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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아이들의 마지막 산타클로스
-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딸 둘을 키웠는데 3년 터울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엔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끼리도 서로 선물을 나누며 감사와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인디언 핑크 스웨이드 천을 잘라서 손바느질로 고리가 달린 버선을 두 개 만들었다. 버선엔 각자의 이름을 흰 실로 수놓고 테두리 마감 스테치도 한 땀 한 땀 공을 들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한 달 전쯤부터 이층 침대에 걸어두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거나 양보나 배려가 부족할 때는 크리스마스에 올 산타할아버지를 불러내 긴장을 시키곤 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해마다 필자가 몰래 넣어주는 선물을 기다렸다. 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들은 평소 갖고 싶은 물건 이름을 적어서 버선 속에 넣으면 산타할아버지가 보시고 선물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기대에 가득 차 삐뚤빼뚤 글씨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필자는 아이들 몰래 메모지를 꺼내 보곤 혼자 나가서 선물을 사고 포장도 했다. 그리곤 커다란 장바구니에 숨겨 집으로 돌아온 후 살짝 안방 장롱에 숨겼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엔 기대에 들떠 잠도 자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자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면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나 하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날 늦게 귀가한 남편이 현관 벨을 누르자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비어 있는 버선 속을 보며 거의 울상이 되어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이 착하지 않아 선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남편이 기발한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이미 일어났으니 선물을 넣을 기회는 놓쳤고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남편은 버선 속에 몰래 메모지를 넣었다. 아빠가 썼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왼손으로 쓴 글씨의 메모지였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다. 거실 두 번째 서랍장을 보아라.’ 아이들은 울다가 깜짝 놀랐다. 흥분한 아이들은 거실로 도토리처럼 굴러갔다. ‘흐음, 잘 찾았구나! 착한 아이들아.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피아노 뚜껑을 열려고 또 뛰었다. ‘이것도 잘 찾았구나! 이번엔 세탁기를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다용도실로 뛰었다. 그리곤 환성을 터뜨렸다. 세탁기 속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 보따리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다소곳이 들고 거실로 돌아온 아이들 얼굴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음 날 학교와 유치원에서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게 된 듯 울먹이며 내게 안겼다.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대요. 맞아요?” 지난 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던 행복했던 순간을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모두 그런 할아버지는 없다고 해서 자기만 있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한 필자는 고민하다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절망하며 슬퍼했다. 그 후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누던 따스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용돈을 모아 조몰락거리며 서로의 선물을 준비했다. 서로에게 산타가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동화 속 마지막 산타할아버지는 떠났지만 그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이브는 영원히 아이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 2016-12-0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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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를 위하는 게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다
- 필자가 잘하면 세상살이가 다 잘될 줄 알았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필자가 모범을 보이고 반듯하게 살아가면 저절로 식구들이 따라오고 가정은 화목하고 만사는 형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필자가 정한 룰(rule)대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필자만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입을 닫아버린 아내와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젊었을 때는 몰랐다. 그러던 중 필자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후배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후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다가 큰 결심을 하고 야간 대학원에 진학했다.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도 받고 공업고등학교 교사로 전직하면서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다. 야간에는 대학에서 시간강사로도 뛰었다. 후배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존경스러웠다. 당연히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멋진 남편이자 자랑스러운 아빠일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아빠를 보고 자라는 자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 또한 상위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 부인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고 풀이 죽어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들은 눈만 뜨면 공부만 하는 아버지 모습에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아내도 남편이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하지 않고 놀러가지도 않으면서 언제나 공부하는 모습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남편이 존경스럽다가도 어느 날은 답답해서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은 충동도 든다고 했다. 