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여기에 우리 몸에 좋은 식재료를 활용한다면 더욱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 슈퍼푸드를 가미한 퓨전 사찰음식 레시피를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 스타일리스트 곽영신 장소 및 그릇 협찬 이종임 한식연구원
경자년 새해 다가오는 설날, 아무래도 떡국이 생각난다. 평소 먹던 떡국 상차림을 색다르게 즐겨보고 싶다면 ‘카카오닙스’(cacao nibs)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카카오닙스는 껍질을 벗긴 카카오 열매를 건조, 발효시킨 알맹이다. 카테킨과 폴리페놀,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노화 방지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특유의 쌉쌀하고 고소한 향미가 있어 견과류처럼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요리나 디저트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단, 카페인 성분도 있으니, 이 점에 유의해 섭취한다(5g 내외 권장).
카카오닙스 떡국
재료 카카오닙스, 떡국 떡, 야채만두, 말린 다시마·밴댕이(디포리)·새우·멸치, 간장, 소금
1. 떡국 떡 300g을 물에 20분 정도 불려둔다.
2. 찬물 700㎖에 카카오닙스 1/2큰술, 다시마 2조각, 밴댕이 1개, 새우 1개, 멸치 3개를 거름망에 넣고 20분가량 중불에 우린다.
3. 거름망을 뺀 뒤 육수에 야채만두와 물에 불린 떡을 넣어 끓인다.
4. 간장 1큰술, 소금 1작은술을 넣어 간을 맞춘다.
5. 중약불로 15분 정도 더 끓여 재료를 익힌다.
6. 완성된 떡국을 그릇에 옮겨 담고 기호에 따라 카카오닙스 등 고명을 얹어 완성한다.
카카오닙스 과일 요구르트
재료 카카오닙스, 미니사과·바나나·방울토마토·샤인머스캣 등 원하는 과일, 호두, 뮤즐리(시리얼), 꿀, 요구르트
1. 바나나 1개를 한입 크기로 어슷썰기한다.
2. 미니 사과 1개를 세척 후 사등분하고, 씨를 제거해 준비해둔다.
3. 샤인머스캣 3알, 방울토마토 2알을 깨끗이 씻어 반으로 자른다.
4. 그 밖에 과일들도 먹기 좋게 손질해둔다.
5. 그릇에 준비한 과일을 골고루 담고 카카오닙스 1큰술, 뮤즐리 1큰술, 호두, 꿀을 뿌린 뒤 한쪽에 요구르트를 함께 곁들여 낸다.
카카오닙스 모둠 버섯구이
재료 카카오닙스, 표고버섯, 새송이버섯, 죽순, 미니 파프리카, 당근, 허브
1. 표고버섯 3개와 새송이버섯 3개, 빨강·노랑 미니 파프리카 각 1개, 당근 1/3개를 손질해둔다.
2. 버섯과 파프리카는 먹기 좋은 크기로 등분하고, 당근은 0.3cm 두께로 얇게 썰어둔다.
3. 팬을 달군 뒤 기름을 두르지 않고 강불에 버섯을 앞뒤로 30초씩 구운 뒤 중불로 바꾼다.
4. 나머지 재료를 넣어 3분 정도 굽다가 카카오닙스 1작은술을 뿌리고 1분가량 더 익힌다.
5. 구운 재료를 접시에 담고 민트 등 허브로 장식한다.
여수엑스포역은 관광지 철도역으로는 만점짜리 자리에 있다. 열차에서 내려 역 구내를 빠져나오자마자 엑스포 전시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왼쪽에서는 쪽빛 바닷물이 넘실댄다. 일정이 바쁜 사람들은 열차 도착 시각에 맞춰 역 앞에 긴 줄로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바로 잡아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끌리듯 엑스포 전시장으로 직진한다. 높낮이 없이 평평하게 설계된 전시장 길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걸어도 걸리는 곳이 없다. 시니어들에겐 맞춤 산책길이다. 자기도 모르게 왼쪽에 있는 바다 쪽으로 접근해 걷게 된다.
조금 걷다 보면 왼편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섬 하나가 눈에 잡힌다. 소문 난 오동도다. 전시장 끝자락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있으니 그 섬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만한 섬! 천천히 걸어도 30분가량이면 다 돌 수 있다. 이 섬이 소문난 건 동백꽃 덕분이다. 동백꽃은 한창 피어나는 겨울보다는 지기 시작하는 초봄에 장관을 이룬다. 바닥에 무리를 이뤄 떨어져 있는 빨간 꽃송이와 꽃잎들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들에게도 질 때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그 교훈을 실감
나게 체득하려면 동백꽃이 떨어지는 3~4월께 오동도를 다시 찾아야 한다.
실비로 먹는 ‘시골밥상...’ 식당
오동도 구경을 마치고 나올 때쯤이면 뱃속에서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더욱이 이곳이 맛의 고장 여수임에랴! 오동도 앞에서 돌산으로 가는 해상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밑에 음식점들이 즐비해 있다.
8000원짜리 여수 가정식 백반을 파는 ‘뚱땡이 할머니의 밥상 시골밥상’ 집은 언제나 손님이 차고 넘쳐 끼니때는 이용이 쉽지 않다. 칠순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와 마흔도 채 안 돼 아이를 넷이나 출산한 ‘애국자’ 따님이 운영한다. 맞은편 엠블 호텔 투숙객들도 이 식당을 많이 찾는단다.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하나하나 간을 잘 맞춘 맛깔스러운 반찬들과 매일 바뀌는 국 종류 때문에 밥 한 그릇을 더 시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식사를 끝낸 자리엔 종업원이 큰 통을 들고 가서 남은 ‘아까운’ 반찬들을 모두 담는다. 음식 재활용을 않는다는 걸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좁은 자리가 꽉 차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 사진도 못 찍고 문전에서 아쉬운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아쉽기는 뚱땡이 할머니와 따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그냥 보내는 눈빛에 미안함과 아쉬움이 가득하다.
진남관 앞 ‘서울해장국’ 식당
그렇다고 애써 맛집을 다시 찾아야 한다면 여수가 아니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남관. 그 오른쪽 앞과 길 건너편 거리에 여수의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모두 다 소개하고 싶은 맛집들이다. 그중에서도 시민들이 많이 찾는 ‘서울해장국’이 있다.
아니, 맛집 고장 여수에서 엉뚱하게 옥호를 ‘서울~~’로 쓰다니! 그러나 사실 이상할 게 없다. 수십 년 전 여수가 관광지로 채 발돋움하기 전에 개업했으며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은 대단한 동경의 대상이었기에. 마치 50, 60년대 서울의 빵집과 양복점 등의 이름으로 뉴욕, 파리, 런던 등을 많이 썼던 것처럼.
이 식당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영업한다. 바싹 말린 우거지를 장어로 국물 맛 낸 된장국에 넣어 푹 끓여낸 우거지국, 바삭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 두툼한 선지국은 모두 한 그릇에 6500원, 돼지고기를 아낌없이 넣은 김치찌개(8천 원) 등이 하나같이 별미다. 이 식당은 특히 밑반찬에 들이는 정성이 남다르다. 그 때 그 때 구워주는 생김을 찍어 먹게 집간장과 양념간장을 함께 내주고 갓 만들어 내오는 숙주나물, 고추멸치볶음, 계란부침 등도 모두 싱싱하고 맛깔스럽다.
주인 할머니와 따님이 조그만 식당을 무려 종업원 10명가량을 쓰며 운영한다. 김 굽는 직원, 식재료 다듬는 직원, 우거짓국 끓이는 직원, 김치찌개 끓이는 직원 등이 제각각이다. 맛집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불친절은 찾아볼 수 없고 직원들이 손님상을 수시로 체크하며 모자란 반찬은 알아서 채워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손님들이 저마다 이 식당 칭찬하기에 바쁘다.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선짓국을 들고 계신다. 궁금해서 말을 붙여보았다. “40년 단골이지. 맛도 맛이지만 정성이 들어간 건강식이고 배고프던 시절 추억을 떠올려 더 좋지.” 여러모로 완벽한 맛집인 셈이다.
