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고 표지 촬영을 진행하는 연기자 정혜선을 보면서 새삼 한복이 무척 어울리는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시청률 60%를 넘긴 전설적인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딸을 구박하는 독한 어머니 모습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로나 국민 어머니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에서 어머니 역을 맡아 열연했던 그녀는 곧 팔순을 바라보는 1942년생이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넘치는 자태를 보니 어쩌면 긴 세월 빚어낸 어머니 상이 우리에게 영원처럼 고정된 게 아닐까 싶었다.
정혜선은 1961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연예계에 처음 입문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예회에서도 뽑히고 무용도 하고 노래도 잘하는 편이었어요. 수도여고에서는 방송반 활동과 웅변을 하며 상도 꽤 받았고요. 아버지가 원고를 써주는 등 많이 도와주셨어요. 심지어 탤런트가 뭔지도 모르던 때에 아버지가 지원 원서를 가져다줬어요.”
대부분의 가정집에 TV가 없던 그 시절, ‘뭔가를 알았던’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보면 아무래도 그녀는 연기자로 살아갈 운명이었나보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딴따라로 부를 만큼 인식이 좋지 않았을 것인데 딸의 재능을 알아본, 열린 생각을 가진 아버지 덕분에 시작이 평탄했다.
가족의 지원으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1967년 KBS ‘실화극장’에서 간첩 두목 등 캐릭터가 강한 역할에 캐스팅되어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그녀는 성격파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어머니 역할을 그때부터 많이 했어요. 그 시절은 배우가 별로 없었으니까. 얼굴에 주름 그려가며 어머니, 할머니 역을 소화해내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죠.”
연기자, 그리고 어머니 역을 주로 하게 된 것은 운명 같은 일이었을까? 그녀는 30대부터 할머니 역할을 주로 맡았다. 불과 31세에 MBC 드라마 ‘새엄마’에서 시어머니 역을 연기했다.
1977년에 한 설문조사에서 할머니 역할을 잘하는 연예인 2위로 뽑히더니, 1978년에는 아예 1위가 되었다. 연기자로서의 첫 절정기는 1983년이었다. 마흔 즈음에는 MBC 드라마 ‘간난이’에서 손주들을 데리고 거친 세상을 사는 80세 꼽추 할머니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각종 상을 수상했다.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의 연기자
그녀는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보다는 ‘쎈’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런데 인기가 많아지자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때 가수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간난이’ 에서 80세 할머니로 출연해서 불쌍한 손주들을 지극히 보살피는 역할로 각종 연기대상을 휩쓸었던 그해 1983년 대한민국을 빛낸 사람이라고 해서 롯데호텔에서 디너쇼를 열어줬어요. 그때는 철딱서니가 없었죠. 그 재주로 디너쇼를 했다니.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별거 다 했어요.”
같은 해에 매니저 제안에 앨범도 하나 녹음했다. 잠깐 가수활동을 하며 남긴 유일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망각’. 발라드풍의 처연한 노래인데, 직접 가사도 썼다.
잊어야만 했기에 잊었노라고
지워야만 했기에 지웠노라고
너와 나의 아름다운 그 옛날 추억이 못 잊어 생각나면
아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워보리
여자로서의 삶은 불행했다
노래 가사에 배인 슬픔과 애잔함을 증폭시키는 애절한 창법을 들으니 자연스레 그녀가 겪은 고통이 떠올랐다.
“서른두 살에 다시 싱글이 됐죠. 여자로서 정혜선은 불행했지. 그 부분에서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생각해요. 여자로 태어나 남편 잘 만나 아이 행복하게 키우면서 가정 잘 이끌어가고 그랬어야 했는데… 짚신도 짝이 있는데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는 건 비극이에요. 물론 그동안 날 좋아하는 이도 있었고 중매도 들어오곤 했지만 지금은 혼자야.”
TV에서 보는 정혜선은 거칠고 과격한, 세월의 풍파에 시달려 독해진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실제의 정혜선은 조용하고 나긋나긋하며 차분한 목소리를 지닌 천생 여자의 모습이다. 담담하게 자신을 패배자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을 이가 있을까. 그 모습에서 자기 삶을 희생하며 사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30·40대에 할머니역을 맡던 그녀는 60대가 넘으면서 카리스마와 온화함이 있는 ‘사모님’과 ‘여사님’ 연기를 주로 했다. 또 기품 있는 한복 차림으로 각인시켜주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역할엔 그녀만 한 배우가 없다.
그렇지만 “나도 살았는데…”
남편과의 결별은 이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빚까지 갚아나가야 했다. 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것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기대어 신세를 질 만한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도 채권자 분들이 순순히 기다리기로 해서 제 출연료를 3분의 2씩 가져갔죠. 그런 걸 생각하면, 그분들에게 고맙죠. 지금은 다 고인이 되셨지만.”
“스스로 일어나지 않으면 누가 단돈 100원도 안 준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급격히 높아진 자살률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나 같은 사람도 죽지 않고 잘 사는데 왜 자살을 하지…. 나는 자살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안 죽었어요. 빚을 갚아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죽음은 생각도 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죽는 방법도 있었네. 그런데 그걸 몰랐던 거예요.(웃음)”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그녀의 퍽퍽한 웃음소리에 좀 아팠다.
