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에 새로 시행되거나 달라지는 민생관련 제도들이 많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잔금대출 요건 강화다. 내년 1월 1일 이후 분양 공고를 내고 입주자를 모집하는 아파트 잔금대출에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이 적용돼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나가야 한다. 보험료가 지금보다 25% 저렴한 실손 의료보험이 4월 출시된다.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예금가입ㆍ대출 등 주요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이 2월 본격 영업을 시작한다.
소득세 과세표준에 ‘5억원 초과’ 구간이 신설되고, 이 구간 세율은 40%가 적용된다. 현행 최고세율은 1억5,000만원 초과 구간에 적용되는 38%이다. 상속
및 증여세 신고세액 공제율이 현행 산출세액의 10%에서 7%로 축소된다. 새해에도 군인처우는 크게 개선된다. 상병월급은 19만5,000원, 병장은 21만6,000원이 되며 숙소인 병영생활관에는 에어컨이 100% 설치돼 여름철 찜통
더위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매달 있었던 의무경찰시험이 3월부터 두 달에 한번으로 바뀐다. 탈락자들의 매월 응시에 대한 시간과 비용 절감 차원이다. 무자격 의무병의 의료보조행위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 관련 면허나 자격 보유자와 관련 학과 전공자들을 별도 모집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70원으로 인상된다. 일급으로 환산하면 8시간 기준 5만1,76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40시간 기준(주당 유급주휴 8시간 포함) 월 135만2,230원이다. 상시 300인 미만 사업장 및 국가ㆍ지방자치단체에 정년 60세 이상 의무화에 이어 올해는 정년 60세 의무화가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출산전후휴가 급여 상한금액이 월 135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올라간다.
종이 계약서 대신 스마트폰, 컴퓨터 등으로 부동산매매ㆍ임대차계약을 맺는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이 상반기 전국으로 확대 시행된다. 현행 ‘3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인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이 ‘2층 이상 또는 연면적 500㎡ 이상’ 건물로 확대된다.
어린이통학버스 운전자가 운행을 종료한 경우 어린이들이 모두 하차했는지 확인하고, 이를 위반하면 20만원의 범칙금을 물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6월부터 시행된다. 노후차량 운행 금지 규제가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된다. 운행 제한 대상 차량은 2005년 이전 등록한 경유차 가운데 종합검사를 받지 않았거나, 불합격한 차량이다. 위반 시에는 과태료 20만원이 부과된다.
면류(국수 냉면 유탕면) 및 즉석섭취식품(햄버거 샌드위치) 일부의 제품 포장지에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형태로 나트륨 함량을 표시하는 제도가 5월 시행된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ㆍ해썹)에 따른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대상이 전년도 매출액 100억 원 이상인 식품제조업체의 전 품목으로 확대된다.
시간처럼 오묘한 것도 없다. 공간은 정직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만, 시간은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시간은 강물을 닮아서 때로는 폭포처럼 정신없이 바쁘다가도 어떤 때는 평탄한 지형을 흐르는 잔잔한 강물처럼 지루하기도 하다. 때로는 가뭄에 드러난 강바닥처럼 별일 없이 왜소하게 흐르다가도 어느 때는 장마로 부풀어 올라 모든 것을 휩쓸어 가듯이 도도하게 흐르기도 한다.
한때 과학 시간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등장하는 시간의 개념을 배우면서 무척 신기하고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모든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다르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춘다는 데에서는 머리 회전도 멈추었다.
시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늙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사실 젊은 날에 이런 시간의 비밀을 읽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우리 몸이 뜨겁고 혈기 왕성했다. 시간과 한 몸이 되어 뒹굴 때는 시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을 관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이미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이지만.
병신년이 서녘 하늘가로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면서 정유년이 밝았다. 그렇지만 광장 촛불로 촉발된 시간의 과잉은 새해의 담장을 무시하고 정유년의 정결한 아침 마당으로 넘쳐흐른다. 인간이 설치한 인위적 시간의 칸막이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는 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인류가 그토록 애써서 쟁취한 시간의 분절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넘쳐나는 시간의 흙탕물 속에서도 순결한 새해 소망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시간이 비록 우리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말고 새해에는 살을 빼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일지라도 우리는 새해 아침 자신과 약속해야만 한다. 새해도 주머니가 두둑해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주머니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것이 시간에 대한 예의이다.
눈 덮인 새하얀 들판을 보듯 새해 아침은 그렇게 정결했으면 좋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로 첫발자국을 찍고 싶다. 새해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다. 늘 단골로 다니는 을지로 냉면집을 찾아가다 보면 을지로 3가 못 미쳐 시비가 하나 서 있다. 새해가 되면 떠오르는 김종길 시인의 라는 시다. 올해는 유독 그 시비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었다.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중략)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새해는 젊고 어린 세대들의 마음에 고운 이빨이 돋기를 기원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병신년 원숭이해가 저물고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으면 희망과 포부를 이야기하며 덕담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블렉시트나 미국의 대선으로 야기된 세계정세의 변화와 유래 없는 국내 정치의 혼란, AI로 인한 농가 피해가 사상 최대에 이르는 등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2017년 새해에도 걱정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희망은 있다. 그게 개인적인 소망이든 사회의 안녕이든 그 바램이 이루어진다면 참 행복한 일이다. 게다가 올해는 붉은 닭이 희망찬 울음으로 아침을 여는 정유년이 아닌가.
