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원(崔信源·62) SKC 그룹 회장은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꾸준하게 실천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는 ‘을지로 최신원’이라는 이름으로 기부 활동을 펼쳤으며 사랑의 열매에서 운영하는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그가 속해 있는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그가 낸 기부금으로 ‘Choi´s happy fund’를 조성하여 저소득 가정에게 연탄을 배달했고 세월호 피해 지원 사업을 전개했으며, 세계화에 따라 부각 중인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노인이 되길 거부하는 어른, 최신원 SKC 회장의 철학에서 발견해 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2014년 12월 3일,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을 위해 SK텔레시스에서 만난 최신원 회장에게선 특유의 소탈함과 다정다감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봉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최 회장에게 기부에 대한 남다른 이유가 있는지를 물어 봤을 때 나온 대답에서, 그 자연스러움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의 기부와 나눔 습관은 언제나 말했듯이 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에게서 자연스레 배워 온 것으로 저희 집안은 나눔과 기부의 DNA가 가족력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삶의 덕목이 사회적 가치 향해야
자신의 행동을 ‘태생적’인 것이라고 밝히는 최 회장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대표 기업인으로서 삶의 덕목이 사회적 가치에 닿아 있음을 밝혔다. 그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책임감과 그를 바탕으로 한 나눔 정신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말한다.
“기업이라는 곳도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얻어진 자원을 나누는 대상도 사람입니다. 물론 나눔의 대상이 자연과 환경, 동물과 식물이 될 수도 있지만, 여전히 그것도 사람과 연관이 있습니다. 더불어 애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연령과 성별, 장애와 비장애, 인종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사람을 존중하는 정신과 삶의 태도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닐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이며 추구해야 하는 삶의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 회장은 또한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삶의 덕목으로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그렇기에 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낮은 곳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결과를 이루었을 때 오히려 우리 자신들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해 주는 좋은 영향이 된다고 생각하구요.”
받는 이의 입장을 고민하는 기부자의 진정성
최 회장은 수년째 회사 임직원들과 함께 기업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여주나 파주 등으로 김장이나 연탄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직원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고 종료하는데 그래서 직원들이 본의 아니게 힘들어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그가 ‘요식행위’로서의 기부를 분명히 거부한다는 뜻도 된다.
“제가 이번에 여주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면서 허물어져 가는 집안 내부, 쓰레기가 나뒹구는 마당 등 연탄 지원 외에도 우리가 나눔을 실천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연탄 나르기와 더불어 수혜 가정들의 주거 환경 개선활동도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실 김장 담그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단순히 단가를 낮춰 양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내산 좋은 재료들로 만들어진 김장을 나누는 것이 진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에 가격이 많이 올라가도 수량을 오히려 매년 늘리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가족들이 먹을 음식이란 생각을 가지고 재료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서는 그저 돈이나 물건만을 주는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는 기부자로서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작더라도 그 안에 얼마만큼 사랑과 정성이 깃들어 있는가가 중요하듯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라는 걸 최 회장은 실천해 보이고 있었다.
나눔을 통해 미래 공동체 지도자로 거듭날 베이비붐 세대
“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양손엔 아무것도 쥐지 않고 두 주먹만을 쥐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그 주먹 속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하고 또 마치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을 것처럼 물질적인 것들을 따라가곤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몸 외에 그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듯이 동시에 우리 주변의 것들은 항상 나눠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회장은 기부가 자신에게 있어 큰 의미의 취미라고 설명했다. 나눔과 봉사는 그에게 언제나 소중한 스승이 되어 왔고 자신을 나태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으며, 생각의 결핍증에 걸리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주변인들과의 나눔은 자신에게 행복 그 자체라는 최 회장은 그러한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베이비붐 세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나눔과 봉사는 많은 가치를 일깨워 줘
베이비붐 세대에 대한 최 회장의 고언은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머무르지 말고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 회장에게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었구나’라고 느낀 순간은 언제였을까?
“해병대를 제대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집안에 우환이 생겼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슬픔과 비탄에 잠겨 있었고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을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것 이다.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감정적으로 닥친 시련 앞에 지지 않으려는 저의 근성과 동시에 주변인들을 따뜻이 감싸줘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최 회장에게 자신의 어른다움의 발견은 책임감에 대한 각성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사회적 의미로도 확대됐다.
“제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줄 알고 주변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정신적 성숙을 의미했던 것 같습니다. 나눔과 봉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눔과 봉사는 우리가 사회 속에 속해 있는 사람으로서 세금을 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실행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최 회장은 매일 나눔과 봉사를 실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큰 의미이며 행복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나눔과 봉사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만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었다.
“나눔과 봉사가 있는 제 인생 설계 속에는 그것을 통해 얻은 사람들과의 인연, 가족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한 그룹의 맏이로서의 리더십의 중요성이 함께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게 나눔과 봉사는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매개체인 동시에 제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더욱 크고 넓게 그려 나가야 하는 그림입니다.”
스스로 얻은 용기가 삶의 희망이 되는 법
“사람들이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종종 현인들이 그들에게 해 주는 조언으로는 ‘작은 일이라도 남을 행복하게 하라’, ‘남을 위한 일을 찾아서 하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왜 지금 당장 내가 힘이 들고 괴로운데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라고 할까요? 그것은 나눔과 봉사를 한 후 정작 그 보답을 받는 사람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 자신들에게 행복과 알 수 없는 기분 좋음을 선사해 주는 것이 바로 남을 위한 나눔과 봉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회장은 그간 경기모금회와 선경최종건장학재단 등을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일에 노력해 왔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과정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깨달음을 나눔으로써 젊은 학생들과 패기만만한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더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최 회장의 삶 또한 모든 시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젊은 시절의 상처가 있었다. 그는 본래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아버지와 형을 먼저 떠나보내면서 일찍이 SKC그룹이라는 큰 나무를 책임져야 했던 데서 오는 중압감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나눔을 이야기하고 한 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 여러분과 대화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누고 봉사하는 제 자신으로부터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기부는 더 이상 특권층만의 소유적인 행위가 아닌 우리 모두가 쉽게 실천할 수 있고 가장 빨리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서점은 독서 인구의 감소와 온라인 서점, 전자책 출판 등으로 중소형 서점은 거의 고사 직전이다. 그래서 불황이 아니라 공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역시 1979년도에 4092개 출판사가 등록, 1997년도에는 최고 4612개사를 기록했다. 바로 이무렵부터 출판 불황이 시작돼 해마다 감소하더니 지난 2008년 3979개사로 30년만에 3000개로 줄어든 바 있다.
