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이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얼굴에 훅하고 끼치는 열기가 마치 한증막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라 무서울 정도다. 생전에 이런 더위를 겪어 본 적이 있었는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서울만 그런 게 아니다. 온 나라가 절절 끓고 있을 뿐 아니라 남반구 일부를 제외한 전 세계가 아우성이다. 늘 머릿속에 어둠과 추위로 각인된 스웨덴마저 더위로 비상사태란다.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그동안 인간이 자연을 학대하고 마구 뿌려댄 오염물질이 이제 임계점을 지나 드디어 인간들에 반격을 개시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더위의 차원이 다르다 보니 과거에 써먹던 피서 방법이 무용지물이다. 발을 물에 담가 봐도 곧바로 물이 미지근해지니 소용없고, 가까운 피서지로 가려 해도 가는 길이 태산이다. 그저 온종일 에어컨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집이 유일한 피난처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고마울 때가 없다. 일 년 내내 벽에 하는 일 없이 무심하게 매달려 있던 이 녀석이 드디어 존재 가치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열 달을 피둥피둥 놀다가 한 달 반 남짓 바짝 일하고 이렇게 사랑받는 능력이 존경스럽다. 물론 가을바람이 불면 또다시 사람에게 잊히고 긴 동면에 들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중용될 것이므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벽에 붙어 있을 것이다. 아 사랑스러운 에어컨이여!
온 집안을 둘러보면 곳곳에 철 지난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실 그 잡동사니들이 언제 쓰일지 기약할 수 없다. 그러니 하릴없이 낡아가고 있다. 버리자니 아깝고 정작 쓸데는 없으니 그저 시간 속으로 침잠하는 운명이다. 그러다 언젠가는 쌓인 시간 순서대로 버려지겠지. 그런 운명을 알면서도 선뜻 버리기를 결단하지 못 하는 마음이 얄궂다. 그런 가운데 에어컨의 존재가 더욱 빛난다.
이런 염천 속에서도 우리 할머니 학생들은 결석 없이 꼬박꼬박 나오신다. 하루는 더위를 견디다 못해 농담으로 우리 집단으로 결석하고 하루 땡땡이치자고 제안했으나 어림없다.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하신다. 수업 시간에 눈들이 갈수록 초롱초롱하다. 도대체 이 무자비한 더위 속에서 이들이 신나게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무의미하게 낡아갈 수 없다는 내면의 소리 없는 아우성일는지 모른다.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낡지 않는다. 강과 함께 떠내려가는 것은 죽은 물고기들뿐이다. 비단 언제 쓰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값지게 쓰인다는 신념은 삶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할머니들은 지금 배우는 영어가 훗날 값지게 쓰일 것을 믿는다. 각자 언젠가 실현될 ‘꽃보다 할배, 할매’를 꿈꾼다. 그런 꿈이 있는 한 시나브로 늙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일 년에 한 번 쓰이는 에어컨처럼 말이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면 ‘여름의 화로와 겨울의 부채’라는 뜻이니 어찌 생각하면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때가 오면 요긴하게 사용되니 사실 매우 필요한 물건이다. 노년의 삶이 무의미한 듯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혜와 경험이 언젠간 다음 세대에 요긴한 에어컨이 될 것이다. 오늘도 생기 넘치는 꽃처럼 에어컨 밑에서 하루를 보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