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재발견하는 재미와 별개로 간절한 것이 바로 ‘먼 이국’으로의 여행이지만 지금은 해외로 나가는 발길이 묶여버린 상황. 언제까지 코로나19가 잦아들기만을 넋 놓고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홀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저비용 고효율로 즐길 수 있는, 이름하여 ‘한국에서 즐기는 외국 여행’ 가이드. 인생은 짧고 갈 곳은 많다. 한국에서 만나는 독일, 스위스, 사막, 지중해, 중국, 스페인 산티아고, 아프리카 등 지금 당장 가슴이 끌리는 그곳으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해외여행)을 떠나보자!
한국에도 사막이 있다?
신두리 해안 사구
우리나라 최대의 해안 사구 지대로서 해안 사구가 지닌 환경적, 생태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2년 11월 해양수산부에 의해 생태계 보존 지역으로 지정됐다. 오랜 세월 바람에 의해 날려온 해안의 모래가 쌓여 만들어졌으며 길이 약 3.4㎞, 폭 약 200m에서 최대 1.3㎞ 규모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사구 표면은 대부분 사초로 덮여 있으나 육지 쪽에는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고 해안 가까이 해당화도 자라 사구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두리 해안 사구는 현재 서해안 고속도로 개통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생태계 보존 지역이니 자연을 아끼는 각별한 마음도 가져가야 한다.
위치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유럽풍 숲속 정원을 거닐다
제이드 가든
숲속 정원 ‘제이드 가든’(Jade Garden). 새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진 자연의 공간 만병초원을 비롯해 어릴 적 즐겨 읽고 보던 동화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지은 유럽풍 마을, 젊은이들의 프러포즈 장소로 인기가 좋은 이탈리아 웨딩가든, 그리고 수생식물원, 고산식물원, 꽃물결원, 피크닉가든, 은행나무미로원, 키친가든, 재배온실 등을 천천히 거닐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보자.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점 등의 휴게 공간도 마련돼 있고 가든 가꾸기 프로그램도 상시 진행한다. 하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성인 9500원, 경로우대 7000원. 굴봉산역-제이드 가든 왕복 셔틀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위치 강원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 햇골길 80
독일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
독일마을
1960년대 독일의 광산과 병원에서 일해온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은퇴 후 한국에 돌아와 살 수 있도록 마련한 생활 터전이다. 독일에서 반백 년 가까이 살았던 교포들이 실제로 살고 있어 독일 정취와 문화를 느끼고 경험하기에 좋은 곳이다. 2001년, 남해군이 사업비 30여 억 원을 들여 40여 동의 건축물 택지를 교포들에게 분양했다. 그 후 이 주택들은 교포들의 주거지 또는 휴양지로 쓰이는 동시에 일반 관광객들을 위한 민박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독일 전통 소시지와 맥주 맛보기, 독일마을 추억 만들기, 전통의상 입어보기, 파독 전시관 관람하기 등이 대표 체험 프로그램이다. 상주하는 독일 교포들이 해설사 역할도 한다.
위치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1074-2
오감 만족 스위스
에델바이스 스위스 테마파크
아름다운 숲과 마을, 스위스풍 건축물과 공원을 통해 스위스의 자연과 문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커피, 치즈, 초콜릿, 와인 등 스위스를 대표하는 다양한 주제별 박물관을 포함해 스위스 테마관, 동물농장, 양떼목장, 사랑의 연못, 에델바이스 광장, 갤러리, 포토존 등 전시 시설과 전원 시설을 다채롭게 누릴 수 있다. 어둑해지면 인터라켄 마을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날 수 있다. 주말 기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성인 9000원, 경로우대 7000원.
위치 경기 가평군 설악면 다락재로 226-57
포천 숲속에서 느끼는 아프리카의 숨결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카라반펜션캠핑장
태천만 관장이 수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 30여 개국을 다니며 150여 부족에게 수집한 유물과 민예품 560여 점, 석목 조각 330점, 미술품 30점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인식, 토속 춤, 혼례 및 장례 등 제례의식과 왕족, 족장, 전쟁과 사냥 등과 관련한 유물 및 악기, 각종 생활용품도 감상할 수 있다. 최근에는 카라반펜션캠핑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도심을 벗어난 자연에서의 낭만적인 하룻밤까지 즐길 수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에서 저녁 6시까지 운영하며 요금은 성인 1만2000원, 경로우대 1만 원.
위치 경기 포천시 소흘읍 광릉수목원로 967
산토리니의 호젓한 골목을 걷고 싶다면
지중해마을
푸른 지붕에 파스텔 톤 골목들이 알록달록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지중해에 접한 그리스의 섬과 프랑스 남부의 건축 양식을 빌렸다. 지중해마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 원래는 너른 포도밭이었는데 주변 땅이 개발하면서 탈바꿈의 시기를 거쳤다. 3층짜리 60여 동 건물에는 레스토랑, 와인바, 베이커리, 카페, 기념품 숍, 식당,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 주민들의 거주 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 야간에는 골목 위로 은하수 조명이 매달려 마을 분위기를 한층 돋운다. 또 마을 공원 곳곳에는 벤치가 있어 이국적인 건물을 바라보며 호젓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입장료는 무료.
위치 충남 아산시 탕정면 탕정면로8번길 55-7
사진 출처 충남 홈페이지
한국적 정취와 어우러진 작은 산티아고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
신안군 다도해에 자리 잡은 작은 섬이다. 목포나 무안에서 배를 타고 30분에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썰물 때면 드러나는 노둣길이 대기점도, 기점도, 소악도, 진섬을 마치 하나의 섬처럼 이어준다.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은 하나로 이어진 이 섬들을 걷는 12㎞ 트레일이다. 길을 이어 걷는 중간에 예수의 제자 12사도의 이름을 딴 열두 개의 예배당을 쉼터처럼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섬에는 마을 사무국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게스트하우스가 한 곳 있으며 섬 누리집에는 교통편과 노둣길 물때 등 여행에 필요한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어 처음 가는 사람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
위치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코로나19 사태로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들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현재,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는 관광 업계다. 특히 호텔 업계가 받은 충격은 매우 심각하다. 상당수 호텔이 고육지책으로 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려 애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는 연구와 서비스 개발을 통해 작년과 같은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호텔이 있어 화제다. 바로 속초에 있는 마레몬스 호텔이다. 2018년에 취임해 올해로 3년 차, 마레몬스 호텔의 비전 아래 현장을 책임지고 있는 윤기석 대표를 만나 성공 노하우를 들어봤다.
