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20년간 국내외 문화재를 펜화로 그려낸 김영택 화백이 전시회 1주일 전인 1월 13일 76세로 타계했다.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1월 20일 시작된 ‘김영택 펜화전’은 주인공 없이 2월 15일까지 열린다. 전시에는 고인의 펜화 작품 40여 점과 함께 펜촉 등의 유품이 출품됐다.
나는 개막 다음 날 찾아가 펜촉을 사포로 갈아서 0.03㎜ 굵기로 수십만 번 세밀한 점과 선을 그어온 열정과 섬세함을 잘 감상했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화업 30년을 결산하는 전시에 공을 들인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펜화와 함께한 삶 자체가 축복이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시에는 ‘질사모’ 회원들과 함께 갔다. 질사모는 불세출의 테너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 1890~1957)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질리를 사랑하는…”이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발음만 듣고 철학도 모임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질사모’는 음악으로 시작됐지만 문학 미술 등 문예 전반에 대한 애호와 감상,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인 단체다.
하여간 질사모 단톡방에 그의 죽음을 알리자 여러 반응이 올라왔다. “화가들은 자기 전시회 기간에 영면하는 걸 큰 복으로 알았다지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서예가는 붓 잡고 선종하시고요.” 이건 서예가는 아니지만 붓 잡고 끼적거리는 나 들으라고 한 말이다. “저는 임종처를 벌써 정해두긴 했는데 어떻게 될는지….” 죽는 장소까지 정해두었다니 어딘지 자못 궁금했다. “불교에서는 강의 도중 쓰러지는 걸 학문열반(學問涅槃)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뭐.
내가 “그러면 언론인은 어떻게 해야 된대유?”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신문을 읽다가 가라고 했다. 실제로 “나는 신문 읽다가 신문을 쥐고 가고 싶다”고 한 분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기자(교열)이면서 소설가 수필가였던 민기(閔幾, 1925~2018) 씨의 말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그럴 법하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가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 중 무대에서 쓰러지고, 미술가가 화폭에 마지막 붓질을 하다 숨을 거두고, 시인이 독자들 앞에서 시 낭송을 하다 떠나가는 건 그런대로 폼 나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신문 읽다가 가는 건 신문기자 아니라도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않나? 아무래도 좀 없어 보인다. 방송기자가 방송 중 마이크 앞에서 죽는 것과는 질과 결이 다른 것 같다.
그러면 의사가 수술 중 죽는 건 어때? 안 좋지. 환자한테 큰일 나지. 판사가 재판 중에 죽는 건? 장사꾼이 흥정 중에 죽는 건? 목사가 침 튀기며 설교하다가 죽는 건? 수사관이 피의자 심문 중에 죽는 건? 선생님이 화가 나 학생을 훈계하다가 죽는 건? 요리사가 신나게 칼질을 하다가 죽는 건?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 중에는 자위하던 중 화산재가 덮쳐 죽은 남자도 있던데 그런 건?
아무래도 신문기자는 책상에 앉아 뭔가 쓰다가 죽는 게 좋을 것 같다. 근데 무슨 글을 쓰지? 자신의 삶에 대해 쓰는 게 좋겠지. 선비들 중에는 묘비나 묘표(墓表), 묘지명(墓誌銘)을 미리 써놓은 사람이 많다. 생전에 만든 자기 무덤을 수장(壽藏) 또는 생분(生墳)이라 하고, 무덤에 묻을 묘지명을 살아 있을 때 쓴 것을 생지(生誌)라고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문집에 실을 ‘집중본’(集中本)과 무덤에 묻을 ‘광중본’(壙中本) 등 두 가지 자찬(自撰) 묘지명을 남겼다. 광중본은 “간사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이 기세를 폈지만/하늘은 그로써 너를 곱게 다듬었으니/잘 거두어 속에 갖추어 두면/장차 아득하게 멀리까지 들려 올리리라”로 끝난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주자학을 비판하며 경전과 노자 장자를 재해석했던 분답게 자신의 묘표를 이렇게 썼다. “차라리 외로이 살면서 세상에 구차하게 부합하지 않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 사람답게 살면서 남들로부터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그걸로 옳다’고 하는 자에겐 끝내 머리 숙이지 않겠으며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고 여겼다.”
우리나라 언론인 중에도 자신의 사망기사를 써놓은 사람이 있긴 하다. 그런데, 공개된 기사를 읽어보니 산에 가서 실종되는 내용인 데다 너무 소설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사망기사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더 지났으니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모범 사례는 미국 칼럼니스트 아트 버크월드(Art Buchwald, 1925~2007)다. 2007년 1월 18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는 “안녕하세요? 아트 버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라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1982년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칼럼(주로 정치풍자)은 전 세계 500여 개 신문에 실릴 정도로 평가가 좋았다. ‘워싱턴의 휴머니스트’로도 불려온 그는 40년 넘게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워싱턴 정가의 엘리트 계층을 풍자한 칼럼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글을 실으면 신문의 품격이 높아진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는 당뇨병이 악화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도 신장투석을 거부한 채 워싱턴의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체로 소개했다. 그런 칼럼니스트가 마지막 순간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본인의 사망 소식을 알린 것이다.
글은 해학과 풍자가 넘쳤지만 그는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만큼 불우했고 어머니는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살았다. 우울증이 심해 자살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스스로 잘 이겨냈다. 한 인터뷰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잘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아마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아닐까요?”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고 유머의 힘을 잘 아는 게 언론인 아닐까. 가만있어도 나이 한 살 더 먹는 설날을 앞두고 이렇게 죽는 이야기를 한 건 좀 거시기하지만, 아트 버크월드 같은 해학과 여유를 갖게 되기를 나도 바라고 있다.
7년 전, 신아연(57) 소설가는 옷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나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국에 돌아왔을 땐 그야말로 맨몸뚱이뿐이었다. 월세 36만 원짜리 고시촌에서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때우며, 그녀가 허비 없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글쓰기였다. 수행처럼 글을 닦자 이윽고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무의식이 샘솟았고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의 질곡에서 붙잡았던 글들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내놓았다.