나누고 베풀며 겸손하게
개인으로서, 여자로서 정혜선은 불행했을지 모르지만, 모두의 배우로서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녀의 방송활동에는 슬럼프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연기하며 힘들었던 순간이 없다 할 정도로 매일 최선을 다했으므로 기억이 안 난다고.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프로그램이 예약되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방송국에서 시청률 높으면 보내주는 해외여행도 제대로 못 갔죠. 늘 바빠서 쉴 틈이 없었어요. 내 인생은 완전히 일의 연속이었어요. 물론 내가 워커홀릭 성향도 있지만, 연출자들이 나를 도와주려고 더 불러줬던 것 같아요.”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이탈리아를 가본 적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잠시 억울해했다. 요즘은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다 가는 유럽 여행 아닌가. 수십 년을 대한민국 국민의 어머니로 살았던 사람이 일하느라 이탈리아도 못 가봤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어머니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일만 하는 정혜선이었죠. 일 안 하면 죽는 줄 알았으니까.(웃음) 그런데 요즘 쉬면서 생각해보니 일이 다가 아니구나 싶어요. 너무 늦게 알았지. 지금은 쉬면서 봉사도 하러 다녀요. 내가 나서기만 해도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이 좋아해서 시간이 나면 자주 가고 있어요. 무엇이든지 내가 쓰임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이번 표지 한복 협찬을 해주신 박술녀 한복 디자이너는 “20여 년 곁에서 지켜봐온 정혜선 선생은 한결같은 성실함과 노력으로 늘 수수하게 살아서 때로는 연예인인지 자연인인지 분간이 안 간다”며 뚝배기처럼 소탈하시다 거들었다.
그녀는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요. 어려운 사람 있으면 가능한 한 힘닿는 대로 돕습니다. 그러니 무언가에 꽂히면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연기자에겐 숙명적 성향 같아요. 그저 일만 하고 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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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예술을 향한 꿈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녀가 연기생활을 하면서 안 해본 게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가수, 드라마와 연극은 기본이고 심지어 뮤지컬 배우도 했다. 그녀의 기억 속 뮤지컬은, 정말 원 없이 노래를 불렀던 ‘사운드 오브 뮤직’. 연극은 ‘햄릿’. 무대에 세 번이나 섰다. 물론 영화도 찍었다.
“1970년부터 1980년까지 50여 작품에 출연했죠. 그것도 액션 영화에. 내가 한때 액션 스타였어.(웃음) 그때는 정말 그걸로 잘나갔어요. 지금 들으면 젊은이들은 깜짝 놀랄 테지만.”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이 베테랑 배우에게 욕심나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이 싱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욕심이 없다”고 단칼에 자르듯 말했다. 다만 그녀에게 다시 삶을 살 수 있다면 하고픈 일에 대해 묻자 오래전 묻어버린 꿈을 아련히 기억해내며 그 시간들에 휩싸이는 듯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욕심이 많아요. 그런데 ‘부자가 됐으면’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사업은 내 길이 아니에요. 그러나 아무래도 예술에 대한 꿈은 있었죠. 특히 무용. 무용 선생님이 ‘영자야(정혜선의 본명), 넌 무용해야 해’라고 해주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실 집이 가난했죠. 그런데 무용을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 부모님 생각을 해서 안 했어요.”
아니다 싶으면 결코 하지 않는다
정혜선은 자신의 건강 비결로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 것과 운동을 따로 안 하는 대신 걷는 것을 꼽았다.
“사실 이제 내일모레면 팔십이니까 걷는 것도 귀찮죠. 집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 쐬는 게 가장 행복해요.(웃음) 스케줄 없을 때는 여기저기서 식사하자고 하니 사람을 만나게 되네요. 내가 거절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하루에 꼭 두세 가지 일은 있더라고.”
지금까지의 인터뷰에서 예상 가능하듯 그녀는 남다른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사실 얼마 전 꽤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파격적인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고사했다.
“내가 거기 나가서 남을 즐겁게 해줄 용기가 없어요. 과거에는 디너쇼까지 하면서 끼를 보여줬는데 지금은 다 늙어서.(웃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오랜 세월 정혜선이란 정체성을 만들어낸 신념 그 자체였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열심히 한다
겸손하고 배려심 많은 성품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어온 그녀는 진정성 있는 삶으로 탄탄한 신뢰를 쌓아왔다. 초심을 지키며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우직함이 그녀의 힘이다. 그녀는 이번 추석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바쁠 예정이란다.
“지인과의 인연으로 NBS한국농업방송에서 프로그램을 하나 맡았어요. ‘그땐 그랬었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제가 내레이터를 하기로 했어요. 한 달에 두 번 방송을 하는데 작업을 해야 하니까,(웃음) 어디로 움직이는 건 당분간 불가능해요.”
작든 크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충전하는 좋은 시간으로 즐긴다. 그저 평범하면서도 평탄하게 살기를 바라는 이처럼.
“나는 애써 관리해온 게 아니라 책임감 있게 살았던 것뿐”이라는 그녀의 말에는 연륜과 관록이 묻어 있다. 그녀 삶의 원동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설명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우리가 봐왔던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고향처럼,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그곳에 있을 것 같은, 아련하면서도 올곧고 강인한 모습으로서.
연연하지 않는 삶, 이렇게 살아서 또 한 번의 아침을 맞듯 그녀에게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내 나이 50세 되던 해의 일이다. 그때까지 사내 회의 자료나 외부 강의용 PPT 자료는 직원들이 다 만들어줬다. 문서를 만들거나 심지어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도 직원들이 대신 해줬다. 프리핸드로 건축 기본 스케치를 해서 넘겨주면 직원들이 캐드로 말끔하게 도면을 그려냈다. 사실 건축 기본 콘셉트를 구상하고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초기 단계에서 삼각자를 이용하거나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면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전개에 방해가 된다. 그런 습관 때문에 나는 컴퓨터와 오래도록 친하지 못했다.
