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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7기 출범
- 저출산∙고령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현장전문가와 정책전문가로 구성된 제7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부위원장 서형수)는 24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7기 출범식과 함께 제31차 회의를 열었다. 서형수 부위원장은 제31차 회의에서 신규 위촉된 민간위원 15명에게 대통령의 위촉장을 전달했다. 이로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기존 위촉위원을 포함해 총 17명의 위촉위원과 정부 당연직 위원 7명 등 24명으로 구성됐다. 이와 함께 정책운영위원회 28명과 분과위원회 94명의 위원 위촉도 이루어졌다. 제7기 위원들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 전문가 등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저출산•고령사회에 대한 실효적인 정책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5년 단위로 수립하는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만드는 해인 만큼 다양한 핵심과제들을 적극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내 분과위원회를 현재 5개에서 7개로 확대•개편했다. 7개 분과위원회는 미래기획, 세대공감, 일생활균형, 성평등노동권, 가족다양성, 아동돌봄, 지역상생 등이다. 한편 새로 위촉된 위원들은 김혜승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부교수, 박기남 강원여성가족연구원장, 변정희 부산여성단체연합 대표,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 이윤석 계명대 행정학전공 부교수,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미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장,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등 15명이다.
- 2020-02-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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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바뀌는 연금제도 "이렇게 대응하라"
-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올해 연금제도 변화를 분석한 ‘행복한 은퇴발전소’ 11호를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행복한 은퇴발전소’는 키워드 ‘RAISE’에 맞춰 5가지 정책변화에 대한 연금자산 증식 방법을 제안했다. 5가지 정책변화는 △주택연금 가입 완화(R), △노후자금 연금화(A) △수익률·편의성 제고(I) △스스로 연급 적립 지원(S) △은퇴소득 불평등 완화(E) 등이다. 먼저 R은 ‘주택연금 가입 완화’다. 정부는 올해 주택연금 가입연령을 60세에서 55세로 하향 조정하고 주택가격 기준을 시가 9억 원에서 공시가격 9억 원으로 변경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최소 가입연령 하향이지만 일찍 가입하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하지 않아 금융자산 규모와 주택 입지를 살펴 결정해야 한다. 둘째, A는 ‘노후자금 연금화’다. 퇴직연금 가입률은 50% 정도로 그나마 중도인출하거나 일시금으로 받아 소진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퇴직연금 의무화, 퇴직소득세 강화, 퇴직연금 중도인출 요건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퇴직급여의 연금 수령 시 11년차부터 연금소득세를 퇴직소득세의 70%에서 60%로 추가 인하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절세효과 극대화를 위해 10년차까지 연금 수령을 최소화하고 11년차 이후 금액을 늘리면 된다. 셋째, I는 ‘수익률·편의성 제고’다. 개인·퇴직연금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낮은 수익률로 연금자산 형성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될 예정으로 연금 편입 가능 상품 확대, 금융기관 및 상품 변경 간소화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DC형 퇴직연금에서 상장 리츠 투자가 가능해지고 이달 말경부터 연금계좌의 금융상품 및 관리 금융기관 변경을 온라인을 통해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넷째, S는 ‘스스로 연금 적립 지원’이다. 노후소득을 늘리려면 공적연금뿐만 아니라 연금저축, IRP 등 개인연금저축도 늘어나야 한다. 정부의 지원 방안으로 50세 이상 투자자의 연금계좌 세액공제 한도가 증액되고, ISA 만기자금의 연금계좌 납입 및 세액공제가 허용된다. ISA계좌에 만기까지 3000만 원을 만들어 연금계좌로 넘겨 절세효과를 극대화하고, 50대 이상은 올해부터 3년간 연금계좌에 연 200만 원을 추가로 납입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E는 ‘은퇴소득 불평등 완화’다. 소득 불평등이 노후에는 연금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은퇴소득 격차를 해소하려는 것도 정부 정책의 한 방향으로 고소득자의 사적연금 지원을 제한하고 취약 고령층의 주택연금 지급액을 상향, 기초연금 지급을 확대하는 등의 다양한 정책이 시행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이번 호에는 △외국의 은퇴 소식을 담은 ‘글로벌 은퇴이야기’ △김헌경 도교건강장수의료센터 연구부장이 말하는 은퇴 후 건강비결 ‘웰에이징’ △만화가 홍승우의 카툰 ‘올드’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정신건강 칼럼 ‘힐링 라이프’ 등이 수록됐다. ‘행복한 은퇴발전소’는 정기구독을 통해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으며 미래에셋은퇴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전자책 형태로 열람할 수 있다.