신아연은 스스로 책을 통해 위로를 얻는 사람이라 말한다. 마치 젓갈이 절여지듯 독서에 푹 잠긴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고. 그런 그녀가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려는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따금 내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인생이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부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 길, 그러한 운명을 가는 자신을 보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몫이고, 그것을 통해 배울 점이 있다는 거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약점이나 모자람 등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한다는 걸 깨달을 때 지금의 처지도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제목처럼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아버리자는 거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런 그녀가 삶에서 나아지지 않지만 껴안아야 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시국사건에 연루된 무기수였기에 가족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억눌려 살아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불현듯 한국으로 돌아온 까닭도 그러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 가, 20여 년을 매 맞는 아내로 살며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 좁은 교민사회에서 위로는커녕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 급급해 스스로 고립된 채 자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다시 자기 인생을 찾기 위해 택한 이혼, 그 후 수순처럼 따라온 건 절박한 가난이었다.
“아픈 가족관계가 제겐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인정하고 살아갈 수밖에요. 그런데 그 아픔은 깨진 항아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길을 촉촉이 적시며 오종종히 꽃을 피우듯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었죠. 한국에 돌아와 겪은 가난 역시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고 현실을 직시하게끔 도왔습니다. 방세를 내면 식비가 없어 굶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벼랑 끝 순간들 덕분에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요.”
더는 내려갈 바닥이 없다고 인정하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였고, 차츰차츰 일어설 수 있었다. 비로소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생겨났다. 그녀는 그렇게 꿋꿋이 홀로 견뎌낸 세월이 자신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라는 걸 명확히 인식해야 해요. 과연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질문해보세요. 굳이 남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부러워하며 내 모습이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웅녀가 된 것처럼, 저는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어요. 그 지난한 시간이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제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고유함을 키우기 위해 신아연은 3년 전부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자처했다. 자칫 고독한 행보로 여겨질 수 있는 나날들이었지만 그녀에겐 오히려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로 작용했다. 수행의 산물과 같은 이번 책은 ‘영혼의 혼밥’이라는 주제로 자생한방병원 블로그를 통해 독자들과 나눈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제게 글은 숨쉬기와 같습니다. 살아 있는 한 써야 하고, 써야만 살아지니까요. 또한 혼자 살아가는 자신을 다잡는 수행의 방편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소통해야 합니다. 가령 한 편의 글에서 글쓴이는 80%의 수고를 하고, 나머지 20%는 독자들이 채웁니다. 소통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지요. 고맙게도 이메일, 문자, 댓글 등으로 피드백을 자주 보내주셔요. 저 또한 독자들과의 교감을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게 참 많습니다.”
중년, 인생의 목차를 정리할 때
독자와 함께 일군 300편의 글 가운데 100편의 글이 책 속에 담겼다. 자신의 지난 글을 다시 읽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을 터, 어떤 기준으로 글을 갈무리했는지 궁금했다.
“‘인생은 목차’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나누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내용은 저절로 정리돼요. 삶도 마찬가지죠. 뒤섞이고 흩어져 있을 때는 길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럴 때 인생을 목차로 나눠 보면 삶은 더욱 명료해집니다. 또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중년이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오죠. 저는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이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게 현실인 것을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 다른 여정으로 가야겠죠. 이번 책은 제게 혼자 가야 하는 후반생의 새로운 목차와 같습니다. 스스로 정리한 목차이기에 여생의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해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그녀의 2020년 목차는 무엇으로 채워졌을지, 또 2021년을 채우게 될 목차는 무엇일지 물었다.
“올해의 키워드는 단연 ‘코로나19’죠. 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요. 어차피 글을 쓰고 책 읽는 게 전부인 일상이었으니까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면서 코로나19와의 거리두기가 저절로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0년의 목차는 글쓰기와 책 읽기를 두 축으로 한 고독과 가난, 치유와 인내가 되겠네요. 남은 12월은 마무리와 시작이 맞물리니 잘 해냈고,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생채기 난 것들의 회복이라 하겠어요. 2021년엔 무엇보다 자연과 인간의 화해와 존중, 인간 간의 연민과 연대가 중요하리라 봐요. 개인적으로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독자들과의 우정, 두 아들과의 이해 어린 사랑, 저 자신에 대한 용서, 창의, 자유 등을 새해 목차로 삼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나의 삶에서 얼마나 ‘참[眞] 나’로 살아왔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과 모자람을 애써 부여잡고 진짜 나를 뒤로하지는 않았던가.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책과나무)의 저자 신아연은 그런 이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자신의 가난과 고통의 경험을 말미암아 그 고유함이야 말로 내면의 자산이 되어 삶을 넉넉하게 해주리라 이야기한다.
Q.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펴내시게 된 계기와 소감 부탁드립니다.
7년 전, 옷 가방 두 개를 거머쥐고 21년간 살았던 호주를 떠났습니다. 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둑시근한 신림동 고시촌 방에서 어떤 날은 라면 하나, 김밥 한 줄로 끼니를 때우며 주야장천 글을 썼습니다. 3년 전부터는 새벽 5시에 일어나 3시간 동안 글을 쓰는 ‘글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글을 모아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냈습니다. 삶의 질곡에서 글을 붙잡았고, 삶이 또한 글을 잡아주었습니다. 고난과 갈등을 겪은 사람일수록 50 언저리에 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자각이 강하게 오는 듯싶습니다. 그러한 자각과 구체적인 자기 훈련의 결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네요. 이혼 후 흐느적대던 몸과 마음이 비로소 단단해진 동시에 한 꺼풀 벗는 느낌도 있습니다. 내 삶의 마스터키를 쥔 것 같고, 소명이랄까, 본래 음성이랄까, 살아갈 의미랄까 이런 것들이 좀 더 분명해진 듯합니다.
Q.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위로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인간의 위대함은 운명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그대로 살아내는 데 있다고, 그것이 운명을 바꾸는 길이자 본래 자기로 사는 모습이라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껴안아 버리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약점과 실패와 좌절과 붙잡힌 발목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놓아지지도 않는 그 부족함과 모자람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지금 이 자리가 순식간에 살 만한 자리로 변합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다면’ 그대로 안고 살아가십시오. 제가 그렇게 살아보니 그럭저럭 살아집디다.
