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찬란한 신록을 만나기 위해 하동으로 간다. 악양행 버스를 타고, 화개천 옆을 지난다. 간밤에 흩날렸을 벚꽃 잎을 상상하며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 길을 달린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은빛 섬진강과 푸른 보리밭이 봄볕에 반짝거린다. 섬진강가 산비탈에는 야생차밭이 연둣빛 생기를 뽐낸다.
걷기 코스
화개시외버스터미널▶시내버스 타고 악양면으로 이동▶매암제다원(매암차박물관)▶하덕마을 담장 갤러리▶드라마 ‘토지’ 촬영지▶박경리문학관▶최참판댁▶시내버스 타고 화개장터 또는 화개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산자락 아래 볕 좋은 동네 악양
화개시외버스터미널에 악양행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린 행복버스 안내 도우미가 연로한 승객들을 부축해 승하차를 돕는다. 기사도 승객이 승하차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안내 도우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악양(개치)정류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도보 1분 거리에 매암제다원이 있다. 매암제다원은 3대에 걸쳐 40년 동안 친환경 자연농법으로 차밭을 가꾸고, 악양에 전해오는 전통 제다법으로 차를 만드는 곳이다. 다원 안으로 들어서 매암차박물관 옆을 지나자, 초록빛 야생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원에 따사로운 봄볕이 가득하다. 높을 岳(악), 볕 陽(양) 자를 쓰는 악양다운 풍광이다.
마침 매암차박물관의 장효은 학예실장과 이윤경 기획실장이 야외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다. 매암제다원에서 파는 차가 녹차가 아닌 홍차인 이유를 묻자 장 실장이 “많은 사람이 녹차나무와 홍차나무가 다른 나무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나무예요. 찻잎을 발효하면 홍차 잎이 돼요. 악양 사람들은 옛날부터 홍차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양 홍차는 우리나라 찻잎보다 크고, 맛과 향이 진하죠”라고 대답한다. 이 실장도 거든다. “이곳 할머니들은 찻잎을 잭살이라 불러요. 4월에 처음 딴 찻잎을 참새 雀(작), 혀 舌(설) 자를 써서 작설이라고 부르는데, 거기에서 유래한 것 같아요. 식구들이 감기나 배앓이를 하면 잭살을 한 움큼 넣고 푹푹 우려 약차로 만들어 먹였대요.”
13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차가 처음 전래된 곳이 하동이다. 임금에게 차를 진상했던 곳도 하동이다. 악양과 화개 산비탈에 자리 잡은 대규모 야생차밭은 한없이 경이롭다. 하동 사람들의 차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할 만하다.
은은한 차 한 잔의 위로
2만여 평의 차밭이 굽어 보이는 매암제다원 마당에 매암다방이 있다. 나무꾼이 살 것 같은 아담한 오두막이다. 실내에 차밭이 보이는 벽마다 큰 창을 내어 자연을 담은 액자처럼 꾸몄다. 실내에 있기에는 아까운 계절. 찻그릇을 담은 차 쟁반을 들고 나가 차밭이 잘 보이는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간지러운 봄볕을 즐기며 찻잎을 우린다. 찻잎에 뜨거운 물을 붓고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발효된 홍차는 녹차보다 맛이 순하고 구수하다. 찻잔이 작으므로 마주앉은 이의 잔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서로 잔을 채워주며 따스한 차담을 나누라고 찻잔이 작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찻잔 위로 스치는 봄바람에 참새 혓바닥 같은 찻잎들이 쫑긋거린다. 연둣빛 여린 찻잎에서 천 년을 이어온 생명력을 느낀다. 다원 입구에 있는 매암차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수목원 관사로 사용했던 적산가옥이다. 흰 목조 건물과 푸른 차밭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차와 관련한 다양한 유물 130여 점을 전시한다. 차 문화사 강좌, 차 만들기 체험, 차 따기 체험, 하동 차문화 기행 등 문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매암제다원(매암차문화박물관) 여름철 10:00~19:00, 겨울철 10:00~18:00, 월요일 휴무, 관람 무료, 매암다방(셀프) 찻값 3000원.
사계절 차꽃 피는 하덕마을
매암제다원을 나와, 시골길을 타박타박 20분쯤 걸어 하덕마을에 도착한다. 27명의 작가가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 사진, 조형물을 만들어 골목을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벽화뿐만 아니라 나무, 철, 도자기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이 담장에 전시돼 있다.
마을 입구 ‘팥이야기’ 카페에서 출발해, 발소리를 죽이고 고요한 돌담길을 스며들듯 거닌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하얀 차꽃이 흩날리는 그림 ‘차꽃’과 매화가 핀 찻잔과 보름달을 그린 ‘달 아래에서’, 장식장에 찻잔이 가득한 ‘찻잔’ 벽화가 눈길을 끈다. 기와지붕 처마에 거꾸로 매달린 차꽃 조형물은 이름도 어여쁜 ‘꽃비내림’이다. 담장 위에는 농악대를 형상화한 철 조형물이 곡예를 한다. 가만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난다.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공통된 정서는 ‘푸근함’이다. 시골 정취가 가득한 하덕마을과 정감 있는 예술작품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낸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골목길을 만나 가슴이 설렌다. 마을 중앙에 있는 ‘차꽃오미’ 한옥 민박집에도 잠시 들른다. 위엄 있는 솟을대문과 잔디가 깔린 앞마당과 100년 된 고택의 조화가 멋스럽다. 하동군 악양면 악양서로 227.
최참판댁에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보며
하덕마을을 뒤로하고, 박경리 소설 ‘토지’를 드라마화한 토지 촬영장으로 향한다. 찻길 옆 인도를 따라 걷는다. 구재봉 자락에 40만여 평에 달하는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 펼쳐진다. 들판 한가운데에 깃대처럼 서 있는 부부송(夫婦松)이 옛 친구 만난 듯 반갑다. 하덕마을에서 약 15분 걸으면 오른쪽에 ‘토지’ 촬영장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나온다. 이곳이 평사리 상평마을 입구다. 여기서 ‘토지’ 촬영장까지 10분 정도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토지’ 촬영장에 용이네, 판술네, 두만네, 월선네, 김훈장댁, 송관수네가 살았던 초가와 읍내 장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당에는 황소와 토끼가 살고, 곳간에는 장작이 그득하다. 사립문 옆에는 샛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목련이 탐스럽게 피었다. 텃밭에는 상추가 싱싱하게 자란다. 실제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관리한다. 일부 한옥은 민박집으로도 사용한다.
촬영장 바로 위에 2016년에 개관한 박경리문학관이 있다. 박경리의 유품과 작품,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 ‘토지’ 전질, 초상화 등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이른다. 서희가 자란 별채와 최치수가 머물렀던 사랑채가 그 모습 그대로다. 최치수인 양 사랑채 마루에 올라서서 평사리 들판을 굽어본다. 아득한 섬진강에 봄 아지랑이가 아롱거린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09:00~18:00, 연중무휴.
