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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솔길 하나 마음에 들여놓고 살자
- 산중의 봄은 더뎌 아직 볼 꽃이 없다. 골을 타고 내달리는 바람에 억새가 휜다. 그렇잖아도 겨울 칼바람에 이미 꺾인 억새의 허리, 다시 꺾인다. 길섶엔 간혹 올라온 애쑥. 저 어린 것, 작달막하나 딱 바라진 기세가 보통 당찬 게 아니다. 겨울을 견디어 불쑥 솟았으니 잎잎이 열락(悅樂)으로 설렐 게다. 상주시가 ‘호국의 길’이라 이름 붙인 둘레길이다. 때 묻지 않은 산과 강의 흥겨운 어우러짐을 볼 수 있다. 황희 정승의 위패를 모신 옥동서원(상주시 모동면 수봉리)을 기점으로 삼는다. 강을 따르는 평평한 오솔길이라 걷기에 좋다. 여덟 개의 여울목이 있어 구수천 팔탄(龜水川 八灘)이라 부른다. 크거나 깊은 물줄기는 아니다. 그러나 유장한 맛을 풍긴다. 가파른 벼랑을 끼고 굽이쳐서다. 강을 따라 오솔길이 솔솔 풀려나간다. 묵은 정으로 찾아든 길도 아니건만 구면처럼 정겹다. 눈이 시릴 듯 시원한 건, 보이느니 절반은 산이요 절반은 강, 수려한 풍치에 안구가 씻겨서일 게다. 이런 데가 드물다. 둘레길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은 요즘과 달라 예전엔 거의 무인지경 오지였다. 산과 강이 농밀하게 어울려 허전한 구석이 없다. 좋구나! 탄성이 절로 나온다. 햇살을 튕기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 잎을 아직 매달지 못한 채로도 생기를 머금어 완벽한 나무들. 저만이 간직한 비밀에 겨워 스멀거리는 숲. 바위벼랑 모서리를 거머쥔 소나무들의 곡예. 누가 각본을 썼을까, 풍경의 공연엔 흠결이 없다. 도시에는 없는 무대다. 연중무휴로 돌아가는 이 극장에는 입장료가 없다. 자연이 인간을 상대로 뭔가 챙기는 일이 있던가. 은근히 바라는 게 있던가. 사람만 과욕을 부린다. 그러고도 채워지지 않아 시달린다. 시달리는 사람은 그러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자연이 슬며시 보듬어주기에. 슬며시 보듬어주는 자연의 손길. 자연 속에서 흐뭇해 고마움을 느끼는 건, 그 무상의 자비가 우리를 방문할 때이기도 하다. 오솔길은 융단처럼 폭신하다, 아니 따뜻하다. 따뜻해서 혼자 걸어도 둘이라 느끼게 한다. 오솔길이 일어서서 동행하는 기분을 야기하니 말이다. 귀찮지 않은 둘. 순수한 어깨동무. 열광이나 환호가 아니라 말 없는 신뢰를 보내오는. 그래서겠지,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것처럼 삶이 얼얼할 때면 오솔길을 찾아가는 건. 찾아가는 오솔길보다 좋은 건 내 마음 안에 오솔길 하나 들여놓는 일일 테다. 오솔길이 있는 마음이라면 문지방이 없어 무정한 처신도 없을 것이다. 느려도 멀리 가는 오솔길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안달복달이 없어 세상의 과속에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후미진 산중에도 사람이 산다. 저만치에 인가가 보인다. 농가 두어 가구가 밤농사와 표고버섯 재배로 살아가는 것 같다. 고립무원까지는 아니라도 감당해야 할 외로움이 왜 없으랴. 불편은 또 얼마나 많으랴. 그러나 지옥 구덩이에 던져놔도 적응하는 게 사람이다. 살면서 얻어지는 야생의 기질로 거뜬히 자립하고 소박한 대로 자족하는 게 산사람이다. 꽃 중에도 야생화의 향기가 더 진하지 않던가. 강을 따라 더 내려간다. 구수천 풍경이 여기에서 절정에 오르는가. 산은 높아 이제 봉우리를 볼 수 없다. 산그늘이 강을 뒤덮었다. 비죽비죽 날 선 바위벼랑들은 감히 범접 못할 위용으로 장쾌하다. 좁혀진 산곡의 폭으로 물살도 거칠어졌다. 아름다워 빼어나다기보다 등등한 기세로 뛰어나다. 이곳에서 강을 버리고 산길을 따라 모롱이를 돌면 저승골이다. 저승골? 이름이 왜 이런가. 저승골에 기억할 만한 역사가 서려 있다. 고려를 유린한 몽고군이 상주산성을 공격했다가 이 골짜기에서 패퇴했던 것. 상주의 민간인 유격대에게. 이는 ‘고려사’에 기록된 또렷한 승전 역사로, 상주의 향토사가들은 저승골에서 몽고군들이 숱하게 죽었다고 논증하고 있다. 육군본부가 간행한 ‘고려 전쟁사’도 상주산성 항쟁을 ‘대승첩’으로 기록했다. 옛사람들의 의열과 기개에 숙연해진다. 전쟁이 터지면 산하도 전장으로 화한다. 시대의 울분이 극에 달하면 산하도 죽음을 목도한다. 멀리 갈 거 없다. 구수천변 아찔한 벼랑에서 몸을 던진 옛사람이 있다. ‘정조실록’이 기린 이름, 고려의 악공(樂工) 임천석(林千石). 그는 이성계의 쿠데타로 고려가 무너지자 거문고를 타 호곡(號哭)한 뒤 세상을 버렸다. 이를 애사(哀史)라고만 할 수 있겠나. 열사(烈士)의 죽음엔 비애가 없다. 절의(節義)란 실로 호방한 정조(情操)이지 않겠는가.
