달리, 시민 누구나 스토리를 올려 전파할 수 있는 ‘사회적 미디어’입니다.
이제 개인들도 자신의 지식-경험-노하우를 소셜미디어(블로그,페이스북,트위터 등)에 올려 세상에 알릴수 있게 됐습니다.
언론이 독점하던 소통권력이 시민에게 넘어오는 문화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이에 따라 여러분은 미디어가 되셨습니다. 아마 “내가 미디어다”라고 한번도 생각 안해보셨겠지만 여러분도 SNS를 쓰면 미디어가 됩니다.
한 개인도 좋은 글-사진이 있으면 언론사 부럽지않은 영향력을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종래에는 정보를 만들고 배포하려면 큰 비용이 들어 개인은 엄두를 못냈습니다. 그러나 SNS시대에는 블
로그,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 스토리 등이 무료로 마당(플랫폼)을 제공합니다.그래서 영세 상공인, 창업자, 시니어들에게 구세주같은 존재입니다. 큰 투자가 있어야 가능했던 신문사, 방송사, 마케팅 회사를 돈 안들이고 할수 있으니 개인들에게는 ‘대박’아닌가요?
게다가 내가 올린 정보가 즉시 전세계적으로 배포되고 반응도 세계적으로 옵니다. 1인 기업의 제품-서비스가 세계시장에 팔리는 일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각종 강의에서 “소셜미디어가 ‘21세기 엘도라도(황금의 나라)’를 불러온다”고 강조합니다.
미디어가 된 시니어를 소개하겠습니다.
60세인 송영록씨가 그런 예입니다. 컨설팅 회사 대표 은퇴후 송씨는 2012년 봄 순례길로 유명한 스페인 산티아고로 혼자 배낭 여행을 떠나는 도전을 합니다. 920km를 50일간 걸었습니다. 여행 내내 사진을 찍고 글을 써 개인 블로그(blog.yourstage.com/ollesong), 트위터 등 SNS에 소개했지요. 그랬더니 SNS 친구들이 댓글도 써주고 다시 공유도 해주는 재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지난해초엔 블로그에 쓴 35회의 글을 모아 ‘얼렁뚱땅 까미노 산티아고’라는 전자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도 했습니다. 현재는 블로그에 ‘말레이시아 일기’를 연재중입니다.
그는 회원이 600여명인 ‘프리맨의 도보여행’(club.yourstage.com/dobo)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출범시켰습니다. SNS 친구들과 함께 한거지요. 카페 멤버들은 매주 일요일 도보여행을 하며, 행복과 건강을 함께 합니다
김일 소셜미디어나눔연구소장/본지 대기자
※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독자 이기섭(92)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두 아들과 함께 딸과 사위가 있는 오스트리아와 체코 여행기입니다. 이기섭씨 처럼 독자 여러분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항상 기다립니다.
◇ 비엔나에 살고 있는 딸부부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영어로 비엔나(Viena)라고 한다. 유엔기구의 외교관인 사위와 딸이 사는 집은 비엔나 도심지역에 있었다. 움직이는데 지극히 편리했다. 지하철 3개 노선과 귀엽게 생긴 전차를 바로 집 앞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백년 되었다는 6층 건물의 상층부 2개 층에 살고 있었다.
건물의 겉은 역사 유적 같은 고풍스러운 모습이지만, 내부는 냉난방이 가동되는 최신식 인테리어였다. 6층은 널찍한 거주 공간, 옥상공간을 포함한 7층은 파티 등 여러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모임장소였다.
사위와 딸은 지극히 세심하고 정성스런 스케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사위가 준비한 스케줄은 처음엔 강행군, 뒤에 편안한 쉼이 있는 계획표였다. 많은 손님을 접하며 경험해 얻은 노하우 같았다. 첫 3일 동안 오스트리아 서부의 잘츠부르크와 호반지역, 스키산장 그 다음 이틀은 체코 프라하 방문, 그 다음에 딸집에서 편안히 머물며 비엔나 일원을 관광하는 스케줄이었다. 짧은 기간에 비해 기억에 남는 추억이 너무도 많지만, 특히 딸집에서의 편안함과 모차르트 고향 잘츠부르크 그리고 2박 머물렀던 스키산장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 비엔나 일원
최근 국제기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 1위로 비엔나가 뽑혔다고 한다. 경제ㆍ환경ㆍ교육ㆍ인프라ㆍ안전 등의 모든 요소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2위는 스위스 취리히, 3위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라고 들었다. 정말로 청정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세먼지 없고 맑고 푸른 하루를 마음껏 구경 할 수 있었다. 밤하늘에는 별자리들이 두루 다 보일 정도였다. 수돗물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다 먹고 있었다. 상수원이 오스트리아 남부의 청정 수역이라고 한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음악의 도시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왕궁,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 있어 거의 도보나 지하철, 전철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느긋하고 우호적이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궁전, 도심(성당 등)과 유명한 음악가 동상이 몰려있는 음악공원(마침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음악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등을 구경했다. 그리고 오페라「카르멘」관람, 다뉴브강변의 분위기 있는 저녁식사, 경치가 아름다운 드넓은 골프장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도 했다.