주변 명소 & 맛집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화개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화개장터다. 화개장터는 하동군과 전남 구례군과 광양시의 경계 지점에 있다. 한국전쟁 전만 해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각 지방의 토산물들을 사고팔았던 곳이다. 원래 위치는 화개천의 화개교 아래였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상설시장이 됐다. 시골 오일장의 구수한 정취는 사라졌어도 파는 물건과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지리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동 향토음식 전문점 ‘은성식당’
섬진강가에 자리한 은성식당은 하동 특산물인 재첩, 은어, 참게를 이용한 요리를 판다. 재첩국, 은어튀김, 참게탕이 인기가 많다.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을 넣고 맑게 끓인 재첩국은 하동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송송 썰어넣은 부추가 향긋함을 더한다. 집게다리에 털이 북슬북슬한 참게에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푹 끓인 참게탕은 구수한 맛이 별미다. 밑반찬도 모두 맛깔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섬진강과 차밭 풍광은 덤이다.
팥 전문 카페 ‘팥이야기’
하덕마을 입구에 있다. 도시에서나 볼 법한 이층 양옥이어서 눈에 금세 띈다.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고풍스럽다.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을 활용한 감각이 돋보인다. 대표 메뉴는 단팥죽과 팥빙수다. 작은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단팥죽의 당도가 적당하고, 팥의 풍미가 한껏 느껴진다. 식사 대용으로는 양이 부족하지만, 커피 한 잔 값에 맛있는 단팥죽을 맛볼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팥이야기에서 1분 정도 걸어가면 토속적인 분위기의 ‘타박네’ 카페(055-883-251)가 나온다. 팥소가 듬뿍 든 우리 밀 찐빵을 판다.
여행 정보 걷기 Tip
-위에 소개한 코스는 수도권 기준, 당일 여행이 가능하다. 대중교통으로도 가능.
-하동을 구석구석 여행하고 싶다면 주민공정여행 프로그램인 ‘놀루와’를 이용하면 된다. 하동 토박이가 여행 상담, 개별 맞춤 여행을 추천·진행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집 근처에 있던 금천교시장(현 세종마을 음식문화 거리)을 다니면서 맡았던 음식의 향기는 지금도 나의 후각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나의 음식 취향은 그 때 이미 결정되었는지 모른다. 간장떡볶이, 오징어 튀김, 감자를 으깨 만든 크로켓(고로케) 등등.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일부러 들러서 추억의 냄새를 맡곤 한다. 지금은 현대화되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후각 속에 간직된 기억은 어느덧 과거를 소환한다.
전통시장은 후각뿐 아니라 시청각적 즐거움도 함께 선사한다. 다양한 상품들이 무질서한 듯하지만, 사고 싶은 잠재적 욕구를 끌어내는 귀신같은 장사꾼 감각으로 진열되어 있다. 사려는 물건을 쪽지에 적어가고도 항상 유혹을 이기지 못해 무거운 장바구니를 끌고 돌아오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이유다. 그러나 장사꾼의 호객 소리마저 치어리더의 박수처럼 나의 과잉 선택에 갈채를 보내는 듯해 가책 없이 마음 뿌듯하게 돌아오곤 한다.
지금 사는 곳 부근에도 시장이 하나 있다. 다른 한적한 길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일부러 북적거리는 시장 한복판을 거쳐 온다. 늘 보는 주인장, 늘 듣는 장단, 늘 비슷비슷한 상품들,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다양한 시각적 자극이 주는 감흥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한 200m 되는 시장통을 걷다 보면 마치 재미있는 단편집 한 권을 읽은 듯 삶의 다채로움이 주는 매력에 빠진다. 나이 들어가면서 모든 게 그저 그렇고 삭막해져 가는 삶에서 시장은 나를 깨우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늙어갈수록 주변 공간은 ‘단조롭게’ 바뀐다. 갈 곳도 줄어들고 만나는 사람도 준다. 복잡한 곳에 갈 일은 더더욱 줄어든다. 게다가 눈에 들어오는 대부분이 낯이 익고 새로운 것이 없으니 호기심도 사라진다. 전통시장은 어쩌면 이런 노년의 삶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다시없는 장소가 아닐까 싶다.
시장은 늘 같은 것 같아도 매일 다르다. 가격이 달라지고 고객들 취향이 미세하게 바뀐다. 장사꾼들의 표정도 매일 다르다. 시장은 하루 하루 생명력을 갖고 약동한다. 그 변화를 눈치 채면 늘 흥미롭고 가슴이 뛴다.
출출하네! 오늘은 허리 굽은 할머니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유혹하는 바지락칼국수 한 그릇 먹고 가야겠다.
채우는 것이 곧 잘사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우고만 살아왔다면 물건 하나 버리는 게 쉽지 않지요.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채워왔다면 이젠 정리하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시간이 왔다고요.
내 옷장은 나를 잘 표현하고 있는가?
옷장 정리의 첫 번째 과정은 스스로 물어보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정리 방법이 있지만 물건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옷장 속 쌓여 있는 옷들을 보며 나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나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옷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고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보세요.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드나요?
잘 입는 옷 VS 잘 안 입는 옷
좋아하는 옷의 비중과 그렇지 않은 옷의 비중을 따져보세요. 옷장을 잘 관리하는 방법은 좋아하고 자주 입는 옷의 비중을 늘리는 것입니다. 관리가 잘 안 되고 입을 옷이 없는 분들은 좋아하고 자주 입는 옷보다 입었을 때 그냥 그렇고 잘 안 입는 옷의 비중이 높게 마련이지요. 이렇게 따져보지 않고 분류해보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지만, 좋아하는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나눠보면 생각보다 ‘입었을 때 그냥 그렇고 잘 안 입는 옷’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옷장은 주인을 닮는다
옷장 정리가 잘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삶에 따라 옷장을 정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옷장도 삶의 과도기에 따라 영향을 받고 변화합니다. 체중이 늘거나 줄고, 임신과 출산으로 환경이 바뀌고, 나이에 따라 취향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경력 전환으로 업무에 필요한 스타일을 요구받을 수도 있고요. 퇴직을 해서 더 이상 정장 바지와 재킷이 필요 없다면 옷장을 정리할 때입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한두 벌만 남기고 인생 2막의 삶에 맞는 새로운 옷으로 옷장을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TIP 1 비우기
비우기 바구니를 활용하자
그만 입어야 할 옷들을 골랐다 해도 이 옷들을 정말 버려도 되는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럴 때는 비우기 바구니를 활용하세요. 50cm×50cm×50cm 정도의 크기가 되는 박스를 준비한 다음 안 입는 옷, 앞으로도 안 입을 것 같은 옷을 바구니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옷들은 ‘진짜’ 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홀가분하게 집어 넣으셔도 됩니다. 그런 다음 옷장이 아닌 제 3의 장소에 보관합니다. 비우기 바구니에 넣은 옷 중에 필요한 옷이 있다면 다시 꺼내서 입을 수도 있지만(아마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6개월이 지나도 옷들이 바구니에 그대로 담겨 있다면 결정을 내릴 때가 온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면 1년 후에는 홀가분하게 떠나보내십시오.
