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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김천시 구성면 산골에 사는 여섯 여자 귀농인들
- 깊고 외진 산골에 마녀들이 산다. 오순도순 친자매들처럼 정겹게 지낸다. 산골짝 여기저기, 멀거나 가까이에 떨어져서들 살지만 여차하면 만나고 모이고 뭉친다. 모임 전갈이 떨어지면 빗자루를 타고 나는 마녀처럼 모두들 득달같이 달려와 자리를 함께한다. ‘마녀들’이라지만 위험하거나 수상할 게 없는 아줌마들이다. ‘마음씨 예쁜 여자들’, 그걸 줄인 게 ‘마녀들’이라지. ‘마녀들’ 여섯 명은 모두 귀농인이다. 산골에서 산 세월의 길이는 저마다 다르지만 다들 농업을 통해 소득을 올린다. 모임을 제안해 만든 건 된장사업을 하는 임미숙(60) 씨.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녀는 귀농 동기인 강성대(70, 명박골 표고버섯) 씨를 왕언니로 해 동아리를 꾸렸다. 임미숙 씨는 도시에서 사업상의 부침을 거듭하다 활로를 찾아 7년 전에 이 산골로 귀농을 했다. 나 이제 욕심을 싹 비우고 살래! 그런 다짐을 하며 어버이처럼 푸근한 시골의 자연 속으로 거침없이 이주했다. 이후 용케도 그녀는 발랄한 또래 아줌마들을 만나 사교를 했다. 마침내 죽이 맞아 단단한 우애를 쌓게 되었다. ‘마녀들’이라는 모임 이름은 그녀의 작명. “귀농으로 맺어진 우연한 인연이지만 친자매 같은 정을 나누고 지내니 큰 행운이죠. 귀농 직후 저는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어요. 무엇보다 된장을 만드는 기술도 힘도 부족했어요. 혼자 끙끙거리며 남들 몰래 공부를 하고 실습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던 중 인근 마을의 또래 아줌마들이 드나들며 일을 도와주었지요. 모두들 귀농 선배들이라 일 외에도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어요. 게다가 살가운 여자들이라 순식간에 정도 들었고요. 그게 ‘마녀들’ 모임의 배경이에요.” 우정이란 고독한 인생을 보완해주는 보약. 소소한 사교 이상의 결속력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마녀들’ 모임은 시골살이를 한결 생동하게 하는 힘이 돼주었다. 이들이 모이면 일이 벌어진다. 또는 일이 생길 때면 재까닥 모인다. 생일 같은 축일엔 파티를 펼친다. 김천농업기술센터가 개설한 음식연구회에 참여해 함께 요리를 배운다. 귀농 교육생들이 찾아들면 모두 발 벗고 나서 일을 거들거나 팜파티를 펼친다. 농번기엔 일손이 딸려 애를 먹는 곳이 농촌이지만 이들은 끄떡없다. 우르르 자매들의 농장으로 번갈아 달려가 일을 해치운다는 게 아닌가. 품앗이의 귀감이다. “마녀들 또 뭉쳤네!” 때로 외롭거나 따분할 수 있는 게 산골살림이다. 뒷산 소나무 외엔 불만을 털어놓을 상대가 더 이상은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게 귀농생활이다. 하지만 ‘마녀들’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한다. 끝없는 수다와 깔깔대는 웃음이 꽃처럼 피어 내부에 웅크렸던 그늘을 헹궈낸다. 멀리 대구로 나가 뮤지컬이나 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더 먼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은 탄성을 내지른다지. “어라? 마녀들이 또 뭉쳤네!” 농사란 어쩌면 희한한 방식의 고행. 난다 긴다 하는 고수가 아니고선 실패하기 십상이지 않던가. 그런데 말이다, 놀랍게도 마녀들은 모두 순항하고 있다. 다들 김천 관내에서 손꼽히는 강소농으로 알려졌다. 면면을 볼까? 마녀들 가운데 유일한 독신인 임미숙 씨는 된장사업에 야무지게 매달려 기반을 잡았다. 조현숙(60) 씨는 보리떡을 만들어 기세를 돋운다. 구나윤(58, 삼도봉 천마농장) 씨는 천마 재배로 5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전경정(58, 새송이 청암농장) 씨는 고품질 유기농 새송이버섯을 생산하는 유력 농군으로 부상했다. 양봉으로 꿀을 생산하는 이선화(57, 도마네 꿀집) 씨도 억대농. 화려한 이력들이다. 모든 귀농인들이 사력을 다해 성공을 추구하지만 숫제 물거품이 되는 경우마저 숱하다. 마녀들은 하늘의 자비로운 협찬을 유달리 옹골차게 누렸을까? 그럴 리가. 그들은 남들보다 더 분발하고 남들보다 더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고서도 참담하게 무너지기도 했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닥을 친 그 좌절의 힘으로 다시 튀어 올랐다. 인생이란 실로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얘길 들어볼까. 구나윤 “천마 재배 이전에 다른 작물을 다양하게 재배했어요. 하지만 실패만 거듭했죠. 가지고 있던 자금을 다 털어먹고 빚만 잔뜩 남았을 때 실의 속에서 착안한 게 천마 재배였어요. 그러나 이마저 뜻대로 되질 않았어요. 복잡한 재배와 생산 과정을 숙달하고서도 판로가 여의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값싼 중국산마저 마구 밀려들었고요. 그러나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파겠다는 신념으로 포기하지 않았어요. 초기엔 한 해 빚만 1억 원에 달할 정도로 큰 실패를 봤지만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는 것으로 실의를 털고 다시 일어서야만 했어요.” 전경정 “저는 귀농 1세대에 속해요. 원래 시골을 좋아했기에, 시골에 사는 게 꿈이었기에, 귀농에 만족했어요. 하지만 농업이란 정말 만만치 않았어요. 본격적으로 새송이버섯 재배에 나선 게 10년 전이었는데 처음엔 고전의 연속이었죠. 모든 재산이 경매로 사라지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어요. 벼랑 끝까지 몰렸던 셈이죠.” 구나윤 “저희 농장의 문제는 판로에 있었지요. 제아무리 고품질 천마를 생산한다 하더라도 안정적인 판로를 구축하지 못하면 헛수고에 그치고 말아요. 그래서 인터넷 마케팅에 주력했고, 그건 매우 정확한 타깃이었어요. 현재 인터넷 단골 고객만 600여 명에 달해요.” 전경정 “한순간에 부도가 나자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걸더라고요. 배척하는 그 분위기, 참 서글펐어요. 급기야 제가 간암 판정을 받는 상황까지 맞이했어요. 제대로 잘 살아보기 위해 귀농을 했는데 죽을병에 걸리다니…. 금전적 압박이 중병을 가져온 것인데 의지로 떨쳐야만 했어요. 암 치료 중에 부단히 운동을 하고, 모든 현실을 받아들여 순응을 하고 긍정심을 키우고…. 그런 노력 덕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버섯 재배에도 더 각별한 공을 들였어요. 남편과 함께 새벽까지 농장에서 불을 밝히고 일했어요. 그 결과 5년 전부터 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요. 저 들에 핀 꿋꿋한 풀꽃처럼.” 고진(苦盡)의 짝꿍은 감래(甘來) 하늘엔 때로 느닷없는 비구름이 엉기고, 인간사엔 자주 우환이 끼어든다. 하지만 지구상의 가장 강인한 생물에 속할 인간은 때로 무적함대처럼 용맹하다. 운세를 경영하는 촉이 살아 있을 경우 우환이라는 놈은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귀농으로 고진감래의 여정을 연수한 두 ‘마녀’의 술회엔 가슴을 파고드는 감명이 서려 있다. 뜬구름처럼 덧없는 게 인간사라지만, 어떤 상황에서고 할 일을 능히 찾아 치열히 행하고 볼 일이렷다. 농사 혹은 돈벌이만이 마녀들의 본분사는 아니다. 심혼을 촉촉이 적시는 정서적 만족감이 있어야 생이 즐거울 게 아닌가.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간에 이른 이 아줌마들이 갈구하는 건 즐거운 나날들의 지속일 테지. 그 어엿한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귀농을 택했고, 시골은 그녀들에게 응분의 선물을 주었다. 임미숙 “여자 혼자 사는 제 입장에선 일 자체가 매우 힘들어요.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게 시골생활이에요. 마녀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고 격려하며 지내는 일에서도 커다란 보람과 즐거움을 느낍니다. 흔히들 시골엔 문화 여건이 열악한 걸로 알지만 사실과 달라요. 가령 김천농업센터만 해도 다양한 문화강좌가 개설돼 있어요. 저는 그곳에서 우쿨렐레와 천연염색을 배웠어요. 제과제빵 기술도 배웠고, 한식요리사 자격증도 땄어요.” 이선화 “시골생활 초기엔 모든 게 힘들었어요. 그러나 원래 허약 체질이었던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건강해졌는데요, 우선은 거짓말 없는 자연에 마음을 두고 산 덕분이라 봐요. 