그날도 외부 강의를 준비하면서 여느 때처럼 디자인 부서 여직원에게 강의 교안을 부탁했다. ‘아름다움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한 강의 슬라이드에 오드리 헵번 사진을 넣고 싶었다. 머리에 보자기를 멋지게 둘러쓴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아 강의 자료에 넣어 달라고 했더니 “사진을 캡처해서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간단할 텐데요!”라며 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이메일도 주고받지 못하는데 캡처는 또 뭔 말인지. 여직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 나는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듯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 책상에서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커먼 컴퓨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홀로 서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컴맹 탈출이었다. 내 아이들을 가르쳤던 컴퓨터 선생님을 집으로 초대해 기초부터 배우기로 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먼저 말했다. 한글 문서를 만들고 싶고, 이메일을 주고받고 싶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싶고, 강의용 PPT 자료를 만들고 싶고, 원하는 사진을 자유롭게 캡처해서 편집하고 싶고, 포토샵과 엑셀도 어느 정도 하고 싶다며 꽤 많은 걸 요구했다. 그리고 몇 개월 개인지도를 받았고 놀랍게도 이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내친김에 실행 가능한 목표를 매년 한 가지씩 정하고 퇴직 목표 나이 60세까지 10년 동안 10가지를 이뤄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전문강사자격 과정을 수료했다. 머지않아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러시와 함께 평생학습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것이니 그때 필요할 전문 강사의 기본 소양 등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강사자격 과정에 참여하기 전에 컴퓨터의 기본을 배워둔 것이 주효해 이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다.
원고를 쓰고 사진을 편집하면서 컴퓨터 사용 능력도 한층 향상되었다. ‘무지개 공감’은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나의 건축인생 이야기’를 썼다. ‘시니어 비즈니스 스쿨’은 실버산업 분야의 교수, 요양원 등의 시설 운영자, 실버용품개발 디자이너가 함께 저술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시니어의 주거 문제를 다뤘다. 책을 같이 내니 출판비용 부담도 줄었고 멤버들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블로그에 틈틈이 글을 올리면서 신문이나 문예지에서 공모전을 하면 응모했다. 금융위기와 관련한 수기를 모은 책 ‘희망편지’와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글을 모아 펴낸 책 ‘내가 만난 추기경’은 그때 채택된 작품들이다. 블로그를 운영한 지 10년이 지난 2017년, 저장해놓은 포스트를 보니 1700개가 넘었다. 10년 동안 이틀에 한 편꼴로 포스팅을 한 셈이다. 그렇게 모아둔 글 몇 편을 다듬어 계간 ‘문학의 강’ 수필 부문에 응모를 해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수필가 등단도 이뤄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상담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심리학 공부도 시작했다. 시동을 건 김에 심리상담사, 미술심리상담사, 노인상담사, 자살예방지도사, 결혼상담사, 이혼상담사 자격증까지 땄다. 상담사 공부는 내 문제와 직면하게 해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반대로 미대에 가지 못했다. 그 한이 수십 년 동안 맺혀 있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석고 데생부터 시작해 기초를 배웠다. 늘 도전해보고 싶었던 목조각도 배웠다. 기타 치는 시니어를 꿈꾸며 중고등학생들이 다니는 기타 학원도 다녔다. 그렇게 10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59세가 되던 해인 2017년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30대 초반에 건축사를 취득해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도제생활까지 합하면 35년 가까이 한 분야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당시에는 건설 경기가 호황이어서 30대를 화려하게 보냈다. 그러나 날벼락 같았던 IMF로 40대가 저당잡혔고 그 뒤 10년은 빚 청산하는 데 바쳤다. 그래도 2007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 부서 여직원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현역을 더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미련 없이 자유인이 되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1년 동안은 상당히 불안했다. IMF 때 겪었던 공황장애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10년을 준비했는데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방법은 사람들과의 교류였다. 그 판단은 옳았다.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관계를 확장시켜줬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이 실타래 풀려나가듯 하나씩 해결되었다.
지금은 현역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다. 준비해둔 대로 여러 기관에서 시니어 대상으로 주거 관련 강의를 한다. 우리의 주거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풀이한 글을 모아 ‘모두의 집’도 출간했다. 몇 군데 언론사와 기관에 글도 기고하고 있다. 답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기 봉사’도 한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나를 찾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다녀야 하니 현역일 때보다 더 바쁘다. 언제까지 왕성하게 활동할지 알 수 없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살아가야 할 미래가 가끔은 두렵다. 그러나 지나온 날들처럼 미래에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안전망이 되어줄 것임을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선유동천 나들길’의 총 연장은 8.4km. 선유동촌을 중심으로 한 구간이 1코스(4km), 용추계곡 일원은 2코스(4.4km)다. 백미 구간은 선유구곡이며, 용추계곡의 용추폭포도 하트(♥) 모양의 소(沼)로 유명하다. 구간마다 차량 접근도 쉬운 편이다.
산만큼 완벽한 미학과 안정감을 구현한 건축이 다시 있을까. 조물주의 전공은 디자인. 산을 지어놓고 보기에 좋아 한판 거하게 놀았을 거다. 바위들아 모여라, 새들아 오라, 당실당실 흘러가는 구름아, 너도 멈추어라. 그렇게 불러 모아 축연을 펼쳤으리라. 비경이 아롱졌으리라. 불세출의 디자이너는 향연을 마치고 우주의 기슭으로 떠났다. 풍경만 남았다. 문경 땅에 있다. 조물주의 솜씨가 아니고선 이룰 수 없는 절경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앗, 탄복하며 이곳을 선유동천(仙遊洞川)이라고, 즉 신선이 노니는 계곡이라 불렀다.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명산에, 명승에, 명경지수에 동화되면 신선이다. 산의 밝음과 물의 맑음을 마음에 담으면, 잠깐이나마 신선 흉내를 낼 수 있다. 그대여, 선유동천에 오라. 이곳에서 시름과 노여움을 씻어 완전한 자유를 맛보라. 선경(仙境)이란 순수를 되찾게 하는 선경(善境)이기도 하지 않던가.
경관을 가늠하는 사람들의 눈썰미는 비슷한 모양이다. ‘선유동천 나들길’은 지난해, 산림청이 전국의 숲길 이용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했다. 사랑스러워 담뿍 정들기 마련인 게 이 나라 산천이다. 정겨운 풍치만 빼어나던가? 선조들은 흔히 산을 경전(經典)으로 읽었다. 산의 음성과 뜻에 귀 기울여 화두를 얻었다. 어떤 이들의 한 생애는 통째 산을 닮으려는 노력이었다. 산림의 기질, 야생의 지성, 어쩌면 우리 안에는 그런 게 흐른다. 살수록 증폭되는 혼돈이 그걸 파먹어대지만.
