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의 조화가 아름다운 궁궐, 조선시대 정원 중 가장 아름다운 창덕궁을 4월 초순 둘러보았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건축미에 빠져들기도 했고 궁궐 대문 양쪽에 장식된 장석(裝錫, 사진 참조)을 보며 저출산율로 ‘인구절벽’에 빠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장석의 문양이 대여섯 자녀에게 물린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장석을 다산(多産)의 의미를 담아 자손의 번성을 기원한 장식으로 사용했기에 더욱 그랬다. ‘인구절벽’은 베이비붐 세대가 일으킨 경제 규모를 이어갈 생산가능인구(15세~64세)의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든 사회 현상이다. 여기에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도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젊은 층의 미래도 걱정이지만,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들의 미래 복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선조들은 이미 많은 자녀 출산의 필요성을 예견하고 기원의 뜻을 담아 궁궐 곳곳에 부적처럼 붙였다. 그래서인지 다산 의미를 담은 포도송이 문양의 장석은 궁궐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자손번영을 으뜸으로 꼽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2105년 2.25명에서 최근엔 1.17명으로 크게 낮아졌다고 한다.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모두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궁궐의 주요한 곳에 다산 기원의 장석을 붙여 한마음으로 염원했듯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선물과 뇌물사이에 갈등을 많이 겪었다.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말도 유행 했었고 그래도 근절이 되지 않자 속칭 ‘김영란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사람이 동물과 달리 잘 살기위해 인간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맺으면서 선물과 뇌물은 명맥을 이어왔다. 선물은 인간관계의 윤활유로서 정을 나타내므로 지나치지 않다면 부모자식 사이에도 있어야 한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만주 벌판으로 찾아갔다. 독립 운동가는 이렇게 멀리 찾아온 처음 보는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반갑고 고마왔지만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살벌한 전쟁터에서 며느리에게 대접할 것도 변변치 않고 결혼 예물도 마땅히 줄 것도 없었다. 그는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서 시아버지의 결혼예물 이라며 줬다고 한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감지덕지 고마워했다. 어떤 독립 운동가는 천리길을 찾아온 친척에게 자기의 혁대를 풀어서 정표로 주기도 했다. 이런 유사한 이야기가 무수히 많은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본래부터 정이 넘치는 민족이었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에게는 선물이라는 이름의 정을 표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일 것이다.
명문대가는 독특한 그 집안의 전통이 있어야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고유한 음식이 있고 독특한 예의범절이 있어야 한다. 명문집안이 아니더라도 조상 때부터 사용하던 물건을 대를 이어 사용하면서 조상의 은덕을 생각한다면 참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상님의 유품 한 가지라도 품고 다니거나 집에 보관하는 자손이 있다면 복 받을 집안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몇 달이 지나면 예쁘고 귀여운 셋째 손녀의 첫돌이 돌아온다. 오래도록 손녀가 기억하고 기념할 할아버지 선물을 주고 싶은데 무엇이 좋을까 끙끙 대다가 주위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기로 했다. 압도적으로 현찰을 주라고 한다. 젊은이들의 물건 보는 안목이 나이든 사람하고 다른데 자칫 옷이나 물건을 사주다가는 앞에서는 웃으며 받지만 돌아서서 자칫 외면당하기 쉽다는 이유다.
하지만 현찰로 주면 당장은 아이 부모가 알아서 옷을 사 입힌다거나 이런저런 곳에 요긴하게 잘 쓰겠지만 곧 흐지부지 모두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배달사고가 난 것처럼 아이가 이담에 커서 할아버지가 나의 돌을 기념해서 무엇을 주었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설날 세배 돈을 아이에게 주면 처음 부모는 아이 앞으로 통장을 만들어 이담에 아이가 크면 아이에게 주거나 아이를 위해 확실하게 쓰겠다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이고 대부분 가정살림에 써버린다. 10여년 뒤 아이가 자라 철이 들었을 때 이 통장은 네가 이러저러한 사람에게서 받은 세배 돈을 이렇게 모은 통장이라고 전해주는 부모 보기가 어렵다. 보면 쓰기 쉬운 것이 현금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정기예금통장도 불확실 하다 과거에 있던 몇 백 년을 간다고 큰소리 뻥뻥치던 장기신용은행이 문을 닫았고 아이가 성장해서 스스로 돈이 필요한 나이가 되는 20 년짜리 정기예금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주식은 잘 사면 대박이지만 과거 잘나가던 기업이 30년을 못 버티고 문을 닫은 기업도 많아서 이 또한 고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실물자산인 금으로 행운의 열쇄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살다보면 어려운 일은 손녀에게도 생길 것이다. 그때마다 할아버지가 준 행운의 열쇠를 부적삼아 힘을 얻으면 좋으리라는 기대감이다. 손녀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금을 돈으로 바꿔서 급히 써야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1974년 개관한 한국민속촌은 저마다 한 번쯤은 가봤을 만한 국내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오히려 오래전 한 번 가봤다는 이유로 식상하게 여기거나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동안 민속촌은 늘 새롭게 단장하고 변화하고 있었다. 사극 드라마의 배경으로 나오는 초가집과 기와집이 즐비하던 모습만 떠올린다면 이번 기회에 민속촌의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설 연휴를 맞아 한복을 입고 나들이한다면 더 금상첨화일 것이다.
