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생활에서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같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돈독하고 행복한 부부생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명한 기술이 중요하다. 여기 사회생활 ‘만점’, 가정생활 ‘빵점’이었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현재 가정 행복코치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부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명한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짚라인 코리아의 대표이자, 부부 토크쇼 ‘둘이 하나데이’의 진행자. 이제는 그를 수식하는 단어도 많다. 이수경 씨다. 그가 이렇게 변한 사연은 무엇일까?
1993년, 22년 전 어느 날을 이수경 대표는 잊지 못한다. 당시 직장인이었던 이씨가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할 때였다. 5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고, 3년에 한 번씩 자동차를 바꿔야만 훌륭한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물었다.
“여보, 당신은 행복해요? 난 지금 하나도 안 행복해.”
이런 말을 하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며 콧방귀를 뀌던 찰나에 아내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 가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부세미나에 한번 참석해 봅시다.”
특별히 부부생활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이씨는 아내의 이런 제안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부부 세미나는 문제가 있는 부부만 참석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꺼려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이씨의 대답은 ‘No!’. 그가 생각하기엔 그곳에 참석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내도 포기할 줄 몰랐다. 이씨를 설득해 부부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3일 밤낮을 애원했다. 회사 생활에 빠져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 눕기 바빴던 이씨와의 부부생활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내의 정성에 이씨도 백기를 들었다.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부부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한 것. 내키지 않은 동행이었지만 그것이 이수경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가정 ‘권위자’에서 가정 ‘경영자’로
2박 3일 일정의 부부세미나. 이씨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부부세미나의 첫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미나 참석 자체가 불만이었던 이씨는 강의가 시작하자 의자에서 엉덩이를 쭉 빼고 눕다시피 앉았다. 일종의 불만 표출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항(?)도 강의가 시작되자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구부정했던 허리는 이미 꼿꼿해졌고, 강의를 듣는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강의에서의 그 무엇인가가 이씨의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이다.
“그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거만했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니 집에서 잠만 자도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강의를 듣고 나니 그것이 아니더라고요. 가정에서 권위만 가지려 했지 가장으로서 가정 경영은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시원해지더라고요.”
강의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 교육을 이전에 들었던 참가자가 그들의 부부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이 이씨 부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가족이 모두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정 경영을 도외시하고 있는 모습. 그것은 이씨 부부 생활을 실상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그 수업이 이수경 가정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아내에게 “가정을 경영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선언한 후, 꼬박 2년 동안 국내에서 열리는 수많은 부부세미나에 참석했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 대한 책도 30권 이상 탐독했다. 그렇게 다년간 부부와 가정생활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남편이 가정 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변하니까 가족이 변하더라고요. 주말에 잠만 자는 게 일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 둘씩 변하기로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포옹했는데 서른이 넘어서도 하고 있어요. 부부 생활도 바뀌었죠. 이른바 *텐텐 대화법으로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졌습니다.”
◇ 매달 21일, 둘이 하나데이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잖아요? 행복해지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가정 행복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가정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의 오프라인 부부쇼를 기획하게 됐죠.”
이씨는 그 열정에 보람을 얹혀 개그맨 겸 소통테이너인 오종철과 손을 잡았다. 1년 동안 부부쇼 ‘둘이 하나데이’를 기획한 것. 지난 3월 21일 첫 선을 보인 ‘둘이 하나데이’는 매달 21일에 열리는데, 이는 ‘2(둘)이서 1(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부부의 날’인 5월 21일에서 착안한 것이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부부쇼에서는 강연, 참가자 그룹회의, 가족 선서, 편지쓰기 등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부부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이씨는 오종철과 함께 MC로 활약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수경에게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기업인, 강사, 작가, 토크쇼 진행자, 가정행복코치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에너지를 뿜으며 이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예요. 여러 가지 역할을 모두 놓치기 싫거든요. 물론 가정 경영자로서의 역할도요. 이 많은 역할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역할은 바로 가정행복코치예요. 제가 20여년 전 느꼈던 것처럼 타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부부에게도 기술이 필요하다
“마음에서 마음을 전한다고요? 말을 안 하는데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부부 사이에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부부는 동상이몽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화해서 서로의 이해를 얻어야 해요.”
