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알아야 할 위로의 언어

기사입력 2018-07-23 08:55 기사수정 2018-07-23 08:55

[새로운 어른들의 어휘문화 PART 05] 상대에 따른 애도 방법

두 해 전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며 병원을 두 차례 옮기기까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을 방문해 친구의 심적, 영적 회복을 도왔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내가 올 때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른 사람들은 문병 와서 환자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진지하게 몸 상태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충고를 하는 친구, 보험 얘기를 하는 사람 등 각자 환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는 이런 말들보다는 육체적 고통에 대한 위로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태다. 게다가 문병객들이 올 때마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몸 상태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을 해야 하는 일도 힘들다. 환자의 재활 스케줄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아무 때나 방문하는 사람들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정신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문병을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간혹 자기 시간에 맞춰 방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무리 바빠도 환자 상태와 스케줄을 고려해 방문하는 것이 예의다. 더구나 예후가 좋지 않은 병으로 인해 입원해 있는 환자를 만나러 갈 때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 말도 안 하는 것도 위로

환자를 만났을 때 어떤 말도 위로가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낫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라고 말하지 말고 필요해 보이는 게 있으면 그냥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환자 혹은 환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해 하루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서 대신 환자를 돌봐준다면 보호자가 그동안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할 수 있고, 몇 시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어린 자녀들이 있다면 돌봐주고 음식을 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캐시 피터슨(Cathy Peterson)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남편을 돌보는 과정과 남편의 죽음 이후 몇 해간의 삶을 기록한 책 ‘애도 수업’에서 바른 돌봄과 위로에 대한 값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남편이 말기암 진단을 받은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회피였다고 한다. 마주하게 되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진단을 받은 환자만이 질병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은 오해다. 말기암 환자들도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평범한 어느 날의 안부를 묻듯 “몸은 좀 어떤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면서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

질병, 사별을 겪은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는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상황을 피하는 사람도 있다. 장례식장에 갔을 때 우리는 유족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한국의 장례 문화에서는 조문을 간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다. 그러므로 애써 억지로 위로의 말을 건네기보다는 손만 잡아줘도 된다. 때로는 뻔한 위로의 말보다 그게 더 위안이 된다.


배려 없는 응원 되레 상처되기도

간혹 유족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말들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힘내세요”라는 말은 그럴듯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큰 의미는 없는 말이다. “좋은 곳에 갔을 거야”라는 말도 그렇다. 유족 입장에서 어디가 더 좋은 곳일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또 “이만하면 됐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도 위험하다. 사별한 사람은 충분한 애도를 했다고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의 가족에게 “이제 떠날 때가 된 거야”라고 말하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격려와 위로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라도 상대에게는 아픈 데를 후벼파는 말이 되기도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 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이런저런 치료 방법들을 시도해봤는지, 자신이 추천한 의사에게 가봤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은 마치 가족이 부주의해서 고인의 죽음을 불러온 듯한 인상을 주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심지어 고인이 생전에 소유했던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묻는 사람도 있는데, 부디 가족들이 알아서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자.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른다면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것이 좋다.

“뭐라 위로드릴 말이 없습니다.”

어떠한 감동적인 말이나 문장보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함부로 교훈을 늘어놓거나 종교적인 언어로 유가족을 위로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곁에서 손잡아주는 것이 더 낫다.

한 해에 두 아이를 각각 백혈병과 뇌종양으로 잃은 부모가 있었다. 두 아이가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을 때 하루는 목사가 찾아와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한 시험 외에는 주시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아이의 부모는 큰 상처를 입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한 일이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종교적인 언어, 성경 구절 등을 부적절하게 인용해서 하는 위로는 가족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실과 슬픔의 치유’의 저자 미셸과 앤더슨(Kenneth Mitchell and Herbert Anderson)은 이러한 위로를 ‘미성숙한 위로’라고 말한다.


말보다 마음을 전해야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애도의 과정에서는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끌어주려는 시도보다는 그냥 곁에서 묵묵히 함께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떤 위로보다 낫다. 사별자가 뭔가 말하고 싶어 하면 잘 들어주고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라는 표현 정도가 좋다.

남아 있는 가족에게 가장 좋은 위로는 고인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고 추억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가족은 고인의 삶이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거나 고인을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애도 초기뿐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도, 고인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고인의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 특히 고인의 자녀에게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게 되고 건강하게 추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에는 이처럼 존중, 존엄, 긍휼이라는 참된 가치가 들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내게 꼭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이 어떠해야 할지 가늠이 될 것이다.

사별자는 마음껏 슬픔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별자가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줘야 한다. 그리고 ‘말’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윤득형 박사)
(윤득형 박사)
윤득형

감리교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도미, Chicago Theological Seminary과 Claremont School of Theology에서 목회심리학과 영성상담학을 전공했다. 현재 각당복지재단에서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 회장, 의향서 본부장, 애도심리상담센터 센터장 등을 맡고 있으며, 감리교신학대학교와 숭실사이버대학에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슬픔학개론’이 있고, ‘애도수업’, ‘우리는 왜 죽어야 하나요’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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