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그냥 한마디 던진 말이 사람을 망치는 수도 있음이니 말조심을 하라. 설혹 수입이 발생한다고 하나 지출할 곳이 많으니 마음만 바쁘고 이루어짐이 적을 괘다.사태를 잘 파악하여 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84년생 : 이상한 물건이 사람을 유혹하나 이겨내면 재수로 통한다.
•72년생 : 새로운 기운이 용솟음치니 힘나는 대로 움직여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
•60년생 : 말조심하고 투쟁을 삼가면 금전 운은 좋아지니 투자를 해봄이 좋다.
•48년생 : 덕담을 보내주면 아래로부터 큰 도움이 있어 일을 해결하리라.
◈ 소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팔자소관이나 일을 풀어나가는 것은 노력이라. 이는 평소에 실력을 갈고 딱은 이에게는 천운이 닿은 것이지만 노력하지 않은 이에게는 길함을 보기 힘들다.
•85년생 :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니 재수를 멀리하는 일이 된다.
•73년생 : 힘 써보지도 않고 그만두는 것은 또 다른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61년생 : 양반 체면이 일을 방해하니 체면은 뒤로하고 능동적 동력이 필요하다.
•49년생 : 아직은 한몫 할 때이니 생각을 큰그릇에 담아보면 재수는 자연히 온다.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했으니 좋은머리는 쓸수록 발전하는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귀인의 도움도 받게 되고 실리도 많이 얻을 것이니 가히, 길한 운이 도래함을 의미한다.
•86년생 : 용돈이 많이 생기니 기분이 상승하고 친구와도 이야기가 잘된다.
•74년생 : 힘은 많이 생기고 금전 운도 좋으나 구설 시비를 삼가야 한다.
•62년생 : 몸 다치는 것만 조심하면 운세는 좋아 평온한 하루를 보내리라.
•50년생 : 운이 좋아 모든 것이 여의 하나 이성문제가 사람을 잡는구나.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반대를 위한 반대는 재수를 막는 길이 되니 수긍하는 마음을 가져라.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적이 파놓은 함정을 알지 못해 일신이 곤고해 질 우려가 있으니 은인자중함이 길한 일진이다.
•87년생 : 친구의 의견에 따르면 안 되든 일도 잘 되고 좋은 만남이 성사된다.
•75년생 : 어려움은 친구 덕분에 해결되나 연인과 언쟁하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63년생 : 금전 투자도 좋고 문서 문제도 풀리나 과한 욕심은 재수를 쫓는다.
•51년생 : 옛 벗을 찾아보면 좋은 일이 생기고 어려운 일을 해결하리라.
◈ 용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아무 연락 없음이 손재를 없애는 길이 된다. 늦가을 단풍구르듯 하나 재충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경거망동할 시에는 그 화가 크니 면하기 어렵게 된다.
•76년생 : 건강에 무리하는 일은 삼가고 특히 지나친 과음은 실수를 만든다.
•64년생 :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며 어렵던 일들이 서서히 풀릴 조짐이 보인다.
•52년생 : 힘겨운 상대가 나타나니 사전에 상대의 정보를 읽어 실수를 조심하라.
•40년생 : 재수 좋은 운이니 남겨놓은 실력을 발휘할 때라 한번 움직여 보라.
◈ 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풍요 속의 빈곤이라 있을것 다 있어도 허전함은 허욕이니라. 급하게 먹은 떡은 채하기가 쉬우니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차근히 잘 파악하여 행하는 것이 길운을 불러 들이는 방법이 될 것이다.
•77년생 : 고대하던 인연이 타나나니 즐거우나 재운은 어렵게 넘어간다.
•65년생 : 갑자기 분주한 일이 생기나 휩싸이면 손해만 나는 운이니 조심하라.
•53년생 : 마음대로 일이 안 되나 끝까지 전력을 다하면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41년생 :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운이니 투자는 금물이고 손 재를 조심하라.
◈ 말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운세는 바뀌는 것 나쁜 운만 오는 것이 아니니 기다릴줄 알아야한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수 있는 것처럼 호운이 들어 올 때 일수록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운기가 좋으니 잘 받으라.
•78년생 :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는 답답함이 있어 일의 진도가 많이 늦어진다.
•66년생 : 보이지 않는 귀인의 조력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되니 금전 운도 좋다.
•54년생 : 백호가 침노하니 집안에 우환을 조심하고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
•42년생 : 물리적인 일을 피하고 정신적인 면을 돌아보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도량을 넓힘이 폭 넓은 사회를 열고 나의 재수를 열어 가는길이 된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구원의 손길은 다소 받을 수 있으나 또다른 난관에 부딪히게 되니 타의 시기 질투가 두렵다. 잘살피어 대처하라.
•79년생 : 애 태우던 연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니 금전 운 또한 좋아진다.
