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사각형 가로 90mm, 세로 50mm, 하얀 종이 위에 덩그러니 놓인 회사 로고, 나를 말하는 단 몇 글자의 직책, 조선시대라면 없었을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까지. 보통의 명함은 그러했고, 지난날 당신의 명함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평범한 명함은 그야말로 명함도 못 내밀 시대가 왔다. 은퇴 이후, 인사치레할 명함 한 장이 없어 마음이 헛헛하고 어깨가 축 처진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 끝났다 해서 그것이 곧 내 인생이 끝났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명함은 ‘직장 증명’의 도구가 아닌 나를 이야기하는 ‘존재 증명’의 매개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그 흔한 직장 명함에 대한 집착은 버리고, 독특하고 세련된 나만의 명함으로 자존심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지혜 기자
도움말 아날로그엔진
▲ 조립식 명함이 등장했다. 직사각형 명함 위에 비행기의 몸체, 날개, 프로펠러 등을 뜯어 조립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 자신을 드러내는 이미지만 있다면 테두리를 잘라 세우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명함을 만들 수 있다.
]
▲ 크루즈 여행이나 낚시 동호회 회원들에게 안성맞춤인 디자인이다. 모임에 나가 이런 명함을 건넨다면 대화 소재가 생겨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기축구회 스트라이커의 명함이다. 꼭 직장을 다니고 직업이 있어야만 명함을 만든다는 편견을 깬 사례다.
▲ 오른쪽 이젤은 위의 비행기와 같은 조립식 명함이다. 이젤 위의 미니 명함만 소장하고 다닐 수도 있고 책상이나 테이블 위에 이젤과 함께 세워둘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왼쪽 그림 액자 명함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넣고 다녀도 좋겠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중년 여성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는 레이스 명함이다. 파스텔 계열의 펄이 가미된 종이를 사용하면 훨씬 우아한 느낌을 줄 수 있다.
▲ 은퇴이후 자신이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강연에 사용되는 마이크를 메인 이미지로 활용한 디자인이다.
▲ 중장년의 세컨드라이프에 빠지지 않는 창업. 카페, 음식점, 부동산 등 창업 아이템과 연관된 이미지로 명함을 제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 오른쪽 명함은 연말 파티 등에서 초대장 대용으로 활용되는 디자인이다. 근사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러한 디자인 명함을 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왼쪽은 책갈피로 활용 가능한 명함이다.
▲ 증명사진이 들어간 명함이 조금 쑥스럽다면 캐리커처를 넣어보는 것도 좋다. 그 어떤 디자인보다 나를 잘 드러내는 명함이 될 수 있다.
▲조기 축구회 회원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디자인 명함이다. 활동하고 있는 팀이 있다면 선수들의 등번호에 맞춰 명함 선물을 해보는 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자동차 모양을 본 뜬 명함도 눈길을 끈다. 택시기사라 해서 명함이 필요 없을 것이란 생각은 버려라. 택시기사도 고객 관리가 필수인 만큼 독특한 명함으로 서비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날로그 엔진 장미지 대표
“명함은 곧 자신감이죠.”
은퇴하고 명함 디자인을 의뢰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감이 없어 보여요. 내세울 만한 직장도 없고, 이렇다 할 직책도 없어서일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명함에 더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명함을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어디에 다니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자신을 잘 드러낸 독특한 명함을 건넨다면 그 사람의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더 궁금해지죠. “명함이 정말 근사하네요.” “이런 명함은 처음 보는데요?” 등 명함이 대화 소재가 되고,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해요. 오직 나만을 위한 나를 대표하는 명함 한 장은 여느 회사의 대표 명함보다 더 빛나지 않을까요?
한국 서점은 독서 인구의 감소와 온라인 서점, 전자책 출판 등으로 중소형 서점은 거의 고사 직전이다. 그래서 불황이 아니라 공황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역시 1979년도에 4092개 출판사가 등록, 1997년도에는 최고 4612개사를 기록했다. 바로 이무렵부터 출판 불황이 시작돼 해마다 감소하더니 지난 2008년 3979개사로 30년만에 3000개로 줄어든 바 있다.
일본의 서점 수는 1999년 2만2296개가 있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에는 1만4241개를 기록해 15년 동안 8천 개 이상의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
일본 전국 91개 기업의 497개 점포를 대상으로 경영데이타를 수집해 분석한 2014년판 ‘서점경영지표’에 빠르면 점포 전체 판매고는 전년도에 비해 2.8% 줄어들어 17년 연속 감소 추세를 기록해 출판 불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일 양국이 함께 겪고 있는 출판계 침체와 서점 불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없는 것일까? 그 작은 힌트를 출판시장의 전쟁터이자 최전방인 서점 현장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감성을 판다, 발견하고 즐기는 재미
독서는 습관이라 한 번 떠난 독자는 돌아오지 않듯이 도서구매 역시 습관이기에 한 번 발길이 뜸해진 독자가 다시 서점을 찾기 힘든 법이다. 온라인에서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저렴한 전자책을 클릭해 읽는 ‘독서’는 ‘행위’일 뿐 ‘행동’이 아니다. 서점을 방문해 책 향기 속에서 직접 만지고 자신이 원하는 책과 만나 지갑을 열고 고생해 번 돈을 꺼내 지불하는 일련의 과정은 책 속에 담긴 지식과 정보 이상의 값진 경험인 것이다.
먼저 ‘놀 수 있는 책방’을 내걸고 1986년 나고야 1호점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 422개 점포를 갖고 있는 복합형 서점 ‘빌리지 방갈로(Village Vanguard)’ (www.village-v.co.jp)를 주목하고 싶다. 마치 서점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물찾기를 연상하게 만드는 각종 서적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상품, 그리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가득 넘쳐나 이곳을 찾은 고객은 유원지에 놀러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일반 서점과 달리 신간과 잡지에 치중하지 않고, 각 부문의 담당자 판단으로 대형출판사 이외의 중소 출판사 서적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발견하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방갈로가 즐비한 마을을 찾아 창고 속에 잠들고 있는 보물들을 찾아내는 기분, 모든 걸 내려놓고 편하게 재충전할 수 있는 짧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CC)가 운영하는 전국 CD 및 DVD 대여점 쓰타야(TSUTAYA)와 쓰타야서점(?屋書店)에서 서적 및 잡지 등을 판매하는 ‘쓰타야 북스(TSUTAYA BOOKS)’다. 전국 696개 점포의 2012년 판매액이 1097억 엔을 기록해 초대형 서점 기노쿠니야서점을 누르고 연간 서적 판매고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701개 점포의 잡지와 도서 매출이 전년 대비 5.9% 증가한 1109억 엔을 기록하면서 연간 서적 판매고의 정상을 지켰다.
