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며 병원을 두 차례 옮기기까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을 방문해 친구의 심적, 영적 회복을 도왔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내가 올 때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문병 와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진지하게 몸 상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를 하는 친구, 보험 얘기를 하는 사람 등 각자 환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는 이런 말들보다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위로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태다. 게다가 문병객들이 올 때마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상태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 일도 힘들다. 환자의 재활 스케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 때나 방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문병을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간혹 자기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환자 상태와 스케줄을 고려해 방문하는 것이 예의다. 더구나 예후가 좋지 않은 병으로 인해 입원해 있는 환자를 만나러 갈 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도 위로
환자를 만났을 때 어떤 말도 위로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낫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라고 말하지 말고 필요해 보이는 게 있으면 그냥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환자 혹은 환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해 하루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서 대신 환자를 돌봐준다면 보호자가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할 수 있고, 몇 시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돌봐주고 음식을 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캐시 피터슨(Cathy Peterson)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남편을 돌보는 과정과 남편의 죽음 이후 몇 해간의 삶을 기록한 책 ‘애도 수업’에서 바른 돌봄과 위로에 대한 값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남편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회피였다고 한다. 마주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진단을 받은 환자만이 질병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말기암 환자들도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평범한 어느 날의 안부를 묻듯 “몸은 좀 어떤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질병,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상황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우리는 유족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는 조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다. 그러므로 애써 억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손만 잡아줘도 된다. 때로는 뻔한 위로의 말보다 그게 더 위안이 된다.
배려 없는 응원 되레 상처되기도
간혹 유족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말들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힘내세요”라는 말은 그럴듯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큰 의미는 없는 말이다. “좋은 곳에 갔을 거야”라는 말도 그렇다. 유족 입장에서 어디가 더 좋은 곳일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이만하면 됐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도 위험하다. 사별한 사람은 충분한 애도를 했다고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가족에게 “이제 떠날 때가 된 거야”라고 말하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격려와 위로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도 상대에게는 아픈 데를 후벼파는 말이 되기도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이런저런 치료 방법들을 시도해봤는지, 자신이 추천한 의사에게 가봤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은 마치 가족이 부주의해서 고인의 죽음을 불러온 듯한 인상을 주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심지어 고인이 생전에 소유했던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묻는 사람도 있는데, 부디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자.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른다면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것이 좋다.
“뭐라 위로드릴 말이 없습니다.”
어떠한 감동적인 말이나 문장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함부로 교훈을 늘어놓거나 종교적인 언어로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손잡아주는 것이 더 낫다.
한 해에 두 아이를 각각 백혈병과 뇌종양으로 잃은 부모가 있었다. 두 아이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하루는 목사가 찾아와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한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아이의 부모는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적인 언어, 성경 구절 등을 부적절하게 인용해서 하는 위로는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실과 슬픔의 치유’의 저자 미셸과 앤더슨(Kenneth Mitchell and Herbert Anderson)은 이러한 위로를 ‘미성숙한 위로’라고 말한다.
말보다 마음을 전해야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애도의 과정에서는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끌어주려는 시도보다는 그냥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떤 위로보다 낫다. 사별자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면 잘 들어주고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표현 정도가 좋다.
남아 있는 가족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고인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고 추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가족은 고인의 삶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거나 고인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애도 초기뿐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도, 고인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인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고인의 자녀에게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되고 건강하게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에는 이처럼 존중, 존엄, 긍휼이라는 참된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내게 꼭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이 어떠해야 할지 가늠이 될 것이다.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윤득형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도미, Chicago Theological Seminary과 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심리학과 영성상담학을 전공했다. 현재 각당복지재단에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 의향서 본부장, 애도심리상담센터 센터장 등을 맡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숭실사이버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슬픔학개론’이 있고, ‘애도수업’,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요’ 등을 번역했다.
