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무쇠도 녹일 듯 찌는 삼복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피어나는 ‘여름 야생화’를 보면서, 미국의 한 심장 전문의가 스트레스 해소 방안의 하나로 처음 썼다는 명언을 새삼 떠올립니다. 7월호에 소개한 해오라비난초를 비롯해 남덕유산 능선의 분홍색 솔나리, 가야산 정상의 백리향, 선자령 숲속에서 피는 붉은색의 제비동자꽃, 그리고 전국 각지의 오래된 연못에서 드물게 만나는 가시연꽃 등등.
그런데 ‘피할 수 없어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염천(炎天)의 뙤약볕을 천혜의 선물인 양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야생화가 있습니다. 햇살이 가장 강렬하게 내리쬐는 바로 그 시간대에만 꽃잎을 활짝 열고 더없이 맑고 환한 얼굴을 세상에 내비치는 꽃이 있습니다. 바로 꽃은 물론 이파리 등 전초(全草)가 깜찍하다고 할 만큼 작고 예쁜 각시수련입니다.
식물명에 수련(睡蓮)이란 한자가 들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잠자는 연꽃’의 일종인데, 그냥 잠을 자는 게 아니라 잠자는 모습을 행여 남들이 볼세라 수면시간에는 어여쁜 얼굴을 닫고 아예 자취를 감춰, 먼 길 마다치 않고 찾아온 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곤 합니다. 필자 또한 처음 각시수련을 만나던 날 크게 당황했습니다. 남한 내 유일한 자생지로 알려진 강원도의 오래된 못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분명히 피어 있을 것이라고 전해 들은 각시수련이 단 한 송이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꽃의 지름이 2~3cm에 불과할 만큼 작아, 못 한가운데 필 경우 멀리서 보면 잘 분간이 안 될 수 있다지만, 그 어떤 피부미인 못지않게 도드라진 순백의 꽃을 ‘천하의 꽃쟁이’가 못 알아보겠느냐 장담했건만 아무리 샅샅이 살펴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답답해하던 중 자생지를 일러준 꽃 친구의 말이 생각나 무릎을 쳤습니다.
“대개 점심을 먹고 찾아가서 봤다. 아침나절에 가면 물속에 잠겨 있기 때문에 아예 볼 수 없다. 보통 낮 1시는 넘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미인은 잠꾸러기’란 말이 있듯 오전엔 어김없이 물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수온이 오르고 수은주가 치솟는 대낮이 돼야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 청초한 꽃송이를 하나둘 물 위에 펼치고 유유자적 여름 뙤약볕을 즐기는 것이지요. 정확하게 낮 1시 15분부터 각시수련의 깜짝 등장을 지켜보면서, 학명 중 속명 님파이아(nymphaea)가 그리스 신화 속 ‘요정(妖精)’ 님프(nymph)에서 따왔다더니 과연 ‘물의 요정’이라 할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애기수련이라고도 불리는 각시수련은 말발굽 모양의 타원형 잎을 물 위에 띄우고 사는 부엽식물(浮葉植物)의 일종입니다. 보통 6월에서 8월까지 한여름에 꽃을 피운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9월 하순에도 싱싱한 꽃을 만날 수 있으니 개화 기간이 알려진 것보다 더 길다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낮이면 꽃잎을 열고 저녁이면 다시 닫는데, 단순히 꽃잎을 여닫는 게 아니라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하기를 3~4일 반복한 뒤 열매를 맺고 아예 수면 아래로 잠기면 다시 새로운 꽃이 피는 식으로 서너 달을 지속한다고 합니다.
Where is it?
각시수련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희귀한 특산식물이다. 처음 발견된 곳은 왕래가 끊긴 지 하도 오래돼서 이름도 생소한 황해도 장산곶 몽금포라는 곳인데, 이 때문에 지금도 많은 도감은 황해도 장산곶 또는 황해도 몽금포를 대표적인 자생지로 표기하고 있다. 갈 수 없는 몽금포 이외에 알려진 자생지로는 강원도 고성의 오래된 작은 연못인 천진호가 거의 유일하다. 백두산 주변 습지에도 비슷한 종이 자생하는데, 만주수련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환경부는 고성 이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전형적인 북방계 수생식물인 각시수련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할수록 멸종 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012년부터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리아다. 면적은 156만7000㎢로 한반도보다 7배 정도 크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거주자는 124만 명이다. 인구 밀도는 1.78명/㎢이고, 평균수명은 65.2세로 남자 62.9세, 여자 67.6세다. 몽골인들은 주로 염소, 양, 소, 말, 낙타 등을 키운다. 가축 수는 총 3270만 두에 이른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이슬람교도가 5%를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약 4만 명 추산)에 이른다. 나머지 3%는 무신론자다. 몽골의 국화가 연꽃인 것도 불교의 영향이다.