즐거운 전통과의 행복한 공존
개관 이래 40여 년 동안 꾸준히 즐거운 변화를 시도해온 한국민속촌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과거 조선시대의 전통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촌락’이다. 남부, 중부, 북부 및 도서 지방에 이르는 지방의 서민 가옥과 양반 가옥을 이건·복원해 조성했다. 추운 겨울 촌락의 몇몇 가옥을 지나다 보면 장작 타는 냄새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 손이 타지 않으면 집이 상하고 낡을 수 있어 불을 때고 온기를 더하는 것이다. 또 이맘때쯤이면 초가집의 지붕을 새로 얹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가옥들이 단순한 전시물처럼 남아 있는 게 아닌 따스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노력 덕분이다.
365일 연중무휴인 한국민속촌은 계절과 세시풍속에 따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곁들인 체험과 놀이를 제안한다. 겨울에는 대표적으로 ‘초가집 새 지붕 얹는 날’ 행사를 하는데 오래된 이엉(짚, 억새 등을 엮은 것)에서 서식하는 굼벵이를 직접 잡고, 굼벵이 레이스 경주를 펼치는 등 독특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설날이 있는 1월에는 ‘설맞이 복잔치’가 열리는데 한 해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복떡나누기, 지신밟기, 부적찍기 등을 즐길 수 있다. 손주와 함께 간다면 눈썰매·전통얼음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을 체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매력만점 조선시대 캐릭터와 만나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한국민속촌 조선캐릭터 오디션’은 한국민속촌의 마스코트로 급부상한 조선캐릭터 아르바이트생을 선발하는 대회다. 모집 분야는 거지, 무사, 기생, 포졸뿐만 아니라 연약한 망나니, 꽃거지, 유학파 백정 등 이색적인 캐릭터까지 다양하다. 예전 민속촌의 풍경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이라면 이러한 조선캐릭터와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며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옛 지방 행정기관이었던 관아에 가면 허당사또와 포졸, 인턴포졸 캐릭터가 맞이한다. 관아 앞마당에는 곤장대가 놓여 있는데, 관광객을 눕게 하고 포졸과 사또가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조선시대 말투를 쓰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을 겸비한 캐릭터들과 곤장 체험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관아 앞에서는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꽃거지’를 만날 수 있는데 관광객이 건네는 간식 등을 먹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장난삼아 구걸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조선캐릭터와 대화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통예술공연은 물론 최신 놀이기구까지 즐기다
겨울철 민속촌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전통예술공연으로는 ‘농악놀이’와 ‘마상무예’가 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흥이 묻어나는 농악놀이는 수십 년간 호남우도 농악의 명맥을 지켜온 정인삼 선생이 공연을 이끌고 있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농악놀이 공연이 끝나고 나면 바로 옆 공연장에서 마상무예가 펼쳐진다.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옆으로 눕는 등 아슬아슬하고 박진감 넘치는 기술과 궁술·검술 등을 선보인다. 같은 공간에서는 공연이 없는 시간에 마상무예단과 함께 기예를 펼쳤던 말들을 타볼 수 있는 승마 체험도 이루어진다. 이외에도 곳곳에 마련돼 있는 윷놀이, 투호놀이 등을 즐기거나 15가지 놀이기구(어트렉션)가 있는 ‘12지아(12 ZIA)’를 방문하면 어린아이들과 함께 갔을 때 더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2지아는 민속촌 고유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공간이다. 한껏 즐기다가 출출해지면 친환경 조미료로 옛 맛을 살린 전통순두부, 해물파전, 묵, 순대 등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는 장터에 들러보자. 민속촌의 푸근한 정취가 그 맛을 더한다.
△ 한국민속촌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이용 시간: 연중무휴 (평일) 9:30~17:30 (주말) 9:30~18:00
이용 요금: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아동 8000원(만 65세 이상 아동요금 적용)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지난 9월 29일부터 4일간 큰 춤판이 벌어졌다. 8개국 70개 댄스팀이 참가한 덤보댄스축제다. 이 춤판은 맨해튼 다리 밑, 버려진 공장지대였던 덤보(DUMBO, Down Under the Manhattan Bridge Overpass) 지역을 문화의 중심지로 변신시킨 일등공신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축제를 뉴욕 5대 무용축제로 선정했고, PBS 방송은 올해 뉴욕의 5대 행사로 꼽았다. 이 춤판을 벌여온 주인공은 뉴욕 현대무용계의 대모로 불리는 김영순 화이트웨이브 무용단 단장(예술감독 겸임). 뉴요커의 자랑인 덤보댄스축제는 김 단장의 집념과 열정 그리고 고난과 눈물의 결정체다.
