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감성도 아니고 ‘갬성’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감성의 신조어로 ‘감성+추억’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아날로그적 향수가 그립다면 나주여행을 떠나보자.
나주는 천년 고도인 도시다. 고샅길(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나주 시내를 걸으며 갬성 나주와 마주할 수 있다.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붓는 토렴이라는 과정을 거쳐 75℃의 먹기에 알맞은 온도로 나오는 나주곰탕과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질 정도로 톡 쏘는 영산포 홍어는 나주여행의 특미다.
나주여행의 요즘 테마는 쉼이다. 특별한 잠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한옥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룻밤을 추천한다. 1939년 나주 근대문화를 2017년에 마중한 카페이자 갤러리, 게스트하우스인 ‘39-17마중’에서 한옥의 창호가 자연과의 소통임을 느끼며 잠을 잔다. 두 겹의 미닫이 문 너머에 금목서, 은목서, 느티나무, 회화나무 잎이 흔들리고 대숲을 지나는 시원한 바람소리가 밤새 소곤거린다.
난파고택으로 불렸던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을 막아낸 공로로 해남군수에 제수된 정석진의 큰 아들 정우찬이 살았던 집터다. 정우찬의 손자인 정덕중이 1939년에 어머니를 위해 다시 집을 지어 드리며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는데 전남의 유일한 건축가였던 박영만이 설계하고 대목 김영창이 시공하였다.
한·일·양 건축의 좋은 점을 취합한 목서원은 내부 창호, 온돌은 한식, 붙박이 수납장과 집안을 지탱하는 뼈대와 구조는 일본식, 여기에 서양의 방갈로 느낌까지 가미하였다. 목서원은 건물 앞과 옆에 100년이 넘은 금목서, 은목서 두 그루가 자라고 있어서 최근에 붙여진 이름이다. 어머니가 쓰실 공간에 대한 편리성과 가옥의 멋을 함께 추구하고 있어 이채롭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는 방에는 사용하던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일본식 수납장을 열면 천연염색 소재를 사용한 이불이 정갈하게 개켜있다.
언덕 위에 아담한 한옥 난파정도 게스트하우스로 이용되고 있다. 난파(蘭坡)는 정석진의 호로 ‘난이 가득 피어있는 가파른 언덕’을 의미한다. 난파정은 본래 제당으로 지어졌다. 정우찬이 아버지 정석진을 추모하기 위해 1915년에 지은 건물을 복원하고 재단장 하였다. 나주천이 내려다보이는 볕 좋은 남향에 위치한 난파정은 대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멋스러우나 금성산을 끊어내듯이 광주, 목포간 고속화 도로가 지나고 있음이 옥에 티다.
예전 쌀 창고자리였던 곳을 개조한 카페 바로 옆에는 나주향교가 있다. 카페에 앉아있으나 감각적으로는 옛 나주의 한가운데에 홀연히 떨어진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마당 곳곳에는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다. 금목서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앞에 두고 바람을 느낀다. 시간이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마음은 한껏 여유롭다.
옛것을 최대한 살려서 복원한 목서원, 난파정과 나주향교, 석류꽃 가득 핀 작은 골목길들을 걸으며 만나는 금성관, 서성문까지... ‘갬성 나주’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바다 위에 길게 선을 그은 새만금방조제의 시작점, 새만금홍보관부터 줄포의 자연생태공원까지 66km, 8개의 구간으로 이루어진 변산마실길. 서해바다의 넉넉함과 소박한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구간은 썰물 때 진면목을 드러내는 구간으로 물때를 맞춰 걷기에 좋다. 물이 빠져나간 뒤 드러나는 갯벌과 모래사장은 단단하여 걷기에 적당하다. 5km 거리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지만 더 천천히 2~3시간을 걸어도 볼거리 느낄거리가 꽤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붉은 바위 절벽에 패류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갯내음이 진한 바다가 펼쳐진다. 갯바위 구간을 넘고 질척거리는 갯벌 위를 지나기도 한다. 바람에 꽃잎을 떨어뜨린 산벚나무가 절벽에 뿌리를 내린 채 위태롭게 서있는 풍경도 이채롭다.
밀물일 때는 해안 윗길을 따라 걷는다. 숲길이었다가 바다 전경이 훤히 내다보이는 구간이 나타나곤 한다. 해안선에 따라 구불 구불해 바닷길보다 길게 느껴진다. 이정표가 드문드문 세워져 있어 제대로 가고 있나 슬며시 걱정이 들 즈음에야 길이 나타난다. 너무 이정표에 연연하지 말고 해안 가까이 난 길 자욱을 따라간다는 마음으로 걷는 것이 좋다.