•67년생 : 어설픈 일 속에서 좋은 제의가 들어오니 기회를 잘 포착하라.
•55년생 : 좋은 이성의 만남이 주선되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망신수로 변한다.
•43년생 : 서운한 일이 많이 생기나 자신이 이겨내야 아래위로 융화가 잘된다.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살아가는 방법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이니 열심히 삶이 배우는 길이다. 재리가 충족하니 손이 가는 것 마다 이익으로 들어 오게 된다. 그러나, 너무 자만하여 감당하기 힘든 일에는 손대지 말라. 손재가 두렵다.
•80년생 : 좋은 운이 손을 흔드니 이성문제 해결되고 친구도 말문을 연다.
•68년생 : 근심 걱정이 태산이나 조금씩 풀어지는 운이니 한가지씩 열어 보라.
•56년생 : 문서 문제가 발생하나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결정을 유보하라.
•44년생 : 꿈자리가 시끄러운 상이니 두문불출하고 침체된 것을 다시 확인하라.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남의 좋은 일에 시기 질투보다는 칭찬하는 버릇을 들여야 일이풀린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먼저 처리 함이 길하니 나의 일도 다 하지 못하고 다른이에 일에 전념하다보면 손실만 있게 되는 괘다.
•81년생 : 칭찬 받을 일이 생기고 재수 좋아 많은 용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다.
•69년생 : 일은 경쟁 방해로 생각대로 안 되고 도리어 구멍이 생기니 조심하라.
•57년생 : 투자에 함정이 보이니 삼가고 돈의 흐름을 잘 읽어야 손 재를 피한다.
•45년생 : 좋은 소식을 전해 들어 힘은 되나 크게 지출할 일이 생긴다.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모든 일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챙김이 운을 여는 것이다. 매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니 도처에 흉함이 깃들여 있다. 속된 판단은 금물이니 오늘 하루는 편안히 지내는 것이 길하다.
•82년생 : 마음 결정이 재수를 열어 가는 중요한 길이니 잘하면 큰 것을 얻는다.
•70년생 : 탐욕은 재수를 쫓는 일이라 욕심대로 안 되니 투자 새 일은 불길하다.
•58년생 : 구슬을 담다 쏟아버리는 격이라 큰 투자와 문서 문제는 삼가라.
•46년생 : 금전 운은 약하고 바라던 일은 오후에 서서히 풀린다.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없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감은 사람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르는 곳마다 이익이 발생하고 투자한 것마다 나를 기쁘게 하니 운수가 대통한것과 같다.그러나, 경거망동은 삼가 할 것이니 운기가 약해 질까 두렵다.
•83년생 : 이성 운은 풀려 즐거우나 금전 운이 어두우니 절약이 필요하다.
•71년생 : 직장이나 단체에서 왕따 당하는 일이 생기니 두루 살펴 보라.
•59년생 : 금전 운이 불길하니 문서 문제는 다음에 처리하고 작은 투자도 어렵다.
•47년생 : 자식이나 아랫사람이 애를 먹이는 운세이니 미리 방침 하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이러스로 가득하다. 어쩔 수 없이 공생해야 할 운명(?)이라면 바이러스를 잘 활용하고 다스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닐까?
도움말 김수정 코오롱생명과학 연구소장, 하석훈 전 ㈜GC녹십자 종합연구소장
CHAPTER 1. 바이러스로 살아남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의 여파로 현대인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바이러스’도 적지 않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유전물질을 숙주세포에 전달하는 게 특징인데, 이에 착안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김수정 코오롱생명과학 연구소장은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사용한 유전자치료제는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르고, 10여 개는 이미 허가를 받아 판매 중”이라며 “미국은 유전자치료제 개발을 적극 지원할 것을 선언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새로운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치료용 바이러스, 그 효과는?
유전자치료가 성공하려면 인체에 치료유전자가 효율적으로 전달돼야 한다. 다양한 전달 방법 중에서도 가장 효과가 좋고 널리 사용되는 도구는 바로 ‘바이러스’다. 이는 바이러스가 자기 유전자를 세포 내로 잘 전달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김 소장은 “유전자치료제는 일반 치료제와 경쟁하는 의약품이 아니다”라며 “기존에 치료제가 없는 질병(선천성 면역결핍증, 선천성 시각장애 등)이나 치료제가 있더라도 그 효과가 떨어져 새로운 치료제 개발이 필요한 질병(암, 중증 통증 등)에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구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투여해도 안전한 바이러스는 어떻게 만들까? 바이러스에 따라 2개부터 많게는 수백 개에 이르는 유전자가 있는데, 먼저 이들 중 바이러스 게놈 복제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제거한다. 복제 유전자가 없는 바이러스는 사람 몸에 들어가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지 못하고 치료유전자 전달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CHAPTER 2. 바이러스에서 살아남기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 부부는 2000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목표는 질병과 빈곤을 없애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백신 개발에 많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백신은 매년 수백만 명의 생명을 살리고 비용 면에서도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의 유행을 막기 위해서는 백신 접종률을 9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백신에 대한 맹신, 문제는 없을까?
