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휘슬이다. 그래서 노후 준비는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가재산 2060클럽 회장은 노후를 위한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있다. 자신의 말을 실천하는 것처럼, 그가 이끄는 2060클럽은 트레킹 모임이다. 1년여 만에 350명이라는 회원을 모으면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2060클럽의 의미와 트레킹의 끝없는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들어본다.
성공적인 노후를 누리는 많은 시니어들은 흔히 나이가 들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사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HR전문가 기업 피플스그룹의 대표이며 2060클럽의 회장이기도 한 가재산 회장은 ‘2060’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는 2060은 ‘경제수명(經濟壽命) 2060시대’라며 20세부터 80세까지 60년 동안 일해야 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100세 시대 고령화 국가가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노테크(老TECH)’는 오랫동안 일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2060은 경제수명을 60년 가져가기 위해서 ‘20대부터 60년 일할 준비를 시작하고, 60대도 20년 더 늘려 80까지 일하자’는 의미입니다.”
노후 준비는 바로 지금
가 회장은 노후 준비는 퇴직 직전에 하는 게 절대 아니라고 강조한다. 노후 준비의 골든타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나이와 관계없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는 그가 참고 사례로 주목하고 있는 나라는 장수국가로 유명한 일본이다. 일본은 65세 이상 노인들이 이미 국민의 23%를 넘었고, 100세 이상의 고령자가 6만 명을 넘는 세계 최고령국가다. 그래서 일본에는 100세 이상 일하는 현역들도 많다.
“시바타 도요 할머니가 100세에 낸 라는 시집은 1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의 저자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박사는 올해 105세(1911생)지만 현역 병원장입니다. 그는 100세가 되던 해에 강의를 하러 우리나라 대학교를 다녀갔는데, ‘어떤 일이든생각하기 나름이며 늙는다는 것은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늙음과 젊음은 마음에 있다’는 의미인 겁니다.”
트레킹 모임 2060클럽이 추구하는 3무(無)
그가 회장으로서 운영하고 있는 이색 모임 ‘2060클럽’에도 그대로 붙여져 있다. 2060클럽은 80까지 건강하게 일하며 100세 시대를 살아가자는 트레킹 모임이다.
“3년 전 우연히 네 명이서 여행사 광고를 보고 전남 여수에 있는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을 가게 되었지요. 동백꽃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섬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절벽과 비경이 펼쳐지는 바닷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트레킹이라는 걸 하면서 시쳇말로 ‘뿅’가버렸습니다. 이후 트레킹에 매료되어 서울 둘레길 157km를 완주하고 태안 국립공원 등을 다니면서 무척 좋아 그 멤버들이 나이가 들더라도 승합차 한 대 정도의 인원으로 계속 다녀보자는 제안을 한 것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우연히 그리고 취미로 시작한 2060클럽은 올해 5월을 기점으로 회원 수 350명을 넘어서며 성공적으로 순항 중이다. 2060클럽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누구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하게 되어 있습니다. 2060클럽은 남을 위해서라기보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기 건강을 위해서 걷는 매력이 가장 크다고 봅니다. 오는 사람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런 분들과 걸으며 대화하는 사이에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배우면서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하다 주말에 트레킹을 통해 충전도 하니 주말을 기다리게 되지요.”
모임의 자유분방한 성격을 드러내듯, 2060클럽은 회비도 나이도 직업도 따지지 않는 3무(無)를 추구한다. 부담을 갖지 않고 즐기길 바라는 의도에서다. 누구나 가입이 가능하다.
“단지 조건이라면 2060에서는 세 가지를 위해 노력하자고 합니다. 첫째는 일, 건강, 그리고 사랑 즉 3유(有)입니다. 여기서 당장은 일이 없더라도 좋지만 80까지 일하겠다는 생각을 갖는의지와 열정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하기 위해 건강해야합니다. 문제는 자신과 주위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걸으며 새로운 에너지 얻어
가 회장은 자신이 젊었을 때는 20여 년간 계단 오르기, 테니스, 등산 등 무릎에 안 좋은 운동만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보니 40대 후반부터는 운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관절이 망가져 수술을 계획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트레킹을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멀쩡해졌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 집안에는 당뇨가 유전적으로 있어서 저한테도 경고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트레킹을 시작하고 지난 연말에 체크해보니 당뇨 수치가 90대로 떨어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강을 얻은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자연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과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게 제일 즐거운 일이지요.”
2060클럽이 주로 걷는 길은 전국에 대략 1600여 개가 형성되어 있는 트레킹 코스다. 또한 트레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각 지자체에서도 훌륭한 코스들을 개발해 놓고 있다.
“2060클럽에서는 매주 트레킹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서울 둘레길이나 북한산 같은 근교에서 걷고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사들이 전국에 개척한 코스를 버스를 타고 다녀옵니다. 특히 분기에 한 번은 1박 2일 코스로 멀리까지 다녀오는데 그 활동이 회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기쁨
최근 은퇴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만들어지는 모종의 공백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지금껏 일만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막상 은퇴를 하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하면서 우울해 하거나 부질없는 곳에 돈을 쓰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대안의 솔루션으로서 최근 다양한 시니어 모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제대로 운영을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가 회장에게 클럽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서 무엇이 중요했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열심히 일하며 트레킹으로 건강을 지키자’며 차별화를 추구했다고 밝혔다. 2060클럽이 일하는 시니어에게 필요한 건강 조건으로서의 트레킹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구성원의 성격도 정의해주고 있다. 일하는 일상을 지탱하기 위한 모임이라면, 구성원들 또한 의욕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 회장은 앞으로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외의 멋진 트레킹코스를 가보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작은 커뮤니티들이 많아진다면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고령화로 인해 국가 전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세수도 줄고 노인 환자들은 늘어나 건강보험까지도 부족해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신광철 시인
“2060클럽은 ‘주고 또 주는(Give And Give)’ 관계”
걷는다는 것은 인생의 은유 같기도 하고, 직유 같기도 하다. 사람 안에는 길이 하나 들어 있어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듯 사람은 걷는 일로 인생길을 만들어 낸다. 마음에서 뽑아낸 길이 인생길이 된다.
