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환자들은 녹내장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의료 빅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고혈압 환자가 녹내장 발생 위험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20일 발표됐다.
세브란스병원 안과 김찬윤‧김성수‧임형택‧이상엽 교수 연구팀은 고혈압 진단을 받은 10만62명과 혈압이 정상인 비교군 10만62명의 11년간 의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고혈압 환자의 경우 개방각 녹내장 발병 소지가 정상인보다 16% 더 높다고 밝혔다.
녹내장은 안압의 상승으로 인해 시신경이 눌리거나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겨 시신경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심한 경우 실명하게 되는 질환이다. 녹내장은 개방각 녹내장과 폐쇄각 녹내장으로 나눈다. 개방각 녹내장은 정상적인 형태를 유지한 채 발생하는 녹내장을 말하고, 폐쇄각 녹내장은 갑자기 상승한 후방압력 때문에 홍채가 각막 쪽으로 이동하여 전방각이 눌려 발생하는 녹내장을 말한다.
65세 미만의 젊은 고혈압 환자라도 녹내장에 걸릴 위험성은 역시 높아, 정상혈압인 환자보다 녹내장 위험이 17% 높았다. 고혈압 이외에 간질환이나 고지혈증 등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녹내장의 위험이 22%가 높아졌다.
같은 고혈압 환자라도 나이가 많을수록 개방각 녹내장 발생 확률이 더 높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혈압 환자 40대를 기준으로 했을 때 50대의 경우 1.82배, 60대는 2.76배까지 올랐다. 70대 이상은 3배 이상 높았다.
김성수 교수는 “국민건강보험 검진 및 청구자료는 녹내장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학문적, 임상적 가치가 있다”며 “앞으로 환자의 의무기록과 유전정보까지 포함한 전국단위의 정밀의료 연구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고혈압학회지(Journal of Hypertension) 최신호에 게재됐다.
국민 드라마 의 바르디바른 둘째 아들 용식,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무대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극인, 그리고 막말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화체육부 장관까지. 어느새 올해 67세를 맞이한 유인촌의 이미지는 이렇듯 여러 갈래로 만들어져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매스컴의 요란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어느 순간 사라져 연극인으로 돌아간 그는 OBS의 대담 프로그램 MC를 맡아 3년째 드라이빙하고 있다. 광대로서, 그리고 뼛속까지 순간예술인임을 자각한 유인촌과의 만남 뒤로 생각보다 진중한 얘기가 있었다.
유인촌은 자신이 맡은 OBS 의 방향성이 최근의 방송 트렌드와는 다르게 진중한 점이 좋다고 한다. 뭐든지 예능화되는 요즘 TV 프로그램들과 비교하면 그가 과거에 진행자로서 인기를 얻었던 에 가까운 느낌이다.
“요즘 방송은 장점보다는 단점을 드러내고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그래서 이 프로그램만은 정말 좋은 점, 장점, 들어서 감동할 수 있는 점을 중심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물론 그렇다 보니 방송이 원하는 자극은 없어요. 그러나 보고 나면 따뜻해져요. 다행히 OBS가 그걸 지켜주고 있습니다. 매주 다른 분을 만나기에 그분들에게 보고 배우는 게 많아요.
1년에 50여 명을 만나니 지금까지 150여 명을 만난 셈이죠.”
그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 많지만 특히 이어령 박사,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을 꼽았다.
“이어령 선생은 첫 방송에 모셨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는 분이죠.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은 과거에 김영삼 정부 시절에 교육부 장관을 하셨던 분인데 인생 스토리가 너무 놀라웠어요. 한국전쟁 전에 걸어서 월남한 뒤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하시다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철학과를 입학한 분이죠. 김희수 건양대학교 총장은 김안과를 만드신 분인데, 지금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을 때까지 연구할 게 생겼다
유인촌을 의 영원한 둘째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어느새 67세라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아주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제가 공직에서 나와 다시 연극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지금이 전성기다.”
유인촌에게 전성기라는 개념은 철저히 연극인 유인촌으로서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이다. 연극에서의 시간은 보통 삶의 시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영상은 젊은 사람들이 잘할 수 있지만 무대는 달라요. 희곡 작품 자체가 일상이 아니라 어렵거든요. 그런 것들이 소화되고 공감대를 가질 수 있으려면 남자는 40이 넘어야 해요. 그 전에는 아기 같아요. 사실 40대까지는 대학생 역할을 했었어요. 성인 남자의 역할은 40대 후반에서 50대가 되어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이 전성기’라고 얘기한 거죠.”
그것이 4년 전 얘기. 지금 유인촌은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은 개인으로서 하려 했던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건 겉으로 보이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동안 했던 걸 모두 지우고 연기자로서 새로운 뭔가를 다시 시작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연기 외의 다른 사업이라든지 기관장이라든지 말고요. 순수하게 내가 배우로 뭘 한다고 하면 그동안 쭉 쌓아왔던 걸로는 다 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배우 훈련입니다. 발성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어요.”
연극인 유인촌이 발성부터 다시 배운다? 납득이 되지 않는 얘기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작업이 겉으로만 보였던 거라면 이제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우리만의 전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양복을 입고 있어도 한국 사람이 갖고 있는 전통의 멋이나 깊이를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제부터 그런 연구를 시작하고 정리해 죽을 때까지 할 계획입니다. 수련하는 느낌으로.”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 주고파
근본으로 돌아가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는 그는 올해부터 의미와 가치에 중점을 둔 계획을 여러 가지 세우고 있다.
“사실 극장도 내가 퇴직하고 나와서 대관료를 만원 받으며 운영했었어요. 젊은 친구들 하라고. 그걸 3년을 했네요. 올해는 청소년, 특히 소년원과 쉼터에 있는 아이들이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자아를 찾는 기회를 주기 위해 자전거 여행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여름방학 기간에 4박
5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라이딩 투어를 준비하고 있죠.”
그러고 보니 그는 소문난 자전거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와 자전거는 어떻게 인연이 맺어진 걸까?
“오래전부터 탔죠. 그런데 옛날에는 그냥 설렁설렁 타다가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건 한 15년쯤? 늘 탔지만 취미 내지는 생활처럼 된 건 그 정도 됐죠. 저는 배우를 했잖아요. 연기를 하기 위해 모든 기능적인 걸 다 배워야 했어요. 수영, 자전거, 바이크, 펜싱, 검도,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다 연기할 때 필요한 것들이었죠. 그러다 보니 적당히 한 게 아니라 업계에서 알아볼 정도로 했죠. 승마도 장애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은 다는 못하고 걷기, 자전거, 수영, 스키, 스노보드 정도만 하고 있죠.”
그는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단다. 취미도 운동도 생활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특히 걷기는 그가 여전히 좋아하면서 계속할 수 있는 취미이자 운동이다. 670km를 걸어서 종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직도 웬만하면 걸어 다닌다. 장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보람을 일깨운 마지막 햄릿
연극인으로서의 성공, 정치인으로서의 논란. ‘개인적으로 할 건 다했다’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인촌의 삶의 그래프는 급격하다. 그가 ‘내가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였을까?