- 2020-03-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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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록의 숲에 화룡점정하는,노랑붓꽃!
- 겨울이 채 물러나기도 전 얼음장을 뚫고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이 서둘러 피더니 순식간에 온 숲에 연둣빛이 차고 넘칩니다. 산비탈과 계곡에 나뒹굴던 칙칙한 갈잎은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고, 생기발랄한 신록의 이파리들이 오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 낸다. ― 이양하의 ‘신록예찬’ 중 그렇습니다. 이즈음의 신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하다는 데 동감하지만, 그럼에도 연둣빛 숲에 화룡점정(畵龍點睛)하는 또 다른 주연이 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지랑이 피는 들녘을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처럼, 여기저기 피어나는 샛노란 노랑붓꽃이 그 주인공입니다. 꽃봉오리가 먹물을 머금은 붓을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붓꽃. 붓꽃과 식물은 세계적으로 1500여 종이, 우리나라에도 20여 종이 자생한다고 합니다. 꽃이 크고 모양과 색이 화려한 데다 잎도 풍성해 예술적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적합해서인지, 예로부터 많은 화가의 그림 소재가 되어왔습니다.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도 붓꽃을 즐겨 그린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가 입원해 있던 프랑스 남부의 한 정신병원 화단의 붓꽃을 보고 그렸다는 일련의 붓꽃 그림은, ‘아이리스(Iris·붓꽃) 연작’이란 이름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노란색 꽃병에 가득 담긴 붓꽃’이 그러하듯 그 색은 보라색 일색입니다. 대표작 ‘해바라기’처럼 노란색 붓꽃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쉽지만 이는 애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바람입니다. 노랑붓꽃은 한국의 특산식물이기에, 그릴 수 없었겠지요. 학명의 ‘koreana’는 바로 노랑붓꽃이 우리나라의 토종식물임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노랑붓꽃은 금붓꽃과 더불어, 4~5월 노란색 꽃을 피웁니다. 계곡 주변 숲속 그늘에서 자라고, 키는 20cm 정도로 대표 종인 붓꽃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뿌리에서 나오는 3~4장의 잎은 선형인데 폭 1.3cm, 길이 35cm까지 자랍니다. 꽃 색과 형태는 금붓꽃과 흡사합니다. 다만 꽃대 하나에 1개의 꽃이 피는 금붓꽃과 달리 항상 2개씩 꽃이 달리는, 즉 1경(莖·줄기) 2화(花)라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화창한 봄, 연초록 숲에 핀 수십 송이의 노랑붓꽃은 하늘에서 내려온 샛노란 요정들을 보는 듯한 황홀경을 선사합니다. Where is it?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에 다양한 붓꽃이 핀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보라색 꽃을 피우는 붓꽃을 필두로 각시붓꽃과 난쟁이붓꽃, 솔붓꽃, 대청붓꽃, 부채붓꽃, 노랑무늬붓꽃, 등심붓꽃 등 20여 종이 조금씩 다른 저만의 독특한 꽃을 피운다. 제주도 이외 전국에 분포하는, 개체 수가 풍부한 금붓꽃과 달리 노랑붓꽃은 전북 변산반도 일대와 전남 내장산 일대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자생한다. 한반도 고유종인데, 이는 국내 자생지가 파괴되면 종 자체가 절멸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각별한 관심과 보호가 요구된다.
- 2020-03-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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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의 산 카즈베기와 하늘 아래 첫 마을 우슈굴리
- “방향을 꺾으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큰 틈새가 열리며 밝은 태양 아래 반짝이는 카즈베기의 만년설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과 만년설은 어느새 우리 앞으로 와 조용히 우뚝 서 있었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생물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산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처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이 자신의 소설에서 카즈베기 산과의 첫 만남을 표현한 문장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를 품은 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압도적인 풍광의 카즈베기 산에 깃들어 있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에 3000년을 이곳의 바위에 묶여 고통 속에 지내야 했던 프로메테우스. 그의 어깨를 뒤에서 가만히 안아준 이는 코러스였다. 코러스처럼 진실의 따스한 울림통이 되고 싶은 염원을 안고 산 중간 게르게티 언덕의 ‘성 삼위일체(사메바) 성당’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해발 1700m에는 작은 마을 ‘스테판츠민다’(Ste pantsminda)가 있다. 카즈베기 산을 비롯해 주변 트레킹 코스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곳이다. 여기서 출발해 ‘게르게티 사메바 성당’까지 걸어가면 2시간 정도 걸린다. 반대편 능선에는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도로가 잘 닦여 있다. 하지만 편한 길보다는 아름다운 카즈베기의 숨결을 하나하나 느껴보고 싶었다. 가파른 능선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맞춰 마치 윈드서핑을 타듯 하양, 노랑, 분홍색 야생화들이 춤을 추었다. 성당까지 펼쳐진 녹색 초원의 싱그러움은 꿈에 그리던 풍경이었다. 평범한 사람도 사진작가로 만들어주는 자연이었다. 어디를 찍어도 인생 최고 장면을 건질 수 있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사메바 성당은 해발 2170m 높이에서 카즈베기 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샤니(Shani) 산과 마주보며 소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자태가 너무 경건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다. 