정유(丁酉)는 육십간지 중 34번째로 붉은 색을 의미하는 정(丁)과 닭을 뜻하는 유(酉)가 합쳐 ‘붉은 닭’으로 해석된다. 12간지 가운데 10번째 해당하는 닭은,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울음소리가 새 아침과 새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정(丁)의 ‘붉다’는 ‘밝다’ 혹은 ‘총명하다’라는 중의적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유년을 ‘총명한 닭의 해’로 풀이하기도 한다.
2017년은 총명한 닭의 기운으로 희망을 담아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만큼 다들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두 가지 큰 소망이 있다. 개인적으로 올해 큰 경사를 앞두고 있다. 30년 가까이 정성을 다해 키운 딸이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 예정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돕는 배필로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나가길 기도하며 새로운 출발선에 선 아이들 앞에 정유년이 밝은 빛으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또한 올해는 국민들 모두가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필자는 전통시장가까이에 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지금 전통시장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한 때는 장사해서 아이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까지 보내는 보람으로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출이 곤두박질 치고있는 요즘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 지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낸다. 비단 전통시장 상인들만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니니 하루 빨리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돼 국민들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만큼 정직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해가 되면 좋겠다.
어렵고 혼란스런 시간은 다 가고 2017년 정유년에는 가정이, 사회가, 이 나라가 좀 더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모두가 목표를 이루고 밝게 웃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수 십장의 연하장이 날아왔었다. 연말연시에 지인들로부터 받은 연하장을 책상과 책꽂이 턱에 죽 진열 해 놓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안에 있는 그림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용도 한결같이 감사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 연하장 중에는 가까운 지인들의 정성담긴 손 편지도 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의 감사 인사도 많았다. 자기 이름과 사인까지 인쇄 되어있는 연하장을 받으면 불쾌하기도 했다. 어쨌든 연말이면 매일 아침에 도착하는 연하장을 열어보는 재미가 특별했다. 물론 필자도 감사드려야 할 분들에게 그림을 그리고 손 글씨로 잘 디자인 한 연하장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연하장이 우리 주변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문구점 앞엔 아직도 산더미처럼 재고 연하장이 쌓여 있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요즘같이 트렌드가 급변하는 사회에 아주 상투적이고 고전적인 디자인의 연하장은 이제 골동품이 되었다. 내용을 넣고 주소 확인하고 우체국 가서 우표 붙여서 보내야 하는 아날로그 방식은 이제 SNS로 대신하게 되었다. 휴대폰에는 매일 화려한 이미지 연하장이 넘쳐난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이미지 중에는 동일한 것도 많다. 대부분의 이미지들이 상투적이고 수준 미달이다. 내용을 읽지 않고 넘겨 버리는 이미지도 많다. 그림과 색깔도 자극적이고 유치한 것이 많다. 누가 그렇게 많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지 신기할 정도다.
필자는 몇 개월에 한번 씩 주기적으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주소록을 찬찬히 넘겨본다. 그리고 리스트를 작성해서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모두 바쁘게 살기 때문에 대면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므로 전화대화를 자주하고 있다. 특별히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전화를 하면 언제나 상대방은 놀라워하고 고마워한다. SNS의 가벼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교감이 이루어진다. 통화로 끝나기도 하지만 만나서 소주 한잔하는 자리를 약속하기도 한다.
12월 내내 여러 송년회 자리를 쫓아 다녔다. 요즘에는 술을 많이 먹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니 대부분 1차 간단히 먹고 헤어지거나 아쉬우면 차 한 잔 더 하는 식의 송년회가 많다. 그렇게 많은 자리를 하고 나서 다시 한번 휴대폰에 저장된 지인들의 이름을 천천히 넘겨본다. 넘기면서 한 해 동안 어떤 자리에서 다시 만났는지, 통화는 언제 했는지 기억을 떠 올려본다. 그 중에는 매년 한 두 번 씩 통화만 하고 몇 년간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도 많다. 그들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안부를 묻고 새해 건강을 기원한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몇 통화 하다보면 만나서 대화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들기도 한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과 참 세월이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이제 연하장을 주고받는 시대는 지났다. 그리고 그 자리를 SNS가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말에는 시간을 잘 쪼개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 그것이 힘들다면 문자나 이미지 보다는 전화대화를 하는 것은 어떨까.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날로그는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게 만드는 감동도구이다.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일들이 올해는 꼭 정리되고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렇다면 우리 시니어 세대의 마음은 어떨까? 새해를 여는 시니어들의 마음도 한번 열어보았다.
취재협조 강남시니어플라자
은막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서임철(서대문구 홍은동·76)
저는 시니어 배우입니다. 서울노인영화제에 제가 출연한 작품이 출품된 적도 있어요. 연극부에서 회장을 맡고 있는데 활동이 좀 더 활기찼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단원이 열일곱 명인데 올해는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각 지역 노인대학이나 단체를 방문해 공연 봉사를 하고 싶어요. 노인 연기자를 위해 정부 차원의 문화 관련 분야 지원이 늘었으면 해요. 제가 노후에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봐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연기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인 소망은 영화 주인공을 꼭 한번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디션도 열심히 보고 있어요.