“작년에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나는 햄릿을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60대 중반 넘어선 사람에게 왕자 역할 하라고 하면 욕먹는다고. 그런데 이해랑연극상 받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이 없었어요. 윤석화가 전체에서 가장 막내였고 내가 그다음이었으니. 그래서 결국 내가 햄릿 역할을 하게 됐는데, 굉장히 책임감이 느껴졌죠. 다행히 유종의 미를 거뒀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저의 햄릿 역할의 마지막이었습니다. 내 연기 인생의 전반부가 으로 정리가 됐어요. 그러면서 연기하고 연극하길 참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계산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정의했다. 물질적 계산보다는 명분과 충분한 목적과 필요성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가 세운 극장도 처음에는 한 달에 2500만원씩 빠져나갔는데 그때마다 다른 곳에서 일한 돈으로 메꾸면서 운영했다고 한다. 꼭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저질렀다는 그의 말에서 평소의 신념과 의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해요. 주변에 여러 가지가 연관이 되어 있는데 정리하고 있어요. 제게 섭섭한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좀 좁히려고요. 이제 와 일을 벌이는 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연극도 1년이나 2년씩 구상하고 준비해서 하려고 해요. 작년에는 의도치 않게 연극 일이 많았지만, 올해는 쉬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정리하는 책을 써볼까 합니다.”
나이는 장애가 아니다
“젊다는 것은 젊어서 좋은 거예요. 그것 외에는 크게 장점이 없어요. 그러니까 늙는다는 것은 핸디캡이 아니에요.”
그는 ‘어차피 늙는 건데 (인생을)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침 그가 주연과 연출을 맡았던 연극 중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를 원작으로 한 라는 작품이 있는데, 늙어감에 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유난히 애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했다.
“제가 를 1997년에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했는데 지금까지 매번 적자였어요. 그러나 작품의 의미나 형식이 너무 좋아서 적자가 나는데도 계속 공연을 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대사 중에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 중후하고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라는 말이 나와요. 그 질문을 관객에게 계속하는 거예요.”
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삶을 관조하는 늙은 얼룩말을 맡았던 연기자 유인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간이다.
는 병든 말 ‘홀스또메르’를 통해 인간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화자인 얼룩말은 다양한 역경을 겪은 늙은 말이다. 이 얼룩말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되는 사랑과 고통,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등은 인간사 희로애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술의 보람과 감동을 알기에 놓을 수 없다
“‘인간은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밟아보지도 않아. 자기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사람을 욕해. 내 여자라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 살아.’ 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어요. 관객 중에 홀스또메르가 말하는 이런 사람이 꼭 있어요. 그 사람은 나와 눈을 못 마주쳐요. 그래서 흥행은 안 되죠(웃음). 하지만 나이 들어 이 연극을 보신 분들은 공연이 끝나도 일어나지를 못해요.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울기도 합니다. 저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근두근해요.”
한번은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내고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친구 때문에 를 보게 됐는데 이 연극을 본 후 죽으면 안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는 거지. ‘내가 꼭 성공하겠다, 그리고 당신을 후원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 그걸 보면서 예술로서의 목적이 달성됐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그런 편지 하나 때문에 연극 일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거니까요.”
궁금했다. 유인촌은 어떤 이유로, 어떤 힘으로 연극이라는 자신의 세계를 이렇게 끌고 올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이 다소 풀리는 순간이었다.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가 같은 작품을 했는데 어떻게 늙어갈지를 왜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렇다. 지금의 유인촌은 그 고민의 결과다. 예술은 사람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고 그 화두를 접한 사람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운동을 하기 싫지만 취미를 갖고 싶으면 예술을 가까이 하는 게 좋아요.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은 동호회가 많이 활성화돼 있어요. 그래서 박물관의 날, 미술관의 날 등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예술을 접합니다. 돈을 모아서 강연회를 열기도 해요. 아주 지적인 취미생활인 거죠. 우리도 할 게 많아요.”
기자가 늘 놓치지 않고 묻는 마지막 질문, 그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저는 기억되지 않는 게 좋다고. 가족에게도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뿌리라고 말해뒀어요. 광대 팔자라는 게 그런 거예요. 남기지 않는 게 좋다. 연극은 순간예술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거죠. 저는 저를 영상으로 남기는 게 어색하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안 했어요. 필름은 50년, 70년 돼도 남는 것이라 부담스럽거든요.”
방송에 나오지 않으니 젊은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몰라서 지하철을 타도 아무 불편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살짝 웃었다.
“사람마다 저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겠죠. 누군가에게는 방송인으로, 누군가에게는 배우로. 그냥 그렇게 각자의 나름대로 가벼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게 좋겠어요.”
유인촌과 ‘홀스또메르’가 오버랩되면서 옳다 그르다 선을 긋기 전에 인생역정 겪고 마침내 거울 앞에 선 그에게 다시 오는 것과 오지 않는 것은 무엇일지 큰 의미가 없을 듯하다. 편협한 생각으로 나눴던 대화, 그끝에 알게 된 건 그가 영원한 연극인이라는 거다.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상상을 한번 해보자. 자고 일어나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풍경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마치 무엇이 가로막고 있듯.
고개를 돌려 피해보려고 해도 여전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점점 커지고, 주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아져 급기야는 작은 창만 해진다. 환자를 더 옥죄는 것은 당장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그 작은 창마저 닫히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다. 황반변성과 근무력증, 안검하수까지 겹친 김성겸(金成兼·69)씨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그는 씩씩했다. 그의 옆에 성공적인 투병을 도운 동반자 건국대병원 안과 신현진(申賢眞·38)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랏?!”
10여 년 전 어느 날 김성겸씨는 운전 중 느닷없이 작은 비명을 질렀다. 이상한 일이었다. 차는 똑바로 가고 있었고 길도 평범한 직선도로였는데, 갑자기 길이 두 개로 보였다. 처음에는 차선이 늘어난 줄 알았다. 깜짝 놀라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쳐다봤다. 길은 그대로였다. 별일이 다 있다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신의 건강에 관대한 다른 중년 남성들처럼. 하지만 그날의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일의 전조였다.
움직여지지 않던 왼쪽 눈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그런 일이 일어났다.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현상은 ‘어쩌다 한 번’에서 ‘꽤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곧 주변 사람들도 눈치 챌 정도가 됐다.
“야! 너 눈 돌아갔다!”
김씨의 친구는 소주잔에 술을 따르다가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는 이미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상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닥치라는 농을 던지며 넘어갔다. 하지만 왜 나아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눈을 몇 번 껌뻑거리면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눈이 ‘돌아가는’ 증상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용기를 내어 동네 안과를 찾아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서울에서도 손꼽힌다는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았다. 그때가 2010년이었다. 병원에서는 낯선 병명을 그에게 전했다. 근무력증이었다.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병
근무력증(筋無力症)은 신경과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근육접합부라는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설명하면 뇌에서 “이렇게 움직이자”라는 명령이 신경을 통해 전달되어도, 근육에 제대로 미치지 못해 그 신체 부위가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다.
김씨의 경우는 근무력증이 왼쪽 안구를 움직이는 눈근육에 발병했다. 마치 사지가 축 늘어져버리는 것처럼 한쪽 눈이 사시처럼 아래로 처져버리는 것. 오른쪽 눈은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왼쪽 눈은 그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불편은 복시, 즉 사물이 겹쳐 보이는 현상이었다.
“온 세상이 다 두 개로 보여 어떤 물체가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특히 계단에서는 너무 위험했어요. 계단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데 어떤 계단이 진짜인지 알 수 없어 발을 자주 헛딛었어요. 그러다 넘어지기 일쑤였고. 그래서 아예 한쪽 눈을 가리고 다닌 적도 많아요.”