- 2020-01-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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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추머리 김병조 “나 같은 사람 한 명쯤은 있어야죠”
- 나른한 퇴근길, 서울 지하철 1호선 전동차 안에서 그를 보고는 자동으로 인사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참 오랜 친구였다. 뽀뽀뽀 체조로 아침잠을 깨면 항상 볼 수 있던 뽀병이었고, 주말 밤에는 두루마기나 정장을 입고 앵커석에 앉아 “지구를 떠나거라~” 혹은 “나가 놀아라~” 같은 유행어를 쉴 새 없이 제조하던 웃긴 아저씨였다. 문득 생각하니 이런 특이하고, 특별하고, 독보적인 캐릭터가 존재했었나 싶다. 지금은 그때의 기운 센 스타 말고 세월에 깎이고 다듬어진 신사가 되어 지하철 옆자리에 앉았다.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나라 시사풍자 개그의 효시이자, 명심보감 전도사, 조선대학교의 김병조(金炳朝·69) 특임교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서울역사에서 김병조 교수를 다시 만났다. 지하철에서 묵례만 하고 헤어졌던 짧은 만남을 이야기하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인기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알아본다고 기뻐하거나 알아보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아요.” 지방 강연이 있는 날이면 용산역이나 서울역에서 KTX를 이용한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강연이 있다고 했다. 개그맨에서 교수로 직업의 영역은 달라졌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그리고 명심보감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옛 기억에도 그는 어렵고 긴 한문 구절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막힘없이 읊곤 했다. “방송하던 시절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제 뜻에 공감하고 좋아하는 피디 한 분이 계셨습니다. 방송도 공익을 위한 것이니 교육 기능을 강조해야 한다던 분이셨죠. 고전에서 취득하자고 해서 명심보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까지 제 평생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얄개 선비 집안의 장손인 김병조는 어려서부터 벗삼던 명심보감을 개그 소재로 삼았다. 작가가 써주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아이디어를 발굴해 글을 쓰고, 시사 개그의 앵커 멘트를 고쳤다. 짧고 간결하지만,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이야기에 많은 시청자가 귀 기울였다. 그가 진행했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7년 동안 평균 70%의 시청률을 기록한 시사 풍자 프로그램이었다. “제 대본은 거의 다 제가 썼습니다. 고서 인용만이 이유는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청중 앞에 섰는데, 그 끼는 타고난 것 같아요. 면 단위 동네에서 아주 유명했습니다. 사회도 보고, 응원 단장도 하고, 웅변대회에서 상도 타고 말이죠. 아주 오랜 경험이 쌓여 있었으니 사람들을 웃길 자신이 있었어요. 작가가 써준 대본을 수정할 경우 양해는 구했죠. ‘내가 고쳤는데 만약에 대사가 재밌고 유익하면 용서해달라’고요. 당연히 재밌지.(웃음) 작문에도 재능이 있었거든요. 개그맨은 작가적 소양을 지닌 연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전신인 서라벌예술대학에 진학했다. 원래는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하던 우등생. 서울대학교를 바라봐도 될 성적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에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는 대학교에 가야만 했다. 서울대 합격률이 높은 광주일고 대신 육사 진학률이 좋은 광주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육사에서 장학금 받을 정도면 연극영화과 학교에 가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영화와 연극을 좋아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1학년 1학기 때 과 수석을 제외하고 4년 내내 학년 수석을 했습니다. 장학제도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 전액 장학금을 받을 방법은 학년 전체 수석이었습니다. 정말 공부만 했어요. 4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뉴스 형식의 시사풍자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자양분이 됐습니다.” 김병조의 인터뷰에 단골로 나오는 이야기는 한학자 아버지와 가난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에도 지나치지 않았다. 고희가 다 된 나이에도 가난했던 얘기를 굳이 또 꺼내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병조는 가난했던 그 시절이 어두웠거나 피해가고 싶은 시간들이 결코 아니기에 마음놓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스타가 될 사람이 아닌데 스타가 된 유일한 사람일 겁니다. 꼬장꼬장하고 성격도 강했죠. 타고난 재능과 끼가 있어서 연예인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덕망 쌓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 인생에서 고맙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가난한 선비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가난하면 비관하고 항거하고 투쟁하는 쪽으로 이끌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저 수용했습니다. 제가 너그러워질 수 있었던 것도, 전철을 타고 다니는 것도 복 받은 거죠. 집에 있는 가래떡이나 김만 봐도 너무 좋습니다. 제 행복의 비법은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귀이망천자불구(貴而忘賤者不久), 사람들은 성공하면 어려운 시절을 잊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이 오래가지 못하는 거예요.” 젊은 시절 ‘배추 머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김병조는 방송 활동 내내 톱스타 중에서도 톱스타였다. 어린이 프로그램과 시사 코미디를 넘나들며 모든 세대의 사랑을 받던 슈퍼스타였다. 광고모델로 억대 출연료를 받은 연예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시청률을 자랑했다. 대체할 만한 인물도 없었다. 한학을 바탕으로 시청자를 배꼽 잡게 하는가 하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던 이. 말 그대로 김병조 전성시대였다. 그날 이후, 다른 삶을 살다 1987년 6월 10일. 이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진일보했다. 김병조는 이날의 사건으로 삶을 정리하고 돌아봐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현대 역사의 결정적 장면과 맞물려 제대로 된 소명 한 번 못해보고 시대의 막을 내려야 했다. “당시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혼란한 시절이었죠. 그날은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로 대통령 후보를 뽑는 날이었어요. 당원들이 모여 투표하는데 누구 아이디어인지 축제와 함께 진행을 한 거예요. 당대 최고가수도 불렀고 저도 개그맨으로 참석해 달라고 해서 갔습니다. 정당 측에서 코미디를 잘 모르니까 저한테 한 3분 정도 웃길 내용을 적어오라고 하더군요. 대본을 써가지고 보여줬더니 거기다가 뭘 또 적어주더라고요. 그 내용을 보고 사실 대단히 놀랐습니다.” 거기에는 집권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을 폄하하는 발언이 들어 있었다. 단 몇 초 분량의 내용이었지만, 읽어야 할 사람이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던 김병조라는 게 문제였다. “전당대회에서 대본을 읽기 전까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최종적으로는 제 잘못이죠. 과감하게 ‘못합니다’ 하고 거절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정말 후회됩니다. 선비 집안의 장손답게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말았어야 해요. 저는 정치투사도 아니고 한 집안 가장이었어요. 또 늘 그래왔듯 대본대로 읽어야 하는 연예인이었습니다.” 