세계 석학과 함께 미래 세대 성장 고민
우리 사회의 고민 중 하나는 미래 세대가 좋은 환경 속에서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사회 관심에 발맞춰 올해 개관 20주년 맞은 서초여성가족플라자(대표 박현경)가 ‘아동의 건강한 발달과 잠재력 개발’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5월의 마지막 날, 행사가 열린 서초구청 대강당에는 서초구 어린이집 종사자와 손자·손녀 보육에 관심 있는 중·장년 여성 약 15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박현경 대표는 세미나 개회사를 통해 “서초여성가족플라자가 양성평등 실현을 선도하는 여성ㅍ가족 중심 기관으로 거듭나고 있다”면서 “이번 세미나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와 가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조 강연자로는 세계적인 석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회정책학과 앤 뷰캐넌(Ann Buchanan) 교수와 미국 오리곤 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제인 스콰이어스(Jane Squires) 교수가 강단이 섰다. 뷰캐넌 교수와 스콰이어스 교수는 각각 ‘아동의 잠재력 극대화하기’, ‘자녀 문제행동 조기진단과 개입 방안’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가족, 특히 부모의 관심 있는 돌봄이 영유아기 뇌 성장과 향후 감정, 행동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현상을 사례 분석과 연구 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총신대학교 유아교육과 허계형 교수와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정윤경 교수가 한국 대표로 강단에 섰다. 각각 ‘성공하는 아이 양육 : 놀이와 관계 형성’, 행복의 기초공사 : 자녀에게 다가가는 공감 대화법’이라는 발표로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영국의 시니어도 아이 양육 참여해
모든 강연을 끝으로 질문 시간이 진행됐다. 영유아기 자녀교육에 있어 시니어 역할에 대한 외국 사례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영유아기 발달에 부모 영향이 지대하지만 바쁜 부모를 대신해 조부모 즉, 시니어의 역할이 한국사회에서 크기 때문이다. 이에 뷰캐넌 교수는 “조부모의 양육과 역할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시니어가 손자·손녀 교육에 관심이 많고 참여를 원하는데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결과를 최근 연구를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에는 특히 그랜드페어런츠플러스(Grandparentsplus)라는 기관이 있다고 했다. 그랜드페어런츠플러스는 시니어 세대 중 양육 참여를 하고 싶은 사람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연결해준다. 서초여성가족플라자 홍보담당관에 따르면 2016년 '에듀시터 양성과정’을 운영한 바 있으며, 올해 서초구 내의 타 기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성과정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손자·손녀를 돌보는 조부모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전문화와 양성 교육에 대한 인식도 이번 세미나를 통해 인식할 수 있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의 목록 버킷리스트. 한 번쯤은 들어보고, 한 번쯤은 이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애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도 어떻게 이뤄가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매달 버킷리스트 주제 한 가지를 골라 실천 방법과 사례자의 조언을 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앞서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진행한 버킷리스트 서베이에서 1위를 차지한 ’재능기부‘에 대해 알아봤다.
도움말 한국재능기부협회 최세규 이사장, 오산시 노인장애과 라애신 주무관
재능기부, 그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재능기부협회 최세규 이사장은 “개인이나 기업, 단체 등이 가진 재능을 소외된 곳에 나누어주는 것을 ‘재능기부’라 할 수 있다”며 “한시적인 거창한 후원보다는 목소리 기부, 헌혈, 어르신 안마 등 소박한 나눔과 실천이라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소소한 능력만으로도 실천하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부담 없이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 최 이사장은 “새롭게 특별한 재능을 만드는 것보다는 오랫동안 익힌 기술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을 탐색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나눔을 향한 진정한 마음가짐”이라 강조한다.
재능 분야 탐색, 소소해도 괜찮다
‘어떤 분야에 재능기부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자기 능력을 증명하거나 전문성을 올리기 위해 자격증 취득, 학위 수여 등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이들이 있다. 그 열정은 좋지만,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기에 자칫 재능기부의 시작이 차일피일 미뤄지기 일쑤다. 도움 주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더 잘하려고 무언가를 채우는 것보다는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부터 나누며 노하우를 다져가는 게 좋다. 최세규 이사장은 “내가 가장 잘하는 것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재능을 나누려는 마음가짐이 첫째”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특정하여 찾기보다는, 사소한 것도 재능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재능기부처 찾기, 발품을 팔자
대체로 재능기부를 결심한 이라면 어떤 재능을 나눌지에 대해 미리 정해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디에 가서 문을 두드리느냐는 것. 재능기부협회의 경우 온라인과 전화 접수를 통해 재능기부 공급자와 수급자를 연결해준다. 그 외에도 몇몇 웹사이트나 지역 평생교육원 홈페이지 등에서 이러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 외로 웹서핑을 통해 재능기부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막상 인터넷 검색창에 ‘재능기부’라 치고 관련 키워드를 포함한 사이트에 들어가면 대부분 아르바이트 또는 프리랜서 일자리 알선 서비스가 주를 이룬다. 순수 봉사 차원의 활동을 기대한다면 이 단계에서 막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 앱 역시 마찬가지다.