일본의 서점 수는 1999년 2만2296개가 있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1만4241개를 기록해 15년 동안 8천 개 이상의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
일본 전국 91개 기업의 497개 점포를 대상으로 경영데이타를 수집해 분석한 2014년판 ‘서점경영지표’에 빠르면 점포 전체 판매고는 전년도에 비해 2.8% 줄어들어 17년 연속 감소 추세를 기록해 출판 불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출판계 침체와 서점 불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없는 것일까? 그 작은 힌트를 출판시장의 전쟁터이자 최전방인 서점 현장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감성을 판다, 발견하고 즐기는 재미
독서는 습관이라 한 번 떠난 독자는 돌아오지 않듯이 도서구매 역시 습관이기에 한 번 발길이 뜸해진 독자가 다시 서점을 찾기 힘든 법이다. 온라인에서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저렴한 전자책을 클릭해 읽는 ‘독서’는 ‘행위’일 뿐 ‘행동’이 아니다. 서점을 방문해 책 향기 속에서 직접 만지고 자신이 원하는 책과 만나 지갑을 열고 고생해 번 돈을 꺼내 지불하는 일련의 과정은 책 속에 담긴 지식과 정보 이상의 값진 경험인 것이다.
먼저 ‘놀 수 있는 책방’을 내걸고 1986년 나고야 1호점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 422개 점포를 갖고 있는 복합형 서점 ‘빌리지 방갈로(Village Vanguard)’ (www.village-v.co.jp)를 주목하고 싶다. 마치 서점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물찾기를 연상하게 만드는 각종 서적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상품, 그리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가득 넘쳐나 이곳을 찾은 고객은 유원지에 놀러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일반 서점과 달리 신간과 잡지에 치중하지 않고, 각 부문의 담당자 판단으로 대형출판사 이외의 중소 출판사 서적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발견하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방갈로가 즐비한 마을을 찾아 창고 속에 잠들고 있는 보물들을 찾아내는 기분,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재충전할 수 있는 짧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CC)가 운영하는 전국 CD 및 DVD 대여점 쓰타야(TSUTAYA)와 쓰타야서점(?屋書店)에서 서적 및 잡지 등을 판매하는 ‘쓰타야 북스(TSUTAYA BOOKS)’다. 전국 696개 점포의 2012년 판매액이 1097억 엔을 기록해 초대형 서점 기노쿠니야서점을 누르고 연간 서적 판매고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701개 점포의 잡지와 도서 매출이 전년 대비 5.9% 증가한 1109억 엔을 기록하면서 연간 서적 판매고의 정상을 지켰다.
프리미어 에이지 50~60대를 노려라
지난 2012년 12월 5일 도쿄의 다이칸야마에 오픈한 쓰타야서점은 널직한 매장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독특한 컨셉트 등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CC)이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셀 수 없는 기획들의 총집대성이라고도 불리는 쓰타야서점은 총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숲 속의 도서관’을 내걸고 ‘프리미어 에이지’로 명명한 50~60대 시니어 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 세대의 기호에 맞춰 서점, 음반 및 영상 매장,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일반 서점에서 많이 판매되는 비즈니스, 처세술 등의 분야는 취급하지 않는 반면 인문, 자동차·바이크, 손목시계, 잡지, 아트, 건축, 디자인, 요리, 여행이라는 아홉 가지 테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즉 ‘프리미어 에이지’ 세대의 관심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서적은 물론 관련 상품과 예술품 전시까지 ‘문화’를 다루고 있으며, 심도 있는 기획이 빚어내는 문화의 향기를 맡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각 매장에는 안내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영화 코너 바로 옆에는 여행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트래블카운터까지 마련되어 있다.
현재 50~60대인 고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자 추억과 전문성을 내세우고 야심차게 선보인 쓰타야서점은 아날로그적 정서가 물씬 풍긴다.
또한, ‘없는 영화가 없다’를 내걸고 다양한 장르의 신작은 물론 국내외의 클래식한 작품 등을 골고루 갖춘 영상 매장이 있으며, 재즈 클래식 록 등 1960~80년대 음악에 주력한 음반 매장은 대여 12만 장, 판매 1만 장의 규모를 자랑한다.
북소믈리에로 불리는 각 테마별 매니저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설명해 준다. 특히 직접 손글씨로 친절하게 내용을 소개하는 안내문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영상 매장에는 5명의 매니저가 영화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신간을 소개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려는 배려와 노력이 돋보인다.
츠타야서점은 활기를 잃어가던 지역 문화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츠타야서점이 들어서기 이전에 1500명 내외였던 1일 통행 인구는 주말에만 3만 명 이상으로 급격히 늘었으며, 많은 외국인들과 관광객들도 일부러 이곳을 찾아 새로운 도쿄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일본 통신원│이태문
1999년 와 2000년 으로 데뷔. 에도 작품활동.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순 현가법, 가중평균자본비용, 복리계산과 실효금리…’.
칼바람이 부는 어느 이른 아침. 서울의 한 강의장에서 복잡한수식과 수치가 빼곡히 적힌 빔 프로젝트 화면(파워포인트)이 연신 돌아간다. 이는 대학교 경영학과 재무관리 전공강의가 아니라 IGM 세계경영연구원 창조클럽 조찬강의였다. ‘열공모드’에 돌입한 이들 가운데서도 맨 앞 헤드테이블에서 유독눈빛을 빛내며 필기 삼매경에 빠진 신중년이 눈에 띈다. 그가 바로 정해돈(丁海敦·64) 전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이자 성아테크 대표였다.