새만금홍보관에서 시작되는 길 초입에는 고무신 조형물과 야생화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니 바닷길로 내려가게 되더라도 한번쯤 둘러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 지점인 송포 선착장에서 시원한 물회나 소면으로 끓인 바지락국수로 먹는 점심이 별미다.
낡고 늙음이라는 고정 관념을 끊어내고 시니어 모델로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두 사람을 만났다. 시니어 모델 최초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소은영(제이액터스·75) 씨와 최근 핫한 모델 김칠두(더쇼프로젝트·64) 씨다. 늦은 데뷔이지만 내공 가득 담아 시니어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두 사람. 그들만의 패션 포인트와 패션 피플로서의 삶을 엿봤다.
인생, 이러니 참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최근 SNS를 보다 보면 신인 모델이라는데 하얗게 세어버린 긴 머리와 수염 덥수룩한 사나이가 눈에 띈다. 패션모델 데뷔 1년차 김칠두. 시니어 모델이라기보다는 아주 늦게 데뷔한 신인 모델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우 16만 명이 훌쩍 넘은 지도 오래. 그의 SNS에 쓰인 젊은 팬들의 댓글을 보면 중후함에서 나오는 특별한 스타일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원래부터 내가 제일 잘나갔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면 머리에 ‘잘생겼다’란 네 글자가 박힌다. 환갑이 훌쩍 넘었고 조만간 어르신 교통카드도 나온다는데 멋짐 폭발은 감출 수가 없다. 호피 무늬 아우터에 챙 넓은 중절모, 긴 수염 휘날리며 압구정 거리를 걸으니 런웨이가 따로 없다. 모델 워킹 수업 세 번 만에 2018년 F/W 헤라서울패션위크 키미제이(KIMMY.J) 모델로 섰다는데 어느 별에서 왔는가.
“젊었을 때는 집에서 혼자 포즈 연습 좀 했습니다. 그래서 무대에 서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알고 보니 20대 초반 무교동의 한 의상실에서 2년여 일했던 경험이 있다고. 옷에 대한 관심 혹은 옷 잘 입게 된 계기를 물으면 그 시절로 자꾸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당시 패션 스타일을 배우면서 일했어요. 앙드레 김 선생님이 나오신 국제복장학원도 좀 다녔고요. 그때가 기성 제품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의상실 경기가 하락세여서 2년만 하고 일을 그만뒀죠.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가정 형편상 복장학원을 더 이상 못 다녔지만 관심은 늘 패션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패션 쪽 일을 그만두고 나니 그 후로 모델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모델 경연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했죠. ㈜태창 전속모델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패션모델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이번에도 그는 꿈을 접어야 했다.
“먹고사는 게 바빴거든요. 그 당시의 모델은 돈 없으면 못하는 직업이었어요. 결혼하고 나서 여유가 생겨서 남대문 커먼플라자에서 여성의류 도매 장사를 했어요. 제가 직접 디자인을 해서요. 그때만 해도 전문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옷 잘 입는 비결 따로 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품고 있었으니 패션 센스는 자연스레 장착됐을 뿐이다. 옷이건 액세서리건 김칠두 씨가 고르고 찾아서 입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남편 옷 고르는 임무가 아내 몫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저는 저만의 코디를 합니다. 주로 흰색을 좋아해서 입고 말이죠. 옷 잘 입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 감각을 키우는 거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요? 저는 잡지나 영화를 많이 봐요. 요즘은 인스타그램에도 정보가 많이 올라오니까 눈길이 가는 스타일은 한참 보면서 숙지합니다. 트렌드를 체감하려고요.”
TPO(시간·장소·상황)에 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옷을 맞춰 입는 거도 중요하죠. 모델하기 전에 식당을 할 때는 머리도 길고 해서 주로 개량한복을 입고 일했습니다. 고깃집이나 한식당을 주로 해왔으니 분위기를 맞춘 거죠. 지금과 같은 캐주얼은 입기 힘들었어요. 마른 체격을 고려해서 풍성한 옷을 자주 입습니다. 바지는 통은 넓지만 밑이 좁아지는 것을 고릅니다.”
