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가을 하늘 아래 녹색 공원이 있고, 호수가 있고, 산책로가 있다. 안산시 외곽 개활지에 있는 화랑유원지다. 시월 한낮의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산책 삼아 한가하게 거니는 이들이 많다. 이름은 유원지지만 왁자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안락하다. 경기도미술관은 화랑유원지 안에 있다. 자리 한번 기차게 잘 잡았다. 풍경과 산책과 미술품 감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이라니. 접근성이 매우 뛰어난 입지이기도 하다.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미술관 관람의 목적을 호주머니에 담았을지도 모른다.
미술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술관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소란스러운 세상을 생동감 넘치는 감성으로 수용하는 눈을 얻을 수 있는 게 미술관이다. 하지만 따분하고 난해하다는 선입견으로 외면한다. 미술관 운영자들은 이런 현실이 야속하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관심과 호감을 살 수 있을까. 오나가나 골똘히 고민하는 문제가 그렇다.
얼마 전에 종료됐지만, 경기도미술관을 찾아간 날엔 ‘미술관의 입구: 생태통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는 고민의 한 결과물이다. 미술관의 진입장벽을 낮춰 관람객을 불러들일 방법을 모색해 꾸린 기획전이니까. 유원지를 가로지르는 통행로이기도 한 미술관 야외 길에 설치작품 다수를 전시했다. 하나같이 쉽고 재미있었다. 미술은 어렵다는 통념이 오해에 불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미술이 지닌 위계와 경계를 철거해 관람객들을 포용하고자 했다. 사람들에게 한결 친절하고 살갑게 다가가고자 하는 미술관 측의 선한 의도가 완연해 인상적이었다. 환경 악화로 고립된 동물들의 활로로 쓰이는 ‘생태통로’처럼, 외부 전시물 전체가 공감과 소통의 가교로 기능하고 있었다.
경기도미술관은 2006년 경기도가 설립했다. 운영은 경기문화재단이 맡았다. 공립미술관답게 건물 규모부터 크고 훤칠하다. 안산시에 사는 미술 애호가들은 언제든 찾아가 무료로 손쉽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환경 형성에 반색했겠다. 나는 경기도미술관에 관한 작은 기억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 미술관은 세월호 침몰 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안산 단원고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한결 절절한 애도 분위기에 이끌린 건 그래서였을까. 세월호 2주기인 2016년 4월, 경기도미술관 측은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사월의 동행’ 전을 열었다.
당시 정치권에선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 문제 등을 놓고 두꺼비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립미술관도 아닌 공립미술관이 앞장서서 추모 전람회를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문학계에서는 추모시가, 음악계에서는 추모곡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술계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미지근하던 때였다. 따라서 경기도미술관의 추념 미술전이 야기한 반향이 작지 않았다. 햐! 미술관이 진정 아름다운 레퀴엠을 헌정했구나! ‘사월의 동행’ 전소식을 듣고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눈앞에 있는 현상과 형상을 넘어 무한으로 달려가는 게 예술이다. 그러나 현실의 거대한 아픔과 슬픔에 무디다면? 눈치를 보고 공기만 살핀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라 정치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사월의 동행’전은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전람회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작가들은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 세상에 만연한 모순과 고통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졌던 셈이다.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해
미술관 건물 입구로 다가가자 최정화의 설치작품 ‘꽃꽂이’가 눈길을 잡아당긴다. 플라스틱으로 꽃들과 열매를 만들어 설치한 작품이다. 원색의 붉은 인조 꽃떨기가 밤에 쓴 성급한 연애편지처럼 격정적이라 강렬하다. 최정화는 한국에서 요즘 가장 바쁜 화가다. 자칭 ‘설치작품으로 설치는 사람’이다. 그는 플라스틱 폐품 등 ‘눈부시게 하찮은 것들’을 모아 이를테면 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외적 형상을 조형한다. 플라톤식으로 말하면 ‘저급한 모방’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메시지를 지체 없이 수신한다. 최정화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정말 그럴까? 플라스틱도 제2의 자연 아닐까?” 그는 아까 얘기한 세월호 추념 전시회에선 10m 높이의 대형 설치작품 ‘검은 꽃’을 선보였다. 공기주입기로 작품에 공기를 넣어 꽃잎이 피었다 졌다 반복하게 해 세월호 희생자들의 부활을 기원했다.
먼 과거에 경기도미술관 일대는 바다였다. 이후 바닷물을 밀어낸 간척지였다. 지금도 호수가 있지만 원래 물이 머문 자리였던 것. 이와 같은 역사성과 장소성에 착안해 물 공간을 디자인 요소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설정하고 건축 설계를 했다. 미술관의 남쪽과 동쪽 면에 사각의 대형 수조를 만들어 물을 채움으로써 저만치에 있는 호수 경관과 연계성을 갖도록 했다. 나아가 건물을 통째 물 위에 뜬 배로 간주하고 심벌을 입혔다. 거대한 철골 프레임에 유리판을 끼워 돛대 형상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건물은 예술을 싣고 삶의 대양을 항해하는 중?
국내 미술관 가운데 거의 최초로 시도된 자동 개폐식 천창(天窓) 시스템도 비범하다. 전시실에 자연광을 뿌리기 위한 채광 장치다.
설계자는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다. 일찍이 30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설계해 세계 건축계에 표나게 데뷔한 인물이다. 국내에도 이미 이름난 사람이다. 경기도미술관 건물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는 건축에 자연 요소를 적극 융합한다. 세련된 기술로 추상적인 건축 언어를 발신한다.
지하 공간으로 건축을 끌어들인 데다 ‘빛의 계곡’까지 구현한 ‘이화여대 캠퍼스센터’(ECC)는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21년에 착공한 지하 건물 ‘영동대교 광역복합환승센터’도 페로의 작품인데, 태양광을 흡수해 반사하는 초대형 라이트 빔을 쏴 지하 깊은 곳까지 자연광을 배급하는 시스템이라니 흥미롭다.