머리 맑은 아침 공부하기에 딱
정 대표는 자신이 미래지향적 사고방식이 강하다고 했다. 젊은 시절부터 봉급이 깎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이나 더 보람 있는 일을 찾아다니곤 했다. 공부하는 습관도 훗날 더 풍요롭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가 대학(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을 졸업하고 다수의 대학원 과정을 밟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서울대 경영대학원(국가정책과정)을 비롯해 서울대 환경대학원(고위정책과정),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최고경영자과정), 한국체육대(최고경영자과정) 등을 수료했다.
이런 그의 공부에대한 열정은 조찬회에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조찬회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창조클럽 조찬모임은 물론 로타리 클럽에서도 조찬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게다가 짬나는 시간에는 세계경영연구원 야간강의도 챙겨서 듣기도 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가 이렇듯 배움의 의지를불태우는 이유가 뭘까. 그는 꿈 실현과 업그레이드하는 삶에 답이 있다고 했다.
“사회 초년병 시절 봉급이 많은 회사를 다니다가도 ‘꿈을 이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직장을 옮기곤 했어요. 월급이 절반 이상 깎이더라도 말이지요. 고생이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몇 년사이에 봉급이 세배 이상 오르더라고요. 삶이 업그레이드된 셈이지요. 이런 미래지향적인 삶을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 확실하고 정확한 길이 있을까요.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지요.”
그는 특히 아침이 공부하기에 그만이라고 강조한다.
“아침에는 머리가 맑아요. 강의 내용이 귀에 쏙쏙 어오지요. 게다가 오후에 공부하려면 시간을 빼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고요.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지요. 성아테크 창업하고 나서 30여년 동안 오전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출근하는 습관이 들어 조찬 강의가 더 익숙하고 편해요.”
“혼자 공부하기 미안”…전 직원 인터넷 강의 개설
그는 창조클럽 조찬 강의에 혼자만 다니지 않는다. 회사임원 4명도 함께 창조클럽 조찬에 등록해 참여하도록 했다. 본인이 회사를 이끌고 대표하는 CEO이긴 하나 혼자만 공부하러 다니는 것이 왠 마음에 걸렸다고. 더 나아가 전 직원에게 GM 인터넷 강의도 개설해놨다. 100여 명이 넘는 전 직원들이 창조클럽 조찬 모든 강의를 인터넷으로 챙겨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강의를 보고, 안 보고 판단은 본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했어요. 공부라는 것이 생산제품을 만들어내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거든요. 지식은 머릿속에도, 마음속에도 쌓이는 것이지요. 좋은 강의가 있을 때는 회의 시작 직전에 동영상으로 같이 보기도 해요. 특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보니 갈등 관리나 조직 관계와 관련된 강의가 주류이지요.”
직원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에도 적극적이다. 야간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줄여주기도 하고, 일부 등록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대한설비건설협회 회장 시절에는 협회에 장학금 제도를 운영해 회원사 직원들에게 직접 학자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인문학 강좌에 푹 빠져…고정관념 깬 사업 아이디어 번뜩번뜩
그는 공대 출신이지만 요즘 오히려 인문학 강의에 푹 빠져 있다. 그는 답이 하나뿐인 공학 마인드와 달리 인문학은 뚜렷한 정답을 내놓지 않아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연장선에서 고정관념을 깰 수 있고, 생각을 바꿀 수 있어서 좋다고.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한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어떤 결정을 해도 망할 염려가 없어요.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업인은 다릅니다. 언제나 양날의 칼 위에 서 있지요. 순간 잘못 판단하면 기업은 바로 문을 닫아야 해요. 인문학은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알려줘요. 그렇게 되면 일방적인 지시에서 벗어나 ‘토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논제에 대해 격렬하게 토론하다보면 어느새 답이 도출되더라고요. 이럴 때 아이디어도 순간순간 튀어 나오지요. 바닥에서부터 열정이 올라와야 조직의 힘이 세지는 법입니다. 위에서 아무리 지시해봐야 소용없어요. 인문학은 그런 점 에서 큰 힘이 됩니다.”
인문학은 이미 그의 사업에 접목돼 있다.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데 있어 인문학적 마인드를 크게 적용하고 있다.
“요새는 사업계획을 잘게 쪼개고 있어요. 한 덩어리로 생각하면 실행이 어렵기 때문에 하나씩 끄집어내서 조금씩 잘라서 하나씩 계획을 세웁니다. 그렇게 하나씩 실행하게 되면 완성도가 높아지고 사업 성공확률도 덩달아 올라가지요. 여러강의를 들으면서 지혜나 영감이 번뜩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사업 아이템에 녹여서 활용합니다.”
지식·정보 전도사 역할도
그는 지식·정보 나눔에도 인색함이 없다. ‘지식·정보 전도사’라 칭해도 될 만큼 지식 전파에 적극 나선다. 수년 전부터 회사 여직원을 붙들고 터득한스마트폰이 그의 지식 전달도구다. 네이버 밴드 게시판에 최신 뉴스 분석 정보나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글귀 등을 수시로 퍼 나른다. 창조클럽 조찬동호회 밴드는 물론 각 대학원 최고 경영자 원우회와 성아테크 임직원 밴드, 가족 밴드까지 만들어서지식과 정보를 나눠준다. 물론 지인들 단체 카톡방에도 그의 지식과 정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한 기업을 이끄는 CEO로서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임에도 지식 관련 일에는 게으른 법이 없다.
