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미국 최초 여성 연방 대법관을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의 남편 사랑입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다른 여성을 사랑해도 당신만 행복하다면 나는 기쁩니다.”
오코너 대법관은 1981년부터 24년간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중도의 여왕’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사심 없이 균형추 역할을 해낸 법관입니다.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어느 날 샤워를 끝내고 보니 가슴에 이상한 혹이 만져지더랍니다. 그래서 오전 재판을 마치고 병원에 갔다가 유방암 3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힘든 투병이니 장기휴가를 내고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를 했지만 뿌리쳤습니다.
오코너 대법관은 그렇게 유방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법관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유명 변호사인 남편까지 알츠하이머병 초기라는 진단을 받자 2005년 명예로운 종신직인 대법관의 자리를 내려놓습니다.
법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터여서 고민이 컸을 텐데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남편의 기억력이 점점 나빠져 결국 그녀도 몰라보게 되자 남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은퇴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요양원에서 다른 환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다른 여자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키스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남편을 미워하거나 애인을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코너는 행복해하는 남편을 기쁘게 바라봤습니다.
그녀의 아들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마치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 같아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정서적 안정을 되찾게 됐다며 좋아하셔요”라고 말하며 자살 얘기만 하던 아버지가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모습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오코너의 친구인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는 남편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어서의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고, 황혼의 사랑은 상대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순의 나이에 만난 오코너의 숭고하고도 위대한 사랑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눈시울을 적셔가며 이 이야기를 소개해주곤 했다. 물론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더 특별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편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은 도대체 어느 만큼의 깊이를 가진 걸까? 얼마나 성숙해져야 그런 사랑이 가능할까!
시니어에게 재산은 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평생 노력해왔음을 증명하는 징표이자 보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재산이 거동이 불편해졌을 때, 더 나아가 사망한 후에도 제대로 쓰이길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돈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쉽지 않은 과제다. 재산 운용 능력을 잃으면, 나를 위해 쓰이지 않을 수도 있고 자녀 혹은 사위, 며느리에 의해 낭비될 수도 있다. 최근 떠도는 소문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데 남 얘기 같지 않다. 이런 걱정을 덜어주는 제도가 있다. 바로 금융기관에 내 재산 운용을 믿고 맡기는 유산대용신탁이 그것이다.
신탁제도가 대중에게 각인된 계기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망을 통해서다. 마이클 잭슨은 가족신탁계약서를 통해 사후에 자신의 유산이 어떻게 운용될지 미리 정해놨다. 이를 통해 사후 유산의 20%는 자선재단에 기부됐고, 장례비, 변호사비 등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재산은 아내와 세 자녀에게 상속됐다. 계약 내용에 따라 자녀들은 유산을 한 번에 받을 수 없었고 성인이 되고도 한참 후인 30세가 넘어야 일부 상속을 받았다. 계약서상 상속이 완전히 끝나는 시기는 자녀가 40세 되는 생일이었다. 이는 자녀의 삶이 유산으로 망가질까 걱정한 마이클 잭슨의 요구 때문이었다.
유언장 작성보다 절차 간단
신탁에 의한 상속관리는 2012년 개정된 신탁법 제59조 유언대용신탁과 제60조 수익자연속신탁이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신탁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의미다.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지정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등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용하게 하는 상품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재산의 수익자와 상속받을 사람을 정하는 신탁으로서, 생전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정해 생의 마지막까지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불효방지신탁’으로 부르기도 했다. 업계에선 2020년이 되면 2조 원 규모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유언대용신탁 상품은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은행권이 시장을 선점한 형태이며, NH투자증권이나 신영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증권회사들이 은행권을 추격하는 모양새다.
유언장과 신탁 계약은 내 재산을 물려줄 방법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많이 다르다. 유언장은 상속 이해관계인이 아닌 보증인 2명과 공증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증인에게 개인 재산 내역이 밝혀지는 것은 유언장 작성 시 가장 껄끄러운 부분 중 하나. 만약 유언 내용을 변경하고 싶다면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에 반해 신탁은 금융기관과의 계약으로 충분하다. 계약 의지와 계약 능력만 있으면 된다.
성용배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유언장의 경우 사망 이후에 개봉돼 그 효력을 갖기 때문에, 생전에 법적으로 요구되는 절차와 형식을 충족하지 못하는 하자를 인지하지 못해 유언으로서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공증의 불편함이나 보관 과정에서 위·변조나 분실의 위험도 있다”고 지적하며 “유언대용신탁은 계약의 상대방인 금융기관이 존재하고 생전에 계약에 따른 쌍방의 이행이 이뤄지기 때문에 계약상 하자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고, 계약서의 분실이나 변경 등의 우려도 적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상속, 치매 후 관리도 해결
유언대용신탁이 최근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골치 아픈 상속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손주에게 안전하게 재산을 상속하려면 유언대용신탁이 유용하다. 여러 세대에 걸친 수증자 지정도 가능하다. 1차 상속자를 자녀, 2차 상속자를 손자로 지정하는 식의 상속 설계가 가능하다. 유언장의 경우는 다음 세대 수증자 지정만 가능하다.
