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트럴파크 길 걷기에 참여했다. 연트럴파크라는 도로명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와 연남동을 합성해 지어졌다고 한다. 2011~2016년에 걸쳐 완공된 전체 6.3km의 옛 경의선 숲길 중 가장 긴 연남동 길이다. 약 두 시간에 걸쳐 경의선 숲길을 지나고 홍제천을 따라 걷다가 월드컵 평화공원까지 걸었다. 1905년 첫개통 했다는 옛 경의선은 현재는 공항철도 및 복합 전철로 건설되면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철길 상부를 50년간 무상 임대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길 주변으로 카페나 편의, 위락시설은 좋은데 경관 훼손이나 고성방가 등의 소음을 규제할 원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최근 떠오르는 길이 또 하나 있다. 1970년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도로가 바로 그 길이다. 1971년도에 숙명여대에 입학했으니 통학버스 안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길이기도 하다. 1024m의 이 길은 2015년에 철거됐는데, 지난해 5월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7017’은 1970년에서 2017년의 시점을 의미하고 ‘서울로’는 서울로 향하는 사람의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서울로 7017’은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 인근 하이라인공원 길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총괄 디자인 기획을 한 세계적인 건축·조경 디자이너 비니 마스(Winy Mass, 네덜란드)는 오히려 하이라인 공원길과의 차별성을 많이 강조했다고 한다. 뉴욕과 서울의 도시 환경을 비교할 때 차별성을 갖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이라인 공원길은 1934년에 맨해튼 중심부 20개의 블록을 가로지르며 운행되던 2.33km의 고가 화물 노선이었으나 철도 업이 쇠락한 1980년, 철로도 완전히 중단되어 20여 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뉴욕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하이라인 친구들’이라는 시민단체와 하이라인공원길 건설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2009년 완공했다. 아름다운 식물과 벤치 등 디테일한 디자인으로 조성된 길은 허드슨강의 풍광을 배경으로 마천루를 비롯한 뉴욕의 건축사를 살펴보는 교육의 장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로 뉴욕 맨해튼의 도시 설계자 로버트 모지스는 “뉴욕 도시 중심부에 큰 공원을 설계하지 않는다면 5년 후에는 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을 지어야 할 것”이라 당부한 바 있다. 그 공원이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센트럴 파크’인 것이다. ‘연트럴파크’와 ‘서울로 7017’도 오랫동안 훼손, 오염되지 않고 시민의 아름다운 휴식처로 남아 주기를 바란다.
청룡포(淸泠浦). 정작 섬은 아니지만 섬처럼 외진 곳이다. 서강(西江)이 삼면을 휘감아 돌아나가고, 남서쪽 육육봉은 벼랑처럼 가팔라 어디에고 육로가 없다. 일러, ‘육지 속의 섬’이다. 배를 타야 닿는다. 강폭은 넥타이처럼 좁아 도선에 오르자마자 내려야 하지만, 강상으로 펼쳐지는 산수란 풍광명미, 눈을 뗄 겨를이 없다.
배에서 내려 청룡포 안통으로 접어들자 우뚝한 것이, 미끈한 것이, 당당한 것이 눈길에 가득 차오른다. 소나무들이다. 하나같이 굵고 크고 높으니 나무의 장한(壯漢)들이다. 또 여겨보자니 미모도 이런 미모가 없다. 풍만하면서도 늘씬하다. 쭉쭉 벋었으나 미묘하게 휘어 수려하다. 미인송(美人松)들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항간에, 산간에, 공원에 무시로 눈에 띄는 게 소나무이지만, 청령포 소나무들을 첫손가락에 꼽는 이들이 숱하다.
솔숲 사이 오솔길에 초록이 너울거린다. 허공을 통째 가릴 기세로 무성히 뻗친 솔잎. 그 사이를 간신히 통과한 햇살이 숲으로 스며든다. 그 한 줌 은빛 햇살마저 덩달아 푸른 기운을 머금는다. 초록 솔에 젖어서다.
숲 안에 감도는 공기는 가을처럼 서늘하다. 살갗으로 차게 다가오는 공기엔 후각을 자극하는 상큼한 향이 서려 있다. 이건 소나무들이 일제히 내뿜는 에테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숲길에선 오감이 열릴 수밖에 없다. 시각과 촉각과 후각을 흔들어 일깨우는, 저 ‘감각의 제국’을 보라.
살면서 사귄 초목이 많고 많지만 소나무를 보면 늘 반갑다. 이승에서 만난 가장 친숙하고 가장 오래된 동무라 할 만하다. 저승 가는 길목에도 소나무 조경이 돼 있다면 발길이 더 사뿐하리라. 매양 사람에게 베풀기를 거듭한 나무이지 않던가. 나 태어날 적 대문간엔 생솔가지 꺾어 꽂은 금줄이 걸렸다. 지상의 첫날부터 소나무가 보초를 서줬던 거다. 무엇보다 소나무는 목재로 흔히 쓰여 사람에게 이바지한다. 건축의 재료로 불려가 집을 이루고, 집 안에선 가구가 되고, 가구 앞에서는 다탁이 되고, 다탁 옆에서는 바둑판이 된다. 구들을 데우는 땔감이기도 하고, 송화주(松花酒)와 솔바람과 솔그늘을 희사하기도 한다. 종단엔 관재(棺材)가 돼 사람의 마지막 여행길에 동행한다. 보시(布施)에 보시가 겹겹이니, 가히 소나무 보살이렷다!