초록 숲 사이로 이어지는 조붓한 길을 걷는다. 그러나 발길은 번번이 계곡 안통으로 이끌린다. 첩첩히 겹치거나 길길이 일어서거나 어깨를 겯거나, 동맹을 맺은 장한(壯漢)들처럼 도도한 바위들이 제전을 펼치는 계곡이지 아니한가. 살갗은 희고 매끄럽다. 물살과 바람과 시간에 마모된 굴곡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미와 기세를 다투는 수석(水石)들의 경연장이다. 이런! 경연이라니? 바위들은 겨루지 않는다. 미동조차 없이 천년만년 고요하니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이미 초월한 것을. 저 움푹 팬 바위 틈서리에 누우면 긴 꿈에 빠져 바위를 닮을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사람의 생은 하루살이처럼 짧다. 게다가 형극이기조차 하다. 무슨 해탈한 정신으로 바위는 유유히 겁(劫)을 사는가. 어쩌면 바위가 불멸하는 신선이다. 그래서 선유동이다.
너럭바위에 걸터앉고 보니 저만치에 폭포가 있다. 귀를 때리는 물소리가 통쾌하나 독재처럼 오만하다. 하지만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수평의 바다로 가는 물이다. 사람은 모자라 수평과 평등에 서툴다. 그래서 세상은 악다구니로 시끄러운 난장이다. 어이, 귀나 씻으며 놀다 가소! 바위가 들려주는 말이 그렇다.
폭포수는 흘러 물웅덩이를 이룬다. 밑바닥이 빤히 비치는 연초록빛 깨끗한 소(沼). 수면엔 나무 그림자 일렁거린다. 물속에서 노니는 버들치들의 태평한 행렬이 숫제 선율이다. 순간적으로 뇌리에 새겨진다. 크리스털 세공(細工)처럼 투명한 놈들의 몸 안엔 어떤 꿈과 욕망이 서려 있을까? 내장까지 비칠 듯 해맑은 몸뚱이란, 시달릴 탐욕이라는 게 없다는 웅변인가? 그렇다면 버들치도 신선이다. 그래서 선유동이다.
아홉 군데 뛰어난 경승에 각각 이름을 붙여 선유구곡(仙遊九曲)이라고도 부른다. 으뜸가기로는 제9곡 옥석대(玉舃臺)다. 천하 절경이니 여기에 정자가 없을 리 없지. 학천정(鶴泉亭),물가 둔덕에 들어앉아 풍경을 내려다보는 별서(別墅) 건물이다. 선유동에서 후학을 가르친 조선의 문신 도암 이재(李縡, 1680~1746)의 덕망을 기려 후학들이 세웠다. 일찍부터 많은 인걸들이 선유동을 유람했다.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도 이 골짜기를 순례했다 전해온다.
외로운 구름, 고운(孤雲). 이는 어쩌면 최치원의 생애를 상징하는 완벽한 메타포다. 순항과 표류를 거듭했던 선장. 날지 못한 이카로스. 고운은 시대와의 길항(拮抗), 그 끝자락에서 마침내 청산으로 스며들었다. 혹자는 산에서 우화(羽化), 신선이 됐다고 봤다. 그러나 입산 이후 고운의 종적은 사실상 미궁이다. 선유동에 서렸다는 고운의 족적 역시 전설의 가필일 수 있겠지. 그저 고운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하다.
여름나기를 준비하며 다가오는 여름이 설레면서 걱정도 된다. 점점 더 무더워지는 날씨에 어떤 차림으로 외출해야 할지도 큰 고민거리 중 하나. 노출의 계절, 신발도 예외는 아니다. 작은 노출도 부담스럽게만 느껴지는 시니어를 위해 스타일 있는 여름 신발을 추천한다.
‘여름’ 하면 어떤 신발이 떠오르는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리퍼나 샌들, 가족 휴가나 물놀이 갈 때 신는 아쿠아슈즈, 쪼리 등 가벼우면서도 맨살이 드러나는 신발을 많이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내 발을 드러내려니 민망하기도 하고 대체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따라오시라. 올여름엔 당신의 발뒤꿈치도 맵시 있게!
맨발이 어렵다면 발목만 살짝
맨발을 노출하기가 어색하다면 시원하게 발목만 드러내는 슬립온은 어떨까? 조임 끈이나 벨크로(찍찍이)가 달려 있지 않아 신고 벗기 편하다. 디자인은 다소 밋밋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신을 수 있다. 어두운 색상의 슬립온은 단정한 정장 차림에도 무난하게 어울려 통기성이 부족한 구두보다는 여름철 신발로 안성맞춤이다. 또 밝은 색상은 평범한 일상복에 포인트를 주며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단, 슬립온을 신을 땐 발목이 확실히 드러나는 짧은 바지나 반바지를 입을 것을 추천한다. 반바지에 슬립온 색상과 어울리는 긴 양말의 조합도 젊어 보이는 스타일링 중 하나. 슬립온에 긴바지를 입을 때는 밑단을 접어 올리고, 정장에는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슬랙스’를 입어보자.
시원한 뒤트임
여성 시니어에게는 ‘뮬’과 ‘슬링백’ 슈즈를 여름 신발로 추천한다. 두 신발의 공통점은 앞부분은 막혀 있고 뒤꿈치 부분이 노출된 슬리퍼 형태라는 데 있다. 모양은 일반 구두와 비슷하지만, 굽이 높지 않아 하이힐이나 앞뒤가 막혀 있는 구두보다 훨씬 편하게 신고 다닐 수 있다. 발에 땀이 나면 살짝 벗어놓을 수도 있으니 여름에 제격인 신발이다.