전시 공간은 2층에 있다. 방문 당시 ‘당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디지털 문명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욕망을 무한 소비하는 풍속을 돌아보게 하는 전시회다. 경기도미술관의 컬렉션 중에 ‘감각적인 작품’ 22점을 골라 선보이는 ‘소장품으로 움직이기’전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재미있기론 지구 곳곳에 이름을 알린 강익중의 대형 벽화 ‘오만의 창, 미래의 벽’이다. 미술관 1, 2층 벽면 한쪽을 통째 점유한 가로 72m, 세로 10m 크기의 대형 벽화다. 전국의 어린이 5만 명이 3×3인치짜리 나무판에 그린 그림 5만 점을 모둠으로 엮은 대작이다. 강익중은 뉴욕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습작을 했다. 퇴근길 지하철이 유일한 작업실이었으며, 지하철에서의 짧은 이동시간 중에 그림을 한 점씩 그렸다. 그렇게 해서 강익중표 ‘3×3인치 미니 캔버스 작품’이 나오게 됐다. 그는 5만 어린이들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뿜는 웅장한 에너지에 심취했나? 동어 반복적인 벽화 작업을 연달아 해왔다. 작은 그림들이, 작은 꿈들이 모여 삼라만상과 우주를 이루는 장관을 보라! 강익중의 메시지가 그렇다. 그는 백남준이 제자로 인정한 유일한 화가다. 명성과 감흥은 겉돌지 않는다.
2007년 전통복식 분야 1호 유희경 박사의 집에 신사임당 초상을 그리기로 한 이종상 화백과 한국조폐공사 관계자, 석주선 단국대 기념박물관장 등이 모였다. 5만 원 지폐에 넣을 신사임당을 그리기 위해서다. 이날 신사임당의 초상 모델이 바로 임수빈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장이다. 어딘지 모르게 닮은 선한 눈매와 은은한 미소를 가진 그를 만나 고전머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에, 정말 이런 머리를 하고 살았을까?’
고전머리 미용대회를 준비하던 30대 늦깎이 학생은 머리를 올리다 말고 생각에 잠겼다. 대회에 출품된 화려하고 다양한 고전머리 스타일이 신비로워 보였다. 고전머리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다. 1999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미용실을 운영하던 임수빈 협회장은 미용을 더 알고 싶었다. 파마약을 바르면 왜 머리가 구불구불한 채로 모양이 잡히는지, 머리카락 속 단백질과 미용 약품 사이에 어떤 화학작용이 발생하는 건지 원리를 알고 싶었다. 2005년 국제대학교 피부미용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해 서경대 미용예술학과에서 불화에 표현된 고전머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니 세월 흘러가는 줄 모르고 젖어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하래도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과거에도 지금도 고전머리를 하나의 학문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어요. 한복만큼 전통 가치가 지켜지고 있지 않아 아쉽습니다.”
K-헤어의 뿌리를 찾아서
어디에서도 고전머리를 배울 수가 없어 임 회장은 역사책을 뒤져가며 스스로 공부했다. 그는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했다. 고전머리는 청동기, 상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도자기 항아리나 벽화 등에 그려진 여성을 통해 머리 모양을 추론할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서민들은 쪽머리, 댕기머리, 둘레머리, 얹은머리 형태를 고수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시대에 따라 복식과 머리가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소 한 마리 값에 맞먹어 부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체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개화기에 우리 전통 고전머리가 사라졌어요. 역사적으로 쪽머리는 기생이 할 수 없는 머리예요. 용, 봉, 개구리 등으로 품계를 나타냈던 첩지머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개화기에 나라도 잃고 신분을 나누던 품계도 사라지면서 무거운 머리를 풀어헤치고 기생들이 쪽머리와 첩지머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신여성이 등장했고, 서양에서 들어온 머리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고전머리는 유야무야 사라지다시피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용실은 1933년 화신백화점 미용부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조선인 미용사 오엽주가 시초다. 이 최초의 미용실이 우리나라 미용 역사의 시작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임수빈 회장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오다 개화기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우리 머리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5천 년이라는 우리 고유의 머리 역사와 뿌리가 있는데도, 오엽주 미용사의 신여성 머리 스타일만 남은 거예요. 그런데 미용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뿌리부터 배우는 게 정석 아닐까요?”
고전머리에는 우리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한복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것처럼 머리 스타일도, 장신구도 역사에 따라 달라졌다. 한복에 관해서는 연구가 활발하고 이를 전통으로 지키려는 노력도 하지만, 고전머리에는 그 관심이 이어지지 않아 못내 아쉬웠다.
미용은 ‘학문’이 될 수 없을까?
임수빈 회장은 미용을 ‘과학’이라고 말했다. 미용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르면 중학생 때부터 미용을 배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그는 기술을 넘어 미용의 원리와 뿌리를 알고 싶었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 더 깊이 있는 배움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머리의 역사에 대한 연구, 미용의 과학적 부분에 대한 연구, 조금 더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서 미용의 질을 높이고 싶었어요.”
각종 불화와 문헌을 뒤져 고전머리를 연구하던 임수빈 회장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5천 년 역사 속 장황하게 흩어져 있던 고전머리 자료를 모으고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해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귀족·사대부·천민들이 쓰는 장신구, 비녀, 꽂이, 장신구별 의미, 상징 등을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문헌 속 고전머리를 전통 방식에 맞게 재현하고 트렌드에 맞춘 퓨전머리도 디자인했다. 이 내용을 학생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고전머리교실 : 이론과 실습’으로 펴냈다.
머리 스타일에 빠질 수 없는 게 장신구다. 또 복장과 머리 스타일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인터뷰를 하면서 머리 장식에 대해 묻자 협회 곳곳에서 최소 100년 넘은 온갖 장신구들이 나왔다. 임 회장의 할머니가 사용했다는 청색 족두리와 담비털 모자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도 등장했다. 거실 액자 속에 늘 걸려 있었다는 담비털 모자는 구한말 할머님이 사용하시던 것이라고. 임수빈 회장이 고전머리에 매력을 느꼈던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트레머리가 없어지고 쪽머리가 정착되면서 비녀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어요. 서민들이 쓰던 비녀도 새겨진 무늬가 다 달라요. 천연 옥비녀에는 특유의 고운 빛깔과 흉내 내기 어려운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죠. 천연 옥의 종류도 이렇게나 다양해요. 여름에는 옥 소재 비녀를 많이 쓰고 겨울에는 따뜻한 소재를 썼죠. 뒤꽂이 종류도 무척 많아요. 주로 매미, 벌, 꽃, 나비 등이 소재로 쓰였죠. 조선시대에는 생콩을 빻아서 조롱박에 담아 세면대에 두었다가 세안할 때 비누 대신 콩을 비벼 사용했어요. 그러면 콩 비린내가 남거든요. 그래서 향주머니를 차고 다닌 거죠. 이 매미 모양의 향주머니는 매우 드문 거예요.”