윤기석(58) 마레몬스 호텔 대표의 경력을 보면 호텔뿐 아니라 코카콜라 직함도 있다. 의외이지만 그때 윤 대표로선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마케팅하다 보면 아이템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글로벌 대외 서비스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서 가게 됐죠.”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코카콜라는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그도 사표를 내야 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그는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현 스위스 그랜드 호텔), 강원랜드를 거쳤다. 그리고 마침내 온 곳이 속초 마레몬스 호텔이다.
“마레몬스 호텔에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죠. 전부 다 맡아야 했거든요. 처음 왔을 때는 시스템이 없었어요. 비록 지방의 작은 호텔이지만 고객의 니즈에 특별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R&D 작업을 했습니다. 침구의 위치부터, 미니바 구성, 메뉴 편성까지. 직원이 미소는 짓는데 고객 질문에 제대로 답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상품에 대한 철저한 로직과 이해가 절실했습니다.”
마레몬스 호텔의 경영 해법은 R&D
마레몬스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영화와 드라마가 가장 많이 촬영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속초의 핫플레이스다. 마레몬스 호텔의 브랜드 슬로건은 ‘대포항의 보석’, 마케팅 슬로건은 ‘우리는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연구 개발을 한다(We do the R&D for Better Service)’이다. 그런데 묘한 데가 있다. 기업 연구실에서는 익숙하지만 호텔 업계에서는 쓰지 않는 단어, 바로 R&D(연구 개발)라는 표현이 보인다.
“각 호텔 체인은 매뉴얼이 있어요. 하지만 연구하는 데는 없죠. 우리가 말하는 R&D는 고객이 체크인하고 체크아웃할 때까지 디테일한 서비스로 최고의 만족도를 이끌어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마레몬스 호텔의 R&D는 디테일한 서비스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호텔에 갈 때 침구가 깨끗하고 편안하길 바란다. 마레몬스 호텔은 이러한 고객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세탁 공장을 갖추고 무조건 네 번을 헹궈 이불 속으로 들어갈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말린다.
“제가 처음 호텔에 왔을 때 소비자들의 블로그를 보니 호텔에서 보이는 속초 전망에 관한 평이 다수였어요. 그런데 그건 마레몬스 호텔이 이미 가진 거잖아요? 그래서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죠. 상품 지식과 스토리를 엮어서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맞다, 틀리다의 해답은 늘 고객이 갖고 있죠.”
윤 대표가 흡족하게 여기는 고객 칭찬 기준은 두 가지다. ‘너무 잘 잤다’ 그리고 ‘아침이 너무 맛있다’. 호텔은 쇼핑센터가 아니므로 여기저기서 찾을 것이 아니라 호텔의 고유 임무인 ‘잘 먹고, 잘 자는’ 데에 충실하자는 거였다.
“많은 호텔이 아침 식사에서 기물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저는 한국인이 맛있어 하는 음식에 초점을 맞췄죠.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리스트업했더니 짜장면이 있더군요. 아침에 짜장면이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대박이 났어요. 집에 있을 때는 짜장면이 말이 안 되는 아침 식사 메뉴이지만 밖에 나와서 모든 걸 내려놓고 휴식을 즐길 때는 짜장면도 가능한 거죠. 그리고 ‘나물 난장’이란 이름을 붙인 코너를 만들었어요. 우리나라 호텔에선 다 나물이 나오죠. 그런데 대개는 3색 나물이고 그 이상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저희는 14가지를 준비했습니다. 또 베이커리도 100% 외주 없이 자체 제작합니다. 아침 식사만 전담하는 파티시에를 따로 두고 있으니까요.”
고객 일생을 연계한 맞춤형 패키지
“구호에 그치면 R&D가 아니다. 차별화가 있어야 한다”는 윤 대표의 말은 마레몬스 호텔의 다양한 섬세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작금의 위기상황에서도 호텔 매출을 뒷받침하는 것은 맞춤형 패키지 상품들이다.
“작년에는 속초에서 화재가 크게 났어요. 상당수 호텔의 객실 점유율이 10%대로 주저앉았죠. 저희는 그때 솔로 패키지를 만들어 40%대 유지에 성공했어요.”
마레몬스 호텔의 솔로 패키지는 말 그대로 혼자서 묵는 고객을 위한 서비스다. 2019년 주중에만 객실을 다 유치했고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작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단다. 또한 솔로뿐만 아니라 연인, 허니문, 시니어 등 다양한 계층에 맞는 패키지를 만들어내고 세부적인 내용들은 서로 연계해 마레몬스 호텔에서의 추억이 계속 쌓이도록 했다.
“사람들이 속초에 오면 회를 먹거나 시장을 가거나 하는데, 제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이 마레몬스 호텔에만 있다가 가게 하는 거예요. 온전히 호텔에 머물면서 문화를 향유하거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호텔의 발전을 막는 수직적 조직 문화
마레몬스 호텔의 역동성은 윤 대표가 말한 R&D의 힘일 터다. 마레몬스 호텔에서는 윤 대표의 주도로 브레인스토밍을 매주 진행한다.
“호텔은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계속 성장하기가 어려워요. 특히 세계적 체인은 헤드쿼터에서 방향을 정해주기에 더욱 어렵죠. 그에 비하면 마레몬스 호텔은 자유로운 편입니다. 뭔가 더 나은 걸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죠.”
그는 호텔에서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수직적인 조직 문화를 꼽았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며 그는 대담하게도 ‘구글 같은 호텔’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직적인 체제에서는 서비스가 제대로 나올 수 없어요. 모든 걸 매뉴얼화했기 때문에 그 내용에서 벗어나는 환경에서는 직원 핸들링이 안 되는 거죠.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직원과의 관계를 유연화해야 손님을 대할 때 순발력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원에게 애사심을 강요하기 전에 직원이 애사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솔선수범하는 편이다.