잔바람에 흔들리는 들꽃 한 포기도 사랑스럽고, 하늘과 구름과 달과도 대화가 되는 기분이에요. 저희 부부는 이동 양봉을 합니다. 철 따라 꽃 따라 산천을 찾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실은 현대판 집시여인이에요.(웃음) 꽃이 좋아 꽃을 따라 늘 여행하는 여자라는 거.” 구나윤 “처음엔 시골이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어요. 새벽부터 동동거리며 수많은 일들을 해야 했으니까요.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죠. 몸은 망가지고, 부채만 쌓이고, 화병이 생기고, 참 문제가 많았던 시절이 길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누군가 귀농을 한다면 뜯어말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하지만 시련기가 지나고선 서서히 안도와 행복을 느꼈어요. 판로를 구축해 천마 판매에 탄력을 붙이면서였어요. 나름의 부를 일굴 수 있었던 덕이죠. 이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삽니다. 사고 싶은 것 사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거의 맨날 붙어 지내는 남편과는 충돌이 많지만, 그동안 꾹 참고 살았지만 이젠 눌려 살진 않을 거예요. 밥을 찾아 먹거나 말거나.(웃음)” 전경정 “시골이 싫다는 여성이 많지만 저는 참 좋아요. 그래서 촌스럽게 생겼을까?(웃음) 마음도 촌스러워요. 주변 산과 꽃의 경이로움을 사진에 담는 일이 참 즐거워요. 그보다 좋은 건 ‘마녀’ 언니들과 어울리는 일이에요. 제겐 원래 언니가 없어서 이 언니들에게 더 기대는지도 몰라요. 음, 농사란 좋은 직업이라 봅니다. 생명공학도라 할까? 농부는 항상 자기개발을 하는 사람이라 봐야 할 거 같아요.” 인사만 잘해도 탈날 일 없어 수많은 인구가 넘실거리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을 골똘히 주시하지 않는다. 피차 피곤할 수 있는 간섭을 가급적 자제한다. 그러나 시골에선 다르다. 마을 인구가 워낙 적기에 이웃에게 자연스레 관심이 쏠린다. 게다가 마을 나름의 질서와 풍습을 고수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누군가가 귀촌을 했다면, 그는 이삿짐을 푸는 첫날부터 무대에 오른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입길에 오른다. 야무지고도 건실한 마녀들, 이들은 원주민과의 융화에 애로를 느끼진 않았을까. 들어보자. 구나윤 “시골분들이 합리적이진 않을지라도 자연스럽게 물들며 살아왔어요. 가령, 모처럼 치장 좀 하고 외출할 경우, 저걸 옷이라고 입고 다니느냐는 투의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어요. 지나친 참견이죠. 하지만 귀농인들이 조심하며 지내는 게 상책이라 봐요.” 임미숙 “간섭으로 들릴 수 있는 얘기들을 간섭으로 듣지 않으면 돼요. 그냥 하는 소리니까요.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게 필요하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만 잘해도 탈날 게 없어요.” 전경정 “시골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이웃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었어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적극 노력을 했어요. 저희 남편은 마을의 초상집을 찾아다니며 시신까지 만졌어요. 궂은일을 도맡다시피 했죠. 이웃과 어울리지 못하면, 결국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마을 전체를 내 집으로, 마을 주민 모두를 내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실패할 일이 없겠지. 그게 쉽겠냐마는 마을 공동체를 존중하지 않고선 설 길이 없다. ‘마녀들’처럼, 우정과 공감에 찬 동아리를 만든다면 한결 든든할 테고. 소설가 박원식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 2018-11-19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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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 확인
- 퇴직 후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조촐한 사업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하반기 예산 부족으로 인원을 줄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원을 줄일 수 밖에 없으니 혹 사정이 나은 사람이 있으면 몇 개월 쉬었다 다시 만나자고 전체 회의에서 부탁했으나 자원자가 없었다. 넉넉한 연금을 받는 퇴직 교원도 있고 공무원 부인도 있으나 밥그릇을 양보하려 하지 않아 러시안룰렛, 제비뽑기로 선택을 했다. 재수 없게 선택된 사람은 40대 미혼남이었다. 그는 홀아버지를 부양하고 있고 어려운 가정 형편을 구구절절 눈물까지 보이며 애원했으나 서울시 핑계만 대며 냉정하게 이별을 고했다. 20여 년 전, 중소기업에 근무할 당시 해외 공장 이전 바람이 거세게 불어 다니던 회사도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러나 현지 공장이 안정화되기도 전에 IMF의 쓰나미를 만났다. 회사의 구조 조정 칼춤에 간부 사원들부터 적절한 보장과 대안 없이 그냥 길바닥으로 쫓겨났다. 해고 통보를 받는 날, 너무 당황하고 낙담하여 수십 번 드나들어 익숙한 대표이사실의 출입문 손잡이를 찾지 못해 허둥댔다. 다리에 힘이 빠져 복도를 걸어가는데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구토가 나기까지 했었다. 천지가 무너진 느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고 두렵기까지 했다. 다음 날 아침은 평상시와 똑같이 정장을 입고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어 2호선 전철로 도심을 순환하고 남는 시간을 사우나 수면실에서 잠으로 보내다 집으로 퇴근하는 직장인 생활을 1주일 했다. 가장(假裝)직장인인 생활은 1주일이 한계였다. 너무나 많이 남는 시간과 무기력한 일상을 감당할 수 없어 가족에게 고해성사하고 긴 절망과 어둠의 터널을 함께 건널 수 있었다. 2000년 초 회사를 창업하여 월급을 받는 처지에서 월급을 주는 처지가 된 적이 있었다. 초창기는 회사가 잘 굴러가 직원도 많이 뽑고 사업장도 늘리고 배포 크게 다른 회사도 인수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인수 회사의 심각한 부채가 발목을 잡았다. 승자의 저주,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마음이 급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직원정리부터 시작했다. 연봉을 많이 받는 힘 좋은 간부 사원들의 기득권을 어떻게 할 수 없어 가장 힘없고 연약한 직원부터 칼을 대기 시작했다. 모두 험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눈치라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직원을 불러 상황을 에둘러 설명하고 해고 통보를 했다.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담긴 얼굴로 인사를 한 뒤 휘청거리며 출입구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에 20여 년 전 내 모습이 보였다. 한때는 해고자, 실업자라는 주흥 글씨 때문에 참담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가슴 시리게 느껴 본 적이 있었음에도 타인에게 그 살인을 죄책감 없이 너무 쉽게 자행했다. 참으로 못난 경영자임을 자책하며 그날 몰래 서럽게 많이 울었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은 개인의 장구한 서사를 만들고 생존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음을 요즘에서야 조금 알 수 있다. 한때는 노동이 개인의 시간과 영혼을 구속한다고 믿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을 한다는 것은 비전과 가치를 실현하는 가슴 저린 화학적 변화의 실천은 아니더라도 단순한 밥벌이를 넘어 생존을 확인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철들어 알게 되었다.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한 나이가 되었다.
