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노화현상으로 여길 수 있는 안과질환에 대한 치료 경각심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백내장은 노년기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적극적인 치료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 백내장은 수정체가 퇴행성 변화를 겪으며 혼탁하게 변해 빛이 안구 내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는 노인성 안질환이다. 드물게는 노화뿐만 아니라 외상, 당뇨병, 유전 등으로 발병하기도 한다.
백내장 발병 초기에는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변하거나, 이중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흐리게 보이는 증상을 두고 자연스러운 노화로 생각해 제때 치료하지 않는 사례가 다반사다.
백내장은 발병 시기에 따라 초기, 미숙, 성숙, 과숙 단계로 나뉜다. 백내장 발병 직후 즉각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병증 단계에 따라 상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일찍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특히 과숙 단계에 이르면 치료가 어렵고 복잡해질 수 있다. 수정체 핵뿐 아니라 겉질에 혼탁이 발생하고 나아가 경화로 인한 침착 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백내장이 과숙 단계에 접어들면 실명에 가까운 증상을 보인다. 포도막염, 녹내장 등의 합병증 발병 위험도 높아진다. 따라서 백내장 치료 타이밍을 올바르게 확보해야 한다.
백내장 치료 전 노안 발생 여부도 체크하는 게 좋다. 노안은 수정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근거리 시력 저하 증상이다. 수정체 퇴행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인 만큼 백내장과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노안을 방치한 채 백내장만 치료할 경우 사후 돋보기안경을 착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는다. 따라서 백내장과 노안을 동시에 개선하는 치료법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이에스우리안과 송윤중 원장은 “백내장 수술 대상 대부분이 고령층이라, 한 가지 검사로 진단하기보다는 정밀하고 체계적인 단계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네 신랑 아직도 직장 다니느냐? 요즘 젊은 애들도 취직 못 해 난리인데 정말 너 남편 대단하다.’
아내가 친구에게서 들었다는 그 말을 전해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예순을 넘어 정년퇴직하고 새로운 직장을 잡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첫째의 걸림돌이 건강이다. 공장이나 아파트를 짓는 건설현장에서 인력 부족이라 하면서도 나이 든 사람을 꺼린다. 기술력 때문에 꼭 필요한 사람도 병원 의사가 발행한 ‘일을 시켜도 좋다’는 건강진단서를 요구한다.
건강이라고 하면 ‘아놀드 슈워제네거나 실베스터 스탤론’처럼 근육질의 몸매를 떠올리지만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건설 현장마저도 힘든 일을 하려는 근육질의 몸은 필요 없다. 땅을 파는 삽질은 '포클레인(Poclain)‘이라는, 기계가 한다. 철근 같은 무거운 물건을 높은 곳에 올리려면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라 타워 크레인( tower crane)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금방 해치운다. 힘든 일은 대부분 기계가 해치우니 경험 많고 노련한 나이 든 사람이 환영받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시니어의 약점은 파워가 아니라 사실 민첩성이다. 건설현장에서도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순발력에서 젊은이에게 밀린다. 잘 넘어지고 순간적인 판단력이 둔하고 위험에 대처하는 안전에 문제가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안전이다. 공사현장에는 크고 작은 위험이 새벽 안개처럼 스멀스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좁은 철근 위를 걸어야 한다. 발에 걸리는 장애물도 많고 갑자기 옆에서 돌발흉기도 튀어나온다. 귀가 어둡지 않아야 작은 위험한 소리(예: 가스가 새는 소리, 불타는 소리 기계의 파열음 등)를 듣는다. 순간 집중시력이 좋아야 넘어질 것 같은 물체를 볼 수 있고 튀어나온 못이나 삐딱한 받침대 등 위험인자를 발견하여 몸을 틀어 피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지혜는 늘지만 오감은 떨어진다. 한마디로 몸이 둔해진다. 필자가 오래 했고 즐기는 테니스라는 운동도 구력(球歷)이라는 연륜이 있다. 상대의 약점을 빨리 간파하고 효과적인 공격에 구력이 작용하지만 상대의 빠른 공에는 발걸음이 느려 속수무책이거나 설령 공을 쫓아갔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몸을 돌려 공을 받아칠 균형 감각이 떨어져 실수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민첩성이나 순발력이 늦음은 고백한다. 속도감이 있는 운동경기에서 승부에 지는 가장 큰 이유는 힘이 아니라 순발력과 민첩성에 있다.
나이 들어도 현역으로 오래 근무하기 위해서는 헬스장에서 파워를 기르는 것 못지않게 청력과 시력 등 오감을 제대로 유지하기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눈감고 한쪽 발로 오래 서기. 호각소리에 빨리 반응해서 몸 틀어보기, 작은 소리를 들으려 청력 집중해보기, 눈동자 굴리고 일정 지점에 시선집중하기, 입 안에 있는 음식 맛을 느끼고 맞춰보기를 해보면 작음 몸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보폭 넓혀 걷기’가 방영되었다. 나이가 들면 걷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히 균형을 잡기 위해 보폭은 좁아진다. 평소의 보폭보다 10cm 넓히는 걸음을 걸으면 근육이 활성화되고 균형 감각도 좋아진다. 평소 균형감각과 민첩성을 위해 자기만의 운동법을 개발해서 그런 운동을 해보자. 보폭을 넓히고 빨리 걷는 습관이 필요하다.
※ ‘운수 좋은 날’은 운세 전문 사이트 '운세사랑'으로부터 띠별운세 자료를 제공받아 읽기 쉽고 보기 좋게 재구성한 콘텐츠입니다.
◈ 쥐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잘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일에 애정을 가지라.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결하고 나면 기쁨이 클 것이니 체념한 상태에서는 어려움만 지속된다.
•84년생 : 밝은 표정으로 상대를 대하면 좋은 기운이 모든걸 열어줄 것이다.
•72년생 : 에너지를 충전시켜 가면서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든 일이 풀려진다.
•60년생 : 일은 현재의 여건이 힘들게 되어 있으니 오히려 자중함이 좋으리라.
•48년생 :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손해를 보는 일이 없으리라.
◈ 소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무리한 결정은 뒷날 어려움을 더하게 되니 무리 없도록 처리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계획하지 말것이니 곤고함만 늘어나고 일의 진전을 보지 못할 것이다. 분수에 맞는 일을 하라.