환갑 넘어 패피에 합류하다
그의 패션 화보를 보면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인터넷 쇼핑몰, 여성 잡지 등에서도 그의 이미지를 원한다.
“원래 옷 선택할 때 시니어용, 주니어용 가리지 않아요.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입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입어보는 게 아니라 제 스타일의 옷들이니 새로울 게 없죠. 화보 촬영 전에 콘셉트 등에 대해 사진작가와 얘기를 나눠요. 또 작가들이 뭘 원하는지 저 스스로 콘셉트를 찾고 빠르게 숙지하려고 합니다. 룩북(화보) 촬영이 너무 좋아요.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은 좋은 것들뿐입니다.”
‘패완얼’ 김칠두
최근 건강관리를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는 김칠두 씨. 먹어도 찌지 않는 체질이기에 특별히 운동을 해본 적은 없단다.
“몸 관리라는 거 안 해봤어요. 소속사 아카데미에 일주일에 두 번 나와서 워킹과 동작 등을 반복해서 연습하고요. 소속사 대표님과 지인들이 요가를 권해서 배우게 됐죠. 제 나이에 피트니스센터에서 무거운 거 드는 거보다 훨씬 좋겠더라고요.”
모델 일과 몸 관리를 하면서 쇼핑도 꾸준히 한다. 평택에서 살다 재작년 말 서울로 이사 오면서 동묘 지역을 선택했다.
“그곳에 옷들이 많잖아요. 제가 워낙 좋아하니까 이사도 그곳으로 했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는지?
“네.(웃음) 잘생겼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우리 연배에 나만큼 잘생긴 사람 별로 못 봤어요. 너무 자화자찬했나요?”
그렇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낡고 늙음이라는 고정 관념을 끊어내고 시니어 모델로 생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 두 사람을 만났다. 시니어 모델 최초 서울 패션위크 무대에 오른 소은영(제이액터스·75) 씨와 최근 핫한 모델 김칠두(더쇼프로젝트·64) 씨다. 늦은 데뷔이지만 내공 가득 담아 시니어의 멋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두 사람. 그들만의 패션 포인트와 패션 피플로서의 삶을 엿봤다.
인생, 이러니 참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Q.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처음부터 옷을 잘 입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동생이 그림을 그렸는데 옆에 있다 보니 색 배합에 관심이 생겼다. 일본에서 들여온 패션 잡지도 오래전부터 봐왔다. 그러다가 옷에 관심이 많아졌다. 친구들이 치마나 바지를 못 입겠다고 하면 수선집에 가지고 가서 새로운 옷으로 만들어 입었다. 집 앞에 나갈 때 그냥 나가는 법이 없다. 어디를 가도 단정하게 챙겨 입고 나간다. 젊은 시절의 옷도 장롱에 그대로 있다. 가끔 입고 나가면 그때처럼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시니어 모델로서 늘 당당하게 옷을 입는다.
Q. 모델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일흔두 살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4년 차다. 어렸을 때 배우 김지미 씨가 나를 동생같이 예뻐했다. 탤런트가 되고 싶었는데 집안이 엄해서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다. 일흔이 넘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고민했다. 집에 앉아서 TV 보고, 친구 만나서 밥만 먹을 수는 없어서 나만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다. 탭댄스와 한국무용을 배워봤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내 나이에 할 만한 활동들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시니어 모델 전문 교육기관인 제이액터스를 알게 됐다. 내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초반에 걱정이 좀 됐지만 잘할 자신이 있었다. 정말 열심히 했다. 딱 내 일이다 싶었다. 모델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도전도 시작됐다. 재밌다.
Q. 나만의 원포인트 패션 비법이 있다면?
단연 스카프다. 대형 박스 2개에 스카프가 가득 들어 있다. 셀 수 없이 많다. 옷을 입을 때 스카프를 늘 염두에 두고 스타일링을 한다. 액세서리도 원래 크거나 화려한 것을 안 했는데 도전해보고 있다. 깔끔하고 캐주얼한 옷을 많이 입는다. 남들은 못 입어도 나라면 소화할 수 있는 옷이 좋다. 스카프도 매보면서 말이다. 스카프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 정말 좋은 패션 아이템이다. 친구들 옷을 가끔 골라주면 친구 남편들이 더 좋아한다. 옷을 고를 때 나이 고려는 안 해봤다. 브랜드도 전혀 신경 안 쓴다. 단돈 1만~2만 원짜리도 내가 입으면 남들이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Q. 시니어 모델 최초 타이틀이 있다던데?