김영순 단장이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1977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후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댄스스쿨로 유학을 온 것이 미국생활의 출발점이었다. 세계 현대무용계의 신데렐라를 꿈꾸며 시작한 유학생활은 고난 그 자체였다. 굳게 마음먹고 준비한 유학이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이 문제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선일여자중고등학교에서 무용교사로 재직하면서 월급의 70%를 저축해 모은 유학 자금을 장춘동 국립극장 소극장(현 달오름극장)에서 공연을 하면서 다 써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국내 사상 최연소 단독 현대무용 공연이었고 ‘잔잔한 호수 위로 퍼덕이며 뛰어오르는 은빛 찬란한 물고기’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당초 계획에 없었던 공연이었다. 김 단장은 40년 전 그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던 입학허가를 받고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거부를 당했어요.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기 때문인지, 젊은 여성이 미국에 눌러 살까 우려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앞이 캄캄했어요. 그때 멋진 공연을 해서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지면 비자를 받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공연을 하게 됐어요.”
아니나 다를까 공연을 마치자마자 바로 비자가 나왔다. 그런데 체재비는 고사하고 항공료조차 부족했다. 철도공무원인 아버지 김철주씨의 5남 4녀 중 셋째인 김 단장은 형편이 어려운 부모님께 차마 손을 벌릴 수 없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아 두 명을 미국까지 데려다주면 항공료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8개월과 11개월 된 두 아이를 양팔에 안고 22시간 넘게 비행을 했다.
침례교회가 운영하는 양로원의 자그마한 방 한 칸을 댄스스쿨에서 알선해줬지만 아침식사를 포함해 주당 25달러인 숙식비와 학비를 감당하기가 벅찼다. 하루 12시간 이상 무용 연습을 하면서도 베이글 하나로 견딜 때가 많았다. 때로는 밤늦게 돌아오다 너무 힘들어 남의 집 계단에 앉아 달을 보고 엉엉 울기도 했다. 김 단장은 그때의 심경을 토로했다.
“아버지는 그 당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처럼 딸이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현모양처로 살기를 원하셨지 유학 가는 것을 바라시지 않았어요. 딱 1년만 공부하고 오겠다고 통사정을 해서 허락을 받았어요. 그리고 춤꾼이 되고 싶었으나 집안 어른의 반대로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어머니의 기대까지 짊어지고 있었어요. 김포공항을 떠날 때 외할머니께서는 부적을 한 장 주시면서 엄마의 꿈을 대신해서 이루어달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를 극심한 생활고에서 구해준 것은 루돌프 누레예보 장학금이었다. 뼈를 깎는 노력 끝에 30 대 1의 경쟁을 뚫고 장학생 오디션을 통과한 그는 뉴욕서 열리는 공연이라면 단역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다. 얼굴을 알릴 수 있었고 얼마 안 되는 출연료였지만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다.
1980년, 경쟁률 300 대 1의 오디션을 통과해 뉴욕 10대 명문 무용단인 제니퍼 뮬러 현대무용단 전속 단원으로 발탁되면서 그는 프로페셔널 댄서로 우뚝 서게 됐다. 미국은 물론 유럽, 중남미, 캐나다 등 세계 곳곳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검정머리 휘날리며 춤추는 동양의 신비한 무녀’라는 찬사를 받았다.
1년에 9개월간 해외 공연을 하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뉴욕에 머무는 3개월은 트론댄스시어터(Throne Dance Theater) 같은 소규모 무용단에서도 활약을 했다. 겹치기 출연을 해야 할 정도로 이미 명성이 높았다. 당시 한 유명 평론가는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많은 댄서들 가운데 눈을 뗄 수 없는 댄서”라고 극찬했다.
1988년, 드디어 그는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한다. 하얀 파도가 세계로 용솟음친다는 의미의 ‘화이트웨이브(White Wave) 김영순 무용단’이다. 하얀 파도는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경쟁이 치열한 뉴욕에서의 무용단 창단은 실력과 명성과 인간관계를 모두 갖추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단장은 그 해 88서울올림픽 현대무용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국내 팬들에게 현대무용의 진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홍콩에서 단독공연을 할 때는 홍콩스탠더드 신문이 ‘춤추기 위해 태어났다(Born To Do It)’는 제목으로 그의 삶과 춤을 전면에 소개했다. 신문 제목처럼 그는 타고난 춤꾼이었다. 6세 때 인근 무용학교에서 들려오는 장구소리에 이끌려 춤을 배우기 시작했고, 7세 때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사냥꾼’ 이야기를 춤으로 표현해 호남예술제에서 1등을 차지했다.
