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자신만의 공간 속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점차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형됐다. 일본 정부는 당사자뿐 아니라 그 부모까지 대상을 확대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청년층에 한정된 실태조사와 지원사업만 진행 중이다. 일본보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한국형 은둔’을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어로 히키코모리, 한국어로 은둔형 외톨이라 불리는 이들은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하지 않는 기간이 최소 3개월 이상이고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학업이나 취업 등 사회적인 관계를 거부하며 △방 안이나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더불어 우울증, 대인공포, 조현병 등 정신장애는 은둔 생활이 길어지면서 따라오는 결과 중 하나일 뿐, 원인이 아니어야 한다. 197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부터 비슷한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숨게 만드는 사회
이들은 왜 자신을 외부로부터 고립시켜야만 했을까? 원인을 단숨에 짚기란 쉽지 않다. 은둔의 시작 시기와 계기를 비롯해 각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태, 경제적 수준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과 회복 가능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가 한데 얽혀 유형화하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특징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화돼 진학 실패, 가족과의 갈등, 지속되는 취업난, 경직된 대인관계 등이 맞물린 것을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는 은둔형 외톨이를 단순히 ‘개인 사정’으로 치부해왔다. 가족, 학교,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는다. 그사이 흘러버린 27년의 세월 동안 은둔형 외톨이는 더욱 많아졌고, 장기적으로 은둔 생활을 지속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중장년이 됐다. 최근에는 ‘8050 문제’(50대 자녀가 80대 부모에 의존해 생활하는 현상)까지 우려되면서 노년의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원래는 ‘7040 문제’라고 불렀지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진화한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부모가 은둔 자녀와 동반 자살을 감행하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폭행해서 숨져도 연금 수급을 위해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명확히 마주해야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추정할 만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들을 발굴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대응책이 없다 보니 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세심한 지원을 하기도 어렵다. 동굴 속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가 어렵게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상담을 시도해도 의지가 약해서, 철이 없어서 등의 비난을 받고 되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국내 은둔형 외톨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전문가들은 일본의 지원책을 참고하면서도 한국만의 고유한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 때문이다.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은 “열심히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삶의 방식이 변했다”며 “생산을 강요하고,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 여기는 편견은 접어둬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또 “이혼, 사별, 은퇴 등으로 40대 이후 자신을 고립시키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면서 “은둔과 관련한 지원을 점차 전 세대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은 “은둔형 외톨이와 상담할 때는 다각화된 관점을 갖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관련 상담 전문가를 육성하고, 관련 기준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
“은둔형 외톨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조용하고 소극적이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간혹 폭발적인 분노를 표현하고 주먹을 휘둘러요. 조급한 마음에 문을 없애버리거나 방 밖으로 끌어내는 등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돼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 망가졌던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물론 전문가가 돕는 게 가장 좋죠. ‘나랑 대화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랑 통화해볼래?’ 하면서 전문기관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자신을 살리고 싶어서라도 연락하더라고요.”
박대령 이아당 심리상담센터장 ▶
“한 명의 은둔 생활로 다른 가족도 함께 위축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어 계속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병을 치료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내면을 치유하도록 북돋아줘야 해요. 그들도 더 힘들지 않기 위해 덜 힘든 방법을 택한 거니까요. 병을 치료하듯 은둔의 그늘은 한 번에 없어지지 않아요. 다시 어떤 계기로 은둔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차츰차츰 나아질 겁니다.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가족 모두가 성장하는 시기가 올 겁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2023년 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서울시 중장년의 생애설계준비도는 100점 환산 기준 63.1점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서울에 거주하는 만 40세 이상 65세 미만 중장년 1만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재단 리포트에 따르면, 지표가 된 ‘생애설계준비도’는 ‘과거 경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현재와 앞으로의 자신과 환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향후 목표 설정 및 계획을 수립하여 이를 이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생애설계준비도는 크게 ‘생애이해’와 ‘생애영역 설계관리’로 나눠 측정됐다.
조사 결과 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도는 63.1점, 생애이해 영역은 65.6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은 61.8점으로 나타났다. 항목별 평균을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이해가 67.9점으로 가장 높았고, 여가활동 설계관리가 59.1점으로 가장 낮았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생애설계준비도는 63.3점, 여성은 62.8점으로, 여가활동 설계관리와 신체적·정신적 건강 설계관리를 제외한 영역 및 항목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약간 더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연령대별로는 생애설계준비도가 가장 높은 건 만 60~64세로 63.7점이었다. 반면 만 45~49세가 62.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나타냈다. 또, 생애이해 영역은 만 55~59세(66.0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은 만 60~64세(62.6점)가 가장 높았으며, 연령이 낮아질수록 준비가 부족한 경향을 보였다. 가구 형태에 따른 세부 결과도 측정했는데, 기타를 제외했을 경우 2세대 가구가 모든 영역 및 항목에서 가장 점수가 높았고, 생애이해 영역(62.6점)과 자신에 대한 이해 항목(65.5점)은 1인 가구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임소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경영기획본부 정책연구팀 책임은 ‘50+정책동향리포트’(서울시 중장년 생애설계준비 실태와 지원 방향)를 통해 “인생 후반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중장년은 편향되지 않은 균형적인 준비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현재 준비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중장년 특성을 반영해 생애설계준비에 대한 정의를 구명하고 관련 이론 고찰, 선행 연구와 사례 분석을 기반으로 지표의 영역 및 항목을 구분하고 문항을 구성하여 타당성 검증을 통한 지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평생현역시대, 생애설계에 빠질 수 없는 '일자리 지원'
생애영역 설계관리 영역의 세부 항목 중 ‘일(경제활동) 설계관리’ 점수(60.4점)는 타 영역의 평균보다 낮은 편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여가활동 설계관리를 제외하면 최하위다. 반면 최고점은 ‘재무설계관리’(64.8점) 항목. 지표의 정의를 토대로 풀이하자면, 경제적 관리(소득·부채·금융자산·부동산)을 위한 목표 및 계획(연금·투자·저축)을 실천하고 이를 점검·관리하는 것은 잘하는 편이지만, 일(경제활동)하는 것에 대한 목표 및 계획(자격증 취득·교육훈련 참여·교류 활동 등)을 실천하고 이를 유지·개선하려는 노력은 미흡한 것이다.
