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시니어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그중 시니어타운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이지스자산운용 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와 부동산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고령화 비율이 오는 2045년 약 3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자인 초고령사회 진입까지 몇 년 남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사망자보다 출생아가 많아지면서 인구가 자연감소하는 현상인 ‘데드크로스(dead cross)’ 발생 이후 고령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시니어들이 모여 있는 시설인 시니어타운 또는 시니어하우스는 단순한 ‘양로원’ 수준을 넘어 품격 높은 시설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다양한 시니어타운은 주거와 의료, 식사, 건강관리, 각종 여가·문화, 커뮤니티센터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해 시니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시설로 인기가 높다. 이에 스스로 시니어타운을 찾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는 반면 공급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프리미엄 시니어타운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KB골든라이프케어 위례빌리지(위례빌리지)가 대표적인 인기 프리미엄 시니어타운이다. 2019년에 오픈한 위례빌리지는 도심형 요양시설로서 입소한 시니어에게 맞춤형 케어를 제공한다. 내 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설과 높은 수준의 서비스로 입소 대기자가 13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난달 오픈한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에도 접수 순번이 빠른 80여 명의 시니어가 이미 입소를 마쳤다.
롯데호텔 역시 시니어타운 서비스 사업에 진출한다.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조성되는 시니어타운 운영 컨설팅을 맡아 입주자 관리와 문화·여가·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롯데호텔은 추후에 수도권 주요 교통과 생활 중심지에 프리미엄 시니어타운을 추가로 조성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외에도 하나금융의 하나케어센터, 삼성생명의 노블카운티, 우리은행의 우리시니어플러스센터 등 다양한 기업들이 고령화사회를 대비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시니어타운을 키우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국내에 불고 있는 시니어타운 조성 움직임이 시니어 산업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전 세계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지리라는 진단이 의료계에서 거듭 나오고 있는 지금,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려면 기존과는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상황. 정부에서는 이를 위한 ‘한국형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적으로 지역에 안착해 주민들이 좋은 일자리를 체감하는 게 정부의 목표이자 지역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는 양천구를 책임지고 있는 김수영 양천구청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직접 일자리와 양천구 개발의 미래상을 들어봤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지난해 7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회에서 지방정부를 대표하는 지역위원으로 위촉된 이후,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목소리를 대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각 지방정부에서 시행되고 있는 우수한 일자리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중앙-지방정부 간, 지방-지방정부 간 협업을 강화하는 소통의 창구 역할이다. 양천구는 2019년 119개 사업에 7231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수립해 119개 사업, 68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이뤘다.
“일자리는 더 이상 단순한 생계유지 수단이 아닌,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핵심적인 복지 영역입니다. ‘일자리가 곧 복지’인 거죠. 질 좋은 일자리 창출에 힘써 다양한 계층이 체감하는 내실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모두의 바람이자 희망입니다.”
중장년층 일자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
김 구청장은 50대 이후의 중장년층을 위한 양천구만의 일자리 지원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다. 먼저 양천구의 어르신복지과 ‘인생 이모작 팀’이 중장년층을 위한 여러 솔루션들을 기획 중이다. 그리고 50대 독거남들이 사회에 다시 진출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는 ‘나비남 프로젝트’, 8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전담 팀이 직접 방문해 건강관리를 해주는 ‘백세건강 돌봄 사업’ 등 세대별 맞춤형 복지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외 양천시니어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장년층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게끔 다양한 정보 제공 및 취·창업 지원을 위한 양천50플러스센터를 2021년 7월 개관할 예정이다. 또한 ICT 기술을 독거노인 및 취약 계층에 도입해 디지털 취약 계층과의 정보 격차를 줄이고 고독사를 예방하는 신중년 일자리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예를 들어 ‘ICT 기반 돌봄 서비스’는 신중년 ICT 케어 매니저들이 AI 스피커를 활용해 독거 어르신의 고독사 예방 및 신속한 위기 대응 등의 돌봄 서비스를 수행하는 일이다. 더불어 조리사 자격을 갖춘 신중년들이 어린이집의 대체조리사로 활동해 급식 공백을 최소화하는 서비스인 ‘대체조리사 지원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 지정
양천구가 자치단체로는 전국 최초로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으로 지정됐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양천구가 선정된 배경에는 먼저 ‘연의목공방’이 서울시 자치구 목공방 중 규모가 제일 크며, 목재 관련 박사학위가 있는 외부 강사를 인력풀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지자체에서 목공지도사를 직원으로 채용해 직접 운영하는 것도 높이 평가받았다.
“양천구는 주거 지역이 전체 면적의 약 72%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 흔히 목동을 얘기하면 대입 전문학원이나 목동 아파트 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런 입시학원 중심의 목동에서 평생학습 중심의 양천구를 만들기 위해 오목공원 내 창고로 방치돼 있던 공간을 목공예 체험장으로 조성한 것이 연의목공방의 시작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 7월 산림청에서 전국적으로 공모한 ‘목재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에 지원하였으며, 지정을 받았습니다. 전국 총 44개 기관에서 신청했는데 6개 기관만 선정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양천구죠. 앞으로 목재교육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국가자격증반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개강은 곧 할 예정입니다.”
12월부터 개강할 목재교육전문가는 산림청에서 목재교육전문가 양성기관으로 지정한 기관만이 배출할 수 있다. 6개월 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목재교육 분야의 전문지식·기술습득 및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면 목재문화체험장, 강사 활동, 학교 방과후 교사 및 마을 학교 강사, 소창업 등이 가능해진다. 양천구에 목공방 마을 1호가 머지않아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마음 치유는 공원에서
일자리를 못 구하는 일도 사람의 마음을 척박하게 만들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그 이전에 가혹한 생존의 문제가 하나 생겼다. 바로 코로나19다. 김 구청장은 자칫 몸과 마음이 삭막해질 수 있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삶의 질’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런 기준에 따라 많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여가를 보내는 대신, 쾌적하고 안전하게 ‘쉼’을 누릴 수 있는 공원을 추천했다. 양천구는 이러한 방향성에 맞춘 다수의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양천구 면적은 17.4k㎡로 이 중 주거 지역이 71.8%인 12.5㎢입니다. 녹지는 23%인 4㎢로 그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며 전역에 크고 작은 공원 104개소가 조성되어 있어 힐링하기에 좋은 환경이죠. 특히 연의목공방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양천도시농업공원을 작년 4월에 개장했는데, 7000평 규모에 농업체험학습장, 친환경텃밭, 야생초화원, 생태연못 등이 마련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삭막한 도시 환경을 개선함은 물론 마을공동체 사업과도 연계해 건강, 교육, 공동체 개선 등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이끌고 있는 중입니다.”
양천도시농업공원에서 수확한 채소는 각 동의 취약 계층과 어르신 사랑방에 기부하거나 양천푸드마켓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작년 한 해 동안 기부된 채소들은 300kg이 넘는다. 공원을 가꾸는 재미가 정서적 위안과 함께 공동체 정신을 높이는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김 구청장은 이러한 호응에 힘입어 2022년까지 연의목공방 맞은편에 제2의 도시농업공원을 하나 더 개장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균형 발전을 위한 대규모 사업들
“양천구는 강남권과 비강남권을 말하는 서울시의 축소판처럼 목동과 비목동 간의 지역 격차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청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균형 발전에 대한 밑그림을 구상했고 민선 7기를 열면서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구청장이 균형 발전을 위해 구상한 ‘H-Plan’은, 양천구의 큰 개발 계획을 통해 동쪽(목동)과 서쪽(비목동)이 균형 발전을 이루고 상생할 수 있도록 마련한 정책 사업이다. 미래 양천의 30년 발전을 위해 주민들과 약속한 내용이기도 하다. 우선 동쪽에는 중소기업 혁신 성장 밸리를 조성하고 서쪽에는 서부트럭터미널을 개발해 도시 첨단 물류단지를 추진할 계획이다. 남쪽은 신정차량기지를 이전 및 개발해 문화 상업 복합 시설을 유치하며 북쪽으로는 국회대로와 차도를 지하화해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기로 했다.