이곳의 풍경이 왜 조지아를 소개하는 사진에 많이 등장하는지 수긍이 갔다. 수많은 여행객이 그 사진을 보고 조지아를 찾는다고 한다.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 마음 한편으로 ‘왜 이렇게 높고 외딴곳에 성당을 지었을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숙소 테라스에서 올려다본 암청색 하늘과 흰머리를 이고 있는 카즈베기 산의 검은 실루엣, 그리고 성당의 숭고한 불빛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풍경에 답이 있었다. 성당의 불빛은 등대였다. 누구에게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진실의 희망이었다. 만년설이 덮여 있는 카즈베기 산 높이는 5047m. 조지아에서는 세 번째, 코카서스산맥에서는 일곱 번째로 높은 봉우리다. 조지아 사람들은 ‘얼음산’이라는 뜻을 지닌 ‘카즈베기’를 ‘하얀 신부’라고 부른다. 이 지역은 10월이면 눈이 오기 시작하고 1년의 절반 정도가 겨울이다. 마을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일출을 맞이할 때도 여름이었지만 재킷을 걸쳐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카즈베기 산의 일출은 벌겋게 물든 바위와 구름으로 시작했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원했기에 아늑한 신의 세상을 버리고 참혹한 형극의 땅을 선택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를 보는 것 같았다. 붉은 빛 용기는 제우스의 파란 하늘에 과감했다. 카즈베기 산은 대자연의 풍광 속에 신화와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조지아를 좋아하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야생화 천국 므츠헤타 혹은 트빌리시에서 출발해 스테판츠민다로 갈 때 이용하는 도로는 ‘조지아 군사도로’인데 ‘즈바리 패스’(Jvari Pass)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가면 러시아 블라디캅카스까지 이어진다. 주변국과의 물자 교류가 이 도로를 이용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트럭이 많이 다닌다. 때 묻지 않은 초원과 야생화 천국에 감동하면서 북캅카스 산맥으로 들어가는 이 도로에서 조지아 최고의 자연 경관을 만났다. 조지아의 알프스 ‘스바네티’ 조지아에도 알프스의 스위스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스바네티’(Svaneti)다. 이곳의 중심은 코카서스 산 중에서 가장 등반하기 힘든 ‘우슈바’(Ushba·4170m) 산이다. 스바네티의 베이스캠프인 ‘메스티아’(Mestia)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우슈굴리’(Ushguli) 마을로 가려면 반드시 사륜구동차가 필요하다. 메스티아에서 우슈굴리까지 데려다주는 영업용 차량을 이용해도 된다. 세계 장수마을로 소개된 메스티아는 해발 1500m에 위치한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동화 같은 산속 마을이다. 특히 탑 형태의 ‘코시키’(Koshiki)라는 가옥이 장관을 연출한다. ‘코시키’는 9~13세기에 만들어진 방어용 탑으로 1층엔 가축들이 살고, 2층은 주거용, 3층은 폭설과 침략자를 감시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밖에서는 입구가 안 보이며, 사다리가 있어야 올라갈 수 있다. 메스티아에서 대부분 비포장인 길을 40여 km 더 깊숙이 들어가면 신이 허락해야만 올라갈 수 있는, 코카서스 산맥 서쪽 끝에 위치한 우슈굴리에 갈 수 있다. 해발 2100m에 옹기종기 있는 모여 있는 4개의 마을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다. 마을에서 보이는 ‘슈카라’(Shkhara) 산의 높이는 5068m. 조지아에서는 가장 높고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높다. 설산 계곡을 바라보며 초록빛 초원을 걷는 이곳에서의 트레킹은 조지아 여행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마을 북쪽 끝에서 찰리디 빙하까지 왕복 20km를 걷는 코스와 슈카라 빙하 기슭까지 8km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 설산과 고풍스러운 가옥들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풍광에 넋을 빼앗긴 채 마을 뒷동산 풀밭에 한참 앉아 있었다. 길옆 한편에는 호텔을 짓는 공사장이 보였다. 앞으로 여행객들이 더 많아져도, 지금의 평화와 아름다움이 변함없기를 기원했다. 스테판츠민다 마을 트레킹 코스 조지아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청정 자연에 흠뻑 빠져 트레킹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즈베기국립공원은 야생화 천국. 낙엽수와 침엽수 숲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주타(Juta) 밸리 코스 카즈베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샤니 산 줄기의 초원을 따라 연녹색 길을 걸을 수 있다. 스테판츠민다 광장에서 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고 오는 차량 영업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호수까지 두세 시간 걷다가 돌아오는 길이 가장 인기다. 트루소(Truso) 밸리 코스 카즈베기 산을 오른편에 두고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다. 승용차는 ‘트루소 골짜기’(Truso Gorge)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사륜구동차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길이 험해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즈바리 패스 따라 가볼 만한 곳 아나누리(Ananuri) 요새(교회) 에메랄드빛 호숫가에 위치해 산, 호수와 조화를 이루는 방어 성채. 구다우리(Gudauri) 스키장 해발 2100m에 위치해 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코카서스 산맥의 멋진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구다우리 전망대(우정 전망대) 조지아와 러시아 조약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모자이크 타일의 기념비. 절반은 조지아,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의 역사와 상징을 파노라마로 그려놓았다. 코비(Kobi) 리프트 트루소(Truso) 트레킹의 시작점이 되는 코비 마을 입구에 곤돌라 타는 곳이 있다. 카즈베기 산의 웅장함을 배경으로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누릴 수 있다.