한편 수명 연장으로 길어진 노후, 전문가들은 줄곧 ‘평생직업’, ‘평생현역’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은퇴 전 축적한 자산만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적지 않고, 여생이 얼마나 될지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노후 경제적 관리를 고민한다면 일(경제활동)에 대해서도 염두에 둬야 할 테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관리 대비 일 설계관리가 부족한 것에 대해 다소 균형을 맞춰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볼 수 있겠다. 물론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고 설계하기엔 어려울 수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더해지면 좋다.
송민혜 서울시50플러스재단 경영기획본부 정책연구팀 책임은 해당 리포트의 분석 자료(중장년 일자리지원 강화를 위한 경력설계상담의 현황과 시사점)를 통해 “생애설계는 직업 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생활영역에서의 계획을 생애주기 단계에 걸쳐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자리 관련 상담은 생애설계의 다양한 영역 중 직업, 경력 등 영역에 특화됐다. 해당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서비스 대상자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도와주는 활동”이라며 “중장년의 일자리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담 시 조언이나 공감보다는 취업·창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상담자의 역량을 키우고 방법을 논의·제시하는 역할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서울시 중장년의 일자리지원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생애설계상담(4대 영역, 건강·재무·여가·대인관계)은 유지하면서 경력설계상담을 강화하여 중장년의 생애 전 영역에 대한 종합지원 방향으로 상담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뉴딜 일자리로 운영되는 컨설턴트들이 생애설계상담을 제공하고 취업상담사 자격을 가진 인력은 경력설계를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생애설계 다양한 영역에서의 상담과 지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시사했다.
언제부턴가 마을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귀해졌다.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0년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멸위험 지역은 총 119개로 전체 시·군·구의 52%에 이른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고, 고령자는 늘고 있다. 지역 소멸을 해결하려면 인구를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인구 감소는 정해진 미래입니다.”
조영태 인구정책연구센터장(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말이다. 100년 역사를 지닌 공주기독교박물관 공간에서 미래가 정해졌다는 말을 들으니, 마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보는 느낌이었다.
8월 31일 퍼즐랩과 써드에이지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한 ‘2023 제민천 포럼X재도전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모여 인구 감소라는 정해진 미래를 지역이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뤄졌다.
국내 인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조영태 센터장이 이날 행사에 참여한 건 큰 의미가 있다. 지역에서 인구 감소에 대응할 실마리를 봤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조 센터장은 ‘인구’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간다면 지역 소멸이라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컬’이라는 지역 공간과 ‘생활 인구’라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활 인구는 서울시가 2018년 제시한 새로운 인구 모델로, 출퇴근·관광·의료·등하교 등을 목적으로 지역에 오고 가는 인구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행사가 열린 공주는 생활 인구와 정주 인구가 점차 늘어나는 지역이다. 공주는 2022년부터 전입자 수가 전출자 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3년(8월 기준)에는 청년 인구수가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섰다. 공주 원도심에서 커뮤니티 기반 지역관리회사 퍼즐랩을 운영하는 권오상 대표는 “아주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전입자가 늘어나고 청년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실마리”라고 했다.
권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2021~2022년 2년 동안 1212명의 청년이 공주를 경험했다. 올해는 행정안전부 ‘2023 재도전프로젝트’ 사업에 선정돼 ‘마을생활 튜토리얼’을 진행하고 있다. 중장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살이 프로그램이다. 특히 중장년은 귀농·귀촌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정작 지역에 내려와 마을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지내는 경험을 할 기회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생활 튜토리얼’은 지역과의 관계 맺음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내가 이 지역에 와서 산다면 어떤 생활이 이어질까’ 상상해보고 실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권 대표는 “중장년의 경우 커리어, 취향, 경험을 가지고 지역을 이동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지역에 온다는 건 마치 하나의 세계가 이동하는 것과 같았다”며 “지역에 필요한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분들이 실제로 자신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지역만 이동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았다”고 말했다. 반드시 지역에 정착하지 않더라도 도시와 지역을 오가며 그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 중장년의 연륜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권오상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라면서 “현업에서 전문성을 쌓았지만 반복되는 업무가 지루하신 분,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팀으로 일할 수 있는 분, 은퇴 후 나의 재능으로 봉사하고 싶은 분들은 지역에서의 삶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장년의 지역 생활을 응원했다.
실버문화페스티벌이 4년 만에 오프라인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번엔 경연이 아니다. 문화와 꿈, 세대를 잇는 문화예술 축제로 꾸며질 예정이다. 준비가 한창인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을 미리 들여다봤다.
초고령화 사회를 눈앞에 두고 세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2023년. 노년을 중심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의 장이 마련된다. ‘2023년 실버문화페스티벌’이다. 김태웅 한국문화원연합회장의 말이다. “한마디로 즐겁게 노는 겁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즐기는 페스티벌이죠. 실버 세대가 주관하는, 전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2023 실버문화페스티벌’은 10월 27일(금), 28일(토) 양일간 여의도공원 문화의마당에서 펼쳐진다.
2015년 시작된 실버문화페스티벌은 지난 8년 동안 총 2206팀, 14만 2387명이 참여해 긍정적인 노년 문화를 확산하는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9회째를 맞는 올해, 실버문화페스티벌은 기존 경연 대회 형식에서 축제 형태로 변화를 꾀했다. 어르신 문화활동을 한자리에 모아 각자의 활동과 성과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축제로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전국의 어르신 문화활동 지원 성과를 보여주고 정보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긍정적인 노년 문화를 확산하는 행사를 구성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축제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 진행된다. 샤이니스타한마당(공연), 문화교류한마당(체험 및 전시), 실버문화포럼이다.
샤이니스타한마당
샤이니스타한마당은 전국 16개 시·도 대표 어르신 단체가 꾸미는 공연으로 채워진다. 지난해까지 지역별 우수 공연 팀을 선정하는 지역 예선 형태로 치러졌으나, 올해는 지역별 특색과 주제에 맞춰 지역민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 만들기에 초점을 맞췄다. 163개 팀, 약 4000명이 참여한 지역 실버문화페스티벌을 통해 선정된 팀의 감춰진 끼와 재능을 샤이니스타한마당에서 볼 수 있다.