무용단 운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 , 등 60여 가지의 레퍼토리를 선보였을 때 월스트리트저널이 ‘댄스의 영역을 뛰어넘은 새로운 예술세계 창조’라고 논평하는 등 주요 언론들의 호평이 이어졌지만 무용단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다. 소호(SOHO)에 있던 스튜디오를 임대료가 저렴한 이스트 할렘으로 옮겼으나 70평 남짓한 스튜디오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해 이불을 덮어쓰고 울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에는 맨해튼 스튜디오가 상가로 바뀌면서 새 터전을 찾아나서야 했다. 소호에서 밀려난 가난한 예술인들이 몰려든 덤보 지역은 앞이 캄캄했던 그에게 축복의 땅이었다. 기업인 존 라이언(John Ryan)씨가 든든한 후원자로 나타나면서 25만 달러를 지원받아 이스트 강변에 100석짜리 무용 전용극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덤보댄스축제와의 인연도 이때 시작됐다.
미술·패션쇼·음악·필름스크린·댄스 등 5개 예술 분야로 나눠 열리는 덤보아트축제의 이사진과 댄스 부문 기획을 담당했던 친구의 권유로 2001년 제1회 덤보댄스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사실 덤보아트축제는 ‘예술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사업이 번창한다’는 부동산개발업체의 경영전략에서 출범한 축제다. 덤보 지역이 번창하자 다른 분야의 축제는 사라지고 댄스축제만 남아 뉴요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김 단장은 신예 안무가들이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뉴욕으로 진출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는 신념으로 댄스축제를 지켰다.
그는 여세를 몰아 2004년부터 쿨뉴욕(Cool New York) 댄스축제를, 2006년부터는 웨이브라이징시리즈(Wave Rising Series) 무용축제를 잇따라 개최했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다운타운 현대무용계는 김영순 단장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하나도 하기 힘든 페스티벌을 세 개나 하고 있다”며 대서특필했다. 이때부터 그는 뉴욕 현대무용계의 대모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축제를 통해 총 2600여 무용단과 1만3500명의 안무가들은 7만여 관객 앞에서 기량을 발휘했다. 창무회 & 김매자, 김윤정 프로젝트댄스, 장유경 무용단, 길섭무용단, 박신애, 정석순, 김정환과 박봄, 박정윤, 최성옥 메타댄스 프로젝트 등 수많은 안무가들이 그들이었다.
그는 현재 뉴욕시가 매년 수여하는 댄스·연기대상(Bessie Award)과 예술지원기금 무용 부문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그의 무용단은 3년 연속 뉴욕시 지원 대상 문화예술단체로 선정되는 등 공로와 능력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마티 마코위츠(Marty Markowitz) 브루클린 구청장은 수년째 덤보댄스축제가 개막되는 날을 ‘화이트웨이브 김영순 무용단의 날’로 공표하고 있다. 그의 공로는 곤경에 처했을 때 더 빛이 났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인해 이스트 강이 범람해 극장이 침수 피해를 입자 온라인 성금이 답지했다. 루도 셰퍼(Ludo Scheffer) 드렉셀대학 교수는 상속 재산 중 상당액을 기부했다.
김 단장은 수많은 무대에 올라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2014년 한국계 안무가로는 처음으로 브루클린 음악아카데미(Brooklyn Academy of Music, BAM) 무대에서 새 작품 을 성공리에 공연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뉴욕에는 링컨센터 등 굴지의 공연장이 즐비하지만 공연 대상 선정이 가장 까다로운 BAM이 화이트웨이브무용단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링컨센터의 뉴욕공공도서관은 그의 공연을 촬영해 DVD로 영구 보관하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은 세상 사람들이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는 멈출 수 없다. 자신의 무용단을 통해 끊임없이 새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국제댄스페스티벌을 잇따라 열어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걸작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화이트웨이브 김영순 무용단은 요즘 인류 화합을 주제로 한 이라는 대형 작품을 새로 무대에 올리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일부는 이번 덤보댄스축제에서 선보였다. 작품이 완성되면 내년쯤 한국 팬들에게도 소개할 계획이다.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전용 공연장이다. 덤보 지역도 이제는 예술인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임대료가 뛰어 브루클린 내 다른 지역을 열심히 물색하고 있다. 김 단장은 새 공연장을 임대할 경제적 여력은 없지만 절실하면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이제까지 그런 믿음으로 험난한 무용인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왔고 ‘뉴욕 현대무용계의 대모’라는 독보적 위치에 걸맞은 활약을 오늘도 펼쳐나가고 있다.
가족용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이다. 영국, 스페인, 벨기에가 무대로 나오고 조나단 뉴먼 감독이 만들었다. 주연에 아뉴린 바나드(머라이어 역), 마이클 쉰(채리티 역), 레나 헤디(모니카 역), 샘 닐(루거 역)이 나온다
무엇이든지 손에 닿기만 하면 금이 된다는 신화처럼, 무엇이든 상자 안에 담기만 하면 황금으로 만든다는 전설의 마이더스 박스를 찾아 모험한다는 줄거리이다. 원제는 '마이더스 상자의 저주'라고 번역된다.
