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가고 더욱 더 더워진 무더운 여름, 더위를 식힐 피서의 시즌이 다가왔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두고 갈 반려동물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번 여름은 반려동물과 함께 떠나는 것은 어떨까?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한 ‘멍비치’, 그리고 반려동물과 같이 가볼 만 한 여행지를 추천한다.
반려견과 시원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멍비치!
반려견과 함께하는 바다 여행과 물놀이는 반려인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사실 반려견과 같이 갈 수 있는 해변이 많지 않을뿐더러 다른 이용객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이런 견주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수욕장이 바로 강원도 양양 남애해변에 있는 ‘멍비치’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한 반려견 전용 해수욕장으로 일반 관광객과 분리돼 있다. 해변에 반려견을 마음껏 풀어놓을 수도 있고, 함께 해변에서 해수욕도 즐길 수 있다. 멍비치에는 100m의 길이로 안전펜스가 둘려 있고, 1m 20cm 깊이의 바다까지만 들어갈 수 있도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안전하다. 또한 해수욕장 입구에는 강아지 전용 놀이터와 샤워장까지 마련되어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멍비치는 한 사람이 반려견 두 마리를 데리고 입장할 수 있다. 입장료는 인당 3천 원, 강아지는 kg에 따라 5천 원 이상 낸다. 맹견류(입마개를 해야 하는 종류)는 입장이 불가하고 반려견이 없는 일반인도 들어갈 수 없다. 깨끗한 해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울 수 있는 비닐봉지가 파라솔마다 준비되어있다. 배설물을 수거해 오면 간식이나 사료 같은 선물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루에 2번씩 모래사장 소독을 하고 매일 해양경찰 점검도 받고 있단다. 이 외에 애견 에티켓과 공지사항을 잘 참조하여 즐긴다면 우리 강아지들과 함께 시원하고 즐거운 바다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주소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78-20 광진해변
개장 기간 2017년 7월 8일 ~ 8월 20일
강원도 평창 봉평 허브나라 농원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강원도 태기산 자락에 허브나라 농원이 있다. 1993년 문을 연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 허브 테마 관광농원으로 평창의 대표 명소 중 하나다. 이곳은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할 수 있어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손꼽힌다. 태기산의 흥정계곡을 따라 조성된 허브나라는 1만여 평 규모의 정원으로 7가지 주제로 꾸며져 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허브나라 농원의 입장료는 인당 7,000원이며, 반려견 입장료는 없다. 허브나라 농원 안에서는 반려견에게 목줄을 반드시 착용시켜 주변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실내 관람 시에는 반려견을 안고 입장하며 배변 봉투를 지참하여 배설물을 즉시 수거해야 한다. 대형견은 출입할 수 없다.
주소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길 225 (흥정리 302-7)
덕평 자연 휴게소 ‘달려라 코코’
강아지와 장거리 이동이 걱정되시거나,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원할 때 애견 테마파크 ‘달려라 코코’를 추천한다.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체험장소로 애견 테마파크가 떠오르고 있다. 그 중 덕평 자연 휴게소 내에 위치한 ‘달려라 코코’는 반려견을 기르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명소 중의 명소다. 덕평 자연휴게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테마파크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운전 중 휴식의 목적이 아닌, 이곳 휴게소의 테마파크를 목적으로 방문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중 ‘달려라 코코’는 도심 속에서 산책할 공간이 부족한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반려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친환경 애견 놀이터 ‘달려라 코코’는 1,200평의 천연 잔디 시설로 전력 질주 코스, 물고 당기기, 터널, 망루 등과 같은 시설을 마음껏 뛰놀며 도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소형견을 위한 인조잔디 공간과 반려견카페가어 다른 애견친구를 만나 사회성을 기를 수도 있다.
이용수칙과 주의해야 할 점
친환경 애견 놀이터와 애견카페를 이용할 수 있는 입장권은 10,000원이다. 반려견을 동반할 시 5,000원이 추가된다. 강아지가 많이 모이는 장소이기 때문에 위생 관리도 철저히 한다. 퇴장 시 소독용 물티슈와 세면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달려라 코코’는 예방접종이 완료된 3개월 이상의 건강한 반려견만 입장이 가능하다. 반려견의 건강과 쾌적한 환경을 위해 음식물 반입은 금지하며 일부 공격성이 강한 강아지나 타인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품종은 입장이 제한된다.
주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덕이로 154번길 287-76 덕평 자연휴게소 내
제주도 애견 동반 가능 관광지
요즘 반려견과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는 관광객이 많다. 국내 항공사에도 반려견이 탑승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제주도 내 애견 펜션과 애견 출입 가능 식당도 증가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하면 어렵지 않게 반려견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 반려견이 입장 할 수 있는 제주도의 관광지는 어떤 곳들이 있을까?
● 섭지코지
드넓은 초원과 광활한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제주도의 대표 관광지다. 영화 , , 드라마 의 로케현장이기도 하다. 이 근처 성산일출봉은 반려견 출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섭지코지는 가능해 반려견을 동반한 관광객을 종종 볼 수 있다. 섭지코지 입장은 무료이고 이곳 역시 배변 봉투와 목줄은 필수다.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 제주 카멜리아힐
제주 카멜리아힐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는 동백 수목원이다. 80개국의 동백나무 500여 종에 6,0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꽃과 식물들로 예쁜 풍경을 이루어 계절마다 보는 즐거움이 다르다. 동백과 벚꽃, 튤립, 야생화가 계절마다 자태를 뽐내는 이곳의 여름은 동그랗고 풍성한 수국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반려견의 출입이 가능한 곳으로 입장료는 성인 기준 8,000원, 청소년은 5,000원, 반려견은 따로 입장료를 내지 않는다.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병악로 166
● 한림공원
입구에서부터 야자수가 늘어져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한림공원은 반나절을 할애해도 될 만큼의 큰 공원으로 9가지 테마로 즐길 수 있다. 적정한 습도가 유지되며 넓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걷기 좋다. 재암 민속마을에서 옛 제주의 초가집을 볼 수 있고, 사파리 조류원에서 먹이를 주는 등 체험도 가능하다. 용암동굴과 석회동굴이 공원 안에 각각 있고, 7월에서 9월은 연꽃축제 기간이다.