뛰어난 선수는 훌륭한 코치가 되기가 어렵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해냈는데 너는 왜 못하느냐?” 하고 선수를 질책해서 선수들이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후배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를 본받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다그치기만 했다. 결국 아이들은 밖으로 나돌았고 아내는 중간에서 샌드위치가 되어 늘 노심초사했다. 후배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자식의 마음을 못 읽었고 아내의 마음도 얻지 못했다. 결국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한 가장이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다. 가정이 화목하려면 가장은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짐승들의 수컷은 씨만 뿌리지 새끼는 돌보지 않는다. 원래 좋은 아버지란 없다. 좋은 남편이 좋은 아버지다. 자식에게 잘하려 하지 말고 아내에게 잘하라는 말이 있다. 아내도 따지고 보면 남이다. 남에게 존경받으려면 남을 섬겨야 한다. ‘크려거든 남을 섬겨라(慾爲大者 當爲人役)’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아내로부터 존경받고 대접받으려면 아내를 먼저 섬겨야 한다. 필자는 아내를 섬기기 위해 세 가지에 주안점을 두고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가정의 화목은 물론 필자도 돌보고 있다. 첫째, 아내를 항시 앞에 내세운다.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라 해도 식성은 각자 다르다. 필자와 딸은 바닷고기인 회를 좋아하지만 아내와 아들은 소고기 같은 육지 고기를 좋아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또 달라진다. 외식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메뉴를 통일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필자가 가장이고 돈을 내니까 ‘나를 따르라’고 하지 않는다. 필자는 무조건 아내를 앞세운다. 아버지의 권위로 자식들에게 한마디 한다. “너희들은 젊다. 앞으로 좋은 것 먹을 기회는 많다.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으로 음식을 정하자.” 필자를 따르라고 했으면 독재 운운하며 뒷말이 나왔을 테지만 아내를 앞세우니 뒷말이 없다. 그러면 아내는 미소 지으며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택한다. 명분과 권위는 아내가 가졌지만 실리는 필자가 챙기는 것이다. 이렇게 아내의 권위를 세워주면 아내는 필자의 배려에 화답하듯 “아버지 의사를 물어보고 결정하자”며 이번에는 필자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애쓴다. 둘째, 아내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아내는 집에 새 그릇이 넘치는데도 백화점 쇼핑 중에 예쁜 그릇을 발견하면 사고 싶어 안달한다. 예전 같으면 ‘NO'라고 단호하게 말했겠지만 지금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왕에 샀다면 잘 샀다고 오히려 칭찬을 해준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선물로 주라고 조언만 한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어 하고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것이 여자들의 본능이다. 아내는 쇼핑 중독자는 아니다. 자기 딴에는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하고 구입하는 것인 만큼 간섭하지 않는 것이 예의이고 상책이다. 필자가 못 사게 한다면 아내는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남편에게 들키고 야단맞을까봐 숨기고 가계부를 조작할지도 모른다. 가족 구성원이 비밀이 많으면 가정은 불안해진다. 지키는 사람 열 명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럴 바에야 아내에게 사고 싶으면 사라고 한다. 셋째,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준다. 부부간의 충돌은 대부분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말하고 싶은 여자와 듣지 않는 남자가 있다. “여보 이 옷 입고 갈까, 저 옷 입고 갈까?” 아내는 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하고서도 필자의 의견을 묻는다. 이럴 때는 눈치를 봐가며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솔직히 내 눈에는 그 옷이 그 옷이다. 학교 동창회 다녀와서는 필자가 모르는 친구들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처음에는 그런 말들을 왜 필자에게 하는지 짜증이 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참고 들어준다. 아내가 하는 말 중간 중간에 추임새만 넣어주면 만사 오케이다. 아내가 콧노래를 부르고 말이 많아진 날은 기분이 좋다는 또 다른 표현이다. 나이 들어 두 식구만 사는 집에 한 사람이 기분 좋으면 나머지 사람의 기분도 따라서 좋아진다.
- 2016-11-2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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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버릴수록 얻는 미니멀라이프, 가볍게 살자
- 유장휴(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채우는 삶보다 비우는 삶이 아름답다 요즘 방송이나 책을 보면 ‘단순하게 살기’, ‘가볍게 살기’에 대한 내용을 자주 보게 된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도 같다. 예전에는 정리정돈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면 최근에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자”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살다 보니 이것저것 사게 되고 어느새 방안 가득 쌓여 있는 불필요한 물건이 자꾸 눈에 띈다. 어느 날은 복잡한 환경 속에서 너무 많은 물건과 함께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는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삶이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미니멀라이프’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리는 등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집 안에서 몇 년째 쓰지도 않는 물건들은 내다 버려도 된다.