“호텔이 먼저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직원도 자연스럽게 애사심을 갖게 되지 않겠어요?”
윤 대표는 늘 새로운 걸 고민한다. 스토리텔링을 넘어 스토리 스프레딩을, ‘지금’보다는 ‘다음’에 무엇을 할지 생각한다. 남들이 생각하기 전에 한발 먼저 움직이는 그는 지역의 자랑거리, 삶의 기쁨으로 마레몬스호텔이 입소문 나길 고대한다.
군계일학으로 빛나다
“호텔업은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무형의 서비스 본질은 진정성이고요. 거짓은 언젠간 드러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도 고객들은 다 눈치 챕니다. 제가 걸어온 과정들이 마레몬스 호텔을 이끄는 훌륭한 경험과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직원들과 함께 다져 나갈 계획입니다.”
윤 대표는 자신부터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직원 힐링을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주말에는 직원들과 서빙을 같이한다. 물론 직원들은 처음에는 불편해하지만 이내 익숙해진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직원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고, 고객이 식사를 마친 뒤 정리할 때마다 고객의 니즈와 데이터가 새롭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업무에서의 효율화와 간결화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각 부문의 관리 상태를 주로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스마트하게 관리한다. 말이나 글로 소통하는 게 때로는 소모전 같다는 생각에서다. 핸드폰으로 서비스 교육을 하고 핵심 내용을 압축해 전달하는 등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고 있다.
웨딩의 메카로서 500대 규모의 주차장이 구비돼 있는 마레몬스 호텔 객실은 총 150개. 그중 설악산을 볼 수 있는 8개 객실을 제외하고 모든 객실에 바다 전망을 갖춰놓고 고객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윈터 웨딩, 리마인드 웨딩, 웨딩 저니, 프라이데이 캔들 라이츠 웨딩 등 다양한 콘셉트로 1000명 규모의 하객 수용이 가능한 피로연장도 갖추고 있다.
윤 대표가 제시하는 디테일한 R&D 개발이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 학을 찾고 화려하게 비상하듯, 국내 호텔 업계 판도를 바꿀 마레몬스 호텔의 발걸음이 궁금해진다.
창덕궁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 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강은일)의 국악 공연 온라인 생중계가 문화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국민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이에 따라 문화계의 모든 공연 취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돈화문 국악당 역시 지난 2월 25일부터 계획됐던 모든 공연을 취소한 바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따르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으나 공연이 취소되면서 국악인들은 공연 사례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돈화문 국악당은 서울시가 국악당을 설립한 목적이 공연활동 지원을 통해 전통예술을 계승하고 있는 국악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겠다는 설립 취지인 만큼 공연을 계속해 경제적인 지원은 계속하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관객 온라인 생중계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서울 돈화문 국악당 측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에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점검 후, 곧장 2월29일 토요일에 잡혀있던 대금 연주자 정소희씨의 ‘신화와 현실의 어딘가에, 대금’ 을 관객 없는 무관중 공연 온라인 생중계로 선보인 것이다. 국악공연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온라인 생중계라 네이버 포털과 국악방송에서도 큰 관심을 나타내 3월19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운당여관 음악회’는 네이버V라이브와 돈화문국악당의 페이스북 라이브로 7일 동안의 공연이 모두 온라인 생중계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국악방송 채널에서는 3월19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공연 모두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운당여관 음악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고(故) 박귀희 명창이 돈화문로에서 실제 운영하던 ‘운당여관‘에서 착안한 공연으로 1950~80년대 종로를 찾는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운당여관의 모습을 젊은 국악인들이 다양한 장르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아래 링크는 유튜브 국악방송 채널에 올라와있는 ‘운당여관 음악회’ 영상이다.
https://youtu.be/9JVglLOEl3w
https://youtu.be/qaDQo76N26c
https://youtu.be/jDuzp4d7n04
https://youtu.be/vXG7Gy5FiCA
https://youtu.be/hv7ntmXbFDM
https://youtu.be/k0_wy_t0lHw
국악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운당여관을 모티브로 국악인들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보여준 ‘운당여관 음악회’ 영상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 영상 화질도 매우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방콕인 요즘 매우 적합한 문화생활이 아닐 수 없다.
운당여관 음악회를 이야기 하면서 운당여관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한국 국악계의 대모인 박귀희 선생이 운영하던 운당여관 스토리로 들어가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그토록 원했던 한옥호텔의 원조라 할 운당여관은 종로구 운니동 65-1번지에 위치해있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으로 순조 임금 시절, 궁중의 내관이 왕으로부터 목재를 하사 받아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1951년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인 박귀희 선생과 남편 윤길병씨가 이 한옥을 구매한 후, 이웃한 시인 한상억 선생의 고택을 포함, 3~4채를 합쳐서 1958년부터 이름을 '구름 속에 있는 집' 혹은 '스님들이 좌선하는 집'을 뜻하는 '운당(雲堂)'이라 짓고 여관으로 운영하였다.
본래는 박귀희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고 국악인들의 사랑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가옥을 구입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생계 유지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여관으로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운당여관은 싸고 저렴하면서도 한옥의 정취가 품격 있게 유지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화가, 작가 등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운당여관은 1959년부터 한국 바둑의 최고봉인 국수전, 명인전, 국기전 등 주요 기전의 400여 대국이 벌어져 한국의 최고수를 배출해 내는 등 한국 바둑사에서도 중요한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의외로 사업 수완이 좋았던지 손님이 많아지자 1960년에는 정릉에 있던 순종의 비 윤씨의 별장을 이전 복원해 종로 한복판에 450평 한옥에 31개 객실을 가진 한옥여관으로 확장, 운영되기도 했다.