한림공원 역시 반려견 입장 가능한 제주도 관광지로, 성인은 11,000원이며 반려견은 따로 입장료가 없다. 또 한림공원 바로 앞으로는 에메랄드빛의 금능으뜸원해변이 있다. 한림공원에 반려견과 함께 입장할 때에는 목줄과 배변 봉투를 반드시 지참한다.
주소 제주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300
반려동물과 이동 시 주의해야 할 점
과거와는 다르게 반려동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워졌다.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 멀리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운송수단마다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 각기 다른데 어떤 규칙이 있는지 간단하게 알아보았다.
⊙ 자동차 장시간 여행시 휴게소에 들려 휴식을 갖는 것이 좋다. 반려견 또한 장거리 탑승의 경우 멀미를 할 수도 있다. 여행 가기 전 동물 병원에 들려 멀미약을 미리 처방 받아 준비해놓아야 한다.
주의점 어떠한 이유라도 개를 차안에 혼자 있게 하면 안 된다. 바깥의 기후 변화를 예측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를 스트레스, 저체온증, 열사병, 혹은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다.
⊙ 비행기 항공사마다 약관에 의해 다르나 국적기의 경우 소형 반려동물의 기내 동반 탑승을 허용한다. 전용 이동장을 사용해야 하고 기내에서는 이동장에서 나오지 않도록 한다. 대형견의 경우 수화물 위탁을 해야 하며 소형견과 대형견 모두 kg에 따라 규정 요금을 지불한다.
⊙ 지하철 운영 약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모든 지하철에서 반려동반 동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이때 전용 이동장에 넣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또한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 반려동물의 동반 탑승을 허용하고 있다.
⊙ 버스 장애인 보조견 및 전용 이동장으로 이동하는 반려동물은 함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운송 시 불쾌감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 탑승이 제한될 수 있다.
⊙ KTX 외 기차 전용 운송장 또는 가방을 이용해 반려동물이 보이지 않게 이동한다. 광견병 예방접종 등 예방접종을 마친 애완동물의 동반 탑승을 허용한다.
반려견 여행 다녀온 뒤 케어
해수욕을 했던 여행이라면 바닷물의 소금기로 인해 피부병이 날 수도 있으니 해수욕 후에 꼼꼼히 씻겨야 한다. 뙤약볕에 오랜 시간 있었다면 미지근한 물에 부드럽게 마사지 하듯이 씻겨주는 것이 좋다. 허브 농원 또는 수목원, 놀이터 다녀온 뒤라면 반려견의 몸에 벌레나 진드기가 붙어 있을 수도 있으니 부드럽게 빗질을 해준 뒤 목욕시킨다. 귀가 덥힌 품종의 경우 귀 쪽에도 벌레가 들어 갈 수 있으니 유심히 봐주는 것이 좋다. 여행에 신이 난 반려견의 몸에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여행 전에 반려견의 상처 연고를 처방받아 가져가는 것도 좋다. 반려견에게도 여행이 피로 할 수도 있으니 다녀온 뒤 반려견의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뒤 이상 징후가 있다면 동물 병원을 내원해야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시인이자 야생화 사진작가인 박대문님께서 풀꽃들에게 쓴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계속되는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단비를 가득 품은 바람 소리가 쏴 밀려옵니다. 주룩주룩 낙숫물 듣는 소리가 어느 고운 음악보다 감미롭게 들려옵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입니까?
어제 산에서 만났던 풀꽃, 그대!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랜 가뭄에 시들시들 연명하듯 버티는 모습이 참으로 애잔했습니다. 게다가 가뭄 탓에 꽃망울과 새순 줄기에 온갖 물것들이 달라붙어 진을 빠는 통에 제대로 꽃도 피우지 못하더군요. 힘겹게 열리는 꽃잎이 처량해 보이기조차 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뿌려주지 못하고 진딧물 한 무더기 털어주지도 못했습니다.
가뭄과 물것에 시달려 제대로 피우지도 못한 풀꽃, 사람으로 치면 화장기 없는 병색 짙은 민낯에 카메라만 들이댔습니다. 아니 민낯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대의 생식기에 확대경을 들이댄 것입니다. 목마른 갈증, 물것의 시달림을 번연히 보고서 도움도 못 주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대의 은밀한 곳만 훑고 지나쳤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대에게 참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삭막하고 황량한 겨울 지나고 이른 봄이 되면 발밑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풀꽃 하나에 넋을 잃고 홀딱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이 나온 새순이나 꽃망울이지만 좀 더 크고 먼저 핀 꽃에만 카메라 앵글 들이대고 옆에 돋아나는 새싹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밟고 뭉개기 일쑤였습니다.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날과 초여름이면 작고 빈약한 꽃은 본체만체 제치고 화려하고 멋진 꽃에만 매달렸습니다. 꽃이 귀한 시기에는 발밑의 사소한 풀꽃도 애지중지하다가 여기저기 온갖 꽃이 한창일 때는 크고 화려한 것만 중시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차별하는 변덕을 부린 것입니다. 심지어 예쁜 꽃 곁에 뻗은 다른 줄기를 사진 화면에 잡티 된다며 제치고 꺾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역경 속에 생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데도 도움 주지 못하면서 아무런 배려도 없이 은밀한 치부를 사진 찍어 자랑스럽게 내놓고 공개했습니다.
태어난 생체로서 소명을 저버리지 않는 풀꽃, 그대!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선택의 기회도 없이 주어진 최악의 환경일지라도 생을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온갖 주위 역경과 고난을 감수하며 새싹 틔어 꽃피우고 열매 맺어 씨앗을 남기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가든 경애하는 마음으로 눈 맞춰 인사하고 이름을 불러주며 가슴 깊이 사랑합니다. 꽃 사진 찍으면서 혹시나 새싹을 밟을까봐 삼각대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특히 이른 봄에는. 또한 옆에 다른 풀과 가지가 끼어들어도 웬만하면 그대로 찍습니다. 그동안 관심 밖에 두고 낮춰 보며 함부로 하고 차별한 것 반성하고 뉘우칩니다. 너그러이 용서하고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지금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나도 그래’라고.