난타 여왕을 꿈꾼다! 윤상민(강남구 개포동·66)
작년 8월부터 난타를 시작했어요. 10월에는 재능기부 공연도 했고요. 아직 미흡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전문 공연자만큼 난타를 잘하고 싶어요. 왕성하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일어 공부도 시작했어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올해는 더 열중해서 공부를 해볼 생각입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2017년 나는 댄싱퀸 문혜경(강남구 청담동·69)
젊을 때는 운동도 많이 했는데 10년 정도 안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 4~5년 전부터 많이 아팠어요. 혈압, 신장, 부정맥 이런 걸로요. 아프면서 버킷리스트를 한번 써야겠다 생각했죠. 그중에 무용을 좀 배우고 싶었습니다. 우선 라인댄스를 배웠어요.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너무 좋아요. 올해는 차밍댄스도 하고 고전무용에도 도전할 겁니다. 줌바댄스도 할 거예요. 신나는 음악에 다양한 스텝과 세련된 춤 동작이 멋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춤을 추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시니어 모델 콘테스트 대상에 도전한다! 남궁유선 (강남구 방배동·69)
즐겁고 재밌게 사는 것이 소망 아닐까요? 더 늙기 전에 예쁜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시니어 워킹을 배우고 있어요. 어렸을 때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어요. 사는 것에 급급했고 아이들 키우느라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어요.
다 끝났으니까 이제 열심히 나를 위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요. 제 꿈은 시니어 모델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입상하면 좋겠어요. 올해 도전하려고 합니다.
딸? 결혼하면 안 되겠니? 구신자(관악구 삼성동·70)
제가 허리가 많이 아픈데 치료 꾸준히 받고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딸이 올드미스예요. 마흔셋인데 시집을 안 가요. 시집 좀 갔으면 해요. 그런데 딸은 이대로가 좋다고 하네요. 굳이 등 떠밀고 싶지는 않아요. 혼자 사는 게 행복하다면 말입니다. 제가 강남 시니어 모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2014년부터 TV, 신문, 잡지에 많이 나왔어요.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데 욕심이라면 일인자는 아니더라도 내 이름 석 자가 알려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부드러운 글 쓰는 남자 기대해요! 송영섭 (경기도 용인시 영덕동·72)
우선 풍전등화 같은 우리나라가 빨리 안정을 되찾고 바람직한 지도자도 뽑고 평화통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평화통일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외교통일 분야에서 공직생활을 30여 년 했어요. 국제정치나 남북통일에 관한 책도 내고 논문도 많이 썼습니다. 올해는 수필 같은 부드러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동안 유머와 관련한 책을 두어 번 낸 적은 있어요. 또 제가 한국검도협회 고문으로 있는데, 기 수련에 관련한 책도 출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거 다 떠나서 순수한 삶의 철학이 담긴 수필을 쓰고 싶습니다.
화려한 외출은 이제부터다! 한명희(강남구 역삼동·62)
연극을 시작한 지는 몇 개월 안 됐어요. 그래도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전에는 주부였어요. 그러다가 환갑이 지나 나를 위해 산 적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울해하고 있을 때 친구가 연극을 권하더군요. 연극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완전 초보자인데 주연이셨던 분이 안 나오시면서 얼떨결에 주인공이 됐습니다. 지금 연기에 푹 빠져 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시인으로 등단을 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비전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제가 하는 활동을 인정해줬으면 해요. 우선 가족한테 칭찬을 듣고 싶어요. 제2인생에서 다시 청춘인데 제가 집에만 있으면 되겠어요?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보니 화려한 외출이었어요.첫 공연 때 가족을 초대할 겁니다. 장한 나를 보여주고 잘했다는 소리를 꼭 들을 거예요.
발길 닫는 대로 떠나는 해가 됐으면… 이주현(중랑구 중화동·72)
남편 병간호를 14년 동안 하면서 저도 허리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운동을 할 수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의사 선생님이 소리 지르고 두들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춤이랑 사물놀이를 배우고 있어요. 힐링도 되고 자세 교정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실 제가 자세가 좀 엉거주춤하거든요.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도 무용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면 자세를 다시 잡아요. 올해는 혼자 여행을 가고 싶어요. 남편을 챙겨야 했고 저도 아팠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못 다녔어요. 국내 여행도 많이 못해봤는데, 더 늦기 전에 제주 올레길을 걸어볼까 합니다. 혹시 여유가 생기면 유럽 여행도 꿈꿔 보려고요. 그러나 꿈으로 끝날 거 같아요. 허리가 아파서 비행기를 오래 못 타거든요.
감나무에 남겨진 까치밥을 그리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다.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공짜ㆍ정답ㆍ비밀의 함정에 빠져 올해를 보냈다. 새해에는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랐다.
세상에 공짜 있는가
사람은 ‘주고받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거래에는 대가가 따른다. 검찰조사에 이어 국회청문회, 특검에 이르기까지 ‘공짜’논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받아먹은 사람이야 그전부터 공짜라고 우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주는 측에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하였다.”고 국민 앞에서 주장하고 있다.