- 2018-09-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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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움직임을 직시하는 예술가 김영희
-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으로 고유한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김영희(金映希·61)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작품들은 존재의 자각 내지는 삶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시해왔다. 1980년대 ‘나의 대답’, ‘어디만치 왔니’ 등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던 무대 뒤에는 늘 ‘독보적인 존재감’, ‘강력한 아우라’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단순히 ‘독특함’이라 치부하기엔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무언가가 있었고, 젊은 예술가의 패기인 줄로만 알았던 도전은 예순을 넘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30년 전 그의 창작이 오늘의 춤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김영희 교수가 이끄는 ‘김영희무트댄스’는 ‘관객이 존재하는 예술’을 위해 매년 정기공연을 열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오랜 기간 탄탄하게 내공을 다져온 작품들이지만, 이에 안주하지 않고 한층 더 발전시키며 매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올해에는 2005년 발표작 ‘마음을 멈추고’와 30주년을 맞이하는 ‘어디만치 왔니’가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은 오로지 예술감독으로서 분하며 직접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이미 무대는 그가 내뿜는 아우라로 팽팽했다. 막이 오르자 반세기 넘게 흐트러짐 없는 내면의 호흡을 다져온 한 예술가의 초상이 그려졌다. 김영희가 없는 무대에도 김영희는 여실히 존재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하며 작품의 짙은 여운을 달랬다. 그리고 그 무대를 지켜본 또 한 사람, 김 교수의 소감은 어땠을까? “‘어디만치 왔니’는 1988년 초연 이후에 100회 넘게 재공연해왔어요. 그동안 조명도 더 다양해지고 여러 변화를 줬기 때문에 이전보다 발전된 부분은 있겠죠. 그러나 어떤 공연이든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만족할 수는 없더라고요.” 끊임없는 노력을 더해온 무대에도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그의 대답에서 한 작품이 30년 동안 늘 새로움을 선사해온 까닭을 들을 수 있었다. 인생의 반을 함께한 ‘어디만치 왔니’는 김 교수에게도 각별한 레퍼토리다. 작품을 발표한 해에 88서울올림픽 폐막식 공동 안무지도위원 활동에 이어,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아트 페스티벌 한국 참가작품 안무지도위원을 맡아 ‘어디만치 왔니’가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 말, 창무회가 한국창작대표단체임에도 불구하고 무용계에서 ‘모든 작품이 식상하다, 똑같다’는 평을 듣고 있을 때 ‘어디만치 왔니’가 만들어졌죠. 무대를 선보이고 안무가들 사이에서는 욕을 많이 먹었어요. 반면 평론가들에게는 ‘당시대의 파격’이라는 호평과 함께 크게 인정받았죠. 여러모로 저에겐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마음을 멈추고, 어디만치 왔니 일시적인 자극에 그치는 ‘파격’과 예술가의 깊은 사색이 더해진 ‘파격’은 차원이 다르다. 김 교수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지만, ‘어디만치 왔니’는 특히나 그의 내면적 자아탐구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잘 드러난다.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는 인간의 운명을 제의 형식으로 부각해내며, 삶과 죽음 등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춤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춤이 탄생했을 무렵, 30대 초반의 그가 이토록 깊은 내면의 성찰을 창작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이 놀라웠다. “당시 ‘1988년 한국국제무용제전’에서 ‘제의(祭儀)’라는 주제로 안무해야 했어요. 그래서 죽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어린 시절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항상 우리 자매들에게 제사에 참여하도록 하셨던 게 떠올랐죠. 그러면서 죽음과 제(祭)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내가 살아온 날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죽음은 바로 내 삶의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며 안무를 구상했어요. 당시 23세에 무용계에 입문해 30대가 된 나의 현재, 지금 어디까지 왔나를 바라보게 한 작품이기도 했죠.” 자기만의 사유에 그치지 않고, 관객과 정서적 교감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은 묵직하다. 이번 공연에 올린 ‘마음을 멈추고’ 역시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달한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초연 당시 독특한 구성을 시도하며 신비성은 물론,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해 독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그는 이번 무대를 꾸리며 “당신의 삶은 무엇을 기다리는지. 인간이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정의할 때, 그 기다림 속에서 나타나는 자기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김 교수가 젊은 시절 기다렸던 ‘삶의 무언가’는 무엇이었는지, 현재는 달라지지 않았는지 물어봤다. “항상 현재 시점에서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어요. 30, 40, 50대를 거치면서도 내 미래에 대해 모르고 살았잖아요. 지금도 여전히 나의 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죠. 때문에 과거와 다른 기다림을 마주한다기보다는 늘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와 호흡하는 무트의 숨결 김 교수가 추구하는 모든 춤의 근간에는 그만의 호흡법이 있다. 실제 그가 김영희무트댄스 창단에 앞서 2년에 걸쳐 호흡법에 집중해 저술했을 정도로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제자들에게 춤을 전수하는 과정에서도 외형적인 테크닉뿐만 아니라 이러한 호흡을 기본으로 한 내면 훈련까지 도모하고 있다. “호흡법은 육체적 훈련과 동시에 정신적 훈련이 가능하기 때문에 늘 기본에 두고 가르칩니다. 또 안무 동작 외의 방법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표현하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군무의 경우엔 무용수끼리 통할 수 있는 정신적 교감을 중요시 여기는 편이죠.” 직접 무대에 서는 대신 후배들에게 기회를 내어준 이번 공연. 리허설 현장에서도 그가 눈여겨본 것은 무용수들의 동선이나 춤사위만이 아니었다. 특히 ‘어디만치 왔니’ 무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톱밥을 흩날리는 장면에서 손끝에서 새어져 나오는 톱밥의 양까지 놓치지 않았다. 리허설 당시 “톱밥을 많이 모아라. 뿌리는 동작만이 아니라 흘러내릴 때도 양이 많아야 한다”라는 지적에 ‘톱밥’은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 소재 그 이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톱밥은 흙과 땅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죽어 입관할 때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이에게 흙을 뿌리죠. 그것을 모티브로 흙이 흘려 내리는 장면을 생각했어요. ‘마음을 멈추고’에서는 밀가루를 소재로 사용했는데,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죠. 우리는 사는 동안 벌어지는 좋지 않은 사건들로 인해 마음의 흐름을 멈추는 일이 생기잖아요. 그 느낌을 무대에서 왼쪽은 솔로를 배치해 멈춤을 보여주고, 오른쪽은 군무로 구성해 흐르는 마음을 표현했어요. 즉, 이때 밀가루는 흐르는 마음을 의미해요. 마음을 멈추고, 가슴 아픈 일들을 스스로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렇듯 창작자의 설명을 듣고 나면 작품에 한층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춤의 언어’가 주는 메시지는 때론 입으로 내뱉는 언어보다 강렬하게 느껴진다. 