이 상자가 악당의 손에 들어가면 단순히 그 악당만 부자가 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제한으로 금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에 경제학적으로 금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면 전 세계 금융 질서가 무너져 대 혼란이 온다. 각국 은행이 보유한 금이 무용지물이 되어 금 본위 경제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금을 보유한 것에 바탕을 두고 화폐를 찍어내야 화폐 가치가 유지되는데 금 보유 없이 화폐를 찍어 내면 화폐 가치를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자는 공신력 아래 엄격히 통제 되어야 한다.
희소 광물인 금은 희소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용도도 많다. 광물에서 채취해야 하지만, 만들어낸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다. 그것도 화수분처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복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금은 희소 광물이다. 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악당 루거는 박스를 열 열쇠를 차지하기 위해 머라이어의 부모와 동생을 납치한다. 부모님의 오랜 친구 채리티 대위가 부모와 동생이 있는 곳에 가려면 배를 타고 섬에 있는 호화 호텔에 잠입하여 박스를 찾아내야 한다며 머라이어가 가라고 한다. 머라이어는 섬에 도달하자마자 호텔 짐꾼으로 취업한다. 호텔은 온천이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손이 부족한 것이다. 머라이어는 호텔 짐꾼으로 일하면서 호텔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한다. 머리이어의 제복을 만들어준 여자 모니카에게 협조를 요청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결국 머라이어의 요청을 들어 준다. 부모를 찾겠다는 절실함도 읽었지만, 머라이어에게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성간에 끌리는 힘이 있어 그 사람이 좋으면 조건 없이 같은 편이 된다.
그렇게 시작한 모험은 머라이어가 가진 부적으로 문이 열리고 비밀 통로 등이 나타난다. 비밀의 방을 뒤지다 보니 호텔 전 주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지하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동생 펠릭스도 찾아낸다. 드디어 마이더스의 상자도 발견한다. 악당 루거는 머라이어를 추적하고 아버지 친구 채리티가 나타나 이들을 구해 낸다. 호텔에 오래 전부터 잠입해 있던 왕실 비밀요원들도 합세하여 드디어 악당 루거 일행을 처단한다. 마이더스 상자는 왕실에 바친다. 장차 원하면 왕실 비밀요원 자리는 추천해준다고 한다. 머라이어를 도왔던 여자 모니카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머라이어가 같이 살자고 권한다.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것이다.
마이더스 상자를 찾았으니 머라이어도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없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은 오히려 충분하기보다는 알맞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마이더스 상자를 들춘 순간 재앙이 시작된다.
요즘 추세로 볼 때 이 영화는 유치하다. 스토리 전개가 뻔하다. 거대한 기계실, 비밀의 방, 마이더스의 상자 등이 등장하지만, 다른 데서 그 이상의 자극적인 소재를 많이 접하다 보니 그 정도는 만화 수준이다. 그러나 가족이 같이 보는 영화로는 그런대로 볼 만하다. 가족애가 있다. 상상이 있고 모험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금의 가치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도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바야흐로 봄이다. 봄을 나타내는 한자인 ‘춘(春)’은 원래 풀초(?)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나타내는 둔(屯)에다가 마지막으로 날일(日)을 합쳐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새봄을 맞아 그 감흥을 노래한 한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유명한 글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사문학으로 조선 초 정극인(丁克仁)이 에서 ‘엇그제 겨을 지나 새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夕陽)리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細雨) 중에 프르도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역대 우리나라 한시 중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고려시대 정지상(鄭知常)의 에서는 ‘우헐장제초색다(雨歇長堤草色多) 송군남포동비가(送君南浦動悲歌), 비 갠 강둑엔 풀빛이 푸르고, 임 보내는 남포엔 슬픈 노래가 울리네’라고 노래하였다. 이 유명한 시는 1962년 이수복이란 시인에 의해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란 구절의 란 시로 재탄생된다.
중국에서는 도연명(陶淵明)이 에서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봄 물은 연못에 가득하고’란 유명한 구절을 남겼고, 당(唐)나라 때 맹호연(孟浩然)은 에서 ‘야래풍우성(夜來風雨聲) 화락지다소(花落知多少) 지난 밤 세찬 비바람 소리에, 얼마나 많은 꽃잎이 떨어졌을까!’란 명구를 남겼다.
이백(李白)은 에서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복사꽃 흩날려, 흐르는 물에 고요히 떠내려가니, 또 다른 별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세’라고 봄날의 정경을 노래하였다. 두보(杜甫)는 에서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리나니, 봄이 되니 만물을 움트게 하네.’라고 봄비를 노래하였다.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鄭夢周)는 봄비를 ‘춘우세부적(春雨細不滴) 야중미유성(夜中微有聲) 봄비가 가늘어서 방울지지 않지만, 밤중이라 그런지 가는 소리가 나누나’라고 이란 시에서 노래하였다. 봄의 야경(夜景)을 노래한 글로는 이백의 란 천고의 명문(名文)이 있으며, 고려조 왕석(王錫)의 ‘춘강양안백화심(春江兩岸百花深) 호월비공설만림(晧月飛空雪滿林) 봄 강 양쪽 언덕에 온갖 꽃이 짙게 피니, 허공에 뜬 밝은 달에 숲이 온통 희도다’란 란 시가 있다.
