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은 약 1만 5000명. 하루 11시간 일하고 1만 원을 번다. 폐지를 잔뜩 쌓아둔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있는 노인을 담은 사진 한 장은 ‘노인 빈곤’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인식을 바꾸고 싶은 기업들이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올해 ‘폐지 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보고서를 통해 처음으로 폐지 수집 노인에 관한 데이터를 제시했다. 주목할 부분은 ‘폐지 수집 활동의 사회적 가치’를 추산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이 주로 활동하는 곳은 도시의 단독·연립·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이다. 이 지역에서 이들이 수집하는 폐지는 전체의 28.4%, 재활용의 60.3%를 담당한다. 폐지 수집 기여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보고서는 “폐지 수집 노인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법 중 어떤 방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사회적기업들과 연계해 “단계적으로 다른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연계하고 알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노동 가치 말하는 세 가지 시선
폐지 수집 노인들이 안전하게 일하고 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가 있다. 사회적기업인 러블리페이퍼, 끌림, 아립앤위립이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신유진 끌림 대표,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는 “폐지 수집 노인을 빈곤하다는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노동 가치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유진 대표는 수입보다도 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불쌍하다는 시선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이 빈곤보다 더 큰 문제”라면서 “끌림 리어카를 끌면 광고를 보고 ‘이게 무엇이냐’ 말을 거는 시민이 많다. 어떤 ‘끌리머’는 스스로 광고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부심을 갖게 되어 ‘이제 허리 펴고 일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드리는 수익에서 1만 원을 정기적으로 기부하시는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회와 소통하고 인정받는 것에서 오는 삶의 만족도가 더 크다는 의미다.
심현보 대표는 “본질적인 변화를 원했다. 우리는 이분들과 얼마나 오래 연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정규직으로 함께하게 된 옥자 님의 경우 키보드 사용 방법을 알려드리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이제는 ‘신이어뉴스’ 발행인이 되어 직접 글을 쓰고 댓글도 단다. 옥자 님을 좋아하는 팬도 생겼다. 우리와 함께 일하면 정부에서 나오는 수급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심 대표는 본질을 해결하려면 ‘노인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립앤위립은 앞으로 ‘노인 일자리’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기 대표 역시 새로운 비영리 스타트업을 통해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려 한다.
기우진 대표는 “우리는 폐지 수집 노인을 ‘자원재생 활동가’라고 부른다. 사회적·경제적·환경적 가치가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분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빈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이 가치 있기 때문이다. 폐지 줍는 이유를 ‘빈곤’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배제’당하고 있는 현상을 봐야 한다. 사회적·경제적 배제는 ‘노인’이 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러블리페이퍼에 고용된 세 명의 어르신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보다 “눈 뜨면 갈 곳이 있고, 함께 일하는 친구가 있어 회사 가는 게 설렌다”고 말한다.
‘자원순환법 개정안’과 같은 법과 제도 마련을 통해 사회 안에서 이들의 역할을 명명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 사회 안에서 그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정과 소통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기우진 대표와 이야기를 더 나누어봤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 인터뷰
Q 폐지를 줍는 것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계신데요. 빈곤이라는 것 외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인구 통계학적으로 노인이 많아지면서 빈곤한 노인도 늘어난 것인데, 우리 사회는 이를 대비할 시기를 놓쳤어요. 노인 빈곤의 과도기를 거치고 있다고 할까요? 그렇다보니 전기 노인과 후기 노인을 나누는 기준인 75세를 넘은 노인들이 생계를 위해 소득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요. 빈곤하다고 해서 모두가 폐지를 줍는 것은 아니에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은 사회 구조 때문이지만, 폐지를 줍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Q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니라 ‘자원재생활동가’라고 명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사회에서 이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요.
폐지를 줍는 행위를 ‘빈곤하기 때문이다’라고만 설명할 수 없어요. 저는 ‘배제’라는 단어를 씁니다. 빈곤이라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또한 단조로워집니다. 생필품이나 금전 지원의 형태에 그치고 말아요. 그런데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배제되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거든요. 그렇다면 이 부분을 회복해줄 수 있는 문제 정의가 필요합니다. 이들의 일을 인정해줌으로서 소속감, 자존감,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법과 제도로 이뤄져있습니다. 그래서 ‘자원순환법 개정안’이라는 법으로 이 분들을 ‘자원재생활동가’라고 정의하고 바르게 불러줌으로써 이 분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빈곤의 관점으로 본다면 복지와 연결이 되는데, 사회적 배제의 관점으로 본다면 일자리 창출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중요한 점은 재사회화입니다.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은퇴만 하더라도 내가 해왔던 것들이 쓸모없어진다는 박탈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폐지를 주우면서 우리 동네가 깨끗해지고 환경이 보호된다는 말을 하시거든요. 하지만 이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거죠. 그러니 우리가 이 분들을 지원해야 하는 당위성은 ‘빈곤’해서가 아니라 ‘가치 있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복지의 개념은 상당히 포괄적입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활동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혜적 지원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Q 궁극적으로 시혜적 지원 외에 어떤 점을 보충해야 할까요?
이 분들의 활동을 경제적 가치로 산정하고 사회·환경적 가치로 활용한다면,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을 거고, 복지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루어지게 되겠지만, 재원이 충당되고, 사람이 필요하고,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하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시혜적 복지와는 다른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죠.
중장년이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폐지를 줍는 이유는 가처분 소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주택이 서울에서 흔히 말하는 10억, 20억이 넘는 고가의 아파트가 아니라 1~2억 내외의 다세대 주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동산에 관한 부분도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는 거죠.
Q 결국 노인에 대한 인식도 변화할 필요가 있겠군요.
요즘 액티브시니어라고도 하는데, 이 분들이 65세가 넘었을 때에 이 분들에게는 어떤 복지가 적합할까요? 시니어가 시대에 따라 변하듯, 조금 더 세련된 복지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노인 일자리에 대한 관점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러블리페이퍼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저희가 매번 ‘멋있게 망하는 게 목표입니다’라고 하는데요.(웃음) 명확하게는, 어르신들에 대한 법과 제도가 완비되어 행정적으로 어르신들이 지원 받는 센터 같은 곳이 생기고, 그 지원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저희는 문을 닫고 싶습니다.
저희는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 사회 인식 개선이라는 두 가지 소셜 미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러블리페이퍼를 통해 고용과 노인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스피커 역할을 해왔는데요. 사회적 기업으로서 한계를 조금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영리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비영리스타트업을 통해 어르신들의 네트워킹을 만들고 목소리를 내어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그 외에 자원순환을 활용한 기부도 해보려고 합니다.
‘2023년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이 시행됐다. 앞서 정부가 노인 일자리, 그중에서도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밝혔던 바. 내년도 노인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노인 일자리의 변화와 그로 인해 미칠 영향에 대해 짚어봤다.
공공형 일자리 축소, 개선되나
지난 8월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공급은 82만 2000개다.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었다. 특히 공공형 일자리가 축소돼 노인 빈곤율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샀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은 40.4%로 OECD 국가 중 1위다.