•85년생 : 생각보다 좋은 친구를 얻게 되나 금전운이 좋지않아 용돈이 궁하다.
•73년생 : 두통이 사라지고 운 또한 열려 횡재가 아니면 좋은 인연이 생기리라.
•61년생 : 회귀한 기운이 설치니 과음을 삼가고 늦은 밤길을 조심하라.
•49년생 : 해결 될 것이 뻔히 바라다 보이는데 시간이 걸려 속만 태우는구나.
◈ 호랑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시간을 잡아둘 수가 없는 것이라 허송하면 남에게 뒤지는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할 것이니 시간만 보내다 어렵게 될 것이다. 경쟁자가 앞서가니 빨리 서둘러라.
•86년생 : 귀가 길에 구설수가 많을 것이니 친구나 이성과의 다툼을 조심하라.
•74년생 : 관재구설이 아니면 몸이 상하는 운이니 특히 밤길을 조심하라.
•62년생 : 어려운 청탁이 들어오나 내가 귀인 되어 받아 줌이 좋으리라.
•50년생 : 사석에서 한말이 구설로 연결될 것이니 어디서든지 말조심하라.
◈ 토끼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성운의 밝음은 오는 상이나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니 찾아 나서라.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은 버리길 바란다. 아무리 운기가 길하다고 하나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뜬구름과도 같은 것이다. 매진하라.
•87년생 : 안개 속을 헤매다 길을 찾으니 순서를 정하여 일을 처리하면 좋다.
•75년생 : 금전운이 개선되고 어려운 일도 해결되니 마음이 가벼우리라.
•63년생 : 계약건은 오전에 결정지어야 성사되며 투자는 안하는 것이 좋다.
•51년생 : 문서관계는 힘든 운이고 작은 이득은 있으나 주식투자는 삼가라.
◈ 용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인간관계에 예의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 분별 없는 행동은 삼가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품위를 지켜 행동할 것이니 망동은 금물이다. 가벼이 행하여 손실이 올 수 있으니 무겁게 행동하라.
•76년생 : 발전성이 있는 일이나 쇠퇴하는 기운이니 근면 겸손을 잃지 마라.
•64년생 : 금전적인 면은 힘이 많이 들고 명예에는 희망이 있는 기운이다.
•52년생 : 운세가 불리하니 일을 대충 처리하면 반드시 우환이 생기리라.
•40년생 :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한 때이라 운세가 밝으니 전망이 좋으리라.
◈ 뱀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애매한 행동이나 분별이 없으면 힘겨운 일로 고생하는 시기이다. 결정을 내릴 일이 발생하게 되면 주관없는 태도는 버리길 바란다. 운세의 흐름에 지장을 줄 뿐 아무 도움이 없을 것이다.
•77년생 :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이 아무리 확고하더라도 밀고 나가면 위험하다.
•65년생 : 운세가 밝아 뜻밖의 소식이 오고 일의 전망이 밝아진다.
•53년생 : 균형감각을 유지 못하는 운이라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라.
•41년생 : 독단적인 것만 피하면 협조자가 생겨 일이 풀리리라.
◈ 말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체통과 예의를 중시해야 운세를 열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그동안 닦아놓은 자신의 위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으니 행동거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못 가벼이 행하다 남의 질타를 받는다.
•78년생 : 무슨 일이든 한사람에 얽매이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66년생 : 상대가 강하고 자신이 약하니 소송이나 싸움은 하지 않음이 길하다.
•54년생 : 경쟁과 투쟁은 삼가고 힘을 기름이 운세에 순응하는 것이다.
•42년생 : 버스 지나가고 손드는 격이라 때가 지남이니 휴식을 취할 때이다.
◈ 양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체통과 예의를 중시해야 운세를 열어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다 타의 질타가 있을 것이니 대세의 움직임을 잘 간파하여 자신을 숙이라.
•79년생 : 일에 방해자가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재운도 큰 운은 없다.
•67년생 : 금전 운은 약하니 투자는 불길하고 계약 건은 오후에 성사된다.
•55년생 : 아랫사람의 하극상을 조심해야 하니 미리 돌보는 것이 좋으리라.
•43년생 : 문서관계의 일은 친구나 친척의 협력이 필요하니 요청해 보라.
◈ 원숭이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다른 일에 손대면 충돌수가 많으니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운세라. 변동하는 것은 이익이 없을 것이니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길할 것이다. 섣불리 행하다 화를 당할까 두렵다.
•80년생 : 변덕스런 마음을 버리고 분수를 지킴이 중요한 시기라.
•68년생 : 이동 변동 좋고 노력의 보람있어 금전 운 또한 길하리라.
•56년생 : 좋은 일이 생기는 시기라 생각하지 않은 일이 저절로 성사된다.
•44년생 : 누명쓰고 허물 뒤집어쓰는 운이라 중상모략에 휘말림을 조심하라.
◈ 닭띠 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바쁘게 쫓기는 중에도 정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허실이 많으리라. 동분서주하나 이익이 적게 발생할 것이니 허둥데대는 버릇이 매사를 그르치게 할것이다. 신중을 요할것이니 침착하게 행하라.
•81년생 : 기운은 좋으나 애인이나 친구와의 갈등은 풀기 어려우리라.
•69년생 : 즐거운 기운은 보이나 금전 운이 불길하니 주머니 단속을 잘 하라.
•57년생 : 과음을 삼가고 늦은 밤에 외출을 조심하고 실물에 신경을 써야한다.
•45년생 : 손재수가 보이고 도둑 단속에 힘을 기울여야 되는 운세이니 조심하라.
◈ 개띠 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은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눈앞의 어려움을 빨리 해소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지 말라. 목이 마르다고 숨도 쉬지 않고 마시다 체하는 수가 있다.
•82년생 : 충동적인 생각으로 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으니 조심하라.
•70년생 : 엉뚱한 사람으로 마음고생이 심할 운이니 번거로운 일은 만들지 마라.
•58년생 : 어려운 부탁을 받아도 기운이 힘든 운세니 거절함이 좋으리라.
•46년생 : 금전운은 좋으나 새로운 투자나 증자는 좋지 않으니 천천히 결정하라.