재능기부 경험자들은 나누려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일상 범위 안에서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라 말한다. 아파트 주민 알림판이나 교회 게시판 등에 스스로 재능기부 활동을 홍보하거나 어린이집, 노인정, 요양원, 돌봄센터 등 도움을 주고 싶은 곳에 직접 방문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엔 가까운 곳에서 소소하게 시작하지만, 입소문을 타거나 지인의 추천 등을 통해 활동 영역과 분야를 넓힐 수 있다.
자격증보다 중요한 건 소통 능력
2014년부터 ‘5070청춘드림팀’ 시니어 재능기부단을 운영하는 오산시 노인장애과의 라애신 주무관은 “자격증만 믿고 재능기부를 시작했다가 난관에 부딪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재능기부는 대체로 누군가에게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수업 형태로 이뤄지는데, 강의 경험이 부족한 이들의 경우 좋은 마음으로 왔다가 되레 자신감만 떨어져 돌아간다는 것. 내가 많이 아는 것과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작은 것이라도 듣는 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의 강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 주무관은 “초보 재능기부자들은 강의 스킬로 인한 애로사항이 접수가 잦다. 그럴 땐 베테랑 재능기부자를 매치해 강의를 비법을 공유하게 한다”며 “강의 경험이 없다면 다양한 수업을 참관하고 연구해보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한다. 아울러 재능기부 수급자의 대부분이 노인, 아이, 또는 소외된 이웃이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려는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족을 잃은 이에게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막막해진다. 누구나 하는 위로의 말은 상투적이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것 같아 고민스럽다. 이렇듯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을 위로하는 데 익숙지 않다. 유족을 보듬는 일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제대로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는 그동안 없었다. 최근 웰다잉이나 호스피스 등 죽음과 관련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함께 주목받고 있는 분야가 있다. 애도상담이 그것이다. 국내에 애도상담을 보급하고 있는 윤득형 박사를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애도 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애도상담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영적, 정서적, 신체적 문제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게 도와주며, 슬픔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이라 정의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분야이지만 해외에서는 그리프 카운셀링(Grief Counseling)으로 불리며 이미 상담의 한 전문 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호스피스 기관에서는 사별 가족을 위한 팀이 운용될 정도다. 윤득형 박사도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애도상담을 세부전공으로 연구했고, 각당복지재단에서 상담활동이 필요한 상담가나 종교인 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애도의 첫 단계는 함께 있어주기
애도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그동안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유족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 윤득형 박사는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애도를 위해 간단한 한 문장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아무 생각 없이 ‘안녕하세요’라는, 상황에 맞지 않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요. 보통 목례 정도만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뭔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 ‘뭐라 위로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심정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종교적 언어로, 좋은 데 가셨다거나 안식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지 않아요. 유족의 생각에 고인에게 좋은 장소는 자신의 곁이고 그곳이 안식처이니까요.”
그렇다면 제대로 된 애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윤 박사는 3가지를 추천한다. 첫째는 함께 있어주기. 물리적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연락하고 만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다음 단계는 열린 질문 하기. “애들은 어때?”, “기분은 좀 어떠니”와 같은 질문을 통해 상대가 감정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중요한 들어주기가 있다. 이때 감정을 섣불리 이입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투사하면 안 된다. 유족이 슬픔을 실컷 표현할 수 있도록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윤 박사는 예견했던 죽음이든 갑작스런 이별이든 유족이 겪는 슬픔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상실 후에 남아 있는 이들이 겪는 극한 감정을 그는 ‘비탄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보통 2~3주 정도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애도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때는 돌봄이나 상담 등이 도움이 됩니다.”
슬픔 해소하지 못하면 후유증 남아
윤 박사는 애도상담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애도의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하면 복잡한 반응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비탄의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오래 지속돼 몇 년이 지나도 슬픔에 잠길 수 있고, 사별한 후 십수 년 후에 느닷없이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격동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신체적인 질병이나 이상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특히 어휘력이 떨어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본인 탓을 하며 괜한 죄책감을 갖게 될 수도 있어요.”
특히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가적 대형 재난에서는 유족이 겪는 슬픔을 사회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이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시신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원인을 알지 못하면 진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사회적으로도 이들의 슬픔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순구하게 애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봄이 왔다. 세 손주에게 새 학기 시작이다. 집 앞 초등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할아버지·할머니는 손주와 함께 새봄이 시작됐다. 며느리와 딸에게 쌍둥이 손녀·손자와 외손자의 일정표를 받아 아내와 함께 살폈다. 초등학교 3학년 진급한 쌍둥이와 2학년이 된 외손자의 일정이 휴대폰에 기록했던 지난해 수준을 훌쩍 넘었다. 컴퓨터에 할아버지·할머니와 손주들의 일정을 정리했다. 한편의 종합 작전도가 완성됐다.