한편 박귀희 선생은 1989년 운당여관을 매각한 20억원을 서울 국악예술고에 기부하면서 국악인 후진 양성에 큰 힘을 보탰고 이후 운당여관 일부 한옥은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로 이전, 헐린 터에는 돈화문로 월드오피스텔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나만의 슬기로운 문화생활 Tip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내려 창덕궁 쪽으로 걷다 보면 계동 현대그룹 사옥과 창덕궁 돌담길 사이 코너에 최근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베이커리 카페 ‘Onion’이 눈에 띈다.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이 모여 있는 성수동에서 금속공장을 개조해 도시 재생 카페로 첫선을 보였던 Onion이 이곳 계동에서는 대청마루 너른 곳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좌식형 카페로 선을 보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곳은 이곳보다는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건축사무소 공간 1층에 위치한 프릳츠를 추천한다. 요즘 커피 좀 안다는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 급상승중인 프릳츠는 독특한 커피 맛을 앞세워 각 지역마다 프릳츠 스티커를 붙인 원두공급업체로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공간의 적벽돌 건물을 감상하며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커피를 마시고 창덕궁 쪽으로 계속 걸어 내려오다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서 돈화문국악당으로 들어가본다. 국악당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면 언제든 들어가서 잔디밭 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과 형형색색의 늘어뜨린 천과 잔디의 초록색의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1층 안내 데스크 오른쪽에 마련된 대청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 확 트인 창으로 창덕궁 입구가 환하게 보인다.
좌탁이 마련돼있어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며 잠시 감성에 빠져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창덕궁을 바라보며 대청마루에 앉아 언제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나만의 슬기로운 여가생활 보내기다.
노보텔앰배서더 서울 동대문 호텔&레지던스가 홈파티를 겨냥한 케이터링 고메박스를 선보인다.
고메박스(Gourmet Box)는 호텔 셰프의 고품격 요리를 취향에 따라 집 또는 야외에서 간편하게 즐기도록 기획한 서비스다. 30여 가지의 콜드·핫 디시, 디저트 메뉴 중 5가지(6인 기준)를 골라 구성할 수 있다.
콜드 디시에서는 리코타 치즈와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과일 카프레제, 타파스와 샌드위치, 모둠 초밥, 핫 디시에서는 갈비찜, 피쉬앤드칩스, 떡갈비와 버섯구이 등이 선택 가능하다. 디저트 메뉴로는 계절과일, 얼그레이 케이크, 모둠 페이스트리 등이 마련돼 있다.
고메박스 기본(5가지 메뉴) 가격은 15만9000원이다. 디저트를 제외한 핫∙콜드 디시는 1세트당 최대 3개까지 추가 가능하다(메뉴당 3만 원 추가). 예약 후 호텔 픽업 또는 서울 일부 지역에 한해 유료 배송 서비스를 진행한다. 수령 당일에는 호텔 1층 카페 &베이커리 ‘더델리’ 전 품목 10%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호텔 관계자는 “호텔 셰프가 직접 선보이는 요리를 집 혹은 밖에서 자유롭게 맛보도록 케이터링 박스인 ‘고메박스’를 출시했다”라며 “이제 호텔 레스토랑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홈 파티나 워크숍 등에서 품격 있는 요리를 간편하게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벨기에로 열흘간 여행 간다’고 하니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곳에서 그렇게 볼 게 많아?” 하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미술 작품 순례만으로도 볼 것이 차고 넘쳐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누가 여전히 같은 질문을 또 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해줄 것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미술관 어디까지 가봤니?”라고. 고흐, 렘브란트, 루벤스, 페르메이르, 마그리트 등 스탕달신드롬(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했을 때, 그 충격과 감흥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신적·육체적 이상 반응)까진 아니어도 명작을 코앞에서 감상하면서 작가들의 삶의 편린도 함께 접할 수 있는 가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대표 작가 Big3와 미술관을 소개한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의 작품을 포함, 15~19세기 네덜란드 유명 화가 작품 5000점, 조각품 3000여 점이 연대별로 전시돼 있다. 반 고흐의 자화상, 얀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17세기 네덜란드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상을 보여주는 가구 미니어처 ‘인형의 집’도 볼 만하다. ‘인형의 집’은 ‘집과 가구 모형을 실제와 똑같이 정교하게 만든 미니어처’다. 호화롭기 그지없는데 당대에는 서민 주택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비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야경’
뭐니 뭐니 해도 이 미술관의 대표작은 렘브란트의 ‘야경(夜警)’이다. 이곳에서 일부러 이 그림을 찾지 않아도 관람객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따라가면 ‘야경’ 앞에 이른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2층 명예의 전당 전면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렘브란트의 인생처럼 팔자가 센 작품이다. 전시 중 황산 세례와 칼로 그어지는 등 두 차례 수난을 당했다. ‘야경’을 완성한 해에는 첫 번째 부인 사스키아와 사별을 했고, 이후 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당하는 등 사회적 명성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파산 등 경제적 문제도 몰아닥친다. 또 고객들의 요구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아 불만을 사면서 화가로서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평이 있다.
‘렘브란트의 모든 것’
올해는 렘브란트 서거 350주년.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6월까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는 ‘렘브란트의 모든 것’ 전시회가, 7월부터 연말까지는 대표작 ‘야경’의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행사가 열린다. 우리가 갔을 때는 ‘렘브란트의 모든 것’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22개의 작품, 60점의 드로잉, 300점의 판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렘브란트는 자화상도 40여 점 그렸는데 연대별로 주요 자화상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던 게 큰 수확이었다. 자부심을 넘어 야망과 당당함을 보여주는 청년기 모습, 기름기와 욕망이 적당히 반죽된 중년기의 모습, 특히 쓸쓸한 눈빛을 한 노년기의 자화상에서는 ‘나 아직 살아 있어’ 하고 외치는 듯한 내면의 모습이 느껴졌다.
렘브란트 하우스
인간 렘브란트를 보다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 성공의 상징이자 몰락의 원인이 된 호화저택이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인 요덴브레이스트라트에 위치한다. 1639년부터 20년간 살면서 작업을 했던 지역이다. 그 시절의 살림, 미술 도구, 호사스런 수집품들(코뿔소 뼈 등)이 층별로 전시돼 있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수집가, 사업가, 거장으로서의 면목도 감상할 수 있다.