Q. 자생한방병원 사이트에 ‘영혼의 혼밥’이란 타이틀로 2018년 1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쓴 글 300편 가운데 100편을 엮은 책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글을 추리셨나요?
‘인생은 목차다’라는 말을 하고 싶네요. 책을 낼 때 목차를 명확히 하고 의미별로 파트를 구분하면 글 내용은 저절로 정리가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뒤섞이고 모호하게 흩어져 도무지 길이 안 보이는 것 같을 때는 인생을 목차로 나눠보는 겁니다.
책에는 ‘나이 50 이후 참 자기로 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이란 긴 부제가 붙어있는데, 인생 중반의 목차와 같은 거지요. 참 자기로 살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현재 처지가 녹록하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남은 삶은 더욱 명료해질 수 있습니다. 부족함 그대로 남은 생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 그러니까 50 쯤 되면 인생 성적표가 나옵니다. 제 경우 가정 경영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그게 제 현실인 걸요. 가던 길을 계속 갈 수밖에요. 다만 이제는 다른 목차와 여정으로 가야지요. 이번 책은 제게 후반 인생의 새로운 목차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만든 것이기에 목차마다, 100개 제목마다 감회가 새롭고 남은 생에서 충실한 이정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Q. 이혼 후 삶의 어떤 부분에서 ‘본래 자기(참 자기)로 산다는 것’을 체감하시는지요.
25년 동안 매 맞는 아내로 살았습니다. 결혼하자마자 호주로 이민을 갔고, 좁은 교민사회에서 가정폭력을 감추는 데만 급급해 서서히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은 처음부터 없었을지 모르죠.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고립됐고, 남편의 폭력 수위는 점점 높아져 이러다 맞아 죽겠다 싶어 맨 몸뚱이로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 후 수순처럼 절박한 가난이 찾아왔지만 이는 오히려 저의 정신을 맑혔습니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는 인식이 현실을 직시하게 했고, 그때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차츰차츰 일어서며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14/감(感)]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면요?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입니다.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남 다른 재능을 발휘하거나 각별한 사회적 성취를 거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령 고통을 겪을 때 그 고통이 고유한 자기 몫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을 통해 배울 게 있고 정신적, 영적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겠지요. 인생의 모든 면에서 남에게 설명할 수도,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그런 자신만의 삶을 산다면 남을 흉내내거나 부러워하면서 나 아닌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지요. 저는 혼자 견딘 세월이 저의 고유함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년간 아무도 안 만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동굴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곰이 웅녀가 됐듯이, 4.5평 원룸에서 책과 글만 ‘먹으며’ 견뎠습니다. 그것이 이제는 내면 자산이 되었고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고유함이 되어 가난과 고독을 넉넉하게 품고 살아가게 합니다.
Q. [46/삶의 농도를 더 짙게 하려면]에서 새해가 될 때마다 죽음 생각이 나곤 했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살아있는 한 ‘죽음 그 자체’는 경험할 수 없기에 죽음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관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죽음을 자주 말합니다. 뒤집어 말한다면 삶을 그만큼 공고히 다진다는 의미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죽는 것이 무서웠어요.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죽으면 다 끝인데 해서 뭐하나. 피땀 흘려 해냈는데 그 다음날 죽으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살았으니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됐다고 해야 하나요? 죽음은 두려워할 일은 확실히 아니지요. 준비해야 할 일일 뿐. 최근 죽음학 연구자 최준식의 저서 ‘죽음 가이드북’을 읽었는데,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할 적절한 나이까지 가이드 합니다. 40세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죽음을 준비하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지요. 많은 사람이 죽음 준비에 이미 늦었을 수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을 죽음의 준비에도 적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Q. [65/좋은 글을 쓰기 위한 딱 한 가지]에서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라는 것을 명심하고, 죽을 때까지 정말 누구에게도 그 글을 보여주지 말라 조언하셨지요. 스스로도 그러한 글을 쓰시는지요?
이 말을 한 데에는 글이 그 사람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지요. 글은 그럴듯하게 쓰지만 실제 삶과의 괴리가 크거나 위선적인 사람도 있지요. 저도 예외가 아닐 테고요. 그 이유는 식당 음식처럼 내다 팔기 위한 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인데요, 그러다 보니 조미료를 쳐서라도 억지로 맛을 내야 하는 겁니다.
반면, ‘내 글의 독자는 오직 나 뿐’이라면 ‘집밥’처럼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정성어린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제게 그런 시도는 호주에 사는 두 아들에게 편지 쓰기와 묘비명 쓰기가 될 것 같아요. 최근에 제 묘비문(文)을 이따금, 그러나 정기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실제 묘비에 새기고 말고와 관계없이 그 글만큼은 진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발로인 거지요. 한 생이 완전히 문을 닫는 죽음 앞에서까지 거짓된 글을 쓴다면 생 자체가 거짓이었다는 의미이니까요. 묘석의 글은 살아서는 오직 나만을 독자로 함과 동시에, 죽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진실한 글이 되겠지요.
Q. 호주에 사는 두 아들은 아직 어머니의 글을 읽지 못했다죠. 그동안 출간해온 책 중 한 권이 번역본으로 나와 자녀들이 볼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고 싶나요?