문화교류한마당
문화교류한마당은 체험·전시·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 체험 부스로 꾸며진다. 부스는 컬처로드, 드림로드, 에듀로드, 비즈로드, 조이로드 등 5개 카테고리로 구성될 예정이다.
컬처로드는 ‘어르신 문화활동 지원사업’ 운영 지역 주관처(시도문화원연합회) 16개의 지역별 특색을 담은 문화활동 홍보부스로 채워진다. 드림로드는 ‘어르신 문화활동 지원사업’ 운영 노년 문화 프로그램 수행단체 15개의 문화활동을 담는다. 에듀로드는 어르신 문화 관련 일자리와 정책 관련 정보 부스로 채워진다. 비즈로드는 건강, 콘텐츠, 4차 사업 등 다양한 기업 및 단체를 둘러볼 수 있는 자리로 구성된다. 조이로드는 서로 다른 세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감 프로그램 및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될 예정이다.
실버문화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는 한국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노년 문화활동 교류 기회를 늘리고, 전국 노년 문화활동의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노년 문화를 널리 알리는 페스티벌을 만들겠다”는 기대를 전했다.
실버문화포럼
실버문화포럼은 유인경 작가의 사회로 10월 27일(금), 서울 마리나에서 개최된다. 주제는 ‘실버 두잇! 꽃대를 꿈꾸다’다. 포럼에서는 실버 세대를 ‘꼰대’가 아닌 ‘꽃대’로 재정의하며, 인구의 32.6%에 해당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살펴보고 그 해답을 찾아갈 예정이다. 문화예술 활동을 통한 사회참여로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며 행복한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펼쳐질 전망이다.
기조 강연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인 박영란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가 맡는다. 박 교수는 ‘100세 시대, 건강하고 활동적 노년을 위한 문화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새로운 노년 문화라는 화두를 던질 예정이다. 윤소영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 유소영 과천 경험공유학교 팀장의 밀도 높은 발표도 이어진다. 각 발표에 대한 참여자 의견 교류 및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돼 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진흥법(법률 제4718호) 제12조(연합회의 설립)에 의해 설립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특수법인이다. 1962년 출범해 오랜 기간 지역 문화 진흥과 문화 향유 기회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현재 ‘어르신 문화활동 지원사업’을 펼치며 문화를 통한 행복한 노년의 삶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대수명이 증가하는 가운데, 노후 준비는 더 이상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부동산, 즉 아파트를 주거뿐 아니라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왕 살 집, 자산으로서 교환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선택하고 싶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동현 하나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을 만나 여생을 위한 부동산 투자전략과 시세 변동성이 적은 '알짜' 아파트 고르는 방법을 알아봤다.
Q.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언제부터 주요 자산으로 기능했나요?
A. 우리나라는 고속 성장을 이루면서 도시 주변으로 인프라가 형성됐고, 인구 집중 현상이 심화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보다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생활을 위해 아파트가 도입됐어요. 새로운 주거 형태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상승하면서 상품화가 이뤄진 겁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는 아파트 가격의 상승기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고, 남다른 애착이 있죠. 여전히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삶의 공간이자 최후의 안전망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Q. 하지만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즉각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A. 보통 은퇴 전후로 자녀가 대학 진학이나 결혼 등의 이유로 분가하게 됩니다. 더 이상 자녀와 함께 살던 큰 규모의 주택이 필요 없어지게 돼요. 기존 부동산을 처분하고 중소형 주택을 마련하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고려해볼 법합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차익은 노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Q. 노후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한다면,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요?
A.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수익성보다는 안전성과 환금성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소위 ‘한방’을 노리는 투기적 접근을 시도했다가는 투자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이미 3저(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은퇴자가 큰 폭의 매각차익만을 노리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다소 무모할 수 있죠.
Q. 신축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둘 중 하나만 살 수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는 게 경제적인가요?
A. 신축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구축 아파트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구축 아파트에 실제로 거주하면서 향후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몸테크’족도 있고요. 하지만 50대, 60대 은퇴자들이 동파 사고 등 낡은 건물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을 견디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상 재건축에 돌입해도 최소 5년은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도 구축에 투자한다면 땅값이 비싼 곳일수록, 재건축 사업 기간은 짧을수록, 대지 지분은 클수록, 현재 용적률 혹은 개발 가능한 용적률이 높을수록 좋습니다. 앞서 반드시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Q.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와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는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A. 입지 및 교통 요건, 지형, 방향, 층, 조망권, 학군은 물론이고 최소 500세대 이상의 단지 규모에 브랜드 파워가 강한 아파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아울렛이 근접해 있으면 좋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쇼핑이 발달해 과거보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추세입니다. 더불어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지만 1인 가구, 2인 가구로 나뉘어 가구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앞으로는 소형 평수지만 수영장, 헬스장, 커뮤니티 시설 등 다양한 공간이 갖춰진 아파트가 주목받을 거라 예상합니다.
올해는 어떤 지역의 관계안내소 만들기를 지원하고 있다. 관계안내소는 관계인구를 만드는 곳이다. 행정 관계나 조직 관계가 아닌 ‘사람’ 관계를 만드는 것에 주력한다. 관계안내소는 지역 명소와 지역 특산품 판매에 주력하는 (그러나 대부분 문이 닫혀 있곤 하는) 관광안내소와는 다르다. 지역의 삶, 사람, 산업 등을 소개하여 지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장소나 공간만을 특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기왕에 이동하는 인구를 좀 더 지역에 잘 연결되게 하려는 기발한 프로그램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체어링
‘체어링’(Chairing)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흔히 말하는 아웃도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고 좋은 장비도 있어야 하는데, 체어링 프로그램은 의자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일본에서는 체어링하기 좋은 가볍고 편한 의자만 파는 업체도 수십 개다.
지역 관계안내소에서는 멍때리거나 쉬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며 체어링을 통해 지역에서 쉬면서 지역의 매력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요즘 한달살기나 워케이션 같은 프로그램이 많은데 체어링은 그런 체류 프로그램보다 덜 부담스럽다. 뭔가 의지할 곳 없는 헛헛함을 의자 하나가 꽉 채워줄 것 같은 신박한 매력이 있다. 히가시가와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처럼 누군가에게 ‘자리’는 특별한 의미와 위로가 된다.
