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요 증가하는 실버타운… 대기 시간 5년·보증금 최고 9억 원
- “입주까지 5년은 기다려야 한대요.”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들어서는 롯데건설의 실버타운 ‘VL 르웨스트’가 최근 청약을 진행한 결과, 최고 경쟁률 205대 1을 기록했다. 배우 노주현 등 유명 인사도 관심을 보였다. ‘VL 르웨스트’처럼 도심형 고급 실버타운은 평균적으로 2년에서 5년은 기다려야만 입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실버타운(시니어타운) 열풍이 불고 있다. 실버타운 왜 수요 증가했나 실버타운이란 사회생활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이 집단적 또는 단독적으로 거주가 가능하도록 노인들에게 필요한 주거 및 휴양·여가시설, 노인용 병원, 커뮤니티센터 등 서비스 기능을 갖춘 노인주거단지를 말한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고령친화주택에 서비스를 결합한 것이다. 실버타운은 입주 보증금을 내고 달마다 이용료를 내는 임대형과 분양형으로 나뉜다. 분양형은 부동산 사기로 이어진 경우가 생기면서 2015년부터 신규분양은 금지됐다. 입지에 따라서는 1세대 전원형, 2세대 도심형, 3세대 도심 근교형으로 나뉜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8명은 노인 단독가구다. 이 중 부부가구는 58.4%, 독거가구는 19.8%에 해당한다. 자녀와 같이 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경제적 안정, 개인생활 향유 때문’이라고 62%가 응답했다. 과거와 달리 자녀의 부양을 받지 않아도 된 그들이 거주할 공간을 찾다 보니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실버타운에서 살게 되면, 지금처럼 혹은 더 이상으로 즐거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노인의 수요와 다르게 전국의 실버타운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2020년 기준 전국의 실버타운은 38개소였다. 현재 국내 만 60세 이상 인구는 약 127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한다. 그런데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세대는 전국 기준 1만 세대에 불과하다. 즉, 수용력이 0.1%도 안 되는 상황인데, 실버타운에 입주를 원하는 사람은 늘어나니 평균 2년~5년의 대기 시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 실버타운에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실버타운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식사’를 꼽는다. 나이가 들수록 균형 잡힌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버타운에는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실버타운에는 건강관리를 위한 물리치료실과 부속 의료기관, 운동시설 등이 있다. 서예실, 도예실, 노래 연습실 등 취미·여가 시설도 있으며, 대부분의 실버타운은 목욕탕,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실버타운의 입주 가능 연령은 만 60세 이상이다. 부부가 입주를 원한다면 부부 중 한 명만 60세 이상이어도 입주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실버타운은 생활비를 100% 본인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를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비싸지는 실버타운, 소외당하는 중산층 그렇다면 실버타운에 입주하고 싶다면 얼마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할까. 가장 먼저 입주 시 목돈이 필요하다. 임대형 실버타운이라면 입주 보증금이 필요하고 자가 소유형 실버타운은 주택 구입 비용이 든다. 매달 내는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식비다. 실버타운마다 의무식 제도가 있다. 식사를 하든, 하지 않든 일정한 식비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월 생활비에는 식비와 함께 공동시설 유지 및 관리 비용과 직원 인건비, 화재보험료 등이 들고, 주 1~2회 청소 비용도 포함된다. 그 외에 전유부분에 대한 공과금과 개인별로 사용하는 비용은 추가로 내야 한다. 상하수도 요금, 전기요금, 급탕비, 인터넷 사용료, 케이블 TV 시청료, 전화 요금 등이 해당한다. 즉, 실버타운에서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보증금과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확한 비용은 실버타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서울 소재 실버타운은 부부 기준으로 봤을 때, 보증금 4억~6억 원에 생활비 300만~400만 원 정도가 든다. 경기권이나 지방은 월 생활비가 200만~300만원 수준으로 내려간다. 지방의 경우 생활비가 100만 원 대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입주 대기까지 타면서 인기를 끄는 고급 실버타운의 비용은 ‘억’ 소리가 난다. 고급 실버타운 중 베스트로 꼽히는 곳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더 클래식 500’이다.보통 1인과 부부 기준이 다른데, 이곳은 1인 부부 모두 보증금이 9억 원이다. 여기에 약 500만 원의 월 생활비가 든다. 또한 ‘VL 르웨스트’는 보증금 7억 5000만 원, ‘삼성 노블카운티’는 보증금 3억 2000만 원에 해당한다.(1인 기준) 더욱이 올해 실버타운 사업은 전환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약 7000세대가 입주 될 예정이다. 앞서 말한대로 ‘VL 르웨스트’가 분양되고,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는 4차 입주자를 모집한다. 또한 대형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 엠디엠그룹의 계열사 엠디엠플러스도 실버타운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을 짓고 있으며, 연내 분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고급 대형 실버타운이 연이어 조성되는 것에 따라 ‘중산층이 소외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에서는 실버타운에는 경제적인 지원을 안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노인복지주택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중산층 소외 지적을 의식한 듯, 정부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실버타운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2027년까지 매년 1000호를 공급하겠다는 것. 특히 서울시는 서울형 실버타운 ‘골드빌리지’를 만들 계획이다.
- 2023-07-18 08:42
-
- ‘사냥개들’ 윤유선 “48년 배우 생활, 흑백영화부터 OTT까지 경험”
- “저는 주인공이었던 적도, 멜로 연기를 한 적도 없어요.” 켜켜이 쌓은 필모그래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베테랑 배우 윤유선(54)의 고백이다. 주연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쉬움이나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일터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윤유선은 사실 그만의 ‘행복한 인생’ 속 주인공이다. 일곱 살 때 영화 ‘만나야 할 사람’으로 데뷔한 윤유선은 48년간 ‘배우’라는 명함을 달고 있다. 배우로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는 아역에서 성인 배우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보통의 배우들처럼 당시 윤유선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은 무엇인지, 어떤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20대 때 이런 일도 겪었다. 윤유선은 미니시리즈 주인공으로 발탁됐는데, 맡은 역할은 패션 디자이너였다. 그런데 대본 리딩을 마친 후 다른 배우로 캐스팅이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작진은 윤유선이 역할을 소화하기에 통통하다고 생각했고, 교체를 강행했다. 윤유선은 한동안 힘들었지만, 금세 긍정적인 사고회로를 돌렸다. “그 배우가 그 역할을 정말 잘 소화했고, 나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그리고 저도 혹독한 관리를 못 한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후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더불어 48년의 롱런 비결에 대해 “욕심이 많지 않았던 게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고 겸손한 발언을 했다. “물론 욕심을 내서 일을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보다 더 잘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온 힘을 쏟지 않아서 지치지 않았고, 즐기면서 일한 덕분에 지금까지 배우로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 일을 오래 하는데 재미를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지금 이렇게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사함을 많이 느껴요. 그리고 저는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완벽을 기대하면서 살면 너무 힘들죠. 여러분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웃으며 살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침에 날씨가 맑고 상쾌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하하.” 흑백 영화에서 OTT까지 “제가 아역 배우였을 때는 영화 촬영을 지금처럼 필름이 아닌 테이프로 하던 시절이었어요. 당연히 흑백 영화였고, 후시녹음(촬영이 끝나고 주로 성우가 대사를 녹음)을 했죠.” 예쁜 아이였던 윤유선은 이모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아역 배우 시절의 촬영 환경을 묻자 과거의 추억을 신나서 쏟아놓는다. 거의 50년, 변화무쌍한 일터를 변함없이 지킨 베테랑 배우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윤유선은 특히 2000년대, 2010년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MBC ‘궁’,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꼽았다. 그는 자신만의 작품 선택 기준이 있었는데, 출연작을 돌아보니 저절로 이해가 된다. “일단 개연성 없는 막장은 싫어해요. 그리고 어두운 범죄 스릴러 작품도 피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성향상 잘 만든 작품이라 하더라도 너무 어둡고 잔인하면 시청 후 며칠은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저처럼 대중예술 작품에 영향을 받는 분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죠. 그래서 가능하면 밝고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공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은 그동안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달라 보인다. ‘사냥개들’은 사채업의 세계에 휘말린 두 청년이 거대한 악의 세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윤유선은 “범죄물이라기보다는 액션물에 가깝고, 주인공들의 서사가 순수한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배우 우도환과의 인연으로 ‘사냥개들’ 출연이 성사됐다. OCN ‘구해줘’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우도환은 ‘사냥개들’에서 엄마 역할을 꼭 윤유선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작진에게 요청했단다. 이렇게 해서 윤유선은 ‘사냥개들’로 OTT 드라마에 진출하게 됐다. 극 중 그가 연기한 김건우(우도환 역)의 어머니는 가난한 삶 속에 아들을 키운 인물로, 아들이 악의 무리와 싸우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사전 제작 드라마이고, 또 감독님께서 영화감독이셨기 때문에 촬영 당시 영화를 찍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 특히 내추럴한 모습을 원하셔서 화장을 전혀 안 하기도 했어요. 