한국으로 돌아온 2013년 이후 총 5권의 책을 냈는데, 그때마다 책머리에 “나의 두 아들 진원과 규원을 믿고 사랑하고 기다리며 이 책을 냅니다. To my lovely sons, Jinwon & Kyuwon”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 글을 읽지를 못해요. 아주 어릴 때 이민을 가서 한글 독해력이 부족해서지요. 그런데 그게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만약 아이들이 제 글을 읽었다면 글 속 엄마와 자신들이 아는 엄마가 달라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제 책이 영문으로 출판될 수 있다면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독도를 까맣게 덮을 만큼 그 수가 많았으나 일본 강점기 때 멸종된 독도 강치 이야기로, 무자비한 도륙과 처참했던 대학살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어린 강치 한 쌍이 천신만고 끝에 호주 연안에서 구조되고, 일생을 동물원에서 보낸 후 아들 강치를 고향 독도로 돌려보낸다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한국의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고, 해외 동포들의 애환을 강치를 통해 비유적으로 느낄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자신들의 처지와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Q. 책에서 ‘노자’ ‘장자’, ‘공자’ 등 성현들의 말씀을 통해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 새기는 문장이 있다면요?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를 들고 싶네요. 노자 도덕경 56장 첫 구절입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나이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데 현실은 그 반대지요. 저는 특히 글을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말과 글로 노상 업을 짓고 있습니다. 무심코 휘두른 혀로 영혼의 각을 뜬 적도 있었을 테고, 독을 묻힌 글 끝으로 누군가의 심장을 찌른 적도 있었을 겁니다. 존재의 참 모습과 실재는 언어적 표현 너머에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지요. 쉴 새 없이 나불대며 다 아는 것처럼 굴수록 실상과 진상에서는 점점 멀어집니다. 오히려 입을 다무는 순간 바른 이해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Q. 아울러 독서를 통해 인생의 면역력을 올리고 계십니다. 헌데 독서 근육이 없어 책 읽기가 힘들다는 분도 계십니다. 이들에게 독서에 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독서 근육’이란 말이 재미있네요. ‘마음 근육’이란 말도 있더군요. 마음에 근육이 있으면 인생에 면역력이 생깁니다. 마음의 근육은 독서 근육에서 키워질 것 같고요. 지난 7년 간 무지막지하게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로 인해 마음의 공허함과 의존심이 시나브로 메워졌고 여간해선 상처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에 없던 자긍심도 생겼고, 분별없이 남의 말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고, 비로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독서는 한 마디로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줍니다.
진짜 나는 책이 안 읽힌다, 도저히 못 읽겠다면, 하루에 한두 쪽씩만 읽어보면 어떨까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천권 책도 한 쪽씩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그 첫 책으로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을 권합니다. 농담이지만 이유는 있어요. 이 책은 한 제목 당 두 쪽으로 구성돼 있거든요. 부담 없이 금방 한 권을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줄 겁니다.
Q. ‘백세시대 글쓰기 모임’을 하고 계십니다. 모임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글쓰기는 ‘마음 기경’과 같습니다. 오래 방치해서 딱딱하게 굳고 척박해진 땅이나, 거꾸로 무리한 경작으로 기운이 고갈된 땅에 파종해 봤자 될성부른 싹이 올라오기 어렵지요. 백세시대의 글쓰기는 전반 인생을 살면서 굳고 지치고 피폐해진 마음을 기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이끄는 글 모임은 정직한 내면 돌아보기, 담담히 인생 회고하기 등으로 마음을 닦고,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글을 도구로 마음을 기경하는 방식이지요.
지난 반평생은 외부의 것으로 살아왔지만, 남은 반평생은 자신의 것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롯이 자신의 덕과 정신력으로 인생 백세를 채워야 하는데, 제 생각엔 글쓰기가 가장 파워풀하다고 봅니다. 생애 대부분을 고난에 치여 왔고 앞으로도 빈곤과 고독 가운데 살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면 인생 후반전은 글쓰기를 권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괜찮은 노후가 펼쳐질 것입니다.
Q. 말씀처럼 글쓰기를 통해 삶을 성찰하려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들에겐 어떤 이야기를 권하고 싶나요?
요즘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글을 쓰지 못한다고 해요. 무슨 차이일까요. SNS에 쓰는 글과 내가 본래 쓰고 싶은 글이 다르다는 의미 아닐까요? 자랑, 맛집, 여행기, 남의 이야기 등이 넘치지만 이는 자기 성찰이나 삶의 정리와는 거리가 멀지요. 이런 글로는 자기를 만나지 못합니다. 보여주기 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니, 보여주되 벌거벗은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빤스’ 정도는 걸쳐도 되지만 갑옷으로 무장해서는 안 됩니다. 글을 쓴다는 건 용기를 요하는 일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나의 내면에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Q. 연기를 배운다고 하셨지요. 이렇듯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책은 거울이지요. 타인의 관점, 객관적 시각, 보편적 사유 등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지요. 나라는 개별자가 다른 사람을 통해 드러날 기회입니다. 반면 글쓰기는 내시경이랄까요?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훑어내는 작업입니다. 글이 정직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의 내장’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치유하는 겁니다.
연기를 배운 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를 감추고서는 연기가 되질 않아요. 흔히 연기란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 다른 사람이 곧 자신이더란 말이죠. 결국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아가 뒤섞이면서 ‘우리’로 태어나는 것이 연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무엇을 새로 배우고 경험한다면 이렇듯 인간으로서 성숙할 계기가 되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로 독자와 만나고 싶으신지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지성과 감성이 주 역할을 하지요. 현대는 둘 중 정서지능, 감성지능을 우위에 두고 있고요. 글도 정보나 지식적인 것보다 마음에 울림이 있는 글을 더 좋아하지요. 이처럼 지성보다 감성이라면, 감성보다는 무엇일까요? 네, 영성이지요. 앞으로 제 글의 방향은 영성지능에 공명을 일으키는 쪽이 됐으면 합니다. 영성이 개발되면 ‘참 나’를 만날 수 있고, 자의식이 아닌, 참 나가 다른 사람과 관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라는 의식을 깨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신아연 소설가·칼럼니스트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에세이 동의보감’과 ‘천생글쟁이 신아연의 둘레길 노자’를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치유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노장인문단상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인문 에세이 '내 안에 개있다'를 비롯,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등을 펴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매거진 창간 5주년을 맞아 열린 ‘인생 100세 시니어 공모전’.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시‧산문‧미니자서전‧국문 서예 등의 분야에 시니어를 비롯한 초등학생, 청년 등 전 세대가 지원했다. 9월 1일 홈페이지를 통한 당선작 발표에 이어, 10월 16일에는 시상식이 마련돼 영광의 얼굴들과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방역 지침 준수 하에 소규모로 진행됐다. 자리에 함께한 임혁 이투데이PNC 대표는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닌, 마음가짐에 있다. 오늘 오신 분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청춘이다”라며 수상자들을 독려하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나이 듦의 품격’, ‘대한민국 시니어로 산다는 것’, ‘새로운 시니어의 정의’ 등 세 가지 주제로 펼쳐진 이번 공모전을 통해 우리 중장년 세대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전 연령대가 참여한 수많은 작품은 윤정모 소설가를 비롯한 문인, 서예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엄정한 심사를 거쳤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상에는 산문 부문의 ‘울퉁불퉁 삶을 품어주는 보자기’가 올랐다. 대상 수상자 정순옥 씨는 “50대 중반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며 감정을 표출할 통로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글이었다”며 “60대에 들어서면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자꾸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번 대상을 계기로 큰 자신감을 얻었고, 앞으로도 열심히 글을 써서 내 이름이 박힌 수필집을 두 딸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아울러 “공모전의 주제를 고민하며 나이 듦의 소중한 가치에 눈 뜰 수 있었다. 단순히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뒷걸음치기보다는, 오늘에 충실하며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부문별로는 시 이춘실(다시 피고 있었다), 산문 윤여임(은퇴는 습관을 바꾸는 일이구나), 미니자서전 이호권(마늘이 잘 마르듯 그렇게 나이가 든다), 국문 서예 이은희(한글 판본체) 씨가 수상했다.