프리미어 에이지 50~60대를 노려라
지난 2012년 12월 5일 도쿄의 다이칸야마에 오픈한 쓰타야서점은 널직한 매장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독특한 컨셉트 등으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컬쳐 컨비니언스 클럽(CCC)이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셀 수 없는 기획들의 총집대성이라고도 불리는 쓰타야서점은 총 3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숲 속의 도서관’을 내걸고 ‘프리미어 에이지’로 명명한 50~60대 시니어 층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들 세대의 기호에 맞춰 서점, 음반 및 영상 매장, 카페 등이 들어서 있으며, 일반 서점에서 많이 판매되는 비즈니스, 처세술 등의 분야는 취급하지 않는 반면 인문, 자동차·바이크, 손목시계, 잡지, 아트, 건축, 디자인, 요리, 여행이라는 아홉 가지 테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즉 ‘프리미어 에이지’ 세대의 관심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서적은 물론 관련 상품과 예술품 전시까지 ‘문화’를 다루고 있으며, 심도 있는 기획이 빚어내는 문화의 향기를 맡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각 매장에는 안내 카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영화 코너 바로 옆에는 여행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트래블카운터까지 마련되어 있다.
현재 50~60대인 고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자 추억과 전문성을 내세우고 야심차게 선보인 쓰타야서점은 아날로그적 정서가 물씬 풍긴다.
또한, ‘없는 영화가 없다’를 내걸고 다양한 장르의 신작은 물론 국내외의 클래식한 작품 등을 골고루 갖춘 영상 매장이 있으며, 재즈 클래식 록 등 1960~80년대 음악에 주력한 음반 매장은 대여 12만 장, 판매 1만 장의 규모를 자랑한다.
북소믈리에로 불리는 각 테마별 매니저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설명해 준다. 특히 직접 손글씨로 친절하게 내용을 소개하는 안내문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영상 매장에는 5명의 매니저가 영화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신간을 소개하는 것에서만 그치지 않고 손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려는 배려와 노력이 돋보인다.
츠타야서점은 활기를 잃어가던 지역 문화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츠타야서점이 들어서기 이전에 1500명 내외였던 1일 통행 인구는 주말에만 3만 명 이상으로 급격히 늘었으며, 많은 외국인들과 관광객들도 일부러 이곳을 찾아 새로운 도쿄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일본 통신원│이태문
1999년 와 2000년 으로 데뷔. 에도 작품활동.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스마트폰 메신저와 SNS를 통해 고백을 하고, 이모티콘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요즘세대. 헤어짐 역시 메신저로 이별을 통보하고, SNS 게시물을 지워나가며 연애의 종지부를 찍는다. 30~40년 전, 며칠 밤을 꼬박 새워가며 쓴 연애편지로 고백을 하고, 사랑하는 이를 위한 시와 노래를 지어 애정을 표현하던 그 시절 대학생들에 비하면 요즘 연애는 동기, 과정, 결과라는 시간이 매우 짧게만 느껴진다.
현대기술이 가져다준 이른바 LTE급 연애보다는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기다림이 주는 그 애틋한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1975년, 이화여대 최신덕 교수가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홍익대생 413명을 골라 실시한 ‘한국남녀대학생 데이트 실태’ 연구 조사를 통해 그리운1970년대 대학생들의 데이트 세계를 추억해 본다.
데이트 유형
데이트 유형을 살펴보면 남녀 모두 저학년 때는 학과 모임이나 단체미팅 등을 통한 ‘그룹 데이트’를 하거나 데이트 상대가 일정하지 않은 ‘랜덤 데이트’를 즐겼다. 졸업반에 가까울수록 일정한 상대와 연인관계로 접어드는 ‘스테디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학생들은 평균 한 사람이 그룹·랜덤·스테디 데이트 중 두 가지를 겸하는 ‘더블 데이트’를 했고, 여학생들은 이보다는 적은 수(1.5종류)의 데이트를 했다.
데이트 패턴
당시 대학생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35%) 만나 3~4시간 데이트를 즐기고(55%), 500원 이내의 데이트 비용을 지출하며(33%), 데이트 비용의 경우 대부분 남자가 부담(70%)했다. 각자 데이트 비용을 내는 형태의 ‘더치페이 커플’도 4% 가량 있었다. 데이트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남자를 가리켜 ‘18금’이라 하였고, 여자에게 데이트 자금을 부담시키는 남자를 ‘14금’, 전적으로 부담하는 남자를 ‘24금’, 심하게 여자를 따라다니며 돈을 물 쓰듯 하는 남학생을 ‘핸드백’이라 불렀다.
데이트 장소
여대생 열에 아홉(91.2%)이 연인과의 만남의 장소로 ‘다방’을 찾았다. 요즘 연인들이 카페에서 만남이 잦은 것처럼 70년대 연인들에게도 ‘다방’이 주된 데이트 장소였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약속시간에 늦는 애인을 기다리며 탁자위에 성냥을 가지고 성을 쌓아 가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야외로는 덕수궁 돌담길이나, 창경원 길, 남산 계단 길 등을 거닐기도 했고, 교외선을 타거나 시외버스로 일영이나 송추 등으로 나가 데이트를 즐겼다. 소양강 댐 인근 청평사로 가는 배가 생겼을 당시에는 ‘배가 끊켰다’는 핑계로 하룻밤을 지내고 오는 연인들도 많았다고.
데이트 진도
1975년 한 신문에 실린 기사에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거의 재학기간 중 이성간에 데이트를 즐기며 대부분이 3~4회 데이트를 하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개방성을 보이고 있다’고 나와 있다. 데이트 3~4회에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것이 ‘개방적이다’라고 표현한 것을 요즘 세대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연인들은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즐기면서도 각자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남남처럼 떨어져 거니는가 하면, 스킨십을 할 때에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행동했다. 지금처럼 공공장소에서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커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다.
70~80년대 나눴던 연애방식을 추억 따라 가보자.
데이트장소, 사랑의 징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등에서 묻어난 추억속의 아련한 커뮤니케이션이 현재와 어떻게 다른지…
# 1981 명동...
M.net ‘슈퍼스타K 시즌 5’에서 화제를 일으킨 바 있는 김대성 스테파노(60)씨. 그는 아내와의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방송에서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20년 전 사별한 아내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결혼 이야기보다 결혼 이전의 이야기가 더 극적이다.
때는 1981년. 그 해는 김씨가 힘들었던 군대를 전역한 해였다. 이 땅의 모든 청춘이 그렇듯 김씨도 전역이라는 해방감을 친구들과 함께 누리고 있었다. 장소는 서울 명동의 조선호텔 건너편 ‘포시즌’이라는 술집. 늘 그렇듯 전역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이 벌어졌다. 회포는 거하게 풀었지만 고민에 대한 답은 시원치 않았다. 이윽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김씨의 앞에 눈부신 아가씨가 지나갔다. 대뜸 그 빨간 원피스의 여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지금 세대였다면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끝날 일이었지만, 그 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락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흉흉한 요즘이라면 자칫 치한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첫눈에 반한 그녀를 놓치기 싫었던 김씨는 버스 안에서 용기 내 운을 뗀다. 정말 ‘대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만납시다.”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그녀가 진저리를 치며 얘기한다. “당신 미쳤어요?” 그야말로 미친 놈 취급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리는 정류장에 따라 내린 것.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집 전화번호를 건넸다. 연락을 달라고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간절하게 부탁했다.