가난한 역할을 이전에도 연기했지만, 이렇게까지 화장을 안 한 적은 처음이에요. 어쨌거나 저한테도 새로운 모습에 도전한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보다 도환이가 그 추운 겨울에 액션 신을 찍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했죠. 나이는 어리지만 친구 같기도 하고, 저보다 큰 어른 같기도 하고,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 국민 엄마 그리고 진짜 남매 엄마 윤유선에게는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주연 제안이 안 들어오자 그는 하나의 돌파구로 엄마 연기를 맡기 시작했다. 20대 중반의 이른 나이부터였으니 엄마 연기 경력만 30년이 넘었다. 주지훈, 최우식, 이종석, 김고은 등이 아들과 딸로 그를 거쳐갔다. 열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 이진욱과 모자(母子) 호흡을 펼친 적도 있다. 윤유선은 “결혼을 하고 진짜 엄마가 된 후 연기를 하면서 공감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JTBC ‘맏이’에서 엄마 연기를 한 것이 기억에 남아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헌신하고 희생하는 어머니였는데,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죠. MBC ‘짝패’에서는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였는데, 공감되는 포인트가 있더라고요. 사실 엄마도 사람인데 좋을 때도 있지만 실수할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 역할을 연기하면서 공감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윤유선은 실제로 어떤 엄마일까. 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윤유선은 “애들이 벌써 성인이다. 육아를 거의 끝내놓고 보니 아이들한테 더 잘 해줄걸, 좀 더 시간을 보낼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많이 못 봐줬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상한 성격의 남편이 아이들과 더 잘 놀아주고 육아를 열심히 해줬다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윤유선의 남편은 이성호 판사로, 두 사람은 2001년 결혼했다. 윤유선과 이성호 판사는 만난 지 100일이 안 돼 결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윤유선은 “남편이 계속 자기가 나와 결혼해준 거라고 말한다”면서 “까다로울 때도, 허당스러울 때도 있는 저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더라”라고 말했다. “제 남편의 가장 큰 장점은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인내심이 많고 배려를 엄청 많이 해줘요. 직업을 생각하면 딱딱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굉장히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에요. 아이들한테도 엄청 좋은 아빠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남편과 아이들과 화목한 일상을 보낼 수 있어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나이 듦 두려움 없어 윤유선은 2017년 11년 만에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했고, 그때부터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는 연극의 매력에 대해 “아이들도 다 컸고, 무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무대의 장점은 한 작품을 오래 연습하고 고민한다는 점인 것 같다. 매체 연기만 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으니까 다양한 연기를 해보는 거다. 한 장르만 고집하는 것은 편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윤유선은 2020년부터 연극 ‘친정 엄마와 2박 3일’로 무대를 해왔다. 엄마 역의 강부자가 직접 출연을 요청해 함께하고 있다. 1977년 TBC 드라마 ‘청실홍실’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오랜 인연을 이어온 케미스트리를 무대에서 자랑하고 있다. 사실 윤유선은 강부자 외에도 선배 배우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김영옥과도 각별한 사이다. “강부자 선생님은 진짜 열정이 대단하신 분이에요. 똑같은 대사인데 무대에 설 때마다 다 다른 느낌이 들어요. 선배님과 연기하는 모든 순간이 제게는 감동이에요. 김영옥 선생님은 정말 지혜로우신 분이에요. 일과 가정, 삶의 밸런스가 좋아서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또 매번 진심으로 애정을 담아 조언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느껴요.” 윤유선은 앞으로도 연기 생활을 이어가며 선배 배우들을 닮아가고 싶다. 그는 “예전에 ‘바람은 불어도’(1995년)라는 드라마를 할 때도 ‘지팡이 짚을 때까지 연기할 거야’라고 말했었다. 이제는 농담이 아니고 진심이다. 연기가 더 재밌어졌으니까”라고 말했다. 아역에서 성인 배우, 중년 배우로 성장의 시간을 보낸 윤유선은 새롭게 시작될 미래도 기대하고 있다. “가끔 동안이라고 봐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실 저는 열심히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로서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나이에 맞는 역할과 연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50대 중반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성숙한 어른으로서 고민이 많은 시기 같아요. 그 나이의 고민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연기할 기회가 오면 좋겠죠. 그리고 연기 잘하는 배우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선생님들한테 사랑받은 만큼 후배들한테 돌려주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2023-07-04 08:30
-
- [칼럼] 식도암 할머니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화분
- 82세 할머니는 남편 사별 후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제안에도 혼자가 편하다며 20여 년을 따로 지내셨다. 남편은 3층 주택을 남겼는데, 1층과 2층은 세를 주고 할머니는 3층에서 살았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꽃을 키우는 것이었다. 1층 화단에는 여러 가지 꽃나무들이 심어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꽃화분들이 1층 대문 앞과 3층 현관까지 이르는 계단에 비단길처럼 쭉 이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일과는 화단과 화분을 가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낡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벌과 나비가 찾아드는 화분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어느 날 음식이 삼켜지지 않고 자꾸 구토를 해 병원을 찾아간 그는 식도암 진단을 받았다. 나이도 있고, 암도 넓게 퍼져있어 수술과 항암치료를 포기했다. 그의 소원은 화분을 가꾸는 일상을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았다. 먹지 못해 살이 빠지고 기력이 없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려웠다. 암 진단 후 근처 사는 50대 후반 큰딸이 3층 집에 들어와 함께 살았는데, 그는 종일 딸에게 짜증을 냈다. 할머닌 왜 인생 말년에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죽진 않겠다고 가정형 호스피스를 신청한 그는 그의 집을 찾아간 내게 끝없이 하소연을 했다. 세상도 하늘도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큰딸의 무력감도 컸다. 삶을 비관하며 누워 신음하고 짜증만 내는 어머니 옆에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어떤 음식도 삼킬 수 없는 어머니를 두고 차마 밥을 넘기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컸다. 딸은 간절하게 무엇이든 어머니에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대한민국 어디든 마지막 효도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닌 딸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그저 종일 침대에 누워 끙끙거릴 뿐이었다. 우리 가정 호스피스 팀이 그 댁을 방문한 날 딸은 우리와 대화하던 중 그동안의 속상함과 서러움에 복받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나는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온 할머니에게 소원이 있는지 물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두 가지를 말했다. 얼음물 한 모금을 시원하게 삼켜보는 것과 1층부터 3층까지 가지런히 놓인 자식 같은 화분들을 다시 가꾸는 것이었다. 자녀들은 멋진 경관이 펼쳐진 곳으로 추억여행을 다녀오자고 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꾼 화분들보다 더 어여쁜 것들은 세상에 없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하고, 분가한 자녀들이 가정을 이뤄 각자의 바쁜 삶을 사는 동안 할머니를 위로하고 삶의 의미가 되어 준 것은 화단과 화분들이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화분들은 그의 시간들이었고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모든 제안과 도움을 거절당해 서운할 대로 서운한 딸에게 좀 힘들겠지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저 화분들과 꽃들이 바로 어머니의 분신이자 정체성이니 어머니를 대신해서 화분들을 열심히 가꾸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1, 2층으로 내려가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매일 화분들을 3층으로 옮겨 어머니가 현관에 의자를 두고 감상하도록 해드리자고 말이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영양수액을 달고 의자에 앉아 현관에서 매일 자신이 하나하나 가꿔왔던 화분들을 다시 바라볼 수 가 있었다. 그러다가 배에 복수가 차고 기력이 더 떨어지던 어느 날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병원에서도 병동 옥상에 있는 정원을 무척 좋아하셨다. 매일 휠체어를 타고 정원으로 올라가 벤치에 누워 꽃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간병을 위해 함께 병원에 들어온 딸에게 사방이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이곳이 천국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딸은 다시 왈칵 눈물을 쏟았다. 두 주가 흘러 할머니는 이제 정원마저 갈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쇠해지고 종일 깨지 않고 잠만 주무셨다. 나는 지난 토요일 아침 회진을 돌며 작은 목소리로 따님에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용히 할머니를 보며 손을 잡아 드렸는데, 할머니께서는 언제부터 깨어 계셨던 걸까. 눈을 감은 채로 내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가시더니 내 손에 입을 맞추셨다. 한동안 그렇게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으셨다. 그 광경을 본 딸이 깜짝 놀라 “엄마!”하며 탄성을 내질렀고, 주변에 다른 환자 보호자들도 할머니의 침대 곁으로 몰려와 내 손에 입 맞추는 할머니를 보며 함께 전율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오늘 새벽에 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유족들은 우리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정하였기에 나는 오후에 호스피스 팀원들과 함께 조문을 갈 수 있었다. 따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엄마한테 뽀뽀 받은 선생님이셔.”
