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은 섬 부자다. 우리나라 3300여 개 섬 중 2165개가 전남에 있다. 그중에서도 신안군에 1004개가 모여 있다. 신안군을 천사 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2019년 10월 신안군 기점·소악도에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개가 지어졌다. 아무 볼 것 없던 섬에 천사의 은총이 내린 듯했다.
갯벌을 건너는 섬티아고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는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병풍도를 뺀 나머지 다섯 섬을 한데 묶어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은 노두길로 이어져 있다. 노두길은 섬과 섬 사이를 잇는 길을 말한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난다. 오래전 섬 주민이 갯벌에 돌을 던져넣어 만든 것이다.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를 덮어 포장했다.
썰물이 되면 노두길이 드러나 기점·소악도가 하나로 이어진다. 서너 시간 뒤 밀물이 찾아오면 노두길이 사라져 다시 다섯 섬이 된다. 자연이 매일 하루에 두 번 이 신비한 마술을 부린다.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다만큼 넓은 갯벌이 나타난다. 바닷물에 말갛게 씻긴 갯벌은 곱디곱다. 짱뚱어, 칠게, 달랑게, 다슬기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귀여운 갯벌 생물들을 구경하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드넓은 갯벌과 섬 문화인 노두길을 품은 기점·소악도는 2018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었다. 섬마을 가꾸기 사업의 목적으로 한국, 프랑스, 스페인 건축미술가 열한 명이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개를 지었다. 기점·소악도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 증도면이 한국 기독교 최초의 여성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와 관련된 것에 착안했다. 열두 개의 아름다운 건축미술 작품을 찾아 걷는 길을 ‘순례자의 길’이라 이름 붙였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본떠 ‘섬티아고’라 부르기도 한다.
한 사람을 위한 작은 예배당
열두 개 예배당은 예배당이라 불리지만 특정 종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누구라도 종교와 상관없이 묵상, 기도, 명상, 쉼을 할 수 있는 휴식처다. 예배당마다 고유번호가 있고, 모양이 모두 다르다. 공통점은 예배당 안에 두 명만 들어가도 꽉 찬다는 것. 1인용 예배당인 듯 작다. 예배당을 지은 작가들은 이곳을 찾은 이들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바랐던 것일까.
순례길을 걸을 때는 보통 번호 순서대로 걷는다. 기점·소악도 중 면적이 가장 넓은 대기점도에 1번부터 5번까지의 예배당이 있다. 순례길은 약 12km다. 부지런히 걸으면 4시간 남짓 걸린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걷는 중에 밀물이 되어 노두길이 사라진다면 서너 시간 동안 썰물이 되길 기다리거나 섬에서 하루 묵어야 한다. 순례길을 걷기 전에 배 시간과 물때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섬 여행을 할 때는 이런 불편함을 오히려 즐긴다. 당일치기가 가능해도 섬에서 하룻밤 묵었을 것이다. 마지막 배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떠나면 섬은 고요해진다. 호젓한 이 시간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때다. 갯벌 위로 떨어지는 붉은 해, 밤새 섬을 휘감은 회색빛 해무, 푸른 밤 노두길을 비추던 하얀 보름달, 산책길에 동행해주었던 민박집 강아지 복실이가 삼삼하다. 어쩌면 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울지도.
걸어도 자전거를 타도 좋을 순례길
원래 계획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대기점도 민박집에서 묵었다. 지나고 보니 더 잘된 일이다. 민박집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선 여행 당일 물때와 민박집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순례길을 거꾸로 걷는 게 나았다. 송공항에서 배를 타고 12번 예배당이 있는 소악도에 도착해 순례길을 걸었다. 첫날 여덟 개 예배당을 둘러보고, 이튿날 민박집 근처에 있는 나머지 예배당을 찾아다녔다.
소악도와 모래 해변으로 연결된 딴섬에 12번 ‘가롯 유다의 집’이 있다. 몽쉘미셀의 성당이 연상되는 예쁜 예배당이다. 처마에 순례길 완주를 알리는 종이 달려 있다. 소악도 진섬 솔숲 해변에서 만난 11번 ‘시몬의 집’은 가운데에 통로를 내어 솔숲과 바다를 예배당 안으로 불러왔다.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소악도 둑길 끝에서 찾았다. 프로방스풍의 오두막이 생각나는 예배당이다. 나무문과 스탠드글라스 지붕의 조화가 아름답다.
소악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길에서 만난 8번 ‘마태오의 집’은 멀리에서도 존재감을 뽐냈다. 갯벌 위에 세운 이 예배당은 러시아 정교회를 닮았다. 양파 모양 지붕이 오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소기점도 게스트하우스 뒤편 언덕에 있는 7번 ‘토마스의 집’은 흰색 외벽과 파란 나무문이 돋보인다. 바닥에 별과 달 모양의 색유리를 박고, 내부에 손바닥 크기의 성경책을 두어 동화 속 집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소기점도 저수지에서 만난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호루라기 모양이다. 저수지 위에 지어 출입할 수 없었지만, 저수지에 비친 고운 반영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섬마을 이야기를 담은 예배당
소기점도에서 대기점도로 넘어가는 노두길 입구에는 지붕이 요정의 고깔처럼 생긴 5번 ‘행복의 집’이 자리했다. 물고기 비늘 모양의 목재를 하나씩 붙여 지붕을 완성했다. 대기점도 남촌마을 팔각정 근처에는 염소 조각상이 지키는 4번 ‘요한의 집’이 있다. 문 맞은편 벽에 세로 구멍을 뚫어놓았는데, 구멍 사이로 무덤 한 기가 보였다. 이 예배당에는 무덤 주인을 기리는 누군가의 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별장처럼 생긴 3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대기점도의 논두렁과 연못을 지나 숲으로 가는 길에 보였다. 문에 거울을 붙여놔 내 모습이 비쳤다.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기점도 북촌마을 언덕에 있는 예배당은 2번 ‘안드레아의 집’이다. 고양이 조각상과 양파 모양의 민트색 지붕이 눈길을 끌었다. 북촌마을에 길고양이가 많아 고양이 조각상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예배당 옆 정자에 오르면 대기점도와 병풍도를 잇는 노두길이 훤히 보인다.
1번 ‘베드로의 집’은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건물 양식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렸다. 화장실을 갖춘 유일한 예배당이다. 예배당 위치가 신의 한 수처럼 보였다. 곡선으로 휘어진 방파제 끝에 그림처럼 서 있다. 국내에 이보다 아름다운 선착장이 또 있을까.
1번 예배당에는 순례길의 시작점을 알리는 종이 달려 있다. 여행자들이 이 종을 울리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는 기점·소악도를 떠나기 전에 순례길 완주를 기념하며 종을 쳤다. 선착장에 따라온 복실이의 배웅을 받으며 배에 탔다. 기점·소악도에 다시 올 때는 복실이가 털갈이를 끝냈기를.
◇ 여행 정보 ◇
기점·소악도 숙소 민박집이 있으니 잠자리는 걱정 없다. 순례자의 길 중간 지점인 소기점도에는 마을기업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061-246-1245)가 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을 수 있으니 반드시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대기점도 북촌마을에는 대기점민박(010-9226-2093), 노두길민박(010-3726-9929) 등이 있다. 대기점민박 주인장의 음식 솜씨와 인심이 매우 좋다. 식사는 생선, 나물, 장아찌, 해산물로 구성한 8000원짜리 백반이 기본이다. 식사 예약은 필수. 건물은 노두길민박이 더 깔끔하다.
교통 신안군 압해도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대기점도까지 차도선(천사아일랜드호)이 운항한다. 송공항에서 출발해 당사, 매화, 소악, 소기점, 대기점, 병풍, 소악, 매화, 당사도를 거쳐 송공항으로 돌아간다. 송공항에서 대기점도까지 70분 정도 걸린다. 배 시간은 계절과 물때, 기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므로 반드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배 예약: https:// island.haewoon.co.kr / 송공여객선터미널: 전남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718-64 / 문의 해진해운 061-279-4222
기점·소악도 전기자전거 투어
소악도 선착장과 대기점도 선착장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전기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반납할 때 대여한 곳 또는 반대편 대여소에 반납하면 된다. 이용료는 1일 5000원이며, 반대편 대여소에 반납하면 1만 원이다. 순례길이 대부분 평지 포장도로이므로 자전거로 돌아보기 좋다. 전기자전거로 오르막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대여 문의: 010-6612-5239
그리스 신화에 젊은 영웅들이 배를 타고 세계의 동쪽 끝까지 가서 황금양털을 찾아오는 설화가 있다. 바로 ‘아르고호 이야기’다. 이아손 원정대는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황금양털을 찾는 모험을 한다. 마침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흑해 연안에 접한 고대 조지아의 첫 번째 국가 ‘콜키스’(Kolkhis)였다. 그곳에서 원정대는 이아손에게 반한 ‘메데아’(Medea)의 도움을 받아 황금양털을 가지고 그리스로 돌아간다. 조지아가 신화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다.