“3월 1일 1시, 명동에 있는 서울 다방에서 기다릴게요.”
떨리는 한마디를 꺼낸 뒤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약속된 날짜가 다가오면서 설렘은 커져갔다. 근데 정말 공교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약속된 날짜를 이틀 남겨놓고 김씨가 급성 맹장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3월 1일 1시 서울다방’ 뿐.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혹시 그녀가 오면 내 상황을 설명해 주라고 한 것. 그러나 그것도 헛수고였다. 그녀는 서울 다방에 나오지 않았다. 김씨에게 ‘3월 1일 1시 서울다방’ 은 메아리 없는 설렘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친구에게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여기에 왔다 갔다는 쪽지를 다방에 남겨달라고 말이다.
메모와 쪽지는 당시에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휴대폰으로 이뤄지는 디지털 로맨스, 인스턴트 로맨스가 아닌 아날로그 로맨스, 기다림의 로맨스였던 것이다.
김씨에게 그녀는 옷깃만 스친 인연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잊히지 않았다. 퇴원 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상태였지만 무작정 망원동 홀트아동복지회로 향했다. 첫 만남 당시 알고 있던 정보인 ‘망원동의 조씨’라는 것만 믿고 말이다. 당시 망원동 교통의 요지는 ‘홀트아동복지회’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기다리면 그녀와 마주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그곳으로 출퇴근한 지 하루, 이틀, 사흘을 지나 열흘이 흘렀다. 그러나 마주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었다. 아니 끝인 듯 했다.
그렇게 잊혀가는 듯했다.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뀌어 어느새 가을이 됐다. 선배가 명동에서 운영하는 구둣가게를 찾았다. 선배와 일상적인 대화의 꽃이 무르익을 무렵 김씨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됐다. 눈을 찡그리며 실눈을 뜨고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망원동 그녀였다. 이야기를 끊고, 선배에게 물었다.
“저기 일하는 사람 망원동 살아요? 혹시 성이 조씨예요?”
선배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씨는 확신했다. ‘이게 인연이라는 거구나.’ 이후 상황은 급진전됐다.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도 생겼고, 만남도 가졌다. 그리고 3월 1일 서울 다방에 왜 나오지 않았는지, 망원동에서는 왜 보이지 않았는지 모두 들을 수 있게 됐다. 다소 불량해 보이는 겉모습 때문에 만남에 응하지 않았던 것. 망원동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공교롭게도 3월 1일 즈음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음악에 미쳐 베짱이 같은 놈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결국 만남과 만남이 이어져 애정에 싹이 텄다. 남한강 데이트, 일터 데이트 등을 통해 애정을 키워나간 끝에 그들은 결혼에 골인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애틋한 사랑. 7080을 살았던 세대들의 젊은 시절 연애 이야기에는 순수함이 있다. 요즘 세대들은 편지를 전하기 위해 밤을 새우고, 편지지를 몇 번이고 찢고 찢은 이야기를 믿기나 할까. 편지와 메모 그 필체에서 전해지는 진한 감성은 점차 사라져 간다. 7080을 살아온 세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길.
“진지 드셨어요?”
일본 도쿄의 도심을 빙글 도는 전철 노선인 야마노테선(山手線)의 스가모(巢鴨)역에 내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분주히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상한 풍경, 이분들 뒤를 쫓아 가다보면 스가모 상점가가 나타난다.
이곳은 이른바 젊은이들의 거리로 대표되는 하라주쿠(原宿)에 빗대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라주쿠라고 불리는 명소로 800미터의 길가에 2백여 점포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곳곳에서 지인끼리 “진지 드렸나”라며 안부를 전하고, 처음보는 사이지만 “내가 왕년에는 한가닥했지” “요즘 돌아가는 꼴이 영…” 등 추억담과 더불어 편하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랑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2013년 기준으로 평균수명 80.21세와 86.61세를 기록한 일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젊은이 중심의 대형 슈퍼나 백화점과 달리 중장년층용의 모자, 신발, 외출복, 속옷, 지팡이, 전통과자 등 생활 필수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걷다가 힘들면 가게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점포 주인이랑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쌀과자(센베) 전문점에서는 가게에서 제공한 녹차와 함께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한여름에는 상점가 번영회가 대형 얼음을 설치해 시원한 분위기 연출은 물론 고령자들의 열사병 방지에도 일조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상점가의 최고 히트 상품은 바로 붉은 색 속옷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의상인 기모노(着物) 안에 붉은 속옷을 입거나 환갑을 맞이하면 붉은 옷을 입고 축하하는 풍습이 있는데, 붉은 색 속옷을 입으면 단전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개구리와 오리 등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속옷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보약이 따로 있나’ 이게 최고 건강법
일본의 고령자들이 지팡이를 짚고서 보조기를 밀어서라도 이곳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는 1596년 세워져 1891년 스가모로 자리를 옮긴 절 고간지(高岩寺)에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이 절은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전부 타버려 1957년 다시 짓는 등 일본의 근현대사를 함께 했다.
이 절을 찾는 참배객들은 경내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큰 향로의 연기를 손바람으로 아픈 부위에 뒤집어쓴다. 향 연기가 어깨결림, 신경통은 물론 치매에도 효험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나 학생들도 머리에 잔뜩 뒤집어 쓰기도 한다.
향로 옆 샘물로 손과 입을 깨끗이 씻고 나서 본전에 시주와 함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손주 녀석 바라는 대학에 떡하니 붙게 해 주옵소서” “딸내 부부가 금슬 좋게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등 저마다의 소박한 소원을 빈다. 보통 5엔 동전을 시주함에 던진 뒤 복을 비는데, 5엔이 일본말의 인연인 ‘고연(御?)’과 발음이 같아 말의 힘을 빌어 소망하는 것에도 인연이 깃들길 담았기 때문이다.
본전 참배를 마치면 이윽고 사람들은 '도게누키 지죠(가시를 뽑아주는 지장보살)'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다. 고령자를 비롯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주된 목적은 “제발 내 고질병 좀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게 하소서”, 즉 이 지장보살의 영험을 얻기 위해서이다.
옛날 실수로 바늘을 삼킨 한 하녀가 이 지장보살 본존의 부적을 삼킨 뒤 바늘을 토해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지금도 그 부적이 병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참배객들은 지하수 샘물로 불상을 씻긴 뒤 하얀 수건으로 자신의 아픈 부위를 정성껏 닦으면서 병 치료와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나이 드신 분들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가족끼리 혹은 젊은 커플들도 많이 찾는다.