IGM창조클럽은 CEO뿐만 아니라 직원전체가 다니는 세계 최초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표방한다. 실제 기업 임원진이나 팀장급 직원들도 함께 조찬 강의에 등록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창조클럽에 가입한 S기업 등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전 직원이 창조클럽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교체수강제도다. 창조클럽은 조찬이나 저녁, 원하는 요일, 시간, 장소에 본인의 일정에 맞게 참석이 가능하다. 이는 바쁜 경영자들의 생활을 고려한 제도다. 또 다른 특징은 CEO나 임원이 들은 강의를 직원 등 전 조직원들이 온라인으로 동일하게 수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원과 부하 직원 전체가 지식과 경영 화두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뿐만 아니라 강의가 끝난 후 토론으로 구성된 창조 프로세스를 통해 각 부서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창조적인 실천 아이디어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특히 창조 프로세스는 미국의 아이디오(IDEO)라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가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그 효능을 스탠퍼드 대학이 입증한 프로세스라는 것이 IGM측의 설명이다.
전성철 IGM 회장은 “많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그 프로세스를 채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 탓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 각 기업에 창조 프로세스를 설치해 주는 IGM창조클럽을 만들게 됐다”며 “결국 창조프로세스를 구축해 끊임없이 창조를 이끌어내는 기업이 이 시대의 위대한 기업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후 중도사퇴는 뺑소니와 같다…
-아직도 세월호 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한심하기 그지 없는 일
-‘잘 산다’개념을 제대로 이해못한 한국사회…
-말로만 하지 말고 배려의 참뜻을 실천하라
세월호 사고는 한국 사회에 가해진 치명적 충격파였다. 무고한 피해자들의 억울함, 부실하기 그지 없었던 구조구난 시스템, 선박 회사의 비리와 해경의 무능함까지, 세월호 사고는 너무나 많은 ‘망가진 것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줬고 그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허술한 실체를 절감해야만 했다. 국내 6.25 전쟁후 사회학 1세대면서 사회학의 기반을 닦는 데 기여한 김경동 카이스트 경영대학 초빙교수. 김 교수는 사회학계의 거두로서 대학 외부의 손짓에도 한 눈 팔지 않고 퇴임 때 까지 학계에 남았다는 그 나름의 모본을 보여주는 특별한 학자다.
그가 말하는 세월호 사고 이후, 지금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커다란 문제들과 그 근원에 대한 분석을 들어본다.
“사고 수습하다 말고 사퇴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아픈 기억은 얼른 지워버리자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정치인들은 단순히 해상 교통사고였다고 치부하기도 했다. 그 사이코패스적 발언들은 세월호 사고 속에서 드러난 온갖 비리와 부실의 총체적 모습들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식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다는 걸 재발견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냐고 그들에게 되묻는 건 의미가 없다. 이미 역지사지라는 기본적 관념을 지워버린 이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들이 날뛰는 세상,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나
한국 사회학의 기반을 닦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받는 김경동 교수는 세월호 사고를 돌아보며 이 사태의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분명하게 밝혔다.
“세월호 사고는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심층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김 교수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처로 해경을 무조건적으로 없애고 안정 정책을 통합하는 기구를 졸속으로 만드려 한 것도 성급한 처사라고 평가했다.
“안전에 관한 기관을 만드는 건 사고에 대처하는 한 방편이기에 ‘그런 기관을 만들겠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사고에 대한 성찰도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뭔가를 빨리 만들어 보여주려고만 하는 건 답이 아니에요.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기관이 제대로 된 업무를 할 수 있을까요?”
그는 ‘end’는 잘하면서 ‘finish’는 안되는 습관에 젖어 있다며 완료는 잘하는데 완성도는 낮다고 지적했다.
모두가 힘 합쳐 대책 백서 만들어야 참사 되풀이되지 않는다
“백서라고 정책보고서라는 게 있는데 사고백서는 원인을 찾아내 자세히 기록해놓음으로써 비슷한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만드는 공적 보고서지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2년 동안 모든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다 참여해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대책을 만들었던 것처럼 철저히 조사하고 대처방안을 만들어 가는데 진중한 자세가 절실하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정부차원의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태의 원인과 공과를 샅샅이 파헤쳐 수습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정리한 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거기다 사건이 터지고 나면 책임자들은 사임하는 우리나라 인사풍조는 특권에만 집착하는 것 뿐이라는 지적이다.
사의 표명이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평가하는 것 같은데 옷을 벗는 건 나중이고 먼저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원인을 이 잡듯이 잡아내 꼼꼼한 대책을 수립하고 그만두는 것이 정당하다는 그의 생각이다. 부패하고 무기력한 기업·관료가 꼼짝 못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빨리 빨리’가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다
김 교수는 근본을 성찰하고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 작업을 방해하고 무조건 성과만을 찾는 ‘빨리 빨리’ 정신의 근원이 경제 개발에 대한 맹신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차원의 경제개발에 대한 로드맵은 이미 1950년대에 있었습니다. 자유당 정권 때에도 능력 있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했었어요. 그러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이어서 장면 정권도 실패하면서 준비했던 경제개발 계획은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사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군사정권으로선 정권의 정당성 확보가 중요했죠. 그 정당성 확보를 위해 경제개발을 정책 일순위로 선정했습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권의 지향점이 경제 개발에 특화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성공적으로 이뤄진 건 우리에겐 일단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경제라는 것은 살아있는 동물이다. 크면 클수록 그 안엔 복합적인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까지 성장하다가 그 이후로는 성장이 주춤해진 건 경제가 복합적인 구조가 되어 다루기 어려워지고 변화가 간단치 않아졌는데 이에 대처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정립하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다.
“기껏해야 수십 년, 세대로 치면 한 세대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학교를 다니고 광복과 전쟁을 겪고 산업혁명까지 다 경험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시점에 왔는데,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 행동양식, 인간관계는 그 새롭고 복합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기에는 적합치 않은, 60년대의 모습 그대로를 가져온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람들이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에 실패한 주요 원인이라는 겁니다.”
국가개혁운동 ‘잘 살아보세’가 실패한 이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시스템은 개선되려는 의지가 없었던 걸까? 그건 아니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새마을운동은 대표적인 국가개혁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구호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잘 살아보세’였다.