몽골 표준시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한국과의 거리는 약 2000㎞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몽골 정보
국명 몽골(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
위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
면적 156만 7000㎢, 세계 19위
민족 할흐 몽골족(90%), 카자흐족(5.9%), 브리야트계(2%) 등 17개 부족
언어 할흐 몽골어 90%, 키릴문자, 문맹률 5% 이하
종교 라마불교 53%, 무교 39%, 이슬람교 4%, 기독교 4%
기후 건성 냉대기후
인구 약 300만 명, 세계 138위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
국가 형태 공화국
정부 형태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
국내총생산 (GDP)US$ 102억(2012년), 1인당 국내총생산 US$ 3575(2012년)
화폐단위 투그릭(Tg, Tugrik), 1미국달러 = 2458투그릭(2018년 6월 기준)
독립일 1921년 7월 11일(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년 11월 26일
몽골의 날씨 6~8월 몽골 여행의 베스트 시즌. 초원에는 풀이 자라고 맑고 쾌적한 날씨가 계속된다. 한국의 화창한 가을날과 유사한 날씨로 낮에는 해가 강하지만 그늘은 시원하다. 습도가 매우 낮은 여름의 몽골은 고온 다습한 한국의 여름을 피하기 가장 좋은 피서지다. 일교차가 심하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두꺼운 파카가 필요하다. (평균기온 최고 30℃ 최저 15℃) 9~10월 몽골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보다 일찍 찾아온다. 약간 쌀쌀하지만 여름 성수기를 지났기 때문에 여행자로 북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중부지역과 남쪽 고비 사막 지역의 경우 9월 말까지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추위가 일찍 찾아올 경우 북부 홉스골 지역은 여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승마와 트레킹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몽골의 기념품
캐시미어 의류 캐시미어용 염소(산양)의 털을 빗겨 채취한 최고급 100% 캐시미어는 국내 시중가의 절반 가격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목도리, 니트류, 숄, 양말 등이 인기가 많다. 고비 팩토리숍, 국영백화점 2층, 서울의 거리 로드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여성용 목도리는 한화 약 3만~5만 원 정도. 제품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펠트 소품 양털을 압축한 펠트로 만든 컵받침, 몽골인형, 열쇠고리 등 제품이 다양하다. 국영백화점 6층 기념품 숍에서 개당 한화 3000~7000원 정도다.
보드카 몽골 북부 셀렝게 지방의 질 좋은 밀로 만든 몽골 보드카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여행자 인기 품목이다. 700ml 1병에 한화 약 2만 원가량 하며, 소욤보, 칭기즈칸, 벌러르 같은 브랜드를 추천한다. 그러나 매월 1일은 몽골 전 지역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에 여행기간 중 매월 1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전에 구입하길 추천한다. 또한 국내 입국 시 1인당 휴대품 면세 범위 규정에 따라 주류는 1인 1ℓ 1병까지만 허용되니 이 점도 유의.
초콜릿과 과자류 단것을 좋아하는 몽골인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초콜릿과 과자가 많다. 특히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초콜릿 등은 선물용으로 좋다.
차가버섯 건강식품류 몽골에서 생산되는 차가버섯을 이용한 차, 분말 등의 건강식품도 최근 들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몽골의 드럭스토어인 모노스 숍에서 판매한다.
립밤, 수분크림 등 보습제품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는 다양한 보습 제품이 한국보다 저렴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히말라야 립밤, 수분크림 등은 국내 시중가의 절반 정도다.
테를지 국립공원
테를지 국립공원은 힌티 산맥 산기슭에 위치한 몽골 최고 휴양지로 울란바토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기암괴석, 숲, 초원,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툴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각양각색 야생화가 피어난다. 말타기 체험, 야생화 트레킹 등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거북바위
테를지 국립공원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거북바위는 이름 그대로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웅장한 규모의 거북바위 주변에는 항상 관광버스와 단체 여행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도 있으니 한 곳쯤 들러 맛보길 권한다. 테를지 최고 관광지답게 여름 성수기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엘승타사르하이
엘승타사르하이는 멀리 남고비 사막까지 가지 않아도 대규모 사구 지역을 볼 수 있다. 사막 체험을 할 수 있어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모래 사막은 약 70km에 걸쳐 뻗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초원, 실개천, 사막 지형이 한데 섞여 있는 풍광을 자랑한다. 사막 주변으로는 낙타, 염소, 양을 키우는 유목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지천으로 핀 에델바이스를 만끽할 수 있다.
천진벌덕 칭기즈칸 대형 동상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울란바토르에서 100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진벌덕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볼 수 있다.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최근에 생긴 몽골 랜드마크 중의 하나이며 40m 높이의 초대형 동상이다. 칭기즈칸 거대 동상은 고향 힌티 아이막을 바라보고 있다. 내부에서는 칭기즈칸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다.
몽골의 예술문화
몽골 전통 공연에는 한국 탈춤과 비슷한 ‘참(Tsam)과 오직 사람 목청만으로 소리 내 연주하는 ’흐미(Khuumii)‘가 있다. 전통 악기로는 마두금이 대표적이다. 현이 2개인 찰현악기로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해금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한다. 현 위쪽 끝에 말 머리 모양을 새겨놓아 마두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시 두들월드
일정 7월 4일~9월 9일 장소 아라아트센터
‘뭔가를 끼적거리다’라는 뜻의 두들(doodle). 언뜻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두들링 작업에 푹 빠진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미스터 두들 (Mr.Doodl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영국 아티스트 샘 콕스(Sam Cox)가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다. 두들월드 전에선 그를 세계에 알린 독특한 벽화 작품,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업한 서울 시리즈, 그리고 현장에서 진행되는 초대형 설치 작품까지 총 7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
일정 7월 6~15일 장소 부여서동공원
매년 7월이면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50여 종의 다양한 연꽃이 부여 궁남지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는 물론 야생화와 수생식물이 있어 아이들의 자연생태 학습장으로도 좋다. 부여서동연꽃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 축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축제기간에 연밥인형만들기, 연지탐험, 연씨팔찌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신카이마코토展 ‘별의 목소리’부터 ‘너의 이름은.’까지
일정 7월 13일~9월 26일 장소 한가람미술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한 전시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별 설정 자료, 애니메이션 콘티, 작화 등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180도 와이드 스크린, 프로젝터 매핑 등을 이용해 애니메이션 속의 명장면을 재현했다.