이처럼 수도 없이 많은 시들 중, 어느 시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꼽을 수 있을까? 아마도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사령운(謝靈運)의 중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 원류변명금(園柳變鳴禽) 연못 가에 봄풀이 돋아나니, 동산의 버들에는 새 소리도 바뀌었네’란 구절이 아닐까 한다. 사령운 자신이 말하길, ‘일찍 영가(永嘉)가 서당(西堂)에서 시를 생각하다가 온종일 못 지었는데, 문득 세상을 떠난 종제(從弟)인 혜련을 꿈에 보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구를 얻었다. 그것은 신공(神功)이지, 내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로부터 더욱 유명해진 이 구절은 금(金)나라 원호문(元好問)이 ‘지당춘초사가춘(池塘春草謝家春) 만고천추오자신(萬古千秋五字新)’이라 극찬한 이래, 가장 유명한 봄의 구절이 되어 대대로 회자되어 오고 있다. 주자(朱子)의 중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이 바로 이것이다.
“진지 드셨어요?”
일본 도쿄의 도심을 빙글 도는 전철 노선인 야마노테선(山手線)의 스가모(巢鴨)역에 내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분주히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상한 풍경, 이분들 뒤를 쫓아 가다보면 스가모 상점가가 나타난다.
이곳은 이른바 젊은이들의 거리로 대표되는 하라주쿠(原宿)에 빗대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라주쿠라고 불리는 명소로 800미터의 길가에 2백여 점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곳곳에서 지인끼리 “진지 드렸나”라며 안부를 전하고, 처음보는 사이지만 “내가 왕년에는 한가닥했지” “요즘 돌아가는 꼴이 영…” 등 추억담과 더불어 편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랑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평균수명 80.21세와 86.61세를 기록한 일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젊은이 중심의 대형 슈퍼나 백화점과 달리 중장년층용의 모자, 신발, 외출복, 속옷, 지팡이, 전통과자 등 생활 필수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힘들면 가게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점포 주인이랑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쌀과자(센베) 전문점에서는 가게에서 제공한 녹차와 함께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한여름에는 상점가 번영회가 대형 얼음을 설치해 시원한 분위기 연출은 물론 고령자들의 열사병 방지에도 일조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상점가의 최고 히트 상품은 바로 붉은 색 속옷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의상인 기모노(着物) 안에 붉은 속옷을 입거나 환갑을 맞이하면 붉은 옷을 입고 축하하는 풍습이 있는데, 붉은 색 속옷을 입으면 단전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개구리와 오리 등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속옷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보약이 따로 있나’ 이게 최고 건강법
일본의 고령자들이 지팡이를 짚고서 보조기를 밀어서라도 이곳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1596년 세워져 1891년 스가모로 자리를 옮긴 절 고간지(高岩寺)에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이 절은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전부 타버려 1957년 다시 짓는 등 일본의 근현대사를 함께 했다.
이 절을 찾는 참배객들은 경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향로의 연기를 손바람으로 아픈 부위에 뒤집어쓴다. 향 연기가 어깨결림, 신경통은 물론 치매에도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학생들도 머리에 잔뜩 뒤집어 쓰기도 한다.
향로 옆 샘물로 손과 입을 깨끗이 씻고 나서 본전에 시주와 함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주 녀석 바라는 대학에 떡하니 붙게 해 주옵소서” “딸내 부부가 금슬 좋게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등 저마다의 소박한 소원을 빈다. 보통 5엔 동전을 시주함에 던진 뒤 복을 비는데, 5엔이 일본말의 인연인 ‘고연(御?)’과 발음이 같아 말의 힘을 빌어 소망하는 것에도 인연이 깃들길 담았기 때문이다.
본전 참배를 마치면 이윽고 사람들은 '도게누키 지죠(가시를 뽑아주는 지장보살)'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다. 고령자를 비롯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주된 목적은 “제발 내 고질병 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게 하소서”, 즉 이 지장보살의 영험을 얻기 위해서이다.
옛날 실수로 바늘을 삼킨 한 하녀가 이 지장보살 본존의 부적을 삼킨 뒤 바늘을 토해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지금도 그 부적이 병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참배객들은 지하수 샘물로 불상을 씻긴 뒤 하얀 수건으로 자신의 아픈 부위를 정성껏 닦으면서 병 치료와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나이 드신 분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가족끼리 혹은 젊은 커플들도 많이 찾는다.