이춘실 씨는 “떫은 감처럼 덜 익은 시를 뽑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100세 시대에 앞으로 20~30년을 어떻게 살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이번 공모전 당선이 ‘나이 들어도 괜찮아. 열심히 하면 돼’라는 희망과 용기를 줬다”며 제2청춘을 잘 살겠노라는 다짐을 내비쳤다.
“최근 뜻하지 않게 생업을 접게 돼, 글로써 마음을 정리해보고 싶었다”는 윤여임 씨는 “한때 글을 쓰다가 3년 정도 절필했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마이 라이프가 브라보가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다”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한복을 입고 고운 자태로 참석한 이은희 씨는 “붓을 잡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동안 숱한 공모전에 참여했지만 낙선이 허다했다”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으니 제2인생에 신선한 바람이 부는 듯하다. 붓을 내려놓지 않고 앞으로도 나만의 개성과 생각을 알리는 글을 쓰겠다”는 포부를 다지기도 했다.
이날 개인 사정으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이호권(43) 씨는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동안 노후 대비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이번 공모전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2인생을 고민하고 그릴 수 있었다. 이런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전화로나마 소감을 들려줬다.
수상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주춤했던 마음이 공모전을 통해 활짝 열리며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공통된 이야기를 내놓았다. 이들이 그러했듯, 수많은 시니어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할 ‘인생 100세 시니어 공모전’의 다음을 기대해본다.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망막이 있는 신체적 눈이요, 하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눈이다. 신체의 눈은 좌우 대칭으로 놓여 있어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고 입체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형상이 보인다. 갖가지 색깔도 그대로 인지된다. 봄날 화려한 꽃들의 잔치를 보게 하고 가을날 오색찬란한 단풍의 풍경을 전해준다. 비가 내린 대지 위로 둥그런 아치를 그리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 모습 등 있는 그대로의 자연 환경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또 하나, 마음의 눈은 보이지는 않아도 느끼게 해준다. 그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다. 크기와 깊이도 다르다. 마음의 눈은 보이는 물체들의 현상을 특별한 느낌으로 다시 보여준다.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 같은 사물과 현상이라도 다르게 다가온다. 마음의 눈은 신체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신만의 가치로 창조해내기도 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을 그리고 쓰는 화가, 소설가, 시인이 그렇다. 소설가는 범인들이 생각지 못한 추리소설을 쓰거나 공상과학 등 다른 세계들을 그려낸다. 시인은 꽃잎 하나에도 멈추어 서곤 꽃이 지나가는 자신을 짙은 향기로 불렀다며 시를 한 편 써내려간다.
‘담쟁이’ 시를 쓴 도종환 시인은 마치 담쟁이가 사람처럼 절망의 벽을 기어오른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함께 올라 푸르름으로 다 덮는다고 했다. 손광성 수필가는 ‘달팽이’라는 글에서 달팽이를 보면 험한 세상 어떻게 갈까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개미처럼 힘센 턱도 없고, 벌처럼 무서운 독침도 없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도 없고, 뼈도 이빨도 없기 때문이란다. 집이라고 해봐야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투명한 껍데기일 뿐이어서 걱정스럽다고 했다.
화가나 소설가나 시인은 남다른 마음의 눈을 가진 게 틀림없다. 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깊게 더 섬세하게 확대해서 본다. 마치 무속인들처럼 보이지 않는 무엇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꽃과 이야기하고 길가의 돌멩이와도 대화를 나눈다. 세상 만물과 마치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만물과 소통해야 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대화하고 소통하는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우리가 보는 밤하늘의 별과는 다른 모습의 별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같지도 않은 그 그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값으로 평가받는다. 마음의 눈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신체의 눈과 마음의 눈은 느낌의 산출물이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 보든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두 관심과 사랑의 눈인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눈으로 보고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때 우리는 더 깊게 하나가 될 수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수필가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두 눈을 멀쩡하게 뜨고 한 시간이나 숲속을 걷고서도 특별히 관심 가질 것을 찾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보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을 수백 가지나 찾을 수 있는데.”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와 사락사락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비슷하게 들려서일까. 아니면 쌀쌀한 날씨,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독서가 그 자체로 운치 있어서일까. 평소에는 바쁜 일상에 독서를 멀리하다가도 가을이 되니 괜히 먼지 쌓인 책장이 눈에 띈다. 한동안 책장 근처를 얼쩡대다 큰 맘 먹고 한 권을 집어 든다. 하지만 지적 욕구로 충만한 마음과는 달리 첫 장을 피는 순간 졸음이 쏟아지고, 하품이 난다.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이다.