“그런데 문제는, 잘 사는 게 뭐냐는 정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경제제일주의라는 말이 정책 기조 중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도 IMF사태를 맞아 경제제일주의를 표방했죠.“
김 교수는 경제제일주의라는 말을 하기 전에 ‘잘 산다’라는 넓은 개념에 대한 가치관을 보다 신중하게 정의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잘 사는 건 이런 건데 그러기 위한 첫 걸음이 바로 가난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라는 걸로, 잘 산다라는 넓은 개념을 확립하고 공유한 다음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런 신중한 논의를 하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돈’이 모든 정책과 인생의 중심 목적이 된 게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소위 ‘시장경제가 부를 축적하는데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이론을 제시한 책 의 저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내기 전에 도덕적 정서에 대한 책을 썼고 거기에서는 인간은 타인의 정서에도 관심을 가지고 동정심 같은 것으로 타인과 정서적인 공유를 하면서 다 함께 잘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연중에 공동체주의 철학이 담긴 거죠.”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당장 잘못되는 것만 막아줬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사회에서 발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덴 성공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나 국민이 중요시하는 가치는 여전히 장기적인 미래보다는 당장의 해결책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물질지상주의가 아직 사람들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교육가치관이 바로 서야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경쟁에서 이겨서 출세하라고 말합니다. 출세하면 물질적 보상이 나오죠. 지금껏 우리 사회가 인생의 목표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극심한 경쟁 속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을 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인생은 돈과 지위가 전부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보면, 모든 이들이 이런 식으로 다 자기중심적이면 사회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타인을 생각하라, 그리고 변화를 수용하라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 김 교수는 갈팡질팡하며 혼돈 속으로 가고 있는 지금의 한국을 그렇게 진단했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말하는 성숙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간단하게 정의내렸다.
“개인적으로는 어린이가 처음 태어나서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데 차차 자라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는 게 성숙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성숙의 증거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 보고 출세를 안 했으니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에서 학문에 전념하다 은퇴했고, 계속 강의와 연구를 할 수 있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잘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것, 그게 성공이라고 봅니다.”
성숙에 대한 그의 기준은 간결했다. 그만큼 성공에 대한 기준 또한 간결했다. 그러나 그 간결함이야말로 한 사회학자가 70여 년의 오랜 생애에서 체험하고 연구하여 얻어낸 커다란 교훈이기도 했다.
“은퇴하고 나서 학교폭력 방지위원으로 사회공헌을 하면 어때요. 어떤 사람은 교장 선생님 하다가 경비원 하기도 하고 그러죠. 거기서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면 행복 아닙니까?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요. 저도 계속 일을 하며 살 겁니다. 나와 가족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아침 조찬회나 연구회에 나가고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60을 훨씬 넘긴 칠팔십 대 분들이 반 이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항시 공부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공부에 열중인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다. 지난달 한 조찬 모임에서 70대의 지긋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침마다 제일 먼저 와서 앞자리를 차지하던 선배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배님은 한 달에 몇 번이나 이런 조찬회에 다니세요?”
그 선배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SKY 대학보다 더 좋은 게 평생대학이야! 나는 평생대학에 입학한 학생이야, 그래서 주 3~4회 정도는 꼭 다니고 있지.”
“SKY 대학보다 평생대학이 더 좋아”
요즘에는 지자체나 대학에 평생교육이나 다양한 과정이 많이 생겨 어렵지 않게 수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입학해서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가르쳐주는 평생대학은 실제로 없다. 그래서 평생대학은 자기 스스로 설립하여 경영하는 1인 학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대학은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설립도 어렵고 학생이 학업을 그만두면 그 학교는 자동폐교가 되고 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평생대학은 100세 고령화 시대를 바라보는 요즘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령화 문제는 심각하다. 65세 인구 비중은 지난해 12.2%였지만, 2018년이면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고, 2026년에는 20%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우리나라 평생학습 참여율은 지난해까지 3년 내내 30%대에 머물러 경제협력개발기구 27개국 가운데 19위에 머물렀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정년까지 평생을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될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그 기점이었다. 급기야 일자리를 쫒아 직장을 옮겨 다니는 ‘잡노마드 족’까지 탄생했다. 직업(job)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Nomad)이라는 의미다.
몇 년 전 국세청이 최근 내놓은 통계에서는 퇴직자 중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경우는 전체의 0.3%, 근속연수가 20∼30년인 퇴직자도 0.6%에 불과해 이를 합쳐도 1%가 되지 않은 반면 근속연수 5년 미만인 퇴직자는 86.7%를 차지했다.
분명 앞으로는 직(職)보다는 업(業)이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즉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이 중시되고, 100세 시대 대비, 누구나 긴 인생을 둘이나 셋으로 나누어 경작하는 지혜를 평생학교를 통해서 배우고 실행해야 한다. 이른바 이모작, 삼모작이다. 은퇴(Retire)는 놀고 쉬는 게 아니라 오래 써서 다된 바퀴를 갈아 끼우듯이(Re+tire) 다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삶이 되어야한다. 더구나 전반전은 목표와 성취를 위한 치열한 삶이었다면 후반전은 달라야 한다. 목표만을 위해 뛰었던 전반전과 달리 후반전에는 그동안 인생에서 배우고 얻은 것을 사회와 이웃을 위해 환원하는 의미가 있는 삶이 된다면 더욱 좋다.
나는 인생에 개인 멘토라고나 할까? 나 자신이 후반전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자동차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자동차 경험이 완전 백지 상태였던 나는 자동차 교육을 위해 몇 분의 외부 고문을 영입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필자가 일본에 가서 직접 영입을 권유해 고문으로 모셨던 이와다(岩田)씨다. 그는 일본의 혼다(Honda)자동차 출신으로 그 유명한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회장의 몇 안 되는 문하생(門下生)이었다.
그의 철저한 시간 활용 방식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40대 후반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나에게도 많은 생각과 길을 안내해준 벤치마킹 대상이자 훌륭한 멘토였고 그동안 이분의 살아온 길을 비슷하게 가기위해 노력해왔다.