‘아까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정하자
왜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냐고 물어보면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대답이 “아까워서”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제품을 구매했을 때의 기억만 가지고 아깝다고 합니다. 물건의 가치가 ‘사용함’에 있다면 사용한 뒤에는 가치를 재정의해줘야 합니다. 아까워서 나중에라도 먹겠다고 냉동실에 넣어 놓은 음식은 언제 먹을지 알 수도 없고 결국 안 먹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음식의 가치는 ‘가장 맛있을 때’에 있기 때문이지요. 옷과 신발, 가방을 가득 진열해놓기만 하면 무슨 기쁨이 있을까요. 입고 즐기려 사둔 옷들이 1년이고 2년이고 옷장에서 나올 일이 없다면 그 가치는 무엇인지 재정의할 때입니다.
부피가 작은 물건부터 정리하자
옷은 우리가 매일매일 착용하는 물건 중 덩어리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죠. 만만치 않은 부피의 옷들을 빼고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정리하려면 마음의 준비가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가장 작은 물건부터 정리해볼 것을 권합니다. 예를 들면 여성분들은 속옷이나 스카프, 남성분들은 넥타이부터 정리하면 좋습니다. 넥타이는 경조사용 1, 캐주얼용 2, 격식 있는 모임용 2개면 충분합니다.
TIP 2 채우기
홈쇼핑을 멀리하자
시니어가 자주 애용하는 쇼핑 중 하나는 홈쇼핑입니다. 그리고 타깃 고객은 대부분 40대 이상의 여성분들이죠. 홈쇼핑에서 물건을 샀던 분들은 아마 경험하셨을 겁니다. 화면에서 보던 옷이랑 알게 모르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요. 무료반품이라는 획기적인 서비스가 있지만 화면빨과 모델빨에 넘어가 구매한 그 아이템이 진짜 나를 위한 것일까요?
옷장 속 아이템을 파악하자
사고 보니 옷장에 비슷한 옷이 있었다는 옷장 괴담은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내가 어떤 옷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기에 벌어지는 일이지요. 똑똑한 쇼핑러가 되려면 옷장이 내 손 안에 있듯 훤히 꿰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슷한 옷을 ‘또’ 구매하는 실수를 막고 코디해서 입을 옷까지 고려할 수 있습니다.
옷을 구매할 때는 흰색 조명 아래서 입어보자
의류 매장에서는 대부분 따뜻하면서도 세련되게 비춰주는 누르스름한 빛깔의 조명을 씁니다. 이런 조명 아래에서는 옷 색깔과 디자인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습니다. 옷을 잘 고르는 팁은,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후 매장 안에 있는 모든 거울 앞에 서 보고 가급적 조명의 영향을 안 받는 곳에서 꼼꼼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매장에서는 괜찮았던 옷이 집에서는 영 그 느낌이 안 나는 것은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TIP 3 정리하기
나무 옷걸이를 사용하자
옷장은 옷을 보관하는 곳이지 옷을 쟁여두는 곳이 아닙니다. 나무 옷걸이는 옷걸이의 두께 때문에 옷을 촘촘히 넣어둘 수 없습니다. 반면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철 옷걸이는 빈틈없이 빽빽하게 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리할 옷이 많아도 그냥 걸어놓게 됩니다. 나무 옷걸이 사용을 추천하는 이유는 옷과 옷 사이의 공간을 확보해 옷장에 어떤 옷이 걸려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정리도 그때그때 할 수 있습니다.
수납박스는 2개 정도만 사용하자
그 계절에 입을 옷만 옷장에 놔두고 나머지 옷은 수납박스에 보관합니다. 그런데 수납박스가 너무 많으면 계절마다 옷을 꺼내고 넣어두는 작업이 즐겁지 않고 그야말로 ‘일’이 되어버립니다. 정리 과정이 쉽고 단순해야 힘이 들지 않습니다. 봄과 가을옷은 거의 같이 입으니 함께 분류하고 여름옷과 겨울옷 박스를 각각 하나씩만 준비해두면 옷 찾기도 쉽고 버릴 옷들을 쓸데없이 쌓아두지 않게 됩니다.
부부라도 옷은 분리해서 보관하자
부부의 옷을 함께 보관하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옷이 뒤섞여 있으면 정리를 해놔도 금세 다시 어지러워집니다. 부부라 해도 옷장은 따로 쓸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각자의 옷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확인이 가능하고 정리 여부를 판단하기에 좋습니다. 부부 옷을 아내가 관리하는 경우라면 남편이 잘 안 입는 옷(하지만 놔두라고 이야기하는)은 비우기 바구니를 활용해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 옷 어딨어?” 하고 물으면 비우기 바구니에서 꺼내주면 되고, 6개월이 지나도 옷을 찾지 않으면 속 시원하게 버리면 되니까요.
나에게는 조그만 여행용 가방이 있다. 벌써 몇 년째 충실한 동반자 역할을 하며 지구 반대편을 함께 다녔다. 서유럽, 북유럽 등 여러 나라를 다녔고 터키에도 10여 일이나 넘게 동행했다. 옛날에 가지고 다니던 가방은 좀 낡고 작아 새로 구매했는데 귀중품을 넣기에 적당한 크기여서 애용했다. 여행할 때는 어깨걸이 멜빵을 하고 허리띠에 끼워 덜렁거림을 방지하면서 도난의 위험을 막았다. 그렇게 몇 년을 함께했어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스페인 여행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철옹성 같았던 가방 문이 열린 것이다. 여행 중 가이드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소지품 조심하라는 말이다. 가방 속에는 여권, 신분증, 신용카드, 현금 등 귀중품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소지품을 잃어버리거나 도난당하면 어렵게 온 여행을 망치게 된다. 여권 없이는 꼼짝도 못한다. 유럽은 이러한 가방을 노리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떠돌이 집시들이 많다. 가난한 나라에서 넘어와 일자리 없이 방황하거나 쉽게 돈 버는 일에 빠져든다. 그래서 도난사고가 잦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없다. 내 가방이 안전하다는 믿음이 지나쳤던 걸까? 스페인의 유명한 관광지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꽃보다 할배’라는 모 TV 프로그램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누에보다리’에서였다. 신구 시가지의 경계인 120m 협곡에 놓인 다리 길이는 얼마 안 되었는데 아래로는 완전 벼랑이었다.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벼랑 위 양쪽에는 조그만 집들이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다. 카페도 있어 차를 한잔하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이 이 기이한 장면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나도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열중했다.