노인 일자리는 세 가지 유형 공공형, 민간형, 사회서비스형으로 나뉜다. 정부는 공공형 노인 일자리 수를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 줄인다고 밝혔다. 대신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를 3만 8000개 늘리기로 했다.
공공형은 정부가 돈을 직접 지원해 직접 일자리라고도 불린다. 환경정비, 교통안전 보조 등 공익형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참여 노인은 월 최대 30시간 일하고 활동비 27만 원을 번다. 단순 노무에 적은 돈을 번다는 이유로 공공형은 ‘질 낮은 일자리’, ‘세금을 축내는 일자리’로 비판받아 왔다.
그러나 공공형 일자리는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가 주 대상이다. 저소득층의 저학력 노인이 많이 참여한다. 이들에게 월 27만 원을 주지 않는다면 생계가 흔들린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공형 일자리를 보충 연금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서비스형은 공공형과 하는 일은 비슷한데 돈은 두 배로 번다. 월 최대 60시간 근무하고 71만 원 정도를 벌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와 차이점은 관련 경력이 있는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는 점이다. 만약 스쿨존 교통정리, 급식 지원 등 학교 관련 일자리면 교육 업무를 한 사람을 우선 선발한다는 뜻이다.
민간형은 민간이 주관하고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형태다. 정부 예산이 기업을 통해 근로 노인에게 지원되며 급여도 많은 편이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 마련된 일자리다. 카페를 포함한 식품 제조·판매, 택배 배달, 세탁소·편의점 운영 등의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서비스형과 민간형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저학력 노인이 참여하기 어렵다. 때문에 공공형 일자리가 축소되면 노인 빈곤율이 심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노인 일자리가 축소된 것이 아니라는 견해다.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고령자 고용장려금 일자리까지 고려하면 2만 9000개가 늘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노인 일자리 예산도 올해 1조 4584억 원에서 720억 원이 늘어난 1조 5304억 원으로 편성됐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대한 개선의 여지 또한 남아 있다. 공공형 일자리 축소에 반발이 거세자 정부는 결국 입장을 바꿨다. 지난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호 부총리는 “현장에서 연로하신 분들이 단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노인 빈곤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기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공공형 노인 일자리 예산이 얼마나 늘어날지 촉각이 모인다. 정부가 줄인 6만 1000개의 일자리가 원상 복구되는 선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간·사회서비스형 확대의 명암
지난 5일부터 2023년 노인 일자리 참여자 모집이 실시됐다. 모집 공고를 보면 공공형 일자리는 확실히 줄어들었고, 정부의 입장과 방향이 보인다. 내년에 노인 일자리는 공공형 54만 7000개, 사회서비스형 8만 5000개, 민간형 19만 개 등 총 82만 2000개다. 고령자 고용장려금 대상 일자리는 올해 9000개에서 6만 1000개로 5만 2000개 늘어난다. 결국 내년 노인 일자리는 민간 연계형을 중심으로 확대 재편되는 것이다.
증가 폭이 두드러지는 고령자 고용장려금은 올해 신설된 사업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노인을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골자다. 과거 3년보다 노인을 많이 고용하거나 퇴직 연령대 고령자에 대한 채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한다. 노인 고용 창출 효과가 있다.
보건복지부 최종균 인구정책실장은 “2023년 노인일자리사업 추진 방향은 직업 경험이 풍부하고 건강한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민간 및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지원하고, 저소득·고연령 어르신들에게는 공익활동형 일자리를 계속 제공하여 생계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돌봄·안전 등을 중심으로 전환하여 공익적 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했다고도 밝혔다.
각 지자체의 노인 일자리 모집 공고를 봐도 민간 및 사회서비스형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를 보면, 총 266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일자리 6만 9900개를 마련했다. 서울시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노년층 진입 양상을 반영해 사회 경험과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2000여 개를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시장형 일자리도 올해보다 1200개 늘어난 6049개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현재 5만 3249개의 일자리가 마련됐다. 서울시는 “향후 정부 예산안과 서울시 예산안 심의 결과에 따라 늘어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다른 지자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올해는 모집 인원이 줄어들었지만 정부의 예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가운데 전북 남원시는 자체 예산을 투입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자체 예산 2억 5000여 만 원을 투입했다. 이에 따라 남원 지역 공공형 노인 일자리는 내년에 248개가 줄 전망이었으나, 올해와 비슷한 연간 3900여 개가 제공된다.
정부의 정책에 대한 노인 단체의 입장은 어떨까. 노동조합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총장은 “공공형 노인 일자리 예산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재 나온 모집 공고를 보면 공공형 노인 일자리가 줄어든 게 확실히 느껴진다. 지금 ‘나 이제 일 못 하는 거 아냐?’라면서 걱정하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은 “정부의 목표는 정부의 재정이 투입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공공형뿐만 아니라 모든 노인 일자리에 정부의 재정이 들어간다”면서 “민간형 사업도 정부의 재정을 당장 중단하면 문을 닫는다. 존속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고현종 사무총장은 공공형 일자리가 늘어나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고 사무총장은 “사회서비스형 한 자리 재정으로 공공형 일자리는 세 자리를 만들 수 있다. 또한 현재도 같은 세대 안에서 불평등이 심한데,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사회 서비스형과 민간형을 늘린다면 빈부 격차만 더 커지게 된다.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라도 공공형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현종 사무총장은 “정부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한 지 20년이 되어 간다. 이제 새롭게 비전을 정리해야 할 때다. 첫 번째, 노인 일자리는 보충연금 형태로 가야 한다. 두 번째, 나이로 구분해서 일자리도 분명히 노선을 정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고 사무총장은 “현재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은 70대가 많은데 정부는 베이비부머를 타겟으로 잡으려고 하니깐 혼재되는 것이다. 노인이 되기 전 50대부터 64세까지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베이비부머를 위한 일자리 등, 나이로 구분 짓는 정리가 필요하다”라면서 노인 일자리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빈곤한 노인에게 장수는 악몽과 같다. 돈이 먼저 죽고 인간이 더 오래 사는 것, 이는 곧 파산이다. 살아 있는 한 돈의 생명력을 꺼뜨리지 않는 게 100세 시대의 과제가 됐다. 빈곤 없는 삶을 위해 염두에 둘 노후 리스크에 대해 알아보자.
도움말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은퇴 후에는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전에 저축해둔 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현역 시절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부족하지 않게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막연히 돈을 모으기보다는 예상액을 계산해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
노후 자금, 얼마나 있어야 빈곤 면할까?