- 2023-06-30 08:56
-
- 친절하고 또 친절하면, 행복해지는 것은 ‘나 자신’
- 대접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존중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인정받고 싶습니까? 친절하십시오.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친절해야지요. 건강하고 싶습니까? 당연히 친절해야지요. 행복하고 싶습니까?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해야지요. 연기가 옆으로 기어가는 굴뚝 우리나라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자로 첫손에 꼽히는 이는 아마 경주 최부잣집일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일화와 뒷이야기가 무성하지만 그 가운데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수평 굴뚝’ 이야기입니다. 보통 굴뚝은 지붕 꼭대기에 만들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먼발치에서도 밥 짓는 연기가 하늘로 솟는 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반면 최부잣집은 마루 아래 섬돌 밑에 가로로 굴뚝을 냈는데,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하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바닥으로 기어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끼니를 잇지 못하는 배곯는 이웃들에게 설움이 되고 상처가 될까 봐 배려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복 짓는 경주 최부잣집 만물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 보통 양력 5월 21일쯤으로 추운 겨울 견딘 보리 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시기지만, 정작 일반 서민들은 먹을 양식이 떨어져 ‘한 많은 보릿고개’니 ‘춘궁기’(春窮期)니 하며 목숨 부지하기 힘들었던 때였습니다. 딱 그런 때 누군가 새벽에 최부잣집 문 앞을 말끔히 쓸고 돌아가면 안주인이 아침에 일어나 “뉘 집 빗질 자국인가?” 하고 물어보고 먹을 양식을 보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양식 구하러 다니기 곤란했을 가장의 체면도 세워주고 자존심도 구기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했던 최부잣집 전통에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덕을 베풀더라도 상대를 함부로 하지 않는 친절하고 다정한 마음이 대를 이어 부를 축적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비책이 아니었을까요. 경주 최부잣집이 자리 잡은 터가 명당(明堂)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음택(陰宅)인 묘지가 아닌 양택(陽宅)인 집이 명당일 경우 복이 당대에 그친다고 하는데, 최부잣집은 스스로 복을 짓고 또 지어오면서 그 기운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남이 버린 행운 줍는 오타니 쇼헤이 3월 22일 열린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전에서 3번 지명타자로 맹활약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9회 초 다시 마무리 투수로 나와 야구 종주국 미국을 물리치고 우승컵과 대회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오타니는 훤칠한 키와 출중한 외모뿐 아니라 평소 몸에 밴 특별한 태도와 행동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1994년생인 그는 운동장에서 ‘쓰레기 줍는 야구선수’로 불립니다. 경기 중에 출루하거나 투구(投球) 사이에 담배꽁초나 휴지가 눈에 띄면 바로 주워 유니폼 주머니에 태연히 집어넣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겁니다.” 오타니가 강조한 운은 그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직접 만든 ‘만다라트(Mandal-Art : 목표를 달성하는 발상 기법) 계획표’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특히 최종 목표인 ‘8구단 드래프트 1순위’를 달성하기 위한 9가지 세부 목표 중 하나인 ‘운’을 이루기 위해 인사하기, 쓰레기 줍기, 청소, 심판에게 공손한 태도, 물건을 소중히 쓰자 등을 적어놓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룬 성공의 밑바탕엔 작은 친절이 쌓이고 쌓여 대운으로 작용한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입니까? 불교도 기독교도 유대교도 회교도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종교는 바로 친절입니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친절입니다. 친절은 자비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지구를 행복하게 한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필자는 문득 법정스님이 그립습니다. ‘무소유’(無所有)라는 어려운 가르침보다 훨씬 쉬운 ‘친절’(親切) 한마디에 사랑과 자비, 인(仁)과 존중을 담았으니까요.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법정스님. 스님은 친절과 따뜻한 보살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며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2004년 하안거(夏安居) 해제 법문과 집필한 책(‘아름다운 마무리’)을 통해서 누누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친절의 반대말은? 친절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모든 비난을 해결한다. 얽힌 것을 풀어헤치고, 곤란한 일을 수월하게 하고, 암담한 것을 즐거움으로 바꾼다. - 레프 톨스토이 도대체 친절은 뭘까요?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한 것을 친절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렇다면 친절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보통 ‘불친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필자는 ‘갑(甲)질’이 친절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나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오만하고 무례하게 행동하고 육체적·정신적 폭력을 행하거나 괴롭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갑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하라는 법정스님의 가르침과는 딴판입니다. 운행 중인 항공기를 억지 회항시킨 희대의 ‘땅콩 유턴’ 사건부터, 고용주가 저지르는 끔찍한 폭행과 욕설,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임금으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무수한 사례까지, 열거하기 고통스러울 만큼 갑질을 일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안(童顏)의 비결, 친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의대 연구팀이 코로나19 기간에 10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긍정 공명’(Positive Resonance)이 높을수록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긍정 공명’은 타인을 보살피고 배려하고 관심을 갖는 친절한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친절을 실천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23% 낮다고 합니다. 나아가 친절함은 염색체가 분열할 때마다 닳아 없어지는 ‘텔로미어’(Telomere)의 감소 속도를 느리게 하면서 노화를 늦춰 어려 보이는 효과까지 있다니, 돈 안 드는 동안(童顏) 수술이 바로 친절입니다. 뇌 속에 새기는 ‘건행선’ 우리가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친절을 꾸준히 실천할 때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이 뇌 속에서 분비된다고 합니다.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함은 물론, 심장 박동 수를 느리게 하고 관상동맥 질환 위험도 줄여줍니다. 전에 느꼈던 기분 좋은 경험을 다시 느끼려고 우리는 친절한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는군요. 친절과 관대함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인간관계를 다정하게 묶어주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드는 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이뿐 아니라 친절은 전염성이 강해 다른 사람의 친절한 행위를 목격할 경우 또 다른 사람에게 친절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일종의 ‘친절 피드백’이자 ‘친절 부메랑’ 효과입니다. 건강과 행복을 주는 급행열차, ‘건행선’이라 부를 만합니다. 길을 새로 놓았으니 누구든 그 길을 이용할 수 있답니다. 그것도 공짜로 말입니다. 아직도 친절이 어려운 당신에게 타인에게 공감과 관심이 잘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절을 베푸는 사람한테도 ‘왜 굳이’ 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Awe Walk’라고 불리는 ‘의식적인 산책’을 권해드립니다.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뿐 아니라 동네 천변(川邊)을 산책하면서 해 질 녘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면 자신이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이는 친절함으로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버클리대학교 폴 피프의 2015년 연구). 또 ‘자비 명상’(Compassion Meditation)도 좋습니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헬렌 웡(Helen Weng)은 2013년 연구에서 사랑하는 사람, 자기 자신, 낯선 사람, 심지어 적에게조차 호흡을 신경 쓰며 선한 감정을 흘려보낸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타인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뇌 영역이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친절 근육, 친절력(親切力) 키우기 러닝머신 20분, 스트레칭 40분씩, 주 3~4일 필자가 아파트 단지 안 커뮤니티센터를 이용하면서 목욕 후 반드시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로커룸 머리카락 치우기입니다. 제 머리카락이 굵고 까만 데다 숱도 많은 편이라 머리 말리고 나면 바닥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로커룸 청소를 시작해 오늘 아침에도 대걸레로 머리카락을 치웠습니다. 경주 최부잣집만큼은 어림없어도 날마다 할 수 있는 필자만의 행복한 일상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걸레질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치우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고 흉보는 대신 치우는 사람을 칭찬하고 덕담으로 하루를 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너나없이 좋은 일입니다. 척추기립근만 키울 게 아니라 친절 근육도 키워봅시다. 또 짬 날 때면 ‘자비 명상’으로 주변 모든 생명에게 행복과 안녕을 빌어주는 마음을 가집시다. 필자는 무생물한테도 자주 말을 건넵니다. 네 식구 벗어놓은 더러워진 빨래를 20년 넘도록 거품 내고 헹구고 짜주느라 고생한 통돌이 세탁기한테 머리도 쓰다듬고, 엉덩이도 톡톡 치며 고맙다 말합니다. 밀린 겨울 이불 빨래까지 하루에 세 번쯤 돌린 날엔 미안하다 사죄도 합니다. 그 덕분인지 고장 한 번 안 나고 식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1친절 운동’ 같이 하실 거죠?