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주인이 나인지 물건인지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버릴 때는 미련 없이 버리자 필요 없는 물건을 없애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쓸 만한 물건들을 좋은 일을 하는 단체에 기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증하려고 보면 마땅한 물건이 없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기증할 수도 없어서 대부분 가장 쉬운, 버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러나 물건을 버릴 때도 지혜롭게 버리는 방법이 있다. 우선 사용 안 하는 물건 중에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이 있나 살펴보라. 헌 옷, 헌 책, 종이나 고철 같은 폐자원은 폐자원 회사에서 전화해 직접 수거해가도록 한다. 이들 회사에서 수거해갈 때는 약간의 돈도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무게를 달아 금액으로 환산해주는데 헌 옷 같은 경우는 kg당 250원에서 300원 정도 주고, 냄비나 프라이팬 종류는 kg당 400원가량 준다. 옷은 큰 비닐봉투에 넣어 한두 봉지 팔면 3000원에서 4000원 정도 받을 수 있다. “이 옷이 얼마짜리인데 3000~4000원밖에 안 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물건도 정리하고, 가져가주고, 몇천 원이지만 돈까지 받으니 1석 3조인 셈이다. 중고마켓은 정리마켓으로 활용한다 물건을 정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중고마켓에 파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적당한 금액을 받고 팔면 아깝지도 않고 물건도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중고마켓에 물건을 올리고 구매자가 나타나면 배송하는 일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요즘은 중고 거래도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바로 찍어서 팔 수 있는 ‘중고나라’, ‘헬로마켓’, ‘번개장터’ 등의 온라인 중고장터에서는 누구나 쉽게 중고품을 사고 팔수 있다. 또한 직접 올려서 파는 게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대신 팔아주는 곳도 있다. ‘셀잇’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는 전자제품의 경우 직접 가져다 팔아주기도 한다. 만약 팔리지 않으면 정해진 가격에 매입해준다. 읽지 않은 책을 정리하고 싶다면 ‘알라딘’, ‘YES24’의 중고책 판매점을 이용하면 된다. 스마트폰으로 책의 바코드를 찍으면 팔 수 있는 책인지, 가격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상자에 담아놓으면 다음날 배송기사가 가지러 온다. 이처럼 중고마켓을 잘만 활용하면 집안 물건이 저절로 정리가 되고 비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 검색창에 폐자원을 수거해가는 ‘수거왕’을 검색한다. - ‘수거왕’, ‘주마’ 등 폐자원 수거 어플을 설치한다. - 지역마다 수거 가능 여부가 다르기 때문에 사는 지역에서 수거 가능한 어플을 선택한다. 2. 회원가입을 하고 수거예약을 선택한다. - 수거 품목에는 수거 가능 품목과 불가능한 품목이 있다. - 확인하고 수거예약을 한다. 3. 수거를 원하는 품목을 선택한다. - 헌 옷, 가방, 이불, 신발, 프라이팬, 휴대폰, 컴퓨터 등 원하는 수거 품목을 선택한다. - 품목의 총무게가 20kg이 넘어야 수거를 해간다. 수거 물건이 모아지면 요청한다. 4. 지역 및 연락처를 작성하고 수거날짜를 정한다. - 가능한 날짜가 정해지면 수거원이 방문해 물건을 수거해간다. - 저울로 무게를 잰 뒤 무게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현금으로 받는다.
- 2016-11-2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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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여행 첫째 날 [2]
-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마음 설레게 한다. 가족여행이면 더욱 좋다. 10월의 마지막 주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와 함께 일본 오키나와로 휴가를 떠났다. 가기 전 그쪽 날씨를 검색해보니 우리가 가는 3박 4일 내내 계속 흐리거나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하고 예약한 상태라 날씨가 흐리다고 안 갈 순 없었다. 흐리면 흐린 대로 즐거운 게 여행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햇살이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론 좀 추운 날씨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10월의 막바지인데도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한여름 옷과 카디건을 챙겼다. 9시 반 비행기라 우리 가족은 새벽 6시 좀 지나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까봐 우려했지만 마침 빈자리가 있어 주차 걱정 없이 산뜻하게 떠날 수 있었다. 아시아나 항공기로 일본 오키나와 ‘나하’ 공항까지 가는 데는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오키나와는 제주도처럼 남쪽에 있는 섬이라 본토 사람들이 우리가 제주도로 휴양가듯 찾는 섬이라고 한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독립적인 섬으로 일본이 아닌 류큐 왕국이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또한 태평양전쟁 땐 미군이 점령해 지금까지도 곳곳에 미군 기지가 남아 있는 아름답지만 슬픈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하’ 공항에 도착하니 하늘이 너무나도 파랗고 깨끗해서 여행 내내 비가 올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일본 기상청의 틀린 예보가 좀 우스워졌다. 공항 밖은 정말 들은 대로 매우 더웠다. 한여름 옷을 입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찾아 나가니 도요타 렌터카 회사 사람이 팻말을 들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로 가는 셔틀버스에는 많은 여행객들이 타고 있었다. 렌터카 회사는 공항 가까운 곳에 있었고 우리 가족은 예약한 대로 7인승 차를 빌렸다. 일본은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도로도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좀 걱정되었지만 아들이 능숙하게 운전해서 다행이었다. 먼저 ‘나하’에서 꼭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며 목적지를 ‘류보’ 백화점으로 잡았다. 마음에 든다는 예쁜 그릇을 고르고 오키나와 브랜드인 블루씰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여행은 시작되었다.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오키나와 남쪽 ‘나하’ 공항 중부 쪽에 있는 예약 숙소 몬테레이 호텔은 코앞에 바다가 멋지게 펼쳐진 곳에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눈이 시릴 정도여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호텔은 모든 방이 바다 쪽으로 나 있었고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결혼식을 주로 한다는 하얀색의 교회당과 수영장 너머로 아름다운 바다가 끝없이 보이는 정말 예쁜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아직 어린 아기가 있어 잠자리가 편해야 한다고 고른 호텔이어서 모든 것이 안락하고 깔끔했다. 