한편 체어링을 더 확장해 ‘어디든 앉을 권리가 있다’며 공공(장소) 해킹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까지 있다. ‘휴가 다녀오면 책상(내 자리)이 없어졌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말하는 직장인들이 종종 있는데, 지역에서는 이런 ‘자리’ 마련을 통해 관계인구를 유인한다.
가출 티켓
일본 나가노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가출 티켓으로 관계인구를 만들고자 한다. 원래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보호하는 취약계층 지원의 의미가 더 강한 프로그램이었다. 부담 없는 돈을 받고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행할 돈조차 없는 취약계층의 여행을 독려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사람이 취약계층이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뿐이겠는가. 우리는 가끔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저 단출한 짐 하나로 부담 없이 지역에 체류하면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는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지역이 좋아질 수 있다. 지역의 관계안내소는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영리한 선택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관계안내소 프로그램이 있다. 빡빡하고 엄숙한 종친회가 아니라 밀양 박씨, 김해 김씨 등 ‘전국의 ○○씨 모여라’ 하는 성씨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있다. 이들은 성씨가 등장한 최초의 지역에 모여 자신들의 시조와 역사에 대해 유쾌하게 이야기하며 친해진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줄임말) 종친회의 진화 버전 같기도 하다.
운전면허 따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기왕이면 지역에서 쓰라며 한 달 동안 지역에 체류하면서 면허도 따고 지역살이도 체험하게 하는 일종의 라이선스 스테이(License Stay) 프로그램도 있다. 운전면허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이나 학위 등 종류를 확장하여 전문화해보면 좋을 프로그램이다.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건 더할 나위 없다.
가상의 지역 유적지를 돌며 미션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포인트를 얻어 현실에서 사용하는 RPG 게임도 있다. 지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게임의 장으로서 매력을 발신하는 것이다. 게임에 열광하는 계층에겐 딱 맞는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한 번씩 4회 정도 대도시에서 출향민이나 지역에 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역의 상황을 오리엔테이션 교육하고, 지역에 직접 탐방 가서 주민들이나 사업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지역에서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일본 어디에서나 확산되고 있는 전형적인 관계안내소 프로그램이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일본의 관계안내소 프로그램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관계인구를 만들기 위해 그 지역의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혹은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를 강조하거나, 관계인구가 많이 오지 않으면 지역이 망한다는 반협박성 호소도 하는 상황이다. 거대한 랜드마크나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관계의 축적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일방적으로 호소하고 짝사랑 메시지를 보낸다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좀 더 섬세하게 관계인구가 되고 싶은 사람과 그런 사람을 받아들이고 싶은 지역의 입장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쉽게 맺어진 관계는 쉽게 끝나는 법이다.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가업 승계 과정에서는 막대한 조세가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기업 지분을 100% 보유한 창업 1세대가 2세대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면 그 지분율은 50%, 3세대까지 승계하면 25%만 남게 된다.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지분을 매각하거나 폐업을 선택하는 상황이다.
세법은 국내 거주자인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 등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한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공제해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고 있다. 이를 가업상속공제라 하는데, 기업의 기술 및 경영 노하우를 상속인이 효율적으로 전수받아 기업을 영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해 장수 기업을 육성하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그 요건과 사후관리가 까다로워, 이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관련 규정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 요건
먼저 가업 요건을 알아보자. 대상 가업은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경영한 중소기업(자산총액 5000억 원 미만) 또는 중견기업(직전 3개년 평균 매출액 5000억 원 미만)에 해당해야 하며, 법령이 정하는 업종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해야 한다. 여기서 경영이란 단순히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가업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관리 및 운영을 위해 실제 가업 운영에 참여한 경우를 의미한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하여 영위한 사업인지 판정할 때 피상속인이 사업장을 이전하여 같은 업종의 사업을 계속 영위할 때는 종전 사업장에서의 사업 영위 기간을 포함해 계산한다. 그리고 개인사업자로서 영위하던 가업을 동일 업종의 법인으로 전환하여 피상속인이 법인 설립일 이후 계속하여 그 법인의 최대 주주 등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개인사업자로서 가업을 영위한 기간을 포함하여 계산한다. 법인이 인적 분할한 경우 분할 신설 법인의 사업 영위 기간은 분할 전 분할 법인의 가업 영위 기간 기산일부터 계산하여 가업상속공제를 적용한다.
중견기업의 경우 위 요건에 해당하더라도 가업을 상속받거나 받을 상속인의 가업상속재산 외 상속재산의 가액이 상속세로 납부할 금액 2배를 초과하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없다. 다른 상속재산이 없어 상속세 납부를 위해 가업상속재산을 매각해야 하는 등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못하면 가업 승계가 어려운 경우에만 공제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피상속인 요건이다. 피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현재 국내 거주자여야 하며, 10년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40% 이상(상장법인인 경우 20% 이상)을 계속 보유해야 한다(친족 등 특수관계인의 주식 포함). 또한 피상속인은 ① 가업의 영위 기간 중 50% 이상의 기간, ②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대표이사 등의 직을 승계하여 승계한 날부터 상속 개시일까지 계속 재직한 경우에는 10년 이상의 기간, 또는 ③ 상속 개시일부터 소급하여 10년 중 5년 이상의 기간 동안 대표이사(개인사업자의 경우 대표자)로 재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속인은 ① 상속 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② 상속 개시일 전에 가업의 영위 기간 중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다만, 피상속인이 65세 이전에 사망하거나 천재지변 및 인재 등 부득이한 사유로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또한 상속 개시일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한 경우로서 상속 개시일까지의 기간 사이에 병역의무 이행, 질병 요양 등의 사유로 가업에 종사하지 못한 기간이 있는 경우에는 그 기간은 가업에 종사한 기간으로 본다. 상속인이 가업에 종사하다가 중도에 퇴사한 후 다시 입사한 경우 재입사 전 가업에 종사한 기간을 포함하여 상속인의 가업 종사 기간을 계산한다. 그리고 ③ 상속인은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상속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야 한다.