이때 어디서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저씨~” 마치 비명소리 같았다. “저 사람이 아저씨 가방에서 검은 지갑을 꺼냈어요~” 돌아보니 신혼부부처럼 보이는 젊은 남녀와 시어머니로 보이는 아줌마 한 분이 있었다. 그중 젊은 여자가 내 가방을 뒤졌다고 했다. 곧바로 외국인 3명의 신병을 확보한 뒤 뭘 가져갔느냐고 보디랭귀지로 따지니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다. 하지만 철옹성 같았던 가방 문은 아무 저항도 못하고 무기력한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가방 속을 살펴보니 다행히 지갑은 있었다. 일행 중 한 명의 외침을 듣는 순간 도로 집어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혼자 하지 않고 신혼부부나 가족처럼 여행객을 가장한 3인조 전문 털이범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행운이었다. 만약 지갑이 털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팔을 잠시 올렸을 뿐인데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그들은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주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작전 성공이었을 것이다.
여행 관련 격언이 떠오른다. “등 뒤에 있는 물건은 공동의 것이고, 옆에 있는 것은 나눠 쓰는 것이며, 앞에 있는 것만이 내 것이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리움’의 다른 말 ‘復古’ 이경숙 동년기자
조국을 떠난 지 한참 된 사람도 정말 바꾸기 힘든 것이 있다. 울적할 때, 특히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진다고 한다. 어려서 함께 먹었던 소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구는 많고 양식은 빈약하던 시절, 밥상에서는 밥만 먹었던 것이 아니었나보다. 둥근 상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 모자란 음식을 나눌 때 느꼈던 진한 가족애와 혈육의 뿌듯함이 DNA에 녹아들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마솥 누룽지, 지겹던 보리밥,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시래기죽도 각자의 추억과 함께 잊히지 않는 음식이 되어 ‘그것만 먹으면 내 병이 다 나을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 같다.
골목에 있는 만화방 주인은 청년이었다. 가끔 내게 만화방을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했는데, 대신 보고 싶은 신간 만화를 실컷 볼 수 있어 좋았다. 만화방 앞에는 약간의 학용품이 놓여 있어 그것도 팔아야 했다. 그날도 만화방을 봐준다는 명목으로 독서(?)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툭툭’ 쳐서 보니 군인 아저씨가 물건을 들고 얼마냐고 묻고 있었다.
그렇게 몰두할 만큼 만화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 만화방엔 안데르센 동화책도 많았다. 울적할 때면, 나는 동물들과 숲속 방앗간 짚 덤불에서 자던 소녀를 떠올리곤 했다. 샘물을 마시고 동물들과 대화하던 맑고 밝은 소녀가 아직도 가슴속에 있다. 지칠 때면 그 소녀가 가만히 내 창을 두드린다.
나팔바지를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듣던 말이 있다. “동네 다 쓸고 다닐 거니?” 어깨는 각이 지고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딱 맞고 바지통은 아주 넓은 디자인이었다. 그 시절엔 사실 유행이 일률적이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취향을 주장할 만큼 당당하지도, 식견이 풍부하지도 못했다. 개성을 개인적 취향으로 인정해주기보다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하던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좀 멋쟁이다 싶으면 일제히 미니스커트, 일제히 맥시스커트를 입는 그런 분위기였다. 어찌 보면 마치 유니폼을 입은 것 같았다.
테이블마다 달랑대는 조명등이 달려 있거나, 촛불을 켜는 낭만적인 카페도 많았다. 종종 작은 무대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술이 아니더라도 20대는 늘 무엇인가에 취해 있었다. 쉽게 흥분하고 자주 슬펐던 우리들의 20대. 끝도 없는 논쟁으로 밤을 새우고, 모든 게 다 진지하기만 했던 시절.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사랑 얘기를 쉼 없이 되풀이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모두 정의의 순교자라도 되고 싶어 했다.
미팅 땐 생맥줏집, 볼링장, 극장엘 갔다. 애프터 미팅은 카페에서 만나 주로 비원이나 경복궁, 덕수궁을 걸었다. 가난한 젊은 커플들은 버스를 타고 종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추억들에 젖어보기 위해 옛 시절을 떠올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복고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자니 심심하고 무미건조해 그리움이라도 불러와 옛 필름들을 다시 돌려보고, 식어버린 가슴을 조금이라도 데워보려는 것이다.
벼룩시장에서 보물찾기 윤종국 동년기자
“내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이 말을 엄청 좋아한다. 난 늘 나를 생각한다. 나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다. 그러나 머리는 크다. 표준 사이즈로 옷을 고르면 거의 맞는 게 없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곳이 있다. 30여 년은 족히 된 듯하다.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먼저 알려준다. 바로 ‘벼룩시장’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이 있는 곳이다. 옛날에는 청계6·7가에 있었고, 지금은 동묘(동대문구) 일대에 시장이 형성돼 있다. 벼룩시장에서 레트로를 본다. 내게는 수만 가지 물건이 레트로 대상이다. 한 달에 두세 번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간다. 내 작은 체구를 잘 알기에 어울리는 옷도 찾아본다. 손에 주로 들리는 옷은 복고풍의 외투다. 벼룩시장에서 입수한 옷은 꼭 수선 집을 거친다. 그래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없는 게 없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덤빌 곳은 또 아니다. 내게는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다. 레트로를 사랑하려면 요령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레트로인이 된다. 예를 들면 맘에 드는 복고풍 옷을 하나 발견했다 치자. 구매의사가 있을 경우 먼저 입어보고 가격을 흥정하면 초보자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구매자 몸에 어울린다 싶으면 가격이 달라진다. 가격 매기기는 벼룩시장 주인들만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먼저 가격을 물어본 다음에 흥정을 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설사 맘에 들더라도 그 맘을 들키면 절대 안 된다. 그래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또 하나의 팁. 다른 물건에 관심이 있는 척하다가 진짜 맘에 드는 물건을 들고 슬쩍 “이건 얼마죠?” 하고 물으면 점포 주인은 대부분 낮은 가격을 부른다. 이것이 지혜롭게 레트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수년 전 딸아이가 벼룩시장이 궁금하다며 따라나섰다. 그날 지나다 발견한 물건은 흙이 묻어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신발이었다. 신을 만해서 단돈 5000원에 손에 넣었다. 집에 와서 닦고 손질해보니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고가 브랜드 신발이었다. 딸아이가 좋아라 했다. 내가 벼룩시장 마니아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 그날이었다.