하루 한 끼는 호텔에서 제공하는데 뷔페와 일본 가정식 중에서 고르면 되었다. 그런데 숙소로 오는 도로가 엄청 막혔다. 지나다 보니 버스 한 대가 다 타버린 사고가 있었다. 좀 늦은 시각 도착한 우리는 방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으니 맛이 있든 없든 귀부인이 된 듯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이들도 여행이 즐거운지 재롱을 부리며 늦도록 잠을 안 잤다. 이렇게 오키나와 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 2016-11-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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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변화와 혁신에서 온다
-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바로 변화와 혁신입니다. 정말 수도 없이 듣고 사는 말입니다. 근데 왜 그렇게 변화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까요? 그만큼 변화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 변화는 자연법칙에 어긋납니다. 자연법칙은 관성의 법칙입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고 정지하고 있는 물건은 정지 상태를 유지하려는 게 바로 관성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변화는 그 관성을 벗어나려고 하니 쉽지 않은 일이지요. 혁신은 더욱 그렇습니다. 혁신(革新)의 혁(革)은 가죽을 뜻합니다. 신은 새로울 신입니다. 가죽을 벗겨내듯 새롭게 하라는 겁니다. 가죽을 벗기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나요? 그만큼 혁신이 어렵다는 거겠지요. 변화에 관한 최고의 책은 주역입니다. 주역의 역자는 도마뱀을 뜻합니다. 보호색을 그때그때 바꾸는 걸 보고 만든 한자입니다. 주역은 변화에 대해 단호합니다. 변화는 좋은 것이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역은 64괘로 점을 치는 책인데 잘 풀리는 것의 대표는 태괘(泰卦)이고, 불길한 것의 대표는 비괘(否卦)입니다. 태괘 모양을 보면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 있습니다. 비괘는 반대로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비괘는 정상이고 태괘는 거꾸로 된 형상입니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 있는 비괘는 안정적입니다. 그 자체로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길하다는 겁니다. 태괘는 땅과 하늘이 뒤집혀 있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원위치로 돌아가려 합니다. 지금이 불편하기 때문에 자꾸 변화하려 합니다. 그래서 길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안정에 목숨을 겁니다. 직장의 선택 기준도 안정입니다. 안정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안정은 그 자체로 불길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첫째, 절실함입니다.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온갖 궁리를 해야 합니다. 궁리는 그래서 생긴 말입니다. 글자 그대로 궁할 때 이치를 깨우친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궁하지 않으면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다는 겁니다.둘째, 쓸데없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화와 혁신을 하면 어떤 일을 할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우리는 늘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받습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없애는 것이 필요합니다.셋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책도 읽고, 낯선 곳에도 가보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만나봐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열린 눈이 필수적입니다. 유연해야 합니다. 시장을 잘 읽어야 합니다. 칭기즈 칸이 세계를 제패한 힘은 열린 사고입니다. 그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현지인을 인정하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Obsolete’라는 영어 단어가 있습니다. 쓸모없다는 뜻인데 이 단어의 어원은 ‘익숙하다’입니다. 즉 익숙한 것은 쓸모없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시장도 변하고 고객도 변하는데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던 일만 하려고 하고, 팔던 물건만 팔려고 하고, 기존 프로세스대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혁신의 핵심은 낯설게 하기입니다. 익숙한 것은 편하고 낯선 것은 불편합니다. 저항을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봉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봉변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반대로 변화를 적극 활용해 성공하면 이를 능변이라고 말합니다. 봉변을 당할 것인지, 능변으로 변화에 성공할 것인지, 이제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2016-10-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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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이 뭐길래
- 필자는 꼭 명품 옷이나 백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좋아하는 색상이면 싸구려라도 즐겨 가지고 다닌다. 때로는 필자가 입은 옷이나 가방이 비싼 게 아닌데도 명품으로 오해해주는 친구가 있어 즐거울 때도 있다. 우리 집 옷장 안에는 내 핸드백이 10여 개 들어 있다. 최근엔 핸드백을 구매하지 않지만 젊었을 때는 명품을 몇 개 사기도 했다. 그래도 대부분은 선물 받은 상품권으로 구매한 금강, 에스콰이어, 엘칸토 등 우리나라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다. 마음에 들긴 해도 내게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의 핸드백을 장만한 날에는 며칠 동안 끙끙대며 후회하기도 했다. 