- 2020-03-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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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북한산
- 북한산은 서울과 경기도에 접해 있으면서 자연경관이 뛰어나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등 5개 구와 경기도 고양시, 양주시, 의정부시 등 3개 시, 모두 8개 시, 구가 걸쳐있다. 지난 20일 국민대학교 앞에서 출발하여 북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며 생태계를 살펴봤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는 절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신도들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북한산 숲 체험장이 있는 곳에서 전망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라가는 길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도 여러 곳 있다. 북한산 기온이 시내와 비교하여 다소 낮아서 야생화가 개화하는 시기도 시내보다 5일에서 10일 정도 늦다. 북한산에서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여러 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더욱 맑게 잘 관리되길 바랄 뿐이다. 가장 먼저 북한산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볼 수 있었다. 북한산 개울의 물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개구리와 도롱뇽은 맑고 깨끗한 물에서 알을 낳는다. 북한산 전망대를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5개 정도의 개울 중에 3개의 개울에서 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을 낳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구리 알에서 50 ~ 75일 정도 지나서 개구리가 되고 도롱뇽 알은 40 ~ 50일 정도 지나서 도롱뇽이 된다. 올라가는 곳곳에 야생화가 자라고 있었다. 시내보다 북한산 기온이 다소 낮아서 새싹이 나고 꽃이 피는 시기가 늦지만, 곳곳에 신기한 모습으로 자라는 야생화를 볼 수 있었다. 산수유, 생강나무, 산벚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바위취, 방가지똥, 뽀리뱅이, 방가지똥, 긴병풀꽃, 지칭개 등이 꽃을 피우려고 꽃봉오리를 맺고 있다. 다양한 새들도 둥지에서 나와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시내에서는 좀처럼 새들을 볼 수 없지만, 북한산에서는 새들을 볼 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지은 둥지와 까치집 들을 여러 곳에서 확인했다. 동고비, 직박구리, 상모솔새 등을 보았다. 새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성북구청 녹지과에서 북한산 주변 소나무에 재선충약을 투입하는 모습도 봤다. 재선충은 소나무 등의 침엽수에 기생하여 나무를 갉아먹는 선충이다. 큰 소나무의 밑동에 구멍을 내고 약을 투입했다. 봄에 한번 나무에 약을 투입하면 1년 동안 약효가 있어서 내년 봄까지 예방이 된다. 북한산에서 자라는 꽃은 평지보다는 다소 늦게 피지만 더 아름답다. 4월 초순에서 4월 중순이 되면 북한산에서는 개나리, 목련, 산수유, 생강나무, 진달래, 산철쭉과 애기똥풀, 민들레, 복수초, 긴병풀꽃 등의 꽃을 볼 수 있다. 북한산이 자연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길이 보전되길 기원한다.
- 2020-03-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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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의 가치를 높여주는 인테리어
- 매일 아침 눈뜨고 잠드는 공간. 집이다.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시니어들에게 딱 맞는 인테리어 포인트를 찾아봤다. 사진 각 사 제공 최근 인테리어 업체들과 전문가 집단이 2020년을 대표할 인테리어 트렌드를 내놓았다. 각자 추구하는 방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된 의견이 있다. 보이지 않았던 공간의 재발견과 돌, 식물 등 자연에서 해답을 찾은 인테리어. 지금까지는 미니멀리즘, 즉 ‘비움’에 비중을 뒀다면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과감하고 실험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맥시멀리즘’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연에서 찾은 트렌드 컬러 글로벌 트렌드 조사기관인 ‘WGSN’은 올해 트렌드 컬러로 ‘네오민트’를 선정했다. WGSN의 발표는 색상 선정을 넘어 사회 기류도 함께 반영했다. 최근에는 이 컬러에 해당하는 다양한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자연에서 찾은 색상인 ‘그린’(녹색)과 연결 지어 식물이나 자연에서 유래한 소품, 친환경 인테리어에 안전성까지 담은 제품들이다. LG하우시스는 시트 바닥재인 ‘은행목’과 ‘뉴청맥’에 최근 트렌드를 반영했다. 실내 낙상사고를 줄여주는 안티슬립 기능을 넣어 안정성도 챙겼다. 지난해 5월 출시된 ‘엑스컴포트’는 바닥재 속에 고탄성 2중 쿠션층을 적용했다. 푹신한 상부층과 탄성력이 높은 단단한 하부층이 보행 시 충격을 줄여주고 발이 푹 꺼지지 않도록 해준다. 동화자연마루의 ‘나투스진’은 찍힘과 긁힘, 수분 침투, 열에 의한 변형 때문에 발생한 소비자 불만을 해소한 바닥재다.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첨가되지 않은 신소재 나프(NAF)를 적용했다. 또한 국내산 소나무 100%를 원재료로 생산한 친환경 소재 E0 등급의 ‘동화에코보드’를 사용해 피부자극을 최소화했다. 안정적인 보행과 건강을 생각한 이들 제품은 시니어 세대에게 유용한 인테리어 제품이다. 실내나 집 안에 정원을 꾸미는 이른바 ‘홈가드닝’도 눈길을 끈다. 남는 공간을 작은 화분으로 장식하는 게 인테리어 포인트. 롯데주류는 발코니에 정원을 꾸미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서울숲 재즈페스티벌 2019’에서 반려나무 입양 캠페인을 진행한 바 있다. 또 롯데마트도 ‘초보자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는 수경재배 식물’을 판매 중이다. 조경 전문업체인 조경나라 관계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소나무, 율마, 에메랄드그린 등과 함께 야생화를 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맥시멀리즘 인테리어 대세 크고 작은 인테리어 소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집 안을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미는 ‘홈퍼니싱족’도 늘었다. 인테리어 전문 브랜드 까사미아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을 위해 프리미엄 내추럴 스타일링을 제안했다. 