“신정3동의 서부트럭터미널 개발은 운영사인 서부T&D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해 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경전철 목동선도 서울시와 정부에서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기로 발표한 이후, 국토교통부 국가교통위원회의 심의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승인이 끝나면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다음 절차가 진행될 것입니다. 워낙 큰 사업들이라 임기 내에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의 먹거리 사업이라 생각하고 차근차근 추진해나가려고 합니다.”
자발적인 착한 소비 운동에 감동
김 구청장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 양천구민들에게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다. 구청에서는 코로나19로 지역경제가 어려워지자 힘들어하는 소상공인을 응원하기 위해 ‘착한 소비’ 캠페인을 시작했다. 동네 단골집에 미리 ‘착한 선결제’를 한다거나 포장 주문을 하거나, 1+1 구매를 해서 주변 이웃과 나누자는 ‘착한 소비자’ 운동이 그 내용이다.
“현장에 나가 보면 손님이 너무 없어 힘들다는 사장님이 많은데 ‘주민들이 이렇게 착한 소비 운동을 해주시니 그래도 버틸 힘이 난다’고들 하셨습니다. 그중 한 식당 사장님은 주민들이 방문 포장도 하고 선결제도 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자신도 단골 미용실에서 선결제를 하는 착한 소비자 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정부에서 재난지원금, 새희망자금, 소상공인 신용보증 융자 지원 등 여러 가지 정책들을 통해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일시적인 지원보다 단골손님들의 응원과 소비가 더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사실 ‘착한 소비’ 캠페인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사업입니다. ‘나도 힘들지만 우리 이웃을 위해 함께 이겨내자, 힘내자’ 하면서 서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해주시는 주민들을 보면참 감사한 마음도 들고, 사회를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주민들에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니어 구민을 위한 행정
최근 김 구청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시니어 구민을 위한 디지털 격차 해소다.
“얼마 전 모 신문에서 국민 10명 중 8명이 유튜브를 이용하고, 한 달 평균 30시간이나 시청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뉴스가 가장 많은 채널을 묻는 질문에 50대와 60대의 절반 이상이 유튜브를 지목할 만큼 가짜 뉴스에 노출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에서 진짜를 가려낼 수 있도록, 중장년 어르신들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줄 ‘디지털 문해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김 구청장은 로봇과 시니어를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다. 관내 어르신들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교육용 로봇 사업을 도입한 것이다.
“어르신 복지관 3개소에 얼굴과 음성 인식이 가능한 카카오톡 교육 로봇인 ‘리쿠’를 40대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손님들이 비대면 주문을 선호하고,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도 적어 매장마다 늘어나고 있는 무인단말기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하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패스트푸드점 주문, 기차표 발매, 영화관 티켓 발매, 무인발급기 이용 방법 등을 알려주는 교육용 키오스크를 복지관에 설치하고 관련 강좌를 개설할 예정입니다.”
김 구청장은 또한 ‘스마트폰 사용 기초 과정’을 시작으로 유튜버로 활동할 수 있는 ‘1인 크리에이터 교육’, ‘시니어를 위한 빅데이터 교육’ 등을 실시해 다가오는 스마트 미래 시대에 신중년들이 당당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진행형의 인생 2막
“보통 정년이라고 해서 퇴직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는 직업에서는 은퇴 후를 ‘인생 2막’이라고 표현하지만 저는 계속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더 일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김 구청장은 양천의 미래 30년을 위한 굵직한 사업을 많이 추진하고 있다. 그런 사업들을 꼼꼼히 챙기면서 양천구민들을 위해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밝혔다. 50대 중반의 신중년인 김 구청장이 생각하는 시니어로서의 삶은 뭘까. 그녀는 나무와 같다는 말로 비유했다.
“울창한 산길을 걷다 보면 주위에 나무가 참 많은데, 이 나무들의 나이를 겉만 보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나무는 우리처럼 나이를, 이마나 눈가에 주름으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나무 속에 나이테로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봄이 되면 모든 나무가 푸른 잎을 꺼내는 것은 똑같죠.”
김 구청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성해지는 나무처럼 나이 들수록 더욱 울창하고 푸르른 나무가 되어, 누군가 와서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그런 포용력과 배려심을 키우는 게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큰 나무처럼 양천의 미래를 책임지며 자신의 나이테를 깊이 새기고자 하는 그녀의 소망이 어떤 봄을 맞이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웰다잉을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한 7명의 꽃중년이 펼치는 치어리딩 도전기를 그린 영화 ‘치어리딩 클럽’이 오늘 개봉한다.
BBC ‘100인의 여성’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한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다이안 키튼을 중심으로, 연기 경력만 총 300년에 달하는 할리우드 대표 여성 배우가 총출동했다.
공개된 메인 예고편에는 실버 타운에 입주한 중년 여성들이 모여 치어리딩 대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젊은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치어리딩 퍼포먼스를 연습하지만 몸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시니어들의 고충마저도 유쾌하게 그린다.
실제 치어리딩을 해본 적 없던 중년 배우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모든 장면을 직접 소화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영화 속 메시지를 몸소 전했다.
중견 배우들의 연기력과 작품성은 물론, 실화의 감동까지 담아 수많은 중장년에게 응원과 희망을 선사할 예정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아파트와 같은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주거 단지. 심지어 다양한 생활편의시설과 인접해 있고, 서울로의 접근성까지 뛰어난 데다 가격까지 합리적이라면? 이 모든 걸 만족시키는 타운하우스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경기도 ‘용인 위드포레’를 방문했다.
그동안 부담스러운 금액 때문에 전원생활의 로망을 포기했던 시니어에게는 단연 희소식이 될 것이다. 경기도 용인 위드포레는 총 4만 ㎡ 대지의 4개 단지에 120세대가 주거하는 타운하우스다. 실사용 면적 109~125㎡의 8개 타입 주택이 있으며 분양가는 3억7000만~6억 원 수준이다.
용인 위드포레는 경전철 에버라인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시로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경전철 연장계획으로 신분당선, GTX, 인덕원선, 분당선 등 다양한 노선으로의 환승이 용이해질 전망이라, 앞으로 훨씬 더 편리하고 빠른 교통망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자가용 이용 시에는 서울 양재까지 30분 정도 소요된다.
생활편의시설들은 대부분 차량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다. 5분 거리에 에버랜드가 있어 손주들이 왔을 때 함께 놀러 갈 수 있다. 10분 거리에는 용인시청과 이마트, CGV 등이 있다. 또 인근에 까치봉 산책길이 있고, 경안천이 흐르는 길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운동시설도 마련돼 있다.
이제부터 엄선된 자재와 노하우가 집약된 타운하우스 ‘용인 위드포레’로 들어가 보자.
◇위드포레 견본주택 둘러보니
2~3층 구조인 용인 위드포레에는 집집마다 잔디마당이 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열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근처에서 텃밭을 가꿀 수도 있다. 은퇴 후 아늑한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향긋한 나무 냄새가 기자를 맞이했다. 용인 위드포레는 목조주택이다. 이날 동행한 이민우 위드포레 팀장은 “일반 목재보다 강도와 내구성이 높은 굵은 편백나무를 버팀대로 사용했다”며 “외벽에는 항상 공기가 흐르는 환기층을 설치해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바닥재는 강마루 대신 강화마루를 사용했다. 새집증후군을 없애기 위해서다. 강마루를 깔려면 본드를 사용해야 하는데, 알레르기가 있는 예민한 사람들은 건강 문제를 겪기도 한다는 것. 때문에 위드포레는 끼워 맞출 수 있는 강화마루를 선택했다. 먼저 기초 바닥 위에 콘크리트 독을 막아주는 비닐을 깔고, 접착제 없이 강화마루를 끼워 맞추는 식이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 다용도실, 화장실이 있다. 거실에서는 한쪽 벽면 전체가 커다란 창문으로 돼 있어 바깥 풍광이 그대로 시야에 들어온다. 반대쪽은 주방이 보이는 구조다. 주방에서는 원목으로 만들어진 싱크대가 눈길을 끈다. 시중에서 원목 싱크대를 구입하려면 가격이 상당할 텐데, 위드포레는 자체적으로 만들어 비용을 절감했다. 싱크대뿐만 아니라 수납장도 모두 원목으로 만들었다.