흑해의 진주 바투미의 핫 플레이스
흑해의 석양이 아름다운 고급 휴양도시 바투미는 조지아의 여름 수도라고 부를 만하다. 여름철이면 주변국에서 온 많은 사람이 휴가를 보낸 후 돌아간다. 그렇다 보니 현대식 건물과 유럽 양식의 건축물과 집들이 뒤섞여 있다. 관점에 따라 난개발로 볼 수도 있고, 신구(新舊)의 조화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조지아에서 가장 복잡한 거리이면서 현대화된 도시라는 점이다.
바투미는 ‘불러바드(Boulevard) 해변’과 유럽광장이 중심인 ‘구시가’로 나눠 둘러보는 게 좋다. 다양한 공원과 테마파크가 모여 있는 불러바드 해변에서 여름철에만 영업을 하는 ‘선셋 레스토랑’이 있다. 음식뿐 아니라 조지아의 화려한 전통 무용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불러바드 해변에서는 뮤직 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축제가 매일 밤 열린다. 해변을 걸으며 이곳 분위기에 푹 빠져보는 시간만으로도 행복하다. 미학적 감동을 넘어 잠들어 있는 나를 깨워주는 해방의 공간에 온 듯한 자유가 느껴진다.
해변 옆 힐튼호텔 20층 ‘스카이라운지’는 전망을 즐길 수 있는 바투미의 숨겨진 명소다. 시시각각 다르게 물드는 바다와 하늘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수평선을 향해 기울어가는 붉은 태양을 배경으로 나뭇잎 떨어지듯 활강하는 패러글라이딩과 오렌지색 바다 위로 검은 물살을 남기며 가로지르는 배를 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클라리넷의 선율이 감미롭게 들려온다. 흑해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거대한 공간이 되는 시간이다.
무슬림을 상징하는 남자 ‘알리’와 조지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여자 ‘니노’의 이야기를 담은 두 조형물 ‘알리&니노’는 저녁 7시가 되면 조금씩 움직이며 서로 아슬아슬하게 만나지만 키스도 못하고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다시 멀어진다. 안타깝고 가슴 저리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도 바투미를 상징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운 좋게도 행복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을에 들를 때가 있다. 바투미 구시가지가 그런 곳. 마치 동화 속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메데아 동상’이 있는 유럽광장을 중심으로 천문 시계탑, 황금빛 공연 예술극장, 황금 포세이돈 동상, 신화 속 마녀 사이렌의 조형물, 꽃 장식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들이 모여 “이곳이 신화의 땅“이라고 속삭인다. 기꺼이 길을 잃고 한 집 한 집 들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
‘보르조미’ 광천수는 신의 선물
조지아 중부지방에 있는 보르조미 국립공원은 유럽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광활한 원시림으로 이루어져 있어 몸에 좋은 피톤치드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조지아 사람들은 자녀가 천식을 앓으면 이곳에 데려와 요양을 시킨다. 뇌전증을 앓았던 차이콥스키도 이곳에서 치유하며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보르조미 시내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 공원에서 조지아 3대 상품 중 하나인 ‘보르조미 생수’가 생산된다. 한국에서도 수입했던 보르조미 광천수는 자연 탄산 미네랄워터가 빙하로 덮여 있다가 여과되어 내려오는 물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 이곳에 주둔해 있던 러시아 군대 지휘관이 광천수를 마시고 위장병이 나은 후 휴양지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러시아 왕족과 귀족들도 이 물을 들여와 마셨다고 한다. 1894년에는 광천수를 병에 담기 위한 공장까지 생겼다. “신은 아제르바이잔에게는 원유를, 조지아에게는 물을 선물했다”는 말이 있다. 1000년을 마셔도 마르지 않을 물이 보르조미에 있기 때문이다.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린 후 광천수를 마셔봤다. 쇳물 냄새에 짭조름한 맛이었다.
고즈넉하고 쓸쓸한 그리움의 도시 ‘쿠타이시’
조지아를 여행하다 보면 교회가 참 많이 보인다. AD 337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할 정도로 조지아 사람들의 삶에는 종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교회도 많다. ‘쿠타이시’(Kutaisi)에 있는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 역시 의미 있는 교회 중 하나다. 조지아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국을 이룩한 후 그 상징으로 지었다고 한다. 웅장한 규모와 녹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 성당은 조지아 건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원전부터 도시로 형성된 쿠타이시는 고대부터 조지아 역대 왕국의 수도였다. 현재도 교통, 행정의 중심도시 역할을 한다. 교회 앞마당에서 내려다본 쿠타이시의 해질녘 시가지는 지나온 굴곡의 시간을 대변하듯 고즈넉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물들어갔다.
조지아의 경찰은 1등 신랑감
조지아에서 유리로 만들어진 가장 멋진 건물은 무조건 경찰서로 보면 된다. 경찰서 건물이 이토록 환하고 밝고, 멋진 데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후 집권한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경찰 개혁을 추진했다. 2004년 부패의 화신이었던 경찰 수장과 3만 명의 경찰을 일시에 해고한 뒤 새 경찰을 모집해 완벽한 물갈이를 했다. 뇌물을 받지 못하게 하려고 급여도 20배 이상 인상했다. 또 모든 경찰 활동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건물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다. 당시의 개혁은 한계와 어두운 측면도 있었지만, 일선 경찰들은 크게 변했다. 이때부터 조지아에서 경찰은 1등 신랑감이 됐다.
요즘 조지아 청소년들은 ‘케이팝’(K-pop)에 열광하고 있다. 탈레비에서 있던 일이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맞은편에서 오던 세 명의 소녀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고 신기해서 30여 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소녀들은 케이팝이 너무 좋아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고리’(Gori)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케이팝 때문에 전공을 아예 ‘동양 언어’로 선택하려 한다는 ‘타마르’(Tamar)도 우리를 반겨줬다. 한국인을 직접 만나 정말 기쁘다며 한국 드라마와 노래에 대한 꽤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준비한 김밥과 라면으로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그녀는 자신의 친구를 숙소로 불렀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타를 치며 케이팝과 ‘술리코’(Suliko)를 비롯한 조지아 노래를 부르며 작은 콘서트를 열어줬다.
고리의 광장에서 만난 스탈린타마르를 만났던 ‘고리’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청 광장에 아직도 그의 동상이 있다. 사진과 유물을 모아놓은 박물관과 생가, 그가 사용했다는 전용열차를 전시해놓은 공원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역사의 패륜아라는 생각에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바람의 나라 아르메니아로 가는 길
바르지아에서 출발해 11번 도로를 타고 아르메니아 제2의 도시 ‘규므리’(Gyumri)로 향했다. 1번 도로를 이용할 것을 주로 추천하지만, 이동거리 때문에 11번 도로를 선택했다. 염려했던 것보다 도로 상태는 좋았다. 새롭게 포장된 구간도 많았다. 오히려 차량이 별로 없어 한갓지고 더 좋았다.
국경을 넘자 고원지대 특유의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의 풀밭을 쓸며 지나가는 바람의 출렁임이 보였다. 누런 벌판으로 여름날 오후의 햇볕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다. 그대로 서서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한껏 벌렸다. 바람이 담아 오는 오래된 전설을 듣고 싶었다. 부드러운 저음색의 목관악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바람에 실려 왔다. 한이, 처연함이, 소망이 스며 있는 소리였다. 바람은 손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며 빠져나갔다. 노아의 이야기와 격조 높은 아르메니아의 문화와 검소한 신앙이 남아 있는 곳으로.
◇조지아 중서부 지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의 ‘고대 동굴도시’
기원전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고대 동굴도시다. 바위를 깎아 공동 집회장소, 궁전, 와인 저장고, 감옥 등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도시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이주해오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11세기에는 실크로드의 거점으로 인구가 2만여 명까지 늘어날 정도로 커졌지만 13세기에 몽골 침입으로 폐허가 됐다.