반 고흐 미술관
본관 상설전시관과 신관 기획전시관 건물이 유리 현관으로 연결돼 있다. 유화 200여 점, 소묘 500여 점, 편지 700여 통과 함께 고흐가 수집한 우키요에(일본 판화)와 회화를 포함한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규모는 세계 최대. ‘꽃피는 아몬드 나무’, ‘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자화상’, ‘노란 집’ 등 전시 작품들이 다 걸작이다. 이곳에서는 하이라이트 중심의 감상보다는 전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천천히 작품을 느끼는 게 좋다.
“열흘 내내 딱딱한 빵 조각을 유일한 음식으로 삼았지만, 이 그림 앞에 앉아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인생의 10년은 행복할 것이다.”
고흐가 렘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를 보고 외친 말이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옆 자신의 이름이 걸린 전용 미술관이 세계 명소가 된 것을 안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할까.
크뢸러 뮐러 미술관
고흐 미술관이 도심 속 미술관이라면, 이곳은 공원 속 미술관이다. 한적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감상을 즐길 수 있다. 뮐러의 부인 헬레나가 수집한 작품들을 기증받은 네덜란드 정부가 작품을 보관, 전시하기 위해 1938년 개관했다.
고흐의 유화 작품 90여 점, 드로잉 170점 등이 전시돼 있으며 규모는 세계에서 두 번째다. 이 미술관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밤의 카페테라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놀라게 하지. (중략)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머무르던 시절, 이 작품을 그리며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밤하늘에 별을 하나씩 찍어가며 열정에 차 작업하는 고흐의 모습, 이 시절을 함께한 우체부 조제프 룰랭, 의사 가셰, 카페 마담 지누, 화가 고갱 등이 함께 어우러져 밤의 카페테라스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미술관이 위치한 호게 벨뤼베 공원은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국립공원이다. 서울 여의도의 7배 면적인 70만 평 규모. 매표소에서 미술관까지는 2.4km나 되는데 자전거를 타고 가도 30여 분이나 걸린다. 매표소 입구에는 무료로 대여해주는 자전거가 진열돼 있다. 숲길의 나무와 반짝이는 나뭇잎 등이 고흐의 작품 ‘사이프러스 나무’의 풍경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얀 페르메이르와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마우리츠호이스라는 이름은 이 집의 첫 번째 소유주였던 요한 마우리츠에서 따왔다. ‘마우리츠의 집’이란 의미를 갖는다. 네덜란드의 16~17세기 작품 8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렘브란트를 일약 유명 화가로 만들어준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파울루스 포테르의 ‘어린 황소’ 등이 하이라이트. 색깔이 다른 벽지로 전시장을 구분하고 창가엔 커튼도 달려 있어 얼핏 보면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창 너머로는 호프페이베르 연못이 보인다. 백조들이 떼 지어 떠다니는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창가엔 의자도 있어 중간중간 쉴 수도 있다. 창밖의 호수 풍경, 전시장의 작품 중 어느 것부터 볼지는 관람객 마음에 달려 있다. 편안하고 폭 감겨오는 미술관을 고르라면 단연 이곳을 꼽고 싶다.
우리는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에 도착하자마자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기 위해 직행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우유를 따르는 여인’ 등의 작품을 감상했지만 이 작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원화를 보자마자 모두에게서 터져 나온 말은 “생각보다 작네?!”였다. 그림 크기는 44.5×39cm. 이러한 사이즈는 당시 네덜란드의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그림을 걸어놓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일반 시민의 미술품 수요가 컸다. 작품의 크기가 작은 이유는, 붙였다 떼었다 하기 편한 그림이 판매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이아몬드 링’ 베이커리와 페르메이르
페르메이르의 흔적은 헤이그 인근의 델프트 시에 많다. 그는 태어나고 자란 이 지역을 평생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묘지도 이곳에 있다. 델프트 시에는 ‘다이아몬드 링’이라는 빵집이 있다. 1796년부터 운영해온 유서 깊은 점포다. 프랑스인 발타자르 드 몽코니가 일기에 기록해놓았다는, 빵집과 페르메이르의 인연 한 토막이 특별하게 들려온다. 몽코니가 명성을 듣고 페르메이르의 집을 방문했는데 작품이 한 점도 없었더란다. 근처 빵집 주인이 소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가 보니 600길드를 주고 산 작품이 있었다. 또 페르메이르가 빚을 갚기 위해 담보로 제빵업자에게 그림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그 얘기를 듣고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보니 우유병 앞에 놓인 바구니 속 푸짐한 빵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링’에서 팔던 빵들과 닮아 있다. 시 광장 주변에서는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 델프트 거리에는 앤티크 숍이 많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서 유명해진 푸른색 터번, 델프트 블루 타일, 클래식풍 스탠드에 이르기까지 제품이 다양하다. 심지어 한국 탈을 판매하는 곳도 있다.
공기를 통해 코로 전달되는 숱한 냄새는 우리 일상에 은근하면서도 강렬한 영향을 미친다.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직접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감정의 변화는 물론 어떤 대상에 대한 긍정 혹은 부정 등의 인식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무형의 존재인 향기가 상상력을 자극하고 고급스러움과 품격을 높여주는 소재로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생활과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는 향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도움말 최아름 ㈜아이센트 대표
언제부턴가 자주 가는 백화점 혹은 극장 등에 들어서면 익숙해진 향기에 이끌린다. 세련된 장식이 된 호텔, 전시관,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서비스 시설은 마치 ‘패션의 완성은 향기’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고유의 향을 간직하고 있다. 향기로 누군가를 기억하듯 공간 또한 인식하게 되는 것. 이를 일컬어 ‘향기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나 상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향기를 발산해 이용자가 향기와 함께 훗날에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전략이다.
향기 마케팅이 각광받는 이유
1990년대를 전후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향기와 구매 욕구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왔다. 향기 마케팅 회사 ‘에어아로마(air-aroma.com)’ 웹사이트에는 향기가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을 쉽게 설명해놓았다. 향기는 소비자의 지출을 늘리고 장기적인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보다 깊은 감성 교류로 인해 이용 만족도 또한 높다고 한다. 미국의 후각연구소(Sense of Smell Institute)의 의견에 따르면, 인간의 오감 중 후각이 가장 민감하며 하루 중 감정의 75%가 후각의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대략 1만 개 정도의 냄새를 인식하며,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냄새는 1년이 지난 후에도 65%는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반면, 시각적 이미지는 50% 정도만 되살아나고 기억의 한계는 3개월 정도라 한다. 후각으로 기억되는 잔상이 길다는 연구 결과에 주목해 산업적 접근을 시도한 분야가 향기 마케팅이라는 설명이다.