상속인의 배우자가 이러한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는 상속인이 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 피상속인이 국내 거주자인 경우, 상속인이 위와 같은 요건을 갖추었다면 상속인은 상속 개시일 현재 비거주자인 경우에도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추가로 기업의 준법 경영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탈세 및 회계부정 등 불성실 기업인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배제한다. 피상속인 또는 상속인이 가업의 경영과 관련하여 조세포탈 또는 회계부정 행위(상속 개시일 전 10년 이내 또는 상속 개시일부터 5년 이내의 기간 중의 행위로 한정)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되는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없다. 이미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은 후 상속인에 대한 형이 확정된 경우에는 공제받았던 상속세 및 이자 상당액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가업상속재산의 범위와 공제한도
가업상속재산이란 소득세법을 적용받는 가업의 경우 상속재산 중 가업에 직접 사용되는 토지, 건축물, 기계장치 등 사업용 자산에서 해당 자산에 담보된 채무액을 뺀 가액을 말한다. 법인세법을 적용받는 가업의 경우 상속재산 중 가업에 해당하는 법인의 주식 등의 가액에 그 법인의 총자산가액에서 사업무관자산을 제외한 자산가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곱한 금액에 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사업무관자산이란 법인세법상 비사업용 토지, 업무무관자산 및 타인에게 임대하고 있는 부동산, 대여금, 과다 보유 현금,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 없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채권 및 금융상품 등이다.
사업무관자산 중 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판단이 자주 문제가 된다. 법원은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란 법인이 제품의 생산활동, 상품ㆍ용역의 구매활동 및 판매활동 등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는 주식을 의미하고, 투자활동이나 재무활동과 관련하여 보유하는 주식은 제외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법인이 단순히 관계회사에 대한 지배권 내지 경영권을 보유할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하여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법인의 영업활동을 위해 필요한 현지 생산공장에 해당하는 해외 현지법인 출자 주식은 국내 법인의 영업활동과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법인의 사업 관련 자산에 포함된다.
가업상속재산에 상당하는 금액을 전부 상속세 과세가액에서 공제하는데, 피상속인의 경영 기간에 따라 10년 이상 20년 미만 경영한 경우 300억 원, 20년 이상 30년 미만 경영한 경우 400억 원, 30년 이상 경영한 경우 600억 원을 한도로 공제한다.
사후관리는 필수
이게 끝이 아니다. 상속 개시일로부터 5년 동안 상속인이 지켜야 할 사후관리 요건이 있다. ① (가업 종사 요건) 상속인은 대표이사 등으로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가업을 1년 이상 휴업하거나 폐업하지 않아야 한다. 가업의 주된 업종을 변경하면 안 되는데,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 업종 변경은 허용한다. ② (자산 유지 요건) 가업용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하지 않아야 하며, ③ (지분 유지 요건) 주식 등을 상속받은 상속인의 지분이 유지되어야 한다(상속세 물납에 따른 지분 감소는 제외하되 이 경우에도 최대주주 등에 해당해야 함). 마지막으로 ④ (고용 유지 요건) 상속 개시일부터 5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 또는 총 급여액의 전체 평균이 직전 2개 사업연도 평균의 9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위 요건을 위반하는 경우 공제받은 상속세를 다시 납부해야 하며 이에 더해 이자 상당액까지 추가로 부과된다. 가업상속공제가 추징되지 않는 정당한 사유는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최근 기획재정부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적용 시 상속받은 가업법인 주식 중 일부만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경우 가업상속공제를 받지 않은 주식 일부를 사후관리 기간 내 처분하는 것은 사후관리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가업 승계 장려를 위한 지원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그 요건이 한정적이고 사후관리 의무 역시 엄격하여 그 활용이 저조하다. 2016~2022년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제도 연평균 이용 건수는 103건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2년에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 및 공제한도액을 확대하고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3년 세법 개정안을 보면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가업 종사 요건과 관련하여 표준산업분류상 대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도 추가됐다.
이번 글에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세법은 생전에 이루어지는 가업 승계를 지원할 목적으로 가업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도 두고 있다. 가업의 승계를 목적으로 해당 가업의 주식 등을 증여하는 경우 낮은 세율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는 대신 상속받은 가업상속재산을 양도·상속·증여하는 시점까지 상속세 납부를 유예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업 승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활용을 통해 장수 기업들이 그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정성우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의무원장(신경과 교수)이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6회 ‘치매극복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부포상으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국민포장(國民褒章)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이나 기관에 수여하는 상훈을 말한다.
정성우 의무원장은 “현장에서 다양한 치매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인천광역치매센터의 운영 가치를 지역사회 치매 예방과 인식 개선, 인간중심 돌봄 역량 강화에 두고 역량을 집중해 왔다”며 “앞으로도 임상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치매안심사회 구축에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치매극복의 날은 매년 9월 21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협회(ADI)가 가족과 사회의 치매환자 돌봄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치매와 두통 등 뇌 질환 분야 권위자인 정성우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의무원장은 2019년 12월부터 인천광역시광역치매센터장을 맡아 2020년과 2021년 전국 광역치매센터 사업평가 1위, 우수사례 경진대회 2년 연속 최우수상 수상 등을 이끈 공로가 인정됐다. 또 전국에서 65세 미만 치매환자의 상병 비율이 가장 높은 인천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노인성 치매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지원이 부족한 65세 미만 치매환자와 가족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뇌건강학교)를 개발하고, 인간중심 치매돌봄 기법인 ‘휴머니튜드’ 도입에 앞장서는 등 치매극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왔다.