아내는 아침 일찍 가까운 아들집에 먼저 가서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한다. 식사가 끝날 때쯤 가서 손자와 아침마다 ‘어린이씨름’을 한다. 이 녀석을 잡아보면 기분을 알 수 있다. 요사이 새 학년이 되어 힘이 더 세졌다. 붙들고 부비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등을 토닥거리면 품안에 안긴다. 어릴 적 따뜻한 할아버지 품에 안겼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할머니에게 옷을 입혀달라고 눈을 지그시 감고 어리광을 부린다. 손녀는 옷 고르기, 머리 빗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옷에 까다롭던 어릴 때 습관은 많이 달라졌다. 할머니와 오순도순 옷 고르기를 제법 잘 한다.
쌍둥이 손주와 가까운 학교를 같이 간다. 세 손주의 등·하교를 보살피는 나름 이유가 있다. 먼저 복잡한 교통 환경이 마음에 걸린다. 손잡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교실 현관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아이들과 등·하교를 같이 하면 하루 만보걷기 걱정이 없다.
아이들이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 이용을 꺼리고 홀로 집에 있기를 싫어한다. 손녀는 기계소리에 예민하다. 학교수업 끝나서 집에 왔다가 방과 후 수업에 다시 가고 다른 공부하러 몇 차례 집을 드나든다. 날마다 그 시각이 다르다. 때맞춰 마중을 나간다. 손주를 기다리는 몇몇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말벗이 되었다. 간식을 챙겨주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어느 날 하교 길에서다. 아침에 들고 갔던 우산을 학교에 놓고 왔다. “우산은?” 했더니, “부전자전이야!” 손녀가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아빠는 책가방도 잃었다고 하던데요!” 이미 제 아빠로부터 얘기를 들었단다. 아들이 학창시절 책가방, 우산을 통째로 놓고 오는 일이 가끔 있었다. 심지어 한발에는 신발을 신고 다른 발은 맨발로 집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부전자전!’ 쌍둥이에게 우산 분실 정도는 다시 묻지 않기로 했다.
딸이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을 하면서 더욱 바빠졌다. 한주에 두 번 아내와 교대로 한 차례씩 세종시에 가서 외손자를 돌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낮에 출발하여 오후에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아이가 저녁식사 후 운동하고 집에 오면 늦은 저녁이 된다. 다음 날이 되어야 서울에 올 수 있다. 한주에 이틀씩 외손자 돌보고,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이 꼬박 쌍둥이를 보살핀다. 일주일에 나흘은 혼자서 쌍둥이와 외손자를 돌보고, 하루는 교대로 쌍둥이를 살핀다.
세종시에 오갈 때는 짬을 내는 방법을 찾는다. 자기 일정을 빠듯하게 조정하고 교통수단 이용을 잘하여야 한다. 자원봉사일이 세종에 가는 날과 겹칠 때는 간식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관악문화원 문학공부 날은 아내에게 단독 돌봄을 부탁한다. 아내의 여유시간은 없다. “그래도 공유일과 주말이 있어서 다행이다.”며 웃는다.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들·딸 가족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할아버지·할머니 여유시간은 사라졌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손주들과 새봄을 같이 할 예정이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지난날의 은혜에 감사한다. 필자 마음에는 고마운 천사가 있다. 날개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필자에게 왔다. 쌍둥이 손녀·손자가 태어난 뒤 천사를 처음 만났다. 며느리가 산후조리 중,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손녀가 고열과 설사에 시달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신종플루 때문에 노약자와 영유아가 공포에 떨던 때였다. 동네 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에 갔으나 “치료가 어렵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눈앞이 깜깜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가 태어난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신종플루 감염 위험이 있어 보인다, 빨리 데려오라”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토요일 오후 병원 응급실. 당직근무 중인 여 의사는 아이 궁둥이에 코를 대고 대변 냄새를 맡았다. 그러더니 “검사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경험상 세균 감염으로 보이니 바로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때 필자는 천사의 모습을 보았다. 검사 결과는 다행스럽게도 신종플루가 아니고 장염이었다. 천사 덕분에 치료 시간을 제대로 확보했다.