내추럴 스타일은 자연 소재의 질감과 색감을 최대한 살려 부드러우면서도 온화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까사미아의 ‘라메종’ 컬렉션은 자연에서 온 소재와 절제된 장식, 간결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원목 계열의 고급 하드 우드, 천연 소가죽, 포근한 컬러의 패브릭 등을 소재로 사용하고, 핸드메이드 공법으로 품격을 더했다. 또 ‘토페인’ 소파는 프리미엄 가구의 인기에 힘입어 3~4인 소파가 ‘ㄱ’자, ‘ㄷ’자 등으로 재탄생했다. 천연 아닐린 가죽을 100% 수작업으로 가공해 부드러운 감촉과 자연스러운 색감을 살린 프리미엄 소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 중 하나인 벽난로는 위험성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전성과 디자인을 겸비한 벽난로가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왐 벽난로는 투박한 형태에서 벗어나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화해 집 안 인테리어를 위한 멋진 도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자동연소 조절장치를 내장해 안전성을 높이고 장작 소모는 40% 줄였다. 집 안 분위기를 바꿔주는 조명도 운치를 더해주고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연출한다. 최근에는 물방울무늬의 샹들리에보다 펜던트 형이나 직선 위주의 깔끔한 스타일의 조명기구가 인기 있다. 미국의 조명 디자인 브랜드 애퍼래터스 스튜디오의 제품은 차별성 있는 디자인에 디테일하고 고급스러운 마감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오래 묵혀둔 반닫이도 올해 인테리어 시장에서 유행할 대표 앤티크 가구라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과 그 시간만큼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박경숙 동연갤러리 관장은 “가치가 남다른 만큼 제대로 된 이해가 있는 사람들만 앤티크 가구를 소화할 수 있다”면서 “적게는 100만 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제품도 있으니 차근차근 공부한 뒤 접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2020-03-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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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어김없이···
- 3월 첫 주말인 7~8일 날씨가 너무 맑아 ‘코로나’의 위협에도 바깥을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봄을 취재하기 위해 안양천의 고척교와 오금교, 그리고 신정교 주변을 찾았다. 서울 기온은 7일 13도, 8일엔 17도까지 올라갔다. 안양천 주변에는 봄을 맞기 위해 시민이 많이 나왔다. 나이 든 여인들은 골짜기에서 냉이를 캐고 있었고 마스크를 착용한채 운동하는 젊은이들의 조금은 아쉬운 모습도 보였다. 마스크를 착용하곤 있어도 시민들은 봄과 함께 생기가 돌았다. 자전거를 타고 기구로 운동도 하고 아이들은 농구 경기를 했다. 육교 밑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비둘기들이 밭에서 부지런히 먹이를 찾고 있었고 백조들이 날아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봄을 알리는 꽃들에서 생기가 돌았다. 꽃망울을 막 터뜨린 노란 산수유 꽃의 모습이 보였고 민들레꽃도 안양천 변 골짜기 곳곳에서 활짝 폈다. 목련도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크게 자랐고 둔치에는 보리가 싹을 틔웠다. 야생화 봄까치꽃은 가는 곳마다 개화했고 영산홍과 철쭉, 벚나무, 개나리 등이 꽃을 피울 준비하고 있었다. 선화후엽(先花後葉)의 꽃이 대부분이어서 더 보기가 좋다. 지금부터 4월 중순까지는 곱게 핀 꽃들로 치장한 아름다운 안양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20-03-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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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에 취하고, 사랑에 빠지고, 폴리포니에 감동받는 조지아 여행
- “웰컴 투 시그나기(Sighnaghi)!”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안내를 받으며 간 곳은 객실이 아닌 테라스였다. 파란 하늘 아래 짙은 녹음 속 밝은 산호 빛 마을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엽서 같았다.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의자에 앉으니 주인아저씨가 수박과 와인을 가지고 왔다. 이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면서 와인을 한 잔 따른 후 건배 제의를 했다. 트빌리시 동쪽의 카헤티(Kakheti) 주에 있는 ‘시그나기’.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본 첫 광경이다. 조지안의 크베브리 와인 사랑 조지아인들의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와인을 마시느라 신이 부르는 자리에도 늦었다는 우화를 말하면서 신도 포기한 와인 사랑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래서 러시아는 조지아를 지배할 때 조지아 정교회에 대한 탄압뿐 아니라 포도나무를 자르는 정책을 펼쳤다. 이렇게 조지아인들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인 와인은 ‘성스러운 액체’로 불릴 정도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에서도 와인을 만들었고, 아직도 몇몇 곳에서는 와인을 판매한다. 그레미(Gremi) 수도원에서 담근 레드 와인을 마셔보니 선입견 때문인지 일반 와인보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향이 마음의 무늬를 더 나긋나긋하게 해주었다. 조지아 와인은 56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포도 품종에서 생산된다. 3km마다 기후가 달라서 같은 품종이라도 재배 지역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와인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면 ‘치난달리’(Tsinandali), ‘사페라비’(Saperavi), ‘킨즈마라울리’(Kindzmarauli) 라벨이 붙은 와인을 선택했다. 가격에 비해 맛은 일품이었다. 조지아 와인의 주 생산지는 카헤티(Kakheti) 주. 조지아 와인을 상징하는 지역이다. 코카서스 산맥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분지에 알라자니(Alazani) 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보니 포도나무를 비롯해 과일나무들이 잘 자란다. 카헤티 주의 중심 도시 시그나기와 텔라비(Telavi)도 대표적인 와인 산지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지점 두물머리처럼 조지아에도 쿠라 강과 아라그비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도시가 있다. 조지아 초기 왕조인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으며, 조지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므츠헤타’(Mtskheta)다. 