지하철도 여러 번 타 보았는데, 편도1회에 2유로 10센트였고 우리나라와 같은 환승서비스는 없었다. 검표과정이 없이 그냥 타는데, 가끔 행해지는 조사에서 무임승차가 적발되면 벌금이 100유로라고 한다. 또 한국에선 많이 들었던 ‘비엔나 커피’, ‘비엔나 소세지’란 용어가 정작 비엔나에는 없다고 한다. 전통적인 비엔나 스타일로는 커피에 우유를 섞어 혼합한 ‘멜랑쉐 커피’가 있다고 한다.
◇ 쉔부른 궁전
도심의 슈테판 대성당과 함께 비엔나 관광의 양대 핵심이다. 이 궁전은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 유명한 마리 앙투와네트가 결혼 전 15세까지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총 1400실이 넘는 방 중에서 39실만 공개하고 있었다. 특히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했다는 방이 기억에 남는다. 공개된 방의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한 바퀴 돌고나서 궁전 건물을 나서니 푸르디 푸른 널따란 왕궁 정원이 나왔다. 반듯반듯하게 정리 정돈된 정원과 분수, 조각상들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전경이었다.
◇ 성 슈테판 대성당
비엔나의 상징이자 영혼인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수많은 랜드마크 중 단연 첫째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 양식 건물로 하늘을 찌를 듯한 137m 높이의 웅장한 첨탑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343개의 계단을 오르면 발코니에서 비엔나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가까이 사는 딸집도 보였다. 성당 안 곳곳에서 기도하고 있는 관광객을 볼 수 있었다. 사원 앞 광장에서는 관광마차가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데, 성당 안에 있는 지하무덤은 성직자들이 아닌 역대 왕과 왕비들이 석관에 넣어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 우리나라 서울의 명동거리에 해당하는 케른트너 거리
비엔나 도심에서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곳이 케른트너 거리인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슈테판 성당에 이르는 약 600m의 대로이다. 비엔나 최대의 번화가이자 보행자 전용도로이다. 노천 카페와 쇼핑센터,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쇼핑과 휴식이 함께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보행자 천국의 거리로 거리 악사, 행위예술가 등의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회 티켓을 광고하는 사람들도 많아 음악의 도시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도 있었다. 관광안내소가 있어 비엔나의 커다란 지도를 얻어 여기저기를 확인하며 돌아다닐 수 있어 도심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 오페라「카르멘」관람
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집시여인 카르멘을 둘러싼 3각 애정관계를 묘사하면서, 마지막에는 카르멘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몇몇 곡은 귀에 익은 곡도 있었다. 만석인데, 입석도 많이 보였다. 음악도시답게 유학온 음악도들이 싼값에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입석을 배려한다고 한다.
◇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
딸과 며느리가 쇼핑하는 사이에, 사위의 벤츠차를 타고 간곳이 비엔나 남쪽의 골프장이었다. 캐디도 없이 혼자 또는 몇몇이 골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골프장의 환상적인 경관에 취했는지 기분이 편안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한국관광공사는 '걷기 여행길'(www.koreatrails.or.kr) 웹사이트를 통해 4월 가볼 만한 전국 곳곳의 도보 여행지 10곳을 소개했다. 도보 여행지는 쉬운 코스와 보통 코스 등으로 구분이 돼 있다.
쉬운 코스는 경북 청송군의 주왕산 탐방로 주왕 계곡코스(2.2㎞)다. 대전사에서 출발, 자하교를 지나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 산책하기 좋은 평탄한 길이다. 주왕산의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을 볼 수 있다.