그 밖에도 복춘식당, 조롱박 등 여수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맛집들이 이 일대에 많다. 서대회, 아귀찜, 아귀탕, 생선 내장탕, 돌게장, 삼치회 등이 주메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많은 아귀찜 식당과는 비교도 안 되게 풍부한 아귀를 넣은 아귀탕이 1만 원. 둘이서 다 먹기 부담스러운 양의 아귀찜도 2만 원 미만이다. 마산 일대가 주산지로 알려진 아귀는 여수에서 더 풍족하게 요리된다. 여수 앞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삼치의 선어회는 여수의 특징적인 음식 중 하나다. 처음 접하면 물컹한 식감에 다소 거부감을 느끼지만 익숙해지면 삼치회만 찾을 정도로 중독성이 있다. 구이로 먹는 삼치 머리는 클수록 맛이 좋다.
진남관. 이순신광장. 장군섬
식사를 마치고 여수의 상징인 진남관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 있는 이순신 광장을 ‘참배’ 할 차례다. 여수를 하루만 둘러봐도 곳곳에 있는 이순신의 흔적을 발견하곤 새삼 놀라게 된다.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까지 여수에 있고, 거북선을 건조하고 수리하던 ‘선소’도 세 곳이나 있다. 어머니 처소는 보존작업이 마쳐져 관광객들의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는 그 앞에 새로 이순신 공원 조성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심지어 실재하지 않은 소설 속 인물까지 끄집어내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점잖은’ 여수 시민들은 ‘이순신 자원’을 그리 요란하게 활용하지 않는다. 기자도 여수를 몇 번 찾기 전까지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을 남긴 줄은 알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사후에도 여수민들을 여러모로 ‘살려주고 있는’ 중이다. 거북선 빵집, 이순신 햄버거 등 여수 상가의 옥호 중 이순신과 거북선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여수민들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 역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도 사후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정이 한없는 불멸의 영웅은 여수에서 그 숨결이 가장 생생하게 느껴진다.
진남관은 2020년 봄까지 보수 일정이 잡혀있어 내부 관람이 금지돼 있다. 광장의 장군 동상 앞에 실물 크기로 지어졌다는 거북선도 기자 일행이 찾았을 때는 수리 중이어서 입장을 할 수 없었다. 관람객이 너무 많아 수시로 보수를 해야 한단다.
진남관 입구와 장군 동상 너머 장군섬에 이르는 곳까지 장군의 위세가 당당하게 뻗쳐져 있는 일대를 보는 것만으로 성웅 충무공에 대한 참배를 대신해야 했다. 참고로 해방 즈음까지는 장군 동상 앞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차 있었단다.
종포공원 거쳐 오동도 가는 길
이순신 광장에서 오동도 방향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자산공원이 있는 방향으로 나지막한 언덕길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몇 해 전부터 여수의 포장마차 촌으로 유명해진 종포공원을 거쳐 바다를 끼고 가는 길이다. 우선 종포공원부터 걸어보기로 한다.
이 일대는 여수의 오래된 바닷가 놀이터 중 하나다. 지금은 공원으로 명칭이 붙여져 있지만, 낚시꾼이 모여들고 고기잡이배가 들락날락하던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바로 옆에 새벽마다 경매가 열리고 종일 생선 판매가 이뤄지는 선어 시장이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도 간간이 모습을 보인다.
몇 년 동안 성시를 이루던 포장마차 촌은 인근 하멜기념관 옆으로 옮겨졌다. 정비 차원이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포장마차 촌의 모습으로 보기엔 익숙하지 않다. 행정력도 자연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야 바람직한데...
종포 공원 일대에 펜션 서너 곳이 있고 펜션 부근에 맛집이 꽤 늘어서 있다. 포장마차와는 구분되는 식당들이다. 여수 특산물 중의 하나인 돌문어 식당이 많다. 돌문어삼합, 돌문어라면 등등. 진화한 여수 음식 종류 중 하나는 해산물을 활용한 라면 요리다. 이 돌문어 식당엔 점심때부터 줄이 늘어서 있다. 젊은 층이 많다. 돌문어라면 뿐만 아니라 해물라면, 돌문어삼합 등 새로운 메뉴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돌문어라면 1만 원, 네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돌문어삼합은 3만9000원.
기자도 몇 년 전 여수에 와서 라면 요리를 ‘개발’했었다. ‘꼴뚜기 라면’. 시장 아지매한테 1만 원만 주면 한 접시 가득 주는 꼬록(여수에선 꼴뚜기를 꼬록이라고 부른다)을 특별한 레시피 없이 라면과 함께 끓여주면 색다른 국물 맛을 내는 아주 맛깔스러운 라면이 완성된다. 강추!!!
몰포 나비와 나비 반도 여수
자산공원은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공원이다.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걸어 올라가기에 좀 힘이 들기 때문이다. 관광버스들도 코스로 잘 잡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 체력으로도 천천히 걸어 올라갈 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산이 아름다운 자색으로 물든다 하여 자산으로 이름 붙여진 그 산속 공원엔 여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또 생뚱맞은 이름의 전시관이 하나 있다.
곤충체험관인데 이름하여 ‘빠삐용(나비) 전시관’이란다. 여수에 빠삐용 전시관이라니.. 입구에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미국 배우 ‘스티브 맥퀸’의 사진이 걸려 있다. 여수에 빠삐용? 생각해보고 거듭 생각해 봐도 생뚱맞다!
전시관에 들어가 설명을 들어봤다. 여수시의 전직 공무원 한 분이 현직에 있을 때부터 집념으로 나비를 채집해 개인적으로 만든 전시관이다. 시에 기증해 지금은 시가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나비 표본 중에서 대표적인 전시물이 저 멀리 중남미 원산의 몰포나비. 푸른 금속성 광택이 나는 아름다운 몰포나비와 그 나비 모양을 빼닮은 여수반도 그림이 나란히 전시돼있다.
아하! 그제야 조금 몰포나비 채집자의 의도가 이해될 듯했다. 그는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폈음 직하다.
“지구 저편에서 몰포나비가 너울너울 날아와 한반도 끝자락에 앉았다. 여수반도다!”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에서
여수에서는 걷다가 가끔 시내버스도 타볼 만하다. 2층 관광버스도 좋지만 무작정 시내버스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를 돌다 보면 대충 여수 시내의 윤곽이 들어와 다음날 일정에 참고하기에도 좋다.
물어물어 버스 몇 번 갈아타고 여수의 강남이라는 웅천지역으로 갔다. 고급 아파트촌이 있고 인공 해변이 조성돼있으며 입구 상가엔 여수답지 않게 주차난이 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사람들에겐 식상한 풍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구원은 ‘예울마루’다. 전시회와 음악회를 수시로 여는 이 건물은 여수 산단에서 매출을 많이 올리는 어느 대기업이 외국인 건축가에 설계를 맡겨 지어서 시에 기부한 것이다. 건물 외벽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 건축물 문외한이 보기에도 시원하다. 건물 바깥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있는 것도 특이한 모습이다.
예울마루 관람을 마치고 15분가량 옆의 산길을 돌아 걸어가면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짓고 수리했다는 선소가 나온다.
이순신 장군의 또 다른 작품 ‘선소’
이 선소는 여수반도를 에워싼 바다의 ‘골목길’ 맨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적군에게 노출되지 않는 장소를 고른 것이다. 실제로 가까운 웅천 쪽에서도 선소는 보이지 않고 웅천의 바다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촌에서도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 입지 선택이 탁월했던 셈이다. 그러니 여유롭게 안정적으로 거북선을 짓고 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북선과 수전의 각종 전략 외에도 이순신 장군의 지모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순신 장군은 영국의 넬슨 제독과 함께 세계 해전사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기록된다.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끈 일본의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게 존경을 표한 것도 거북선 뿐만 아니라 해전 전술, 주민 친화력, 그리고 선소 운영 능력 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충무공께 새삼스러운 존경의 묵례를 보내고 이번엔 선소 길 건너의 그 유명한 보리굴비 식당으로.