국민연금연구원(2019)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장년들은 부부 기준 매달 적정 노후 생활비로 평균 268만 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 금액으로 부부 노후 생활비를 계산하면, 은퇴 후 20년의 경우 6억 4300만 원, 30년의 경우 9억 6500만 원이다. 여기서 변수가 있다. 은퇴 후 사망 시점까지 계속 같은 금액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은퇴 직후에는 생활비 수준이 비슷하지만, 점차 활동성이 감소하며 지출도 줄어든다. 김은혜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수석연구원은 “60세 은퇴를 가정할 경우 70세까지는 기존 활동성이 유지되는 것으로 가정해 노후 생활비를 100% 적용한다. 70~80세는 70%를, 80세 이후에는 50%를 적용하면 알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계산하면 은퇴 후 30년간 필요한 부부 노후 생활비는 7억 800만 원까지 떨어진다. 앞서 계산한 금액보다 2억 5700만 원이 적게 드는 셈이다.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노후 자금을 헤아려보면 현재 얼마가 부족한지, 얼마나 아껴 써야 할지 등을 점검해볼 수 있다. 만약 평균 노후 생활비 책정이 어렵다면, 은퇴 전 생활비의 70% 정도를 보면 된다.
필요 노후 자금을 다 마련했다고 해서 안심하긴 이르다. 방심했다간 자금 고갈을, 심하게는 파산까지 이르게 하는 위험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융 사기나 창업 실패 등 특별한 사건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예상외로 병원비나 자녀 부양 등 평범한 것들이 복병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 자녀 리스크 - ‘집 사달라’ 자녀에 허리 휘는 부모
통계청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세 이상 인구 314만 명(7.5%)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 청년실업 등으로 2030세대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면서 은퇴 후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부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진행한 설문조사(2021년 50~65세 5115명 대상) 중 ‘자녀 지원에 대한 계획’ 항목에서 ‘결혼까지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는 3명 중 1명꼴로, 전체 중 비율이 가장 높았다. ‘주택 마련까지’(27.6%), ‘취업 전까지’(20.5%), ‘학업 마칠 때까지’(10.7%) 등이 뒤를 이었고, ‘평생 지원하겠다’는 응답자는 3.4%였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2021 결혼비용보고서’를 보면 신혼부부의 총 결혼 비용은 평균 2억 3618만 원에 달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택(1억 9271만 원, 81.6%)이며, 그밖에 예식, 예물·예단, 혼수, 신혼여행 등에 4347만 원이 들었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자녀의 행복을 위해 많은 부모가 결혼 비용 지원을 외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부동산 추세를 고려할 때 부모의 지원 없이 자녀 세대가 주택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우리나라 부모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자녀의 주택을 마련해주고 싶어 한다. 다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지원하다 보면 안정된 은퇴 생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다시 자녀에게 부담을 지우는 상황으로 돌아온다. 자녀 지원금은 반드시 은퇴자산과 분리된 별도 자금으로 관리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 배우자 리스크 - 경제적·정신적 빈곤 부르는 ‘황혼이혼’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동거 기간별 이혼 건수를 보면, 3쌍 중 1쌍 이상(38.7%)이 20년 이상 살아온 중장년 부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황혼이혼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 통계에서도 60대 이상 남녀의 이혼상담 비율이 10년 전과 비교해 여성은 2.8배, 남성은 3.2배 증가했다. 배우자와의 갈등 또는 개인의 욕구 실현 등을 위해 황혼이혼을 결정했더라도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꼭 따져봐야 한다. 이는 단순히 당장 오가는 위자료 문제만이 아니다. 이혼 시 부부가 공유했을 주택이나 노후 생활비 등을 절반으로(또는 그 이하) 나눠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1인 가구가 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간병 문제나 고독사 위험 등까지 고려하면 황혼이혼은 다방면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김은혜 수석연구원은 “황혼이혼을 원하는 쪽은 여성이 많은 편이다. 남편의 경우 갑작스러운 이혼과 더불어 퇴직이라는 환경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경제적 측면에서도 치명적이다. 배우자와 재산을 분할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국민연금도 분할 수령해야 한다. 경제적 이유만으로 반대할 수는 없지만, 노후 자산 배분에 대해 잘 점검해보길 바란다. 가급적 황혼이혼 상황이 오지 않도록 배우자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의료비 리스크 - 65세 이후 진료비 3배 껑충
건강하게 신체 활동이 가능한 나이를 ‘건강수명’이라 한다. 기대수명에서 건강수명을 뺀 시간을 ‘유병 기간’이라 볼 수 있다. 2021년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유병 기간은 11.6년, 남성은 9년이다. 10년가량은 의료비를 충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은퇴 전에는 의료비의 중요성을 인식했더라도 그 정도를 체감하긴 어렵다. 의료비는 대개 70세 이후 본격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기존 수준으로 의료비를 책정해둔다면 예상치 못한 금액에 노후 자금이 흔들릴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통계(2018)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건강보험상 1인당 진료비는 연평균 448만 7000원으로, 전체 평균(152만 6000원)과 비교할 때 약 3배 더 많다. 전체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진다. 통계청 2020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계지출 중 보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대 6.2%에서 80대 17%까지 3배 가까이 올랐다.
건강보험통계(2019)에서 연간 1인당 진료비가 가장 많은 질환은 만성 신장병으로 837만 4104원이다. 그 다음은 악성 신생물(암)로 동일 기준 495만 4804원이 든다. 치매의 경우 연간 관리 비용이 2072만 원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직접 의료비에서 건강보험 평균 보장률 64.2%를 제외해도 1362만 원이다. 이는 2019년 기준 60세 이상 노인 가구주의 연간 소득(4151만 원)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중증 치매일 경우 관리 비용은 3249만 원으로, 최경도 치매 1513만 원 대비 2배 이상 높다. 가족 내 치매 환자가 생긴다면 월평균 소득이 낮은 노부부 가구에겐 경제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 간병비와 보험료 리스크 - 암·치매 오랜 간병이 파산 우려
진료비나 치료비 등 의료비 외에 최근 화두로 떠오른 항목은 ‘간병비’다. 암이나 치매는 오랜 기간 간병이 필요한데, 사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할 경우 매일 10만~15만 원의 간병비를 내야 한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생업을 포기하고 직접 가족 간병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 역으로 고정 수입이 사라지며 노후 자금이 고갈되는 ‘간병파산’을 겪을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간병할 가족이 없다면 간병보험이나 간병인 배상책임보험 등을 알아보는 게 좋다.
퇴직 후에는 급여에서 공제되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료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만 59세까지 내는 국민연금과 달리 건강보험료는 평생 납부한다. 직장에서는 건강보험료를 회사와 반반 나눠 냈지만, 퇴직 후엔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전액 본인 부담이다. 가족 중 직장가입자가 있고 자격 요건을 충족한다면 피부양자로 등재해 면제받는 것이 유리하다. 퇴직 후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건강보험료가 올랐다면 ‘직장가입자 임의 계속가입’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귀농·귀촌 등으로 농어촌에 거주하거나 관련업에 종사하는 경우에도 50% 경감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서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를 모의 계산해보고 이에 따른 전략을 세워보자.