청령포 숲엔 700그루쯤의 금강송이 주민을 이루어 산다. 촌장은 숲 복판에 선 관음송(觀音松). 높이 30여 m에 600살쯤의 나이를 자셨다. 위풍당당한 거목이다. 나무 아래에 선 순간 나는 물방개처럼 납작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관음송인들 풍진 세파를 피할 길 있었으랴만, 하늘 괸 기둥처럼 그저 헌칠하고 묵연하다. 둥치 곳곳에 땜질을 입은 건 비바람의 농간이 극심했다는 증명이겠지. 상처 없는 지속이 있는가. 장애 없는 활보가 가능하겠는가. 풍상이 곧 비결임을 암시하는, 저 향기로운 노거수!
소년 하나가 숲길을 걸어간다. 관음송 가지 틈새 턱에 걸터앉는구나. 누군가? 나어린 임금 단종(端宗)이다. 단종은 여기 청령포 숲에서 유배를 살다가 사약을 받았다. 정적(政敵)이 정적을 부리로 찍고 발톱으로 찢어발겨 피 묻은 권력을 틀어쥐는 게 인간세의 생리. 단종은 악마와 협약을 맺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탈취당했다. 1452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으나, 3년 만인 1455년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장악한 숙부에게 왕위를 넘기고 형식상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듬해 6월,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 음모가 발각되면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야사는 전한다. 소년 유배객 단종이 저 관음송 가지 턱에 자주 걸터앉아 궁궐을 그리워했다고. 명민한 준재였다 하니 사념이 깊었을 게다. 슬픔이 북받치면 소나무를 붙들고 울고 바위를 치면서 울었을 게다. 강물 가에 웅크려 소쩍새처럼 흐느껴 울었을 게다. 울었던 건 단종만이 아니었다지. 충신들이 문안을 왔다가 핏줄이 떨리게 울었다. 고을의 백성들이 서강 저편에서 절을 하며 울었다.
청령포 솔숲이 비경이라지만, 여기에 서린 서러운 역사란 꿈자리 어지러운 구렁텅이와 다를 바 없다. 청령포 물가에 놀빛 잠긴다. 붉은 해는 반드시 서쪽으로 지는데, 어린 유배객의 혼령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탐방 Tip
영월군 남면 광천리 서강변에 있다. 소나무 숲속 곳곳에 단종의 유적이 있다. 단종 어소(御所), 영조의 친필을 음각한 비(碑), 금표비, 왕방연 시조비 등등. 인근에 있는 장릉과 관풍헌도 단종 유적이니 연계 답사한다. 청령포 관람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주차장과 배편은 무료.
숲으로 가는 산언저리마다 눈부시다. 밭두렁에 애기똥풀 흐드러져 숫제 샛노란 화단이다. 다랑논 이고 있는 석축에 어린 그늘이 푸르도록 짙은 건, 5월 한낮의 봄 햇살이 밝아서다. 민들레는 수과(瘦果)를 매단 채, 건듯 부는 미풍에 갓털을 휘날린다. 진초록으로 이미 농익은 초목 잎사귀들. 산야에 뿌리박은 식물마다 의기양양하다. 길로 나다니는 사람만이 계절을 타 들썩인다.
개심사(開心寺) 일주문을 지나자, 일변 눈으로 가득 차오르는 소나무들. 고찰(古刹)치고 들머리 풍광 허술한 곳이 드물다. 개심사 숲길도 기중 반열에 든다. 솔숲에 불그레한 빛살이 어린다. 적송(赤松)들이어서다. 미끈한 붉은 살갗에 건강한 지체, 게다가 저마다 미묘하게 굽어 허리를 요리저리 비트니 수려하다 못해 관능적이다. 흐뭇하면 안고 싶고, 심취하면 안기고 싶어진다.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굽고 휜 소나무는 내심 안도할 게다. 쭉쭉 곧게 자란 나무들보다 더 온전하게 수명을 누릴 수 있으니까. 목수의 도끼날을 피할 수 있어서다. 목재로서는 별 쓸모가 없게 생긴 덕분이다. 목수의 눈엔 무용지물이지만 소나무 입장에선 천행이다. 그게 나무만의 일이랴. 우리네 인생사에도 자주 적용되는, 일종의 이치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에 실린 메시지를 생각해보라.
물매진 들머리 숲길, 그 이후로는 돌계단길이 가지런하다. 여기서도 소나무들의 전시회가 성황리에 펼쳐진다. 나무들의 청신한 향이 그윽하게 번진다. 개심사 전각들 지붕마다 초록이 서린다. 초록 숲 안의 산사여서다.
뜰에 걸린 연등들로 경내가 환하다. 그러고 보니 얼마 뒤면 석탄일이다. 숨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꿈꾸지 않으면 오를 수 없다. 그리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연등공양이란 부처를 숨 쉬고 꿈꾸고 그리는 일이겠지.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고, 그리해서 나를 찾아가는 기도일 게다.