-2017년 8월 모일, 풀지기 올림
말도 느낌도 통하지 않는 풀꽃에게 편지를 보내다니? 이런 편지를 쓰게 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우연히 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라 하기에 생뚱맞게 용기를 냈습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무료한 일상을 메꾸기 위해 풀꽃에 관심을 두고 탐사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갑니다. 지금은 생활 중 대부분의 관심 사항이 풀꽃에 있어 카메라 들고 산과 들에 나가 풀꽃을 찾고 때로는 멀리 여행도 갑니다.
풀꽃 탐사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풀과 나무를 주변에 그저 널브러져 있는, 아무런 느낌도 감각도 없는 사물로만 여겼습니다. 눈에 띄게 예쁘고 화려한 꽃을 피우면 화초, 아닌 것은 모두 잡초로만 여겼습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이 고작해야 농작물과 채소 일부 그리고 과일 몇 종류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직장생활을 생각보다 일찍 그만두고 나서 무료한 일상과 나름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 산·들·꽃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만날 수 있고 미소 짓는, 앙증맞게 고운 꽃이 마치 나를 반기는 듯 여겨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차차 풀꽃 이름을 하나둘 알아가면서 비로소 풀꽃과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져갔습니다.
아무리 좋고 귀한 것도 내가 관심이 없으면, 즉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허상입니다. 내가 관심을 갖고 내용을 알아 의미를 두고 보았을 때, 비로소 나와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고 서로 의미 있는 상대가 됩니다.
이 세상에 이름 없는 풀꽃은 없습니다. ‘이름 없는 풀’이라며 잡초를 천덕꾸러기 취급하지만, ‘잡초’라는 이름의 풀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이름을 모를 뿐입니다. 풀꽃은 좋든 싫든 선택의 기회도 없이 주어진 환경에서 싹을 틔워야 합니다. 선택 없이 태어난 우리 사람과도 같습니다. 오직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를 안고 끈질기게 참고 견디며 살아갑니다. 닥쳐오는 시련 모두를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역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꽃피워 결실을 보아야 하는 생체로서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이제야 하나둘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말 못 하고 느낌 없고 귀하지 않다고 함부로 여기고 다루어왔습니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의 생명체 중 가장 막내가 인간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지구 상 모든 생명체 가운데 으뜸이고 주인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구에 태어난 것으로 치자면 현생 인류는 식물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의 탄생은 4만 년 남짓입니다. 고생대 석탄기의 양치식물은 차치하고 꽃이 있고 생식기관으로서 씨방이 있는 속씨식물이 탄생한 것만 해도 약 1억4000만 년 전인 중생대입니다. 감히 대비할 수 없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모두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멀리 해외에 나가서도 우리 땅에 자라는 같은 풀꽃을 만나면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다정스럽습니다. 외국에 있으면서도 고향 땅인 것처럼 푸근한 마음이 생깁니다. ‘오! 너도 여기에 있네.’ ‘천지만물이 나와 함께 존재하고 한 형제[天地與我 竝存, 萬物與我 爲一]’라는 장자(莊子)의 말이 더욱 실감 납니다.
이제까지의 저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며 한 말씀 올립니다.
“풀꽃, 그대! 사랑합니다. 그대도 한 말씀만 하소서 ‘나도 그래’라고.”
>>박대문 야생화 사진작가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 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다. 저서로 시집 . , 가 있다.
불[火]의 계절 여름입니다. 붉은 태양이 땅 위의 모든 것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사계절 중 불의 기운이 가장 성한 시기입니다. 그런 화기(火氣)를 달래려는 듯 사람들은 너나없이 물가를 찾습니다. 계곡으로, 강으로, 바다로 갑니다. 장맛비는 물론 소낙비라도 내리면 금세 사위를 삼킬 듯 사납게 질주하는 계곡물과 흰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오는 성난 파도….
여름이면 만나곤 하는 성난 물의 모습은 여름이 곧 불과 물이 정면으로 맞서는 계절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7~8월 불과 물이 상극(相剋)하는 틈새에서 피는 각별한 꽃이 있습니다.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 식히려는 듯 그늘 한 점 없는 연못, 흐르지 않는 저수지에 커다란 이파리를 잔뜩 깔고 보랏빛 영롱한 꽃을 피우는 물풀이 있습니다. 바로 100년 만에 꽃을 피운다는 가시연꽃입니다.
2m에 이르는 거대한 이파리로 1년 중 가장 강한 여름 불의 기운을 받고, 뿌리로는 강 대 강(强 對 强)으로 맞서는 물의 기운을 흡입해서인지, 생김새는 물론 꽃이 피는 과정 등 모든 것이 예사롭게 않습니다. 먼저 그 이름은 온몸에 가득 가시가 박혀 있어 함부로 다가가 멋대로 휘저을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파리(앞면뿐 아니라 물에 잠기는 뒷면까지)는 물론 줄기와 뿌리, 꽃받침까지 식물체 전체에 길게는 1cm쯤 되는 가시가 촘촘히 나 있습니다. 전초에서 가시가 없는 부분은 꽃잎과, 가시가 송송 돋은 열매 안에 든 완두콩 모양의 씨앗뿐입니다.
가시만큼 위압적인 것은 커다란 이파리입니다. 보통 가시연꽃이 자라는 수면은 그 잎으로 뒤덮일 정도로 개체마다 여러 개가 달릴 뿐 아니라, 타원형의 잎 하나가 어른 한 사람을 휘감을 만한 크기까지 자라납니다. 한해살이 물풀이 한두 달 만에, 줄기는 어른 엄지손가락보다 굵고 잎은 2m까지 크려면 하루에 무려 20cm씩 자라야 하기에 그 과정이 눈에 보인단 말이 나올 법합니다.