비영리 활동법인(NPO) 홋토플러스(ほっとプラス)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藤田老典). 그가 2015년 발표한 ‘하류노인’(下流老人)은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하류노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현장에서 만난 노인 대부분이 기본적인 생활조차 이뤄내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세상에 보이도록 ‘하류노인’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고령화로 인해 예산 부담이 커지자 고령자에 대한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출판 이후 여론이 형성되었고, 저연금·저소득 고령자, 주민세 비과세 가구(주민세가 면제될 정도로 수입이 없는)인 고령자에게 지급하는 추가 지원금이나 현금 급부 등의 정책이 잇달아 나왔다. 물론 그는 여전히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지적한다.
2025년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유례없이 빠른 속도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걸음마 수준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의 하류노인 문제를 꼬집은 후지타 다카노리와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다.
Q 작가님께 상담 온 많은 이들이 “내가 하류노인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면서요. 우리는 노후 형편을 걱정하면서도 왜 ‘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과거에는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많았고, 지역에서 다양한 교류가 있었습니다. 노인들과 교류할 일이 많다 보니 ‘나 또한 미래에 노인이 될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본은 고립화대책담당 장관을 둘 정도로 개인의 고립화가 심각합니다. 가족이 없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는 ‘고족’(孤族)이 늘고 있습니다.
이전처럼 고령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가까이서 피부로 접할 기회가 줄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괴로움이나 고민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로 여기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Q ‘하류노인’을 통해 고령자의 빈곤을 밝힘과 동시에 정부 비판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하류노인’은 결국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요. ‘빈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생활보장은 권리’라고 지적하셨는데요. 국가는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요?
저는 ‘북유럽 모델’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정부’로 순차적으로 변경해가면서, 세금을 인상하고 급부를 충실하게 제공하는 모델입니다. 일본은 미국, 영국 등을 모델로 삼았는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유럽은 나라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금이 높은 대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론의 반대가 있겠지만, 세율 인상도 검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세 시대가 되었습니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고 고령 인구는 늘어 사회보장비가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기에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가족 부양의 힘이 약해졌습니다. 또 하나, 일본에서는 ‘빙하기 세대’(1970~1984년생)라고 불리는 세대가 있습니다. 버블경제 붕괴 후 취업난을 겪은 이들인데요. 이 자녀들을 부양하는 것은 가족인 부모 세대의 몫이 되어 경제적 여유가 없는 고령자가 많아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 사회입니다. 사회적 약자는 본인 책임이라는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인권 옹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근대 선진국의 도달점입니다만, 그 가치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가치 규범이 변해야 할 것입니다.
Q 연금 수령 시기는 늦춰지고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령자에게 일자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진국에서 ‘일하는 고령자’가 있다는 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하셨는데요. 한국도 일본처럼 65세가 넘어서도 일하고 싶어 하는 고령자가 많고, 가장 큰 이유는 생계를 위해서입니다. 고령자의 일자리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로 임금을 받는 노동 형태인 임노동(賃勞動), 특히 노인의 임노동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사회보장, 연금, 주택, 간호 제도 등이 정비된 북유럽 국가에서는 고령자에게 임노동이 강요되지 않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재미와 삶의 보람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생계를 위해 일합니다. 고령자는 연금을 받기 때문에 저렴한 임금이어도 일하고 싶어 합니다. 임금 인상을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이죠. 그런 의미에서 ‘노인의 임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이들이 사회공헌적인 일에 종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간호, 보육, 청소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업무는 저임금에 항상 노동자가 부족합니다. 거동이 어려워 생필품을 사거나 장보기 어려운 고령 인구를 뜻하는 ‘쇼핑 난민’도 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에서는 관리 인구가 없어 곰이나 멧돼지 수해가 심각해지고, 산림·논밭이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성 높은 일에 고령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 설정도 필요할 것입니다.
Q 노인 일자리는 한국에서 사회적 고립을 막는 중요한 역할로도 작용하고 있는데요. 작가님도 책을 통해 ‘행복한 하류노인과 불행한 하류노인의 차이는 인간관계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지역 네트워크를 강조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야 할까요?
지방에서는 고령자조합, 협동조합이 차례로 설립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노동입니다. 정부는 2022년 10월에 협동노동법을 새롭게 시행했습니다. 예를 들면 농림·수산 자원의 관리나 보호, 수도설비의 보수 및 점검, 커뮤니티 버스 운행, 휴경지나 빈집 관리, 아이 식당(무료 혹은 저렴한 금액으로 부모와 아이가 이용할 수 있는 식당), 푸드뱅크(잉여 식품의 무료 배포), 지역 청소 활동, 자원봉사 활동 등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공성이 높은 일을 고령자가 맡아준다면 사회에 도움이 되고, 고령자도 의지할 곳이 생길 것입니다.
Q 하류노인에게 주거는 무척 큰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공공주택이나 임대주택, 주택보조비 등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일본도 한국도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요. 인구 감소 시대에 주택 사유재산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이 가치관을 바꾸어가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공영주택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저렴한 주택, 임대보조제도가 많이 있습니다. 일부 부자들은 주택을 구입합니다만, 대부분은 주택에 대해 모두가 관리하는 공공재라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관리하는 공유 재산인 셈이죠.
고령자는 간호가 필요하면 원래 살았던 집의 단차나 설비를 고쳐야 합니다. 오랜 세월 같은 집에 계속 사는 것이 아니라, 연령·신체 기능에 맞는 집에 부담 없이 이사할 수 있도록 해나가고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계속 증가하는 빈집을 지자체가 인수해 필요한 세대에 배포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빈집은 늘어날 것이므로 새로운 집을 짓기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합니다.
Q 좋은 제도가 있더라도 본인이 신청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때문에 제도 활용도가 낮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일본연금자조합의 고령자와 최저보장연금제도의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인에게만 지급하는 기본 수입 같은 것입니다. 65세가 되면 월 8만 엔(도시부에서의 생활보호 생활부조금액)을 무조건 지급하는 것이죠. 그러면 신청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지급되기에 생활 보조금을 받는 것이 부끄럽다는 인식도 없어질 것입니다. 물론 재원 논의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일본은 마이넘버카드(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증과 일원화해 소득·건강 상태를 통합해 AI로 관리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면 저소득층에게는 현금 급부 등이 쉬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은행 계좌에 신청하지 않아도 세금 환급금, 급부금이 지급되니까요. 더 나아가 병원의 진료 비용, 간호 비용 등이 무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도로를 걸을 때 이용료를 내지 않지만, 이는 세금으로 만든 것입니다. 세금을 지불했다면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할 때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청주의를 없애기 위한 구조 도입은 중요한 논의 사항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노년기의 ‘빈곤’을 고민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해진다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타인을 자신의 가족처럼 조금이라도 돕는 사회, 시스템, 정책 등을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빈곤해지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초고령사회가 절망이 아니라 희망으로 바뀌기를 바라며 이웃으로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노인의 삶을 수치화한 통계자료가 발표될 때면 우리나라 노인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된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돈이 없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여생을 보내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노인이 서러운 삶을 산다고 결론짓기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젊은 세대는 내 집 마련을 꿈도 못 꾼다는데 노인은 자가에서 거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인은 과연 빈곤한가, 부유한가?