2층은 침실과 서재, 드레스룸, 화장실로 꾸며져 있다. 먼저 침실을 둘러봤다. 방에는 합지로 된 벽지를 사용했다. 보통 실크벽지를 바르는데, 목조주택에선 나무가 숨을 쉴 수 없어 잘 쓰지 않는다고 했다. 2층 화장실은 가족용이라 1층과 달리 욕조가 설치됐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문이 두 개다. 한 곳은 드레스룸과 연결됐고, 다른 문은 서재 쪽을 향해 있다. 화장실로 가는 동선을 최소화한 것이다. 서재는 필요에 따라 다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3층에는 침실과 홈시어터룸, 화장실이 있다. 침실 구조는 2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홈시어터룸은 임의로 꾸민 것이라고 했다. 침실이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집 안에 작은 영화관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은 1층과 같은 개인용이다. 1층에서 3층까지 오르는 계단에는 나무로 된 핸드레일이 설치돼 있다. 덕분에 고령자도 힘들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민우 팀장은 “그동안 도심 속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층간소음이나 협소한 주차공간 때문에 이웃 간 크고 작은 언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면 용인 위드포레는 이런 문제를 말끔히 해소해준다”고 말했다.
◇위드포레가 목조건물인 까닭
용인 위드포레가 목조주택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목조건물은 불과 바람에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화기에 강한 두꺼운 목재를 사용해 불이 내부로 미치는 것을 막아주고, 강풍으로 지붕이 들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서까래를 쿠라철물로 보강했다.
목조주택은 실내온도도 적절하게 맞춰준다. 습도가 높아지면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하면 수분을 방출하는 기능도 한다. 산림욕에서 얻을 수 있는 피톤치드 효과도 선물한다. 나무가 방출하는 특유 성분인 피톤치드는 심신을 정화하며 체내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줘 숙면에도 좋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안심구조 시스템도 특징이다. 굵은 편백나무 버팀대를 사용해 내진성을 높였고, 중목구조로 건물을 지어 원목 인테리어 효과를 냈다. 중목구조는 두꺼운 원목을 사용하는 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데, 용인 위드포레는 대규모 단지라 대량 발주를 통해 단가를 낮췄다.
용인 위드포레는 도심 속 생활과 확연하게 다른, 전원생활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생활을 선물한다. 이와 함께 100년, 200년이 지나도, 그 이상 주택을 존속시킬 수 있는 주거공간을 만드는 게 용인 위드포레가 추구하는 타운하우스의 가치다.
[Mini Interview] 조재원 위드포레 총괄분양본부장
◇중소형 평형대로 조성된 이유는
타운하우스는 원래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급 빌라로 공급됐다. 당시 여유 있는 은퇴자들이 선호하다 보니 대형 평형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합리적인 가격의 중소형 평형대가 인기를 끌고 있다. 환금성 부분에서도 긍정적이다. 중소형 평형대는 상대적으로 대형 평형대보다 매매가 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단지 내에 관리실을 따로 뒀다는데
직접 마당의 잔디를 깎고, 수도 배관을 고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가장 큰 단점은 보안이다. 하지만 타운하우스가 업그레이드됐다. 관리실을 두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적지 않은 관리비가 문제였지만, 용인 위드포레 같은 대규모 단지는 세대당 내는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이곳 관리비는 한 달에 8만 원 정도다.
◇타운하우스는 보안에 취약하다는데
일반 타운하우스는 밤이 되면 모든 빛이 사라진다. 길에 가로등을 설치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용인 위드포레는 곳곳에 가로등과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입주자의 안전을 챙겼다. 이 역시 대규모 단지라 가능한 일. 이외에 외부인의 출입을 단속할 수 있는 차단기 시스템도 조만간 구축할 예정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이 있는지
용인 위드포레에 입주한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당도 운영할 계획이다. 단지가 넓기 때문에 경로당까지 걸어가기 어려운 어르신이 계실 것이다. 직접 자가용을 몰고 경로당에 가는 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셔틀버스는 경로당뿐만 아니라 인근 생활편의시설까지 운행한다.
제가 사는 곳은 나이아가라 폭포 가는 길목의 인구 20만 명이 사는 도시입니다. 온타리오의 많은 주택지처럼 계속 인구가 팽창해 집값이 많이 오른 타운입니다만 제 주거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큰길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건물의 콘도를 구입했던 게 6년 전인데 한적하고 운치 있는 동네를 떠나 큰길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결심한 것은 결코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쾌적한 동네가 아니어서 망설이기는 했지만 수년 전 과감하게 결론을 내렸던 이유는, 제 연령대의 여성들에 비해 건강이 빨리 나빠지고 있어 시니어(senior, 65세 이상의 노인을 칭함)가 될 때를 위한 필수 준비를 서둘렀던 것입니다.
모든 편리한 시설들이 가까이 있습니다. 가정의 병원과 치과, 약국, 우체국, 급할 때 필요한 일용품과 간단한 식품을 살 수 있는 슈퍼마켓, 버거킹 햄버거 숍까지 근처 500m 거리에 있어서 차를 더 이상 몰 수 없게 되었을 때 걸어서 가거나 휠체어를 밀고도 갈 수 있습니다. 1km 떨어진 곳엔 백화점이 있는 쇼핑센터와 거래 은행도 있습니다. 큰길 건너편에는 예술대학교가 있어 학교 입구에 여러 곳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들이 있고, 그 버스들은 대개가 버스로 5분 거리인 GO(Government of Ontario) train 기차역으로 연결되어 있어 근처 도시와 토론토까지 한두 시간 정도면 승용차 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
캐나다 노인복지혜택은?
시니어가 된 후 처음으로 캐나다에 사는 시니어들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시에서 받는 일반 혜택은 전혀 없고 한국처럼 노인정 같은 편리시설은 인구 20만 명인 이 도시에 오직 두 곳인데 거리가 멀어 자동차 없이는 불편합니다.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나 수업료는 무료가 아니며 치매 환자들을 도와주는 데이케어센터(Daycare Center)도 없습니다. 집에서 오갈 수 있는 시니어 데이케어센터가 아니라 아예 치매 환자만 모여 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연방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OAS)과 시니어이지만 저축성 국민연금(CPP)을 적립하지 않았거나 다른 소득이 없는 저소득층 시니어에 대한 보조금 액수도 알아봤습니다. 현재 캐나다 국적자이거나 영주권자 시니어가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은 최고 한도액이 한 달에 613.53달러(약 55만 원)이지만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으로 40년 이상 캐나다 거주자만이 최고 한도액을 수령할 수 있으며 거주기간에 따라 수령액수가 달라집니다. 25년을 거주한 저는 현재 242.98 달러(약 21만 원)를 받고 있으며 정부 보조금은 일절 없습니다. 저소득층 시니어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GIS)은 노인기본연금과 보조금을 합해 최고 한도액이 1529.95달러(약 136만 원)입니다.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활 어려워
노인기본연금 수령액이 적든 많든 소득이 전혀 없을 경우의 총합계이며 별도의 소득이 있다면 보조금 액수는 적어집니다. 정부 보조금 최고 한도액은 916.38달러(약 81만3000원)입니다. 그리고 저축성 국민연금의 최고 한도 수령액은 한 달에 1200달러 정도이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적립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연금은 소득으로 계산되어 정부 보조금 수령액이 적어집니다.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매월 정부 보조금과 노인기본연금을 합한 최고 한도 수령액 1529.91달러(약 136만 원)의 연금과 저축성 국민연금 최고 한도 수령액 1200달러로 캐나다에서, 특히 GTA(Great Toronto Area) 토론토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이 경우는 보조금이 줄어듭니다. 제 경우는 저축성 국민연금 수령액이 약 600달러여서 정부에서 받는 노인기본연금과 국민연금 합계는 842.98달러입니다.
그래서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산이나 저축이 없는 시니어들은 연금으로 살 수 없어 집을 담보로 역대출을 받아 살아가든지 집을 팔고 정부 보조 임대 아파트로 옮겨가야 하는데 신청에서 입주까지 10년이 걸립니다. 이런 경우에도 무료가 아닌 연금 액수와 소득에 비례한 임차료를 정부에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주택 소유자가 아니거나 수입원이 없거나, 저축한 돈이 없는 시니어들은 홈리스가 되거나 빈민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서민층의 오래된 아파트 임대료가 한 달에 1800달러(방1, 거실1, 부엌, 욕실), 2000달러(방2, 거실1, 부엌, 욕실)인데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니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식품비도 30%나 올랐습니다(온타리오 한국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식품비는 2년 전에 비해 40~50% 상승). 지하철과 버스 이용료도 무료가 아닙니다.