이렇듯 까칠한 가시연꽃이지만, 그 꽃은 모두를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물론 꽃이 피는 과정도 촘촘한 가시나 넓은 잎에 못지않게 기이합니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 새 생명을 낳듯, 가시연꽃도 가시가 촘촘히 박힌 봉오리로 역시 가시투성이의 두꺼운 잎을 뚫고 올라와 지름 4cm 안팎의 꽃을 피웁니다. 꽃은 오전에 열었다가 저녁이면 오므리기를 사나흘 되풀이하다 물속으로 들어가 씨앗을 생성하는데, 꽃봉오리가 맺혔다고 해도 수온과 수심, 기후와 일조량 등이 맞아야 열리기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까다롭기로 치면 개화(開花)보다 씨앗의 발아(發芽)가 훨씬 정도가 심합니다. 계명대 김종원 교수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가시연꽃의 종자 발아율은 4% 이하’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낮은 발아율이 역설적으로 가시연꽃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즉 발아가 안 된 씨앗이 수년이든 수십 년이든 발아력을 유지하다가 수온과 기후 등이 최적의 조건이 되면 발아해서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잎을 펼치고 마침내 꽃을 피우는 것이지요. 휴면 상태의 씨앗 속에 내재된 생명이 되살아나며 ‘백 년 만에 피는 꽃’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실제 2010년 강원도 경포호에서 가시연꽃이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연원을 추적한즉 1960년대 농경지 개간 이후 휴면 상태에 있던 가시연꽃의 종자가 습지 복원 사업으로 생육 조건이 맞자 반세기 만에 다시 발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Where is it?
가시연꽃은 발아도, 개화도 까다롭지만 그렇다고 1급수 청정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큰 잎에서 알 수 있듯 영양분이 풍부한 수질, 즉 적당히 부영양화(富營養化)된 연못에서 잘 자란다. 최대 자생지로는 경남 창원의 우포늪이 꼽힌다. 우포늪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 이름이 아예 가시연꽃마을인데, 가시연꽃 등 우포늪의 수생식물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생태체험장도 있다. 수도권에선 경기도 시흥의 관곡지가 유명하다, 충남 홍성의 역재방죽공원과 부여의 궁남지, 강원도 강릉의 경포호 등 전국적으로 20여 곳에서 자란다. 진못(사진) 등 오래된 연못이 많은 경북 경산과 영천에도 자생지가 여럿 있다.
“누구든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 자신을 알린다. 꽃은 향기로 자신을 알리고, 해는 찬란한 햇살과 노을로, 새는 새소리로 살아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습니다. 신현림 시인의 말대로 꽃은 향기로 자신을 알립니다. 특히 한여름 해발 1400m가 넘는 고산에 피는 백리향(百里香)은 향기로 자신을 알리는 것은 물론, 삼복더위에 ‘내로라’하는 꽃쟁이들에게 비지땀을 흘리고라도 자신을 알현(謁見)하라고 호령합니다.
낮 최고기온이 35도 안팎까지 오르며 폭염 경고가 발령되곤 하는 7월 하순, 전국의 꽃쟁이들은 백리향의 초대에 군소리 없이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경남 합천의 가야산을 오릅니다. 경북 성주의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서성재와 칠불봉을 거쳐 정상인 해발 1430m의 상왕봉까지 4km의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목표로 삼는 것은 오직 하나. 폭염 속에서 피어나는 백리향을 만나는 것입니다.
향기가 나는 식물을 이른바 ‘허브(herb)’라고 일컬으니, 백리향을 허브의 한 종으로 분류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해외에서 수입된 외래종 허브가 아닌, 토종 허브의 대표로 꼽아도 전혀 손색없는 백리향. 꽃은 물론 줄기, 잎 등 전초에서 진한 향기가 납니다. 인도에서는 ‘천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는 멋진 말로 허브 향의 강렬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술 더 떠 그 향이 사방 백 리를 간다며 아예 백리향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 향이 직접 백 리까지 번진다는 게 아니라 신발에 묻은 향이 백 리를 걸어도 가시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지만, 어찌 됐든 분명한 건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듯, 발 없는 향이 백 리를 간다’는 말이니 대단한 과장법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참, 삼복더위 속 가야산 산행이 무척 덥고 힘들지 않냐고요? 천만의 말씀! 청량한 계곡물이 흐르면서 한여름의 열기를 날려주고, 또 무성한 이파리는 햇살을 가려주고, 오르내리는 산길은 너른 숲 그늘에 잠기고… 그야말로 여름의 고산은 산 전체가 시원한 냉장고 속과 같습니다.
게다가 이왕이면 일출까지 보자며 어둠을 헤치고 산을 오른다면, 사진을 담는 내내 저 멀리 첩첩 산봉우리 사이로 흰 구름이 넘나들며 장쾌한 풍광을 만들고 바로 앞 둔덕에선 백리향이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는 걸 보며, ‘아, 이런 게 바로 황홀경’이라며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덧붙여 백리향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향이 폐부를 찌를 듯 파고들면서 온몸은 무한한 행복감에 빠져듭니다.
Where is it?
전국적으로 30곳 이상의 자생지가 있으며 개체 수도 풍부하다지만 어디서나 백리향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을 비롯해 설악산과 지리산, 가야산, 운무산 등 높은 산 바위지대까지 올라야 한다.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가야산의 경우도 주봉인 상왕봉(1430m)과 최고봉인 칠불봉(1432m·사진) 등 고봉 주변에 주로 자생한다. 백리향보다 줄기가 더 굵으며, 옆으로 가지를 뻗는 섬백리향은 울릉도에서만 자라는데, 북면 나리동의 섬백리향 자생지는 제52호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6월 말에서 8월 초까지 분홍색 꽃을 피우는 백리향과 섬백리향 모두 뿌리와 줄기, 잎 등 전초를 말려 지초(地椒)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강장 효과가 크고 우울증과 피로 해소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6월 녹음이 짙어지면서 자잘한 풀꽃들은 흔적도 없이 스러집니다. 이른 봄 숲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봄꽃들이 사라진 자리엔 어느새 산앵도나무와 때죽나무, 쪽동백, 박쥐나무 등 나무 꽃들이 붉거나 노랗거나 하얀 꽃들을 풍성하게 피우며 숲의 주인 행세를 합니다. 이에 질세라 큰앵초와 감자난초 등 제법 키 큰 풀꽃들도 우뚝 솟아나 벌·나비를 부르는 경쟁 대열에 합류합니다. 민백미꽃도 그중 하나입니다. 큰 것은 1m 이상 자랍니다. 훤칠한 키에 꽃송이를 가득 달고 선 줄기가 곧고 단단해 얼핏 키 작은 관목으로 착각하지만 엄연히 풀꽃입니다.