이렇게 불편한데 신경과에서는 계속 약만 먹으라고 했다. 주변의 시선도 문제였다.
“차라리 모르는 척해주면 좋은데, 눈이 이 모양이니까 사람들이 빤히 쳐다봐요. 신기한 동물 보듯이 말이에요. 당연히 기분이 안 좋죠. 이렇게 된 지 몇 년 안 되어 익숙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때부터 이 안경을 썼어요.”
그가 내민 안경은 흔히 ‘라이방’이라 부르는 익숙한 모양의 선글라스였다. 그렇게 3년을 병원에 다녔는데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병원을 바꿨다. 바로 건국대학교병원이었다.
쌍꺼풀 수술로 오해받는 안검하수 수술
신현진 교수는 신경과 교수와의 논의를 통해 수술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신 교수가 김씨를 처음 만났을 때인 2015년에는 건국대학교병원 신경과에서 치료를 진행해 눈움직임근육이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여서, 수술을 통해 눈 위치로 인한 복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운동을 안 하면 알통이 줄어드는 것처럼 위축이 일어나고 눈 근육 역시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상태가 점점 더 악화돼요. 늘어진 근육을 잡아당겨 안구가 반대쪽 눈과 비슷한 위치에 오도록 조정하는 수술을 했어요. 발병 전 상태로 돌아갈 순 없지만 그래도 복시가 나타나지 않고, 남들이 봤을 때도 어색하지 않은 눈 상태가 되셨죠”라고 설명한다.
사시 수술 얼마 후에 진행한 또 하나의 수술은 안검하수 수술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 논란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수술은 정확히 말하면 쌍꺼풀 수술과는 다른 수술이다. 노화와 질병으로 인해 처지는 눈꺼풀을 제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눈꺼풀 속 검판이라는 부위를 눈꺼풀올림근과 연결하는 수술이다. 신 교수는 안검하수 수술에 대해 일반인들의 오해가 많다고 말한다.
“흔히 쌍꺼풀 수술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임상적으로는 쌍꺼풀 수술과 안검하수 수술은 완전히 다른 수술이에요. 사람들이 쌍꺼풀이 보이는 눈을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수술 과정에서 쌍꺼풀을 만드는 것뿐이지, 원치 않는다면 쌍꺼풀이 안 생기게 안검하수 수술을 하기도 해요.”
수술은 복잡하지 않아 하루면 끝난다. 전신마취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입원도 불필요한 간단한 수술이라고 설명한다.
맹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려
하지만 김성겸씨가 세상을 보는 방법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황반변성이었다. 황반변성(黃斑變性)은 망막 가운데가출혈 등의 이유로 인해 물이 차고 붓는 질환이다. 사무실이나 카페에서 쓰는 빔 프로젝터의 스크린을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평평해야 할 스크린을 뒤에서 누군가가 손으로 누른다고 생각해보라. 스크린의 굴곡이 영상에 반영되면서, 화상이 왜곡돼 보이게 된다.
황반변성도 마찬가지. 상이 맺히는 망막에 혹이 생기면서 사물이 찌그러져 보인다. 가장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욕실의 타일이나 모눈종이 등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직선들이 똑바로 보이지 않거나 중심이 가려보이면 황반변성의 초기 증상이니 바로 안과를 찾아야 한다. 신 교수는 황반변성의 위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황반변성은 안과에서 백내장, 녹내장과 함께 3대 질환으로 꼽히는 흔한 병이에요. 문제는 정확한 원인도 잘 모르는 데다, 한 번 발병하면 완치는 어렵다고 봐야 해요. 발병하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악화를 늦추는 것에 만족하는 정도죠. 게다가 한 번 발생하면 다른 쪽 눈에도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치료를 위해 안구에 직접 약물을 주사하는데, 1개월에서 3개월 주기로 계속 주사를 맞아야 하고, 주사를 맞으면 감염 방지를 위해 2~3일 정도는 세수도 못하니 환자 입장에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또 환자를 옥죄는 것은 정신적 트라우마다. 왜곡돼 보이던 시야의 중앙은 병이 심해지면서 아예 보이지 않게 된다. 검은 반점이 되는 것. 그리고 병이 심해질수록 이 현상도 심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보이지 않는 부위가 점점 더 넓어져 언젠가는 맹인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환자를 힘들게 한다. 실제로 65세 이상 인구에서 법적인 실명의 빈도가 가장 높은 질환이 황반변성이다.
신 교수는 노화와 함께 반드시 주의해야 할 질환으로 황반변성을 꼽았다.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황반변성 환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수명이 증가하면서 눈이 필요한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잖아요. 그러므로 질환이 생기기 전에 주의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당뇨, 혈압과 같은 만성질환을 관리하고, 야외에서는 자외선을 막는 선글라스를 챙기세요. 고기 위주의 서구화된 식생활을 피하고, 담배는 반드시 끊으셔야 합니다.”
여전히 희망을 말해야 하는 이유
남들처럼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에 시달릴 법도 한데 김성겸씨는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 첫 사회생활을 공무원으로 시작해 그 후 제조업과 유통업, 식당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한 탓인지 병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남달랐다.
“그때마다 스트레스받으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신경 쓰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신 교수님께서 사시 수술을 예쁘게 잘해주셔서 남들 시선도 덜 의식하게 됐고, 복시도 사라져서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없어요. 앞이 뿌옇게 보이니까 사람을 만났을 때 제대로 못 알아보는 것이 약간 불편할 뿐이죠. 또 술 따를 때 자주 넘치도록 따르는 것도 불편하다고 해야 할까(웃음).”
아직도 끊지 못한 소주 얘기를 털어놓으며, 옆에서 듣고 있는 신 교수에게 미안한지 인상 좋은 너털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는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하지만 상대가 강한 상대이다 보니 황반변성은 조금 나아진 정도.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그래도 김씨는 여전히 희망을 말했다.
“눈이 좋아지면 차로 아내와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행을 하고 싶어요. 젊었을 때 자동차 시트커버도 팔아보고, 엔진오일 도매도 했었는데, 정작 자동차로 여행을 다녀본 기억은 없어요. 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다닌다던데 눈이 좋아지면 주변 조언을 얻어서라도 경치 좋은 곳들을 두루두루 다녀보고 싶어요.”
4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직업군 또한 그렇다. 안과의사, 사업가, 지역신문 기자, 전직 교사, 외교관, 국회 서기관 등을 지내온 사람들이 매달 자리를 함께한다. 다양한 기억과 경험을 가진 이들의 중심 화제는 바로 수필이다. 진솔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몰두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서로 다른 언어와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공감하며 글쓰기를 하는 모임, 그녀들의 ‘스페이스에세이 문학회’를 찾았다.
2013년 3월부터 모임이 시작됐다. 글 쓰는 일이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 이들이 모이는 가장 큰 목적은 동인지 발간이다. 지금까지 총 세 권의 동인지를 발간했다. 모임 이름은 스페이스에세이 문학회. 다양한 삶을 산 15명의 회원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글을 쓰고 있다. 회원들은 수필가 권남희(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의 제자들로 대부분 등단한 수필가다.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함께하는 스페이스에세이 문학회. 지난 11월에는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은 밥 딜런을 주제로 열띤 토론과 시낭송을 이어갔다.