천년도량의 위세에 걸맞게 개심사 전각들은 방정하거나 준수하다. 혹은 허심히 잘 늙은 고로(古老)처럼 고졸하다. 전각 속엔 나무가 박혀 있다. 휜 채로, 비틀어진 채로, 그러니까 굽은 원목 그대로를 베어 말려 기둥을 삼고 들보로 채택했다. 주야로 법당의 향훈을 취할 저 고색창연한 재목들. 남벌 탓에 곧은 목재를 구할 수 없어 굽은 나무를 그냥 그대로 썼을까? 쓸모없어 보였을 나무가 쓸모 있게 쓰였다. 거룩한 불상과 동거하며, 더 온전히 살아남았다. ‘곡즉전(曲則全)’이라, ‘굽어서(曲) 온전할(全) 수 있다’는 묘리를 전갈한 이는 노자였다.
개심사는 실로 수목의 향연장이다. 그 친숙한 명성으로 한 벼슬 걸친 거목들의 장원이다. 소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 전나무, 서어나무, 왕벚나무…. 국내엔 이곳에만 있다는 청벚나무에선, 시나브로 봄이 가건만 여전히 끝물 꽃잎들 분분히 낙화한다.
개심사를 벗어나 다시 숲길을 오른다. 낙락장송 휘늘어진 숲 사이로 구불구불 길이 이어진다. 키 작은 관목들. 곧게 뻗어 하늘 한 자락 움켜쥐는 활엽 교목들. 온갖 나무들이 빼곡 들어차 기세를 돋운다.
인간의 도시는 삼엄한 사각의 링을 닮았다. 나무들은 코피를 쏟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경쟁을 능사로 삼는 대신, 상호 의존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한다. 바위 벼랑에 위태롭게 매달린 소나무만 해도 그렇다. 곰팡이와 공생해 균근(菌根)을 만들고, 그 균근에서 발달한 팡이실로 바위 틈새의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인다. 이렇게 소나무는 공생과 상생, 인류의 그 오래된 이상(理想)을 소리 소문 없이 오롯이 구가한다.
숲길에 하오의 놀빛이 어린다. 폐사지 보원사지에 간신히 남은 석탑에도 황혼녘 주황물이 흥건하다. 간절한 탑돌이를 하며 합장 비손했을 옛사람들, 지금은 천상의 어느 푸른 공간에 머무시나. 옛사람들에겐 나무도 석탑과 매한가지였다. 성황당 신목(神木)에 의지해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을 천상에 탄원했다. 삶이, 영혼이, 견딜 수 없이 슬플 땐, 조용히 숲에 들어가 하늘을 우러렀다. 그래서 숲은 일쑤 정결한 지성소였다. 그들은 숲에서 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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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와 보원사지를 잇는 숲길은, 충남 내포 지역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내포문화숲길’ 코스들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구간이다. 개심사에서 보원사지까지는 약 2km 거리. 산마루를 넘자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유하지만 가파르지 않다. 보원사지에서 1.3km를 더 내려가면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을 만날 수 있다.
가봐야지 마음만 먹다가 하루는 인터넷을 열고 무조건 예약을 했다. 길동생태공원은 사전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입장할 수 있는 총 정원이 400명 이내다. 자연 생태계 보호를 위한 공원 규칙이다.
같은 서울이지만 길동생태공원은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거의 두 시간 만에 도착하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주변의 푸근함에 기분이 마구 좋아진다. 나지막하고 아늑한 울타리 너머엔 숲이 보인다. 탐방객 안내소에서 예약 확인을 마치고 들어서니 행복감이 차오른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나무 바닥이 초록으로 우거진 숲을 가르며 펼쳐진다. 나무의 부드러운 삐걱거림이 좋다. 흙을 밟으면서 보는 오솔길의 찔레꽃과 개망초가 예쁘다. 청량한 새소리를 이렇게 생생하게 듣다니 혼자서 흐뭇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말 반갑다.
걷다 보면 거미줄이 내 안경 앞에 걸려서 걷어내기도 하고 뭔지 모를 것이 나무에서 떨어져 옷에 붙기도 한다.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아끼듯 걷는다. 가끔 멧돼지가 출몰하니 주의하라는 안내문도 있다. 밀림의 한 귀퉁이처럼 작은 숲길을 지나 원시림의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숲의 고요가 짜릿한 위안을 준다.
웅덩이와 습지를 지나면서 인위적 손길이 덜 타게 하느라 애쓴 흔적을 곳곳에서 느낀다. 습지 지구에서 자라는 곤충이나 식물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곳, 우리의 농촌 마을에서 볼 수 있는 텃밭 채소와 움집 등의 풍경이 어색하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땅의 환경조건에 맞는 꽃이나 토양생물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자연 상태로 그대로 둔 것을 볼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내버려 둔 듯 수더분하게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각종 새와 저수지의 물고기와 생태계의 고리를 위한 연결도 배려했다. 또한, 동식물들을 보호하면서 시민들이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생물들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우리에게도 그 중요성을 알게 하는 조화로움을 가꾸는 숲이다. 잘 보존된 자연이 수수하면서도 마음을 풍부하게 해준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 숲의 신비로움을 마음껏 누려본다. 시민들에게 건강한 생태공간을 제공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곳이다.