- 2023-06-27 08:42
-
- 한탄강 따라 시간이 빚어낸 연천 백학마을
- 지지난해엔가 가을에 갔던 연천은햇살이 바삭하고 고요했던 산하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 찾아간 봄날의 연천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충분히 봄날인데도 바람이 차서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더구나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이라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담아보지 못한 채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봄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마침 전방 마을의 주민께서 안내해주신 덕에 고맙게도 최전방 마을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백학면이라는 연천의 최전방 마을은 아무리 둘러봐도 인적이 드물다. 마을 길 옆으로 자그마한 단층 지하에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게 보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3.1 독립운동 시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항했던 이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다. 바로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영웅정신계승마을이라는 탑이 우뚝하다. 그 옆으로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진 민간인들의 활약을 새겨놓은 긴 설명이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호국보훈의 달, 최북단의 접경지역 연천을 가다 한국전쟁 당시 접전지역이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전투물품 운반에 어려움이 컸다. 이때 5시간씩 걸리는 험한 길을 민간인들이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다준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었다. 지게부대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되었다 하니 주민이라면 누구나 지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나선 셈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애국자들이다. 지게 모양이 영어의 A와 비슷하다 하여 미군들은 A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 나라를 지켜내겠다는 마음으로 탄약을 지어 나르는 이들을 보면서 유엔군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생명줄이며 전투의 절반은 이들의 공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복이나 총기도 지급되지 않았고 가파른 절벽을 걸어 다니느라 희생되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하니 마음이 못내 안타깝다. 다크 투어리즘의 증표, 레클리스 하사 이야기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지게부대 이야기 옆으로 숨은 영웅 레클리스(Reckless) 하사와 한국전쟁 이야기가 그림으로 남아있다. 레클리스는 전쟁 당시 군인이 아니라 군마(軍馬)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중에 포탄 운반용 말이 필요했다. 이때 미군들이 신설동 경마장에서 구입한 퇴역 경주마의 이름이 바로 ‘아침 해’였다. 미군들은 아침 해의 별명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 레클리스는 영리한 전투마로 미 해병들과 지내면서 우수한 전투병이 되어갔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 엄청난 양의 포탄을 짊어지고 옮기는 용기와 헌신은 전쟁 영웅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도 고지를 왕복했다고 한다. 병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전우 레클리스는 정전협정 후 미국 버지니아 본부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켰고 성대한 전역식으로 예우를 다했다고 전한다. 레클리스는 해외 유명 언론에서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라이프 매거진’ 특집에서는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우리의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실물 크기 동상을 세워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이른바 연천 백학마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한국전쟁의 영웅 레클리스 동상이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북녘을 향해 우뚝 서 있다. 고랑포구는 1930년대에 최고의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한국전쟁 때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고 휴전 후에도 통일 한국을 위한 접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과 VR, AR 체험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와 카페테리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는 옛 명성과 달리 역사공원 앞으로 임진강변의 강물만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학면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다. DMZ백학문화활용소라는 갤러리는 연천만의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전시물도 특별하다. 현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백학역사박물관 유물 다시 보기’ 전시를 진행 중이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치열했던 전쟁과 그 상흔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다. 행사는 6월 30일까지다. 한탄강 주상절리 천혜의 지질 여행 연천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지질공원 투어도 있고, 힐링을 겸한 트레킹 코스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주상절리라는 특이한 지질 구조는 화산 지형인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여러 군데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는 병풍처럼 독특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지질 명소다. 물결은 잔잔하고 봄볕은 화사한데 한두 명의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져놓고 하세월이다. 평화로운 풍경 속에 바람은 아직 차다. 주상절리 바로 위쪽으로 숭의전을 올라가 봐도 좋다. 홍살문 입구에서 찬 우물물 한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켜고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냈던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이다. 주변으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담장이나 기와에서 자라는 잡풀과 푸른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한탄강 지질 명소 중에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 땅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1977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데이트를 하던 중 한국인 연인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전문가에게 조사를 요청해,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돌이 30만 년 전의 돌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 명소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에는 그 옛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유적공원이 형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당시를 상상해볼 만하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조형물을 보면서 까마득한 옛 시간을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길이 더없이 즐겁다. 돌아가는 길에는 한탄강 인접 지류인 재인폭포(才人瀑布)를 들러봐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물길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거나 길 옆 절벽 위에 서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넓은 캠핑장도 생겨났다. 전망대와 출렁다리가 이어졌으며, 데크를 따라 양옆으로 편리하게 내려갈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후에는 엄청난 수량이 쏟아지며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지 않을 때도 직선의 길쭉한 물기둥이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폭포 이름이 재인인 것은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던 재인(才人)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예쁜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이 부인을 탐하여 재인에게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한 것이다.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했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 접경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군부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아 사방으로 한적하고 여유롭다. 울창한 산림자원도 풍부하고,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 은대리성 등 옛 성곽이 보여주는 오랜 세월의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지금껏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연천이어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 2023-06-16 08:36
-
- 역사 담은 서툰 그림, 영화로 빛을 발하다
- 동화책 삽화처럼 알록달록한 그림과 아이에게 옛이야기 들려주듯 담담한 내레이션은 5·18 민주화운동, 노인, 장애라는 주제를 훑는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입버릇처럼 들먹이지만 정작 시선 주는 데는 박한 세상,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펼쳐 보이는 시도가 빛날 수밖에. 영화 ‘양림동 소녀’가 2023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영화제의 막이 내린 대한극장 한켠에서 임영희, 오재형 감독을 만났다. 기나긴 코로나 시국, 아들은 집에만 있느라 답답해하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와 사인펜을 선물했다. 그림으로나마 답답함을 풀고 세상과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된 어머니는 왼손으로 펜을 쥐었다.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로 이사 왔을 때의 기억들이 한 장, 두 장 그림이 되어 쌓였다. 미술을 전공한 아들은 삐뚤빼뚤한 그림에서 가능성을 엿봤고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왼손으로도 괜찮을까?” 자신 없어 하는 어머니를 아들은 꾸준히 격려하고 설득했다. 어머니의 생애를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영화감독 아들의 오랜 꿈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약 7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는 그림을 그렸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촬영했다. 어머니의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고, 직접 연주한 배경음악을 삽입했다. 딸은 영어 자막을 위한 번역을, 아버지는 영화 타이틀 로고 제작을 맡았다. 분류는 다큐메이션(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글자 그대로 ‘독립영화’인 30분 08초 분량의 ‘양림동 소녀’는 이렇게 탄생했다. 빛나는 소녀 뒤엔 양림동이 있었다 영화는 온전히 어머니 임영희 씨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졌다. 영화의 다른 요소는 모두 배제하고 그림으로만 밀고 나갔다.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영화도 어머니의 그림으로 승부할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사건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유년 시절의 추억은 대체로 오래 기억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제가 광주에서의 기억을 어떻게 잊겠어요? 영광스러운 한때로, 또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순간으로 죽는 날까지 품고 갈 수밖에 없죠. 나이 들어 마주하게 된 장애인의 삶은 또 어떻고요. 남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기억력이 이렇게 좋냐 묻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들만 영화에 담았을 뿐이에요.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순간이니 당연히 기억하는 거고요.” (임영희 감독)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임 감독이 생애 가장 주체적이던 시기의 배경이었다. 제목이 ‘진도 소녀’, ‘광주 소녀’가 아닌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생지인 진도는 옛 추억거리가 있고, 어린 시절 광주로 이사 온 것도 맞다. 하지만 문인의 꿈을 키우던 중고등학교 시절 사회운동과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지역은 양림동이다. 남편을 만난 곳, 아들 오재형 감독이 태어난 곳 또한 양림동이다. 정체성을 결정지은 순간이 거리에 즐비하다. 그중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임 감독에게 물었다. ‘보프룩 까페’를 드나들던 20대 시절을 꼽는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었다. “보프룩 까페는 프랑스 소설가이자 시민운동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보’, 미국 여성학자 베티 프리단의 ‘프’, 폴란드 철학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룩’을 따온 별명이에요. 제가 지었죠. 실제 카페는 아니었고, 제가 20대 당시 동경하던 언니의 집이었어요. 당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모여 저 여성 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곤 했습니다. 보프룩 까페에는 언제나 뜨거운 커피와 사과 한 조각이 있었고, 부드러운 음악이 흘렀어요. 제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었죠.” (임영희 감독) 그 밖에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아버지와 남편이 옷을 만들어줬던 것 등. 떠올리면 즐거워지는 순간은 많다. 다만 영화에서 주가 되는 것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이다. 