세밑의 정겨운 풍경이 ‘자선’행사다. 냄비 속에 일을 남기지 않고 기부하고, 동사무소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어렵게 모은 돈뭉치를 놓고 가는 훈훈한 이야기도 세상에 많다. 하지만 독대를 하고 특정인이 주도하는 재단에 수십ㆍ 수백억을 몰아주면서 순수한 기부를 주장하는 것은 처벌을 피하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자기 부모님에게 용돈 드리면서도 몇 번씩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이 세상의 현실이다.
남에게 받는 ‘공짜’가 결국에 ‘독’으로 돌아온다. “칼자루 잡은 갑인 줄 알았으나 상황이 달라지자 자신이 칼날 위에 선 을로 전락하여 찰거머리 같은 상대에게 시달림을 받았다. 이렇게 터지고 오히려 가슴이 후련하다.”는 법정에서의 고백이 언론을 장식하였다. 상대는 공짜의 대가를 몇 배 더 챙겼다는 이야기다.
정답을 말하지 못한 이유
사회에서 은퇴한 시니어는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이 항상 정답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생활이 나름 성공한 자신의 삶의 결과라고 생각할수록 더 완고해진다. 시니어가 친구들 심지어 자식들과도 의견충돌이 많아진 이유다. “나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기주장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다.
세상은 날마다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어제의 정답도 오늘 여러 모습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정답은 완벽할 수 없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기만의 ‘정답’을 고수하지 않아야 한다. 가족과 소통하고 친구와 의견을 나누면서 살아야 즐겁다. "정답을 바라지마라."는 말이 정답인 세상이다.
비밀의 함정
두 사람만의 비밀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다.'고 한다. 오랜 습관에 젖어 종이 몇 장 없애고 PC기록만 지우면 '비밀'이 다 지워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자ㆍ통신기술이 발달하여 통화ㆍ영상ㆍ사진은 사실상 영원히 기록이 남고 아무리 지워도 복원할 수 있는 세상이다. 골목에 설치한 CCTV는 사실상 모든 행동을 잡아내고 있다. 영원토록 잘못을 숨겨둘 곳은 없다. 바르게 사는 것만이 모두에게 최선이다.
나이가 들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빠릅니다. 참 빠릅니다. 어느덧 또 새해입니다. 지난 설이 어제 같은데 또 새 설입니다. 날이 빨리 지나기를 손가락 세며 기다려도 더디기만 했던 어렸을 적 새해맞이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세월 흐름의 빠름을 느낀다는 것은 결국 그 느낌 주체인 내가 지극히 정태적이지 않으면 지닐 수 없는 일입니다. 세월은 흐르는데도 나는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 따라 내 삶이 흘렀다면 흐름의 빠름을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흐름을 좇지 못하는 더딤이 세월의 빠름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기다림은 어쩌면 그때 그 어린아이의 삶이 세월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내달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월이 더디어 견딜 수 없어 어서 세월이 내 삶을 좇아오라고 손가락을 꼬박꼬박 꼽았을 것입니다.
글쎄요. 늙어감을 무어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는 그랬더군요. 몸이 회복 불가능하게 퇴행 과정에 들어서는 것이 노화(老化, aging)라고요.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떨지요. 세월을 좇을 수 없이 삶이 더뎌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노화라고요. 새해가 되어서 그런지 갑자기 그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나이 들며, 해를 넘기며, 어쩌면 세월은 흐르는데 삶은 쌓여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흐르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소용돌이에 빠져 허덕이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늪에서의 침잠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새해를 맞으면서 일상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온갖 회한이 새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원하지 않았는데도 문득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지난 세월을 마디마디 되새겨보게 되는 것은, 그러다가 참 세월이 빠르다고 읊조리는 것은, 세월을 좇아 흐르지 못하는 내 삶의 무게 탓인 듯한데, 삶이 이렇다는 것을 서서히 곱씹으면서 마침내 나는 늙음의 마디에 깊이 스며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렇겠습니다만 모든 것이 더뎌집니다. 초조하기는 한데 서둘지는 못합니다. 되 지을 수 있다면, 한꺼번에 세월을 뒤집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내 몸이 먼저 내게 전해줍니다. 지난 삶은 그것대로 귀하지 않은 까닭이 없으니 그것을 내 자존(自尊)의 바탕으로 삼아 의연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내 걸음은 전진도 아니고 후진도 아닌 다만 게걸음의 궤적을 남기고 있음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압니다. 마지막 발견한 감동스러운 황혼의 아름다움조차 기려 오래 그 찬란함에 머물고 싶지만 세월을 좇을 수 없어 내 삶은 그저 그 아름다운 황혼의 끝자락도 잡지 못한 채 머뭇거리다 곧 어둠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은 빠른데 삶은 왜 이리 더딘지요.
