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제르보(GERBEAUD)는 1858년에 개업한 150년 역사와 전통의 디저트 카페다. 세계 14대 명문 카페 중 하나이며 헝가리 관광객들 사이에 명소로 손꼽히는 제르보를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제르보는 150년 전부터 유럽 왕실과 귀족들이 즐기던 최고급 케이크와 음료를 선보이고 있다. 헝가리 제르보 본점에는 연간 20만여 명 이상의 방문객을 비롯한 세계 유명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 엘리자베스 여왕은 제르보를 ‘헝가리의 보석’이라 칭하며 극찬했다. 또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등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북돋아 준 특별한 장소로도 잘 알려졌다.
단 1%의 레시피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제르보만의 프리미엄 케이크와 음료를 이제는 서울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본점, 일본 도쿄에 이은 세계 세번째 매장이다. 지난해 10월 잠실 롯데월드몰 에비뉴엘 2층에 자리 잡은 제르보는 2013년 11월 론칭이 결정된 이후 약 1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문을 열었다. 제르보 본사의 졸탄 셰프(헝가리 3대 셰프)가 한국으로 파견돼 제르보의 엄격한 레시피를 전수하고, 그들만의 운영 노하우 등을 접목해 현지의 맛과 분위기를 고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주한 헝가리 대사와 함께 직접 서울 제르보 매장을 방문해 티 타임을 즐기기도 했다. 실제 헝가리 본점을 방문했던 관광객이나 헝가리인들이 찾아와 현지와 다름없는 디저트 맛에 찬사를 표하고 있다.
제르보의 대표 메뉴 ‘에스테르하지 토르타’는 17세기 오스트리아 원수를 지낸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기리기 위한 제르보의 헌정 케이크다. 에스테르하지 장군이 생전에 즐겼던 코냑과 호두를 사용해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디저트가 나온 지도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리잔에 담긴 디저트 ‘송로이 케헬리’는 제르보의 현대적인 스타일 케이크 중 가장 인기 있는 송로이 갈루슈커를 베이스로 한 메뉴로, 바닐라, 초콜릿, 호두 세 가지 아이스크림의 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몰 에비뉴엘 2층
영업시간 (평일)10:30~20:00 (주말) 10:30~20:30, 백화점 휴무일 휴무
문의 02-3213-2222
주차 10분에 800원 (발레파킹 무료)
광복 70년을 맞는 2015년 현재, 스포츠는 경제와 함께 신생 대한민국이 압축 성장한 대표적인 분야로 꼽힌다. 대한제국이 제국주의 일본에 병탄된 이후 한국인들의 스포츠 활동은 상당한 제약을
받으면서도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1920년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를 창립하는 등 나름대로 발전을 거듭했다.
글 신명철 스포츠 평론가
일제 강점기 식민 지배 아래 한국인의 국제무대 활약상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 하계대회(마라톤 김은배·권태하, 복싱 황을수), 1936년 베를린 하계대회(마라톤 손기정·남승룡, 축구 김용식, 농구 이성구·장이진·염은현, 복싱 이규환) 그리고 1936년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독일) 동계대회(스피드스케이팅 김정연·이성덕·장우식) 등 총 3차례의 올림픽에 모두 13명의 선수가 출전했을 뿐이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1900년 제2회 파리 대회부터 올림픽에 나섰고, 필리핀도 미국의 통치 아래 있었지만 1924년 제8회 파리 대회에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일본은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대회에 처음 참가한 뒤 1936년 제11회 베를린 대회에서 종합 8위(금 6, 은 4, 동 8)에 오르는 등 1930년대에 이미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스포츠는 세계 수준은커녕 아시아 지역에서도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안에 한국은 세계 스포츠 10강으로 성장했다. 놀라운 성장 속도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나라를 먹고살 만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국민들에게 큰 기쁨과 용기를 줬던 한국 스포츠의 광복 후 70년을 살펴본다.