2060클럽 가입을 권유받고 망설였다. 할 일은 없지만 늘 머릿속에는 글이 왔다 갔다 해서 하루 일상이 생각으로 일출이 오고, 생각으로 일몰이 오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함께 걷는다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평생을 여행, 취재, 일로 돌아다니며 살아 걷기 모임이란 말에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깔끔하고 안정된 사고의 소유자인 가재산 회장의 권유이기도 하고, 직접 만든 모임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걷는 것은 평생의 내 일이기도 했다. 인생의 절반을 길에다 깔고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더구나 혼자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었다. 산길을 택해 걸으면 하루 종일 걸어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명산에는 사람이 넘쳐도 이름 없는 야산을 걸으면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한적하고 조용하다.
나는 산과 들을 걷고, 쉬고, 숲이나 간이역이나 나무 그늘 아래 누워 자기를 많이 했다. 풀 위에 누워 자면 세상은 내 것 같았다. 더구나 비가 오는 날에 숲이나 들판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세상은 울림을 주었다. 비는 결이 있었다. 눈도 결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바람도 결이 있었다. 자연은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비나 눈이 올 때 물이 흐르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비와 눈의 흐름이 보였다. 가슴 벅차게 하는 광경이었다. 새들의 군무 같고, 보리밭의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의 군무 같은 걸 느꼈다. 감동이 온다. 더구나 태풍이 오는 날 숲으로 들어가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며 부러지고 폭우와 바람이 거칠게 지나가는 현장에서 흠뻑 젖어서 하늘을 보고 누워보라. 젖고 나서는 더 젖지 않는다. 두려움과 공포가 사라졌다.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지만 2060클럽은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세상을 선물했다. 아름다움과 상쾌한 궤적을 만들어내는 곳을 찾아내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구릉을 오르내리고, 산허리와 강을 휘어 돌며 대화를 나누는 기쁨은 또 다른 세계였다. 혼자 걸을 때의 쓸쓸함과는 다른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몰라보게 달라진 것은 사람이 좋아서 걷는 날이 기다려진다는 점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만큼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나는 감히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리움이란 별이 떠야 하는 거라고. 그리움이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가 존재할까 싶다.
걷기를 하면서 등산이나 혼자 걷는 것과는 다른 인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선하면 선한 사람이 찾아오고, 거칠면 거친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2060클럽의 매력은 가재산 회장의 성격처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주고 또 주는(Give And Give)’ 관계의 설정에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걷고,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으로 족한 모임이어서 부담 없는 모임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끌린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면서 꽃을 피우지만 소리치지 않고 지나가듯이 2060클럽이 그렇다. 무엇보다 같이 걷는 분들의 건강이 좋아졌다는 한결같은 말에 덩달아 즐겁고 나 또한 걷는 것의 즐거움과 더불어 얻은 건강이 고맙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1966년 12월 초 어느 날이었다. 교양학부 도서관의 세미나 룸에서 송년다과회가 열렸다. 대학에 입학한 뒤, 매월 책 한 권을 정해 읽고 토론회를 열어온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함께 마지막 모임을 갖는 자리였다.
그 모임을 지도해온 철학과 S 교수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S 교수가 말을 마치더니, 학생들에게 새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포부를 말해보라고 했다. 여러 명이 마치 입이라도 맞춘 듯이, 2학년에 올라가면 전공 공부를 하면서 교양도서도 열심히 읽겠다고 말했다. 기대한 반응이었는지, S 교수는 줄곧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J 차례가 되었다.
“저는 1년 계획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새해 첫날 계획은 있어요.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 둔 남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많은 학생이 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시절에 여학생이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파격이었다. J는 언행을 절제하는 모범생이지만, 어쩌다 가끔은 그렇게 당돌함을 보이기도 했다.
차례가 오자 나는 J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를 빤히 응시하며 내가 말했다.
“저는 1년 계획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새해 첫날 계획은 있어요. 1월 1일 0시가 되면 5분간 저와 제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릴 거구요, 0시 5분에 마음에 담아 둔 여학생에게 편지를 쓸 거예요.”
나는 ‘남학생’을 ‘여학생’으로 바꾼 것 말고는 J의 말에 한 자도 보태지도, 덜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웃었다. J도, S 교수도 웃었다.
내가 J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학기 초 독서토론회 이후였다. 지정도서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이었다.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들은 입을 모아 두 연인의 순수성을 예찬했다. 순수한 사랑이야말로 그 희곡의 주제이자, 대학 새내기들의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몇 학생이 두 연인의 무모함이나 맹목성을 지적했다. 어떤 학생은 우연한 사건이 중첩되고 있다며 작품의 플롯을 비판했다. 그러나 누구도 분위기를 뒤엎지는 못했다. 입을 다물고 있던 나를 보며 S 교수가 말했다.