명사들이 찾는 여수의 보리굴비 식당 ‘석정’
굴비 하면 영광 굴비, 법성포 굴비다. 그런데 여수에 명사들도 즐겨 찾는 보리굴비 전문식당이 하나 있다. 옛 여천 지역, 여수 시청 부근에 있는 석정 식당이다.
이 식당도 덕장은 법성포에 두고 있다. 법성포에서 굴비를 말려 여수로 가져와 조리한다. 식당에서 판매하는 굴비 정식엔 굴비와 함께 해물 보쌈김치, 여수산 각종 나물 등 17가지의 반찬을 내놓고 직원이 각 테이블을 돌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굴비를 찢어 준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보리굴비 속살, 군침이 돈다. 보리굴비 정식 2만 원. 여수엑스포 준비위원장을 지낸 전 건설교통부 장관 강동석 씨, 지금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윤정희, 백건우 씨 부부 등 명사들이 오래된 단골이란다.
여수에서 11월에 열렸던 세계한상대회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대회기간 중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각자 이 식당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단다. 각국 한인들에게까지 이 식당 소문이 났다는 식당 측의 자화자찬이다.
식당 판매보다는 전국에 보내는 택배 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선물 포장된 다섯 마리에 택배비 포함하여 6만5,000원, 10마리 세트는 12만5,000원.
구여수와 신여수
여수시청이 있는 구 여천지역과 구 여수를 잇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내륙 쪽 버스들이 다니는 길과 바닷가로 이어지는 길이다. 웅천지역을 지나 구 여수로 가는 길목 왼쪽에 한국화약 소유 대지가, 있으며 그 건너편엔 여수반도에서 가장 탁 트인 넓은 바다가 있다. 트레킹 코스로 개발하든지 아니면 대단위 리조트로 개발할 만한데, 웬일인지 방치되고 있다. 띄엄띄엄 바닷가 길을 둘러 가면 구 여수의 전통 항인 국동항이 나온다. 옛 여수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국동항엔 항상 낚싯배들이 수백 척 정박해있고 경매장에선 새벽마다 활발하게 경매가 이뤄진다. 바로 앞 경도엔 미래에셋이 경도 리조트 재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경도는 골프장과 함께 여름 한 철 먹거리인 하모(갯장어의 일본말)의 주산지이다. 경도와 고흥 일대의 하모를 최고의 갯장어로 꼽는다. 경도 안엔 하모를 회와 샤부샤부(일본말. 유비끼라고도 함)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혹자는 일본사람들처럼 갯장어에 기름이 끼는 7월 이후엔 맛이 별로라고도 하고 혹자는 그때의 하모 맛이 일품이라고도 한다. 정답은 없고 각자 취향에 따르면 될 일이다.
자매식당 등 국동항의 맛집들
그러나 여름철이건 겨울철이건 바닷장어 요리를 꾸준히 하는 식당들이 여수에 많다. 특히 국동항 주변엔 갯장어를 통째로 끓여 내놓는 통장어탕 식당이 몇 곳 있다. 그중에서 여수 시민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자매식당을 찾았다.
장어를 잘라서 국 끓이는 게 아니라 통째로 넣어 끓인 후 손님상에 내와서 종업원이 국자로 장어를 으깨서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준다. 된장 국물에 우거지를 넣어 장어 맛과 함께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일반적으로는 토막 낸 장어를 숙주나물을 넣어 함께 끓여 내놓는다. 통장어탕 14000원, 장어 소금구이 2만 원을 받는다.
여수에 가장 많은 식당이 장어탕 식당과 돌게 간장게장 식당이다. 장어탕 식당은 수산시장 안, 시청 주변, 시내 곳곳에 있다. 그중 자매식당이 가장 생명력이 있다는 여수 지인들의 전언이다. 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내놓는 멍게 젓갈이 또 일품이다. 자꾸 더 달라는 손님이 늘어나 포장 판매를 시작했단다. 한 통(3kg)에 3만 5000 원, 택배비 4000원이란다.
여수의 수산시장
여수에는 수산시장이 몇 곳 있다. 수산시장, 특화시장, 교동시장, 선어시장. 그중 수산시장이 중앙시장 격이다. 몇 년 전에 이 시장에 큰불이 나서 시장이 완전히 전소했었다. 주변의 지원과 상인들의 복구 노력에 힘입어 업그레이드된 새 시장 모습으로 태어났다.
시장 내 수십 곳 되는 활어 판매대에서 펄펄 뛰는 생선을 잡는 활발한 모습은 장관이다. 생선 잡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매우 좋다는 어느 보고서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물새횟집 아지매. 수십 년간 온 가족이 이 업에 종사해왔단다. 종포공원 옆에 자그마한 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재빠르고 시원시원하게 생선을 잡고, 손님과 흥정도 시원시원하게 하며, 횟감은 그야말로 맛깔스럽게 썰어낸다.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일본 시장 상인들과 일 합을 겨루게 해봤으면 좋겠다. 여기서 회를 떠 가져갈 수도 있으나,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상차림 값으로 한 사람당 4,000원과 매운탕값 5,000원을 주고 식사를 한다. 서울의 가락시장, 노량진 시장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실비다. 생선 산지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세 명이 싱싱한 돔, 갑오징어, 농어, 삼치 등 각종 회를 남길 정도로 푸짐하게 먹고도 6만 원 미만을 냈다.
시내의 실비식당 ‘와사비’
게장 골목 소개는 생략한다. 여수의 전통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간장게장 식당들은 이제 시설과 메뉴에서 한 등급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신 시내의 횟집 한 군데를 더 소개하고 여수의 맛집 소개를 마친다. 여서동 네거리 근처의 ‘와사비’식당. 옥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름 때문에 최근 곤욕을 치렀단다. 얼마 전부터 보는 시선들이 좀 누그러지더란다.
옥호를 ‘고추냉이’로 바꿀 생각은? 이제 겨우 정착단계인데요... 이 식당은 문 연 지가 몇 해 되지 않았다. 6년 전께 문을 열자마자 여수에서 오래된 횟집들을 제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유는 초간단. 남자 사장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직접 생선을 잡아 오고 여수 주변에서 구하기 어려운 건 통영 등지로 달려가 구해와서 오후부터 바쁘게 회를 만든다. 혼자서 몇 사람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게 몇 년을 일해 얼굴이 수척해졌을 정도다. 부인은 서비스 메뉴를 개발하고 상차림을 연구하는 한편 수시로 주방에 들어가 남편과 주방 보조 여인을 돕기도 한다. 이들의 노력은 상차림과 회접시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식당도 갈치회, 삼치회가 일품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회 한 접시에 4만 원에서 6만 원이면 세 사람이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맛집 몇 곳을 소개했지만, 여수의 장점은 어느 식당에 가든 다른 지방에 비해 만족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식당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손님들 눈에도 보일 정도다. 전통인지, 요즘의 트렌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엑스포 이후 시설과 함께 식당들의 자세가 확 달라졌다는 평가가 많다. 먹방과 인터넷에서 칭찬은 많이 받고 악평은 덜 받는 곳, 여수가 됐다.
오동도 입구의 일출
여수에서 일출을 보는 장소로는 돌산섬 일대를 많이 꼽는다. 그중에서도 섬 끄트머리의 향일암(向日庵)은 일출로 유명해진 곳이다. 정동진과 함께 일출 사진이 워낙 많이 나돌아다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일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여수 현지의 정보로는 요즘 오동도 입구의 일출이 장관이란다.
새벽에 일어나 이틀을 기다렸다. 해는 우리의 애를 태우면서, 햇살만 내려보내 고기잡이배들을 비춰줄 뿐이었다.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 대신에 빛줄기만 담았다. 일정상 일출 장면 촬영을 포기하고 서울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철수하면서 여수 지인에게 일출 촬영을 간곡히 당부했다. 간곡히 간곡히 거듭 부탁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출 사진이 메일로 왔다.
쌩큐 오 선생!
쌩큐 여수!
파도와 바람을 벗하여 가을을 걷는다. 영덕블루로드B코스
770km를 따라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해파랑길이 나있다. 속이 꽉 찬 가을 대게처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성한 해파랑길 중 영덕블루로드 B코스를 걸으며 가을바다를 만난다.