특히 매월 4,14,24일에는 제례가 있는 날로 상점가에는 먹거리와 토산품, 그리고 고령자용품 등을 파는 온갖 노점상까지 들어서고 일본 전국에서 참배객과 관광객이 약 10만 명 몰려든다고 한다. 그 가운데 소문을 듣고 그 풍경을 보려고 오는 관광객이 6만 명이라고 하니 하루 종일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상점가와 노점상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하긴 도쿄 디즈니랜드의 연간 입장객이 약2500만 명이라고 하는데, 이곳 작은 상점가와 절을 찾는 사람이 연간 800만 명 규모라고 하니 참으로 알짜배기 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덕분에 ‘스가모’는 다른 지역 상점들의 매출액이 몇 년새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최근 5년간 무려 15%나 상승했다고 한다.
일본의 실버산업 규모
스가모 상점가의 손님층 95%가 40세 이상이고, 60세 이상은 30.6%라는 조사 결과를 두고서 다른 지역에 비해 고객 연령이 현저하게 치우쳐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특화된 거리이기에 색다른 관광지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본 사회는 2030년에 65세 이상이 세 명 중 한 명, 75세 이상은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시장 전체의 가계 소비 가운데 고령자의 소비 비율이 2015년 42.3%, 2030년에는 47%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고령자의 소비총액을 보면 2015년 72조엔, 2020년 74조엔, 2025년 75조엔, 2030년 77조엔 등 늙어가는 일본사회와 달리 실버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거부할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이기에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실버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젖 먹던 힘이 남아 있는 한 이곳을 찾아 무병장수를 빌려는 고령자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쇠퇴해지는 젊은이의 거리 하라주쿠와는 달리 스가모는 갈수록 주목받으며 빛을 발하지 않을까?
고령사회 일본의 명암
같은 고령자들이 모여 옛 추억을 나누며 건강, 여가 생활, 쇼핑 정보 등을 서로 교환하는 우물가의 쉼터와도 같은 스가모. 인터넷과 SNS의 디지털 시대에 직접 만나 안부를 전하고 따스함을 함께 하는 아날로그의 정서는 역시 수치로는 표시하기 힘든 은은한 맛이 있다.
일본사회의 고령화율은 1970년 7%(고령화사회), 1994년 14%(고령사회), 2005년 20%(초고령사회)를 넘어서 2011년에 23.3%를 기록했는데, 2011년도 고령자 세대의 연평균소득은 307만엔으로 이 가운데 67.5%가 공적연금에 해당한다. 공적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걸 알 수 있지만,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고 실버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고령사회의 그림자도 짙은 게 사실이다. 일본에서 보이피싱 사기의 피해자가 2003년 당시 약 70%가 여성이고, 60세 이상이 전체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피해 세대의 과반수 이상이 60세 이상의 노인만이 사는 고령자 세대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고령자를 노린 집 수리와 각종 건강상품, 노후 상담을 빙자한 투자 등 방문 판매를 통한 사기도 크게 늘고 있다. 고령자의 판단력 저하를 이용한 범죄이기도 하지만, 0.03% 이하의 제로 금리로 은행보다는 집안에 현금을 보관하는 걸 선호하는 고령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구매력과 자금력을 갖춘 일본의 고령자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실버산업을 뒷받침하는 주춧돌이자 먹고 살기 힘든 다음 세대들의 동경과 원망의 대상이면서 범죄에 노출된 먹이이기도 하다.
-1999년 와 2000년 으로 데뷔. 에도 작품활동
-도쿄외국어 대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원 외국인연구자, 일본여행문화연구소 공동연구원을 거쳐 게이오대학, 와세다대학, 니혼대학, 무사시노대학, 오츠마여자대학 등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 강의
-번역서 '백화점' '박람회' '운동회' 등
“2002년에 90억 원으로 프리드라이프(구 현대종합상조)를 울산에 창업한 때부터 대한민국 상조업계에서는 저를 이단아이자 미친 놈으로 취급했어요.”
박헌준 프리드라이프 회장의 기질은 소문대로였다. 특유의 힘 있는 말투에 담긴 내용에는 거침이 없었고 가리는 것도 없었다. 그는 프리드라이프가 다른 상조회사들의 견제 속에서 시작됐다는 걸 분명히 밝히며 그런 고난을 정면돌파하여 선두에 올라섰다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상조업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프리드라이프의 거친 개척기를 박 회장의 ‘직설’로 들어본다.
“상조회사를 시작하면서 저는 세 가지 문제를 없애겠다고 다짐했어요. 하나는 영남 지역에 머물러 있던 지역 상조회사의 한계, 어둡거나 슬프거나 혐오스럽게 보는 장례 문화에 대한 시선, 부르는 게 값인 횡포 문화.”
영업사원 수당 보장, 불입금 납부기간 확대… 혁신의 시작
그래서 박헌준 프리드라이프 회장은 우선 당시 상조업계가 관행으로 갖고 있던 ‘노잣돈 문화’를 거부했다. 그리고 영업사원을 소모품처럼 써버리는 관행도 뜯어 고쳤다. 고치는 것부터 시작된 회사인 셈이다.
“내가 보험 회사를 다녀 봤으니 알잖아요. 영업사원이 연고판매를 하고 나서 가치가 떨어진다 싶으면 그 사람에게 잔여수당을 안 줘요. 보험회사의 잘못된 관행들만을 상조회사가 흉내 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난 모든 영업사원들이 우리 회사에 와서 한 건을 팔든 열 건을 팔든 회사가 약속한 수당은 끝까지 수령하게 했어요. 단, 안 좋은 행위를 한 경우를 제외하고.”
박 회장은 또한 상조업계의 관행이던 3년~5년이라는 불입금 납부 기간을 10년으로 늘렸다. 그 덕에 고객은 불입금 액수를 반 이상 싸게 낼 수 있게 됐다. 또한 서비스 개념에도 집중하여 초기 상조회사들에 소속된 염사들이 염습만 하며 빠지던 것을 장례지도사로 전환시켜 장례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게끔 만들었다.
상조업계 최초의 홈쇼핑 광고, 터지다
박 회장은 대한민국 장례 문화를 바꾸려면 서울과 경기도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문을 연 3년 후인 2005년도에 여의도에 입성했다.
“서울을 변화시켜야겠는데, 이젠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였어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TV CF를 하자. 그래서 상조업계 최초로 과감하게 CF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제가 스스로 모델이 됐어요.” 당시 프리드라이프의 CF에서 박 회장이 했던 멘트는 “슬픔을 이용해 장사하지 않겠습니다”였다. CF는 성공적이었다. 박 회장은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 속에는 핵가족화에 따라 장례를 제대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다는 걸 꿰뚫어봤다. 그래서 박 회장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TV CF 직후 6개월만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홈쇼핑’을 파고들었다.