당원들끼리 하는 내부 행사라서 방송 전파를 타지 않았지만 한 일간지에 그가 한 말이 보도되면서 일파만파로 사건이 커져버리고 말았다. “자숙의 기간이 필요해 방송을 쉬고 싶다고 했는데 쉬는 것조차 어렵더라고요. 우리 집사람까지 나서서 ‘원하는 멘트를 했으면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문제를 확대해서 자기네한테 유리한 정쟁으로 삼고 싶었던 것이죠. 잘 모르는 분들은 그 당시 제가 방송계에서 퇴출당한 것으로 생각하시는데 스스로 관둔 게 맞습니다. 그 사건 이후 정치권의 제의도 있었습니다만 다 거절했습니다. 또 방송에도 복귀했지만 실의를 느꼈습니다.” SBS가 개국하면서 자리를 옮긴 김병조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전성기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지만, 이미 방송에 대한 매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마침 그때 KBC 광주방송이 개국했습니다. 노래자랑 프로그램 ‘열창 무대’ MC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잘됐다! 고향의 방송을 하자!’ 하고 갔습니다.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요. 그리고 조선대학교에서 강의 요청도 해왔고요.” 조선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지도 벌써 23년째다. 평생교육원을 시작으로 학부와 대학원을 두루 다니며 강의를 해왔다.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그의 모습이 시청자들 눈에서 서서히 멀어져간 과정은 그러했다. 몇 해 지나고 개그맨이 아닌 대학교수가 되어 나타난 그는 어딘가 모르게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젊은 시절 흑발의 보글보글하던 머리카락은 단정한 커트의 은발이 됐다. 푸짐해 보이던 몸은 마라톤으로 다져 보통의 건강한 체격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사건의 스트레스로 오른쪽 눈은 결국 실명됐다. 그래도 사는 데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혼자서도 잘 걸어 다닌단다. 당시 정치 상황에 휘말리지 않았어도 그는 지금의 길을 택했을까? “가르치는 것이 꿈이었어요. 방송에 몸담고 있을 때도 어머니 교실이나 어린이 교실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죠. 지금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을 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그때 그 사건마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 기사를 쓴 기자와 기사가 제 스승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으로요.”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시래기톡’ 요즘 김병조가 강의 외에 집중하는 건 바로 작년 10월부터 아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이다. 카카오TV와 유튜브에 ‘시래기톡’이라는 채널을 개설해 아들이 묻고 아버지가 답하는 세대 공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왜 방송 이름이 ‘시래기톡’일까. 파릇파릇했던 배추 머리가 세월이 흘러 묵직하고 담백한 맛과 향을 내는 시래기로 탄생했다는 의미다. 지금의 김병조에게 딱 어울리는 별명인 듯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살아생전의 목소리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했어요. 산소에 모시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차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엉엉 울었어요. 그 카세트테이프를 CD로 구워두었죠. 제가 올해 칠십인데 아버님이 일흔둘에 돌아가셨어요. 어느 날 아들이 ‘우리 아버지도 돌아가신 할아버지 나이가 서서히 되어가시네’ 하더라고요. 뭔가 남기고 싶었나봐요. 아들의 생각과 명심보감 구절을 포함해 젊은이들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제가 느낀 것들을 영상으로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눈으로 보지 말고 상대의 눈으로 보고 다름을 인정하자’가 시래기톡에서 추구하는 의미란다. 아울러 유튜브 채널을 통한 한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의미 있고, 온고지신(溫故知新) 같은 방송도 있어야죠. 훌륭한 일을 하고도 대우받지 못하는 어른 세대와 희망과 꿈이 있음에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은 제 유언이기도 합니다. 남기 유(遺), 말을 남기는 것이죠. 먼 훗날 세상을 떴을 때 아들이 우리 아버지의 철학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고요.(웃음)” 아버님이 카세트테이프에 목소리를 남겨놓은 것처럼 그의 이야기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나 같은 사람 한 명쯤은 있어야 한다’가 제 철학입니다. 진분수 같은 삶을 살고 싶죠. 가식과 허황한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에서 있어도 없는 듯 낮추고, 줏대 있는 가난을 선택하며 살고 싶습니다.”
- 2019-11-1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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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꼰대’가 되지 않는 법
-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지나고 나면 인터넷에는 많은 후일담이 쏟아진다. 주로 젊은 자녀나 며느리들의 얘기다. 할 말들이 그렇게 없는지 매번 자신들같은 ‘약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들 뿐이라는 불평이다. “취직은 했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애는 언제 가질 거냐“. 안부를 묻는 것이며 근황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는 것일 뿐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무심한 질문들이 듣는 이에겐 지겹고도 치명적인 돌멩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그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대 김영민 교수가 쓴 재미있는 칼럼이 생각난다. 아마도 이런 세대 갈등을 보다 못해 쓴 글일텐데 미소를 짓게 하는 칼럼이었다. 친척이 명절을 핑계로 집요하게 당신의 인생을 캐물어 오면 그들이 평소에 직면하지 않았을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게 좋다고 조언해준다. 삼촌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 하고 물어오면 “뭐, 언제 하겠죠.”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삼촌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에 그런 것도 못 물어보니?”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는 내용이었다. 부분만 인용하여 재미가 덜하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칼럼이었다.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성찰이 부족하여 상대방이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는 게으른 이들에게 재치 있는 일침을 가하는 글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는지도 모르면서 과거의 사유 구조에 머물러 있다면 어느새 자기도 모른 채 ‘꼰대’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기성세대가 새롭게 성찰해야 할 ‘꼰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요즘 젊은이들 간에 유행하는 ‘꼰대 육하원칙’이란 것이 있다. WHO(내가 누군지 알아), WHAT(뭘 안다고), WHERE(어딜 감히), WHEN(내가 왕년에), HOW(어떻게 나에게), WHY(내게 그걸 왜)이란다. 말하자면 권위주의적 태도로 자신의 기득권을 사수하면서도 어렵고 힘든 일에는 나서지 않고 젊은이들에게 미루는 어른들쯤 될 것같다. 수백 년이 지나도 사회변화가 없던 과거 농경시대라면 어른이 폼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빛의 속도로 변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어른들의 기술과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정보의 습득은 젊은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항변이 더 설득력 있는 시대가 됐다. 그들과 대화할 기회가 오거든 가르치려 들지 말라. 거꾸로 진지하게 그들에게 묻자. “젊음이란 무엇인가?”라고.