고전머리는 머리 장식, 의복, 의복에 쓰이던 장신구까지 모두 이어져 있고, 각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역사 이야기와 임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온갖 장신구를 직접 눈앞에 펼쳐두고 강의를 하니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머리에 몰입한 20년이라는 시간
고전머리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 그는 2012년 한국방송고전머리전문가협회를 세웠다. 10여 년 동안 임 회장은협회비를 받지 않고 개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협회를 운영했다. 더 많은 이들이 고전머리 관련 활동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고 자신의 가치를 높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전가체 예능사 1~3급 자격제도를 만들었다. “고전머리도 머리를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미용 자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미용 관련 국가자격증이 여러 가지인데 고전머리 자격증은 없거든요. 수익사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오색단장, 수빈헤어&메이크업, 한국방송협회 일을 현업에서 계속하다 보니 자격제도를 만들어놓고도 제대로 활성화시키지 못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면서 저를 재정비하게 됐죠. 미용하는 분들이 고전머리를 통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면 좋겠어요. 미용인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혼자 개척해나가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고전머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대로 고증되지 않은 고전머리 정보를 퍼트릴 때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기도 했다. 게다가 아무리 궁금한 게 많아 공부가 즐거웠다 해도, 매일 역사서를 들여다보며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몸은 서울에 있지만 마치 과거에 사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조금만 더 해서 학생들에게 무언가 해줄 수 있는 하나는 만들어두고 그만두자’고 마음을 달랬다.
미용을 시작한 후 20년을 온전히 고전머리에 몰입해 살았다. 처음 수빈헤어&메이크업을 열었을 때는 손님 한 명 보기가 어려웠지만, 이제는 주말이면 고전머리를 하려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 임 회장이 반한 고전머리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난 것. 이제는 ‘고전머리’ 하면 많은 이들이 임수빈 회장을 떠올린다. 그럴 때 그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임수빈 회장은 우리나라 가체장 1호 명장이 됐으며, 2019년에는 ‘한국을 빛낸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문화예술부문 한국전통문화최우수공로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2021년에는 한국예술문화명인 인증을 받았다.
고전머리가 K-헤어 트렌드
임수빈 회장은 복장과 헤어의 어울림을 강조한다. 전통 한복이라면 전통 고전머리를, 퓨전 한복이라면 퓨전 고전머리로 꾸며야 한다는 것. 전통 고전머리를 응용하면 한국식 현대 스타일을 무궁무진하게 창작할 수 있다. 고전머리야말로 현대 미용의 뿌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요즘 흔하게 하는 ‘당고머리’는 ‘쪽머리’가 원조다. 쪽머리는 비녀가 없던 시절부터 해오던 머리 스타일이다. 항공사 승무원들의 머리 스타일은 ‘벼머리’에서 시작됐다. ‘포니테일’이라고 불리는 묶음머리는 ‘후두부로 흩어진 머리’라는 고전머리에서 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리는 5:5 가르마예요. 우리나라의 기본 스타일이죠. 과거 여인들도 모두 반머리를 했어요. 우리가 반묶음을 하는 것처럼요. 다만 그것을 장식하는 장신구가 바뀌었을 뿐이에요. 현대의 의복에 맞춰 고전머리 스타일이 현대에 맞게 바뀐 거죠.”
임 회장은 고전머리를 기반으로 한 한국 스타일의 퓨전 헤어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고전머리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으니 미용사들도 배워본 적이 없어 응용을 하고 싶어도 몰라서 못 하는 실정을 무척 아쉬워했다. 더 많은 미용사가 고전머리를 배워 자신만의 한국 스타일로 응용하면 그것이야말로 K-헤어가 되는 것 아닐까?
“고전머리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되는 게 마지막 꿈이에요. 고전머리를 만지는 기술도 서울무형문화재로 함께 인정받으면 금상첨화겠죠. 한복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것처럼 고전머리도 우리의 것으로 역사성을 인정받고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합니다.”
건축물이 쓸모를 다하면 부수고 새로 짓는 것만이 답일 것 같지만, 그 시간과 의미를 찾아 연결하고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건축물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록하는 조성룡(78) 건축가를 만났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입구로 들어가 노래하는 분수를 지나면 멀지 않은 곳에 ‘꿈마루’가 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 ‘피크닉정원’을 찾았다. 조명이 없어 어두운 듯하면서도 햇빛이 들어와 어둡지 않은 길을 돌아선 순간,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천장이 있지만 사이사이가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이고, 벽이 있지만 틈이 있어 볕이 닿았다. 내부의 나무들은 천장을 뚫고 자라 있었고, 외부의 나무들은 천장을 넘어 가지를 늘어뜨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소리가 엉켜 노래하고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읽던 소설 속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것 같았다.
건물과 자연이 얽혀 있는 ‘꿈마루’
밖에서 보면 무척 오래되어 낡은 건물 같지만 꿈마루는 건축학도들의 필수 답사 코스다. 2013년에는 ‘한국 최고의 현대 건축’ 14위로 꼽혔다. 철거 직전 이 건물을 남기자고 설득한 사람이 조성룡 건축가다. 그는 꿈마루를 ‘보물 같은 건축물’이라고 했다.
“천장을 조금 뚫어놓기만 해도 바람이 통하고 새소리가 들려요. 나무가 자라 넘어오기도 하고, 새가 날아 들어오기도 하지요. 전혀 다른 구조가 되는 셈이에요. 제가 한 건 이렇게 뜯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해서, 종종 이곳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했는데, 이쪽까지 올라오는 게 쉽지 않은가 봐요.”
꿈마루 철거가 정해진 뒤 최광빈 푸른도시국 국장이 그에게 자문했다. 당시만 해도 이 건물에 대한 기록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많이 낡은 데다 페인트가 덧칠된 상태였다.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지어졌지만 이후 어린이들을 위한 교양관으로 쓰였다. 찾아보니 나상진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보통 솜씨로 지은 건물이 아니었어요. 당시만 해도 이렇게 짓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건물 외벽에 타일처럼 붙여둔 저 파란 조각들이 유럽에서는 흔했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나 하던 방법이에요. 곳곳에 그런 기법이 적용됐는데, 국내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이 많아요. 유학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이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설득력을 가지고 실현까지 시켰으니 얼마나 대단해요?”
꿈마루는 나상진 건축가가 최초에 설계한 그 원형을 최대한 지켜내면서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공간들을 ‘집 속의 집’처럼 지었다. 그는 건축물만 봐도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상진 건축가가 1970년대에 남긴 흔적, 전시장으로 바뀌며 덧댄 흔적, 설계도를 보고 재생하며 조성룡 건축가가 넣은 장치, 세 가지를 모두 볼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의 흔적 남기는 ‘가치 재생’
조성룡 건축가는 역사에 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 골프장이 생긴 시대적 배경, 클럽하우스를 사용했을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 교양관이 되어야 했던 사연까지. 건축 재료나 방법이 아니라 꿈마루라는 건축물의 끊어진 역사 속 퍼즐을 찾아 하나씩 맞추어가며 시간을 엮은 것이다.