가끔 시간을 계측(計測)한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시간 안에 있으면서도 시간에 예속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던 인간이 마련한 시계에서 역(曆, calendar)에 이르는 ‘온갖 시간을 재단하여 이를 관리하고자 했던 묘책’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세월의 빠름과 삶의 더딤이 빚는 황당한 당혹이 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러한 삶이 없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만 전통적인 아프리카 문명에서는 캘린더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 나이를 헤아린다는 사실 자체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시간과 삶은 더불어 진행합니다. 그 둘이 따로 놀 까닭이 없습니다. 물론 세월을 헤아리는 어떤 ‘단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시간 계측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달이나 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내가 장가를 든 다음에…”라든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라든지. 연대기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마디’들을 그렇게 일컬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과 세월을 함께 살았습니다. 더딘 삶도 없고 빠른 세월도 따로 없습니다. 흐르는 세월과 쌓이는 삶이 삐거덕대지도 않습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단절하여 끝이라 하고 또 시작이라 하면서 삶을 기막히게 경영하여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한 것은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해는 가고 새해가 온다고 하면서 새해를 기리고 새로운 다짐으로 삶을 다시 짙게 채색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뜩이나 퇴색이 짙은 노년에게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축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축복조차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길 만큼 빠른 세월과 더딘 삶에 시달린다면, 참 많은 경우 그러한데, 우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을 좇아 시원하게 함께 흐르면서 더디고 빠른 계측을 아예 넘어서면서 내 삶이 펼쳐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문명이 남겨준 흔적처럼 그런 시간 계측의 단위를 마음에 두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의 삶이 지나치게 연대기에 의해 침윤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이런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올해 만난 사람들, 오늘 만난 사람들을 전에 전혀 만난 일이 없는 새 사람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요? 모든 일들도 그렇게 부닥치면 어떨지요? 그리고 이 처음 해와 처음 날을 더 다시없는 마지막 해로, 끝 날로 삼을 수는 없을까요? 내일이, 또 다른 새해가 없듯이요.
그럴 수 없는 저리게 아쉬운, 지난 또는 기다리는 세월과 삶이 있으시다면, 그것 여전히 붙들고 조금은 더디지만 게걸음으로라도 세월 따라가며 살겠다고 하시면,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귀하고 귀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처음 만남의 황홀한 신비가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다면, 그래서 내일 다시 만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오늘 한껏 행복했다면, 오늘 새날에 옛날 만났던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 만나는 일을 한번 감행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렇게 황홀하게 하루를, 한 해를 마음껏 지내시면 혹시 세월이 삶 속에 스미어 스스로 빠름을 누그러트리면서 내 삶을 받쳐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세월이 빠르든 삶이 더디든 노년은 길지 않습니다. 맞는 새해가, 새날이, 모두입니다. 실은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것이 노년의 하루입니다. 감히 고백하건대 저는 올해, 한 해 동안 주어진 날들을 ‘그날만’으로 삼아 황홀하게 살고 싶습니다. 쌓이는 앞뒤 아무것도 없이요.
지난해가 없듯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을까요? 어제가 없듯이 오늘을 시작할 수는 없을까요? 올해를, 오늘을, 생전 처음 맞은 해로, 날로, 그렇게 여기며 살 수는 없을까요?
>>정진홍 울산대 석좌교수
1937년생인 정진홍(鄭鎭弘)은 종교학을 공부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있다가 은퇴했다.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울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 , , , , 등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매달 시니어의 제2인생과 직결된 새로운 직업을 소개해온 이 코너가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맞이해 새해 각오와 어울릴 만한 주제를 준비했다. 바로 특정한 직업이 아닌 ‘창업’이다. 취미활동이나 공부를 통해 익숙해진 일 혹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세우는 것. 창업은 시니어에게는 거창한 일로 여겨지지만, 벤처나 스타트업이 뜨고 있는 요즘 사회에선 어렵지만도 않다. 또 시니어의 창업을 돕기 위한 관련 기관의 도움도 쏠쏠하다. 새해 계획을 이미 세워놨다면 ‘창업’이라는 꿈을 하나 더 집어넣어보면 어떨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올해 사업 활동 결과는 이상이며, 내년 사업 계획을 보고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스크린의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응시하는 사람은 말쑥한 정장 차림도, 대기업 임원도 아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여성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니어의 모습.
지난해 12월 7일 도심권50플러스센터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진행하는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에 참여한 단체들이 지난 1년간 사업 결과를 평가하고 다음 해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 현장에선 센터에 의해 ‘보육’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 10개 업체의 대표자들이 모여 성과를 자축했다.
비록 프레젠테이션이 서툴러도, 아직 대표라는 직함이 쑥스러워도, 한 회사를 설립해 성장시키고 있다는 보람 때문인지 이들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이들은 어떻게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을까.
창업은 ‘소자본’ 1억원 내외로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2017년 한국경제 7대 이슈’ 보고서에서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 증가가 취업자 증가보다 커 고용 여건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그만큼 시니어들의 취업활동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취업활동이 어렵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창업’. 그러나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 해도 종목 선정이나 자금 마련, 동료나 직원 확보, 판로 개척 등 막막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시니어들은 어떻게 창업을 추진할 수 있을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최근 은퇴 후 창업 시 망하지 않는 5가지 원칙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소자본으로 창업하기 ▲365일 묶여 있는 창업 피하기 ▲가족의 지지 확보하기 ▲잘 알고, 좋아하는 일 선택하기 ▲사업가 마인드로 무장하기 등이다.