2017년 서울패션위크 박종철 디자이너 무대에 섰다. 시니어 모델로는 최초였다. 시니어 모델의 무대 위 워킹과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오디션에 붙여주셨다. 다 남자 모델이었고 여자는 나 하나였다. 12cm 킬힐을 신고 런웨이에 설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청심환을 먹고 겨우 오를 수 있었다. 지금도 계속 무대에 서고 있다.
Q.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모델 일을 한다고 해서 급격하게 살을 뺀 적은 없다. 내 생각에 다이어트가 좀 필요하다 싶을 때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체중이 50kg을 넘어본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스트레칭을 하고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는 무조건 걷는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하체 근력을 키우는 스쿼트는 아침저녁으로 50번 씩, 하루 100번은 꼭 채운다. 피트니스센터는 성격에 맞지 않아 깨끗하고 좋은 목욕탕을 찾아 일주일에 세 번, 3시간 정도 있다 온다. 물속에서 걷고 스트레칭도 하고 말이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7시 반에는 꼭 잘 차린 아침식사를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Q. 모델로서 도전하고 싶은 스타일은?
시니어 모델 하면 단연 카르멘 델로피체 아닌가. 나는 일흔이 넘었는데도 흰머리가 안 난다. 그녀처럼 해보기 위해 탈색을 했다. 이제 머리를 좀 길러 제대로 스타일링을 해보고 싶다. 국제무대에도 나갈 수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다. 한국을 대표해서 어디든지 가고 싶은 의욕은 많다. 기대나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나이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 큰 무대에 서보고 싶어 건강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시간이다. 내 인생을 어떻게 끝까지 마무리하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 근사하게 나이 들기 하야시 유키오, 하야시 다카코 저ㆍ마음산책
일본에서 ‘패피(패션피플) 부부’로 알려진 하야시 부부가 말하는 ‘어른의 멋’과 ‘패션 철학’을 들려준다. 40년간 옷을 만들고 판매해온 부부는 “일상이 패션의 밑거름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근사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일상복’부터 신경 쓰라고 조언한다. “멋이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됨됨이”라며 평소 입는 옷이 곧 그 사람의 특성과 분위기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야시 부부 역시 젊은 시절에는 실험적인 패션을 즐겼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시간의 흐름에 더욱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노안이 오면 다양한 안경으로 멋을 내고, 몸매가 망가지면 변화된 신체 비율에 맞춰 기장을 맵시 있게 수선하는 식이다. 책의 3장 ‘사소함이 즐겁다’에서는 부부가 직접 입고 걸친 옷과 패션 아이템들을 사진과 함께 스타일링 비법으로 제시한다. 그들은 책을 통해 “어깨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자”며 서로를 격려한다.
◇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 사라 윌슨 저ㆍ나무의철학
불면증, 강박장애, 우울증, 경조증 등 평생 8가지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한 여성의 20년에 걸친 심리 보고서다. 인간이 다스리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기복이나 중독 증상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방법과 노하우를 엿볼 수 있다.
◇ 나를 지켜준 편지 김수우, 김민정 저ㆍ열매하나
부산의 50대 시인 김수우와 서울의 20대 여성 김민정이 1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담았다. 세대 차이와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고민 속에서 글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두 여성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다.
◇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슐러 K. 르 귄 저ㆍ황금가지
2018년 타계한 판타지 소설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이 2010년부터 5년 동안 블로그에 남긴 글 50여 편을 담은 생애 마지막 에세이다. 문학과 정치적 이슈를 비롯해 여든을 넘긴 저자가 바라본 노년의 삶과 사색이 드러난다.
◇ 50대 또 한 번 나 혼자만의 시간 나카미치 안 저ㆍ시그마북스
남편과의 별거, 자녀의 성장 등으로 50대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한 저자가 경험한 진취적이고 즐거운 일상을 이야기한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하며, 성숙한 홀로서기 노하우를 제안한다.
나이가 들수록 패션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하는가? 일찍이 패션 잡지들은 입을 모아 중년이야말로 일생일대 가장 화려하게 입을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세련된 옷과 한껏 멋을 부린 패션은 중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면서 더 야무지게 꾸밀 것을 권했다. 지금 거울 앞에 서서 당신의 체형부터 진단해보라. 20대의 화려함을 한참 전에 떠내 보낸 쓸쓸한 몸이 보일 것이다. 그 쓸쓸함을 채워줄 패션에 대한 팁을 전수한다. ‘한껏 멋 부려도 좋을’ 중년의 특권을 이제 마음껏 누려보자.