◈ 돼지띠 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어려움이 따라도 한 고개 더 넘는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열릴 것이다. 운기가 서서히 밝아지니 현재의 곤고함에 치우치지 말라. 곧 밝은 서광을 보게 될 것이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는 것을 명심하라.
•83년생 : 마음이 안정되니 모든 것이 바로 보여 길을 열고 재수도 밀려온다.
•71년생 : 막힌 일이 서서히 열리니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는 운세이다.
•59년생 : 어려움에서는 벗어나나 바라는 것은 조금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47년생 : 문서와 계약건은 길이 보이고 금전운은 약하니 주머니 단속 잘 하라.
버추얼텍의 자회사 데브그루에서 론칭한 ‘스노우피크 아웃도어 어패럴’이 어글리 슈즈 'TRACKER_트래커'를 선보였다고 14일 밝혔다.
‘TRACKER_트래커’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어글리 슈즈로 스노우피크 아웃도어 어패럴만의 감성을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이 상품은 한국인의 발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개발된 라스트(신발골)와 반발탄성(충격흡수)이 좋은 IU 미드솔을 사용해 워킹이나 조깅 등의 운동 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고 발의 피로도를 감소시켜 편안한 착화감을 자랑한다.
또한 복숭아뼈와 뒤꿈치가 채이지 않도록 측면 패턴을 의도적으로 낮추고 뒤꿈치 부분에 쿠셔닝을 강화했으며, 아웃솔의 러버 포션을 넓게 설계해 보행 시 그립감 및 접지력을 향상시켰다. 뿐만 아니라 매시 소재를 적용해 통풍성이 좋으며 3M 재귀반사 프린트를 다양한 부위에 부착해 야간 보행 시 안정성을 확보해 일상과 아웃도어 활동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TRACKER_트래커’는 스노우피크 아웃도어 어패럴만의 테크니컬한 패턴 디자인으로 발이 작고 예뻐 보이는 스타일을 구현했다. 특히 시간의 변화에 따른 하루 동안의 모습(안개 낀 새벽, 낮 동안의 자연, 노을 진 저녁)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화이트, 그레이, 베이지 3가지 컬러가 돋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TRACKER_트래커’는 동양인 발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개발해 편안한 착화감과 접지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며 “전 연령대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어글리 슈즈를 소비자들의 다양한 라이프를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으로 기획해 아웃도어 활동부터 일상까지 다양하게 연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르다 보니 차가 산으로 들어간다. 자연을 한 자락 슬쩍 걸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연 속에 있는 미술관이라 들었다. 그러나 이토록 깊은 산중일 줄이야. 씨억씨억 초록을 뿜는 숲 사이 언덕을 올라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예 산꼭대기이지 않은가. 기발하게도 산정(山亭) 미술관이다. 그래서 뮤지엄 산(山)? 그러나 ‘山’이 아니라 ‘SAN’이다.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을 합성한 약자다.
산정이라 사방에 보이느니 산이다. 세상을 분할한 하늘 절반, 산봉우리들 절반. 하늘과 산 사이에 뮤지엄이 슬쩍 끼어든 형국이다. 간신히 자연에 가담한 약세(弱勢)가 아니다. 부지는 넓고 건물은 우람해 훤칠하다. 우람하나 이물감이 없다. 건물의 태와 됨됨이에 뾰족하게 튀는 게 없어 자연과 불화 없이 조응한다. ‘건축의 철학자’로 불리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79)의 작품이다. 그는 자연과 건축, 그리고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본때 있게 구현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뮤지엄의 설립자는 어떻게 산꼭대기에다 일을 벌일 발상을 했을까? 자연을 애호하는 못 말릴 취향과 세상의 추세를 읽는 시퍼런 촉이 아니고선 감행하기 어려운 역사(役事)다. 삼성가 이병철 회장의 장녀로 한솔그룹을 이끌었던 이인희 고문(2019년 작고)이 세웠다. 그는 열렬한 아트컬렉터. 평생 모은 소장품을 자연으로 끌어들여 건립한 산상 미술관으로 허를 찌르듯 관습을 흔들었다. 뮤지엄 산의 태동부터가 이렇게 전위적이다.
판석을 깐 진입로를 따라 ‘플라워 가든’으로 들어선다. 뮤지엄의 초입일 뿐이지만 완상할 게 많아 벌써 다른 세상이다. 패랭이꽃 군락과 하얀 자작나무들, 조각정원이 어울려 뮤지엄의 서장을 열어준다. 산정의 적막한 허공엔 흩날리는 꽃잎들. 피어나는 봄꽃들 지천이라 몸에 묻을 듯 농밀한 건 꽃향기. 길은 곧게 나아가다 휘어지거나 급하게 꺾인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담장이 보도의 흐름에 편승해 시야를 슬쩍 가려주거나 별안간 확 트이게 한다. 인위적으로 풍경의 변주를 꾀한 설치다. 정교한 의도에 따른 구성이다.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풍경은 여실해 명쾌하지만, 보일 듯 말 듯, 보였다 안 보였다 변전하는 풍경은 삶을 은유한다. 노골적이어서 온전한 게 있던가. 보이면 있고 안 보이면 없는가. 높낮이와 커브의 각도를 세밀하게 재단해 조성한 담장의 효과로 풍경에 철학이 실린다. 이건 뮤지엄의 절정을 보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전희? 애피타이저? 풍경을 요리하는 수완에 즐겁다.
시각적 충격에 걸음 멎어
이제 ‘워터 가든’이다. 뮤지엄 산의 예술적인 외부 공간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유별한 곳이다. 여기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풍경이 존재한다. 산상 대지에 물을 가득 채워 꾸민 ‘물의 소국’(小國)이 있으니 말이다. 널따란 사각형 수조들에 담긴 물과 물빛으로 찬연한 공간이다. 갑작스런 물의 등장, 그 급속한 풍경의 변이라니. 시각적 충격에 걸음이 멎는다. 나는 지금, 물을 분할하며 본관으로 관입하는 보도 위에 서 있지만 수면을 밟고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보도와 수면이 수평을 이루어서다.