뮬은 뒤꿈치 부분이 온전히 노출된 신발을 말한다. ‘블로퍼’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내용 슬리퍼와 비슷해 신기도 편하다. 특히 흰 색상의 뮬은 청바지나 밝은 색상의 치마, 원피스에 신으면 보다 시원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운동화처럼 생긴 ‘스니커즈 뮬’도 출시됐는데, 일상복에도 잘 어울리고, 발랄하면서도 젊어 보이는 느낌을 준다.
슬링백은 뮬과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발뒤꿈치를 고정하는 끈이 있어서 뮬보다는 걸을 때 좀 더 편하다. 일반 구두 형태에 단색의 디자인이 특징이며 단아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뮬과 슬링백은 대부분 앞쪽이 막혀 있지만, 발가락 끝부분이 살짝 보이는 형태도 있다. 이런 디자인은 페디큐어로 또 다른 패션 포인트를 줄 수 있다.
돋보이는 단순함
남성 시니어에게는 ‘코르크 샌들’과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추천한다. 디자인이 심플해 어떤 의상에도 잘 어울리는 매력이 있다. 코르크 샌들은 와인 병마개로 쓰이는 ‘코르크(cork)’를 밑창 소재로 사용한 신발이다. 샌들 재질의 특성상 가볍고, 발등 부분은 가죽과 버클 장식의 단순한 조합으로 만들어져 착화감이 좋은 신발이다. 특히 패션 슈즈 브랜드 ‘버켄스탁’의 코르크 샌들은 쪼리, 슬리퍼, 로퍼형까지 다양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다만 코르크가 물을 잘 흡수해 변색이 되거나 부서질 위험이 있어 비가 오는 날은 신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최근엔 방수기능을 강화한 제품도 출시되었으니 꼭 이 점을 확인하고 구매하시길.
글래디에이터 샌들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고대 로마 검투사가 신는 신발을 연상케 한다. 가죽 소재의 끈으로 발등을 엮어 웅장한 분위기는 남기고, 종아리까지 여러 줄로 감싸는 불편함은 없앤 디자인이 특징이다. 색상도 검정, 갈색 등 어두운 계열로 중후한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못생긴 게 대세! 계속되는 복고 열풍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여름 신발이 있다. 투박하고 못생겨 일명 ‘어글리 샌들’로 불리는 신발이 올여름에도 돌풍을 일으킬 전망이다. 울퉁불퉁하고 두꺼운 밑창, 전체적으로 큼지막하고 스포티한 것이 특징이다. 아빠들이 신는 신발 같다고 해서 ‘아빠 신발’이라고도 불리며 남녀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핏 보면 운동화처럼 보이기도 하며 밑창이 얇은 슬리퍼, 샌들, 쪼리 등 기존 여름 신발의 단점을 보완해 활동성까지 겸비했다.
어글리 샌들의 유행은 또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 떠오르는 ‘고프코어’ 열풍 때문이기도 하다. ‘고프코어’를 선도한 영국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는 2018년 한국 동묘시장을 방문했다가 ‘아재 패션’에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동묘 거리 패션을 재해석한 복고풍의 고프코어룩이 출시되었고, 이 패션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촌스러움이 오히려 개성으로 해석되고 승화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동안 샌들에 양말은 최악의 패션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제 그런 오해는 금물. 과감하게 좋아하는 색상의 양말과 함께 어글리 샌들을 신을 수 있다면 당신도 패셔니스타!
고프코어는 아웃도어 의상을 의미하는 ‘고프(gorp)’와 평범함과 철저함을 의미하는 ‘놈코어(normcore)’를 합쳐 만든 조어로,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주로 입는 옷과 일상복의 조합을 의미한다.
초록이 드리우는 6월, 이달의 추천 문화행사를 소개한다.
(축제) 고성 하늬라벤더팜 라벤더 축제
일정 6월 1~23일 장소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꽃대마을길 175 하늬라벤더팜
매년 6월이면 고성 하늬라벤더팜에는 라벤더가 만개해 보랏빛 물결을 이룬다. 이번 축제는 라벤더 수확 체험, 피자 만들기 등 허브를 활용한 다양한 체험 행사로 운영된다. 라벤더 향수 추출 시연, 향기 음악회, 포토 콘테스트 등 오감 만족 이벤트도 열린다.
(공연) 운당여관 음악회
일정 6월 4~20일 장소 서울돈화문국악당
운당여관은 조선시대 후기 전통 한옥으로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 시절의 운당여관을 추억하며 다양한 예술가들이 펼치는 음악회다. 행사기간 매일 다른 국악 예술인이 여관 주인이 되어 다채로운 공연을 펼친다.
(전시) 그리스 보물전
일정 6월 5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그리스 유명 박물관들이 소장한 보물 총 350여 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황금의 시대 미케네,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고 금의환향한 아가멤논, 동방 원정의 주인공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서구 문화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축제) 2019 고창 갯벌 축제
일정 6월 7~9일 장소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애향갯벌로 320 만돌갯벌체험장 일원
2010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고창 갯벌.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하는 이곳에서 축제 동안 자연생태체험과 전통어로방식을 경험해볼 수 있다.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버스로 갯벌 위를 달리며 색다른 추억도 쌓을 수 있다.
(전시) 베르나르 뷔페展
일정 6월 8일~9월 15일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구상회화와 거친 느낌의 인물화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베르나르 뷔페. 생전에 프랑스의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올’이 초상화를 부탁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한국에서 처음 여는 단독 대규모 회고전으로 4m가 넘는 대형 작품을 포함해 유화 작품 92점을 선보인다.