다섯 달 뒤 외손자가 태어났을 때 집단 감염을 피하려고 산후조리원 대신 필자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게 했다. 녀석이 얼마나 크게 울어대던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아내와 딸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저녁에는 필자가 아기 돌봄이가 되었다. 가슴에 안고 어깨에 머리를 묻게 하면 거짓말처럼 곧 잠이 들었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외손자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외가에 오면 지금도 필자를 꼭 안고 잔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얼마 전에는 쌍둥이 손자에게 충치가 생겼다. 오후 일과 중 빈 시간에 짬을 내서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갔다. 필자도 마침 사랑니를 뽑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 손자와 의자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마취를 해야 한다는 말에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아버지가 옆에서 지켜줄 테니 걱정 마라” 하고 안심시켰다. 필자의 치료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도 없이 옆자리 손주 살피기에 바빴다. 치아 갉아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처음 하는 마취로 감각이 무뎌진 입이 이상해서인지 손자 녀석 눈가에 이슬이 비쳤다. 그래도 의사와 간호사가 “씩씩하다”고 칭찬하자 거울을 보고 씩 웃었다.
치료를 마친 손자가 기특해 보였다. “할아버지, 입이 이상해서 방과 후 영어수업 하기 어려워요.” 방과 후 수업에 빠지지 않았던 녀석이 조그만 목소리로 필자의 표정을 살폈다. 할아버지는 눈치가 빨라야 한다. “나도 함께 치료했으니 집에 가서 게임하면서 같이 놀자!” 했더니 얼굴이 확 펴졌다. “엄마! 마취해도 아프지 않았고, 충치는 영구치가 아닌 유치래요.” 집에 오자마자 제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느라 바빴다.
오늘은 무럭무럭 잘 자라준 세 손주들이 천사다.
손주 돌보기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중요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자녀 내외가 맞벌이해야 하는 현실을 살고 있어서다. 경제적 사정이 허락되면 아이 돌봄 전문인을 활용할 수 있지만, 대체로 친정이나 시댁의 부모가 그 일을 대신한다. 또한, 손주 돌봄 자체가 노후 삶에 보람을 주기도 해서다. 남의 손에 맡기느니 힘이 들어도 내리사랑을 베풀기 마련이다.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에 안전하게 보내고 먹거리를 챙기는 일 등이 기본이다. 정성을 다해 열심히 해도 때로는 마찰이 일기 마련이다. 한눈판 사이에 가구에 부닥쳐 생채기를 내기도 하여 며느리나 딸에게 걱정을 끼치는 경우도 생겨서다. 그러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손주 돌보기가 중요하지만, 질이 다른 분야도 관심을 갖고 손주를 눈여겨보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싶다. 예를 들면 선천적 재능을 발견해 본다든지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는 일 등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손주를 돌보는 일의 근본적 주안점은 미래를 위한 손주 양육이기에 질을 높여야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어릴 때 버릇을 제대로 들여줘야 바르게 성장한다. 인성이나 자세를 만들어가는 시점이 유아기라 한다. 유소년 시절에 잘못 길든 버릇은 평생 고치기가 쉽지 않다. 손주를 둘이나 안겨준 큰아들은 젓가락질이 아직도 서툴다. 젓가락을 잡는 방법이 달라 음식을 먹을 때 불편해 보인다. 본인은 버릇되어 아무렇지 않을지라도 주변에서 보기는 어색하기만 하다. 어릴 때 바로 잡아주지 못해서고 성장해서 고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필자의 셋째 처제가 고등학교 교사다. 얼마 전에 가족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생 중 많은 학생이 연필이나 볼펜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서툴게 잡고 필기를 하다 보니 힘이 들어 공부하는 시간을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어릴 때 손주가 연필을 잡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아 바른 방법으로 고쳐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에 두고 있는 큰 손주가 연필 쥐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앞의 사진과 같이 잡고 글을 쓰고 있었다. 엄지와 중지 등 세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두고 있었다. 셋째 손가락이 연필을 받쳐주는 형태가 아니어서 글쓰기가 불편해지는 방법이다. 두 번째 사진처럼 고쳐 잡게 하였더니 이내 고쳐 잡았다. 글쓰기도 편해 보였다. 보편적 방법에서 벗어나 미래에 초점을 둔 질을 높인 손주 돌봄이다.
친구와 그녀를 만나기로 한 7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녘에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요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고 궂은날 설마 거리 캠페인을 나가겠어?” 약속을 취소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평택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냥 밥이나 먹고 오자”고 했다. 전에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평택 친구와 여고 동창이다.