전남 완도군의 청산도 슬로길 1코스(5.71㎞)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유채꽃과 청보리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강원 강릉시 바우길 5구간 바다호숫길(16㎞)은 파도를 따라 해변을 걷다가 커피 거리에서 카페에 들릴 수 있는 코스다. 금강소나무 군락, 허균허난 생가, 죽도봉 공원 등을 거쳐간다.
보통 코스중 경남 하동군 '박경리 토지길' 2코스(13㎞)는 화개장터부터 십리 벚꽃길을 지나 불일폭포까지 닿는 구간이다. 4월 벚꽃 축제, 5월 야생차 축제가 열리는 대표적인 꽃길로 알려져 있다.
전남 화순군 무등산 자락에 있는 무돌길 11길(3㎞)에서는 4월 벚꽃에 이어 5월에는 철쭉꽃밭이 펼쳐진다. 무등산 산행 일정에 포함해도 좋다.
전북 김제시의 순례길 6코스(25.9㎞)은 금산사와 모악산 자락을 잇는 코스. 4월 18∼20일에는 모악산축제가 열려 템플스테이나 무형문화재 공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대부도 해솔길 1코스(11.3㎞)가 가볼 만하다. 해변을 따라 걷다가 북망산에 오르면 인천대교, 시화호 전경 등이 펼쳐진다.
서울에서는 북서울 꿈의 숲 나들길(4.7㎞)과 서울숲 남산 나들길(8.8㎞)이 가족 나들이 코스로 좋은 것으로 꼽혔다. 지하철이나 버스와 연결돼 이동이 편리하고, 숨겨져 있던 서울의 역사적 명소를 둘러보고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월은 도보 여행을 떠나기에도 좋은 때다.
3일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걷기 여행 길'(koreatrails.or.kr) 사이트에서는 이달 가볼 만한 도보 여행 코스 7가지를 추천했다.
전남 강진군에 가면 다산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이중 달마지 마을, 무위사, 강진다원 녹차밭, 월남사지 등을 잇는 4코스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월출산 자락에서 녹차밭이 펼쳐지며 장관을 이룬다. 16.6㎞로 5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강원 춘천 '봄내길'에는 소설가 김유정이 고향을 배경으로 써낸 소설 속 봄의 정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중 1코스인 '실레 이야기길'은 김유정문학촌과 실레 마을을 돌아보는 2시간 가량의 짧은 길로 가족의 주말 나들이 코스로 좋다. 거리는 5.2㎞.
울산 '태화강 100리길' 1구간은 태화강의 푸른 물결을 따라 억새밭, 십리대밭, 삼호대숲, 태화강대공원을 보며 걷는 코스다. 15㎞ 거리로 5시간 가량 소요된다.
충남 홍성군에는 역사의 숨결이 담긴 '홍주성 천년 여행길'이 있다. 대교리 미륵불, 홍주의사총, 홍주향교, 홍주성, 적산가옥 골목길, 명동상점거리, 당간지주, 홍성천 벽화 등을 잇는다. 8㎞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수도권에서도 봄의 향기가 성큼 다가왔다.
서울 '안산 자락길'은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 연희숲속쉼터, 봉원사 등으로 연결된 숲길이다. 특히 휠체어 등으로 이동할 수 있는 '무장애 숲길'도 있어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좋다. 9㎞ 거리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경기 파주 '살래길'은 통일동산 중앙공원, 고려역사박물관, 검단사 등으로 이어진 산책길이다. 4.2㎞ 구간을 1시간 30분 동안 둘러볼 수 있다.
부천 '둘레길' 1코스인 향토유적숲길은 고강선사유적지, 경숙옹주묘, 부천무릉도원수목원, 진달래 동산 등을 잇는다. 꽃피는 계절이 되면 철쭉과 진달래가 장관을 이룬다. 9㎞ 구간으로 2시간 30분 가량 걸린다.