아할치헤(Akhaltsikhe)의 ‘라바티’(Rabati) 성’
13세기에 세워진 도시다. 조지아어로 ‘새로운 요새’라는 의미를 지닌다.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할 때 구시가지에 있던 ‘라바티 성’은 폐허가 됐다. 2011년 복원을 시작해 새로 문을 열면서 조지아의 유명 관광지로 변신했다.
바르지아(Vardzia)의 ‘동굴도시’
쿠라 강변의 ‘에루쉐티’(Erusheti) 산비탈에 동굴을 파서 만든 도시다. 12세기에 몽골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짓기 시작해 타마르 여왕 때 완공됐다. 서쪽과 동쪽에 각각 6개의 수도원과 여왕 타마르의 방, 접견실, 회의실, 대장간 등 300여 개의 방과 25개의 와인 저장실로 이루어진 군사요새다. 한때는 5만 명을 수용할 만큼 큰 규모였다. 중세 때는 수도원으로 사용됐다.
코로나19 여파로 박물관, 미술관은 물론이고 영화관에도 관객이 없다. 아예 휴관을 한 문화공간들이 많아서 딱히 어딘가를 갈만한 곳도 없다. ‘TV는 내 친구’도 하루 이틀이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음악이며 동영상 짤 등을 찾아보는 이제 볼만큼 봤다.
‘궁하면 통하는 법’.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이룩한 재빠른 응용력에 5G 인터넷 인프라를 자랑하는 한국 사회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문화계에 부는 코로나 19 적응시대의 문화 공유는 기존 오프라인 관람객에 온라인 관람객을 추가하는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는 오프라인에 온라인 관람을 추가하는 추세지만 앞으로 문화계는 온라인 관람 및 향유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뉴스나 콘텐츠를 신문이나 방송 등으로 소비하던 시대에서 현재는 모두 인터넷 및 SNS 등 온라인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화적 대변혁의 시대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견인(?)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말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앞으로는 BC가 Before Christ가 아니라 Before Corona를 가르치는 단어가 될 것’이라는 칼럼을 실어 전세계 지식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의 한 기원을 가르는 충격적 문화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한결 같은 학자들의 전망이다.
현재 K 방역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전 세계적인 찬사를 얻고 있는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온라인 문화가 정착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그 동안 온라인 분야가 부수적인 분야로 머물렀던 문화계의 온라인 공유는 음악 공연과 미술 전시회 등 전 분야에서 자리잡고 있어 문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문체부와 문체부 소속 산하기관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한데 모아놓은 문화포털에서는 ‘집콕 문화생활!’이라는 콘셉트로 방구석에서 즐기는 다양한 공연과 전시 등을 즐길 수 있는 사이트들을 소개해놓았다.
무료로 즐기는 고품격 온라인 공연
◇국립국악원
지난달 17일부터 주중 매일 오전 11시에 국악 한 편!! 이라는 슬로건으로 춘향가, 심청가, 가야금산조, 남도시나위 등의 공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난 공연도 감상할 수 있으므로 언제든 들어가서 즐길 수 있다.
◇국립극단 온라인 상영회
국립극단은 2016년에 공연했던 세익스피어 원작의 ‘실수연발’을 온라인 상영하고 있다. 1시간 55분 공연 전작이 올라와있어 코로나로 방콕하고 있는 연극팬들을 위한 훌륭한 팬 서비스라는 댓글 호응이 뜨겁다.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취소된 현대무용 공연 ‘혼자 추는 춤’ 시리즈의 10개 작품을 무관객 공연으로 제작, 무료 감상할 수 있도록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놓았다. 방구석1열에 딱 알맞은 콘텐츠. 야외 생활이 아무래도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코로나 정국에서 방구석에서라도 따라 하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경쾌한 공연이다. 강추!!
◇국립오페라단
‘집콕 오페라 첼린지’라는 이름으로 국립오페라단이 긴급 업로드한 작품은 2019년 10월 상영했던 ‘호프만 이야기는 2시간 41분 공연 전작이 국립오페라단 공식 유튜브 체널에 올라가 있다. 1주일에 1편씩! 보고 싶었던 오페라 전막 감상에 도전하기라는 부제가 붙은 국립오페라단의 집콕 생활 응원 오페라 공연은 평소 접하기 힘든 공연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추천 집콕 생활이다.
◇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은 무용단원이 직접 지도하는 집콕 스트레칭 영상 및 가극단원이 지도하는 배우들의 환절기 기관자 꿀팁 등 ‘스펙TV특별편’을 제작해 실내에서만 생활하고 있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꿀팁을 전수하고 있다.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 손안의 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현악 5중주, 바이올린 4중주와 더블베이스, 퍼커션, 플루트 4중주 및 클라리넷 5중주 등 실내악을 중심으로 무관객 공연 생중계를 실시한다. 집에서 답답하게 머무르는 오케스트라 애호가들이라면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프로그램. ‘내 손안의 콘서트’ 지난 공연까지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있다.
심심한 손자손녀와 함께 온라인으로 즐기는 문화 콘텐츠
◇어린이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산하의 어린이박물관에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전시 및 영상이 모여져 있다.
또한 국립민속박물관 산하에도 어린이박물관이 마련돼있어 온라인 놀이 체험 공간이 마련돼있다. 이곳 사이버놀이터에서는 컴퓨터로 민속놀이를 컬러링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민속 놀이를 배우는 코너가 있고 놀이체험마당 코너에는 지도 퍼즐 맞추기, 물건 알아 맞추기, 다른 그림 찾기, 네오 점프, 에어리언 점프, 컬러 점프, 네오 매치 등 어린 자녀 및 손자 손녀와 함께 즐기기에 적합한 교육 사이트다..
◇국립국악원의 e-국악아카데미
국악 애니메이션을 통해 엉덩이가 들썩이고 흥이 절로 나는 국악 교육을 시킬 수 있다. 어린이들이 보다 쉽게 국악을 이해하고 접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국악 형태의 창작동요 나는야 껌딱지, 꽃마을, 밥도독, 밤밤밤부리, 별님이 가시연꽃에게, 아침소리 등의 창작동요 10곡 이외에도 60여개의 창작동요가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업로드 돼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한국 전래동화, 외국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의 동영상 동화 456편이 영어 및 중국어, 베트남어, 몽골어, 태국어 등의 5개국 언어로 자막 처리돼 구비돼있다. 손자손녀와 함께 보며 다국어 동화구연 교육을 통해 언어교육과 동화 교육을 함께 시킬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에 할머니 무릎에 앉아 ‘장화홍련’, ‘흥부놀부’, ‘이수일과 심순애’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하고 호랑이가 떡 장사나간 어머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는 별님이 달님이 이야기도 들으며 자랐다. 이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은연중 배웠다. 요즘의 아이들도 동화책을 읽으며 권선징악(勸善懲惡)도 배우고 동물을 사랑하는 법도 배운다. 어른이나 아이나 꿈을 키워주는 설화(說話)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역사에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전(口傳)도 있고 야사(野史)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다. 관광지에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는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좋은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에서 역사적 사실만 고증을 들어 딱딱하게 해설하는 것보다 야사(野史)임을 밝히고 양념처럼 살짝살짝 곁들이면 관람객도 흥미를 갖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이런 야사들이 점차 잊어지고 사라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중에 한 곳이 남한산성의 축조에 얽혀있는 청량당(淸凉堂)이야기다.
서울 인근에 남한산성이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오르기도 쉬워 사시사찰 많은 관람객이 다녀가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외국손님들도 많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정상에 2층으로 우뚝 솟은 수어장대와 길게 쭉쭉 뻗은 성벽을 주로보고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경치를 기록사진으로 많이 남긴다.
안타깝게도 수어장대를 오르는 입구 좌측에 작은 건물 청량당(淸凉堂)은 못보고 그냥 지나친다. 더구나 평소에는 관람을 할 수 없도록 문을 닫아놓았으니 더욱 그렇다. 청량당은 이회(李晦)와 그의 처첩(妻妾)을 모신 사당(祠堂)으로 슬픈 설화가 있다. 이회장군은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의 책임자였다.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마치지 못하였다는 억울한 모함을 받게 되어 처형당했다. 그는 공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공사가 늦어진 것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회 장군은 처형당하기 직전에 “내가 죄가 없다면 죽는 순간에 매 한마리가 날아오리라! 만약 매가 오지 않으면 내 죄가 죽어 마땅하지만 매가 날아온다면 내 죄가 없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처형당하는 순간 그의 말대로 매가 날아와 바위에 앉아 슬피 울었고 후세사람들은 그 바위를 매 바위라고 불렀다.