“김 군. 작품을 읽었을 텐데, 독후감을 말해보게.”
기다리던 바였다. 1학기 말의 토론회에서 S 교수로부터 칭찬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교수가 나에게 반드시 발언할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저는 이 희곡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녀 주인공의 사랑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행위도 사회적 상황을 덮어두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대해 평가를 달리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역사에서 보면, 스토리가 전개되는 16세기 후반에 세상을 바꾸는 혁명이 시작됩니다. 무역을 바탕으로 한 새 세력이 대두하고, 토지를 바탕으로 한 구세력은 뒤로 밀립니다. 사회적 기반을 뿌리째 뒤흔든 엄청난 혁명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세력 지배층인 귀족 자녀들이 사랑에 탐닉해 있다가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에게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사회변화의 변곡점에서 볼 수 있는 말기적 현상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역사성이나 사회성이 배제된 그런 사랑을 지고지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았다. 나는 목적을 달성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제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 제 곁에 줄리엣 같은 여인이 있었다면, 물론 저 역시 앞뒤 살피지 않고 사랑에 빠졌을 겁니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그럴만한 기회가 오면 당연히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학생들이 와, 하고 웃었다. 누구보다도 S 교수의 웃음소리가 컸다. 토론회가 끝나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J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가지고 놀아도 되나요?”
“가지고 놀다니?”
“학생들 뒤통수를 쳐놓고, 마무리로 앞이마까지 쳤잖아요?”
J는 고개를 돌려 상긋 웃고는 버스에 올랐다. 바로 그 미소가 화살이었다. 그러니까 그 찰나에 J는 말 위에서 등을 돌리고 화살을 쏜 고구려 궁사였다.
1967년 1월 1일 자정이 되자 나는 5분 동안 나와 가족의 건강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 종교가 없는 내가 손을 모아 기도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철필에 검은 잉크를 찍었다. 편지를 다 쓴 뒤에 날짜를 쓸 수도 있겠지만, 그땐 0시 5분이 훨씬 지난 뒤일 것이었다. 나는 편지지 맨 위에 ‘1968년 1월 1일 0시 5분’이라고 적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쏟아 편지를 써 내려갔다. J에게 보낼 편지였다. 마을 앞에도 우체통이 있지만, 나는 이튿날 이른 아침에 십리를 걸어 우체국으로 가서 편지를 부쳤다.
드디어 1월 4일이 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바람도 없는데 울안에 서 있는 동백나무에서 붉은 동백꽃 한 송이가 뚝 떨어졌다. 이건 길조일까, 흉조일까? 나는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나 집배원이 우편물을 가져왔다. 가슴이 콩닥거렸다. J가 보낸 편지가 있었다. 봉투를 뜯었다. 그 편지지 맨 위에도 ‘1967년 1월 1일 0시 5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J의 편지를 손에 쥐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그야말로 천하가 내 손 안에 있었다.
편지 내용에, 보고 싶다든가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 하는 구절은 없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상대를 마음에 담고 있음을 서로 확인한 셈이었다.
우리는 그 후 2월 20일까지 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받고 그 답을 쓰는 식이 아니었다. 답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편지를 썼다. 나도 그도 몇 번인가는 하루에 두 통을 써서 부치기도 했다. 평생 쓸 편지의 반쯤을 50여 일 동안에 쓴 셈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안개처럼 말없이 다가와 나를 휘감는 그리움일까? 그리움이 사랑이라면 나의 J에 대한 사랑은 안개보다 짙었다. 사랑이란 내 곁에 그가 없어도 그를 내 마음에 담는 것일까? 담는 것이 사랑이라면 내 마음에서 사랑은 흘러넘쳤다.
그래서 나는 편지에다 사랑한다는 말을 쓸까 몇 번이고 망설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 그 말은 직접 만나서 할 거야. 그것도 여러 번 만난 뒤에 해야 해. 나는 그런 절제가 사랑의 품격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2월 20일에 상경할 예정이라며 21일에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다. J는 하루 뒤에 보자고 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숫자를 맞추어 2월 22일 오후 두시에 둘이 만나자는 것이었다. 장소도 J가 정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근사한 곳을 찾으려고 여러 군데를 돌아봤다고 했다. 그가 결론을 내린 곳이 바로 신설동 로터리의 어느 다방이었다.
둘이 만나 나눌 이야깃거리는 거의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J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삶의 지표 셋을 밝혔다.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게 그것이었다.
J는 처음에는 가난이야말로 극복의 대상일 뿐이라고 했다. J가 강조한 것은 전문성이었다. 언젠가 나라가 전문인을 요구할 것이고, 그 준비를 하는 것이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서른 통쯤 주고받은 무렵부터, J도 가난의 의미를 재음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기 강조하는 것이 서로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공감했다. 둘이 만나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터였다.
21일 상경한 나는 절친인 P의 집으로 갔다. P는 나에게 깜짝 놀랄 사실을 털어놓았다. 겨울방학 동안에 다른 사람이 아닌 J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편지도 보내고, 집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골목길에서 기다리다가 만나보기도 했지만, J가 끄덕도 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P가 말했다.
“나는 부모 없이 자랐어. 피난길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다 잃었어. 내 꿈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내 꿈이야. 난 여자를 찾았어. J야. 내가 걔하고 결혼한다면 내 인생은 성공이야. 그렇지 못하면 난 살 이유가 없어.”
사랑에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었다. P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결연했다.