평생대학 학생이 되려면…
그 중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의 철저한 시간 활용법이었다. 그분은 조그마한 수첩에 1년 동안의 스케줄을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하여 관리했다. 그는 은퇴이후 주어진 긴 시간을 3등분하여 황금 비율이랄까 3:3:3으로 균등하게 철저하게 나눠 쓰고 있었다.
첫째 3은 자신의 건강과 취미생활 즉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위해서는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시간 넘게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산책하며 체력을 관리했다. 그는 산책을 나갈 때 매일 변화를 주기위해 모자, 스카프, 위아래 운동복을 매일 바꾸어 입기위해 서른 한 벌을 따로 준비하여 벽에 걸어놓고 매일 바꾸어 입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3은 자신의 일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하면서 일에 전념하는 시간이다. 그는 고문을 그만두신 이후에도 팔순의 나이가 된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선샤인(Sun shine)이라는 작은 컨설팅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전국을 돌며 강의와 기업체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 셋째 3은 남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이다. 주로 고향에 내려가 봉사활동을 직접 몸으로, 때로는 금전적 지원으로 실천하면서 인생을 멋지고도 풍요롭게 살고 있다. 참으로 후반전의 인생설계가 완벽한 분이다. 나는 지금도 일본에 들를 때 마다 꼭 그분을 만나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와다씨의 경우처럼 전문지식을 활용해 노후에도 일할 수 있으려면 평생대학의 학생이 되어야만 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한 분야에 오래 있었다는 것만으로 전문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새로운 것을 위해 전진하지 않으면 도태되어 자리를 지키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평생대학의 학생이 되려면 화려한 과거는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는 자기변화가 있어야한다. 우선 어깨의 힘부터 빼고 체면과 습관 등을 버리는 과감한 빼기전략을 구사해야만 가능하다.
아울러 이러한 교육이나 평생 직업을 택할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긍정 에너지가 솟아 나오고, 자기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을 찾아 배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즐겁고 활기찬 삶일 수 있다.
여기에 하고자 하는 일이 세상에 무언가 남길 수 있고 삶에 의미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다. 돈이나 부만을 가진 노테크는 자칫하면 ‘노(No) 테크’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후반전을 준비하고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진정한 노(老)테크는 개개인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칠십을 넘어 팔십까지도 크던 작던 할 일이 있어야만 일하는 즐거움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건강하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용기를 내어 평생학교에 입학하고 평생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세상의 풍속도에 따라 인사법도 점점 짧아져만 가는 것일까?
저의 어릴적 인사법은 시도 때도 없이 “밥 무어십니껴?”(밥 먹었습니까?)로 일관된 인사법이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의식주 중에서도 먹는 것, 먹거리의 중요성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은 틀림없다.
로스토우가 말한 경제발전도 첫 단계인 전통적 사회에서 선행조건단계를 거쳐 도약단계로 나아감은 각 단계별 핵심요소를 얼마나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발전속도가 빨리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끝난 제18대 대선을 통해서 극명하게 나타난 문제가 바로 세대간 갈등국면이다. 지역갈등- 이념갈등의 벽을 넘어 세대간의 충돌은 위험수위까지 치닫고 있다. 양보와 타협은 아랑곳 않고 소지역, 소집단 이기주의에 편승한 새로운 문화충돌의 양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에서 일어난 'Angry young man'이 젊은이들의 욕구분출로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여성시대, 무상보육, 안전한 사회, 행복한 대한민국의 캐치프레이즈도 복지 포퓰리즘을 내새운 한낱 빈 공약에 지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창밖을 내다보며 행복한 100세 인생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워낙 많은 미래학자나 전문도서, 교수진들의 입을 빌어 웰빙이니 건강이니 연금이니 등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물론 다 맞는 말이고 나름대로의 일리도 있다. 얼마전 신바람 건강법으로 TV와 라디오 등의 매스컴을 통한 이 시대의 건강 대명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박사분이 고인이 되었다.
뉴스를 접한 저와 우리 집사람은 약간의 충격과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겪었다. ‘세상만사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지만 허-허-허- 너털웃음으로 다가온 그분이 타계했다니...
그래서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자기 인생의 실제 나이에서 100세까지 장수한다고 가정하면 50세가 반환점이 될 것이다. 실제 나이와 잔여 수명을 합쳐 100세가 되는 공식을 적용해 보자는 얘기다. 다시말하면 실제 나이 56세 되는 사람은 44세의 잔여수명이, 45세는 55세의 잔여수명이 남게 된다.
그래서 잔여수명의 나이에 맞는 사고와 행동의 프레임을 제안하고 싶다. 앞서 말한 56세는 44세의 사고력으로 인생을 살 것이며, 45세는 55세의 인생관을 갖자는 의미이다.
실제 나이 56세가 44세의 보다 젊은 사고의 틀로 무장한다면 얼마나 활기차고 보람된 인생이 될 것이며, 45세는 55세의 보다 원숙한 중년 인생에 걸맞는 소양과 식견으로 무장한다면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더 나아가 매년 이 공식을 대입해 보자. 그러면 실제나이 70세 노인은 실버가 아닌 30세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로 변모될 것이고, 거꾸로 35세의 성년은 65세의 품격있는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갑자기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날 그날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준비하고 실행하여 인생의 금자탑을 쌓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공식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여러분이 잘 아는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암 제임스가 한말을 상기해 보자.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이는 습관의 중요성과 함께 인생을 사는 올바른 자세를 설명한 명언중 하나다.
결국 70세 젊은이로 살든, 30대 늙은이로 살든 각자의 인생은 생각과 행동, 습관의 바탕에서 이뤄짐은 당연하다.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 인생길은 곳곳에 도사린 암초와 고난의 벽을 넘어 순간 순간의 짧은 환희와 성공을 지나가는 고단한 길이지만, 꿈과 희망을 안고 열정을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에게는 늘 새로운 길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도전의 길이다.