워터 가든의 물 경치에 흥취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수변 테라스엔 커피를 마시며 물과 산과 하늘을 바라보기에 적격인 벤치가 놓여 있다. 거기에 앉고 싶지만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다. 도시라는 욕망의 경기장을 벗어나 고요한 수변에서 차를 마시며 모처럼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의 행복이여! 행복이 아니라 고독이면 어떤가. 물가에선 ‘나’를 바라보기 좋다. 저 투명한 물빛처럼 나도 한때 순수했다고, 내 안에도 물이 있어 눈물도 많아 슬프다고, 저 무심한 수면에 물살을 일으키는 실바람은 어디로 가며 나는 흘러 어디로 가는가, 라고 요모조모 쓸모 있는 상념을 굴려볼 만한 물가이지 않은가. 그러라고 안도 다다오가 워터 가든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적 오브제는 물, 햇빛, 바람 등 자연의 질료들이다. 그의 정신적 테마는 관조(觀照) 혹은 명상이다. 자연을 불러들인 건축으로 사람의 오감과 내면을 일깨우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일컬어 노상 하는 말들의 요점이 그렇다. ‘뮤지엄 산’이 완성됐을 때 그는 “그저 조용한 상자 같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사람들 모두가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도 썼다.
본관 복도로 들어서자 조명부터 침침해 구미에 맞다. 미술관들의 과한 조명에 나는 일쑤 김새더라. 인공조명은 안도 다다오의 자연주의에 위배된다. 가급적 자제! 그는 집요하게 자연의 빛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였다. 복도 벽면의 상부와 하부에 낸 창으로 빛이 들이치게 했다. 천장을 뻥 뚫어 빛과 함께 하늘을 수용한 전시실도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기둥, 기하학적 선형, 번뜩이는 예각 구조물, 텅 빈 중정(中庭)…. 그의 건축적 키워드를 이루는 형태와 기법이 거대한 미술관의 세부에서 깨알처럼 구현돼 요동친다.
거장들의 작품 번갈아 전시
아이들은 천진해 이 웅장하고 복잡한 미술관에서 ‘비밀의 성’(城)을 본다. 상상을 펼쳐서다. 어른들은 압도될 테다. 상상을 잃어서다. 예술이 위대한 건 상상력의 거친 날개로 신과 맞먹으려 비상한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상상력 외에 자유정신의 높이, 자연을 읽는 섬려한 안목,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무한한 존중. 그런 게 안도 다다오의 건축세계를 가능케 했을 터인데, 햐, 그는 말하길 ‘창의적 체력’이야말로 개중에 관건이라 했다. 창의적 체력이란 건강한 몸뚱이의 에너지를 말한다. 79세 노인인 그는 오늘 아침에도 들입다 뛰었을 게 틀림없다. 흥미로운 유형의 인간이지 싶다. 그에겐 세상을 달관한 시늉이 없어 미덥다. ‘목숨을 건 강인한 도전 정신’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건축을 추구하는 리얼리즘과 적당한 금욕 추구도 멋있다. 뮤지엄 산의 건축미를 즐기기 위해선 안도 다다오의 이러한 성향들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뮤지엄의 많은 전시실 가운데 인기를 누리는 공간을 볼까? 페이퍼 갤러리. 이곳은 종이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국내 최초의 종이 전문 박물관이다. 종이 관련 국보와 보물, 진귀한 유물과 공예품을 전시한다. 약하디약한 게 종이이지만 강하디강한 게 또한 종이. 인류의 역사는 종이의 발명과 함께 진보하지 않았던가. 사람은 이기심으로 살고 종이는 이타심으로 존재한다. 아낌없이 나를 내주길 운명으로 삼은 종이이니 이미 득도했다. 페이퍼 갤러리에 머문 시간은 ‘종이부처’와 만난 추억을 안겨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종이 재료로 쓴 파피루스도 여기에 있다. 유리온실 안에서 억새와 비슷한 파피루스가 푸르게 자란다. 순전히 파피루스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는 관람객도 있다. 청조갤러리는 뮤지엄 산이 소장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쾌대 등 거장들의 작품을 번갈아 상설 전시한다. 매년 두 차례 기획전도 열린다. 현재 ‘회화와 서사’ 전이 진행 중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위해서는 특별히 독립공간을 마련했다. ‘백남준 홀’로 작품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전시했다. 전깃줄을 뭉쳐 만든 타워 형태의 기반에 TV와 민속탈을 주렁주렁 매단 작품. 이게 뭔가? 현대와 전통의 통섭? 문명 굿판? 자화상? 어떻게 봐도 답일 게다. 엿장수 맘대로! 그냥 그렇게 내가 느끼는 대로 보고 즐기면 일단 그만이지 않을까. 현미경을 들이대고 종일 초파리의 겨드랑이 털 개수를 세는 곤충 학자처럼 골똘히 미술작품을 파고들 일 아니다. 궁리를 너무 하면 왜곡이 쉽고, 생각을 너무 조이면 좁아진다. 백남준이 금언을 설했다. “옷도 헐렁하고, 생각도 헐렁하고, 행동도 헐렁헐렁, 헐렁이가 일을 낸다구. 진짜 예술가는 헐렁이야!” 삶도 예술도 틀을 만들면 갇힌다는 얘기이겠다. 예술의 헐거운 정신을 보는 게 작품 감상법이라 들어도 무방하다. 백남준은 노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때 더듬더듬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얼거림은 뜻밖에도 쓸쓸한 것이었다. “신은 참 불공평해. 내가 왜 쓰러져야 하나?”
아주 특별한 두 곳
마침내 자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마음이란 물결처럼 요동치기 쉬운 것. 이걸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 뮤지엄 산에선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뮤지엄 내·외부 공간에 있는 미술작품 감상 자체가 명상적이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두 곳이 있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은 ‘빛의 예술가’로 세계에 알려진 작가다. 화가라면 당연히 ‘빛’과 무관할 수 없다. 빛을 탐구하고 묘사하는 게 화가의 본분이니까. 그러나 제임스 터렐의 작업은 많이 다르다. 그는 빛을 ‘묘사하는’ 게 아니라 빛을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일정한 공간에 빛을 집어넣으면, 즉 빛과 공간이 조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오랜 실험 끝에 그는 놀랄 만한 ‘빛의 아트’를 정립했다.