가정행복코치가 된 후 그에게 부부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씨가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낄 때도 그가 낸 책 나 강연을 보고 부부생활에 다시 활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그래서인지 그가 부부 생활 노하우를 담은 책 는 출판 이후 149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씨의 부부관계 노하우는 책, 둘이 하나데이, 개인 상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이씨는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의 부부 문제가 대화 부족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대화로 뛰어들었다간 위험할 수 있다. 감정이 격해져 비수가 꽂히는 말로 자칫 부부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경우도 허다한 탓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현명한 대화의 기술이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비방송용으로 게스트들과 이야기하는데 한 분이 ‘청계천에서 손잡고 다니는 중년 커플은 다 거짓말이죠?’라고 하더라고요. 내막을 몰라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는데 그분이 일종의 권태기였나 봐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꼴 보기 싫어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단점보다는 남편의 좋은 점을 하루 한 가지씩 노트에 써보라고 얘기를 했어요. 얼마 있다가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둘이 하나데이에 나와 커플 스쿼트도 하며 부부 금실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부부생활 코칭과 ‘둘이 하나데이’의 긍정적인 성과가 쌓여가자, 이씨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가 1년 동안 기획한 ‘둘이 하나데이’는 한 기업에서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포맷을 그대로 따갈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씨가 꿈꾸는 미래는 이제 더 큰 울타리를 향한다.
“가화만사성이 사화만사성(社和萬事成)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가정이 모여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 작은 것을 만들어 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부가 손잡고 ‘둘이 하나데이’에 오는 것을 상상합니다.”
*텐텐 대화법이란
부부끼리 대화할 것에 대해 10분을 노트에 써 보고, 10분을 대화 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100세 시대. 그만큼 일하고 활동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런 시대에 발 맞춰 고령자의 위상과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고령자들이 품격 있게 자립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다.
이미 고령화 사회는 지난 지 오래다. 15년 전인 2000년 65세 이상의 인구 비율이 7.2%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그 후 10년 만인 2010년에는 두 자릿 수인 11%로 늘어나면서 우리 국민 10명 중 1명꼴로 65세 이상 ‘법적 노인’이 됐다. 지금으로부터 4년 후인 2019년에는 7명 중 1명(14%)이 65세 이상이 된다.
이처럼 65세 이상 연령층이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가 코앞으로 성큼 다가오면서 고령사회를 총체적 차원에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고령자 문제를 당사자가 아닌 고령자의 외부 시각으로 바라보기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고령자에 대한 이미지 개선과 삶의 질과 역할 향상을 위해 뜻을 모은 사람들이 있다. 의사부터 기자까지 전문직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다. 교육과 행사,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이다. 김일순(79) 회장, 이광영(78) 상임이사, 기세채(77) 감사, 변성식(62) 전문위원, 최진숙(67) 사무총장, 김예은(60) 상담실장 등 핵심 멤버 6명을 만나 골든에이지포럼에 대해 알아봤다.
Q. 골든에이지포럼을 설립한 취지는 무엇인가요?
A. 사실 골든에이지(Golden Age)라는 말은 시카고의 한 학회에서 발표한 ‘70~80대가 가장 행복한 연령대’라는 연구 결과에서 비롯됐습니다. 같은 시기, 미국의 한 심리학회에서도 똑같은 연구 결과가 나왔죠. 이러한 결과는 70~80대의 고령자들이 욕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됐습니다. 모두 내려놓았다는 것이죠.
우리 골든에이지포럼의 설립은 여기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모두 내려놓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죠. 아직까지 욕심과 걱정이 있는 분들이 아름답게 내려놓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에서 만들게 된 것입니다.