덕분에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며, 춤이다. 특히 ‘어디만치 왔니’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뮤지엄에서도 재촬영을 요구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일본, 헝가리, 이집트 등 16개 국가를 오가며 공연 프로그램 북을 촘촘하게 채우고도 부족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온 김 교수. 2013년 발표작 ‘지금 여기’를 통해 “멈춤은 뒤처지는 것이 아닌 더 오래 걸어가기 위한 준비”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기에, 바쁜 일상 속 ‘쉼’은 어떻게 마련해왔을지 궁금했다. “딱히 멈춤의 시간을 갖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작품을 하고 나면 1년이 끝난 느낌이 들거든요. 무언가 해놓았다는 만족에서 나도 모르게 또다시 다음 공연을 준비하곤 하죠. 작품을 위해 쉬거나 특별히 뭔가 하는 것은 없지만 결국 무대를 통해 잠재적으로 쌓여 있던 것들이 표출되는 듯해요.” 관객이 존재하는 예술을 위한 소명 해마다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김 교수에게 ‘잘 쉬고 있느냐’는 질문은 애초에 무의미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쉴 틈 없이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행보에는 남다른 사명이 깃들어 있다. 88서울올림픽,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비롯해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국내 단독 초청 공연, 외교통상부 후원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초청 공연 등 한국창작춤의 미학을 세계에 알리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김 교수. 많은 것을 보여줬고,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그는 아직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예술의 대중화가 목표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국춤 하면 단순히 장구춤이나 부채춤 등을 떠올리는데, 그 외에도 다양한 예술작품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 무용계도 영화처럼 관객이 공연을 보고 정신적 교감을 나누고, 마음을 순화하는 시간을 보냈으면 해요. 물론 가능성이 있다고 자부하고요. 지금까지 한국창작춤의 세계화를 위해 힘써온 것처럼, 대중화를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막상 무용을 보러 가려 해도 막막해하는 이가 많은 편. 김 교수에게 중장년 관객이 공감할 만한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내 안의 내가’를 권하고 싶어요. 공연 때 중장년층 관객의 호응이 좋았죠. 내면 깊숙한 곳의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초월하는 경험에서 존재의 삶, 죽음을 내면화하는 자기 안으로의 여행을 그린 작품이에요. 내 안에 겹겹이 쌓인 자아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는 과정을 춤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거대하고 몽환적인 무대로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무용수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끝없이 뒤로 물러나가는 무용수들의 극적 대칭이 특징이죠. 공연을 마치고도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남겨진 무대를 보고 있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끝으로 10년 후의 삶은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다른 것에 도전해보고 싶지는 않은지 물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존재를 드러내고자 했던 그의 무대처럼, 간명한 대답이 돌아왔다. “10년 후에도 무용에 몸담고 있을 거예요. 무용 외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 2018-08-1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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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계치
- 111년 만에 서울이 낮 온도 39.6℃를 찍어 온통 난리가 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심리적 마지노선인 임계점을 뚫은 탓이다. 시내는 한낮 태양열에 아스팔트가 달아오르고 습도와 어울려 숨을 턱턱 막고 있었다. 110세 된 사람이 없으니 모두가 처음 겪는 더위임이 틀림없다. 샤워로 몸을 식히려 해도 미지근한 물로 바뀌어 돌아서면 다시 더웠다. 누진제 때문에 에어컨이 있어도 계속 틀어놓을 수도 없고 적당적당히 틀며 버티고 있었다. 간밤엔 열대야로 밤에 두 번씩이나 깨는 바람에 잠도 설쳤다. 선풍기에 부채까지 동원해 찜통더위와 씨름을 하고 있지만, 일기예보에 의하면 당분간 비 소식은 없는 채 이 더위가 며칠간 계속될 거란 소식이다. 숨을 몰아쉬고 더위와 싸우고 있는 그 찰나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름 뜬 것을 보니 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P란 친구의 전화였다. 내가 불러 식사 한번 한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통 연락도 없던 친구였다. 궁금하기도 했는데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야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 별일은 없고?” 오랜만에 잠시 의례적인 안부를 묻고 그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쏟아내고 있었다. “큰일 하나 해결해서 시원하다”면서, 사실 그 친구와 나는 맏이로 동갑내기 딸을 하나씩 갖고 있다. 서른네 살로 적지 않은 나이라 부모로서는 큰 걱정거리였다. 그 집 딸은 해외에서 좋은데 취직하여 직장을 잡고 있고, 우리 딸은 국내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직장에 다녀 결혼하지 않은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는 처지였다. 그런 딸애가 약혼했고 결혼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축하할 일이다. 그래서 “정말 축하한다. 잘 되었다”고 덕담을 건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윗감이 하버드대학교를 나왔는데 그 부모가 둘 다 하버드대학교 교수고, 몇 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며 자신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몇 개 국어를 하는가 보다”라며 그칠 줄을 모른다. 3월에 선을 봤고 양부모들이 왔는데 그렇게 키가 크고 자신들과는 키 차이가 나고 8월에 약혼식을 하고 결혼은 내년에 하기로 했다는 둥, 냉면을 한 그릇 해야 하는 데 언제 냉면 한 그릇 먹자는 둥. 오랜만에 전화해 냉면 한 그릇 하고 싶은데 오늘이 어떤지 아니면 언제가 좋은지 날짜를 잡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불확실한 공약만 남발하고 있었다. 모처럼 연락이 와 오늘 냉면 한 그릇 먹자고 하면 열 일 제쳐놓고 나갈 준비가 되었는데 한 그릇 먹자는 얘기는 없고 공수표만 남발할 뿐이다. 마치 주체할 수 없는 자랑과 과시를 지금까지 용케 참았다가 임자를 만났다는 듯. 마침 다른 곳에서 전화가 걸려와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에도 전화기 저쪽 일방적인 대화는 끊이질 않았다. "친구야 잠시 내가 전화 좀 받고, 아니 다음에 다시 통화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양해를 구하고야 겨우 통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괜히 그런 전화는 안 받은 이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전화했으면 차나 한잔 하자라던 지, 아니면 간단히 소식을 전하고 상대편의 안부를 묻던지. 그것도 아니면 “미안하다. 친구야 우리 애가 먼저 결혼하게 돼서. 네 딸은 훌륭하니 조금 있으면 아마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하면서 말이라도 한마디 하던지. 아주 쉬운 건데 이렇게 어렵게 풀고 있다. 아무리 좋아 죽겠는 일이라도 잠시만 처지 바꿔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 일이다. 소통이란 건 특별한 게 아니다. 한 번 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밖은 더욱 콘크리트 열기로 타오르고 이날 내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111년 만에 최고라는 39.6℃를 훌쩍 뛰어넘은 것 같았다.