몸통에 살이 몰려 있는 사과형 몸매
사과형 몸매는 주로 허리와 엉덩이 쪽에 살이 몰려 있다. 대신, 멋진 다리 혹은 가슴을(물론 둘 다 가진 축복받은 몸매도 있다) 가졌을 것이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멋진 부분들을 드러내고 몸통 부위의 살을 가리는 것이다. 엠파이어 라인이나 긴 상의는 당신의 몸매를 돋보이게 해준다. 라펠이 달려 있거나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상의로 시선을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이 좋고, 될 수 있는 한 어두운 색의 베이직하고 심플한 상의를 입자. 수트를 입을 때도 짧거나 박시한 재킷은 피하는 것이 좋다. 주름치마 역시 절대 당신의 옷장에 있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다.
“여자들이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선호하는 요즘의 세태가 무서워요. 미친 짓이죠. 저는 풍만한 몸매가 좋아요. 어떨 때는 레드카펫 위의 제 모습이 임신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저는 상당히 풍만한 몸매라 가녀린 것과는 거리가 멀죠. 그래서 제 몸매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가려주는 옷을 입어요. 거의 모든 옷이 그렇죠.”
사과형 몸매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할리우드 배우 캐서린 제타존스의 말이다. 한국 나이로 올해 51세가 된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이런 패션 노하우 덕분이다.
하체가 풍만한, 서양배 몸매
만약 당신이 엉덩이가 크거나 상체보다 하체가 풍만하다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양배 체형이다. 이런 유형은 허리 위쪽으로 볼륨감을 주는 스타일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더하고, 우아한 상체와 슬림한 허리를 강조해야 한다. 밝고 대담한 컬러의 상의는 당신의 풍만한 하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또한 네크라인 부분에 장식이 많은 상의를 선택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상체를 보완해주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하체를 강조하는 튜브, 펜슬 스커트는 피하자. 포켓이나 프린트가 화려한 팬츠 역시 웅장한 하체를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이런 몸매는 오히려 몸에서 가장 가는 부분, 즉 허리에 포인트를 주는 게 좋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 니트 드레스 혹은 셔츠 드레스에 허리 벨트를 더해주는 패션은 서양배 체형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스타일리시한 룩이다.
볼륨 없이 마른 일자형 몸매
젊었을 때는 마른 일자형 몸매가 여자들의 로망이지만, 나이 들수록 이런 몸매 역시 고민이 따른다. 조금만 소홀하게 입어도 초라해 보이기 쉬운 스타일이기 때문. 일자형 몸매는 구조적인 옷을 통해 몸에 볼륨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빳빳한 소재의 아우터에 폭이 넓은 벨트로 라인을 만들어준다든지, 주름 장식의 옷으로 몸매를 보완해준다. 화려한 옷보다는 실루엣이 과감한 옷을 고르자. 팬츠 역시 스트레이트 핏보다는 주름이나 볼륨이 있는 게 낫다. 청바지는 스키니한 것보다는 보이프렌드 핏처럼 낙낙한 스타일이 어울린다. 상의는 노출이 있는 것보다는 스트라이프 같은 프린트가 더해진 디자인으로 볼륨감을 더하자. 재킷 또한 헐렁한 소재보다는 어깨와 허리 라인이 잡혀 있는 것이 몸의 균형미를 살려준다.