질병을 막기 위한 최선책으로 여겨지는 백신. 그러나 백신에 대한 맹신이 불러오는 문제는 없을까? 하석훈 전 ㈜GC녹십자 종합연구소장은 “백신의 효능은 종류마다 다르다. 유도된 면역력은 백신 접종 후 평생 유지될 수도 있고 주기적으로 재접종해야 할 경우도 있다”며 “한 번 접종한 백신이 해당 질병에 대한 방어력을 평생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혹시 여러 종류의 백신을 동시에 맞거나 단기간에 투여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면, 염려할 것 없다. 백신의 상품화 과정과 시판 후 조사 과정을 통해 여러 백신을 동시에 투여해도 면역체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 번에 백신을 투여함으로써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한편 면역력을 키우겠다며 다소 비위생적인 환경에 어느 정도는 노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득보다 실이 큰 행위다. 하 전 소장은 “자연감염으로 인해 다양한 면역력이 유도될 수 있지만, 일부 감염체는 쉽게 자연치유되지 않고 후유증을 남기거나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남기기도 한다”며 “감염을 막기 위해 위생에 신경 쓰면서 적절한 백신 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라고 당부했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1970~80년대에 유년기를 지낸 중장년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부분 감염돼 항체를 가진 경우가 많다. A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 유·소아기에 감염되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지만 성인이 된 후 감염되면 급성 A형 간염을 앓거나 심하면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요즘은 위생관리 수준이 높아져 A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병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항체를 지닌 사람이 10%도 안 되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다행히 A형 간염 백신이 잘 개발돼 있으니 전문가와 상의해 접종하면 충분히 예방 가능하다.
오래된 이야기다. 신혼 때였으니 30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월급은 겨우 생활하기 빠듯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양육비와 생활비를 제외하면 넉넉한 저축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 월급을 쪼개어 저축도 들고 보험도 들어야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모으며 살림을 일으켜 나갔다. 도중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목적 없이 저축이나 보험을 깨진 않았다. 저축은 종잣돈이 되어 전세를 늘려가거나 집 사는 데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은 해약하면 손해다. 어려워도 버텼다. 적게 보험료를 납부하기 위해 최대한 긴 것으로 가입했다. 보장도 받으면서 60세부터는 종신연금이 나오는 상품이다. 매년 금액도 조금씩 오른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으로 모두 의무가입이었다. 회사와 종업원이 반반씩 보험료를 내고 60세부터 연금을 타는 구조였다. 1988년부터 국민연금이 시행 되었다. 당시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0%여서 매월 직장에서 받는 돈의 70%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재정상의 문제로 1998년에 소득대체율이 60%로 낮추어졌고 다시 2007년 법이 개정되었다. 2008년부터 소득대체율 50%이후 매년 0.5%씩 20년 동안 낮아져 2028년 40%까지 떨어지게 되어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좋은 제도지만 노후자금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3층 연금 보장이라는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되 기업의 퇴직금 등을 연금으로 하고 개인이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이 조합이 이루어져야 노후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노후 빈곤율이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2018년 기준 노인 빈곤율 43.8%는 OECD 국가들 평균보다 한참 위에 있다. 이러한 원인은 급격한 평균수명의 연장과 대가족제도의 해체와도 관련이 있다. 핵가족화는 노부모 부양책임을 멀어지게 했다. 사회 인식 변화로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가족이 노후를 책임지던 시대는 지나갔다. 노후의 4대 위험인 빈곤, 질병, 무위, 고독을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 아이를 낳아 기르기 힘드니 결혼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부부들도 있다. 기껏 낳아야 한두 명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살기 쉽지 않은 게 요즘이다. 그러니 힘들게 살아가는 자녀에게 의존하기 힘들어졌다. 매월 부모 생활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하철 무료 우대권’을 받는 나이가 되어보니 절실하게 느껴진다. 자식에게 용돈 받아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식들도 자기 가족들 부양하기 버겁다. 신혼 시절 연금 가입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막내 하나 더 기르는 셈 치고 연금하나 들자 했다. 많지는 않지만, 평생을 매월 30만 원 정도 용돈이 나온다. 어렵게 낸 것이 이제 와 최고의 효도를
한다. 매월 통장으로 들어오는 30만 원이 어느 때보다 커 보이는 이유다.
부부의 노후 생활비는 매월 얼마나 있어야 할까?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2018년)에 따르면 최소생활비는 197만 원, 적정생활비는 283만 원이라고 한다. 그런 돈을 충분히 모아두었을까, 아니면 연금이나 건물 임대 등과 같은 매월 일정액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까? 대체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노인 상대 빈곤율이 1위인 점과 무관하지 않다.