일산 정발산역에 도착할 즈음 다행히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2번 출구로 빠져나와 일산호수공원으로 가는 길목, 유동인구가 가장 많이 몰리는 문화공원의 한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사단법인 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희(58) 대표. 그녀의 성격만큼이나 정열적인 빨간색의 천막에 새겨진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독특한 내용의 글귀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정희 대표는 주인에게 고의로 버려졌거나 부주의로 잃어버려 가족과 이별한 애완동물들을 돌봐주고, 다시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에 나와 봉사를 하고 있다.
“비가 온다고 쉬면 되나요? 이 아이들을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이어주기 위해 태풍이 오든 폭설이 내리든 언제나 토요일엔 거리로 나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을 때 박 대표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으며 그녀가 말했다.
“원래부터 고기를 안 먹었던 건 아니에요. 딸애가 사춘기일 때 저랑 갈등이 많았어요. 그때 모녀 사이를 풀어준 계기가 된 게 유기견 입양이었답니다. 그 후 하나밖에 없는 딸이 결혼을 했고 우울증이 몰려왔죠. 본격적으로 유기견 돌봄 봉사에 뛰어든 건 그 무렵이었어요. 6년째 유기견 봉사를 해오면서 식습관도 자연스레 채식으로 바뀌었죠.”
활달하고 적극인 성격의 박 대표는 처음엔 봉사할 방법을 몰라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송국에 문의를 했다고 한다. 알선을 받아 동물보호소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란 맨날 똥 치우는 일이었다고. 그 뒤 맘먹고 개털을 깎아주고 예쁘게 다듬어주기 위해 미용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미용 봉사에 푹 빠져 지내던 중, 2011년 8월쯤 80여 마리의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는 일산의 한 보호소로 미용 봉사를 갔다. “갈 데 없어 곧 안락사당할지도 모를 많은 유기견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우선 네 마리를 데리고 와 이태원에서 처음으로 거리입양 캠페인에 나섰죠. 참 신기하게도 그날 모두 입양이 됐어요. 용기를 얻어 용산에서 세 군데 더 확장했다가 지금은 맨 처음 네 마리를 데리고 온 인연을 생각해 아예 일산에다 자리를 잡았답니다.”
유기동물 거리입양은 일반 입양 절차에 비해 살짝 까다로운 편이라고 한다. 입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병원 검진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정된 동물병원에서 종합접종, 신종플루 예방접종, 외부 기생충, 마이크로칩, 심장사상충 검사,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 비용은 20만 원 정도이고 입양자가 결제를 하고 데려가면 된다.
“요즘 팻팸족(pet+family)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도 이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 어느덧 반려동물 1천만 시대에 접어들어 관련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에선 인터넷이나 불법 경로를 통해 무분별하게 사고파는 등 부작용도 생겨나고 있어 안타까워요. 돈이 된다 해서 강아지 공장(puppy mill, 상업적 목적으로 강아지를 사육하는 농장)을 버젓이 운영하는 행위를 보면서 안타까웠죠. 그런 곳의 강아지를 사주지 않아야 그런 농장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 곳에서 ‘사지 말고’ 제대로 절차를 밟아 ‘입양하세요’라고 토요일마다 나와 외치는 겁니다.”
박 대표는 이어 ”유기견은 보통 보호소에 입소하면 약 10일 정도 머무른 후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하죠. 그걸 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동안 우리 ‘고유거(고양시 유기동물 거리입양 캠페인)’에 관심 갖고 도와준 좋은 분들이 많아 후원금도 상당히 모아졌어요. 그 후원금으로 ‘고유거 유기견 쉼터’도 오픈했답니다. 우리 쉼터에는 안락사 기간이 없어서 마음이 뿌듯해요.”
내후년이면 35년여의 국방부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을 하는 박정희 대표. 어떻게 하면 노후를 더 보람 있고 멋지게 보낼 수 있을까 구상 중이라 했다. 평소 수영과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지고 늘 뭔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박정희 대표의 멋진 노후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기대된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 손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의 절반이 조부모 몫이다. 예전에도 손자녀의 돌봄이 있었지만 밥이나 챙겨주는 소극적 양육이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또래 아이들과 떠들고 장난치고 밤이 깊어 가는지도 몰랐고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면 그때 달려서 엄마 품에 안기면 끝이었다. 과외공부도 없었고 고작 학교 숙제가 발목을 잡는 그야말로 숙제였다.