터렐의 작품은 빛과 공간, 그리고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프로그램에 의해 세밀하게 조정된 자연광이나 인공광을 공간에 투입, 작품을 완성한다. 다시 말해 공간이라는 캔버스에 빛이라는 물감을 투사, 다양한 테마를 신비스럽게 풀어낸다. 터렐 전시관에서 관객은 네 가지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가장 기이한(?) 작품은 간츠펠트(Ganzfeld, ‘완전한 영역’이라는 뜻)로 동굴 형태의 공간에 50여 종의 LED 빛을 순차적으로 살포하면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작업의 목적은 관객에게 착시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 있다. 동굴 속에 들어간 관객은 형언하기 어려운 신비와 환영에 즉각적으로 빠져들고 만다. 예컨대 공간 가득 짙은 안개가 끼고, 좁았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이 돌연한 환각에 관객은 신비감과 황홀감 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작업 종료 뒤, 빛이 보여준 강렬한 환상의 의미를 자문하기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명상이다. 내가 빛을 보고 살았다, 하지만 빛이 보여준 게 참일까? 삶과 세상은 허상이지 않을까? 남에게 나는 허상으로 비치지 않을까? 이 일련의 의식 흐름을 통해 마침내 묻는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
명상관
지난해, 뮤지엄 산 개관 5주년 기념으로 개설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만든 돔 형태의 건물이다. 바닥에서 천장으로 길게 이어지며 초승달 모양으로 뚫린 틈새로 하늘이 보이고 빛이 들이친다. 쉼 명상, 여유 명상, 싱잉볼 명상 등을 전문가가 도와준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입소문이 나 참가자가 많다. 안도 다다오는 다음처럼 명상관의 의도를 피력했다. “태양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명상으로, 자연과 우주를 만나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터렐 전시관과 마찬가지로 명상관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오늘 같은 밤’,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 등의 메가 히트곡들로 7080세대에게 깊이 각인된 가수 이광조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자유로운 영혼’이다. 거친 가요계에서 수십 년 동안 매니저와 기획사도 없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공연과 음악활동을 했다. 사정이 그러니 당연히 아무런 홍보도 없이 음반을 냈다. 그런데도 노래가 ‘알아서’ 성공했다는 점은 숙명론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그가 최근 생애 최초로 신성사업단을 자신의 기획사로 삼아 새롭게 가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무엇이든 거침없이 말하며 자신의 인생에 머뭇거림이 없는 남자, 이광조만의 특별한 삶과 생각을 만나봤다.
자유롭다. 이광조와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자유 그 자체인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말하자면 진짜 보헤미안이다.
“저는 여태까지 유명한 사람들에게 곡을 받은 적이 별로 없어요. 그 사람들이 별로 유명하지 않을 때 가서 ‘한번 들려줘봐’ 하고 듣고 나선 할 건가 안 할 건가를 결정했죠. 어차피 매니저도 기획사도 없었고. 저는 자유스러운 걸 좋아해서 남에게 묶이는 걸 못해요.”
구애받는 걸 못 참는 자유 영혼
그는 심지어 “지금 노래는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까지 말한다. 바로 옆에 최근 그와 손잡은 기획사 대표 겸 매니저가 있는데도 말이다.
“안 하려고 했는데 홍순호 대표가 ‘안 하면 안 된다’ 해서 한 거죠.(대표 웃음) 어쩔 수 없이 친구 때문에 이렇게 트로트도, 유튜브도 하고요. 저는 실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제일 좋아해요. 럭셔리하게는 못 살아도 길거리에서는 살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어떻게든 일을 시키려는 기획사 대표와 산전수전 다 겪은 가수가 티격태격하는 걸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났다. 사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중학교 선후배 사이다.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는 계약서도 없다.
“‘계약하면 안 한다, 그 대신 의리는 지킨다’ 했죠. 10년이면 10년, 20년이면 20년 안 변할 테니까. 지금 돈도 못 버는데도 같이 있잖아요.(대표 웃음) 매니저 없이 일하다가 이런 큰마음을 먹은 이유요? 늙었으니까.(웃음) 아아 농담이고요, 늙었다기보다는 한 인간(홍 대표)을 살려야겠다, 물론 나도 살고요. 그래서 한 거죠.”
부끄럽게 말하는 그가 귀엽다.
독설에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
이광조는 한때 가요계에서 독립군으로 불렸다고 한다. PD에게 안 눌리고 혼자서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그였기에 붙은 별명이었다.
“우리 집이 60년대에 차가 두 대나 있을 정도로 잘살던 집이었는데, 중학교 때 폭삭 망했어요. 집에 돈이 없어 학교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제 성격 때문인지 초라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런데 가수들 보면 유명해지면 악착같이 돈을 막 벌어서 자기 집 살리려고 하잖아요. 부모님에게 미안했던 건 제가 떴을 때도 이상한 곳이면 안 가고 제 기준에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싶으면 절대 안 했어요. 매니저를 못 구한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었어요.”
어떤 때는 그에게 독설이 심하다는 비판이 날아오기도 했다. 그는 사실 그랬다고 순순히 인정했다. 참지 못하는 성미 때문이었다. 모 방송 가요 프로그램에 나가서 노래를 듣고 대놓고 독설을 한 적도 있다. ‘노래를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말을 안 하는 건 애정이 없다는 거죠. 요즘은 너무 거짓말이 많아요. 못하는데도 아주 잘한다 하고. 예를 들어 제가 활동하던 시절에 노래를 할 때는 목소리에 에코를 안 넣었죠. 그런데 요새는 에코를 다 넣어요. 그렇게 하면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들리거든.”
무대는 지금도 떨린다
그에게 할 일 하고 할 말 다 하는 배짱이 두둑한 이유는 어쩌면 그의 가수생활이 흘러가듯 자연스레 도착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서울대 미대 출신 가수가 김민기, 현경과 영애, 이정선 등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 홍익대에는 아무도 없어서 ‘야 너 한번 나가봐’ 하고 미는 바람에 노래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1976년에 데뷔했죠. 맨 처음에 가수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 고민이 많았어요. 가수 되면 남들이 다 알게 될 텐데, 그래도 노래를 해야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었죠.”