- 2019-10-0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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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무호흡증’ 방치하면 뇌 기능 저하 부른다
- 잠을 자면서 코골이를 하다가 순간 숨을 멈추는 이른바 수면무호흡증. 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뇌 조직 손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국내 연구진이 밝혀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팀는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뇌 영상검사 결과 대뇌백질의 변성은 물론 뇌 세포 사이사이 연결까지 손상된 것을 확인했으며, ‘수면무호흡증 환자와 증상이 없는 일반인의 뇌 영상 분석한 결과’를 미국 수면연구학회(Sleep Research Society) 공식저널 ‘SLEEP’을 통해 발표했다. 수면무호흡증 계속 방치하면 합병증 유발 가능 커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해 우리 뇌에 스트레스가 가해져 뇌 세포 간의 연결성이 손상되면 결국 뇌기능이 저하되고 뇌 조직이 손상될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은 성인 인구 4~8%가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수면 중 기도의 막힘이나 호흡조절의 어려움으로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짧은 시간 동안 호흡이 멈추는 식이다. 신체 내 산소공급이 중단되고(저산소증), 뇌가 수시로 깨는 수면분절을 초래해 주간졸음, 과수면증, 집중력 저하를 유발한다. 또한 고혈압, 당뇨병, 부정맥, 심근허혈, 뇌졸중의 발병 위험까지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수면무호흡으로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 다양한 기전을 통해 뇌에 손상을 줄 수 있는데,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과 같은 ‘집행기능의 저하’, 해마의 ‘신경세포 손상’,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침착’, 수면 중 혈압 상승으로 인한 ‘미세 뇌경색’을 일으킬 수도 있다. 윤창호 교수팀은 수면무호흡증이 실제로 뇌에 어떤 변화나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하고자 수면무호흡증 환자 135명(평균 나이: 59세)과 증상이 없는 건강한 대조군 165명(평균 나이: 58세)을 대상으로 뇌 영상검사(MRI)의 차이를 비교 분석했다. 연구 결과, 수면무호흡증 환자에서는 실제로 대뇌백질이 변성(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백질은 주로 신경세포의 축삭이 지나가는 곳으로 축삭은 우리의 대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백질에 변성이 생기거나 손상된다면 뇌의 한쪽 부분에서 다른 쪽까지의 정보전달이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또한 수면무호흡증 환자의 뇌 영상에서는 뇌 세포를 잇는 구조적 연결성(네트워크)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뇌에서 신경세포 연결의 이상으로 구조적인 변화와 연결성에 이상이 초래되면 뇌의 각 영역 사이에 정보를 교환한다거나 정보를 통합·분리하는 일에도 문제가 발생해 결국은 전체적인 뇌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윤창호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간헐적 저산소증, 교감신경계의 활성화, 잠자는 중간 중간 뇌가 깨는 수면분절은 뇌에 스트레스를 가하고 결국은 각 세포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구조적 연결성에도 이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우리 뇌의 여러 영역에서 정보처리능력을 저하시키는 위험인자인 만큼, 수면무호흡증은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양압기 치료, 수면무호흡증에 효과 좋아 수면무호흡증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으로는 양압기 치료가 있다. 양압기는 일정한 압력의 공기를 기도에 불어넣어 호흡을 원활하게 해주는 장치로 잠잘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호흡을 한결 편안하게 해 치료효과가 높은 편이다. 윤창호 교수는 “수면무호흡증을 계속해 방치하게 되면 뇌 기능이 떨어지고 뇌 조직이 손상돼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 할 수 있기 때문에 코를 골거나 무호흡증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정확한 진단을 통해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한국연구재단의 뇌과학원천기술개발사업 및 질병관리본부의 지원을 받아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 미시건대학 이민희 박사, 하버드의대 로버트 토마스 교수, 연세대학교 한봉수 교수,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호흡기내과 신철 교수 간 공동 연구로 진행됐다.
- 2019-08-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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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노후는 내가 결정한다! 임의후견과 유언, 그리고 신탁 이야기
- A(85세) 씨는 경기도 양평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22세 때 직업군인과 결혼했고, 배우자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모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자녀는 없고 배우자가 2000년에 사망한 후 홀로 생활해왔다. 노년이 외롭기는 했지만, 배우자가 남긴 부동산과 금융자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고혈압과 당뇨를 앓아오던 A 씨에게 2009년 가벼운 뇌출혈이 발생했고 이때부터 인지장애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평소 왕래도 자주 없었던 형제와 조카들이 서로 A 씨를 돌보겠다고 나섰다. 결국 A 씨의 큰 남동생 아들인 B(63세) 씨가 자신의 집으로 A 씨를 데려갔다. 문제는 그 후 A 씨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다른 가족들, 특히 A 씨의 막내 여동생 C(78세) 씨는 2015년에 대표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씨의 부동산 대부분이 B 씨와 그의 아내, 자녀들 명의로 증여가 이루어졌고, 50여억 원에 달하던 정기예금 등 금융자산도 20여억 원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가사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그 당시 A 씨는 전라남도에 위치한 요양원 8인실에서 홀로 지냈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A 씨의 가족들이 후견개시 여부와 후견인 선정에 관해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중에 C 씨가 돌연 재판 신청을 취하한 것이다. 알고 보니 C 씨는 남은 금융자산 20여억 원을 자신 앞으로 빼돌리는 조건으로 B씨와 타협을 했다. 또 근거 자료를 남기기 위해 A 씨 명의의 증여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했으며, 효력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똑같은 내용의, 즉 유산을 물려준다는 A 씨 명의의 유언장까지 작성했다. C 씨와 B 씨의 이 같은 밀약을 알게 된 나머지 가족들은 A 씨의 증여계약서와 유언이 무효임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한 뒤 다시 성년후견신청을 했다. 