한 달 전 큰손주의 생일이 있었다. 그날을 위해 몇 번이나 벼룩시장을 찾아 헤맸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찾기 위해서다. 신제품도 생각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크는 녀석의 발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선물로 선택한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전국, 특히 서울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붐이 일었다. 그러다가 아파트 내에서 어린이 안전사고가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슬쩍 사라져버렸다.
벼룩시장을 갔던 날, 다행히 손주에게 맞을 것 같은 인라인스케이트를 발견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일단 가격부터 묻고 사이즈를 확인한 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손주 발 사이즈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주인의 눈치도 살폈다. 발 사이즈가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듯 대화를 나눈 뒤 주인과 흥정을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격으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이런 요령을 터득해야 비로소 벼룩시장의 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비하니 새 물건보다 더 정감이 갔다.
손주 생일에 인라인스케이트를 건네주며 “지금은 키가 부쩍부쩍 크는 나이니까 일단 이것으로 먼저 타는 연습을 하자”라고 말했다. 갖고 싶어 했던 거라 그런지 손주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나는 손주바보 할아버지에서 멋진 할아버지로 거듭났다.
옛것들에서 한 수 배우며 사는 삶 육미승 동년기자
“넌 조금만 더 나중에 태어났더라면 뭔가 해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심심찮게 이런 말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민망하지 않은 표정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짓는다. 친구들 말은, 내 패션이나 생각 그리고 사는 방법이 자기들과는 전연 다르다는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레트로가 내 생활이니….
특히 패션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옷을 살 때 겉옷은 지금 당장 유행을 타는 것들 중 나중에도 입을 수 있고 멋지게 소화해낼 수 있는 디자인을 고른다. 그리고 다른 옷들은 옷장 문을 열어 예전에 신나게 입고 즐겼던 옷들에서 선택한다. 그날의 모임 콘셉트에 맞고 남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도 유행에 뒤떨어짐이 없는 은은한 멋을 지닌 그런 의상을 즐기는 거다. 나는 옛것을 너무 좋아한다. 옛것들 버리지 않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는 나를 보고 “어머 얘, 너무 잘 어울린다아~’ 하고 해주는 말들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
회상하고 추억에 빠지는 시간은 천천히 꼼꼼하게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인연이 끝나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마음 한구석에 감춰두고 있다. 어느 날 그들과의 추억을 꺼내 감상하는 게 내 취미다. 나는 옛것들은 대부분 귀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가끔은 그동안 읽었던 책 속에서 또는 영화 속에서, 예를 들면 사마의 같은 중국의 책사들에게 한 수 배우길 희망한다. 그 놀라운 생각의 회로를 닮아보려고 혼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젊은이들. 그 두뇌를 못 따라가는 나는 느린 사고방식이 편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단 한 번도 싸워보질 못했다. 갈등이 일어날 것 같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게 내 모습이다. 져주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할 때도 나를 뺀 모든 관계자들이 편한 쪽으로 해답을 구한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나를 길들이며 살아왔기에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지인들은 불똥이 내 발 바로 앞에 떨어져도 “이게 뭐지?” 하며 그제야 슬쩍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며 핀잔 섞인 말을 한다.
그렇다. 나는 오래 생각하며 말없이 기다린다. 특히 답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끝까지 기다린다. 엉망으로 뒤섞여버린 물을 가만히 두면 침전물들이 여러 층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맨 위로 올라온다. 내 앞의 문제도 그렇게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 마치 무위이화(無爲而化)하듯 저절로 아주 유효하고 명쾌한 답이 나온다. 그 신기함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이것이 바로 레트로의 진가라고 믿는다. 새로운 기술과 기교도 좋지만 옛 성현들의 말씀에서 더 많은 답을 찾는다. 레트로는 내 단짝이다. 한 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복고 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찾아내는 마음으로 패션, 음악, 미술,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즐기며 여유작작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레트로는 ‘마음의 휴식’이다 손웅익 동년기자
1980년. 그 해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다. 건축과 학생들 중 건축설계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 모인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회원들은 매년 몇 달씩 동아리방에서 합숙을 하며 건축 작품전을 준비했다. 식사는 2학년생들이 돌아가면서 전체 회원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학생들이 만든 밥은 그야말로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을 수밖에 없는 정도의 상태였다. 그런 식사로 몇 달 합숙을 하다 보니 대부분 건강이 나빠졌다. 1980년의 교정은 봄부터 최루탄으로 뒤덮였다. 수업도 대부분 휴강이었다. 그렇게 혼란한 상황에서도 건축과 동아리 회원들은 밤낮으로 모여 작품전을 준비했다. 대체로 밤에 설계를 하고 낮에는 잠을 잤는데, 그 와중에도 매일 데모하러 나가는 회원도 있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들은 최고참이라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저녁에 가끔 학교 앞으로 나가 막걸리도 한잔씩 했다.
그날도 4학년 동기들은 동아리방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학교 앞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4학년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에는 학교 교문 근처 문방구점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봤다. 당시 텔레비전은 다 흑백이었다. 그런데 선발대회 중에 화면 아래쪽으로 대학교를 폐쇄하겠다는 자막 뉴스가 떴다. 합숙 중이었던 우리는 얼른 짐을 챙겨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학교로 들어가려는데 어느새 장갑차가 교문을 지키고 있었다. 1980년 5월 15일이었다. 17일에는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5월 18일.
그 해 우리가 준비했던 5월 전시회는 무산되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면서 집회는 일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회원들 집에서 만나 작품전 준비를 했고 가을에 전시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해서 내 임기 중에 전시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또 왔고 어느 날 술친구들이 중국집에 모였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고량주를 마시면서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그날은 우리나라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컬러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당시의 자료를 찾아보니 1980년 12월 22일 이었다. 우리는 컬러로 텔레비전을 보면 중국 영화처럼 피가 난무하는 장면은 너무 살벌할 것 같다는 둥, 연예인들이 옷을 더 화려하게 입을 것 같다는 둥 이런저런 추측성 대화를 나눴다. 그날 그렇게 흑백텔레비전 시대가 종료되었고 내 학창 시절도 저물어갔다.
얼마 전에 영화 ‘로마의 휴일’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다. 오래전에 갔던 로마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옛날 영화를 보다 보면 흑백 화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흑백이라서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도 없다. 오히려 로마의 유적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상상을 자극하는 것 같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컬러 사진이 보편화하기 전의 흑백 사진들은 그 분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신비로움이 있다. 흑백 사진을 손에 들면 사진을 찍던 순간으로 순식간에 되돌아가는 듯하다. 흑백이라는 무채색의 아름다움은 그래서 복잡하고 바쁘고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휴식을 주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현란한 색과 형태 그리고 자극적인 소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정보의 홍수와 자극의 파도를 견디려니 모든 감각기능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이런 현실에서 흑백은 잠시나마 여백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눈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편안해진다.