또 유언에 따라 상속 재산에 차등이 생겨 자녀 간에 분쟁이 생길 우려가 있을 때도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유언이 집행되면 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 집행인이 되는데, 분쟁이 생기면 상속 과정에서 집행인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신탁은 집행인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상속인끼리의 분쟁 발생 가능성이 낮다.
유산대용신탁의 장점 중 하나는 부동산에 있다. 부동산은 현금에 비해 운용이 쉽지 않고, 분할도 어렵다. 상속자들이 매각을 결정해도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니어의 상당수가 부동산 형태로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 상속은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다. 신탁 상품은 이런 경우 또 다른 대안이 된다. 부동산의 상속, 증여뿐만 아니라 신축이나 리모델링, 임대위탁관리 등도 가능하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자녀에게 부동산 임대 수익을 나눠주고 싶다면 신탁을 고려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런 신탁 상품이 만능은 아니다. 부동산을 신탁하려면 수탁자인 금융기관에 소유권이 이전되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배정식 KEB하나은행 신탁부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재산을 보전하고 사후 상속하려면 등기이전을 통해 수탁자가 관리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일부 고객은 은행이 마치 내 소유권을 가져가고 마음대로 처분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하며 “신탁은 재산을 맡기는 고객의 요구사항에 맡게 정확하게 관리되고 언제든 해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고령화에 따른 치매 관련 불안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치매안심신탁 같은 상품이 그것이다. PET-CT와 같은 알츠하이머 진단 장비 개발로 인해 치매 발병의 예측이 상당 부분 가능해지면서 스스로 치매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신탁이 활용된다. 치매 발병 전이나 초기에 신탁을 통해 자산관리와 상속설계를 해놓으면 병원비나 간병비, 생활비에 필요한 돈을 은행이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렇듯 치매와 관련한 일반의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KEB하나은행에서 신탁 상품을 위해 대면상담한 고객 중 치매 관련 상품 상담자가 전체의 약 30%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1994년 11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습니다. 앞으로 나는 나의 친구, 내 가족을 몰라볼지도 모릅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인생의 황혼(黃昏)으로 가는 여행을 떠난다”는 말과 함께 10여 년간 치매와 싸우다 2004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옆을 지켰던 부인 낸시 레이건은 치매 환자 가족의 고통을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천천히 분해되어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괴로움”이라고 표현했다. 병이 깊어졌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낸시 여사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신이 미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며칠 전 필자는 초등학교 가을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열두 살 꼬맹이였던 친구들은 60대 환갑이 넘은 초로의 모습이었다. 주름진 얼굴, 서릿발 내린 흰머리 등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웃고 떠들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모님 안부로 이어졌다. 우리 나이가 육십이 넘었으니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도 많고 살아 계신다 해도 90세 전후라서 어르신들 건강이 좋지 않다. 집에서 치매로 고생하시거나 요양원에 계신 분도 꽤 있다.
자연스러운 치매 얘기에 경험담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치매 환자가 있으면 가족은 비상이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주방에 가스레인지를 켜놓는 등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치매 치료제는 없고 지연시키는 약만 있으나 그 효능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최선책은 조기진단과 예방법 실천이다. 알려져 있는 예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햇볕을 많이 쬔다.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D 섭취량을 높인다. 둘째, 오메가-3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을 많이 먹는다. 셋째, 숫자나 퍼즐 게임, 낱말 맞히기, 산·강 이름 암기 등 두뇌를 쓰는 게임을 한다. 넷째, 당분 섭취를 줄인다. 다섯째, 잠을 7시간 이상 충분히 잔다. 여섯째, 항산화제가 풍부한 커피를 하루 3~5잔 마신다. 일곱째, 스트레스를 낮추고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명상을 생활화한다. 끝으로 취미, 모임 등에 자주 나가 사회활동을 한다.
이미 치매가 시작되었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등급 판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구체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 내용에는 방문 간호, 주간 보호, 단기 보호, 복지 용구 지원 등이 있다. 경증 환자를 위한 주간 보호 시설도 어린이집처럼 운영된다. 중증 환자는 24시간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요양원 입주가 가능하다. 현재 중증 환자의 경우 본인 부담금이 20%인데 ‘치매 국가 책임제’로 정책이 전환되면서 10%만 부담하면 된다.
필자의 장모님도 등급을 받아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요양원이 싫은 사람은 간병인을 구하면 되지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요양원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각종 프로그램과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어 집에서 갇혀 있거나 누워만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도 환자로 만드는 가족병이라 한다. 평소 예방법 등을 실천해 치매가 오지 않도록 하고, 주기적인 검진으로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추고, 치매 관련 제도를 활용해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야 한다. 또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도 환자가 한 생애를 끝내고 황혼 여행을 잘 떠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돌봐야 한다.
1998년 무렵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조인 이태영 변호사가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알고 필자는 탄식했다.
