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정작 사진보다 말만 가득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진들은 여느 전시장처럼 벽면에 걸려 있는데 관람객들이 그 사진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전시회 넷째 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안내를 받으며 전시실로 들어왔다. 그들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들과 그들을 안내한 도우미들의 두런거림과 기존 관람객들의 주춤거림이 있었다. 돌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며 나는 그들과 마주했다.
한 시각장애인이 내 옆에서 전시된 사진 프레임을 한 손으로 더듬자 안내인이 그의 손을 저지했다. 나는 저지당한 장애인의 손을 이끌어 사진프레임과 그 사이의 사진을 만져보게 했다. 다시 옆에 전시된 다른 프레임을 만져 서로 간의 거리를 짐작하도록 도와주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안내인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무리지어 서 있는 곳은 ‘밤하늘도 파랗다’는 제목의 연작 세 점 앞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한 도우미가 엉뚱한 곳을 향해 서 있는 장애인을 돌려세워 전시 작품들과 마주보게 해주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시장은 밖에서 내리는 빗소리가 느껴질 만큼 조용했고 작품을 강조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더욱 밝게 느껴졌다. 그 사이 큰숨을 몇 번 내쉬며 나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처음 카메라로 밤하늘을 담기 위해 노출을 맞춰볼 때가 생각났다. 나는 당시, 그들처럼 주위가 가름되지 않는 밤하늘 아래 서 있었다. 깜깜한 밤하늘을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마치 점자를 하나씩 손끝으로 헤아려 글로 읽어내듯 별이 하나씩 드러난다. 별들을 그렇게 점자의 점끼리 연결시키듯 한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어 나름 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우리는 전시장 가득 별들을 채워나갔다. 그러면서 별과 별 사이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에 차츰 차오르는 어렴풋한 빛의 아우라를 서로의 심상(心像)에 그릴 수 있었다.
이어지는 몽골과 유대 광야에서 촬영한 ‘빈자리의 아름다움’ 17점은 그들이 올 줄 미리 알고 준비한 작품들 같았다. 작품의 선별이나 순서 모두 그들을 위한 기획이나 다름없었다. 사진이 관람객의 생각을 이끌되 제한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진가로서의 막연한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경험은 다시 만나기 힘든 축복이었고 누구라도 부러워할 행운이었다.
뒤늦게 전시장에 들어온 스태프들은 갑자기 벌어진 특별한 상황을 알아차리고 어쩔 수 없는 긴장감으로 조용히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누구도 이들의 보지 못하는 눈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 전시를 기획한 스태프들도 예기치 않았던 이들의 방문에 감동하였다. 우리들은 이론과 말로만 바라던 ‘관람객들과 작가가 함께 작품의 질을 높이는 현장’을 체험하고 있었다. 마지막 작품을 셀프 도슨트로서 안내하며 ‘보는 자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고, 보지 못하는 자가 볼 수 있는 세상’을 이야기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시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어두운 곳에 있을 때 하늘빛을 향한 창을 찾거나 새로 만들어야 했지만, 이번에 방문한 시각장애인들은 어느 곳이든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모든 곳으로 통하는 열린 창이었다. 그들은 보고 생각하는 면에서, 볼 수 있는 자보다 자유로웠다.
한 시간 가까이 작품을 설명하느라 땀이 흘렀다. 작품 설명과 안내가 끝나자 시각장애인들이 돌아가며 내 손을 잡고 감사를 표했다. 팔을 크게 벌려 안아준 이도 있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관람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될지 몰라 긴장감이 가득했던 시각장애인들을 안내한 분들이 보내는 따듯한 눈인사에 답할 수도 있었다.
전시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작가가 있겠느냐마는, 전시를 마치면 마음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아쉽고 후회되는 마음은 남는다. 사진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사진가가 셔터를 누르면 적어도 두 장의 사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한 장은 필름 위에, 또 한 장은 심상 위에. 그 두 사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사진가이다. 전시회에서는 그 갈등의 간극이 극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시각장애인들의 방문을 통해 바로 그 간극을 한껏 줄일 수 있었다. 사진 없는 사진전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장에 걸어놓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고 작가의 심상에 찍힌 사진으로만 전시회를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스에서 비틀스까지 시대를 이끈 여성 사진작가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대규모 회고전이 5월 25일까지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린다 매카트니(Linda Louise McCartney)는
1960년대 중반부터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으며,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도어스(The Doors), 지미 핸드릭스(Jimi Hendrix), 에릭 크랩튼(Eric Clapton), 그리고 비틀스(The Beatles)에 이르기까지 20세기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포착한 사진작가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린다의 사진은 대상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그 안의 솔직한 감정을 이끌어 냈기에 더욱 주목 받아왔다.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
‘Chronicler of the Sixties’ 1960년대 연대기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더 도어스(The Doors),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에릭 크랩튼(Eric Clapton), 비틀스(The Beatles) 등 1960, 70년대 음악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뮤지션과 아티스트들의 과장되거나 꾸미지 않은 맨낯을 볼 수있다.