“건축물이라는 게 산업 사회의 산물이죠. 쓸모를 다했으니 결국 버리거나 고치거나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어떻게’ 버리고 고칠 것인가를 구별해야 하죠. 의미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없어요. 이 벽을 보세요. 금이 가 있어요. 기둥은 콘크리트고 그사이를 채운 벽은 벽돌이에요. 그런데 벽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금이 가게 되어 있어요. 이 벽 아래를 보세요. 뭐가 있던 자리죠? 뭐였을 것 같아요? 라디에이터예요. 이런 게 흔적이죠.”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라디에이터지만, 과거에는 여기에 도시락을 올려 데워 먹었다. 한 공간에 대한 여러 시대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의 추억을 담은 흔적이다.
“1910년부터 건물이 지어졌다고 생각하면 100년 넘는 시간이에요. 얼마나 많이 지었겠어요? 오래된 것 다 헐고 새로 짓는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건축은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흔적을 지우기가 쉽지 않거든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살릴 것인가가 중요해요. 그런데 이 중요한 지점이라는 게 시대마다 바뀌어요. 그러니 재생이라는 건 결국 움직이는 생물 같죠. 쓸모를 다해가는 과거 건축물을 소생해내는 ‘재생’은 세계 트렌드예요. 그런데 재생이라는 게 반드시 새것으로 만드는 걸 뜻하는 건 아니에요. 못 쓰게 된 물건이라고 무조건 버리거나, 새롭게 만드는 것, 두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정치·사회적 흐름 속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공간이 어떤 이유로 바뀌었는지, 사용하는 사람이 거쳐가는 과정은 어땠는지, 이 흐름을 현재에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를 고민한다. 그가 생각하는 ‘재생’이다. 이는 문화재청 위원으로 활동하며 유심히 살펴본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존 방법과도 결을 같이한다. 유네스코는 긴 논의 끝에 복원에는 건축의 진정성을 담아 후대 사람들이 차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보강하는 방법을 택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같은 문화유산 복원 방식을 두고 유럽에서도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성룡 건축가는 꿈마루 재생 이전에 선유도공원에서 이런 방법을 적용해 이미 재생의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 그는 외국의 도시재생 사례들을 가져와 무작정 적용하는 게 아니라, 거리, 건축물, 공간마다 상황을 고려해 남길 것은 남기는 재생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 꿈마루 재생 작업을 하면서 정부에 선유도공원과 꿈마루 두 곳을 시간의 흐름을 담은 재생 사례집으로 묶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담당자가 바뀌면서 결국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파트는 30년이 넘으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지만, 다른 건물들은 슬슬 문화재에 들어갈 수 있는 연한이 돼요. 문화재는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건축물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생각해봐야 하죠. 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집의 시간을 잘 살펴야 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면 노출 콘크리트가 트렌드처럼 되어버렸는데, 아무 데나 적용하면 안 돼요. 건축물마다 가진 고유한 시간과 상황을 담아야 하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마을 ‘소록도’
최근 조성룡 건축가가 마음을 쏟고 있는 곳은 소록도다. 10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폐교를 이용해 문화공간 만드는 사업을 하려고 그를 찾았다. 그저 병원인 줄 알았던 소록도를 처음 방문한 그는 이곳에서 100년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국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이곳에 가두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마을을 이루고 살 정도였는지는 몰랐다. 소록도에는 7개의 마을이 있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이 중 가볼 수 있는 마을은 두 군데뿐이다. 주민이 가장 많았던 때는 6000여 명이 살았지만, 이제는 400명 정도 남았다.
“한센병이 있으면 결혼을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이들은 가족이 없어요. 있어도 숨기죠. 그러니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소록도’는 소멸할 거예요. 섬만 남겠죠. 그런데 아무도 이 마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록도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어떻게 모르는 일로 넘길 수 있겠어요. 마치 코로나 팬데믹과 비슷하지 않아요? 국가가 강제로 격리하고, 양성이면 병원에서 치료하고 음성이면 마을에서 생활하도록 한 거죠. 전염도 되지 않고 완치 가능한 병이 되었는데도 1980년대까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용돼 강제로 노동하며 살았던 곳이에요. 그런데 그저 슬픈 이야기로만 구전되고 있죠.”
한센병에 관한 의학적 연구 자료는 많지만 이들이 살았던 마을, 집, 생활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그 역시 직접 보기 전에는 소록도에 100년간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이를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만들어진 주차장 한가운데 남아 있던 장안리 마을 집 한 채를 발견해 안내소처럼 만들었다. 100주년 기념 조형물을 만들자던 병원 장을 설득해 기념관 조성을 제안한 것. 다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서생리 마을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가장 오래된 집은 1920년대에 지어졌고, 최소 80년이 지난 집들이었다. 소록도의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일단은 집들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파이프로 보호하는 작업까지만 할 수 있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처럼 무너져가는 집들과 나무·풀들이 한데 엉켜 있더라고요. 찾아보니 이 집들은 한센병 환자들이 직접 벽돌 한장 한장 쌓아가며 만든 거예요. 당시 병원장이 이곳에 벽돌 공장도 만들었더라고요. 강제로 노동에 동원된 거죠. 그러니 아무리 무너진 집이라 해도, 그 벽돌 한 장을 그냥 버릴 수 없는 거예요.”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인들이 남겨둔 기록이라도 있었지만, 해방 이후의 기록은 아예 없었다. 100년간 사람이 살았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은 채 있었으니, 마을마다 집의 형태도 조금씩 다르고 시대마다 지어진 집도 달랐다. 또 처음에는 나무로 지었다가 무너지면 벽돌을 덧대는 등 여러 재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섞여 있었다. 조성룡 건축가는 이런 것을 연구하고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범하게 살았던 이들의 기억이 사라지는 거예요.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걸 기록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증명하겠어요? 사진 몇 장으로 남아 있을 뿐이겠죠. 이 기록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야 도시를 어떻게 만들지도 고민하죠. 도시는 한 번 쓰고 말 게 아니라 지속해야 하니까요. 또 시대마다 도시의 모습이 다르잖아요. 어찌되었든 그것들을 기록해서 평가도 하고 반성도 하고 본받을 것은 본받고 고칠 것은 고쳐가야죠. 아파트는 재건축한다고 하면 항상 다 허물고 새로 짓잖아요. 그게 돈이 되니까요. 그러니 소록도 마을과 같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록도를 기록할 수 있도록 몇 년간 노력해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았다. 그런데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이 예산을 다 채어갔다. 무척 기운 빠지는 일이었지만, 소록도의 실상을 알았는데 돈을 주지 않는다고 기록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서울에서 왕복 10시간 넘는 거리를 달리며 그는 아직도 소록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
“가치는 상대적이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죠. 지금까지 문화유산은 보존의 필요성만 있었지 ‘왜’ 보존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그래요. 어떤 연구자가 논문을 쓰면서 ‘불편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쓰더라고요. Difficult Heritage를 불편 문화유산이라고 한 것인데, 특별한 해석이에요. 문화유산의 가치가 있지만 사회가 불편해한다는 뜻이거든요.”