나 혼자만 알고 싶은 곳, 심신의 위로가 필요하고 내게 고요한 시간이 절실할 때 조용히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숲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길동생태공원은 싱그럽게 짙어가는 녹음으로 여름을 맞고 있었다.
도보여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면, 지방마다 조성된 걷기 코스까지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황안나 도보여행가가 추천하는 지방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코스 추천 및 사진 제공 도보여행가 황안나
◇ 도보여행가 황안나의 지방 걷기 코스 추천 코멘트
경기도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팔당나루터, 소재나루를 보면서 운길산까지 걷는 ‘한강나루길’(1코스) 구간을 가장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 길이 평탄해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고, 강가와 호숫가를 둘러싼 경치가 으뜸이다. 걷다 보면 중앙선 옛 철로가 나오는데, 어릴 적 추억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다산 생가 부근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피어 절경을 이룬다.”
충청도 태안 해변길 “태안 해변길 하면 ‘노을길’(5코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꽃지해변이 나오는데, 시간을 잘 맞춰 일몰 때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해안을 물들이는 석양이 장관을 이뤄 셔터만 누르면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홀로 걷다 보면 해 질 무렵에 이따금 마음이 쓸쓸해지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정취와 아름다운 노을이 버무려져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전라도 변산반도 마실길“새만금을 따라 방조제를 걷는 코스로는 넉넉잡아 8~9시간 정도 걸린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내소사를 탐방하고, 광활한 갯벌을 바라보며 곰소항까지 거닐어도 좋다. 곰소 젓갈 축제가 열리는 때에 맞춰 방문해 행사도 즐기고, 곰소젓갈시장에 들러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다. 곰소항, 격포항 인근 맛집이 많아 식도락 도보여행가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강원도 강릉 바우길“바우길 하면 선명하게 겨울의 끝자락 하얗게 눈이 쌓인 선자령 풍차길에 피어 있던 노란 복수초가 생각난다. 머리에 덮인 차디찬 눈을 털어내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여린 꽃망울이 어찌나 아름답고 또 기특한지. 복수초 외에도 사시사철 피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기 위해 이 길을 걷는 여행가가 많다.”
경상도 상주 MRF 이야기길“낙동강 줄기를 끼고 걸을 수 있는 ‘낙동강길’(1코스)의 끝자락 경천교 인근에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자전거 조형물을 구경한 뒤 자전거를 빌려 즐길 수 있다. 개인적인 추억이지만, 이곳을 걸으며 아이들이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보물처럼 다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손주나 자녀와 함께 가도 좋겠다.”
부산 부산 갈맷길 “갈맷길의 백미는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이기대’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이 가까워 관광 삼아 거닐어도 좋은 길이다. KTX를 타고 당일치기 도보여행으로 즐겨도 손색없다. 드넓은 바다와 기이한 암석, 귀여운 쑥부쟁이, 울창한 소나무 숲 등 걷는 내내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경상도-전라도 지리산 둘레길 “발걸음이 닿는 길마다 맛 좋은 음식과 넉넉한 인심이 넘쳐난다. 어느 가을날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마침 수확한 감을 나눠주시며 정겹게 말을 건네시던 기억이 난다. 특히 5일장 등이 서는 날 맞춰 가면 이곳만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 태안 해변길
서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갯벌과 사구 등 해안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자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전망이 뛰어나고 걷기 좋은 해변길이 7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 백미는 5코스인 안면도 노을길이다. 안면도 초입에 자리한 백사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노을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멋진 해안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여기에 서해안 3대 낙조로 꼽는 꽃지해변 노을길은 도보여행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 변산반도 마실길
아름다운 해변과 포구가 있고 유서 깊은 절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변산반도는 숱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 그윽한 아름다움이 깃든 내소사, 맛깔스러운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등이 주요 명소다. 이 모든 곳을 아우르는 코스가 바로 ‘변산 마실길’이다. 1~8코스 66km와 해안누리길 18km로 나뉜다. ‘바다와 대화하고, 갯벌과 벗하며 마실간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 길을 걸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단, 썰물 때는 해안이 길게 드러나 길이 생기지만, 밀물 때는 바닷물이 해안으로 들어와 길이 없어지거나 걷기 어려워지므로 시간에 유의해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 상주 MRF 이야기길
곶감의 고장 상주에는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산(Mountain), 강(River), 들(Field)을 뜻하는 걷기 좋은 ‘MRF 이야기길’이 있다. MRF란 산길, 강길, 들길을 걷거나 달리는 신종 레포츠를 뜻하기도 하는데, 원점 회귀가 가능하면서 낮은 산길(해발 200~300m) 구간이라야 한다. 총 13개 코스로,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제1코스 낙동강길이다. 비봉산을 거쳐 경천대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청룡사와 자전거 박물관, 상도 드라마 세트장 등 볼거리가 많다.