그날 저녁 나는 P의 집을 나와 제기천 천변의 어느 판잣집 주막에 들어가 혼자서 막걸리를 마셨다. 주막을 나온 나는 무심결에 J의 집을 찾아 나섰다. 주소는 기억에 생생했다. 골목 입구에 들어섰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일본식 2층 저택이 골목 양 쪽에 죽 늘어서 있었다. J의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부티가 났다.
문득 희곡 이 생각났다. J는 줄리엣이지만, 안타깝게도 로미오와 나의 처지는 하늘과 땅이었다. 오래전부터 심하게 해소를 앓는 아버지와 그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더욱 불행한 것은, 독서토론회에서 내가 한 말,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그럴만한 기회가 오면 당연히 바보가 되어야 한다고 한 내 말이 J의 집 앞에서는 떠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친구도 친구려니와, 이런 부잣집 딸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나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는 2월 22일 오후 두 시에 J와 만나기로 한 다방에 가지 않았다.
가난하게 산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것이 젊은 시절의 내 삶의 지표였다. 그러나 나는 그 삶의 지표를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다. 나는 내 뜻과는 무관하게 아직 가난하게 살고는 있지만, 내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고, 내 주변에는 부유한 사람이 많다. 반대로 서울의 부잣집에서 나고 자란 J는 빈민운동을 하는 가난한 목사와 결혼해 평생을 가난한 사람 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난하게 살고 있다. 이미 손자를 거느린 할머니가 되어 있을 J가 그리울 때가 있다.
매화꽃은 가장 먼저 봄을 알려온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회색빛 도시, 겨울옷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오아시스처럼 섬진강변에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긴 겨울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매화꽃을 찾아 장거리 여행 채비를 서두른다. 타 지역은 아직도 썰렁한 산하지만 섬진강 주변으로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청매실 농원엔 눈이 내린 듯 흐드러지게 매화꽃이 만발하고
일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나겠지만 3월 중순쯤 섬진강가의 온 마을에는 매화꽃이 만발한다. 길거리에도, 집 뒤뜰에도, 그리고 강변 옆으로도 꽃 천지다. 허허로운 산야에 핀 흰 꽃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야 제멋이 난다. 꽃잎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만 꽃이 작고 나무줄기가 있어서 한 그루만 모여 있으면 제빛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화마을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삼벅재 골짜기로도 부르는 이 마을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눈꽃처럼 휘날리고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꽃이 만개하면 으레 매화 축제가 열린다. 매화꽃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청매실 농원이 가장 유명하다. 수십년 묵은 매화나무 아래, 청보리가 바람을 타는 농원 중턱에 서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 너머 하동 쪽 마을이 동양화처럼 내려다보인다. 매화꽃 군락을 감상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지만 해마다 몰려드는 인파 탓에 교통체증과 사람들에게 치인다. 초보 여행객들이 아니라면 이 북적거림을 피해 섬진강 하류를 기점으로 강변 드라이브 길로 나설 것이다. 그곳 또한 아름다운 여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진월에서 신아리, 신구리, 월길리 등 낯선 이름의 마을을 지나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이 도로 옆을 화사하게 장식해 인적 드문 산간지역에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어냈다.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은 소를 이용한 밭갈이에 여념 없고 산등성이에도 무심하게 하얗게 봄꽃을 피워내고 있다. 잠시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어놓은 차창 밖으로 진하면서도 달콤한 매화향이 코끝을 감싸온다.
윤동주 시인의 애련한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엔 벚굴이 한창
이어 발길을 멈추는 곳은 섬진강 물줄기가 바닷물과 조우하는 망덕포구다. 배알도라는 자그마한 섬 앞으로 띄엄띄엄 배들이 정박해 있고 횟집이 길게 이어진다. 섬진강 끝자락에 남은 포구라는 것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곳엔 윤동주(1917~1945)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포구는 매력적이다. 그저 시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싸하다. 측은지심에 가슴이 저려 온다. 일제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에 견주어 노래한 민족시인. 일제강점기에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진 시인의 인생을 어찌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리디시린 삶의 자그마한 흔적이 이 망덕포구에 있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낡은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 1925년 건립)과 시비가 있다. 횟집 즐비한 포구 앞에, 인기척 없는 가옥 한 채가 썰렁하게 있다. 굳게 닫힌 유리창 너머로 윤동주 시인과 친구의 학창 시절 얼굴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반긴다. 마루 한쪽이 열려 있고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이라는 안내 글자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원고가 숨겨져 있었을까? 시인이 일본유학을 떠나기 전, 3부의 원고를 만들었다. 1부는 자신이, 1부씩은 은사 이양하 교수와 절친한 친구이자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광양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긴다. 어머니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집 마룻바닥 밑에 원고를 숨기고 보관해왔다. 무사히 돌아온 정병욱은 1948년 유고시집 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주옥 같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이렇게 알려지게 된 데 큰 기여를 한 집인 게다.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정병욱 작은 기념관, 도서관,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소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또 윤동주 백일장, 문학상을 추진하는 등 윤동주 시인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이다.