‘여성들의 권익을 찾아주기 위해 평생 헌신하신 분에게 이런 병이 오다니… 누구보다 두뇌활동을 열심히 한 분도 피해갈 수 없는 질환이란 말인가….’
머리를 잘 안 쓰는 사람들이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필자는 큰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치매는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오는 병 같다. 필자가 평택에 살았을 때 아래층 70대 할머니가 그랬다. 자녀들이 분가한 후 홀로 지내던 분이었는데 젊은 시절 한 미모 했을 것같이 고왔고 말도 자분자분 조용히 했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하고 어울린다거나 대화를 나누는 일이 거의 없었고 집 안에서 혼자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고 갔다.
필자와 인연이 있는 서울농대 농화학과 P교수님도 치매를 피하지 못했다. 40대 후반 무렵 교수님 댁에 놀러갔을 때의 일이다. 사모님은 P교수님이 퇴직한 후 유럽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사진 속에서 교수님과 사모님은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와우! 사모님 부러워요. 완전 잉꼬부부시네요!”
물색 모르는 필자가 감탄하자 사모님은 웃으면서 P교수님이 알츠하이머병이 와서 손을 꼭 붙잡고 다닌 거라면서 설명을 해주셨다.
“손을 놓으면 아무데나 막 가버리셔서 잠시라도 손을 놓을 수 없었어요.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던 날들이라서 서둘러 유럽여행을 떠났지요. 즐거워야 할 여행이 얼마나 쓸쓸하던지….”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1970년대 필자가 농대 학과장실에 근무할 때 학생지도위원이었던 P교수님이 가끔씩 들리셨다. 방문 여는 소리만으로도 P교수님이라는 걸 단박에 알았다. 문을 유난히도 씩씩하게 열어젖히셨기 때문이다. 그토록 건강하시던 분이 치매에 걸리다니… 인생무상이 이런 것인가 했다.
고령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점에서 최악의 질병이다. 치매는 진행 속도를 줄일 수는 있어도 완치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병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치매가 올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필자에게는 있다. 뇌가 여러 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18세 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며 심각한 생각에 빠져 걷다가 전봇대에 엄청 세게 부딪혔었다. 55세 때는 바위에 부딪혀 정신을 잃었었다. 요즘은 잠의 질이 형편없다. 꿈을 꾸다 깨어나는 일이 많아 머리와 몸이 무겁다.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심히 걱정스러웠는데 때마침 치매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강남시니어 플라자에서 치매 테스트를 받아봤다. 그 결과는? 필자도 놀라웠다. 30점 만점에 30점이 나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 먹은 음식.’
이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아침마다 디톡스 주스 한 잔에 사과 한 알, 현미 잡곡밥에 굴 미역국이나 시금치 된장국 등을 먹으며 건강한 밥상을 차리려 노력한다. 먹거리에서 오는 리스크만이라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모델워킹을 하고, 왈츠를 추고, 서울 둘레길 걷기를 한다. 오늘도 필자는 많은 사람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치매가 가까이 올까봐 경계하며 살고 있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 어르신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9월 1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치매 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개인과 가족이 떠안았던 고통을 국가가 나눠지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전폭적인 관심이 치매 치료에 대한 생태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의료계 안팎에서는 벌써 정부의 ‘동기부여’가 효과를 내고 있는 듯하다.
먼저 지난 9월 발표된 정부의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계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전국에 47곳밖에 되지 않았던 치매지원센터의 확대다. 그동안은 서울과 수도권에만 설치가 집중됐지만, 다음 달부터는 전국 252곳에 ‘치매안심센터’가 설립될 예정이다. 센터에서는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상담과 조기 검진부터 관리, 의료·요양 서비스 연계까지 통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센터에서 받은 상담 내용은 ‘치매노인등록관리시스템’에 등록돼 환자와 가족들이 이사를 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든 연속적으로 관리된다. 센터 안에는 치매 환자 가족의 정서적 안정을 도울 카페와 인지·신체 활동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을 단기 쉼터도 만들어진다.
기저귀 구매비용도 지원
중증 치매로 인해 이상행동 증상이 심해 가족이나 일반 시설에서 돌보기 어려운 환자는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재 전국 34개소에서 1898병상이 치매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립요양병원은 다음 달부터 79개 병원 3700개 병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치매국가책임제 실행을 위해 정부는 올해 추경에서 2023억원을 이미 집행했으며, 내년 예산안에도 3500억원을 배정한 상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으로 인해 지난 10월부터 중증 치매 환자도 산정 특례 적용을 받게 됐다.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4대 중증질환과 같은 수준인 10%로 경감됐다. 복지부 계산에 따르면 연간 200만원의 자기부담금을 지불했던 입·내원일 수 52일 정도의 환자는 앞으로 77만원만 내면 된다.
그동안 신체기능이 양호하다는 이유로 배제됐던 경증 치매 환자도 장기요양서비스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장기요양 5등급을 확대하거나 6등급을 신설해 경증 치매 노인에게도 장기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을 위해 시설의 식재료비나 기저귀 구매비용을 장기요양보험에서 지원할 계획이다.