영덕블루로드 B코스는 '푸른 대게의 길'이라 불린다. 영덕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서 경정리, 죽도산전망대, 축산항까지 12.5km의 구간, 3시간 정도 걷는 코스다. 보통은 해맞이공원에서 고성방향으로 위쪽으로 올라가지만 축산항에서 부산방향으로 해안을 왼편에 끼고 걸으려고 한다. 영덕 도착 시간을 고려하여 점심은 축산항의 물가자미 요리로, 저녁은 강구항의 대게로 먹는 즐거움까지 챙기기 위해서다.
영덕 축산항은 물가자미로 유명하다. 매년 5월이면 축산항에서 물가자미축제가 열린다. 물가자미는 흔히들 ‘미주구리, 미주가리’라고 부른다. 일본명이 Mushigarei니 거기서 이름이 왔으리라 짐작하겠지만 순수우리말이다. 경상북도 방언에서 6을 뜻하는 물과 가자미를 뜻하는 ‘가리’ 또는 ‘구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물가자미는 광어와 비슷한 생선으로 크기만 더 작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로 뼈채 회를 뜨는 세꼬시나 살짝 말린 것을 구워서 먹는다. 물가자미로 다양한 요리를 내놓는 전문식당을 추천한다. 물가자미축제가 열리는 축산항에 위치한 김가네식당이다. 조림, 회, 회무침, 매운탕, 식해까지 다양한 물가자미요리가 나온다. 식당 앞에서는 동해의 해풍에 꾸들꾸들 물가자미를 말리고 있다.
축산항 대표 맛을 즐긴 후 블루로드B코스 하행 시작점에 서면 계단 바로 위에서 죽도산전망대와 해안데크길 두 갈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풍경과 함께하고 싶다면 해안길을, 시원한 전망을 원한다면 전망대 길을 택하면 된다. 2억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눈앞에 드러난 시간의 흔적들이 짧은 인간의 역사를 하나의 점으로 인식하게 한다. 파도와 바위에 침식된 바위 사이 늦둥이 해국이 소담스럽게 피어있다. 걷다가 잠시 멈추어 파도에 생겨난 포말이 부서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쉼의 시간을 갖는다. 블루로드 다리를 건너고 바람이 잦아든 짙푸른 솔숲 길을 걷는다. 해안절벽과 솔숲의 조화에 걷는 묘미를 한껏 즐기게 해주는 코스다.
걷느라 수고하였으니 저녁식사는 영덕하면 떠오르는 대게다. 강구항 수산물직판장에서 대게를 사는 것이 좋다. 크기가 무조건 큰 것보다는 들어봐서 묵직해야 속이 꽉 찬 대게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구입한 대게를 쪄주는 곳에서 쪄달라고 하여 숙소에 가져가서 먹거나 자릿세를 내면 상차림을 해주는 식당에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저렴하게 푸짐하게 대게를 먹는 방법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만난 여행지, 영덕블루로드는 걷는 묘미와 푸짐한 맛이 있는 길이다. 나지막한 산과 지질공원, 파도치는 바다와 바람을 벗하여 걸은 길을 걸으며 동해의 거친 풍경과 바닷가 마을의 정취를 듬뿍 즐긴다. 시간 앞에, 바다 앞에 세상사 시름이 작아졌다가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메뉴에 건강 밸런스까지 생각한 제철 사찰음식 한 상을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조계종 한국사찰음식전문교육기관 이수)
장소 협찬 키프레시(홍대점) 그릇 협찬 덴비 코리아
싱그러운 봄기운 따라 산뜻한 음식이 당기는 날엔 상큼한 재료를 이용해 한 상을 차려보자. 담백한 두부와 버섯구이에 알싸하면서 은은하게 상큼한 생강소스를, 수분과 비타민이 풍부한 버터헤드 레터스엔 새콤달콤한 유자 드레싱을 곁들인다. 디저트로 먹던 토마토와 딸기를 새콤 짭조름한 장아찌로 즐기면 맛도 좋고 상차림 분위기도 색달라진다. 후식 음료로 따뜻한 도라지 차 한 잔을 곁들이면 기관지까지 상쾌한 기분으로 한 끼를 마무리할 수 있다.
생강소스 두부구이 다진 생강(1/2개)을 갈색을 띨 때까지 볶는다. 식초(15㎖)와 생크림(15㎖)을 섞어 3분의 1로 줄어들 때까지 졸인 뒤 꿀과 소금을 약간 넣어 생강소스를 완성한다. 수분을 뺀 두부 반 모를 4×4cm 크기로 잘라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 표고버섯(1개)과 새송이버섯(1개)을 한입 크기로 썬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뒤 두부를 넣고 약불로 굽는다. 버섯은 멸치가루와 소금으로 간하고 센불에 짧게 구워준다. 이때 라임(1/4개)과 아스파라거스(1개)를 넣으면 상큼한 향과 아삭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 완성한 재료를 담고 생강소스를 곁들인다.
버터헤드 유자 샐러드 버터헤드 레터스(1/2개)의 시들한 잎을 떼고 깨끗이 씻는다. 청·홍 파프리카(1/4개)를 큐브 모양으로 작게 썰고, 표고버섯(2개)은 한입 크기로 썬다. 버터헤드 레터스를 토치로 살짝 그을리면 잎이 부드러워진다. 그을린 버터헤드 레터스 위에 준비한 재료와 새싹채소(5g)를 넣고 유자소스(유자청 3큰술, 레몬주스 1큰술, 올리브오일 2큰술, 다진 견과류 1큰술)를 뿌린다.
방울토마토 장아찌(4인분 기준) 색색의 방울토마토 20알과 딸기 6알을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미리 소독한 유리병에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넣어둔다. 물, 간장, 설탕(각각 100㎖), 식초(50㎖)를 섞어 중불에 끓이다 레몬과 라임 슬라이스(각 1장)를 넣어 상큼함을 더한다. 끓인 양념장을 재료가 잠길 때까지 붓는다. 10분가량 절인 뒤 체에 걸러 수분을 제거하고 먹기 좋게 담는다.
도라지 차 깨끗이 씻은 생도라지를 적당히 잘라 감초(15g, 또는 진피 20g)와 함께 물(500㎖)을 넣고 양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인다. 기호에 따라 벌꿀을 첨가한다.
겨울에는 왠지 속초에 가야 할 것 같다. 눈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갯배를 타고 건넜던 청초호, 눈에 파묻힌 아바이마을, 영금정에서 봤던 새해 일출,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었던 물회의 추억이 겨울에 닿아 있어서일까. 이번에도 속초 바닷길과 마을길, 시장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미에 빠져 남쪽 외옹치항에서 북쪽 장사항까지 걷고 말았다.
걷기 코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외옹치 바다향기로(속초해수욕장~외옹치항 왕복)▶ 설악대교▶ 아바이마을▶갯배▶속초관광수산시장▶동명항▶영금정전망대▶해돋이전망대▶속초등대(택시)▶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바다 위를 걷는 느낌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도보여행 첫 코스는 전국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외옹치 바다향기로’다. 속초해수욕장부터 외옹치해수욕장을 거쳐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바닷길을 걷는다. 길이가 약 1.74km이며, 속초해수욕장 850m 구간과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890m 구간으로 나뉜다. 천천히 걸어도 편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해수욕장 정문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금세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코끝이 찡한 날씨에도 겨울 바다를 찾은 이가 꽤 많다. 바닷가 포토존 너머로는 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조도(鳥島)가 보인다. 삿갓 모양의 조도와 철썩이는 파도를 감상하며 모래밭 옆 산책로를 거닌다. 속초해수욕장과 연결된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해안데크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외옹치 해안은 1970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이후부터 작년까지, 65년 동안 미개방 군사 작전 지역이었다. 작년 4월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해안데크산책로는 암석관찰길, 안보체험길, 하늘데크길, 대나무명상길 등의 주제로 나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해안 철책과 초소가 있는 안보체험길을 지나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 주연의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두 주인공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바다 풍광이 가장 멋진 구간은 하늘데크길이다. 지네바위, 굴바위 등 이야기가 있는 갯바위와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마주 보며 걸을 수 있다. 겨울철 09:00~17:00, 여름철 09:00~19:00 개방.