그때 그는 지구레코드와 전속 계약을 맺고 생애 최초 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데뷔 앨범은 다 만들어졌는데 레코드 회사가 3개월이 지나도 발표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노래가 너무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그가 받은 계약금은 100만 원이라는 거액. 그러나 그는 성질이 나서 돈을 갖다 주고 계약을 파기했다.
“계약 파기하고 나간다고 하면 승낙을 잘 안 해주잖아요? 사장이 절 불러서 ‘너 다른 데 가려고 하지?’라고 묻는 거예요. 안 보내줄 것 같아서 ‘그게 아니다. 연극을 하려고 그런다’라고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죠. 사실 내 연극 포스터가 붙어 있던 때였거든. 100만 원을 돌려주기 전에 이불 밑에 깔고 세고 세고 얼마나 또 샜는데…. 그 후 오기가 나서 진짜로 가수활동을 시작했죠.”
그에게 있어 가수생활은 어쩔 수 없이 된 거니까 한 거고, 그러다 보니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계기는 그를 여전히 순수한 가수로서 남게 해주는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무대 뒤에서는 무지하게 떨어요. 그러나 정작 무대에 나가 조명을 받으면 내 안방 같죠. 콘서트 때도 첫 번째 두 번째 곡을 부를 때까지는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죠. 그러다 점차 노래를 하면서 좋아져요. 내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영광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수치스럽지도 않아요. 하지만 ‘내가 이랬습니다’ 하고 드러내기는 싫어요. 누가 나에 대해 물어봐도 ‘그냥 노래하는 가수예요’라고 말하는 정도죠.”
트로트, 싫다?
무념무상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광조의 삶에도 간절함과 절박함이란 단어가 어울릴까? 그는 왜 절박하고 간절한 게 없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50대 시절, 삶의 고독이나 고뇌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변화무쌍했어요. 미국에서 지내던 때였죠. 미국은 좋았어요. 여길 왜 왔나 싶어.(웃음) 거기 있을 때는 세상에 그런 한량도 없었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살았는데 버스를 타면 20분이면 바닷가에 갈 수 있었어요. 음악활동은 전혀 안 했죠. 그냥 바다를 보는 게 전부였어요. 어느 날엔가는 밤에 바닷가에서 린다 론스태드의 ‘Long Long Time’을 듣는데 안개가 마치 뛰어가는 듯하더군요. 노래는 들리고 파도는 치고 있고 삶의 연민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사실 낮에 가면 개똥밖에 없어.(웃음)”
낮에는 개똥, 밤에는 안개가 깔리는 한적한 바다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철저한 보헤미안으로서 십수 년을 미국에서 지내던 그였지만 이제 최첨단 미디어의 도시 서울에 오게 됐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구십이 넘은 어머니에게 매일매일 문안인사 드리는 효자다. 그의 삶이 최근에 바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도 불러봤다는 그에게 요즘 가요계의 ‘대세’인 트로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슬쩍 물어봤다.
“나는 좀 부담스러워요.”
역시 그다운 직선적인 대답이었다. 어쩌면 그 취향은 우리나라 컨템포러리 가요계의 역사에 길이 남을 묵직한 발라드 히트 넘버를 가진 가수로선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 트로트는 너무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너무 가볍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물론 제 시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다는 거죠.”
현재진행형 ‘유튜버’는 모험이다
이광조와 요즘 시대의 접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유튜브다. ‘철저한 아날로그 인간일 것 같은 이광조가?’ 싶지만 사실이며, 이광조 TV라는 채널도 갖고 있는 엄연한 ‘유튜버’다. 심지어 그는 웹예능까지 찍었는데, 그 시리즈 제목이 ‘레트로맨’이다.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그가 격하게 웃으며 비명을 질렀다.
“어우, 말도 안 돼. 그 얘기를 할게요. 나는 그런 걸 ‘너무너무’ 싫어해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하는데, 신경질을 빡 부렸어. 안 해! 그래서 안 하게 됐어요.”
‘레트로맨’에서 이광조는 풍물시장이나 다방, 성수동 등지를 다니며 동네 여행을 하고 VR도 해보면서 신문물 체험 활동을 보여준다. 비슷한 구성으로 큰 인기를 끈 ‘와썹맨’, ‘워크맨’같은 ‘맨’ 시리즈 벤치마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손사래를 치지만 유튜브 채널에서 아직 감상 가능한 공식 ‘흑역사’다.
“지금 올리는 영상들은 어쩌면 제 노래를 듣고 싶었던 사람에겐 좋은 걸지도 몰라요. 팝송까지 합하면 200곡이 넘어요. 그걸 일주일에 하나씩 요새 목소리로 다시 녹음해서 올리는 건데, 쉽지는 않아요. 나는 노래하는 거 아니면 안 한다 그랬어요. ‘레트로맨’은 나는 몰라.(웃음)”
참,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그답다. 여하튼 욕심 한 스푼, 미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그다.
소년이라는 말, 듣기 좋다
이광조는 요즘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냥 좋단다.
“가끔은 떡볶이를 먹고 싶다, 그러면 떡볶이 찾아 삼만 리야. 그런 게 행복이야.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
그는 한 일흔다섯 살까지만 살면 굉장히 잘 살았구나 생각할 거 같다고 말한다. 여든몇 살 돼서 정신 흐트러져 잊어버리는 건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흔다섯 살까지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신이 늙은 소년이길 바란다. 맑고 변치 않는 사람으로서.
“조용히 산 게 잘한 일 같아요. 남에게 ‘이거 한 사람이야’라고 말 안 하고 산 거. 그 외에는 잘한 게 별로 없어서.(웃음) 뮤지션으로서 남기고 싶은 게 있냐고요? 없어요.”