“연분홍 꽃 색을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그 어떤 목석같은 사내라도 연분홍 민백미꽃의 아름다운 충격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꽃 동무가 홍색(紅色)의 민백미꽃을 본 감동을 이렇게 말합니다. 흰색 꽃만 있다고 생각한 민백미꽃이 연분홍 꽃을 피운다는 말에, 그리고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는 찬사에 구미가 당겨 물어물어 자생지를 찾았습니다.
꽃 찾아다니면서 겪는 일이 있는데, 꽃마다 만나게 된 사연이 다르고 또 일종의 징크스 같은 게 얽히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민백미꽃이 ‘세상사, 인연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습니다. 보고 싶어 한다고, 찾는다고, 찾아간다고 다 만나지는 게 아니고 인연 따라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히 자생한다는 민백미꽃.
그런데 초기 수년간 이 산 저 산 다녔지만 단 한 송이도 보지 못해 꽤나 애를 태웠습니다. 그러다 수년 전 6월 중순 영실에서 윗세오름까지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 초록의 숲에 눈이 내린 듯 핀 민백미꽃을 숱하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서울에서 가까운 연천의 지장산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색색의 변이종 민백미꽃까지 만났습니다. 역시 한 번 보기가 어렵지, 길 트면 수시로 만나게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습니다.
민백미꽃은 본디 꽃 색이 아니라 뿌리가 희고 가늘어서 백미(白薇)란 약재로 쓰이는 백미꽃의 유사 종으로, 열매에 털이 없다는 뜻에서 ‘민’ 자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털의 유무뿐 아니라, 꽃 색도 다릅니다. 백미꽃은 이름의 이미지와 달리 흑자색 꽃을, 민백미꽃은 흰색 꽃을 피웁니다. 또 다른 유사 종인 푸른백미꽃은 녹색이 감도는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분홍색과 자주색, 살구색 그리고 옅은 녹색 등 색색의 꽃이 피는 민백미꽃이 있다는 말에 “그럴 리가…”라는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흰색 일색이 아닌, 다양한 색의 꽃이 달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민백미꽃은 꽃대와 꽃자루가 꽃보다 길어 꽃들이 대롱에 매달린 채 우산처럼 공중에 떠 있다고 하는데, 실제 본 모습은 도감 설명과 똑같습니다. 덧붙여 애간장을 녹인다는 찬사, 더도 덜도 아닌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Where is it?
민백미꽃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의 산지에서 자생한다. 키가 1m 정도까지 자라고 5~7월 흰색 꽃이 우산 형태[傘形]로 달리는데, 녹음이 짙은 숲에서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다. 6월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면 숲 위로 돋아난 흰색의 민백미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연분홍 및 진한 자주색, 살구색, 연두색 등 다양한 색의 변이를 보여주는 민백미꽃은 강원도 홍천 내면의 한 야산에 자생한다. 인근 지역에서 분홍색 은방울꽃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뤄, 홍천 지역의 석회질 지질이 꽃 색 변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는 행복해지려 산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도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행복해진다.
행복했던 기억, 경험, 방법을 모르면 행복도 배워야 한다.
행복은 순간의 만족에서 느끼는 감정은 아닐지.
봄이 되어 경쟁적으로 이곳저곳에서 피는 꽃을 본다.
허리를 굽혀 가까이 들여다봐야 눈에 들어오는 야생화에서부터
뒤로 자빠질 듯 몸을 젖혀야 보이는 꽃나무까지 만상이 합창하는 봄이다.
함부로 찾아온 봄
필자는 단지 내에서 자주 산책을 한다. 야간에도 조명을 잘해놓아 꽃들은 낮과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며 매일매일 피어난다. 자목련, 백목련, 벚꽃, 개나리, 산수유 등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꽃들도 있다. 이름표 팻말을 만들어달라고 관리실에 부탁해야겠다.
요즘 새롭게 재미를 붙인 놀이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꽃 감상이다. 드론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면서 위에서 시원하게 보여주는 풍경들이 많아졌고 TV 화면도 그만큼 화려해졌다.
산책길에서 우러러보듯 감상하는 꽃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꽃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이제까지의 꽃구경은 새소리와 어우러져 듀엣으로 눈을 현혹시키는 꽃을 목 젖히고 올려보며 하는 감상이 전부였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꽃은 마치 묵언의 고요함 같은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던 숨겨진 속살을 수줍게 펼쳐내 보이는 꽃나무의 사랑 언어를 듣는 듯하다. 유리알처럼 맑은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꽃구경인 것이다.
꽃나무들도 올려다 보이는 부위는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기에 인간으로 치면 파마도 하고 드라이도 하고 젤도 발라 멋을 부렸겠다. 하지만 정수리를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못했기에 준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소란 없는 민낯 그대로 부스스한 얼굴 그대로를 들키는 셈인데 드론 앞에서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위에서 찍은 정글 사진을 보면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폭신하고 두툼한 솜이불 같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무릉도원을 찾는다면 단연 꽃나무 위의 포근함이 아닐는지.
물론 꽃나무 정수리를 보기 위해 드론이 필요한 건 아니고, 반드시 봐야 하는 것 역시 아니지만 위에서 바라본 낯설고 특별한 아름다운 풍경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어느덧 5월입니다. 꽃피는 춘삼월이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숲은 어느새 짙은 초록으로 변해갑니다. 통상 3월부터 5월까지를 봄으로 분류하지만, 지구온난화 등의 여파로 인해 몇 년 전부터 종종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되는 등 봄이란 말이 무색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나 몰라라 하겠다는 배짱인지, 5월 중순의 시기에 ‘봄맞이’란 이름이 들어가는 야생화가 여전히 피고 있다는 말에 의아해하며 만나러 갔습니다.