빼곡한 글자 앞에서도 잠들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책과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내용에 흥미를 붙여야 한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올 가을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 브라보 독자를 위해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영화를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Love, 2010)
안정적인 직장과 번듯한 남편까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는 저널리스트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정해진 인생의 행로를 벗어나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로 이어지는 여정 동안 말 그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내면을 풍요롭게 채워나가는 리즈의 모습을 통해 행복이 그리 복잡하고 거창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의 매력적인 연기와 더불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 여행지의 아름답고 찬란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 빅피쉬 (Big Fish, 2003)
다니엘 월러스의 원작 소설로, 아들 '윌'(빌리 크루덥)이 병상에 누워있는 노쇠한 아버지 '에드워드'(알버트 피니)의 허풍 가득한 영웅담을 듣고, 아버지가 떠나기 전 그의 진짜 모습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다. 젊은 시절 에드워드(이완 맥그리거)의 모험담을 추적하는 윌의 또 다른 여정을 통해 가족 앞에서 영웅인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가슴 찡한 진심을 그린다. 괴짜 감독 팀 버튼이 메가폰을 잡아 에드워드의 드라마틱한 모험 장면을 환상적이고 동화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촬영 당시 700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를 동원하고 6개의 서커스단, 150여 마리의 동물, 1만 송이의 수선화 등을 투입하는 등 시각적 요소를 극대화 했다.
3. 지니어스 (Genius, 2016)
유력 출판사의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가 무명작가 '토머스 울프'(주드 로)의 원고를 보고 그의 가능성을 발견해 세기의 소설가로 키워낸 이야기를 담는다. 오늘날 미국에서 천재 작가로 평가 받는 토마스 울프의 실화 바탕으로, 울프의 4대 장편소설 중 첫 작품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탄생 비화를 그려낸다. 스콧 버그의 책 '맥스 퍼킨스: 천재 편집자'를 원안으로 완성됐다. 연출가 겸 배우인 마이클 그랜디지가 감독을 맡아 1920~30년대 미국 뉴욕을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재현했으며, 콜린 퍼스와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합류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50여 일간의 긴 장마가 끝나고 나니 이제야 제대로 된 여름이 온 것만 같다. 더위가 그친다는 절기 ‘처서’(處暑)가 지났는데도 전국 곳곳엔 며칠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공포 영화를 보며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리곤 했는데, 올해는 이조차 물 건너갔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장마로 어영부영 끝나가는 여름, 이대로 보내기 아쉽다면 넷플릭스로 공포영화를 정주행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영화 중에서도 마니아들 사이 명작으로 꼽히는 세 편을 추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샤이닝 (The Shining, 1980)
소설가 '잭'(잭 니콜슨)은 책을 쓰기 위해 가족과 함께 눈 내리는 조용한 호텔을 찾는다. 느긋한 여유도 잠시 잭의 아들 '대니'(대니 로이드)는 호텔의 음산한 기운을 느끼고, 몰아치는 폭설로 호텔이 고립되면서 잭은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다.
영화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포영화로, '스릴러 영화의 바이블'이라 불린다. 잭 니콜슨의 광기 어린 연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가는 ‘스테디캠’ 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샤이닝을 인상 깊게 보았다면 샤이닝 후속작 '닥터 슬립'(2019)을 이어서 보는 것도 좋다. 닥터 슬립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남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니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2. 알포인트 (R-Point, 2004)
1972년 베트남 전쟁, 사단본부 통신부대 무전기에 ‘하늘소’를 찾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복되는 미스터리한 무전에 'CID 부대장'(기주봉)은 '최태인 중위'(감우성)에게 무전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비밀 수색 명령을 내리고, 최 중위를 필두로 9명의 병사가 6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 부대원을 찾기 위해 작전지역 '로미오 포인트'로 향한다. 로미오 포인트에 도착한 병사들은 기묘한 일을 겪기 시작하고, 마침내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건드린다.
밀리터리 호러 영화 ‘알포인트’는 영화 마니아들 사이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깜짝 놀라는 장면 없이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해 한국 공포 영화의 격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감우성, 이선균 등 오늘날 톱배우들의 몰입감 넘치는 연기가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3. 컨저링2 (The Conjuring 2, 2016)
1977년 영국, 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 네 남매를 괴롭힌다. 밤마다 괴이한 사건이 끊이질 않자 엄마 '페기'(프란시스 오코너)는 초자연 현상 전문가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문제의 집으로 찾아간 워렌 부부는 예상보다 더 강한 영혼을 마주한다.
한때 극장가를 공포로 물들였던 '컨저링2‘는 컨저링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워렌 부부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수녀의 모습으로 위장한 악령 ‘발락’의 소름 돋는 비주얼이 역대급 공포를 선사한다. 컨저링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컨저링 유니버스' 시리즈 중 ‘더 넌’(2018)은 발락의 기원을 밝히는 영화로 컨저링2와 함께 보면 재미를 높일 수 있다.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요즘도 백일장(白日場)은 열리고 있다. 학교는 물론 각종 사회단체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글짓기대회가 많다. 초등학생들이 엎드려 글을 쓰는 모습은 귀엽고, 한시백일장에 나온 갓과 도포 차림의 노인들이 붓을 놀리는 광경은 멋지다. 글과 글씨만이 아니라 그림 공모전에도 백일장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백일장을 써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써야 하나요?”라는 문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일 나가는 백일장은 날씨백일장인데, 백일장을 써본 적이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학생의 글도 보았다. 백일장을 쓴다는 말이 우스운데, 요즘 학생들에겐 그만큼 생소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백일장은 조선조 때 각 지방의 유생들을 모아 글짓기를 겨루던 일을 말한다. 그런데 뜻이 두 가지인가보다. 하나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달밤에 모여 시를 지으며 노는 망월장(望月場)과 대조적인 뜻으로 대낮[白日]에 시재(詩才)를 겨룬다 하여 생겨난 말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유생들이 시재를 겨루던 장소[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게 벼슬과는 관계없이 열리기도 했나보다.
직접적인 기원은 1414년(태종 14년) 7월 태종이 성균관 유생 500명에게 시무책(時務策)을 지어내라고 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일자무식꾼까지 나와 남의 글을 빌려 시험지를 내고, 수령의 가족이나 기녀(妓女)까지 끼어들어 심사를 하는 등 비리가 많아 난장판이었다고 한다. 과거시험장에서 커닝하다 들켜 쫓겨난 사람도 많았다지 않나.
나도 고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대학교가 주최한 백일장에 두 번 나갔었다. 물론 다 입선도 못하고 미역국을 먹었다. 그 대학에 다니는 고교 선배들이 점심을 사주어 카레라이스라는 걸 난생처음 먹어본 게 큰 소득이자 즐거운 기억이다. 1960~70년대에는 대학이나 사회단체가 주최하는 백일장을 휩쓴 스타가 많은 부러움을 샀다. 지금도 활약 중인 문인들 중에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문명을 떨친 사람들이 있다. 장학금 받고 대학에 들어간 글짓기 장학생이 그때의 아이돌이었다.