이후 2년여 동안의 공방 끝에 A 씨에 대한 성년후견이 개시된다는 재판은 확정되었지만, 증여계약서와 유언 무효 소송이 진행되던 중 A 씨가 사망했다. 재산을 두고 가족과 친척들이 이전투구를 벌이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재산을 독식하기 위해 조카 중 한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양자로 만든 경우도 있다. 상속 순서로 따지면, 직계비속(자녀, 손자 등),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배우자가 없을 경우 방계혈족(형제자매)이 순위가 된다. 만일 형제자매까지 모두 사망했다면 그 자녀, 즉 A 씨의 조카들에게 상속권이 생긴다. 법정상속분으로 보면, 조카가 15명일 경우 15분의 1씩 상속받는다. 그런데 양자가 되거나 생전증여 또는 유증 방법으로 A 씨의 재산을 독차지(유류분은 별론)할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안하게 노년을 살려면 지금 당장 준비해야 한다. A 씨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를 반드시 고려하자. 첫째, 임의후견계약 체결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믿을 만한 사람을 후견인으로 정해두고, 그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 미리 계약을 해두는 것이다. 이 계약은 공정증서로 체결되어 법원의 후견등기부에 등기해둔다. 시간이 흘러 실제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후견인의 업무는 시작되고, 법원에서는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변과 재산을 잘 돌보고 있는지 살핀다. 둘째, 유언장 작성이다. 사후에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고 처분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미리 결정해두는 것이다. 유언은 유언자의 사망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망 전까지는 미리 준비해둔 유언을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유언은 법에서 정한 형식을 따라야 한다. 민법은 자필증서, 공정증서, 비밀증서, 녹음, 구수증서(유언자가 말로 하고 증인이 받아 적어 작성한 증서)와 같은 5가지 형태의 유언을 인정한다. 사전에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거나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셋째, 신탁계약 체결이다. 신탁은 신탁자(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가 수탁자(재산의 소유권을 넘겨받는 사람, 보통은 신탁회사)에게 소유권을 넘기되, 넘긴 재산을 신탁자가 정한 목적을 위해서만 처분되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면, 재산의 명의는 넘기되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재산을 사용하도록 하는 체결이다. 재산(부동산이나 예금, 주식 등)을 신탁회사에 맡기면서, 신탁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이익(임대료, 이자, 배당소득 등)은 가져가되 사후에는 신탁자가 지정한 사람이 수익자가 되도록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유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자녀(수익자)가 특정 학교에 입학할 것, 결혼이나 출산을 할 것, 일정 기간 직장을 가질 것 등을 수익 분배 조건으로 해둘 수도 있다. 임의후견, 유언, 신탁의 장점은 노후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는다는 데 있다. 이들 제도를 활용하면 혹여 정신적 장애를 겪게 될 때에도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법률적·경제적으로 격리되거나 보호 또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에 있어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 2019-08-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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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런 인지장애, 나는 어디에 내 재산은 어디로 ‘성년후견제도’
- 충남 아산 출신의 A(81세) 씨는 11세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홀로 상경했다. 사업가인 모 독지가 눈에 띄어 그 밑에서 일하게 되었고, 고생 끝에 독립해 제조업과 부동산 중개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지금은 큰아들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준 탄탄한 중견기업과 강남 소재 빌딩 3채, 아파트 등을 가지고 있다. 부인이 몇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아들 둘, 딸 셋, 10여 명의 손자녀, 증손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 A 씨는 사소한 것들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단지 기억력이 조금 떨어진 것이겠지 했는데 그로부터 1년 뒤 알츠하이머병 확진을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요즘은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주위 사람들은 물론 가족도 거의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A 씨 가족의 분란은 약 6개월 전 둘째 딸이 간호를 핑계로 A 씨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둘째 딸이 재산을 제멋대로 처분하자 나머지 형제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빌딩 3채를 포함한 전 재산을 둘째 딸에게 주겠다는 A 씨의 유언장이 작성되자, 나머지 가족은 법정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A 씨는 현재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고 자신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가족들은 세 패로 나뉘어 자신이 아버지를 모셔야 하고 법률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재산을 먼저 받은 사람은 돌려놓고 유언장도 무효로 해야 한다며 싸우고 있다. 자녀들은, 그의 건강이 어떤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어떤 치료가 필요하고 어떨 때 가장 행복해하는지 관심이 없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척하지만, 상속이 이뤄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온 신경이 쏠려 있을 뿐이다. 이런 막장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먼 훗날의 일이거나 남의 집만의 이야기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필자가 서울가정법원에서 3여 년간 담당했던 성년후견제도 관련 사건은 약 1500여 건에 이른다. 몇백만 원의 임대아파트 보증금이 재산의 전부인 경우부터 몇조 원의 재산을 가진 대기업 총수 사례까지 다양했다. 싸우는 양상도 A 씨 가족과 거의 비슷했다. 의사, 법조인, 교수, 대기업 임원이라 해도 갈등하는 모습이 똑같은 걸 보면, 돈에 대한 욕심은 배움, 지위 고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7월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된 성년후견(成年後見)제도는 질병, 노령, 장애 등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 때문에 자신의 사무를 스스로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을 다른 사람(후견인)이 돕는 제도다. 