캐나다의 IT 통신요금은 비싸기로 악명 높습니다. 제 경우 핸드폰 수수료는 8기가 사용료로 매월 82~100달러, 가정용 인터넷은 제한된 TV 채널 사용료와 전화비를 포함해 125달러를 지불합니다. 제가 받는 노인기본연금이 통신 시스템 사용료로 모두 쓰이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콘도 관리비는 매월 1000달러, 주택세는 1년에 3000달러 정도 됩니다. 여기에 식품비, 약값, 보험료, 유류, 차량 유지비 등까지 더하면 아무리 절약해도 정부에서 받는 연금으로는 매월 수천 달러 적자입니다. 그러니 임대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든 자가 소유의 콘도가 있든 상관없이 정부가 저소득층 노인에게 주는 최고 한도액 보조금으로는 생존이 어렵습니다. 물론 직장연금(소방서원이거나 공무원, 은행 같은 대기업의 경우)을 많이 받는 시니어는 형편이 좋겠지만요.
의료 서비스는 무료이지만 시니어들도 예외 없이 MRI·CT 촬영, 암 검사 등을 하려면 6개월~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문의와의 상담은 최소 3~6개월 정도 걸리며 수술은 1~2년씩 차례를 기다려야 합니다. 약값도 개인이 지불해야 합니다. 1년에 한 번 시력검사, 폐렴·대상포진·독감 예방주사, 건강검진이 정부에서 무료로 주는 혜택이지요. 긍정적인 일은 슈퍼나 백화점이 일주일에 하루 시니어를 위한 날을 정해 5~10%의 할인 판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맥도널드는 시니어에게 커피를 1달러에 판매합니다.
복지국가로 소문난 캐나다이지만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캐나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시니어의 실상은 녹록지 않습니다. 추운 겨울이면 시니어들이 모여 놀 곳도 없는지 특히 남성들이 맥도널드 숍이나 백화점 입구 소파에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한국에 사는 시니어들만 힘든 게 아니고 한국에만 빈곤층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세계 어느 국가를 가도 복지국가 캐나다처럼 빈민도 있고 거지도 있고, 힘없고 돈 없는 퇴직한 노인들이 길거리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풍경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래도 한국에는 지하철 연결이 잘되어 있어 시니어들이 무료 지하철을 이용해 갈 곳도 많아 보였습니다. 또 빠른 의료 시스템,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 보조금과 간병 도우미를 쓸 수 있는 혜택이 있고, 노인 무료 데이케어센터도 있으니 여기 캐나다보다 훨씬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것 같아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고생만 많이 하고 이젠 젊은 세대들에게 부양은커녕 존경도 받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캐나다에 살고 있지만 저 역시도 부모 봉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삶을 다 바친 후 이 시대까지 숨차게 달려온 코캐네디언(Ko-Canadian) 시니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씁쓸하지만 이제 그 슬픔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오마리
미국 패션스쿨 졸업, 미국 패션계 디자이너로 종사.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구름 따라 떠돌며 구름 사진 찍는 나그네로 활동 중.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얼굴에 주름이 늘고 거동도 불편해진다. 고급 실버타운 시설을 찾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이 생활해온 주거공간에서 노후를 보내길 원하는 시니어들도 있다. 오랜 세월을 보낸 사회적 범위 안에서 생물학적으로 약해진 노부부의 선택은 인테리어를 활용한 ‘기존 주거공간의 변신’으로 향한다.
사진 므나디자인스튜디오 도움말 박경일 대표
집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외부와 내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해야 한다. 특히 시니어를 위한 주거공간은 내부의 안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시니어를 위해 새로 태어난 경기도 용인의 노부부 주거공간을 살펴봤다. 242㎡ 규모의 아파트. 안전뿐만 아니라 미적, 실용적 부분까지 챙긴 시니어 하우스다.
2018년 11월 준공된 이곳은 공간구조뿐만 아니라 거창석, 실크벽지, 벤자민무어페인트, 스타코, 애시탄화목, 강마루, 2tec2, 무늬목 등의 자재로 80대 노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이 제한된 할아버지를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이들 부부의 생활 패턴에 맞춰 주거공간을 새롭게 꾸민 박경일 므나디자인스튜디오 대표의 설명을 들어봤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품은 공간
이들 노부부의 경우 할머니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거동이 힘들어 휠체어를 이용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부부는 요양보호 시설에 가는 걸 원치 않았고 현재 사는 주거공간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걸 선택했다. 또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개인공간을 필요로 했으며 실내에서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기대했다. 안전성과 실용성이 녹아든 디자인을 기본적으로 원했다. 노부부의 요구를 반영한 인테리어에는 설계 1개월과 공사 2개월, 총 3개월의 기간이 소요됐다. 비용은 가전제품을 포함해 약 2억 원이 들었다.
먼저 실내 콘셉트는 한국적인 분위기를 따랐다. 10년 후쯤 노부부의 딸이 지내야 할 집이었기에 양측의 취향을 모두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적인 분위기를 고수하는 노부부와 동양화를 전공한 딸. 의외로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졌다. 기존에 부부가 사용하던 고풍스런 가구를 최대한 살려 동양의 멋이 느껴지는 오리엔탈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동양화를 벽에 걸면 분위기가 한층 살아날 수 있도록 인테리어 감각도 더했다. 박 대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옛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면서 “부부의 손때가 묻은 가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설계했다”고 말했다.
◇실내 이동거리는 최대한 짧게
할아버지를 위한 공간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컴퓨터가 있는 서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서재에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침실로 가는 동선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잠자리에 들려면 서재에서 나와 옆방인 침실로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서재와 침실 사이의 벽을 없애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불편한 다리로 힘들게 걷지 않아도 침대로 바로 갈 수 있도록 편의성을 살렸다. 동시에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겪던 불편함도 없앴다. 나이가 들면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게 되는데, 침실에서 나와 공용 화장실을 써야 했다. 하지만 벽을 없앤 후에는 서재 안에 있는 화장실로 바로 이동할 수 있어 이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됐다. 화장실로 향하는 위치에는 밤에만 작동하는 센서등을 설치해 동선을 밝혔다. 눈이 부셔 잠이 깨지 않도록 3와트 이하의 등을 선택했다. 또 서재에 있는 텔레비전을 침실에서도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만족감을 더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했지만 천천히 걸어다는 정도의 운동을 하고 싶어 했다. 텔레비전이 있고 소파가 있는 거실의 용도는 그대로 살리고 할아버지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핸드레일을 이용해 동선 공간을 살려주고 발코니를 통해 외부와 공유하는 느낌을 받도록 했다. 박 대표는 “마치 밖에 나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특별한 공간으로 꾸미려고 신경 썼다”며 “어르신들은 새로운 동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좁더라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꾸미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구석까지 꼼꼼히 신경 쓴 배려
주거공간 벽면에 설치된 핸드레일이 시선을 끌었다. 사실 박 대표의 설명을 듣기 전까진 핸드레일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레일 안쪽에 간접등을 넣어 누가 봐도 조명처럼 보였다. 집 안에 핸드레일이 있으면 미관상의 단점이 있지만 오히려 화려함을 뽐냈다. 또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곳에는 촉감 좋은 애시탄화목으로 핸드레일을 만들어 노부부의 안전을 배려했다.
바닥의 단차를 없앤 부분도 눈길을 끌었다. 할아버지를 위한 배려였다. 턱이 있으면 휠체어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고 행여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어 모두 제거했다. 현관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는 곳에는 턱을 없애는 대신 천장에 조명을 설치해 현관과 실내의 경계를 확실히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편하게 앉아 신발을 신고 벗을 수 있도록 벤치를 준비했다.
다만 욕실에는 문턱을 설치하고 여닫이문을 달았다. 시니어 하우스의 경우 여닫이문보다는 미닫이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 대표는 “미닫이문은 소음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닫이문을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를 줄이려면 문과 틀의 간격을 더 넓혀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방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부라고 해도 화장실을 이용할 때 민망할 수 있다는 것. 또 청소를 하더라도 턱이 있기 때문에 물이 넘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문을 바깥쪽으로 열도록 해 천장에 맺힌 물방울이 문으로 떨어지거나 슬리퍼가 걸리는 문제도 없앴다. 이와 함께 욕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넓히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화강암의 일종인 거창석(대중목욕탕 바닥재)을 사용한 것도 특별해 보였다. 욕실 주변으로도 핸드레일을 설치했고 욕조 대신 히노키탕을 매립해 언제든 피로를 풀 수 있도록 꾸몄다.