임 감독은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밤중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5·18민주광장(구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이웃이 국가권력에 의해 죽임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와 남편 오정묵 씨는 황석영 작가의 집 2층 거실에서 담요를 둘러쓴 채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테이프 녹음에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통스러웠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임 감독은 영광이라 표현한다. 난리통에 누구 하나 싸우거나 도둑질하지 않았고, 서로를 챙기고 보살피는 ‘신성한 공동체’를 몸소 체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약자를 통합시킨 양림동 소녀의 이야기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의 기대대로 혹은 그 이상이다. ‘양림동 소녀’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상영 후 GV(영화 상영 후 감독이나 배우가 관객들과 갖는 대화)가 시작되기 전 기립박수를 받았다.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 전에는 2022년 제13회 광주 여성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안았다. 김영우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 본심 심사위원은 “노인이라는 단어에 따라다니는 편견과 한계에 갇히지 않고, 노인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변화, 태도의 확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어르신이 직접 창작의 주체로 나서 기획, 촬영, 편집까지 맡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이 특히나 감동적이었다”는 심사평을 대표로 전했다. 두 감독이 스스로 평가하는 영화의 강점은 무엇일까. “어머니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손을 쓰지 못하세요. 그래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셔야 했죠. 그 때문인지 선이 삐뚤빼뚤한데, 보통의 경우 약점이 되는 부분이 어머니의 그림과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했어요. 이게 미술 전공자가 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죠. 무엇보다 작화가 수준급이었고요. 덕분에 영화의 장르를 애니메이션으로 결정했죠.” (오재형 감독) “요즘 세상은 약자를 어린이, 청소년,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 잘게 구분해 갈라내고 있죠. 그런데 ‘양림동 소녀’에는 이들 모두가 들어 있어요. 어린이 임영희, 청소년 임영희, 여성 임영희, 노인 임영희, 장애인 임영희의 모습으로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을 거예요. 노인뿐 아니라 모든 약자를 대통합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엄마가 아들의 도움을 받고, 온 가족이 힘을 합쳐 만든 영화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 같네요.(웃음)” (임영희 감독) 귀여운 그림체와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는 목소리는 불행한 이 한 명 없는 동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생존 기록에 가깝다. 이 부조화가 관객으로 하여금 여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 제작자가 되면서 임 감독은 영화 한 편을 봐도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풀이 죽어 있던 어린 시절의 임 감독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옷을 지어줬던 아버지와의 행복한 기억을 다룬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잊고 지냈던 아버지의 사랑이 떠올라서’가 이유였다. ‘양림동 소녀’는 여성 인물이 사회의 갈등과 구조를 해결해나가는 ‘여성 서사’라는 점에서도 호응을 얻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실제 증언,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픽션 작품은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 대부분이다. 또 비극적 참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애도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죄책감을 느끼게끔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나이가 어리거나 심신 미약자라면 접하기 꺼려할 수 있다. 잔혹한 참상까지 담담하게 귀여운 그림으로 풀어낸 영화 ‘양림동 소녀’는 그 지점을 비껴간다. 덕분에 더 여운이 남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사회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애 서사에 대한 갈증도 해소해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한 차례 이목이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장애 극복으로 흐르면 편견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임 감독은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덤덤한 태도를 유지한다. 장애를 한계로 받아들이고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대신,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시인이자 화가인 자신이 이번 영화를 통해 영화감독으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점을 기뻐할 뿐이다. 이웃과 사회, 공동체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들 오재형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그의 어머니가 국가폭력, 장애의 관점에서 ‘생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단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접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림을 매개로 하니 느껴지는 바가 달랐다는 것. 말로 전해 들을 때와는 또 다른 상흔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지금은 어머니의 생애가 앞으로 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대상 수상작 감독이라면 으레 가질 법한 차기작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두 감독 모두 고개를 저었다.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전남 순천시 ‘골목책방 서성이다’에서 영화 상영회 및 GV 행사를 소소히 가졌다. 아직 세상에 한 권뿐인 ‘양림동 소녀’ 그림책은 올해 안에 삽화 위주의 에세이로 정식 출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데 굳이 영화 상영 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오 감독은 다음 일정이 잡히거든 연락드리겠다며 웃었다. 임영희 감독은 누룽지 같은 노년을 보내고 싶단다.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조각내는 세상이지만, 누렇게 눌어붙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을 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임 감독이 생의 마지막까지 지킬 가치는 단 하나다. ‘내가 이웃과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는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여성과 장애인, 공동체 문화를 위한 활동이지 않을까 싶다. 섬초롱 꽃에/ 시원하고 달콤하게 왔어/ 고양이는 웃고/ 까치는 종종거려/ 물 마시는 산/ 춤추는 빗방울/ 나는 단비를 마시며/ 아침을 맞는다 ‘양림동 소녀’ 마지막 장면에서 임영희 감독이 낭독한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임 감독의 이야기가 수많은 마음을 아침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콤하게 적실 수 있길 기원한다.
- 2023-06-07 08:27
-
- 두오모 성당, 그리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는 최대 규모인 밀라노 두오모 성당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다. 교통이 좋아야 하는 건 현대인의 주거 선택 시 중요 요소인데 여행지를 향한 여행자들에게도 해당된다. 때로 먼 길 찾아가 고요히 만나는 여행지의 맛도 남다를 수 있지만 짧은 시간을 만들어 찾아온 사람들에겐 이럴 땐 반갑다. 지하철에서 올라오니 두오모 성당이 기다린 듯 보이는 건 쾌재를 부르게 한다.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을 뜻한다.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대성당이 있는데 그중에 피렌체와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이 유명하다. 특히 오래전에 가 보았던 피렌체의 두오모는 그 독특함이 지금도 떠오른다. 어쩜 이다지도 문양이 정교하고 오묘한지 감탄스러웠다. 웅장하고 장대한 건물 곳곳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섬세함에 놀랐다. 피렌체 두오모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가 먼저 떠오르는 성당이다. “홀로 멀리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그리운 사람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명대사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영원을 약속하는 연인들의 성지로 준세이와 아오이가 서른 살의 생일에 만나기로 했던 곳. 그러나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는 스틸컷의 효과가 크다. 만나지 못한 채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피렌체에서 다시 그들은 서로 연결되었고 마음을 주고받았다. 여행자들도 두오모 성당 앞에서 영화처럼 나름대로의 무언가를 하는 것, 하다못해 혼자 배회를 하거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BGM이라도 듣는다. 우리들에게 그곳은 매체의 영향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 영화음악을 듣다 보면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만 두 연인의 풍경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첼로 연주곡이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걸 느낀다. 낮으면서도 풍부한 첼로음의 분위기가 수분을 머금은 듯한 피렌체의 분위기와 어울려서 좋다. 준세이와 아오이가 어느 공원에서 첼로 연주 공연을 보면서 키스하던 장면도 함께 오버랩 된다. 그리고 느닷없는 일이지만 아오이 역의 진혜림이 다른 영화에서 조용한 반주로 이쁘게 불렀던 A lover's Concerto 도 연달아 떠오른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아오이 아주 오래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갔을 때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는 나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영화와는 무관하게 대성당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 속의 피렌체 두오모 성당은 화려한 외관과 내부 그림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시종일관 경이로움의 여행이었다. 지금과는 달랐을 그때의 촉촉하던 정서가 문득 그립다. 갑자기 피렌체의 풍경에 잠겨 그 도시를 걸어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야기하려고 시작했는데 슬그머니 피렌체의 두오모와 영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삼천포로 빠졌다.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엔 이번에 본 밀라노 두오모의 첨탑을 올려다보는 자신의 모습을 또다시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저 웃으며 그땐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피렌체의 두오모를 떠올렸고 영화 생각만 했었다 하면서 말이다. 두오모는 단순한 종교적 장소만이 아닌 지역민들에게 가장 중심적인 장소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 건설할 때 두오모를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배치했다. 그래서 두오모를 바라보면서 밀라노와 피렌체를 동시에 떠올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여행의 기억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기에 때로 문득 이렇게 떠올려 보며 아릿해져 오는 걸 혼자 즐겨보는 것도 괜찮다. 연말의 두오모 광장은 이른 시간인데도 들뜬 사람들로 가득하다. 맞은편 노천카페의 노란 테이블엔 부부나 연인들이 이미 다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침 햇살은 두오모 성당을 여유롭게 바라보고 앉아있는 그들을 비춘다. 때로 어딘가 지나치다가 우연히 만나던 안개 속 풍경에 멈춰 서기도 한다. 안개가 내게 스미는 촉촉함과 그 속에 파묻혀 더 머물고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엄청난 포스의 두오모 대성당의 광장과 따사로운 노천카페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그 풍경 속의 풍경이 되어 보기도 한다. 성당 광장의 비둘기 떼들과 노니는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일상을 떠나 있다는 묘한 일탈감과 생경한 도시의 인상이 절묘하게 배합되는 순간이다. 바로 그 옆으로 대형 아케이드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상가가 아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비토리오 에마뉴엘리 2세 갈레리아 아케이드라는 이름이다. 웅장한 건물의 통로로 들어서면서부터 중앙을 십자로 가르며 사방의 건물의 연결하는 길이 이어지고 천정의 창 구조물이 예술 작품이다. 모르고 들어선다면 처음엔 백화점이나 일반적인 상가인 줄 알 수 있다. 그러나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이곳엔 우리가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프라다, 베르사체, 루이뷔통 등의 명품 샵이 우아한 무게감으로 쭉 입점해 있다. 고색창연함과 고급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한켠으론 피자와 젤라토를 한 입 먹느라 줄 서 있고, 기둥도 천정도 예술이구나 하며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두리번거리며 산책하듯 지나가려 해도 쉽지 않은 인파다. 골목도 자칫 길을 잃을 만큼 복잡하게 이리저리 길이 나 있다. 아케이드를 벗어나면 베르디의 푸치니를 초연했다는 스칼라 극장이 있지만 생각만큼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이 의미 있겠지만 그냥 쓰윽 보고 지나친다. 미술관이나 동상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정도로 볼거리가 널려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백 년 된 건물들이면서도 정갈하고 도시적이다. 오래된 연말의 찬 기운과 함께 오전의 햇볕이 그 건물을 지나는 길에 그림자를 만들고 배회하던 그곳에 발걸음 소리를 남긴다. 지하철 입구나 거리 곳곳에 빨간색의 선명한 M자 폰트가 밀라노를 더욱 기억하게 할 것 같다.