- 2018-08-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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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없이 낡아간다는 것
- 연일 폭염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얼굴에 훅하고 끼치는 열기가 마치 한증막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라 무서울 정도다. 생전에 이런 더위를 겪어 본 적이 있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서울만 그런 게 아니다. 온 나라가 절절 끓고 있을 뿐 아니라 남반구 일부를 제외한 전 세계가 아우성이다. 늘 머릿속에 어둠과 추위로 각인된 스웨덴마저 더위로 비상사태란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학대하고 마구 뿌려댄 오염물질이 이제 임계점을 지나 드디어 인간들에 반격을 개시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위의 차원이 다르다 보니 과거에 써먹던 피서 방법이 무용지물이다. 발을 물에 담가 봐도 곧바로 물이 미지근해지니 소용없고, 가까운 피서지로 가려 해도 가는 길이 태산이다. 그저 온종일 에어컨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집이 유일한 피난처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고마울 때가 없다. 일 년 내내 벽에 하는 일 없이 무심하게 매달려 있던 이 녀석이 드디어 존재 가치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열 달을 피둥피둥 놀다가 한 달 반 남짓 바짝 일하고 이렇게 사랑받는 능력이 존경스럽다. 물론 가을바람이 불면 또다시 사람에게 잊히고 긴 동면에 들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중용될 것이므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벽에 붙어 있을 것이다. 아 사랑스러운 에어컨이여! 온 집안을 둘러보면 곳곳에 철 지난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실 그 잡동사니들이 언제 쓰일지 기약할 수 없다. 그러니 하릴없이 낡아가고 있다. 버리자니 아깝고 정작 쓸데는 없으니 그저 시간 속으로 침잠하는 운명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쌓인 시간 순서대로 버려지겠지. 그런 운명을 알면서도 선뜻 버리기를 결단하지 못 하는 마음이 얄궂다. 그런 가운데 에어컨의 존재가 더욱 빛난다. 이런 염천 속에서도 우리 할머니 학생들은 결석 없이 꼬박꼬박 나오신다. 하루는 더위를 견디다 못해 농담으로 우리 집단으로 결석하고 하루 땡땡이치자고 제안했으나 어림없다.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하신다. 수업 시간에 눈들이 갈수록 초롱초롱하다. 도대체 이 무자비한 더위 속에서 이들이 신나게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무의미하게 낡아갈 수 없다는 내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일는지 모른다.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낡지 않는다. 강과 함께 떠내려가는 것은 죽은 물고기들뿐이다. 비단 언제 쓰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값지게 쓰인다는 신념은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할머니들은 지금 배우는 영어가 훗날 값지게 쓰일 것을 믿는다. 각자 언젠가 실현될 ‘꽃보다 할배, 할매’를 꿈꾼다. 그런 꿈이 있는 한 시나브로 늙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일 년에 한 번 쓰이는 에어컨처럼 말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이니 어찌 생각하면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때가 오면 요긴하게 사용되니 사실 매우 필요한 물건이다. 노년의 삶이 무의미한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혜와 경험이 언젠간 다음 세대에 요긴한 에어컨이 될 것이다. 오늘도 생기 넘치는 꽃처럼 에어컨 밑에서 하루를 보낼 작정이다.
- 2018-08-01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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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스피싱에 당하다
- 며칠 전 집에 혼자 있다가 어이없게 보이스피싱을 당해 큰 손해를 보았다. 너무나 교묘해지고 있는 보이스피싱,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부끄러운 실패담을 적는다. 오전 10시경 국민신용회복위원회임을 사칭한 한 남성에게 전화가 왔다. 신용등급을 알아보기 위해 심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다른 곳에 대출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런 과정 중에 카드 대출을 상환하면 신용등급이 높아져 저금리 대출이 가능하니 법무사 명의로 송금하라고 했다. 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거액을 보냈다. 송금 뒤엔 2시간 이상 기다리라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이상해서 알아보았을 때는 이미 계좌에서 출금하고 도주한 상태였다. 몇 번의 보이스피싱을 피해왔기 때문에 자만했었나 보다. 일을 당하려고 하니 공교롭게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확인절차를 생략하고 사기범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말았다. 갑자기 앞이 캄캄해졌다. 여유 있는 돈이 아니라 대체상환을 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부채가 2배가 되고 말았다. 돌이켜 보니 중간에 피할 길이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첫째, 070 번호인 것을 놓쳤다. 070 번호는 사기에 이용되기 쉽다. 둘째, 개인계좌로 송금하라고 한 것을 유의하지 못했다. 셋째, 시간 끄는 것을 빨리 알아챘어야 했다. 송금한 돈을 찾는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거액을 송금할 경우 30분에서 1시간 지연된다. 넷째, 계속 진행을 독촉하고 송금 여부를 계속 문의했던 사실이다. 일반적인 금융거래에는 없는 관행이다. 다섯째, 금리 인하는 갑자기 할 수 없는 일인데 욕심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다. 공짜점심이 없다는 것을 깜빡 잊었다. 욕심을 조심해야 한다. 사기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한다. 여섯째, 주위 사람과 상의해보는 작업을 빠뜨렸다. 사기꾼이 서두르는 데 보조를 맞출 필요가 전혀 없다. 보이스피싱에 당하고 나니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자만은 금물이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은퇴한 시니어의 재산을 노린 사기범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신고를 마쳤지만 사기당한 금액을 찾을 가능성은 작다. 충격으로 며칠간 잠을 설쳤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잊는 것이 상책이다. 더 큰 사고를 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수업료를 크게 지급하고 교훈을 얻은 셈이다.
- 2018-07-3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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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떠나보내는 날
- “보험 회사죠? 차가 퍼져서요” 서수지 톨 게이트 갓길에서 바라본 6월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구십 노모와 시외나들이 귀가 중에 사달이 난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2003년 산이니 올해로 16년. 298990km, 어림수로 30만 km를 달린 셈이다. 그동안 수고로움에 고맙고, 큰 사고 없이 오늘까지 와주어서 더 고맙다.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되어서 지금까지 함께 한 좋은 사이다. 비록 기계에 불과하지만 오랜 친구 이상이다. 천수를 다한 차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누군가는 깨끗이 세차해서 보냈다는데, 기계와의 헤어짐이 낯설고 이별을 어찌 해야 할지 맘이 쓰인다. 차가 없는 일상은 상상이 안 된다. 언젠가 전기배선 문제로 별안간 차가 멈춰 버렸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얼음이 된 것처럼 생각도 딱!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는 묘한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애지중지는 아니었어도 많은 시간을 안전하게 함께 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목숨을 담보하는 것이기에 비교적 우호적이고자 했다. 출발 전후에 고맙다는 인사도 나름 보내며…. 참 많이도 다녔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주말마다 강릉, 봉화, 삼천포, 성주, 강릉, 동해, 속초 등 전국 각지로 휴가와 나들이하러 다녔고, 평일에는 이동하는 사무실로 나의 준마로써 충성을 다 했다. 어느 해에는 강아지들과 여름휴가로 대천을 다녀오면서 차를 온통 모래 범벅으로 만들었다. SUV의 참맛을 알게 해준 차다. 늘그막에는 딸아이 운전 연습용으로도 요긴했다. 덕분에 훌쩍 떠날 수도 있었고, 좋은 삶을 만드는데 이바지한 바가 크다. 저감장치 수난사! 어느 날 찾아온 사람들이 정부정책이라며 저감 장치를 달아야 한다기에 '그러마' 했다. 공짜 지원의 기쁨은 잠시, 그 이후부터 급속하게 나의 준마가 노후 되어 갔다. 장착 후 차가 무거워지고, 연비저하, 불완전 연소로 몇 번의 응급처치와 수리로 어찌어찌 버텨오다가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제행무상이니 끝 날을 예상했지만, 인연의 마무리는 역시 쉽지 않다. 폐차의 절차를 알아보니 그것도 만만치 않다. 구청에 가니 차에 연체, 미납부채가 있단다. 기억에도 없는 10여 년 전의 주차위반 범칙금과 밀린 과태료를 내야 폐차가 가능하다는 담당자의 말이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인간의 장례 절차와 겹치며 되며 조용히 처리했다. 인연의 시작과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저 과정이 기억으로 남아서 삶의 씨실과 날실이 될 뿐이다. 사진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추억한다. 많은 시간을 늘 함께했던 5580에 마음 깊이 감사를 보낸다.