주방에는 거실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놓고 이를 통해 거실과 마주하며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주방은 할머니에게 맞는 치수로 설계했으며 주방 바닥은 섬유의 질감을 살린 비닐바닥재를 사용했다. 또 위험한 가스레인지는 떼어내고 인덕션을 달았다. 조도를 더 확보하고 화재감지기까지 설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품격을 담은 나만의 생활공간
할머니의 공간도 품격 있는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했다. 기존의 공간은 응접실과 파우더룸, 침실이 따로 있었으나 이곳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침실에서 파우더룸을 지나 응접실로 향하는 구조로 재설계됐다. 우선 응접실은 나무로 된 평상 느낌의 마루를 설치해 외부와 내부를 연결해주는 공간으로 바꿨다. 바깥 풍경이 자연스레 실내로 스며들어 외출을 하지 않아도 밖에 나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응접실은 작은 사랑방 같은 느낌으로 손님들과 앉아서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지만 이후 할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할 때는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 이를테면 요양보호사가 머무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침실에 문을 설치해 할머니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는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박 대표는 “이 주거공간의 특징은 가변성이다. 시간이 지나 몸이 더 불편해지면 언제든지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이는 벽을 없앤 또 다른 이유인데, 벽을 터 넓어진 통로 한쪽에 경사로를 확보하면 몸이 불편해도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는 시니어 하우스가 있다. 이런 집은 모두를 위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미적인 부분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감각적인 홈 스타일링을 위해 신경 쓰고 있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집을 만들기 위해 더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니어 하우스 ‘三不’
미닫이문 미닫이문에는 문을 부드럽게 닫을 수 있는 댐핑기능이 적용된다. 문이 닫히는 시점에 마찰력을 더해 속도를 줄이는 기능인데, 손이 끼어 다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을 완전히 닫거나 열 때 힘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 문을 선택할 때도 기력이 부족한 어르신을 배려해야 한다.
너무 밝은 조명 조명은 최대한 광원을 안 보이게 하는 게 좋다. 매립등이나 간접등이 도움이 된다. 균일한 조도로 아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국부조명도 음영이 생기기 때문에 지양하는 편이 좋다. 또 거실의 화려한 샹들리에도 어르신에게는 눈에 피로감을 줄 수 있다.
대리석 자재 나이가 들면 아무리 안전한 공간이라 해도 넘어질 수 있고 크게 다칠 수 있다. 따라서 미끄럽고 단단한 대리석으로 품격을 살리기보다는 코르크 재질의 마루를 바닥재로 사용하는 게 좋다. 특히 무릎이 불편한 어르신이 있다면 6㎜ 두께의 장판이 적합하다. 집은 예술작품이 아니다. 집의 본질을 왜곡해선 안 된다.
☞박경일 므나디자인스튜디오 대표
동대문 위메프 오프라인 1호점, 청담동 마담주 – Premium Fruit Boutique, 가로수길 필그림 커피, 마두동 강촌마을 아파트, 하계동 장미아파트 외 수도권 아파트 다수 설계.
오탁번의 시는 쉽고 통쾌하고 재미있다. 술술 읽혀 가슴을 탕 치니 시 안에 삶의 타성을 뒤흔드는 우레가 있다. 능청스러우나 깐깐하게 세사의 치부를 찍어 올리는 갈고리도 들어 있다. 은근슬쩍 염염한 성적 이미지들은 골계미를 뿜어 독자를 빨아들인다. 시와 시인의 삶은 정작 딴판으로 다를 수 있다. 오탁번은 여기에서 예외다. 그의 시와 삶은 별 편차 없이 닮았다.
올해로 77세. 어느덧 으슥한 노경에 접어들었지만 오탁번의 시작(詩作) 활동엔 휴업이 없다. 작년에는 시집 ‘알요강’으로 ‘목월문학상’을 받았다. 나는 ‘알요강’을 펼쳐드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앞 페이지에 나오는 ‘서문’부터가 ‘오탁번표’ 해학의 폭죽이지 않은가. 그지없이 짤막한 서문의 내용을 보시라.
“오탁번 새 시집 ‘알요강’이 나온대/아직 안 죽었나?/죽긴, 요즘도 매일 소주 한 병 깐대/정말?”
오탁번과 마주앉은 곳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산촌에 있는 원서문학관 작업실. 그는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했다. 폐교를 손질해 꾸민 원서문학관은 퇴직 이후의 삶이 실린 창작공간이다. 용인시에 있는 시니어타운의 자택과 이곳을 오가며 지낸다. 날마다 소주 한 병을 눕힌다고 서문에 드러냈지만, 이곳에서 그가 하는 일은 아마도 주로 창작일 게다. 여차하면 흥겨워 한잔 마시듯이, 여차하면 설레어 작품에 손을 대는 사람. 그게 오탁번이니까. 이즈음엔 손에 쥔 물처럼 새나가는 세월에 눈이 가고 마음이 닿아서일까? 그가 나이 얘기부터 꺼낸다.
“이 나이 먹도록 내가 살아 있을 줄 몰랐다. 다행히 남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고 살았다. 밥값은 하고 살았거든. 그렇더라도 이건 너무 오래 산 거 아닌가?”
“장수시대다. 오래 살고 싶지 않으신가?”
“얼마 전,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 김유정이나 이상이나 다들 30세가 못 돼 죽었다고. 선생 자신도 30세를 넘겨 살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뭔가 공감되는 기분이더라. 오래 산다는 거, 그거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게 많거든. 요즘 이빨이 흔들린다.”
“동양의 정신 중에는 노경을 삶의 절정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육체적 노쇠를 빼고 따지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꽃으로 말하면 가장 활짝 핀 상태가 노경이지 않겠는가. 핀 꽃이 마침내 지는 게 죽음이고. 내가 바라는 건, 통째 톡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순간의 미학 속에 지고 싶다는 것이다.”
“나이 들며 찾아오는 태도의 변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
“난 담낭절제수술을 받아 쓸개 빠진 인간이 됐다. 이제 줏대 없이 그냥저냥 살면 된다. 그동안 줏대 있는 척 사느라고 무지무지 애먹었다고. 어휴! 속 시원한 거라. 늘그막에 내 인생의 표리부동을 청산했거든.”
특유의 화통한 언설이 흘러나온다. 언설만이 아니라 오탁번의 시는 흔히 자신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어 허울과 가면을 잡아내는 자가심문의 시어들로 직조된다. 그는 일찍이 시라는 차가운 수사관 하나를 고용, 자신을 미행하게 하고 불쑥불쑥 불심검문을 하도록 하명해둔 것 같다. 시로써 자신을 치고 때리니 말이다. 공자가 설한 뉴스 제목을 가져오자면 ‘신독’(愼獨, 남이 보지 않더라도 엄히 자신의 행세를 점검하라는 뜻)이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종교
문학은 재능과 열정의 폭발이 있고서야 가능하다. 오탁번의 문예적 발화(發火)는 이르고 화려했다. 20대 때 중앙지 신춘문예에 동화를 필두로 시와 소설까지 연달아 당선, 문단에 화제를 뿌렸다. 이후 소설에 주력하다 중년 즈음부터 시 쓰기에 몰두해왔다. ‘제명대로 못살 것 같은 소설 창작의 어려움 때문’이었다지. 시란 그에게 무엇일까.
“에헴! 하고 목에 힘주어서는 가능할 수 없는 장르가 시다. 자기 부끄러움에 관한 고백! 내겐 시의 의미가 그렇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악마적인 걸 다 까발리는 행위가 시이고 문학이다.”
“선생은 지난날 글 쓰는 사람의 처절함과 맹렬함을 자살폭탄조에 빗대었다. 지금도 그런 생각 하시나? 쉽게 읽히는 시로 보자면 한칼에 내려치듯 단번에 가볍게 써내려갈 것만 같은데.”