- 2023-06-05 13:11
-
- 아버지 된 이필모 “중년 배우로 새로운 시작”
- 이필모(49)는 결혼과 함께 배우 인생의 변곡점을 맞았다. 5년 전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슬하에 둔 그는 작품 속에서도 아버지 역할을 연이어 연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어느덧 ‘중년 배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체감된다. 이필모는 이 변화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배우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이필모는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에 출연한다. 인터뷰 당시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었던 그는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번에 새롭게 보여줄 모습을 묻자 “아버지 역할을 맡은 점이 아닐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극 중 주인공 로운의 아버지 역할을 연기하는 이필모. 재벌 캐릭터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친구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그는 2021년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연모’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 연기를 펼친다. ‘연모’에서는 이휘(박은빈 역)의 아버지 혜종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이게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감정이 들어요. 이제 주인공이 아니고 아버지가 되어 조력자 역을 맡게 된 것이니까요. 물론 모든 역할이 중요하고, 이전과 다름없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중년 배우가 됐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전과는 다른 제 나이에 맞는 새로운 연기를 하게 되겠죠. 중년의 로맨스 연기를 할 수도 있겠고요. 앞으로 새롭게 펼쳐질 배우 인생이 기대됩니다.” 데뷔 25주년 필모그래피 1998년 영화 ‘쉬리’로 데뷔한 이필모는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저는 타고난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고 노력형 배우다”라고 자평했다. 중학생 때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저는 매우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그나마 중학생 때 키가 178cm였으니, 키가 크다는 게 특징인 정도였죠. 별다른 꿈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홍콩 누아르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전문 용어로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것을 그때 느낀 거죠. 그리고 그날부터 제 꿈은 배우가 됐습니다.” 이필모는 데뷔 후 연극에 주로 출연했던 터라 인지도가 낮았다. 대중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까지를 무명 시절로 여겼다. 노력해도 빛이 나지 않는 무명 시절. 많이 힘들었지만 그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이필모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다”면서 빛을 볼 날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는 2006년 KBS 2TV ‘아줌마가 간다’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아침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이 2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어 그는 2009년 KBS 2TV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에 출연하게 된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4.2%를 기록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이필모는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극 중 솔약국집 둘째 아들이자 소아과 의사 송대풍 역을 연기했다. 이필모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연기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딱 그 시절 나올 수 있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배우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제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한창 방영 중일 때예요. ‘솔약국집 아들들’은 54부작인데, 30~40회가 방영 중일 때 가장 행복했어요. 가장 바쁠 시기이기도 한데, 대중의 반응이 느껴지니까 힘이 나는 거죠. 그런데 40회가 넘어가면 그 행복한 순간도 끝나요.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아쉬워지는 거죠.” ‘솔약국집 아들들’ 외에도 이필모의 가슴에 오래 남은 작품들이 있다. 가장 먼저 그는 MBC ‘빛과 그림자’를 언급했다. 극 중 악역 차수혁을 연기한 이필모는 캐릭터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까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MBC ‘가화만사성’에서 뇌종양 환자 연기를 펼친 것, tvN ‘응급남녀’에서 냉철한 의사 연기를 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셋째 계획 가진 필연 커플 이필모에게 작품 선정 기준을 묻자 “불러주시면 감사하고 가리지 않는다”는 겸손한 답을 했다. 특히 가장이 된 현재 그는 가족을 위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하려고 한다. 이필모는 2019년 인테리어 전문가 서수연 씨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첫째 담호는 2019년, 둘째 도호는 2022년에 각각 태어났다. “아침에 까치가 입에다 뭔가를 물어서 둥지의 새끼들한테 갖다주는 모습을 보고, 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새끼 새들을 위해 알아서 돌아다니는 거잖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숙해지거든요.” 이필모와 서수연 씨는 ‘필연 커플’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2018년 TV조선 ‘연애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 부부로 발전했다. 첫 만남부터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그들을 향해 대중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부부의 근황에 대해 이필모는 “아내의 장점은 털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아내한테 늘 고마워요. 담호, 도호를 예쁘게 낳아주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엄마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죠. 저희 부부도 여느 부부와 똑같아요. 가끔 싸울 때도 있죠. 저는 오히려 부부가 안 싸우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같이 사는 것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죠. 한두 가지만 맞아도 잘 맞는 것이고, 나머지 여덟 가지는 맞추면서 사는 거예요.” 필연 커플의 2세인 담호와 도호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필모는 두 아들의 장래에 대해 “연예인은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묻자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힘든 연예인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연예인은 아버지가 이미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또한 이필모는 셋째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아내와 어느 정도 얘기가 된 부분이라고. 그는 “옛날부터 아이가 셋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삼 남매로 자라서 그런지 둘은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최근 딸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특별한 이유를 전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애들이 방에서 뛰어나와 아빠를 반겨주는 것이 저의 로망이에요. 사실 예전에 여자아이 옷을 사놓은 게 있습니다. 최근 딸을 갖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겼는데요. 부모님이 아프셔서 병원을 정말 밥 먹듯이 다녔어요. 병원에서 제일 많이 본 장면이 무엇이냐면, 중년 여성이 아버지를 케어하는 모습이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늙고 병들었을 때 딸아이가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담호, 도호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에요. 어쩌면 딸아이를 갖고 싶은 욕심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죠.” 모친상, 건강의 중요성 깨달아 부모가 되면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닮아간다고 하지 않나. 이필모의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그는 “현재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요양병원에 계신다”라고 말했다. 삼 남매 중 막내인 이필모는 부모님의 케어를 담당했다.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닌 것도,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의 주치의·간병인과 소통하는 것도 모두 그다. 