이회 장군의 처첩도 남편의 성을 쌓는 일을 돕기 위해 삼남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처형 소식을 듣고 뚝섬 강물에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것은 장마가 심하던 해에 다른 성들은 모두 무너지고 파손되었지만 이회 장군이 축조한 성곽만은 끄덕도 없었다고 한다. 튼튼하게 짓기 위해 공사 진척이 늦어졌을 뿐이라는 이회 장군의 말이 옳았다.
그의 무고함이 밝혀져 수어장대 밑에 청량당을 지어 그와 그의 처첩(그는 첩이 있었다.)의 넋을 달래고 있다. 청량당 문을 걸어 잠궈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기록으로 본당(本堂)의 전면에는 이회의 초상화가 있고 좌·우편에는 벽암대사(碧岩大師)와 이회 처첩의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원래 것은 6·25전쟁 때 분실되고 지금 있는 것은 이후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출입을 통제하여 볼 수 가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매가 날아와서 슬피 울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설화로도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운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졸속 판결을 경계하고 사실여부를 자세히 살펴야한다. 대충 일을 마무리하지 말고 더디더라도 확실하게 일을 마쳐야 한다는 점을 배운다. 사람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느끼고 배우는 점은 다르다. 유적지나 또는 관광지에 잊혀져가는 야사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흥미진진한 관광자원으로 승화하면 좋겠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물건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딸이 백혈병으로 그의 곁을 떠났고, 28년을 같이 살았던 사람과 헤어졌고, 아들은 해외에 있어 자주 만날 수도 없다. 게다가 자신이 쓴 분신 같은 책들을 모두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올 1월 이다빈 작가(55세)가 에세이집 ‘잃어버린 것들’에서 고백한 이야기다. 힘들었던 시기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써내러 간 그의 책을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1996년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작가, 글쓰기 강사, 출판편집자 등 다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동안 동화집 ‘모자 선생님’, 시집 ‘문 하나 열면’, 인터뷰 에세이집 ‘길 위의 예술가들’, 세계문학기행집 ‘작가, 여행’, 국내 테마여행기 ‘소소여행’ 등의 책을 썼다. 작년에는 24년 동안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만난 아이들의 글쓰기 치유기 ‘말하지 않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선보였다.
그런데 작년 말 배본사에서 출고를 기다리고 있던 책들이 모두 불에 타버리는 사건을 계기로, 그는 잠시 삶의 여행을 멈추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잃어버린 것들’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그는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생각해 보니 잃어버린 것은 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자리로 돌아간 것이었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짐이 그동안 늘어난 모양이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온통 결핍 덩어리들이었다. 그 결핍 때문에 사랑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이별을 했다. 이제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위해서 기억과도 이별을 하려 한다.”
1부 ‘잃어버린 나’에는 저자가 그동안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글을, 2부 ‘나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는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해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네서점에서 이다빈 작가를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 일을 하느라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돈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의 아버지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는 오로지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 후 학생회 일을 하면서 사회 모순에 대해 탐구를 하고 편집장으로 활동을 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서 10년 가량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고, 잡지사에서 기자와 주간으로도 활동했다.
“서울에 와서 소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죠. 남편의 직업상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평생 일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사단법인 부설단체를 운영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 수업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모자 선생님’은 당시 가르치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동화집으로 문예창작기금을 수상했다.
그는 또 학생들이 글을 발표하고 기자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한국문예신문’을 발행하고, 폭넓은 글쓰기를 위해 학생들을 데리고 국내외 여행을 다녀온 후 아이들이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도서관 상주 작가로 일하기도 했다. 7년 전부터는 고양, 성남, 인천, 서울 등 시민대학이나 도서관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치유 글쓰기, 시 쓰기, 여행 에세이 쓰기, 자서전 쓰기 등 다양한 강의를 했어요. 강의하고 책을 쓰면서 저 스스로도 많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지금은 국내 다섯 개 도시를 배경으로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곧 출판할 거예요.”
이다빈 작가에게 책 쓰기는 그리 어려운 작업으로 보이지 않는다. 생각만 하고 주저하는 이들이 보기에 그는 추진력이 대단해 보인다. 강의를 한 후 일반인들에게 매번 책 쓰기를 권하는 이유는 뭘까.
“책 쓰기를 하면 암 덩어리처럼 제 안에 뭉쳐 있던 고민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뭐든지 고이면 딱딱해지고 병이 되기 때문에 흘려보내야 해요. 혈액도 생각도 뭐든 흐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대인들은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많은데 내보내기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책도 내보내는 것이니 누구든지 책 쓰기가 필요하다고 봐요. 글쓰기나 책 쓰기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보기를 권해요.”
그는 누구나 시인이며 작가이자 그 자체로 완벽한 존재라는 걸 자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코로나19도 이기고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는 뭘 하든지 간에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편이에요. 멋있지도 않은데 멋있게 쓰려고 하면 독자들도 부담스럽죠. 저는 진지한 편이어서 가볍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독자들은 무거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는 모두 실수투성이고 완벽하지 않잖아요?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생각이 흐르다가 고이는 것을 담아내면 책이 되지요.”
여행과 글쓰기는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다빈 작가는 여행이나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는 다양한 곳에서 글쓰기를 강의하며 함께 책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구좌읍 세화리 바닷가를 걷는데 ‘호오이 호오이’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하기엔 기이했다. 물고기가 그런 소리를 낼 리는 없고. 바닷가에 새만 있으니 새소리려니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 소리가 해녀의 숨비소리임을 알게 됐다. ‘호오이’ 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해녀를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잠수하는 여자(潛女) 해녀
제주 해녀(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는 1~2분간 숨을 참으며 수심 10m까지 잠수해 소라, 전복, 성게, 해삼 등의 해산물을 딴다. 숨 쉴 때는 물 위로 떠올라 재빨리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때 ‘호오이’ 숨비소리가 난다. 해녀는 이 과정을 반복하며 여름철에는 하루 6~7시간, 겨울철에는 하루 4~5시간 물질을 한다. 산소마스크도 없이 말이다. 해녀가 잠수에 특화된 신체를 갖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반복된 물질과 훈련을 통한 결과다.
제주 해녀의 물질 기술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소녀들이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눈치껏 배우고, 훗날 딸에게 가르치며 대를 이어 전승됐다. 해녀는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상군해녀가 대장 해녀이며, 해녀 공동체를 이끈다.
오랜 기간 물질을 한 상군해녀는 채취 기술이 뛰어나고, 바닷속 해산물 서식처와 조류와 바람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 해녀들이 물질할 수 있는 날씨인지 아닌지를 일기예보보다 상군해녀의 말을 듣고 판단할 정도라고 한다. 제주 해녀의 이런 독창적인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6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해녀가 다니던 숨비소리길
해녀들은 물질뿐만 아니라 밭일도 하며 생계를 꾸린다. 그녀들이 물질하러, 밭일하러, 부지런히 누비던 길을 스토리로 엮은 것이 ‘숨비소리길’이다. 제주올레처럼 바닷가도 지나고, 마을 골목길도 지나고, 밭도 지난다. 이 길을 걸으며 고된 해녀의 삶을 짐작해보고, 봄기운 무르익은 들판과 비췻빛 바다를 만끽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쉬워 아껴 걸었더니 한나절이 훌쩍 지났다.
숨비소리길의 출발점인 해녀박물관은 제주 여행 필수 코스다. 제주 해녀의 역사·생활풍습·세시풍속·무속신앙·해녀 공동체 등의 자료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 해녀 항일운동사까지 정리돼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바다 전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3층 전망대에 오르자 비현실적인 빛을 뽐내는 세화 바다와 세화리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해녀박물관을 둘러보고, 뜰에 있는 해녀상 뒤쪽으로 가, 숨비소리길 첫 이정표를 찾았다. 이정표가 갈림길마다 세워져 있어, 세상없는 길치이지만 걷는 내내 두렵지 않았다. 해녀박물관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세화 축구장을 지나자, 야트막한 언덕 아래 자리한 ‘삼신당 여씨할망당’이 보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돌집 안에 여씨할망신위를 모셔두었다. 제주에서는 할망당, 해신당을 흔히 볼 수 있다. 할망당을 뒤로하고 면수동마을회관 앞을 지날 무렵, 아름드리 팽나무, 네 그루에 눈길이 갔다. 왠지 인사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았다. 제주 사람들은 팽나무를 ‘폭낭’이라고 부른다. 여름 태풍과 겨울 찬바람에도 견디는 폭낭은 마을 쉼터 역할을 한다.