“물론 홈쇼핑 측에서는 상조회사 광고라니 자기네 이미지 망친다고 절대 안 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고문으로 계시던 김영일 전 현대백화점 회장님을 통해 계속 접근했어요. 마침내 딱 한 번 해보자고 승낙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방송했는데, 대박이 났습니다.”
박 회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상조회사들이 자신을 죽일 놈 취급했다고 회고했다. 회사가 망한다는 유언비어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하지만 어느 틈부턴가 상조업계가 프리드라이프의 마케팅 전략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업계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준비 기간까지 치면 우리 회사가 올해로 13년 차예요. 지난 3년 연속 흑자였고, 상조업계의 모든 분야에서 1등을 다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중요치 않아요. 가장 자랑스러운 건 고객만족도 1위라는 숫자입니다. 대한민국 장례 문화를 바꾸려고 목숨을 걸고 달려온 보람을 느낍니다.”
특별한 사명감을 가진 이들을 위한 환경 만든다
“손해보험회사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실패한거나 다름없어요. 그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뛰어들었으니 안되는 거예요. 이 일은 정말 목숨을 걸고, 특별한 사명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죽음 문화를 바로 잡고 세우겠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만 해야 합니다.”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없다고 뛰어들지 않는 일,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일. 박 회장은 그 어려운 일에 스스로 뛰어들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1000원짜리 지갑, 전집, 레저용품, 카메라, 보험까지…. 35년간 국내 세일즈업계에서 그는 전설로 통했다. 최소한 영업에 있어서 그는 불가능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영업의 달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바쁘게 산 자신의 삶에 회의가 느껴졌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 고민하던 그가 선택한 탈출구는 ‘캐나다 이민’. 출국을 준비하던 그는 이민 한달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낸 친구의 모친상 소식을 들었다. 이역만리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얼굴이나 보자는 생각에 찾은 병원 장례식장은 내부 전체가 지하실 쾌쾌한 냄새로 가득한, 음산함 그 자체였다.
“꼭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하나?”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캐나다 이민을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소개했다.
“한번 사는 인생, 이별도 아름답게 하는 상조, 장례 사업을 시작하겠다.”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상조서비스에 촉이 섰다. 이렇게 시작했던 상조시장에서 그는 이제 슬픔을 이용해 장사하는 회사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정직과 함께하겠다고 역설했다.
“소비자들이 프리프라이드를 신뢰해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믿음에 어긋나면 안된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일본보다 앞선 장례문화를,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장례 문화를 바꾸는 게 제 목표입니다. 현대종합상조에서 프리프라이드로 이름을 바꾼 것도 한국만이 아닌 글로벌을 지향하기 위해서예요. 그건 제 꿈이자 프리드라이프 모든 직원들의 꿈입니다.”
新중년들에게 공연은 쉼표여서 좋다. 때론 백마디의 말보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지 않는가. 찌는 무더위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아니 즐거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우리들에게 ‘허기’를 채울 문화감성 충전을 울려보자.
부모님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자식들이 부모님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진한 감동을 나누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극, 뮤지컬, 퍼포먼스를 구성해봤다.
★4D와 태권도의 한판 넌버벌 퍼포먼스 ‘탈’
넌버벌 퍼포먼스 ‘탈’ 공연 첨단 3D 맵핑 기술도입하여 4D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눈을 가리고 날카로운 칼에 달린 사과를 격파하는 태권도의 고난이도의 기술과 무대전체에 도입된 3D 맵핑 영상에서 이에 맞춰 배경 이미지와 격파 효과 등을 제공하고 영상과 배우의 동작을 결합시켜 ,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완벽한 조화로 하나의 4D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이번 4D 공연을 준비한 KTA (대한태권도협회) 와 SR그룹 최소리 총감독은 “4D 공연은 마치 영화의 액션 장면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며, 관객들에게 지금 까지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볼거리를 제공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넌버벌 시장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전통무예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된 이유는 무예에서 운동종목으로 발전시킨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운동종목인 태권도의 기본 틀을 깨고 줄거리와 캐릭터 등의 극적인요소를 더하여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대한태권도협회 소속 태권도 국가대표시범단 40여 단원들의 무술합이 200단이 넘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태권도 4단은 흔히 볼 수 없는 높은 단수이지만 국가대표시범단에는 이러한 4단 이상의 고단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5~8단 이상의 고단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스토리의 주된 내용인 선과악의 대결을 파워풀한 태권도의 격투와 격파시범으로 표현하였고, 여기에 감동적인 스토리 , 애절한 사랑 그리고 리드미컬한 비보잉과 파워풀한 타악연주로 보는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다.
특히 피켜의 전설이 된 김연아 선수의 더블악셀과 같은 회전수를 가진 900도 돌려차기 기술은, 공중에서 두바퀴반을 회전한 후 정확한 발차기로 송판을 격파해낸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외에도 눈을 가리고 칼 끝에 달린 사과를 정확히 격파하는 기술, 5미터 높이의 장애물 격파 고속 10회전 격파 등 한계를 넘어선 최고의 격파 기술을 자랑한다.
대한태권도협회는 넌버벌 퍼포먼스 ‘탈’을 통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태권도를 대중적인 생활체육으로 확고히 정착시키고, 이를 넘어 문화사업으로 까지 발전시킨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공연명 : 넌버벌퍼포먼스
공연장 : 올림픽공원 K-아트홀
공연기간 : 2014.06.28.~2014.08.31.
공연시간 : 평일 오후7시 / 토요일 오후3시,7시 / 일요일 오후3시 / 월공연없음
*6/28 오픈공연 오후7시 / 7/4 공연없음 / 7/5, 8/15 특별휴관일 공연없음
티켓가격 : VIP 50,000원 / 일반석 30,00원
주최,주관: (사)대한태권도협회 ㈜ SR그룹
★14억명을 열광시킨 뮤지컬 ‘비밥’
88일간 중국 28개 도시에서 한국 공연의 저력을 보여준 뮤지컬 비밥이 텐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7월 6일 입국했다. 비밥은 해외로 간 한국 공연 중 최장기간, 최다도시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에 걸맞게 비밥에 대한 중국 현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비밥팀의 숙소까지 찾아와 선물을 건네고 심지어 같은 호텔에 숙박을 하기도 하였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비밥이 성공리에 이번 투어를 끝낸 것은 한국 공연 업계에서도 놀랄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비밥은 드라마, K-pop의 한류를 넘어선 공연 한류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또한 이번 공연의 열기는 현장을 찾은 매스컴의 반응과 현지 공연 관계자의 공연 초청으로 이어졌다. 비밥은 중국 최대 시청률을 자랑하는 CCTV의 성광대도의 오프닝을 장식하였고 스촨성, 복건성, 광저우 등의 공연 요청을 받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번 비밥 중국투어는 한국 공연 콘텐츠 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새로운 공연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비밥측은 이번 투어를 계기로 G2로 우뚝 성장한 중국 관광객들의 종로 비밥 전용관 유입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연명 맛있는 뮤지컬
공연장 시네코아 비밥 전용관 / 인천 비밥 전용관(인천중구문화회관)
공연일시 서울 2012.03.20 ~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최철기
연출 전준범
코미디연출 백원길
티켓가격 서울 VIP 6만원 / R석 5만원 / S석 4만원
러닝타임 75분
관람등급 36개월 이상
주최&제작 CJ E&M, ㈜페르소나
★모노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명품 연극 ‘염쟁이 유씨’
‘염쟁이 유씨’는 죽음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자 하는 연극이다. 그러나 죽음을 무겁고 지루하게 다루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깨져버린다. 소박하고 진솔한 염쟁이의 삶을 유쾌하게 표현한 염쟁이 유씨는 2010-11시즌부터 새로운 연극역사를 쓰고 있는 1대 염쟁이 ‘유순웅’과 함께 깊이 있는 작품 분석·선 굵은 연기 2대 염쟁이 ‘임형택’, 그리고 2012~13시즌부터 3대 염쟁이 ‘신현종’ 3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올라 1인 15역을 도맡아 하는 연극이다.