‘부동산 불패 신화’의 주역, 60세 이상 노인은 여전히 노후 대비용 자산으로 부동산을 가장 선호한다. ‘2021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자산 중 80.9%가 부동산이었으며, 저축은 13.8%에 불과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서도 낮은 비율을 보였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고령 가구가 보유한 주택에서 거주하는 비율(자가점유율)은 75.4%로, 다른 가구 형태에 비해 유독 높다.
부동산 가진 노인은 부유하다?
그러나 ‘노인은 부동산을 가졌으니 부유하다’는 판단은 섣부르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 부동산에 묶여 있고,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다고 인식해 실제로 노인들 역시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65~74세 노인 1000명을 재산 규모별로 ‘1500만 원 미만’부터 ‘10억 원 이상’까지 6개 집단으로 나눠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노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은 5억~10억 원 미만 집단으로 갈수록 줄어들다가 10억 원 이상 집단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정도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윤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돈을 더 벌고 재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불안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라며 “재산 중에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비상시 쓸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곧 노인이 될 4050세대까지 시야를 확장시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2020 KIDI 은퇴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4050세대의 실물자산 90%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 이들의 노후 자금 유동성에 제약이 생겨 노인 빈곤을 더욱 심화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불붙은 노인 빈곤 문제에 부채질하지 않기 위해서는, 4050세대가 나이 들기 전 공적연금과 더불어 부동산 같은 자산을 유동화(현금화)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함을 시사한다.
간혹 집을 팔고 집값이 비교적 싼 지방으로 이사하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3.8%가 건강할 때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원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5%가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 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을 정도. 집이 노인에게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거주하던 집을 팔아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나라 노인이 가장 빈곤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하 빈곤율)은 40.4%다. 빈곤율은 소득이 빈곤선 이하인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2020년 기준 66세 이상 인구의 균등화 중위소득(처분가능소득 기준)은 1809만 원이다. 이보다 소득이 적은 노인이 열 명 중 네 명이라는 뜻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에 달하는 기록이다.
높은 빈곤율의 원인으로는 △부동산 자산을 고려하지 않은 빈곤율 산출 방식 △공적연금의 미성숙 등에 따른 불충분한 노후 준비 △가구 분화(자녀 분가, 황혼 이혼 등) 등이 있다.
소득만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노인 빈곤율 계산법은 줄곧 문제로 지적돼왔다. 노인 빈곤율을 지나치게 높아 보이도록 왜곡해, 실제로는 빈곤하지 않은 고령층을 빈곤층에 포함시키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강성호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센터장은 “경우에 따라 집이나 자동차 등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뒤 실제 월소득과 합산해 계산하는 소득인정액 등을 현금화한다면 더 정확하게 빈곤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성숙한 공적연금 역시 노인 빈곤율을 높이는 주범 취급을 받는다. 공적연금이 일찍이 도입돼 운영된 선진국의 경우 연금 가입자 수가 많고, 가입 시기가 길다. 그만큼 연금에 기여하는 금액이 커서 추후 수령하는 연금소득이 충분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지 23년밖에 지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미성숙할 수밖에 없다. 강 센터장은 “만족할 만큼의 연금소득을 수령하려면 가입 기간이 30~40년은 돼야 한다”라며 “우리나라는 공적연금 도입이 늦어 선진국에 비해 가입 기간이 짧고, 사각지대 문제 등으로 충분한 가입이 이뤄지지 않아 연금소득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녀 분가나 황혼 이혼 등 사회적 인식, 문화의 변화로 인한 가구 분화도 빈곤율에 영향을 미친다. 보험연구원 ‘가구 분화에 따른 노인 빈곤과 시사점’ 연구에 따르면 노인과 자녀 세대로 구성된 가구의 월 소득은 407만 원이나, 자녀 세대가 분가하고 나면 월 87만 원까지 떨어진다. 황혼 이혼의 경우 노인 빈곤에 직면할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
게다가 그나마 모아둔 노후 자금으로는 자녀의 교육비나 결혼비 등을 충당한다. 조기 퇴직 후 받는 퇴직급여나 공적연금으로는 버거운 수준이다. 이른 시기에 분가가 이뤄지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중장년들이 노후 준비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가구 분화는 70세 이후 고령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나이가 들면 빈곤의 늪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져만 간다.
주택연금·주거복지, 빈곤 해결 열쇠 되나
노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선 개인연금에 세제 혜택을 주거나, 양질의 노인 일자리 확보 등 사회적 측면에서 노후 소득 원천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높은 주택 보유율과 선호 탓에, 부동산이 노후 빈곤의 단기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 제기됐다.
지난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노후 소득 형성을 위한 조세지원정책’ 보고서는 주택연금을 노후 빈곤의 해법으로 제시한다. 주택연금은 개인연금에 비해 연금 수령까지의 시간이 훨씬 짧으며, 개인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빈곤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공시가격 3억 원 주택을 소유한 60세 주택연금 가입자가 평생 수급할 월 연금액은 63만 6940원, 연간 764만 원이다. 연간 300만 원씩 20년을 기여한 뒤 10년간 수령할 연간 개인연금 소득 744만 원과 큰 차이가 없다.
현재 역모기지 제도(주택연금·농지연금)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두 연금제도 가입자를 합쳐도 65세 이상 대상자 중 2~3%만이 가입한 상황. 전병목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 국민연금 제도 미비 등을 이유로 연금 가입을 하지 않은 노인, 소득은 낮지만 자가를 보유한 노인 같은 ‘빈곤의 차상위층’을 대상으로 주택연금 가입을 지원하면 현재의 노인 빈곤 상황을 비교적 빠르게 비용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택연금은 어디까지나 주택을 보유한 이들만 활용 가능한 제도다. 주택을 보유하지 못한 노인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절대적 빈곤층의 문제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주보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주거복지가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 방식인 월세를 지원하는 것 외에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임대주택, 고령자복지주택, 복지·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원주택을 예로 들 수 있다. 주 부연구위원은 “이미 알려진 미국과 일본의 ‘노인 그룹홈’처럼 노인이 살던 지역을 최대한 벗어나지 않고,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할 수 있게 하면서 노인이 지역사회와 최대한 분리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주거 시설로 이주하는 것을 노인이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부담이 크다.
현 노인 주거복지 정책 역시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보다 보편화된 미국에서는 저소득 노인을 위해 ‘서비스 연계 주택’이라는 대안적 주거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공통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입주 노인의 독립성·자율성이 보장되도록 1인 1실을 지원하며, 서비스 코디네이터를 통해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를 연계한다. 주택 자체적으로도 공동 식사 및 건강 증진, 사회적 교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노인에게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마음 빈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자명해 보인다.