수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수필은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고 배웠다. 감정이 마음껏 드러나도 되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문학 장르. 실제로 미사여구나 화려한 문장이 넘치는 수필을 종종 만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수필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짧고 강렬한 느낌을 주는 수필이 있는가 하면 서정적 표현에 무게를 두는 수필도 있다. 그러므로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이 수필이라는 것. 스페이스에세이 문학회 김종란(53) 회장은 수필은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 혹은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내용을 중심으로 쓸 때와 서정적인 느낌을 중시하며 쓸 때의 표현은 정말 많이 다릅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너무 길어지고 처지면 잘 안 읽혀요. 또 느낌과 표현을 중시하는 글도 그 강도와 빈도가 적절해야 합니다. 어쨌든 요즘 수필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해졌어요. 통통 튀는 수필도 있죠. 그런데 튀는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수필은 아니고 자기가 드러나야 해요. 비겁하게 피해가는 것은 수필이 아니에요.”
수필의 중심에는 첫째도 둘째도 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일상적인 내용을 써도 기본적으로 그 밑에 깔려야 하는 것은 진실성이다. 수필보다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는 회원 임금희(60)씨는 수필을 잘 쓴다와 못쓴다의 기준은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수필이 시와 소설과 다른 점입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글로 쓰는 것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시, 소설보다 수필이 훨씬 어려워요. 왜냐하면 옷을 벗고 다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옷 벗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수필은 감추면 안 돼요. 옷 벗고 보여주는 게 수필이거든. 싫은 사람은 시나 소설을 써야죠. 수필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솔직함입니다. 수필은 결국 자기 얘기를 해야 하니 정직해야죠. 기자가 남의 진실을 보는 사람이라면 수필가는 나 자신의 진실을 보는 사람입니다. 진정성, 진실성이 생명인 글쓰기인 거죠.”
수필 쓰는 시간은 힐링의 시간이에요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글을 써보겠다는 흥분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모임에 들어왔다가도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나가는 회원도 많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 또는 불편함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은 스스로에게 치유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글을 쓸 때만큼이라도 자신을 제대로 보고 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란 회장도 이 모임의 회원들이 수필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위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상담받는 것만큼이나 힐링이 되는 시간이 수필을 쓰는 시간입니다. 예전에 권남희 선생님과 함께 참여했던 동인지 제목이 였어요. 글을 쓰면서 일차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 거지요.”
미니 인터뷰
시니어들에게 수필 모임이 좋다 (김화순·64)
환갑이 넘으니 친구들 모임에서 내 얘기가 없더라고요. 저는 아직 손주를 안 봤는데 친구들은 대부분 손주를 봤어요. 모이면 남편 이야기, 손주 이야기, 자식 이야기밖에 안 해요. 그러니까 앞으로 그 사람들에게 남은 인생은 딱 그것인 거죠. 그러나 이 문학회에 오면 여기서만큼은 내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내 꿈, 앞으로의 희망, 올해 책 한번 내보겠다고 말할 수 있죠. 글쓰기가 미진할 때는 공부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것이 다른 모임과의 차이죠. 다른 곳에서는 내 얘기를 안 해요. 이미 그 사회에서는 고개를 넘은 거죠.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는 게 행복입니다 (송복련·69)
글을 쓰니까 좋은 점이 마음을 채워주는 수다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요. 미술·음악 공연장도 가게 되고요. 낯선 도시도 경험하고, 책도 많이 읽게 돼요. 오늘 모임에서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잖아요. 오늘 주제이기 때문에 밥 딜런에 대해 공부도 했습니다. 사실 음악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에 대한 책을 읽어보니까 읽으면 읽을수록 재밌더라고요. 아! 매력적이네. 이 사람이 그럴 만했구나 이해했어요. 미국 사회에서 밥 딜런이 사랑을 받은 이유가 있고 그 사랑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했기 때문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성장한 거죠. 오늘 아침에 인터넷 들어가서 봤는데 가사가 완전 시더군요. 그러면 시인이지요. 다른 문화, 잘 몰랐던 문화를 접하게 되어 이 모임에 나오는 게 너무 좋습니다.
환자는 의사의 봉인가? 필자는 60대 초반까지도 좌우 시력이 1.0에서 1.2 정도로 양호한 편이었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점차 시력이 약해지기 시작해 삼성동에 있는 S병원 안과에서 6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아왔다. 담당 의사는 백내장 증세가 약간 있으나 심하지 않다면서 매번 좀 더 두고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시력이 0.4~0.6 정도로 나빠지면서 책을 보거나 핸드폰, 컴퓨터를 볼 때 돋보기를 써야 했다. 또 TV나 영화 그리고 먼 곳을 보거나 운전을 할 때는 원시 안경을 사용해야 해서 안경을 두 개나 가지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특히 결혼식 주례를 할 때는 예식 장갑을 낀 채 안경을 번갈아 바꿔 써야 해서 그 불편함이 매우 심했다.
비슷한 나이의 주변 사람들은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 수일 내에 눈이 무척 밝아져서 그런 불편함이 완전히 없어진다고 말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솔깃한 이야기에 올여름 마침내 백내장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정하고 다니는 안과 의사 선생님과 상의했더니 두 명의 다른 안과 선생님들에게 추가 진단을 받으라고 해서 복잡한 검사 후에 수술할 단계가 되었다는 진단이 주어졌다. 수술비용을 알아보니 35만원이었다. 그런데 수술 전, 정밀 검사가 또 필요하다 해서 105만원 정도가 추가됐다. 그동안 매년 두 차례씩 검사를 받아왔는데 왜 또다시 큰 비용을 들여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눈 한쪽에 보통 3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의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안과를 알아보기로 하고 종로의 G안과와 강남역 근방의 G안과를 방문해보았다. 종로의 G안과는 환자도 많고 혼잡하여 일정이 맞지 않았다. 필자는 늦은 나이에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나 토요일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다. 강남역 G안과는 환자도 꽤 많지만 큰 건물의 3개 층을 사용하고 있어 여유 있는 아늑한 분위기에 검사 장비도 잘 갖추고 있고 일정 조율도 가능해 마음에 들었다.
강남역 G안과에서의 검사 결과, 필자는 백내장뿐 아니라 노안과 난시도 가지고 있었다. 원장은 한쪽 눈에 35만원인 일반 백내장 수술보다는 노안과 난시를 함께 교정할 수 있는 330만원의 고가 수술을 권유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며 망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내 몸, 특히 내 눈이라는 생각으로 고가의 수술을 받기로 했다.
드디어 지난 9월 24일 토요일 오전, 왼쪽 눈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의 검사 절차는 상당히 복잡했으나 정작 수술은 겨우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주의 사항이 많았다. 술과 담배는 절대 안 되고, 직사광선도 피해야 하며, 눈에 물이 들어가면 오염될 수 있으니 일주일간은 세수나 샤워를 하지 말라고 했다. 정 불편하면 수건을 빨아서 짠 후 얼굴과 몸을 씻도록 했다. 다음 날 오전, 병원에 들러 수술 경과 확인을 위한 검사를, 수술을 담당한 원장이 아닌, 당직 의사에게 받았으며 정상적으로 잘되었다는 소견을 들었다. 소염제도 복용하고 오염방지 용도의 안약도 3가지나 매일 수차례씩 눈에 투여했다. 무척 불편하였으나 며칠만 참으면 시력이 정상적으로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참을 수 있었다.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시력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조금 더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에는 보름 후에 검사를 하자고 했다. 의사의 주문대로 눈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혼자서 눈을 번갈아 감고서 시력을 자가 검사해 보았으나 매번 같은 상태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원장이 검진하고 수술은 이상 없이 잘되었으니 기다리면 된다고 하면서 한 달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 달은 무척 길고 길었고 시력에는 역시 아무 차도가 없었다.