이를테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같은 문제들이 불편 문화유산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군부독재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에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다. 조성룡 건축가는 그럴수록 ‘왜, 유산으로 남기는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간을 기록한다는 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국가가 교과서에 남기는 역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개인의 역사도 역사지요. 역사가 쌓여서 축적되었다는 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준다는 게 중요해요.” 그가 하는 건축물과 공간의 재생은 어쩌면 역사를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행사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로 8회째를 맞는 실버문화페스티벌은 꿈꾸는 시니어들의 실버 스테이지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경연 대회, 어르신 중심 온·오프라인 문화 콘텐츠 ‘문화나눔한마당’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어르신의 모습을 조명하고, 어르신 맞춤형 온라인 문화 콘텐츠를 통해 노년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까지도 아우를 수 있게 기획됐다.
10월 20일(목)부터 21일(금)까지는 ‘문화나눔한마당’ 영상 제작물이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프로그램별로 공개됐다. △에듀버스(교육) △헬씨버스(건강) △컬쳐버스(체험) △콜럼버스(공모) △투게더스(세대 공감) 5개의 테마에 따라 제작된 각 영상은 오늘날 실버 세대가 건강하고 즐겁게 노후를 보내는 데에 도움이 될 예정이다.
또한 유일한 오프라인 프로그램인 에듀버스의 ‘실버문화포럼 – 삶의 연금술, 실버를 골드로’와 ‘고미숙의 인문학 특강 – 나이 듦 수업’ 역시 실버세대의 삶에 대해 의미 있는 논제를 던졌다. 실버문화포럼에서는 이금룡 상명대 가족복지학과 교수와 구민정 홍익대 예술학부 교수가 함께 서른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가운데 ‘변화하는 실버대의 특징과 실버문화의 새로운 가치’를 주제로 강연과 대담을 진행했다.
이금룡 교수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실버세대로 진입함에 따라 예전보다 삶이 활기차고 주체적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실버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라며 “이러한 통념과 관념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활동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며 제도적 지원이 필요함을 적극 강조했다.
구민정 교수의 ‘실버문화의 특성과 활동 사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는 구 교수가 50+인생학교에서 어르신들을 만나며 느낀 구체적 사례가 소개됐다. 그는 오늘날의 실버세대에게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겠다고 스스로 인식하고, 문화예술을 통해 더욱 다채로운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2일(토)에는 ‘2022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본선 경연이 공식 홈페이지와 ‘문화로 청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올해로 ‘샤이니스타를 찾아라’는 숨은 아마추어 어르신 문화예술가를 발굴하는 경연 대회로, 16개 지역에서 예선을 거쳐 선발된 각 지역의 본선 진출팀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사전 누리집 투표(10%)와 실시간 현장 문자 투표(10%), 전문 심사위원 점수(80%)를 합산해 대상인 ‘샤이니스타상’ 수상팀을 선정했다.
올해의 ‘샤이니스타상’은 부산 연제문화원의 ‘연제춤사랑’ 팀에게 돌아갔다. 연제춤사랑은 1997년 만들어진 팀으로, 현재 14여 명의 팀원이 활동 중이다. 전통적인 부채춤을 선보여 인생의 희로애락을 격동적이고 서정적으로 표현해내며 당당히 문체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등상인 ‘샤이니샛별상’은 경기 ‘소리울’과 경남 ‘청춘실버연극단’이 수상했다. ‘샤이니 인기상’은 사전 누리집 투표와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최고 득표율을 얻은 강원 ‘깍지윈드오케스트라’ 팀에게 돌아갔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올해 ‘샤이니스타를 찾아라’는 ‘방구석 응원전’,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퀴즈쇼’ 등 줌이나 유튜브로 접속한 관객들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진행돼 호응을 얻었다. 또한 이날 본선 경연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해 우승팀 ‘대전시니어오케스트라’와 95세 최고령 참여자가 속한 ‘두억마을지게가락’팀, 가수 박군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나 가수 박군의 축하 무대에는 유튜브 실시간 접속자수가 5000여 명을 훌쩍 넘기며 축제의 열기가 고조됐다.
이날 축사를 맡은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 회장은 “총 291팀, 3800여 명의 모든 참가 팀에게 감사를 표한다”라며 “노년 세대가 당당한 문화활동 주체로서 활기찬 노후를 즐기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문화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된 실버문화포럼과 인문학 특강을 비롯한 실버문화페스티벌의 모든 콘텐츠들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누구나 시청 가능하다.
△영상 출처=문화로 청춘 유튜브 채널
도시재생사업으로 출현한 팔복예술공장은 여느 문화 공간과 달라 새롭고 재미있다. 무의미하게 보였던 폐공장에 다양한 버전의 예술을 입혀 의미를 돋우었다. 퇴락을 거듭해 지붕조차 없이 골격만 남은 건물들은 그 자체로 예술품에 맞먹는다. 무너져가는 힘으로 간신히 지탱해온 사물들의 우중충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퇴적된 시간의 드라마틱한 웅얼거림이 있어 감흥을 야기한다. 변재선 기획운영팀장에 따르면 팔복예술공장은 아예 태어나지 못할 뻔한 상황을 경유했다.
“처음엔 폐공장을 싹 부수고 문화공원을 조성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 향유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다행히 후자가 채택되었다. 건물을 해체하기보다 활용해 동시대 예술의 창작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예술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재생사업 이전 폐공장 모습은 어땠나?
“거의 폐허였다. 처참했다. 일부 쓸 만한 건물은 산업체들이 빌려 쓰고 있었다.”
초기의 조성 과정에선 신중한 고려가 많았다지?
“서둘러 공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예술공장의 콘셉트를 설정하기 위해 지역 예술가들과 빈번하고 심도 있는 논의부터 선행했다.”