아날로그 감성 갯배 그리고 아바이마을
외옹치항에서 속초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올 때는 바닷가 산책로 옆 해송숲길을 선택한다. 숲 분위기가 그윽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해송숲을 지나 방파제와 나란히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청호동 아바이마을을 만난다. 실향민 정착촌인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란 온 실향민 다섯 가구가 백사장에 터를 잡으며 생겨났다. 마을 동쪽은 바다, 서쪽은 청초호와 접해 있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신수로를 건설하면서 마을이 남북으로 나뉜 것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로 위로 붉은 아치형의 설악대교를 세웠다. 설악대교를 건너기 전에 교각 아래의, 실향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아트플랫폼 갯배’에 들른다. 전시장과 카페로 꾸민 공간이다. 2층 창가에 앉아 신수로를 오가는 어선들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긴다.
설악대교 교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 진한 바다 냄새가 풍기는 아바이마을과 속초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수로를 건넌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바로 북쪽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주택가인 남쪽 아바이마을과 달리 이곳은 실향민들이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가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막국수 등을 파는 식당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신다신식당에서는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을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다음 코스인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 갯배 선착장으로 향한다. 갯배는 주민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무동력 운반선이므로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야 움직인다. 아바이마을 주민이 탑승해 줄을 끌어당기지만, 승객들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이며 운행시간은 3분이다.
시장 골목에서 발견한 헌책방
갯배에서 내려 생선구이 골목을 지나면 속초의 명동이라 불리는 로데오 거리에 자리한 속초관광수산시장이 코앞이다. 속초를 잘 아는 이에겐 중앙시장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시장 안에 수산물 골목, 청과물 골목, 순대 골목, 잡화 골목 등 취급 품목별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시장 지하에는 활어회 센터가 있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제철 생선을 볼 수 있는 수산물 코너다. 가게마다 몸통이 물풍선처럼 빵빵한 곰치가 좌판을 차지하고 있다. 옛날에는 어부들이 잡은 즉시 바다에 버려서 물텀벙이라 불렸던 생선인데, 지금은 금값이다. 곰치로 국을 끓이면, 곰치 살이 입안으로 호로록 들어갈 만큼 부드러운 데다가, 국물 맛이 시원해 겨울 별미로 손꼽힌다.
시장 골목을 요리조리 구경하다가 대경중고서점을 발견한다면, 보물을 캔 것과 마찬가지다. 속초에 하나뿐인 귀한 헌책방이니 말이다. 책방 안에는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책 무게 때문에 등이 휜 나무 선반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헌책방 주인장은 소녀처럼 수줍음이 많은 전경화 씨. 속초 토박이인 전 씨는 “제가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도 25년이나 됐네요. 이곳 역사가 50년은 됐을걸요. 영업 이익만 생각하면 문 닫아야죠. 많은 사람이 좋아해주셔서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켜요. 우리 책방은 A급 중고 책만 취급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아요”라고 말하며 속초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속초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과 좋아하는 음식들을 술술 풀어놓는다. 시장 안 작은 헌책방이 오래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며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속초등대에 올라 겨울 바다 마주하기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서 20분 정도 걸으면 동명항에 닿는다. 동명항 활어센터는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저렴한 곳으로 유명하다. 건물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구역이 따로 있다. 2층 상차림 식당에는 대게 철을 맞아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동명항 근처에는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전망대, 해맞이정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영금정은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갯바위 꼭대기에 올라앉은 영금정 전망대에 서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간 해맞이정자가 발아래 굽어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떠 일출 명소로 유명해졌다. 해맞이정자에서 빤히 보이는 속초등대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영금정과 동명항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력이 있다면, 속초등대에서 등대해변 쪽으로 내려가도 좋다. 등대해변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 입소문 난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바닷가에 속속 들어섰다. 호반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영랑호도 가까이 있다.
주변 명소 & 맛집
봉포머구리집
봉포머구리집은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 음식 맛 하나로 큰 빌딩을 세운 곳이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 등을 소복하게 담아낸 해물 모둠물회를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새콤한 육수와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가 조화를 이뤄 엄지가 절로 척 올라간다. 속초시 영랑해안길 223, 033-631-2021, 09:30~21:30
칠성조선소 살롱
조선업이 쇠퇴해, 칠성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허름한 조선소 건물은 전시장이 됐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설치했던 마당의 철 구조물들은 벤치 역할을 한다. 복고풍 분위기 덕에 인기 명소가 됐다. 조선소의 너른 부지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033-633-2309, 11:00~20:00(수요일 휴무)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
문우당서림과 동아서림은 속초에서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대표 서점이다. 책 파는 것을 넘어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등을 주최해 지역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1984년에 개점한 문우당서림은 부부와 귀향한 딸이 운영한다. 2층에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두고, 독서 모임방을 무료 대관한다. 1956년에 개점한 동아서점은 3대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유명하다. 세련된 서가 배치와 북큐레이션이 돋보인다. 대형 서점에선 볼 수 없는 독립출판물도 취급한다. 동아서림은 문우당서림 뒤쪽에 있다. 속초시 중앙로 45, 033-635-8055, 09:00~22:00
여행 정보 걷기 Tip
➊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외옹치항에 주차한 뒤 바다향기로를 걸으면 된다.
➋ 고속버스터미널 하차 후, 외옹치항 바다향기로 입구까지 택시로 이동하면 왕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이동은 추천하지 않는다.
소청도를 출발한 ‘코리아킹’은 불과 10여분 남짓 달려 대청도 선진포항의 선착장에 닿았다. 멀리서 봐도 아담하고 각양각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선착장에는 미리 연락을 받고 여행사에서 버스 한 대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아직은 저녁 먹을 시간이 어중간하여 일단 해안을 돌면서 일몰구경하기로 했다. 대청도 선진포항은 고려에 이어 조선시대부터 중국 상선의 이동이 많았던 지역이다. 중국 선원들은 항해하다가 쉬어갈 곳을 찾던 중 이곳이 정박하기에 적합하다고 하여 여장을 풀곤 했다. 또한 선진포항은 일제 강점기 포경회사의 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18년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고래잡이는 1944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농여해변
대청도는 주민들의 90%이상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섬 일주 해안도로를 따라 아름다운 해변과 절경들이 이어져 있는 곳이 대청이다. 버스를 타고 얼마를 지나 해안선에 도착했다. 썰물이 시작되었는지 바다가운데 모래언덕이 드러나 있었다. 썰물에 드러난 모래언덕을 ‘풀등’이라고 했다. 드러난 풀등을 구경하면서 농여해변을 걸었다. d이곳은 일몰이 아름다운 해변이다. 고운모래가 사각사각 밟히는 느낌이 좋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기이한 모양의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운데 구멍이 뚫어진 형상을 하였는데, 고목바위라고 했다. 바위에 새겨진 결은 보통 가로무늬 결인데, 이 바위에는 유독 세로로 결이 나 있었다. 지구의 나이를 46억년 정도로 친다면 고목바위의 나이가 20억년정도 되었다고 한다. 수십억 년 전에 바닷 속에 퇴적물들이 쌓였다가 지진이나 융기현상에 의해 생성되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고목바위가 서 있는 곳도 깊은 바다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물결무늬는 바닷물이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현상으로 생긴 ‘연흔’이다. 바위에 있는 ‘연흔’을 ‘화석연흔’이라고 하고 바닥에 있는 가로연흔을 현재 생존하는 ‘현생연흔’이라고 하여 지질학적 가치가 큰 해변으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목바위 앞에서 인증 샷을 남기고 걸음을 재촉했다. 농여해변을 지나 미아동 해변까지 걷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장막처럼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몰이 가장 예쁘다는 ‘농여해변’이었지만 해무로 인해 일몰을 볼 수는 없었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절경이 이어진 해변을 구경하다보니 배도 고프고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 위해 도착한 음식점에서는 이미 근사한 상차림이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싱싱한 홍어회와 소라, 그리고 갑오징어 요리가 한상 가득 채워졌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독점하던 고래잡이는 1930년대 이후 쇠퇴하고, 지금은 홍어, 우럭, 광어, 농어 등이 대청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그중에서도 홍어가 많이 잡히는데, 홍어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흑산도와 목포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홍어의 70%가량이 대청도에서 잡힌다고 했다. 여기서 잡힌 홍어는 흑산도와 목포 쪽으로 내려가 가공되어 팔린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삭힌 홍어가 아닌 싱싱한 홍어를 회로 썰어냈다.