11월 17일, 여러 검사를 받은 후 원장의 진료 시, 자세한 설명도 없이 레이저 치료를 하자고 하여 치료를 받았다. 치료 후 접수창구로 갔더니 치료비 11만3700원을 내고 약은 약국에서 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 CT 촬영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은 1~2주 만에 시력이 확실히 좋아진다는데 필자는 무려 두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변화가 없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병원 측의 잘못일 텐데 왜 필자가 장시간 고생을 하고 추가로 비용까지 더 지급해야 하는지 속이 상했다. 다음 날 CT 촬영을 하고 6만600원을 추가로 냈다. 이번에는 3개월 후에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병원 측에 제대로 따져 묻고 싶었으나 눈 치료에 악영향이 주어질까봐, 화를 억누르고 3개월 더 참아보기로 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치과와 내분비 내과 등 병원을 찾는 일도 점점 더 많아진다. 그런데 의사들이 환자와 제대로 상의도 하지 않고 각종 고가의 검사와 치료 등을 임의로 결정해 이를 따르지 않을 수도 없고 그대로 따르기도 어려워 고민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환자를 위한 의사가 아니라 병원 영리만을 위한 의사가 아닌지 의문이 많다. 눈이 좋아지지 않고 계속 현재 같은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을 받고 싶지만 어디에서 누구한테 받아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현대사회는 눈으로 살아가는 사회다. TV, 컴퓨터, 스마트폰, 네온사인 광고 등 자연광이 아닌 빛으로 인해 우리의 눈은 매일매일 혹사당한다. 그래서 눈 질환은 현대인들이 가장 흔하게 걸리는 질병이 되었다. 눈을 보면 그 사람이 불안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 형상의학에서는 눈을 정기(精氣)의 메모리(memory)라고 말한다. 오장육부, 척추, 뇌의 상태가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난 곳이 바로 눈이다. 머리가 좋은 것을 총명(聰明)하다고 표현한다. 뇌의 상태가 좋으면 눈과 귀가 밝다는 의미다.
조개를 보면 껍데기는 뼈처럼 단단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미끌미끌하다. 인간의 몸속에도 단단한 껍데기 속에 미끌미끌한 속살로 이루어진 부위가 있다. 바로 뇌와 눈이다. 뇌는 두개골이라는 단단한 껍데기 속에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뇌수를 숨겨두고 있다. 눈은 단단한 뼈 속에 미끌미끌한 안구를 보호하고 있다. 비슷한 구조는 비슷한 구조에 작용하는데, 이를 한의학에서는 물류(物類)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조개류는 눈과 뇌에 좋은 음식이다. 에도 조개류가 시력 보호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해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이 아프고 열이 날 것이다. 이번에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보라. 어지럽기는 해도 열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안구는 어느 방향으로든 입체 회전을 해도 마찰열이 크게 생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미끄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과 뇌에 문제가 생기면 뻑뻑해지면서 붓는다. 눈이 안 좋을 때는 눈동자를 조금만 움직여도 눈알이 빠질 듯 아프다. 건강한 눈과 뇌는 마치 기름칠을 한 듯 부드럽고 미끌미끌해야 한다. 눈과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타우린(taurine)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어주면 도움이 된다.
조개의 속살은 정말 미끌미끌하다. 이는 타우린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이 성분이 눈의 망막을 발달시키고 시력을 회복시킨다. 또 뇌세포를 보호하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타우린 성분은 조개류는 물론 새우, 게, 문어, 낙지, 오징어, 지렁이, 미꾸라지, 뱀장어, 달팽이 등에 많이 들어 있다. 또 열에 강하므로 조개탕, 연포탕처럼 끓여서 먹어도 된다.
조개 중에서는 전복이 특히 눈에 좋은데 껍데기와 속살 모두 좋다. 눈에 좋은 전복 껍데기는 한약명조차 석결명(石決明)이다. 눈을 밝게 해주는 딱딱한 조개껍데기라는 의미다. 천리광(千里光)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눈을 좋게 해서 멀리까지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또 껍데기에 구멍이 7~9개 난 것이 좋다는 의미로 구공라(九孔螺)라는 이름도 있다. 구멍이 10개 이상인 전복은 효능이 떨어진다.
우리 몸의 정혈(精血)이 농축된 곳은 뇌와 안구다. 심해어류인 등푸른 생선은 우리 몸을 농축시켜주는 벡터(vector)를 갖고 있다. 안구 특히 망막세포는 DHA를 고농도로 함유하고 있고, 뇌세포도 일반 세포보다 5배나 많은 DHA를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DHA를 복용하면 시력이 좋아지고 뇌세포가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등푸른 생선인 고등어, 꽁치, 참치는 DHA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
눈은 오장육부 중에서 간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눈이 안 좋을 때 돼지 간, 소 간, 산양 간, 토끼 간을 먹는다. 그렇다면 토끼의 간을 원했던 용왕님은 혹시 눈병이 있었던 것일까? 길짐승은 네 발로 달리기 때문에 근육과 간이 발달해 있고 눈이 밝다. 의 외형편 눈[目]에는 눈이 안 좋을 때 길짐승의 간을 먹고 길짐승의 담즙을 눈에 점안하라는 기록이 있다. 또 “화가 없으면 눈은 병들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눈으로 열이 올라와 눈 질환이 생긴다는 말이다. 따라서 눈병이 나면 눈 주위를 차갑게 해줘야 한다.
인체의 가장 윗부분에 위치해 있는 눈은 가벼운 꽃이나 가벼운 씨앗을 약재로 많이 이용한다. 무처럼 무거운 뿌리는 음식을 아래로 내려 보내 소화시키고, 가벼운 꽃이나 씨앗은 눈으로 올라와 약효를 보인다. 가벼운 꽃 약재로는 감국화나 금은화, 꿀풀이 있는데, 눈에 몰린 열을 꽃향기로 흩어준다. 가벼운 씨앗 약재로는 결명자, 복분자, 냉이씨, 블루베리, 빌베리가 있는데, 역시 눈에 몰린 열을 아래로 내려준다.
9회 구운 죽염을 물과 1 대 10 비율로 섞어 거름종이로 거른 후 외용제로 사용해도 좋다. 황련(黃連) 우린 물도 좋다. 건조한 눈, 충혈된 눈, 침침한 눈 등에 좋다. 은 생활습관도 시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책을 덜 보고, 생각을 줄이고, 명상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바깥 풍경을 덜 보고,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눈은 자주 감고 있는 것이 좋다. 눈을 감은 후 눈동자를 시계 방향으로 81번, 반시계 방향으로 81번 돌려주거나, 손바닥을 비벼 뜨거워지면 눈 위에 올려놓고 문지르는 것도 눈 운동에 좋다. 안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눈을 감싸고 있는 근육을 최대한 풀어주는 것이다. 위쪽을 쳐다보며 5초간, 아래쪽을 쳐다보며 5초간, 왼쪽을 쳐다보며 5초간, 오른쪽을 쳐다보며 5초간 유지하면서 근육을 풀어주고 안구를 시계 방향,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준다.