제주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밭담’
면수동마을회관 사거리에서 하도리 별방진에 이르는 약 2km 구간에는 무, 당근, 보리 등을 심어놓은 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잔잔한 바다처럼 보였다. 세로선보다 가로선이 많은 풍경에 맘이 평화로워졌다. 파스텔 빛 바다도, 진초록 보리밭도, 노란 유채밭도, 검은 현무암 밭담도 모두 나지막이 가로누워 있다. 이 구간이 ‘밭담길’이다.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돌을 쌓아 밭 경계로 삼았는데, 이를 밭담이라고 한다. 밭담을 쌓은 뒤로 토지 분쟁이 사라지고, 가축이 농작물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줄었으며, 농경지 면적이 늘어 제주 농업 발달에 기여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밭담에도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밭담은 제주도의 전통문화 산물로 평가받아, 국가중요농업유산과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됐다.
세화리에서 하도리로 이어지는 이 밭담길은 바다를 오가며 생계를 꾸몄던 해녀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평상시에는 밭일이나 집안일을 하다가 물때가 되면 바다에 나가 물질을 했다. 알고 보면 고된 물질도 부업일 뿐이었다.
별방진 품에 안긴 하도리
밭담길을 지나 하도리 골목길을 지나면 별방진이 나온다. 별방진은 마을 사람들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하도리의 옛 지명인 별방에서 이름을 땄다. 성의 총길이는 1008m, 높이는 3.5m.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타원형이다. 별방진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별방진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하도리 마을이, 오른쪽에는 자그마한 하도리 포구가 마주보고 있다. 별방진 안에 초록, 빨강, 파랑 지붕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풍경이 동화 속 그림 같다. 하도리 마을이 유난히 평온해 보이는 건 태풍도 왜적도 다 막아줄 것 같은 별방진이 있어서가 아닐까.
별방진 이후로는 줄곧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제주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닷가에 그물처럼 돌을 둥그렇게 쌓아놓은 원담과 해녀들이 물질하기 전에 옷을 갈아입던 불턱들을 차례로 만났다. 제주 해안에는 마을마다 서너 개의 불턱이 있다. 구좌읍에 해녀들이 특히 많이 살고 있어, 숨비소리길 구간에서만 서동 불턱, 보시코지 불턱, 모진다리 불턱, 생이덕 불턱 등을 볼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고무 잠수복이 보급되고, 1985년 전후로 현대식 탈의장이 설치되면서 불턱의 역할은 줄었다.
비췻빛 바다가 매력적인 세화리
세화리 바닷가에 이르자 해녀와 어부들이 물질 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갯것할망당’이 눈에 띄었다. 제주 해녀들은 물질하기 전에 해신당에서 용왕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 음력 1월 초부터 3월 초까지, 약 두 달 동안 34개 어촌계에서 해녀굿을 봉행한다. 해녀굿 중 바람신인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주는 영등굿을 가장 성대하게 치른다.
갯것할망당 옆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를 가둬놓은 ‘도구리통’이 있다. 제주 사람들이 용천수 둘레에 네모난 담을 쌓고, 식수를 뜨거나 빨래를 하던 곳이다. 수도 시설이 잘돼 있는 지금도 물통에서 채소를 씻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도구리통을 지나면 곧 해녀박물관이다. 이미 둘러봤으므로 세화해변까지 이어 걸었다. 제주도에서 물빛 좋기로 소문난 곳이 협재, 금릉, 함덕, 우도 등인데, 요즘은 세화를 추가해 손꼽는다. 세화 바다는 협재나 함덕처럼 번화하지도 않고,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감성 카페와 책방, 소품 가게들이 고요히 자리한 사랑스러운 곳이다.
◇ 주변 명소 & 맛집 ◇
세화민속오일장
세화해변 끄트머리에 자리한 세화민속오일장은 날짜 끝자리에 ‘0’ 또는 ‘5’가 붙는 날 장이 선다. 규모는 작지만 채소, 곡식, 수산물, 젓갈, 생활용품, 간식거리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다 판다. 낭만적인 뷰는 덤이다. 시장 안에서도 세화 바다가 보인다. 이곳 장터는 1930년대 초 하도리·종달리·세화리·연평리·시흥리 등지의 해녀 1000여 명이 항일운동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매주 일요일에는 시장 앞에서 플리마켓 벨롱장이 열린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1500-44
카페록록
하도리 바닷가에는 전망 좋은 카페가 늘어서 있다. 이 중 카페록록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시원한 바다와 돌담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실내 곳곳에 둔 초록 식물이 온실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인기 포인트. 푸딩처럼 말캉한 에그타르트가 별미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서문길 41 / 10:30~18:30 /카페라테 6000원
연미정
세화리에는 전복돌솥밥으로 유명한 식당이 두 곳 있다. 연미정과 명진전복이 그 주인공. 명진전복은 TV에 출연한 덕에 늘 대기 줄이 길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명진전복을, 가성비를 따진다면 연미정을 선택해볼 것. 전복돌솥밥을 주문하면 1인분이라도 작은 고등어 한 마리와 약간의 활어회가 따라 나온다. 반찬 맛은 평범한데, 전복 내장까지 넣어 지은 돌솥밥이 쫀득하고 구수하다. 제주시 구좌읍 세평항로 14 /09:00~21:30 매월 첫째, 셋째주 수요일 휴무 /전복돌솥밥 1만5000원
“방향을 꺾으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큰 틈새가 열리며 밝은 태양 아래 반짝이는 카즈베기의 만년설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과 만년설은 어느새 우리 앞으로 와 조용히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생물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이 자신의 소설에서 카즈베기 산과의 첫 만남을 표현한 문장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품은 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압도적인 풍광의 카즈베기 산에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3000년을 이곳의 바위에 묶여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프로메테우스. 그의 어깨를 뒤에서 가만히 안아준 이는 코러스였다. 코러스처럼 진실의 따스한 울림통이 되고 싶은 염원을 안고 산 중간 게르게티 언덕의 ‘성 삼위일체(사메바) 성당’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해발 1700m에는 작은 마을 ‘스테판츠민다’(Ste pantsminda)가 있다. 카즈베기 산을 비롯해 주변 트레킹 코스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해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까지 걸어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반대편 능선에는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편한 길보다는 아름다운 카즈베기의 숨결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싶었다.
가파른 능선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맞춰 마치 윈드서핑을 타듯 하양, 노랑, 분홍색 야생화들이 춤을 추었다. 성당까지 펼쳐진 녹색 초원의 싱그러움은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자연이었다. 어디를 찍어도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 있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사메바 성당은 해발 2170m 높이에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샤니(Shani) 산과 마주보며 소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자태가 너무 경건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이곳의 풍경이 왜 조지아를 소개하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지 수긍이 갔다. 수많은 여행객이 그 사진을 보고 조지아를 찾는다고 한다.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
마음 한편으로 ‘왜 이렇게 높고 외딴곳에 성당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암청색 하늘과 흰머리를 이고 있는 카즈베기 산의 검은 실루엣, 그리고 성당의 숭고한 불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에 답이 있었다. 성당의 불빛은 등대였다.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진실의 희망이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카즈베기 산 높이는 5047m. 조지아에서는 세 번째, 코카서스산맥에서는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조지아 사람들은 ‘얼음산’이라는 뜻을 지닌 ‘카즈베기’를 ‘하얀 신부’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10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고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이다. 마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일출을 맞이할 때도 여름이었지만 재킷을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카즈베기 산의 일출은 벌겋게 물든 바위와 구름으로 시작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원했기에 아늑한 신의 세상을 버리고 참혹한 형극의 땅을 선택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를 보는 것 같았다. 붉은 빛 용기는 제우스의 파란 하늘에 과감했다. 카즈베기 산은 대자연의 풍광 속에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조지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야생화 천국
므츠헤타 혹은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스테판츠민다로 갈 때 이용하는 도로는 ‘조지아 군사도로’인데 ‘즈바리 패스’(Jvari Pass)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가면 러시아 블라디캅카스까지 이어진다. 주변국과의 물자 교류가 이 도로를 이용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트럭이 많이 다닌다. 때 묻지 않은 초원과 야생화 천국에 감동하면서 북캅카스 산맥으로 들어가는 이 도로에서 조지아 최고의 자연 경관을 만났다.