‘Family Life’ 가족의 일상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결혼 이후 가족의 평범한 일상 순간을 어머니의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었기에 더 의미 있다.
대림미술관(관장 이해욱)은...
1993년 한림갤러리로 설립되어 1997년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을 개관했다.
어려운 작가만의 예술이 아닌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으며, 사진에 한정하지 않고, 폴 스미스(Paul Smith), 디터 람스(Dieter Rams) 작가展과 같이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진행했다.
명함은 역사다. 현재의 명함을 갖기까지, 많은 명함이 내 호주머니를 떠나갔다. 여기 누구보다 깊이 있는 명함을 가진 사람이 있다. 어렸을 때 절도로 소년원도 갔다왔다. 지금 하는 일은 노무사.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 인생, 롤러코스터다. 소년원에서 나와 ‘여전’한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역전’으로 바꾼 사나이. 노무사라는 명함을 가진 구건서의 ‘He Story’다.
글 양용비 기자 dragonfly@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부드러운 인상이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매너가 넘쳤고, 사람에게 풍기는 미소에서는 푸근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악수를 할 때 내미는 손은 예사롭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답지 않게 두껍고 다부졌다. ‘반전이 있는 사람이구나!’ 솥뚜껑만한 큰 손을 보고 기자는 직감했다.
40년 전 소년원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각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소년. 그 소년의 2015년 명함에는 노무법인 더 휴먼의 회장이자 공인 노무사라는 직함이 자랑스럽게 새겨 있다. 무일푼 인생에 처절함과 절박함이 더해지자 노력이라는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 동아줄을 붙잡고 오로지 성공이라는 한 곳만 보며 올라왔다. 공부의 절대 시간이 부족한 것은 그에게 변명이 되지 않았다. 그의 명함이 더욱 빛나는 이유다.
그를 만난 곳은 신사동의 한 갤러리. 사진전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제는 사진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어 친구가 회장을 맡은 동아리가 연 사진전에서 당번을 하는 날이었다. 노무사 구건서.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기자에게 내민 하얀 명함 속에서 깊게 팬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고생이 많았다.
◇ 첫 번째 명함, 건달과 택시 기사
“세상에 대한 분노뿐이었어요. 중학생 때 지나가던 아줌마 가방을 훔쳐 소년원에 갔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가’ 하면서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었죠.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줄 모르고 남 탓, 환경 탓하기 바빴던 거죠.”
그렇게 꼬박 1년을 소년원에서 지냈다. 복역 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밑천이 들지 않고, 육신을 쓰는 일뿐. 가방끈은 턱없이 짧았고, 어떤 일을 펼치기엔 땡전 한 푼 없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막노동, 노점상, 포장마차, 엿장수나 고물장수 같은 것이었다. 일을 어느 한곳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학연, 지연, 혈연이 전무한 상태에서 세상은 그에게 투쟁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자신에 대해 “그때는 건달이었죠. 뭐”라고 표현하며 웃어넘기지만 말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던 구씨가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 유명자(60) 씨의 역할이 컸다. 1981년부터 약 9년간 택시 기사를 하면서 노무사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어디로 튈지 몰랐던 구 씨를 끝까지 믿어 준 아내 덕분이었다.
“이런 나를 믿어주는 아내와 아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누라랑 자식새끼는 굶기지 말아야겠다’고 말이죠.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운전수로 세상을 마치는 것을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
◇ 두 번째 명함,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노무사 구건서
“택시 기사를 하던 중 존 네이스비츠의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보니 블루칼라는 멸종하고, 화이트칼라 같은 지식 노동자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노무사에 도전해 보기로. 인생을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었죠.”
24시간 격일제 운전.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운전수로 평생 살기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삶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더 이상은 몸으로 때우며 살기는 싫었다.
소년원 시절에도 놓지 않았던 독서와 택시 회사 노조활동을 하며 틈틈이 배워 둔 노동법. 이것을 바탕으로 노무사에 대한 도전의 칼을 갈았다. 독서광이었던 그에게 공부는 오히려 체질이었다. 하지만 택시 운전을 하면서 공부의 절대 시간을 확보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구 씨는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동차 핸들에 법전이나 노무사 관련 책을 오려 붙여 달달 외웠다. 차량 정체 시간이나 신호 대기 시간이 그의 공부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손님을 태우면 노무사 관련 테이프를 틀어 눈이 아닌 귀로 공부를 했다. “아, 칙칙하게 이런 거 틀지 말고 음악 좀 틀어주세요.” 손님들의 볼멘소리가 나올 만했다.