나는 새벽안개를 좋아한다. 특히 두물머리의 새벽안개는 한 폭의 수묵화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새벽에는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변한다. 안개의 농담(濃淡)으로 그려놓은 수묵화는 화려한 가을날의 유화 같은 풍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다. 그 여백은 흑백 사진처럼 아련한 시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요즘 펜화 스케치를 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곤 한다. 검은색으로만 그림을 그려놓고 원본의 컬러와 비교하면 흑백이 가진 깊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가끔 의식적으로라도 흑백의 세계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흑백은 레트로다. 나는 레트로에서 마음의 휴식을 찾는다.
이브의 잃어버린 반쪽은 아담이 아닌 보석이었다. 아담은 보석을 나르는 심부름꾼일 뿐이다.
이브는 각설탕처럼 강한 것 같아도 약하기 짝이 없다. 커피에 들어가면 맥없이 녹듯이 보석 앞에서 이브는 녹는다. 이브 마음속의 우선순위는 아담의 생각과는 딴판으로 옷, 구두, 가방. 화장품. 두꺼운 신용카드다. 아담은 이브의 마음 끝 쪽에 존재한다. 이브를 녹인 보석의 실체를 알아보자.
지구상에 존재하는 보석(寶石)의 종류는 약 108가지 정도 된다. 보석의 ‘석’은 돌을 뜻하지만 다 같은 돌은 아니다. 보석과 잡석은 기준이 있다. 보석은 모스(Mohs) 경도 7 이상 이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돌을 같은 용기에 넣고 돌리는 작업을 덤블링(tumbling)이라고 하는데 돌릴 때 돌 끼리 부딪친 면이 마모가 되어 광이 나면 보석이고 깨져서 거친 면이 나오면 잡석이다. 보석이 갖추어야 할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석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답지 않으면 여인들의 눈길을 끌 수 없다. 루비나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 유색 보석은 선명하고 매혹적인 색상이어야 한다. 다이아몬드 같은 무색은 찬란한 휘광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누구나 소유 할 수 있어 희소성이 없으면 보석으로 매력이 없다.
보석에는 치료백신 없는 바이러스가 있다?
아직 학계(?)에 보고 된 바는 없지만 사망에는 이르지 않지만 매우 중독성 강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증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적인 증상은 이렇다. 뇌신경 계통에 침입해 활동을 하여 정상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킨다. 잠복기에는 증상이 약하여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남자친구가 “눈감고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라고 하면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맥박이 갑자기 수직상승 합니다. 보통 건강한 사람은 맥박수가 70회/1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분당 90회로 상승한다. 잠시 후 손으로 눈을 가린 여성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로 남친 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 것을 알면 맥박은 100회로 상승한다. 작은 박스를 열고 “눈 떠봐!” 하면 110회로 상승한다. 박스 속에 들어있는 반지에서 내뿜는 보석의 광채가 여성의 눈동자를 타격하면 맥박은 120회로 상승한다. 그리고 바이러스는 급격히 증식하여 뇌에서 활동하여 정상적 사고기능이 마비된다. 여성은 입술모양의 립스틱 판화를 남친 볼에 쪽, 쪽, 소리를 내며 마구 찍어낸다. 약간의 실어증을 동반하여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 못하고 그저 “어머, 나, 어쩜 좋아?”를 연발한다. 물론 안면 근육의 마비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어떻습니까? 이 바이러스 무섭지 않나요? 네? 하나도 안 무섭다고요? 반대로 그런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다고요? 이 바이러스의 학명은 ‘이브바이러스’입니다. 역학조사에 의하면 사랑하는 남녀사이에서만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하는 물건을 통하여 전염되지만 특히 보석으로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제일 강합니다.
“하나님 왜 이브의 마음 속에 아담은 없나요?” 아담의 질문에 하나님은 답하셨다. “아담아! 아둔한 너의 지혜로는 이브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아담은 다시 질문 하였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은 “미끼를 써라. 보석이라는 미끼를 쓰면 이브를 앉아서 얻을 수 있다.” 현자 고산 윤선도는 어부사시사 동사(冬詞) 3편 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밋기 곧 다오면 굴근고기 문다한다.(미끼가 좋으면 큰 고기를 낚을 수 있다)”
죽음은 생의 마지막이지만, 죽음과 관련해 늘 최초란 수식어가 붙는 사내가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유품정리인으로 활동했고, 최초의 유품정리 회사를 창업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품정리라는 생소한 분야의 정보 중 상당수는 그의 입과 글을 통해 나왔다. 김석중(金石中·49) 키퍼스코리아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창업 8년 만에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라는 책을 펴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유품정리 개념이 도입된 이후 우리 사회 문화는 많이 달라졌는지 김석중 대표에게 물었다.
“멍밖에 안 들었어요.” 기대 밖의 대답. 유품정리라는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 대표는 누구나 아는 그 인물이 아닌가? 관련 기사만 검색해도 방송과 신문, 잡지를 막론하고 그와 회사 이름이 오르내린다.
“국내의 유품정리 분야는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유품정리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것은 ‘유품정리인은 보았다’라는 책을 번역해서 출간했을 때였어요. 당시 이 책은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지요. 하지만 미디어의 관심은 고독사 같은 자극적인 주제에만 집중됐어요. 왜 우리가 유품정리를 해야 하는지, 죽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없더라고요. 그 후 국내 유품정리 산업은 ‘청소’의 한 분야가 되어가고 있어요. 유품정리를 서로 다른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죠.”
제일 좋은 것은 직접 하는 것
유품정리는 고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김 대표는 정의한다. 유품은 망자가 죽기 전까지는 그의 소유이기 때문에 타인이 정리할 수 없고, 사망 후에는 상속 권한을 가진 유족만이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처분할 수 없는 법적 배경을 갖고 있다.
아울러 유품은 한 사람의 삶이 담긴 기념물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본에는 고인의 유품을 추억이 담긴 기념품으로 소중히 여기고, 이를 친척이나 친지에게 나눠주는 카타미와케(かたみわけ)라는 문화가 있다. 이러한 일본에서 유품정리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유품정리는 결국 유족들이 고인의 물건을 처리하는 과정이다 보니 남은 사람들에게 짐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일본에서는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활동인 종활(終活)의 하나로 생전정리를 일상화하고 있어요. 이에 반해 우리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접하는 것을 너무나 금기시해요. 죽은 사람의 물건이라면 다들 찜찜해 하잖아요. 빨리 치워버리려 하고요. 그러면서도 유명인의 유품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하죠.”
실제로 국내의 유품정리 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 상당수는 중고품 판매업자나 폐기물업자가 많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평당 단가를 매겨 고인의 짐을 쓸어간다. 이후 값나가는 물건을 찾는 ‘보물찾기’를 거친 후 돈 안 되는 것은 모두 버린다. 환가(換價)할 수 없는 것들은 거기 담겨 있는 것이 추억이든, 학술·예술적 가치이든, 중요한 정보이든 상관없이 처분한다.