A동의 경우 빨간색으로 단장한 외관으로 인해 폐공장의 모습이 외려 감춰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변형을 더 자제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용성과 기능성을 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보완을 했을 뿐이다. 가급적 원래 건물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게 총괄감독 황순우 건축가의 지향이었다. 페인트칠은 방수를 위해 불가피했다. 건물 내부 역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정도의 보완에 그쳤을 뿐이다.”
B동 구역이 인상적이다. 폐건물의 원형 그대로를 볼 수 있어서.
“1980년대 건물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관람객의 관심을 사는 공간이다. 골격만 남은 폐건물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는 걸 인식하고 돌아가는 것 같다.”
B동 일원엔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예술을 놀이로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을 조성했다.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마련했다. 요즘 미술관들은 어린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환심을 끌어내기 위해 양질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건 물론, 미술관 일부를 통째 예술 놀이터로 제공하는 것. 팔복예술공장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교육의 중요성과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북돋울 수 있는 게 예술이니까.”
개관 이후 4년이 흘렀다. 관람객은 늘어나고 있나?
“전시 작품 교체기를 제외하고 쉼 없이 전시회를 펼쳐왔다. 관람객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이젠 팔복예술공장의 인지도도 매우 높아졌다. 우리는 신진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입주 작가 공모 때 경쟁률이 17:1이나 된다.”
관람 포인트를 말한다면?
“A동으로 입장해서 전시 작품을 관람하고 카페 ‘써니’에서 휴식을 취한 뒤, B동과 외부 경관을 즐기는 게 좋겠다. 대왕참나무 등으로 조성한 정원을 거닐며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도 있고.”
변재선 팀장은 A동 카페에 설치한 대형 인형 ‘써니’를 팔복예술공장의 시그니처 조형물로 꼽았다.
팔복예술공장은 폐허를 딛고 일어선 복합문화공간이다. 쓸모를 잃고 버려진 폐공장을 도시재생사업으로 일으켜 세운 이색 예술 공간이다. 폐공장 시절은 길었다. 25년간이나 방치되었으니까. 그러니 형상이 오죽했겠는가? 무너지거나 으스러지거나 널브러진 것들이 태반이었다. 용케 남은 건물들도 금이 가거나 비가 샜다. 뒤숭숭하기가 흉가와 맞먹었다. 이렇게 공장의 한 생애가 종을 쳤다. 갈 길을 잃은 유령들의 비밀 집회소쯤으로 전락했다. 그런 와중에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앰뷸런스를 타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달려와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꺼진 숨을 되살렸다. 전주시 팔복동 제1일반산업단지 안에 있다.
팔복예술공장은 2년에 걸친 사전 작업과 공사,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한 시범운영을 거친 뒤 2018년에 개관했다. 이제 겨우 네 살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알아주거나 알아보는 눈이 많다. 개관 첫해에만 6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젠 재생 문화 공간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헌것을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대신, 헌것을 싹 갈아엎고 새뜻한 새것을 건설하는 대신, 헌것에 잔존하는 쓸모를 재료로 삼은 재생사업의 성과가 이렇게 대단하다. 폐허를 폐허로만 볼 일 아니다. 폐허 속에 역사와 인간사의 숨결이 서려 있다. 헌것을 헌것으로만 볼 일 아니다. 헌것 안에 새것 뺨치는 예술과 미감이 박혀 있다.
폐공장의 재생 설계를 주도한 총괄기획자는 건축가 황순우. 인천시의 근대건축물을 본때 있게 재생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실력을 과시한 인물이다. 그는 팔복예술공장 설계에 나서기 전 한동안 뜸을 들였다. 폐공장이 지닌 역사성과 사회성,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숙고했던 셈이다. 그는 이런 요지의 얘기를 했다.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봤다. 따라서 1년 동안 설계를 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기 위한 작업부터 했다. 지역주민, 지역 예술가들과 수시로 만나 폐공장을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부터 했다. 물리적인 작업은 맨 마지막에 했다.” 그는 단순한 형식적 구조 변경을 구사해 후루룩 단숨에 예술 공간을 설계하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폐허에 남은 옛이야기를, 스러져가는 건물들이 간직한 기억을, 퇴락한 풍경의 이면에 감추어진 은유를 옹골차게 발굴해 공간 구축의 질료로 활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팔복예술공장은 크게 보자면 본관에 해당하는 A동, 아동과 청소년의 예술 놀이터인 B동, 그리고 야외 공간으로 구성됐다. A동은 외벽에 붉은 칠을 해 도드라진다. 벽면 일부엔 통유리창을 냈고, 옥상 난간의 프레임도 산뜻하다. 낡을 대로 낡은 원래 건물의 취약한 구조를 부분적으로 보강해 기능성을 살린 공간이다. 로비엔 폐공장을 남기고 사라진 카세트테이프 생산업체 ‘썬전자’의 히스토리를 알려주는 아카이브 섹션이 있다. ‘썬전자’는 이곳에서 1979년에 공장 가동을 시작했으나 CD(Compact Disk)라는 신종 기록 매체에 밀려 1991년에 문을 닫았다. 공장의 이런 굴곡진 역사와 애환의 기억들을 예술로 재생함으로써 존재 증명을 하는 게 팔복예술공장이다.
공간 곳곳에 음미할 만한 서사 있어
A동 로비부터 시작되는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재래식 변기가 하나씩 놓인 화장실 4칸이 나온다. 많게는 500여 명에 이르렀던 ‘썬전자’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변기가 달랑 4개뿐이었다니. 과거 노동 환경이 얼마나 거칠었나를 변기들이 구슬픈 톤으로 비가를 읊어 웅변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게 예술이고 예술인이다. 화장실 구역이 통째 전시 작품인 건 배설 욕구조차 참아가며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희망을 표현한 작가들의 글과 벽화가 이곳에 난무하기 때문이다.
미술관들은 저마다 특유의 전시회를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기획전을 펼침으로써 미술관의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팔복예술공장도 마찬가지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 전시를 추구해왔다. 탄소중립 등 환경문제를 환기하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을 산 전시회로는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전’을 꼽는다. 현재 2층 전시장에서는 ‘공존 : 호모 심비우스의 지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란 생물학자 최재천이 제기한 용어로 ‘공생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불편을 조금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생태적 전환을 할 수 있다는 게 최재천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은 결국 환경문제를 화두로 던지는 셈이다. 24개국 8팀 77명의 환경예술 작가들이 참여해 다양한 시각언어를 선보이고 있다.