연극 생쥐와 인간
일정 7월 24일~10월 14일 장소 대학로 TOM 1관 출연 문태유, 신주협, 최대훈 등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레니’와 그런 레니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조지’라는 이주 노동자의 비극적인 우정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과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인랑
개봉 7월 25일 장르 SF, 액션 감독 김지운 출연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등
‘인랑’은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대결 속에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과 총격신을 더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영화 어느 가족
개봉 7월 26일 장르 드라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등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제는 ‘만비키 가족’. 일본어 만비키(万引き)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는 한 가족이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다.”
열애에 빠진 젊은이들이 막 헤어진 연인을 돌아서자마자 보고 싶다고 할 때, 또는 반백의 불효자가 이미 저세상으로 가신 부모를 뒤늦은 후회와 함께 애타게 그리워할 때, 또는 어느새 망백(望百)의 나이가 된 이산가족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를 죽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며 눈물을 쏟을 때나 쓸 법한 간절한 염원을 꽃말로 가진 야생화가 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더운 7월 불볕더위에 그늘 한 점 없는 습지에서 불화살처럼 뜨겁고 강렬한 여름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순백의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키는 15~40cm로 그렇게 작지는 않지만 녹색의 줄기마다 3~6장씩 달리는, 너비 3~6mm 길이 5~6cm의 잎 등 전초가 그렇게 풍성한 편은 아니어서 눈길을 끌지 못하는 데 반해, 줄기 끝에 1~3개씩 달리는 흰색 꽃만큼은 누구나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독창적인 관상미를 뽐냅니다.
“하~ 알 수 없는 조화로다.” 몇 해 전 처음 해오라비난초를 만나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전에 담은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올리니 흰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분명 카메라에 꽃을 담아왔는데, 꽃은 온데간데없고 명품 고려청자에 새겨진 학을 닮은 새들이 흰색 날개를 활짝 펴고 우아하게 춤을 추니 ‘알 수 없는 조화’라고 혼잣말을 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길이 3cm의 꽃은 2개의 곁 꽃잎과 하나의 입술 꽃잎으로 이뤄졌는데, 특히 세 갈래로 갈라지는 입술 꽃잎이 좌우 날개를 퍼덕이며 비상하는 백로(白鷺)를 연상케 하며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강한 열망을 낳습니다. 그리고 새를 닮은 꽃의 형태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바로 해오라비난초라는 이름이 유래한다고 식물학자들은 말합니다. 즉 ‘해오라비’는 백로와 같은 왜가릿과의 새인 해오라기의 경상도 사투리로, 해오라비난초란 해오라기난초의 오기로 봐야 한다는 것. 그런데 해오라비를 해오라기의 지방 사투리로 인정한다 해도, 해오라기는 머리와 등이 검고 통통한 게 순백의 해오라비난초 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온몸이 희고 날렵한 ‘백로난초’라는 이름이 더 적확했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튼, 중·남부 지역의 양지바른 습지에서 한여름 꽃을 피우는 해오라비난초는 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 난초 중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관상미가 뛰어납니다. 다만 자생지가 불과 몇몇 곳에 불과한 희귀종인 데다, 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숱한 이들이 찾아 순식간에 자생지가 파괴되기 일쑤여서, 각별한 보호 대책이 요구됩니다. 실제 몇 해 전 수십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전국의 야생화 동호인들이 줄지어 찾았던 자생지를 그다음 해 찾아갔다가 단 한 송이의 꽃도 보지 못했습니다.
발길을 돌리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꽃말처럼 꿈속에서나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만 분포하는데, 중국에는 자생지가 단 한 곳밖에 없고, 비교적 개체 수가 많은 일본에서도 무분별한 채취로 멸종위기를 맞는 등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국가 단위 멸종위기종 A급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Where is it?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 중인 해오라비난초는 경기도·강원도·경상남북도에 최대 200개 개체가 자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몇 해 전 수원 칠보산의 한 습지에서 꽤 여러 개체가 꽃을 피웠으나, 이후 크게 줄어들자 애호가들이 자발적으로 보호 철망(사진)을 두르기도 했다. 인근의 또 다른 자생지에선 수년째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생에서 보기 어렵다고 실망하긴 이르다. 광릉 국립수목원 등 여러 식물원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경남 합천군에선 몇 해 전 해오라비난초에 비해 개체가 크고 꽃이 많이 달리는 큰해오라비난초가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서울신문 기자로 29년 일했다. '김인철의 야생화산책(ickim.blog.seoul.co.kr)'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야생화 화첩기행' 저자.