‘빵 굽는 냄새’가 실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기를 이용한 마케팅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오래된 자료를 찾아봤더니 1997년 4월 ‘베이커리’라는 매거진에서 소개한 ‘빵 굽는 냄새를 향기로 구현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체가 국내 최초의 향기 관리 업체인 (주)에코미스트코리아(현 (주)바이오미스트테크놀로지)에 ‘빵 굽는 냄새’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했던 것. 빵 굽는 냄새가 고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데 그렇다고 하루 종일 빵을 구울 수는 없기에 빵을 굽지 않는 시간에도 ‘빵 굽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풍길 수 있도록 향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료를 보니 (주)에코미스트코리아는 마늘빵 향을 개발했고, 소량으로도 25평 규모의 매장에서 하루 종일 고소한 빵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며 기사가 마무리됐다. 실제 빵집에 마늘빵 향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에코미스트코리아 최영신 대표는 미니 인터뷰를 통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되살리는 데 더 큰 효과가 있다”며 “이는 특정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연상 작용으로 이어져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향기 마케팅에 관련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
매일매일 변화를 맞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사회 속에서 향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글로벌 향기 마케팅 회사 (주)아이센트의 최아름 대표는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보이지만 이면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연결되고 감정적인 자극을 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특히 요즘은 쇼핑이나 영화 관람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일이 많다 보니 소비자의 방문이 필수인 서비스 공간을 훨씬 더 기억에 남게 하려고 감정적 연결고리를 향기에서 찾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이러한 마케팅을, 공간에 향기를 머무르게 하는 ‘공간 센팅 (ambient scenting)’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대상에 몰입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물론 향기 마케팅은 소비자가 해당 공간에 머물면서 다양한 시설을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래서 다른 마케팅보다 따뜻한 감정과 신뢰를 주는 것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환경 향수로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향기 마케팅이 꼭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가 만든 ‘빌&멜린다 게이츠재단’은 세계 최대 향료 회사 중 하나인 피르메니히에 의뢰해 화장실 악취를 꽃향기로 바꿔주는 ‘화장실 향수’를 개발해 개발도상국 화장실 개선 사업에 힘쓴 바 있다. 또 화장실이 부족해 이로 인한 질병에 노출된 아이와 노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인도와 아프리카 등지에도 이 향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향기 마케팅 회사 아이센트 또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체취, 화장실 냄새 등과 같은 악취를 효과적으로 중화해주는 환경 향수를 개발했다. 이 향수는 특허받은 성분으로 만들어 상쾌하고 기분 좋은 환경으로 바꿔준다. 시니어가 많이 드나드는 공동 시설의 환경 개선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최 대표는 언급했다. “시니어가 활동할 때 좋은 향기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오렌지 향 같은 시트러스 노트 계열의 향은 우울증 감소에 도움이 되며 초콜릿,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은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한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당신의 아지트는 어디인가? 물론 특정한 한 곳만을 아지트로 삼은 사람도 있겠지만 날씨, 기분, 개인 욕구에 따라 가고 싶은 장소가 달라지기도 한다. ‘2019 시니어 아지트’ 설문조사에서 ‘시니어를 위해 생겨났으면 하는 아지트 유형은?’이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문화공간, 학습터, 쉼터를 꼽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즐기고,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쉬고 싶을 때 찾으면 좋을 공간을 소개한다.
연재 순서 ① 樂(즐기다), ② 學(배우다), ③ 休(쉬다)
休(쉬다)
고즈넉한 여유
학림다방
옛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 지식인, 문화예술인의 아지트다.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으로 1956년에 문을 열었다. 삐걱대는 나무계단, 책장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LP판과 목조 구조물들이 정겹다. 클래식한 매력 덕분에 주말이면 계단에 대기 줄이 이어질 만큼 인기다. 한가롭게 음악도 듣고 이 공간을 즐기고 싶다면 평일에 방문하는 게 좋다. 로스터리 카페 ‘학림커피’도 가까운 거리(도보 1분)에 위치해 있다.
위치 서울 종로구 대학로 119 (혜화역 3번 출구 도보 1분)
운영시간 매일 10:00~23:00 (연중무휴)
싸롱마고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즈넉한 한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싸롱마고’다. 현재 은덕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예, 사군자를 가르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진행된다. 1층에 진열된 옛 CD, LP판, 턴테이블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1층은 천장이 높아 탁 트인 느낌을 주며 2층엔 아담한 좌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쾌청한 날 북촌길을 거닐다 이곳에 들려 책과 음악을 감상하며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자. 대표메뉴는 마고차(직접 만든 국산 차 6000~7500원), 복분자 빙수(1만2000원).
위치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49 (안국역 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매일 11:00~18:00 (월요일 휴무)
보약 같은 휴식
솔가헌
도심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다면 한옥 한방 카페 ‘솔가헌’에 들러보자. 진산한약국에서 운영하는 솔가헌은 한옥 내외부를 환경호르몬이 전혀 없는 원목으로 꾸몄다. 탁 트인 공간과 함께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편백 좌식 온돌방도 마련되어 있다. 또 한방차와 더불어 각종 에이드와 스무디, 해독 피자, 다이어트 쿠키 등 다양한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솔 향 가득한 곳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즐기는 족욕(20분에 1만 원)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다. 대표메뉴는 진산한약국이 개발한 10여 가지의 한방차(다과 포함 1만 원).
