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추석 한가위만 같다면 좋겠네

기사입력 2017-10-14 11:42 기사수정 2017-10-14 11:43

▲정성으로 차린 차례상(박혜경 동년기자)
▲정성으로 차린 차례상(박혜경 동년기자)
추석,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올려다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 방아 찧는 토끼가 보일 듯 말 듯 한 아이보리 빛의 둥근 쟁반 같은 달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풍성한 차례 음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을에 햇곡식이 나고 정성으로 준비한 차례 상에 자주 볼 수 없는 시댁 가족들이 둘러앉아 “형수님, 맛있어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요즘은 좀 간편해졌지만 예전에 추석이나 명절 상을 준비할 때는 보름 전쯤 생선 말리기부터 해야만 했다.

생선을 세 종류로 세 마리씩 홀수로 사 와서 손질을 하여 채반에 널어 말리는 것으로 명절 준비가 시작되었다.

북어포나 당면 목이버섯 등 마른 재료는 미리 사 놓아도 괜찮았고 하루하루 날이 지나면서 고기 과일 채소 나물 등을 준비하고 바로 전 날엔 두부를 사면되었다.

시댁에서는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잔칫상처럼 벌이는 경향이 있었다.

보통 알고 있는 대로 메, 탕, 전, 적, 생선, 과일, 밤, 대추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교자상을 두 개 붙이고 앞쪽에 과일 상까지 하나 더 놓고 그 위를 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러니 전 도 십여 종류로 가짓수를 늘려 만들어야만 했고 더구나 시아버님께서는 우리 조상님들에게 전에 맛보지 못하셨던 것들을 올려드려야 한다며 양주와 케이크, 커피, 초콜릿과 불붙인 담배까지 상에 놓으셨다.

결혼하기 전 친정에서는 제사가 없었고 명절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였는데 시댁에서의 명절 상차림을 보고는 놀라기도 했고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차례와 제사를 맏며느리인 필자가 모시게 되었다. 보던 가락이 있어 필자도 그 비슷하게 준비를 해야만 했다.

남들이 보면 웃을지 모르지만 삶은 계란도 음식의 한 종류가 되어 홀수로 담아 상에 올렸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삶은 계란을 좋아하셨다며 빠지지 않고 상에 올렸는데 그것처럼 쉬운 요리가 어디 있겠는지 재미있다는 생각이다.

필자가 맡은 후부터는 양주나 케이크, 커피, 담배, 초콜릿은 올리지 않았다.

전도 가짓수를 줄여서 대여섯 가지만 한다. 공연히 숫자만 늘이려고 하다가는 먹지도 않고 보관하다 결국 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은 필자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차리게 되었다.

6년 전 아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우리 식구는 세 명이었다. 명절 때면 남편은 밤 까는 정도의 일만 해 주었다.

딸처럼 곰살 맞았던 아들이 필자가 준비해준 재료로 전을 부쳤다.

차례나 제사 후 돌아가는 시댁 식구들에게 음식을 싸 보내려면 양이 만만치 않았다.

수 십 장되는 녹두빈대떡, 많은 양의 생선전, 표고버섯전, 연근전, 호박전 등 모든 부침개는 아들이 맡아서 해 주었는데 거실 마루에 앉아 커다란 프라이팬에 전을 지지는 아들의 모습은 필자를 훈훈한 마음으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이제 며느리가 생겨서 전 부치는 일은 며느리가 하게 되었고 아들은 귀여운 손녀손자만 챙기면 되었다. 필자에게도 쫄병 하나가 생겨서 흐뭇하다.

올해의 추석도 풍성한 음식으로 보기 좋게 상이 차려졌고 시동생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골고루 싸서 나눠 드렸는데도 음식이 푸짐하게 남았다. 다 필자가 좋아하는 것 들이라 마음도 푸짐하다.

우리 인생도 오늘 추석 한가위처럼 풍성하고 여유로웠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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