사실 삭힌 홍어에 길들여진 입맛이었기에 처음에는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먹다보니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별미였다. 특히 마지막에 신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여낸 홍어애탕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어 한층 입맛을 돋우었다.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잘 먹고 숙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 후배 동문 간에 정겨운 얘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특히 2년 후에 닥칠 개교 100주년 행사에 대한 토론이 진지하게 논의 되었다. 요즘 북핵폐기와 관련하여 남북 간의 화해무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핫이슈인 서해5도는 백령도를 포함하여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대연평도, 소연평도) 그리고 강화도 위쪽으로 우도라는 섬을 일컫는다. 서해5도는 1953년도 정전협정 당시 육상의 DMZ는 합의 설정이 되었지만 해상은 그렇지를 못했다. 6.25전쟁당시 치열한 전투 끝에 확보한 서해5도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UN사령부에서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NLL이다. 한반도의 화약고처럼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이 바로 이지역인 셈이다. 근래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이 바로 이지역에서 일어났다.
경이로운 모래사막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다시 투어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옥죽동 해안사구로 향했다.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옥죽동 해안사구는 오랜세월 모래가 바람에 날려 이동하면서 거대한 모래산을 이루었다. 옥죽동 해안사구는 계절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는 활동성 해안 사구이다. 푹푹 빠지면서 모래산을 오르다 보면 실물크기의 낙타가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사막은 없지만 고비사막이나 사하라 사막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관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이동하여 모래울 해변에 도착했다. 모래울 해변의 풍경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적송군락과 더불어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청도에는 삼서 트레킹이 있다. ‘삼각산’으로부터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라 앞 글자를 따서 ‘삼서’ 트레킹이라고 부른다. 대청도에서 제일 높은 삼각산은 높이 343m로 인천광역시에 가장 높은 계양산(354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삼각산-기름항아리-마당바위-서풍받이-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총 길이는 약 7km 정도이며 소요시간은 대략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 관계상 삼각산 트레킹은 생략하고 서풍받이 트레킹만 하기로 결정했다. 서풍받이 트레킹이 시작되는 광난두정자각에서 단체로 인증 샷을 남기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풍경을 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숨은 차오르고 다리는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대청도는 작은 섬치고는 지형이 꽤나 울퉁불퉁하고 높은 편이다. 하늘전망대까지의 여정은 평소에 운동을 안 한 사람이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힘들게 헉헉거리며 하늘전망대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 준다. 전망대 앞바다에는 대갑죽도가 있다. 모양은 사람이 입을 벌린 옆모습과 흡사하다. 하늘을 향해 어민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모습인
대갑죽도는 주민의 90%가 어민인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섬이라고 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짧은 트레킹 코스의 반환점이자 대청도 최고의 경관을 자랑한다는 조각바위언덕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엔 서풍받이, 왼쪽엔 조각바위 언덕의 정상, 뒤로는 넓은 갈대밭과 둑바위 해안으로 이어지는 아담한 길이 있다. 잠시 땀을 닦고 숨을 골랐다. 어제 저녁에 못 다먹은 홍어회와 소주로 정상주를 한 잔씩 돌렸다. 시원한 해풍에 정상주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더구나 최고의 경관을 바라보면서 먹는 싱싱한 홍어회는 우리 모두를 황홀감에 물들게 했다. 시간을 보니 ‘코리아킹’이 일행을 태우러 올 시간이 불과 1시간여밖에 남지를 않았다. 부지런히 하산을 했다. 선진포항 전망 좋은 음식점에서 성게 칼국수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나니 몸은 노곤하고 늘어졌지만 시간에 쫓겨 부지런히 항구로 내려왔다. 어느덧, 1박2일의 트레킹이 끝나가고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으로 소청도와 대청도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는 없었지만 시간에 비해 많은 것을 보고 간다. 이 멋진 풍경들이 당분간은 잔상으로 남을 것이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 등 오신채를 넣지 않고 만든 요리를 ‘사찰음식’이라 한다. 자칫 맛이 덜하거나 심심할 것이라 오해하지만, 다양한 레시피와 플레이팅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 특별한 메뉴에 건강 밸런스까지 생각한 제철 사찰음식 한 상을 소개한다.
레시피 및 도움말 디알앤코 R&D총괄 장대근 셰프(조계종 한국사찰음식전문교육기관 이수)
장소 협찬 키프레시(홍대점)
그릇 협찬 지승민의 공기
거하게 차린 생일상을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생일에 빠지지 않는 미역국은 특별한 날 먹지만, 음식 자체의 특별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흔히 사용하는 소고기 대신 표고버섯을 넣어 쫄깃한 식감을 살리고, 된장과 옹심이를 더해 색다른 미역국을 즐겨보자. 그럴싸한 상차림을 원한다면, 꾸밈새 있는 메뉴가 필요할 것이다. 주로 무침으로 먹던 가지를 편으로 길게 썰어 돌돌 말아주면 쉽고 간단하면서 보기에도 좋다. 메인 접시에 롤링한 가지와 연근 구이, 흑임자 소스로 버무린 양배추, 구운 버섯 등을 조화롭게 플레이팅해보자. 미역국과 더불어 각 요리의 색감이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주재료인 미역, 가지, 연근, 양배추에 식이섬유가 풍부해 위장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사용하고 남은 가지 꼭지로 차를 우려 마시면 부담 없이 속 편한 한 끼를 마무리할 수 있다.
가지새싹말이 가지(1개)는 길이대로 얇게 썬 뒤, 5분간 찜통에 쪄둔다. 냄비에 당근즙(당근 1개와 물 1/2컵을 넣고 갈아준다), 물(1/2컵), 매실청(3큰술), 간장(1큰술), 소금(1작은술)을 저어가며 끓인다. 한소끔 끓고 나면 불을 약하게 줄인 뒤 녹말물(1:1)과 당근즙(1컵)을 넣어 당근 소스를 완성한다. 쪄낸 가지를 펼쳐 각종 새싹(25g)과 당근 소스를 넣고 롤 형태로 돌돌 말아준다. 앞서 준비한 흑임자 소스를 곁들여도 좋다.
옹심이 된장 미역국 미역(20g)을 먹기 좋게 자른 후 물에 불린다. 감자(1개)를 삶아 껍질을 제거하고 따뜻할 때 으깨준다. 으깬 감자와 찹쌀가루(2큰술)를 반죽해 옹심이를 빚어 끓는 물에 삶은 뒤 찬물에 헹구어놓는다. 냄비에 들기름(1큰술)을 두르고 미역과 표고버섯(5개)을 볶다가 70% 정도 익었을 즈음 물(1.2ℓ)을 붓는다. 된장(1큰술), 국간장(3큰술)을 넣어 간을 하고 준비한 옹심이를 넣어 완성한다.
연근 양배추 흑임자 무침 연근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식초물에 담가 끈적임을 제거한 뒤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데친 연근을 팬에 노릇하게 구워 준비한다. 검은깨(2큰술), 통깨(1큰술)를 분쇄한 뒤 마요네즈(3큰술), 레몬즙(1작은술), 유자청(1큰술)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양배추를 한입 크기로 썰어 준비한 소스에 버무린다. 완성한 양배추 무침과 연근 구이를 함께 내놓는다.
가지 꼭지차 말리지 않은 가지 꼭지를 바로 졸이듯 끓이면 연한 풀잎색의 차가 완성된다. 물 1ℓ에 가지 꼭지 8개를 넣어 팔팔 끓여준 뒤, 약한 불에 10분 정도 더 우려내 마신다.