아울러 정성우 의무원장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로 25년 넘게 재직하면서 2018년 국내 최초 뇌병원 개원부터 현재까지 뇌병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치매를 포함한 뇌 질환 치료에매진하며 임상과 연구 영역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게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몸 안에 심각한 병이 들이닥쳐 횡포를 부리는 건 알겠는데, 도무지 병명조차 알 수 없었던 정규원(54, 백민구절초연구소 대표)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며 갖가지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조만간 죽음이 방문할 듯 몸의 통증이 자심했는데도 말이다. 매우 난처한 상황이었다. 고민과 궁리를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골이라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기로 한 거다. 시골의 자연환경이 괴로운 육체는 물론 덩달아 저하된 정신까지 끌어올려 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다. 그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규원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한 건 2010년, 41세의 한창 나이 때였다. 인생의 전성기라 할 시즌이었으니 정리가 쉬웠으랴. 만족스럽던 직업(의류 관련 액세서리 사업)을 일거에 접는 것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게다가 그의 곁엔 살뜰한 아내와 토끼 같은 어린 자식 둘이 있어 발목 잡히기 십상이었다. 과연 아내가 귀농에 동의할지, 무엇보다 가족을 동반하고 귀농할 경우라도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래저래 고심이 많았다. 그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선은 혼자 외진 산속에 들어가 쑥이나 고사리처럼 조용히 사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TV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살며 병부터 다스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내가 동행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 만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아내는 남편이 귀농을 선창할 경우 일단 반기를 든다. 매우 영민한 종족인 아내들은 날이면 날마다 풀을 뽑다가 뱀을 만나 까무러칠 가능성이 농후한 귀농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걸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규원의 아내는 시골행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그의 얘기는 이렇다. “아마도 아내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민만큼이나 어려운 역경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귀농이다. 하물며 남편만의 단독 귀농이라면? 이는 가정의 불안정을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최악의 경우 가정의 해체까지 불러들일 수 있다. 정규원의 아내는 이와 같은 리스크를 고려해 전향적인 판단을 했을 테다. 아내의 대범한 태도에 힘을 얻은 정규원은 마침내 귀농 거사를 착수하게 됐다. 서울에 있던 집을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를 대동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귀농한 곳은 할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문의면이다. 이왕이면 아주 낯선 객지보다 연고가 좀 있는 곳이 정착에 유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점찍은 곳이다. 거처는 농촌 마을이 아닌 면 소재지에 마련했다. 초등생 아이들의 등하교 편의를 배려한 결정이었다.
“귀농 초기엔 건강 회복에 중점을 두었다. 텃밭 농사를 통해 직접 기른 채소로 만든 음식을 주로 먹었고, 부지런히 뒷산을 오르내렸다. 명상센터에 나가 수련을 하며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농사에 대한 구상도 많이 했다. 논을 사 벼농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쌀만큼은 직접 농사지어 먹자는 아내의 의견에 공감해서였다.”
귀농 전에 미리 받아둔 귀농교육이나 농사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나?
“서울에서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한 귀농교육에 관심이 있어 아내와 함께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기도 의왕에 텃밭을 마련해 작은 농사를 지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경험치에 불과했다. 사실 계획 없이 막연한 귀농을 한 셈이었다. 건강 문제가 화급해 사전 준비를 할 겨를이 없기도 했다.”
농업만큼 만만치 않은 직업이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섣불리 농사에 뛰어들 일이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농사로 가족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농업에 매력을 느껴보진 못했다. 하지만 한줄기 동경 같은 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겠더라. 농부로서 긍정적인 풍모를 지녔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귀농교육은 귀농 이후 적극적으로 받았다. 이를테면 지역의 농업기술센터에서 1년간 교육을 받았다. 친환경 농업을 기본 방향으로 정한 바 있어 관련 공부를 해 유기농업기능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전자상거래 등 다변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할 필요를 느껴 E-비즈니스 교육도 받아두었다.”
일련의 농업교육을 이수한 뒤 비로소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했나? 아니면 몸 치유에 치중한 시간이 더 많았나?
“치유와 농사를 병행했다. 그게 바람직한 길이기도 했다. 농사일을 하면서 건강도 서서히 좋아졌고, 좋아지는 건강 상태에 따라 농사에 대한 의욕도 상승했으니까. 2013년엔 친환경 농업을 추구하는 귀농인들과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토대를 마련했다.”
멧돼지들이 농장을 초토화하기도
정규원이 선택한 주 작목은 구절초다. 구절초를 재배,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그는 산속에 있는 4000평 규모의 구절초 농장을 운영한다. 바야흐로 유능한 구절초 농부로 부상하고 있다. 출발은 미미하고 미묘했다. 할머니 묘소에 벌초를 하러 갔다가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구절초 꽃을 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200평 남짓한 작은 땅에 구절초를 심은 게 구절초와 인연을 맺은 계기라는 게 아닌가. 일종의 감성적 충동으로 시험 재배 삼아 구절초를 심어봤을 뿐인데 이게 향후의 길을 환하게 열어줬다.
“남에게 빌린 200평짜리 작은 밭에서 거둔 구절초로 조청을 만들어봤는데 50인분 밥솥 하나 분량의 조청이 나왔다. 판매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조청 품질이 좋다며 구입을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홍보도 해주었고. 이렇게 기대하지 않았던 판매 효과까지 거둔 뒤엔 서서히 생산량을 늘려나갔다. 자연스럽게 구절초 농사에 본격 입문한 셈이다.”
조청만 생산하는 건 아니겠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구절초꽃차, 모종, 체험 상품인 에코화분, 그리고 구절초블랙이라 이름 붙인 농축액 등을 생산한다. 주력 상품은 구절초블랙이다. 이건 유기농 구절초 함량 97%에 달하는 제품으로 나름 야심을 가지고 개발했다. 현재 상표출원 절차를 밟고 있다. 소비자의 80% 이상은 구절초 제품을 약용 목적으로 구입한다. 구절초블랙은 이와 같은 소비자의 니즈에 부응하기 위해 개발됐다.”
구절초 농사 전체 과정 가운데 어려운 부분은 어떤 것인가?
“모든 농사가 그렇듯 구절초 역시 제초 작업부터 뭐 하나 손쉬운 게 없다. 재배 기술 습득은 비교적 용이하다. 문제는 날씨 변동이다. 예상하지 못한 폭우와 긴 장마엔 구절초가 맥을 못 춘다. 과도한 습기에 약한 작물이니까. 배수시설을 완비하고 밭에 경사도를 만들어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병충해 예방을 위한 선제적 대응 능력도 필요하다.”
흔히 병충해 방제는 농약에 의존한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유기농업은 농약 없는 농사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생태환경 유지에 공을 들인다. 난 구절초 농장 복판에 억새섬이라 부르는 작은 숲을 조성해 자연생태와 평형을 이루도록 했다. 이 작은 숲은 병충해의 기습을 완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사마귀 알집도 활용한다. 미리 채집한 사마귀 알집을 봄철에 방사하는 것인데, 부화된 사마귀들이 해충들을 먹어치운다. 이렇게 사마귀들이 농장을 지켜준다. 그런데 난해한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멧돼지다.”
멧돼지 피해가 심각했다는 얘기겠지? 그런데 멧돼지가 구절초도 먹나?