- 2018-06-2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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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 사는 흙집 건축가 김석균 씨
- 귀촌 5년째. 김석균(55) 씨는 흙집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간 수십 채의 집을 지었다. 흙집 일색이다. 흙의 내부는 거대하다. 식물을 기르고 벌레를 양육한다. 생명의 출처다. 흙의 이런 본성과 모성이야말로 자연의 표상이다. 사람의 몸처럼, 흙집 역시 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김 씨는 자연의 생태와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흙집의 미덕에 심취했다. 시골로 이주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흙집의 본거지인 시골에 눌러 살며 맘껏 흙집을 짓고, 널리 알리고, 두루두루 건축공법을 보급하고 싶었던 것. 한낮의 나른한 정적이 감도는 시골마을 찻길 가. ‘흙건축 연구소 살림’이라는 간판을 단 건물 한 채가 있다. ‘마을건축학교’라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교장은 김석균 씨. 건물의 외양도 내부도 말쑥하다. 원래 낡고 빈 농협 창고였다. 그걸 사들여 본때 있게 고쳤다. 이 공간에서 흙 건축 사업과 교육과 작업이 이루어진다. 전북 순창군 동계면에 있다. 귀촌 이전, 김 씨는 도시를 전전하며 다채로운 경험을 쌓았다. 전북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청춘기를 예인(藝人)으로 신바람 나게 노닐었다.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고, 근 10여 년 풍물패에 섞여 장구를 쳤다. 이후 서울의 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일하다가 다시 행선지를 바꿨다. 강원도 원주의 ‘자연학교’에서 고명한 생태철학자 무위당(無爲堂) 장일순 선생(작고)의 강연을 듣고서였다지. 무위당이 설파하는 생명사상과 ‘모심’의 뉴스에 귀가 번쩍 뜨여 생태적 삶을 실천하는 쪽으로 진로를 돌렸던 것. 그는 이후 한동안 천연염색이나 전통차 제조로 자연이 실린 생활을 꾸려나갔다. 생태건축에 강렬한 감흥을 느낀 것도 그즈음이었다. 해서, 부지런히 전통 한옥의 이론과 기술을 책에서 현장에서 대학원에서 배우고 익히고 다듬었다. 10여 년을 그렇게 내닫아 흙 건축 전문가로 도약했다. ‘끼’와 ‘깡’이 발동하는 방향으로 운신한 덕이다. 성향과 취향이 흐르는 쪽으로 길을 닦은 셈이다. 이는 시중에 흔한 재능이 아니렷다. 그러나 김 씨는 손사래를 친다. “저를 지도해주셨던 선생님 왈, 어이, 석균이! 자네는 왜 그렇게 재주가 없는가? 하핫. 재주는 없는 대신 제가 뭐든 열성은 다합니다. 좌우명이 하나 있는데요, 매사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자! 그겁니다. 어떤 상황이건 적극 부닥쳐 확인해보자는 거죠. 문제는 ‘깊이’에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왕지사 건축업계에 들어섰다면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 그거 하나는 놓지 않고 살았어요.” 김 씨는 흙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쓰윽 존재감을 드러냈다. ‘담틀집’을 많이 지어서였다. ‘담틀집’이란 거푸집 안에 흙을 다져넣어 지은 집이다. 지금의 그는 ‘생태 단열’의 복음전도사다. 그게 뭔가? 흔히 건축 단열재로 스티로폼을 쓰지만 그는 극구 배척한다. 볏짚과 왕겨, 이 자연 재료들이야말로 탁월하고 안전한 최상의 생태 단열재라는 거다. “사람에게 옷은 제2의 피부, 집은 제3의 피부입니다. 그런데 현대 건축의 자재 대부분은 석유화학 제품이라 인체에 해로울 수밖에 없어요. 반면 흙이나 나무는 공기정화 능력을 발휘합니다. 볏짚이나 왕겨로 단열처리를 할 경우, 스티로폼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습도 조절 효과까지 거둘 수 있어요. 왕겨는 물에 잘 썩지도 않아 볏짚보다 더 뛰어나고요.”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시골의 오래된 집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 아깝더라고요. 비록 현대 주택에 비해 불편하고 열악한 구조이지만, 우리 부모 세대의 숨결이 서린 주거 문화이자 정서적 유적이지 않겠어요?” “좋은 집이란 뭔가? 바람 잘 통하고, 해 잘 들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집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시골집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단열 미비에 있어요. 여름엔 온실처럼 덥고 겨울엔 냉장고처럼 춥죠. 시골집 흙벽 자체가 워낙 얇기도 하거니와, 흙이나 돌이 단열기능을 가진 재료는 아니거든요.” “보수하고 보강해서 잘 살려 쓸 방법은 없을까?” “제가 ‘마을건축학교’를 운영하는 취지가 뭐냐 하면, 귀촌·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이 굳이 신축을 하기보다는 기존 시골집을 고쳐 쓰는 방법을 택하기를 바라서입니다.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시골집 단열 작업을 어느 정도 손수 해낼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단열 보강만으로는 한계가 자명해요. 주거와 삶의 패턴도 이미 과거와 달라졌어요. 이래저래 퇴락한 시골집들의 여건은 불리합니다. 화학물질과 공해물질의 폐해가 여실한 현대 주택도 불안전하긴 마찬가지이지만 말이죠. 생태 단열재를 도입한 흙집이 대안이라 봅니다.” “흙 건축엔 비용이 많이 든다죠? 입주 후 관리가 번거롭다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저비용 고효율 주택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집의 완성도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게 건축비이고요. 관리 문제? 제대로 잘 지은 흙집이라면 신경 쓸 일이 전혀 없습니다.” 흙집이든 모던한 주택이든 허영과 허세의 덩어리가 아니라면, 취향과 실용에 부합한다면, 작고 소박하더라도 박새 둥지처럼 안락하다면 그게 바로 좋은 집이지 싶지만, 김 씨의 흙집 옹호엔 빈틈이 없다. 근성과 뚝심, 그리고 낙관의 힘 그는 손에 별로 쥔 것 없이 귀촌을 했다. 안빈낙도란 흔히 허풍선이의 과욕이라 바랄 일이 아니거니와, 가족 부양의 의무를 면제받을 순 없었으니 수말처럼 들입다 뛸 수밖에 없었을 테지. 앉으나 서나, 오나가나, 하품할 겨를 없이 분주하게 살아온 것 같다. 지난 5년 사이, 그는 많은 일을 벌였다. 마을 안통의 빈 건물을 개축, 청년 귀농인들과 함께 거주하는 공유주택으로 만들었다. 이 일곱 명의 청년들은 ‘흙건축 연구소 살림’의 주주이자 직원들이다.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아 관내 시골집들을 보수해주는 일도 하고 있다. 근래엔 꽤 너른 임야를 사들여 아동들을 위한 숲속 생태놀이공간을 꾸미고 있다. 근성과 뚝심, 기민한 머리, 노련한 처신, 집요한 실천력이 아니라면 일구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채도 있고, 흙집 사업이 잘 돌아가는 것만도 아니라 하지만, 그는 낙관의 힘으로 어디까지나 기세등등하다. 김 씨는 한때 연매출 30억 원을 목표치로 잡았다. 이런 그에게 아내 이민선(42·‘흙건축 연구소 살림’ 대표) 씨가 어퍼컷을 날렸다. “당신, 그렇게 살면 행복할 거 같아?” 아내의 일격에 그는 코피를 쏟았던 모양이다. “퍼뜩 정신이 들더라고요. 내가 과욕을 부리고 있구나, 일벌레로 추락하고 있구나, 그런 반성을 했던 겁니다. 가급적 일을 적게 하고, 가급적 많이 놀자! ‘광대 정신’을 다시 끌어내 쓰자!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어요.” “광대 정신?” “제가 과거 한때 풍물에 미치다시피 빠져 살았습니다. 장구 하나 짊어지고 전국을 6개월씩 떠돌곤 했어요. 어느 도시를 가건 그곳의 풍물패 광대들을 찾으면 대번에 통했어요. 어이, 나 전주의 김석균이여! 그렇게 기별하면 우르르 달려들 나와 반겨줬어요. 날밤을 새며 마시고 춤추고 놀았고 말이죠. 그 광대의 마음과 기질과 습성을 봉인해두고 일 하나에 몰두하며 50대 중반에 접어들었어요. 자유로운 정신을 스스로 가둔 채 말이죠. 이젠 봉인을 좀 풀자, 나를 풀어놓자, 욕심을 줄이자, 그런 다짐을 했던 겁니다.” “현실의 규율과 틀에 사로잡히지 않는 방랑자. 사회의 보편적 속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 광대란 과거부터 그런 존재들이었죠. 방탕의 이미지가 따라붙기는 하지만, 본성적으로 자유분방한 나그네들….” “악기 하나 달랑 들고 세상을 떠도는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일 수도 있죠. 내가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사는 길의 하나일 테니까.” “일찍이 풍물과 더불어 한평생 살다 가겠다는 작심을 한 적은 없으셨고?”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질 않았습니다. 재주에 빠지는 프로보다는 재미를 즐기는 아마추어로 만족했으니까. 그랬던 광대의 나날을 청산한 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의 생태적·실천적 삶에 감화를 받으면서였죠. 풍물을 한답시고 줄창 술이나 퍼마셨던 시간들을 정색을 하고 되돌아봤던 겁니다. 스스로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 무엇에 앞서 의식주부터 내 힘으로 떳떳하게 해결해야 할 필요를 절감했어요. 그 방편으로 흙집 건축에 착안했고요.” 떠들썩한 축제와 그 뒤에 고이는 허망한 정적. 그 양자의 괴리와 배치(背馳)에 삶의 하중이 얹힌다. 만족은 잠정적인 선물에 그치고, 모색의 시간이 다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잔처럼 여지없이 찾아든다. 고인 물처럼 썩지 않으려면, 정직하게 돌아보고 서둘러 변해야 하겠지. ‘배워서 남 주자!’ 김 씨의 귀촌은 변화 욕구의 산물이자, 거듭 새로워져야 할 기회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새로운 기회를 잘 활용해왔다. ‘전투적인 노동’으로 일에 전념했으며, 아내에 대한 존중심을 견지, 크고 작은 역경들을 힘 모아 함께 넘어설 수 있는 부부애를 구축했다. 