주색과 스트레스는 눈에 가장 안 좋다. 닭고기, 술, 밀가루 음식, 찹쌀, 짠 음식, 신 음식, 뜨거운 음식,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음식들은 눈에 열을 올려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한때 필자의 별명은 스테미나 여사였다. 다들 춥다고 웅크릴 때 필자는 추위를 안 탔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몇 날 며칠 여행을 가도 피곤하다거나 지칠 줄을 모르니 친구들이 부럽다며 그렇게 불러주었다. 그래서 필자도 필자 자신이 건강하다고 믿으며 살았다. 엄마 아버지와 윗대로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혈압이 높았으니 조심하라는 말씀을 항상 들었지만, 집안 내력인 고혈압만 조심하면 다른 건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종합 건강검진을 받고 놀랐다. 걱정해야 할 부분이 세 개쯤 나왔는데 그중에 혈당이 있다. 혈당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거라 당황스러웠다. 몇 년 전까진 항상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어 검사해도 정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준치보다 높게 나왔고 당뇨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필자가 당뇨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겁이 났다.
당뇨라면 발가락이 썩어 잘라내야 하고 눈도 멀게 한다는 무서운 질병이 아닌가? 주위 사람에게 여기저기 연락하여 우는소리를 했더니 필자 수치쯤 되는 당뇨는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좋아진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서 가까운 산에도 틈나는 대로 오르고 걷기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그러나 식이요법은 그리 만만치 않다. 워낙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당뇨로 인한 증상이 보이지 않으니 음식 조절을 잘할 수가 없다.먹고 싶은 대로 먹으며 막연히 그냥 좋아져서 혈당수치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바람을 가졌다.
어떤 드라마에서 혈당이 높은 남편에게 아내가 음식을 제한하는 걸 보았다. 과일도 한두 쪽만 주고 당근 등 생채소만 먹으라고 한다. 과일이라면 수박도 반 통 정도는 먹어야 하고 포도나 복숭아도 한두 개로는 안 되는 필자의 식성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다. 저 사람은 필자보다 훨씬 수치가 높은 사람일 거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걱정스러움을 없앨 수가 없었다.
운동과 식이요법만으로 해도 될는지 아니면 약 처방을 받아야 할지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야 하는데 몹시 나쁘다는 말을 들을까 봐 병원 가기가 겁이 났다. 인터넷 쇼핑을 하던 중 혈당체크기 광고가 있어서 주문했다. 일단 집에서 체크해 보기로 한 것인데 받아보니 설명서가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대강 그림에 나와 있는 대로 맞춰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내기는 했는데 혈당 계에 에러라고 떴다.
기계치라서 조립을 잘못한 걸까? 애꿎은 피만 나오게 하고 성공을 못 했다.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했지만, 손끝도 좀 아픈 것 같고 또 찌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아픈 건 아닌데 병원에서 간호사가 찔러 줄 때와 내가 찌르는 건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병원에 가서 상담하니 무슨 큰일이나 난 듯 검사하라는 게 많았다. 뇨 교육도 받았고 하루에 먹어야 할 음식량도 알려주었는데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아직 심각성을 못 느끼나 보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안과로 연계해 몇십 만 원 드는 검사도 받았다. 필수 단계라 한다. 그후 계속 약 처방을 받으며 살고 있다. 절이 잘 되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는 또 음식 조절은 잘 안 하게 되었다.
식도락은 빼놓을 수 없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약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아직도 스테미너 여사라는 별명을 들어도 될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반드시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 중 하나는 노안(老眼)이다. 노시안(老視眼)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증상을 중국에서는 노화안(老花眼)으로 부르기도 한다. 될 화(化)자를 사용하지 않고, 꽃 화(花)자를 쓰는 이유는 이 증상이 인간이 가장 성숙하고, 지혜가 꽃 필 때 찾아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노안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원가에서 활발한 활동 중인 신촌연세안과의원의 최영주(崔泳珠·52) 원장과 GS안과의원 김무연(金武然·46) 원장을 통해 노안을 알아본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안과의사들의 모임인 대한안과학회는 최근 흥미로운 의견을 내놨다. 안과 관련 질환 중 일부 명칭이 최근 상황과 맞지 않거나 환자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워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먼저 지목된 것이 바로 ‘노안’이다.
대한안과학회가 노안을 지목한 이유는 현대사회에서 노안을 더 이상 시니어만의 증상으로 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유다. 눈을 많이 사용하는 현대인의 생활습관 때문에 30~40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이 돼 ‘노안’이라는 명칭은 어울리지 않게 됐다. 이렇듯 노안이 더 이상 노화를 상징하지 않더라도, 노안은 피할 수 있는 신체의 자연스러운 변화다.
수정체 조절 모양체 근력저하가 원인
기본적으로 노안은 어떤 병이고 왜 생길까? 이에 대해 김무연 원장은 조금 다르게 노안을 이해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노안은 넓게 보면 나이가 들어 생기는 안과 관련 질환을 통틀어 생각하면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모양체 근육의 힘이 떨어져서, 아주 가까운 물체를 보기 위한 수정체 조절이 어려워져 발생하는 원시가 흔히 생각하는 노안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백내장이나 황반변성과 같은 질환도 노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연령에서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년안’이라는 명칭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 근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만큼 예방은 쉽지 않다. 최영주 원장은 수축과 반복운동을 통해 모양체의 근력을 강화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운동선수처럼 모양체 근육의 근력을 강화할 수 있다면 모양체 근력 저하로 인한 노안이 오는 시기를 늦출 수 있겠습니다만 쉽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한 눈 질환 없으면 ‘안경’을
노안의 치료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돋보기’다. 안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노안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중년이라면 가장 피하고 싶은 물건이지만, 노안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기도 하다. 최영주 원장은 눈에 특별한 질환이 없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안경’이라고 이야기한다.
“최근 개원가를 중심으로 노안 치료를 위한 다양한 수술법이 시술됩니다만, 기본적으로 눈에 문제가 없는 정시(正視) 상태에서 노안이 왔다면 수술을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근시이거나, 백내장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과정에서 노안치료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수술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얘기로 그 수술에 대해 평가하려면 의사도 그 수술을 받았는지 확인해 보라고 하잖아요? 저는 시력을 위해 라섹 수술은 받았지만, 가까운 곳을 볼 땐 돋보기를 낍니다.(웃음) 물론 안경이 싫어 수술을 고집하는 환자들도 많고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돋보기보다 선명해지는 수술은 없고,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수술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크게 3가지 방법이 거론된다. 백내장 치료를 위한 인공수정체 삽입술을 시행하면서 노안을 치료하는 방법과 근시 치료를 위한 라식을 진행하면서 노안 치료까지 고려하는 방법, 그리고 최근 개발되어 국내에서도 선보이고 있는 인레이 삽입술이다.