은퇴 가구 4가구 중 1가구는 연금소득이 전혀 없고 고령자의 연금 평균 수령액은 61만 원에 불과하다. 최소생활비에도 크게 못 미친다. 돈을 벌어 모자라는 금액을 벌려해도 은퇴노인이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해결 방안으로 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다. 하나는 자식에게 지원을 받는 방법이나 당연히 여의치 못하다.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 등의 공적 연금에 더해 개인연금을 드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은퇴자가 개인연금에 새로 가입하는 것은 그 수령 시기가 늦고 보험료를 낼 소득이 없어서 의미가 없다.
차선책으로는 가지고 있는 자산을 활용하여 노후생활비를 보충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은퇴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은 주택이 유일한 경우가 많다.
주택을 팔아서 현금화하여 쓸 수 있으나 그러면, 살 집이 없어지게 되어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그런 점을 고려, 사회복지 차원에서 만든 제도의 활용이 관심을 끌고 있다. 주택연금이다. 현재 가입자가 6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70세에 7억 원 아파트를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월 그리고 죽을 때까지 169만 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죽은 후에는 배우자에게 같은 조건으로 승계할 수 있다. 받은 총 연금액보다 집값이 많으면 차액을 자식에게 돌려준다. 반대로 모자라면 상속자에게 돌려받지 않고 정부가 책임을 진다. 부부 중 한 사람이 60세 이상이어야 가입할 수 있으나 올해 안으로 50세 중반으로 낮춰질 예정이다.
고령자 평균 연금 수령액 61만 원에 주택연금 가입으로 받게 되는 금액, 169만 원을 더하면 부부 최소생활비 197만 원을 넘어선다. 준비하지 못한 노후생활비 보충 방법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한국전쟁 이후 70여 년간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화하는 경천동지의 사례를 만들어냈다. 그 시간에 아무것도 없었던 나라의 맨바닥을 일군 기반으로, 혹은 세계 곳곳의 산업 역군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기여한 베이비부머들은 이제 새로운 삶의 시간을 맞이해 제2의 인생을 열고 있다. 바로 요즘 인기인 월드프렌즈 NIPA(정보통신산업진흥원) 자문단. 국내 퇴직 전문 인력 해외 파견 프로그램인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대한민국 브랜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한국 정부 파견 해외 봉사단인 ‘월드프렌즈코리아(World Friends Korea)’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민간 혹은 공공기관 출신의 퇴직 전문가들을 위한 해외 봉사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전문가들이 가진 기술 경영 및 경제 개발 노하우들을 개발도상국에 자문 형태로 전수하여 경제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2010년 첫해 18개국 38명 파견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5개국 809명의 자문단을 파견해왔다. 지금도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의 32개국에서 142명의 자문단이 활동하고 있다.
은퇴한 ICT 시니어들, 여기에 다 모여
‘월드프렌즈 NIPA 자문단’은 은퇴한 ICT 시니어가 인생 2막을 보낼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지속적인 사회활동을 희망하는 시니어가 많기 때문이다.
자문단원이 된다는 것은 개도국에 대한 봉사적 지원과 대한민국 브랜드의 전파 의미가 우선이지만, 동시에 자문단원 개인 입장에서는 은퇴 후 임팩트한 제2의 인생을 열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베네피트 덕분에 자문단 지원은 경쟁률이 높다. 베트남, 네팔, 세네갈, 에콰도르, 우즈베키스탄 등 43개국 대상 65명의 자문단원을 선발하는 올해 상반기 설명회에는 100명이 넘는 지원자가 참석했다.
자문단원은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 5대 산업자원정책 분야를 기준으로 선발한다. 파견기간은
1년이며 개도국의 요청 및 프로젝트 연속성을 고려하면 최대 3년까지 활동이 가능하다. 선발된 자문단원에게는 항공료(실비), 출·귀국 준비금 1000달러, 활동비 월 700달러, 현지 생활비가 국가별 차등 지급식으로 월 2300~5000달러가 지원된다. 자문단원 선발 시 각 수요국에서 요구하는 학위가 있지만 관련 학위가 없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경력자는 지원이 가능하다. 특히 외국에서 생활하는 만큼 영어로 강의, 자문, 보고서 작성이 가능해야 한다.
새로운 활력 찾아 떠난 에콰도르
에콰도르에서 자문단 활동을 마치고 6월에 귀국한 양순애 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전관 컴퓨터 사업부 근무,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유학이라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컴퓨터 연구자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는데 차별이 심했어요. 옛날에는 여자가 직장생활하기 되게 힘들었잖아요. 그러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죠. 박사 학위를 따고 돌아와 정부 산하기관에서 전자정부 쪽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자문단원에 지원했어요.”