특히 매월 4,14,24일에는 제례가 있는 날로 상점가에는 먹거리와 토산품, 그리고 고령자용품 등을 파는 온갖 노점상까지 들어서고 일본 전국에서 참배객과 관광객이 약 10만 명 몰려든다고 한다. 그 가운데 소문을 듣고 그 풍경을 보려고 오는 관광객이 6만 명이라고 하니 하루 종일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상점가와 노점상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하긴 도쿄 디즈니랜드의 연간 입장객이 약25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곳 작은 상점가와 절을 찾는 사람이 연간 800만 명 규모라고 하니 참으로 알짜배기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스가모’는 다른 지역 상점들의 매출액이 몇 년새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최근 5년간 무려 15%나 상승했다고 한다.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
스가모 상점가의 손님층 95%가 40세 이상이고, 60세 이상은 30.6%라는 조사 결과를 두고서 다른 지역에 비해 고객 연령이 현저하게 치우쳐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특화된 거리이기에 색다른 관광지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사회는 2030년에 65세 이상이 세 명 중 한 명, 75세 이상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시장 전체의 가계 소비 가운데 고령자의 소비 비율이 2015년 42.3%, 2030년에는 47%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고령자의 소비총액을 보면 2015년 72조엔, 2020년 74조엔, 2025년 75조엔, 2030년 77조엔 등 늙어가는 일본사회와 달리 실버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거부할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이기에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실버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젖 먹던 힘이 남아 있는 한 이곳을 찾아 무병장수를 빌려는 고령자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쇠퇴해지는 젊은이의 거리 하라주쿠와는 달리 스가모는 갈수록 주목받으며 빛을 발하지 않을까?
고령사회 일본의 명암
같은 고령자들이 모여 옛 추억을 나누며 건강, 여가 생활, 쇼핑 정보 등을 서로 교환하는 우물가의 쉼터와도 같은 스가모. 인터넷과 SNS의 디지털 시대에 직접 만나 안부를 전하고 따스함을 함께 하는 아날로그의 정서는 역시 수치로는 표시하기 힘든 은은한 맛이 있다.
일본사회의 고령화율은 1970년 7%(고령화사회), 1994년 14%(고령사회), 2005년 20%(초고령사회)를 넘어서 2011년에 23.3%를 기록했는데, 2011년도 고령자 세대의 연평균소득은 307만엔으로 이 가운데 67.5%가 공적연금에 해당한다. 공적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걸 알 수 있지만,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고 실버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의 그림자도 짙은 게 사실이다. 일본에서 보이피싱 사기의 피해자가 2003년 당시 약 70%가 여성이고, 60세 이상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피해 세대의 과반수 이상이 60세 이상의 노인만이 사는 고령자 세대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령자를 노린 집 수리와 각종 건강상품, 노후 상담을 빙자한 투자 등 방문 판매를 통한 사기도 크게 늘고 있다. 고령자의 판단력 저하를 이용한 범죄이기도 하지만, 0.03% 이하의 제로 금리로 은행보다는 집안에 현금을 보관하는 걸 선호하는 고령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매력과 자금력을 갖춘 일본의 고령자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실버산업을 뒷받침하는 주춧돌이자 먹고 살기 힘든 다음 세대들의 동경과 원망의 대상이면서 범죄에 노출된 먹이이기도 하다.
-1999년 와 2000년 으로 데뷔. 에도 작품활동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분양시장에서 전용면적 72·74·93·98㎡ 등 '틈새면적'으로 불리는 면적대의 공급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택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굳어진 '표준면적'대인 전용 59㎡(옛 25평), 84㎡(옛 34평), 114㎡(옛 45평)의 부차상품으로만 여겨졌던 틈새면적이 어느새 주택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로 자리잡으며 주력상품을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틈새면적 아파트는 부동산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면서 등장했다. 전용 59㎡와 84㎡, 114㎡간의 면적 차이가 25~30㎡로 크고 금액도 1억원(3.3㎡당 1000만원 기준) 가까이 나다 보니 중간 상품인 틈새면적이 만들어졌다. 전용 69~76㎡는 84㎡와 전용 93~98㎡는 114㎡와 체감상 면적 차이는 크지 않지만 분양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인기다.
올해 첫 위례신도시에 공급돼 1순위 평균 12.3대 1에 이어 사흘 만에 계약까지 마친 '엠코타운 센트로엘'의 주택형은 전용 95·98㎡로 모두 틈새면적이었다. 전용 100㎡를 초과하는 옛 40평형대가 부담스럽다는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틈새면적으로만 구성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동탄2신도시에 3번째 분양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반도건설도 모든 단지에 틈새면적을 포함시켜 성공분양에 기인했다. 1차는 전용 99㎡ 209가구, 2차는 전용 74㎡ 123가구, 올 초 공급된 3차는 가장 많은 전용 74㎡ 250가구를 선봬 1순위 마감됐다.
현대엠코가 이달 대구시 달성군에 공급한 '엠코타운 더 솔레뉴'도 총 1096가구 중 전용면적 69·75·76㎡ 등 틈새면적이 527가구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 단지는 평균 12.71대 1의 높은 경쟁률로 전 가구 1순위 마감됐다. 그 중 전용 75㎡가 최고 4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앞으로 택지지구내 중대형부지에 분양을 준비하고 있는 사업지에서 틈새면적 공급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효성이 경북 칠곡군 남율2지구에 공급하는 '남율2지구 효성해링턴 플레이스3차'는 지하3층~지상18층 10개동 총 835가구로 지어진다. 전용면적 △59㎡ 216가구 △74㎡ 478가구 △84㎡ 141가구 등 중소형 주택으로만 구성된다.