Q. 고령자 의식 변화를 위해 골든에이지포럼이 펼치는 행사는 무엇인가요?
우리 세대가 사회와 가정에서 생산적인 기여를 하기 위한 교육 행사를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아랫세대들이 꺼내기 힘들어하고,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들을 우리가 먼저 털어놓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제는 아름다운 마무리(죽음)부터 치매, 사후세계의 이야기까지 고령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우리 세대가 주체적으로 살고, 아랫세대의 부담을 줄여줘야 존중받는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러니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자립하자’는 것이죠.
Q. 아름다운 마무리와 치매에 대한 강의 내용이 궁금한데요.
처음에는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하느냐!”며 분을 참지 못하고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강의가 입소문을 타면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은 초창기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의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치매는 당사자와 보호자 모두 힘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 부담을 덜자고 교육합니다. 사실 치매 초기는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중기 이상으로 증상이 발전하면 누군가가 옆에서 꼭 돌봐야만 합니다. 이런 경우에 돌보는 사람의 다수가 힘겹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집에서 돌보지 말고, 치매 요양원에 보내라고 강의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치매요양원에 부모님을 보내는 일이 불효라고 낙인 찍혀 있지만, 결코 그것은 불효가 아니라고 교육하면서 말입니다. 도덕적 규범에 얽매이지 말고 서로에게 좋은 길을 찾자는 것이죠.
이러한 교육을 감히 골든에이지포럼이 할 수 있는 이유는 구성원들 자체가 이미 그 나이가 됐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말과 금기시되는 행동들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공론화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Q. 과거와 현재의 고령자 모습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요?
과거에는 고령자의 위상과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었죠. 경제적, 사회적 결정권과 더불어 가정에서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이 고령자의 몫이었으니까요. 현재는 어떻습니까? 경제권은커녕 고령자의 위상이 중심에서 바깥으로 상당히 밀려나 있는 상태입니다. 예컨대 요즘 고령자들은 집에서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정에서 눈치보다가 밖에 나가봐도 막상 할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골든에이지포럼에서는 고령자들의 위상과 위치를 재정립시키고자 합니다. 그 방법은 아랫세대를 강요하거나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받아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랫세대들에게 우리를 대우해 달라는 것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자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고령자들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년 전까지만 해도 60세라는 나이는 환갑잔치를 열 만큼 대단한 나이로 여겨졌습니다. 현직에서 벗어나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지금 60세가 그렇다고 하면 콧방귀 뀌죠.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그만큼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건강 기능도 함께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60세라는 나이는 그만큼 젊다는 뜻이고, 아직 사회에서 펄펄 날아다닐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의학이 이렇게 발달해서 아직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각은 아직 30년 전에 머물러 있어요. 고령자는 그저 병들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 아랫세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든 사람, 우리도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요?
Q. 교육 행사 외에 펼치는 사업이 있으신지요?
고령자의 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완화해 주는 제품에 대한 제안을 기업에 하기도 합니다. 고령화될수록 신체적 변화는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령자를 위한 구두를 구두 장인에게 제안해 상품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고, 끈도 묶지 않으면서 가벼운 구두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고령자들을 위한 필수 영양소가 함유된 제품을 식품 회사에 제안하기도 했고, 실제 상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 김일순 회장은?
1937년생인 김 회장은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보건대학원 원장, 의료원 원장을 거치며 의료계를 빛냈다. 청진기를 놓은 이후에도 (사)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사)한국 금연운동협의회 명예회장, (재)연세대학교 재단 이사회 감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이광영 상임이사는?
1938년생으로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국내 1호 과학기자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일보 과학부 차장, 특집부장, 특집과학부장, 부국장대우 생활과학부장을 거쳐 한국과학기자클럽 회장을 역임했다.