◇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북한강, 국립수목원, 운길산, 축령산 등 남양주시의 둘레길을 통틀어 말한다. 코스를 모두 합한 거리는 170km 남짓, 총 14개 코스로 저마다 볼거리와 분위기가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길은 1코스인 한강 나루길과 2코스인 다산길, 3코스인 새소리 명당길이 겹쳐진 팔당역~능내역~운길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길을 다산길의 으뜸으로 꼽는 것은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걷다가 옛 기찻길을 걷는 낭만도 있고, 무엇보다 그 중심에 다산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산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 강릉 바우길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맥과 바다를 함께 걷는 총연장 약 400km의 장거리 코스다. 강릉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바우길, 계곡마우길, 아리바우길로 이뤄져 있다. 강원도의 자랑인 금강소나무 숲이 70% 이상 펼쳐져 있는 바우길의 매력은 트레킹과 삼림욕을 동시에 즐긴다는 데 있다. 도보여행에 자신 있는 이라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울트라바우길’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4박 5일 동안 총 72km를 걷는 코스로, 고난도 트레킹과 야영이 혼합된 바우길 특별 구간이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등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95km의 장거리 코스다. 구간 대부분이 중·상급 난이도로 도보여행 초보자가 걷기에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2004년 ‘생명 평화’를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이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매년 5월 약 보름 동안 참가자를 모집해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이음단’을 창단하고, 다양한 걷기 축제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부산 갈맷길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갈매기의 길’이란 의미를 지닌다. 총 9개 코스로, 길이는 268.8km다. 이 코스를 다 걸으면 부산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갈맷길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부산 해변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제2코스다. 특히 바다와 기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이기대’를 품은 2-2코스는 해안 산책로의 백미 구간으로 도보여행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갈맷길을 걸으며 구간별 시작점, 중간점, 종점에 마련된 인증대 38개소에서 도보인증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주인증 및 기념품 수령이 가능하다.
>>황안나 도보여행가
국토종단 800km, 국내해안일주 4200km, 24시간 울트라 걷기 등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을 65세 이후 이뤄냈다.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네팔, 홍콩, 부탄, 아이슬란드 등 세계 50개국 걷기코스를 섭렵하며 도보여행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봄꽃에 설레어 마음에도 꽃물 번진다. 처처에 흐드러진 벚꽃은 절정을 넘어섰다. 꽃잎마다 흩어져 비처럼 내린다. 만개보다 황홀하게 아롱지는, 저 눈부신 낙화! 남도의 끝자락 완도 땅으로 내려가는 내내 벚나무 꽃비에 가슴이 아렸다.
한나절을 달려 내려간 길 끝엔 완도수목원. 칠칠한 나무들, 울울한 숲이 여기에 있다. 사철 푸른 야생의 수해(樹海)다. 천연의 상록 난대림이 산자락을 뒤덮었다.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완도호랑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녹나무 등 770여 종의 난대성 목·초본과 희귀식물이 자생한다. 환호할 만한 종 다양성과 놀랄 만한 광활한 규모를 과시하며 씨억씨억 거센 숨을 쉬는 삼림이다.
산길로 들어서 초록 숲에 풍덩 빠진다. 숲길을 노니는 발걸음은 노루처럼 가뿐하다. 잡다한 소음과 미세먼지가 들끓는 도시에서의 보행과는 다르다. 인위와 허영이 난무하는 도회의 거리는 개운한 활보를 허용하지 않는다. 고뇌에 사로잡힌 카프카처럼 도시에서 사람들은 흔히 소심한 행보를 하지 않던가. 숲에서는 다르다. 깊은 근원으로 침잠한 숲 사이로 뻗은 오솔길이 발길을 보듬어 유유한 지경으로 인도한다. 숲길을 걷기란 그래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탈출처럼 자유롭다.
이럴 때 의식은 자명종처럼 깨어나고 오감이 열린다. 온몸으로 말을 걸어오는 숲의 언어에 귀가 민감해진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와 숲속의 공인된 가수인 산새들의 악곡이 귓속으로 스민다. 이것들은 숲과의 협연의 산물이다.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역시 순간적으로 숲의 식솔이 된다. 물속 같은 적막이나 사무치는 고요마저 숲의 언어다. 이 묵묵한 숲의 좌정 앞에서 번잡한 혀처럼 날름거리던 욕망이 비로소 순해진다. 숲길을 가만히 걷는 일은 그래서 오롯한 순례다. 내밀하게 전개되는, 조촐하되 순수한 향연이다.
완도수목원의 무진장한 상록 숲은 한때 황무지에 가까웠다. 지난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벌과 도벌로 헐벗기어 황량했다. 재질이 조밀해 숯 재료로 널리 알려졌던 붉가시나무와 동백나무 군락은 한결 자심한 수난을 당했다. 수목원 곳곳에 발달한 ‘맹아림(萌芽林)’은 당시의 벌채가 남긴 상흔이자 재생의 현장이다. 맹아림? 밑동이 잘려나간 그루터기에서 새로 돋은 움싹들이 자라난, 여럿의 줄기로 이루어진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을 말한다. 생존의 고역은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무와 숲도 때로 부당하게 찢기고 스러진다만, 불굴의 인간처럼 용을 써 기어이 회생한다.