지금은 수도가 트빌리시이지만 아직도 조지아 정교회의 총본산인 스베티치호벨리(Svetitskhoveli) 성당이 이곳에 있어 조지아 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장소다. 이 마을은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즈바리(Jvari) 수도원 앞 언덕에 앉아 바라본 므츠헤타는 그리움이 안개처럼 차분하게 깔려 있는 도시였다. “조지아 와인은 이렇게 마시는 거야” 오래된 역사만큼 와인을 마시는 조지아만의 전통문화가 있다. 술자리에는 반드시 덕담과 건배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타마다’(Tamada)라고 부른다. 타마다가 ‘가우마조스’(cheers)를 외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긴 덕담을 한다. 건배 제의 내용은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신께 감사하고, 다음 잔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며, 그다음 잔에서는 성 조지를 위해, 그다음 잔에서는 가족의 안녕을 위해… 이런 식으로 계속한다. 이렇게 이어지다 보면 ‘옛날에 헤어졌던 애인을 위해’ 건배 제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술자리에서 나온 건배 내용에 대해 질투를 하면 안 된다. 보통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의 와인을 마시며 술자리와 건배가 이어진다. 또 한 가지,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술을 그만 마시고 싶으면 타마다에게 말해 벌주를 받으면 된다. 이때 사용하는 잔이 ‘깐지’(Kantsi)다. 염소나 소의 뿔로 만든 전통 와인 잔으로 조지아 어느 곳에 가도 기념품 판매점에서 볼 수 있다. 이 잔은 뿔로 만든 잔이라 세워지지 않는다. 벌주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원샷을 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도시 ‘시그나기’ 달콤한 포도 향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작은 도시 시그나기에 신의 물방울만 있는 건 아니다. 18세기에 지은 요새, 돌 성벽, 주황빛 마을은 해발 790m 높이의 자연과 함께 시그나기를 동화 같은 마을로 만들었다. 아무 목적 없이 마을 구석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다. 이 마을에서는 누구라도 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고풍스러운 시청 건물에서는 365일, 24시간 내내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가능하다고 한다. 흔히들 시그나기를 ‘사랑의 도시’라고 말한다. 마음 예쁜 사람들이 사는 그림 같은 마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그나기에는 사랑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이곳 출신인 조지아의 국민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사랑이다. 그는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가난했던 그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림과 집을 팔아 장미를 사서 그녀가 사는 집 앞을 꽃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에게는 그녀를 그린 그림만 남게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가 죽은 후 세상에 알려졌고, 1980년대 러시아 가수가 ‘Million Alykh Roz’라는 제목의 노래로 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나라에서 가수 심수봉이 ‘백만 송이 장미’로 번안해 부른 곡이다. 시그나기에서 가까운 곳에 카헤티 주의 주도인 텔라비가 있다. 텔라비는 작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조지아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튜세티 국립공원’(Tusheti National Park)으로 가는 전초 기지 역할도 한다. 감동의 폴리포니 공연 도로 양옆으로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싱그러운 포도밭을 보며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조지아의 아름다운 연녹색 매력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 길가에 서 있는 와이너리 안내 간판은 여행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카헤티 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오래된 마을 크바렐리(Kvareli)의 ‘카레바’(Khareba) 와이너리로 갔다. 단순한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조지아를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규모와 콘텐츠를 잘 갖추고 있었다. 휴식공간으로 보이는 건물 앞 정원은 크베브리 황토 항아리를 비롯해 각종 소품과 조형물이 꾸며져 있었다. 건물 안은 와인 저장고, 시음 및 판매시설, 와인 관련 도구 전시실, 와인 제조 설명 프로그램 진행장, 기념품 판매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와인 체험을 하고 나오니 로비에서 5명의 남성이 환상적인 다성 창법의 폴리포니 공연을 했다.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조지아의 노래는 현대 음악보다 훨씬 관념적이다”라고 극찬한 이유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매혹적인 보컬의 다성 창법이 들려주는 하모니가 장엄하게 가슴을 울렸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기보다는 영혼의 울림 같았다. 환상적인 조지아 와인만큼이나 황홀한 폴리포니의 벅찬 감동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시그나기에서 가볼 만한 곳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 조지아 왕비의 병을 치료하면서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가 생을 마감한 수도원이다. 수도원 밑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니노의 샘’이 나온다. 지금도 치유 효험을 믿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 시그나기 성곽 길(Sighnaghi Wall) 마을 언덕 위에 있는 아치형 돌문을 지나면 성곽 위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아침과 저녁 시간에 성곽 길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환상적이다. 로라시빌 도로(Lolashvili St.) 시그나기 마을 정상부터 산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카헤티 지방의 광활한 평원을 조망할 수 있다. 알아두면 좋은 Tip 텔라비에서 트빌리시 혹은 므츠헤타로 갈 경우, 혹은 반대의 경우 ‘38번’ 도로인 ‘곰보리 패스’(Gombori Pass)를 이용하길 권한다. 해발 2000m의 산을 넘으며 한없이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 야생화에 푹 빠질 수 있다.