도보여행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면, 지방마다 조성된 걷기 코스까지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황안나 도보여행가가 추천하는 지방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코스 추천 및 사진 제공 도보여행가 황안나
◇ 도보여행가 황안나의 지방 걷기 코스 추천 코멘트
경기도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팔당나루터, 소재나루를 보면서 운길산까지 걷는 ‘한강나루길’(1코스) 구간을 가장 추천할 만하다. 무엇보다 길이 평탄해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고, 강가와 호숫가를 둘러싼 경치가 으뜸이다. 걷다 보면 중앙선 옛 철로가 나오는데, 어릴 적 추억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다산 생가 부근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피어 절경을 이룬다.”
충청도 태안 해변길 “태안 해변길 하면 ‘노을길’(5코스)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길의 끝에 다다르면 꽃지해변이 나오는데, 시간을 잘 맞춰 일몰 때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해안을 물들이는 석양이 장관을 이뤄 셔터만 누르면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홀로 걷다 보면 해 질 무렵에 이따금 마음이 쓸쓸해지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정취와 아름다운 노을이 버무려져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전라도 변산반도 마실길“새만금을 따라 방조제를 걷는 코스로는 넉넉잡아 8~9시간 정도 걸린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내소사를 탐방하고, 광활한 갯벌을 바라보며 곰소항까지 거닐어도 좋다. 곰소 젓갈 축제가 열리는 때에 맞춰 방문해 행사도 즐기고, 곰소젓갈시장에 들러 구경해보는 것도 괜찮다. 곰소항, 격포항 인근 맛집이 많아 식도락 도보여행가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강원도 강릉 바우길“바우길 하면 선명하게 겨울의 끝자락 하얗게 눈이 쌓인 선자령 풍차길에 피어 있던 노란 복수초가 생각난다. 머리에 덮인 차디찬 눈을 털어내고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여린 꽃망울이 어찌나 아름답고 또 기특한지. 복수초 외에도 사시사철 피는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기 위해 이 길을 걷는 여행가가 많다.”
경상도 상주 MRF 이야기길“낙동강 줄기를 끼고 걸을 수 있는 ‘낙동강길’(1코스)의 끝자락 경천교 인근에 상주 자전거 박물관이 있다. 다양한 자전거 조형물을 구경한 뒤 자전거를 빌려 즐길 수 있다. 개인적인 추억이지만, 이곳을 걸으며 아이들이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보물처럼 다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손주나 자녀와 함께 가도 좋겠다.”
부산 부산 갈맷길 “갈맷길의 백미는 해안 절경이 아름다운 ‘이기대’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이 가까워 관광 삼아 거닐어도 좋은 길이다. KTX를 타고 당일치기 도보여행으로 즐겨도 손색없다. 드넓은 바다와 기이한 암석, 귀여운 쑥부쟁이, 울창한 소나무 숲 등 걷는 내내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경상도-전라도 지리산 둘레길 “발걸음이 닿는 길마다 맛 좋은 음식과 넉넉한 인심이 넘쳐난다. 어느 가을날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가 농사짓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마침 수확한 감을 나눠주시며 정겹게 말을 건네시던 기억이 난다. 특히 5일장 등이 서는 날 맞춰 가면 이곳만의 정취를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 태안 해변길
서해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으며, 갯벌과 사구 등 해안 생태계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안 자체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전망이 뛰어나고 걷기 좋은 해변길이 7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 백미는 5코스인 안면도 노을길이다. 안면도 초입에 자리한 백사항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노을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멋진 해안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여기에 서해안 3대 낙조로 꼽는 꽃지해변 노을길은 도보여행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 변산반도 마실길
아름다운 해변과 포구가 있고 유서 깊은 절과 계곡으로 이루어진 변산반도는 숱한 세월이 켜켜이 쌓인 채석강, 그윽한 아름다움이 깃든 내소사, 맛깔스러운 젓갈로 유명한 곰소항 등이 주요 명소다. 이 모든 곳을 아우르는 코스가 바로 ‘변산 마실길’이다. 1~8코스 66km와 해안누리길 18km로 나뉜다. ‘바다와 대화하고, 갯벌과 벗하며 마실간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 길을 걸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단, 썰물 때는 해안이 길게 드러나 길이 생기지만, 밀물 때는 바닷물이 해안으로 들어와 길이 없어지거나 걷기 어려워지므로 시간에 유의해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 상주 MRF 이야기길
곶감의 고장 상주에는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을 배경으로 산(Mountain), 강(River), 들(Field)을 뜻하는 걷기 좋은 ‘MRF 이야기길’이 있다. MRF란 산길, 강길, 들길을 걷거나 달리는 신종 레포츠를 뜻하기도 하는데, 원점 회귀가 가능하면서 낮은 산길(해발 200~300m) 구간이라야 한다. 총 13개 코스로,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제1코스 낙동강길이다. 비봉산을 거쳐 경천대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청룡사와 자전거 박물관, 상도 드라마 세트장 등 볼거리가 많다.