그만의 택시 독서실(?)은 그렇게 꼬박 3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명문대 졸업생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노무사 시험을 전국 4등이라는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루살이처럼 살던 구 씨의 노무사 합격은 ‘인생 여전’이 아닌 ‘인생 역전’의 시작이었다. 구 씨는 그 당시를 이렇게 술회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본 문구가 있습니다. ‘하루는 8만 6400초다. 이것을 돈으로 바꿔라’라는 것이었죠. 저에게 깊은 영감을 준 이 문구를 전 이렇게 바꿨습니다. ‘조물주가 매일 8만 6400초를 무통장으로 입금해준다고 생각하자. 대신 12시가 되면 못 쓴 것에 대한 값은 다시 빼간다’라고요. 저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값지게 쓰고 이것이 쌓이니 재산이 되더군요.”
◇ 세 번째 명함, Keep Looking, Don’t Settle!
“저는 이제 나이 60을 기점으로 제3의 인생을 사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첫 번째 인생이 나를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역사였다면, 두 번째 인생은 노무사로 활동하면서 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이었죠. 이제 세 번째 인생은 남과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제가 가진 것을 사회에 보태고 나누고 싶어요. 그래서 내비게이터십과 인생학교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의 명함은 이제 새로움이 더해지고 있다. 그가 쓴 책 의 표지에 쓰여 있는 ‘Keep Looking, Don’t Settle!(안주하지 말고, 계속 찾아라)’이라는 말에 걸맞게 명함도 미래를 지향한다. 그의 명함 오른쪽 상단에 쓰여 있는 횡성군 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신선마을 촌장 겸 인생학교 교장, 내비게이터십코칭 대표 등의 직책은 구 씨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명함 중앙에 ‘공인노무사’이라는 이름이 크고 위엄 있게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른쪽 상단에 위치한 직책들을 소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구 씨다. 이제는 노무사에 대한 것은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고생한 것이 있으니 지금 명함이 더 빛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명함도 마찬가지로 매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뀌지 않는 명함은 정체하는 인생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직책이 있든 없든 말이에요. 직책이 있든 없든 미래는 그려볼 수 있으니까요.”
◇ 명함 오른쪽 상단, 그의 새로운 역할
횡성군 발전위원회 자문위원
구 씨가 횡성군에 인생학교를 차리고, 자리를 잡을 예정이라서 횡성군에 직접 요청했다. 횡성 발전에 기여를 하면서 상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횡성에 기업 유치를 하고 귀농·귀촌인을 유치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신선마을 촌장 겸 인생학교 교장
횡성의 신선봉이라는 곳 앞에 세워지는 인생학교. 아직 학교는 없다. 하지만 곧 생길 학교에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교장이라고 기재했다. 이곳은 아이를 키우는 30~40대 부모들이 자유롭게 놀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구 씨가 여기서 하는 역할은 마을의 어른이자 할아버지로서 젊은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인생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내비게이터십코칭 대표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인생 설계도를 그려주는 일이다. 사실 시니어들은 은퇴 이후 미래 설계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인생 설계도를 제대로 그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피플스그룹(現) 부이사장
HR의 노동조합 형태인 피플스그룹이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았지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진도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젠 공무원이 찍은 사진 같다는 말은 듣지 않으려고요. 제가 셔터를 누르던 찰나의 느낌을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싶어요.”
그렇다. 그는 한평생 공무원이었다. 1972년 3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초급 공무원부터 시작해 2007년 4월 행정도시건설청기반시설본부장(국장급)으로 퇴직하기까지 35년간 국토정책 전문가로 나라의 녹을 받고 국가에 봉사했다. 퇴직 이후 2012년 4월까지 몸담은 건설공제조합(전무이사)까지 감안하면 40년 이상 사실상 공직생활을 한 셈이다. 그런 그가 퇴직 후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의 사진 얘기가 궁금했다.
현역시절엔 신문 스크랩으로 아쉬움 달래
공무원은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특히 국토부 공무원은 주택이라는 국민과 가장 근접한 이슈를 다루면서 일을 한다. 기본적은 정책 업무뿐만 아니라 언론 기사 대응까지 24시간이 모자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말을 편안하게 보내 본 기억이 없다. 공직에 발을 들여 놓고선 긴장의 끈을 놓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 그의 유일한 취미가 사진찍기였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멋진 풍경을 찍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일단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일간지 신문에서 주말판으로 제공하는 투어나 여행 관련 섹션이었다. 언젠가는 직접 다니며 그림 같은 풍경을 찍겠노라고 모은 여행 섹션지가 큰 사과박스로 2개가 넘는다. 어느 순간엔 퇴직하고 나면 반드시 가겠노라며 차곡차곡 모아 놓은 것이다. 공직 퇴직 후 7년이 넘은 지금.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진짜 (현역때보다) 더 바쁘더라구요. 동창회를 비롯해 업무상 지인들, 가족 모임까지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어요. 아직 스크랩한 지역들을 다니지 못한 것이지요. 게다가 투어 섹션은 여전히 매주 발행되고, 또 새로운 여행지가 쏟아져 나와 이젠 감당이 힘들 정도예요.”