아담한 키에 왜소한 체형
때로는 부족함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오는 법. 포켓이나 플리츠, 턴업(밑단을 접어 올리는 것), 러플, 프릴 같은 잡다한 장식을 피하라. 이런 장식은 옷의 라인을 살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작은 키를 더 부각시킨다. 정교하게 재단된 옷이나 피팅된 옷(배기 스타일은 절대 삼가자!)에 다리를 많이 드러낸 스타일은 당신을 보다 늘씬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만약 일자형 몸매에 아담한 키를 가졌다면 신발 선택도 중요하다. 3cm 정도의 굽을 가진 미드힐은 중년 패션에서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여자들이 미드힐을 신을 때 가장 두려워하는 건, 하이힐이 주는 마법 같은 키 연장술이 없다는 점이죠. 이럴 때는 발가락 클리비지(발가락 사이의 골)가 드러나는 디자인을 고르는 게 좋아요.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볼 수 있죠.”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찬 루부탱의 충고만 따른다면 하이힐과 미니스커트가 내는 여성미와는 다른, 미드힐과 미디스커트 주는 우아한 중년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상체가 풍만한 역삼각형 또는 딸기형 몸매
넓은 어깨 또는 큰 가슴을 가진 딸기형 몸매는 상대적으로 하체가 왜소해 보인다. 이런 몸매에서 스타일의 추는 하의에 맞춰져야 한다. 풍성한 스커트나 와이드 팬츠는 필수 아이템. 여기에 화려한 컬러가 더해져도 괜찮다. 대신 딱 달라붙는 제깅스 스타일의 하의나 브이 넥, 퍼프소매, 터틀넥은 당신의 상체를 더 부각시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다. 어깨의 볼륨을 줄여줄 래글런이나 돌먼 슬리브의 상의에 하의는 반대로 볼륨을 살려줄 플레어나 플리츠스커트나 아웃포켓이 달린 넉넉한 핏의 바지를 스타일링하자. 아우터를 고를 때도 더블 브레스티드처럼 부피감이 있는 것보다는 칼라리스의 싱글 버튼을 고르면 몸매를 좀 더 보완할 수 있다.
요즘은 교복 자율화 실시로 학생들의 복장이 제각각이지만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교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기껏해야 나팔바지에 생선 등처럼 주름을 세우거나, 목 칼라 주변에 호크 몇 개 더 달아 덜렁거리도록 해서 멋 좀 내는 게 전부였다. 대학생이 돼서야 비로소 교복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청바지, 티셔츠가 다였다. 심지어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면 나오는 ‘윤동주 시인’의 복장처럼, 검은 교복 상의를 걸치고 다녔다. 그거 하나만 입으면 뭘 입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됐고 비싼 옷을 살 필요도 없었다. 4년 동안 그러고 다니다가 취업을 하니 그때부터 양복이 정복이었다. 수십 년간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녀야 했다. 넥타이는 정말 싫었다. 휴일에 경조사가 생겨 넥타이를 매야 할 때는 마치 누가 내 목을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은퇴를 하면서 넥타이의 압박에서 겨우 풀려났지만 그마저도 영원한 이별은 아니었다.
제2의 인생 설계 후 강의를 하게 됐는데 의무적으로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됐다. 깔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편하게 입고 다니니 자유롭고 젊어 보이기까지 해서 좋았다. 내가 선호하는 건 진한 색깔의 옷들이다. 나이 들수록 밝게 입는 게 좋다고 해서 티셔츠만큼은 다양한 색상을 골라 입는다. 날씨에 따라 가벼운 조끼를 속에 입고 노타이 차림에 재킷을 걸치면 그만이다. 바지는 청바지도 좋고, 상황에 따라 언밸런스한 정장 바지도 잘 어울린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싶다. 어떤 옷은 편한 맛은 있지만 체격에 안 어울리고, 어떤 옷은 디자인은 좋은데 얼굴색과 잘 맞지 않는다. 이럴 때는 아내가 옆에서 코디를 해준다. 아내의 패션 감각은 남다르다. 잘 맞춰서 골라주는 옷을 입으면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실 내가 좋아하게 된 패션도 아내가 추천한 옷이다. 그 옷을 자주 입다 보니 이제는 내 전용 패션이 됐다. 패션 감각으로 따지면 나는 거의 문외한이다. 계절이 바뀔 때가 제일 부담스럽다. 바쁘게 지내다 보면 옷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봄이 왔는지도 모르고 아직 겨울옷을 입고 있고, 가을이 다 지나고 초겨울이 왔는데도 반소매를 입고 외출해 떨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던 사람이 결혼 후 아내의 달달한 잔소리를 들으면서 무딘 감각이 점점 살아났다. 요즘 내 옷차림은 많이 세련되어졌다. 모임에 나가 사람들에게 패션 감각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우쭐해진다.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냐? 비결이 뭐냐?”라고 묻는 친구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진다.
나이 들수록 옷을 정갈하게 잘 입어야 한다. 여든이 넘은 장모님은 병원에 갈 때면 항상 장롱에서 깨끗하고 좋은 옷을 꺼내 입으며 “잘 입고 가야지, 차림이 추레하면 간호사들도 우습게 봐” 하신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옷 잘 입는 비법이 하나 있다. 아내 말을 잘 들으면 된다. 그리고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역시 당신의 패션 감각은 최고야!” 그러면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고 가정도 화목해진다. 자신에게 패션 감각이 있어도 옷 구매와 외출복 코디는 아내에게 맡기는 게 어떨까? 아내에게는 남편 꾸며주는 시간이 큰 기쁨 중 하나일 테니까….