자문단원 활동은 에콰도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 KOICA(한국국제협력단)를 통해 동티모르에서 자문단원으로 2년간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동티모르는 상당히 빈곤한 나라예요. 1인당 국민소득도 낮고 가게에 가면 물건도 별로 없죠. 그런데 그이들은 즐겁게 살더라고요. 가난해도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좀 겸손해졌다고나 할까요,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그리고 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이 개도국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어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다
동티모르에 갔다 온 후 1년 정도 휴식기간을 가진 그녀는 다시 해외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동남아시아는 갔다 왔으니, 다음은 아프리카나 중남미 쪽으로 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에콰도르에서 전자정부 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력을 필요로 했다. 그 업무는 그녀의 전문 분야였다.
“에콰도르는 전자정부 수준이 아주 낮지는 않고 중간 정도예요. 우리나라의 정보통신부 역할을 하는 부처도 있고요. 그곳에 국립고등교육연구소가 있는데 사실상 국립대학원이라고 보면 돼요. 교수들이 연구도 하면서 정부의 자문기구 역할도 하죠. 저는 그 기관 행정 부서에서 일했어요.”
에콰도르에서 일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높은 산지에 위치한 도시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적응하는 데 5~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가 지냈던 수도 키토는 해발 2850m에 위치해 있어, 충분히 먹어도 살이 빠지고 걷기만 해도 숨이 찼다. 치안 부재도 불편했다고.생활범죄가 늘어나 사람들이 휴대폰과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이 두 가지만 빼면 살기 좋은 나라라고 그녀는 말했다.
자부심과 인내심 함께 가져야
그녀는 에콰도르의 전자정부 수준이 중간 단계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어 1년 정도 더 있으면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 것 같았는데 돌아오게 됐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자문단 선배’로서 자문단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팁들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우선 언어, 특히 영어가 중요해요. 소통은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건강이죠. 특히 남자들은 음식문화 때문에 고생해요. 부부가 함께 가면 좋은데 혼자 나가서 지내다 보면 몸이 부실해질 때가 있어요. 건강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미리 배워서 가면 좋아요.”
자문단원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그래서 더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지에 가면 대부분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와는 직장 문화가 많이 달라 힘든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했다.
“인내심이 필요해요. 잘 들어줘야 하고 무작정 강요를 해서도 안 돼요.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려워져요. 현장 교육을 받아도 실제로 부딪치는 부분은 달라요.”
60세까지는 당분간 푹 쉴 생각이다. 그림을배우며 짧은 휴식을 마친 뒤 인생의 다음 지점을 준비하게 될 그녀를 응원한다.
하반기 신청은 월드프렌즈NIPA자문단의 공식 홈페이지(senior.nipa.kr)에서 하면 된다. 만 50세 이상의 퇴직(예정)자로 정보통신, 산업기술, 에너지자원, 무역투자, 지역발전 등 5개 파견 분야에서 10년 이상 또는 이에 상응하는 경력이 있다면 지원이 가능하다. 서류 및 면접심사를 거쳐 선발하며, 개도국 정부나 공공기관에 파견돼 1년간 자문단원 활동을 하게 된다. 평가에 따라 최대 3년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2019 시니어 아지트’ 설문조사에서 즐겨 찾는 아지트가 없다고 응답한 이들(13.5%)에게 이유를 묻자 ‘장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37.5%)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각양각색의 문화공간과 맛집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작 시니어를 위한 장소를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 비슷한 현상으로 각종 프로그램이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요즘엔 볼 게 없다’는 게 중장년의 반응이다. 이러한 풍요 속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만을 위한 ‘TV 속 아지트’가 생겨났다. 한 뼘 리모컨으로 손쉽게 넘나드는 아지트 ‘브라보라이프’를 소개한다.