(클래식) 야성적인 로맨티시즘의 거장, 라흐마니노프
일정 6월 12일 장소 롯데콘서트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크고 두꺼운 손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힘찬 고난도 작품들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선 국제 콩쿠르대회 다회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타라소프와 지휘자 성기완이 이끄는 ‘밀레니엄 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주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도심에 크고 작은 책방에 이어 헌책방이 생겨나더니 이번엔 책박물관도 생겼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지난 4월 23일 서울시 송파구 송파대로37길77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책 박물관.
상설전시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서공간도 함께 마련했다. 지하 1층에 수장고와 오픈 스튜디오, 지상 1층에는 어린이를 위한 북 키움과 키즈 스튜디오, 어울림 홀이 있고 지상 2층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미디어 라이브러리, 야외정원 등이 있다.
상설전시장은 책과 문화독서라는 주제 아래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향유로 조선시대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선 시대의 독서 문화와 독서광, 장서 등이 소개되어 선현들이 보여주는 독서문화를 통하여 책 읽는 즐거움을 느껴보게 된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붓으로 옮겨 적은 책을 팔고 사는 업이 성행했다고 하니 그 모습들이 미소를 짓게 한다.
제2부는 소통으로 1910년부터 최근까지 100여년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세대가 함께 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의 공간으로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연대별로 베스트셀러나 잡지가 전시되어 있어 그 공간에 서면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받는다.
제3부는 창조의 공간으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테마로 엮었다. 작가의 방을 통하여 책이 저술되는 시작의 공간과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돌아보는 공간. 작가의 방, 출판기획, 편집자의 방, 북 디자이너의 방을 살펴보고 체험하는 장이 있다. 작가의 방에서 들려오는 타자기 소리와 노트에 펜 긁히는 소리가 마치 현장에서 책이 탄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리고 북 키움은 미래세대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놀며 더 큰 세상의 꿈을 키운다는 기치 아래 구성된 체험 전시 공간이다. 꿈이 자라나는 체험공간인 동화마을, 꿈이 샘솟는 독서공간인 지혜의 샘, 꿈을 만드는 창작 공간인 동화마을 아뜰리에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특별한 날이나 찾아가는 박물관이 아니라 수시로 찾아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조상들의 독서문화와 미래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친숙한 공간이다.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아니고 필요한 책을 언제든지 뽑아 즐길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이용 및 교통 안내
- 관람 시간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요금은 무료.
- 지하철 8호선 송파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9호선 석촌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으며 버스는 3322, 3417.
- 주변에 석촌시장이 있어 가족과 함께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든 구제 옷이든,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옷의 진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는 노화에 따른 심리적, 신체적 변화로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옷들이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미적 요소가 결여된 의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더는 걱정하지 말라. 기능과 스타일까지 살린 세계의 패션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니어숍, 집 앞에서 편안한 쇼핑을
온라인 쇼핑몰은 집에서 간편하게 옷을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거나 익숙지 않은 시니어에겐 곤욕이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날, 당신의 집 앞에 의류 매장이 직접 찾아온다면? 먼 곳에 있는 의류 매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보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상상 속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시니어숍(Senior Shop)’이다.
시니어숍은 1996년, 스웨덴 헬싱보리 오픈을 시작으로 유럽 6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이동식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안하고 세련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방문 신청은 무료이며 방문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1000여 가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사이즈도 S에서부터 3XL까지 다양하다. 20m 이상의 전시대와 거울,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느 옷가게 못지않다. 요청에 따라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편안한 쇼핑과 이색 이벤트로 시니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시니어숍은 현재 북유럽 국가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담토모코, 굽은 허리도 우아하게
일본의 고령 여성복 브랜드 ‘마담토모코(マダムトモコ)’는 등이 굽은 여성 시니어가 편안함과 옷맵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상체가 구부러진 사람이 입어도 등 쪽의 옷감이 당겨져 올라가지 않도록 주름을 넣어 조정한 상의와 하의를 개발한 것이다. 최숙희 교수(한양사이버대학교 시니어비지니스학과)가 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칼럼에 따르면, 이 제조법은 특허를 받은 공법으로 편안함은 물론, 굽은 등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허리가 맞지 않는 옷 수선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담토모코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일본에서만 2만 명 가까이 되는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치코스, 중년 여성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
치코스(Chico’s)는 미국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 및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600개 이상의 매장과 121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물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의류 가격을 한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코스의 경영 철학은 여성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뒤집어 입을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의 기능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코스의 매력은 개인 스타일리스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에도 있다. 비용은 무료이며 전화상담도 가능하고, 매장을 방문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홈페이지에선 연중무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노화의 상징 NO, 패션 아이템 YES!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없어선 안 되는 도구다. 하지만 의료용 기구로 인식되고, 신체적 결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옴후(OMHU)’는 이런 시니어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지팡이를 개발했다. 덴마크어로 ‘아주 조심스럽게’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테일한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패션 지팡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충격에 강하고, 손잡이는 감촉이 부드러운 나무를 사용해 오래 쥐어도 불편함이 없다. 또한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해 벽에 세워둬도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가 3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고 색상도 6가지나 돼 소비자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국의 ‘엘더럭스(Elderluxe)’도 다양한 디자인의 지팡이를 판매하고 있다. 가죽 지팡이,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지팡이, 접이식 여행 지팡이 등 252개의 지팡이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도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주얼리 돋보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플루비(efluvi)’다. ‘efluvi’라는 회사 이름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스페인어 ‘efluvio(자연의 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돋보기는 굴절이 심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지만 이플루비의 돋보기 렌즈는 왜곡이 없는 독일 칼자이스 광학렌즈를 사용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앴다. 또 목걸이형 손잡이형, 문진형 돋보기를 직접 디자인해 휴대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주얼리 돋보기 외에도 브로치, 안경줄 등 시니어를 겨냥한 세련된 패션 아이템도 많다.
낡고 늙음이라는 고정 관념을 끊어내고 시니어 모델로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두 사람을 만났다. 시니어 모델 최초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소은영(제이액터스·75) 씨와 최근 핫한 모델 김칠두(더쇼프로젝트·64) 씨다. 늦은 데뷔이지만 내공 가득 담아 시니어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두 사람. 그들만의 패션 포인트와 패션 피플로서의 삶을 엿봤다.