“구절초를 먹는 건 아니고 땅속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먹기 위해 밭을 아예 농부처럼 갈아엎는다. 한번은 멧돼지 군단이 몰려와 농장을 투철하게 초토화했다. 징을 쳐대고, 포수를 불렀지만 아무 소용없더라. 포수들이 야간 매복을 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공격은 한 달간 이어졌다.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울고 싶은 심정이다.(웃음)”
구절초 향수를 개발하고 싶어
농사로 긍정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안락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오죽하면 귀농을 고행에 견주랴. 정규원은 비지땀 이상의 피땀을 쏟았다. 덕분에 순항을 거듭했다.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알려진 판로 문제도 길을 잘 찾아 해결했다.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과 관계를 맺어 상품을 납품, 꾸준히 안정적인 경영을 해왔다. 세상에서 익힌 처신과 경험을 슬기롭게 제련해 귀농 생활의 재료로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 안정적인 행보의 거름이 됐다. 그의 언사는 나직하고 다소 어눌하다. 반면 내부엔 뭔가 강철 같은 게 들어 있다는 느낌을 풍긴다. 이기심은 줄이고 이타적 선의를 키워 나아가는 게 삶의 정수를 맛보는 길이라는 신념을 육화한 인간 유형이랄까. 그는 사실상 신념을 밀어붙이며 당찬 귀농 생활을 해왔다. 2013년에 결성한 문화적 농업 공동체인 유기농협동조합에 이어, 2017년엔 경제 공동체인 마을기업 ‘백민구절초연구소’를 만들어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 문제는? 여전히 아픈 몸을 고독하게 끌어안고 농장에서 뛰나?
“실로 고통스러웠다. 오죽하면 몸 하나 살려보자고 귀농을 했겠는가? 몸이 추락하자 온갖 회의가 몰려들기도 했다. 이 지경으로 몸을 망쳐놓다니, 난 패배자야! 그런 넋두리가 잦았다. 그런데 기대보다 빠르게 건강이 회복됐다. 2017년에 이르러선 병의 늪에서 거의 완전히 해방된 걸 알았다. 따라서 마을기업 결성에 나설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덧 대학생으로 자랐다지? 뒷바라지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가계 형편은 어떤가?
“서울에 있던 집을 판 자금의 절반쯤은 귀농 초기에 다 까먹었다.(웃음) 농업으로 소득을 거둔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젠 꾸준히 소득이 늘고 있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부인은 당신의 농사에 어떤 식으로 조력하나?
“아내는 아내대로 일이 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강의한다. 각자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상황에 우리 부부는 만족한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게 아내이고.”
만약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귀농을 하게 된다면 지금과 어떤 점이 달라질 거라고 보나?
“(잠깐 생각하다가) 일을 좀 줄여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농 방식을 모색할 것 같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내겐 아직 꿈이 많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는 과욕과 과속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농장을 키워왔다. 하지만 확장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 구절초 가공 제품을 세계 시장에 선보이고 싶고, 구절초의 아찔한 향을 재료로 한 향수 개발에도 뜻을 두고 있다. 그 매너리즘 없는 정신이 그의 돛을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정규원이 주는 귀농 Tip
•집과 농지를 서둘러 구입할 것 없다. 평생의 삶터로 삼을 경우엔 더 신중해야 한다. 처음엔 남의 농지를 빌려 활용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처음부터 농사 규모를 크게 설정하는 건 금물이다. 내 농사는 작게, 그리고 남의 일도 도와주면서 농사 물정을 익히는 게 필요하다.
•농업 교육기관에서 만난 귀농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자. 모임을 만들어도 좋다. 결국은 귀농 에너지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농사만으로 자립하기 쉽지 않다. 도시에서 쌓은 경륜을 살린 일거리를 만들어 수입을 보완하자.
•구절초 농사에 뜻이 있을 경우 500평 정도의 작은 규모로 시작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판로 문제에 대한 사전 연구도 필수다. ‘한살림’ 같은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활로를 모색하자.
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브라보 마이 러브’는 미숙했던 지난날을 위로하고 남은 날의 성숙한 촉매제가 될 당신의 중년 사랑을 보듬는다.
작고 허술한 나뭇잎 배가 시냇물의 작은 소용돌이에서 맴돌듯이 그와 나의 관계도 좀체 진전되지 않는 상황이 위태롭고 답답했다. 나뭇잎 배처럼 가볍고 부서지기 쉬운 관계였던가, 우리 사이가. 나는 사별, 그는 이혼(을 전제로 한 별거 상태), 서로의 공감대가 달라서일까. 아니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조건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구나 우리는 고교 시절을 오롯이 함께 지냈던 사이인데… 그렇게 조마조마 위태롭던 나뭇잎 배가 내 바람과 달리 순풍을 타기는 고사하고 기어이 뒤집어지고 말았으니….
동창 장례식에서 재회한 그와 나
지방 소도시의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공교롭게도 1년 전 동창의 장례식장이었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남자 동창이었으니 나보다는 그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동창들은 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다. 게다가 고작 3개 반이었으니 학년이 바뀌고 반이 달라져도 서로 낯선 얼굴은 없었다.
교통사고라고 했다. 서울에 거주하던 그는 추석을 맞아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오던 중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동창은 즉사했고 옆자리 아내는 중상을 입고 입원 중이라 썰렁한 빈소는 바로 밑의 동생이 지키고 있었다. 충격을 받으실까 노모한테는 알리지 않았다고. 어차피 90세 넘은 고령에다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니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장남이 죽은 것도 모르고 목 빼고 기다리는 노모에게는 내려오기로 한 아들이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었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들었다.
급하게 사람이 간 데다 사고가 난 지점이 고향 가까운 곳이라 구태여 거주지 서울에서 장례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지만, 되도록이면 노모 곁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하고 싶었던 형제자매, 고향 친척들의 마음도 작용했다.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 해도 집에 다 와서, 엄마 곁에서 죽고 싶었던 것 같다는 말을 보태며.
나는 마침 추석을 쇠러 3일 전부터 고향에 머물고 있었다. 내게도 고령의 어머니가 계시니. 남편이 7년 전 떠난 후부터는 명절에 고향 친정을 찾는다. 시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당연히 시댁에서 지냈지만 남편에 이어 시부모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신 후에는 친정엄마와 오롯하게 보내고 있다.