자료 제공 LG 유플러스
“애들이 출가하고 나니 그야말로 집이 내 아지트가 됐어요. 식구가 많을 때는 서로 리모컨 갖고 아옹다옹했는데 이제는 내 취향껏 TV를 볼 수 있어 편안합니다. 재미로 시간 때우느라 보는 것 같지만 건강은 물론이고 취미, 여행, 거기다 직업 정보까지 인터넷 검색 안 하고도 얻는 게 참 많아졌죠. 예전에는 TV를 바보상자라 하며 멀리했지만, 요즘은 TV 안 보면 바보가 되겠더라고요.(웃음)”
U+tv ‘브라보라이프’ 서비스 이용자 김재상(65) 씨의 이야기다. “몸과 마음이 편한 곳이 아지트”라고 말하는 그는 주로 집에서 쉬며 여가를 보내는 편이다. 실제 ‘2019 시니어 아지트’ 설문조사에서도 상당수 시니어가 아지트를 찾는 목적으로 ‘휴식(힐링)’(35.7%)을 꼽았다. 또 ‘2018 고령자 통계’(통계청 사회조사, 2017) 자료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자의 주중 여가활동을 묻는 항목에 ‘TV시청’(91.4%)과 ‘휴식활동’(69.8%)’이라는 답변이 1, 2위를 차지했다. 즉 시니어의 경우 TV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여가와 휴식의 내용이 달라지며, 나아가 일상과 삶의 질까지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5초 만에 찾아가는 나만의 공간
U+tv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브라보라이프’는 자체 제작한 독점 콘텐츠를 비롯해 건강, 취미, 여행 등 시니어 맞춤형 콘텐츠를 한곳에 모았다. 넘쳐나는 미디어의 홍수 속 중장년 세대가 선호하는 프로그램을 선별해 카테고리별로 묶어 보여주는 방식이다. ‘브라보라이프’ 외 KT 올레tv ‘룰루낭만, SK브로드밴드 Btv ‘비바 시니어존’ 등도 유사한 서비스다. 이들 서비스 대부분은 리모컨 조작을 통해 손쉽게 이용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예를 들어 ‘브라보라이프’의 경우 리모컨 홈(집 모양) 버튼을 눌러 해당 메뉴를 선택하면 곧바로 접속된다. 평소 3~4시간 정도는 TV 속 아지트인 ‘브라보라이프’에 머문다는 정옥자(가명·61) 씨는 이러한 서비스의 편리함에 만족을 드러냈다.
“우리 세대가 좋아하고 공감할 만한 프로그램을 항목별로 볼 수 있어 편리해요. 주로 예전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고 있어요. 집에서 쉬더라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데 일일이 채널 돌려가며 찾을 필요 없으니 시간도 절약되고 뭘 볼까 하는 고민도 줄어들죠.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세대는 화면이 큰 TV가 제일 편한 것 같아요.”
TV 속 아지트는 현실이 된다
화면 속 멋진 여행지나 맛집 등을 보면 그곳에 찾아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또 건강한 삶을 사는 이들이 나오면 그 비법을 따라 해보기도 하고, 행복한 제2인생을 꾸린 동년배의 모습에 동기부여도 된다. 그렇게 TV 속 아지트는 집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는 매개체 역할까지 한다. 정적이라 여겼던 TV 시청이 일상의 활력과 변화를 이끄는 셈이다. 여가를 채우는 재미뿐만 아니라 건강과 유익, 그리고 제2인생을 위한 알찬 정보까지 얻는 곳, 이만하면 가봄직 한 아지트 아닐까?
2018년 말에 시작해 올 3월 3일까지 논현동 메르디앙호텔 갤러리에서 러빙 빈센트 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 이름이 생소해 찾아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는데 검색한 대로 전철 9호선 강남 신논현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니 바로 호텔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친구 자녀들 결혼식 때 몇 번 와보기도 했던 곳이다.
유명한 화가 중에서도 유독 빈센트 고흐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멋진 작품을 남겼음에도 외롭고 가난에 시달리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전시회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지만 이번 전시회는 조금 특별하다. 러빙 빈센트 전은 고흐의 삶을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했을 때 전 세계에서 선발된 125명의 화가가 투입됐는데, 영화 제작에 사용하기 위해 그들이 그려낸 고흐의 작품 125점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다.
아들도 이 전시회에 간다고 해서 나는 영화 러빙 빈센트를 먼저 보라고 일러줬다. 이 영화는 제작기간만 9년이 걸렸고 세계 각국에서 무려 125명의 작가가 선발되어 고흐의 작품을 따라 그렸다고 한다.
고흐는 살아생전 그 많은 작품 중 단 한 점의 그림만 팔렸던 작가다. 그가 죽은 1년 후 친구이자 우체국장인 ‘조셉 룰랭’은 아들인 ‘아르망 룰랭’에게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나 고흐의 동생 역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르망은 고흐가 마지막 머물렀던 마을로 가서 그의 삶을 더듬어본다. 영화는 그 여정을 담았다.
1890년 7월 27일 한 남자가 황혼이 지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오베르에서 쓰러진다. 수척한 모습의 남자는 총상을 입은 채 피를 흘리며 배를 움켜쥐고 있다. 그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왜 총상을 입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영화는 그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5만6000장에 달하는 수려한 유화를 사용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메르디앙호텔 갤러리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는 고흐의 작품전이라기보다는 그의 작품을 모작해 영화를 만든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회라 할 수 있겠다. 2017년 고흐 열풍을 일으킨 영화 ‘러빙 빈센트’가 탄생하기까지 두 명의 감독과 제작자, 107명의 아티스트들이 간직한 10년간의 특별 스토리도 함께 공개되었다. 전시된 작품은 모두 아마추어 작가들이 그린 모작이지만 고흐의 화풍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별 전시실에는 110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고흐의 진품 ‘꽃이 있는 정물화’가 전시되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지만, 진품 유화는 촬영이 불가했다.