소자본 창업을 추천하는 이유는 상당수의 시니어들이 창업할 때 은퇴 자금을 한꺼번에 투자해놓고 사업이 안 되면 곤란을 겪기 때문이다. 또 잘 알지 못하거나 가족의 도움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다면 그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창업 금액은 1억원 내외가 적당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창업진흥원의 시니어 창업기술센터 프로그램을 활용하자
창업을 원하는 시니어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장치들이 정부기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관 중 하나는 창업진흥원. 만약 어떤 ‘아이템’을 갖고 사업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창업진흥원을 노크해보라. 창업진흥원에서는 각 지역 23개 시니어 창업기술센터를 운영하면서 시니어의 창업을 돕고 있다. 또 별도의 시니어 기술창업스쿨을 통해 창업에 필요한 기술교육도 제공하고 있다.
창업진흥원 지식서비스창업부 이경희 대리는 창업진흥원의 활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창업진흥원에서 기술창업, 즉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시니어의 창업에 가장 적합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시니어들은 창업에 올인할 경우 사회적 약자가 되기 쉽고,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은 창업은 폐업률이 높습니다. 때문에 창업에 필요한 지식과 준비 과정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술교육을 지원해 안정적인 창업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창업진흥원은 지난해까지 진행했던 시니어 기술창업스쿨을 올해부터는 각 지역의 시니어 창업기술센터로 이관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시니어 창업기술센터는 교육뿐만 아니라 설립된 회사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입주공간지원 사업, 창업자금지원, 마케팅활동지원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기업이 설립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지원받을 수 있는 셈이다. 또 시니어에 국한된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창업진흥원의 창업지원 교육이나 프로그램들은 연령 제한이 없기 때문에 창업 전 꼼꼼하게 살펴보고 도움을 받으면 좋다.
모임과 함께 사업 계획 다듬은 뒤 출발해도 늦지 않아
하고 싶은 사업은 있는데 누군가의 힘을 빌리고 싶다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서울50플러스재단 산하 각 지역의 50플러스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커뮤니티와 인큐베이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도심권50플러스센터의 정현주 대리는 현재 센터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센터에서는 2016년 현재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10개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 사업은 사업계획 심사와 인터뷰를 통해 10개 업체를 선정해 사무공간을 제공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통해 사업이 다듬어질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또 지자체나 다른 기관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면 저희가 다리 역할을 하고, 사업 내용에 따라 센터가 직접 돕기도 합니다.”
센터에서 지원 기업을 선정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일반 창업지원 기관과는 다소 다르다. 기업 활동을 통한 이윤이나 생존을 위한 기존 기업 혹은 청년창업 기업과의 경쟁에 그 초점이 맞게 되면 취지와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거나, 사회 참여적 조직, 협동조합, NPO(비영리 민간단체)를 지향하는 곳을 우선시한다. 물론 사업성이 있어야 함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기업들은 전 단계로 센터 내 커뮤니티를 선택한다. 동호회 활동과 비슷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사업 계획을 보완하고 아이디어를 덧붙이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다. 또 센터 내 활동을 통해 인력을 확보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인큐베이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 중 일부는 이미 협동조합을 갖췄거나, 사단법인의 형태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참여 기업 중 한 곳인 주식회사 리스타트의 경우 창업투자회사를 통해 자금 투자를 약속받기도 했다. 준비하고 있는 기업의 일자리와 은퇴 후 구직자들을 맞춰주는 서비스가 좋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다.
| 전국 시니어 창업 기술센터 |
서울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로 232 서울테크노파크 1203호(02-944-6038),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18 마포창업복지관 601호(070-7727-4101),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211 성북벤처창업지원센터 B104(02-941-7257) | 경기 경기 의정부시 경의로 114 영빈빌딩 4층(031-828-8877),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로 107 창업보육동 B2(031-259-6692),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로 205번길 26, 213호, 214호(031-707-5962) | 부산 부산광역시 남구 신선로 365 행정관 302호(051-629-7971) | 울산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곡천동문길 20-22(052-277-1996),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진순환도로 1138(HRC빌딩8층)(052-219-8632) | 대구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수로 64, 1층(053-784-8261),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로 128, 1층(053-643-7994),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대로 675, 복지관 3층(053-589-7932) | 경북 경북 칠곡군 왜관읍 공단로 1길, 2층(054-973-9605) | 인천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506-1 서울외과 4층(032-567-5051) | 광주 광주시 동구 금남로 238 무등빌딩 10층(062-236-3262) | 경남 경남 양산시 주남로 288 영산 테크노폴리스 산학협력관 3314호(055-380-9577), 경남 진주시 동진로 33 경남과학기술대학교 8동 3층(055-751-3610) | 강원 강원 춘천시 동면 장학길 48 한림성심대학교 산학관 1층(033-240-9833) | 충북 충북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377-3 서원대학교 글로벌관 B203호(043-217-1311), 충북 청주시 상당구 교서로 8-2, 3층(070-4814-6515) | 전북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린대로 945-6 소상공인희망센터 희망관 1층(063-717-1322), 전북 익산시 인북로 187, 1층(063-841-7480) | 전남 전남 목포시 석현로46 목포문화산업지원센터 1층(061-280-7492)
스마트폰 스케줄러를 사용하면 좋은 점들이 있다. 펜이 필요 없다, 쓰고 지우기 간편하다, 알람 설정이 가능하다, 무료로 쓸 수 있다 등등. ‘Google Keep’은 이러한 장점들을 살리고 그림 메모, 음성인식기능 등이 더해진 앱이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웹사이트(keep.google.com)를 통해 PC에서도 일정을 관리할 수 있어 더욱 유용하다.