“이(異) 길에 답이 있다”
이 한마디에 협업(Collaboration)의 핵심이 담겨 있다. 다름과 만나 세상을 보라, 그리고 미래를 열라는 뜻이다. 두 개 이상 개체의 결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은 비단 기술에 인문학을 입힌 애플의 성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상생과 동반성장이 화두가 된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결이기도 하다. ‘협업은 축복이다’라며 협업 문화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윤은기(尹殷基)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을 지난 1월 7일 만나봤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윤 회장은 협업을 대학병원에서의 협진을 예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전공의들이 만나야 협진이 이뤄지는 것처럼, 앞으로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융·복합돼야 협업의 가치가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그는 다름이 아니면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지내서 동지, 동포, 동료, 동창생 등 같은 것에는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교도, 이문화, 이단, 이민족 등 다른 것은 가차없이 배척했다. 이에 중앙공무원 교육원 원장을 역임한 윤 회장은 한국사회의 운명을 바꿀 만한 의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협업’에 주목했고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해 사람들을 만나 협업에 대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1달에 보통 10번에서 많게는 20번가량 강의했고 그러다보니 처음엔 협업이란 단어를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포털사이트에 협업 관련 콘텐츠들이 꽤 많아졌고 ‘협업’검색에도 그의 이름이 상당히 등장하게 됐다.
그와의 일문 일답이다.
지난해 매우 바쁘게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2015년은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하고 한해 동안 협업문화의 원년으로 삼고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015년은 협업문화 확산의 해로 정해서 더 활발히 활동할 생각이다. 1월 말에는 직접 쓴 협업관련 도서도 나올 예정이다. 번역서는 있지만 한국인이 협업에 대해 쓴 첫 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셈이다.
협업 전도사로서, 협업을 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를 꼽는다면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서로 협력을 해야 협업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는 ‘동’의 시대였지만 앞으로는 ‘이’의 시대라고 본다.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문화 자체가 달라지는 이 시대에서는 ‘포’자 붙은 두 가지가 있으면 지혜롭게 살 수 있다. 포옹력(抱擁力)과 포용력(包容力).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끌어안아주는 포옹력, 서로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포용력이 필요하겠다. 혹시 엉뚱한 데 가서 포옹하는 건 성희롱이니 조심하고.(웃음)
올해 64세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시고 있다. 100세 시대,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첫째는 건강, 둘째는 적절한 경제력, 셋째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친구, 선배, 후배 상관없이 격의 없이 속마음을 나누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삶의 동반자는 있어야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이유는
매력적인 시니어가 없는 사회는 선진 사회가 아니다. 닮고 싶은 시니어가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일거다. 60이 넘어서부터 진짜 인품이 나타나는 것이고 진면목이 보여지는 시기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멋지게 나이 먹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우 유쾌하시다. 즐겁게 나이 먹는 비결이 있나
보통 청소년기 꿈을 이루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나는 그때 꿈이 소설가였다. 심리학과도 그래서 갔고, 비록 현재 소설가의 길을 가고 있진 않지만 단 한 번도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70세 전까지는 전업작가로 데뷔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어서 늘 소설가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또 한국문단의 대표적 작가인 ‘객주’의 김주영 선생도 꾸준히 만나 뵈면서 꿈을 가꿔나가는 중이다. 물론 연애소설은 이미 틀렸겠지만(웃음), 아마 자전적 소설을 쓰게 되겠지. 워낙 다양한 분야에 몸담아왔던지라 쓸 게 많지만 그냥 사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로 다듬을 생각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꿈, 그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
보물 1호가 있나
내가 가장 많이 가진 물건은 책이다. 하지만 가보 1호는 따로 있다. 내가 5개월 훈련받고 만 4년간 공군장교로 근무했는데, 그때 입었던 정복 한 벌은 지금도 깨끗하게 손질해 보관하고 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소중히 챙겨가지고 다니니 아내도 의아해한 적이 있는데, 나는 공군장교 시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서, 그때 입었던 이 군복이 내 정신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침 지난해에는 내가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는 국방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정복을 입어봤는데 다행히 20대 때 입던 게 잘 맞아서 입은 채 출연할 수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아, 언젠가 KBS에서 방송작가가 연락이 와서 가보를 묻길래, 이 정복 얘기를 했더니 진품명품이라며 당혹스러워하더라, 그런데 이 정복이 나에게는 몇 천만원짜리 도자기보다 더 소중하다.