◇ 남양주 다산길
‘다산길’은 한강과 북한강, 국립수목원, 운길산, 축령산 등 남양주시의 둘레길을 통틀어 말한다. 코스를 모두 합한 거리는 170km 남짓, 총 14개 코스로 저마다 볼거리와 분위기가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길은 1코스인 한강 나루길과 2코스인 다산길, 3코스인 새소리 명당길이 겹쳐진 팔당역~능내역~운길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길을 다산길의 으뜸으로 꼽는 것은 시원한 강줄기를 따라 걷다가 옛 기찻길을 걷는 낭만도 있고, 무엇보다 그 중심에 다산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다산 유적지가 있기 때문이다.
◇ 강릉 바우길
‘바우길’은 백두대간에서 경포와 정동진까지 산맥과 바다를 함께 걷는 총연장 약 400km의 장거리 코스다. 강릉바우길 17개 구간, 대관령바우길 2개 구간, 울트라바우길, 계곡마우길, 아리바우길로 이뤄져 있다. 강원도의 자랑인 금강소나무 숲이 70% 이상 펼쳐져 있는 바우길의 매력은 트레킹과 삼림욕을 동시에 즐긴다는 데 있다. 도보여행에 자신 있는 이라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울트라바우길’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4박 5일 동안 총 72km를 걷는 코스로, 고난도 트레킹과 야영이 혼합된 바우길 특별 구간이다.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 도(전북, 전남, 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등 120여 개 마을을 잇는 295km의 장거리 코스다. 구간 대부분이 중·상급 난이도로 도보여행 초보자가 걷기에는 다소 버거울 수 있다. 2004년 ‘생명 평화’를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이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 바로 지리산 둘레길이다. 매년 5월 약 보름 동안 참가자를 모집해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이음단’을 창단하고, 다양한 걷기 축제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 부산 갈맷길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갈매기의 길’이란 의미를 지닌다. 총 9개 코스로, 길이는 268.8km다. 이 코스를 다 걸으면 부산을 한 바퀴 도는 셈이다. 갈맷길 중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부산 해변의 매력이 잘 드러나는 제2코스다. 특히 바다와 기묘한 바위들이 어우러진 ‘이기대’를 품은 2-2코스는 해안 산책로의 백미 구간으로 도보여행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갈맷길을 걸으며 구간별 시작점, 중간점, 종점에 마련된 인증대 38개소에서 도보인증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주인증 및 기념품 수령이 가능하다.
>>황안나 도보여행가
국토종단 800km, 국내해안일주 4200km, 24시간 울트라 걷기 등 젊은이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을 65세 이후 이뤄냈다. 국내는 물론 산티아고, 네팔, 홍콩, 부탄, 아이슬란드 등 세계 50개국 걷기코스를 섭렵하며 도보여행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야생화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야생화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앞자리에 뭐가 올까요?”
오랫동안 꽃을 찾아다니는 걸 지켜본 사람들이 종종 물어봅니다. 무엇이든 순위를 매겨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나온 우문(愚問)이라고 치부하면서도, 내심 손꼽아봅니다. 모든 풀과 나무가 나름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생장하고 소멸하는데 거기에 무슨 서열이 있으랴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어리석어 답을 찾아봅니다. 십수 년 동안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 관리하면서 인공적인 증식·보전 방안을 찾아왔지만 아직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 여전히 ‘보호 대상 1호’인 광릉요강꽃이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는 ‘1순위 야생화’로 꼽힐 수 있습니다. 물론 희귀성으로 따지면 나도풍란이나 한란을 광릉요강꽃의 앞이나 뒤에 놓아도 손색이 없지만, 야생 상태에선 거의 절멸된 것으로 알려져 아예 논외로 한다면, 두 번째는 아마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는 꽃말을 가진 해오라비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다음은 그 꽃을 만나고 나면 ‘야생화 쫓아다니는 일을 그만둔다’는 뜻의 우스갯말인 ‘화류계(花柳界)를 떠난다’는 말을 낳는 꽃, 털복주머니란이 차지할 듯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위가 바로 참기생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녹음이 짙어가고 계절은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6월 초순, 등줄기에선 벌써부터 땀방울이 흘러내리지만, 산비탈을 오르는 야생화 동호인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 높은 산등성이에서 황진이가 울고 갈 만큼 곱디고운 순백의 꽃송이가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북방계 식물인 만큼 거의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야 비로소 바위틈에 촘촘히 숨어 순백의 꽃을 피우는 참기생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라틴어로 3분의 1피트, 즉 약 10cm를 뜻하는 트리엔탈리스(Trientalis)란 학명에서 알 수 있듯, 전초가 10cm 안팎에 불과한 아주 작은 풀입니다. 일곱 장의 꽃잎과 한 개의 암술, 일곱 개의 수술을 갖춘 꽃의 지름은 1.5~2cm. 달리 말하면 중지(中指)만 한 키에 꽃대마다 약지(藥指) 손톱만 한 흰 꽃을 한 개 또는 두 개씩 달고 서 있는데, 진초록 숲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독차지하고 있는 순백의 꽃은 작지만 단아하고 고졸한 야생화의 전형을 보는 듯 환상적입니다.