SNS소통연구소 이종구 소장
1. Google Keep 다운로드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Google Keep’ 또는 ‘구글 킵’을 검색해 무료로 다운로드한다. 안드로이드 구글 계정으로 바로 사용 가능하다.
2. 문자 메모 추가
앱 실행 화면 하단의 ‘메모작성’을 누르면 메모 제목과 내용을 넣을 수 있다. 글자 외에 사진이나 직접 그린 그림, 체크리스트 등을 첨부할 수 있다.
3. 체크리스트 만들기
해야 할 일이나 기억할 것들의 목록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목록 왼쪽에 실행 여부를 표시하는 점검 칸이 나오고, 누르면 항목에 밑줄이 그어진다.
4. 그림·손 글씨 메모
키패드를 누르지 않고 자유롭게 화면을 터치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메모로 저장할 수 있다. 펜의 굵기나 색깔도 다양하다.
5. 음성인식 메모
마이크 모양 버튼을 누르고 말하면 바로 음성 녹음과 동시에 문자로 전환이 가능하다. 음성인식 전환이 꽤 정확한 편이다. 음성 파일도 따로 저장된다.
6. 주요 일정 알림
원하는 날짜, 시간, 장소, 횟수 등을 입력해 알림을 받아볼 수 있다. 매일·주·월·년 단위로 주기적인 반복 알림 설정도 가능하다.
새해가 밝으면 저마다 새로운 계획과 소망으로 기분이 들뜨곤 하지만, 고은(高銀·84) 시인은 인생에 해가 더해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가 살아온 80여 년의 세월 동안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넋들과 앞으로 생을 이어가며 맞이하게 될 죽음들에 대한 가책과 슬픔이 늘 그의 세상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엇갈림 속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방법으로 그는 오늘도 시를 쓴다. 시로써 삶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는 그는 역시 시로써 자신의 뜻을 나누고자 한다. 고 시인은 시집 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변한다.
에 실린 시 ‘초혼’은 원고지 130장에 이르는 장시(長詩)다. 김소월의 ‘초혼(招魂)’과 제목도 같고 먼저 떠난 영혼들을 기린다는 점에서 의미도 함께한다. 고 시인이 직접 낭독하는 데만 1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깊은 애도의 뜻이 담긴 진혼곡 같은 시다. 그런 그의 시와는 달리 죽음을 경계하고 자신의 삶, 꿈, 자아에만 열중하는 이들을 보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는 고 시인이다.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게 대체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건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세계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를 존재하게 한 내 부모, 또 내 부모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를 헤아려보면 끝없이 뻗어 있잖아요. 내 밑으로는 또 어떻습니까? 내 자녀, 손주, 손주의 자녀 등 그 또한 한없이 뻗어 나가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결코 분리된 나 하나가 아니에요. 그물망처럼 촘촘히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죠. 이 광대한 세상에서 하나의 삶을 구성하는 티끌로만 보이겠지만, 이 티끌이야말로 모든 우주를 담고 있어요. 나 자신은 곧 우주의 크기와 같죠. 그 안에서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합니다.”
혼자가 아닌 삶, 공적인 삶에 대한 의무
그는 나와 연결된 세상과 사람들을 인식했을 때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신중해진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개인의 노력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고.
“6·25, 4·19,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역사에 남을 죽음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죽음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이 우리 세상에서 일어납니까? 그런 의식 없이 나 혼자만 잘살겠다는 건 후안무치한 태도죠. 나는 정말 나 혼자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내 속엔 수많은 기생충이 살고 있죠.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누가 만드나요? 여러 사람의 기술과 손길이 닿아 있죠. 내가 쓴 모자, 안경, 마시는 커피까지 무엇 하나 나 혼자 이뤄낸 게 없어요. 그런데 어찌 내 존재만을 과시할 수 있겠어요. 나는 언제나 타자와 함께, 그들의 희생 속에 존재하는 거죠.”
고 시인은 이러한 인식이 자신을 미미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닌 삶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준다고 조언했다.
“늘 떠난 자들의 넋을 어깨에 지고 애도하는 것이 산 자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얼핏 이타적인 삶이라 느낄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이로운 점이 많아요. 혼자라고만 생각하면 그런 죽음 앞에 나는 참 비겁하고 가난한 존재잖아요.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존재라고 느끼면 절대 공허하지 않죠. 나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자책할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 있는 나의 존재를 인식해야 해요. 그러면 삶의 책임감이 강해지고, 비로소 죽은 자 옆에 있을 수 있게 되죠. 이때 누군가는 죽고 나는 살아남았다는 가책이 생기기도 해요. 참 미안한 일이잖아요. 그럴 땐 그들의 못다 한 삶을 내가 대신 살아야 한다는 공적인 자아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더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어요.”
‘슬픈 열대’ 100세여, 좀 염치코치 없으셔
에 실린 시 ‘작은 노래 9’를 보면 ‘이 세상은/ 오래/ 오래/ 있어야 할 곳 아니셔/ (중략) ‘슬픈 열대’ 100세여/ 좀 염치코치 없으셔’라는 내용이 나온다. 죽음을 멀리하고 삶에 연연해하는 이들을 항해 고 시인은 ‘염치코치 없다’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하잖아요. 나에게도 사람들이 100세 되면 기념 시집을 꼭 내라고 이야기하는데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것뿐이지, 그렇게 바라보면서 가지는 않으려 해요. 이 세상의 시간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것이기도 하잖아요. 다 가지려고 하는 건 탐욕이죠. 나이 들수록 생애 집착하기보다는 더 의연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부여잡으려 하니….”