그러고보니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 위원장, 명강사 등 워낙 다양한 길을 걸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학계, 재계, 관계, 문화예술계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봤다. 안 해본 건 정치인데, 지금도 정치는 안 하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안 해봐도 좋은 게 있는데, 나에겐 그게 정치다.
늘 청춘처럼 왕성하게, 나이를 잊고 도전하시며 살아오신 것 같다
진짜 간단하게도, 아내의 말이 부드럽게 들릴 때, 내가 진짜 어른이 됐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강의하고 책도 쓰고 심리학도 공부했고 그러다보니 젊었을 땐 이론적으로 따지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서로 누구 말이 맞느냐 논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아내 말이 들릴 때가 있더라. 내 말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그 말을 하는 심정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영역에서는 OX나 사지선다형이나 과학적 정답 같은 걸 뛰어넘는데 그 말들이 들릴 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모르던 세계가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책이 있다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나는 그 책을 읽고 다니던 종합무역상사를 그만두고 여행 다니다가 정보전략연구소(?)를 차렸으니까. 남들은 그냥 재밌다하고 말았는데 나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아내가 1주일간 여행을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중년 남성들의 로망인데
내 서재에 책이 한 천 권 이상쯤 있는 것 같다. 종종 정리해서 줄이는데도 그 정도. 평소에는 그중에서 경영, 심리학 관련 책들을 주로 본다. 만약 아내가 여행을 간다면 소설책을 꺼내 쭉 읽게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소설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니까.
자녀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인지 궁금하다
나는 아주 담백한 아버지다. 엄하지도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고 살갑지도 않은, 그냥 수채화나 담담한 가을날 같은 아버지다. 내가 밖에서 너무 교육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심리학, 경영학하고 대학 총장에 방송에 강의도 많이 했으니까. 근데 집에서도 그러기 시작하면 이건 부자관계가 아니라 사제관계가 돼버리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는 절대 스승노릇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좀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가장 평범한 부자관계, 부녀관계를 맺고 싶다. 그리고 유수의 심리학자들도 실수하는 게 있는데, 심리학에서 배운 걸 그대로 자식에게 적용하는 것, 대개 망친다. 우리나라 성공한 사람들도 가정에서는 비슷한 실수로 관계를 망친다. 그냥 아들, 딸이 보고 알아서 느끼면 좋겠다. 나는 철저하게 스승 사절, 존경받는 아빠도 사절이다. 그냥 인간적으로 멋있게 살다 간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살다보면 무수한 선택들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선택은
일단 심리학과에 진학한 것, 심리학을 원해서 지원했고 여전히 좋다. 또 공군장교 된 것과 현재 아내와 결혼한 것. 내 아내는 멋있는 사람이다. 부드럽고 여성적이면서도 매우 정의롭고 바른 길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건 당신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나를 설득해준다.
다양한 길을 걸어오셨다. 마지막으로 성공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세상은 넓다. 한 우물만 파지 마라. 많이 싸돌아다녀라.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면 먹고 산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많이 싸돌아다니고 시야를 넓혀라. 60세 넘어서 제일 안타까운 모습이 맨날 노인정만, 청계산만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가면 춘천도 남해도 동남아도 있다. 나이 들어서 가장 멋있는 건 많이 싸돌아다니는 거다. 아내에게도 그런 거 제한하지 않는 편이라, 다음주에는 친구랑 베트남에 간다고 하더라. 가라고 적극 지원해줬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평등이다. 비록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평등은 제약이 있겠지만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