또 이 봄, 망덕포구를 찾아볼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벚굴이다. 1~4월이 제철인 벚굴은 이곳이 아니고서는 먹을 수가 없다. 벚굴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짜지 않고 굴의 비릿한 맛이 적다. 거기에 일반 굴에 비해 보통 10배 정도나 크다.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동백꽃 흐드러지게 핀 옥룡사지에서 즐기는 봄날의 오수
광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백계산(505m) 자락의 옥룡사지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도로 옆, 길목(해발 403m)에는 대규모(약 2100평) 동백군락지(도지정 기념물 12호)가 있다. 온 산을 동백나무가 에둘러 감싸고 있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이 흐른다.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꾸몄으며,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동백군락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그곳에 피어난 동백꽃은 따사로운 봄날과 잘도 어울린다. 동백숲길에 폭 빠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금 오르면 옥룡사지(사적 제407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 옥룡사에서 30여년 동안 홀로 앉아 말을 잊고[宴坐忘言] 지내다 입적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된 후 긴 세월 절터만 남아 있다. 대신 우측 언덕을 넘으면 도선국사비와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초에 비석이 유실되었으나 2003년 본래 자리에 복원되었다. 또 이곳에서 산 길로 거슬러 오르면 동양 최대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서 있는 운암사를 만나게 된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이야기
도선국사(827~898) 하면 고로쇠 수액의 전설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참선하다 몸을 일으키려던 도선국사. 무릎이 금세 펴질 리 만무하다. 도선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는데 나무가 부러졌고, 부러진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나왔다. 그 물을 마신 도선의 다리가 펴져 ‘뼈에 이로운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로 불렀는데, 나중에 고로쇠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마다 경칩이면 백운산에서 고로쇠 약수제(3월 5일)와 축제를 연다. 어쨌든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나무, 녹차나무가 남아 옛터를 지키고 있다. 또 옥룡사지 가는 길목에서 중흥사(061-763-6655)를 찾아도 좋다. 중흥산성 3층석탑(보물 112호)과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도 유형문화재 142호)이 있다. 근처 도선국사마을(061-762-6716, dosun.go2vil.org)도 재미가 있다. 다도, 도자기, 염색, 전통 손두부 만들기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농촌테마마을. 특히 물 맛이 좋아 원님 전용 식수로 애용되었다는 사또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를 이용해 만든 손두부를 농가에서 판다.
Travel Tip!
가는 길 서울 출발 → 호남고속도로 → 익산JC → 완주JC에서 순천 광양 방향 간 고속도로 이용 → 광양IC → 광양읍에서 매천 유적지를 보고 10여분 가면 옥룡면 소재지다. 옥룡면에서 광양읍내로 다시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IC로 나오면 망덕포구를 만나기 쉽다. 그리고 하동 쪽으로 가면 섬진강변을 만나고 근처에 청매실 농원이 있다. 청매실 농원부터 여행을 하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구례를 거쳐 들어오는 것이 편하다.
숙박정보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 www.gwangyang.go.kr)은 울창하고 소나무 숲이 가히 장관이다. 특히 휴양림의 황톳길은 흙에 들어 있는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 읍내 덕계리(순천, 보성 가는 방면)는 모텔촌이다.
주변 연계 여행지 광양 시내에는 매천생가와 유적공원, 장도박물관(061-762-4853, www.jangdo.org)이 있다. 어치계곡, 동곡계곡, 금천계곡, 성불계곡 등은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별미집 광양읍내엔 불고기 특화거리가 있다. 매실한우(061-762-9178), 3대광양불고기(061-762-9250), 조선옥숯불갈비(061-792-8559), 금목서(061-761-3300) 등을 꼽는다. 봉강면의 지곡산장(061-761-3335, 닭숯불구이)이 아주 괜찮다.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철에는 미리 예약하면 음용이 가능하다. 그 외 이 계절에는 광양의 계곡 주변 민가 식당에서 고로쇠와 함께 닭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미국에 있을 때 청년층이 모이는 한 단체로부터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았다. 그 모임에는 나 말고도 여러 분야의 강사들이 있었지만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준비해야 했다. 주어진 날이 다가올수록 리더십을 어떻게 사진에 담아낼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초조해졌다. 그러다 청중의 나이 삼십대 젊은 나이에,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죽은 한 시골 청년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더한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리더로서 예수를 얘기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사진으로 어떻게 그의 젊은 리더십을 담아낼 수 있을까?
먼저 예수의 서른셋이라는 꽃다운 나이 때문인지 동백꽃이 얼핏 지나간다. 동백은 한창 화려하게 피어나는 순간, 절정에서 꽃이 상하지 않은 채 아름다운 모양 그대로 떨어진다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 최고의 시기에 남을 위해 죽은 리더십.
그렇게 동백을 찍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내가 동백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언제 피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겉멋과 제멋에 겨운 무식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동백은 한국에만 있지 미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내가 살고 있는 어바인 근처에 동백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의외로 멀지 않은 곳에 동백 정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카메라를 챙겨 동백 정원으로 유명한 데스칸소가든이라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정원에 도착해 한 나무 아래 서서 직원에게 동백꽃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가 “당신이 지금 동백나무 아래 있습니다. 그 나무가 바로 동백이에요”라며 웃었다. ‘낫 놓고 기역자’를 물어본 격이었다. ‘아, 이게 동백이구나!’
가까운 쪽에는 하얀 동백꽃이, 멀리 분홍 동백이 있었다. 저마다 키도 다르고, 꽃잎도 은은한 색부터 짙은 색까지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누구나 보고 있던 동백꽃이 이제야 무지한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무 木에 봄 春을 합친 동백 椿을 제목으로 붙인 소설 의 오페라 버전 와, 동백을 좋아해 언제나 동백을 가슴에 꽂고 다녔다는 , 또 이미자의 한 맺힌 노래 ‘동백 아가씨’, 조용필의 ‘꽃 피는 동백섬’, 매년 동백을 보기 위해 선운사에 간다는 서정주, 그가 피기 전 동백을 미리 보고 가는 길에 만난 윤대녕의 얘기... 이렇게 다양한 동백을 접했음에도 동백을 제대로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진이 아니었다면 동백을 보기 위해 일부러 거기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갔다 하더라도 맨눈으로 건성 스쳐 지나쳤을 것이다.