“그래, 귀하다는 꽃, 나도 좀 자세히 보자.”
“뭐야? 이것 보자고 이 무더위에 서너 시간 달려왔단 말이야?”
꽃 보러 가는 길, 가끔 “바람이나 쐬러 가자. 아주 귀한 꽃 보여주겠다”며 친구들을 설득해 동행합니다. 짙푸른 바다도 보고, 시원한 바람이나 맞자며 즐겁게 떠났습니다. 다만 멀리 동해까지 가는 동안 내심 실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텐데, 공연히 귀한 시간 빼앗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정말 귀한 꽃이야. 원래는 북한 땅에 가야만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최근 남한에서도 동해안 서너 곳에서 자생하는 게 확인됐어. 워낙 희귀종이어서 국가에서 보호 대상 식물로 지정, 관리하고 있어.”
갯봄맞이의 희귀성, 중요성 등을 애써 강조하지만, 반응은 여전히 심드렁합니다.
“그런데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했듯, 5월 중순이면 봄이라기보다 여름이라고 할 수 있잖아. 실제 폭염주의보까지 발령되는 날씨인데, 식물명에 ‘봄맞이’가 들어 있으니 어째 어색하지 않니? 그게 바로 이 꽃의 유별성(類別性), 즉 주로 북한 지역에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의 특성을 보여주는 거야. 옛날 봄이 늦은 함경도 바닷가에서 5~6월에 피는 이 꽃을 보고 갯봄맞이란 이름을 붙인 거라고….”
나름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열심히 보고 사진 많이 찍어라” 하며 응원합니다. 먼 길 오느라, 찾느라 바빴던 마음을 진정하고 찬찬히 꽃을 들여다봅니다. 바다와 분리되어 있다지만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바닷물과 모래가 수시로 넘어올 성싶은 해안 호수, 이른바 석호(潟湖) 가장자리 모래밭에 핀 갯봄맞이. 키가 작은 건 5cm 안팎이고, 제법 큰 것은 20cm를 넘을 정도이지만 무리 지은 모습은 영락없이 ‘잡초’처럼 보입니다. 통통한 줄기에 잎이 좌우로 다닥다닥 달리고, 줄기와 잎 사이 겨드랑이마다 아주 옅은 붉은색이 도는 흰 꽃이 역시 다닥다닥 돋아나 있습니다. 꽃 색이 아예 흰 것도 있다고 합니다. 새끼손톱만 한 꽃은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수술 다섯 개와 암술 한 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잎과 꽃 모두 자루 없이 줄기에 바싹 달라붙어 있어 개개의 꽃을 예쁘게 담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생지는 극히 소수이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본 갯봄맞이의 개체는 수백, 수천을 넘을 만큼 풍성해 멋진 군락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멸종위기 야생식물 1, 2급으로 지정된 77종 가운데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 등 대부분이 자생지와 개체 수가 극히 적은 데다 빼어난 관상 가치에 따른 남획 등 인위적인 위협 요인이 더해지면서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면, 갯봄맞이와 같은 일부 북방계 식물은 지구온난화 등 자연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남한 땅에서 사라질 위기를 맞고 있어, 종 다양성 유지 차원에서 각별한 보전 대책이 필요해보입니다.
Where is it?
갯봄맞이는 황해도와 함경도 등 주로 북한 지역에서 자생하는 북방계 자생식물로 알려져왔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 강원도 고성과 경북 포항, 울산 등 동해안 일대 서너 곳에서 자라는 것이 확인되자 환경부가 2012년 7월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했다. 남한에서 가장 북쪽인 고성에서는 해수와 담수가 섞여 있어 염담호(鹽淡湖)라고도 불리는 송지호의 가장자리 일부 모래밭에서 자생한다(사진). 밑으로 내려와서는 포항의 구룡포 인근 해안, 그리고 최남단인 울산 북구 해안에서 각각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4월의 ‘한 달 여행’ 시리즈는 ‘길 위에 오두막 별장 만들기’다. 한 달간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피레네 산맥을 등에 기대고 사는 프랑스 산간 마을, 생장피에드포르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준비를 한다.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의 ‘시니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프랑스 페이 바스크의 아름다운 소읍, 생장피에드포르
프랑스의 남서부, 스페인과 이웃한 작은 도시가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다. 이 산간 마을의 이름은 페이 바스크(Pays Basque)다. 분명 프랑스령이지만 국가에 완벽하게 귀속되지 않은 채, 자기만의 전통 색깔을 강하게 지켜나가는 바스크인의 영토다. 이들은 피레네 산맥 지역에 사는 소수 인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다. 1000년도 넘은 천년고도 ‘생장’에는 바스크 지방의 특색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암 벽돌로 지은 바스크식의 아름다운 가옥들. 건물마다 이름을 새겨놓은 것도 바스크의 전통이다. 마을은 그림 같다. 성당의 종탑에서는 미사의 종소리가 울리고 맑은 니베 강이 마을을 가로지른다. 이 마을엔 사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야고보의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순례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을 준비를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산티아고’까지 총 800㎞를 걷는 대장정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필자가 머물던 숙소지기는 “완주하고 나면 다시 태어날 것이다”라는 말로 격려한다.