삶과 죽음에 대한 고 시인의 허심탄회한 감정은 ‘삼거리’라는 시에서 ‘나 또한 오지 않는 임종 같은 지긋지긋한 나이거니’라는 시구로 드러난다. 고 시인은 “죽음? 올 테면 오라!”고 초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 가지 염려스러운 부분은 있다고 고백한다.
“죽음이라는 건 나 역시 겪어보지 않았는데, 두려움이 왜 없겠소. 그러나 이런들 저런들 찾아오고야 마는 죽음이라면 즐겁게 받아들이자는 거지. 술자리 1차에서 2차를 가듯 신나게 생각하려 해요. 다만 지상에서의 사랑은 늘 아픔을 전제하는 법, 내가 죽고 나면 아내나 딸이 슬퍼할 것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이라도 결국엔 누군가 먼저 죽는데, 그때 살아남은 이가 얼마나 가슴 아프겠어요. 먼저 간 이도 더 사랑하지 못하고 떠나니 원통할 테고.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사랑인데, 어찌 보면 모순이지요. 나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이들만 아니라면 나는 내일이든 모레든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요.”
시인생활 59년, 시집 여럿
근래 나온 그의 시집을 보며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 맨 앞장 시인의 소개란에 적힌 글귀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한 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화려한 경력이 빽빽했는데 이제는 단 열 자 남짓한 글귀만이 그의 시인 인생을 축약하고 있다. 지난해 나온 에도 그의 이름 두 자와 ‘시인생활 58년, 시집 여럿’이라는 문장 외에는 어떠한 수식어도 찾아볼 수 없다. 흰 종이 위 단출한 이력을 에워싼 여백은 빈 것이 아닌, 그의 겸손과 내공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자꾸 뭘 쓰게 만들어요. 화려한 경력, 베스트셀러 그런 걸 자꾸 드러내고 채우려고 하는데 난 그게 싫더라고요. 시를 정말 많이 썼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시들을 다시 들춰보고 새기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우물에 물이 고여 있다고 그 물이 옛날의 그 물은 아니잖아요. 매일 새로 솟아나지. 내 시도 마찬가지예요. 늘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에 지난 것들에 매여 있을 틈이 없죠.”
하루하루를 새롭게 느끼고, 만물을 신비로이 여기는 그는 이 세상엔 아직 시로 쓰인 것보다 써야 할 것들이 더 많다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노래할 것을 노래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고 시인의 창작에 대한 갈증과 애착은 그의 시집 의 서문에서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죽을 때도 죽어갈 때도 시를 쓸 수 있어?라고 내가 나에게 묻는다면 즉각의 자문자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쓸 수 있다. 쓸 수 없다면 죽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평소 시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존재 이유라 말하던 고 시인다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시를 짓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요. 시는 내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지요. 이 세상에 시로 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내 생애 안에서 그 나이마다 느끼고 발견하는 것들이 있으니 우물물 솟듯 계속 생겨날 수밖에. 죽음도 시라고 생각해요. 의식이 있다가 없는 세계로 탁! 가잖아요. 시처럼 놀랍죠. 아침에 지저귀는 새들, 벼랑 끝에 부딪히는 파도, 이 세상이 다 시 아닐까요?”
나를 가장 정직하게 표현하는 한 권의 세계
1988년 시집 을 펴내며 그는 “6월 투쟁의 대열에 우선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최루탄은 눈물 없어진 나를 눈물단지로 바꾸어주었다”며 “이 시대의 당위가 나를 서재의 집념에 머물러 있게 하는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 30권 예정인 도 매듭지었고, 원로시인으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힌 그이기에 이제는 서재에서 오롯이 시를 위해 전념하는 시간이 늘지 않았을지 궁금했다. 그의 첫마디에 어리석은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거(기자와의 인터뷰) 말이오. 이런 거 하느라고 시 쓸 시간을 빼앗기지. 또 다른 나라에까지 내 시가 알려지다 보니 해외 출장도 많아졌고. 그렇게 나가면 그냥 나가는 게 아니라 기조연설 쓰고, 그걸 또 외국어로 번역하고, 시도 낭송해야 하고. 가기 전이랑 다녀와서 이틀에서 사흘을 쉬어야 하니 이래저래 서재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지요. 그런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요즘은 ‘초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긴 시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고 했다. 조금 전 그의 고충을 들었던 터라 서둘러 그를 서재로 보내드려야 할 것만 같아 냉큼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에 빠지지 않는 명사의 추천 도서 목록 요청이었다. 형식을 파해야 했지만, 짧지만 분명하고 확신에 찬 그의 조언을 그대로 담기로 했다.
“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지가 않아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아주 정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하나 있어요. 누구든 백범 김구 선생의 를 꼭 읽었으면 합니다. 더 추천할 것도 없어요. 우선 그것부터 읽어보라 하시오. 그러고 나면 자신에게 필요한 게 뭔지 스스로 알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