그때까지 동백은 관심을 갖고 본 적이 없으니, 그 아름다움을 잘 담아낼 리 없었다. 수많은 시도 끝에 동백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내가 원했던 동백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무지한 사진가인 나는 이렇게 사진기를 통해 사물과의 만남을 계기로 하나하나 배우고 바뀐다.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타고난 천재 사진가들도 있지만, 나처럼 사진을 찍다 눈이 열리고 귀가 커지면서 내가 바뀐 결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내가 사진을 하면서 그렇게 수지맞은 일이 어디 이 경우뿐이었겠는가? 악기를 잘 다루기 위해 지난한 연습과 반복을 통해 좋은 연주가 가능해지고 이와 함께 논리적 사고와 감성이 풍성해지듯, 사진도 이렇게 나의 인성이 개발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게 다양한 동백의 품종과 섬세함을 넘어, 지난해에 진 동백꽃과 올해의 낙엽 위에 내려앉은 아직 싱싱한 동백꽃이 내 카메라 뷰 파인더에 잡혔다. 주검 위에 겹쳐진 새로운 죽음의 이미지 속에서 나는 진정한 리더와 희생의 의미를 연결시켜 보았다. 사람들과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맞은 젊은 리더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인간이 갖고 있는 상상력과 연상력을 발휘한다면 이것이 아이콘으로 발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꿈보다 해몽이다.
사진에도 길이 있다. 모든 예술처럼 사진에도 사랑에 이르고 진리에 이르는 놀라운 길이 있다. 이렇게 동백꽃도 모르던 내 눈이 열리고 바뀌듯이 누구나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치는 동백과 비슷한 꽃과 나무에서 이번에 새로 만난 아름다움이 겹쳐 보여 나는 자꾸 차의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우리 나라의 산과 들에는 300여종의 특산식물을 포함해 5000여종의 식물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풀이든 나무든 거의 모두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니, 일 년 365일 매일같이 평균 10종 이상의 색다른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휴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과 들, 계곡에 들어 무위자연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고개 숙여 매일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야생화를 마주할 때 위험하면서도 황홀한 색다른 세계로 빠져 들게 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 입고 병 든 마음과 영혼이 위안 받고 치유되는, 특별한 힐링(healing)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풀밭에 엎드려서 담은 한 장의 꽃 사진은 두고두고 ‘나만의 멋진 화첩’으로 남을 것입니다. 우리 땅에 자라는 풀과 나무는 이미 유구한 세월 동안 질병을 치유해왔으며, 미래에도 무궁무진한 개발가능성을 가진 약초이자 천연의 먹거리이기도 합니다. 꽃이기도 하고, 약초이기도 하고 먹거리이기도 한 우리의 자생식물과의 만남을 시작합니다.
야생화 포토 기행-①석곡
학명 Dendrobium moniliforme (L.) Sw.
높은 산 깊은 골짜기 깎아지른 절벽에서 모셔온 석곡(石斛)입니다. 모두 77종에 불과한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9종)과 2급(68종) 식물의 하나인데서 알 수 있듯 귀하기 이를 데 없는 야생난초입니다. 손이 닿는 곳에선 단 한 포기도 만날 수 없으니, 그 옛날 안개 속에 길을 잃은 뱃사람들이 그윽한 향기를 쫓아 섬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석곡의 진한 향을 단 한모금도 음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컸지만, 오히려 어떻게든 멀리 멀리서 살아남으라는 마음이 더 간절했습니다. 가까이 할 수 없는 석곡이 야속하기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석곡의 처지가 너무도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척박한 바위 절벽이나 고목 등에 달라붙어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착생종 난초라 해서 석란(石蘭)이라
고도 부릅니다. 난초과의 늘푸른 여러해살이 식물로 줄기가 마디마디 구별되는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죽란(竹蘭)이라고도 합니다.
꽃은 2년 된 원줄기 끝에 1-2개씩 달리며 5~6월 사이에 흰색이나 연분홍색 등으로 피는데 향이 매우 진하고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중앙부의 꽃받침 잎은 길이 2cm 안팎, 너비 5mm 정도로 피침형 예두이고 측열편은 옆으로 퍼집니다. 꽃잎은 중앙부의 꽃받침과 길이가 엇비슷합니다. 순판은 약간 짧고, 뒤쪽에 짧은 거(距·꿀주머니)가 있습니다. 줄기는 뿌리줄기로부터 여러 대가 나와 20cm 정도까지 곧게 자라며 줄기 마디마다에 잎이 돌아가며 납니다. 피침형의 잎은 길이 5cm 안팎, 폭 1cm 안팎으로 진한 녹색을 띠며 2~3년이 지나면 떨어지고 줄기는 녹갈색으로 변합니다.
예로부터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가 해열 진통에 효과가 있고 건위강장제로도 유용한 귀한 약재로서 대접을 받아온 데다 최근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은 관상용 난초로도 인기를 끌면서 갈수록 야생 상태의 석곡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차로 마시면 오래 산다고 해서 일본에서는 장생란(長生蘭)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나라 외에는 일본,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합니다.
Where is it?