100세 인생,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당신의 길이기에 또한 나의 길이기에 아침단상을 통해 가감없이 적어 봤습니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간 소중한 하루~ 님의 앞길에 항상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당신이 있기에~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 최재영(kthigh11@naver.com)
△OCJP 국제공인자격 △RABQSA ISO9001 △27001 국제 심사원 △KBS n 리포터△정부3.0 맞춤형서비스 △생활공감정책모니터 용인시 대표 △서울시 인터넷시민감시단 △한국소비자포험 화이트슈머 △금융감독원소비자리포터('금소리') △한국가스안전공사 경영공시모니터 △분수네신문사 칼럼리스트 △직업 특강 & 컨설턴트 △IT 및 보안전문가
뜻하지 않던 퇴직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한 민찬기(58) 씨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실적이 나빠진 은행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2003년 일자리를 잃었다. 살면서 위기를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심각한 생활고가 시작됐다.
중·고교에 다니던 두 자녀의 학원 수강을 중단시켜야만 했고 후두암을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치료비조차 드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후 대책은 무슨…. 사치이지.’ 게다가 나이 많은 실직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민 씨는 취업 전선에 다시 뛰어들었다.
◆취미 살려 창업 도전
민 씨는 그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 일자리 신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리면 연락이 오는 곳은 주로 정수기나 전자제품 같은 제품 판매나 다단계 판매, 보험 영업 혹은 도산 위기 직전의 중소기업이었다.
아스팔트 포장업체에 들어가 몇 년간 영업도 해 봤지만 회사가 다른 기업에 팔리면서 다시 실직자가 됐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고 은행원 경력으로는 경쟁력이 없었어요. 여러 곳에서 재취업 연락이 와도 결국 전자제품 판매 영업 및 보험 영업뿐이었어요.”
그는 취업시장에서 고배를 마시며 이렇게 지쳐 가느니, 재취업에 대한 미련을 접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지난 30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며 키워 온 취미는 운동이었다. 은행 업무가 주로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담배와 술을 끊는 등 건강한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피트니스 원리, 역학, 물리 등을 생활 속에서 관찰하고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헬스 관련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운동 경력 20년. 그는 트레이너 못지않은 베테랑 운동 전문가가 됐다.
민 씨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생각했다. ‘앞으로 고령화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지금 당장의 수입에 연연하지 않고 20~30년 후를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고령화 시대에 경제활동을 하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신만의 특화된 장점을 살려 창업한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마침 은행에 다니면서 따뒀던 운동처방사 자격증이 생각났어요. 수중에 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1인 창조기업’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죠.”
창업 아이템은 그동안 틈틈이 연구해 온 ‘운동 각’을 활용한 운동처방. 한국무역협회가 운영하는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소상공인진흥원의 시니어 창업 지원기관인 ‘시니어 비즈플라자’를 알게 된 것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창업 관련 교육과 멘토링 서비스, 시설, 경영 및 회계자문 등의 지원을 받아 전문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차별화된 ‘운동처방’으로 승부
일반적으로 운동처방이라고 하면 부상 후의 재활치료를 떠올리지만 민 씨의 생각은 달랐다. 병이 발생하기 전의 예방 차원에서 실시돼야 하는 것이 운동처방이며 그의 사업도 여기서 출발했다.
몸의 움직임 즉, 행동의 구조가 올바르지 못하면 신체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움직임 스타일에 따른 알맞은 기울기의 운동, 이를 ‘운동 각’이라고 정의했다. 운동 각에 의한 영향을 잘 활용함으로써 몸 안의 여러 장기를 운동시킬 수 있고 불편하거나 약한 부위에 개선 효과를 충분히 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멘털 피트니스’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정신까지 포함해 예방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신체 스타일을 감안한 운동법을 고안했죠. 그리고 이를 토대로 힐링 숙면, 성공적 재취업과 창업을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시니어를 위한 운동처방과 건강관리, 해피웰 운동처방, 생태적 분석을 통한 운동처방, 운동일지 관리 등 강의 및 컨설팅 콘텐츠를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습니다.”
운동처방 관리 자료인 생태적 분석 설문지와 운동일지의 저작권 등록, 몸의 균형 각도를 측정하는 운동 각 측정기기의 디자인 등록, 남성용 운동기구인 전립선 마사지용 볼기구 발명과 특허 출원 등은 모두 그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민 씨는 시니어 비즈플라자 창업과정 수료 후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12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를 열었다.
그는 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장 적합한 운동 종류, 방법, 횟수 등을 설명해 준다. 일상생활의 나쁜 습관으로 병이 생기는 것을 방지해 주는 ‘건강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현재 학교, 사회복지관, 공공기관, 기업 등을 중심으로 건강관리 강연을 하고 있으며 퇴직자들에겐 창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강연을 통한 재능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민찬기운동처방연구소의 월평균 매출은 200만원이 좀 넘는다. 고수익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베풀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 그저 즐겁고 행복하다는 그의 다음 계획은 뭘까.
“토털 원스톱 방식의 체형관리 운동센터를 오픈해 국민 건강에 일조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특히 운동센터의 프랜차이즈화를 구축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저비용 기술형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손욱 「행복나눔 215」 회장은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75년에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SDI 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역임하고 농심에서 회장을 지낸, 장르의 점프를 거침없이 하면서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한 그 자체로 혁신적인 인물이다.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는 1945년 생으로 어느덧 칠순의 나이지만 오히려 경영을 할 때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 회장을 가장 강하게 이끌고 있는 것은 바로 '감사의 힘'이다. 그리고 감사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 손 회장이 말하는 새로운 인생에의 도전과 그가 발견한 세상을 바꾸는 힘의 지혜를 들어본다.
인터넷에서 손욱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직책에 대한 명칭이 ‘전 농심 회장’이다. 강연과 관련된 내용에서는 ‘손욱 교수’로 불린다. 현재 맡고 있는 것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라는 직책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손욱이란 이름은 현재 시점에서도 회장이기도 하다. 바로 그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행복나눔125’의 회장이라는 역할 덕분이다.