매스컴을 통해 명품만 선호하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아무 거리낌 없이 비싼 물건을 산다는 일명 된장녀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심하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물론 여유가 있어 고가의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괜찮겠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비싼 명품을 장만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곱게 보이지 않는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들기 편하고 마음에 들면 되지 꼭 그렇게 비싼 명품을 선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막냇동생이 사는 동부이촌동에는 가끔 가짜 명품 가방을 파는 트럭이 온다고 한다. 비록 짝퉁이지만 동네 멋쟁이 여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구경한다고 하니 A급, B급부터 특A급까지 진짜 명품과 똑같은 모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가보다. 진품이면 몇백만 원을 호가하지만 비슷한 제품을 이삼십 만 원에 살 수 있으니 불티나게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막냇동생도 구경하다가 가짜 고급 브랜드 제품을 하나 샀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며 내게 주었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좋아서 얼른 받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동창 모임에 그 핸드백을 들고 나갔더니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백화점 매장에서 보았다면서 아는 체하며 예쁘다고 했다. 필자는 그냥 “으응.” 하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영 가볍지 않았다. 진품이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아닌 척하고 온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까는 말 못했는데 그거 가짜야.”라고 말했더니 “어쩜 매장에서 보았던 것과 그렇게나 똑같니.” 하면서 자기도 사고 싶어 한참을 봤지만 너무 비싸서 눈요기만 했다고 깔깔대며 웃었다. 우리나라 짝퉁 제품 생산 규모가 매우 크다고 한다. 뉴스를 보다가 엄청난 물량의 가짜 명품을 폐기하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았는데 끊이지 않고 적발되는 걸 보면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짝퉁이란 가짜, 모조품, 유사품, 이미테이션의 의미를 가진 신조어로 너무 비싼 가격, 한정된 공급 등의 문제와 공급 면에서 이익에만 몰두하는 얄팍한 상인들의 상술, 그리고 정교한 이미테이션의 기술이 어울려 탄생한 가짜 상품을 말한다. 특히 최근에는 위조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전문가조차 진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남이 어렵게 이루어낸 업적을 손쉽게 베껴 싼 가격에 파는 행위는 도둑질과 다름없다. 그래도 여전히 짝퉁 제품이 유통되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면과 겉치레를 중요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결코 명품에 집착하지 않는다. 명품이 싫은 사람이야 없겠지만 분수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품을 가지려고 무리해서 빚까지 내는 여성들도 있다 하니 걱정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TV를 통해 어마어마한 물량의 짝퉁 제품을 소각 폐기하는 장면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저 물건들을 다른 방법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젠가 관세청에서 진품과 가짜를 구별하는 전시회를 연 적이 있는데 짝퉁 의류와 신발 등에 그림을 직접 그려 넣어 다른 나라에 기증하는 재활용 행사도 있었다고 하니 좀 더 생각해볼 일이다. 위조 상품은 폐기가 원칙이지만 자원 낭비와 오염 유발의 문제점이 있어 상표를 제거한 후 원래 상품권자의 동의를 얻어 국내 사회복지시설에 나누기도 했고 새롭게 디자인해서 캄보디아나 리비아 등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나라에 보내주기도 한단다. 그냥 태워서 없애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지만 아예 위조품이 없다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다. 그래도 기왕 공짜로 얻었으니 오늘 외출에 이 짝퉁 핸드백을 들고 나가려 한다. 꼭 명품을 좋아해서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 변명해본다.
- 2016-10-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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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사람 PART3] 마지막까지 남는 책은 무엇일까? '책의 발견과 발명'
- 한기호 출판평론가 발견으로서의 기획 이후의 출판 프랑스문학 전공자인 가시마 시게루(鹿島茂)의 ( 2016년 3월 임시증간호)에 라 퐁텐의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책이 출간된 루이 14세 시대(17세기)에도 너그러운 후원자와 그렇지 않은 후원자가 있었다. 라 퐁텐의 에는 루이 14세나 다른 왕족, 귀족을 비판하는 부분이 꽤 많다. 이런 책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사람을 직접 비판하지 않고 동물에 빗대어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우화다. 도 원래 그런 것이었는데, 라 퐁텐이 손을 봐서 훨씬 더 신랄하게 위선자를 비판하는 바람에 많은 인기를 끌고, 지금도 살아남아 독자의 손을 타고 있다. 2006년의 한국 출판시장에서도 우화는 상한가를 쳤다. 그때 우화는 이솝이나 라 퐁텐의 우화가 아니었다. 이른바 ‘성공우화’였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를 비롯해 한상복의 (위즈덤하우스),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의 등이 상한가를 쳤다. 성공우화의 인기 시발점이 스펜서 존슨의 (진명출판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금 출판시장이 요동을 친 계기가 된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일 것이다. 필자는 2004년부터 “휴대전화(이제는 스마트폰이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는 모든 행동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매체(미디어), 상점, 판매채널, 만남의 공간 등 인간의 행위를 이끄는 기점”이라고 말해 왔다. 스마트폰으로 결제 기능마저 가능해지자 웹툰과 웹소설 시장이 급격하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이 추구하는 텍스트는 완전히 달라져야만 한다. 21세기에는 ‘무엇’(What)을 어떻게 연결해 제대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정보는 다른 정보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정보를 서로 비교하면 차이(변별)가 생긴다. ‘차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텍스트가 아니면 종이책은 살아남을 수 없다. 종이책은 그래픽 디자인에 힘입어 그런 능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발명으로서의 책 그렇다. 이제 책은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발명’으로서의 책이라 부르면 어떨까. 