제주도와 서남 해안 및 섬 지역에 자생한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사찰 선운사를 품은 전북
고창 선운산 정상 부근 암벽이 석곡이 자생하는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을 지나 약 3km 정도 숲길을 오르면 도솔암에 이르는데 거기서부터 머리 위 깎아지른 바위절벽 곳곳을 살피면 된다. 제주도의 용암과 나무, 덩굴식물이 뒤섞인 원시림(곶자왈)에서는 팽나무 등 고목에 착생한 석곡을 만날 수 있다. 경남 남해 금산 곳곳 바위절벽에도 자생한다.
김인철 전문위원/야생화 칼럼니스트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서울신문사에 들어가 환경부 출입기자, 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 행정뉴스부장, 논설위원, 제작국장 등을 지내는 등 기자로 만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http://ickim.blog.seoul.co.kr)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야생화의 생태 및 사진 촬영을 공부하고 있다.
한때 뭇사람들의 금선(琴線)을 울렸던 노래 가락을 좋아한다. 이것이 이름 있는 시인의 작품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좋다.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왜 동백꽃이 이러한 슬픈 줄거리로 노래에 나타나는지 나는 모르고 있지만 동백꽃은 아직 젊은 여성에게 큰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동백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잎 또한 좋아서 일본에서는 많은 품종들이 알려지고 있다. 품종의 분류는 주로 꽃 모양(홑꽃 또는 겹꽃), 꽃의 크기, 꽃 색깔 등을 근거로 하고 있고 수백 가지의 품종이 있다. 이런 변이가 발견되면 그때마다 하나의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데 있다. 앞으로도 많은 동백나무의 품종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눈이 오는 데도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무서울 정도의 열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 끝쪽에 꽃이 붙는 것도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정열의 폭발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붉다 못해 토해 버린 피의 농도를 높였고, 진하다 못해 흰색까지 마셨으니 더 부드럽다 못해 아직은 햇볕을 못 본 젓가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수줍어 눈을 감고 내미는 첫 입맞춤에서 감미로움을 느낀 것은 동백꽃잎이 아니라 오히려 아가씨의 것이었다. 색깔 중에서 색깔을 골랐고 부드러움 중에서 부드러움을 골라낸 동백꽃잎에는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어서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요, 부드러움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사랑의 꽃, 그것은 동백꽃이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로 하는 데에는 동백나무로선 불만이 없지 않다. 추운 겨울이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지만 그들은 혹한기에 꽃을 피워 보기까지는 못했지 않은가. 이 점을 내세운다면 동백꽃 쪽이 훨씬 뛰어나다. 잎으로보다는 꽃잎으로 추위를 견디는 그 기개(氣槪)는 더 높이 찬양돼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동백은 겨울을 상징하는 계절의 꽃이다.
동매(冬梅)와 함께 나란히 서고 싶다. 추위를 이긴다는 점에서는 동백꽃이 상징일지도 모른다. 추위와 어려움을 극복하면 으레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옛사람들은 동백을 청렴과 절조 굳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고 거기에 높은 가치관을 부여했다. 때로는 동백나무를 엄한지우(嚴寒之友)에 넣어 제일화(第一花)로 치켜세운 것도 이유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같이 청순(淸純)과 아취(雅趣)를 바라보는 강렬한 동경에도 불구하고 동백나무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우미(優美)와 선려(鮮麗)라는 반대 방향의 가치도 응시하면서 이 두 가지 면을 모아 한층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미(美)의 의식도 배양돼 왔다.
화사한 봄날에 피는 개나리, 살구나무, 벚나무, 앵두나무, 진달래 등은 그 꽃에서 고요함을 찾기 어려우나 동백나무에선 소리 없는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화려하면서도 고요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동백나무 꽃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고요하지 못한 것은 대체로 전시적인 느낌이 더하다. 적막한 느낌 그것은 동백꽃의 매력이다.
국내 유명 동백꽃 군락지인 고창 선운사에 동백꽃이 피었다.
전주기상대는 고창 선운사 동백꽃이 26일 개화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21일, 최근 10년 평균보다 일주일 이른 것이다.
동백꽃의 개화시기는 기온과 강수량에 따라 달라지는데 올해 3월 중순 기온이 8.3도로 평년보다 2.2도가량 높아 개화시기가 앞당겨졌다.
4월 상순 기온 역시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돼 동백꽃의 절정시기는 다음 달2일로 예상된다.
기상대의 한 관계자는 “선운사 대웅전 뒤편 동백나무 군락지에서 동백꽃 개화가관찰됐다”면서 “봄꽃의 특성상 개화 후 일주일이면 절정에 이르니 봄꽃을 보길 원하는 나들이객은 시기를 맞춰 선운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봄 축제 일정
봄을 맞아 봄 축제 일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4일 각종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봄 축제 일정'과 '나들이 계획'에 대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13일 기상청은 올해 벚꽃이 이달 27일 제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은 4월1~12일, 중부지방은 4월7~11일, 경기북부와 강원북부 및 산간지방은 4월10일 이후에 개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벚꽃은 개화 후 만개까지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
봄 축제 일정 가운데는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추억의 그때 그 놀이'와 같은 기간 전남 구례군의 '구례산수유꽃축제' 등이 있다.
충남 서천군에서는 22일부터 4월 4일까지 '동백꽃 주꾸미축제'가 열리고 대구 달서구는 21일부터 4월 14일까지 '대구 이월드 야간 벚꽃축제'를 준비해놓았다.