한창 댄스스포츠를 즐길 때 파티가 있는 날이면 양복 대신 턱시도를 입고 나갔다. 격식을 차려보자는 의미였다. 턱시도를 입을 때는 나비넥타이를 맸다. 검정색, 흰색 나비넥타이가 대부분인데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호텔 종업원이나 연예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나비넥타이를 매는 게 어색했다. 그러나 자꾸 매다 보니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개성 있어 보여 좋았다. 강연이나 파티 등 특별한 자리에 나갈 때는 나비넥타이를 즐겼다. 작은 차이이지만 패션 감각이 남달라 보였다. 그 뒤 남자 패션은 목이 포인트라는 걸 알게 됐다.
그다음으로 관심을 가진 아이템이 스카프다. 역시 포인트는 목이다. 나는 땡땡이 무늬 스카프를 선호한다. 컬러는 검정색이나 회색 등 무난한 것을 고른다. 비스코스 소재로 만든 얇은 스카프를 하고 나가면 “그거 여자 거 아녜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남자가 스카프를 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멋을 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 시선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스타일대로 하고 다녀야 한다. 네팔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을 때도 스카프를 했다. 스카프는 스타일리시한 멋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보온성도 있다. 목을 감싸는 넥워머 위에 스카프를 한 번 더 두르면 패션 감각이 돋보인다. 먼지가 앞을 가릴 정도로 혼탁한 카트만두 시내를 관광할 때는 스카프가 마스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독특한 전시가 열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패션 아이콘인 아이리스 아펠(Iris Apfel)의 옷장을 소재로 한 전시였다. 당시 아펠의 나이는 83세였다. 그녀의 옷장에는 1960년대의 파리 패션을 대표하는 주요 의상은 물론, 터키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사 모은 다양한 색감의 의상과 티베트 지역의 보석이 가득했다. 세상을 향한 한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이 녹아 있는 저장고가 인간의 옷장임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그녀의 옷장(Wardrobe)은 이후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컬렉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6년 랄프 로렌의 홈 컬렉션은 아펠의 직물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고, 메이크업 전문 브랜드 M·A·C은 2012년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컬러를 이용해 색조 제품을 내놓았다. 현재 아펠은 9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패션계를 매혹하고 있다. 최근 시니어 모델이 매체를 장악하는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시니어 패션 블로거와 스타일리스트들이 연일 패션쇼의 앞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년의 백발이 성성한 모델들이 패션을 비롯한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의 핵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멋 내기 딱 좋은 나이
패션 역사에서 젊은 여성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그 이전만 해도 파리의 오트 쿠튀르의 디자이너들은 젊은 모델을 고집하지 않았다. 발렌시아가도 기혼의 중년 여성을 주로 기용했고, 이브 생 로랑도 다르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일수록 ‘나이’라는 요소보다 영원한 여성성과 인간의 아름다움에 더 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1960년대, 청년문화의 등장과 함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공격하며 자신의 미감을 자신 있게 드러냈다.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풍족한 경제력도 원인이었다. 당시 소비의 주요 계층은 청년이었다. 이후 패션계는 젊음의 활력과 아름다움을 미의 원천으로 둔갑시켰고, 소비재 산업도 이에 호응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법.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나이대의 예법과 문화, 가치관을 쉽게 접하면서 ‘자신의 나이’에 대해 생각하던 기존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과 사회적 성숙을 이룬 세대가 패션시장 전면의 소비자로 등장하면서 노년 세대의 스타일, 시니어 시크(Senior Chic)에 대한 열망도 한층 커가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아이리스 아펠은 뉴스 인터뷰에서 “늙어간다는 거, 그게 확 드러나는 게 언제일까요? 그건 옷을 젊어 보이게 입으려고 혈안이 될 때예요”라고 말했다. 노년은 그 자체로 찬미의 대상이다. 노년을 상징하는 주름은 생의 훈장과 같은 것이라며 더 이상 생물학적 시계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이들이 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노래 가사는 노년의 어르신들이 더 이상 아픈 몸을 구석구석 눌러가며 푸념조로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미국의 패션 매거진 ‘얼루어(Allure)’는 더 이상 안티에이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했다. “안티에이징이란 단어가 노화(aging)를 무의식중에 우리가 싸워내야 하는 삶의 조건처럼 만든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노년을 다루는 언어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언어부터 노년을 부끄럽게 만들면, 그 언어를 쓰며 우리는 자연스레 노년에 대해 부정적 인상을 갖게 된다. 노년은 우리 스스로 의미를 복원하고, 창조하는 시기여야 한다.