“한칼에? 어림없는 얘기다. 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벼려 시를 쓰는 사람이지 않은가. 늘 사전을 찾아가며 시를 짓다 보면 하염없이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진통을 자심하게 겪으면서 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창작이란 어려워 코피를 쏟으며 쓴다. 문학뿐이겠는가? 삶 자체도 마찬가지. 난 실로 코피를 흘려가며 살아왔다. 아이고, 이런 나를 두고 남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았다고 오해를 하네.”
“조지 오웰은 작가의 창작 동기 네 가지를 꼽았는데 순전한 이기심, 즉 명예욕을 첫째로 꼽았다. 어떻게 생각하시나?”
“명예는 멍에의 다른 이름 아닌가? 난 명예를 얻기 위해 문단의 패거리 놀음에 끼거나 눈웃음을 판 적이 없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은 가지고 산다. 그런 게 없다면 어떻게 쓰며,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러나 오탁번의 시에 숨겨진 보석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뭐 어쩌겠나? 보석을 몰라보는 사람만 손해볼 뿐이다.”
“좋아하는 시인은?”
“시라는 건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 같은 것이다. 거기에 돌을 얹어 거미줄을 끊어버리는 식의 시를 쓰는 시인이 흔하다. 그런 점에서 정지용은 단연 빼어난 시인이지. 그의 시 ‘백록담’을 보라. 기막힌 수작이지 않은가. 고어와 토속어를 빈번히 사용해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한 백석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작업실 밖 뜰엔 겨울나무들. 거머쥔 것 하나 없는 나목들이 수도승처럼 허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탁번은 이곳에서 지내며 많은 나무를 심었고,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이젠 심고 가꾼 게 너무 많아 관리가 버거울 지경이다. 저만치 사방에서 성벽처럼 에워싸고 범람하는 산경(山景)마저 일쑤 허허로운 건,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는 사람과 달리 자연은 순환과 회춘을 일삼아서일 테지. 그러나 자연이 주는 도저한 감흥은 노시인의 정신적 체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별에 닿을 시, 산야에 맞먹을 시를 쓰고 싶게 하는 열망의 원천일지도.
그런데 오탁번의 삶과 문학의 진정한 원천은 작고한 어머니다. 우리는 흔히 신성한 신전에서 읍소하거나 백두산이 드높아 자세를 낮추지만, 오탁번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고개를 숙인다. 뜰 한쪽, 햇살이 들이치는 자리엔 어머니의 흉상을 모신 기념비가 고이 세워져 있다.
“어머니는 나의 종교다. 단순히 나를 낳아 길러주신 모성을 향한 고마움 때문이 아니다. 나의 상상력과 몽상의 원천이기도 했거든.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해 소나무 속껍질로 허기를 달랬다. 그 극도의 가난 속에서도 어머니는 밤이면 필사본 심청전 같은 걸 읽으시더라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자란 과정 자체가 나의 문학공부였던 셈이지.”
“고향에 문학관을 꾸린 건 결국 어머니가 못내 그리워서?”
“그렇지. 나에겐 스승 이상의 길이자 현재진행형의 신앙이니까. 문학청년 시절의 어느 날, 술 마시고 미쳐 한강에 빠져 죽으려 했다. 그런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죽을 수가 없던걸. 요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 이거 어떡해요?’ 그러면 어머니가 응답하시더라. 텔레파시로.”
“어떤 응답을?”
“‘너는 큰 인물인데 무얼 망설이느냐, 네 뜻대로 밀어붙여라!’ 매번 그런 답이 돌아온다. 일찍이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너는 큰 인물이 될 거야!’라고.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이라면 누구나 범죄 없이 잘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글로 자기 어머니를 비난하거나 이상하게 그리는 작가를 증오한다.”
“물적 간난(艱難)의 체험 역시 창작의 자산일 수 있다. 그러나 가난은 괴롭다. 가혹한 가난에 시달린 성장기에 느낀 감정의 기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분노의 감정이 컸다. 그래서 대학생 때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서너 번 징병 거부를 했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신성한 의무라 하지만, 내겐 지킬 게 하나도 없었다. 집도 땅도 없다, 국가가 나를 위해 해준 게 무엇이냐, 그런 원망으로 죽을 셈 치고 입대를 거부했지. 나중에 뒤늦게 병역을 마치긴 했지만 울분이 들끓더군.”
히말라야 설산에서 글 쓰고 싶다
오탁번이 냉장고에서 꺼내온 술병을 탁자에 올리더니 잔을 채운다. 이슬처럼 투명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소주다. 큰 공 들이지 않고도 판타지의 회랑을 산책할 수 있게 하는 게 소주 한 병이다. 오탁번은 주량보다는 음주가 주는 감각의 광량(光量)에 심취하는 술꾼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일독 이호색 삼음주(一讀 二好色 三飮酒)라! 이건 제주 유배에서 풀려난 시절에 추사가 쓴 현판 글이다. 이것의 원전은 청나라 ‘소대총서’(昭代叢書)이지만, 독서와 색과 술을 즐길 만한 것들 중에서 으뜸으로 쳤으니 인생의 정곡을 찌른 게 아니겠는가. 음주를 세 번째에 둔 건 술로 자칫 망가질 수도 있어서일 거라 본다.”
“반면에 독서를 첫손에 꼽은 건, 놀 때 놀더라도 독서를 먼저 해 정신부터 채우라는 뜻일 것 같다.”
“호색의 색을 반드시 섹스로 읽을 일도 아니겠지. 색즉시공의 그 ‘색’과도 무관하다곤 할 수 없을 테니까.”
“술이 아니더라도 삼라만상에 취하기 쉬운 게 시인이다. 선생 역시 자연에 취해 지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늙다 보니 내가 이젠 어린애 다 됐다. 순진성, 천진성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는 것이지. 내가 사물을 찾아 바라보는 게 아니고, 어린아이처럼 그저 사물이 보여주는 그대로 보게 되더라고. 일부러 찾을 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는 얘기다. 이거 아는가. 갓난아이는 촛불을 보면 예쁘니까 만지고 싶어 하고 먹고 싶어 한다. 촛불의 아름다움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갓난아이의 마음. 이게 바로 시인의 마음이다.”
노구에 서린 세월의 흔적이 좀은 쓸쓸하지만 카랑카랑한 결기와 시퍼런 촉은 여전하다. 안경 너머 핼쑥한 두 눈은 간간이 빛을 뿜는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시인의 시선은 나무를 밑에서 보는 게 아니라 독수리처럼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감히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낀다고 하면 건방진 소리이겠지만 이젠 일체의 것들에 감정이입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 무슨 힘으로 나리꽃 새싹은 굳은 땅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라오는가? 경이로워 새싹의 마음이 되곤 한다. 이젠 마음대로 별짓을 다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하나, 건강 문제엔 불편을 느낀다. 자다가 꼴깍 숨넘어가야 제일 좋을 텐데,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 허우적거리다 떠나게 되면 이는 치욕이지 않겠는가.”
훗날의 일을 미리 앞당겨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당장 문밖에 나가 무슨 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그러나 그 진상을 알 길이 없는 인생의 폐막에 그는 불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글쓰기라는 숙업. 그러고 보면 그의 불안은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종막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겠다.
“요즘 내가 구상하는 게 있다. 히말라야에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살아남는 날까지 설산을 바라보며, 일기 형식의 글을 쓰고 싶은 거다. 당신 생각엔 어떤가? 괜찮아 보이는가? 내가 떠난 뒤엔 책이 나오겠지.”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낮아지는 소득 수준과 부담해야 할 집세, 건강으로 좁아지는 생활반경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연금삭감 논의와 함께 노후자금 부족에 대한 경고등까지 켜지면서 불안감도 생기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나 고령자를 위한 여행 방법에 대한 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서점가에선 ‘탈출노인’ 인기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는 신간 ‘탈출노인(脱出老人)’이 인기를 얻고 있다. 논픽션 작가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가 쓴 이 책은 집세도 내기 어려운 부족한 연금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방사능 걱정이 없는 필리핀으로 이주한 부부에서부터, 90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여교사, 필리핀에서 만난 24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전직 경찰관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평균적인 무직 60~65세 노인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외에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더욱 조명받았다. 이 논란은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일본 국민의 시위까지 불러일으켰다.