정신적 문제의 원인으로는 치매나 뇌출혈 등 뇌병변이 가장 많고, 조현병 같은 정신병이나 발달장애도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무는 재산에 관한 것도 있지만, 거주지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고, 사람을 만나고 전화 수신이나 우편 수령 등과 같은 신변에 관한 것도 있다. 정신적 문제의 정도에 따라, 혼자서는 사무를 처리하지 못할 정도로 중한 경우에 개시되는 ‘성년후견’과 몇몇 사무에 한해 도움을 줘 스스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한정후견’으로 나뉘고, 특정 사무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주는 ‘특정후견’도 있다. 후견을 받아야 할 사람(피후견인)에게 정신적 문제가 생기기 전에 후견인을 누구로 할지, 후견인에게 어떤 권한을 줄지에 대해 계약을 통해 미리 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를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가족들 중 피후견인과 정서적으로 가장 가깝고 피후견인을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후견인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가족이 추천하는 사람이 후견인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만, A 씨의 경우처럼 서로 후견인이 되겠다고 싸우는 경우는 변호사나 사회복지사 같은 전문가가 선임되기도 한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재산을 관리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재산이 자녀들에게 독이 아닌 복이 되게 하고 A 씨 가족과 같은 진흙탕 싸움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치매 등 정신적인 어려움은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려면 보험을 들듯 임의후견 계약을 미리 체결해두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자녀들이 다투지 않도록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겨두고, 사망한 후 자신이 정해둔 조건에 따라 재산이 사용되고 처분되도록 미리 신탁계약을 체결해놓을 수도 있다. 존엄하고 아름다운 삶의 정리를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유언장(훗날 자녀들의 분쟁을 방지하려면 현재의 정신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진단서를 첨부해두는 것이 좋다)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평생을 바친 가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언제 승계할지, 과다한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줄여야 할지, 후계자 교육이나 기업 구성원 사이의 갈등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치밀한 전략을 세워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김성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002년부터 판사로 활동. 2015년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한정후견개시사건을 담당했고, 2018년부터 2019년 2월까지는 상속재산분할사건, 이혼과 재산분할 등에 관한 가사항소사건을 담당하는 합의부 재판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상속, 후견, 가사 분야에 있어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 2019-07-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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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득한 냄새가 새삼 그립습니다
- 전쟁 직후이니까 한 해를 보태면 70년 전 일입니다. 그해 겨울을 간신히 지내고 이듬해 이른 여름에 저는 ‘길에서 주워온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저는 6세에서 12세까지 아이들 여섯 명이 기거하는 방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기묘한 구조의 커다란 한옥 구석방이었는데 햇빛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까지 모두 일곱 명이 나란히 누울 수도 없는 크기여서 다른 아이의 배나 등에 발을 얹거나 팔을 감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벽에는 사방에 횃대가 있어 거기 옷을 걸었고, 작은 판지(板紙) 상자 세 개가 있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책을 거기 넣어두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방을 열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작은 쪽문을 열자 아이들은 일제히 13세인 저를 바라보았는데 제가 압도된 것은 그 눈망울들이 아니라 그 방의 냄새였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저는 그 냄새를 묘사할 언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취였습니다. 그것도 역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습니다. 코가 막힐, 그래서 숨이 막힐, 그런 냄새였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시궁창 냄새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것으로는 모자랍니다. 이윽고 그 냄새가 역하지 않게 되고, 그 냄새가 내 냄새라고 여기게 되었을 즈음에, 저는 비록 그 냄새를 묘사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명명할 수는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곳에 살지 않는 밖의 사람들이 ‘우리’를 묘사하는 언어였는데 그것은 ‘거지새끼들 냄새’였습니다. 그 명명은 옳았습니다. 듣는 우리의 자존을 마치 발꿈치로 싹싹 비비는 것 같은 ‘독한’ 발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그 표현에는 ‘사람’이 들어 있어 다행이기조차 했습니다. 그때 제가 지금 표현하듯 그렇게 다듬어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궁창 냄새’로 몰아 치워버리는 것보다 ‘거지새끼들 냄새’는 냄새의 주체가 사람인 것만은 인정하고 있는 반응이라는 어떤 느낌이 제게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랬습니다. 씻지도 않고, 빨래도 잦지 않고, 대소변 가리지 못하는 어린아이도 있고, 남몰래 먹을 것 감춰둔 것이 상하기도 하고, 비를 맞은 담요가 곰팡이가 나도 바꿔 덮을 것이 없는 터에 시궁창이 바로 그 방인데, 그 냄새가 극한 악취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살고 있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냄새에는 웃음도 시샘도 다툼도 살핌도 섞여 있었습니다. 거창한 개념어를 사용한다면 그 냄새에는 꿈도 절망도, 희망도 자학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리움도 있었고 회상도 있었습니다. 울부짖는 잠꼬대 끝에 깨어난 아이에게 웬 악몽이냐고 물었을 적에 “엄마를 만났어!” 하는 대답마저 섞인 냄새였습니다. 저는 악취가 싫습니다. 당연합니다. 누구나 그러합니다. 그런데 저는 향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좋아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집안에 제사가 있는 날이면 제게 주어진 일은 향로를 닦고 모사(茅沙)를 담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제사 때 피어나는 향이 참 그윽했습니다. 그 향의 맑은 기운이 돌아가신 조상의 혼령을 모셔올 만큼 지금 이곳을 정화(淨化)해준다는 어른들의 설명이 감동스러웠습니다. 