총 9개의 섹션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전시회를 보면서 빈곤에 시달리며 어두운 시간을 살아야 했던 그의 삶이 안타까워 울컥했다. 전시 룸을 나와 그림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데 사진을 찍어주던 아들이 갑자기 “땡큐~” 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던 화가 한 분이 나를 향해 브이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3월 3일까지 전시회 일정이 잡혀 있으니 많은 분이 찾아가 나와 같은 감동을 느껴보면 좋겠다.
매월 25일이면 국민연금이 월급처럼 또박또박 통장으로 들어온다. 이번 달에는 금액이 인상되어 162만 원을 받았다. 받을 때마다 국민연금제도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활비로는 부족해 좀 더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국민연금공단에서 발표한 2018년도 수급자 현황을 살펴보니 377만8824명이 연금을 받았고 최고 수령액은 204만6000원이다. 2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인 10명에 불과하다. 그다음 액수는 월 15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이며 수급자 수는 7477명이다. 내가 이 범주에 든다. 국민연금 총수령자 상위 0.2%에 드는 초고액 수령자 그룹이다. 이 통계를 보면 내가 받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생활비로는 부족한 금액이지만 다른 수급자들과 비교해보면 많이 받는 액수여서 투정을 부리기가 미안하다.
수령액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이유는 60세부터 연금을 몇 번 받다가 연금액을 늘리기 위해 연금 수급시기를 65세로 늦춰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식들 모두 출가하고 아내와 단둘이 사는 2인 가족인데도 약간의 문화생활을 포함한 생활비로는 부족하다.
1. 국민연금이 용돈 수준이라면 문제다.
연금수령액 상위 0.2% 범주 안에 드는 수령자도 연금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현행 국민연금제도와 운용에 개선할 점이 있다는 의미다. 월 50만 원 미만의 금액을 수령하는 사람들은 285만9019명. 이들이 전체 수급자의 75%에 달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금액은 연금이라고 부르기에는 보잘것없고 용돈에도 미치지 못하는 푼돈 수준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2.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국민연금 제정목적은 노후생활보장에 있다. 이렇게 퍼주다가는 곧 연금이 고갈된다든가 앞으로 더 내고 덜 받으면 연금기금을 언제까지 지탱할 수 있다는 연금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공론이 떠들썩하다. 국민연금이 최저생활비는 될 수 있도록 기준을 먼저 정해놓고 그 방법들을 역으로 퍼즐 맞추듯 풀어나가야 한다.
3. 스스로 하는 자산운용은 위험하다.
국민연금을 받는 은퇴자들이 퇴직금이나 지금까지 모아둔 돈으로 주식이나 창업 등 자산운용을 하려다 실패하면 복구가 어렵다. 곧바로 극빈자 대열에 합류될 수도 있다. 은퇴자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자식리스크이고 그다음이 자산관리 실패다. 희망자에 한해 시니어 자산을 연금관리공단에서 받고 연금액을 높여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때다.
4.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고민해봐야 한다.
요즘 취업자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두둑한 연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무원 연금 수령액이 국민연금보다 큰 것은 연금보험료를 더 많이 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받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불입액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희망자에 한해서라도 즉시 시행해야 한다. 퇴직금을 맡기고 국민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기준 44.5%인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을 45% 또는 5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월 보험료도 현행 9%에서 12% 또는 13%를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현행 기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당장 생활이 궁핍한 사람들은 보험료 인상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연금 본래의 목적인 노후생활보장을 외면하면 안 된다. 연금보험료를 더 내고 더 받겠다는 희망자만이라도 수용해 편안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 전시회가 네 개나 열리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의 힙합 문화에서 발아한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 낙서화)와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거리 미술)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체전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서울숲 아트센터의 ‘반항의 거리, 뉴욕’이 있고, 개인전으로는 DDP의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잠실 롯데뮤지엄의 ‘케니 샤프, 수퍼 팝 유니버스’가 있다.
1980년대부터 활동한 이 전시회 작가들이 1950년대에 태어났으니 같은 세대인 시니어가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나와 같은 연대에 태어난 미술가들은 젊은 시절 어떻게 예술혼을 싹 틔웠을까. 이런 호기심만으로도 전시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새로운 세대 미술이 이스트 빌리지에서 시작되었다”, “진짜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는 여기다”라고 외치게 했던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2019년에 돌아보는 감회가 새롭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공부도 해보니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예술가들 중에는 끔찍한 환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작가가 적지 않다. 그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 간 이유는 뭘까? 나는 젊은 시절 무엇을 꿈꾸고 행동했던가. 부끄러웠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감상안이라도 있다는 걸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전은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 미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 26명의 75점 작품, 73권의 ‘이스트 빌리지 아이’ 잡지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뉴욕 맨해튼 동남쪽에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 학생, 히피족이 모여 살았다. 자연스럽게 뉴욕의 반체제 문화 중심지, 예술운동 발생지가 되었고 항의와 폭동의 장소이기도 했다. 1980년대의 뉴욕 이스트 빌리지는 무분별한 재개발과 그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슬럼화되었다. 버려진 거리와 건물이 많았지만 가난한 젊은 작가들이 들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영화, 퍼포먼스, 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와 패기로 ‘쿨’하고 ‘힙’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뒷모습에는 고단한 삶과 그늘이 있었다. 이스트 빌리지 예술가들은 계급·성별·인종 차별과 마약, 빈곤, 범죄, 동성애, AIDS 등의 사회적 문제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레이건 정부의 보수 정책과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확립에 발맞춘 예술의 상업화와 보수화에 자신들의 예술작품으로 저항했다는 것이 현재의 평가다.