지난 3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차마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전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4일 후 아버지가 골절상을 입으셨어요. 아버지는 현재 거동을 못 하시고, 귀가 거의 안 들리는 정도예요. 치매 증상도 있으시고요. 아버지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하지 못했죠.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아뵈었는데, 간병인분이 ‘혹시 3월 초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아버지가 그날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하시는 거예요. 순간 소름이 확 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버지를 뵈러 가니까 이제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필모의 어머니는 쓰러진 후 3개월간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힐링이 필요할 때 찾는 제주도에서 어머니를 보내는 시간도 가졌지만, 아직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터뷰 당시 이필모는 영정 사진으로 쓰인 어머니 사진을 기자에게 공개하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지난해 서울장미축제에서 그가 직접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어머니는 유난히도 밝게 웃고 계신다. “장미축제에 같이 갔을 때 어머니께서 정말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좋은 곳에 많이 못 모시고 다니고, 못 해드린 게 너무 많아서 가슴이 아파요. 어머니는 자식만을 위해 살았는데 말이죠. 어머니는 우리나라 격동기를 이끈 분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위해 뭘 했다는 게 아니라 모든 힘듦을 묵묵히 견뎌내고, 자식을 잘 키워내셨으니까요. 어머니 덕분에 배우 이필모도 있는 것 같아요.” 이필모는 어머니를 보내고 ‘건강’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꼈다. “가족이 무탈하고 건강한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는 깨달음을 전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운동한다. 건강을 유지해 오래 일하며, 아버지로서 역할도 다하고 싶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이필모는 “색다른 향기를 내뿜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연기 참 잘했던 배우로 기억해줬으면”이라고 말했다. “누구라도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어요. 어려움과 힘듦의 정도 차이가 있는 거겠죠.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이겨내면 행복한 시간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을 위해 이겨낼 거예요. ‘아버지’라는 거룩한 이름을 갖고 있으니까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 2023-06-02 08:50
-
- 해변 길 옆 층층의 기암괴석 경이로운 경남 고성
- 남쪽 바다의 새벽, 시루섬이 잠긴 바다가 어슴푸레하다. 수평선 위로 떠오른다는 아침 해는 간데없다. 심상찮은 기후와 미세먼지 나쁨 수준도 한몫했다. 간밤에 뿌린 비로 하늘이 맑아졌으려나 했지만 새벽이 되어도 구름에 잔뜩 가린 채 신비롭다. 작은 해변가 시루섬은 고성 상족암군립공원 해안 끄트머리에 그렇게 무심히 비경을 숨기고 있었다. 경남 고성군 시루섬은 떡시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근래 들어서는 케이크섬으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이름이 어디 이뿐이랴.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과 육지로 바뀌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끊임없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도 오직 그곳에 그림처럼 떠 있는 시루섬은 잔잔한 물속에서 또 하루를 시작한다. 바다 냄새를 품은 새벽 공기가 가슴 깊이 파고들어 시원하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숱한 세월을 보낸 시루섬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 지금도 여전히 탄성이 절로 나오는 일출과 일몰은 물론이고 한밤이면 별을 좋아하는 이들이 찾아드는 곳, 그렇게 우주의 신비를 담아 언제나 명장면을 연출하는 섬이다. 시루섬은 세월을 켜켜이 쌓은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이 에워싸고 있다. 물이 들고날 때마다 사람들은 맨손으로 해조류를 집어 올린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낚시의 즐거움을 낚아 올리는 낚시꾼의 모습도 더러 보인다. 겨우내 무채색 색감이던 바다에서 상큼한 초록의 파래가 흐르는 물 따라 빗질하듯 씻겨 내려가는 모양 또한 시원하다. 해변가는 수천수만 년을 구르고 굴러 반질반질한 몽돌들로 가득 채워졌다. 무수한 세월이 담긴 바윗돌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걸터앉도록 자리를 만들어주고, 날마다 파도를 만나며 오늘도 시루섬을 이룬다. 시루섬 몽돌해변의 여유로운 풍경과 새벽 공기의 개운함은 비길 데가 없다. 바다 건너편으로 솟아오른 작은 섬들이 마주 보인다. 시루섬 오른쪽 뒤로 보이는 섬은 봄이면 분홍빛 진달래가 화사한 사량도다. 크고 작은 다도해 중에서 시루섬 왼쪽으로 봉긋이 솟은 두 개의 섬이 질매섬이다. 섬사람들은 가슴을 닮았다 하여 유방섬이라 부른다. 날 좋은 때는 이곳에 앉아 섬 사이로 떠오르는 유방일출(乳房日出)과 다도해의 절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니 한시름 놓고 일출을 보고 싶을 만하다.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의 시루섬은 태곳적을 연상시킨다. 직접 가까이 다가가 시루떡처럼 쌓이고 쌓인 바위 위를 걷고 섬의 풍광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시선 닿는 모든 것이 바다와 하늘이고, 그 사이에 자리한 섬과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품은 몽돌과 바위다. 수억 년의 시간을 간직한 섬의 속살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갯바위로 연신 파도치는 바다 풍광은 가슴을 뛰게 한다. 거룩한 세월이 담긴 시루섬이다. 태곳적 순수한 자연을 들여다보면서 가슴 벅찬 시간이다. 동해 최북단 강원도에 고성이 있고, 이 땅의 남쪽에는 경남 고성이 있다. 남해의 바닷가 마을 고성은 근처에 통영이 있고 사천과 진주가 둘러 있어서 먼저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로서 고성을 말할 때 오히려 주변 지역이 등장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시루섬에 이어서 고성의 다른 지역이 아닌 삼천포 쪽으로 여행 노선을 잡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경남 고성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났다. 시루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성 상족암군립공원의 명승지 상족암과 인근 덕명리 일대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는 고성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화석 산지인 상족암군립공원은 1억 년이 넘는 시간을 선명하게 간직한 신비로운 지역이다. 핫플레이스라며, 멋진 포토존이라며 사람들이 몰리는 곳과는 확연히 다르다.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실속 있는 여행지가 고성이다. 해안 풍광이나 수려함의 극치 또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절경이다. 남해의 바닷가 제전마을 입구에서 시작되는 해변길 옆으로 층층의 기암괴석을 지난다. 제전항 입구의 해변에는 바지를 걷어 올린 채 소라를 줍고 모래놀이를 하며 노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따뜻한 남쪽 바다다. 모래톱 옆으로는 언제적 화석인지 모르는 너른 바위가 몇 겹씩 겹쳐서 펼쳐져 수억 년 전의 위용을 뿜어낸다.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무 산책로가 길게 이어져 있고, 데크 아래로 내려가 해변의 화석과 바다를 만난다. 공룡 발자국이 이상할 것 없을 만큼 화석으로 남은 암반과 돌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공룡이 이렇게 이동했구나 하면서 발자국 따라 너도나도 발을 대보기도 한다. 이렇듯 상상 속 세계가 현실이 된다. 경상남도 청소년수련원 앞 몽돌해변까지 가면 누구나 바다로 내려선다. 바다를 앞에 두고 갯돌이 굴렀을 시간을 가늠해보는 몽돌밭이다. 여행자들이 하나씩 쌓아 올린 돌탑이 해안 풍경을 이루었다. 층층마다 담긴 소망은 민속신앙이나 종교를 초월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누구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가만히 돌 하나 얹는다. 몽돌해변에서 바라보는 봄 바다, 널따란 암석이 층을 이루어 마음대로 쭉쭉 뻗친 모양새로 파도를 맞고 있다.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남쪽 바다의 최고 절경 고성 상족암(床足巖)이다. 떨어져서 보면 밥상 다리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상족암은 무수한 암반이 겹겹의 층을 이루었다. 푸짐하게 밥상을 차려내도 천년만년 견딘 굳건한 상다리가 휠 염려는 없겠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의 상족암은 1983년 군립공원으로 지정, 주변 일대를 모두 포괄하는 상족암군립공원이다.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이자 천연기념물 제411호다. 수억 년 퇴적층의 지각변동으로 생겨난 기묘한 모습을 보면 단박에 압도된다. 대형 구들장이 겹겹이 층을 이룬 듯한 암벽 속으로 뚫린 동굴 또한 신비롭다. 고작 백 년쯤 겨우 사는 인간들이 수억 년의 세월을 견딘 동굴 속을 찾아들어 신기한 듯 들락날락한다. 그 옛날 선녀들이 옥황상제에게 바칠 금의를 짜고 목욕을 하던 선녀탕이 웅덩이가 되어, 사람들은 일렁이는 실루엣과 함께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린다. 태고의 동굴 밖으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유람선이 지나가고 봄 바다 위로 윤슬이 빛난다.