등장인물로는 염쟁이 유씨, 조직폭력단의 우두머리와 그의 부하들, 장례 전문 업체의 대표이사인 장사치, 유씨의 아버지와 아들, 기자, 어떤 부자와 그의 큰 아들, 작은 아들, 며느리, 막내딸, 기자 등으로 다양하다. 배우는 혼자서 이 모든 역을 신들린 듯 표현해낸다.
공연은 쉼 없이 계속 되며, 객석의 지휘자로 공연시간 90분을 관통하는 가슴 저린 감동과 놀라운 재미를 선사하는 세 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의 향연을 비교 체험 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염쟁이 유씨’는 관객들이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관객은 구경꾼으로서만이 아니라, 문상객으로 혹은 망자의 친지로 자연스럽게 극에 동참한다. 낯선 이웃의 죽음 앞에서도 고인의 명복을 빌던 우리네 삶의 미덕처럼, 망자를 위해 곡을 하고, 상주를 위해 상가집을 떠들썩하게 하던 모습이 연극 속에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전통의 장례문화를 소재로 죽음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과 답을 통해 삶의 진정성과 소중함을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공연명
공연장 대학로 이랑씨어터
공연일시 서울 2014.04.09 ~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김인경
연출 위성신
출연 유순웅 임형택 신현종
티켓가격 3만원
러닝타임 90분
관람등급 만 8세 이상
주최&제작 한강아트컴퍼니
★자살이라는 극단적 코믹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 웃겨 죽는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대학로에서 공연하고 있는 여타의 공연과는 다르게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풀어낸 블랙코미디 소재의 연극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자살’을 가볍게 이야기하고, 관객들을 참여시키며 한바탕 재미있는 소동극을 벌이게 된다.
인터넷 카페가 활성화되었던 2000년 초반에, 뉴스에서는 충격적인 보도내용이 방송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살사이트의 존재였다. 온라인 세상에서 자살정보를 공유하고, 같이 실행에 옮길 회원들을 모집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생각과 배경에서부터 ‘죽여주는 이야기’의 서사는 시작이 된다. 타인의 비극과, 세상을 버리려고 하는 절박함을 돈을 받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죽음의 사신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주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방치되고 방관이 되어 천사가 된다.
어쩌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방관하고 애써 무시하면서, 개인의 출세와 이익에만 집중하는 현대인들의 세태를 ‘죽여주는 이야기’ 공연을 통해서 엿볼 수 있지는 않을까.
무겁고 암울한 소재로 한 놀이를 관람 하고 되돌아가는 관객들은 ‘자살’과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개인사를 보고 박장대소 하고 나서, 집으로 되돌아간다.
관객들은 과연 어떠한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가게 될까?
어쩌면 나의 비극에도, 타인들이 비웃을 수 있는 비인간적이고 불안한 관계의 허망함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열린 공연의 방식처럼, 가져가실 수 있는 메시지도 열려있는 공연이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앙금은 슬프고 우울한 것이 될 것이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연일 매진행진 중이며, 공연 기간도 코믹하게 ‘죽을 때까지’로 정해두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창작 뮤지컬
창작 뮤지컬 가 재정비를 거쳐 리뉴얼 오픈했다.
뮤지컬 는 송창식의 대표곡인 ‘담배가게 아가씨’를 모티브 삼은 작품이다.
뮤지컬 ‘담배가게 아가씨’는 2000년대 초반 그룹 ‘문차일드’로 활약했던 허정민이 배우로 전업한 후 뮤지컬 무대까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한 작품으로, 2012년 초연 당시 소설가 이외수를 비롯한 많은 공연 관계자에게 관심을 받았다.
더불어 VIP시사회 당시에는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스타가 공연장을 찾아 화제를 낳기도 했던 창작 뮤지컬이다.
스토리는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온 유나 부녀로부터 시작한다. 이들은 아현동 달동네에서 작은 담배가판대를 운영한다. 사건사고 없이 조용하던 동네는 유나의 미모 때문에 시끌해지고 평생 연애 한번 못한 현우는 유나의 외모에 반하게 된다. 현우뿐만 아니라 동네 모든 남자 사랑을 독차지하는 유나. 너도 나도 달려들어 유나에게 고백하지만 차이기 일쑤다.
앞서 ‘담배가게 아가씨`는 서울, 대구, 울산, 대전, 부산, 안산 등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명 창작 뮤지컬
공연장 대학로 소리아트홀 3관
공연일시 OPEN RUN (연중무휴)
총감독 김재목
연출 김지환
음악감독 지현수
주최&제작 JJ글로벌, 극단 담씨
경기창작센터(센터장 박희주)는 2014년 상반기 첫 기획전으로 2013~2014년 입주작가 6인이 참여하는 ‘해석의 재해석:Reboot Everything’전을 개최한다.
20일부터 선보이는 이 전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롭게 기획되어 선보여진 입주작가 소규모 개인전이자, 경기창작센터 입주기간 동안의 결과발표전 성격도 지니고 있다.
매우 진취적이면서 실험적인 시도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수행하고 있는 박진옥, 배서영, 양쿠라(본명 양준성), 이선희, 정승원, 후앙 두케(Juan Duque, 콜롬비아)의 사진, 설치, 영상, 입체 등 30여 점이 선보인다.
특히 이들의 작품은 하나같이 기존의 미술사에서 간과되어질 수 없는 전환점을 만든 현대미술사의 거장들의 개념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있다.