새로운 장르라도 좋고, 새로운 텍스트라도 좋다. 가령 ‘본 디지털’로 생산해 가장 성공한 사례인 ‘휴대전화소설’(우리는 웹소설이라 부른다)만 해도 일본의 출판기획자인 우에무라 야시오(植村八潮)가 일찍이 지적했듯이. “휴대전화소설은 ‘뺄셈’이다. 표현도 줄이고, 그림도 빼고, 글자 수도 줄여서 멋지게 ‘본 디지털’로 성공했다.” 그러니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책을 발명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세계사)은 또 어떤가. 1996년에 출간된 박영규의 (웅진지식하우스)은 드라마 의 인기에 힘입어 판매에 불이 붙었고, 결국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는 (교보문고)에서 이렇게 썼다. “을 한 권으로 축약해 역사서로는 드물게 130만 권이나 팔린 은 비록 대학에서 독일어와 철학을 전공하고 전문 글쓰기를 위한 10여 년의 노력을 거친 전문 집필가의 책이기는 하지만 역사학자가 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비전공자의 대중적 역사 쓰기라는 점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 하지만 이 책은 대중의 역사인식 눈높이와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이후 비전공자들이 쓴 대중 역사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비전문가 신인이 일을 낸 대표적 사례다.” 딱 20년 만에 다시 나온 은 차례부터가 재미있다. 저자는 조선 27대 왕에게 모두 ‘OOO 호랑이’라는 저마다의 닉네임을 붙여 줬다. 태조는 ‘이빨 빠진 호랑이’, 정종은 ‘무늬만 호랑이’, 태종은 ‘진짜 호랑이’, 세종은 ‘위대한 호랑이’, 문종은 ‘피곤한 호랑이’, 단종은 ‘어린 호랑이’, 세조는 ‘무서운 호랑이’. 그러나 호랑이가 되지 못하고 고양이에 머무른 두 왕이 있다. ‘도망간 고양이’ 선조와 ‘나라 뺏긴 고양이’ 순종이다. 강연 현장을 담은 글이라 너무 잘 읽힌다. 삽화도 재미있다. 가시마 시게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시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아주 없지는 않지요. 자기 표출의 시로 환원되는 형태나 그런 것을 포함한 형태만이 활자미디어로서 살아남을 겁니다. ‘자연스러운 문체를 대할 때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기뻐한다. 한 작가를 만나리라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한 인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한 말입니다. ‘그 책을 읽으며 저자가 아닌 인간을 만나는 책’이 자기 표출형 책입니다. 책 내용은 모두 잊어버려도 그 사람과 내가 서로 공감했다고 느낀 기억만은 남습니다. 그러면 같은 저자의 다른 책도 사고 싶어집니다. 반면 저자밖에 만나지 못한 책은 같은 저자의 책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책에 독자가 붙는다는 건 그런 겁니다. 정보 외에 무언가 자기 표출이 있는 책은 사람을 끌어당깁니다. 지시 표출 형으로 보이는 산문에서도 언어의 배치, 치환, 문체 등으로 자기표출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독자는 돈을 들여서라도 다음 책을 읽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표현의 원점입니다. 인터넷사회의 정보 속에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거기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출판의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제 예상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건 시집 정도겠지요. 그렇게 내리막길을 걸어도 출판이 완전히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시집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자기 표출형 책은 정보가 아니어서 설령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고 해도 하나의 물건으로서 소유하고 싶어집니다. 이것이 자기 표출 미디어의 특징입니다.” 무섭다. 정말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책은 무엇일까. 가시마 시게루는 “고서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책에 작품성이라는 가치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판도 인터넷사회 이후에는 개인출판처럼 일종의 창조행위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은 부수로도 어떻게든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도 이제 책을 ‘발견’하는 것 이상으로 하늘 아래 없는 새로운 것을 ‘발명’해야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단언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새로움이란 결국 생각의 차이다. 그 차이를 찾아내는 최상의 방법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책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1982년 출판계에 편집자로 입문해 15년 동안 일하다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했다. 출판전문지 격주간 를 창간해 올해로 18년째 발간해 오고 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잡지인 월간 을 창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읽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 , , , , 등 저서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 2016-10-0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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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ML 칼럼] 책 버리기는 ‘삶의 숨 고르기’
- 1930년대에 명문장가로 이름 높던 이태준(李泰俊·1904~?)의 산문 중에 ‘책과 冊’이 있습니다. “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로 시작되는 글입니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冊답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읽고 보고 어루만지는 사물이며 존재인 冊은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제왕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대에는 대나무를 잘라 다듬어 글씨를 썼습니다. 불로 쪼여 수분을 빼고 푸른색을 없앤 대나무에 글씨를 쓴 다음 끈으로 꿰어 차례를 맞춘 것이 冊입니다. 하나씩 알맞게 묶음을 만드는 작업을 編(편), 그 묶음의 구분을 篇(편), 이를 말아서[捲] 보관하는 것을 卷(권)이라 했습니다. 책보다 冊이 좋다는 말은 책을 만드는 과정의 정성과, 책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인간과 책의 관계. 책의 효용성과 가치를 일깨워주는 명언입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도 하지만, ‘이’가 ‘은’보다 말의 취지를 더 잘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거나 “책을 펼치면 이롭다”[開卷有益] “남자는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五車書] 등 독서를 권장하고 책을 소중히 여기라는 금언 격언은 수없이 많습니다. 