추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올려다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 방아 찧는 토끼가 보일 듯 말 듯 한 아이보리 빛의 둥근 쟁반 같은 달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풍성한 차례 음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을에 햇곡식이 나고 정성으로 준비한 차례 상에 자주 볼 수 없는 시댁 가족들이 둘러앉아 “형수님, 맛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요즘은 좀 간편해졌지만 예전에 추석이나 명절 상을 준비할 때는 보름 전쯤 생선 말리기부터 해야만 했다.
생선을 세 종류로 세 마리씩 홀수로 사 와서 손질을 하여 채반에 널어 말리는 것으로 명절 준비가 시작되었다.
북어포나 당면 목이버섯 등 마른 재료는 미리 사 놓아도 괜찮았고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서 고기 과일 채소 나물 등을 준비하고 바로 전 날엔 두부를 사면되었다.
시댁에서는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잔칫상처럼 벌이는 경향이 있었다.
보통 알고 있는 대로 메, 탕, 전, 적, 생선, 과일, 밤, 대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교자상을 두 개 붙이고 앞쪽에 과일 상까지 하나 더 놓고 그 위를 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 전 도 십여 종류로 가짓수를 늘려 만들어야만 했고 더구나 시아버님께서는 우리 조상님들에게 전에 맛보지 못하셨던 것들을 올려드려야 한다며 양주와 케이크, 커피, 초콜릿과 불붙인 담배까지 상에 놓으셨다.
결혼하기 전 친정에서는 제사가 없었고 명절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였는데 시댁에서의 명절 상차림을 보고는 놀라기도 했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차례와 제사를 맏며느리인 필자가 모시게 되었다. 보던 가락이 있어 필자도 그 비슷하게 준비를 해야만 했다.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삶은 계란도 음식의 한 종류가 되어 홀수로 담아 상에 올렸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삶은 계란을 좋아하셨다며 빠지지 않고 상에 올렸는데 그것처럼 쉬운 요리가 어디 있겠는지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맡은 후부터는 양주나 케이크, 커피, 담배, 초콜릿은 올리지 않았다.
전도 가짓수를 줄여서 대여섯 가지만 한다. 공연히 숫자만 늘이려고 하다가는 먹지도 않고 보관하다 결국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은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차리게 되었다.
6년 전 아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식구는 세 명이었다. 명절 때면 남편은 밤 까는 정도의 일만 해 주었다.
딸처럼 곰살 맞았던 아들이 필자가 준비해준 재료로 전을 부쳤다.
차례나 제사 후 돌아가는 시댁 식구들에게 음식을 싸 보내려면 양이 만만치 않았다.
수 십 장되는 녹두빈대떡, 많은 양의 생선전, 표고버섯전, 연근전, 호박전 등 모든 부침개는 아들이 맡아서 해 주었는데 거실 마루에 앉아 커다란 프라이팬에 전을 지지는 아들의 모습은 필자를 훈훈한 마음으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제 며느리가 생겨서 전 부치는 일은 며느리가 하게 되었고 아들은 귀여운 손녀손자만 챙기면 되었다. 필자에게도 쫄병 하나가 생겨서 흐뭇하다.
올해의 추석도 풍성한 음식으로 보기 좋게 상이 차려졌고 시동생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골고루 싸서 나눠 드렸는데도 음식이 푸짐하게 남았다. 다 필자가 좋아하는 것 들이라 마음도 푸짐하다.
우리 인생도 오늘 추석 한가위처럼 풍성하고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금년은 유래 없는 10일간의 추석 명절 휴일로 국민들은 긴 휴식의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젊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으로 빠져나갈 것이라는 뉴스를 내보낸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명절을 중시하는 어른들에게는 괘씸한 젊은이들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우리 국민 가운데는 명절만 되면 매년 두 번씩 반복되는 교통체증을 겪으면서도 성묘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 사람이 많다.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과 지인들을 만난다는 즐거움으로 고향을 찾는다. 그런데 명절이 끝난 후에는 부작용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가족 간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고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통계도 보인다. 어찌된 일일까? 즐거운 명절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명절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명절은 오랜 전통을 계승하면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이 가진 특성과 농경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계승과 소멸을 되풀이하면서 전통은 우리 앞에 서 있다. 관혼상제를 중시하던 문화를 돌아보면 지금 우리의 전통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관례는 단발령을 계기로 자취를 감춰버렸고, 혼례는 서양식으로 대부분 진행되고, 상례 역시 장례식장이라는 장소를 설치해 상조회사에서 대신 치루고 있다. 그나마 남은 것이 제사인데 그 역시 원형이 변형되고 있다.
이번 추석 명절에도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낼 것이다. 그런데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성묘의 풍습은 급속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로 인해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장례 방식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옮겨가면서 묘지 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형태로 진행되면 성묘를 가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고, 한 세대만 지나면 성묘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70~80세가 넘은 어른들에게는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 조상의 묘를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일일 텐데, 그 후손들은 그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고, 심지어 손자 세대로 가게 된다면 이마저 사라질 처지에 놓여 있다.
변화는 자연스런 이치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고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과거에서 현대로, 현대에서 미래로 변화하는 것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성묘가 사라진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제사를 언제 지낼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집안도 많다. 과거에는 늦은 밤 시간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났지만 요즘에는 직장 문제로 늦은 시간까지 제사를 지내는 일이 불편해서 제사시간을 바꾸는 경우가 있다. 만약 시간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날 결근을 하거나 휴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제사를 지내는 일 자체가 후손으로서의 의무감 이외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제사 절차나 상차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다른 종교 시설에 모시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기 싫어서 종교를 바꾸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씁쓸할 뿐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정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 성묘의 방법을 바꾼 가족이나 문중도 많다. 흩어진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 성묘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비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조상들의 산소를 한곳에 모아놓고 제사를 지내거나 성묘를 하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러한 문제를 두고 심하게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성묘나 제사가 사라지는 것보다 오히려 어떠한 방법으로든 지켜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자니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고, 전통을 버리자니 불효자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 누구나 진퇴양난의 고민을 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예학자였던 신의경 선생은 개장(改葬)을 논의하면서 “옛날의 개장은 분묘가 어떤 이유에서 붕괴되어 시신이나 관이 없어질 우려가 있을 때 하는 것이었으나, 요즈음에는 풍수설에 현혹되어 아무 이유가 없이도 천장(遷葬, 천묘)을 하는데, 이것은 심히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장(移葬)이나 개장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이것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훼손되었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집안이 번창하기를 기대하면서 조상의 묘를 함부로 이전하거나 개장하는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상을 한곳에 모시고 성묘를 하는 것은 부득이한 선택일지 모른다.
과거 매장하던 풍습에서 화장하는 풍습으로 바뀐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지만 이제 70% 정도의 국민이 화장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신을 화장해 그 유골을 그릇에 담아 봉안당(奉安堂)에 모시는 가족이 늘고 있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정책으로 화장을 권장하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고, 봉안당이나 수목장이 관심을 받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필자가 평소에 노인을 많이 상대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매장을 고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조상들의 묘를 돌보는 것은 자신들의 책무이지만 정작 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후손들이 잘 해내기도 어렵고 선산에 묻혀도 수시로 돌볼 자녀도 많지 많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스스로 미래에 대해 포기하는 것일까.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선진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전통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의 고민은 불편한 진실도 아니고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를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해준 조상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죽음의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시대가 달라지면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도 달라지고 방법도 달라진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이 세상에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가족과 친척 혹은 문중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좋은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어떨까. 그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리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이번 추석은 행복한 명절이 되기 위한 지혜를 모아보면 좋겠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트레비네는 조용한 강변 마을이다. 레오타르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트레비슈니차 강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소도시. 오스만 시대의 아치형 다리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마을을 잇는다. 고요한 소읍은 한 폭의 수채화를 만든다. 강물 속으로 마을 풍치가 풍덩 빠져 반영되어 흔들거리면 긴 여행자의 묵은 시름이 사르르 치유된다.