백내장 수술은 비교적 간단
보통 사람이라면 눈에 인공수정체를 삽입한다고 겁부터 나기 마련이 아닐까. 이에 대해 김무연 원장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백내장 치료를 위한 인공수정체의 사용은 1948년에 시작된 오래된 시술입니다. 그만큼 안전성이 확립된 수술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치과와 한의원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 중 가장 많이 시술되는 수술이 백내장 수술입니다. 인공수정체라는 명칭이 환자들을 겁먹게 하기도 하지만, 마취는 안약 몇 방울로 끝나고, 수술시간은 15분도 안 되는 간단한 수술이니 안심해도 좋습니다. 최근에는 노안 치료를 위해 다초점 인공수정체의 사용도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백내장 수술에서 사용되는 인공수정체는 단초점과 다초점으로 나뉜다. 단초점 인공수정체는 초점 조절 능력이 없는 단점이 있지만,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가까운 곳과 먼 곳이 모두 다 보이는 장점을 갖고 있다. 수술에 대한 개인부담 비용도 크게 차이가 나는데, 단초점 인공수정체는 한쪽 눈 기준 30만원 수준인 데 반해,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한쪽 눈 기준 200만~400만원 정도다.
그러나 다초점 인공수정체 삽입은 가격 말고도 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고 최영주 원장은 경고한다.
“아마 국내에 백내장 수술을 시술하는 의사 중 다초점 인공수정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의사들도 꽤 될 거예요. 기본적으로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가까운 거리에서 먼 곳까지 동시에 보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빛 번짐이 생긴다거나 초점이 이중, 삼중으로 맺혀 보이는 등의 부작용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초점 인공수정체의 선명도가 100점이라면,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심한 경우 80점까지 떨어지기도 합니다.”
좌·우 초점 다르게 맞추는 방식도
평소 근시나 원시가 있는 환자가 노안이 생긴 경우에 라식으로 시력과 노안을 한번에 해결하는 방법은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하는 것과 다소 다르다. 이 경우 양쪽을 다르게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무연 원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노안을 고려한 라식수술은 왼쪽과 오른쪽의 역할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라식 수술 장비에서 소프트웨어로 수술을 계획할 때 한 쪽은 가까운 곳을 중점적으로, 다른 쪽은 먼 곳이 잘 보이도록 정해놓는 방식입니다. 라식 경험이 있으신 분도 가능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라식이 만능은 아니다. 각막 상태에 따라 수술 가능 여부가 달라지고, 좌·우안의 시력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적응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입체감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원시의 경우 근시에 비해 그 효과가 덜할 수도 있다.
최근 시력교정수술을 주력으로 하는 안과들 사이에서 노안 치료의 새로운 방식으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인레이 삽입술’이다. 인레이 삽입술은 각막에 인공물을 삽입해 노안을 개선하는 방법인데 일부 안과에서는 ‘노안 임플란트’라고 홍보하기도 한다. 최근 많이 사용되는 방식은 흔히 ‘캄라(KAMRA) 인레이’라고 불리는 카메라 인레이 방식과 ‘물방울(Raindrop) 인레이’로 대표되는 하이드로겔 인레이가 있다.
새로 등장한 ‘노안 임플란트’
캄라 인레이는 레이저를 이용해 근시, 난시, 원시 정도만큼 시력을 교정한 뒤 직경 3.8mm의 작은 링을 각막 내에 삽입해 노안 시력을 개선하는 수술이다. 이 작은 링 안에는 아주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마치 핀홀카메라처럼 이를 통해 가까운 곳이 잘 보이게 된다.
물방울 인레이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마치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 사각을 없애기 위해 작은 볼록거울을 붙이는 것처럼, 아주 작은 볼록렌즈를 각막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가까운 곳을 보기 위해서는 수정체가 볼록해져야 하는데, 모양체 근력 저하로 볼록한 모양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함이다.
이 두 가지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오랜 기간 테스트된 결과는 나와 있지 않다. 지난해 발간된 대한안과학회 학회지에는 이 두 가지 타입에 대해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삼성병원 연구팀의 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결론에서 연구팀은 물방울 인레이가 환자들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연구 표본이 되는 환자 수가 적고, 두 방식 모두 나안 시력은 비슷하게 나와 결론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일부 보수적인 안과에서는 사용에 적극 나서지 않고 두고 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인레이 삽입술은 실시할 수 있는 조건도 까다로워 적용 가능한 환자가 많지 않은 편이다.
좋은 안과 제대로 선택하는 방법은?
최근 안과분야에서는 시력교정 수술만 중점적으로 하는 안과들이 늘면서 일부에서는 ‘라식 공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가 됐다. 또 수술 과정에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좋은 안과, 착한 안과를 선택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최영주 원장은 “어려운 질문”이라면서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는 의사, 다른 의사와 의견 교환을 많이 하는 의사가 좋습니다. 이 부분에선 아무래도 병원에 의사가 둘 이상인 병원이 유리한 편입니다. 내부적으로 진료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니까요. 또 시력교정 수술뿐만 아니라 일반진료도 하는 의사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적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질환에 대해서도 익숙해져 있어야 안전합니다. 또 병원에서 수련을 통해 경험을 많이 쌓은 의사가 아무래도 바로 개원을 한 의사보다는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반 환자들 입장에선 이러한 부분을 판단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안과를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다시 낙상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낙상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자료 중 하나는 낙상사고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고관절 골절이 환자의 사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정형외과 연구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환자의 경우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1년 내 사망률이 10.7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관절 수술로 나타나는 거동의 불편함이나 생활반경의 축소가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낙상의 위험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 연구에 참여했던 윤홍기 원장(연세에이스정형외과)의 도움을 받아 낙상의 위험성을 알아본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일러스트 홍수미 suming72@gmail.com
낙상은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몸을 다치는 것으로 특히 시니어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특히 낙상은 연령에 따라 다치는 부위가 다른데, 갑작스런 상황에 대한 신체반응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윤홍기 원장은 “낙상사고의 상당수는 손목과 발목, 허리, 엉덩이뼈, 고관절 골절을 유발합니다. 비교적 젊은 50대 이하에서는 넘어지는 몸을 바로잡으려다가 손목을 다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60대부터는 몸의 반응속도가 늦어 허리를 다치는 비율이 높아지고, 70대부터는 엉덩이뼈나 대퇴골 골절이 많아집니다. 심한 경우에는 두개골을 다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흔히 낙상하면 야외에서 미끄러 넘어지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실내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더 많다. 질병관리본부 2009년 통계에 따르면 주거시설에서 일어나는 사고가 61.5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도로가 20퍼센트로 그 뒤를 이었다. 시장이나 상점과 같은 상업시설에서도 18.5퍼센트의 사고가 발생했다.
실외보다 집안에서 더 많이 발생
실내에서 이런 사고가 유독 많은 이유로 윤 원장은 ‘어둠’을 꼽았다.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를 경험해 보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낙상사고 중 상당수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흔히 보는 사례는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났다가, 이불에 발이 걸리거나, 화장실 바닥에 미끄러지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연세가 많은 분들에게는 ‘야간등’을 따로 설치하도록 권하거나, 요강을 사용하도록 추천하기도 합니다.”
안과질환도 원인으로 꼽힌다. 그중 백내장이나 녹내장이 대표적이다. 알코올중독도 원인 중 하나.