숲길에 상큼한 향이 감돈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렷다. 피톤치드는 갖가지 균(菌)들의 내침으로 야기된 상처나 고난을 다스리기 위해 나무가 분비하는 휘발성 물질이다. 아픈 나무가 풍기는 향기, 우리는 그 피톤치드를 마시고 심신을 치유한다. 사람이 나무의 숨을 마시고, 나무가 사람의 숨을 마셔 서로 재미를 본다면 그건 공정거래이겠지.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주기만 하고 받는 게 없음에도 마냥 태연한 게 숲의 천성이다. 나무도 숲도, 사람과 멀면 멀수록 안전하고 온전하다. 사람의 속세는 아수라장. 나무들의 마을, 숲 안의 생명들만 격의 없이 어울려 자애롭다.
근원을 헤아리자면 나무와 사람은 다를 게 없다. 나무의 몸에 흐르는 수액과 사람의 혈관을 달리는 피가 서로 무엇으로 다르단 말인가. 나무를 남으로 알았던 시절엔 꽃이 피건, 무참히 낙엽 지건, 폭설에 가지가 우두둑 부러지건, 사시사철 보기에 좋았다. 나무가 남이 아님을 알고 난 뒤로는 꽃 피우는 진통에, 낙엽 떨구는 우수에, 겨울나기의 고역에 한결 마음이 쓰였다.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나무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무들의 도가니를, 숲길을, 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행위란, 그렇기에 가상한 명상이자 성찰에 가깝다.
완도 앞바다를 건너온 바람일까. 하오의 숲은 세찬 바람을 품으며 한껏 부풀어 오른다. 등을 미는 바람 따라 들어선 ‘푸른 까끔길’은 어둑한 숲길이다. 기차게 무성한 동백나무 군락이 하늘을 가려서. 태초 이전처럼 심원한 적막에 휩싸인 동백 숲은 그러나 밝다. 순결한 몸을 붉게 연 동백꽃들이 초롱처럼 환해서다. 매달린 꽃도, 통째 떨어져 뒹구는 꽃도 성(聖)의 이미지로 다가와 내 안의 진흙탕을 헹군다. 향화(香火) 아니면 촛불 보살이다, 저 4월의 동백꽃!
탐방 Tip
완도수목원은 2000여 ha(약 600만 평)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난대림 자생지로 공립수목원이다. 숲길의 총길이는 약 94km. 한나절을 머물며 숲길 걷기와 삼림욕을 즐기기에 적격이다. 산림전시관, 아열대온실, 방향식물원, 수생식물원 탐방도 즐겁다. 개원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탁 트인 전망과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무의바다누리길’ 걷기는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코스로 환영받고 있다. 인천시 중구에 위치해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고 대중교통 이용이 용이하며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시니어에게는 무리가 되지 않는 길이어서 더욱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된다. 공항철도는 모든 역에 정차하는 일반열차와 서울역~인천공항역을 논스톱으로 운행하는 1인 좌석제의 직통열차가 있다. 공항철도를 이용해 인천공항역에 도착하면 용유역까지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자기부상열차는 인천공항역~용유역을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15분 간격으로 무료로 운행하는 열차다. 승용차로 갈 경우에는 배에 승용차를 실을 수 있어 무의도 광명항까지 곧장 갈 수 있다.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무의도행 뱃삯은 성인 1인 왕복 기준 3800원이다. 승용차 승선요금은 한 대당 2만 원이이다.
잠진도에서 배를 타면 무의도까지 약 5분 정도 걸린다. 배 주변으로 날아드는 갈매기 떼에 새우깡을 던져주다 보면 어느새 무의도에 도착한다. 배 도착 시간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언덕길을 15분 정도 달리면 소무의도가 바라보이는 광명항에 닿는다. 소무의도 옛 이름은 ‘떼무리섬’. 무의도에서 따로 떨어져나간 작은 섬이란 뜻이다.
소무의도는 면적 1.22㎢, 해안선 길이 2.5㎞의 섬으로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舞衣島)라 불린다. 과거에 어부들이 짙은 안개를 뚫고 근처를 지나가다 이 섬을 바라보면, 섬이 마치 말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면서 달리는 모습 같기도 하고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무의도가 ‘떼무리섬’으로 불린 것은 조선 말기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기록되어 있다.
소무의도 여행은 무의도와 연결된 414m의 ‘소무의 인도교’ 앞에서 시작된다. 이곳이 2.5km, 1시간 코스의 둘레길 ‘무의바다누리길’ 출발점이다. 둘레길은 총 8개 구간으로 나눠 소무의도 8경을 스토리텔링화해놓았다.
섬에 들어서면 동편마을 쪽으로 갈 것을 추천한다. 바로 앞 가파른 계단길을 하산 코스로 잡아 전망을 즐기며 내려오는 것이 좋다. 작은 섬이지만 둘레길을 따라 마을길, 숲길, 벼랑길, 밭길, 해변길, 깔딱고개길 등 다양한 길들이 있다. 이 길들을 걸으면 스치는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번잡한 상념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특히 몽여해변길에서 동촌마을과 등을 맞대고 있는 서촌마을 앞 작은 해변이 정겹다.