참, 처음 참기생꽃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예쁘기에 ‘기생’이란 단어를 썼을까, 접두어 ‘참’은 왜 붙었을까 등등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건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전 남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던 기생처럼 예쁘다는 의미에서 그 이름이 붙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입니다. 일본에도 같은 꽃이 있는데,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일본 기생을 떠올려 기생꽃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참’ 자가 붙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대암산에서 자생하며 전초와 꽃의 크기가 작고 잎이 둥글고 짧아 별도의 아종(亞種)으로 분류된 기생꽃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Where is it?
북극의 별을 닮은 꽃이라는 뜻의 ‘아크틱 스타플라워(Arctic Starflower)’란 영어 이름이 말해주듯 세계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유럽, 북아메리카 등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나라 북방계 식물의 고향이랄 수 있는 백두산에서도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설악산과 태백산, 지리산과 가야산 등의 높은 곳에서 드물게 자생한다. 기생꽃은 대암산에만 분포한다.
파릇파릇 돋아나 꽃보다 더 예뻤던 새순들이 아스라한 연두색으로 빛나더니 어느덧 짙은 초록으로 무르익어갑니다. 5월 인적이 드문 신록의 숲에서 산객 혼자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호젓한 오솔길을 걷다가 아무런 예고 없이 귀한 꽃 한 송이 만나길 빌었습니다. 복주머니란 한 송이 만나는 큰 운이 찾아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오복(五福)을 내리는 다섯 송이도 아니고, 만복을 기원하는 열 송이, 수십 송이도 아닌 단 한 송이의 개불알꽃이면 족할 것입니다. 이런 간절한 바람에 하늘이 답한 것일까. 일당백(一當百) 기상으로, 저 홀로 핀 단 한 송이 복주머니란을 만났습니다. 한참 동안 만났습니다. 산그늘에 잠겼던 복주머니란에 석양빛이 들어올 때까지 홀로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숲이 아직은 건강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그때의 감격이 참 오래가더군요.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입니다.
야생의 꽃 한 송이에 무에 그리 호들갑을 떨까 의아하겠지만, 복주머니란의 매력을 알면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우선 화려함이 국내에서 자생하는 그 어떤 야생화에 비해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유난스럽습니다. 나무가 아닌 풀꽃인데도 큰 것은 50cm에 이를 만큼 키가 껑충한 데다 꽃 색도 붉어 초록의 풀밭 사이에 한 송이만 피어 있어도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긋나기로 달리는 3~5개의 타원형 잎도 너비 6~8㎝에 길이가 10~20㎝로 시원스럽습니다. 특히 홍자색 꽃은 곁꽃잎 2개과 입술꽃잎(순판·脣瓣) 1개로 이뤄진 독특한 형태인데, 주머니 또는 항아리 모양의 크기 4~6cm의 입술꽃잎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기 그 이름이 달라집니다. 우선 학명 중 속명 시프리페디움(Cypripedium)은 ‘비너스’를 의미하는 시프리스(cypris)와 ‘슬리퍼’라는 뜻의 페딜론(pedilon)의 합성어인데, 항아리 모양의 입술꽃잎이 마치 미의 여신 비너스가 신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신발처럼 생겼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영어 이름도 ‘숙녀의 슬리퍼’(Lady´s slipper)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조들은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진 입술꽃잎을 보고 굳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아하 맞다’ 하고 고개를 끄떡일 만한 다른 이름을 지었습니다. 바로 개불알꽃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 현대적 식물분류학에 따라 처음 발간된 ‘조선식물향명집’에 올라 있는 명칭입니다. 이외에도 요강꽃, 까치오줌통, 오종개꽃, 작란화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식물명을 정하는 ‘국가표준식물목록위원회’는 1996년 입술꽃잎의 모양이 전통 복주머니를 닮은 데 착안해 복주머니란으로 통일했습니다. 이에 단번에 식물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옛 이름을 민망하거나 망측하다고 해서 ‘우아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Where is it?
각종 도감에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야생에서 자생하는 복주머니란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색이나 모양이 화려하고 예쁜 탓에 보이는 대로 남획당해 자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뜻인데 결국 2012년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 즉 특별한 보호관리 대상으로 지정됐다. 때문에 다소 거북하긴 해도 만개한 꽃의 특성을 가장 설명하는 개불알꽃이니 요강꽃이니 하는 원래 이름을 복주머니란이라고 바꿔 부른 뒤 ‘복’에 환장한 손을 타는 수난을 겪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다. 영아사망률이 높았던 옛날, 이름이 예쁘면 저승사자가 일찍 데려간다는 속설이 있어 귀한 집 자손일수록 개똥이니 쇠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을 붙였는데, 일례로 고종 황제도 아기 때는 ‘개똥이’로 불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다. 어쨌든 볕이 좋은 5월 중순 태백산과 지리산, 소백산, 보현산 등 한라산을 제외한 전국의 높은 산 중턱쯤에서 만날 수 있다. 그중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강원도 태백의 두문동재~금대봉~분주령~대덕산 코스가 운이 좋으면 그런대로 자연 상태의 복주머니란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생지로 꼽힌다.
4월, 불가역적인 봄입니다. 춘삼월(春三月)이라 하지만 심술궂은 꽃샘추위로 간간이 옷깃을 여미고 어깨를 움츠려야 했던 3월과 달리, 이제부터는 오로지 화창한 봄입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노랑나비가 살랑살랑 춤추며 날아다니는 봄. 어질어질하고 아찔한, 그런 봄날의 몽환적 분위기를 쏙 빼닮은 야생화가 있습니다. 봄이 농익어가는 4월부터 5월 사이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깽깽이풀입니다.