인간의 아픔이 가장 순수하고 오롯하게 다듬어지는 종교의례의 차례가 분향(焚香)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은 지나칠 수 없는 귀한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종교사를 공부하던 어느 계기에 저는 난데없는 ‘고약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에게, 또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기의 ‘아픔’을 아뢰어야 한다면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 드러내야지 왜 아름다운 냄새로 자기를 치장하면서 “잘 봐주십사” 하고 아뢰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정성이고 예의이지 하는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고, 또 그러한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왠지 ‘분향’은 ‘외식(外飾)’의 극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니 제단에서 나는 향기가, 그곳이 어떤 종교의 제장(祭場)이든, 점점 불편해집니다. 향이 저어해지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냄새를 풍겨 추한 곳을 가리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 향수를 뿌리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집니다. 늙은이 냄새는 목욕을 아무리 해도 가시지 않으니 향수를 뿌려 견딜 수밖에 없다면서 귀한 프랑스제 향수를 선물로 준 친구가 있습니다. ‘나한테서 그리도 역한 냄새가 나느냐’면서 고맙게 받긴 했지만 아직도 그 향수를 사용하지 못해 못내 미안할 따름입니다. 삶은 냄새를 지닙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맛도 없고, 만질 수 없어도 냄새는 어디에나 언제나 어떤 것에나 있습니다. 삶은 이런저런 냄새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혹 내게 마땅치 않은 냄새라도 ‘잘 맡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나도 냄새를 지닌 주체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맑고 따뜻하고 그윽한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하지만 ‘모자란 냄새’를 지우거나 더 좋은 냄새를 내려, 냄새에 냄새를 더하는 억지를 부려 자칫 악취만을 낼 수도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는 까마득한 ‘거지새끼 냄새’가 새삼 그리워집니다. 삐뚤어진 생각 고치고 늙은이 냄새를 향수로 조금은 가려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나저나 제가 사람 노릇을 하면 사람 냄새를 지니고 고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여 아예 냄새에 대한 ‘긴장’을 털어내는 일이 우선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 2019-06-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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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다 ① 엄융의 명예교수 · 방송인 윤영미
-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등을 가름하며 나만의 영역을 완성하는 것이 인생이다. 삶의 다양성만큼이나 개개인마다 가지각색의 취향도 있게 마련. 유독 찾아드는 아지트를 보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 묻어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매거진을 거쳐간 셀럽들에게 공간 초월 당신만의 아지트에 대해 물어봤다. “우리 집이 아지트다” 엄융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생리학 학자이자 심혈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엄융의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이 아지트”라고 소개했다. “그동안 우리 집에 몇 명이 다녀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젊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학자들, 정치인, 사업자, 스포츠인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왔습니다.” 엄 교수는 자신의 집이 아지트라서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바로 와인과 집밥. 그는 손님이 오면 마치 진료를 보듯 와인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 뒤 와인 몇 병을 들고 와 맛을 보인다. 그렇게 와인과 함께 식탁 위에 오르는 요리는 20년간 엄융의 교수의 먹거리를 책임져온 가정관리사가 해놓은 집밥. 갈비찜이며, 각종 전이며 명절 음식상 부럽지 않다. 그의 아지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 코스도 종종 마련한다는데 바로 와인 저장고 투어다. 세계 각국 다양한 와인이 그의 집 지하실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200여 종의 와인이 있습니다. 일급비밀이죠.(웃음) 제자들과의 추억을 저장한 곳이기도 합니다. 정년퇴임 때 서울대 의대 재직자들이 해준 사인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뒀습니다. 조형물과 그림은 관악캠퍼스에서 강의를 할 당시 미대생들이 준 작품들입니다.” 올해 나이 74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원시원하고 세련된 언변을 자랑하는 엄융의 교수. 그 젊음의 비결은 아무래도 와인과 집밥, 소통이 있는 그의 아지트에서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좋은 음악과 사람을 만나는 ‘문화공간 아리랑’ 방송인 윤영미 아나테이너 방송인 윤영미가 말하는 아지트의 충족 요건은 좋은 음악과 호스트와의 유대관계, 그리고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공간 아리랑’(이하 아리랑)을 자신의 아지트로 선택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아리랑’은 본지가 작년 12월호에서 노래하는 예술가로 소개한 최은진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다. “10년 전에 라디오 DJ를 하면서 최은진 씨의 ‘오빠는 풍각쟁이’ 음반을 먼저 접했어요. 음악이 독특하고 좋았는데 우연히 최은진 씨를 식당에서 만나면서 아리랑과의 인연이 시작됐죠.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니크한 공간 같아요.” 아리랑은 5~6명 정도가 모여 앉을 수 있는 긴 탁자 하나와 작은 탁자 두 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이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에요. 혼자서 방문할 때도 있고 여럿이 갈 때도 있어요. 저를 통해 이곳을 알게 된 사람이 아마 수백 명은 될 거예요.(웃음) 같이 왔던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장소예요. 무엇보다 위트가 넘치는, 터번 쓴 여인 최은진 씨가 이곳 주인장이잖아요. 그냥 편안함이 최고인 거 같아요. 은진 언니가 틀어주는 선곡도 마음에 들어요. 가끔 노래도 불러주시고 춤도 추고요.” 아리랑은 사실 유명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영화인, 건축가, 교수, 작가 등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아끼는 공간.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만나도 친구처럼 함께 한잔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다.
- 2019-05-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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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가르고 하루를 여는 버스 '6514'