- 2023-05-25 08:53
-
- “5060의 성지, 오뉴하우스로 오세요”
-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2’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2019년(27.7%)보다 6.4%p 높아졌다. 사회적 고립도는 주변에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사회적 고립도가 높았다. 19~29세의 사회적 고립도는 26.7%지만 60세 이상은 41.6%로 높아졌다. 독거노인 비율도 늘었다. 2000년 16%였던 독거노인 비율은 2022년 20.8%에 달했다. 5060 취미플랫폼 ‘오뉴’(ONEW)를 운영하는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우리나라 노인 외로움이 왜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하다 2020년 8월 로쉬코리아를 설립했다. ‘시니어는 소중하니까’의 줄임말 ‘시소’로 시작해 최근에는 ‘오뉴’로 플랫폼을 리뉴얼하고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공간을 열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사회적 고립감과 외로움이 모두 없어지는 날을 꿈꾼다는 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로쉬코리아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로쉬코리아(LOSH KOREA)는 ‘외로움이 여기서 멈춘다’(Loneliness stops here)는 의미에요. 왜 우리나라 시니어가 겪는 외로움과 고립이 다른 나라보다 높을까 고민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세 명이 공동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긴 한데요. 이 경우에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 약자여야 이용할 수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용하면서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끼세요. 왜 그럴까 살펴보니 이분들이 원하는 활동이 아닌 거예요. 활동을 통해 성장하거나 영감을 받지 못하는 거죠. 아무래도 복지 차원의 프로그램들은 예산이 정해져 있고 최대한 많은 분에게 혜택을 드리려다 보니 퀄리티를 높이기가 어렵더라고요. 몇 번 가보고 맞지 않으니 집에서 TV를 보거나 경로당으로 가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은퇴 전후인 것 같아요. 그때가 골든타임이라고 봐야 하는데요.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디서 활동해야 할지, 정보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이때 발견하지 못하면 그렇게 사회와 멀어지면서 노후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민간에서도 이런 부분을 누가 바꿔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로쉬코리아를 시작했습니다. Q 처음에는 어떤 서비스로 시작하셨나요? 처음에는 디지털 교육 서비스를 먼저 했어요. 그럼 스스로 정보를 찾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삶이 변화가 안 되더라고요. 들여다보니 정보를 찾긴 하는데, 내가 원하는 정보가 없는 거예요. 복지관은 70대 이상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문화센터나 살롱은 40대 타깃이 많고요. 동호회는 문턱이 너무 높은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이 아주 즐겁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시소’ 프로그램을 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긴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거예요. 그래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는 지역 근처에 어떤 문화, 여가 프로그램이 있는지 요즘 MZ들에게 보내는 것처럼 똑같이 안내해드렸어요. 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서 교류하실 수 있도록 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저희와 오프라인에서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하실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서비스가 점점 커지더라고요. 우리가 만든 서비스가 정말 도움이 되는 걸까 한 번 더 확인하고자 마지막으로 생활도움서비스를 해봤어요.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면 집에서 필요한 어려움을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라는 콘셉트였습니다. 병원 이동, 집안 수리 등 다양한 도움을 드렸는데요. 경제적·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누구나 성장하고 발전하고 싶어 했고,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집에 방문하면서 저희 서비스를 알려드렸거든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서 얼굴이 밝아지시고 삶이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서비스를 업으로서 더욱 명확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은퇴 후에 복지관, 문화센터를 갔다가 좌절을 경험하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걱정하셨던 분이 있었어요.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일상에 활력을 찾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플루언서가 되어 저희를 통해 찾은 활력을 저희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희의 팬이 되신 거죠. 그럴 때면 벅찬 기분을 느껴요. Q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뉴’ 서비스까지 하게 되신 거군요. ‘오뉴’에 대해 알고 싶어요. ‘오뉴’는 5060을 뜻하는 숫자 5, 6을 이어서 발음한다는 의미도 있고, 영어로 ‘Oh, New!’라는 뜻도 있어요. 오늘도 이곳에서 새로운 여가 활동을 찾고 삶을 새롭게 액티브하게 보내시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을 다운 받으시면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개인에 맞춰 ‘큐레이션’을 하고 있어요. 관심 있는 분야에 연관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뜨도록 해 활동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푸쉬 알림을 통해서 여가와 관련된 콘텐츠를 보내드리기도 하고요. 브런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채널을 통해서는 다수의 5060분들에게 여가, 문화를 제안하는 콘텐츠들을 보여드리고 있어요. 매월 1만 2000명 정도의 시니어 분들과 만나고 있고요. 저희 프로그램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5000명 정도 됩니다. Q 복지관, 문화센터, 살롱 등 다른 문화 서비스들과 차별화된 ‘오뉴’만의 특징은 어떤 걸까요? 고객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 제안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특히 첫 키워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영역을 제안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 고객이 건강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취미를 찾는다고 생각해볼게요.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이라면 음식, 운동, 병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중 운동을 검색해서 운동 중에서도 춤을 고르고 춤 중에서도 발레, 훌라댄스, 현대무용 등을 보다가 훌라 댄스를 선택해 취미로 즐겼다고 해볼게요. 그러면 대부분 맞춤 서비스는 그다음 서비스로 춤에 관련된 것들을 제안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다시 첫 번째 건강 키워드로 돌아가요. 다음에는 건강한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제안하거나 운동 중에서 춤이 아닌 다른 것을 보여주는 식이죠. 맞춤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는 먼저 콘텐츠로 만들어서 이용하시는 분들의 반응을 살펴요. 관심이 많은 것은 기획해서 원데이 클래스로 먼저 해보고요. 거기서 반응이 좋은 것들은 정규 클래스로 편성합니다. 지금 이슈가 된다고 무작정 제안하기보다는 고객별 성향 등을 반영한 데이터들을 보고 제안하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업계에서 유명한 선생님들도 모실 수 있었고요. 클래스 퀄리티도 높아지게 됐습니다. 기획을 탄탄하게 하면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고객들의 피드백을 단계적으로 반영해서 조금 더 뾰족하게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인데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이런 경험이 쌓이면 추천 데이터도 더 많이 쌓일 것이고 ‘오뉴’만의 색깔이 확고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동안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운영하셨는데요. 지난해부터는 삼청동에 ‘오뉴하우스’라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시네요! 저희 서비스를 더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문화, 여가 프로그램은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은평구에 있을 때 점점 은평구에 사시는 고객분들의 비율이 줄더라고요. 성동구, 왕십리 등 먼 곳에서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여쭤보니 사는 지역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여러 지점을 다니며 문화생활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다니고 싶다는 힌트를 주셨어요. 그래서 공간에 방문도 하고 주변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찾다 보니 삼청동으로 오게 됐어요. ‘오뉴하우스’는 삼청동에서 북촌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목에 있는데요. 이곳이 5060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뉴하우스 1층에서는 유명 카페 바리스타가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요.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해요. 2층에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화장실이 2층에 있는데, 1층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화장실에 갈 때 자연스럽게 수업하는 모습도 보고 회원들이 그린 그림 전시도 볼 수 있어요. 또 오뉴하우스를 중심으로 맞은편에 비정기적으로 빌려서 사용하는 공간이 있고요. 옆 건물은 지금은 1층만 사용하고 있는데요. 재봉틀, 미술처럼 도구가 필요한 클래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미술품 전시를 열기도 해요. 나중에는 2, 3, 4층도 다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에요. Q ‘오뉴하우스’ 공간을 만들 때는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고객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국에 유명한 ‘어니언’ 빵집을 간다면 아침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가신다는 거예요. ‘런던베이글’ 같은 곳은 갈 생각도 못 하고요. 그 공간이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머무르지는 못하시는 거예요. ‘스타벅스’는 가도 ‘블루보틀’은 부담스러운 거죠. 시니어들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블루보틀’ 보다 커피도 맛있고, 다른 곳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도 있고, MZ들의 커뮤니티보다 훨씬 즐거운 곳이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오로지 시니어를 위한 공간인 거죠. Q 1층 카페에는 여러 상품도 전시되어 있네요? 저희 수업 중에 조향 클래스가 있었는데요. OEM으로 만든 '오뉴' 제품이 있고요. 와인 클래스에서 다룬 와인을 전시하기도 하고요. 책도 두었습니다. 또 저희가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레코드와 재봉틀 클래스를 하거든요. 오뉴하우스를 찾는 분들이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실 수 있도록 가져와서 두었어요. 저희 공간에 있는 상품들은 이렇게 스토리가 담겨 있고요. 주기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Q 최근에는 기업들과 협업해서 사이드 프로젝트도 많이 하신다고요? CJ에 건강식 브랜드 라인이 있는데요.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한 제품을 먹을 고객들이 포만감을 느낄지 궁금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저희랑 프로그램을 열어서 협업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용자분들이 식단 챌린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이 과정에서 피드백과 데이터를 모아 CJ에 넘기면 이런 내용을 반영해 제품을 만드시는 거죠. 예를 들어 제주도에 있는 호텔이 5060 고객을 타깃팅 하고 싶다고 하면, 저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예요. 그냥 이용료를 저렴하게 해드릴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숙박 플랫폼과 저희가 다를 게 없잖아요. 여행 가서 클래식 듣고, 트래킹 하고, 수업도 넣고, 호텔도 즐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요. ‘어딩’이라는 트래블 커머스 플랫폼과 업무협약을 맺어서 5060을 위한 상품을 기획하기도 하고요. 최근 이렇게 기업과 고객을 연결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들이 종종 생기고 있어요. Q ‘오뉴’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합니다. 5060 시니어 분들의 여가생활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건 ‘취미를 잘 큐레이션 해드리는 것’이에요. 개인의 상황, 성향, 경제적 여력에 맞는 여가 콘텐츠를 정말 잘 제안해드리고 싶어요. 무료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밖에 없는 줄 아시지만, 삼청동에만 하더라도 퀄리티 좋은 무료 전시가 정말 많거든요. 이런 큐레이션을 잘 해드리면 여가 생활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잖아요. 그러려면 저희의 업을 좀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가의 범위를 펼치는 거예요. 지금은 문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행도 있을 거고요. 오프라인에서 경험하는 소비가 결국 다 여가와 맞닿잖아요. 저는 미식도 여가 문화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경험제를 연결할 수 있는 회사, 소상공인들과 함께 기획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안하고 싶어요. 아직은 저희 수업이 서울 지역에서만 열리는데요. 앞으로 지역도 넓힐 생각이고요.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수업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복합 문화 공간도 지역별로 하나씩 늘려갈 생각이에요. ‘오뉴하우스’에는 유명 카페 출신 바리스타, 프로그램 기획자, 디자이너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15명의 팀원이 진심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여러분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공간입니다. 1층 카페에 그냥 놀러 오셔도 좋고요.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모두가 오뉴 프로그램에 대해 잘 설명해 줄 거예요. 자신의 업에서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이 모였으니까, 모든 시니어의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사라질 때까지 정말 우직하게 나아갈 거예요. 저희가 하는 일을 공감하고 응원하신다면 많은 분이 아이디어를 주시고 필요한 걸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2023-05-17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