주로 산 중턱 아래 낮은 숲에서 자랍니다. 잎이 나기 전, 6~8개의 꽃잎이 지름 2cm가량의 원을 그리며 피는 꽃은 단번에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입니다. 민가와 가까운 곳에서 자라는 데다 관상미가 높은 까닭에 남획과 자생지 훼손이 심해 한동안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됐다가 몇 해 전에야 해제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두 송이가 각기 떨어져 피기도 하지만, 대개는 수십 송이가 뭉쳐서 여기에 한 무더기, 저기에 한 무더기 피는데, 바로 그런 특성에 깽깽이풀이란 이름의 유래와 번식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즉 듬성듬성 자라는 모습에서 한 발로 껑충껑충 뛰는 깽깽이걸음을 떠올리고 깽깽이풀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는 설이지요.
그런데 깽깽이풀이 이처럼 듬성듬성 자라게 된 데에는, 당분이 함유된 깽깽이풀의 씨앗을 개미들이 좋아해 개미집으로 운반해가는 도중에 여기에 하나, 저기에 하나 떨어뜨리면서 자연스럽게 분산 발아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4월 농부들이 만개한 이 꽃을 보면 ‘깽깽이(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춰 부르는 말)’ 켜며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늘하늘한 꽃이 예쁘기 그지없지만, 활짝 핀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화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날이 조금만 흐리거나 기온이 차면 꽃잎을 아예 열지 않습니다. 게다가 길이 20~30cm의 꽃대 끝에 하나씩 달리는 꽃은 매우 연약해 바람이 조금만 심하게 불거나, 빗줄기가 강하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꽃이 진 뒤 나는 잎이 꽃 못지않게 귀여워 그 또한 충분히 볼만합니다. 줄기 없이 뿌리에서 바로 나오는 잎은 적갈색에서 점차 녹색으로 변합니다. 물결 모양의 가장자리나 물에 젖지 않고 딱딱한 형태가 연잎을 많이 닮았는데, 이로 인해 아예 황련(黃蓮) 또는 조황련(朝黃蓮)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Where is it?
“깽깽이풀도 없는데 뭐하러 와요?” 몇 해 전 제주의 ‘꽃동무’에게 4월에 방문하겠다고 하자 돌아온 답이다. 남한 최고의 산인 한라산이 있어 ‘없는 야생화가 없는’ 제주도이지만, 4월의 야생화로 손꼽을 깽깽이풀만은 자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제주도와 남해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전국에 분포한다. 그중 야생화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유명 자생지는 경북 의성의 고운사 주변, 대구 달성군 본리리 야산, 강원 홍천군 방내리 야산 등지다. 멸종위기종으로 관리하는 동안 인위적인 증식이 많이 이뤄져 전국 각지의 웬만한 식물원·수목원 등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면은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그렇습니다. 봄바람이 붑니다. 춘삼월 다시 돌아오니 산에 들에 또다시 바람이 붑니다. 처녀, 총각 가슴에도 봄바람이 붑니다. 그 봄바람 따라 봄 야생화들이 다시 또 피어납니다. 복수초, 노루귀, 제비꽃, 변산바람꽃, 중의무릇, 현호색, 양지꽃, 개별꽃, 광대나물 등등. 그런데 이런 봄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라 수백, 수천 송이씩 떼로 피어 온통 꽃밭이 되는 보물섬이 있습니다. 야생화 애호가들은 그곳을 꽤 오랫동안 제 지명이 아닌, 보통명사 ‘서해 꽃 섬’으로 불러왔습니다. 가능한 한 이름을 감춤으로써 찾는 발걸음을 줄여, 야생화 자생지 훼손을 최소화하자는 선의가 담긴 고육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 비밀의 정원은 소문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인기 TV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소개되면서 국내 최고의 야생화 자생지로 전 국민에게 알려지기에 이르렀습니다.
안산시 단원구 풍도가 바로 그곳입니다. 풍도의 야생화 탐사는 선착장이 내려다보이는 비탈면에 형성된 마을 뒤 해발 177m의 후망산을 오르면서 시작됩니다. 배를 타고 풍도까지 가는 동안 과연 꽃이 피었을까 의심하던 조바심은 후망산 오르막 길섶에서 광대나물과 개별꽃, 개지치 등 작은 풀꽃들이 하나둘 깨알 같은 꽃봉오리를 연 걸 보며 눈 녹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을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면 곧바로 복수초가 건배라도 하듯 황금 잔을 여럿 모은 채 길손을 맞이합니다. 봉인 해제된 비밀문서의 페이지마다 은밀한 정보가 가득하듯 후망산 오솔길마다, 산등성이마다, 골짜기마다 귀한 봄 야생화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원래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 했으나, 1894년 청일전쟁의 시발이자 일본이 청나라 함대를 기습해 대승을 거둔 ‘풍도해전(豊島海戰)’을 기념하기 위해 섬을 불법 점거한 일본이 ‘풍도(豊島)’로 고쳐 불렀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섬. 봄이면 섬 전체가 야생화 군락지라 할 정도로 다양한 꽃이 풍성하게 필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 없는 고유종도 2개나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전에 변산바람꽃으로 구별 없이 불리다 깔때기 모양의 꽃이 크고 형태가 다소 다르다는 이유로 변산바람꽃의 신종으로 분류된 데 이어 ‘풍도바람꽃’이란 별도의 국명으로 등재된 게 그 하나요, 붉은대극과 유사하지만 잎이 좁고 총포 내에 털이 밀생한다고 해서 ‘풍도대극’이라 불리는 게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들의 별도 국명과 관련, 미세한 차이를 내세워 새로운 종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봄바람 부는 3월 내내 풍도에는 이들 외에도, 샛노란 복수초와 분홍·보라·흰색의 노루귀, 순백의 꿩의바람꽃 등 색색의 야생화가 곳곳에서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화사하고 아찔한 색의 향연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현지 주민 및 야생화 동호인은 “5~6년 전만 해도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여러 종의 야생화가 섬 전체에서 지천으로 피어났었다”면서 “해마다 야생화 군락이 크게 줄고 있어 안타깝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특정 기간 야생화 자생지의 출입을 금지키로 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 Where is it?