필리핀은 물가가 낮고 체류가 쉬워 일본인들에게 노후를 보내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의료 인력도 풍부해 일본인 대상의 실버타운도 조성됐다. 일본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필리핀 체류 일본인 수는 1만6570명에 달한다.
‘탈출노인’은 인기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후지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토쿄 한복판 실버타운 입주비용은?
일본의 고급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8월 1일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새 실버타운이 문을 열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실버타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참·케어(cham·care) 코퍼레이션의 ‘참 프리미어 그랑 쇼토(松濤)’다.
이 회사가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하며 건립한 이 실버타운은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갖췄다. 지상 3층 지하 1층에는 36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입주자를 위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입주자와 직원 비율은 1.5대 1로 직원이 바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는 셈이다. 의대 협조를 통해 치매 개선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재활전문 의료법인과의 제휴로 다양한 재활 서비스도 이뤄진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일식과 양식 이외에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매일 직원들이 입주자의 산책을 돕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야외 활동도 지원한다.
문제는 입주비용. 월 30만2400엔에서 95만2400엔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330만 원에서 10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교통 약자 위한 ‘여행개조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내 여행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말 그대로 교통 약자가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
지난 6월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간호여행서포터즈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여행사, 대학, 의료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령자나 장애인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방안 마련 논의를 했다. 이들은 노인과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개선뿐만 아니라 ‘간호 여행’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단체는 노인과 장애인의 여행을 돕는 도우미인 여행개조사(旅行介助士) 제도를 민간자격증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여행자의 보행 상태나 건강 등을 파악한 후 여행 기획부터 응급상황을 대비한 조사활동을 펼치고 몸이 불편한 고객의 여행 동행자 역할도 한다.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 전시회가 네 개나 열리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의 힙합 문화에서 발아한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 낙서화)와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거리 미술)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체전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서울숲 아트센터의 ‘반항의 거리, 뉴욕’이 있고, 개인전으로는 DDP의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잠실 롯데뮤지엄의 ‘케니 샤프, 수퍼 팝 유니버스’가 있다.
1980년대부터 활동한 이 전시회 작가들이 1950년대에 태어났으니 같은 세대인 시니어가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나와 같은 연대에 태어난 미술가들은 젊은 시절 어떻게 예술혼을 싹 틔웠을까. 이런 호기심만으로도 전시장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새로운 세대 미술이 이스트 빌리지에서 시작되었다”, “진짜 모마(MoMA, 뉴욕현대미술관)는 여기다”라고 외치게 했던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2019년에 돌아보는 감회가 새롭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공부도 해보니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 구절이 떠올랐다. 예술가들 중에는 끔찍한 환경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작가가 적지 않다. 그들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다 간 이유는 뭘까? 나는 젊은 시절 무엇을 꿈꾸고 행동했던가. 부끄러웠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감상안이라도 있다는 걸 감사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 전은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 미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 26명의 75점 작품, 73권의 ‘이스트 빌리지 아이’ 잡지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뉴욕 맨해튼 동남쪽에 위치한 이스트 빌리지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가난하고 젊은 예술가, 학생, 히피족이 모여 살았다. 자연스럽게 뉴욕의 반체제 문화 중심지, 예술운동 발생지가 되었고 항의와 폭동의 장소이기도 했다. 1980년대의 뉴욕 이스트 빌리지는 무분별한 재개발과 그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슬럼화되었다. 버려진 거리와 건물이 많았지만 가난한 젊은 작가들이 들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영화, 퍼포먼스, 비평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유와 패기로 ‘쿨’하고 ‘힙’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뒷모습에는 고단한 삶과 그늘이 있었다. 이스트 빌리지 예술가들은 계급·성별·인종 차별과 마약, 빈곤, 범죄, 동성애, AIDS 등의 사회적 문제를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 레이건 정부의 보수 정책과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확립에 발맞춘 예술의 상업화와 보수화에 자신들의 예술작품으로 저항했다는 것이 현재의 평가다.
‘19세 이하 관람 불가’라는 과격하고 논쟁적인 작품이 포함되었지만, 어느 전시장이든 그러하듯 흰 벽면에 질서 정연하게 전시된 작품으로,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분위기를 읽어내기는 힘들다. 또 하나, 한 작가의 대표작을 망라하는 회고전이 아니기에 시대와 작가의 일면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상주의’ ‘야수파’식으로 특징지을 수 없는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라 생각하면 좋겠다. 이 글에서는 일찍 세상 떠난 작가 7명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해본다.
1)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년)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려준 만화를 따라 그리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춘기에는 기독교에 심취했고, 15세 이후에는 록 음악과 마약, 섹스에 빠졌다. 뉴욕 시각예술학교에서 케니 샤프, 장 미셸 바스키아 등 이스트 빌리지 낙서 화가들을 만나면서 낙서화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당시 주류 미술계에 편입되지 않은 젊은 예술가들은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퍼포먼스와 전시회 등을 열면서 커뮤니티를 형성했는데, 이러한 이벤트는 주로 클럽에서 일어났다. 키스 해링은 그중 대표적 클럽인 ‘클럽 57’의 큐레이터로 다양한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32세에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 매해 개인전과 기획전은 물론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공공미술, 기업과의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키스 해링은 간결한 표현으로 드러내는 무거운 메시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대중이 이해할 수 없는 예술을 고급 예술이라 고집하는 건 자기 과시를 위한 허튼수작”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른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고유 표식인 ‘태그(tag)’를 적극 활용했다. 기어 다니는 아기, 비행접시, 하트 등이 그것이다. 단순하고 밝고 가벼운 만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기성 미술계와 보수 정권 비판, 퀴어, 에이즈, 마약, 인종 차별, 반핵·반전에 이르기까지 작품 주제가 광범위하다. 말풍선이나 그림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목을 달지 않아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했다.
2) 아치 코넬리(Arch Connelly, 1950~1993년)
도예를 전공했고, 10년 남짓 작가 생활 후 미국 전역을 덮친 에이즈로 43세에 사망했다. 에이즈로 사망한 수많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알려진 그는 2012년 회고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코넬리는 화려하지만 싼 재료(가짜 보석, 작은 꽃다발, 장식 조각, 반짝이, 동전)를 이용해 작업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재료는 사내답지 못한 ‘호모’의 것으로 여겨졌다. 잡지에서 잘라낸 벌거벗은 남성 모델 사진과 게이 섹스 사진을 싸구려 보석으로 장식하는 콜라주 작품 등 ‘남성적’으로 간주된 몸을 대상화하는 동시에 공격적이고 지배적인 남성성을 격하시키는 작업도 하며 규범적인 성 역할에 의문을 제기했다. 키스 해링, 데이비드 워나로비치, 마틴 웡 등과 함께 이스트 빌리지 게이 예술가 그룹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제도권 예술의 주류였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과 대비되는 코넬리의 작품은 과열된 미술시장에서 부풀려진 예술의 상업적 가치를 조롱하고 비판한다. 이러한 전략은 20세기 중반 미국 모더니즘 예술 이후 등장한 팝 아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그가 1981~1989년에 만든 7점의 ‘자화상’ 연작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 형상을 그리는 대신 직사각형, 타원형 캔버스에 가짜 진주, 반짝이는 장식 조각 혼합물을 가득 채운 자화상은 형식에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3) 마틴 웡(Martin Wong, 1946~1999년)
중국계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자랐다. 부모는 중국인이었지만, 아버지에게는 멕시코인 피도 흐르고 있어, 자신을 ‘중국-라틴계’라고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여 어머니의 지지를 받으며 13세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예를 전공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할 때는 히피운동에도 참여했다.
1978년 뉴욕에 왔을 때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텔 야간 짐꾼으로도 일했다. “내가 그리는 모든 것은 내가 보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라고 말한 그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시인 미겔 피네로와 함께 살며 작업을 했는데, 둘의 활동은 뉴욕에서 일어난 푸에르토리코계 미국인 예술운동 ‘뉴요리칸(Nuyorican)’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스트 빌리지 그라피티와 아시아 고미술품을 수집했고, 이스트 빌리지에 아메리칸 그라피티 뮤지엄을 설립하기도 했다.
마틴 웡은 1994년에 에이즈 진단을 받고 53세에 숨을 거뒀다. 그의 작품은 PPOW 갤러리에서 관리하고 있고, 어머니가 마틴 웡 장학재단을 만들어 미술가를 후원하고 있다.