- 2020-03-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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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삼월 바람이 피운, 들바람꽃
-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라는 유명한 시구(詩句)가 있듯, 엄동설한(嚴冬雪寒) 겨울을 물리고 봄을 불러온 건 8할이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봄바람에 기대어 새록새록 피어나는 봄꽃의 8할은 바로 바람꽃입니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태백바람꽃, 만주바람꽃, 남바람꽃, 풍도바람꽃… 등등. 다양한 이름의 바람꽃들이 이르면 2월부터 늦게는 5월 말까지 봄바람 따라 바람처럼 피었다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얼음장처럼 꽁꽁 언 땅이 채 풀리기 전 갈잎을 비집고 올라오는 ‘바람꽃’들은 대개 콩나물 줄기처럼 가늘고 연약한 꽃대 끝에 작은 꽃을 한 송이씩 피웁니다. 대부분 키도 작고 흰색의 꽃송이가 단정한 게 이른바 ‘범생이’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어디에나 돌연변이가 있듯, 문제아 또는 이단아처럼 삐뚤빼뚤 건들거리는 바람꽃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특산식물인 변산바람꽃 등 친숙한 바람꽃에 비해 조금은 생소한 이름, 들바람꽃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머뭇거리는 겨울을 단호하게 내치는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봄날, 북한강 변의 야트막한 숲으로 한 발 두 발 내딛자 한 무리의 바람꽃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고개를 처박은 놈, 하늘과 맞짱이라도 뜨겠다는 듯 곧추세운 놈, 외로 꼰 놈, 꽃잎을 활짝 펼친 놈, 아예 벌러덩 뒤로 젖힌 놈…. 제각각 난장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야망(野望)이니 야욕(野慾)이니 ‘들’ 야(野) 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이 주는 느낌이 단번에 전해져 옵니다. 황량한 들판을 어슬렁거리는 사내들의 거친 야성이라고 할까. 키 10cm 안팎의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 등 여타 바람꽃에 비해 15cm 정도로 다소 크다 보니, 줄기 끝에 달린 꽃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봄바람에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는 꼴입니다. 얼레지가 봄 숲의 ‘바람 난 여인’이라면, 들바람꽃은 바람 부는 봄 하릴없이 빈둥대다 짝다리 짚고 건들대는 ‘숲의 건달’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싶습니다. 하지만 ‘바람꽃류’가 갖는 순백의 미는 들바람꽃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흰색의 꽃잎은 아침 햇살이 그대로 투과할 만큼 투명하고 여립니다. 게다가 희게만 보이는 꽃잎의 연분홍 뒤태가 아는 이에게만 보이는데, 그야말로 “이렇게 예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바람꽃류 가운데 가장 예쁘다는 남바람꽃의 미모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만합니다. 이처럼 들바람꽃의 핑크빛 뒷모습은 황량한 들판을 홀로 누비는 ‘스라소니’와 같은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보냅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우리나라 강원도 이북에 분포한다”고 모호하게 설명하는데 실제로는 강원도는 물론,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위도의 경기도 산에도 자생한다. 화야산과 명지산 근처가 서울에서 가깝고 많이 알려진 자생지. 강원도 대암산은 몇 해 전 인제군의 생물자원조사 결과 국내 최대의 군락지로 밝혀졌다. 물론 대암산뿐 아니라 태백산과 가리왕산, 청태산, 소백산, 치악산 등 강원도의 높은 산 정상부에는 대개 들바람꽃이 자라는데, 다만 꽃 피는 시기가 4월에서 5월로 경기도 등지에 비해 한 달 가까이 늦다.
- 2020-03-0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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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보리밭엔 종달새 울고, 산기슭엔 현호색 피네!
-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 김남주 시인의 ‘나물 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中 눈 덮인 산기슭에 봄바람이 불어와 겨우내 꽁꽁 언 땅이 스멀스멀 풀릴 즈음 순식간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다음 아차 하는 순간 사라지는 꽃이 있습니다. 이른 곳에선 1, 2월에도 이미 피어 춘삼월이 가기 전 꽃도 줄기도 이파리도 눈 녹듯 사라져 보통 사람들은 꽃이 피었다 졌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야생화, 바로 현호색입니다. 현호색(玄胡索)이란 국명은 중국 한자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검은색 덩이줄기[塊莖]가 있고, 북쪽의 오랑캐 땅에서 자라며, 새싹이 올이 꼬인 매듭처럼 생긴 식물적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높이 20cm 정도로 자라 10개 안팎의 꽃을 다닥다닥 달고 선 현호색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리고 다소 현학적인 한자어 이름과는 성격이 다른 라틴어 속명의 뜻을 생각하면, 일순 갑갑증이 풀리며 “맞다” 하며 무릎을 치게 됩니다. 입술처럼 위아래로 벌어진 두 장의 꽃잎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먹이를 물고 둥지로 날아온 어미 새에게 먹이를 먼저 넣어 달라며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 새들을 선뜻 연상하게 됩니다. 속명 코리달리스(Corydalis)는 ‘관모(冠毛)가 달린 종달새’를 뜻하는 라틴어 ‘cŏrýdălus’(코리달루스)에서 나왔습니다. 