“예술사진반서 공부… 달력사진 안 찍어요.”
그래서 그가 선택한 곳이 계원예술대학교 예술사진반이었다. 전문가에게 사진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달에 두 번 전국에서 사진 찍기 좋기로 유명한 곳들을 좋은 분들과 함께 다닐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다보니 지금까지 찍었던 사진들은 한낮 풍경만 담은 달력사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특히 같은 사진반 회원들이 찍은 작품을 살펴보다 풍경만 있고 감성은 없는 무미건조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이를 스트레스라고까지 말했다.
“공무원이 찍은 사진 같다는 얘기가 그렇게 듣기 싫더라고요. 틀에 박힌 사진이란 얘기지요. 여백을 담아내기도 하고 감성을 이끌어 내는 다른 분들의 사진과 비교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되더라고요. ‘난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은 무조건 멋진 풍경을 담기보다 풍경을 차분히 보고 제가 보고 느낀 감정을 같이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있어요. 점점 고민하고 진지하게 사진을 대하고 있는 셈이지요.”
몽골·미얀마 사진전 열어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이 최근 결실을 맺기도 했다. 계원예술대학교 전문사진반이라야 갈 수 있는 몽골과 미얀마 투어에 참가하게 된 것. 이를 계기로 올해 2월과 8월 각각 몽골 사진전과 미얀마 사진전에 준 프로급 전문가들과 작품을 함께 전시하는 영광을 얻게 됐다. 실력으로 보면 몽골과 미얀마 동행은 물론 사진전도 동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의 열정과 함께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몽골과 미얀마가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고 했다. 먼저몽골의 키워드는 ‘광활함’이었다. 그리고 메마르고, 거칠었다. 한반도 넓이의 7배에 달하는 드넓은 땅이었지만 춥고 척박했다. 그런 땅에서도 가족단위로 소·말·양·염소 등의 가축을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때 대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초라한 변방국가가 돼버린 그들에게서 ‘우리가 사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것을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닌가’라는 잔상이 남기도 했다고.
반면 미얀마의 매력은 ‘사람’이었다. 한없이 맑고 순박한 표정과 평화로운 사람들이 그를 매료시켰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독실한 불교국가라는 점에서 그연유를 찾고 있었다. 특히 사원이 많다보니 거의 맨발로 돌아다니며 유적지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사진전 작품들은 지인을 비롯해 자식들에게 선물했어요. 그 전에 몸담았던 건설공제조합에도 기부했고요. 이제 사진은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체 역할도 하고 있지요.”
문화해설가로 재능기부 하고파
사실 그의 인생에서 사진을 빼고 얘기하기도 어렵다. 이는 국토부 공무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부 과장 시절 국토부 내 처음으로 사진 동호회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청사의 사계 등 사진전도 열고 사진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도 했다.
이후 행복도시 건설청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사진반을 만들어 직원들이 함께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건설공제조합 시절에는 찍었던 사진들을 조합에 건네 조합달력을 만들기도 했다. 은퇴 이후에도 국토부 퇴직 공무원 모임인 건설진흥회에서 사진반 총무를 맡는 등 사진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진으로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요. 관광 가이드가 찍어 주는 사진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많으셨지요? 제가 문화해설가 역할도 하면서 사진도 찍어드리는 가이드를 하게 되면 ‘더 의미 있는 취미 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평생 찍은 사진을 분류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정말 움직이기도 힘들 때가 되면 아내와 둘이서 지난 세월을 음미하면서 사진을 즐기고 싶어서요.”(웃음)
한정식 주방장으로 수십년간 일하다가 퇴직한 나경제(가명·60)씨. 그는 최근 갈비탕을 주메뉴로 하는한식당을 창업하기로 마음 먹었다. 왕갈비탕 끓이는기술과 맛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씨. 호기로운 그의 음식점 생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창업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계수치상 그의 3년간 생존 확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가 더 의미심장하다. 갈비탕 맛은 뛰어날지 몰라도 마케팅 등 점포 경영은 젬병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게 현실이란다. 하지만 지피지기면 100전 100승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하면 시니어 창업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브라보 마이라이프가 발로 뛰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윤기식캔들 프랜차이즈 캔들나무 상무 등 실전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 소비자 7대 특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성공대처법을 제시한다.