조지아의 알프스 ‘스바네티’
조지아에도 알프스의 스위스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스바네티’(Svaneti)다. 이곳의 중심은 코카서스 산 중에서 가장 등반하기 힘든 ‘우슈바’(Ushba·4170m) 산이다. 스바네티의 베이스캠프인 ‘메스티아’(Mestia)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슈굴리’(Ushguli) 마을로 가려면 반드시 사륜구동차가 필요하다. 메스티아에서 우슈굴리까지 데려다주는 영업용 차량을 이용해도 된다.
세계 장수마을로 소개된 메스티아는 해발 1500m에 위치한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동화 같은 산속 마을이다. 특히 탑 형태의 ‘코시키’(Koshiki)라는 가옥이 장관을 연출한다. ‘코시키’는 9~13세기에 만들어진 방어용 탑으로 1층엔 가축들이 살고, 2층은 주거용, 3층은 폭설과 침략자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밖에서는 입구가 안 보이며, 사다리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다.
메스티아에서 대부분 비포장인 길을 40여 km 더 깊숙이 들어가면 신이 허락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우슈굴리에 갈 수 있다. 해발 2100m에 옹기종기 있는 모여 있는 4개의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다. 마을에서 보이는 ‘슈카라’(Shkhara) 산의 높이는 5068m. 조지아에서는 가장 높고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높다. 설산 계곡을 바라보며 초록빛 초원을 걷는 이곳에서의 트레킹은 조지아 여행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마을 북쪽 끝에서 찰리디 빙하까지 왕복 20km를 걷는 코스와 슈카라 빙하 기슭까지 8km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
설산과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풍광에 넋을 빼앗긴 채 마을 뒷동산 풀밭에 한참 앉아 있었다. 길옆 한편에는 호텔을 짓는 공사장이 보였다. 앞으로 여행객들이 더 많아져도, 지금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변함없기를 기원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 트레킹 코스
조지아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청정 자연에 흠뻑 빠져 트레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즈베기국립공원은 야생화 천국. 낙엽수와 침엽수 숲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주타(Juta) 밸리 코스 카즈베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샤니 산 줄기의 초원을 따라 연녹색 길을 걸을 수 있다. 스테판츠민다 광장에서 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고 오는 차량 영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호수까지 두세 시간 걷다가 돌아오는 길이 가장 인기다.
트루소(Truso) 밸리 코스 카즈베기 산을 오른편에 두고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승용차는 ‘트루소 골짜기’(Truso Gorge)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륜구동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길이 험해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즈바리 패스 따라 가볼 만한 곳
아나누리(Ananuri) 요새(교회) 에메랄드빛 호숫가에 위치해 산,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방어 성채.
구다우리(Gudauri) 스키장 해발 2100m에 위치해 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코카서스 산맥의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구다우리 전망대(우정 전망대) 조지아와 러시아 조약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모자이크 타일의 기념비. 절반은 조지아,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의 역사와 상징을 파노라마로 그려놓았다.
코비(Kobi) 리프트 트루소(Truso) 트레킹의 시작점이 되는 코비 마을 입구에 곤돌라 타는 곳이 있다. 카즈베기 산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누릴 수 있다.
매일 아침 눈뜨고 잠드는 공간. 집이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니어들에게 딱 맞는 인테리어 포인트를 찾아봤다.
사진 각 사 제공
최근 인테리어 업체들과 전문가 집단이 2020년을 대표할 인테리어 트렌드를 내놓았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다. 보이지 않았던 공간의 재발견과 돌, 식물 등 자연에서 해답을 찾은 인테리어. 지금까지는 미니멀리즘, 즉 ‘비움’에 비중을 뒀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맥시멀리즘’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에서 찾은 트렌드 컬러
글로벌 트렌드 조사기관인 ‘WGSN’은 올해 트렌드 컬러로 ‘네오민트’를 선정했다. WGSN의 발표는 색상 선정을 넘어 사회 기류도 함께 반영했다. 최근에는 이 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에서 찾은 색상인 ‘그린’(녹색)과 연결 지어 식물이나 자연에서 유래한 소품, 친환경 인테리어에 안전성까지 담은 제품들이다.
LG하우시스는 시트 바닥재인 ‘은행목’과 ‘뉴청맥’에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실내 낙상사고를 줄여주는 안티슬립 기능을 넣어 안정성도 챙겼다. 지난해 5월 출시된 ‘엑스컴포트’는 바닥재 속에 고탄성 2중 쿠션층을 적용했다. 푹신한 상부층과 탄성력이 높은 단단한 하부층이 보행 시 충격을 줄여주고 발이 푹 꺼지지 않도록 해준다.
동화자연마루의 ‘나투스진’은 찍힘과 긁힘, 수분 침투, 열에 의한 변형 때문에 발생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한 바닥재다.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신소재 나프(NAF)를 적용했다. 또한 국내산 소나무 100%를 원재료로 생산한 친환경 소재 E0 등급의 ‘동화에코보드’를 사용해 피부자극을 최소화했다. 안정적인 보행과 건강을 생각한 이들 제품은 시니어 세대에게 유용한 인테리어 제품이다.
실내나 집 안에 정원을 꾸미는 이른바 ‘홈가드닝’도 눈길을 끈다. 남는 공간을 작은 화분으로 장식하는 게 인테리어 포인트. 롯데주류는 발코니에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2019’에서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또 롯데마트도 ‘초보자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수경재배 식물’을 판매 중이다.
조경 전문업체인 조경나라 관계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소나무, 율마, 에메랄드그린 등과 함께 야생화를 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맥시멀리즘 인테리어 대세
크고 작은 인테리어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 안을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홈퍼니싱족’도 늘었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프리미엄 내추럴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내추럴 스타일은 자연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최대한 살려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까사미아의 ‘라메종’ 컬렉션은 자연에서 온 소재와 절제된 장식, 간결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원목 계열의 고급 하드 우드, 천연 소가죽, 포근한 컬러의 패브릭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핸드메이드 공법으로 품격을 더했다. 또 ‘토페인’ 소파는 프리미엄 가구의 인기에 힘입어 3~4인 소파가 ‘ㄱ’자, ‘ㄷ’자 등으로 재탄생했다. 천연 아닐린 가죽을 100% 수작업으로 가공해 부드러운 감촉과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린 프리미엄 소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인 벽난로는 위험성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전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벽난로가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왐 벽난로는 투박한 형태에서 벗어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화해 집 안 인테리어를 위한 멋진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동연소 조절장치를 내장해 안전성을 높이고 장작 소모는 40% 줄였다.
집 안 분위기를 바꿔주는 조명도 운치를 더해주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한다. 최근에는 물방울무늬의 샹들리에보다 펜던트 형이나 직선 위주의 깔끔한 스타일의 조명기구가 인기 있다. 미국의 조명 디자인 브랜드 애퍼래터스 스튜디오의 제품은 차별성 있는 디자인에 디테일하고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오래 묵혀둔 반닫이도 올해 인테리어 시장에서 유행할 대표 앤티크 가구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 시간만큼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박경숙 동연갤러리 관장은 “가치가 남다른 만큼 제대로 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앤티크 가구를 소화할 수 있다”면서 “적게는 100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도 있으니 차근차근 공부한 뒤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동화 작가 권정생(1937~2007) 선생에겐 남이 없었다. 사람은 물론, 보잘것없는 쇠뜨기풀이나 강아지 똥조차 그에겐 남이 아니었다. 모든 존재를 남으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남의 일이라는 것도 없었다. 남의 일도 내 일로 알아 남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삼았다. 가뭄이 길었던 어느 여름날. 벌겋게 타들어가는 벼를 바라보던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저것들이 얼마나 목마를까?” 그런 중얼거림이 새 나왔고. 이런 눈, 이런 연민, 이런 삶의 태도가 어떻게 가능할까.
머리맡에 두고 지내는 책이 있다. 국립수목원장을 역임한 신준환(동양대·64) 교수가 쓴 ‘다시, 나무를 보다’다. 책 속에 별처럼 반짝이는 게 있어 영롱한 책이다. 이 멍청이에게 평소 잘 보이지 않던 걸 보게 하는 눈을 달아주는 책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나무는 커갈수록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간다. 나중에 엄청난 크기로 자라면 엄청난 적막을 이겨야 한다. 이런 적막은 묘한 울림을 자아내어 바람을 조금도 느끼지 못해도 가지 끝은 우주의 율동을 감지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도 그만큼 내려앉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가도 그만큼 떨린다. 고요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찰의 힘이다.”