풍물패와 유유상종하던 시절에 배양한 사교적이거나 낙천적인 에너지를 발휘해 주변과 친화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그는 차갑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귀촌을 바라본다. “점점 확산되는 귀촌·귀농 현상은 기본적으로 매우 바람직합니다. 노인들만 남은 시골에 생기를 부여하고 인구 유지에 기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골살이란 만만한 게 아녜요. 흔히들 기존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귀촌의 목적을 둡니다. 이건 현명하고 정당하죠. 도시라는 수레바퀴에 어쩔 수 없이 휩쓸려 돈을 좇는 삶, 자신과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삶이 좋은 것일 리 없으니까. 그러나 전원생활에 관한 낭만이나 동경을 앞세운 귀촌은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신중한 고려를 통한 귀촌이라 하더라도 원했던 걸 얻기까진 상당한 수고와 시간을 쏟아야 하고 말이죠.” “충동구매처럼 무모한 귀촌을 할 경우, 시련의 시간은 한결 길어지겠죠. 끈질기게 버티다가 10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평온한 정착에 이르기도 해요.” “처음 2~3년은 어어 하는 사이에 정신없이 지나더라고요. 5년은 지나야 서서히 자리가 잡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시골에서 경제활동을 할 경우엔 어려움이 더 커지죠. 실패 가능성도 많고요. 젊은 귀촌자들의 실패는 오히려 미래의 자산이 되겠지만, 시니어는 깊은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특히나 농사를 통한 돈벌이를 시도하다 보면 궁지에 몰립니다. 평생 농사만을 전공한 시골 사람들도 쩔쩔매며 산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원주민과의 관계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외딴집처럼 고독해질 가능성도 많은 게 귀촌생활이죠.” “세상엔 파락호도 있고, 괜찮은 사람도 있어요. 도시나 시골이나 마찬가지로요. 시골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존중과 배려에 무신경한 채, 그저 원주민의 텃세를 타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원주민 입장에선 수상한 외지인이 내 동네에 이주해올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배워서 남 주자!’ 이건 우리 회사의 구호예요. 남에게, 이웃에게 기탄없이 나눠주고 배려하는 일은 언뜻 손해 보는 짓 같지만, 사실은 돌아오는 게 더 많아요.”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는 어디에고 있다. 그런 인물은 미구에 걷어차인다. 골치 아픈 원주민 때문에 앙앙불락하기보다, 내가 먼저 골치 아픈 인간이 되지 않는 것. 그게 지름길이라는 것. 김 씨의 얘기인즉, 그런 귀띔이겠지.
- 2018-06-21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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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라서 만나지 못하는 한 줄기 빛
- 가계부채 1500조 원 시대다. 하우스푸어, 파산 등등의 우울한 단어들은 이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암울한 처지는 아무리 남의 얘기로 분류하려고 해도 막연한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로서 정립되어 발전해온 만큼, 우리 대부분은 잘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가 만든 시스템들이 있다. 서민금융진흥원 또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서민금융진흥원의 김윤영 원장을 만나 엄혹한 금융위기 시대의 사회적 역할을 물어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돈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돈에 웃고 돈에 운다. 그리고 아마도 돈에 우는 사람이 웃는 사람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그 돈에 우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미소금융재단, 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위원회 등 다양한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정부의 서민 관련 금융 지원 시스템을 한곳으로 통합시키고자 만들어진 서민금융진흥원은 2016년에 문을 열어 이제 2년여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서민금융진흥원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게 가장 좋은 거죠. 어려운 사람이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역할이 없어져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자꾸 역할이 커지는 게 현실이죠.”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이 단순히 대출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민들의 편의를 높이고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은 ‘문화’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의 역할 몇 년 전, 전셋값의 이상 폭등이 계속되어 전세 비용과 매매 비용이 별 차이가 없게 되자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명제가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지금 15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치를 기록하며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거대한 폭탄이 됐다. 이러한 각박한 현실에서, 김윤영 원장은 서민금융진흥원이 대출 서비스를 넘어서 인간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출이 능사가 아닙니다. 빚 권하는 사회에 대해선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것보다는 자활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게 옳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컨설팅, 관리 등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직업상담사를 자체적으로 열 명 보유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워크넷과 잡월드 등과 연계해 일자리 연결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하면 사회복지사와 연결시켜주기도 하죠.” 금융생활 및 경제적 자립 지원 노후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1988년에 시작된 국민연금에 가입해 계속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이라 해도 이제 은퇴하게 되면 150만 원 정도 받는다. ‘월급쟁이로 살면서 큰돈 모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빚 없으면 다행’이라는 말들까지 나온다. 그래서 노후를 맞이한 많은 시니어가 일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정작 일자리는 없는 게 현실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은 이 문제에 주목해 일자리 구하는 일을 돕고,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컨설팅까지 제공한다. “하다못해 족발집을 창업하고 싶다면 족발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부터 세무, 인테리어까지 가르쳐줍니다. 전국에 150명의 컨설턴트가 있어 현장으로 직접 가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요. 예전에는 대출만 해주고 말았죠. 지금은 이 사람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종합적인 상담을 해주고 있어요. 금전 이외에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비금융 서비스까지 아우르겠다는 서민금융진흥원의 계획은 전국 43개 통합지원센터 종합상담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사회보장정보원과도 연계하고 전국 3500여 개에 이르는 주민센터도 활용해 서민금융진흥원에 더욱 쉽게 접촉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문턱이 낮아야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취약계층 자립자금, 전통시장 소액대출, 미소금융 자영업자 지원대출, 개인·프리 워크아웃, 바꿔드림론 등 다양한 서민금융 지원제도를 통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지원을 넘어선 재기의 발판 마련 “서민금융진흥원을 찾아오는 분들은 대부분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빨리 제도권 금융으로 들어가게 해야죠.”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경제 언론에서는 심심찮게 기사를 내고 있지만 과연 그러한 발전을 체감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 원장은 여전히 생각보다 취약계층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은 급전이 필요할 때 거래 실적이 없어서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대부업을 찾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죠.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금융 교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서민금융진흥원을 바로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열 번, 백 번 생각하고 갈까 말까 고민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빚쟁이가 되는구나’라는 자괴감과 부끄러움 때문이다. 