위치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4 (경복궁역 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평일·토요일 11:00~20:30, 일요일 12:30~20:30 (주문마감 20시, 화요일 휴무)
카페 드 바디프랜드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 드 바디프랜드(Cafe′ de Bodyfriend)’는 안마의자로 유명한 헬스케어그룹 ‘바디프랜드’가 운영하는 복합힐링공간이다. 1층은 카페&베이커리, 2층은 레스토랑, 3층은 전시장으로 구성됐다. 카페&베이커리, 레스토랑에서는 친환경 식자재를 엄선해 사용하고 일체의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전시장에서는 직접 바디프랜드 제품을 체험해볼 수 있으며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힐링의 격을 높여준다. 모든 층의 바닥과 벽면은 대리석,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다. 한강과 도심을 내려다보며 안마도 받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과 디저트도 즐길 수 있어 호화로운 호텔 부럽지 않다.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546 (청담역 13번 출구 도보 8분)
운영시간 카페&베이커리 10:00~22:00, 레스토랑 런치 12:00~15:00/디너 17:30~22:00, 전시장 10:00~21:00 (모두 연중무휴)
예약방법 070-4237-7985~7
자녀들은 대개 설 선물로 건강기능식품을 떠올리지만, 받는 부모 입장에서는 색다른 무언가를 바랄 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경우에도 예년보다 특별한 아이템을 찾곤 한다. 주고받는 설 선물이 고민인 이들을 위해 몇 가지 아이템을 골라봤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2019 설 선물세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는 50여 가지 설 선물세트를 선보인다. 올해는 알찬 구성으로 만족도를 높인 혼합 세트가 다양하게 마련됐다. 특선 한우와 독도새우 세트(130만 원), 민속한우 갈비찜과 전복, 인삼 세트(80만 원) 등 프리미엄 상품을 비롯해 훈제 연어와 샴페인 세트(29만 원), 수제소시지와 치즈 세트(19만 원) 등이 인기다. 2월 17일까지 판매, 배송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몽상클레르 햄퍼 세트’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베이커리 브랜드 몽상클레르에서는 인기 카스텔라 2종, 파운드케이크 2종, 구움과자 3호, 마카롱 5구, 텀블러, 잼을 담은 ‘몽상클레르 햄퍼 세트’(15만 원)를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 6일까지 판매한다. 이외 프리미엄 정육 세트(19만8000원/ 23만 원), 와인세트(15만 원), 사케세트(13만8000원) 등 다양한 선물세트는 2월 1일까지 예약·구매 가능하다.
◇일렉트로룩스 ‘3D비전 로봇청소기’
글로벌 가전 그룹 일레트로룩스가 세계 최초로 3D비전 시스템을 도입한 로봇청소기 ‘PUREi9’(159만 원)을 출시했다. 물건과 공간을 3D로 인식하고 분석해 걸림 없이 완벽한 청소가 가능한 프리미엄 로봇청소기로, 쓸어내기 힘든 모서리의 미세먼지 청소까지 가능하다. 3D 맵핑네비게이션으로 집 안을 스캐닝해 체계화된 청소를 하며, 최대 2.2cm 높이의 장애물도 넘나들 수 있다.
◇핏플랍 ‘여성 부츠 & 남성 슬립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신발’을 모토로 패셔너블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영국 브랜드 핏플랍(fitflop)은 시니어에게 안성맞춤이다. 여성용 라일라 더블 버클 앵클부츠(27만9000원)와남성용 콜린스 슬립온 스케이트 슈즈(21만9000원)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미드솔이 장착돼 신기 쉽고 발도 가볍다.
◇비탄토니오 ‘전자동 커피메이커’
일본 인기 주방가전 브랜드 비탄토니오(vitantonio)가 그라인더 일체형 전자동 커피메이커를 출시했다. 내장된 그라인더에서 커피 추출 직전에 원두를 분쇄해 가장 신선한 상태의 드립 커피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두 본연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샤워드립(shower drip)과 블루밍(blooming) 등 고급 기능도 포함됐다. 유리보다 좋은 스테인리스 서버를 사용해 오랜 시간 커피 온도가 유지될 뿐만 아니라 깨질 염려도 없다. 2.6kg으로 가벼운 데다 심플한 디자인으로 어느 공간에나 잘 어울린다. 가격은 15만9000원.
◇뉴오리진 ‘피스피스 초콜릿’
갱년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감마리놀렌산’이 함유(220mg)된 초콜릿이다. 마그네슘, 아연, 칼슘 등의 성분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더욱 건강한 간식으로 즐길 수 있다.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는 생강 추출물로 몸을 따뜻하게 해줘 갱년기 여성을 비롯해 월경 전후 증후군을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피스피스 비터, 피스피스 스위트 두 가지 맛이 있으며, 개당 가격은 1만 원이다.
◇럭스나인 ‘천연 라텍스 경추 베개’
라돈 불검출 인증과 유해물질 테스트 등을 통과한 친환경 매트리스 브랜드 럭스나인의 인기 제품 ‘천연 라텍스 경추 베개’(11만9000원). 신체부위별 맞춤설계로 거북목과 일자목은 물론 목주름과 코골이 예방 효과까지 있어 숙면에도 도움이 된다. 베개 좌우측 높이를 11cm로 설계해 척추 측만과 어깨 결림을 방지해준다.
며칠 전 미국에서 십 년쯤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살기로 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지낼 집을 함께 둘러보는데 동행해 주었다. 몇 군데의 집을 살펴보고 나와서 함께 걷는데 주변에 시장과 골목이 있고 갖가지 풍물스러운 것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친구가 말한다.
“오옷...역시 한국이 좋아, 저렇게 오밀조밀하고 익사이팅한 것들이 정말 흥미로워~”
지금껏 한국에서 나고 살아온 필자도 그런 구멍가게나 재래시장을 지날때면 괜스레 친근한 맘에 고개를 돌려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녀는 얼마나 더 새삼스러울까 싶었다.
그 길을 나오며 또 한 마디 한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 조런 구두 수선집이 있으면 괜히 반갑고 좋아”
필자도 동네 가까운 곳에 구두 수선집이나 옷수선 가게, 방앗간,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이나 만두, 그리고 오래된 동네빵집들이 눈에 들어오면 무척 반갑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지금껏 잘 유지시켜온 사람들에게 친근감과 함께 참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물론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아직 개발이 덜되고 발전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런 동네에 들어서면 저절로 푸근해지고 정감어린 마음이 된다. 복잡다단한 세상에 살다 보니 요즘 더욱 그럴 수 있다.