혼란기 이끈 두 효자 종목 복싱과 역도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미국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35년의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으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포츠도 혼란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45년 11월 26일 이 땅의 체육인들은 조선체육회를 재건했다. 경기 단체도 조선육상경기연맹과 조선축구협회 등이 속속 탄생했다. 1945년 10월 27일 열린 자유해방 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는 제26회 전국체육대회로 이어졌다. 올해 제96회를 맞는 전국체육대회의 기원은 1920년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다.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도 조선올림픽위원회는 1947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가입하고 1948년 7월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역도의 김성집과 복싱의 한수안이 각각 동메달을 따며 신생 대한민국의 존재를 온 세계에 알렸다.
이에 앞서 그해 2월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 한국은 5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했지만 두 대회 모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열렸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열린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역도의 김성집과 복싱의 강준호가 각각 동메달을 차지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과 1952년에도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경기대회에는 한국전쟁 탓에 참가하지 못했으나 1954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종합 3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한국은 복싱의 송순천이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고 역도의 김창희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1940~50년대에 참가한 3차례 올림픽에서 한국의 메달박스는 복싱과 역도였다.
한국 스포츠의 메카 태릉선수촌 개장… 치열한 남북 경쟁
해방 이후 70년, 한국 스포츠 발전 과정에서 태릉선수촌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진천선수촌에 자기 자리를 거의 물려줬지만, 아마추어와 프로를 막론하고 태릉선수촌과 인연을 맺지 않은 한국 운동선수는 거의 없다. 1960년대는 한국 스포츠가 세계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시기로, 국가 대표 선수들의 요람인 태릉선수촌이 1966년 문을 열었다.
1960년대에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68년 멕시코 올림픽 그리고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 1966년과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등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선전하는 한편 1966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장창선이 해방 이후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1967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박신자를 앞세워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스포츠 코리아’를 알리기 시작했다.
1963년에는 도쿄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회담이 스위스와 홍콩에서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끝난 회담이었으나 남북 스포츠 관계자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90년대 초반 탁구와 청소년 축구의 단일팀 구성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공동 입장 등 일정한 성과물을 거두게 된다.
1960년대에는 개인 종목의 프로 스포츠가 활기를 띤다. 1966년 6월 김기수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판정으로 꺾고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고, 김일이 이끈 프로 레슬링은 당시 국내에서 해마다 개최한 유일한 국제 대회인 동남아여자농구대회와 함께 국민적 볼거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는 한국 스포츠가 아시아 무대에서 벗어나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시기이기도 하고, 1972년 뮌헨 대회 때 처음으로 올림픽에 얼굴을 내민 북한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시기이기도 하다. 북한이 1972년 뮌헨 대회 사격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먼저 따자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양정모(레슬링)의 금메달로 응수하는 등 1970년대 내내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1974년 테헤란·1978년 방콕) 등 여러 국제 대회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체제 경쟁의 측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 스포츠의 전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이 시기, 한국 스포츠를 관통한 표어가 ‘선 체력 후 기술’이었다.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 전관왕에 오른 김진호, 1978년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럽 무대인 서독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차범근 등이 이 무렵 한국 스포츠의 슈퍼스타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1988년 서울 올림픽, 한국 스포츠 도약의 발판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발전의 토대를 착실하게 만든 한국 스포츠는 1980년대 들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꽃을 피운다. 서울 올림픽 유치 과정은 한마디로 그동안 쌓아 온 국력의 집결 과정이었다.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했다가 반납했던 아픈 기억은 두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로 완전히 사라졌다.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체제를 넘어서서 세계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동서 화합의 계기가 된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국민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됐다. 1980년대에는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프로 스포츠 시대의 막을 열기도 했다. 1983년에는 축구와 민속 경기인 씨름이 프로화돼 스포츠의 프로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축구의 경우 프로화에 따른 경기력의 발전으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출전하는 등 성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28개와 은메달 28개, 동메달 37개를 획득했고 북한은 금메달 17개와 은메달 19개, 동메달 20개를 차지해 스포츠의 남북 경쟁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하형주,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 등은 스포츠 팬들의 기억에 생생한 1980년대의 스타플레이어다.