독서를 통한 보상과 출세에 관한 말도 참 많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책에 대해 중국인들은 ‘세 가지 바보’[三痴]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책을 빌려달라는 것도 바보, 빌려주는 것도 바보, 빌린 책을 되돌려주는 것도 바보”라는 거지요. 고대 중국에서는 책을 빌리거나 되돌려줄 때 ‘쌍치’라는 가죽자루에 술을 담아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빌릴 때 한 번, 돌려줄 때 한 번, 그래서 ‘쌍’입니다. ‘세 바보’라는 말을 생각하면 책을 돌려받은 사람이 오히려 고맙다고 술을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격언에는 “돈은 빌려주지 않아도 되지만 책은 빌려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빌려주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개인간의 문제보다는 지식의 공유, 사회 전체 공공의 이익을 더 중시해서 그런 거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책을 언제까지나 소유 보유할 수 없는 게 고민입니다. 개인이든 기관이든 더 이상 책을 둘 공간이 없는데 ‘이 책 다 어찌하나’ 하는 것이지요. 토머스 제퍼슨은 “책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방에 책이 없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는 것”이라고 했던 키케로는 “가진 걸 다 버려야 살 수 있다면 차라리 책더미 속에서 죽겠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퍼슨이나 키케로인들 책을 전혀 버리지 않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버린다는 말은 아예 재활용되지 않게 쓰레기로 만든다는 뜻도 있지만 남에게 주는 것도 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기꺼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는다는 희사(喜捨)라는 말에 버린다는 ‘捨’가 들어 있습니다. 捨는 舍라는 글자와 통용되고 서로 넘나드는데, 舍는 집이라는 뜻이 가장 먼저이므로 무엇을 버리는 것은 집에서 내보낸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람은 일생을 사는 동안에 많은 책을 읽게 됩니다. 삶의 단계마다 읽어야 할 책이 있고, 해야 할 공부가 있습니다. 그 말은 단계별로 정리하고 익힌 다음 버려야 할 책이 있고, 졸업해야 할 공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나 그때 읽은 동화 만화는 추억의 자료이긴 하지만 책으로서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그런 걸 용케 잘 보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닙니다. 학교교육이나 학령에 관계된 책은 그렇다 치고 다른 책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10대 시절에 만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새롭고 그때의 그 책이 새로운 말을 들려주는데, 손때가 묻은 소중한 재산인데, 갈수록 새 책은 늘어나고 헌 책은 둘 곳이 없고... 그래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커지게 됩니다. 평생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살아온 교수들은 정년 무렵이 되면 책 때문에 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무나 가져가라고 연구실 밖에 내놓아도 글자가 작고 세로짜기로 된 책은 인기가 없습니다. 낡은 책을 탐내는 학생들은 없습니다. 자식에게 물려주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공공기관에 기증하려고 전화를 하면 귀찮아하거나 차로 실어다 달라고 해 그것도 어렵습니다. 마지못해 받아준 곳도 나중에 가보니 책을 어떻게 처분했는지, 근으로 달아 폐지로 팔았는지 알 수 없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의 작가 박경리의 유고시집 제목은 입니다. 그러나 버리는 일은 그리 홀가분하고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정리하는 일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디지털 공간에 저장하고 책을 버린다는 사람도 있고, 표지만 사진으로 찍어 보관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겠지만 앞서 말한 이태준 식 사고로는 책이라는 사물을 그렇게 보존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버리는 걸 ‘다시 채우기 위한 버리기’라고 말합니다. 낡은 책을 버리고 새 책을 들이기 위해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것은 젊은 독서인들의 이야기이지 이제는 쌓고 더하기보다 덜어내고 헐어내야 하는 시니어들의 책 정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기준으로 책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1)내용이 좋은가 2)시대를 뛰어넘는가 3)다시 읽을 것인가 4)표지만 보고 있어도 좋은가, 이런 것입니다. 이 중 시대를 뛰어넘느냐의 문제는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은 내용인가, 앞으로는 어떨까를 따져본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 네 가지를 세상살이와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남에게 1)좋은 사람인가 2)시기와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사람인가 아닌가 3)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인가 4)직접 대화하지 않고 카톡이나 전화번호부의 이름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인가를 생각하며 산다는 것이지요. 나는 바로 책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선택 대상이라는 점을 책 버리는 일을 계기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일 골치 아픈 게 역시 책입니다. 진정한 장서가들과 비교하면 턱도 없이 적지만, 그래도 이사할 때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책의 분량과 무게입니다. 그래서 앞에 인용한 사람처럼 책마다 네 가지 기준을 들이대며 한창 일부러 꼬나보고 있는 중입니다. 책을 버리는 사람도 책을 빌려주거나 돌려주는 사람처럼 바보일까요? 버릴 책을 고르는 일은 삶과 숨을 가다듬는 ‘생각 고르기’와 마찬가지라고 믿고 싶습니다. 책 속에도 길이 있지만 책 밖에도 길이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해묵은 손때’를 떠나보내려 합니다. >> 임철순(任喆淳)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졸.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 2016-09-2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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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변화는 새로 구입하는 인테리어가 아니어도 된다]