박진옥 작가 ‘The good die young’ 작품에서 다분히 팝아트(Pop Art)적인 요소들을 통해 대중예술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작가의 나아가야 하는 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선희 작가는 헌 옷을 재료로 뜨개질 작업을 진행하며 옷들을 편집하고 다시 재구성해 완성한 편물을 제작할 때의 뜨개질 바늘의 교차되는 움직임과 실의 얽힘을 통해 작가와 타인, 내부와 외부, 현실과 이상 등을 엮어보고 치유하고 있다.
작가 양쿠라의 작품 ‘Made in’은 승봉도라는 아름다운 섬에 유입된 한국, 중국의 쓰레기들을 수합하고 재구성하는 설치과정을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정치적인 대립과 마찰 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콜롬비아 출신의 후앙 두케(Juan Duque)는 해외 입주작가로서 처음 접해보는 문화를 통해 한국의 정서, 풍경, 태도, 빠른 변화 등에 주목하며 그것이 우리의 일상의 무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실험하고자 했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문의 (032)890-4820
경기일보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감성 글씨·손 글씨·멋 글씨 등으로 불리며 주목받고 있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 캘리그라피는 기계적이고 획일화된 글자가 아닌 직접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다. 유연하고 동적인 선의 방향과 속도·글자의 번짐과 질감·여백의 미 등이 적절한 조화를 이뤄 작가의 감성을 드러낸다. 때문에 각종 드라마·영화 제목이나 브랜드 이름에도 캘리그라피를 이용해 작품의 주제와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하이트진로는 리뉴얼 참이슬 출시와 함께 천연원료 성분을 강화한 깨끗한 자연주의 소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캘리그라피 상표를 선보였다. 신선하면서도 젊고 순한 이미지로 참이슬을 재탄생시킨 주인공 캘리그라퍼 이산. 평소 다양한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이산 글씨학교 블로그와 강연 등을 통해 캘리그라피를 알려온 그다. 이산작가와 함께 최근 일고 있는 캘리그라피 열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캘리그라피 열풍, 어떤 매력이 대중을 끌어당겼나
“지나치게 디지털화된 문명사회가 오히려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현상을 불러왔습니다. 이러한 선호는 첨단기기에 손 글씨를 쓸 수 있는 펜이 추가되기도 하며 디지로그(Digilog: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어)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한, 한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은 ‘내 것’·‘나만의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세대들이 자신만의 글씨를 갖고자하는 욕구가 늘어나며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독학으로 캘리그라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기본기가 없어도 캘리그라피 작품이 가능한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해도 캘리그라피의 일반적 도구인 붓에 익숙해지지 않는다면 좋은 글씨를 쓰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초등학교 이후 붓을 잡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초 단계는 전문가의 지도를 받고 시작하는 것이 시간을 줄여 결과를 얻기에 적당합니다. 글씨는 오랜 수련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너무 서둘러 결과를 원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늘 습관처럼 글씨를 쓰는 생활과 즐기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 작가의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캘리그라피. 작품에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캘리그라피를 감성글씨라고 부릅니다. 글의 의미에 맞게 자형이 그것을 보여줘야 좋은 글씨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쓰려면 글의 내용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글씨를 이미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면 사랑스러워야 하고 ‘증오’라면 증오스러운 형태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써야 합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쓰는 것은 글자의 구조를 감성에 맞게 잘 구성하는 과정으로 처음과 나중에 관계없이 완료 후에 감성을 가장 잘 담아낸 작품을 결정하게 됩니다.”
# 캘리그라피는 서예와 달리 붓 외에도 나뭇가지·칫솔·면봉 등 독특한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 특징. 독창성이 짙은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짓고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가
“여러 가지 도구를 쓰는 이유는 각각의 도구가 가진 특성이 그대로 글씨에 나타나기 때문이며 붓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획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도구는 개발의 여지가 많지만, 어느 정도의 실용성을 갖지 않으면 퍼포먼스에 불과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순수작품이 아닌 상업적 측면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얼마나 부응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프로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람들과 감성을 소통하는 도구이자, 따뜻함을 전달하는 매개체 캘리그라피. 작품을 통해 남다른 소통을 이룬 경험이 있는가
“한국자원봉사문화, 아름다운재단 등 여러 곳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으며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으로 강의요청이 오면 언제든 달려갑니다. 강의 후 글씨를 써서 한 장씩 드리는 경우가 많은데 비록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지만 업무적으로 글씨를 쓸 때보다 마음이 훨씬 즐겁습니다. 한 줄의 글로 마음을 전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저의 재능에 늘 고마움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한 학생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며 제 글씨도 가져가 벽에 붙여두곤 글귀를 늘 마음에 새긴다고 들었을 때 매우 보람을 느꼈습니다.”
# 이산작가가 바라보는 캘리그라피의 미래와 발전방향, 그리고 개인의 노력
“최근 여러 가지 현상으로 보아 캘리그라피는 한동안 르네상스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봅니다. 한글 손 글씨의 활용성은 이웃 일본의 글자보다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일반적인 산업분야를 넘는 전반적인 분야에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술이나 음악 등 이미 극대화된 시장에 비하면 아직도 확장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대학에서는 아직 캘리그라피 학과가 없으며 서예 과에서 약간의 실험적인 단계로 있을 뿐입니다. 정작 디자인 과에도 가르치는 교수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캘리그라피 자료집을 발간하고 체계적이고 밀도 있는 교육을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산
캘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산글씨학교, 공간노웨이브 아카데미, 디노마드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서울여자대학교·단국대학교·한밭대학 등에서 초청 강연을 했으며, 서울시 교육청 교육 멘토로 숙명여자고등학교·서울여자고등학교·창문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캘리그라피 직업 특강을 하였다.
활동 이력
▲한국자원봉사문화 홍보대사 ▲SK-Sunny 대학생봉사단 캘리그라피 강의 ▲유니브엑스포 2013 캘리그라피 이벤트 참여(이화여대) ▲대학문화축제 대학로 길거리 전시회(캘리그라피 평화전) 2013 ▲대학생 한국문화홍보단 청계광장 캘리그라피 이벤트 2013 ▲제5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라이브페인팅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등
사진 출처: 블로그 이산글씨학교 (http://blog.naver.com/calliblog/70163395816)
스마트 환경 구축에 힘입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메일과 SNS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지만 시니어들은 이같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기기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 않고 접근 기회가 낮은 시니어들은 젊은이들의 ‘스마트한 생활’과는 점점 더 멀어져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잇따라 시니어들이 스마트기기 사용 실력을 겨루는 페스티벌이 눈에 띄게 빈번해졌고 시니어의 스마트기기 사용과 이를 통한 세대 간 소통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이 쓰는 휴대전화 중 스마트폰의 비율은 2012년 1월 13%에서 지난해 11월 27%로 두 배가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스마트폰 뱅킹 인구 중 60세 이상의 비율도 2012년 말 2.6%에서 지난해 말 3.5%로 증가했다.