고산에 피어난 야생화에 고단함을 푸는 시간
‘생장’을 벗어나 ‘운토’ 마을에 이르면 넓은 호밀밭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푸른 언덕에 그림 같은 집들이 군데군데 들어선 모습은 가히 아름답다. 이 지역은 고도여서 사람 살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지만 자연 조건이 좋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초기에는 유목민이었다가 서서히 정착생활을 해나갔다. 아름다운 고원의 풍경에 빠져 걷다 보면 첫 번째 사설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숙소)인 ‘오리손(Orison, 770m)’을 만난다. 올드 팝이 들리는 깔끔한 바다를 마주하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의 휴식을 가진 뒤에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가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민가 한 채 없는 허허벌판과 가파른 산길만 있다. 걷는 길이 힘겹지만 가끔 벗이 되는 것들이 있다.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 군락지다. 4월에는 주목나무 잎을 가졌지만 골담초처럼 노란 꽃을 피워내는, 가시 박힌 나무가 온 산하에 펼쳐진다. 벤타르테아 언덕(Collado de Bentartea, 1344m)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서면 깜짝 놀란다. 한국의 깊은 산에서만 보던 얼레지와 흡사한 야생화가 피어 있기 때문이다. 피레네 산맥에 피어난 아름다운 보랏빛 꽃은 여린 꽃잎을 파르르 떨고 있다.
봄의 잔설과 약수터에 서린 ‘롤랑’의 전설
이 고갯길부터는 우측 능선이 확 트여 수채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운무 자욱한 평원과 저 멀리 있는 고산의 산정엔 봄철까지 눈이 남아 하얗다. 넓은 초지 사이로 몇 채의 목장 건물이 들어앉아 있고 고원의 바람 따라 구름도 함께 춤을 춘다. 행여 산정을 못 넘는 순례자를 위해 바위 틈새에는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들고 휴식을 취하는 곳. 체하지 말라는 듯 ‘롤랑(Roland)의 샘’이 반긴다. 롤랑 백작이 이 산맥을 넘을 때 마셨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약수터 이름이다. 이 약수터를 기점으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나뉜다. 롤랑은 11세기(혹은 12세기 초)에 씌인 중세 유럽 최대의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비극적 영웅이다. 롤랑은 프랑스 샤를마뉴(742~814) 대제의 군대를 이끌고 론세스바예스 요새로 가다가 미리 매복하고 있던 바스크족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후 샤를마뉴 대제가 바스크족을 전멸했다는 게 이 서사시의 주요 스토리다. 이 작품이 전설인지 실화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롤랑이 패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아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바스크족의 요새, 론세스바예스 수도원
약수터를 지나면 피레네 순례길에서 가장 높은 레푀데르 언덕(Collado de Lepoeder, 1430m)에 이른다. 여기서부터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고갯길을 조금 내려오면 두 갈래로 길이 갈라지고 팻말이 나온다. 한쪽은 3km이고 다른 길은 3.6km. 어느 쪽을 선택하든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길은 일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힘겹다. 딱 봐도 롤랑 장군이 단련된 바스크족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고개를 내려서면 산맥의 협곡 깊숙한 곳에, 외따로 자리한 론세스바예스 수도원이 있다. 여전히 요새와 같은 곳. 안내소와 두 동의 알베르게, 식당 두 곳, 서점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다. 어쨌든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일단 발을 뗀 이상 포기할 수도, 되돌아갈 수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 오직 두 다리로 걷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변화무쌍한 이곳의 봄 풍치는 평생 기억에 남는다.
Travel Data
교통편 파리로 입국하는 게 가장 좋다.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바욘 역까지 테제베를 이용하고, 바욘 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가는 두 량짜리 기차로 갈아타면 된다.
걷는 코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운토(Hunto, 5km)-오리손(Orison, 3km)-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17km). 총 25km.
현지 정보 ‘생장’에 도착해 ‘산티아고 협회’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순례자 증명서를 준다. 협회에서는 그날 묵을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도 정해준다. 피레네 산맥은 고지대라 거의 산행에 가까우므로 트레킹화보다는 등산화가 좋다. 해빙기 때는 눈이 남아 있고 길도 질퍽거리는 데다 기후 변화도 잦다. 또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는 빵, 음료 등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영 자신이 없다면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이동한 뒤 순례를 시작하면 된다. 배낭은 절대적으로 가벼워야 하고 힘들 경우 배낭을 미리 보내면 된다.
순례자의 길 산티아고의 길(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은 생장~산티아고까지 총 800km다. 완주하는 데 한 달 정도 예상하면 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카미노(camino)’ 한마디면 다 통한다.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road)’이라는 뜻이다. 카미노 여행의 매력적인 장점은 기간 대비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다. 내 발로 걸으니 교통비도 들지 않고,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 사용료도 매우 싸다. 이곳에서 취사, 세탁 등을 다 해결할 수 있다.
여행 적기 ‘산티아고 성인의 날’은 7월 25일. 이때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온다. 봄과 가을이 가장 좋다. 겨울은 절대 ‘비추’다. 많은 한국인이 준비 없이 떠나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스페인 친구가 전해주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이 여행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빨리 완주하고 싶어 하는 한국인의 속성이다. 욕망이 앞서면 결코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없다. 힘들면 코스는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가장 좋은 10일 코스를 선택하고 스페인 일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페인은 한 달 이상 여행할 가치가 있는 나라다.
화란춘성(花爛春盛)이라고 했던가요. 꽃이 만발(滿發)하고 봄이 무르익는 4월,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발 닿고 닿는 곳마다 연분홍 벚꽃잎이 휘날리고, 노란색 유채꽃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합니다. 아니 ‘춘사월(春四月)’ 제주도에선 벚나무와 유채가 아니라도, 풀이든 나무이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꽃을 피우는 듯 섬 전체가 꽃으로 흐드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데 그런 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야생화가 따로 있습니다. 뭍에서는 만날 수 없는 꽃, 제주의 특산 야생화라 일컬을 수 있는 꽃, 하지만 너무 귀하지는 않아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꽃, 바로 뚜껑별꽃입니다.
해안이나 높지 않은 오름의 양지바른 풀밭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처음엔 뜬금없이 ‘저지곶자왈’ 주차장 길섶에서 뜻밖의 조우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보라색 꽃 색에 넋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앙증맞은 생김새에 다시 또 기함했습니다.