인생, 이러니 참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Q.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처음부터 옷을 잘 입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동생이 그림을 그렸는데 옆에 있다 보니 색 배합에 관심이 생겼다. 일본에서 들여온 패션 잡지도 오래전부터 봐왔다. 그러다가 옷에 관심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치마나 바지를 못 입겠다고 하면 수선집에 가지고 가서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 입었다. 집 앞에 나갈 때 그냥 나가는 법이 없다. 어디를 가도 단정하게 챙겨 입고 나간다. 젊은 시절의 옷도 장롱에 그대로 있다. 가끔 입고 나가면 그때처럼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시니어 모델로서 늘 당당하게 옷을 입는다.
Q. 모델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일흔두 살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4년 차다. 어렸을 때 배우 김지미 씨가 나를 동생같이 예뻐했다. 탤런트가 되고 싶었는데 집안이 엄해서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다. 일흔이 넘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고민했다. 집에 앉아서 TV 보고, 친구 만나서 밥만 먹을 수는 없어서 나만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탭댄스와 한국무용을 배워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내 나이에 할 만한 활동들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시니어 모델 전문 교육기관인 제이액터스를 알게 됐다. 내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초반에 걱정이 좀 됐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딱 내 일이다 싶었다. 모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도전도 시작됐다. 재밌다.
Q. 나만의 원포인트 패션 비법이 있다면?
단연 스카프다. 대형 박스 2개에 스카프가 가득 들어 있다. 셀 수 없이 많다. 옷을 입을 때 스카프를 늘 염두에 두고 스타일링을 한다. 액세서리도 원래 크거나 화려한 것을 안 했는데 도전해보고 있다. 깔끔하고 캐주얼한 옷을 많이 입는다. 남들은 못 입어도 나라면 소화할 수 있는 옷이 좋다. 스카프도 매보면서 말이다. 스카프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 정말 좋은 패션 아이템이다. 친구들 옷을 가끔 골라주면 친구 남편들이 더 좋아한다. 옷을 고를 때 나이 고려는 안 해봤다. 브랜드도 전혀 신경 안 쓴다. 단돈 1만~2만 원짜리도 내가 입으면 남들이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Q. 시니어 모델 최초 타이틀이 있다던데?
2017년 서울패션위크 박종철 디자이너 무대에 섰다. 시니어 모델로는 최초였다. 시니어 모델의 무대 위 워킹과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오디션에 붙여주셨다. 다 남자 모델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12cm 킬힐을 신고 런웨이에 설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청심환을 먹고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지금도 계속 무대에 서고 있다.
Q.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모델 일을 한다고 해서 급격하게 살을 뺀 적은 없다. 내 생각에 다이어트가 좀 필요하다 싶을 때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체중이 50kg을 넘어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스트레칭을 하고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하체 근력을 키우는 스쿼트는 아침저녁으로 50번 씩, 하루 100번은 꼭 채운다. 피트니스센터는 성격에 맞지 않아 깨끗하고 좋은 목욕탕을 찾아 일주일에 세 번, 3시간 정도 있다 온다. 물속에서 걷고 스트레칭도 하고 말이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 반에는 꼭 잘 차린 아침식사를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Q. 모델로서 도전하고 싶은 스타일은?
시니어 모델 하면 단연 카르멘 델로피체 아닌가. 나는 일흔이 넘었는데도 흰머리가 안 난다. 그녀처럼 해보기 위해 탈색을 했다. 이제 머리를 좀 길러 제대로 스타일링을 해보고 싶다. 국제무대에도 나갈 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한국을 대표해서 어디든지 가고 싶은 의욕은 많다. 기대나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이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큰 무대에 서보고 싶어 건강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시간이다. 내 인생을 어떻게 끝까지 마무리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딸이 우리 집에서 열흘간 머물다 떠난 날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딸을 배웅하고 미용실에 들렀는데 일본에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한 것이다. 딸과 통화 중에“네가 내 딸이라 고마워”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미용실의 한 손님이 “참 듣기 좋은 말이네요”라고 했다고 원장님이 웃으며 전해줬다.
서둔야학 시절 나는 이별을 자주 했다. 야학생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1년 정도 봉사활동을 하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떠날 때마다 너무 슬퍼서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에게는 절대로 정을 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을 주지 않은 줄 알았는데 선생님들이 떠날 때마다 나는 또 울고 있었다. 마음 아프지 않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별인 듯싶다. 딸과도 매년 두 번씩 만나 며칠간 같이 있는데 헤어질 때마다 울게 된다. 정 많고 눈물 많은 내가 어쩌다 하나밖에 없는 딸과 떨어져 살게 되었는지…. 이것도 운명이겠지!
딸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나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해서 온다. 2017년에는 딸의 배려로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보그전'을 봤는데 너무 아름답고 멋졌다. 패션을 좋아하는 내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보그전은 패션디자이너와 패션모델, 그리고 사진작가와 현장 감독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색채의 향연과 빛의 향연 속에서 모델들은 마음껏 아우라를 내뿜었다. 그야말로 극치의 아름다움이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된다"라고.
"야~~ 멋있다!" "정말 환상적이다!"
딸애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흥분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지켜보며 뿌듯해했다.
지금은 스마트시대다. 내 가슴속에 각인된 멋진 그 시간은 휴대폰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이따금 꺼내 보며 딸과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본다.
2015년에는 뮤지컬 '엘리자벳'을 같이 관람하는 호사를 누렸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의 왕비인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 칭할 만큼 빼어난 미인이며 몸매도 아름다운 그녀는 화려한 궁중 의상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그녀의 모습은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완전 내 취향이라서 한눈에 빠져버렸다. 요제프 왕세자는 그녀의 언니와 혼인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와 결혼한다.