6074(60세~74세)들은 노인복지관·지자체·공공도서관의 교육장에서 스마트폰을 배운다. 교육은 KT·SKT 등이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무료로 한다
인생 2막을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까페, 유튜브, 네이버 밴드 등 SNS를 활용해 노후를 새롭게 개척하는 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SNS를 하는 시니어들은 새로운 세상을 접함으로써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시대 변화를 따라잡는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가족·친구 관계가 돈독해지고 건강관리에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면 외로움과 허탈감을 느끼게 된 김광호(64) 씨는 여행을 다녀왔다. SNS로 연결된 친구들에게 여행 스토리를 공유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느낌을 올리고 그 나라의 추억의 글을 올리니 차곡차곡 덧글이 달리면서 SNS상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없어지게 마련인데 저는 오히려 SNS를 통해 새로운 인연들을 많이 만난 셈이죠. 그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나의 존재감이 상승하고 그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나를 찾는 여정이 돼곤 합니다.”
SNS 소통채널, 스스로가 건강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물론 아직까지는 젊은 세대에 비하면 시니어 그룹의 SNS이용률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날로그 세대들이 디지털 세대의 빠른 변화를 뒤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시니어층이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색의 향기 문화원’도 시작은 SNS였다. 2004년 5월에 처음 만들어져 154만 명에 달하는 회원들에게 좋은 글을 담은 ‘향기메일’을 보낸다. 회원의 60% 이상은 50대 이상 시니어층이다. 독자적 블로그나 까페를 운영하며 회원들 간 소통의 장 역할을 하는 동시에 문화 창구 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사색의 향기 문화원 등 SNS블로그 회원들은 글을 쓰는 표현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돼 좋은 에너지가 나와 항상 건강한 편이라고 한다.
SK텔레콤은 라는 프로그램으로 50·60대 장·노년층, 실버 세대의 SNS 사용을 활성화시켜 부모·자녀 간 소통 부재를 해결하고 SNS와 함께하며 삶에 긍정적 영향을 전파하기 위해 구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이가 들면서 가족, 더욱이 자녀와의 대화 단절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 서운한 감정들은 SNS상 소소한 말, 사진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SNS채널과 방식이 아무리 풍성해져도 이를 활용하는 주체인 스스로가 건강하게 소통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아무리 좋은 취지와 생각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이해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만을 전달하는 소통이라면 이것은 반쪽짜리 소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소통을 위해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의미가 충분히 상호 간에 이해되고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SNS소통으로 시니어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오다
지역 복지관을 통해 SNS 교육을 받은 오춘석(67) 씨는 은퇴 후 SNS를 배우면서 자신이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 시니어들에게는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SNS를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질 겁니다. SNS를 놓치는 것은 한쪽 세상을 놓고 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70세 노인이 손자와 소통하기 위해 SNS를 배우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세대 간의 단절을 SNS를 통해 다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장가 못간 아들과 카카오톡을 이용하여 자주 소통하곤 합니다.”
은퇴로 인한 인간관계의 변화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은퇴와 자녀의 결혼으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시니어에게 SNS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아날로그 세대’라 대변되는 시니어들은 아직은 디지털 세대의 빠른 변화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디지털 문화에 한 번 발을 들여 놓은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인터넷소통협회 박영락 부회장은 “사람마다 알맞은 소통 방식과 온오프 채널을 고민해야 합니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통해서 그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대다수가 그 힘은 감정에 호소해야만 발휘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눈물을 째내는 것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인간미가 느껴지는 공감을 사야 기억에 남는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소통 방식과 SNS 적절성은 수시로 점검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니어들에게 서투른 SNS는 진심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SNS 소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통은 고객과 끊임없는 여정인만큼 소통이라는 숲을 보면서 SNS라는 나무를 키워 나가는 활동이 소비자와 通하는 지속가능한 소통방정식입니다. 특히 은퇴 후 페이스북, 블로그, 카카오톡 등 SNS를 활용해 소통을 즐기는 시니어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SNS는 그동안 20~30대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 들어 중장년층 SNS에 보다 적극 참여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소통의 출발점은 ‘나’가 아닌 ‘당신’
다음은 오프라인과 SNS를 결합한 소통 성공 사례의 한 가지 예다. 송파구의 한 자치회관에서 광경이다. 방이2동에 사는 한 할머니(82)가 박춘희 송파구청장(61) 앞에서 흔들대는 마이크 부여잡으며 말문을 열었다.
“예전에 뇌졸중이 와 반신불수가 됐어요.”
그런데도 유쾌하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아) 떨리는데 더 떨리네. 노인회관 화장실을 조금 더 키워주시면 안되겠어요?”
청중들이 ‘와~’ 하고 박수를 친다.
좋은 소통이 좋은 구정을 만든다고 믿는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전국 최초로 ‘트위터 반상회’를 열었다.
송파구는 SNS뿐 아니라 ‘복지’ ‘관광’ ‘다문화’ 등 주제별로 특화된 블로그와 더불어 동아리나 동호회별 네이버밴드도 운영해 높이 평가받았다. 단순한 구정 전달을 넘어 구의 대표 트위터가 팔로어 3만명을 보유한 점을 활용해 반상회를 트위터에서 여는가 하면, 트위터 민원창구를 만들어 직접적인 소통에도 나섰다. SNS오픈채널도 만들어 발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자유롭게 제안을 받아들였다.
박 구청장은 SNS뿐 아니라 도시락산책, 금요데이트, 오후의 수다 등 오프라인 소통에서도 맹활약해 주민 참여의 문턱을 낮춰 자유롭게 소통했다.
또한 관내 26개 동을 순회하며 주민과의 찾아가는 소통에도 나섰다. 박 구청장이 직접 진행하면서 진솔한 대화를 통해 주민들과 교감하고, 구 역점사업 및 동별 주요 업무 계획을 구민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대강당 같은 곳에서 200~300명과 얘기하는 토크쇼도 있고, 자치회관에서 자그마하게 모이기도 한다. 진행도 마찬가지로 박 구청장이 직접 챙긴다.
주민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직원과의 소통에서도 앞서 나가는 중이다. 박 구청장은 경직되고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 문화 쇄신을 위해 2009년 하반기부터 내부 직원의 소통 공간인 솔이 토론방을 운영해 직원들의 후생복지를 개선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여나갔다. 또 공직자에게 필수적인 청렴도 평가 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개발해 공무원 스스로의 청렴 수준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소통의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문화, 심리 등 책을 파고들었고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경영실천 사례에서 본질적 소통방법을 터득했다고 밝히고 있다. 지금의 자신은 소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왔기에 주민들의 속내 깊은 곳까지 보듬으려 노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로 소통을 하려면 그 출발점은 ‘나’가 아닌 ‘당신’에서 찾아야 한다. 나의 눈이 아닌 상대의 눈으로 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진심어린 자세가 SNS소통시대에 살아남는 생존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