백일장이라는 말을 나는 그 뒤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을 때 소설가 최인호(1945~2013)로부터 백일장이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그때 신문사들은 저마다 문인들을 섭외해 금강산 관광기를 앞다투어 실었다. 한국일보 문화부장이던 나는 최인호에게 글을 쓰게 했다. 최인호야말로 1963년 고등학생일 때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던 ‘백일장 스타’ 아닌가. 금강산을 다녀와 글을 써 달라는 청탁에 최인호는 “야, 이거 신문마다 백일장이 시작됐구나”라고 말하면서도 즐겁게 다녀와 즐겁게 글을 써주었다.
1998년 11월 18일 시작된 금강산관광은 남북 분단 50년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큰 사건이었다. 남북의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중단된 지 오래지만 갈 수 있다면 나도 다시 가보고 싶다. 최인호의 글은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가사(한상억 작사)를 원용해 “아아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로 끝난다. 금강석은 모든 보석의 대명사 아닌가. 금강산도 거기서 나온 이름이다. 글을 읽은 신문사의 최고 선배가 “최인호의 글이 바로 금강”이라며 좋아해 나도 역시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백일장을 생각해본 건 초등학교 중학교 교문에 내걸린 격려·환영 문구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번진 이후 각 학교는 입학식과 개학을 늦추고 겨우겨우 1학기를 시작해 온라인 원격수업을 실시하거나 다시 쉬거나 하면서 학생들이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니고 안 가는 것도 아닌 상태로 한 학기를 마쳤다. 지금은 수도권 지역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돼 서울·경기·인천 지역 유·초·중학교는 2학기 개학 이후에도 당분간 3분의 1 이내만 등교시키도록 제한된 상황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못하거나 뒤늦게 오게 되자 각 학교는 교문에 환영 펼침막을 저마다 내걸었다. 그런데 이게 내 눈에는 ‘교문 백일장’이 벌어진 걸로 보이는 것이다. “밝고 향기로워서 꽃이 핀 줄 알았는데 너희들이 온 거였구나”(남양주 미금중학교), “여름이 온 줄 알았는데 싱그러운 너희가 온 거였구나”(서울 대치중학교), “학교는 너희가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단다 환영한다 얘들아”(서울 신사(新沙)중학교)… 내가 봄부터 눈에 띄는 대로 사진 찍은 문구다. 지금도 이대로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것들 중에는 이미 색이 바랜 것도 있다.
환영·격려 문구를 써 붙이기까지 선생님들은 얼마나 고심했을까. 이런 걸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다면 뭐라고 쓸까, 누가 문안을 만들까, 이런 문제로 그야말로 ‘백일장 쓰는 법’을 많이 연구했을 것이다. 당연히 그 학교의 국어 선생님, 글 잘 쓰는 선생님, 그리고 제일 젊은 후배 선생님이 맡았겠지. 교육부나 교육청이 이런 걸 내걸라고 지시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인근 학교가 내걸면 가만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지만 ‘교문 백일장’을 통해 선생님들의 글짓기 실력이 더 풍부해지고 세련돼진다면 그야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실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교문백일장에 펼쳐내고 드러낸 마음 그대로 학교를 사랑하고 학생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 열리든 백일장은 입상을 하든 못하든 모두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 돼야 한다.
- 도서명: 읽다
- 지은이: 김영하
- 출판사: 문학동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인생을 산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인간은 그 한계를 허물어트린다고 프랑스 작가 ‘샤를 단치’는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어야 소멸에 맞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답이 이 책에 있다. 이 책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인 ‘책’을, 백마 탄 왕자인 ‘독서’가 어떻게 깨워야 하는지, 작가의 문학 경험으로 부드럽고 자상하게 알려준다. 작가 ‘김영하’의 사유와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산문 3부작 ‘보다’, ‘말하다’에 이은 마지막 편이다.
작가는 그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에서 "시인은 숙련된 킬러처럼 언어를 포착하고 그것을 끝내 살해하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이 산문에서는 그가 시인이 되었다. 여섯 날 동안 책과 독서에 관해 거침없이 탐사하며 특유의 어법으로 ‘책의 우주’에 접속하는 길을 알려준다. 독자는 그 과정에서 문학이란 ‘타인의 삶’이라는 거울을 통해 내 삶을 비춰보는 일임을 깨닫는다. 이런 책을 통한 사유의 행위야말로 내가 서 있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내적 근력을 키우는 일이며 때론 즐겁고, 때론 고통스러운 정신의 미로 세계를 여행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자각하게 된다.
카프카는 그의 대표작 ‘변신’에서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읽는 책을 날이 선 도끼로 만드는 방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 책 읽은 소감: 책을 읽는 내내 처음 간 여행지를 그곳을 아주 잘 아는 현지인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독서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설(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책의 에너지를 삶의 에너지로 변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가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은 후 가슴으로 전해지는 울림이 가벼운 점은 아쉬웠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학적 경험의 매개로 사용한 작품이 서구 소설 중심이라는 점 역시 아쉬웠다.