‘시니어 시크’를 위한 원칙
패션은 노년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있다. 옷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과 같은 우리의 외양을 창조하는 도구는 살아온 생의 서사를 쓰는 장치다. 노년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과 결과물을 숙성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시기다. 노년의 패션 스타일링은 젊은 날의 방식과 다른 신중함과 관점이 요구된다.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내적인 자신감이 밖으로 표출돼야 한다. 옷태라는 단어에서 태(態)란 한자가 ‘내 마음이 막힘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변화하는 신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넉넉한 실루엣의 옷을 입는 일도 피해야 한다. 시니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다. 패션은 노년의 몸을 ‘못나고 늘어진 어떤 상태’로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통해 그 늪에 빠질 뿐이다. 패션의 매혹은 감춤이 아닌, 여전히 아름다운 신체의 부분으로 타인의 시선을 모으는 데서 나온다. 항상 피팅이 된 옷을 골라야 한다. 당신이 축적해온 선별력 있는 눈을 옷을 고르는 데 써야 한다. 우아함의 어원이 ‘심혈을 기울여서 선택한다’는 단어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지금 당장 옷장에서 오래된 옷들을 버리고, 가장 단순한 선과 중성색(화이트, 블랙, 베이지)으로 된 기본 품목으로만 채운다. 이러한 원칙부터 끈덕지게 지켜보자. 참조할 수 있는 모델이 있냐고 묻는 분이 많다. SNS를 켜고 ‘#AGELESS’라는 표제어를 넣어보라. 멋진 노년을 함께하자며 자신의 스타일을 공유하는 수많은 이가 당신을 기다린다. 그들을 보며 외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멋 내기 딱 좋은 나이!”라고.
평소 편하고 캐주얼한 옷차림을 즐겨 입는다. 본래 스타일도 그렇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바삐 움직이는 일이 다반사라 일하기 편한 옷을 선호하는 것 같다. 격식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하는 날이면 남의 옷을 걸친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다.
편한 스타일을 선호하지만 지난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진행한 ‘패션人스타’에도 지원할 정도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다. 예전부터 예쁘고 잘생긴 사람보다 스타일이 멋진 사람을 좋아했다. 비싸고 화려한 옷차림이 아니라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멋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말이다. 남편에게 호감을 갖게 된 것도 옷차림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남편은 짙은 와인색 바탕에 커다란 흑장미가 군데군데 그려진 올이 굵은 카디건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 그리고 멋스럽게 색이 빠진 리바이스 청바지에 검은색 나이키 로고가 그려진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흑장미가 그려진 스웨터는 아무나 소화하기 힘들다. 그것으로 남편의 패션 감각을 엿볼 수 있었고, 적당히 마른 체형에 귀밑까지 자란 생머리가 찰랑거리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남편을 두 번째 만난 날, 내 환상은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광화문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그는 황토색 코르덴바지에 밤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반전이었다. 알고 보니 첫 만남 때 입었던 와인색 카디건 스웨터는 시어머니 옷이었다. 사이즈가 커서 자주 안 입던 멋쟁이 시어머니 스웨터가 키 크고 마른 체형의 남편에게 잘 어울려 그날 입고 나온 것. 남편은 옷차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운명처럼 그날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졌던 것이다.
미국의 패션 전문기자 ‘토비 피셔 미르킨’은 자신의 저서 ‘패션 속으로’에서 “패션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이해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옷은 그 사람의 진지함과 유머 감각, 창의성과 성적 본능을 모두 보여준다”고 말했다. 비단 내 경우가 아니어도 잘 차려입은 옷은 첫인상을 강력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말이다.
생김새를 떠나 멋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예의를 갖춘 단정한 옷을 입고, 편한 친구들 혹은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자유로운 차림을 한다. 일상에서 패션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 말이 있다. “훌륭한 옷은 모든 문을 연다.” 영국의 성직자이자 역사가, 작가인 ‘토머스 풀러’가 한 말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