지금의 아이 양육은 먹이고 씻기는 일은 기본이고 시간 맞춰 과외수업 현장으로 내 몰아야하고 교통사고나 유괴의 우려가 없는지 늘 매의 눈으로 아이를 살펴봐야 한다. 금쪽같은 내 손주 누구나 다 잘 기르고 싶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잘 기르는 방법은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놀이를 해줄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아할까? 늘 궁금증은 있었다. 그러던 차에 건강가정 지원센타에서 "3가지로 좋은 조부모 되기"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참가하게 되었다. 3가지는 "마음이 통하는 조부모, 신체 놀이가 통하는 조부모, 구연동화가 통하는 조부모" 가 가되기 위한 교육이었다. 손자녀의 마음을 읽고 유아의 눈높이에 맞춘 조부모의 구연동화는 장차 손자녀가 살아가는데 마음속에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고 강사가 강조한다. 할머니 무릎에서 들었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에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봐서 틀린 말이 아니다. 피아제(스위스출생, 아동발달심리학자 1896~1980)의 인지 이론에 의하면 유아기의 심리는 돌멩이를 비누로 상징하고 모래로 밥을 짓고 풀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소꿉놀이를 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보고 듣는 직관적 사고로 무생물도 살아서 숨 쉬고 느끼고 자란다는 물활론적 판단을 갖고 있다. 더구나 자기가 꾼 꿈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믿으며 사물이나 현상을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이어서 사물의 여러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 내 아이를 키울 땐 거창한 이런 걸 모르고 못 느끼고 가슴의 사랑으로만 키웠다. 나이 들어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도 피아제의 인지 이론을 공부했지만 감동 없이 그러려니 했다. 잊고 있던 유아기의 심리상태를 선생님 말씀과 그동안 손자녀의 행동을 견주어보니 아이들 마음이 이런 마음 이었구나 하고 이해가 가고 배우고 안다는 것이 즐겁다. 유아원에서 첫 아이에게 아빠 직업을 물었더니 도둑 잡는 경찰관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너희 아빠 참 훌륭하시다. 우리 친구들 여기 봐요! 누구 아빠 대단해요 우리 박수 한번 쳐줘요"한 후 다음 유아에게 아빠 직업을 물으면 경찰관 이라고 대답 한단다. 그 다음 유아도 또 그 다음 유아도 모두가 자기 아빠가 경찰관이라고 대답 한단다. 유아에게 거짓말 한다고 야단 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유아의 심리 상태란다. 아이들끼리 소꿉놀이 하는 걸 유심히 보면 모래로 밥을 하고 풀잎을 뜯어서 김치를 담근다. 아이들 세계는 그것이 정상이다.구연동화를 위해서는 작품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동화를 익힌 후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고 녹음을 해서 듣고 고쳐가며 많은 실연을 해야 자연스러운 동화구연이 된다. 시니어에게도 봉사활동이나 직업으로도 구연동화가는 매력적임에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풍부한 인생사가 들어있으니 자연스럽게 실감나는 구연동화가 가능하다.
원래 구연동화는 어떠한 소품도 사용하지 않고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내용의 동화를 입으로 연기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다양한 교재를 활용하거나 집에 있는 간단한 소품들을 이용하면 더욱 실감나는 연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다. 음의 높낮이 와 등장인물에 적합한 음성을 모방하고 가끔 효과음을 넣는다면 아이들은 행복하고 놀라운 가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좋은 조부모되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의 마음 상태를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인도 유아의 심리상태로 돌아간다. 얼굴과 목소리는 녹슬었지만 마음만은 유아가 된다. 회춘이 따로 없다. 생각이 젊으면 몸도 젊어진다. 유아의 눈높이에 맞는 종이접기, 구연동화 실제 해보기로 서툴지만 한바탕 웃음으로 끝이 났다. 배움은 끝이 없고 배워야 산다.
사별한 김준기(79)씨는 15세 차이 나는 아내와 1995년 재혼했다. 현재 결혼생활 22년,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다. 김준기씨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고단한 농촌계몽운동, 야학, 4-H연구회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와의 일상에 대해 묻자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진다.
재혼한 부부에게 ‘가족’이라는 단어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말이 또 있을까. 1월의 찬바람 속에서도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는 김준기씨의 얼굴에선 온기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어요. 겁도 나고. 남의 시선도 두렵고. 그런데 살아보니 내 신발같이 내 발에 잘 맞는 느낌이에요. 살수록 새록새록 감사하기도 하고요. 이 사람 못 만났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몰라요. 사실 혼자가 되면 기댈 데가 없어요.”
전 부인과 사별한 뒤 3년도 안 돼 재혼한다고 하니 그의 재혼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갑지 않았다. 나이 차이도 많을 뿐더러 다 큰 자식들(2남 2녀)의 얼굴 보기도 민망했다.