나이가 들수록 패션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하는가? 일찍이 패션 잡지들은 입을 모아 중년이야말로 일생일대 가장 화려하게 입을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세련된 옷과 한껏 멋을 부린 패션은 중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면서 더 야무지게 꾸밀 것을 권했다. 지금 거울 앞에 서서 당신의 체형부터 진단해보라. 20대의 화려함을 한참 전에 떠내 보낸 쓸쓸한 몸이 보일 것이다. 그 쓸쓸함을 채워줄 패션에 대한 팁을 전수한다. ‘한껏 멋 부려도 좋을’ 중년의 특권을 이제 마음껏 누려보자.
몸통에 살이 몰려 있는 사과형 몸매
사과형 몸매는 주로 허리와 엉덩이 쪽에 살이 몰려 있다. 대신, 멋진 다리 혹은 가슴을(물론 둘 다 가진 축복받은 몸매도 있다) 가졌을 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멋진 부분들을 드러내고 몸통 부위의 살을 가리는 것이다. 엠파이어 라인이나 긴 상의는 당신의 몸매를 돋보이게 해준다. 라펠이 달려 있거나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상의로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고, 될 수 있는 한 어두운 색의 베이직하고 심플한 상의를 입자. 수트를 입을 때도 짧거나 박시한 재킷은 피하는 것이 좋다. 주름치마 역시 절대 당신의 옷장에 있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여자들이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요즘의 세태가 무서워요. 미친 짓이죠. 저는 풍만한 몸매가 좋아요. 어떨 때는 레드카펫 위의 제 모습이 임신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저는 상당히 풍만한 몸매라 가녀린 것과는 거리가 멀죠. 그래서 제 몸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가려주는 옷을 입어요. 거의 모든 옷이 그렇죠.”
사과형 몸매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할리우드 배우 캐서린 제타존스의 말이다. 한국 나이로 올해 51세가 된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이런 패션 노하우 덕분이다.
하체가 풍만한, 서양배 몸매
만약 당신이 엉덩이가 크거나 상체보다 하체가 풍만하다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양배 체형이다. 이런 유형은 허리 위쪽으로 볼륨감을 주는 스타일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더하고, 우아한 상체와 슬림한 허리를 강조해야 한다. 밝고 대담한 컬러의 상의는 당신의 풍만한 하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네크라인 부분에 장식이 많은 상의를 선택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체를 보완해주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하체를 강조하는 튜브, 펜슬 스커트는 피하자. 포켓이나 프린트가 화려한 팬츠 역시 웅장한 하체를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런 몸매는 오히려 몸에서 가장 가는 부분, 즉 허리에 포인트를 주는 게 좋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니트 드레스 혹은 셔츠 드레스에 허리 벨트를 더해주는 패션은 서양배 체형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룩이다.
볼륨 없이 마른 일자형 몸매
젊었을 때는 마른 일자형 몸매가 여자들의 로망이지만, 나이 들수록 이런 몸매 역시 고민이 따른다. 조금만 소홀하게 입어도 초라해 보이기 쉬운 스타일이기 때문. 일자형 몸매는 구조적인 옷을 통해 몸에 볼륨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빳빳한 소재의 아우터에 폭이 넓은 벨트로 라인을 만들어준다든지, 주름 장식의 옷으로 몸매를 보완해준다. 화려한 옷보다는 실루엣이 과감한 옷을 고르자. 팬츠 역시 스트레이트 핏보다는 주름이나 볼륨이 있는 게 낫다. 청바지는 스키니한 것보다는 보이프렌드 핏처럼 낙낙한 스타일이 어울린다. 상의는 노출이 있는 것보다는 스트라이프 같은 프린트가 더해진 디자인으로 볼륨감을 더하자. 재킷 또한 헐렁한 소재보다는 어깨와 허리 라인이 잡혀 있는 것이 몸의 균형미를 살려준다.
아담한 키에 왜소한 체형
때로는 부족함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오는 법. 포켓이나 플리츠, 턴업(밑단을 접어 올리는 것), 러플, 프릴 같은 잡다한 장식을 피하라. 이런 장식은 옷의 라인을 살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은 키를 더 부각시킨다. 정교하게 재단된 옷이나 피팅된 옷(배기 스타일은 절대 삼가자!)에 다리를 많이 드러낸 스타일은 당신을 보다 늘씬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만약 일자형 몸매에 아담한 키를 가졌다면 신발 선택도 중요하다. 3cm 정도의 굽을 가진 미드힐은 중년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여자들이 미드힐을 신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건, 하이힐이 주는 마법 같은 키 연장술이 없다는 점이죠. 이럴 때는 발가락 클리비지(발가락 사이의 골)가 드러나는 디자인을 고르는 게 좋아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볼 수 있죠.”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의 충고만 따른다면 하이힐과 미니스커트가 내는 여성미와는 다른, 미드힐과 미디스커트 주는 우아한 중년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상체가 풍만한 역삼각형 또는 딸기형 몸매
넓은 어깨 또는 큰 가슴을 가진 딸기형 몸매는 상대적으로 하체가 왜소해 보인다. 이런 몸매에서 스타일의 추는 하의에 맞춰져야 한다. 풍성한 스커트나 와이드 팬츠는 필수 아이템. 여기에 화려한 컬러가 더해져도 괜찮다. 대신 딱 달라붙는 제깅스 스타일의 하의나 브이 넥, 퍼프소매, 터틀넥은 당신의 상체를 더 부각시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 어깨의 볼륨을 줄여줄 래글런이나 돌먼 슬리브의 상의에 하의는 반대로 볼륨을 살려줄 플레어나 플리츠스커트나 아웃포켓이 달린 넉넉한 핏의 바지를 스타일링하자. 아우터를 고를 때도 더블 브레스티드처럼 부피감이 있는 것보다는 칼라리스의 싱글 버튼을 고르면 몸매를 좀 더 보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