모스타르에서 트레비네까지 첩첩산중 길고 긴 여행
한여름, 크로아티아는 지긋지긋했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로 도망쳤고 이내 트레비네(Trebinje)로 떠난다. 필자가 예약한 숙소는 개울 옆, 아름다운 전원 카페 분위기가 나는 그런 곳이다. 새로 신축한 듯 모텔은 깔끔하다. 저녁을 먹기 위해 촉수 낮은 불빛의 어둠침침한 야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는다. 숙소 사람들일까? 생각보다 손님들이 많다. 맑은 개울물을 담아낸 작은 연못 속에는 송어가 살아 움직인다. 모텔 직원은 자기네 음식이 최고라고 했지만 모험은 하기 싫어 야채샐러드와 바다 생물인 오징어 요리를 시킨다. 샐러드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동안에도 메인 요리는 나오지 않는다. 질 좋은 지역 와인 한 잔을 더 시켜 홀짝홀짝 마실 즈음에야 요리가 상차림된다. 작은 삶은 오징어와 삶은 감자, 삶은 근대가 올려져 있다. ‘음식을 참 맛있게 하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준급이다. 어디를 가든 음식 잘하는 곳엔 손님이 많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가다가 한 아주머니랑 스치듯 대화를 나눈다. 스위스에서 살다가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그러면서 내일 올드타운을 가면 자기 남편이 안내해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낯선 누군가에게 여행 안내를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처럼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녀는 가족이 있는 테이블로 날 끌어당긴다. 그녀가 이끈 테이블에는 키가 크고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쓴, 무척 깐깐해 보이는 남편 말고도 여러 명이 함께 앉아 있다. 남편은 내일 집으로 찾아오라면서 아주 꼼꼼하게 이름, 주소, 전화번호, 약도를 그려준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지만 왠지 진심이 느껴진다.
트레비슈니차 강과 아르슬라나기치 다리의 조화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다음 날, 죽을 만큼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침 한 방울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구멍이 아프고 온몸은 천근이다. 일단 메인 타운에 가서 약국부터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전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말도 해줘야 할 것 같다. 타운까지는 5km. 택시를 부르면 간단할 일을 또 걷고 있다. 땡볕이 강렬해 발걸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습관처럼 카메라를 꺼내든다. 나무가 거의 없어 흰 빛을 띠는 카르스트 지형의 레오타르 고산과 트레비슈니차 강이 휘도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트레비네의 대표 명소인 ‘아르슬라나기치’ 다리(길이 80m 높이 6m)는 무심한 시민들 때문에 위치를 놓치고 만다. 한참을 더 걸어서 메인 타운에 거의 다다랐을 때에야 먼발치의 다리를 보게 된다. 아치형의 다리와 트레비슈니차 강이 한데 어우러진 풍치가 멋지다. 트레비슈니차 강에 이 다리가 만들어진 것은 15세기(1574년) 오스만제국 시대다. 오스만제국 시절 트레비네는 두브로니크와 이스탄불을 잇는 중요한 무역로였다. 다리 이름은 당시 다리 통행료 징수권을 갖고 있었던 ‘아르슬란 아가(Arslan-aga)’라는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당시 지도자인 메흐메드 파샤 소콜로비치(Mehmed-pasa Sokolovic, 1506~1579) 명에 의해 유명한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9~1588)이 건설을 맡았다. 그는 보스니아의 비셰그라드(Visegrad)의 다리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 말고도 대단한 작품이 아주 많은 건축가다. 원래는 훨씬 더 북쪽에 있었는데 트레비슈니차 강에 수력발전소가 생기면서 1972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이 다리는 오스만제국 치하에서 건축된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주 잠깐은 아픔도 잊는다.
보스니아의 오래된 도시에서 만난 ‘드라간’ 부부
도심 구경 대신 전날 밤 식당에서 약속한 집을 찾아 나선다. 긴가민가하면서 한 집을 기웃거리다가 전날 만난 남편 드라간을 만난다. 반갑게 맞이하는 아주머니 외에 아들도 있다. 키가 2m나 되는 아들은 화가란다. 그는 트레비네 근처의 작은 마을에 작업실이 있고 가을에는 스위스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말한다. 작품을 팔아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 쓸 정도라면 나름 유명한 화가일 것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주인아주머니는 소시지와 동유럽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고급 산양 치즈까지 내어준다. 이 집에는 송로버섯을 찾는 강아지도 있다. 이내 부부와 함께 시내로 나섰고 ‘드라간’은 자신이 태어난 이 도시에 대해 많이 알려주려 애쓰고 있다.
트레비네는 보스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스릅스카(Srpska) 공화국에 속해 있다. ‘태양과 플라타너스 나무들의 도시’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1355년까지 세르비아 왕국에 속해 있다가 이후 보스니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세기 후반에 오스만제국의 지배(1463~1878)를 받기 시작했고,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향권(1878~1918년) 아래로 들어갔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는 도시 방어를 위한 요새가 건축되고 광장, 공원, 학교, 공장 등이 들어서는 등 규모가 확대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던 1945~1990년에는 수력발전소와 댐, 인공호수,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급격히 발전했지만 보스니아 내전은 이 도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트레비네 메인 타운에는 오래된 유적지가 없고 묘지만 많다.
드라간 부부와 함께 1908년에 설립된 세르비아 정교회를 찾는다.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보스니아이지만 그들은 그리스 정교회다. 트레비네는 10세기부터 가톨릭 교구가 생겼고 ‘가톨릭 10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도시다. 또 중심 광장인 ‘자유광장(Trg Slobode)’으로 가는 길목에도 19세기 말에 세워진 자그마한 성모 탄생 교회가 있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유공원 앞의 카페는 유명한 배우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라고 드라간은 말한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공원 한쪽에 마련된 청과물 시장에서 복숭아를 사면서 요반 두치치(Jovan Ducic, 1871~1943) 동상을 발견한다. 요반 두치치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트레비네 도서관에는 두치치가 기증한 장서 수천 권이 전시되어 있다. 또 이 도시 언덕 위에는 2000년, 그를 기리기 위해 코소보의 그라차니차 수도원을 본떠 완공한 헤르체고바카 그라차니차 수도원이 있다. 드라간 부부와 함께 ‘체바피(Cevapi 혹은 체바치치(Cevapcici))’도 먹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어릴 적 추억을 듣는다. 약 덕분에 목은 좀 나아졌고 여러 가지를 보여주려는 현지인에게 감동받아 한국식으로 몰래 밥값을 낸다. 그들은 한국식 ‘밥값 계산’에 감동했는지 기어코 차로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까지 안내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면서 고향 떠나 스위스에서 살다가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드라간. 그는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나이 든 그가 여행객과 대화를 할 정도의 영어구사를 하는 것도, 외국인을 안내해주겠다는 마인드도 스위스에서 얻은 지식일 것이다. 그는 내게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했다. 그리고 트레비네에 오면 ‘내 집’에서 언제든 ‘공짜’로 묵으라는 말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 집에 다시 가서 정담을 실컷 나누고 싶다.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하지만 가는 곳마다 스토리는 달라진다. 매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들. 묘한 인연의 발자취를 트레비네에 남겼다. 인터넷을 못해 지속적인 연락은 못하지만, 내 가슴속에 영원한 추억을 남긴 드라간. 동양인이 그곳으로 여행을 온다면, 나와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분명히 반길 것이다.
>>Travel Data
가는 방법 한국에서 직항은 없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인 사라예보 국제공항이 있다.
현지 교통 사라예보를 기점으로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버스가 운행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택시밖에 없었다. 필자처럼 모스타르에서 접근하거나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에서 이용하는 편이 낫다.
음식과 숙박 올드타운에 체바피를 잘하는 집이 있다. 또 모텔 스튜데낙(Motel Studenac)은 음식과 숙박이 가능하다. 이곳에서 먹은 생선스프는 최고였다. 또 트레비네는 질 좋은 와인 산지다. 브라나츠 와인은 발칸의 희귀 품종으로 타닌과 산도가 높아 명성이 높다. 포드루미부코예 1982(Podrumi Vukoje 1982) 와이너리가 유명하다. 시내에서는 택시를 타야 한다.
시니어 한 달 여행 포인트 트레비네는 작은 도시다. 매일 산책하고 근교의 산을 다닌다 해도 한 달 머물기는 버거울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기점을 두고 크로아티아나 몬테네그로를 연결하면 된다. 렌터카를 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