이외 전국 노인복지관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미술, 음악, 원예 등을 이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66세 이후 4년마다 받는 인지기능검사 주기도 2년으로 짧아진다. 치매안심마을 조성 사업과 치매 파트너즈 양성 사업도 확대된다.
한의학계, 치매 분야에 높은 관심
치매 치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의학계도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방 치매 치료의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는 데 애쓰고 있다. 최근 부산시 한의사회는 초기 치매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로 판정된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한방 치료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환자 중 80.5%(161명)이 인지기능개선 효과를 보였고, 환자 중 82%가 치료 재참여를 희망했다.
또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정신과는 ‘한방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치매 예방뿐만 아니라 노년기 생활습관 교정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주는 것이 목표다. 강동경희대학교 한방신경과는 서울시와 함께 ‘어르신 한의학 건강증진사업’을 통해 한방 치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런 한의학계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치매 국가책임제에) 한의사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에 대한 관심 증가는 치과계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치매 구강건강정책 테스크포스팀을 통해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정책 제안서 제작을 결정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도 치매 다뤄
최신 IT 기술도 치매 진단과 치료에 나서고 있다. 류호경 한양대 아트앤테크놀로지학과 교수팀은 최근 국내 최초로 가상현실(VR)을 이용해 노화와 치매의 중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은행 ATM, 대중교통 이용 등과 같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하고, 참가자의 움직임 분석을 통해 치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방식은 진단 과정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이 큰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기존 진단 방법은 설문 문항을 시험지처럼 작성하는 방식인데, 질문에 대해 반발하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인공지능 ‘왓슨’과 유사한, 치매를 치료하는 인공지능의 등장도 멀지 않았다.
가천대 길병원은 뇌 질환 진료지침 정밀의료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일종의 뇌 전문 인공지능 의사로 디지털 뇌 영상 빅데이터를 구축해 암 치료에만 적용됐던 개인 맞춤형 정밀의학을 뇌 질환 치료에도 실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치매의 조기진단이나 치료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가천대 길병원은 지능형 뇌과학연구센터·뇌과학연구원·가천뇌건강센터를 설립해놓고 기술 개발에 대한 역할 분담과 협업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조선대학교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등과 함께 딥러닝 기술과 컴퓨팅 인프라, 뇌 영상 빅데이터를 활용해 뇌 영상 분석 인공지능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 환자의 증가는 국가적 이슈가 된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치매 국가책임제의 시동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고, 치매 환자 관리는 이미 정부기관을 통해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중앙치매센터에서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환자 수를 살펴보면, 9월 현재 65세 이상 노인 약 711만 명 중 치매 환자는 10%가 넘는 72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치매 환자 하면 대부분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리지만 치매의 한 종류인 혈관성 치매 역시 적지 않다. 전체 치매 환자 중 16.5%인 약 12만 명이 혈관성 치매를 앓고 있다. 혈관성 치매의 문제 중 하나는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金希珍·46) 교수를 통해 혈관성 치매의 위험성을 알아봤다.
“시니어들이 혈관성 치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김희진 교수가 질환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그만큼 중요한 얘기라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직 100% 예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또한 발병하면 병의 진전을 미루는 것이 주된 치료법이고 완치법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방이 가능한 치매예요. 관심 갖고 건강관리를 해나간다면 혈관성 치매를 막을 수 있습니다.”
혈관성 치매가 예방 가능한 이유
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혈관성 치매의 발병 원인은 뇌혈관의 기능 이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중풍’이라고 부르는 뇌졸중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혈관성 치매는 뇌출혈이 생겨 발생하는 출혈성 뇌혈관 질환과 뇌혈관이 막혀 뇌세포가 죽는 허혈성 뇌혈관 질환, 즉 ‘뇌경색’ 으로 나뉜다. 전체 환자 중 허혈성 뇌질환이 약 80% 정도로 흔하고, 출혈성 질환은 20% 정도다.
이러한 질환들은 대부분 뇌세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혈관이 막혀 혈액 공급이 안 되거나 출혈이 발생하면 뇌세포는 피해를 입는다. 이런 이유로 뇌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장애가 오는 질환을 혈관성 치매라고 부른다.
“뇌졸중은 대부분 혈압과 혈당, 콜레스테롤만 조절하면 예방이 됩니다. 혈관이 터지는 것도 막히는 것도 이러한 것들이 원인이니까요. 다만 혈압이나 혈당을 관리할 때 중년과 노년은 그 기준 수치를 다르게 해야 해요. 혈압은 나이 들어가면서 다소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중년의 기준에 너무 철저하게 맞추려다 저혈압 증상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출혈성 혈관성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혈압을 낮춰 뇌출혈을 예방하고, 허혈성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약물을 통해 혈전으로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병
혈관성 치매의 또 다른 특징은 갑작스러운 발병이다. 특히 뇌출혈이 발생할 경우 급격하게 뇌기능이 나빠져 말 그대로 갑자기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경과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느 날 갑자기’라고 표현해요. 느닷없이 저림이나 따가움, 운동장애가 온다면 뇌출혈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특히 한쪽만 증상이 나타나는 편마비는 강력히 의심해야 해요. 언어장애가 나타나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복시, 두통, 보행장애가 나타나도 마찬가지예요. 주저 말고 119에 전화하셔야 합니다. 보통 골든타임을 3~4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빠를수록 좋아요.”