- 아침 첫차를 타본 적이 있는가. 어둡고 텅 빈 길을 걸어서 파란 조명 켜진 정류장에 서면 무대 위에 배우가 등장하듯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계를 보며 발을 구르다 보면 기다리던 첫 버스가 스르르 꿈결처럼 도착한다. 하루를 가장 빨리 여는 사람들이 버스 위에 오른다. 금세 사람들이 들어차고 냉기 가득한 버스 안은 사람 냄새 나는 온기로 따뜻해진다. 그리고 또 하루가 시작된다. 미세먼지 가득했던 3월 초, 새벽 3시 30분. 서울시의 양천공영차고지에는 초록색 지선버스와 파란색 간선버스가 새벽잠 자듯 빽빽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모두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지만 남보다 빨리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속속 모인다. 이곳에는 4개 시내버스 회사뿐 아니라 마을버스 등 10여 개 버스 업체가 입주해 있거나 주차하고 있다. 이날도 도원교통 6514번 버스를 운전하는 황재현(63) 씨는 말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했다. 6514번 버스 운전만 23년째. 정년을 마치고도 계약직으로 3년째 운전대를 잡고 있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승객들을 맞이할 수 있어 매일이 감사하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황 기사의 건강을 생각해서 짧은 노선버스를 권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해온 6514번 버스가 익숙하고 또 친근하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다. 황재현 기사는 아침 첫차를 운전할 때마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남들보다 일찍 깨어 출근하는 분들이잖아요. 주로 새벽에 나가서 건물 청소하시는 연세 많은 여성분들이 타십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많아요. 한편으로는 그래도 일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시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아침을 여는 버스 기사 황재현 버스 운전기사의 하루 일과는 음주측정 검사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다음엔 현찰로 버스비를 내는 일부 시민들을 위해 돈 통을 챙겨 버스로 향한다. 타이어는 이상이 없는지, 엔진오일이나 냉각수가 새지는 않는지도 확인한다. 다시 차고지 건물로 들어와 닫혀 있는 회사 배차실 문을 열고 나면 생기는 잠깐의 휴식시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보온병에 물을 한가득 담은 뒤 버스에 오른다. 첫차 타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그가 운전하는 6514번 버스는 도원교통이 운행하는 버스들 중 가장 긴 노선을 달린다. 양천공영차고지를 나와 양천구, 강서구, 영등포구, 동작구, 관악구 5개구를 지나는 여정. 첫차는 왕복 3시간 10분 정도, 출퇴근 시간에는 4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는 구간이다. 노선이 길다 보니 각지에서 온 수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하루 800명가량이 이 버스를 이용한다. 첫차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이야기 운전기사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며 운행하기 때문에 매번 첫차를 모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 네 번은 새벽 버스에 오른다. 20년 넘게 같은 노선버스를 운전하다 보니 얼굴이 눈에 익은 승객도 꽤 있다. 간혹 차고지에서 버스를 타는 승객도 있지만, 첫 손님은 차고지를 떠나 네 정거장 뒤인 푸른마을아파트 1단지에서 탄다. 첫차가 출발하고 7분 후다. 신한은행 신월동지점 정류장쯤 도착하면 버스 안은 어느새 승객들로 꽉 찬다. 환승하기 좋은 강서구청사거리나 까치산역, 당산역과 신길역 정류장에서는 타고 내리는 승객들로 붐비기까지 한다. 첫버스에서 만난 시니어 여성 4인4색 6514번 버스 안에서 시니어 여성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승객들은 매일 얼굴을 마주치기에 안면이 있지만 굳이 인사는 하지 않는다. 대충 어디서 내리고, 또 어떤 일터로 향하는지 짐작하는 정도다. 첫차를 타고 일터로 혹은 어딘가로 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잠시나마 들어봤다. #1. 첫손님 아무데서나 내려요. 직장이 경복궁 쪽이라서 갈아타야 하거든요. 저요? 일해요. 그냥 아줌마들이 하는 청소 일이요. 아직 어둡기는 한데 집에서 정류장까지 금방 가요. 이 차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환승합니다. 경복궁에 도착하면 5시 10분이나 15분 정도 돼요. 매일 같은 차를 타니까 익숙한 얼굴이 많아요. 근데 서로 대화는 하지 않아요. 아침이니까 하루에 대한 계획도 하면서 조용히 가야죠. 저는 묵주기도하면서 가요. #2. 여자의 완성은 메이크업! 까치산역에서 탔어요. 나는 강서구청에 내려요. 여자는 화장을 꼭 해야 해요. 부스스한 얼굴은 예의가 아니지. 적어도 눈썹이랑 입술만이라도 그려야 하는 거 아냐? 새벽 2시가 아니라 1시에 일어난다고 해도 단장하고 나와야죠. 나는 자고 일어난 모습은 이불 속에서 부부만 봐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매일 보는 사람들이니까 인사를 안 해도 마음속, 눈빛으로는 하죠. 그런데 이게 첫차인지 두 번째 차인지 잘 몰랐네. 나, 다음에 내려요. #3. 일하러 가면서 여행해요 부천 고강동에서 4시 17분에 출발했어요. 부천에서는 그 버스가 첫차예요. 예전에는 좀 늦게 다녔는데 이 차 타고 다닌 지 두 달 됐어요. 오늘은 좀 빨리 왔네. 선유도공원에서 탔는데 당산역에서 내릴 거예요. 첫차 타고 일하러 가지만 여행하는 기분으로 다니면 되는 거죠 뭐. 저같이 청소하는 여성들이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저 머리숱 많아 보여요? 제 머리카락이에요. 내가 올해 72세인데 가발 쓰면 머리카락이 더 빠진다고 해서 두피 관리에 신경 좀 쓰고 있어요. #4. 새벽 산행 전문가 매일 관악산에 가요. 첫차를 타고. 그런데 오늘 좀 차가 늦었네. 10여 년 전에 갈증이 자주 일어나 병원에 갔더니 당뇨라더군요.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매일 가게 됐어요. 차가 안 막히면 관악산까지 50분이면 가요. 젊었을 때는 산악회 활동도 꽤 했는데 이제는 안 해요. 등산은 천천히 3시간 정도 해요. 습관이 되다 보니까 이제는 늦게 가는 게 싫어요. 저는 새벽 산행이 좋아요. 낮엔 너무 더워요. 가끔 도보여행도 하는데 산이 더 좋아요. 슬슬 다닙니다. 무릎이 안 좋거든요. 폭포 있는 데 가면 할머니들 많아요. 나랑 한번 가보실래요?(웃음) 기억에 남은 사람들 서울대 정류장에 거의 이를 때쯤 황재현 기사가 산에 오르는 승객이 매일 첫차를 타는 분이라고 말하니 마지막 손님이 “기사님이 어떻게 아시네” 하고 웃으며 내렸다. 취재를 마치면서 황재현 기사에게 첫차를 타는 승객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잠시 시간을 달라 했고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고 보니 그분 본 지가 오래됐네요….” 매번 버스에 오르면 운전석 뒤쪽에 앉아서 가던 80대 여성분이라고 했다. 등산복을 입고 첫차를 탈 때도 있고 낮에 탈 때도 있었는데 단골 승객이었다. “딸이 미국에 산다며 초콜릿도 주시고 뒤에 앉아서 저를 ‘동상’이라고 부르셨어요. 제가 어리다고요.(웃음) 운전석 안전 펜스가 없을 때 뵈었는데 안 보이신 지 한 몇 년 됐습니다. 돌아가신 모양입니다.” 서울대 정류장에서 회차해 차고지로 돌아가는 시간에는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승객들의 세대와 성별도 달라지는 풍경이다. 새벽에 하루를 여는 시니어의 활기참 뒤에 차분하게 하루를 여는 젊은이들이 조화롭게 시간을 나누어 버스에 오른다. 아침 버스 안이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화 장면들처럼 느껴졌다.
- 2019-04-08 0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