“나 27만 원 없으면 안 돼. 먹고살기 힘들어.” 정부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축소한다고 하자 노인들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27만 원 짜리 질 낮은 일자리’라고 손가락질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와 직결되는 일자리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축소와 노인 빈곤의 상관관계를 알아봤다.
지난 8월 정부가 공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노인 일자리 수는 82만 2000개다. 올해 84만 5000개보다 2만 3000개 줄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 수는 올해 60만 8000개에서 내년 54만 7000개로 6만 1000개 줄어든다. 대신 정부는 민간·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를 3만 8000개 늘리기로 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2020년 기준)은 40.4%로 OECD 국가 중 1위다. 노인 빈곤율 개선 효과가 적었던 공공형 일자리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해 노인이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년간 재정지원 직접 일자리 규모가 두 배 급증했다. 노인 일자리가 쓰레기 줍기, 잡초 뽑기 등 단순 노무의 공공형을 중심으로 증가하면서 일부 고학력 은퇴 노인들이 원하는 일자리 수요에 부적합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예산안에 노인 단체들은 반발했다.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노인 빈곤 심화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는 결국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저소득층 어르신은 민간 취업이 힘들기 때문에 소득 감소가 우려된다. 공공형 일자리는 올해 규모만큼은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추경호 부총리는 “현장에서 연로하신 분들이 단순 일자리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면서 달라진 입장을 밝혔다.
공공형 vs 민간형·사회서비스형
정부는 고령화 사회의 대안으로 2004년부터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사업이다. 노인 일자리 유형은 세 가지로 나뉜다. 공공형, 민간형, 사회서비스형 사업이 있다.
참여 노인은 유형에 따라 나이와 학력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1 노인 일자리 사업 정책 효과 분석 연구’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공공형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노인의 평균 연령은 76.6세였다. 민간형은 71.8세, 사회서비스형은 71.6세로 비교적 젊었다.
학력을 보면 공공형 참여자는 초졸이 46.9%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무학은 19.6%로 뒤를 이었고, 대졸은 2%에 그쳤다. 시장형과 사회서비스형도 초졸이 각각 34.6%, 37%로 많았지만 공공형보다는 10%포인트 이상 적었다. 고졸은 각각 25.5%, 22.2%였고, 대졸은 각각 6.8%, 6.7%였다.
가구 소득에도 차이가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공형 참여자의 기초연금 소득인정액은 평균 41만 7299원이었다. 민간형은 64만 5791원, 사회서비스형은 57만 7214원으로 나타났다.
종합해보면 공공형 참여자는 나이가 많고 학력이 낮은 저소득층 노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민간형과 사회서비스형 참여자는 정부가 대상자로 원하는 고학력의 은퇴 노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다만 공공형 참여자에 비해 나이가 적고 고학력에 소득·자산의 여유가 있는 노인이다.
노동조합 노년유니온의 고현종 사무총장은 정부의 노인 일자리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공공형 일자리는 줄이고 민간형과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은 저소득층 노인을 더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고현종 사무총장은 “노인 일자리가 2004년 처음 도입됐을 때만 해도 참여자들의 평균 연령이 65세 정도였다. 20년이 지나면서 평균 연령이 10년 이상 높아졌다. 그분들한테 시장에 나가 민간 업체와 경쟁하고 이겨서 소득을 얻으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고 사무총장은 “사회서비스형은 민간 일자리가 아니다. 공공형 노인 일자리와 성격이 똑같은데 돈은 두 배로 번다. 다만 일자리와 관련된 경력이 있거나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학습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서비스형을 할 수 있는 노인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잘 살았고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다”면서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은 저소득층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노인 세대 안에서 빈부 격차 또한 커진다”고 덧붙였다.
공공형 일자리, 보충 연금으로 봐야
사회·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줄이려는 이유는 ‘세금을 축내는 질 낮은 일자리’로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복지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도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노인이 자기만족과 성취감 향상 및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해 참여하는 봉사활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 사무총장은 “현재 국민연금을 못 받는 노인이 50%가 넘는다. 저소득층 노인들은 기초연금 하나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 매달 기초연금으로 30만 원을 받고 노인 일자리에 참여하면 27만 원을 번다. 57만 원 정도의 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것이다”라면서 “노인 일자리를 소득 보충, 노동의 대가로 봐서는 안 된다. 저소득층 노인들의 보충 연금 성격으로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빈곤이 오고 있다’의 저자 신명호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도 비슷한 의견을 전했다. 신명호 소장은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노후의 소득 보장 제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연금의 사각지대가 넓고 소득 대체율도 낮기 때문인데,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게 노인 일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 소장은 “예전부터 공공형 일자리는 예산 낭비고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사실은 사회안전망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저소득층에 생계 지원 급여를 줘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줄 수는 없으니까 일을 하게 하는 형식을 취해서 돈을 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신명호 소장과 고현종 사무총장은 노인 빈곤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인 일자리, 그중에서도 공공형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사무총장은 “현재 노인 일자리는 사업별로 신청자를 받는다. 그러다 보면 일부 사업에 사람들이 몰려 진짜 일자리가 필요한 저소득층 노인들이 일을 못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서 “통합적으로 참여자를 모집해서 저소득층 노인을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28일 국회의사당에서 ‘액티브 시니어의 불확실한 재취업 환경과 혁신 방안’이라는 주제로 '2022 시니어산업혁신 국회세미나'가 열렸다.
이번 세미나는 김영호, 김주영, 노용호, 한무경 국회의원이 주관하고 세종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시니어산업학과와 (사)시니어벤처협회가 주최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국회의원과 국민의힘 한무경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2026년 초고령사회 진입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니어를 복지의 대상이아니라 경제활동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언급하며 세미나를 계기로 시니어 창업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바란다고 전했다.
사단법인 시니어벤처협회 신향숙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40~65세의 액티브시니어를 위한 지원 정책이 절실한 시점에 국회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열린 것에 감사한다며,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중장년들이 삶의 설계와 재취업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대학교 시니어산업학과 이용기교수는 액티브시니어가 창업이나 재취업의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면 결국 상대적 빈곤의 처지에 빠질 수 밖에 없으므로 시니어산업의 학문적, 실무적 시사점을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패널로 나선 고수플러스의 박영은 대표는 "많은 시니어들이 창업을 망설이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는데, 그것은 바로 실패와 격무에 대한 두려움"이라며 "실제 많은 시니어들이 퇴직금을 털어 치킨집, 편의점, 커피전문점 등의 창업에 나서지만 예상보다 노동 강도가 세고 경쟁이 심해 사업 실패 경험뿐 아니라 건강까지 잃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시원 사업자 중 시니어 비중이 50% 이상에 달하고 있으며 대부분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면서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며 시니어가 하기 좋은 실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 청소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독일 어린이의 약 40%는 평균 4명 이상의 조부모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 이는 생물학적 조부모와 사회적 조부모를 모두 포함한 숫자다. 한국의 경우 ‘할머니가 아이를 돌본다’고 하면 혈연관계를 떠올린다. 당연시하는 이 관계가 현재 황혼육아의 부담을 더하고 있다. 육아 돌봄 공백 시 가족 내, 특히 조부모에게 도움을 청하는 구조가 만연해진 것이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70년 유소년(0~14세) 인구는 7.5%, 고령인구(65세 이상)은 46.4%에 이른다.