“요즘 행복하게 삽니다”
루이보이차와 마주한 손 회장은 요즘 근황을 묻는 질문에 바로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삼성 고속 성장의 역사를 바로 현장에서 지켜봤던 삼성맨이었으며 이물질 파동으로 위기에 처했던 농심을 안정시키고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기업 혁신을 뚝심 있게 추진했던 경영인은 길고도 무거웠던 자리에서 물러나 있는 현재를 행복하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은퇴하면 2~3년 정도 적응기간을 가지고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 듣는 말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을 했어요. 살아오면서 잘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죠.”
손 회장은 원래 기계공학을 전공했던 엔지니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연스럽게 기술직을 떠나서 전략, 기획, 경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손 회장의 커리어는 다양한 변화와 조직 내 역할의 점프로 이뤄져 있다.
“삼성이란 조직은 밖에서 보면 딱딱해 보이지만 자율경영이란 측면에서 맡기면 뭐든지 할 수 있게끔 해주는 그런 문화가 있었어요. 자기가 알아서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마인드였죠. 반 평생을 함께 한 삼성을 나와서 가게 된 농심도 그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행복한 일터 만들기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그 덕분인지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한 회사가 연 10%대의 성장을 이루게 됐습니다.”
◆두 번째 인생의 거의 모든 것, 행복 전도사로 올인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던 손 회장은 어느 날 들르게 된 환경 사업소에서 강력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직원이 열 명 조금 넘는 사업소의 사장과 직원들 모두가 행복하게 일을 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건 사장이 항상 품고 있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그곳 사장님은 한시도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직원들의 가족들에게는 그런 외지까지 와줘서 함께 있어줘서 감사하고, 일 특성상 큰 트럭이 오가는 환경이 됐는데도 불평이 없는 이웃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고. 그런 것이 조직을 즐거운 일터로 만들고 있었죠. 저는 그때 기업 경영에 있어서도 칭찬이 아니라 감사가 답이라는 걸 알았어요. 은퇴하면 이걸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죠.”
내가 행복하면 가정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면 일터가 행복하고, 일터가 행복하면 사회가 행복하고, 사회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다는 극히 단순한 이치였다.
농심에서 시행했던 조직문화였던 ‘착한 일’, ‘독서 토론’. 거기에 ‘감사’를 더하여 잘 어우러지면 사회운동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손 회장이 자신의 90%를 바치고 있다고 말하는 ‘행복나눔 125’ 운동의 모체였다.
‘행복나눔 125’ 운동의 방법은 간결하다. 첫째, 1주일에 한 번은 착한 일을 한다. 둘 때, 한 달에 2권의 좋은 책을 읽는다. 셋째, 하루에 5개의 감사 일기를 쓴다. 그래서 ‘125’다.
‘행복나눔 125’ 운동은 손 회장 두 번째 인생의 매우 좋은 주제가 됐다. 손 회장은 이를 포스코ICT에 도입할 수 있었다. 포스데이터와 포스콘을 하나로 합쳐 만든 포스코ICT는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두 기업이 합쳐져 갈등이 있던 터였고 당시 포스코ICT의 CEO였던 허남석 사장은 해법을 찾는 중이었다. 손 회장은 허 사장을 설득하여 행복나눔 125 운동을 포스코ICT 조직에 도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직원 몰입도 조사의 꾸준한 상승세와 함께 조직 문화 성공 사례의 대표적인 성과로 인정 받았고 마침내 포스코 전 그룹으로 운동이 확산됐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대림 그룹, 광양시, 서울시 공무원 노조, 병원과 육사까지 행복나눔 125 운동을 받아들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사명감
손 회장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 교수의 입장에서, 손 회장은 한국형 리더십과 기술경영의 전파에 대해서도 여전히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를 하는 이유는 서양 리더십을 연구하다 보니 너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게 있어요. 우리는 우리 정서에 맞는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런 한국형 리더십을 젊은이들에게 잘 전파를 하면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술경영의 전파에는 손 회장 개인의 경험이 녹아 들어가 있다.
“제가 성장을 한 건 다 배워서 가능했던 겁니다. 지금 청년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을 전수해준다면 내가 20년 걸렸던 걸 5년이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손 회장은 말로 그치지 않고 이미 1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여 기술경영의 전파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행복나눔, 한국형 리더십 교육을 위한 교수 역할, 기술경영의 전파를 위한 저술 활동. 손 회장이 보내고 있는 두 번째 삶을 상징하는 주제들은 개인이나 작은 커뮤니티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녔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실현 가능하면서도 강력할 수 있는, 어쩌면 많은 이들이 놓쳐 버리고 있는 그런 지점이었다.
◆실수와 교훈이 보다 발전하는 자신을 만든다
손 회장에게 인생을 살면서 후회한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손 회장은 잠깐 생각한 후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세웠다.
“잘못한 것도 많죠. 하지만 그 잘못한 것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은 신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잘못한 것들이 있으면 배우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회복탄력성이란 게 있잖습니까? 무슨 일을 겪었을 때 이것은 나에게 큰 교훈이 되리라는 마음가짐인 겁니다.”
감사와 나눔이 습관이 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손 회장은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신이 알고 쌓아 온 것들을 나누고 기부하면 기쁨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감사가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밝혔다. ‘나는 감사한 게 없는 데 이런 일이 생기면 감사할 거야’라는 감사. 이것은 ‘만약에’ 감사다. 그리고 두 번째는 ‘뭐였기 '때문에’라고 하는 ‘때문에’ 감사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어려움, 시련, 과오를 겪었을 때 나오는 감사다. 이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라고 부를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 번째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사를 계속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 번째도 가능해진다는 게 손 회장의 말이었다.
“우리나라는 불신사회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선행을 하면서, 감사를 하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손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던 건 ‘그동안 겪고 쌓아온 지혜와 노하우를 다른 사람을 위해 알려야겠다’라는 의지, 바로 사명감이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도전을 상상하는 이는 많지만 실천하는 이는 많지 않다. 손 회장이 마주한 새로운 인생이 만들 세상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