1. 단골의식이 강하다
“적립금 아끼지 말고,
경품도 확실히 챙겨줘라”
한국 사람은 유난히 가던 곳만 가는 성향이 강하다. 먹는 식당부터 미용실까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일정한 생활패턴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런 단골의식을 파고 들어야 성공한다는 얘기다. 단골이 되면 다녀가는 횟수가 크게 늘어난다. 더욱이 친한 지인들에게 “내가 이 집 단골이야”라며 자랑삼아 얘기하기도 하고 손님을 끌어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품이벤트나 회원제(멤버십), 적립식 상품권 등이단골고객을 늘리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이를 아깝다(비용)고 생각한다는 것. 이렇다보니 혜택이 터무니없이 빈약하거나 적립률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얘기다. 심지어 고객을 위한 경품을 걸어 놓고도 편법을 통해 직원이나 지인들이 선물을 챙기도록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테면, 직원이나 지인들의 응모권을 응모함에 대거 투입하는방식으로 당첨확률을 크게 높여 그들만의 이벤트가 되도록 한다는 것. 이른바 ‘기만 마케팅’이다.
실제 경기 남양주 퇴계원면의 한 대형 마트개점 이벤트에서 1등 당첨자가 서울 송파권에서 나오는 기이한 현상이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윤기식 상무는 “이벤트에 당첨된 고객의 이름을 매장에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2. 한번 삐치면 3년 간다
“불량 고객은 버려야…
3·4·3 법칙 필수”
주변 미용실에서도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원장과 안면도 있고 집도 가까워 A미용실만 고집하던 유숙경(가명·63)씨. 보통 퍼머나 커트만 하던 그녀가 큰맘 먹고 최근 염색을 했지만 원하는 컬러가 나오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됐다. 유씨가 원장에게 서비스 재염색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것.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느낀 그녀는 그 뒤로 동네방네에 이 사연을 떠들고 다녔다고.
고소득층인 VVIP들에선 이런 현상이 더 뚜렷하다. 시중은행PB(프라이빗 뱅커)들에 따르면 일부 VVIP들은 자신의 부나 성공을 과시하기 좋아한다. 특히 은행 PB센터에 들어서면 PB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의전은 물론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강요(?)하기도 한다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몰라보거나 취향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경우 역정을 낸다. 이럴 경우 자신의 자산 전부를 빼내 경쟁 PB센터로 옮겨버리는 등 복수(?)를 하기도 한다고.
소비자 불만은 모두 해결해줘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가 답이다. 3·4·3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고객도 A·B·C등급으로 등급별로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악성고객으로 분류되는 C등급(30%) 고객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실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은 원래 대체적으로 까다롭다. ‘테이블이 지저분하다’, ‘김치가 중국산이다’, ‘술잔이 깨졌다’, ‘옆 테이블부터 주문을 받았다’ 등 갖가지 불만을 수시로 표출한다. 이를 모두 받아주기엔 한계가 있다. 이런 불만을 모두 들어주다보면 이런 손님들만 쫓아다니다 점포 콘셉트마저 흐려지고, 창업자 스스로 고객과 마음의 벽을 쌓게 되는 나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3. 시스템에 약하다
“나만의 영업전략에
고객 끌어들여야”
다른 말로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본다는 얘기도 된다. 예컨대 한국 사람들은 위반 시간대(카메라 단속)가 아닌데도 버스 전용차로에 잘 들어서지 않는다. 이유는 혹시나 단속에 걸릴까봐 선뜻 차로 변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특성도 창업자는 눈여겨봐야 한다. 창업자가 손님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확고한 매장 콘셉트와 마인드로 승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고깃집(제주도 흑돼지 오겹살)을 창업한 박대출(가명·55)씨가 그런 예다. 그는 5년전 창업한 이후 우직스럽게 제주 오겹살만 팔고 있다. 고깃집에 흔한 냉면조차도 없다. 하지만 맛 하나는 기가 막혀 입소문을 타고 멀리 인천에서도 찾아올 정도다. 박씨는 오겹살만 팔아도 수익이 나는데 귀찮게 냉면까지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말한다. 버릴 손님(냉면 손님)은 버려야 한다는 3·4·3법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부동산 중개업 창업자도 마찬가지다. 은행 지점장을 은퇴하고 3년 전 서울 송파구에서 K공인 중개소를 개업한 안민석(가명·65)씨가 그렇다. 법정 부동산 중개 수수료율은 0.2~0.9%. 하지만 안씨는 상품별로 중개하기 전 거래 고객과 수수료율을 미리 정해놓는다. 자신만의 영업전략과 콘셉트를 확실히 세워놓고 영업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4. 귀차니즘이 심하다
“일사천리서비스
제공 필수”
한마디로 매장에 제품 구색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팬시나 문구 등 판매업종에 해당한다. 한국 소비자들은 한곳에서 모든 서비스를 일사천리로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적지 않다. 편의점이나 택배 같은 원스톱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게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귀차니즘 해소는 곧 돈(수익)으로 직결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우량 고객을 발굴하고 유지하기 위해선 고객들의 불편을 없애주고 제품 구색력을 높여주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3·4·3법칙도 그대로 적용된다. 악성 고객인 C등급 손님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반대로 매장에서 수익을 올려주는 A(30%), B(40%)등급 고객들에게 마케팅이나 서비스 등을 집중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5. 공짜를 좋아한다
“오픈빨을 유지하라”
누구나 알고 있는 소비자 특성이기도 하다. 다른 관점으로 볼 수도 있다. 창업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제 막 개점해 오픈행사가 한창인 점포의 기(氣)가 가장 세다. 공짜나 무료 서비스 행사를 많이 진행하다보니 예비 고객들로부터 관심을 한몸에 받는 때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런 좋은 기운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적절한 타깃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꽝 없는 복권 당첨 이벤트 등의 적극적이면서도 다양한 프로모션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김봉팔(가명·50)씨가 여기에 가장 가깝다. 주당들이 모이는 홍대 인근에서 곱창집(주점)을 운영하는 그는 오후 6시 영업 개시 이후 가장 먼저 내방한 고객(선착순 3개 팀)에 대해 1인당 소주 1병을 무료로 준다. 계산시 술값에서 빼주는 것이다. 김씨는 “매일 개점할 무렵부터 손님들이 밀려든다. 소주값 무료 이벤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싱글벙글 했다.