몽여해변길은 쌍여로 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목여가 변해 몽여라 불렸다 한다. 쌍여란 물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윗돌이라는 의미의 순수 우리말로 바닷물이 빠지면 두 개의 바윗돌이 드러난다 한다. 또 안개가 낀 날 섬으로 쳐들어오던 왜구들이 거구의 장군으로 착각해 도망을 치게 했다는 장군바위가 명물이다. 전복을 따던 옛날 해녀들이 휴식을 취하던 섬이라 해서 해녀섬(해리도)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은 소무의도 남쪽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바다를 조망하며 계단길과 숲길을 걸어 섬에서 가장 높은 안산전망대 하도정에 오르면 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반겨준다. 쉬엄쉬엄 올라 산과 바다를 둘러볼 수 있는 무의바다누리길 트레킹은 시니어가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북촌 8경길, 여의도생태순환길, 서리풀공원길 등 서울 시내에 산책 삼아, 운동 삼아 걷기 좋은 길들이 많아졌다. 그중 어디를 걸어도 좋지만, 원하는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코스라면 더욱 환영이다. 서울 곳곳 50가지 걷기 코스의 지도, 소요 시간, 여행 정보 등을 비롯해 길의 역사와 문화 정보까지 알차게 담은 ‘서울 산책길 50’을 책방에서 만나봤다.
참고 도서 ‘서울 산책길 50’ 최미선·신석교 저, 넥서스BOOKS
5가지 테마로 떠나는 걷기 여행
야트막한 산자락 숲길, 도시와 숲을 잇는 공원&숲길, 물길 따라 걷는 한강&천변길, 재미있는 골목길, 걸으며 배우는 역사문화길 등 5가지 테마로 나눠 50가지 길을 소개한다. 굳이 첫 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읽지 않고, 목차를 펼쳐 익숙한 길이나 궁금했던 길부터 찾아봐도 괜찮다. 또는 책을 후루룩 훑어보며 마음에 드는 곳부터 읽어도 좋다. 가방에 넣어 다니기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125×205mm)로 평상시 이곳저곳 걸으며 활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 표지 양 날개를 펼치면 앞장에는 서울시 지도가, 뒷장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나와 서울 주요 걷기 코스의 위치와 교통편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걷기 코스 정보와 약도를 한눈에
책에서 각각의 걷기 코스를 소개하는 첫 장에는 코스의 이름과 길에 대한 역사와 문화 정보, 대표 사진이 실려 있다. 바로 옆 장에는 걷는 데 꼭 필요한 이정표를 중심으로 전체 코스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시한 약도가 나온다. 그 아래 걷는 거리(km)와 소요 시간, 출발점을 상세하게 적어 걷기 전 미리 시간과 거리 파악이 가능하다. 더불어 길 주변 맛집과 그밖에 정보, 참고 사항 등을 친절하게 담았다. 이 두 페이지에 담긴 정보만으로도 코스의 풍경과 진행 방향, 난이도, 특징 등을 가늠할 수 있다.
구간마다 거리와 사진을 알차게
출발 지점부터 목표 지점까지 코스를 세분화해 각각 이정표로 구분하고, 순서대로 번호를 달았다. 이정표와 이정표 사이 거리를 미터(m) 단위로 표시해 길을 걸으며 쉬는 구간이나 중간 목표 지점을 계획성 있게 짤 수 있다. 이정표마다 정보 글과 함께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 풍경 사진을 넣어 코스를 헤매지 않도록 돕는다. 그밖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적에 대한 설명과 이용 방법, 요금 등을 담아 도보여행을 하는 데 더욱 유익하고 편리하다.
책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즐거움
#plus 1
책 속의 맛집 ‘남산공원 둘레길’은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출발해 명동역까지 총 8.2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 N서울타워를 중심으로 남산 자락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둘레길을 빠져나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부터 명동역까지 이어진 만화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로 향하기 약 400m 전 산채비빔밥과 전통차를 즐길 수 있는 ‘목멱산방’이 나온다. 코스 거리와 시간을 조절해 식사 때에 맞춰 방문해보면 좋겠다.
#plus 2
책 속의 영화 ‘홍제동 개미마을’은 6·25전쟁 이후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1980년대, 개미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골목마다 그려진 알록달록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등장한 벽화를 찾아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plus 3
책 속의 미술관 석촌호수 산책로는 봄이면 화사한 벚꽃과 철쭉이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석촌호수 꽃길을 걷다가 곰말다리를 지나 몽촌토성길을 향하다 보면 올림픽공원 내 자리 잡은 소마미술관을 발견할 수 있다. 43만 평에 이르는 드넓은 녹지와 어우러진 소마미술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다듬어지지 않은 목재를 이용해 자연친화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봄꽃이 만발하는 4월에는 ‘작가 재조명 展-황창배, 유쾌한 창작의 장막’을 관람할 수 있다(5월 20일까지, 회화·드로잉·영상 등 200여 점 전시).
요즘은 훌쩍 여행을 떠나면서 그곳에 걷기 좋은 길이 있는지 먼저 살핀다. 멋진 풍광과 맛난 먹거리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걸으면서 힐링이 되는 여행지를 너도나도 챙기는 추세다.