자랄수록 점점 커지는 적막의 무게를 이겨야 하는 나무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 가볍지 않은 사유의 궤적이 보인다. 우리는 모두 지독한 고독의 대가. 나무에 감정이입을 하더라도 ‘나’의 고독만 도려내 읽기 쉽다. 적막한 숲에서 홀로 견디는 나무의 무참한 고독에까지 마음이 닿기는 쉽지 않다. 더 흔치 않은 건 나뭇가지 하나에 내려앉은 우주의 기미를 보는 눈이다. 그러나 신준환은 보고 있지 않은가. 나뭇가지가 ‘우주의 율동’을 감지하는 걸.
한 걸음 더 들어가 그는 그 ‘우주의 율동’의 양상을 통찰한다. 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가는 짧은 순간에 나뭇가지가 지어 보이는 몸짓의 관찰을 통해서다. ‘새가 내려앉으면 그만큼 내려앉고, 새가 날아가도 그만큼 떨리는’ 가지, 즉 새와 가지가 만나는 사소한 물리적 동향을 우주적 조응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우주적 율동’을 감지한 나뭇가지는 제 몸에 앉은 새 한 마리가 ‘남’이 아님을 자각하고 새가 날아갈 때 몸을 떤다. 새가 떠나며 남긴 티끌만 한 온기에 전율한다. 이렇게 새와 가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채는 신준환의 촉수가 환해 눈부시다. 그는 세상 만물이 서로 연결된 ‘우주 패밀리’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읽어내는 유심한 눈길은 ‘성찰의 힘’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닐까.
‘다시, 나무를 보다’는 ‘성찰의 서(書)’다. 사물의 속을 보지 못한 채 수박 껍데기만 핥는 단세포로 살지 않을 수 있는 길을 귀띔하는 책이다. 부엌에서 숟가락을 들고 “이것은 숟가락이다!” 외치는 식의 빤한 허세를 깨라 권유해오는 책이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구미에 맞는 책 내용에 동해서. 마침내 몇 차례의 이메일을 주고받은 뒤 마주앉게 되었다.
“책 곳곳에서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는 당신의 눈길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현미경과 망원경까지 달린 눈을 보는 것처럼.”
“새로운 눈으로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게 아니라 보지 못했던 것까지 볼 수 있는 과학적 관찰도 필요하다. 내가 미친놈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양 정색을 하고 달려들어 보지 않으면 내가 나를 볼 수 없다.”
“그렇게 ‘나’를 관찰했더니 무엇이 보이던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 보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깊어질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살았는데도 벗어날 수 없더라고. 온갖 책을 읽어도 우물 안 개구리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뭘 몰랐던 것이지. 인간이란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이후 생각의 전환이 있었겠다.”
“우물 안 개구리들끼리 연결돼 함께 살면 해결될 문제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 변화가 왔지. 흔히 ‘나’ 안에 인간이 존재하는 걸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인간은 관계 속에 존재한다. ‘나’와 ‘너’ 사이에 인간이 존재한다. 부처나 예수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다. 인간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보자 과거와 다른 새로운 관계 형성이 가능해지더군.”
근본적으로 남의 말 듣지 않는 인간
외적으로는 좋은 사이로 보여도 내적으로는 불화하는 게 사람 관계다. 삶의 괴로움은 주로 이 대목에서 나온다. 불화의 정직한 해소가 쉽지 않아서다.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기보다 상대를 타박하며 교정하려 든다. “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콕콕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 옆구리 콕콕 찔렀냐?”는 식으로. 닭싸움처럼 뒤엉길 수밖에 없다.
신준환도 40대 때까지는 사람 또는 세상과의 관계에 혼선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갈구해온 자유나 사랑에 이르는 길 역시 훤히 보이는 게 없어 조바심쳤던 것 같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그 문제부터 화급히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수학과 철학, 물리학과 생태학을 공부했고, 산림학자인 그의 믿을 만한 동행인 나무에 관한 유심한 탐구를 거듭했다. 그 일체의 몰입을 그는 ‘성찰’의 과정으로 본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극을 받는 동물일 뿐이다. 따라서 관계의 상위 하위가 성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마다 우위에 서서 상대를 끌고 가려 하지. 이래서는 안 된다. 직장 동료든 아내든 친구든 하나의 세계로 인정해야 한다. 극과 극으로 다른 존재까지 그 자체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선의를 베풀면 되는 거다. 이럴 때 사랑을 중심에 둔 ‘관계’가 이루어지며, ‘너’와 ‘나’가 분리되지 않는 소통, 즉 ‘관계의 춤’을 추게 된다.”
“약육강식을 근본 축으로 돌아가는 인간사에서 그게 가능하겠나?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利他)로 살기가 쉽겠느냐는 말이다.”
“‘정글의 원칙’이나 약육강식을 믿지 마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알려진 동식물의 세계만 보더라도 약탈을 일삼는 게 아니라 서로 싸안아 공존하는 걸 알 수 있다. 또 모두가 긴밀한 연결 관계 속에서 생명을 지속한다. 가령, 사자가 버펄로를 잡아먹는 건 학살이 아니라 숭고한 지속의 과정이거든. 사자는 버펄로를 먹어 제 새끼를 키우며, 사자는 죽어 풀을 기르는 거름이 되는 게 아닌가. 버펄로는 그 풀을 뜯어먹고 제 새끼를 기르고. 한마디로 너 없이는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는 세계. 모든 게 그 세계 안에서 움직인다.”
누군가가 죽어줘야 나의 삶이 지속된다는 거. 자연에서 나온 인간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자연을 약탈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라는 거. 이걸 흔히 골치 아픈 딜레마로 여기지만 신준환은 다르게 본다. 관점을 넓히면 딜레마라는 게 있을 수 없다는 거다.
“부분적으로 갈라놓고 보면 무엇에건 좋고 나쁨이 있다. 반면, 일체를 연결해 바라보면 모순이 사라지고 우주만 남는다. 자연스러운 연결망 안에 조화로운 생물다양성이 내재한 걸 알 수 있다. 그걸 아는 게 ‘이치’를 아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아득한 신화의 시대엔 인간과 동물이 실질적으로 구분되지 않았거니와 의사소통도 했다고 한다. 현대의 인간들은 동물과 좋은 사이가 아니다. 고라니 문제에서 보듯이 전전긍긍을 일삼기도 한다. 동식물과 자연은 인간에게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 보는가?”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고 인류의 지성도 우연의 산물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움직임에 개입돼 있을 뿐 자연을 보호할 자격을 갖지도 못했다. 자연은 자연대로의 이치를 따라 스스로 그러할 따름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게 인간인 한 지속가능한 자연을 위한 어떤 겸손한 실천은 있어야 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큰 차원에서 보면 지속가능한 건 아무것도 없다. 시공간 개념을 넓게 잡을 경우 지금의 둥그런 지구가 네모나 세모로 바뀔 수도 있다. 자연보호나 지속가능 같은 걸 따질 거 없다. 나의 날숨과 들숨이 이미 자연계와 연결돼 있다는 걸 기억해 자연과 가급적 좋은 관계를 맺고 살면 그만이다.”
“소피아(sophia)라는 이름의 로봇이 있다.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너는 누구냐고 묻자 ‘환경오염으로 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온 소피아’라고 농담으로 응수하더군. 인공지능(AI)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인간과 똑같은 AI가 출현할 것을 겁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공연한 걱정이다. AI와 인간의 합체는 막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변한다. 유인원이 변한 게 인간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의 인류가 다른 존재로 다시 진화할 수도 있는 거거든. 그 진화의 모습이 AI 로봇으로 드러나더라도 이상하거나 두렵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인류가 매우 기이한 종이긴 하지만 기계인간에게 제자리를 내줄 만큼 자비로울까? AI 로봇으로 진화하는 게 아니라 로봇과 쌈박질을 하다 깨져 멸종할 수는 있겠지.”
“인간이 지금 할일은 좋은 생각과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잘 살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을 주지 마라. 돈을 많이 가지면 칼 맞아 죽을 수 있거든. 돈 대신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면 된다. 그러자면 마음을 지금 당장 잘 닦아야 한다.”