대부도에서 남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풍도는 섬 둘레 5.4㎞, 전체 면적 1.84k㎡에 불과한 작은 섬으로 현재 6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평상시 섬을 드나드는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회 여객선이 왕복 운항할 뿐이다. 오전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떠난 여객선은 대부도 방아머리항을 거쳐 풍도에 닿았다가 당일 곧바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야생화를 찬찬히 살펴보려면 최소한 1박을 해야 한다. 다만 3월이면 야생화를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단원구 탄도항이나 당진의 도비도항, 서산 삼길포항 등지에서 단체로 낚싯배 등을 빌려 아침 일찍 섬에 들어 한나절 돌아본 뒤 오후에 되돌아 나오곤 한다.
해마다 봄이 다가올 무렵이면 사람들은 꽃을 보러 나서기 시작한다. 홍매화를 보러 절 마당을 찾고, 진달래나 철쭉, 산수유, 튤립... 등등 쉬지 않고 피어나는 봄꽃들을 찾아 사람들은 멀리멀리 떠나곤 한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먼길을 다시 돌아오면 결국 그 모든 꽃들이 서울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고궁에 기품 있는 홍매화가 있고 도심 한 복판 사찰의 기와 위에 산수유가 노랗다. 버스만 타도 진달래가 가득 피어난 산이 있고 지하철역을 나서면 푸짐한 개나리 동산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름다운 고택의 담벼락에 피어난 능소화를 찾아 남녘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가까운 공원에 능소화 터널이 있고, 동네 구청 화단에, 가까운 향교 돌담에, 심지어는 도로변에도 꽃담을 이루어 능소화의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먼 남쪽의 산하에, 그 들판에, 고즈넉한 사찰과 함께, 그 마을 뒷산에서 또는 그곳의 숲에서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사실이다. 스님의 맑은 미소가 봄볕처럼 따사로운 절 마당에 피어난 홍매화가 더없이 아름답다. 몽글몽글 빛나는 대웅전 뜰의 빛망울이 분홍빛 진한 홍매를 돋보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야생화가 언 땅을 뚫고 나왔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광명의 구름산에 야생화가 지천이다. 남양주 쪽의 운길산과 청노루귀의 검단산이 있다. 차를 몰고 영흥도와 구봉도 쪽으로 잠깐 달리면 겨우내 낙엽더미 속에 묻혀있다가 고개를 내민 노루귀를 볼 수 있다. 아직 녹지 않은 눈 속에서 피어난 노오란 복수초가 환하다. 보물찾기 하듯 찾아낸 손톱만 한 야생화와의 조우가 짜릿하다. 반나절만 나서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날 수 있고 바다가 보이는 자연 속의 봄꽃을 귀한 손님처럼 맞을 수 있다.
겨우내 땅 속에 묻혀있다가 강인한 생명력으로 존재감을 보여주느라 애썼다고 눈인사를 하고 싶은 순간이다. 그 산비탈에 엎드려 봄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수줍은 바람꽃을 향해 렌즈 초점을 맞추며 행복하다. 렌즈를 통해서 바라보는 자연의 섭리와 변화를 만끽하는 기쁨에 감사한 시간이다. 반갑게 마주보고 고맙게 담아내고 조심히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긴다.
머잖아 꽃망울을 터트리며 개화를 알릴 매화나무도 추위 속에 싹을 틔우는 게 보인다. 온갖 풍상을 겪어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봉오리가 맺혀있다. 비로소 나무의 굴곡진 꺾임의 멋도 눈에 들어온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가까이에 봄이 있고 봄꽃이 싹을 틔우고 있다. 봄볕 드는 버스 창가에 앉아 꽃을 보러 가는 기분을 누려볼 수 있다. 봄 하늘은 푸르고 찬 공기는 상쾌하다. 매년 이런 계절을 맞으며 이 땅에 사는 맛을 비로소 즐겨본다. 뒤늦게 내가 사는 세상이 고맙고 애틋하다.
추위를 견디고 피어난 꽃들이 향기도 좋다고 한다. 매섭던 겨울이 지나고 해마다 이렇게 돌아오는 봄에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인생은 감사하다.