작가 4명의 이야기는 후속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 옛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 남선창고 터 ▶ 동구 인물사 담장 (초량초등학교) ▶ 이바구정거장 ▶ 168도시락국 ▶ 168계단과 168모노레일 ▶ 전망대 ▶ 이바구놀이터와 6·25막걸리 ▶ 이바구충전소 ▶ 당산 ▶ 이바구공작소 ▶ 장기려더나눔센터 ▶ 스카이웨이전망대 ▶ 유치환의 우체통
부산의 산동네와 산복도로
한국전쟁 발발 두 달 뒤, 최후 방어선이었던 부산이 피란수도가 되었다. 전국의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려왔다. 전쟁 전 40여 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100만 명으로 늘었다. 전체 면적의 절반이 산지인 부산은 폭증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땅이 부족했다. 피란민들은 부산항과 부산역에서 가까운 산동네로 몰려들었다. 산비탈을 깎아 판잣집을 짓고 부두 노동자로, 자갈치 시장 일꾼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산동네에 정착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동네가 지금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영도 흰여울마을, 초량동 산복도로 마을 등이다.
부산에 산동네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산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山腹道路)가 생겼다. 실핏줄처럼 산동네를 연결하며 부산의 상징이 되었다. 부산 동구에서 산복도로가 처음 개통된 초량동에 부산의 근대 역사를 담은 ‘초량이바구길’을 조성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까꼬막이 천지삐까리’ 초량이바구길
초량이바구길은 부산역에서 산복도로까지 걷는 길이다. 짧은 코스이지만, 부산말로 “까꼬막(오르막길)이 천지삐까리다(아주 많다).” 급경사 계단에는 모노레일이 있으니 앞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산역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첫 목적지인 옛 백제병원에 도착한다. 백제병원은 1927년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개인 종합병원이었다. 폐원된 이후 여러 용도로 사용되다가 현재 1층에 카페 브라운핸즈백제가 입점했다. 근대 건축물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분에 인기를 끌고 있다. 1900년에 지은 부산 최초의 창고인 남선창고 터와 부산 동구의 근현대사와 인물을 소개한 초량초등학교(1937년 개교) 담장을 지나면, 이내 이바구정거장이 나타난다. 이바구정거장은 초량이바구길의 안내소로서 캐리어 보관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바구정거장 옆에 있는 바람개비로 장식한 계단에서 본격적인 까꼬막 여행이 시작된다.
초량이바구길의 명물 168모노레일
바람개비계단 끝에서 분식집처럼 생긴 168도시락국 식당이 반긴다. 추억의 도시락을 주문하면, 달걀부침을 얹은 양철 도시락과 진한 멸치 육수 맛이 일품인 시래깃국을 맛볼 수 있다. 시래깃국을 들이마시다시피 하니, 주방을 지키던 할머니가 빈 국그릇을 가득 채워준다. 배불리 먹은 밥값은 단돈 5000원.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168도시락국 식당을 비롯해, 이바구놀이터(영진어묵&공감카페),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 커뮤니티 센터인 이바구공작소 등에는 동구 지역 시니어가 근무한다.
168도시락국에서 조금 올라가면 경사 45˚의 168계단이 기다린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도 2016년,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 운행거리는 약 60m. 모노레일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168계단을 가리키더니 “이 계단이 부두 노동자들이 일하러 갈 때 다녔던 지름길이라. 계단 밑에 있는 우물도 봤지요? 할매들이 이 계단으로 물 뜨러 다녔는데, 한 계단 오르고 한 번 쉬고, 고생이 말도 몬했다꼬. 모노레일이 생겨서 얼매나 좋은지 몰라요. 여름에도 시원코. 저짝 아래 함 보소. 갱치가 울매나 좋은지”라며 추억 속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바구길 최고 전망은 이곳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전망대로 이어진다. 비탈에 층층이 자리 잡은 초량동 주택가와 멀리로는 황령산, 해운대 마린시티, 부산항과 부산항대교,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노레일 승강장 옆에 있는 이바구놀이터도 전망대만큼 훌륭한 뷰를 자랑한다. 이곳은 야경 감상에 최적화된 장소다. 통통하고 쫄깃한 부산어묵으로 끓인 어묵탕을 먹으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인정 넘치는 시니어 직원들이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음식이 식을세라 살뜰히 살피기도 한다. 이바구놀이터 맞은편 6·25막걸리에서는 막걸리와 해물파전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모노레일 대신 계단을 추천한다. 걸어 내려가면서 빵집, 아트숍, 카페, 갤러리, 추억의 물건을 파는 다락방장난감BOX, 김민부 전망대에 들를 수 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로 시작하는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작사한 이가 바로 시인 김민부다. 전망대와 마주보고 있는 이바구충전소를 지나 마을 수호신을 모신 당산 쪽으로 올라가면 산복도로와 만난다.
부산에서만 가능한 산복도로 투어
산복도로 턱밑에 자리한 이바구공작소는 방문객 안내센터 겸 주민커뮤니티센터다. 이곳에 근무하는 시니어 문화해설사에게 초량의 근현대사를 들을 수 있다. 이바구공작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장기려더나눔센터도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칭송받는 장기려 박사는 가난한 환자를 돌보는 데 일생을 헌신한 의사이며, 의료보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 장기려더나눔센터에서 유치환의 우체통으로 가는 길에 산복도로를 지나다 보면, 독특한 풍경이 눈에 띈다. 도로 폭이 좁아 건물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한쪽 차바퀴를 들어 주차하는 ‘개구리 주차’를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가에 위치한 유치환의 우체통은 부산에서 세상을 떠난 시인 유치환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2층 시인의 방에서 엽서를 써 3층 전망대에 설치한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에 배달된다. 다음 목적지로 가려면 유치환의 우체통 앞에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주변 명소 & 맛집
초량차이나타운
1884년 초량에 청국 영사관이 설치된 뒤, 중국 상인들이 점포를 겸한 주택가를 형성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3년 중국 상해시와 부산시가 자매결연을 해 상해문을 건립하는 등 상해 거리를 조성했다. 고기만둣집인 신발원이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일부 구역에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들어선 텍사스 거리가 있다. 두 곳이 한길로 이어져 있는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동구 중앙대로 196번길 8.
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에 여행 와서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지 않으면 서운하다. 부산역 근처에 있는 초량밀면과 본전돼지국밥이 소문난 식당이다. 밀면은 피란 온 이북 사람들이 원조 물자로 공급된 밀가루로 냉면을 대체할 음식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돼지국밥도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이용해 국을 끓인 것이 시초라 한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싼 재료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만든 피란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량밀면 동구 중앙대로 225, 본전돼지국밥 동구 중앙대로214번길 3-8.
돼지갈비와 돼지불백거리
초량은 돼지갈비로 유명하다. 한국전쟁 직후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부두 노동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초량시장에서 돼지갈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초량 육거리 부산고등학교 앞에 돼지불고기백반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정 프라이팬에 달달 볶은 매콤한 돼지불고기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초량돼지갈비골목 은하갈비 동구 초량중로 86, 초량불백거리 원조불백 동구 초량로 36.
초량1941
초량1941은 초량동 산복도로 위에 자리한 우유 전문 카페다. 1941년 지어진 일본 적산가옥을 개조했다. 이색적인 분위기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이 눈길을 끈다. 커피와 말차우유, 홍차우유, 커피바닐라우유, 동백우유 등 다양한 병우유를 판다.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쫀쫀한 생크림 속에 과일을 콕콕 박아 만든 과일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면 한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동구 망양로.
여행 정보
➊ 찾아가는 길 전철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백제병원(브라운핸즈백제)’ 또는 ‘이바구길모노레일’ 방면으로 이동
➋ 이바구자전거 시니어 도슨트(문화재 해설사)가 운전하는 전동 자전거에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도슨트가 이바구길의 명소 소개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산역 분수대 옆에서 출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출발. 예약 070-8224-0122/요금 어른 1만 원. 초등학생 7000원(미취학 아동 무료) 우천 시 운행하지 않음
➌ 이바구버스투어 가이드와 동행하는 이바구버스 투어 상품도 있다. 요금 어른 1만6000원, 초등학생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