뇌졸중은 발병 초기에 제대로 치료만 해주면 상당 부분 회복이 가능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출혈이나 허혈성 뇌경색으로 인해 일부 뇌세포가 죽게 돼도 주변의 다른 뇌세포가 그 기능을 대신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작은 뇌혈관이 서서히 막혀서 오는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천천히 발병하는 대신 회복이 어렵다.
“의외로 젊은 사람에게서 발병하기도 해요. 모든 일에 무감각해지고 우울감이 오면서 무기력해지는 특징이 있어요. 집 안에만 있으려 하고요. 배뇨기능에 문제가 생겨 자주 소변을 보면서 오줌싸개가 되기도 해요. 몸을 제어하지 못하는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피질하 혈관성 치매는 MRI 촬영 등 진단을 통해 알아낼 수 있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노인성 질환으로 치부해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해요.”
혈관성 치매 역시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만약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가족 노력에 따라 차도 달라져
김 교수는 혈관성 치매의 발병에서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성격이 변한다든가 무기력해지는 등의 사소한 변화를 최초 증상으로 의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병의 진행을 멈출 수 있어요. 또 혈관성 치매는 혈류량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가족의 독려가 필요해요.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지역 주간보호센터를 통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가족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환자는 요양원에 갈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식생활도 매우 중요하다. 혈관성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식단 조절이 필수적인데, 음식은 싱겁게 골고루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채소는 매일 먹어야 한다. 붉은 고기는 가급적 멀리하고, 생선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을 것을 권한다. 큰 생선은 중금속 축적이 많기 때문에 이로 인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꽁치나 고등어 같은 DHA나 EPA를 많이 포함해 뇌에 좋은 등푸른 작은 생선이 좋다. 올리브 오일과 해산물을 풍부히 섭취하는 지중해식 식단도 좋다. 물도 매일 충분히(하루 6잔 정도) 마셔야 한다. 물론 담배는 끊어야 하고, 술을 마실 경우 하루 한두 잔 정도만 마신다. 이렇게 까다롭게 식단 조절을 하는 이유는 병의 원인인 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의 조절을 위해서다.
“통계적으로 60세 이상의 노년기에는 마른 체형이 치매가 잘 오는 편이에요. 그러므로 원칙을 지키면서 잘 먹는 것이 중요해요. 맛있게 잘 드셔야 해요. 치매 판정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는 철저한 식단 관리 보다는 골고루 잘 먹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혈관성 치매가 오면 음식이 소화되는 과정에서 영양분이 체내에 흡수되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좋은 것을 먹어도 대부분 배설되고 말거든요. 환자가 싫어해도 골고루 잘 먹도록 가족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병이 깊어진 상태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 치매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가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때 대부분은 그 자리를 일시적으로 피하라는 조언도 하지만, 환자가 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지 파악할 수 있다면 함께 생활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됩니다. 공격적이거나 화를 내는 건 배변 문제일 때도 많아요. 오래 배변을 못해 답답한 상태인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해 나타나는 증상인 거죠. 이럴 땐 배를 만져보면 알아요.”
김 교수는 가족이 환자 상황에 따라 세세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는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의가 절대적이라고 조언한다.
“신경과 의사들은 치매 환자들이 공격성을 보여도 겁내거나 물러서지 않아요. 늘 겪는 일이니까요. 대부분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어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전문의와 충분히 상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치매 치료의 근본적인 목표는 환자가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까요.”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는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곁에 두고 있다. 바로 일본이다.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모셨던 A씨는 지난 2012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서울 종로의 상가 건물 소유주였던 어머니에게 A씨의 삼촌 B씨가 접근해, 사후에 재산을 모두 자신이 맡는다는 위임장과 유언장을 받아낸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의 상속재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을 받아냈지만, B씨는 법원의 결정 직전에 건물을 급히 팔아버렸다.
결국 소송을 벌인 끝에 2015년 법원은 치매로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아들을 배제하고 동생에게 모든 재산의 관리 처분 권한을 준 위임장은 무효라며, 건물을 산 매수인에게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말소하라고 판결했다.
유언자 의사 정상 여부 판정
이런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민법에선 금치산 또는 한정치산 선고, 성년후견 심판 등의 제도로 법률 행위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모든 성인은 기본적으로 의사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과 같은 법률 행위와 관련해 치매 같은 질환으로 인해 의사능력의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적인 고민이 될 수 있다. 치매가 없거나 사소한 건망증이 나타나는 초기 치매의 경우 일상생활에는 장애가 없지만 병력이 법적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언을 남겨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일본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본의 메디컬리서치라는 회사는 최근 ‘의사능력감정(意思能力鑑定)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유언 작성 전 작성자의 뇌 대사 기능을 아밀로이드 PET-CT 등의 장비를 이용한 진단과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을 통해 의사능력의 유무를 감정하는 서비스다.