그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직접 해보라”며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생전정리는 필요해요.평소엔 관심조차 없었던 생전정리를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일 거예요.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버릴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게 조금씩 정리하다 보면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 알게 되죠. 유족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물건을 남기고 버릴지 직접 고민하는 과정에서 고인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깨닫게 되지요. 남은 가족을 귀하게 여기는 계기도 되고요.”
일본에선 스스로 조금씩 정리를 하다 마지막이 다가온 것을 느끼면 유품정리 회사에 예약하는 경우도 많다. 자식이 있어도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 키퍼스코리아에서도 이런 예약을 받는다. 김 대표는 “때가 되면 와 달라는 약속의 의미이지 구체적인 계약의 개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할수록 돈 까먹는 일
김 대표가 유품정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회사 직원이 사고로 세상을 떠서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일본의 유품정리회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일본인 지인을 통해 다큐멘터리 주인공이자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회사 키퍼스를 설립한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 사장을 만나 의형제 같은 사이가 됐다. 김 대표의 진심을 알게 된 요시다 사장은 지금까지 후견인을 자처하며, 한국 직원의 일본 연수, 소모품 지원과 같은 사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후원했다.
하지만 2010년 시작한 김 대표의 유품정리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현실은 냉정했다.
“제대로 유품정리를 하려면 현장에 직접 가서 견적을 내야 해요. 하지만 현장에 가서 견적을 내면 비싸고 번거롭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한 상조회사와 MOU를 맺고 유족의 의뢰를 받았는데, 6년간 실제로 성사된 건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사업을 할수록 손해만 봤어요. 결국 견적을 내기 위해 교통비만 허공에 날린 셈이 됐죠.”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유품정리 과정은 매우 철저하다. 유족에게 의뢰를 받으면 기본적으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판단하는 시간이 걸린다. 유언장이나 권리관계 계약서, 귀중품 등뿐만 아니라 후대에 남길 가치가 있는 유물이나 추억이 담긴 물건까지 골라낸다. 이 과정에서 유족과 상담이 이뤄지고 필요할 경우 법적 절차나 세무 처리가 진행되도록 돕는다. 이러다 보니 비용도 올라간다. 일반 이사 비용의 2배 정도다.
하지만 집을 상속받아 내용물을 빨리 비워내고, 신속하게 처분하길 원하는 유족이라면 이러한 과정이 맘에 들 리 없다. 그의 유품정리 사업이 국내에서 번창하지 못한 이유다. 그나마 일이 들어와도 현장에서 천대받기 일쑤다. 자살한 사람의 유품을 정리하러 갔다가 건물주에게 “죽어 나간 집이라고 소문내는 거냐”며 손가락질에 야유까지 받는 상황은 예사다.
관련 사업 중 그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치매 등으로 인해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떠난 부모의 짐을 치워 달라는 의뢰다.
“집을 팔아 상속세를 아껴보려는 분들이 연락을 합니다. 이런 경우 성년 후견인 지정이 되어 있어야만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는데 무작정 맡기려는 분들이 있죠. 법적 절차 없이 물품을 처분하면 불법입니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유품정리 알리는 일, 계속할 것
결국 2010년 창업 후 키퍼스코리아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었다. 전용 차량도 있었고 일본에서 연수까지 마친 직원들로 팀을 구성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익 창출이 잘되지 않았다. 차량은 매각됐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는 동안 가슴에 멍만 들었다.
김 대표는 키퍼스코리아를 창립하기 전부터 해왔던 항공사용 기내 서비스 물품이나 기업체 식·소모품 등을 납품하는 회사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입은 여기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 10년 전쯤엔 사업을 꽤 크게 벌였지만, 유품정리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이 사업마저도 상당히 축소된 실정이다.
“키퍼스코리아는 1인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의뢰가 들어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 과거에 함께 일본 연수를 받았던 경험자를 불러 함께 처리하는 방식이죠. 이제는 견적 의뢰가 오면 먼저 설문 문항을 보내드려요. 직접 가지 않고 비용을 산정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항목이 24개나 되다 보니 설문만 보고 포기하는 유족도 있답니다.(웃음)”
하지만 그렇다고 유품정리에 대해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를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어요. 10년 이상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왔잖아요. 누군가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한다면 내가 밟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리고 생전정리에 대한 마음도 바꿨어요. 업계에 회사들 많은데 꼭 내가 직접 생전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나? 다른 회사들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죠. 그렇게 유품정리인이자 전문유족으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책도 썼고 앞으로는 죽음 연계 교육도 해보려고 해요. 몇 분이라도 모아놓고 자서전 쓰기 활동과 더불어 자기성찰을 돕는 키퍼스 노트의 국내 소개도 계획하고 있어요.”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요즘. 빠르고 편리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장을 보는 맛’은 좀 떨어진다. 덤도 주고, 떨이도 하고, 옥신각신 흥정도 하면서 정이 쌓이는 건 장터만의 매력일 테다. 사진만 봐도 따뜻한 인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한국의 장터’를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한국의 장터’ 정영신 저 자료 제공 눈빛
전국 오일장을 한 권에
저자 정영신은 1987년부터 시골 장터를 기록해온 사진가이며 소설가다. 그동안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 ‘정영신의 장터’와 저서 ‘시골 장터 이야기’ 등을 통해 직접 발로 뛰며 포착한 우리 장터의 모습을 공개했다. 특히 ‘한국의 장터’에는 전국 오일장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470여 페이지에 묵직하게 담겨 있다. 총 9개 도로 구분하고, 다시 군으로 분류해 정리한 전국 대표 오일장 82곳을 소개한다.
430여 장으로 만나는 시골 장터 풍경
경기도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전국 오일장의 생생한 모습을 다양한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430여 장에 이르는 사진이 모두 흑백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컬러 사진보다 오히려 시골 장터 특유의 투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잘 드러나는 듯하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국밥, 날개를 퍼덕이는 장닭, 반들반들 기름기가 도는 부침개, 가격을 흥정하는 사람들의 손짓 등 생동감 넘치는 장터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상인들의 애환에 귀를 기울이다
저자는 단순히 장터 정보와 사진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인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냈다. 포천 적성장 무말랭이 할머니, 충남 금산장 붕어빵 아저씨, 음성 무극장 뻥튀기 할아버지 등 장터 상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려준다. 고단한 일상을 살면서도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삶의 터전을 일궈가는 그들의 사연을 읽고 나면, 사진 속 상인들의 표정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게 된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훈훈해지는 마음이 어느새 우리의 발걸음을 장터로 옮겨놓는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01
장터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2012년에 출간된 책이기 때문에 가장 최근의 사진은 6년 전이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진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유행이 달라지며 사람들의 차림새만 조금 달라졌을 뿐, 사진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직접 때를 맞춰 오일장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몇몇 곳은 현재 장이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 미리 확인 후 방문하도록 하자.