아이가 1명일 때, 노인은 6명이 넘는 상황. 생물학적 조부모 최대 4명을 제외하고도 2명의 노인이 사회적 조부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론적으로 적은 수의 아이를 많은 수의 노인이 돌본다면, 특정인에게 가중되던 황혼육아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현실화하기엔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지난달 본지는 독일과 영국 현지 조부모의 손주 돌봄 실태와 지원책을 보도했다. 한국과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황혼육아의 자율성’이었다. 의무가 아닌 선택에 의한 조부모 육아가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또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한국 황혼육아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외 정책 접목? 한국에서는 ‘그림의 떡’
먼저 독일의 ‘조부모 육아휴직’을 살펴보자. 대상자 조건은 부모가 미성년자거나 직업훈련 중인 경우, 동시에 조부모가 손주와 한집에 살면서 유급 노동을 하는 상황이다. 육아휴직 제도 내의 세부 항목으로, 독일 내에서도 기준이 까다롭고 현실적인 수요가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사회 분위기나 직장 문화로 인해 육아휴직을 온전히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 사례에 착안해, 일부 부모에게 유명무실한 육아휴직을 차라리 조부모가 이용하면 어떨까?
이윤진 육아정책연구소(국무총리 산하) 기획조정본부장은 “부모에겐 유리하지만 조부모에겐 불리해 보인다”며 “대체로 황혼육아 당사자는 할머니다. 현실적으로 60대 전후 정규직 여성이 드물다. 곧 은퇴할 이에게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해주는 회사가 얼마나 될까? 부모(자녀) 입장에서는 정상 근무하며 급여도 모두 받고 자녀 돌봄도 해결할 수 있으니 확실히 혜택이다. 한편으로 육아휴직에 대해 선택권을 주는 차원에서는 괜찮다. 다만 여기서 조부모가 취할 이득이 없다. 자신의 급여도 줄고, 직장에서 눈치도 봐야 하고, 힘든 육아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백선희 한국가족사회복지학회 회장(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조부모의 육아휴직이 가능해진다면 자칫 황혼육아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며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제도는 (기간이나 수당 등) 형식적으로는 잘 되어 있을지 몰라도 남성의 참여율이 저조하고, 일하는 여성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조부모 육아휴직이라는 선택권이 생긴다면 남성의 육아참여가 증가하지 못하고 여성(엄마)의 육아 부담이 다른 여성(할머니)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황혼육아 기간을 연금 혜택으로 주는 영국의 정책에 대해 이 본부장은 긍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손주 육아가 복병이 되지 않으려면 육아 정책과 노인 복지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연금 혜택 등 탄탄한 복지로 경제적 기반이 안정된 노인이라면 황혼육아를 보람과 기쁨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빈곤하고 불안한 상황이라면 현실적으로 손주 돌보는 일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영국 노인의 황혼육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복지 수준에 기인했다고 본다.”
수당은 임시방편, 공보육 신뢰가 근본
영국과 독일의 경우 연금이나 세금 혜택 등으로 조부모 육아를 지원하지만, 직접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정책은 없다. 한국 역시 서울시(2023년 예정)와 서초구, 광주광역시 등 일부 시·구 단위에서만 조부모 수당 지급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조부모 육아의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수당 정책 마련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백 회장은 “조부모 수당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조부모를 위한 혜택으로 보이지만, 자칫 ‘수당도 주는데 할머니가 손주를 봐야지’라는 식으로 황혼육아에 당위와 책임을 부여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조부모 수당이 도입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본부장 또한 “수당 지급은 가장 일차원적이고 손쉬운 해결 방법”이라며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아직 조부모 수당에 대해 완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내년부터 시행하는 서울시의 조부모 돌봄 수당 정책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조부모의 육아 참여를 사회가 인정하고, 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의미에서는 일시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조부모에게 육아가 전담되는 기재로 변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두 전문가는 황혼육아는 ‘책임’이 아닌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기적으로 강도 높은 육아보다는 일시적이고 부담 없는 육아가 바람직하다고. 자발적이면서 즐거운 손주 돌봄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레 조부모 관련 정책은 필요성을 잃게 될 것이다. 개인이 선택적으로 어려움 없이 하는 일에 정부가 보상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이런 구조를 만들려면 조부모의 육아 시간은 단축하고, 공보육 돌봄 시간이 늘어야 한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공보육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백 회장은 “보육시설이 양적으로 증가했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미흡하다. 아동학대 문제 등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고 부모들은 ‘믿고 맡길 어린이집’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결국 자녀가 어릴수록 믿을 수 있는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 신뢰할 만한 우수한 보육시설이 주변에 있다면, 조부모에게 육아를 부탁하는 경우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이들을 위한 노인의 사회적 일자리 참여
영국의 경우 돌봄 공백이 발생했을 때 내니(유모) 또는 베이비시터를 통해 해결하는 양육자가 많았다. 독일에는 ‘랜드 그랜드’ 등 대안 조부모 찾기 플랫폼도 나타나는 추세다. 이 본부장은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사회 구성원에게 아이를 믿고 맡긴다는 점이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다. 보육기관과 더불어 지역민 간에 신뢰가 형성돼야 결국 사회적 돌봄이 가능하다”며 “누구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육아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고 힘들다. 사회 구성원의 여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육아 문화는 크게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의 육아 문화는 여성의 육아 참여도가 높은 현실을 말한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의무를 덜기 위해 할머니가 해결사로 나서는, 가족 내 또 다른 여성에게 육아가 전가되는 부분이 문제로 지적된다. 두 전문가는 가족 내 돌봄 해결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한다. 즉 지역사회 또한 육아를 함께 책임져야 바람직하다는 것. 독일에서는 지역마다 마더센터를 두고 3대를 위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 돌봄 문제와 독거노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며 사회적 돌봄의 좋은 예로 떠오른다. 백 회장은 이러한 독일 사례에 착안해 육아를 접목한 노년기 사회적 일자리 참여와 자원봉사 활동을 제안했다.