▶ 평점: 3.91 (5점 만점)
▶ 논제
- 작가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을 하며, 한 편의 소설 읽기는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지는 크레페케이크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은 아니지만 본 도서 ‘읽기’는 여러분에게 어떤 맛으로 다가왔나요? (p.102)
- 작가는 "우리가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서 소설을 집어 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비유합니다.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 좋게 헤매는 경험"이라고 말하는데요. 이런 작가의 생각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101)
-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읽어온 책들, 특히 나를 작가로 만든 문학 작품들에 바치는 사랑 고백"이라고 하며, 책에서 계속 등장했던 ‘돈키호테’와 ‘에마 보봐리’, ‘라스꼴리니코프’ 같은 인물로부터 자신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책 속의 인물’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p.207)
- 작가는 우리 손에 나뭇잎 한 장을 얹어주듯 책 '읽다'를 첫 장부터 차분하게 자연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면서 "소설은 일종의 자연이다. 독자는 그것의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그 자연을 탐험하면서 소설이라는 자연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을 전개한다고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허구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현실처럼 존재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고도 했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 역시 자연이 됩니다. 여러분이 기록에 남기고 싶은, 자연이 되는, 소설이 되는 여러분 인생 최고의 순간은 무엇인가요? (혹은 소설로 창작하고 싶은 내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p.110, p.132, pp.138~139)
- 작가는 소설을 읽는 것은 광대한 책의 우주를 탐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은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다른 책으로 연결해주는 징검다리로 소설과 소설, 이야기와 이야기, 책과 책 사이의 연결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로서 큰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특히,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소설과 소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가 자기만의 책의 우주, 그 지도를 완성하게 되는 것이라 하였는데요. 여러분이 읽은 소설에서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경우로 어떤 사례가 있나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김이정 소설가가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았는데 눈물이 나네. 당신의 전화가 온 것은 마침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온 채무면책 결정서를 받은 직후였어. 그래,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겠어. 당신은 잠시 아무 말 없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했지. 내 덕에 안 해도 좋을 경험 많이 했네. 전화를 끊기 전 당신은 미안하단 말을 그렇게 했어. 그러자
5년 전 전철을 타고 찾아간 의정부지방법원의 법정 안이 떠올랐어. 줄지어 선 사람들이 한 명씩 호명될 때마다 판사 앞에 잠시 서서 확인을 하고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던 신용회생 판결의 날. 자서전 대필 고객을 만나야 해서 입고 간 내 실크 블라우스가 참 무색했지. 언제 5년이나 기다리나 암담했는데 이토록 잠깐일 줄 몰랐어. 하긴 그 지난한 파산의 시작으로부터 올해가 12년째가 됐다는 건 더 놀라운 일이야.
체질에 맞지 않는 사업으로 마지막 숨을 헐떡이다 마침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 당신이 파산을 인정한 것은 2008년 가을이었지. 제일 먼저 내 차를 팔았어. 2년 동안 전국의 길들을 달렸던, 생전 처음 내 이름으로 산 그 승용차를 팔기 전날, 나는 파주의 한 절에 가서 눈물의 작별식을 하고 돌아왔어. 사물도 때론 생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지. 그 후 매일 우편함을 가득 채우던 신용보증기금과 은행 그리고 카드회사의 연체고지서들, 카드 대환론까지 생전 처음 알게 된 일들은 끝도 없었어.
어느 날엔 새벽 2시에 빚쟁이가 벨을 누르기도 했지. 마침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믿고 있던 집값마저 급락해 경매 직전에야 최저가로 집을 팔고 월세 아파트로 짐을 옮기던 날은 차라리 담담했어. 내 것이 아니었던 거지 뭐, 단념이 쉬웠지. 그러나 거기까지였어. 내게 파산이란 갖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 그런데 파산을 겪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인가를 곧 알게 되었지. 내가 죽기보다 싫어하던,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찾아왔어. 죽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었어. 나는 고마운 벗들과 형제들이 기꺼이 빌려주는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 아니 거기까지도 나의 자존감은 겨우 유지할 수 있었지.
그러나 벼랑 끝으로 몰린 당신이 곧 드러날 일들을 감추며 무책임한 거짓말을 할 때 나는 더 이상 자존감 따위를 유지할 수 없었어.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던 종로의 골목길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소리를 질렀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아니 어떻게 인간이 이래? 그날 나는 그 낯선 골목을 오가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신랄한 저주의 말들을 내뱉었지. 거기까지가 내 한계였던 거야. 인간이 얼마나 더 참혹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 그때까지도 난 몰랐던 거야. 아니 어쩌면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당신이 공황장애란 병으로 도피하듯이 나 역시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관념과 추상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거야.
딸 고생시키는 사위에 대한 미움을 감추지 못하는 장모와 함께 사는 집이 불편하기 짝이 없던 당신은 고시원의 관짝만 한 방으로 숨어들었고, 그 좁은 방에서 관 뚜껑이 닫히는 것만 같은 공황장애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지. 공황장애로 죽지는 않는대. 그것만 명심해. 공황장애에 시달리다 못한 당신이 전화를 걸어오면 난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보를 근거로 냉정하게 말하곤 했지. 당신의 고통을 헤아리기엔 내 앞에 쌓인 빚과 생활비를 버는 일, 그리고 나이 들어가는 내 몸을 감당하기에도 벅찼으니.
아니 사실은 진작 멈추라던 내 경고를 듣지 않은 당신이 초래한 일이니 당신이 아프고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당신 몫을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한 거지. 혹시 당신이 자살이라도 하면 어쩌나, 친구에게 호소하던 내 마음속엔 사실 이토록 냉정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어. 적어도 나는 책임론에선 벗어날 수 있는, 상대적 우위에 있었던 거야.
누이가 하는 펜션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돈가스를 굽겠다며 당신이 남쪽의 바닷가로 떠난 것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어. 왜 진작 몸을 써서 살 생각을 안 했는지 몰라. 공기 좋은 그곳에서 당신은 공황장애도 많이 좋아졌다며 나를 안심시키곤 하지. 물론 나이 들어 시작한 노동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 당신은 파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당당해 보여.
그사이 출간된 내 소설에 생각지도 않았던 행운이 찾아오고,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쓴 덕에 얼마 전엔 남아 있던 빚을 모두 갚았고, 신용회생이란 이름으로 5년간 매달 일정액을 입금하던 프로그램도 모두 끝났어. 그 마지막 허가장을 받은 오늘, 12년에 걸친 파산이 마침내 마무리된 거야. 나도 모르지 않아.
이 정도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라는 걸. 그사이 우리는 60대에 접어들었고 몸도 몇 군데 고장이 났지만 다행히 생명이 위험한 건 아닌 채 이렇게 사회적 금치산에서도 풀려났으니. 아니 무엇보다 인간이란 더없이 비천하고도 연약하지만 한편으론 놀랍도록 고귀하고 강한 존재라는 걸 온몸으로 깨닫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파산의 대가론 제법 값진 걸 얻은 게 아닐까.
김이정 소설가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해 소설집 ‘도둑게’, ‘그 남자의 방’과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유령의 시간’을 출간했다. ‘유령의 시간’으로 제24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