회사 측은 “일본은 치매환자 1300만 명 시대가 도래했고, 치매로 인한 상속 분쟁이 2014년 1만2577건에 달했다”며 “치매환자라도 유언장을 작성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의사능력감정을 통해 의사능력이 인정되면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에서는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야 의사능력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종합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법원에서 법적 분쟁으로 인해 소견서 작성을 요청받는 일이 왕왕 있다”며 “의학적으로 의사능력을 감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법적으로 첨예한 경우 소견서 작성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앤파트너스의 의사 출신 성용배 변호사는 “국내에서도 유언장 작성자가 자발적으로 인지능력과 관련한 진료나 감정을 받고, 진료기록, 소견서 등 그 근거를 남기는 것은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이는 의사능력의 존부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의 소지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환자 편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매환자를 위한 일본 최초의 원격진료 서비스도 얼마 전 시작됐다. 준텐도(順天堂)대학교병원은 지난 7월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위한 원격진료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는 IBM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운영되며, 환자나 보호자는 아이패드를 통해 병원과 치료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
병원 측은 “환자의 내원에 필요한 신체적,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가족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환자를 돕는 간병인을 통한 정보도 의사가 참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효율적인 진료 서비스 제공과 함께 지역 병원과의 연계도 쉬워진다”고 설명했다. 또 병원 측은 원격진료가 활성화돼 자료가 축적되면 치매환자의 빅데이터 분석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 서울대학교병원이 원격치매센터를 설립해 일찌감치 원격진료 서비스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이어 정부의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통해 수년간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돼왔다. 그러나 원격진료를 ‘정보통신기술 활용의료’로 명칭을 바꾸고 대상도 축소해,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노망이 아닙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송인욱(宋寅旭·47) 교수의 단언이다. 흔히 알려진 상식과는 다른 이야기다.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알츠하이머병 같은 치매 질환은 곧 노망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 치매가 소리 없이 다가오는 공포의 병으로 알려진 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이나 주변인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해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알츠하이머병이 대표적인 치매 질환으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흔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2016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는 65만 명에 달한다. 2024년이면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내놨다.
전체 치매 환자 중 4분의 3은 알츠하이머병 환자다. 이 병은 뇌에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으로, 1907년 독일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가 처음으로 발견해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기억력 등 사소한 증상으로 시작해 점차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말기에는 망상이나 환각, 공격성, 수면장애 등의 정신행동 증상이 나타난다.
학력이 높으면 발병 가능성 낮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 속에 쌓여 뇌 손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알려진 정도다. 뇌 세포의 골격 유지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 또한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의료계에서 주목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바로 유전이다. 전체 알츠하이머병 환자 중 40~50%는 유전적 요인이 원인이라는 것. 송인욱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발병 위험을 높이는 대표적 유전자로 아포지단백이라는 것이 있어요. 이것의 유전자 성질 중 E4형을 가진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이 나타날 확률이 3배 이상 커요. 유전자가 E4로만 조합된(E4-E4형) 사람은 알츠하이머병이 6~8배 이상 발생하고요. 또 발생하면 진행 속도도 훨씬 빠릅니다. 그만큼 유전적 요인은 이 병과 관계가 밀접합니다.”
알츠하이머병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학력과의 관련성이다. 조사 결과 고학력자일수록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이 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송 교수는 “학생 시절 공부를 좀 못했다고 해서, 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았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아직 확실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에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의학계에서도 처음에는 이 결과를 보고 뇌의 사고나 기억을 위한 노력의 정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다시 말하면 공부를 위해 머리를 많이 쓴 결과가 아닐까 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런 가설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아직 부족한 단계입니다. 최근 좀 더 다각적으로 분석한 결과 학력은 결국 성인이 된 이후의 소득수준과도 관련이 있고, 이는 쾌락을 위한 활동, 즉 여행이나 레저와 같은 다양한 경험이나 활동의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는 일부의 견해도 있어요. 소득이 낮으면 생계를 위한 일과 일상만 반복되기 쉬우니까요. 어르신들에게 사회활동을 멈추지 말고 가급적 평소에도 많은 사람과 만나시라고 조언하는 것도 이러한 부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송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우울증 유무 여부도 병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집에 있는 것보다는 가급적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주간보호센터나 노인대학 등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낮 동안의 다양한 활동은 수면과도 연관이 되거든요. 낮에 활동이 적으면 밤에 불면이 생기기 쉬운데 불면은 환각 등의 증세를 불러오기도 해요.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이죠. 결국 견디기 힘든 환자 가족들이 수면제 처방을 원하기도 하는데 큰 효과는 없습니다. 밤에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낮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아 맞다!”가 가능해야 정상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 초기 증상으로 꼽히는 것은 바로 건망증이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 중 하나가 건망증이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횟수가 잦아지면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증상 여부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송 교수의 설명이다.