“기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구연동화를 한다거나, 전통놀이를 가르치는 등 지역사회 돌봄에 일조하면서 보람을 찾는 활동이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고학력자에 재능 있는 시니어도 많다.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살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만한 활동을 개발해보면 좋겠다. 이미 영유아 돌봄과 관련된 노년기 사회적 일자리들도 개발돼 시행하고 있다. 이제는 가족이 돌봄의 책임을 모두 지는 형태가 아닌, 지역사회가 함께 돌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조부모 육아참여가 아닌 ‘사회적 돌봄’을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 언론진흥재단 지원 특별기획 4부작 |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
본지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출산 고령화 시대 황혼육아 문제 해법 제시를 위한 특별 기획 '요람에 흔들리는 노후'를 4개월에 걸쳐 연재로 발행합니다. 제1부 '서베이로 본 황혼육아 현주소', 제2부 'K-황혼육아 정책 어디까지 왔나?', 제3부 '독일ㆍ영국 황혼육아 선진 사례', 제4부 '금빛 황혼육아로 가는 길' 순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해당 기사는 오프라인 매거진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온라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 홈페이지를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안정적인 노년기를 위해 퇴직연금 연금수령을 확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오병국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주요국의 퇴직연금 연금 수령 유인 관련 세제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보고서를 냈다. 오 연구위원은 주요국의 퇴직연금 연금 수령 유인 세제를 참고해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 유인 강화를 위한 세제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그러나 노인빈곤율은 43.4%(2018년 기준)에 달한다. OECD 평균인 14.3%의 3배 수준이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으로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실질 소득대체율이 현저히 낮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OECD에서 제안하는 적정 소득대체율(70%)보다 크게 떨어지는 21.3%(2020년 기준)를 기록했다.
오병국 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연금화 필요성을 제언했다. 오 연구위원은 안정적인 노후소득 확보를 위한 퇴직연금 역할 강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으나, ‘연금화’하기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오병국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퇴직연금 세제는 근로자 본인 부담분 및 운용수익, 사용자부담분으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 자산 축적분이 적어 연금 수령에 대한 세제 지원 효과도 적다. 연금 수령 유인이 미흡해 일시금 수령이 여전히 선호되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현재 연금수령 시 퇴직소득세 감면, 저율 분리과세 등의 혜택이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보험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퇴직소금공제율은 50.3%다. 실효과세율은 일시수령 시 4.4%며 연금수령 시 이보다 더 적은 1.2%로 추정된다. 그 결과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계좌 39만 7270개 중 4.3%(1만6984개)만이 연금 방식으로 수령됐다.
현재 주요국들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을 유도하기 위해 중도인출 세제 벌칙 부과, 연금 수급 방식별 세제 차등화를 시도하고 있다. 미국·영국·호주·덴마크 등은 미리 정해진 연금 수급 가능 연령 이전에 중도 인출할 경우 가산세·고율과세·한계세율 과세를 시행하고 있다. 덴마크·호주·스위스는 일시금 수급에 대해 직접적인 세제 불이익을 부여하거나, 연금 수급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세부담을 부여한다.
오병국 연구위원은 “주요국은 퇴직연금의 연금 수령을 유도하기 위해 중도인출 세제 벌칙 부과, 연금 수급 방식별 세제 차등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퇴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 강화를 위해 해외사례를 참조해 연금수령 유도를 위한 세제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위원은 세제 개선 방안으로 △10년 초과 연금 수령 선택 시 퇴직급여 사용자 부담금 감면 확대 △연금소득 저율 분리과세 한도 확대 △중·저소득층 연금 수령 시 보조금 지원 △퇴직연금 중도인출 세율 상향 등을 제언했다.
키오스크의 시대다. 은행의 ATM 기계, 공공기관의 무인 발급기, 영화관의 무인 발권기, 주차장 사전정산 키오스크, 쇼핑몰 내 공간 안내 키오스크 등 코로나19는 일상 곳곳에 사람 대신 기계를 놓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디지털 정보를 얻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생긴다는 점이다. 유니버설 키오스크가 등장한 배경이다.
2021년 통계청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4대 정보 취약계층(장애인·저소득층·농어민·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국민(100% 기준)의 75.4%였다. 고령층은 69.1%로 대부분을 차지하며, 일반국민과의 디지털 격차가 30%나 벌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율을 보이고 있다. 205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위에 달할 전망이다. 디지털 격차로 인해 소외되는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전선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디지털 시대의 노년층 : 포용 혹은 소외’ 보고서에서 “경제적 빈곤과 디지털 활용 능력 부족 등으로 변화에서 소외된 노년층을 포함한 취약계층은 온라인 기반의 각종 서비스와 비대면 서비스에서도 제외되어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있다”면서 “나이와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ICT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노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요구와 능력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ICT 유니버설 앞당긴 비대면 시대
빠른 고령화와 비대면 시대로 인한 디지털 가속화는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을 앞당겼다. 최근 강남구청, 강남구보건소, 동대문구청, 금천구청 등 행정기관과 국립고궁박물관, 한국문화재단 등 문화시설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되고 있다. 비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고령자, 아이, 휠체어 이용자, 외국인 등 말 그대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키오스크다.
이 제품은 점자를 이용한 ‘닷 워치’와 ‘닷 패드’로 시각장애인들에게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소셜 벤처 ‘닷’(dot)이 개발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인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주문용 키오스크, 길 안내용 키오스크, 박물관용 촉각 전시 키오스크 등으로 나뉜다. 고미숙 닷 커뮤니티 매니저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정보 격차에 따른 디지털 소외계층이 더 많다는 걸 느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가 다가오면서 유니버설 키오스크는 빛을 발했다. 닷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에는 디지털 점자·촉각 패드가 있다. 음성 안내 버튼을 누르면 시각장애인도 스마트 키패드와 패드를 활용해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안내 서비스가 있으며, 외국인도 사용할 수 있도록 외국어를 지원한다.
키오스크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많이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한눈에 잘 보이는 UI를 설계했고, 고령자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울 수 있는 돋보기 기능이 있다. 또한 휠체어를 탄 사람, 허리가 굽은 노인, 키가 작은 아이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동 높이 조절 기능이 있다. 아래에서 위로 화면을 올려다보았을 때 빛 반사로 화면이 잘 안 보이는 경우를 고려해 각도까지 반영했다.
이용자가 가고자 하는 위치까지 가는 길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화면과 함께 음성 내비게이션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부산교통공사의 의뢰를 받아 50개가 넘는 부산 역사 내에 설치할 키오스크를 설계하고 있다.
고령화 시대 꼭 필요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들은 이 디자인을 통해 편리함을 가장 크게 느끼는 이들은 고령자라고 입을 모은다. 인구의 30%가 고령자인 세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은 다가올 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미숙 매니저는 “키오스크 이용법을 몰라 헤매다가 뒤에 줄 선 사람들을 보고 눈치가 보여 물러나는 디지털 약자가 많다”면서 “고령자를 위해서는 음성 안내 기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음성 안내 버튼을 눌렀을 때 ‘오른쪽 위 OO 버튼을 누르세요’ 등 음성으로 이용법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음성 안내 기능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더 친절한 키오스크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기능이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고 매니저는 “요즘에는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해도 이어폰을 꽂고 있거나 종교 권유 활동이라고 생각해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면서 “테이블에 앉아 태블릿으로 주문하는 식당도 늘어나고 있는데, ‘두 번 눌러주세요’, ‘메뉴 카테고리를 골라주세요’ 등의 안내 음성이 나오거나 누를 수 있는 키보드가 달린 터치패드 같은 형태라면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