6. 손님은 왕이다?
“손님은 돈이다”
손님이 왕이 되면 창업자는 신하가 되는 셈이다. 상하관계가 생기는 것. 문제는 우리나라는 서비스를 비용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팁 문화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대개 창업자는 손님을 왕으로 극진히 모셔도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렵다. 한국 소비자들은 불만표출이 강하고 항의도 잦기 때문. 이렇게 되면 창업자는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나름 열심히 서비스했으나 칭찬은커녕 제대로 인정조차 못받는 꼴이 되는 까닭이다. 이때부터 창업자는 고객들과 마음의 벽을 쌓게 되고 불만을 피하는 정도의 서비스만 제공하려는 못된(?)버릇이 생기게 된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손님을 ‘왕’이 아닌 ‘돈’으로 보라고 권한다. 막말로 손님에게 칭찬 받자고 창업한 게 아니라 돈을벌기 위해 제2의 인생(창업)을 시작한 것 아닌가.
7. 나는 특별하다
“멤버십 적극활용”
한국 사람들이 명품에 목매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한국인의 특성을 파고든 마케팅 전략이 바로 멤버십 제도다. 이런 제도는 특히 VVIP마케팅에 많이 적용된다.
돈많은 슈퍼리치들이 자신들의 일상이나 주변 얘기를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나만을 위하거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원한다. 실제로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 멤버십에 가입하려면 1억원 이상의 거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입한 이후엔 커뮤니티나 동아리 활동을 통해 멤버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회가 마련되고 그들만의 특화 서비스에 감동한다. 자신들의 일상을 다룬 사진전으로 나는 특별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유명 축구 선수 개인 축구 교실을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를 누린다.
베이비부머를 사진 작품으로 꾸민 사진전이 열린다. 서울 영등포구는 20일 오후 2시부터 나흘간 여의도역사(지하철 5·9호선)에서 ‘5060, 내 눈에 담는 사진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사진전에 전시되는 40여점의 작품은 모두 영등포구 시니어행복발전센터에서 운영 중인 사진반 수강생들이 찍은 것이다.
베이비부머를 위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니어행복발전센터에서는 매주 월요일 ‘내 눈에 담는 사진반’이 운영된다. 사진반은 올해로 2년째 운영 중이다.
정식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사진전의 불을 지핀 것이다.
구는 이번 사진전을 통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건강한 여가 선용의 사례를 소개하고, 노후대책을 위한 전문기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알리고자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역사에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활기차게 인생2막을 즐기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며 “앞으로도 베이비부머 세대와 신노년층의 교육과 일자리, 문화생활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2012년 11월 전국 최초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맞춤형 노후 설계를 위해 설립된 ‘시니어행복발전센터’는 제2의 인생설계, 직업 안내, 여가 및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정보교환, 자원봉사, 사회공헌 등 행복한 노후 생활을 위한 사회참여를 안내·지원하고 있다.
매 분기 50~64세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일부 프로그램은 65세 이상도 참여 가능하다. 현재 약 580명의 회원이 등록돼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무주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회가 오는 7일부터 8월 17일까지 무주읍 최북미술관에서 열린다.