흐르는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 속에 파묻혀볼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육지 안에 있는 아름다운 섬마을 경북 예천의 회룡포(回龍浦) 길은 손 타지 않은 수수함이 매력이다. 이 길을 걸으면 자연에 푹 안기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혹시 액티비티한 놀이를 즐기는 분이라면 근처의 문경에 잠깐 들러 짚라인(zipline)을 타보는 것도 좋다. 공중으로 신나게 미끄러져가는 짚라인을 체험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추천한다. 아울러 문경 예천의 유명한 순대국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산에 오르면 배도 든든하다.
회룡포는 예천에 속하는 아늑한 섬마을이다. 낙동강 지류로 강이 돌아나가는 지형이 마치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한적한 고찰 장안사 뒤편으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느릿느릿 숲길을 걷다 보면 드디어 회룡포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고, 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물길이 마을을 감싸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KBS2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멀리 마을을 이어주는 뿅뿅다리도 길게 보인다. 다리를 건널 때 발판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KBS2 프로그램 ‘1박 2일’ 촬영으로 더 유명해진 다리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도 아름답다. 특히 물안개 낀 날은 몽환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어지는 숲길은 4~5Km의 트레킹 코스다. 가을날 수북하게 쌓인 낙엽을 푹푹 밟으며 걸으면 세속의 걱정거리들이 다 사라진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어느덧 그 산을 벗어나 비룡교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다리 중간 전망대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상쾌한 공기를 원 없이 들이마신다. 다리 아래 넓은 갈대밭도 풍성하게 반짝인다. 얕고 푸른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강둑을 걸으면 어느새 삼강주막이다.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주막이라 하여 유지 보존하고 있는 곳인데 1900년경에 생겨 2006년 주모 유옥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영업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지자체의 노력으로 각종 축제를 열어 오래전의 우리네 삶의 한 풍경을 지켜내고 있다.
낙동강 나루터를 건너온 보부상들이나 과거를 보러 가던 유생들이 주막에 걸터앉아 막걸리 한 잔 마시는 풍경을 혼자서 그려본다. 그리고 양은 주전자 기울여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며 배추전과 도토리묵으로 회룡포의 바람 속을 걸어온 몸을 달래본다. 행복한 여행의 마무리다.
짚라인
경상북도 문경시 불정동 336-3 불정자연휴양림(1588-5219)
www.ziplinemungyeong.co.kr
용궁단골식당(용궁순대, 오징어불고기)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읍부리 299-2 (054-653-6126)
회룡포 숲길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장안사 주차장(0.5km)→회룡포전망대(0.7km)→용포마을(0.5km)→사림재(1km)→비룡교(1.2km)→삼강주막(1km))
삼강주막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27 (054-650-6395)
얼마 전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습지를 돌아보고 왔다. 다녀온 후 내내 우리 인간들이 움직이기만 해도 자연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무분별하게 파헤치는 것을 하루빨리 멈추고 녹지를 살려야만 야생 동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온 날이었다.
전북 고창엘 가면 운곡습지가 있다. 이곳은 농민들이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시골마을이었는데 1980년대에 영광원자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냉각용수 공급을 위해 9개 마을 주민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운곡저수지를 건설했고 그 후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접근 없이 방치되었다. 이때 생태계가 스스로 복원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이 되었고 2013년에는 고창군 행정구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 되었다.
운곡습지에 들기 전에 고인돌 분포지역을 만난다. 산아래 벌판에 군집을 이룬 각종 형식의 고인돌이 1600여 개다. 그중에 422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계속 연결되는 오베이골 탐방로를 따라 운곡습지를 향해 출발한다. 외부의 생태교란 외래종 식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발 털이개에 발을 털고 들어가면서 문득 마음이 경건해 지기까지 한다. 이제부터 자연 그대로 비포장도로다. 그리고 숲에 들면서 수변을 관찰할 수 있는 데크가 길게 나타나는데 환경을 덜 훼손하려고 좁게 조성되었다고 한다.
습지관리센터까지 4.6Km의 데크를 걸어가면서 운곡 습지에서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남한의 DMZ라 불릴 정도로 멸종위기의 수달이나 삵, 구렁이, 담비와 같은 864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숲소리가 운치 있다. 철따라 가시연꽃이나 구절초와 노랗고 자줏빛의 꽃들과 새소리 물소리를 만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숲길에서 길을 잃을까 두려움조차 들 정도로 밀림을 방불케 한다. 밀림 영화 속 한 장면이 튀어나올듯한 풍경이다. 65만 평에 달하는 산지형 습지에 도무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뒤엉킨 나무와 풀들이 제멋대로 자연스럽다. 저 앞에 좀머 씨처럼 끝없이 혼자서 걸어가는 누군가의 뒷모습도 있다. 길 옆으로 시원스러운 저수지 위로 새들의 군무를 볼 수도 있다. 탐조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자연 그대로의 산세 덕분인지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데도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요즘 걷기 코스로 흔히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찾아간다. 이렇게 태고의 숲처럼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길을 걸어본다면 감동이 달라질 것이다. 밀림 속에 파묻혀 힐링을 체험하는 순간이 된다. 마음을 나눌 사람과 두런두런 걸어도 좋고 좀머 씨처럼 혼자서 걷고 또 걸어도 좋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