그는 철저한 소멸을 꿈꾼다. 음악도 그냥 하게 돼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자연스레 충족된 삶으로서 그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지금의 이광조 자신이 된 것이리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은 싫고, 먼지도 싫고, 그냥 없어지면 좋겠어요. 입에서 입으로 안 전해지고 그냥 갔으면. 지금 살아 있을 때 얘기 듣는 게 좋지 그다음은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
그의 대답을 듣고 입에서 저절로 솔직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솔직하지 않을 게 없죠.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갈 거예요. 제가 바뀌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웃음)”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포가 음산한 안개처럼 온몸을 감싸고돈다. 주말이면 즐겨하던 테니스운동도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테니스장이 폐쇄되는 통에 통하지 못했다. 테니스장뿐만 아니라 사람이 모여 운동하는 곳은 모두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예방의 한축인 인체 면역력을 높이는데도 운동은 필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딱히 운동할 곳이 없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운동을 못한지가 하루 이틀이 아니고 달포가 지나다 보니 몸도 근질근질하고 쌓이는 뱃살에다. 뭔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사람이 모이지 않고 맑은 공기와 햇볕을 마음껏 받으며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생각해보니 등산과 걷기가 딱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걷기보다는 두 세 명이 함께 하면 무엇을 해도 좋다. 서로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혹 모를 사고가 발생해도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좋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친구 두 명에게 ‘서울둘레길’157km을 함께 완주 해보자고 의사타진을 했더니 쌍수를 들어 답을 한다. 매주 토요일 10시에 출발지에서 만나서 10km정도 걷는 것으로 대략적인 얼개를 짰고 이미 몇 개 코스는 실천을 했다.
제4코스 양재시민의 숲에서 출발하여 소가 잠을 자는 형상의 산이라는 우면산을 돌아서 사당역까지의 도보길 7.6km 3시간 20분 코스다. 만나기로한 양재시민의 숲 5번 출구에서 일행 3명은 단1분도 지각하는 사람이 없이 만났다. 작은 약속도 약속이다. 우리는 철칙처럼 시간 약속은 지킨다고 다짐을 한 사람들이다.
일행 세 사람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주제가 공유되어 좋다. 지난주에 쓴 글이나 읽은 책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 대화 중 한 토막은 법륜스님이 71세의 어느 할아버지에게 잘 늙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주제가 되었다. 봄꽃은 예쁘지만 떨어지면 지저분해서 비로 쓸어버리지만 잘 물든 단풍은 떨어져도 사람이 주워가서 책갈피에 꼽기도 한다. 즉 잘 늙으면 청춘보다 낫다는 말에 여유로운 ‘시간부자’ 시니어는 공감했다. 잘 늙는 방법은 욕심을 부리지 말고 과로하지 말고 잔소리를 줄이고 재산관리를 잘 하라는 말이다. 세 사람 걷기 친구는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님에도 실천이 어렵다는 생각을 함께 하며 계속 걸었다.
산행 중에 말을 하면 숨이 가빠온다.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과욕을 하지 않는 시니어의 산행 기본이다. 빠른 걸음으로 잽싸게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에게는 길을 비켜준다. ‘산악마라톤’하는 20대의 청년이 가쁜 숨을 토해내며 달려간다. 나도 한때는 산악마라톤을 했지만 지금은 무리라고 생각하여 하지 않는다. 나이에 맞게 멈출 때 멈추는 것도 용기다.
도보 중에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원들을 만났다. 보이지 않는 유권자들을 찾아 산에까지 올라오다니 정성이 대단하다. 손뼉을 쳐주며 이런 초심을 잃지 말고 당선되면 끝까지 국민을 생각해달라는 내 반응에 운동원들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무리 소리쳐도 무덤덤한 유권자들만 보다가 파이팅을 해주며 반응하는 내 모습에서 힘을 얻는 눈치다. 내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얻게 하였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종착지인 사당역까지 왔다. 유명하다는 냉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4월의 햇볕과 봄바람에 진달래꽃의 향기가 더해져 면역력이 강화되었을 것이라고 믿으니 졸음이 올 정도의 피곤함에도 기분은 좋다.
모든 병을 고치는 영역이 의사의 몫이라면 예방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직접적 예방법으로 마스크와 손 세정은 우리의 일상사가 되었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불안하다. 조심한다고 해도 사람을 매개체로 전파되는 병원균은 언제어디서 누구로부터 전염될지를 모른다. 오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문자가 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4월19일까지 2주 연장되었으니 한번 더 동참해달라는 호소문자다. 남들과 2m이상 떨어져 혼자 하는 면역력 강화 운동을 생활에서 찾아 계속해야겠다.
카메라가 좋아져 셔터만 눌러도 사진이 잘(?) 나오다 보니 촬영 과정에서 꼭 살펴보아야 할 기본사항, 즉 '빛'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화가가 붓으로 물감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듯 카메라로 빛을 이용하여 그리는 그림이 사진이다. 붓 대신에 카메라, 물감 대신에 빛이다. 사진이라는 원래의 용어에서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photo(빛)’와 ‘graph(그리다)’의 합성어인 ‘photograph’가 사진 원어다. 우리가 쓰는 사진이라는 용어는 한자로 寫眞, 즉 ”있는 그대로 복사한다.”로 ‘photograph’의 뜻과 차이가 난다. 빛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게 된 배경이 아닐까 싶다.
앞의 사진은 빛과 빛이 그린 그림자를 촬영하여 공모전에서 수상한 기자의 작품이다. 카메라로 빛을 이용하여 그리는 그림이 사진이고 그런 작업이 촬영이다. 카메라와 함께 빛도 더없이 중요한 요소다. 화가가 좋은 그림을 위하여 재질이 좋은 도구(붓과 물감, 종이 등)를 선택하고 귀중하게 다루듯 사진 촬영자도 그런 자세가 요구된다. 카메라 장비는 신경을 쓰면서도 빛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이 많다.
빛의 종류는? 햇빛, 달빛, 별빛 등의 자연광이 있고 플래시, 조명 등의 인공광이 있다. 이들 빛의 강도와 방향 그리고 성질에 따라 사진 속의 피사체 형태가 결정된다. 자연광은 강도와 방향을 촬영자가 시간과 위치를 달리함으로써 조절이 가능하다. 피사체를 정면에서 비추는 정면광, 뒤에서 비추는 역광, 옆에서 비추는 사광 등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 빛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그리는 그림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빛이 닿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의 밝기가 달라져 입체감이 나타난다.
빛의 성질은 아침, 한낮, 저녁이 다르고 비 오거나 이슬비 내릴 때 또는 안개가 자욱할 때도 달라진다. 커튼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확산광’)이 한결 부드럽다. 이러한 빛의 강도, 방향, 성질을 이해하고 응용하여 셔터를 누르면 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공포 영화가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괴롭히는 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해치는 적이 눈앞에 있는데 그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증권가의 오래된 말에는 ‘소문에 사고 사실에 판다’는 게 있다. 인간의 불안 심리를 잘 표현한 말로 들린다.