SK건설은 오는 4월 부산시 금정구 구서동 구서2구역을 재건축한 '구서 SK VIEW'를 분양한다. 지하3층 지상17~24층 8개동 총 693가구 가운데 287가구 일반분양 된다. 주택형(일반분양 기준)은 전용면적 △64㎡ 5가구 △74㎡ 13가구 △84㎡ 159가구 △100㎡ 69가구 △114㎡ 41가구 등이다.
대우건설은 4월 경기 하남시 미사강변도시에서 '미사강변 2차 푸르지오'를 분양한다. 미사강변도시 A6블록에 자리 잡은 이 아파트는 지하2층∼지상28층 11개동 총 1066가구 규모이며 전용면적 △93㎡ 257가구 △101㎡ 805가구 △114㎡ 펜트하우스 4가구로 구성된다.
현대건설이 4월 당진시 송악읍에 '당진 송악 힐스테이트'를 분양한다. 지상13~23층 11개동 915가구 전용면적 △59㎡ 186가구 △72㎡ 320가구 △84㎡ 409가구로 구성된다.
우미건설은 경산 신대부적지구 1-2블록에서 '경산 신대·부적지구 우미 린'을 분양 중이다. 이 아파트는 지하1층 지상18~20층 6개동 전체 445가구로 구성된다. 틈새평형인 73㎡가 186가구로 전체의 42% 가량을 차지하고 실수요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전용 84㎡는 259가구로 구성돼 58%를 차지한다.
반도건설은 4월, 양산신도시 물금택지개발지구 일대에 '남양산역 반도유보라 5차'를 공급할 예정이다. 이 단지는 △59㎡ 300가구 △74㎡ 658가구 △93㎡ 286가구 등 총 1244가구 규모로 틈새면적이 단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1978년 8월 6일 귀여운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가의 친할머니는 아가를 위해 한땀한땀 정성들여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아가의 아버지는 감격스러웠다. 내 분신이 생겼다는 신기함이 그런 기분을 들게 만들기도 했지만, 몸도 성치 않은 어머니가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졌다. 사내아이의 아버지 정종현(63)씨는 그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손자의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고 계신 어머니께 죄송스럽고 감사했어요. 당시에는 시어머니에게 선물을 받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아내가 배냇저고리를 받고 감동 받은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저도 ‘이 배냇저고리를 대대로 물려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정씨는 배냇저고리를 둘째 아들 왕순(35)씨에게도 물려 입혔다. 정씨는 이 배냇저고리를 가족 행운의 상징이자 부적으로 여긴다. “배냇저고리를 형제가 물려 입으면 우애가 좋다고 알려졌어요. 또 이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부모한테 효도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죠. 대학 수능시험을 볼 때 품에 안으면 좋은 대학에 합격한다는 말도 있어 지금까지 보관해왔습니다”라는 정씨에 말에는 뿌듯함이 묻어있었다.
1980년에 왕순 씨가 태어나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다. 배냇저고리를 입던 그 갓난아이는 그 사이 동네를 주름잡는 골목대장을 거쳐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됐다. 왕순 씨의 첫째아들 효준(7)군은 배냇저고리를 입는 세 번째 주인공이다. 왕순 씨는 효준 군이 태어나자 신기함에 안고 또 안아 봤다.
“효준이가 태어났을 때 정말 감격스러워서 만져보고 또 만져봤어요. 내 새끼가 태어났다는 신비스러움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내가 임신 중 일 때 뱃속에 있는 아기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만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배냇저고리와 아내가 만든 배냇저고리를 번갈아 입혔습니다.”
왕순 씨의 둘째 아들 시우(5)군에게도 여지없이 증조할머니 정신의 소산이 입혀졌다. 부적 같은 배냇저고리의 정종현씨 3대에 힘이 닿은 덕분인지 이들은 남다른 가족애를 자랑하고 있다. 정씨가 매일 손자들을 유치원과 어린이 집에 출ㆍ퇴원 시켜줄 정도다.
“손자는 나의 분신이에요.”
정씨는 손자가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얘기했다. 그는 손자들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길 원한다. 그래서 집안의 대소사인 제사나 생일은 빼놓지 않고 손자들을 동행시킨다고 했다.
“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기초적인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효준이와 시우가 그런 사람으로 커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할아버지로서 전통 방식과 구학(舊學)을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배냇저고리는 정씨 3대의 행복의 상징이다. 정씨는 대대손손 물려 입히기 위해 배냇저고리를 주기적으로 빨래해서 보관했다고 했다. “언젠가 손자들도 저 배냇저고리를 당당히 자식들에게 물려 줄 날이 오겠죠”. 정씨는 지금의 이 행복이 후대까지 이어지길 소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