김 원장이 ‘문화’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정서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찾아와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빚 탕감이 도덕적 해이? 사실 서민금융진흥원이 하는 일은 일반 금융 회사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금융 회사들이 대출을 해주잖아요? 그들은 돈 빌려준 사람의 정보를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채무자가 돈을 안 갚고 있으면 찾아가서 ‘어렵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럼 이자는 이렇게 감면해줄게요’ 하고 논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가장 잘 아는 곳에서 깎아주고 감면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정부에서 나서서 금융 회사와 협약을 맺고 정책 자금으로 돕는 거죠.” ‘돈을 연체하려고 빌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김 원장은 서민의 마음과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얼마 전 정부에서 1000만 원 이하 소액 채무를 10년 이상 갚지 못하고 있는 연체자 159만 명의 빚을 탕감하거나 유예해준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소위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도덕적 해이’론에 대한 반박이다. “그 1000만 원을 빌려서 10년 연체했단 말예요. 10년이면 이미 은행이 안 갖고 있거든요. 팔아넘겨져서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으로 가 있을 돈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채무자는 얼마나 추심으로 고통을 받았겠어요. 물론 1000만 원은 큰돈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년을 고통받은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환 능력이 없으면 감면해줘야죠. 이 건에 대해 도덕적 해이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도덕적 해이가 없을 순 없겠죠. 그러나 소수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지원을 안 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필요했다고 봐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이들을 돕자 서민금융진흥원에서는 얼마 전 서민금융 이용자들의 수기집을 발간했다. 이 책에 실린, 부채로 어려움을 겪다가 서민금융지원제도를 이용해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23편은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김 원장은 수기집 사연들 중 ‘이제는 전화를 맘대로 받을 수 있고 집도 갈 수 있고 회사도 갈 수 있다’는 말이 너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보통 사람의 보통 일상도 ‘빚쟁이’가 되는 순간 사치가 된다. 그들로선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 것이 가장 바랐던 일일 것이다. “빚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이 다리 뻗고 잘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우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이 나면 119를 찾듯 서민금융 하면 우리를 연상하게 됐으면 해요.” 우리나라의 복지체계를 다시 점검하게 만든 송파 세 모녀 사건. 엄마가 보건복지부 희망의 전화인 129번을 알았다면 그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지만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곳곳에 있다. 서민금융진흥원 또한 홍보가 잘 안 돼서 활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들 중 하나다. 특히 시니어 중 신용회복위원회는 알아도 서민금융진흥원은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이 상당수다. “전국에 폐지 줍는 노인 수가 170만 명이나 된다 합니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N포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죠. 그런 분들에게 재기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저희를 통해 희망을 얻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보람입니다.” 희망을 주고 확인하는 것이 보람 최근 정부기관들은 효율성 강화를 위해 각 기관에 흩어진 DB와 역할을 통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민연금공단을 중심으로 16개 기관이 모여 MOU를 체결했다. 노후준비지원 중앙협의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노후 서비스를 지원하는 기관이 다 모였고 서민금융진흥원도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갔다. “예전에는 이런 협의체가 있으면 출범하고 끝나잖아요. 이제는 실제적인 액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간에 폐지 수거 체험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정부에서 노인 일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변하는 김 원장은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따뜻함과 진솔함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러한 소탈한 솔직함이야말로 지금 하고 있는 업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 2018-05-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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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문화행사
- 가족 나들이하기 좋은 5월, 이달의 추천 전시·공연·행사를 소개한다. 제20회 담양대나무축제 일정 5월 2~7일 장소 죽녹원 및 관방제림 일원 대한민국 대나무 주산지로 알려진 전라남도 담양. 가족 나들이를 계획 중이라면 담양을 주목해보자. 이곳에서는 매년 대나무 심는 날(죽취일)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축제를 연다. 바로 올해로 20회를 맞이한 담양대나무축제. 6일간 진행되는 이번 축제에서는 대나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대나무 활쏘기, 대나무 뗏목타기, 대나무 액세서리 만들기, 대나무 부채 만들기 등)이 운영된다.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일정 5월 3일~10월 28일 장소 디뮤지엄 디뮤지엄이 2018년 첫 전시를 공개한다. 날씨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총 3개의 챕터(‘날씨가 말을 걸다’, ‘날씨와 대화하다’, ‘날씨를 기억하다’)로 구성된다. 25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해 햇살, 눈, 비, 안개, 뇌우와 같은 날씨에 담긴 이야기를 사진, 영상, 사운드,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작품으로 재조명했다.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당신의 날씨에 관한 기억을 새로 추억해보자. 레슬러 개봉 5월 9일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김대웅 출연 유해진, 나문희, 성동일, 김민재 등 포스터에 한 손에는 금메달을, 다른 한 손에는 프라이팬을 든 배우 유해진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전직 레슬러에서 프로 살림꾼으로 변신한 살림 9단이자 아들 바보인 유해진은 영화 ‘레슬러’에서 ‘귀보’ 역할을 맡았다. 그가 예기치 않은 사건들과 엮이기 시작하면서 평범했던 일상이 유쾌하게 바뀌는 이야기를 그렸다. 또 나문희, 김민재, 성동일 등 세대를 어우르는 베테랑 연기파 배우들이 만나 호흡을 맞췄다. 얼굴도둑 일정 5월 11일~6월 3일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출연 성여진, 신안진, 주인영, 황선화 등 연극 ‘얼굴도둑’은 개인의 자아와 내면을 비추는 ‘얼굴’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진실한 감정을 놓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트립 투 스페인 개봉 5월 17일 장르 드라마, 코미디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등 열정의 나라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은 산탄데르에서 말라가까지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며 음식과 인생, 사랑에 대한 수다를 펼치는 미식 여행기다. 영국의 대표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출연해 유쾌한 입담을 보여준다. 시카고 일정 5월 22일~8월 5일 장소 디큐브아트센터 출연 최정원, 박칼린, 남경주, 아이비 등 한국에서의 공연은 열네 번째. 최정원, 아이비, 남경주, 박칼린 등이 참여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라인업으로 돌아왔다. 섹시하고 뜨거운 뮤지컬을 찾고 있다면 농염한 재즈 선율과 관능적인 춤이 매력적인 ‘시카고’를 추천한다.
- 2018-04-27 1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