전북 무주문화원과 최북미술관이 공동기획한 ‘무주군 100년, 무주의 옛사진展’은 ‘제18회 무주반딧불축제’를 기념해 마련됐다. 무주반딧불축제는 오늘 7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40∼1970년까지 무주의 변천사를 담아낸 도시 모습과 풍경을 담은 30여점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 속에는 무주읍 시가지 전경을 비롯해 1940년대 무주군청의 모습, 6·25 전쟁 무풍면 상오정 전투장면, 덕유산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한국 표범, 초등학교 수업모습, 운동회, 돌잔치, 혼례, 장례 등 무주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있다.
군 관계자는 "지난 100년의 모습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군민들 속에서 찾은 보물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이번 기획전을 마련하게 됐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무주의 옛 생활상과 도시발전상을 돌아보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전국적으로 내로라하는 ‘촌스러운 것’들이 한데 모인다.
골목잡지 사이다(수원), 월간 토마토(대전), 격월간 함께가는예술인(부산), 월간 전라도닷컴(광주), 월간 옐로우(인천) 등 전국의 지역문화잡지 다섯 곳이 함께 모여 사진전을 연다.
전시명도 작정하고 ‘촌스럽네’로 정했다. 중앙, 서울, 도시 위주로만 흘러가는 현실에 대고 굳이 ‘촌스럽네’라는 제목을 내건 이번 전시는 ‘촌스러운 게 어때서?’라는 반문이자, 나아가서는 ‘촌스러워서 좋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4월 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시민청갤러리(서울시청 시민청 지하 1층)에서 선보이는 이번 사진전은 전국지역문화잡지연대 회원사들이 골목골목 발품을 팔아 기록한 사진 100여 점을 선보인다.
호박 몇 덩이, 감 몇 알, 곶감 몇 개, 고추바구니 하나. 백화점이나 마트의 매끈한 진열방식과는 다른, 5일장의 소박하고 순정한 디스플레이가 눈길을 끈다.
한편,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5개의 잡지사는 서울 중심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이곳’ 지역의 문화와 삶을 발굴하고 기록해 오고 있으며 ‘지역문화잡지 네트워크’라는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고 연대해 오고 있다. 각 잡지의 개성을 살린 콘텐츠로 구성한 ‘어진 물과 큰 빛 가마’전을 지난해 9월 경기문화재단 북카페갤러리에서 개?해 지역문화잡지로서의 역할과 성과를 알린 바 있다.
전시 오프닝은 4월 1일 오후 6시30분 서울시 신청사 지하 1층 시민청 갤러리에서 있다. 관람시간은 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다. (월요일 휴관). 무료 관람. 문의 (031)225-8199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천명철 작가의 사진전 ‘겨울들판에 서다(standing on winter field)’가 오는 4월 1일~6일까지 수원미술전시관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천명철은 사진의 소재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장소, ‘겨울 들판’에 집중한다. 그는 겨울 들판을 눈여겨 보며 한여름을 풍미했던 식물들이 또다른 원숙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아차린다.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보잘 것 없이 여겨지는 것들 속에서 고귀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일인지를 말하고 있다.
또 무엇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의식의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소재들의 휘황찬란한 나타남의 경험이 공유되기를 원하고 있다.
작가는 “마른 풀을 찍으면서 난 무척 행복했다. 황량하다고만 생각했던 겨울 들판이 그렇게 풍요로울 수 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거기에는 지난 한해 동안 성장하고 꽃피고 열매 맺은 그 모습들이 마른 풀의 또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으며, 그 자태는 지난날의 화려했던 어떤 모습보다도 오히려 더 우아하고 기품이 넘쳐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천 작가는 지난 2005년 첫 개인전 ‘적도의우정’을 시작으로 ‘어느날 사진이 가르쳐준 것들’ 등의 전시를 통해 다양한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어느날 사진이 가르쳐준 것들’, ‘칼바르트의 신학묵상’ 등이 있다. 문의 (031)269-3647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꽃피는 봄. 가슴이 설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봄꽃 소식에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따스한 봄바람 따라 꽃길을 거닐고, 자전거도 타며 봄꽃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두 발로 만나는 봄날의 향기는 두 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기관광공사가 추천한 봄꽃 트레킹 코스를 따라 화려한 꽃 잔치가 열리는 경기도에서 싱그러운 봄을 만끽해보자.
■꽃향기 넘실거리는 ‘남양주여행’
‘걷기 길’ 열풍이 식을 줄을 모른다. 남양주시에도 한강나루길, 새소리명당길 등 총 13개의 길이 조성돼 있다. 그 중 가족, 연인들의 봄꽃 트레킹으로는 다산길 2코스가 제격이다. 능내삼거리에서 마재마을 연꽃단지를 거쳐 다산유적지까지 이어지는 2코스는 강물을 따라 조용한 숲길과 야트막한 산길, 마을길이 어우러져 있어 봄날의 정취를 즐기며 걷기에 좋다.