또한 다행인 것은 언제부터인가 거대 자본에 밀려 몫이 좋지 않은 뒷골목으로 쫓겨났던 동네 빵집들이 하나둘씩 인기를 얻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본다. 표준화된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빵맛보다 정직한 재료로 가내 수공업식으로 만들어낸 빵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사라진 것들이 다시 그 자리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반갑고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저 변모해가는 현대사회의 자본의 힘을 꿋꿋이 잘 버텨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오래된 것들의 매력뿐 아니라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따뜻하고 진솔한 이들의 사람 사는 맛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다.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에게도 그런 삶의 현장에서 그립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얻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또 나이 탓이라고 넘겨짚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사람을 정겹게 하고 마음의 여유를 즐길 시간을 주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듯 반가운 풍경들이다. 특히나 감정이 기우뚱거리고 마음이 어수선할 때면 더욱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려와 성의'는 어쩌면 기본이다. 가깝게 오래 사귄 친구 관계에서는 더욱 그 기본을 지켜야 한다. 어느 날인가 오래도록 간직된 깊은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참아왔던 앙금의 감정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어 폭발을 한 것이다. 조금도 더 참을 수 없는 너그럽지 품성을 뒤늦게 후회도 했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필자는 10여 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끊겼던 옛 친구를 찾았고, 그 친구는 당장이라도 만나자고 보챘다. 지난날의 추억과 못 보고 살아온 날의 궁금함으로 마냥 들떠 있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친구는 흘러간 수많은 시간 속에서 모습이 전혀 달라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 조금은 서먹했으나 그래도 옛 때묻은 추억들과 각기 다른 삶의 진한 이야기들로, 삶의 풍파를 넘어선 중후한 아줌마들로서 수다를 이어갔다.
이런저런 삶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가끔씩은 눈물도 글썽거렸고, 잘 나가는 아이들 얘기까지 끝이 없었다. 친구는 어느덧, 긴 시간 속에 많은 재산을 축적하였고 이제는 제주 땅부자까지 되었다며 자랑을 쏟아냈다. 커다란 얼굴에는 어딘가 힘들어 보이는 그늘이 서려 있기는 했지만, 필자는 있는 그대로를 기쁨으로 다 경청해주었다. 대단하다며 축하와 격려도 해주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친구는 밥 먹자는 소리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필자가 먼저 식사하러 가자고 하니 친구는 대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황당한 대답에 말문이 막히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필자는 배가 많이 고팠지만 하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지나간 옛이야기들을 해야 했고,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가서 커피값을 내야 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친구가 보이지를 않았다. 필자가 먼저 계산을 했지만 조금 기분이 그랬다. 그럴 수도 있다며 일단 이해를 하기로 했다. 얼마 지난 후 또 만나자고 그 친구가 연락했다.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해서 선뜻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친구는 잘 사는 동네, 5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으로는 달랑 자장면을 시켰다.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먼 곳까지 자기 편한 곳으로 불러놓고 소박한 된장찌개는 고사하고 도대체 성의가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어 친구는 함께 쇼핑을 가자고 했다.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세일을 한다며 그리로 필자의 차를 타고 나갔다. 백화점에 도착하자 갑자기 지갑을 놓고 왔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가방 속에 아무것도 없다며 돈을 빌려 줄 수 있느냐고 했다. 할 말도 없고 어이가 없었지만 순진하게 카드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가 좀 그랬다.
우선 지하 마켓으로 갔다. 싱싱하게 잘 말려진 꼬들꼬들한 굴비가 값이 싸고 맛이 있어 보였다. 필자는 손가락질을하며 어떠냐고 했더니 친구는 너무 좋아하며 아무 생각 없이 엉뚱스럽게도 남아 있는 것들을 자기가 몽땅 다 사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말문이 딱 막혀 입이 벌어졌고 양심이 없는 인간으로 너무 뻔뻔해 보였다.
친구가 어떻게 그 모양으로 변해 버렸는지 앞서가는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얄밉기도 하고 도통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데, 또 팥빙수가 먹고 싶다며 태연하게 함께 먹자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참을 수가 있었다. 차라리 필자가 사주겠다고 먼저 제의했다. 기분이 안 좋기는 했지만 돈이 없다니 도리가 없었다. 마음을 상하게 한 친구와 함께 마주 보며 먹으려니 영 불편해서 옆자리로 옮겨 앉아 횡설수설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았다.
문제는 결정적으로 빵집에서 일어났다. 백화점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 반값 세일을 하기 시작했다.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것 중에 필자가 골라 놓은 것을 자기가 사고 싶다며 얼른 자기 쟁반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참을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아주 큰소리로 “뭐 하는 거야! 네가 친구냐? 네가 사람이야?” 있는 대로 화를 내고 얼굴이 빨개져서 씩씩대며 그 자리를 거침없이 떠나왔다.
흥분해서 창피함도 무릅쓰고 핏발을 세워가며 소리를 질러대긴 했으나 주차장으로 내려와 운전대에 올라앉았을 때는 약간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때까지도 따라 내려 오지 않았다. 정상의 사람이라면 잠시 만나 스치는 사이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있어야 했다. 하물며 가까운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배려는 고사하고 나이를 먹은 중년의 성품에는 고얀 욕심만 가득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참아 줘야 할까 싶었다.
그후로는 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그렇게 사람이 변해버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젊었을 때는 착하기만 하고 순수했던 친구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그리도 당돌하고 얌체처럼 달라질 수가 있는지 필자의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그 친구 생각에 마음이 아련하게 슬퍼왔다. 오래된 우정이었기에 미련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흔들려버린 우정을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이가 든 탓 일수도 있겠지만 필자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제 단순하고 명료하게 싫었다.
좋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남은 시간이 짧기만 한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상대를 위한 배려와 최소한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 이제는 고민하고 이해하며, 애써서 만나야 하는 관계의 삶은 심신을 피곤하고 지치게 한다.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삶의 가치관이 다른 이상한 친구들은 멀리하고 싶었다.
필자에게도 전혀 상상치 못 했던 일, 아주 오래된 우정이 마음이 상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