한국 스포츠 세계 10강을 굳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홈의 이점을 살려 종합 순위 4위(금 12, 은 10, 동 11)에 오른 한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종합 순위 7위(금 12, 은 5, 동 12)를 차지하면서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확실히 다졌다. 그해 알베르빌(프랑스)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은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에서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동계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기록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후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한국은 쇼트트랙을 주력 종목으로 동계 올림픽에서도 세계 10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2010년 밴쿠버 대회에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와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와 모태범, 이승훈 등의 금메달 6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순위 5위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2014년 소치 대회에서는 김연아가 금메달을 도둑맞는 등으로 인해 종합 순위 13위(금 3, 은 3, 동 2)로 주춤했지만 2018년 평창 대회에서는 다시 한 번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하계 올림픽에서도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13개의 금메달(은 8, 동 7)이 쏟아지면서 종합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원정 대회 최고의 순위였다. 축구가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등의 활약에 힘입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동메달을 따 국민들에게 금메달 이상의 기쁨을 안겼다. 이에 앞서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이승엽, 류현진, 이대호 등이 힘을 모은 야구가 9전 전승 금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한국 스포츠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아마추어의 경우 국제 대회 성적이 특정 종목에 치우치지 않고 있으며, 프로에서는 이전 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선수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뛰고 있다. 특히 여자 골프는 1998년 미국 여자 프로 골프 투어 4관왕에 오른 데 이어 2015년 현재 통산 25승에 빛나는 박세리의 뒤를 잇는 ‘박세리 키즈들’이 세계의 그린을 휘어잡고 있다. 또 하나 달라진 사실은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1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신세대 선수들은 동메달을 따도 금메달을 딴 듯 기뻐한다.
한국 스포츠는 올해 프로 야구가 800만 관중을 겨냥하고 있고 다양한 종목의 생활 체육이 활성화돼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보는 스포츠와 즐기는 스포츠가 엘리트 스포츠와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해방 후 70년, 속도를 우선시하며 나타난 압축 성장의 폐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 신명철(申明徹) 스포츠 평론가
편집국장과 편집위원, 편집위원을 거쳐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1993년 버팔로(뉴욕주) 유니버시아드대회, 1995년 프로 야구 한일슈퍼게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등 주요 국제 대회를 취재했다.
’액티브(Active) 5060’. 사회 활동과 소비 활동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행동하는 5060세대를 이르는 말로 이제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5060세대와 그 이상을 겨냥해 서비스와 상품을 쏟아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시니어 산업. 그 중심에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있다. 이들은 자산과 소득이 높고, 능동적으로 소비를 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활동적이면서 건강한 소비그룹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들을 겨냥 하는 것에 군침을 흘릴 만하다.
2006년과 2011년 통계청에서 실시한 가계자산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의 순자산이 2006년 평균 2억6381만원에서 2011년 3억1116만원으로 18%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결과는 베이비부머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시니어 산업의 전망
시니어를 타깃으로 한 산업의 전망도 밝다.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OECD국가 중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이 83.8세로 6위(2009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시니어 산업의 수요자가 많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도 시니어 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한양사이버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김신영 교수가 발표한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은퇴가 시작된 2010년부터 시니어산업이 성장하는 시기로 봤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과 소득이 은퇴 이후 활발한 소비로 이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개막도 희소식이다. 선진국의 경우, 시니어 산업의 본격적인 성장기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니어산업의 규모도 점점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보건복지부와 보건산업진흥원이 2011년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 실버세대보다 높은 경제력을 지닌 베이비부머가 65세에 진입하면 국내 시니어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향후 10년간 연평균 14.2%씩 시니어산업이 성장할 것이며, 2020년에는 2010년(약 33조원)의 3.8배인 약 125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치로 본 시니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국내 기업들의 시니어 층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나둘씩 이 산업에 발을 들이미는 이유다.
◇ 시니어 산업의 깃발을 선점하려는 기업들
국내 최대 인구집단. ‘베이비부머’는 동시에 가장 큰 소비력을 가진 집단으로 통한다. 잠재적인 거대시장의 기회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여러 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유한킴벌리다. 유한킴벌리는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열었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최우선으로 시니어세대의 눈높이에 맞춘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시니어들의 불편사항을 철저히 분석해 이를 상품에 반영·생산한다.
GS샵의 시니어 전문 인터넷 쇼핑몰 ‘오아후’도 지난 해 4월 문을 열었다. ‘오아후’는 TV홈쇼핑처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전화로 상품의 상담, 주문 및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GS샵은 ‘오아후’에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경제력을 지닌 50대 젊은 시니어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내의 전문 기업 쌍방울도 시니어 시장에 발을 들였다. 쌍방울의 시니어 기능성 속옷 브랜드 ‘올쏘(ALSSO)’는 18일 대구 대백프라자를 시작으로 30여개 품목이 전시, 판매될 예정이다.