날렵하고 긴 거(距, 꿀주머니)가 달린 꽃의 형태가 종달새를 닮았다는 의미이겠지요. “동구 밖 들녘엔 파란 보리 싹이 물결치고, 종달새는 하늘 높이 솟구치며 “지리 지리리…” 울고, 총각들은 탁 트인 논에서 “이랴, 워어…” 하며 쟁기질하고, 처녀들은 아지랑이 피는 들녘에서 나물을 캐던,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고향의 봄’의 한 주인공인 노고지리가 바로 종다리, 즉 종달새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달새가 하늘 높이 날며 지지배배 노래하는 봄, 양지바른 언덕이나 산기슭에는 종달새를 똑 닮은 현호색이 가득 피어나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봄놀이 가자고 채근합니다. 현호색은 꽃과 잎, 열매의 형태나 색 등의 변이가 워낙 많아 세계적으로는 300종, 국내에서도 20종 이상이 별도의 종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현호색·갈퀴현호색·쇠뿔현호색·조선현호색·흰현호색·수염현호색·각시현호색·날개현호색·완도현호색·난쟁이현호색·남도현호색·들현호색·섬현호색·왜현호색·점현호색·좀현호색·줄현호색·진펄현호색·탐라현호색·털현호색 등등. 현호색은 구슬 모양의 덩이줄기로 인해 ‘땅구슬’이라고도 불리는데, 지름 1cm 정도의 이 덩이줄기에 코리달린(corydaline), 푸마린(fumarine) 등의 물질이 함유돼 있어 약재로 쓰입니다. 때문에 현호색과 그 꽃을 모른다 해도 많은 이가 이미 오래전부터 약으로 먹어왔으니 참으로 가까운 인연의 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우리나라 최초의 등록상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소화제 ‘활명수’가 바로 한약재와 현호색을 섞어서 만든 의약품입니다. 1897년에 탄생해 어느덧 120년을 넘겼으니 많은 이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복용했겠지요.
- 2020-02-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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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보라 속에서 빛나는 샛노란 열매, 꼬리겨우살이!
- 희망찬 새해 새날이 밝았건만, 들뜨는 마음과 달리 몸은 온기를 찾아 문에서 멀어집니다. 창밖은 여전히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순간이든 눈보라가 휘몰아칠 수 있는 겨울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절에 ‘꽃 타령’이라니, 제정신이냐고 힐난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런 시기에야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는 야생의 식물이 있습니다. 겨울 눈보라 속에서 야생화 동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발길을 사로잡는 신비의 나무가 있습니다. 영하의 날씨에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의 선물이 물론 꽃은 아닙니다. 꽃 못지않게, 아니 꽃보다 더 예쁜, ‘꽃의 결실’ 열매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을 가장 아름답게 불타는 단풍으로 물들여 아낌없이 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의 황금빛 열매가 찬란하게 빛나는 독야청청한 모습을 세상 밖으로 드러냅니다. 바로 꼬리겨우살이의 샛노란 열매입니다. 설악산과 소백산 등 심산유곡에서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 꼬리겨우살이가 강원도 영월의 산 정상부에 풍성하게 달렸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가지 끝에 치렁치렁 열매를 달고 있는 모습이 동물의 꼬리 같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꼬리겨우살이. 주렁주렁 늘어진 열매가 파란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멋진 광경을 기대하며 산 초입에 당도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비포장 임도에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쌓였습니다. 이왕 나선 길,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걸어서 올라가기로 합니다. 한 시간여쯤 오르니 이번엔 눈이 내립니다. 영하의 날씨에 사위는 적막한데, 바로 그런 겨울의 거친 날씨가 참으로 근사한 ‘설중화’(雪中花)를 선사합니다. 눈발이 거칠게 휘날리고 꼬리겨우살이의 열매가 파스텔 톤의 노란색 수를 놓는, 멋진 수묵담채화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겨울에도 잎이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 있다고 해서 ‘겨울+살이>겨우살이’라 불린다지요? 다른 나무에 기생해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국내에는 겨우살이 외에도 붉은겨우살이, 동백겨우살이, 참나무겨우살이, 꼬리겨우살이 등 다섯 형제가 자생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과 달리 꼬리겨우살이는 낙엽 활엽 관목으로, 잎이 있을 때는 자신도 광합성을 하는 반기생식물이지만 잎이 지는 겨울에는 전기생식물로 변합니다. 주로 밤나무나 참나무류의 가지에 기생하고요. 마주 나는 잎은 주걱 모양의 긴 타원형으로 길이 2~3.5cm, 너비 1~1.5cm. 꽃은 6월에 길이 3~4cm의 이삭 모양 꽃차례에 자잘한 녹색으로 드문드문 핍니다. 9월 옅은 노란색으로 맺는 열매는 겨우내 황금색으로 익어갑니다. Where is it?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은 설악산과 지리산, 제주도 등지에 분포한다고 소개하고 있으나, 최근 야생화 동호인들이 꼬리겨우살이를 보기 위해 찾는 곳은 조금 다르다. 꼬리겨우살이를 무단으로 채취해 약재 등으로 판매하면서, 알려진 자생지가 상당수 파괴되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갈수록 희귀해지는 꼬리겨우살이를 아직도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는 홍천과 양양을 잇는 구룡령 옛길, 그리고 태백과 삼척을 오가는 문의재 터널 주변 등 강원도 내륙의 백두대간 줄기가 첫손에 꼽힌다. 그 바로 밑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에 걸쳐 우뚝 솟아 있는 소백산 일대에서도 한겨울 꼬리겨우살이를 관찰할 수 있다.
- 2020-01-06 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