하지만 낙상으로 인한 골절은 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한다. 50대 이후 여성 호르몬이 저하되면서 골밀도가 낮아져 골다공증의 발병 빈도가 높아지고, 관절염이나 빈혈,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이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관절 골절이 가장 위험
낙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골절 중 가장 위험한 것으로 현장의 의료진은 고관절 골절을 꼽는다. 65세 이상 노인의 고관절 골절의 90퍼센트 이상은 낙상에 의해 발생하고,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인공관절 치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낙상사고가 손목 골절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리나 엉덩이뼈 골절도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고정을 한 후 안정을 취하는 정도로 치료가 끝나지만 고관절 골절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특히 나이가 많은 시니어일수록 고관절 골절의 위험성은 높아지는데, 고관절 골절의 경우 상당수는 인공관절 치환수술을 하게 됩니다. 이 경우 비용도 비용대로 부담이지만, 환자의 삶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최근의 인공관절은 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는 수준까지 향상되었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사람의 그것을 대체했다고 하긴 어렵다.
윤 원장은 “고령의 고관절 골절 환자의 수술 후 사망률 연구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를 보였던 환자군은 치매나 만성 신장질환을 앓았던 환자군이었습니다. 이는 생활반경이 좁아졌을 때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결과입니다. 때문에 만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엔 낙상을 더욱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평소 꾸준히 근력 키우는 운동해야
낙상의 위험성 중 하나는 후유증이다. 생활반경이 좁아지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생활의 활력이 없어지고, 근력이 떨어져 다른 합병증을 유발하거나, 또 다른 낙상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평소에 낙상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윤 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 환경 개선입니다. 집안 내 생활반경에 발에 걸릴 만한 것을 정리하는 습관이 중요하고, 조명은 가급적 밝은 것을 추천합니다. 높은 곳에 있는 떨어질 만한 물건을 치우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또 평소에 꾸준한 운동으로 근력을 유지하여 낙상을 예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날씨가 쌀쌀해진 요즘 외부에서의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도 있다.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미끄럽지 않은 등산화 같은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또 이동하는 동안에는 집중이 분산되는 휴대전화 통화는 삼갈 것을 권한다.
낙상 방지를 위한 안전용품의 활용도 권장하는 방법 중 하나다. 안전한 보행을 위한 실버카(유모차)의 사용이나, 보행기의 활동도 추천하고, 욕실에선 좌변기용 안전보조대를 통해 앉고 일어설 때 의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욕실의 안전매트 사용은 이제 기본이 됐다.
마지막으로 윤 원장은 만약 낙상사고를 당하게 되는 경우 방심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한다.
“실제로 대퇴골 골절을 당한 여성분이 며칠 동안이나 ‘이러다 낫겠지’하며 내원을 미루다 병을 키워 온 사례도 본 적이 있습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타박상과 골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20대 아들과 50대 아버지가 나란히 앉는다. 어느 사이 두 사람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영화 중간에 40대 딸에게 “저 때는 다 그랬어”라는 말을 하던 70대 어머니가 조용히 흐느끼자 딸도 덩달아 눈물을 쏟는다. 깔깔대며 손잡고 극장 안에 들어왔던 20대 젊은 연인들이 눈물 훔치는 데 여념이 없다. 부부와 연인, 자식과 부모, 10대와 80대가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이 모습이 연출된 곳은 바로 요즘 관객과 만나고 있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국제시장’상영관이다.
‘님아…’가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흥행 1위에 올라서고 ‘국제시장’이 화제와 논란 속에서도 600만(1월 19일 현재 누적 관객수 112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고공비행을 하던 지난 1월 2일 서울 용산 CGV를 찾아 둘러본 극장 안 모습이다. ‘님아…’와 ‘국제시장’관객 모습은 다른 한국 영화와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 한국 영화 관객은 20~30대 젊은 관객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두 영화의 관객은 10대부터 80대까지 관객층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그리고 부부, 자녀와 부모 등 가족 관객들이 유난히 많다.
KBS‘인간극장’에 소개됐던 강원 횡성의 강계열(89) 할머니와 76년간 사랑하며 살다가 숨진 조병만 할아버지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님아…’와 1950년 6·25전쟁 때 흥남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자식들의 생계를 책임지며 서독 광부, 월남전 기술자로 일하는 등 가족을 위한 헌신과 희생을 한 아버지의 삶을 다룬 ‘국제시장’은 10대부터 80대 관객까지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님아…’와 ‘국제시장’, 이 두 영화는 어떻게 해서 다양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일까. 무엇이 청소년부터 장노년층 관객에 이르기까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스크린 안과 너무 다른 2015년 대한민국 현실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공감을 유발한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부부, 연인 간의 진정한 사랑과 가족을 위한 희생 등이 상실돼가고 있는 현실의 반작용으로 솟구치는 진정한 부부 사랑과 가족애에 대한 갈망이 연령대와 상관없이 영화에 몰입하게 하고 공감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회용 인스턴트 남녀사랑이 일상화되고 사랑은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외형적 조건 앞에 무기력해진다. 외모, 재산, 학벌, 직업, 연봉 등 스펙으로 대변되는 조건들이 남녀 간의 만남에 우선시된다.
‘결혼’의 저자 남정욱의 지적처럼 이제 결혼 당사자들이 자신을 상품으로 내걸고 가격을 매기면서 서로 상대방의 상품과 품질 및 가격과 비교 흥정을 벌이며 재화나 지위를 목적으로 한 정략혼을 하는 것이 외면할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뿐만 아니다.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고 내 삶보다 가족의 생활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담보 잡혔던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또한,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으면서도 ‘괜찮다’웃어 보이며 오직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형, 누이의 모습 역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신 유산문제 때문에 형제가 남남이 되고 돈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냉혹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차가운 현실 속에서 만난 ‘님아…’속 노부부의 조건 없는 진실한 사랑이, ‘국제시장’의 가족을 위한 조건 없는 아버지의 희생이 세대를 불문하고 수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촬영하면서 느낀 점은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과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조건도 없고, 목적도 없는 사랑 그 자체였다. 관객들이 특히 10대~20대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영원한 사랑에 대한 힘을 새삼스럽게 느낀 것 같다. 일종의 롤 모델로서 ‘나도 저렇게 사랑해야지’라는 희망을 발견한 것 같다”는 ‘님아…’의 진모영 감독의 말 역시 세대를 가로지르는 공감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또한, 존재에 대한 가치보다 소유에 올인하는 왜곡된 세태에 대해 성찰을 하게 한 것도 공감의 원천이다.
빠르게 진행된 자본주의와 근대화를 근간으로 한 압축 성장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존재를 아름답고 올바르게 만드는 의미나 인간을 튼실하고 값지게 만들어주는 휴머니즘, 사랑, 가족애 등 소중한 가치가 팽배해가는 물신주의 앞에 실종된 것이다.
‘님아…’와 ‘국제시장’은 물신주의 앞에 실종된 소중한 가치들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물신주의 홍수 속에 자라난 젊은 세대는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무한한 사랑의 가치를 절감하게 됐고 부모세대는 “나 역시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말 어렵고 힘들 때도 가족을 지켰지”라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부부애와 가족애에 대한 의미의 되새김질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이 세대를 뛰어넘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모님께 효도 열심히 해야겠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는 ‘국제시장’주연 김윤진의 말과 “아버지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돌아가셨을 때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 영화로나마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윤제균 감독의 언급, 그리고 “나도 70 여 년간 조건 없이 서로를 아껴주며 사랑한 강계열 할머니와 조병만 할아버지 부부처럼 살고 싶다”는 진모영 감독의 소망을 두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서는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 역시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말한다.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문양이 드러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