- 아파트이건, 오피스텔이건 집이 깔끔하고 살만하다 싶으면 비싸다. 가격도 문제이지만 필자는 동네 형님들이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더 안 내킨다. 뭔가 집안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보자. 두 아이들이 우리부부의 품을 떠난 주말 너무 허전하고 아이들이 보고 싶고 안쓰럽고 걱정도 되면서 그래 확 이사도 가고 싶고, 변화도 갖고 싶고 그냥 살아야할 현실 속에서 고민한다. 필자는 아들 방으로 홈카페물건 넣어두었던 것을 아들 책장을 갖고나와 혼자작은발매트아래에 깔고 살살 끌고 나와서 tv옆으로 두고 홈카페의 물건을 옮겨본다. 신혼시절 작은 방에서도 이렇게 옮겨봐야지 하면 남편이 출근한 뒤에 혼자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꾸곤 했다.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걱정해주던 남편이 역시 뭔가 집안가구나그릇을 움직이는 소리에 방에서 나와 걱정해준다. 별로 큰 움직임이 아닌 줄 알고 있다가 거의 이사가는집수준으로 해놓으니 어쩌려고 이러냐고 밥도 안 먹고 일하는 필자를 위해 중구집전화번호 쓱 가져가서 간짜장을 주문해준다. 이번 추석 때도 아이들 두부부가 이야기만 하고 과일 먹고 커피마시고 엄마만 애를쓰니 설거지를 좀 하면 안 되냐고 내편을 들어준 남편은 확실한 내편이다. 오래살기를 바란다. 감사히 간짜장먹고 다시 집안에서 가구의 대이동이 이뤄진다. 가구 속의 홈카페의 생두나 커피 잔으로 쓰는 도기류나 유리잔세트는 물론 책장이라 책도 모두 꺼내서 다시 내려놨다가 또 옮기고 내일은 일요일이라 저질렀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거운 찜질기가 복병이었다. 친정엄마께서 살아계실 때 교통사고 당한 딸을 위해 사주신 제품이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시원하고 아주 좋은 고가의 찜질기라 거실 쪽으로 움지이니 어머, 삭신이 쑤실 테지만 힘좀 썼다. 두손,두팔,심지어 두 다리를 지렛대삼아 밀기도 한다. 미쳤나보다. 왜 시작했나. 할 정도이다. 막내아들 결혼 후 외국으로 일하러 나간 후 첫 주말이다.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같아 내몸을 힘들게 하고 뭔가 허탈하고 무기력해지는 나를 못살게 하고 싶은데 새로운 분위기를 위해 가구를 새로 구입할까 아니면 슬라이드 장으로 짜야하나 상담하러 갈까 하다가 집에 있는 아들이 두고 간 책장을 이용해본다. 홈카페장이 있던 자리엔 김치냉장고를 가져온다. 물론 이것도 머리로 그림을 그려본 내용이다. 계속 하다 보니 오후3시쯤 시작한 일이 밤 11시가 다 되어 마치게 되었다. 그런 김에 청소도 하고 버릴 것도 버리고, 집안 분위기도 바꾸고 일석삼조이다. 대단하다. 필자는 온몸이 힘들지만 아주 대 만족이다.
- 2016-09-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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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장 3kg가 공짜?
- 길을 지나다 보면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양손 가득 똑같은 화장지나 꾸러미를 들고 가는 걸 볼 수 있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실상을 알고부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재미있게 해 준다며 불러 모으고는 값싼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는 사기꾼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인 대상의 사기가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보다는 대부분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대상이다. 며칠 전 TV에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해주다가 값싼 물건을 고가로 팔아먹은 사기꾼 일당 이야기를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자리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고 마음씨도 착한 사람들을 왜 못살게 구느냐면서 항의를 했다 한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재미있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사기꾼들을 두둔까지 하셨을지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동네 사는 수영이 엄마가 필자를 붙잡았다. 지금 안 바쁘면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한다. 별일은 없었지만 나갔다 오는 길이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그래도 잡아끄는 대로 이끌려서 동네 입구의 어떤 건물 지하에 가게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아줌마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있었다. 필자가 여기 왜 따라왔나 생각해 봤더니 수영이 엄마가 같이 오면 고추장 3kg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였나 보다. 그런데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뉴스에서 본 대로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몇 명이 앞에서 아줌마들을 선동하며 게임도 시키고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무것도 안 사도 된다고 수영이 엄마는 말했지만, 그 남자들은 이런저런 물건을 소개하며 구매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쪽 팀 저쪽 팀 나누어서 경쟁을 시키니 아줌마들이 비싼 냄비며 건강식품들을 마구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국, 수영이 엄마도 냄비세트를 구매했다. 필자는 정말 민망했다. 사고 싶은 물건도 없었고 필요한 물건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생각이 없었다. 직원은 그래도 괜찮다며 참가했으니 선물을 준다면서 고추장 3kg 들은 플라스틱 통을 주며 출석카드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내일 또 오시라며 웃는 앳된 청년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는데 거기 모인 아줌마들 대부분이 매일 출석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재미있다고들 말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그곳에 있는 시간이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유치한데다 사기성이 농후해 보였는데도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아닌 아줌마들도 외로워서 그런 행사에 참여를 하는 걸까? 직원인 그 남자들이 내일도 또 오라고 하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지 또 갈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물건을 사지 않는 민망한 시간을 버틴 대가로 고추장 3kg을 받아서 잘 먹긴 했다. 너무나 민망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엔 아무리 잡아끌어도 다시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했다.
- 2016-09-19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