개별꽃이니 쇠별꽃, 큰개별꽃 등 다른 ‘별꽃’들과 마찬가지로 뚜껑별꽃도 키가 10~30cm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뚜껑별꽃은 꽃 색이나 생김새가 유별난데, 석죽과에 속하는 다른 별꽃들과 달리 앵초과로 족보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지런히 돌아 나는 다섯 장의 꽃잎은 지름이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지만, 독특한 보라색 꽃 색만은 단번에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꽃잎 중앙의 수술과 암술 둘레에는 흰색과 자주색, 진보라색의 띠가 2, 3중으로 둘러쳐지면서 노란색 꽃밥과 어우러져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5개의 수술대엔 붉은색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들 정도입니다.
동그란 열매가 영글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뚜껑이 떨어져 나가듯 벌어지고 별 모양의 꽃받침이 도드라지게 드러납니다. 꽃 피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열매 맺은 뒤의 이런 모습에서 뚜껑별꽃이란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특한 꽃 색을 따서 보라별꽃으로, 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총총하게 핀다고 해서 별봄맞이꽃으로도 불립니다. 뚜껑별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려면 게으름을 피운다 싶을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학명 중 속명인 ‘Anagallis’는 ‘해가 뜨면 다시 핀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날이 저물면 꽃잎을 닫고 해가 중천에 올라올 즈음에야 다시 활짝 열리는 뚜껑별꽃의 속성이 그대로 담긴 용어라 생각됩니다.
Where is it?
뚜껑별꽃은 전 세계적으로 24개 종이 온대와 열대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추자도, 그리고 전남의 일부 섬에만 1개 종이 자생한다. 아직은 대륙성 기후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남방식물, 남부 도서지방이 분포의 북방한계선인 아열대 식물인 셈이다. 제주도에서는 남쪽 바닷가의 현무암 틈새나 올레길 길섶 등지에서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4월 서귀포의 명승지인 외돌개에 가면 현무암 바위틈 곳곳에서 풍성하게 꽃 핀 것을 만날 수 있다. 석양 무렵 외돌개에서 맞는 일몰(사진)도 일품이다.
춘삼월(春三月)이라고는 하나, 산골짝의 계절은 아직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에 가깝습니다. 나뭇가지는 여전히 깡말랐고 산기슭과 계곡엔 갈색의 낙엽이 무성하게 쌓여 있습니다. 낙엽 밑엔 미끌미끌한 얼음이 숨어 있어 함부로 내딛다가는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입니다. 저 멀리 남쪽에선 2월 하순부터 보춘화가 피었느니 변산바람꽃이 터졌느니 화신(花信)을 전해오지만,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선 3월 초순 잘해야 너도바람꽃 한두 송이가 가냘픈 꽃송이를 치켜들 뿐입니다. 그렇듯 메마른 3월의 산중에서도 눈 밝은 동호인은 파릇파릇 돋아나는 묘한 야생화를 찾아냅니다.
“이게 정말 꽃이 맞아요?”
“무슨 꽃이 이렇게 생겼을까!”
“꽃잎은 어디에 있나요?”
처음 보는 이는 익히 알던 꽃과는 전혀 다른 형태에 신기해합니다. 그러곤 이런저런 질문 끝에 ‘앉은부채’란 이름을 그럴싸하다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앉은부처’로 잘못 알아들었음을 알고선 다시 갸우뚱합니다. 한가운데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게 일견 불두(佛頭)를 닮아 ‘앉은부처’라고 불린다고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뭔 사연인지 설명해달라고 채근합니다.
앉은부채는 우선 촛불 모양의 독특한 꽃으로 눈길을 끕니다. 꽃잎인 듯싶은 자갈색의 타원형 이파리는 불염포라 불리는 꽃 덮개입니다. 그 안의 도깨비방망이가 육수(肉穗)꽃차례라고 불리는 꽃 덩어리인데, 거북의 등처럼 갈라진 조각조각이 4장의 꽃잎과 4개의 수술, 1개의 암술을 갖춘 각각의 꽃송이입니다. 부처의 광배(光背)를 닮은 꽃 덮개와, 역시 부처의 머리를 닮은 육수꽃차례로 인해 ‘명상에 잠긴 부처’라는 별칭으로 또는 ‘앉은부처’로 잘못 불리기도 하지만, 원래는 꽃이 진 뒤에 무성하게 나는 잎이 부채처럼 넓다고 해서 앉은부채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앉은부채가 가장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강인한 생명력에 있습니다. 이른 봄, 눈 속에서 꽃 덮개를 뾰족뾰족 세운 앉은부채는 마치 백상아리가 등지느러미를 곧추세우고 망망대해를 유영하듯 대견스럽습니다. 꽁꽁 언 땅속에 1m 넘게 뿌리를 내리고, 그 깊은 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얼음 구들을 녹이고 독특한 형태의 꽃을 피우는 앉은부채의 놀라운 생명력은 경이 그 자체입니다. 강원도에선 겨울에서 봄 사이 부채처럼 넓게 이파리를 펼치다 보니 겨울잠에서 갓 깨어난 곰이나 산짐승들이 가장 먼저 먹는 풀, 즉 ‘곰풀’로 불렸다고도 합니다. 또 지방에 따라 삿부채, 우엉취, 취숭(臭崧)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유독성 식물로 잎은 풍성하지만 먹을 수 없다고 하여 ‘호랑이 배추’라는 별칭도 얻었습니다.
꽃 덮개가 노란 앉은부채의 경우 정명은 아니지만 ‘노랑앉은부채’로 불리는데, 어쩌다 귀하게 만난 노랑앉은부채를 보고 있노라면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겨울을, 꽃샘추위를 저만치 물리치는 듯한 진한 따스함이 전해져옵니다. 학명 중 속명 심플로카르퍼스(Symplocarpus)는 결합한다(symploce)와 열매(carpos)라는 그리스어 합성어로 씨방이 열매에 붙어 있다는 뜻, 종소명 레니폴리우스(renifolius)는 콩팥 모양의 잎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는 스컹크 캐비지(Skunk Cabbage)라고 합니다.
Where is it?
전국에 분포하는데, 수도권 인근에선 천마산이 개체 수도 풍성하고 ‘노랑앉은부채’도 만날 수 있는 자생지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의 한 작은 산 입구에는 앉은부채 자생지라는 안내 표석(사진)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