‘관계의 춤’으로 마음 보살펴야
마음. 결국 마음의 문제에 닿았다. 마음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게 다시없어 마음을 중심에 놓으면 세상의 모든 풍진과 미래가 난적처럼 어렵게만 보이진 않는다. 신준환이 말하듯 마음을 잘 닦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놈은 걸레로 닦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놈팡이를 닮아 자주 몸 밖으로 튀어나가 길길이 날뛴다. 또 게다가 선가(禪家)의 전언에 따르면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다. 없는 마음을 무슨 수로 닦나?
“마음을 닦아 도통하기는 어쩌면 아주 쉽다. 문을 딱 닫아걸고 나 하나만을 집요하게 살피면 도통할 게 아닌가. 그러나 이런 식의 도통은 문을 열자마자 부서지기 쉽다. 사람과의 관계가 없는 도통은 무의미할 수 있다는 얘기지. 내가 생각하는 마음 닦기는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존재와 연결돼 추는 ‘관계의 춤’으로 마음을 보살피자는 의미이니까.”
“요즘 당신을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은?”
“가끔 손주들을 만나 놀며 감동과 즐거움을 느낀다. 녀석들이 내 마음까지 읽더라고. 마치 영리한 반려견처럼. 까만 눈망울은 아예 우주적 블랙홀이더라.(웃음) 나의 모든 게 빨려들어간다.”
“최근 관심사는?”
“사랑이라는 화두다. 가까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다가가고자 한다. ‘관계의 춤’을 통해 사랑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지. 그러나 몸과 삶으로 잘 풀어내지 못하고 생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미안함을 느낀다. 아직 부족해서다.”
그가 다시 ‘관계의 춤’을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중과 사랑이 넘치는 유대를 통해 좋은 삶, 좋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 관계의 춤. 예수의 어법으로 말하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뜻이겠고, 불가의 전언을 빌리자면 자리이타(自利利他)라,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바로 그런 공공선(公共善)을 지향하며 살자는 의미일 게다.
이는 새로울 게 없는 언설일 수 있다. 그러나 신준환에겐 남다른 게 있다. 그의 논지는 유창하게 우주까지 뻗어 있지만 거기엔 모호하게 드리워진 신비나 추상이 없다. 세상을 오랫동안 유심히 바라보고 공부를 해온 사람다운 통찰이 있다. 이미 실천으로 살아가는 사람 특유의 리얼리티가 있다. 그는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고 낮춘다. 어쩌나, 나 같은 석두는?
“웰컴 투 시그나기(Sighnaghi)!”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객실이 아닌 테라스였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녹음 속 밝은 산호 빛 마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엽서 같았다.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가 수박과 와인을 가지고 왔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와인을 한 잔 따른 후 건배 제의를 했다. 트빌리시 동쪽의 카헤티(Kakheti) 주에 있는 ‘시그나기’.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본 첫 광경이다.
조지안의 크베브리 와인 사랑
조지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와인을 마시느라 신이 부르는 자리에도 늦었다는 우화를 말하면서 신도 포기한 와인 사랑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지배할 때 조지아 정교회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포도나무를 자르는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조지아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와인은 ‘성스러운 액체’로 불릴 정도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에서도 와인을 만들었고, 아직도 몇몇 곳에서는 와인을 판매한다. 그레미(Gremi) 수도원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마셔보니 선입견 때문인지 일반 와인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향이 마음의 무늬를 더 나긋나긋하게 해주었다.
조지아 와인은 56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포도 품종에서 생산된다. 3km마다 기후가 달라서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면 ‘치난달리’(Tsinandali), ‘사페라비’(Saperavi),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라벨이 붙은 와인을 선택했다. 가격에 비해 맛은 일품이었다.
조지아 와인의 주 생산지는 카헤티(Kakheti) 주. 조지아 와인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코카서스 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에 알라자니(Alazani)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보니 포도나무를 비롯해 과일나무들이 잘 자란다. 카헤티 주의 중심 도시 시그나기와 텔라비(Telavi)도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지점 두물머리처럼 조지아에도 쿠라 강과 아라그비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도시가 있다. 조지아 초기 왕조인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조지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므츠헤타’(Mtskheta)다. 지금은 수도가 트빌리시이지만 아직도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스베티치호벨리(Svetitskhoveli) 성당이 이곳에 있어 조지아 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다. 이 마을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즈바리(Jvari) 수도원 앞 언덕에 앉아 바라본 므츠헤타는 그리움이 안개처럼 차분하게 깔려 있는 도시였다.
“조지아 와인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오래된 역사만큼 와인을 마시는 조지아만의 전통문화가 있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덕담과 건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타마다’(Tamada)라고 부른다.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긴 덕담을 한다. 건배 제의 내용은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신께 감사하고, 다음 잔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그다음 잔에서는 성 조지를 위해, 그다음 잔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 이렇게 이어지다 보면 ‘옛날에 헤어졌던 애인을 위해’ 건배 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술자리에서 나온 건배 내용에 대해 질투를 하면 안 된다. 보통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의 와인을 마시며 술자리와 건배가 이어진다.
또 한 가지,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술을 그만 마시고 싶으면 타마다에게 말해 벌주를 받으면 된다. 이때 사용하는 잔이 ‘깐지’(Kantsi)다. 염소나 소의 뿔로 만든 전통 와인 잔으로 조지아 어느 곳에 가도 기념품 판매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잔은 뿔로 만든 잔이라 세워지지 않는다. 벌주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원샷을 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도시 ‘시그나기’
달콤한 포도 향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작은 도시 시그나기에 신의 물방울만 있는 건 아니다. 18세기에 지은 요새, 돌 성벽, 주황빛 마을은 해발 790m 높이의 자연과 함께 시그나기를 동화 같은 마을로 만들었다. 아무 목적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이 마을에서는 누구라도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고풍스러운 시청 건물에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흔히들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말한다. 마음 예쁜 사람들이 사는 그림 같은 마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그나기에는 사랑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곳 출신인 조지아의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사랑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가난했던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림과 집을 팔아 장미를 사서 그녀가 사는 집 앞을 꽃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에게는 그녀를 그린 그림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은 후 세상에 알려졌고, 1980년대 러시아 가수가 ‘Million Alykh Roz’라는 제목의 노래로 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심수봉이 ‘백만 송이 장미’로 번안해 부른 곡이다.
시그나기에서 가까운 곳에 카헤티 주의 주도인 텔라비가 있다. 텔라비는 작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조지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튜세티 국립공원’(Tusheti National Park)으로 가는 전초 기지 역할도 한다.
감동의 폴리포니 공연
도로 양옆으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싱그러운 포도밭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지아의 아름다운 연녹색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길가에 서 있는 와이너리 안내 간판은 여행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카헤티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오래된 마을 크바렐리(Kvareli)의 ‘카레바’(Khareba) 와이너리로 갔다.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조지아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규모와 콘텐츠를 잘 갖추고 있었다.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원은 크베브리 황토 항아리를 비롯해 각종 소품과 조형물이 꾸며져 있었다. 건물 안은 와인 저장고, 시음 및 판매시설, 와인 관련 도구 전시실, 와인 제조 설명 프로그램 진행장, 기념품 판매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와인 체험을 하고 나오니 로비에서 5명의 남성이 환상적인 다성 창법의 폴리포니 공연을 했다.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조지아의 노래는 현대 음악보다 훨씬 관념적이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매혹적인 보컬의 다성 창법이 들려주는 하모니가 장엄하게 가슴을 울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기보다는 영혼의 울림 같았다. 환상적인 조지아 와인만큼이나 황홀한 폴리포니의 벅찬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그나기에서 가볼 만한 곳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 조지아 왕비의 병을 치료하면서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생을 마감한 수도원이다. 수도원 밑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니노의 샘’이 나온다. 지금도 치유 효험을 믿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
시그나기 성곽 길(Sighnaghi Wall)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아치형 돌문을 지나면 성곽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성곽 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로라시빌 도로(Lolashvili St.) 시그나기 마을 정상부터 산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카헤티 지방의 광활한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Tip
텔라비에서 트빌리시 혹은 므츠헤타로 갈 경우, 혹은 반대의 경우 ‘38번’ 도로인 ‘곰보리 패스’(Gombori Pass)를 이용하길 권한다. 해발 2000m의 산을 넘으며 한없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 야생화에 푹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