서울 교외를 중심으로는 2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비교적 길게 진행되는 경기도 양평군의 '2014 양평 딸기체험 축제'와 3월 22일부터 5월31일까지 경기 가평군이 실시하는 '아침고요수목원 야생화전' 등이 봄 축제로 갈 만한 곳이다.
이밖에 한국관광공사는 봄을 맞아 벚꽃, 산수유, 유채꽃 등 봄꽃 축제 홍보를 위해 '2014 봄꽃지도'를 선보이는 등 봄 축제 일정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봄 축제 일정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봄 축제 일정 맞춰 꼭 가야지", "봄 축제 일정, 봄만 되면 마음이 설렌다", "봄 축제 일정, 연인과 함께하는 축제 즐기자" 등의 반응을 보였다.
주꾸미 제철이다. 마트 해산물 코너와 수산시장에는 단연 주꾸미가 주인공이다.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는 주꾸미는 봄철 밥상의 별미 중 별미다.
‘봄의 전령사’로도 통하는 주꾸미는 3~5월 산란기를 맞아 더욱 쫄깃하고 고소해졌다. 산란기인 만큼 암컷 뱃속에는 알이 가득하다.
제철을 맞은 주꾸미를 한자리에서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서해안 일대에서 열리는 주꾸미 축제다. 충남 보령 무창포항 일대에서는 21일부터 내달 13일까지 주꾸미·도다리 축제가 열린다. 지난달 말부터 주꾸미잡이를 시작한 무창포항에서는 소라 껍데기를 이용한 전통방식으로 씨알이 굵고 상품성이 뛰어난 주꾸미를 잡아 올리고 있다.
특히 축제기간인 29일부터 4월 2일까지 무창포해수욕장과 석대도 사이에서는 S자형 우아한 곡선의 바닷길이 열려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바닷길이 열리면 바지락과 해삼 등 각종 해산물 채취도 가능하다.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대에서는 22일부터 4월 4일까지 서천 동백꽃·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500여 년 전 조선시대 마량리 수군 첨사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심었다고 전해지는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대에서 동백나무 개화 시기에 맞춰 열리는 이 축제에는 주꾸미 요리 시식 행사, 어린이 주꾸미 낚시체험, 전통놀이 체험, 동백꽃·주꾸미 축제 포토존, 보물찾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서해안에서 갓 잡아올린 신선한 주꾸미 활어회, 샤브샤브, 전골, 볶음 등 주꾸미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요리장터가 동백나무숲 주차장 일대에 들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을 예정이다.
봄 주꾸미는 무기력한 봄철 기력 충전식품의 대명사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타우린 함량이 많은 주꾸미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정력을 증강하는 식품으로, 심장 기능을 강화시키고 시력 감퇴를 막아주며, 해독 작용이 있어 술안주로도 안성맞춤이다.
주꾸미는 회로도 먹지만 고추장으로 양념한 주꾸미 볶음과 끓는 물에 데친 샤브샤브도 제격이다. 매운 양념에 버무려 불에 굽는 주꾸미 불고기와 주꾸미·닭갈비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주꾸미 닭갈비볶음, 주꾸미와 삼겹살이 하모니를 이룬 주삼볶음(주꾸미삼겹살볶음), 주꾸미 철판볶음 등 이색 요리도 인기다.
충남 서해안에서 제철을 맞은 싱싱한 주꾸미를 맛볼 수 있는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20일 보령시에 따르면 ‘신비의 바닷길’로 유명한 보령 무창포항에서는 21일부터주꾸미 축제가 펼쳐진다.
무창포항에서는 주꾸미를 그물이 아니라 전통방식인 소라껍데기를 이용해 잡아 씨알이 굵고 상품성이 뛰어나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할 만큼 주꾸미는 봄이 제철이며, 이맘때 잡히는 주꾸미가 살이 부드럽고 알이 꽉 들어차 있다.
주꾸미와 함께 또 다른 봄의 별미인 도다리도 맛볼 수 있는 이번 축제는 내달 13일까지 24일간 이어진다.
축제 첫날인 21일 오후 6시에 개막식과 함께 축하공연이 펼쳐지며, 축제기간에 주꾸미·도다리잡기, 관광객 노래자랑, 맨손고기잡기 체험, 해상가두리낚시 체험 등다양한 체험행사가 마련된다.
29일부터 4월 2일까지는 무창포해수욕장과 석대도 사이에 ‘S’자 모양의 우아한 곡선으로 경이롭게 펼쳐지는 신비의 바닷길을 볼 수 있으며, 바닷길을 걸으며 바지락, 해삼 등을 잡을 수도 있다.
타우린 함량이 최고인 주꾸미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정력을 증강하는 강장식품으로 심장기능 강화와 시력 감퇴 방지, 해독 등에효과가 있어 술안주로 안성맞춤이다.
서천군 서면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대에서도 오는 22일부터 내달 4일까지 ‘서천 동백꽃·주꾸미 축제’가 열린다.
500여년 전 조선시대 마량리 수군 첨사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심었다고 전해지는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대에서 동백나무 개화 시기에 맞춰 열리는 이 축제에는주꾸미 요리 시식행사, 어린이 주꾸미 낚시체험, 전통놀이 체험, 동백꽃·주꾸미 축제 포토존, 보물찾기 이벤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서해안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주꾸미 활어회, 샤부샤부, 전골, 볶음 등 다양한 주꾸미를 즐길 수 있는 요리장터가 동백나무숲 주차장 일대에 들어서 관광객들의발길을 끌어모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