옛 나루터에 고즈넉이 떠있는 나룻배는 운치를 더해주고, 물결 위로 반짝이는 물비늘은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강바람에 실린 꽃향기는 봄을 실감케 한다. 마을을 돌아 내려가면 다산지구공원에 닿는다. 강변을 따라 꽤 넓게 조성된 공원은 잔디광장과 실개울, 조망대, 산책로, 생태습지, 수생식물원 등의 시설이 있어 생태경관을 탐방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업적과 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산유적지와 실학이야기 가득한 실학박물관도 꼭 들러볼 것을 추천한다.
다산길 2코스는 풍경이 뛰어나고 볼거리가 풍성해 도시락을 싸들고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도 좋다. 남양주 여행에 아쉬움이 남는다면 옛 추억을 고이 간직한 ‘능내역’을 추천한다. 능내역은 2008년 이후로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이다. 하지만, 기차가 멈추고 오히려 더 이름난 역이 되었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대합실은 ‘고향사진관’이란 이름의 전시실로 꾸며져 추억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빛바랜 사진과 나무 의자들은 잔잔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옛 철길을 따라 다산길(1코스)과 자전거도로가 놓이면서 열차카페와 간이식당, 자전거 대여소가 들어섰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꽃향기를 맡으며 실컷 달려보는 것도 좋다.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걷는 ‘수원여행’
해마다 4월 중순이면 수원의 경기도청에서 ‘경기도민 한마음 벚꽃축제’가 열린다. 40년생 아름드리 벚나무 200여 그루가 피워낸 하얀 벚꽃은 하늘을 덮고 산들산들 봄바람이 지날 때면 반짝이는 꽃비를 내린다. 도청 정문 주위와 우회도로를 따라 도청 후문에 이르는 팔달산로에서 화사한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편 팔달산공원을 거쳐 화성행궁 방향으로 내려온 후 화서공원에 이르는 팔달산길은 벚꽃은 물론 진달래와 개나리가 한데 어우러진 봄나들이 최적의 꽃길이다.
경기도는 행사기간 동안 도청을 개방해 주요 도정을 홍보하며 주요행사의 홍보 부스를 선보인다. 우수농산물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벚꽃길 나눔장터’는 벚꽃축제를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수원여행에서 ‘화성행궁’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벚꽃축제의 낭만을 가까운 화성행궁에서 이어가는 것도 좋다. 행궁은 왕의 지방행차 시 머물던 임시처소다. 화성행궁은 개혁군주 정조가 세우고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원행했으며 경복궁의 부궁이라 불릴 만큼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대장금’, ‘이산’ 등 사극 드라마의 세트장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정문인 신풍루에서는 4월5일 상설 한마당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무예24기 공연과 장용영 수위의식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평화누리 자전거길 ‘DMZ 자전거 투어’
출발 신호와 함께 임진각 아래 통문이 열리고 300여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임진강변 군 순찰로로 접어든다. 이어지는 철책과 초소 사이에서 다소 긴장된 얼굴이 통일대교에 접어들면서 상쾌한 봄바람에 부드러워진다.
DMZ 자전거 투어는 임진각을 출발해 민통선을 넘어 통일대교, 통일촌 입구, 초평도에서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17.2㎞구간에서 진행된다. 올해부터는 군부대의 협조로 약 2㎞ 코스가 더해져 초평도 인근의 중간 휴식 장소에서는 간식을 즐기며 수려한 임진강의 풍경을 감상하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느낌을 가족에게 엽서로 전하는 이벤트가 준비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11월까지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 DMZ 자전거 투어를 개최하며 4월에만 13일과 27일 2회에 걸쳐 진행한다. 경기관광공사의 임진각 평화누리 홈페이지를 통해 반드시 사전 예약해야 한다.
자전거 투어를 마쳤다면 냉전의 유산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남북분단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서부전선의 최북단으로 남과 북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2㎞ 거리에 대치해 있다. 전망실에서는 개성의 송악산이 보이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모습도 볼 수 있다. 1층의 개성공단 홍보관에는 남과 북이 힘을 합해 생산한 양말, 시계, 신발, 화장품이 전시돼 있고 기획전시실에는 통일·안보와 관련된 테마 사진전이나 특별전이 열린다.
탄현면 헤이리마을길에 위치한 ‘못난이유원지’는 헤이리 예술마을의 다양한 테마공간 중 특이하게도 못난이 삼형제를 중심으로 옛 소품들을 전시한다. 못난이 상회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울보 못난이 인형과 불량식품을 팔고 못난이 식당에서는 추억의 도시락을 맛보는 등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좋은 곳이다. 유원지 내의 옛날물건 박물관에는 마당에 있던 수도펌프, 오래된 잡지 등 소소한 소품들을 전시한다.
경기일보 박준상기자 parkjs@kyeonggi.com
사진ㆍ자료 제공=경기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