‘19세 이하 관람 불가’라는 과격하고 논쟁적인 작품이 포함되었지만, 어느 전시장이든 그러하듯 흰 벽면에 질서 정연하게 전시된 작품으로,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분위기를 읽어내기는 힘들다. 또 하나, 한 작가의 대표작을 망라하는 회고전이 아니기에 시대와 작가의 일면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상주의’ ‘야수파’식으로 특징지을 수 없는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하면 좋겠다. 이 글에서는 일찍 세상 떠난 작가 7명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해본다.
1)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년)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려준 만화를 따라 그리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춘기에는 기독교에 심취했고, 15세 이후에는 록 음악과 마약, 섹스에 빠졌다. 뉴욕 시각예술학교에서 케니 샤프,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이스트 빌리지 낙서 화가들을 만나면서 낙서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당시 주류 미술계에 편입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은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퍼포먼스와 전시회 등을 열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했는데, 이러한 이벤트는 주로 클럽에서 일어났다. 키스 해링은 그중 대표적 클럽인 ‘클럽 57’의 큐레이터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32세에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 매해 개인전과 기획전은 물론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공공미술, 기업과의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키스 해링은 간결한 표현으로 드러내는 무거운 메시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고급 예술이라 고집하는 건 자기 과시를 위한 허튼수작”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른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고유 표식인 ‘태그(tag)’를 적극 활용했다. 기어 다니는 아기, 비행접시, 하트 등이 그것이다. 단순하고 밝고 가벼운 만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성 미술계와 보수 정권 비판, 퀴어, 에이즈, 마약, 인종 차별, 반핵·반전에 이르기까지 작품 주제가 광범위하다. 말풍선이나 그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목을 달지 않아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했다.
2) 아치 코넬리(Arch Connelly, 1950~1993년)
도예를 전공했고, 10년 남짓 작가 생활 후 미국 전역을 덮친 에이즈로 43세에 사망했다. 에이즈로 사망한 수많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그는 2012년 회고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코넬리는 화려하지만 싼 재료(가짜 보석, 작은 꽃다발, 장식 조각, 반짝이, 동전)를 이용해 작업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재료는 사내답지 못한 ‘호모’의 것으로 여겨졌다. 잡지에서 잘라낸 벌거벗은 남성 모델 사진과 게이 섹스 사진을 싸구려 보석으로 장식하는 콜라주 작품 등 ‘남성적’으로 간주된 몸을 대상화하는 동시에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남성성을 격하시키는 작업도 하며 규범적인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키스 해링,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마틴 웡 등과 함께 이스트 빌리지 게이 예술가 그룹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제도권 예술의 주류였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과 대비되는 코넬리의 작품은 과열된 미술시장에서 부풀려진 예술의 상업적 가치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전략은 20세기 중반 미국 모더니즘 예술 이후 등장한 팝 아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가 1981~1989년에 만든 7점의 ‘자화상’ 연작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 형상을 그리는 대신 직사각형, 타원형 캔버스에 가짜 진주, 반짝이는 장식 조각 혼합물을 가득 채운 자화상은 형식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3)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년)
중국계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자랐다. 부모는 중국인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멕시코인 피도 흐르고 있어, 자신을 ‘중국-라틴계’라고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여 어머니의 지지를 받으며 13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예를 전공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할 때는 히피운동에도 참여했다.
1978년 뉴욕에 왔을 때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텔 야간 짐꾼으로도 일했다. “내가 그리는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라고 말한 그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시인 미겔 피네로와 함께 살며 작업을 했는데, 둘의 활동은 뉴욕에서 일어난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예술운동 ‘뉴요리칸(Nuyorican)’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스트 빌리지 그라피티와 아시아 고미술품을 수집했고, 이스트 빌리지에 아메리칸 그라피티 뮤지엄을 설립하기도 했다.
마틴 웡은 1994년에 에이즈 진단을 받고 53세에 숨을 거뒀다. 그의 작품은 PPOW 갤러리에서 관리하고 있고, 어머니가 마틴 웡 장학재단을 만들어 미술가를 후원하고 있다.
작가 4명의 이야기는 후속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