실제와 상관없이 사실이 아닌, 혹은 사실 이전에 세상에 떠도는 안개와 같은 불안이라는 심리는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불안 심리는 안정을 해치는 매우 위험한 사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불안한 심리와 사실을 잘 관리하지 못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일은 역사 속에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사와 부사의 보고가 달라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정사 황윤길은 전쟁이 난다는 견해였고 부사 김성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벌일 위인이 못 된다고 했다.
김성일이 그런 잘못된 보고를 하게 된 이유로, 당파 간 대립 관계도 작용했지만, 백성들이 불안해 할 것이란 명분도 있었다. 불안을 다스린답시고 사실을 외면한 판단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사례다.
그만큼 불안과 공포는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것이고 국가의 흥망성쇠까지 가르는 것이니 정서를 잘 관리하는 것이 정치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사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공포를 억누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중국의 흔한 사례처럼 언론을 통제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고 위험은 끝났다고 강변하는 경우다. 정치적으로 혼란을 없앴으니 일시적으로는 잘하는 통치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막대한 희생은 언젠가 치러야 한다.
실체가 없는 불안은 얼마 안가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근거 있는 대부분의 불안은, 지진을 앞두고 부산한 동물들의 움직임처럼 그것이 일어나고야 말리라는 것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런 느낌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 하거나 선의로 포장된 안이함은 참극을 불러온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그러한 정책 실패를 낱낱이 기록한 현장 보고서다.
결국, 많은 재난은 인재라는 결론에 귀결된다. 불안은 사실의 여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소통이 막힐 때 감염된다. 수백 년간의 페스트 공포가 과학으로 극복되었듯이 과학적 진실의 햇빛만이 ‘코로나 불안’의 안개를 물리칠 것이다.
겨우내 기다려 딱 하룻밤 품에 안겼던 하얀 세상, 그 하얀 산에서 내려오자 그리워지기 시작해 지난 열흘간 몸살을 앓았다. ‘또 한 해를 기다려야 하나?’
겨울이 멀어져 갈수록 크고 따스하게 밀려드는 그리움, 마음의 고향 설산이 그려내는 ‘산 그리메’였다. 기어코 다시 배낭을 꾸려 흥얼거리며 그곳으로 갔다.
열흘 만에 가는 길은 변함 없는데 눈은 다 없어졌다. 녀석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땅속으로 숨었나? 아무리 살펴도 차창 밖 산 속엔 눈이 없다.
도성고개(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연곡리와 일동면 사직리에서 가평군 북면 적목리로 이어지는 고개)를 올라 강씨봉(가평군 북면 적목리)을 거쳐 청계산까지로 그려두었던 당초의 산행계획을 포기했다. 눈이 없다면··· 아쉬움이나 달래고자 회목현을 생각하며 광덕고개를 찾았으나 새벽까지 내린 비가 이곳엔 진눈깨비였는지 도로 차단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눈 산행을 포기하기로 하고 방향을 돌려 사창리를 거쳐 도마치 고개로 올라, 그야말로 눈요기라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지나가는 몇 개의 사이클 라이딩 팀을 만났다. 오늘도 젊은이들이 광덕고개, 그리고 사창리에서 도마치 넘어 가평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힘든 코스를 라이딩한다. “파이팅!” 응원을 보낸다.
도마치 도로 정상에 오르니 엄청난 광경이 선물처럼 펼쳐졌다. 남쪽을 바라보는 내게 등(북면)을 내어주는 산.
너무 멋지다. 아, 하얀 산! 열흘 동안 생각하던 하얀 산이 거기 있었다. 왼쪽 화악산(1468m), 가운데 명지산(1267m), 오른쪽 국망봉(1168m)이 하얀 이불을 걷지 않고 누워있다. “야호!” 눈이 그친 능선에는 순백의 영혼이 춤춘다. 소담스럽게 내린 눈을 이고 불그레 석양이 물드는 산길을 걷는 마음이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설화가 가득 핀 등산로를 따라 걷는 기분은 삭막한 잿빛 겨울 산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용소폭포에서 무주채폭포를 거쳐 러셀은 커녕 길 흔적도 없는 국망봉 오름길엔 낡은 표지 리본만이 길을 겨우 이어준다. 비록 이정표는 2.7㎞이었으나 걸으면서 다음 발 디딤이 손에 닿을 만큼의 급경사와 무릎을 덮는 눈 사면을 두 시간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거리를 세 시간을 올라 정상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정상의 조망은 지난번 도마봉보다 더 좋다. 경기도와 강원도를 가르는 화악산과 독립 능선 명지산 줄기를 제외하면 한북정맥 최고봉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힘이 없다. 대기가 좀 더 깨끗했더라면 지난번 일몰만큼 멋진 연출이 있었을 텐데···.
텐트를 펼치고 360도 지형, 특히 휴전선 너머 평강고원 그리고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젊음을 사르던 철원평야를 바라보며 기억의 파편들을 불러 모으는 여유를 즐기는데 또 한 사람 백패커(주로 백팩에 등산 장비나 식량을 넣고 다니며 자유롭게 산야를 거니는 사람)가 올라온다.
그가 “조용히 쉬는 데 방해가 될지도 모르니 지나온 봉우리로 다시 갈게요.” 하면서 주춤한다. 고운 마음씨를 가진 40대 후반의 사나이다. “젊은이와 함께하면 나로선 더 좋을 것 같네요. 괜찮다면 옆에 자리를 잡으세요!” 오히려 내가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술잔을 곁들여 산을 이야기하며 함께 밤을 건넜다.
일출을 안개 속에서 만나며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드는 특별한 아침을 맞았다. 한결 따뜻해진 3월의 첫날 행복 가득한 여유를 즐기며 패킹과 뒷정리를 한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 다른 내림 길을 밟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니 조심하라고 그는 주의를 줬지만, 눈이 많아 오히려 쉽게 거리가 줄어들었다. 겨울을 풀어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경쾌한 리듬을 타고 들린다.
“정령님 또 올게요! 어쩜 여름이 오기 전에 찾아뵐게요!“
산의 맑은 영혼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