“보통 치매로 발전하기 전 단계를 경도인지장애라고 하는데, 신경과에서는 경도인지장애의 전 단계가 주관적기억장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건망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주관적기억장애가 발생하는 것은 경도인지장애에 들어서기 직전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단순 건망증일 수도 있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일반적인 건망증과 알츠하이머병과의 차이가 있다면 바로 ‘아 맞다!’예요. 잊어버린 것에 대해 단서를 주었을 때 ‘아 맞다!’를 외치며 기억해낸다면 정상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주관적기억장애로 시작하는 알츠하이머병은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같은 인지기능 저하로 발전하거나 의처증과 같은 정신이상행동 증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점점 정상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진행 속도는 환자마다 다르다.
과거에는 초기에 알츠하이머병을 정확히 진단해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뇌 조직의 변화를 확인해야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방법은 환자가 사망한 후에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후 의학의 발전으로 알츠하이머병이 뇌 속의 아밀로이드 단백질과 관련이 높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통한 진단법이 보급됐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뇌 속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농도를 알기 위해서는 척수에 직접 주사를 꽂아 뇌척수액을 채취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등장한 것이 ‘아밀로이드 PET-CT’다.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농도 측정이 가능한 CT(컴퓨터 단층촬영) 장비를 통해 뇌의 상태를 손쉽게 알 수 있게 됐다. 송인욱 교수는 조기에 진단 가능해진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 장비가 임상에서 적용된 지는 3년 정도 됐습니다. PET-CT의 등장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여부를 조기 발견하고 그에 맞는 투약이 가능해졌어요. 60~70대 시니어 중 최근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껴지는 분은 진단을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진찰 과정도 간단합니다.”
PET-CT 검사와 함께 의료진이 환자를 대면해 신경심리검사를 진행하면 알츠하이머병은 비교적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병 생겨도 노망은 막을 수 있어
송 교수는 환자들에게 혹은 이 병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바로 “알츠하이머병은 노망이 아니다”라는 조언이다.
“의료진들이 노망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치매에서 노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심한 단계는 분명히 존재하죠.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의 알츠하이머병 혹은 치매 질환을 노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계가 달라요.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 질환은 노망의 전 단계라고 생각하는 게 맞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완치가 불가능한데도 조기 치료가 중요하고,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이 병이 발병하고 나서 노망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입니다. 발병했다고 무조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다른 질환처럼 좀 불편한 정도입니다. 이 시기를 최대한 오래 지속시키고 가능한 한 여생 동안 ‘노망’을 겪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목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알츠하이머병이 시작되었어도 얼마든지 평범한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약물 복용을 대단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약물의 꾸준한 복용만으로도 환자의 상태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송 교수의 설명이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가족의 보살핌에 따라 병의 진행 속도에서 많은 차이를 나타냅니다. 이 역시 약물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누군가가 제시간에 꼬박꼬박 약을 챙겨준 환자와 그렇지 못한 환자의 차이는 커요. 그래서 초기에 약을 쓸 수 있도록 의사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액티브 시니어들은 젊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감각적인 패션을 추구하고, 자신을 가꾸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재파탈’이라는 트렌드에서 보듯이 이러한 욕구는 나이와 상관없다. 의존형 소비패턴이 주체적 소비로 바뀌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는 것이다.
한국노년학회의 한 연구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를 3가지로 요약했는데 첫 번째는 외모와 육체적 나이, 즉 ‘신체적 젊음’, 두 번째는 ‘인지적 젊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표출되는 ‘외양의 젊음’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균형 잡힌 여가활동과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시니어 계층의 활동 욕구를 반영하고 이들이 가진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들 역시 활발하게 생겨나는 추세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복지관 예술 강사 파견 사업을 시작으로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생나눔교실’ 사업에 이르기까지 시니어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인생나눔교실’은 시니어 계층이 멘토로 참여해 다른 세대와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전의 수강형 교육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문화예술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전공자들과 소수만이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되어야 한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이 대중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대중과의 소통, 교류,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예술이야말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활동은 확실히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시니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 감상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는 물론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나누고 문화예술에 대한 시니어들의 욕구를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는 위로와 기쁨들은 시니어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여기서 현대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3대 기본 요소를 통해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구체적인 인생 경영 요소를 제시할까 한다. 첫째는 수익 창출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입하고 그 일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둘째는 혁신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혁신은 몸의 가죽을 벗기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삶의 혁신도 당연히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책임이다. 우리들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구성원의 역할을 통해 그 사회에서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존립 근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도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니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 자원봉사도 좋고 자신이 즐겁게 잘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정체성을 찾고 활력을 찾아야 한다.
혼자 사는 시니어 싱글들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행위를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어쩌다 싱글, 액티브 시니어의 삶에 가깝다. 힘들고 고달픈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활력과 생기를 가져다주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특히 내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한 노래와 연극 한 편 등을 감상할 때 우리는 많은 위안을 받는다. 시니어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먼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시니어들 삶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시니어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해주며,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어 결국 삶의 질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은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파킨슨병 개선 등 건강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이처럼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전반적인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 문화예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어쩌다 시니어가 되고 어쩌다 혼자가 된 시니어들의 인생이 문화예술을 통해 ‘브라보(B: Bankable, R: Relation, A: Active, V: Value, O: Occupation) 마이 라이프’가 되길 기대해본다.