전남 해남읍 연동리에 가면 마치 오래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한 고풍스러운 담장 길을 만날 수 있다. 바로 400년이나 된 종가 뒤 비자나무 숲속으로 가는 담장 길이다. 여행의 묘미는 앞에 보이는 것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녹우당의 담장 길을 거닐며 비자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듣는 것은 이곳 여행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어부사시사’로 잘 알려진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칠순이 넘도록 유배지에서 고생하며 고난을 견뎌낸 인물이기도 하다. 무려 15년 동안 유배를 당한 윤선도는 유배기간의 ‘강요된 은둔’ 속에서도 세상을 밝히는 주옥같은 시들을 남겼다. 고산은 보길도에서 은자 생활을 하다가 85세 때 부용동에서 세상을 떴다. 필자는 몇 년 전 2월 봄방학 때 아들과 함께 보길도를 도보 여행한 적이 있다. 2월의 추운 날씨인데도 보길도와 해남 그리고 땅끝마을 등에는 동백나무가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람과 해풍을 견뎌내고 피워낸 동백의 기품과 자연의 섭리에 겸손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고산은 유배 등 정치적 고난을 이겨내고 실용학문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고산은 당시의 사대부로서는 거들떠보지 않던 의학, 천문, 지리, 점성술, 음악, 미술 등을 두루 섭렵했다. 그래서 녹우당은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접할 수 있는 ‘잡학 도서관’ 역할을 했다. 후손뿐만 아니라 인근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었다. 윤선도는 이러한 학문을 연구했을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이를 직접 응용했다. 그는 한의학에 정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약을 처방해 주기도 했다. 녹우당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학암(老學岩)’이다. ‘늙도록 배움이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고산 윤선도 가에 내려오는 공부법은 바로 오늘날에도 주목받고 있는 ‘자기주도적 공부법’이다.
고산의 삶과 학문 세계는 그의 후손들에게 삶의 지침과 등불이 되었다. 자녀교육은 바로 그의 주도적 삶이 교훈이 되고 가르침이 되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불우한 생을 산 고산은 후손들에게는 가능하면 정치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말고 대신 실용적 학문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이게 바로 고산 가에 내려오고 있는 공부법으로 ‘직업에 편견을 갖지 말고 실용적 학문에 힘써라’이다. 이러한 삶의 지침은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시대에도 일부 학부모들은 여전히 법관이나 의사 등 직업이나 명문대만을 고집한다. 하물며 신분 질서가 공고하게 작동했던 시대에 실용학문이나 직업을 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후손들은 녹우당에 있는 수많은 서적을 보면서 자신의 갈 길을 찾았다. 결국 윤선도와 같은 학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윤두서-윤덕희-윤용 등 3대에 걸쳐 화가가 나왔다.
자녀와 함께 나들이할 기회가 있다면 실용적이고 개방적 문화를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해남의 녹우당을 찾아보자.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은 800km에 이르는 기나긴 순례길이다. 프랑스 생 장 피에드 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한 달여 가량이 소요되는 종교인의 고된 순례길. 하지만 현재는 피레네 산맥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발자국으로 채워지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은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은 제주 올레길을 직접 일구며 국내에 ‘걷기 여행’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제주 올레길에서 촉발된 ‘걷기 여행’ 열풍은 지리산 둘레길, 전라북도 순례길 등으로 이어지며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다시금 느림, 걷기의 미학을 되새겨 주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도 ‘뚜벅이’라는 걷기 동호회가 있다. 지난해 12월 정식으로 출범했지만 어느새 가장 ‘핫’한 사내 동호회로 주목받고 있다.
정해진 인원은 없다. 한 달에 한 번 동호회 운영자들이 사내 게시판에 공지를 띄우고 그때 그때 신청자를 받는다. 걷기 동호회인 만큼 특별한 장비를 갖추거나 기술을 익힐 필요도 없다. 때문에 여행 공지를 띄울때마다 평균 20여명의 참가자가 몰리곤 한다. 간편함이 ‘뚜벅이’ 인기의 비결인 셈이다.
‘뚜벅이’는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 꼴로 강화도 옛사랑길, 계족산 황톳길, 문경새재, 청계산 둘레길 등 지역의 좋은 길을 찾아 걸었다. 직원 가족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지만 예산 제약이 있어 신청자가 몰릴 경우 직원 위주로 참가자를 선정하기도 한다.
부담없이 걷는 도보 여행인 만큼 참가자의 연령과 직급도 다채롭다. 함께 길을 걸으며 다른 부서, 다른 직급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뚜벅이’의 큰 장점. 증권 예탁, 증권 보호예수, 금융상품 결제 등 숫자와 씨름해야 하는 예탁원 업무의 특성상 걸으며 혼자만의 사색에 빠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다른 부서의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걸으면서 사색에 잠길 수 있어 복잡했던 머릿속도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다이어트에도 좋으니 금상첨화죠.”
쉬면서 가면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잠시 삶의 속도를 느리게 하기. 예탁원 ‘뚜벅이’가 직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