몇몇 작품을 볼까? 손정은의 ‘강요’는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의 사체를 먹어치우는 인간의 탐욕을 힐난하는 설치 작품이다. 유리병에 닭의 실제 사체를 욱여넣은 작품도 있다. 엽기적이지만 통렬하다. 김순임은 대형마트에서 사온 식자재에서 채집한 씨앗이나 뿌리를 포장 용기에 심어 발아시킨 식물들의 정원을 보여주는 설치 작품 ‘홈플러스 농장 2002’를 전시했다. 김유정의 ‘소리 없는 산’도 식물 설치 작품. 뿌리가 없는 채로 공기 중의 수분과 양분만으로 생존하는 식물 수염틸란드시아에 뒤덮인 폐가전제품들을 산의 형상으로 조형했다. 문명 이전 혹은 이후의 공존과 상생의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현덕의 ‘아름다운 소멸’ 역시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이야기한다. 작가마다 선명한 환경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자연을 거침없이 해치우는 소비사회의 광기에 사려 깊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자연의 생존권을 침탈하는 일상의 풍속에 예리하거나 유려한 반론을 제기한다.
A동에서 컨테이너를 엮어 공중에 설치한 통로를 따르자 B동 2층에 닿는다. 이곳엔 아동들을 위한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과 청소년들이 예술을 주제로 맘껏 이벤트를 펼칠 수 있는 ‘꿈터 마루방’이 있다. 1층의 내부와 외부 역시 예술 놀이터다. 흥미로운 건 B동 구역에서 비로소 손질과 땜질을 거의 하지 않은 폐공장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낡고 삭아 추레한 폐건물을 그대로 놔둔 채 디자인 요소로 살려냈다. 따라서 이곳에선 과거로 잠시 회귀한 듯 감정적 동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반짝이는 사물들로 채워진 세상의 이방과 이면이 여기에 있으니 말이다. 폐허란, 그 미련 없는 분위기란 차라리 하나의 유적이다. 새것과 날것으로는 좇아갈 수 없는 우수와 정취가 깊어 감정이입이 쉽다. 세월의 풍상에 누추하게 구겨진 저 오래된 사물이 뿜는 아련한 빛에 문득 직관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나여! 인간이여! 너의 몸을 스친 풍상은 한 조각 빛이라도 남겼더냐?
공간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커피 생각이 난다. 마침 A동에 카페가 있다. 여공(女工) 이미지를 조형한 대형 인형 ‘써니’를 심벌로 조성한 찻집이다. 조명구도 탁자 일부도 공장 시절의 용구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곳은 ‘썬전자’ 노동자들이 407일 동안 전개한 노조사수투쟁의 센터이기도 하다. 이렇듯 팔복예술공장 곳곳에 반추할 만한 기억이, 음미할 만한 서사가 담겨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희유)가 주최하고 탑골미술관이 주관한 노인의 날 기념 탑골미술관 첫 미디어아트 전시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No Time to Spare)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어 ‘시간’을 주제로 미디어아트와 노인을 매개하고, 과거‧현재‧미래의 과정을 담은 두 번째 전시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2’가 릴레이로 개최된다.
서울노인복지센터 내에 자리한 탑골미술관은 미디어아트 전시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No Time to Spare)를 지난 9월 22일(목)부터 10월 15일(토)까지 진행한 바 있다. 해당 전시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르신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시각을 넘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인터랙션 설치, AR, 어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어르신의 축적된 삶의 서사를 재조명하는 작품이 함께 담겨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또한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진행된 사전 워크숍을 통해 미디어아트 작업으로 재탄생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르동(남기륭), 우박 스튜디오의 신작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서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시간을 발견하며 하나의 축을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미래로 향하는 길목에서 ‘과정’에 초점을 두고 열린 시간을 탐험한다. 전시는 관객과 작품을 매개하는 틀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전시는 전개 형식을 바꾸고 맥락을 만드는 방법론 자체를 해체해 ‘현재’라는 시간으로 시점을 이동시키고 있다. 전시를 종결된 시간으로 끝맺음하지 않고, 과정주의에 근거해 경험의 층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전시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생애 마지막 선집 ‘No Time to Spare’을 참고해 그 맥락을 이어간다. ‘우리의 삶에서 할 일이 없는 시간을 찾아낼 수 없고, 그 때문에 남겨둘 시간도 없다’는 책의 표현에서 늙고 스러지는 것 대신 끈기 있고 명료한 삶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으로 시간의 겹을 쌓아 몸의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남겨둘 시간은 없다. 전시는 이러한 ‘이야기의 시간’을 경유하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과정을 담는다. 이를 바탕으로 소외된 존재와 감각을 다시 살피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현재를 꿰는 시간의 과정으로 열린 세계를 조망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 큐레이터는 “서울노인복지센터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노인과 노인 주변부에 머문 타자들을 포옹하고자 전시와 함께 심리적 배리어 프리 실천을 위한 여러 장치들을 설치했다”라며 “평소와 미세하게 다른 여러 배려들을 관객이 몸소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2’는 오는 10월 30일(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이색에서 만나볼 수 있다. 운영시간은 매일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회장 김태웅, 이하 한문연)가 주관하는 ‘2022 실버문화페스티벌’의 ‘2022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본선 경연이 10월 22일(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2022 샤이니스타를 찾아라’는 방방곡곡 숨어 있는 어르신 문화예술가를 발굴하는 경연 대회다. 전국 16개 권역에서 진행된 지역 예선에서 1등인 ‘라이징스타상’을 수상한 16개 지역별 대표팀이 출전한다.
생중계에는 사전에 촬영한 본선 경연 영상과 당일 ‘버추얼 스테이지’(Virtual Stage)가 활용된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 문자투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세대 공감 퀴즈쇼’, ‘방구석 응원전’ 등 유튜브로 행사를 관람할 방구석 관객들을 위한 코너도 준비돼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집에서 경연을 관람하며 응원 및 투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무대 이후 트로트 가수 박군의 축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홈페이지 사전 투표 10%, 실시간 문자투표 10%, 심사위원 투표 80%를 합산해 대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본선 경연 생중계는 실버문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www.실버문화페스티벌.kr) 혹은 ‘어르신문화프로그램[문화로 청춘]’의 공식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3gOYi_xy7IY5k9RnJWmFIQ)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Exhibition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사진전
일정 8월 4일 ~ 11월 13일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사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미국 뉴욕 출신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의 사진전이다. 지난해 9월 시작한 유럽 투어 이후 첫 아시아 투어다.
비비안 마이어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작품과 미공개작을 포함한 사진 270여 점과 생전 사용했던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카메라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마이어가 1959년 필리핀·홍콩·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 등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들이 최초로 공개됐다.