그러나 김준기씨는 재혼을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첫 번째 아내가 세상과 이별한 후 혼자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데 사실 그럴 처지가 못 됐어요. 자식들을 위해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필요한데 미안해서 지금의 아내한테 선뜻 결혼하자는 말을 못 하겠습디다. 제가 그렇게 어쩌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결혼해서 어머니 모시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어요.”
자식들도 늦게 만난 사랑인 만큼 더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한길을 걸어가는 이들 부부를 응원해줬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내게 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부부의 금실은 자랑할 만하다. 2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니 말 다했다. 싸우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가끔 서로 놀랄 만큼 같은 생각을 하는 ‘짝’이다. 둘 사이에 끊이지 않는 것은 대화다.
이들 부부가 황혼에 인연을 맺고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김씨는 ‘결핍의 생활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황혼재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베풂을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이라며 “수십 년을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만큼 존중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체면 때문에 재혼을 망설이는 이들을 주위에서 많이 본다”며 “인생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좋은 사람 있으면 결단을 내리라”고 귀띔했다.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 하지 말아야
재혼 후 재산 문제로 자녀와 갈등을 겪거나, 서로에 대한 높은 기대치로 인한 갈등으로 상담을 받는 재혼 부부들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초혼에서 받지 못한 애정과 돌봄을 재혼 남편에게 바라고, 전통적인 아내의 의무만을 강조하면서 많은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
그는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기보다는 여생을 함께 보낼 좋은 말벗이나 몸이 아플 때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반자라고 생각해야 결혼생활에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혼생활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다는 전제하에 우려되는 점은 없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들어가니 걱정이 생겼습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아내 혼자 남는데 그럴 때 자식들이 등지고 왕래도 안 하게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아서요. 우리 자식들이야 그러지 않겠지만 다른 재혼 가정들을 보면 많이들 그런다고 합니다. 실제로 장례식장에 가보면 미망인이 혼자 떨어져 있고 자식들은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그는 대안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잠시 울컥했다.
“어렵게 늦게 만났으니 하루를 살아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죠. 아내의 잔소리는 사랑의 불꽃이 되어 다 태워진 뒤 연기를 모락모락 피우며 향기로운 명언으로 쏙 박힙디다.”
질곡의 인생길을 아내는 묵묵히 따라왔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배달의 농사형제 울부짖는 날/ 손가락 깨물며 맹세하면서/ 진리를 외치는 형제들 있다…”
‘농민가’의 한 구절이다. 이 노래를 전국적으로 보급한 이가 바로 김준기씨. 그는 “농민가는 원래 서울대 농대 다니던 시절에 ‘농사단’의 단가로 만들었어요. 가사는 나와 동기인 김성훈 전 농림부장관과 후배 이용화(언론인) 등 농사단 멤버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공동 창작이고, 곡은 구전되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10대에는 너무 가난했고, 20대에는 농촌계몽활동을 했고, 30대에는 농민운동을, 40대에는 지역운동을, 50대에는 통일운동을, 60대에는 정치운동을 한 셈입니다. 이제 70대에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해요. ‘一農공동체사회연구소’를 만들어 지역공동체운동과 지방 주민자치교육 그리고 협동조합 네트워크 등 11개 학교 4-H 조직들을 챙겨보고 있습니다.”
사람농사꾼으로서 사람농사를 짓는 것이 평생 업이었던 그는 서울대 농대 재학 당시 전국대학 4-H연구회연합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이후 가톨릭 농민회를 주도하면서 상계동 농장을 운영, 1975년부터 신구대학 교수로 학생들에게 농업을 가르치며 성남YMCA, 시민대학을 만들었다. 그러나 1986년 그는 해직을 강요받고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1989년에는 임수경과 서경원의 평양방문 사건이 공교롭게도 그와 연관이 됐는데, 그가 속해 있던 ‘민자통(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에서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난한 성명서가 문제가 되는 바람에 결국 안기부로 끌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때가 1991년. 이후 사면·복권이 되고 나중에는 명예회복이 됐지만 평생을 농민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걸어온 그의 여정은 험난했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묵묵히 내조를 해온 헌신적인 아내가있었기에 그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닌, 진짜 잘하는 아내가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농사꾼 김씨에게 자식농사는 어땠냐고 물었다.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어요. 마음처럼 안 되는 자식들과 갈등하는 것은 다른 집들과 똑같아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도 ‘행복’이라는 선물이더라고요. 아내는 마음이 고운 사람입니다. 제 뜻을 잘 따라준 아내에게 항상 고맙죠.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고마움이 앞섭니다. 각자가 사회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