>> 진종훈
문화마케팅(경영학 박사) 전문가이자 문화평론가, 교수로 활동하며 문화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경영학부 교수이자 한국경영문화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며 , , 등의 저서가 있다.
우리나라 시니어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시니어 10명중 1명은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고, 1000명 중 1명은 실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 이면에는 우울증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의료계의 생각은 다르다. 시니어의 우울증은 일반적인 인식보다 훨씬 심각한 병이다. 따로 이 부분만 연구하는 학회가 존재할 정도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의 이동우 홍보이사를 통해 시니어의 우울증에 대해 알아봤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일러스트 윤민철 작가
시니어의 우울증 무엇이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해 이동우 이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노인들은 젊었을 때보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여기저기 몸도 많이 아프며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쉽게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으레 좀 우울해지는 법’이라고 치부하면서 쉽게 간과해 버립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과 기력이 떨어져 스스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우울증에 대해 사전에 대비하고 적절하게 치료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니어의 우울증은 여러 가지 특징을 갖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 건강상태에 대한 걱정이다. 걱정이 많아지다 보면 불면, 초조, 신체적 불편감 등의 증상이 따라온다. 망상과 같은 정신병적 양상도 흔하다. 망상 증상은 특정 사안에 대한 죄책감이나 건강염려증, 피해망상, 질투망상(의처증) 등을 보이기도 한다.
신체적인 이상도 원인이 된다. 뇌졸중이 대표적이다. 뇌졸중을 앓은 환자 중 20~60%는 우울증을 겪는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뇌졸중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발성 뇌경색과 같은 미세혈관 순환장애로 인한 뇌조직의 변화도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환자를 억지로 집밖으로 끌어내면 ‘독’
시니어의 우울증에서 가장 무서운 부분은 심한 경우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치매가 원인이 되어 우울증이 오기도 한다. 일반적인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와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는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누군가의 질문에 끝까지 답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이고, 대답을 하려는 의욕이 없거나 모르겠다고 얼버무리는 경우는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로 구분할 수 있다. 또 우울증으로 인한 치매는 발생 시점이 분명하고, 가족들이 그 시점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우울증이라 할지라도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이동우 이사는 경고한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다른 사람도 많이 만나고, 사회적 활동이 많아야 하는데, 우울증에 걸리면 종일 우두커니 앉아 있기 일쑤거든요. 치매가 더 잘 생길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억지로 밖으로 끌어내선 안 됩니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이 남 앞에 드러나면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기 쉬우니까요. 힘내라는 응원만으로는 안 되요. 정상적인 치료를 통해 기력을 차리고 나서 운동이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항우울제 복용 미루면 안 돼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할까? 많이 알려진 것처럼 우울증의 치료는 항우울제 복용이 기본이다. 우울증 환자 중 3분의 2 정도는 항우울제만 적절히 복용해도 치료가 가능할 정도. 일부에선 무조건 약에만 의지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오해라고 이 이사는 설명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수영부터 가르치는 일은 없잖아요. 일단 구명환을 던져 놓고, 안정을 취하도록 한 다음에 물 밖으로 꺼내거나 수영을 가르치는 게 순서죠. 우울증 치료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항우울제를 통해 안정을 시킨 후, 다른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대뇌의 화학 불균형이 일어나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항우울제는 뇌의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는 이밖에도 정기경련요법, 경두개자기자극요법, 정신역동치료, 인지행동치료, 대인관계치료 등이 존재한다.
이렇듯 우울증은 ‘마음’이나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병이다. 만약 주변의 환자에게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의지를 갖고 참아 보라고 권유한다면, 환자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다. 심리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면 병원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우울증을 이기는 생활습관
1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한다.
2 술과 담배를 멀리한다. 니코틴은 뇌를 스트레스로부터 취약하게 만든다.
3 균형 있는 식사를 하되, 식단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4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5 자주 웃는다. 억지로 웃거나 웃는 흉내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6 울고 싶을 땐 실컷 운다. 울음은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다.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1 병원 방문일자를 챙겨 준다.
2 처방받은 약을 의사의 지시대로 복용하도록 한다.
3 검증되지 않은 치료방법에 대한 유혹을 떨쳐 낸다.
4 환자와 지속적인 연락을 유지한다.
5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한다.
6 환자와 함께 운동을 한다.
7 환자의 식사를 챙겨 준다.
8 환자가 예전에 좋아했던 일을 할 수 있게 격려한다.
9 환자의 우울증 때문에 당황하지 말고, 우울증에 대해 알아본다.
10 환자의 부정적인 생각을 비난하지 않는다.
11 환자가 자신의 일을 잘 해내지 못해도 다그치지 않는다.
12 우울증 증세가 호전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