기능성 속옷 올쏘는 요실금이 있는 시니어를 위해 강력한 흡수성과 빠른 건조 능력을 갖췄다. 세련된 디자인과 우수한 기능으로 옷맵시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공략할 계획이다.
쌍방울은 최근 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이 향후 시니어 기능 제품의 수요로 이어 질 것으로 판단했다. 시니어 속옷에 힘을 쏟아 올해 전체 매출 증대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국내 시니어 산업의 한계, 주목할 만한 해외 사례는?
수많은 국내 기업들이 시니어 산업의 선봉장이 되기 위한 깃발 탈환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한계도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시니어를 겨냥한 산업이 건강 보조 용·식품, 생활 보조 용품 등 시니어 용품에만 국한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시니어 비즈니스 성공 사례를 참고할 만 하다. 일본과 미국의 성공사례는 국내 시니어 비즈니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 가스’는 독거노인의 가스 사용량, 사용 시간 등을 IT기술로 체크해 자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해준다. 나눔 지원 비즈니스도 있다. 일종의 재능 기부 형태다. ‘경영지원 NPO클럽’에서는 평균연령 70.5세의 은퇴한 대기업 간부 160명을 구성해 중소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 하고 있다. 시니어 세대의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은퇴 후 지역사회와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수개월을 예약·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헌츠먼 월드 시니어 게임즈’(Huntsman Wolrd Senior Games)는 단순한 휴식이 아닌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목적 분명 여가 상품을 개발했다. 테니스, 골프 등을 올림픽처럼 운영하는 스포츠클럽을 만들어 약 4천만 달러의 경제 효과를 창출했다.
이러한 해외 성공 사례는 국내 시니어 산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니어 산업을 창조하는 데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시니어 산업, 시니어 커뮤니티와의 연계 필수
시니어 산업의 전망이 밝다고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사업적으로 뚜렷하게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월 LG 경제연구소 고은지 연구위원은 자료를 통해 시니어 산업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 고령소비자에 대한 기업의 이해 부족이다. 고 위원은 다수의 기업이 고령화를 통한 사업 기회를 당장의 화제가 아닌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시니어 시장의 수요나 구매력에 대한 분석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시니어 소비자의 양면성이다. 시니어 중 어떤 사람도 ‘올드(Old)’라고 표기된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육체적인 노화로 발생하는 독특한 수요를 만족시켜주는 제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셋째, 잘못된 의사소통이다. 고 위원은 시니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 방법이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때의 소통방법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위원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 커뮤니티와 연구기관, 관련 협회단체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시니어 시장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있고, 더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커뮤니티 활동이 많은 시니어 소비자들을 겨냥해 기업들은 지역사회와 연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소비자 저변을 넓히는 활동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니어 산업의 리딩 컴퍼니(Leading Company)] 시니어가 곧 미래다 - 유한킴벌리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지만.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닻을 올린 기업이 있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 킴벌리이다.
유한 킴벌리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문제’가 아닌 ‘기회’로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물은 지난 2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전문 브랜드인 ‘골든프렌즈’를 통해 실현됐다. 골든프렌즈가 기존의 시니어 브랜드와 차별화 된 것은 시니어를 능동적인(Active) 주체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영한 것이 골든 프렌즈의 대표상품 ‘디펜드 스타일 요실금 팬티’다. 요실금 팬티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들의 불편사항을 받아들여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고, 활동성이 뛰어난 요실금 팬티를 고안했다.
오프라인 매장도 2012년 10월부터 2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종로와 안산에 있는 실버영화관 내부의 골든프렌즈 매장에서는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기능성 신발, 가스차단기, 요실금 팬티 등 시니어들의 활동적인 생활을 도와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유한킴벌리는 고령화 문제 해결과 시니어사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니어 기금’을 조성하고, 소기업 육성을 통해 시니어 일자리와 시니어 비즈니스를 창조한다는 계획이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는 인터뷰에서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시니어가 된다. 결국 시니어 비즈니스 산업 육성은 우리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