plus 02
‘전통시장 통통’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전국 오일장을 비롯한 전통시장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 이름은 물론 지역별 또는 특정 품목명으로도 검색 가능하다. 점포수를 토대로 한 시장의 규모, 주소, 주요 취급 품목, 주차장·화장실 등 편의시설, 온누리상품권 가맹 여부 등을 알려준다. 이 밖에 외국인과 함께 가볼 만한 ‘글로벌 명품시장’, 상품·교육·문화를 동시에 소비 가능한 ‘지역선도 시장’, 관광·예술을 접목한 ‘문화관광형 시장’ 등 특성화 시장도 소개한다.
plus 03
일부 지역 관광지 할인, 온누리상품권(5000원권)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팔도장터관광열차’를 이용해보자. 올해에는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전통시장 20곳을 선정해 11월까지 총 65회 운영할 예정이다. 휴가철인 8월에는 3~4일 강릉중앙시장·강릉문화재야행, 11일 단양구경시장·고수동물, 26일 대전중앙시장·영동포도축제 일정이 마련돼 있다. 예약은 코레일관광개발 홈페이지와 콜센터,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 속담에 ‘몸꼴 내다 얼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날씬한 몸을 더 돋보이려고 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는 추위에 얼어 죽는다는 뜻이다.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은 아이들이나 스타킹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에게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모양은 덜해도 실속은 차려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가정에서 전기분전반은 겨울에 입는 내복처럼 꼭 필요한 물건인데 미관상 보기 싫다는 이유로 신발장, 옷장 등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했다. 평소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집주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또한, 화재가 발생해도 분전반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방해물이 있어 신속히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분전반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사람은 잠을 자도 일 초도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 가정의 전기안전을 위해 보초를 서는 누전차단기와 과전류차단기가 있다. 누전차단기는 전선의 피복이 벗겨지거나 가전기기에서 누전이 일어나면 기가 막히게 알아내서 전기를 차단해 버린다. 과전류차단기는 전기가 합선되거나 용량을 초과하여 사용하면 동작하여 전기공급을 막아버린다. 이런 전기보호장치가 없었다면 온통 전기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두 다리 펴고 잠을 자지 못한다.
이런 전기안전 보호장치가 들어있는 전기분전반을 미관상 보기 싫다고 숨기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미관보다 안전이 먼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설비의 안전기준을 정하고 있는 ‘전기설비기술기준의 판단 기준(제171조)’을 개정하여 주택용 분전반을 노출된 장소에 시설하도록 장소를 구체화함은 물론 불연성, 난연성 기준도 명확히 하였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발표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7년도에 우리나라에서만 총 화재 4만4178건 중 전기화재가 8011건(점유율 18.1%)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217명(사망 32명, 부상 185명)에 달한다. 전기 감전으로 인한 사고를 당한 사람이 532명(사망 19명, 부상 513명)이나 된다.
사고는 대부분 은폐되고 숨어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쓰레기를 몰래 투기하고 숨어서 소변을 보던 뒷골목에 보안등을 켜서 환하게 밝히면 대부분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어진다. 미관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짧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됐다. 어린이집 등하교버스에서 미처 못 내린 아이가 뜨거운 열기에 숨을 거두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던 체력 약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열에 숨지기도 했다. 강렬한 햇볕이나 뜨거운 열에 장시간 노출되면 열사병에 걸릴 수 있다. 열사병은 고온 환경에 체온조절중추신경이 마비되어 생기는 병으로 40℃ 이상의 고열, 두통, 어지러움, 메슥거림, 평형장애가 오다가 혼수상태나 환각상태로 빠지고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물놀이 중 익사 사고의 50% 이상이 보호자의 부주의나 자신의 수영 능력을 과신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물놀이 전 충분한 준비운동을 하고 심장에서 먼 발, 다리, 얼굴, 가슴 순서로 몸을 적신 뒤 튜브와 구명조끼 등 물놀이용 안전용품을 착용하고 물에 들어가야 한다. 수영은 식후 30분이 지나 하는 것이 좋다. 바다 해수욕장의 기온이 상승하면 독성 해파리가 출현할 수 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개인 휴대폰으로 폭염주의보를 알려주고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리면 낮 12시부터 5시까지 허약자라면 외출을 삼가야 한다. 외출 중에 너무 더우면 지자체에서 미리 선정해 둔 인근 건물 더위쉼터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를 권한다. 덥다고 탄산음료나, 알코올, 카페인이 들어있는 음료를 마시는 것보다는 물을 자주 마셔 체온조절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아울러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를 쓰는 습관을 갖는다.
전기는 담아갈 용기도 필요 없고 쓰고 나서 재처리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편리한 전기를 함부로 다루다가는 감전이나 화재 사고가 일어난다. 선풍기 회전날개에 아이가 손가락을 다치거나 콘센트에 호기심으로 젓가락을 꼽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선풍기 보호망을 씌우고 콘센트용 안전커버를 해야 한다.
최근에는 전기를 사용하는 캠핑용품이 많이 제조되어 판매되고 있다. 정부로부터 형식승인을 받은 제품인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전원으로 차량의 전기를 이용하기도 하고 인근의 업소용 전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전기를 만지려면 전원 스위치를 반드시 내리고 손을 대야 한다. 여름철에는 몸이 땀에 젖어있고 얇은 옷을 입거나 벗은 상태도 많기 때문에 감전의 위험이 더 높다. 피복이 벗겨진 전선이나 깨진 콘센트도 사람이 충전부에 접촉하면 감전사고를 당할 수 있다. 전기충격에 놀라 넘어지면서 상해를 입거나 다른 물건에 피해를 주는 2차 피해도 조심한다.
폭염으로 인해 바깥 기온이 30℃가 되면 자동차 실내는 온도상승이 최고 85℃까지 상승한다. 이런 고온으로 자동차 안에 둔 일회용 가스라이터, 휴대폰 배터리가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자동차 안에 이런 물건을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전기자동차는 여름철 장거리 운행 중에 가끔 그늘에 주차해 배터리를 식히는 게 좋다.
건축 공사장에서도 주의를 해야 한다. 더우면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평소 같으면 알아차릴 위험 분위기도 주의력이 떨어져 모를 수가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리한 작업을 하다가 아차 한 번의 실수로 공사는 중단의 위기에 놓인다. 그렇게 공사 기간 단축을 하려고 한 일이 오히려 공사 기간을 더 늦추는 등 마감 일정에 발목 잡히기도 한다. 아주 무더운 날은 과감하게 공사를 중단하고 쉬어가는 여유를 갖는 것이, 길게 보면 더 빨리 공사를 완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