비보는 작은 마을에 삽시간에 퍼졌다. 나뿐 아니라 명절 맞아 고향을 찾은 동창생들이 더러 있었기에 뜻하지 않게 모두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식당이나 슈퍼마켓 등 자영업을 하면서 고향을 지켜온 동창들을 제외하고 타지에 나가 사는 동창 중에 몇 년에 한 번이나마 얼굴 보는 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얼굴도 있었다. 그는 후자에 속했다. 그가 고향을 찾은 것은 20년 만이라고 했다. 결혼 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가 가족은 그대로 있고 본인만 사업 관계로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게 3년 전이라고. 재정착하느라고 나름 바빠서 고향을 찾은 것은 그해가 처음이라고 했다. 마치 나를 만나기 위해 20년 만에 발걸음을 한 것 같다며 농담을 진담처럼 해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사별녀, 그는 엄연한 유부남
그와 나는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는 30분 거리를 걸어 통학했는데 집 방향이 거의 같아서 함께 등하교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둘만의 내밀한 추억이나 은밀한 기억이 있지는 않다. 나는 선머슴 같은 기질이라 사춘기 이성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기엔 뭘 한참 몰랐고, 그는 그대로 그 나이의 보통 남학생이었을 뿐 여학생의 마음을 섬세히 읽을 줄 안다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편은 아니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때 좀 특별한 관계였더라면 하는 것은 지금의 내 마음이 빚어낸 환상이자 뒤늦은 달뜸 탓이 아닌가. 그때 그랬기에 그와 내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중년 아줌마의 소녀적 감성이 빚어낸 통속적 로맨스라도.
그럼에도 나는 그가 반가웠고 그도 나를 반겼다. 특별한 관계는 이제부터면 되지 않나. 그렇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금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20년이나 지난 후에야 비로소.
“동창 녀석의 죽음이 우리를 연결해줬다고 하면 이기적이고 잔인한 말 같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우리가 좀 더 일찍, 아니 아주 많이 일찍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을 때 사귀기 시작하고 그 인연을 따라 맺어졌다면 너도 나도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의 말에 내 가슴은 또 콩닥이며 설레었다. 죽은 남편만 불쌍하지. 단언컨대 내 결혼 생활은 불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남편은 나를 많이 아껴주던 사람이었다.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큰돈을 벌어오진 못했지만 성실하게 가족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운전을 하다 보니 사고 위험에 늘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어느 날 음주운전 차량과 충돌하여 의식을 잃고 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남편과 금슬이 좋았기에 혼자 살아온 지난 세월이 더 외로웠고, 누군가를 만나 빈자리를 메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하던 때에 그를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엄연히 아내가 있고 대학생 두 자녀가 있다. 유부남인 그와 나는 처지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귐은 깊어지고 있었다. 차 한잔이 밥이 되고, 밥자리가 밤자리, 잠자리로 이어졌다. 한번 열린 마음과 몸은 거침이 없었다. 7년간 굳게 닫혀 있었으니 더.
뻔한 레퍼토리라 해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는 아내와 곧 이혼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사업을 핑계 삼아 한국과 캐나다에서 별거 중이라고 했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존재라지 않나.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삼각관계 질투의 덫에 걸린 나
그러나 정작 일은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세상 떠난 동창의 아내와 그가 자주 만난다는 게 아닌가. 내가 그와 사귀는 줄 알 리 없는 내 친구가 가십 삼아 한 말이 나한테까지 들려온 것이다.
“장례 마치고 그 아내의 문병을 갔던 모양이야. 좀 어색한 그림이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남편을 창졸간에 잃은 데다 아내도 많이 다쳤으니 위로차 문병할 수도 있겠지. 근데 병원 출입이 너무 잦은 게 수상한 거지. 서울 사는 가족들이 간호하기 힘들다며 서울 병원으로 옮기자고 하는데도 본인이 마다했다잖아. 남편 고향이지 본인은 아무 연고도 없으면서 말이야. 아마도 두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려고 그런 것 같아.”
명치쯤이 타는 듯 아리면서 가슴에 쿵 소리가 났다. 머릿속에서는 ‘웅~’ 하고 사이렌이 울렸다.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그렇다면 나와 만나면서 동시에 그 여자도 만났다는 건가. 캐나다에 있는 그의 아내가 아닌 연적(戀敵)이 따로 있었다니! 이 무슨 전혀 예상치 않은 삼각관계인가!
“죽은 동창의 아내를 돌보는 야릇한 상황이라니, 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사람 캐나다에 가족이 있다지? 근데 그 여자한테는 돌싱이라고 속였다나 봐. 그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사람이 있어. 그 말을 하는데 그 여자 얼굴이 한껏 달떠 보이더래. 남편 죽은 여자 낯빛이 아니더라나. 사랑에 빠진 얼굴이 그런 얼굴이라지 아마?”
이어지는 친구의 말이 귓전에서 웅웅대며 가슴에서 홧홧한 질투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정말로 그 여자와 만나는 사이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어차피 싱글도 아닌 놈이니 한바탕 잘 놀았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 굶주려 있던 차에 그렇다고 아무 놈하고나 할 수는 없고 그래도 좋아하는 놈하고 한 게 어디야? 좋아. 까짓 거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거야.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선 아는 척할 것도, 거론할 것도 없이 조용히 물러나주는 거야. 그게 그나마 구겨진 자존심을 챙기는 길이고. 어차피 유부남이잖아. 여기서 끝내는 게 뒤탈이 없을 거야. 오히려 잘됐어.’
진심도 아니고 위로도 되지 않는 말을 마음속으로 지껄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결국 양다리 걸친 놈한테 속았다는 생각이 차오를 무렵, 그러고도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떨리는 마음을 억누른 채 그러나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노모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 있다는 게 아닌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자주 가네.”
“연로하시니까. 언제 또 캐나다로 불쑥 가게 될지도 모르고. 있을 때라도 자주 뵈러 와야지.”
“근데 지금 자기 혼자 있어?”
“혼자 있지 그럼 누구랑 있어? 아, 우리 어머니? 잠깐 텃밭에 나가셨어. 왜 인사드리고 싶어서? 장래 새 며느리 될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서? 하하.”
전화기 너머로 부스럭 소리가 난 것도 같다. 그 여자를 향해 “쉬” 하며 입술에 손가락 대는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아, 나는 꼼짝없는 덫에 걸린 것이다. 바야흐로 질투에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삼류 영화의 여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