비비안 마이어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여러 가정에서 보모로 일했다. 하루에 필름 한 통씩 50년간 많은 양의 작품을 남겼으나, 생전에 그녀의 사진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마이어는 영화감독 존 말루프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말루프는 2007년 마이어의 사진 필름 뭉텅이를 경매장에서 헐값에 사들인 후 2년간 방치하다 사진 일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네티즌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했다. 이후 마이어는 전시회·사진집을 통해 명성을 쌓았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영화가 나왔다. 마이어의 이야기는 영화 ‘캐롤’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셔터를 누른 마이어는 ‘거리의 사진가’로 불린다. 그녀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고,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이 살아 있다. 마이어는 ‘셀피(Selfie)의 원조’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거리의 쇼윈도나 유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주 찍었기 때문이다.
◇이승조 개인전 ‘LEE SEUNG JIO’
일정 9월 1일 ~ 10월 30일 장소 국제갤러리
‘파이프 화가’로 불리는 이승조(1941~1990)의 개인전이다. 국제갤러리에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작가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며 그만의 굳건한 시각언어를 새롭게 조망한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가족과 함께 남하했고,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모티브는 ‘파이프’ 형상이다. 캔버스에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 시각적 일루전(환영)을 만들어내는데, 파이프가 연상된다. 작가의 회화는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Book
◇슬픔이 택배로 왔다(정호승·창비)
“50년 동안이나 이 험난한 세월을 시를 쓰면서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가 출간됐다. ‘당신을 찾아서’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열네 번째 시집으로, 올해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라 더욱 뜻깊다.
이번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정호승 시인의 사유가 유독 돋보인다. 시인은 죽음을 새로운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시인은 시를 통해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낙과(落果)’),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을 때이므로/ 꽃이 질 때 나는 가장 아름답다”(‘매화불(梅花佛)’)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은 “사랑하기에는 너무 짧고/ 증오하기에는 너무 길다”(‘모닥불’)고 말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으로 ‘비움’을 제시한다. 시인은 “빈 의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의자”(‘빈 의자’)이고, “빈 물통은 물이 가득 차도 빈 물통”(‘빈 물통’)이며, “빈집은 빈집이므로 아름답다”(‘빈집’)라고 말한다.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간 시인의 일화들 또한 감동적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을 자아낸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한(‘어머니에 대한 후회’)과 나를 꾸짖을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서럽게 깨닫는 장면(‘회초리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신아연·책과나무)
신아연 작가가 시한부 독자와 스위스까지 동행한 기록을 담은 철학 에세이다. 독자의 죽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으로 뜨거운 우리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지금 살아남은 승자의 이유(김영준·김영사)
신라면, 요플레, 에비앙 생수 등 일상에서 사랑받는 제품들은 치열한 경쟁의 생존자다. MBC 유튜브 채널의 인기 콘텐츠 ‘돈슐랭’의 진행자 김영준은 F&B 기업의 성공 사례를 통해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는 법을 밝힌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쿠니 가오리·소담출판사)
‘냉정과 열정 사이’의 저자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이다. 섣달그믐 밤 노인 세 명은 함께 목숨을 끊는다. 이 죽음을 계기로 남겨진 자들의 일상도 새롭게 펼쳐진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Stage
◇러브레터
일정 10월 6일 ~ 11월 13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출 오경택
출연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
‘러브레터’(LOVE LETTERS)는 두 주인공 멜리사와 앤디가 5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특히 배우 오영수와 박정자, 배종옥과 장현성이 커플 호흡을 맞출 예정으로 기대를 모은다.
오영수와 박정자는 1971년 극단 자유에서 처음 만나 50년 이상 돈독한 우정을 이어온 연극계 동료다. 장현성과 배종옥은 꾸준히 연극무대를 병행해온 실력파 배우들로, ‘러브레터’를 통해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소망을 이뤄냈다.
오영수와 장현성은 멜리사의 오랜 연인이자 친구이며 와스프(WAST, 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슈퍼 엘리트 ‘앤디’ 역을 맡아 연기한다. 박정자와 배종옥이 연기하는 ‘멜리사’는 적극적이고 솔직한 성격의 자유분방한 예술가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일정 11월 8일 ~ 2023년 2월 26일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연출 박소영
출연 최호중, 김도빈, 성태준, 조성윤, 박정원, 김현진, 김리현, 김기택 등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관객을 찾는다. CJ 크리에이티브 마인드(Creative Minds)에 선정된 후 2013년 초연했다. 당시 객석점유율 95%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같은 해 제19회 한국뮤지컬대상 극본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무인도에 표류된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님이 보고 계셔’ 작전을 펼치며 융화되어가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다.
◇히스토리 보이즈
일정 10월 1일 ~ 11월 20일
장소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연출 김태형
출연 오대석, 정상훈, 박은석, 김경수, 안재영, 이지현, 견민성 등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는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극작가 앨런 베넷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영국 북부 지방의 한 공립 고등학교 대학입시 준비반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국내에서는 2013년 초연 이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으며, 이번이 6번째 시즌 공연이다. 인생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는 문학 교사 ‘헥터’ 역에는 2019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열연한 오대석과 함께 정상훈이 새롭게 캐스팅됐다. 옥스퍼드 출신의 역사학 교사 ‘어원’ 역은 김경수·안재영과 재연부터 5시즌까지 ‘데이킨’ 역으로 참여했던 박은석이 출연한다.
노인 혐오를 감추지 않는 혐로(嫌老)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고령자들의 적극적인 문화예술 활동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이금룡 상명대 노인학 교수는 12일 열린 실버문화포럼에서 ‘실버세대의 특성과 노년기 문화활동 예술의 의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이금룡 교수는 “최근 노인의 삶은 활기차고 열정적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과 제도는 아직도 부정적 이미지로 고정되어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인 스스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는데, 적극적인 문화예술 활동이 해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60세부터 80세까지 12시간씩 일이 아닌 여가 보내야 한다면 8만7600시간이 남은 셈”이라며, “현재 노인 세대의 여가가 안고 있는 소극적 태도와 특정 취미로의 쏠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선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실버문화포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한 ‘2022 실버산업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개최된 행사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전국 16개 시도 문화원을 기반으로 한 기관으로 향토문화와 지역 문화의 발전을 위해 활동 중이다.
포럼에선 구민정 홍익대학교 공연예술학 교수의 강연도 이어졌다. 구 교수는 ‘실버문화의 특성과 활동사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50+세대는 결심하면 사회 전체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강조하고,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될 것을 자각하고 연대한다면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노년의 삶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어 진행된 대담에서 노년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 노년기 여가 확산의 방향성, 문화분야 노후 준비와 생애 설계 등에 대한 현안을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실버문화페스티벌은 오는 22일까지 대국민 홍보 챌린지, 문화나눔한마당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행사가 개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